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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노벨문학상 애증사
2015년 02월 01일 13시 50분  조회:3676  추천:1  작성자: 넉두리

중국의 노벨문학상 애증사
 
암살된 문일다, 가장 위대한 중국 시인 “88년 노벨 문학상은 사실 선충원의 것
 
                                                  김명호 한국 성공회대 교수
 





 
월명성희(月明星稀), 달이 밝으면 주변에 있는 별들은 빛을 잃을 수밖에 없다. 소동파(蘇東坡)의 적벽부(赤壁賦)에 나오는 구절이다.
 
중국에서 사각지대에 묻혀버린 사건이 많다. 중국의 노벨 문학상에 얽힌 아주 중국적인 사건도 그중 하나다.
 
남 얘기하기 좋아하기로는 중국인 따라갈 사람들이 없다. 누가 얼마 해먹었고, 누구 부인이 누구와 각별한 사이고 그 남편은 누구와 가깝다는 등 공원이나 찻집, 공중변소에 쭈그리고 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기 일쑤다. 앞에서 배 움켜쥐고 서 있는 사람 따위는 아랑곳하지도 않는다. 사실 같은 유언비어, 거짓말 같은 진실이 난무할 수밖에 없다. 골목마다 소재가 다르지만 전국적인 것이 태반이다.
 
모옌(莫言)이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된 후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새로운 얘깃거리와 함께 예전부터 나돌다 잠복했던 얘기들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2000년 10월, 프랑스 국적의 가오싱젠(高行健)이 노벨 문학상을 받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대륙 작가들은 입을 삐죽거렸다. “노벨이 중국 작가와 무슨 원수 질 일이 있었길래 중국 본토 작가들이 아직도 노벨 문학상을 못 받는단 말인가.” 가오싱젠은 3년 전까지만 해도 엄연한 중국 국적이었다.
 
가오싱젠 상 받자 “中 본토와 원수졌나”
1985년, 고란 말름크비스트(Goran Malmqvist)가 노벨 문학상 종신 심사위원에 선정되자 중국 작가들은 “이제야 노벨 문학상으로 통하는 길이 열렸다”며 기대에 부풀었다. 인간관계를 중요시하는 민족이다 보니 그와 편지라도 몇 번 주고받은 작가들은 “5·4 신문학운동 이후 최대의 사건”이라며 흥분했다. 18명의 심사위원 중 중국문화를 이해하고 중국 고전과 현대문학, 쓰촨(四川) 방언에 정통한 사람은 말름크비스트가 유일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스웨덴이 배출한 세계적인 중국학자 요하네스 칼그렌(Johannes Karlgren)의 수제자였고, 부인도 남편 장악력이 뛰어난 쓰촨 여인이었다. 마웨란(馬悅然)이라는 중국 이름도 있었다. 며칠 밤을 뜬눈으로 새워도 피곤한 줄 모를 만한 경사였다.
 
말름크비스트는 번역가로도 명성을 떨쳤다. 92년 68세가 될 때까지 수호전, 서유기 같은 고전과 모택동 시집[毛澤東詩詞全集]과 원이둬(聞一多)·선충원(沈從文)의 소설 등 700여 종의 중국 책을 직접 번역했다. 스웨덴에 있는 그의 책상에 중국 작가들이 보내온 저술들이 산처럼 쌓이기 시작했다.
 
90년 가을, 홍콩을 방문한 말름크비스트와 중국 출판인의 대화를 엿들은 적이 있다. 중국인들이 노벨상을 얼마나 중요시하는지 실감이 났다. 처음부터 끝까지 노벨 문학상에 관한 얘기였다. 루쉰(魯迅), 선충원, 라오서(老舍), 원이둬, 바진(巴金) 등 중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이름이 난무했다. “중국인들은 1936년에 세상을 떠난 루쉰이 노벨 문학상을 거절했다며 자부심을 느낀다. 당시 서구인들은 루쉰이 뭐하는 사람인지 몰랐다. 양셴이(楊憲益)의 주옥 같은 번역은 루쉰 사후에 나왔다.” 양셴이는 홍루몽(紅樓夢)을 영어로 번역한 베이징의 일류 술꾼이었다.
 
