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룡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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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련정
2013년 12월 06일 17시 51분  조회:2856  추천:8  작성자: 강룡운
수필

무궁화련정

강룡운

           
     나는 무궁화란 이 낱말을 소학교 다닐 때 처음 알게 되였고 무궁화란 이 꽃은 대학교에 가서야 비로소 그 실물을 보게 되였다.
    1949년 3월, 중화인민공화국의 탄생을 만천하에 선고하기 몇달전, 나는 만 7세에, 우리 나이로는 아홉살이 되어서야 소학교에 입학하게 되였다. 그때 우리가 처음으로 배운 어문과목이 한글이였는데 몇해 지나서부터는 조선어라고 바꿔 불렀다. 아직 철부지였던 나에게 있어서 한글이든 조선어든 모두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와 어머니가 배워준 우리 말과 우리 글이였으므로 그것이 도대체 뭐가 어떻게 다른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수 없었으며 어째서 한글을 조선어라고 바꿔 부르는지 그 영문조차 알수 없었다. 아무튼 한글이라고 하든 조선어라고 하든 우리는 소학교 1학년때부터 우리의 모어를 배운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때 우리가 한글을 배우는것도 ㄱㄴㄷㄹ,ㅏㅑㅓㅕ로부터 시작하여 아버지, 엄마, 할아버지, 할머니하는 순서대로 우리 말, 우리 글을 배웠는데 교과서에는 무궁화란 낱말도 있었다. 선생님은 무궁화를 조선의 국화(国花)라 하면서 삼천리 금수강산을 상징하는 아름다운 꽃이라고 강조했다. 선생님의 이 말씀은 호기심으로 가득찬 나의 머리속에 무궁화가 바로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와 어머니가 살다가 떠나온 조상의 나라를 상징하는 꽃이라는것을 각인해주었으며 또한 나의 어린 가슴속에 아름다운 동경의 꽃씨를 심어주었다.1962년 9월 나는 중앙민족대학에 입학하게 되였다. 그때 우리에게 현대조선어를 가르치던 선생님은 수업도중 무궁화를 언급하면서 조선의 무궁화를 중국에서는 목근화(木槿花)라 부른다고 하면서 학교도서관앞에 무궁화나무 두 그루가 있으니 꽃피는 계절이 되면 명심해서 잘 관찰해보라고 당부했다. 그후부터 나는 도서관으로 드나들면서 때로는 무궁화나무에 한참 눈길을 멈추고 다른 꽃나무를 마주할 때와는 달리 그 어떤 이름할수 없는 상념속에 빠져들군 하였다.

   무궁화는 그 원산지가 중동의 시리아라는 일설도 있고 옛날부터 동서방 방방곡곡에 널리 분포되여있었지만 무궁화를 국화로 정한 나라는 오직 하나뿐이였다. 비록 지금은 조선반도가 남과 북으로 갈라져 서로 워쑤처럼 지내고있지만 옛날 통일신라나 고려왕조나 리씨조선은 모두 하나로 통일된 단일민족국가였다.

   신라시대의 이름난 문장가 최치원(崔致远)의 문집 《최문창후문집(崔文昌侯文集)》제1권에 수록되여 있는 국서(기원897년7월에 신라의 효공왕이 당나라의 광종(光宗)에게 보낸 국서)에는 신라를 자칭하여 근화향(槿花乡)이라고 한 기록이 있다. 이로 미루어보아 “무궁화의 나라”라는 이 별칭은 일찍 신라때부터 있었다는 추론도 가능 하다.

   력사는 길고 현실은 짧다. 내가 어렸을 때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아직 세상도 모르는 어린 손자에게 “사람들이 널 보고 성이 뭐냐, 본이 뭐냐, 고향이 어디냐고 물어보면 성은 강씨, 본은 진주, 고향은 함경북도 부령군 부거면 사구동이라고 대답해라.”고 하시면서 가끔 내가 제대로 기억하고있는가를 확인해보시군 하였다. 내가 대여섯살이 되나마나한 그 소시적부터 이렇게 가르쳐 주셨으니 그것은 분명 너희들이 절대로 자기의 근본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그런 간곡한 부탁이였으리라.

