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혁 작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제6장 포수대
7. 성동격서
병완은 쌩쌩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무릅쓰고 온 오전 걸어서야 운주동에 이르렀다.
병완이 집에 들어서자 기준의 부부는 기뻐 어쩔 줄 몰라 했다.
“아이고, 아버님, 돌아왔습둥?”
“ 시아버님, 그새 감방에서 얼마나 고생했겠습둥?”
기준 부부는 병완을 위방에 모시고 넙적 절을 올렸다.
그때 고방에서 성희와 하옥이 나왔다.
“이게 웬 일이요? 어떻게 돼 여기 있소?”
성희가 허리를 펴면서 대답했다.
“그간 무사했어요? 일본 놈들의 등살에 견디지 못해 하는 거 보고 둘째아들이 데려왔어요.”
“음, 그러나 저러나 넷째손자를 안아보자."
최사련은 갓 난지 반년도 되지 않는 상순을 고방에서 안아 내오고 저녁 준비하러 부엌으로 내려갔다.
“어이유, 이 놈, 딱 제 애비를 닮았구나. 얼굴이 길쭉한 게 참 잘 생겼구나. 아~그, 딱.”
병완은 손자가 고와서 안아보고 싶었지만 금방 바깥에서 들어온 찬 몸에 닿아 감기에 걸릴 까봐 그저 들여다보기만 했다.
한참 후 몸이 녹은 후 병완은 넷째손자 상순을 안고 볼에 뽀뽀를 했다.
상우는 웃새 집으로 기별하러 달려갔다.
그새 병완은 성희에게서 성칠과 집식구들이 그새 일본 놈들에게 당한 봉변을 대충 들었다.
“성칠은 검둥이 귀에다 쪽지를 보내 왔더군요. 뭐 고향 마을 사람들과 함께 사냥을 하면서 무사하다고 하지 않았겠어요.”
“사냥해도 범죄라고 잡아가니까요. 이젠 어떻게 살아요? 호-”
병완도 천정을 쳐다보면서 천정이 날아나게 한숨을 후- 내쉬었다.
이때 기별을 받은 창준 부부가 자손들을 데리고 들어와 일일이 인사를 나누었다.
병완은 벽에 기대 앉으면서 기준이 말아주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
“일본 놈들은 정말 교활한 놈들이야. 나를 이용해 경찰국 사무 청사를 짓자는 게지. 눈깔이 뽑힌 길수가 쓸모없게 됐다고 여긴 것도 있고.”
직통배기 기준이가 툭 내쏘았다.
“누가 그 놈들의 둥지를 지어준다오?”
병완은 창준이가 부시를 쳐서 부쳐주는 담배를 한껏 빨아 연기를 후~ 길게 내뿜더니 말했다.
“그 놈들이 삯전을 준다 해도 짓지 않겠니?”
기준은 울뚝 밸을 썼다.
“그 놈들 얼림 수에 들 거 같소? 쳇, 목을 매 끌어가도 공지에 가지 않겠소.”
병완은 그저 마른기침을 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저녁을 대충 들고 밤이 깊어 창준이랑 떠나간 후 병완은 기준만 불러 조용히 위방에서 귀속말을 했다.
“면회하러 왔을 때 이전에 내가 말한 말이 기억나니?”
기준은 한참 궁리하더니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나무옹이와 벌레 말씀입둥?”
“응.”
“예, 벌레 있는 통나무로 경찰국 사무 청사를 지으면 몇 해 가지 못해 무너지고 말겁니다. 중심대들보에 쐐기를 하나 박아주든지.”
병완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일본 놈들이 곱다고 사무 청사를 지어주겠느냐? 그 놈들은 사무 청사를 다 짓기 전까지 마을 사람들을 들볶을 게 아니냐? 성칠은 분명 진달래사돈이랑 영솔하는 독립군과 연계있는 거야. 성칠처럼 총을 들고 맞서 싸우는 것도 좋아. 또 일본 놈을 도와 사무 청사를 지어주는 척 하면서 무너지게 만드는 것도 상책이 아니겠느냐? 으흠.”
밤이 깊도록 위방에서는 두런두런 주고받는 말소리가 가담가담 들리었다. 그러나 누구도 그들 부자가 무슨 말을 주고받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위방에서 등잔불까지 끄고 병완은 셋째아들 기준에게 귀속 말을 계속 했다.
