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룡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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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의 붉은 노을
2009년 12월 04일 21시 45분  조회:3570  추천:70  작성자: 강룡운

수필

황혼의 붉은 노을

 

 

지난 8월 하순, 우리 대학교 동창생들은 연변에서 첫동창모임을 가졌다. 연변에 있는 동창생들은 물론 대련, 심양, 장춘, 길림에 있는 동창생들이 연길로 모여왔고  한국에 일보려 나갔던 동창생도 서울에서 날아왔다. 이번에 확인해 보니 벌써 11명 동창생이 타계하였고 와병중에 있는 몇을 제외하면26명 동창생만이 모일수 있는 아쉬운 자리였다.

이번 동창모임의 주제가는 김경석작사, 동희철작곡으로 된 동창상봉가였다.


   한 고향 한 학교를 다닌 친구야/ 졸업하고 리별한지 몇해이더냐


   한 고향은 아니여도 한 학교 한 학급에서 6년동안이나 고락을 함께 했던 동창생들의 이번 모임은 졸업하고 42, 문화대학명때문에 1년 늦게 배치를 받고  모교에서  석별의 정을 나눈지 41년만의 첫 상봉이였다.


  거멓던 머리에는 서리 내리고 / 복스럽던 얼굴에는 주름졌구나

야 반갑다 나의 동창아/ 우리 서로 그리운 정 풀어나 보자/ 풀어나 보자


   41년만에 처음 만나 두손을 마주잡았지만 기억속에서 상대방의 옛모슴을  확인하지도  못한채 서로 서먹해 하고 머뭇거리는 친구들도 없지 않았다.

옛추억속으로 돌아가 서로를 확인하는데는 긴 시간이 필요 없었다. 상봉의 첫날저녁 연길 해란강민속궁 연회청에서 축배의 술잔을 들고 동창상봉가를 부르는 사이에 어느덧 모두들 40여년전 대학교시절로 돌아가 스스럼없는 친구가 되여버렸다.

이튿날 우리들은 돈을 주고 임대한 뻐스를 타고 왕청 만천성풍경구로 자리를 옮기였다. 유람선을 타고 수려한 호반풍광을 감상하고 가파로운 신녀봉정상으로 등반하면서 40여 성상 서로 다른 고장 다른 직장에서 겪어온 생활의 시련을 이야기 했고 부모님 모시고 자식 기르며 나라 위해 쌓은 업적도 회고해보았다. 더구나 만천성에서 하루밤을 자고 떠나기에 앞서 호반운동장에서 가졌던 남녀동창생 배구시합은 우리들로 하여금 세월의 무정함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였다. 몸은 비록 늙었어도 늙지 않는게 마음이라고 생각같아서는 40여년전처럼 멋지게 잘 칠것만 같았던 배구공이 좀처럼 말을 들어주지 않아 얼마나 많은 웃음을 자아내고 또 얼마나 잊을수 없는 즐거운 추억을 만들었는지 모른다. 기실 배구공이 말을 들어주지 않는게 아니라 이미 로구가 돼버린 몸들이 생각대로 말을 들어주지 않는 그것이였다. 녀자배구팀의 주력멤버는 대학교때 학교팀 주력멤버 그대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는데 40여년 세월이 흘러간 오늘에 와서 서브도 제대로 들이는 선수가 거의 없었다.

아무튼 우리의 이번 모임은 너무도 때늦은 만남이였다. 10년전, 20년전에 이런 모임을 가졌어도 오늘처럼 이렇게 로쇠한 모습들은 아니였을것이고 타계한 동창생들도 더러 만나볼수 있었을텐데 이미 늦어도 너무 늦어진것은 어쩔수 없거니와  또 돌이킬수도 없는 엄연한 현실이였다.