   1989년 여름, 나는 연변대표단의 일원으로 평양에 가서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 에 참가하게 되였다. 내가 평양 량강호텔정원에서 조선에 도착하여 처음으로 예쁜 꽃송이를 자랑하며 우리를 반겨주는 무궁화를 보게 되였을 때 나는 그 어떤 오래된 꿈이라도 이루고 마음속으로부터 오래동안 갈망해오던 소원을 성취한듯 홀연 달콤한 성취감에 도취되기도 하였다. 그것은 바로 내가 20여년전 대학교 도서관앞에서 무궁화를 바라보며 빠져들었던 그 이름할수 없는 상념에서 비롯된것이였다. 아마 무궁화의 고향에 와서 무궁화를 보니 저도모르게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일제의 식민지통치하에서 살길을 찾아 남부녀대하여 두만강을 건너지 않으면 안되였던 조부모님과 부모님께 내가 오늘 드디어 조상의 나라로 찾아왔노라고 알려드리고싶은 그런 충동을 느꼈기때문이였으리라.
   1992년 중한수교가 이루어진후 나는 여러번 기회가 주어져 자주 한국을 방문하게 되였다. 한번은 《매일신문》 창간 50돐 기년행사에 참가하고 그 길로  경상남도 진주 (晋州)에 내려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고향을 찾아보고 돌아온적이 있다. 그때 나는 진주에서 그 유명한 촉석루(矗石楼)에도 가보았다. 임진왜란때 왜병들이 진주성을 함락하자 촉석루에서 왜장들과 함께 주연을 벌이던중 의기(义妓) 논개(论介)가 왜놈들에 대한 불타는 적개심을 안고 왜장 한놈을 끌어안고 낭떠러지밑으로 흘러 내리는 강물에 뛰여들어 목숨을 바친 그 유서깊은 촉석루에 찾아간것이다. 내가 진주 에 머무르고있을 때 논개가 몸을 던져 순국한 그 남강기슭에서도 무궁화는 어김없이 꽃철을 맞아 나에게 그 특유의 이쁨을 보여주고있었다.

   나는 세세손손 대를 이어 무궁화 꽃피는 삼천리 금수강산에서 오붓하게 살아오다가 1910년 “한일합방”후 일제침략자들의 착취와 압박에 시달리다 못해 살길을 찾아 두만강을 건너온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손자이다. 내가 이렇듯 조선반도의 북과 남을 오고가며 무궁화를 반기는것은 아마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저세상으로 떠나 가시면서도 떨쳐버리지 못한 그 망향의 넋이 아직도 나의 잠재의식속에서 맴돌고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무궁화는 아욱과에 속하는 락엽관목으로서 온대지방에서 7—10월에 약 100일 동안 줄기차게 피여나는 아름다운 꽃나무이다. 꽃은 종(钟)모양으로 생겼는데 새로 자라난 가지에 돋아난 잎겨드랑이에서 한송이 한송이씩 피여난다. 숱한 꽃망울이 동시에 나무가지 여기저기에 대롱대롱 매달려있다가 꽃을 피우기 시작하면 련거퍼 꽃망울을 터뜨린다. 매일 이른 새벽에 피여나 저녁에 시들어 말라 떨어지면서  3개월이상 날마다 새꽃이 피어나 계속 신선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우리의 조상들은 끝도 시작도 없이 영원하리라는 겨레의 념원을 담아 무궁화(无穷花)라는 아름다운 꽃이름을 지어준게 아닌가싶다. 이것은 고증된바 없는 내나름대로의 추론에 불과하지만 전혀 터무니없는 어불성설은 아닐것이다. 꿈보다 해몽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지금 세계의 많은 나라들에서는 무궁화를 정원수나 가로수로 심어 삶의 터전을 아름답게 가꾸고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의 겨레들도 무궁화처럼 전세계 방방곡곡에 흩어지거나 한데 모여 살면서 각자나름대로의 삶을 영위해가고있다. 조선반도의 남과 북은 물론, 더 나아가 중국, 미국, 로씨야, 일본 등 나라에 비교적 많이 모여 살고있는 우리 동포들뿐아니라 수많은 나라들에 흩어져 살고있는 우리 동포들을 모두 합치면 무려 7천만이 된다고 한다. 우리 할아버지가 생전에 자주 입에 올리시던 “3천만 백의동포”는 이미 력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지금은 7천만이 되였다는 말이다.

   나는 오늘을 살아가고있는 7천만 단군님의 후예들과 더불어 우리의 유구한 력사, 찬란한 문화 그리고 우리의 아름다운 말과 글을 공유하고있음으로하여 항상 더없는 긍지와 자부심을 안고 살아간다.