“가을 쯤에 경찰국을 다 짓는 날엔 네가 먼저 만주에 가 봐라. 감방에서 수감자들에게서 들었는데 만주에는 묵밭도 많고 기장밥에 장국을 먹으면서 잘 살수 있다더라. 지나가는 나그네에게도 찰밥에 장국을 대접시킨다고 하더라.”
“나도 우시장이나 명천 장마당에서 그런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활 팽개치고 몽땅 만주에 가서 살깁소.”
안주인들은 그 소리에 숨이 한 줌만 해졌다.
“나도 감방에서 그렇게 생각했다. 한길수의 눈알을 뽑아놓아서 일본 놈들은 나를 눈에 든 가시처럼 여겨. 총 도감을 시킨 건 날 이용해 사무 청사를 지으려는데 지나지 않아. 경찰국 사무 청사를 다 지으면 그 놈들은 나를 죽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성칠이 독립군과 연계 있다고 잡아 죽이자고 미쳐 날뛰고 있지 않느냐. 이 고향에서 살긴 다 틀렸어. 후— 이 일을 어쩜 좋겠느냐?”
“알았습구마. 내 이미 나무벌레를 자귀질하면서 가득 붙들어서 치워 놓았습구마.”
“잘 했다. 밤도 깊었으니 가서 자라. 내일부터 다시 마을 사람들을 동원해 공지로 가자. 벌레를 대들보에 넣는 건 우리 부자간이 비밀리에 하자.”
“예. 알았습니다. 편안히 쉽소.”
미닫이문이 쓰르륵 쓰르륵 닫는 소리가 들리면서 기준이가 고방으로 들어갔다.
빼앗긴 들에도 봄이 왔다. 여기저기 잔설들이 남아있었지만 자연스레 계절이 바뀌면서 찾아온 따뜻한 봄기운을 어찌 할 수 없었다. 여기저기 산에서 종달새가 “지종”, “지종” 애처롭게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시장 경찰국 사무 청사 공지는 사면에서 일본 헌병들과 자위대 놈들이 총칼을 빼들고 삼엄하게 지키는 바람에 자못 삼엄한 분위기 속에 잠겨있었다. 공지 뒤쪽 산꼭대기 망루에서 철갑모와 털모자를 쓴 일본 헌병들과 자위대 대원들이 서슬 푸른 총칼을 들고 왔다 갔다 하며 보초를 서고 있었고 산중턱 벽돌로 쌓은 보루에 기관총까지 걸어놓고 독립군의 습격을 막으려고 시도했다. 삼엄한 경계를 밟으며 숱한 인부들이 개미떼처럼 바글거리면서 일하고 있었다.
병완이 삯전을 가져다 마을 사람들에게 나눠 준데다 사냥하면 일본 놈들이 잡아 가두는 바람에 숱한 마을 사람들이 공지로 다시 몰려왔던 것이다.
일을 다시 시작한 후 끼무라 국장은 직접 공지를 자주 드나들면서 살폈다.
이른 아침인데 저 둔덕 아래서 오토바이 몇대가 먼지를 보얗게 일구면서 부릉부릉 달려왔다.
끼무라 국장이 통역 류강철과 한길수 대장 그리고 몇몇 졸개들을 데리고 오토바이 몇 대에 갈라 앉아 달려왔다.
오토바이에서 내리자 끼무라 국장은 군도자루를 왼손으로 잡고 독기어린 눈으로 주위를 쓱 둘러보더니 곧추 병완 등이 한창 지붕틀을 짜는 목수 간 앞으로 다가왔다.
병완은 쐐기를 박을 구멍을 파다가 멈추고 끼무라 국장에게 눈인사를 했다.
끼무라 국장은 다가와 흰 장갑까지 벗고 병완에게 손을 내밀었다.
“김 총도감, 수고 많네. 보라니깐. 내가 사람 보는 눈만은 있지. 당신이 총 도감을 맡으니까 인부들이 모여들고 일이 척척 돼가지 않는가! 허허허.”
끼무라 국장은 넉가래 같은 병완의 손을 잡아 흔들면서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옆에서 류강철이 통역하자 뒤따라온 길수는 입에 다발을 세 개나 걸 지경으로 불만스러워 했다.
(쳇, 병완을 믿다가 이제 한지에 방아를 걸지 않나 두고 봐라.)
그런데 끼무라 국장은 계속 병완과 지껄여댔다.
