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들보다 좀 일찍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셈이여서 소학교에 입학해서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줄곧 반에서 제일 어린 축에 속했다. 고중까지는 그런대로 모르고 지냈으나 대학에 진학하여 한족 동학들이 나를 부를 때 성씨 앞에 《소(小)》자를 붙여 호칭하면서부터 나는 부지불식간에 《꼬마 콤플렉스》를 앓게 되였다. 그것도 열여덟살 때부터 한 대학에서 공부하고 가르치기를 련 42년간이나 지속해 왔기때문에 교환교수나 객원교수로 국외대학에 가있던 몇년을 제외한다해도 내 인생의 3분의 2라는 긴 시간을 한곳에 머물러 살게 되였다. 내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선배나 동창 출신의 교수들이 계속 성씨앞에 《소》자를 붙혀 호칭하는 바람에 그 호칭은 40여년간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다니게 되였다.
그래서인지 나는 내가 늙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면서 살아온것 같다. 누가 회갑을 치른다는 말을 들을 때에도 그것은 으레 나와는 관계없는 남의 일로만 여겨왔고 언젠가 나도 회갑을 치르게 될것이라는것은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
그런데 《소》자를 붙여 나를 호칭해주던 마지막 동창출신 교수가 은퇴하면서부터 나는 서서히 늙음을 지각하게 되였다. 회의장이나 회식장소에서 나는 좌상자리에 앉게 되였고 나에 대한 호칭도 《로(老)》자 일색으로 변했다. 그러던 중에 나는 달갑지 않은 회갑을 맞이하게 되였다. 나의 생일이 음력으로 1943년 2월 2일이니까 금년의 양력 3월 4일이면 만 60세가 된다. 종래로 생일에 별로 신경쓰지 않고 살아왔지만 몇몇 제자들이 찾아와서 회갑을 치르기 위한 준비위원회를 조직하겠다고 했을 때 나는 단연히 거절했다. 우선 회갑을 맞이한다는 실감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가까이 있는 석, 박사생들이 정성껏 마련한 생일잔치로 회갑연을 대체하게 되였다.
60세가 되였다는 것은 바로 늙는다는것을 의미한다고 할수 있다. 아무리 현대인들의 자연년령이 옛날 사람들보다 10여년이 더 연장되였다고 해도 60이 넘으면 건강한 사람일지라도 생물학적으로 나타나는 육체의 로쇠현상은 어쩔수 없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늙음에 대한 사회의 지배적관념과 문화적습관인식은 거의 부정적이다. 로인은 더 이상 쓸모없는 무력한 존재라는 인식은 정년퇴직과 맞물려 더더욱 뚜렷해진다. 따라서 늙음은 두려움과 저주, 혐오, 기피의 대상으로 될 수밖에 없고, 많은 사람들은 60이후의 인생을 덤으로 사는 인생이나 부록과 같은 인생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늙음의 문화적표상을 거슬러 생각을 달리 해볼수도 있다. 생애의 유한함을 받아들이면서 정신적 성숙을 내포한 늙음에 긍정적의미를 부여해보는것이다. 공자는 《론어》에서 《60이 이순(六十而耳順)》이라 하여 60대를 이순으로 정의했다. 나이 예순에는 어떠한 말을 들어도 억지가 없이 만사를 사리대로 순순히 받아들일 만큼 여유로워졌다는 뜻이다. 이순의 인생경지에 이르려면 세상살이의 다양성을 인식할수 있어야 하고 원숙한 인생의 체험이 있어야 한다. 년륜이 60만 되면 누구나 자연히 이순의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은 아니다. 반백이 된 머리칼을 염색해서 늙음을 감추려 애쓰는것보다는 반백을 자연스럽고도 아름답다고 생각해보는것이 훨씬 슬기로울수 있다. 생물학적인 로쇠현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도 삶의 의미를 찾는 정신적 탐색을 멈추지 않을 때 우리는 이순의 경지를 이루어 갈수 있을것이다.