말름크비스트는 신문학운동이 배출한 최고의 작가로 선충원을 꼽았다. “심사위원들은 매주 네 번씩 회의를 연다. 6월부터 8월까지는 회의가 없다. 88년 5월 10일 밤, 대만 여류작가로부터 선충원이 베이징의 허름한 아파트에서 세상을 떠난 걸 아느냐는 전화를 받았다. 스웨덴 주재 중국대사관 문화참사에게 사실 여부를 확인했다. 선충원이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냐고 내게 되물었다. 조금만 더 살았더라면 그해 가을의 노벨 문학상은 선충원 차례가 됐을지도 모른다.” 88년은 말름크비스트가 선충원 소설 3권의 완역본을 출간한 해였다. 그런 탓인지 몰라도 말조심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너무 토속적인 게 흠이다. 외국인들이 이해하기 힘들다.”
 
우리 신문에 자주 거론되던 바진의 작품에 관한 얘기도 빼놓지 않았다. “아주 좋은 소설들이다. 미래의 중국 연구자들이 지난 세기 쓰촨인들의 생활상을 알려면 꼭 읽어야 한다. 문학적 가치는 선충원의 것들만 못하다. 비교 대상이 못 된다.”
 
시인으로는 46년 국민당 특무에게 피살당한 원이둬에게 가장 후한 점수를 줬다. “중국 문학 사상 가장 아름다운 시를 쓴 정말 위대한 시인이었다. 걸출한 학자이기도 했다. 붉은 촛불(시집 紅燭)의 비애는 읽는 사람을 황홀하게 만든다. 노벨 문학상을 받고도 남을 만했다. 비장미 넘치는 시인이었다.”
2007년 10월, 중국을 방문한 말름크비스트는 다시 선충원 얘기를 꺼냈다. “시간이 흘렀으니 얘기하겠다. 88년 10월의 노벨 문학상은 선충원 것이었다. 발표 5개월 전에 세상을 떠난 것이 아직도 애석하다. 작가는 이것저것 따질 필요가 없다. 그냥 쓰고 싶은 걸 쓰면 된다. 체제나 반체제, 이런 건 우리의 관심사항이 아니다. 노벨 문학상은 세계 최고의 문학상이 아니다. 좋다고 생각되는 작가에게 주는 상이다. 중국에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사람들보다 더 좋은 작가가 많다.”
 
첸중수 “노벨상, 화약보다 더 큰 해악”
중국인들이 노벨상에 너무 집착한다며 폭발력 강한 발언도 했다. “상금은 내게 줄 테니 명예만 우리에게 달라는 산둥(山東)성의 문화담당 간부도 있었다. 어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보낼 때마다 서화(書畵)를 몇 점씩 보내곤 했다. 다 돌려줬다.” 문화담당 간부가 누군지 밝히라는 추궁이 잇따랐지만 이름은 밝히지 않았다. 온갖 소문이 꼬리를 이었다.
 
모옌이 수상자로 발표되자 문화계가 발칵 뒤집혔다. 모옌은 산둥 사람이었다. 5년 전에 재혼한 말름크비스트의 부인까지 구설수를 탔다. “이번 노벨 문학상 수상자는 이 여자가 결정했다.” 43세 연하인 말름크비스트의 두 번째 부인도 쓰촨 출신의 중국 여인이었다.
 
온갖 소문에 시달린 말름크비스트는 “다시는 중국인과 상종하지 않겠다”며 돈에 얽힌 얘기도 폭로했다. “미화 60만 달러를 들고 와 자신의 소설을 번역해 달라는 젊은 중국 작가가 있었다. 거절하자 다른 심사위원에게 달려갔다.” 장이이(張一一)라는 작가의 이름까지 공개했다.
 
노벨상 얘기가 나오면 ‘문화곤륜(文化崑崙)’으로 추앙받던 첸중수(錢鍾書)를 떠올리는 중국인이 많다. 첸중수는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자 “버나드 쇼의 말이 맞다. 노벨이라는 사람은 화약보다도 노벨상을 만들어 인류에 더 큰 해를 끼쳤다”며 불쾌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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