내 나이가 벌써 고희를 넘었지만 나에게 있어서 무궁화와 우리 말, 우리 글은 일찍  나의 소년시절에 할아버지가 몸소 사랑의 금실로 이어준 보석보다도 더 소중한 존재이다. 그리고 내가 소학교때부터 배워온 우리 말과 우리 글은 나의 인생에 막대한 영향을 주었을뿐더러 오늘도 이렇게 나로 하여금 이 수필을 쓰도록 령감을 주고있다. 그러므로 나의 무궁화사랑은 단순한 꽃사랑이 아니며 우리 말과 우리 글에 대한 사랑인 동시에 또한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나의 다함없는 사랑이다.

    일언이페지하면 국가와 민족은 서로 관련이 있으면서도 엄연히 동일시할수 없는 서로 다른 별개의 개념이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신앙과 국경을 초월하여 언제 어디서나 무궁화를 사랑할것이며 우리 말과 우리 글을 아끼고 사랑할 것이다. 그리하여 조부모님과 부모님의 기대에 손색이 없는 백의민족의 훌륭한 후손이 되고싶다. 이것이 내가 항시 가슴속에 간직하고있는 소망이다.
 
 
(2013년 11월 20일 강소성 무석에서)
 
[2013년 12월 6일 연변일보 해란강 제1549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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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33 ]

33   작성자 : 얼구이즈
날자:2013-12-10 10:50:10
ㅎㅎ라는자는 그젯날 조상부터 얼구이즈로 살았나 보다
32   작성자 : 일본귀화자에게
날자:2013-12-10 09:17:57
아래 흐흐는 일본국적으로 귀화한 조선족인가
사고방식이 반한 일본극우파와 같네
일본을 그렇게 과대평가 하다니
일본의 현실에 좌절하고 있는 일본인들도 웃겠다
요즘 도대체 잘 나가는 소위 선진국이 어디있나
한국도 어렵지만 그래도 한국 앞에서 잘 나간다고 말 할 나라가 별로 없지.. 아마 독일 정도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다 그저그래 어느나라나 요즘 서민들은 고생들이지
31   작성자 : 흐흐
날자:2013-12-10 08:02:50
조그만한 한국이 그렇게 많은 외노자를 수입한다는 자체가 그 만큼 양질의 일자리(근무여건,봉급,복지 등 면에서 )가 적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물론 후진국 외노자들한테는 큰 봉급이겠지만 그 노동강도와 근무시간,여건,복지 등을 감안하면
한국 국내인들한테는 지옥이나 다름없는 일자리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니깐 백수로 살 지언정 일하려고 하는 청년백수들이 넘쳐나는 것이다.
기타 선진국들과 비슷하게 산다구? 흐흫
선진국들 복지수준,근무시간,노동강도 쾌적한 주거 등을 알고 씨불리는지 몰겠구만...
30   작성자 : 흐흐
날자:2013-12-10 07:48:25
한국이 봉급이 높기 때문에 외국인 노무자가 많다구?
그래 물론 봉급이 너무 낮으면 노무하러 올리가 없고 또 봉급이 낮다는 자체가 후진국이라는 말이고 자체 노동력으로도 충분하겠지...
근데 말이야 일본은 한국보다 경제규모도 훨씬 크고(약 4~5배정도) 봉급도 훨씬 높고 복지대우도 좋은데 왜 한국처럼 대량의 싸구려 인력을 수입하지 않을까? 기타 선진국들도 말이여? 이걸 생각해 보았나?

바로 한국의 경제구조와 깊은 연관이 있다는 거여... 소수의 대기업에 재부가 집중되고 경제를 거뭐지고 있고 수출도 대부분 대기업이 담당하고 있고 기타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하청업체로 전락하고 근무여건,복지가 매우 열악하다는 것...이런 경제구조가 돌아가기 위해서는 부득불 울며겨자먹기로 외노자를 수입해 와야 하는 거여...(이민이 아닌 임시 외노자)
탄탄한 중소기업을 가지고 있는 기타 선진국들은 중소기업이라고 해도 근무여건,복지수준이 대기업과 별반 차이없으므로 자체 인력으로도 수급이 가능한거여...물론 기타 선진국들도 출생률 저하로 노동력부족을 미봉하기 위해 과거 60~70년대 이민을 받아들이지(임시 외노자가 아닌 노동력 이민) 근데 한국의 경제실력으로는 아직 선진국들처럼 노동력 이민을 받아들일 형편은 안되고 임시로 외노자를 수입하거여...
29   작성자 : 흐흐
날자:2013-12-10 07:48:20
한국이 봉급이 높기 때문에 외국인 노무자가 많다구?
그래 물론 봉급이 너무 낮으면 노무하러 올리가 없고 또 봉급이 낮다는 자체가 후진국이라는 말이고 자체 노동력으로도 충분하겠지...
근데 말이야 일본은 한국보다 경제규모도 훨씬 크고(약 4~5배정도) 봉급도 훨씬 높고 복지대우도 좋은데 왜 한국처럼 대량의 싸구려 인력을 수입하지 않을까? 기타 선진국들도 말이여? 이걸 생각해 보았나?

