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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의 과는 부모의 과다
2014년 06월 17일 08시 41분  조회:1898  추천:6  작성자: 회령
          수필
                                   자식의 과는 부모의 과다
                                                                                                                  회령

    부모는 자식의 첯 선생이며 영원한 선생이다. 가정은 자식의 첯 학교면서 영원한 학교다. 세상을 보면 자고로 동, 서방이 다 그렇다. 세상에 자식을 모른다는 부모가 어디에 있겠는가! 부모는 자식을 책임져야 한다.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가? 그것은 죽을때까지 아니, 죽은후에도 책임을 져야 한다. 살아 있을때 남기는 유언인즉 죽은후에도 책임을 지는 표현이다. 자식에 대하여 부모의 실제적 실천행동은 제일 생동하고 제일 심각하고 제일 중요한 교육이다.

    이런 대도리를 나는 늙은이들께서도 여러번 들었고 아주 새파란 젊은 부부들 한테서도 자주 들었다. 무식한 사람의 입에서도 들었고 대단한 사람들 한테서도 많이 듣고 보고 하였다. 그러나 세상에는 부모구실을 제대로 하지못하는 부모가 적지않다. 어른들의 말씀에 자식이란 몸을 낳지 뜻은 낳지 못한다는 것이 있는데, 얼핏 들어보면 옳은 말씀 같기도 하다. 성인이 다 된 자식의 과오는 부모와 상관이 없다는 말이기도 한데 하여, 계급투쟁 년대에 부모 자식간에 “계선을 나눈다.”느니 “관계를 단절(가른다.)한다.”느니 하는 거동까지 있었으나 그건 눈가리고 아웅! 하는 거짓말이다. 부모 자식간의 천륜은 누구도 막을수 없고 자신도 어쩔수 없는, 할수없는 숙명이다. 하기에 절대적으로 자식을 책임져야 한다.

    이런 사례가 있다.

    어느 마을에 강씨부부가 살았는데, 그들은 신통히도 서로 닮은 구두쇠로 살림이 괜찮았다. 그들에게는 아들 형제에 막내로 딸이 있었다. 강씨부부는 무슨심사에서인지 친척과 이웃들의 희사든 비사든 일절 래왕을 하지 않았다. 경, 조사를 만나면 꼭 이런저런 핑게를 대면서 피하였다. 부모의 신칙과 본을 받아 그의 자식들도 이웃과 거래를 하지 않았다. 자식들이 성장해서 잔치를 할때 40여호 마을에서 한사람도 하객으로 가는 사람이 없었다. 더우기 난처한 일은 강씨가 대소한간에 죽었을때 한명의 문상객도 없은 것이다. 그때는 토장을 하는 때였는데 강씨아들 형제가 마을을 두세바퀴 돌면서 방조를 청했으나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결국 정치대장이 부르튼 소리를 들어가며 겨우 네댓 사람을 데리고 가서 눈보라 세찬 엄동에 굴심을 하고 하장을 하면서 수고를 하였다. 하지만 상측집에서는 겨우 저녘한끼를 시래기국에 강술 한병만 내여 놓았다. 고기점이며 반반한 입매꺼리는 한접시도 없었고 밥은 묵은쌀로 지은것이였다. 마을사람들은 강씨아들 형제를 부모를 닮아서 아니, 애비에미보다 더한 짠돌이라고 하였다. 강씨아들 형제가 자식을 낳아 돌생일을 쇨때도 하객이 없었다. 마을에서 돌림을 당한 강씨형제는 되려 마을인품이 더럽다면서 다른곳으로 이사를 갔다. 훗날 그곳에서 모친상을 당했는데 장례는 아버지 때와 똑 같았다. 강씨형제는 부모한테서 보고 듣고 배운 버릇을 고치지 못했든 것이다.

    강씨형제 이야기는 남과의 관계를 말한것이지만 다음의 사실은 혈육간의 사례다.

    모 시에서 상업국국장, 서기를 한 어떤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퇴직년령을 2년을 앞두고 암에 걸렸다. 하여 입원하였는데 위문오는 사람이 가물에 콩씨나기였다. 산골에 있는 형제들도 형님이 한번 왔다간후 들여다 보는 사람이 없었다. 그의 안해는 소학교선생이였다. 그들에게는 위로 아들형제가 있고 아래로는 소아마비딸이 있었다. 다년간, 산골에 있는 형님과 누이들은 막막한 사정이 있으면 콩말이나 감자, 고추따위를 들고 와서는 방조를 바랐다. 특히 형님네는 늙으신 부모까지 모시고 그야말로 궁핍한 생활을 하였다. 하지만 국장의 방조란 혹간 겨우 차비를 조금 주거나 밀가루 두어사발을 주는것이 고작이였다. 왔다가는 형제들은 누구나 다 원망을 속에 품고 돌아갔다. 그리고 다시는 왕래를 하지 않았다. 국장네도 리득이 없는 가난뱅이 산골형제들과 거래를 하지 않았다. 림종을 앞두고 국장은 아들형제에게 눈물을 흘리며 신신 당부를 했다. “너희들은 모두 좋은 단위에서 월급도 괜찮고 집도 있고 출세를 했으니… 사는것이 그만하면 좋다고 할수 있으나 동생이 문제구나. 우리는 이젠 힘이 없으니(안해는 간경화)… 우리가 죽은후에 상장비며 무휼금이 나오면 동생을 주어라. 엄마것도. 집도 동생에게 주어라. 이젠 낡은집이여서 몇푼 되지 않지만… 형제간에 서로 도우며 리해하며 화목하게 살아라. 재미있게 살아라… 나는 그것이 제일 후회된다.”(그때 안해는 곁에 있고 딸은 없었다.) 얼마후 국장이 죽은후 두달도 안되여 안해도 화장터로 갔다. 아들형제는 부모의 모든 돈을 서로 눈을 밝히며 결산을 하고 나누어 가졌다. 물론, 동생에게는 1전한푼도 없었다. 동생은 궁여지책으로 가짜리혼, 가짜결혼을 하고 한국으로 나갔는데 경비는 다른사람들한테서 리자돈을 꿨다. 아들형제는 같은 도시에서 살지만 각자 자기의 생활권에서 활동하다보니 생일이며 명절이며 래왕이 없다. 그들의 자식들은 서로 면목도 모른다. 말그대로 “징수이 뿌빤 허수이”이다.