우리가 아직 재직일 때에 연길에 있는 동창생들이 주체가 되어 이런 모임을 조직해 보라는 건의가 없은것은 아니였다. 그때는 자치주 직속기관에서 근무하는 국장급 동창생만해도 다섯이 넘었으니 조금만 수중의 권력을 리용하면 차량을 움직이고 숙식을 해결하는데 커다란 어려움이 별로 없을거라고 하면서 유권불용, 과기무효(有权不用,过期无效)”라는 농담까지 오고갔지만 우리는 누구도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정년퇴직한 다음에는 자식들의 공부뒷바라지를 하고 자식들을 시집 장가 보내고 손자 손녀가 태여난 다음에는 또 그 뒷바라지를 하느라 여념들이 없었다가 지금에 와서 조금 여유가 생겨나니 이제 더는 미룰수 없다는듯이 다그쳐 동창모임을 가지게 되였던것이다.

만약 우리가 재직중인 그 시절에 이런 모임을 가졌더라면 이번처럼 돈을 주고 임대한 뻐스를 타고 만천성으로 가지 않고 승용차를 움직이여 모임에 참가한 동창생들을 모시면서 허세를 부렸을지도 모른다. 그랬더라면 두고 두고 량심의 견책을 받으며 여생을 보내느니 차라리 이번처럼 자신들의 호주머니를 털어 숙식과 교통비를 해결하는것이 얼마나 마음 편한 처사였는지 모른다.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먼곳에서 찾아온 동창생들을, 그것도 40여년만에 만나는 동창생들을 민족호텔 4층의 초라한 객실에 류숙하게하였지만 누구 하나 잠자리를 탓하는 기색이라곤 전혀 없었다.

2년전 나는 생일파티라는 수필의 결미에서 우리 자치주의 주요책임자의 한분이셨던 어르신이 자기의 부하들로부터 옛동료들에 이르기까지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은채 자택의 비좁은 방안에서 그저 친인척들끼리만 모여앉아 조촐하게 회갑잔치를 치루었다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쓴적이 있다. 그 시절에는 한자리 한다하는 어른들이 회갑잔치를 차린다는 소문만 나도 벌써 몇백명 하객이 줄지어 문전성시를 이루고 하루사이에 몇만원 수입을 올렸다는 사례도 있었지만 이 어르신은 이런 시체류행은 아랑곳하지않고 시종일관 입당할 때의 약속을 맘속깊이 굳건히 지키면서 아름다운 황혼을 불태우는 공산당원의 숭고한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석양의 찬연한 붉은 노을은 바로 이러한 어르신들이 있음으로 하여 한결 더 아름다운것이리라!

우리 대학교 동창생들도 인제는 오라지 않아 고희의 언덕에 올라서는 늙은이가 되였다..아침 여덟시나 아홉시의 이글이글 타오르는 태양이라고 비유하던 청춘의 황금기는 이미 아득한 옛추억으로 되었고 지금은 서산마루에 걸려 여열을 발산하고있는 석양의 빛을 받아 황혼을 불태우는 저녁노을이라 하면 그 아름다움이 한결 더 돋보이리라는 일념으로 여생을 살아간다.


   한 고향 한 학교를 다닌 친구야/ 모교 위해 떨친 영예 얼마였더냐

그 어느날 어디에서 다시 만날 때 / 후회없는 여생을 자랑해보자


   “후회 없는 여생을 자랑해보자.”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바로 우리의 마음을 그대로 그려낸 노래말이다. 나는 이와 같이 후회없는 여생을 자랑하자면 생일파티도 흥청망청 공금으로 차리는 일부 부정적인 세태 풍조에 편승하지 않고, 그 어느 누구도 재직시절의 여세를 빌어 후배들에게 기웃거리며 손을 내밀지도 않고, 늦기는 많이 늦었어도 다소곳이 자신들의 호주머니를 털어 숙식과 교통비를 해결하면서 동창모임을 가졌다는 그 자체가 천번만번 옳바른 선택이였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번 동창모임에서 2012 9월 대학교 입학 50주년에 즈음하여 북경의 모교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다.

동창생들이여, 다시 만나는 그날까지 부디 몸 건강하시라! 나는 지금부터 우리들이 수도 북경에서 다시 만나 동창상봉가를 더욱 우렁차게 부르는 그 황홀한 광경을 눈앞에 그려보며 모두들 깨끗하게 옥체안강하기를 날마다 두손 모아 빌겠나이다.

 

(2009 9 10일 연길 자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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