바로 한국의 경제구조와 깊은 연관이 있다는 거여... 소수의 대기업에 재부가 집중되고 경제를 거뭐지고 있고 수출도 대부분 대기업이 담당하고 있고 기타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하청업체로 전락하고 근무여건,복지가 매우 열악하다는 것...이런 경제구조가 돌아가기 위해서는 부득불 울며겨자먹기로 외노자를 수입해 와야 하는 거여...(이민이 아닌 임시 외노자)
탄탄한 중소기업을 가지고 있는 기타 선진국들은 중소기업이라고 해도 근무여건,복지수준이 대기업과 별반 차이없으므로 자체 인력으로도 수급이 가능한거여...물론 기타 선진국들도 출생률 저하로 노동력부족을 미봉하기 위해 과거 60~70년대 이민을 받아들이지(임시 외노자가 아닌 노동력 이민) 근데 한국의 경제실력으로는 아직 선진국들처럼 노동력 이민을 받아들일 형편은 안되고 임시로 외노자를 수입하거여...
28   작성자 : 무궁화 꽃이 피려나
날자:2013-12-10 02:49:30
한국에 150~200만에 달하는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외국으로 보내는 송금액이 얼마나 될까?
내 생각에는 아마 200억불은 될 것같으니 큰 액수이다. 이런 외국인 노동자들의 해외송금액까지 포함한 통계가 한국의 경상수지인데 한국이 올해 근 700억불 흑자를 거두리라 예상되고 있다.

외국인들이 일년에 200억불가량 해외송금을 해도 한국은 약 700억불의 흑자를 거두고 있는 것다. 한국의 경상수지 흑자액은 일본까지 포함한 아시아 국가 가운데 최대규모의 경상수지 흑자액이다. 여기에 일등 공신은 물론 무역수지 흑자이고 두번째가 작년에만 650억불이 되었던 해외건설수주이다.

한국건설회사들이 매년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달러(작년 650억불)만으로도 한국내의 외국인 150~200만이 해외송금하는 200억불을 다 충당하고도 남는다. 거기다 한국은 한국의 경제규모(올해 1.25조달러 예상)의 25%에 달하는 약 3200억불 규모의 제도권 밖의 암시장이 존재하고 있다(OECD 국가 중 최대규모).

그러니 실질적 한국의 경제규모는 올해 1.52조 달러가 되고 국민소득은 올해 3만불이 넘게 되는 것이다. 공식 통계로 예상되는 올해 한국 국민소득 $24,576 에 25%를 더해보면 약 $30,700에 달하게 된다. 사실상 한국은 올해 국민소득 $30,000 시대에 들어서 있다. 해외에 나가보면 국민소득 4~5만불 국가도 한국보다 잘 산다는 느낌이 안온다.

한국의 암시장 크기인 3,200억불 규모의 제도권 밖의 시장에서 굴러다니는 자금만으로도 외국인 노동자들의 봉급을 감당할 수 있는데 많은 조선족들이 일하는 식당 건설시장의 경우가 이런 경우가 많다. 이러한 상황이니 외국인 노동자들의 200억불 해외송금액은 한국경제의 공식 수지균형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
27   작성자 : 한국과 대만의 봉급 차이
날자:2013-12-10 01:31:59
대만의 중소기업 대기업 할 것 없이 한국과 비교하면 봉급이 크게 적다. 한국에 150~200만에 달하는 외국인들이 거주하며 인력시장에서 노동자로 일하는 이유는 한국의 봉급수준이 상대적으로 현저히 높기 뗴문이다. 현재 한국의 외국인노동자 숫자는 아시아에서 최대규모이다.
26   작성자 : 중화민국
날자:2013-12-09 08:55:18
한국경제구조는 대기업이 많고 대만경제구조는 중소형기업이 많다.
한국의 재부는 소수 대기업에 집중되여 있고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하청업체로 가격후려치기,기술빼가기 등으로 대기업의 횡포에 전전긍긍하며 고용의 절대대부분을 차지하는 중소기업의 근무여건,복지대우는 매우 열악하다. 대신 대만은 한국보다 탄탄한 중소기업 위주의 경제구조로서 근무여건이나 복지대우가 한국보다 많이 좋다.