    또 한가지 기막힌 일이 있다.

    리씨는 소학공부도 겨우 한 농사꾼이지만 수완이 좋은 사람이다. 그는 얼렁뚱땅 생산대간부들에게 붙어 써푸를 몰다가 후에는 대대(촌)뜨락또르를 몰게 되였다. 사람들은 그를 리사기(운전수)라고 부르기도 하고 마구잽이라고도 불렀는데 그는 정말로 마구잽이 였다. 집체가 해산될때 그의 거멀들인 대대간부들은 헐값으로 뜨락또르를 그에게 주었다. 리씨는 뜨락또르를 끌고 다니며 밭도 갈아주고 황무지도 일궈주며 부업을 했는데 길딲기며 제방, 건축 등 큰일도 하여 대뜸 살림이 유족해 지었다. 그는 촌간부들은 말할것 없고 진농기소, 진간부들도 여럿을 친했다. 하여 농기소의 기름이며 뜨락또르 부속품이며(국영일때) 학교, 기관청사 건축용 기초돌 벽돌 기와 목재 세면을 얼렁뚱땅 집으로 가져 왔다. 얼렁뚱땅 마구잽이로 들어내놓고 실어오기도 하고 때론 도둑질해 오기도 했다.(아들들을 데리고 도둑질 할때도 있었다.) 드디여 그는 3년에 걸쳐 뜨르르한 벽돌기와집을 짛기까지 했는데 거멀들에게 개를 잡아 먹이거나 무슨일을 방조해 주는것으로 얼렁뚱땅 “은혜”를 갚았다. 리씨에게는 아들형제가 있었다. 아이들은 어릴때부터 저희 아버지가 제일 대단한 사람이라고 자랑스레 생각하며 행복하게 자랐다. 그런데 안해는 그렇지 않았다. 그의 안해는 아주 정직하고 온순했다. 그는 남편의 “활약”이 늘 두렵고 근심이 되고 싫었다. 하다보니 부부간에 쟁론도 자주 있었다. 안해가 뭐라고 한두마디만 하면 리씨는 대뜸 코막고 답답한 사람이라느니, 제털을 뽑아 제구멍에 꽂을줄 밖에 모르는 고지식한 머저리라느니, 개한마리면 몇십배 리득이 생기는 것두 모르는 아다모끼라느니… 줄욕을 퍼 부었다. 그리고 마감에는 번마다 자식들에게 “사람이란 역어야 한다. 구멍수를 잘 볼줄 알아야 한다. 법을 범할가 말가 틈새기를 보며, 때론 법을 어겨야 돈을 벌지 에미처럼 해서는 한뉘 번신을 못한다.”하고 결론의 훈계를 하군 했는데, 자식들이 다 큰 후에도 쩍하면 여전히 그 훈계였다. 리씨는, 큰아들은 그의 소원대로 돈을 먹여 경찰이 되게하고 작은것은 시내에 들어가 마음대로 일하게 하였다. 그런데 3년도 안되여 아들들이 선후로 중형을 받고 감옥살이를 갔다. 큰아들은 여러번 도박장을 치고 돈을 몰수하여 나누어 먹고 또 거액의 돈을 받고 마약중범을 놓아 주었든 것이다. 작은아들은 인질랍치를 했다. 리씨는 아들놈들이 똑똑치 못하다고, 자기처럼 역지 못하다고 날마다 한탄을 하고 안해는 치매에 걸린 사람처럼 멍청해 졌다. 리씨는 땀흘려 일하기도 싫고 기력도 없어 밭은 세를 주고 뜨락또르는 언녕 페철로 팔아버렸다. 그런데 잔치도 하지않고 손군은 셋이나 걷어 안았다. 큰아들은 남자애 쌍둥이를 낳고 작은것은 딸애를 보았다. 애에미들은 행방불명이다.

    세상에는 우연한 일도 물론 있지만 대부분 일은 인과 관계다.

    자식의 뜻은 낳지 못한다고 하지만 꼭 그런것이 아니다. 웃물이 맑아야 아래물도 맑고 대들보가 구불면 서까래도 삐뚠다. 문제는 아래에 있고 원인은 우에 있다.(나라도 마찬가지다.) 아이들 앞에서는 물도 먹지 말라는 말이 있는데… 부모의 책임은 너무도 크고 무겁다.

                                                                                                                                    1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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