“김총도감이 경찰국 사무 청사를 짓느라고 수고 많은데 우시장에 기와집 한 채를 마련해 줄까? 여기 우시장에 와서 살 생각은 없는가?”
병완은 짐짓 미소까지 지으면서 대답했다.
“끼무라 국장, 호의는 감사합구마. 난 시골 눔이 돼 영월동 시골이 좋단 말입구마.”
“허허허.”
끼무라 국장은 너털웃음을 웃더니 머리를 길수 쪽으로 되돌렸다.
“김총도감은 한대장과는 판판 달랐쏘까. 한대장은 시내에 오니 기생집이 가까워 입이 함박만 해졌는데. 자넨 진짜 땅을 밟고 하늘을 떠인 사내대장부야. 호한은 여색을 멀리 하는 법이야. 허허허.”
한길수는 눈을 흘기면서 두덜거렸다.
“흥, 녀자라면 오금을 못쓰다가두. 검정개 돼지 흉을 한다고 해라? ”
끼무라는 그 두덜거리는 소리가 무슨 뜻인지 알아들을 리 만무했다.
뒤이어 그는 코 수염을 손으로 쓱 문질렀다.
“올해 가을에 새 경찰국 사무 청사에 들게 해주게나. 늦어도 명년 봄 안에는 새집들이를 하게 말이네.”
류강철이 통역하자 그때라고 생각한 병완은 끼무라 국장을 마주 보면서 시원히 대답했다.
“끼무라 국장, 경찰국 사무 청사는 올 가을 전에 다 끝낼 테니까. 근심하지 마오. 그런데 한 가지 청 들 일이 있소.”
류강철이 통역해주자 끼무라 국장은 “요로씨이(좋아). 무슨 요구?” 하고 한걸음 다가섰다.
병완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기준과 창준을 비롯한 여러 목수들이 대패질과 자귀질을 하는 것을 둘러보고 나서 끼무라의 오른팔을 잡고 한쪽으로 가서 조용히 말했다.
“내 맏아들 성칠을 풀어 줍소. 그 애가 사냥을 한 것뿐인데 독립군으로 몰아 죽일 셈입니까?”
“뭐? 성칠이?!”
끼무라 국장의 눈이 갑자기 떼꾼해졌다.
“안 돼! 그 놈을 잡으러 갔다가 우리 헌병대원들이 수태 죽었쏘다. 성칠이, 독립군과 이거네.”
끼무라는 엄지와 식지를 붙였다 뗐다 해 보였다.
“그 앤 아무 죄도 없습구마. 독립군인지 뭔지 아직도 모르고 이날 이때까지 살아왔단 말이요. 그날 독립군이 왔는지 어쨌는지 모르지만 그 애와 아무런 상관이 없소이다.”
“안 돼! 성칠만은 안 된단 말이야!”
한길수는 깨 고소해하는 눈길로 병완을 쏘아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밸 같아선 병완을 개화장으로 단매에 쳐눕히고 싶었다. 그러나 끼무라 앞인지라 용 빼는 수 없어 속을 끙끙 앓았다.
병완은 그 눈치를 모를 리 없었다. 그러나 그는 끼무라한테 다가서면서 기를 쓰고 성칠을 구하려고 청을 들었다.
“끼 국장님, 내가 어쩌다가 청을 드는데 요만한 것도 안 되오? 내 맏아들을 용서해줍소. 예?”
그러나 끼무라는 딱 잡아뗐다.
“안 돼! 그 놈을 생각하면 자네도 용서할 수 없어. 조선에는 한 놈이 역적의 죄를 지으면 구족을 멸한다는 말이 있잖은가! 성칠이 그 놈이 지은 죄는 절대 용서할 수 없어. 자넨 우리 경찰국 사무 청사를 짓는데 없어서는 안 될 목수이고 총 도감이기에 용서해 준거니까 그만하게. 괜히 내 생각이 바뀌게 하지 말게나.”
병완은 안 되겠다 싶어 한숨을 땅이 꺼지게 후— 내쉬었다.
한길수는 멀찍이 서서 우멍 눈을 가슴츠레 뜨고 끼무라 국장과 병완이가 쑤군거리는 것을 아니꼽게 곁눈질해보았다.
뒤이어 한길수는 영팔의 팔을 잡고 한쪽으로 가서 쑤군거렸다.