국민소득이라는 건 전체 국민의 평균소득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한국처럼 소수 대기업에 재부가 집중된 경제구조에서 평균소득으로 그 나라 국민들의 진실한 생활수준과 삶의 질을 나타낼수 없다.
25   작성자 : 한국과 대만의 차이
날자:2013-12-09 01:44:27
한국의 국민소득이 $24,576 대만의 국민소득이 $20,850 이면 $3,726 차이로 대만으로 볼 때는 한국과 18% 이상이 차이가 나는 것이니 적지 않은 차이다. 한국의 소득이 정지되있다 하더라도 경제성장이 더딘 대만이 쫓아올려면 5년이상 걸릴 것이다. 더구나 한국이 계속 성장하니 쫓아오기는 더욱 힘들고 국제기구들의 예상으로는 한국과 대만의 소득차이가 점점 더 벌어질 것이라고 한다.

대만을 다녀온 서방인과 한국인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가 대만이 한국에 비해서 15년이상 뒤쳐진 것같이 느껴진다고 한다. 한국은 전국적으로 인프라에 엄청난 투자가 이루어진 나라다. 미국, 영국, 캐나다, 유럽 사람들도 한국의 전국적 인프라가 자기들 나라보다 앞서있다고 생각한다. 서구인들이 한국에 와서 더욱 놀라는 것은 한국의 환경보존과 녹색산림보존이 아주 잘 되있어 한국은 국가 전체가 수려하여 전국이 공원과 같다고 한다.
24   작성자 : 중화민국
날자:2013-12-08 18:25:06
비록 대만이 일인당 국민소득에 있어서는 한국보다 조금 뒤지지만 그 대신 물가가 한국보다 훨씬 싸다. 하여 실제 생활질에서는 별 차이가 없다.
23   작성자 : 무궁화 꽃이 피려나
날자:2013-12-08 16:25:16
대만언론 보도 :
"대만정부는 올해 대만의 국민소득이 $20,850이 되고 한국의 국민소득은 $24,576이 되리라 예상된다고 발표했다. 한국과 대만의 국민소득 차이가 해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한국의 국민소득은 계속 늘어나고 있으나 대만의 국민소득은 정체되고 있다."

대만은 중국밖의 중화권 최대의 경제권이자 국민당엘리트들이 건설한 경제로 지금은 중국과 해외화교라는 지지대가 있으나 한국과의 차이가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대만에 비추어보니 한국이 참으로 대단하다.
22   작성자 : 목자
날자:2013-12-08 09:41:53
이글은 정말 보기드믄 좋은 글이다. 내함이 있고 우리들에게 게발을 주는 글이다. 중국조선족지성인들이 평생 간직하고 가야할 사명감을 제시하였고 고향과 민족에 대한 대뜻한 마음을 진정성있게표출한 글이다.

하나의 거짓도 없이 자기 감정을 표현한 이 글은 제목제체부터 무게가 있다.

