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유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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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5): 《도라지》의 부탁을 받고
2006년 04월 03일 00시 00분  조회:5402  추천:45  작성자: 황유복
만남 (5): 《도라지》의 부탁을 받고

도라지잡시사의 부탁으로 취재를 위해 황교수님을 만나 그의 가슴속에 아직도 매듭처럼 남아있는 하나의 오랜 숙원을 알게 되였다. 북경에다 《기술전문대학》을 세우려는것이다.

일찍 그가 스무살 되는 해 중국 역사상에서 지식분자를《홍, 백》 색으로 획분하던 시기, 정치운동에 대한 열정보다 인간의 순수함을 더욱 사모했던 그에게는 홍색도 아니고 백색도 아닌 그 중간색에 속하는 중간파학생으로 중국 대서남의 이족자치주에 재교육 받으러 내려 갔다. 인간의 인격은 그렇게 물감칠하듯 인위적으로 칠해놓고는 3인조를 무어 지방으로 내려 보냈는데 뜻밖에도 워낙 한곳으로 함께 가야 할 그 3인조가 두곳으로 나위여 가야 할 형편이 되여 부득불 홍색은 백색을 책임지고 감독해야 할 의무가 있으니 함께 가고 중간 색갈인 황유복학생은 단독으로 가게 되였다. 극빈으로 참담한 이족들의 생활모습에 놀랐다. 특히는 그곳의 어른들은 물론 어린이들도 교육을 받지 못하여 온 마을이 문맹이였다. 생명의 고귀함과 삶의 귀중함이 그의 젊은 마음을 들끓게 했다. 그는 놀라운 속도로 이족 언어를 배운 동시에 창고를 빌려 교실을 만들고 집집마다 동원하여 애들을 오전만 학교에 나와 배우고 오후는 집에서 일손을 돕게하는 반공반독의 학교를 개설했다. 세세대대로 가난과 몽매속에서 살아온 이족인민들은 공부하는 자식들 모습에 감개무량하였고 중앙민족대학 당위에서는 전국각지로 재교육받으러 나간 학생중에서 소수민족지구에 가서 학교를 설립한 황유복학생의 전형사적을 대서특필로 홍보하고 《화선》입당까지 시켰다. 일년후 귀교하여 자신의 사적을 그림 련환화로 만들어 대학가에 붙혀놓은것 앞에서 그는 생명에 대한 사랑과 인권에 대한 존중이 정치에 대한 열정으로 인정받음에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것이 그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만든 학교였고 그 학교를 만들고부터 뒤이어 중앙민족대학에 졸업 배치 되여 일하면서 본 대학에 조선어문학부가 없는것을 보고 1972년에 조선어문학부를 설립했으며 연변대학에 공과대학을 만드는데 일조했고1989년에는 북경에다 북경한국어학교를 설립하고 한중 수교후에 또 중앙민족대학 한국문화연구소를 설립하였다. 교육 자로서 민족문제전문가로서 그는 조선족사회 문제중 중요한 고리의 하나가 젊은이들에게 기술교육을 진행해야 함을 보아냈다. 중국에 조선족기술학교를 세워 한국축협, 농협, 그리고 산업기술학원 등과 손잡고 우리 민족 젊은이들에게 현대화한 양식업기술, 가공공예기술, 현대화농법 등을 가르치려는것이다. 바로 이미 조상이 닦아놓은 삶의 터전을 현대적 과학기술로 새롭게 가꾸는 길을 열어주려는 선각자의 노력이고 꿈이고 바램이다.

2005년 7월, 《경제생활》잡지사가 귀국한 조선족로무자들의 재정착문제 특별 토론회를 조직하였다. 흑룡강성에서 온 한 젊은이가 발언을 시작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이 자리를 빌어 우선 황유복 교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번 장춘회의에 제가 참석해서 저의 인생이 바뀌여 졌습니다.. 교수님께서 중국조선족 농촌 청년들에 대한 간곡한 부탁과 기대의 말씀은 저의 맘속에 불씨로 심어졌습니다.》그는 제 9회 학술 심포지엄참석자로서 그번 회의에서 계시를 받고 후날 오리농법을 시작하여 《김씨미업》이란 브랜드를 창출해낸 장본인이다. 황교수는 그때의 심정을 이렇게 피력하고 있다. 《대학에서 일생을 제자를 키우는데 힘을 바쳐온 나에게 참말로 자랑할만한 제자들이 많지만 그날 《김씨미업》이란 브랜드를 가지고 대도시로 진출할 앞날을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았을때 얼마나 기쁘던지⋯기실 그번 회의에서 나는 그 젊은이를 알지도 못했지만 강단에서 한시간도 안되는 연설에서 이런 수확이 생기다니⋯참말로 너무도 대견하고 자랑스럽고 앞날은 그런 우리민족의 젊은이들로 조상이 걸구어놓은 땅을 지키고 그 땅에서 나는 소산과 함께 우리민족문화을 만들어갈것임을 보는듯했으며 믿어마지 않는다.》. 김씨미업은 조선족농촌경제의 출로를 찾는 좋은 시작이 아닐수 없다.

문화의 21세기에 민족교육으로 조선족문화를 번영시키고 민족사회의 지속적인 발전을 도모하려는 그의 주장과 노력은 그의 《숙원》을 현실로 변화시킬줄 믿어마지 않는다. 유복자로 태여나서 이순의 오늘까지 그의 생명의 주선률은 멈출줄 모르는 탐구와 노력으로 연주된 교향악을 방불케한다. 취재의 마감을 황유복교수님의 글로 끝내고싶다.


《그 언제나처럼 때가 되면 20세기는 마감되고 21세기가 저절로 열린다. 그렇다 해서 우리 민족의 미래도 저절로 주어지는것은 절대 아니다. 바람직한 미래는 우리 민족 모두의 엄청한 노력과 지혜를 통하여 만들어지는것이다.》 (황유복:〈조 선족 벤처산업 인재육성과 21세기 조선족사회의 미래〉)

200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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