“영팔이, 저 병완에게 딱 붙어 다니면서 지붕틀을 제대로 짜나 감시하게나. 좋기는 한사람을 목수무리 속에 잠입시켜 암암리에 감시하게 해라.”
그러자 영팔은 머리를 끄덕였다.
한길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병완의 꼬리를 잡아 내동댕이치고 싶었다. 그래야만이 일본군 속에서 자기 권위를 수호할 것만 같았다. 병완이 끼무라 국장의 신임을 얻는다면 자기 자리를 빼앗길 것만 같은 위기감이 들었던 것이다.
목수 간에서는 병완과 기준, 창준을 비롯해 목수 일여덟이 부지런히 지붕틀을 짜고 있었다. 그때 영팔은 그들 사이로 왔다 갔다 하면서 힐끔힐끔 감시하고 있었다.
요즘 낯선 목수 하나 목수간에 들어왔는데 꽤나 까다로웠다. 병완이가 시키는 일은 하지 않고 힐끔힐끔 병완만 살피는 눈치 같았다.
병완은 그자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기준과 창준에게 눈짓했다.
한참 일하고 나서 병완은 뒷간으로 가는 척 하면서 기준에게 뒤쪽을 머리짓 했다.
병완은 뒷간에 가서 대변을 보는 척 하면서 조용히 귀속 말을 했다.
“아무래도 새로 온 목수란 자가 한길수 끄나불인 거 같아. 운주동 사람도 아니고, 신흥동이나 가마골 사람도 아니잖니? 어떻게 하나 그 놈들의 눈을 피해 나무벌레를 지붕틀 중심에 넣어야겠는데. 그 놈이 걸리는구나.”
기준은 머리를 끄덕였다.
한참 후 기준이 수를 내놓았다.
“아버지, 내 그 놈 끄나불과 걸고들어 싸우면서 그 놈들의 눈길을 돌리는 틈에 손을 쓰면 어떻습둥?”
“오, 그게 참 묘수구나.”
그들 부자는 영팔의 의심을 살까 봐 인차 뒷간에서 나왔다. 그런데 뜻밖에도 영팔이 벽 밑에서 이쪽을 흘끔거리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저 놈이 저게!”
기준은 주먹을 으스러지게 틀어쥐었다.
병완은 기준의 팔소매를 슬쩍 쥐어 당기며 말리였다.
그들이 목수 간으로 들어가는데 영팔이 뒤에서 불평스레 투덜거렸다.
“변소간에 한시에 둘씩이나 가다니. 흥! 그러구서야 언제 경찰국을 다 짓겠는가?”
새로 온 목수가 또 힐끔거리면서 그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때라고 기준은 그 자한테로 다가갔다.
“당신은 어디서 왔소?”
그 목수는 힐끔 병완을 쳐다본 후 눈을 내리깔면서 대충 대답했다.
“웅진에서 왔소."
"오- 그래? 어째 웅진에서 본적이 없는데."
그 자는 허구픈 웃음을 지었다.
"웅진에서 이 백승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소.”
“어데서 듣던 이름인데.”
병완이 피뜩 보니 웬 곱사등이였다.
순간 병완은 기준과 눈길을 마주쳤다.
쉼에 병완은 기준과 창준을 불러 바깥에 나갔다.
“승만이란 자는 웅진 길 어귀 도둑놈이야. 이전에 성칠에게 혼난 적이 있어."
기준은 양미간을 찌푸리면서 “저 놈이 어떻게 돼 여기까지 왔을까?” 하고 의문스러워 했다.
창준은 수재답게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추측했다.
“분명 한길수가 끌어들인 밀정입니다. 우리를 힐끔힐끔 감시하고 있잖습둥?”
“한길수는 도둑놈들이나 강도패거리들을 다 끌어들여 일본 놈의 개를 만들고 있어.”
병완은 기준과 창준에게 뭐라고 귀띔해주었다.
다음 쉼에 기준이가 한창 지붕틀에 구멍을 뺄 때였다.
승만이가 대충 자귀질하는 척 하면서 기준을 힐끔힐끔 곁눈질했다.
그러자 기준이가 끌을 쥔 채 고함쳤다.
“네 놈은 어데서 굴러온 놈인데 일은 하지 않고 눈깔만 힐끔거려?”
“뭐라고?”
“네가 감히 대들 테냐?”
기준은 두 마디 안짝에 그 자의 멱살을 거머쥐고 주먹으로 눈통을 쳤다. 곱사등이 승만은 눈 통을 싸쥐고 오만상을 찡그리다가 마구 주먹질을 해댔다.