또한 "나의 무궁화사랑은 단순한 꽃사랑이 아니며 우리 말과 우리 글에 대한 사랑인 동시에 또한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나의 다함없는 사랑이다." 대목은 강룡운작가의 삶이 무더나는 대목이고 민족에 대한 무한한 감정이 담겨있는 대목이며 우리 젊은이들에게 사명감을 호소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깨우침을 주는 훌륭한 글이다.
21   작성자 : 박정일
날자:2013-12-08 09:27:10
강사장님 그간 안녕, 그쪽에 간뒤에도 좋은 글을 쓰셨습니다. ㅎㅎ 역시나 연변의 3대 비간즈의 한분으로 손색이 없습니다. 아주머님은 지금 건강이 어떠하신지... 강사장님께서 부디 몸건강시시기를 바랍니다.
20   작성자 : 중국조선족2
날자:2013-12-08 08:54:02
조선족 자손들이 핵심주류에 가장 쉽게 진입할 수 있는 나라가 한국인 것을 몰라서 뿜고 있냐?
뿜건 토하건 실성하건 니 수준대로 이지만 위에 달린 머라도 가끔 쓰면서 살아라.
19   작성자 : 진짜가
날자:2013-12-08 06:25:03
아래 중국조선족2란 네티즌의 글에 뿜었수
한국국적을 따면 그 자손들이 한국사회의 핵심 주류로 성장하여 어쩌구 저쩌구 하는데
중국에 살던 미국에 살던 일본에 살던 한국에 살던 아무데 살던 상관없이 노력하고 분투하고 능력있는 자는 모두 핵심주류에 편입되게 되여 있수
청년실업자가 넘실대는 한국에서 밑바닥 노가다 위주인 조선족 자손들이 한국국적에 가입하면 그 자손들이 핵심주류로 성장한다는 건 너무 야무진 망상이요 어서 꿈 깨슈
18   작성자 : 무궁화
날자:2013-12-08 05:40:27
좋은 글입니다. 무궁화를 보면서 우리 민족의 무궁한 번영을 기원하고 있군요.
17   작성자 : ㅎㅎㅎ
날자:2013-12-07 23:36:55
똥개는 영원히 똥개고 사냥개는 영원히 사냥개고 애완은 영원히 애완견이다.
16   작성자 : 중국조선족2
날자:2013-12-07 22:44:46
세월 지난 뒤에 한국국적딴 조선족과 중국조선족과의 차이는 하늘과 땅이 될 것이다. 한국국적딴 조선족의 자손들은 선진국 국민으로 한국 각 분야의 전문인이 되고 한국사회의 핵심 주류로 성장하여 전 세계를 누비는 대기업의 지사원, 외교관 등으로 맹활약 할 것이며 대통령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중국에 남아 있는 조선족들의 자손들은 대부분 동화되거나 중국사회의 변두리에서 멤도는 주변인 소수민족으로 여전히 한국에 경제적으로 기대며 살고 있을 것이다.
15   작성자 : 중국조선족
날자:2013-12-07 21:52:41
중국조선족들이 한국국적을 딴 것을 보면 모두 중국에서는 능력이 없고 한국에 가서 믿바닥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한국국적을 땄다. 지금은 능력이 없는 사람마저 한국국적을 따려하지 않는다.

그러니 아래 한국구적을 땄단 사람은 한국에 가 서 믿바닥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는것을 알수 있다. 그러니 부끄럽지 않는지? 어이구 제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14   작성자 : 어험
날자:2013-12-07 21:08:54
그리고 광복후 북조선이든 남조선이든 그리고 만주든 모두 태극기를 흔든것은 사실이지만
그래서 어떻다는 말인가? 역사는 어데까지나 역사일뿐이다.
남에서 대한민국이라는 정권이 탄생하기전엔 남쪽에서 남조선이란 용어가 매우 보편화되여 사용되였다. 이것 역시 역사다. 일부 무뇌충들은 마치 오늘날 남쪽 국호가 대한민국이니 해방초기부터 韓이란 낱말이 지금처럼 흔하게 씌였는가 착각하고 있는데 그 당시 사회단체 이름이나 신문,잡지를 뒤져보면 알수 있듯이 조선이란 용어가 더 보편화 됐었다.

북에서는 잠간 태극기를 흔든 적이 있었고 이것 역시 역사적 사실이지...
조선이면 어떻고 한국이면 어떠하리...
이미 중국에 귀화하여 중국의 한개 소수민족으로 된 무리가 왜 이런 용어에 그리 집착하는지 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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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후회막급 2014-10-14 2 2392
23 뙤창문이 있는 집에서 살았으면 2014-10-04 7 2614
22 수필다운 수필을 한편만이라도 2014-09-24 2 1918
21 "로인네트워크" 례찬 2014-04-26 3 2234
20 경외심과 요행심리 2013-12-19 1 1884
19 무궁화련정 2013-12-06 8 2856
18 빨간 양말 2013-09-04 2 2028
17 백양나무꽃씨 2013-07-23 3 2519
16 어머니의 사월초파일 2012-06-06 7 2678
15 특효약광고 2012-05-22 2 2576
14 황혼의 붉은 노을 2009-12-04 70 3646
13 손녀의 미니홈페지 2009-08-26 92 3200
12 자식농사 하나 둘 셋 2008-04-26 153 3424
11 마작과 도박(강룡운) 2008-02-24 142 3585
10 례식장의 이채로운 풍경 (강룡운11) 2007-09-20 139 3338
9 전단과 약품광고 (강룡운10) 2007-05-24 123 3009
8 [수필] 얼음낚시 하는 사람들 (강룡운9) 2007-03-09 130 3603
7 [수필] 생일파티 (강룡운8) 2007-02-28 103 3110
6 40년전 "나의 장정" 2007-02-21 100 3482
5 대학으로 가는 길 2007-02-21 101 3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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