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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3 김장혁
2023년 12월 06일 12시 22분  조회:765  추천:0  작성자: 김장혁
   김장혁 작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3.달밤의 북장구소리
 
      성희는 성칠의 상한 팔을 붙잡고 저고리 동전으로 눈물을 찍었다. 성칠의 아내 하옥은 부엌쪽으로 돌아서서 저고리 고름으로 눈 굽을 찍었다.
    하옥은 눈물을 훔치고나서 얼른 치마자락을 쭉 찢어 달려나와 성칠의  팔을 싸매주었다.
    성칠은 히죽이 웃으며 중얼거렸다.
     “어머니, 괜찮아요. 아버지가 오줌 약을 쓰라 해서 지혈시켰어요.”
    "그래, 오줌은 참 좋은 약이지. 나도 한산 이 씨 가문에서 이 영월 김 씨 가문에 들어섰을 때에는 네 할아버지 오줌 약을 곧이듣지 않았던 거야. 후에 써보니 참 좋은 약이데. 나도 한번은 나무하러 갔다가 생 긁을 밟았어. 건데 할아버지 말씀대로 따뜻하게 덥힌 오줌에 발을 잠그니 인차 지혈되고 소염 되잖았겠나? 자, 빨리 집에 들어가 이 팔의 상처를 오줌 물에 씻어."
     어머니 말에 성칠은 집안으로 들어갔다. 아내 하옥도 뒤따라 들어갔다.
    병완은 마당에서 곰을 튀 하면서 오줌에 아들의 팔을 씻어주는 며느리를 보며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한 식경 후 병완은 곰을 다 튀를 해 각까지 뜯어 얼마간 갈라 바깥에 임시로 건 큰 가마에 넣었다.
     그때 동산마루 소나무 숲에 구리바라 같은 둥근달이 걸려 영월동에 금빛을 내리비췄다. 둥근달은 밝은 얼굴을 내리드리워 성칠 일가의 동정에 살폈다. 
    병완은 곰의 각을 뜯다가 기준을 보고 부탁했다.
“저 개울 건너 덕성과 성팔을 놀러 오라고 해라. 저 토성 안 한길수 주인영감도 오라고 해라. 곰의 고기 생겼을 때나 함께 한잔 하야지.” 
     “예. 알았습꾸마.”
    기준은 인차 개울 건너로 뛰어갔다.
     이윽고 이웃들인 덕성과 성팔이 등이 느릿느릿 걸어왔다.
     “아따, 이 집에서는 무슨 일로 이렇게 초저녁에 온 동네가 떠나가게 야단법석이오?”
    성팔이 길쭉한 얼굴을 잔뜩 쳐들고 오면서 하는 말이다.
    병완은 바깥 부엌아궁이에 나무토막을 넣다가 호랑이 몸뚱이 같은 몸을 일으키면서 반갑게 맞이했다.
“어서 오게나. 우리 맏이가 곰 한 마리를 사냥했는데 나눠 먹자고.”
    얼굴이 네모 둥글하게 생긴 덕성은 코까지 벌름거리면서 사람좋게 웃었다.
    “흠흠, 무슨 구수한 냄샌가 했더니 곰의 고기 익는 구수한 냄새구먼. 허허허.”
     "건데 왜 한길성인 안 보이는가?"
     병완은 기준을 돌아보면서 물었다.
   "한영감이 집에 없데?"
   기준은 서성거리며 대답했다.
   "있습데. 건데 가난뱅이들 하구 안 논답더구마."
   "뭐라고?"
   "흥!"
    덕성과 성팔은 콧방귀를 뀌었다.
     병완은 주춤 일손을 멈췄다가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다.
    어느새 병완은 다리 두개씩 넣은 마대를 덕성과 성팔의 앞에 척 가져다 놓았다.
    “자, 많지 못해. 가져다 먹게나.”
     “덕분에 잘 먹겠소.”
     덕성과 성팔이 가려고 하자 병완은 말렸다.
     “그걸 가져다 두고 인차 와서 곰의 고기에 한 잔씩 마시이요.”
     “이 집 아주머니 거룬 막걸리가 시원하던데. 곰의 고기에 시원히 마시지 뭐.”
     성희가 생글 웃으며 반겼다.
     “그래요. 어서 갔다가 동서랑 식구들을 다 데리고 오세요.”
     “그럽세.”
     덕성과 성팔은 흐뭇한 지 코 노래까지 흥얼흥얼 부르면서 곰의 다리 든 마대를 메고 둔덕 아래로 내려갔다.
    성희는 남편을 보고 “저 고개 너머 시아주버니네 식구들은 어쩔까요?” 하고 물었다.
     병완은 좀 궁리하다가 두툼한 입을 열었다.
     “내일 제사에 가겠는데 이 밤에 어떻게 승냥이들이 욱실거리는 령 길을 형님이 어떻게 넘어온다고 그러오? 저 창준을 보고 곰의 고기를 가져가게 하기요.”
     “예, 알았어요.”
    성희는 곰의 고기보따리를 챙겨 둘째아들 창준에게 줘서 보냈다.
