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도는 그런 쩨쩨한 말이 아니라 탁 트인 마음이다
[강상헌의 바른말 옳은글 98 ] 2014년 새해 금도사용설명서
강상헌 언론인 · (사)우리글진흥원 원장
사노라면 언젠가는 밝은 날도 오겠지 // 흐린 날도 날이 새면 해가 뜨지 않더냐 //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 밑천인데 // 쩨쩨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쫙 펴라 // 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 (김문응 작사 길옥윤 작곡, 1966년작 《사노라면》 가사 1절)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뜬다.”
왕년의 대작 미국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여주인공 스칼렛 오하라(비비언 리 출연)가 막판에 주먹 불끈 쥐며 그렇게 부르짖었다. 원문(Tomorrow is another day.)보다 우리말 번역문이 더 아름다워 우리 젊은이들 가슴을 더 흔들었다. “사노라면”의 해 이미지와 흡사하지 않는가?
그 가슴에 품은 뜻, 흉금이다. 왜 있지 않는가? 흉금을 터놓고 얘기하자는 말, 가슴을 쫙 펴고 구긴 데 없이 당당하게 살자는 이 노래가 사람을 내내 달뜨게 하는 까닭일 터. 그 낱말의 사촌이 바로 금도(襟度)다.
마음의 큰 터전, 모두를 보듬어내고도 화수분일 것 같은 백범 김구 선생 웃음보처럼 낙낙한 가슴 속을 이른다. ‘다른 사람을 포용할만한 도량’이라고 사전은 새긴다. ‘금도’는 이렇듯 아름답고 귀한 말이다. 아웅다웅 투닥토닥 하는 상황에 쓰는 지저분한 말이 아니다.
70년대 통속 연애소설의 상투적 주제 ‘넘어서는 안 될 선’의 기억이 아직 남아서일까? 정치인들의 그 ‘금도’는 잘라 말해 어리석다. 금도의 뜻이 그게 아니다. 뚱딴지도 유분수지, 금도가 ‘마지노선’이란다. 최근의 보도를 보자.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말이 정치적 금도를 넘나들고 있다."고 했다. 같은 당 황우여 대표는 “...인간적 아픔은 피해가는 것이 최소한의 금도 아니었는가”라고 했다. 그 당 대변인이 “SNS에서도 넘지 말아야할 선이 있다"고 언급한 그 ‘선’이 바로 그들의 금도다. 민주당 전병헌 원내대표도 “...최소한의 예의와 금도를 깬 처사"라고 ‘금도타령’으로 벋섰다.
정치를 평하고 논하는 대학교수도 예외는 아니다. ‘정론-막말의 금도’란 이름의 신문 칼럼에서 신율 명지대 교수는 “...모든 말에는 금도가 있다. 부부싸움에도 해도 될 말과 해선 안 될 말이 있고 부모 자식 간에도 마찬가지다.”라고 했다.
미디어오늘은 여러 차례 이 말의 오염(汚染)과 오용(誤用)을 지적해 왔다. 한겨레신문도 이런 밉상을 보다보다 지쳤는지 한 칼럼에서 이 말의 뜻을 되레 차분하게 설명해줬다. 경향신문 사장을 지낸 언론인 고영재 씨의 글 이 대목을 통해서다.
... 금도, 의미심장한 말이다. 인간 세상의 난제를 해결하는 실마리가 숨어 있는 말이기도 하다. 금도에 담긴 도량, 배려, 분별, 약자에 대한 측은지심 등의 의미를 곱씹어 볼 일이다. 무릇 금도란...
‘금도 타령’이 한동안 뜸했다. 그러다 또 한 무리 정치인들이 생각 없이 엉터리 말 ‘금도’를 질러대니 우리 언론들 따라 외우기 바쁘다. 우리 신문과 방송의 데스크들, 선배님들은 요즘 후배님들을 어떻게 지도하는지 궁금하다. 걱정스럽기도 하고. 그들은 모두 공인(公人)들이다. 선배 김재곤 기자의 핏대가 문득 그립다. 고 김용정 기자도.
금지가 뼈에 사무친, 하릴없는 패배의식의 결과일까? 금도(襟度)를 금도(禁度)라고 지레 무심코 짐작한 결과로 본다. 하긴, 그 나이 사람들의 의식은 측은할 정도로 쩨쩨할 수 있다. ‘날이 새면 해가 뜨지 않더냐’라고 절규했어야 할 정도로 핍박의 사고에 익숙했던 시절이었다. 독재의 프레임은 차츰 ‘대인(大人)의 금도’와 같은 표현들을 세상에서 지웠다.
세상이 그렇게 이끌었을 수도 있었다. 전적으로 그들의 (무식) 탓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런 선배들에게서 후배들은 따라 배웠다. 그러나 고쳐야 할 사항이다. 그 낱말뿐일까?
금도는, ‘넘어서는 안 될 선’ 따위의 야릇한, 엉큼한 말이 아니다. 너른 가슴이다. 관대함이고 아량이다. 남을 즐겁게 하는 배려다. 푸근한 미소다. 당당함이고 흔쾌함이다. 열린 마음이다. 이효리의 마음 같은 상큼한 청춘이다. 베풂이고 감사다. 금도는, 2014년 새해 모든 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기쁨이다.
토/막/새/김
저고리[의(衣)] 앞 여미는 부분이 옷깃[금(襟)]이다. 저고리가 흩날리지 않도록 단정하게 여미는 데 ‘하지 말라’는 뜻 금(禁)을 썼다. 두 이미지(그림글자 衣 禁)가 하나 됐다. 옷깃 안쪽은 사람의 가슴, 襟이 옷깃이면서 ‘가슴’의 뜻이 된 인연이다. 신령스런 힘이 숨 쉬는 숲 임(林)과 제단 또는 신(神)의 영역을 뜻하는 시(示)가 붙어 ‘금하다’[禁]라는 완강한 뜻이 됐다. 나무[목(木)] 모여 숲[林]되고, 거기에 제단[示] 놓여 금지[禁]가 되고, 거기에 저고리[衣] 붙어 가슴[襟]되는, 오랜 문자역사의 퍼즐은 사물의 이치를 보듬고 있다. 본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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