그가 어찌 기준의 상대가 되겠는가!
기준이 승만에게 한발 안기자 저쪽 기초구덩이에 뿌리어나가 보기 좋게 나부라졌다.
둘이 맞붙어 싸우자 숱한 목수들이 그리로 욱 쓸어갔다. 영팔과 수길은 승만과 합세하려고 그쪽으로 뛰어갔다. 그들 둘은 말리척하면서 기준의 양팔을 붙잡았지만 기준의 발길질은 멈추지 않았다. 결과 승만은 낯이 쥐마당이 되게 얻어맞았다.
순간 병완과 창준은 톱밥 속에 감춰 둔 나무벌레를 파냈다. 기준이가 영팔까지 쳐 눕힐 때 그들 둘은 지붕틀의 중간 구멍마다에 나무벌레를 걷어 넣고 애교를 바른 쐐기까지 슬쩍 박아 넣었다.
이때 한길수는 자위대원과 헌병 대여섯을 데리고 달려왔다. 병완과 창준은 그 놈들이 밀고 닥치면서 싸움을 말리는 것을 곁눈질해보면서 또 대여섯 개 지붕틀 중간에 벌레를 집어넣고 쐐기를 박아 넣었다. 실로 눈 깜짝 할 새에 일을 끝냈다.
병완과 기준, 창준은 며칠 전에 미리 벌레가 있는 원목을 슬 슬 톱질해 노란 나무벌레를 나오는 족족 영팔이 패거리들의 눈을 피해 슬슬 집어 톱밥 속에 감춰 두었던 것이다.
애교를 바른 쐐기는 한식경 지나자 딱 들어붙어서 다시 뽑자고 하여도 뽑을 수 없게 굳어져 버렸다. 그때쯤 되어 기준이 쪽의 싸움질도 여럿이 뜯어 말리는 바람에 끝나갔다.
기준은 병완이 네가 지붕틀에서 손을 떼는 눈치를 채고 주먹의 먼지를 탁탁 털며 을러멨다.
“이 놈새끼, 일하지 않았다간 죽여 버리겠다.”
백승만은 눈통이 닭 알만큼 부어올라 참말 꼴불견이었다.
목수들이나 인부들은 속이 시원해 했다.
“개자식, 눈깔을 힐끔거리면서 우릴 살피더니 쌍 통 했다. 히히.”
“눈깔이 터졌으니 이젠 밑구멍으로 우릴 살핀다니? 흥.”
“허허허.”
“하하하.”
“저 놈이 우시장 천하장수 병완도 몰라본 모양이지?”
“글쎄 말이야. 하룻 강아지 범 무서운 줄도 모른다더니 명천 울뚝이도 모르구 덤벼? 쳇!”
“그러게 말이야.”
병완은 인부들이 주고받는 말을 들으면서 창준과 기준을 바라보더니 만족한 듯이 머리를 끄덕이며 씨무룩이 웃었다.
한길수도 끼무라 국장의 부탁이 있는지라 기준을 어쩌지 못하고 외눈깔로 쏘아볼 뿐이었다.
끼무라는 도리어 기준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책망인지 치하인지 분간하지 못할 말을 했다.
“자식, 꽤나 주먹질을 잘하던데. 쳇, 자네 부자간은 사람을 치면 눈 통부터 잘 치는구먼. 그 애비에 그 아들놈이야.”
“하하하”
끼무라가 뭐라고 지껄이는 걸 알아듣지 못한 기준은 주먹을 으스러지게 쥐고 부르르 떨며 부릅뜬 눈으로 영팔과 곱사등이 승만을 쏘아보았다.
(개놈새끼들, 몽땅 외눈깔을 만들어놓고 말리라. 퉤!)
기준은 더러워서 영팔이 쪽에 가래를 탁 뱉고 나서 씩씩 거렸다. 영팔은 옆구리에 찬 권총집에 손을 댔다 뗐다 하면서 단방에 기준을 쏴 죽이지 못하는 것을 한스러워 했다. 그러나 끼무라의 눈치를 슬슬 보면서 끝내 손을 쓰지 못했다 .
병완이 눈짓하자 기준은 지붕틀을 돌아보더니 목수 간 쪽으로 휭 하니 가버렸다.
저쪽에서 뻐꾹새가 처량하게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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