    “령 길을 주의해서 갔다 오너라.”
    “예, 이걸 보세요.”
     창준은 방망이를 들어보였다. 그래도 성희와 둘째며느리 곱단은 못내 시름을 놓지 못하는 눈치였다.
     “늦은데 돌아오지 말고 큰집에서 쉬고 내일 그 길로 산소에 오너라.”
    “예. 알아서 하겠습니다.”
    병완은  “어째, 한 영감은 까딱 하지 않을까?” 하고 의아한 눈길로 개울 건너 토성 안의 덩실한 팔간 집 쪽을 내려다보았다.
    “어이구, 저 한영감댁이야 부자노라고 우리 같은 가난한 사람들과 한자리에서 술을 마시자 하겠어요?”
    성희  말에 병완은 “글쎄-” 하고 말하면서 곰방대에 담배를 채워 붙여 물고 뻑뻑 빨았다.
    “그래도 미운 걸 떡을 더 주라고 기준에게 곰의 고기를 좀 들려 보내오.”
    “예. 알았어요.”
    성희는 내키지 않았지만 수긍하였다.
    그는 언제 남편의 말을 듣지 않은 적이 없었다. 욱 하면 벽이라고 차고 나가는 남편의 성미를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또 남편의 말을 순순히 듣는 것을 숙명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때 병완의 큰며느리 김해 김 씨 하옥과 둘째 며느리 전주 김 씨 곱단이, 셋째며느리 개성 최씨 사련은 벌써 서늘한 마당에 멍석을 깔고 그 위에 큰상 세 개를 벌려놓고 식기며 수저를 가져다 놓느라고 치마 자락을 날렸다. 기준의 처 사련은 가마뚜껑을 열고 김을 호호 불면서 식칼을 넣어 곰의 고기가 익었나고 콕콕 찔러보았다.
    “익었느냐?”
    “예. 익었습구마.”
    사련이 허리를 굽히면서 시어머니에게 대답하였다.
    시어머니와 작은며느리는 곰의 고기 덩이를 꺼내 통나무칼판에 놓고 찬물에 손을 묻혀 호호 불면서 곰의 고기를 돔박돔박 썰었다.
    병완은 성칠과 함께 마당 한가운데 장작개비를 모아놓고 우등불을 피웠다. 우등불은 마당을 너머 저 멀리 산발을 따라 수림까지 대낮처럼 환하게 밝혜 놓았다. 침침한 어둠이 한순간에 모두 놀라 도망가며 자리를 내주었다.
    이윽고 덕성과 성팔이 네가 식솔들을 다 데리고 왔다. 성녀는 며느리들과 함께 우등불 옆에 큰상 세 개를 차려놓았다.
    상좌에는 병완과 덕성, 성팔, 엄창렬이 앉고 아래 상에는 성칠과 기준 그리고 덕성의 아들 칠백과 칠성이, 성팔의 아들 용철과 용구가 앉고 말상에는 성희를 비롯해 하옥이, 곱단이, 사련이, 기준의 여동생 곰순 등 아낙네들과 상우, 상훈 등 애들이 죽 둘러앉았다. 실로 큰 잔치나 벌어진 것 같았다. 밤하늘의 별들도 내려와 밥상을 기웃거리며 군침을 흘린다. 
    병완은 소발굽 같은 손으로 막걸리 동이를 들어 덕팔과 성팔, 창렬의 잔에 차례로 돌아가면서 붓고 잔을 높이 들었다.
    “자, 내일 추석인데 오늘 저녁에 곰의 고기에 막걸리를 마음껏 마시고 춤도 추고 놀아 보기요.”
    “들기요.”
    잔을 딱딱 마주치고 여럿은 허허 호호 웃으면서 떠들썩하게 막걸리를 마셨다. 그리고 문문하게 삶은 곰의 고기를 맛나게 먹었다.
    구중천의 달도 막걸리아 곰의 고기 먹고 싶어 군침을 흘리면서 밥상에 슬밋슬밋 다가앉는다.
    “옛소. 이게 웅담이요.”
    병완은 거의 주먹만큼 한 웅담을 담은 사발을 성팔과 창렬의 앞에 밀어놓았다.
    “웅담이 쓰지 않소?”
    “쓴 게 약이라오. 위장이 좋지 못한데 먹소. 만 병 통치약이요. 창렬이, 자넨 페가 좋지 못한데 웅담을 먹소.”
    “야, 이걸 팔면 명년 식량은 해결하겠는데 내 어찌 혼자 먹는단 말인가?”
     성팔이  웅담그릇을 들고 아래 상에 가더니 성칠의 앞에 놓았다.
     “옛다. 웅담은 상한 팔에 좋아. 팔을 긁어 놓은 곰의 웅담을 먹으면 팔이 인차 나을 게다.”
     성칠은 우쭐 일어났다.
     "아니, 이래서야 되겠어요? 나눠 잡숩깁소.”
   그는 기어이 웅담을 숟가락으로 끊어 덕팔과 성팔이, 아버지 앞의 접시에 놓았다.
    “야따, 거 웅담이 뭐 그리 맛있겠다고 그리 야단이여? 그럼 서로 사양하지 말고 조금씩 맛이나 보세."
