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이 김선달 이야기>>를 읽다 보면 옷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 날, 김선달이 람루한 옷을 입고 한 부자집 잔치에 갔는데 문지기가 들여놓지 않아 돌아갈수밖에 없었다. 다시 좋은 옷을 빌려입고 갔더니 이번에는 들어갈수 있었다. 음식상을 마주한 김선달은 우선 맛있는 음식들을 집어 소매속으로 넣으면서 많이 먹으라고 중얼거렸다. 주인과 옆자리 손님들이 놀라서 물으니 ⟪잔치에 초대된것은 내가 아니고 이 옷이지 않느냐⟫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위그르족의 <<아반티 이야기>>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사람보다 사람이 입고 있는 옷(재부)을 더 중요시하는 세태를 풍자한 이야기다. 다른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이를 뼈저린 체험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소학교 1학년을 마감할 무렵이였다. 학교강당에서 시상식이 있었다. 나는 학년말 시험에서 1등을 했던터라 교도주임이 1학년 수상자이름을 부를 때 수석으로 호명되였다. 내가 일어서려는 순간, 반주임선생이였던 H선생은 나의 어깨를 손으로 눌러 제자리에 주저앉혀놓고, 다른 학생을 대신 단상에 올려보내 상장과 상품을 받아오게 하였다. 시상식이 끝난후 H선생은 상을탄 학생들을 데리고 학교 앞거리에 있는 사진관에 가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물론 수석을 차지했던 나는 그들과 함께 사진관으로 갈수 없었다. 그때 내가 당한 수모는 나의 람루한 옷때문이였다는 것을 어린 나이에도 쉽게 짐작할수 있었다.
그들이 사진관으로 갈때 나는 조용히 우리 집부근에 있는 냇가 버드나무숲을 찾았다. 홀로 숲속에 앉아 실컷 울고난 다음 차분히 지난 일을 생각해 보았다. 그날 전까지만 해도 나는 스스로 가난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설날 설빔으로 단장한 동네애들과 어울릴수 없었던 고독함, 가끔은 끼니를 걸러야만 했던 굶주림의 고통, 처음 학교를 가게 되는 어린 손자에게 옷 한벌 못해 입히는 안타까움 때문에 밤새 소리없이 눈물 흘리시던 할머님의 아픈 심정…… 나는 가난을 그런 정도로 리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당해 보고나니 그것만이 아니였다. 가난은 학교에서 1등을 한 어린 학생이 단상에 올라가 상을 받을수 있는 기쁨마저 빼앗아가는 괴물이였다. 그때 나는 세상에 가난보다 더 큰 불행은 없을것이라고 생각하게되였다.
그날 나는 늦게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옆집 친구들로부터 그날 일을 전해들은 할머니는 저녁상 앞에 우두커니 앉아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늦게 귀가한데 대해 할머니는 조금도 꾸지람하지 않으셨다.저녁식사가 끝난후 할머니는 밥상을 마주하고 나에게 조용히 말씀하셨다. ⟪가장 중요한것은 네가 1등을 했다는 사실 자체이다. 그밖의 일들은 있어도 없어도 될 일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네가 좋은 옷을 입고 단상에 올라가 상을 탔다 하더라도 너의 1등에 뭔가 더 보태질것도 없고, 남이 너 대신 상을 타다 주었다 해서 너의 1등에 무엇이 부족해진것도 없다고 생각된다. 오늘 일에서 너는 무엇인가 깨달아야 한다. 가난은 가끔 사람들의 마음을 군색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러한 가난의 어려움을 당하면서도 흔들리지 않고 너그러운 마음의 자세를 가질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참된 사람이다. 때문에 가난이란것은 네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것처럼 불행한것만은 아니다. 다만 어느 정도의 아쉬움일뿐이다. 아쉬움이 없는 넉넉함을 지향하면서, 너는 노력을 경주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어른으로 크게 된단다…⟫그날밤 나는 할머님의 품속에서 달게 잠들수 있었다.
그후에도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가난은 줄곧 딱친구처럼 나의 인생을 동무해주었다. 남들이 입는 좋은 옷을 입을수 없었고, 남들이 먹는 맛있는 음식을 먹을수 없었으며, 보고싶은 영화도, 사고싶은 책도 불가능케 했다. 한마디로 가난은 나의 생활에 제동을 걸어놓고 불편을 극대화시켰다. 하지만 불행중의 다행이라면 나에게 공부할수 있는 외길만은 열어놓고 있었던것이다. 가난은 결코 ⟪문화대혁명⟫당시의 관념처럼 자랑거리로 되거나 행복한 일로 될수는 없다. 가난은 사람에 따라 어쩔수 없는 무능함이 될수도 있고, 게으름과 직결되는 부끄러움으로 될수도 있다. 그러나 가난은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선물하는 바가 더욱 많다. 우선, 가난은 인간에게 불편함과 그에 따르는 고통을 주면서 세상을 정확하게 볼수 있는 혜안(慧眼)을 선물해준다. 편안함보다는 불편함속에서, 세상을 보는 인간의 눈은 밝아진다. 그리고 가난은 인간에게 의욕을 선물한다. 불편함은 편안함을 추구하는 노력을 자극하기때문이다.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항상 꿈이 있기 마련이다. 그 꿈은 인간으로 하여금 눈앞의 가난을 참고 견디는 인내심을 갖게 한다.
그래서 우리 속담에는⟪굶어 보아야 세상을 안다(굶주림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세상을 참으로 알았다 할수 없다는 말)⟫거나 ⟪초년고생은 은을 주고 산다(젊어서 고생하며 열심히 일하면 잘 살수 있다는 말)⟫등이 있다.
우리는 누구나 할것 없이 짧은 인생을 부족함 없이 잘 살려고 한다. 그러나 부족함과 가난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진정한 뜻의 넉넉한 삶을 살아갈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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