인간은 살아있는 이상 누구라 할것없이 자기만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갖게 된다. 젊은이들은 과거가 짧은대신 미래가 까마득할 만큼 길다. 그러나 60년 이상의 과거를 갖고있는 로인들은 자연히 미래가 짧을수밖에 없다. 자연의 섭리가운데서 모든 인간에게 가장 공평한것은 현재를 뜻하는 오늘이다. 생기발랄한 20대 청년에게 있어서나 래일이면 죽을지 모르는 로인에게 있어서나 길고 짧음이 없이 오늘의 하루는 모두 24시간이 된다. 과거는 돌이킬수 없는 시간들이다. 아무리 권력있고 돈있고 재간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과거를 고쳐 살수는 없다. 그대신 미래는 불확실하다. 누구나 미래를 예측할수는 있겠으나 모든 것이 예측대로 될수는 없다. 때문에 인간이 확실하게 지배할수 있는 시간은 오늘뿐이다. 그래서 모든 생명은 어제도 아니고 래일도 아닌 오늘을 살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의 시간을 조물주(가령 조물주가 있다고 한다면)는 남과 녀, 로와 소를 가리지 않고 모든 인간들에게 공평하게 나누어주고 있다. 그러한 오늘을 어떻게 살아가느냐 하는 것은 인생에 대한 각자의 태도에 따라 달라진다. 따라서 젊은이의 오늘은 반드시 값진것이고 늙은이의 오늘은 꼭 허무한것만은 아니다. 젊은이든 늙은이든 관계없이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고 사회생활에 참여하면서 크든 작든 무엇인가 의미 있는 일을 해나가는 사람의 하루는 뜻있고 값질수 있다. 영국의 철학가 베이컨(Bacon) 은 《고목은 불을 때기에 좋고, 오래 묵은 술은 마시기에 좋고, 오랜 친구는 믿을수 있어 좋고, 로련한 작가의 작품은 읽을만 해서 좋다》라고 해서 오랜 세월의 시련을 이겨내면서 원숙해지고 로련해진 늙음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돌이켜보면, 나의 60평생은 《문화대혁명》으로 방황할 수밖에 없었던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을 제외한다면 대체로 행복하게 살아왔다고 자족하게 된다. 끈질긴 노력으로 불민한 나도 대학의 교수로 될수 있었고 동료교수들 못지않은 연구업적도 쌓아왔다. 가족생활에서 훌륭한 아내를 맞이할수 있었고 하나밖에 없는 자식도 무난하게 자라나 이제는 자립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나에게도 생각조차 떠올리기 싫은 과거가 있다. 어려서부터 부모없이 자라면서 인간세상의 온갖 고초를 겪어보았으며 대학을 졸업하기까지는 가난에 시달리기도 했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겪게 된 10년이나 지속되였던 《문화대혁명》은 내 인생의 황금시절을 빼앗아갔다. 그렇지만 나는 자유를 지향하는 아름다운 꿈과 희망을 잃지 않았기때문에 삶의 어려운 고비들을 이겨낼수 있었다.
누군가가 60이후의 인생은 죽음을 준비해가는 인생이라고 했던 글을 본적이 있다. 자신의 생애를 어떻게 정리하여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것인가를 각오하는 시간이라는 것이였다. 숨 가쁘게 달려온 나의 인생을 생각해보면 죽음을 준비한다는 말을 리해할만하다. 개혁개방을 맞이하여 7개 나라의 10여개 대학에 쫓아다니며 가르치고 배우고 했던 《불혹(不惑)》의 40대 인생과 자신의 학문을 정리하여 20여권의 책을 출판하고 60여편의 론문을 발표하면서 민족의 발전을 위한 현실참여로 눈코뜰새없이 보냈던 《지천명(知天命)》의 50대 인생은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버렸다. 이제 이순의 인생을 맞이하였으니 죽음도 지척가까이 와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나는 살아있는 한 나의 귀중한 삶의 시간을 죽음과 련관시키고 싶지 않다. 비록 죽음이 래일 아침에 찾아온다해도 나는 오늘의 하루를 충실하게 살고 싶다. 《인생을 산다는것은 리허설이 아니며, 장담할수 있는것은 단지 오늘뿐이라는것을 배웠습니다. 우리가 인생이 얼마나 멋진것인지 늘 잊고 산다는게 아이러니지요. 살아갈 날이 계속 줄어들고 있으니 그런 생각을 많이 해야 할텐데, 까맣게 잊고들 지냅니다. 삶의 여백을 만들고 진짜로 사는 법을 스스로 배워야 합니다.》라고 애너 퀸들런이 《어느날 문득 발견한 행복》이라는 책에서 지적한것처럼 확실하고 멋진 오늘의 인생을 살아갈 것이다.
이제 회갑을 보냈으니 몇년 더 지나가면 나도 정년퇴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여도 삶의 희망과 용기를 갖고 하루하루, 한해한해를 충실하게 살아가기만 하면 될것이라고 생각된다. 다만 가장 귀중한 시간은 내가 살고있는 오늘 이 순간이고, 가장 귀중한 사람들은 나와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며, 가장 중요한 일은 내가 그 사람들을 위해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삶의 참뜻을 실천해 나갈 때 우리의 삶은 충실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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