   덕성은 둥글넙적한 얼굴에 난 수염을 손으로 쓱 닦으면서 저가락으로 웅담 꼬치를 집어 입안에 넣었다.
   “야, 쓰다.”
    “쓰거운 게 약이라오.”
    병완은 껄껄 웃었다.
    “자, 막걸리를 들라고. 인차 씻어 내려가게. 쓴 게 밸에 들어가면 잡 벌레가 다 죽을게요.”
     제일 아래 상에 앉은 하옥과 사련이, 곱단이 네는 곰의 국을 몇 술 뜨다가는 놓고 곰 고기를 썰어 국물에 담아 이 상 저 상에 올리느라고 행주치마를 두른 채 송골송골 내돋은 땀을 손으로 훔쳤다.
    나그네들은 달빛이 담긴 막걸리 사발을 들어 마시니 가슴에 달이 뜨고 흥이 저절로 났다.
    어린 상우와 상훈이 등은 "양양, 맛있다. 오래오래 맛있다."라고 짝짝 쿵을 쳐대면서 먹어댔다.
   한참 후 술이 거나하게 된 성팔이 길쭉한 턱을 잔뜩 쳐들고 마당에 쫙 깔린 달빛과 우등 불을 둘러보면서 말하였다.
   “홀 잊었구먼. 그렇지, 거 병완이, 자네 집에 북이 있잖소? 그걸 내다 치면서 한바탕 춤을 추며 놀게나.”
   “그래, 좋아, 놀아보세.”
    춤을 추면서 논다는 말에 애들은 좋다고 밥상에서 일어나 우르르 마당에서 빙빙 돌면서 뛰놀았다.
    병완이가 북을 내오자 성팔이 받아 쥐어 둥두둥 둥두둥 가락맞게 두드리면서 마당 한가운데서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었다. 그러자 덕팔도 일어나고 병완도 일아나 함께 도라지를 부르면서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었다.
    “자, 젊은 각시들도 일어나 춤을 추오.”
    성팔이 말하자 색시들은 부끄러워 옷고름으로 낯을 가리면서 슬슬 뒤로 좀 물러나 얌전하게 도라지를 추었다. 애들도 어머니들을 따라 아기장 아기장 걸으면서 그것도 도라지라고 팔을 나풀거리면서 춤을 추었다. 아낙네들은 하나둘 부엌에 들어가 그릇들을 부시고 바깥 암시부엌 아궁이에 토막나무를 더 서리어 식은 곰 고기 국을 덥혔다. 성희와 곱단은 큰집에 간 창준이가 언제 돌아오겠는가고 개울 건너 쪽을 자꾸 내려다보았다.
     남정네들은 모두 땀을 뻘뻘 흘리면서 춤을 추다가 숨을 헐떡거리면서 술상에 돌아와 앉았다.
    병완은 잔을 들고 “자, 또 한 사발 듭세.” 하고 덕팔과 성팔의 막걸리사발과 마주쳤다.
성팔은 한 사발 들고 막걸리사발을 상에 내려놓으면서 피뜩 무엇이 떠오른 모양으로 우쭐 일어났다.
    “내 집에 가서 피리를 가져다 불게.”
    그러자 성팔의 아들 용철이 따라 일어섰다.
     “아버지, 어두운데 내 갔다가 오겠습니다.”
    “오, 그래.”
    성팔이 떠나간 후 덕팔이 술상을 저 가락으로 두드리면서 노래를 흥얼흥얼 불러댔다.
 
          한양 천리 떠나간들 너를 어이 잊을 소냐?
          소랑당 고개 마루 나귀마저 울고 가네
          춘향아 울지 마라 얼싸 안고서
         그립던 이 내 마음 아서 아서라
          어느 때 어느 날자 함께 즐겨 웃어 보랴
 
      덕성의 걸걸한 노래를 들으면서 막걸리를 둬 사발 드는 새에 이윽고 용철이 대나무피리를 가지고 왔다. 성팔은 피리를 입술에 대고 몇 번 불어보더니 제법 맑게 불렀다. 덕성이 드문드문 북을 둥둥 피리 절주에 맞춰 두드려 흥을 돋우었다.
      달빛이 깔린 시골마을에 맑고 부드러운 피리소리가 북장구에 맞춰 곱게 울리었다. 그 은은한 피리소리와 가락 맞게 울리는 북장구소리가 밤 정적을 조용히 깨우며 수림 속으로 오래도록 메아리쳐갔다. 물레방아 쪽으로 벽계수가 달빛과 구름을 싣고 피리소리에 맞춰 촐랑촐랑 노래하면서 흘러갔다.
     마당 한가운데 피워놓은 우등 불도 흥겨워 가을미풍에 너울너울 춤을 추고 은빛 달님도 마당에 내려와 색시들과 함께 그 아름다운 선율에 도취돼 예쁜 얼굴로 웃음 지으며 춤 추고 있었다. 
     밝은 달빛 아래 시골 농가 오락판풍경은 진짜 한폭의 아름다운 산수화를 방불케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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