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가던 버스가 갑자기 폭발하다니, 믿겨지지가 않아.”
“그러게 말이야. 이 사건은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거야.”
최근 서울 행당동에서 일어난 버스폭발 사건에 대해서 두 여성이 나누는 대화가 이랬다. 두 사람 모두 잘못된 말을 쓰고 있었다. 그런데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많은 사람들이 쓰고 있어서 어디가 잘못됐는지 단번에 알아채기도 쉽지 않다. 두 여성은 모두 ‘이중피동’을 쓰고 있다.
이중 피동은 피동형 동사에 ‘-어지다’ 형태의 피동표현을 한 번 더 쓰면서 중복된 피동표현을 하는 것을 말한다. 잘못된 우리말 쓰기의 전형 가운데 하나다. 피동은 주어가 직접 움직이는 능동에 대립되는 것이다. 주어가 남의 움직임에 의해 동작을 하게 되는 문법현상이다.
‘믿겨지지 않다’는 ‘믿다’의 피동사인 ‘믿기다’와 피동을 나타내는 ‘-어지다’가 결합된 이중피동 형태가 부정형과 결합했다. ‘잊혀지지 않는다’는 ‘잊히다’에 ‘-어지다’가 합쳐진 꼴에 역시 부정형과 결합했다.
두 문장을 바르게 표현하면 “믿기지 않아”, “잊히지 않을 거야”라고 해야 한다. 특히 ‘잊혀지다’는 바른 표현인 ‘잊히다’ 보다 훨씬 자주 쓰였던 표현이다. 가수 이용을 비롯해 여러 사람이 ‘잊혀진 계절’이라는 노래제목으로 노래했다. 바른 노래제목을 달자면? ‘잊힌 계절’이라 해야 할 것이다.
국립국어원 김형배 학예연구관은 “한글창제 이후 중세시대에는 국어에서 피동표현이 거의 사용되지 않았는데 영어의 영향을 받으면서 현대에는 피동표현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능동으로 표현하는 것이 익숙하고 자연스럽다는 설명이다. 예를들어 ‘화살이 살에 박히고’라는 피동 표현이 옛 문헌에는 ‘화살이 살에 박고’라고 기록돼 있을 정도다.
흔히 “미용실에서 머리 깎고 왔다”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원칙적으로는 피동표현을 쓰는 것이 맞다. 자기 머리는 스스로 깎는 것이 아니라 깎이는 것이기 때문. 능동표현이 익숙해졌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지금 우리말은 이대로 굳어졌다.
이중피동은 말이 쓸데없이 길어지고 깔끔하지 못하다. 김형배 연구관은 “피동표현은 국어가 발달하면서 점점 익숙해져가고 있으나 이중피동은 분명히 잘못된 우리 말 글 쓰기”라고 지적했다.
박양명 기자
또 다른 견해
국어 선생님들이 시험 문제를 낼 때의 특징 중 하나는 어법에는 맞지만 일상적으로 잘 쓰지 않는 표현을 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한 예로 이용 씨의 노래 ‘잊혀진 계절’이나 그룹 동물원의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 ‘잊혀지는 것’을 들 수 있다. 이 노래 제목에 무슨 바르지 않거나 곱지 않은 말이 있을 것이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런데 그분들에 의하면 ‘잊혀지다’라는 말은 어법에 맞지 않는 말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이 말에는 ‘잊다’에 피동의 의미를 만드는 ‘-히-’와 ‘-어지다’가 동시에 사용된 것이기 때문에 이중 피동이 된다는 것이다. 이중 피동은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쓰지만, 어법을 따지지 않더라도 고쳐서 쓰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다. 예를 들면 ‘범인으로 생각되어지는 인물’과 같은 표현은 ‘범인으로 생각되는 인물’로 바꾸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그렇지만 이 경우에서 어법에 맞게 ‘잊힌 계절’ ‘잊어진 계절’이라고 하면 매우 어색해진다. 대부분의 문학 전공자들은 이런 어색한 표현이 옳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국어 교사가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말들은 출제에서 제외를 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잊혀지다’에서 사용되는 ‘-어지다’를 피동을 나타내는 것으로 인식하기보다는 ‘이루어지다’ ‘없어지다’ ‘깨끗해지다’에서 보이는 것과 같이 ‘어떤 결과에 이름’의 의미로 인식을 하는데, 이럴 경우 어법에 맞지 않다고 하기도 어렵다. 현재의 어법에 맞지 않고, 사전에 등재되어 있지 않다고 해서 완전히 틀렸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런 말들 중에 시험에 가장 많이 나오고, 신문의 칼럼들에서 지적하는 말 중 하나가 바로 ‘바라다’를 잘못 활용한 사례인 ‘바래’와 ‘바램’이다. 이 예들은 ‘바라+아’가 결합된 것을 잘못 말한 것이라는 지적을 워낙 많이 받다 보니 텔레비전을 보면 사람들끼리는 자연스럽게 “잘하길 바래”라고 말하는데, 자막은 매우 어색하게 ‘잘하길 바라’로 나온다. 그렇지만 이 경우도 사람들이 ‘바래’를 쓰는 것이 아주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 만약 어법이 만고불변의 진리라면 ‘사랑하다’의 경우 ‘사랑하+아’가 되어 ‘널 사랑하’라고 고백을 해야 한다. 그렇지만 ‘하다’가 붙는 모든 말들은 ‘여 불규칙 활용’이라고 하여 어미 ‘아/어’가 ‘여’로 바뀌고 ‘하여’가 줄어서 ‘해’가 된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어간의 형태 그대로 두었을 때 발생하는 어색함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만나다’의 경우는 어간이 문장의 종결어미로도 사용되는 ‘나’로 끝나기 때문에 ‘내일 만나’와 같은 표현이 어색하지 않지만, ‘바라다’ ‘삼가다’와 같은 경우는 ‘바라’ ‘삼가’라고 하면 어색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 불규칙 활용’과 같은 원리를 적용해 ‘바래’ ‘삼가해’와 같은 표현을 쓰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3시까지 오기 바람”과 같은 예에서 ‘바라다’의 명사형을 ‘바램’으로 쓰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그렇지만 희망을 뜻하는 명사 ‘바람’이 될 때는 ‘바램’을 더 많이 쓰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이미 강력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바람’(風)이라는 말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주검’이라는 말이 동사 ‘죽다’에서 온 말은 맞지만 명사가 되면서 ‘죽음’이라는 말과의 의미 충돌을 피하기 위해서 다른 형태로 사용하는 것과 원리가 상통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이 그 나름의 타당한 근거를 가지고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말은 억지로 고치라고 하기보다는 빠른 심의를 통해 인정을 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민송기
부록
잊혀진 계절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뜻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우리는 헤어졌지요.
그날의 쓸쓸했던 표정이
그대의 진실인가요.
한마디 변명도 못하고
잊혀져야 하는 건가요.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나에게 꿈을 주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
그날의 쓸쓸했던 표정이
그대의 진실인가요.
한마디 변명도 못하고
잊혀져야 하는 건가요.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나에게 꿈을 주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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