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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황혼 제1권 (9) 안락사 김장혁
2024년 07월 12일 10시 33분  조회:450  추천:0  작성자: 김장혁
 
        김장혁 장편소설 황혼 제1권


        9
.안락사
 
 

   생사선에서 헤매는 공포가 죽음의 전주곡을 부르려고 선률을 고르고 있다.
   정신차린 혼은 창문으로 해 다시 종호의 뇌리로 날아들어가 철싸닥 붙었다.
   불여우의 간사한 꼬리는 어찌나 길었는지 슬기로운 지영한테 밟히고 말았다.
   지영은 병실을 청소하다가 종호의 침대 머리 탁자 밑에서 깨진 링겔병 쪼각을 발견했다.
   오목한 병 유리쪼각에는 액체가 좀 남아 있었다.
   (이건 증거야. 그년 무슨 짓을 했는가 밝혀 내야지.)
   지영은 인차 주사기 통에 그 링겔병 유리쪼각을 조심스레 걷어넣었다.
   그때 문 여는 소리와 함께 려향이 들어섰다.
   지영은 아무 일도 없는 척하면서 장대걸레로 침대 밑이랑 훌훌 밀었다.
   “언니, 청소하오?”
   “음. 그래.”
  려향은 침대머리에 다가와 아빠를 들여다보았다. 산소호흡기랑 제대로 있는 것을 보고 한숨을 후- 내쉬었다.
  그녀는 어두운 그림자가 흐르는 얼굴로 아빠의 퉁퉁 부은 얼굴을 들여다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었다.
  려향은 피뜩 링겔병 쇠걸개를 보자 금방 있은 일이 떠올랐다.
   (아빠 쓰러졌는데 엄마도 감옥에 배낼 순 없어.)
  려향은 황급히 우쭐 일어나 병실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침대 밑이랑 탁자 주위랑 아무리 둘러보아도 병 쪼각 하나 보이지 않았다.
  려향은 지영을 돌아보며 물었다.
  “혹시 금방 깨진 병 쪼각을 보지 못했는가요?”
  그러나 지영은 단마디로 “못 보았소.”라고 잘라버리었다.
   “네-”
  려향은 반신반의하면서도 어쩌는 수 없었다. 병실은 진작 말끔히 청소돼 있었으니까.
  려향은 혹시나 해 쓰레기통에 다가가 뒤져 보았다. 그러나 아무 것도 없어 좀 위안됐다.
   호-
   려향은 한시름 놓았다. 그녀는 절대로 엄마를 잡아먹는 빌미를 남기고 싶지 않았다.
   지영은 청소를 마치자마자 주사통과 소독약통이랑 담은 밀차를 밀고 복도로 스리슬쩍 나가버리었다.
  그때 복도 맞은 켠에서 나영이 과일구럭을 들고 다가왔다.
  “어째 음식점에 돌아가지 않았니?”
  나영은 머리를 무겁게 끄덕였다.
  “그래. 악처 가는 거 보고 되돌아오는 길이야.”
  “그래?”
  지영은 나영을 눈치질해 복도굽인돌이 쪽으로 데리고 갔다.
  그녀는 뒤를 돌아보더니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후 나영을 데리고 한쪽 구석으로 갔다.
   “악처야, 암범 같은 그년이 오늘 링겔 병까지 깨면서 개지랄 했어.”
   지영은 나영의 귀에 대고 나직이 금방 있은 일을 쭉 말했다.
   “링겔병에 무슨 개지랄 했는지. 도적놈이 제 발등이 저린 모양이지. 부랴부랴 링겔병까지 깨고. 평소에 비자루도 안 쥐던 년이 글쎄    링겔병 유리쪼각을 몽땅 쓸어 내다 던지지 않겠어. 참 수상해.”
  그녀는 종호 병실 쪽을 힐끔 되돌아보더니 나직이 말했다.
  “이제 깨진 링겔병 유리쪼각에 남긴 액체를 화험실에 가져다 화험시키면 모든 죄악이 드러날 거야.”
  “잘했어.”
  나영은 지영의 어깨를 다독여 주었다.
  “리사장님, 괜찮지?”
  “그래. 정신 차렸어. 내 화험실에 갔다가 인차 갈게.”
  “음. 그래.”
  그들은 누가 볼가 봐 인차 갈라지었다.
  지영은 간호실에 들어가자 다른 간호사들의 눈을 피해 병쪼각이 든 주사통을 꺼내 손가방에 스리슬쩍 걷어넣었다.
  뒤이어 간호사장한테 다가가 청을 들었다.
  "급한 일 있어 잠간 청가를 맡아도 되겠나요?"
  간호사장은  상을 찡그리었다.
  "뭔 일인데? 퇴근 후에 하면 안돼?"
  "급진환자 있는데요.급히 주사를 놔달라고 해세요."
  "지금 의사들 집단휴진해 환자들 치료 제때에 못한다고 극성인데요.고양이 발도 빌어쓸 지경인데."
  간호사장은 외까풀눈으로 째려보며 마땅찮아했다.
  "병원에 와서 주사 맞게 하면 안돼?"
  지영은 두 손을 싹싹 비비며 청을 들었다.
  "거동이 불편한 분이 돼서요. 한시간만 청가 주세요.오늘 로임은 그만두세요."
  "그래?"
  간호사장은 지영의 오늘 로임 가로 챌 기회가 생겼다.비정규직 간병원한테선 로임을 뜯어내기 한창 좋았다. 물론 려향이 간병비를 내지만 간호사장은 지영을 간병원에서 제명할 권한도 있었고 간병비를 정할 권한도 있었다.
  그녀는 언제 째려 보았던가 시피 금시 해시시 웃으며 상냥하게 말했다.
  "오케이! 인차 갔다 오세요."
  "고맙습니다."
  지영은 곱게 인사하고 바람결처럼 복도로 나가 사라지어 버리었다.그녀는 하루 로임보다도 진실을 밝혀내는 것이, 한 사람의 생명과 직결된 일을 까 밝히는 것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그녀는 병원 문 앞에 나가자마자 택시를 불렀다.
  "경찰서 부탁드립니다."
  "알았어요."
   택시는 지영을 싣고 쏜살같이 달려갔다.
  택시가 경찰서 문 앞에 급정거하자 지영은 곧추 경찰서 안으로 들어갔다.
  "무슨 일로 왔는가요?"
  여경이 예지로 빛나는 눈길로 지영의 거동을 살피면서 맞아주었다.
  "신고하러 왔습니다."
  여경의 눈에 대뜸 긴장한 빛이 어리었다.
  "무슨 일인데요?"
   지영은 손가방에서 주사통을 꺼냈다.
  "이 유리 쪼각에 묻은 액체를 화험해주세요."
  지영은 주사통을 열어보이었다.
  "이건 뭔데요?"
  여경은 지영을 쳐다보며 의아해했다.
  지영은 거친 숨을 몰아쉬고 나서 병 쪼각에 깃든 이왕지사를 쭉 말했다.그러고 나서 이런 제의를 했다.
  "이 병 쪼각을 화험하면 그 악처가 링겔 병에 뭘 주사해넣었는가를 밝혀 낼 수 있을 겁니다.분명 저의 환자를 살해하려고 무슨 독약을 주사한 것 같아요."
   경찰들이 우르르 모이어 왔다.
  "잠간 기다리세요."
  경찰들이 한쪽 구석에 가서 토론했다.
  이윽고 여경이 돌아왔다.
  "좀 기다리세요.이걸 국가과학기술수사 부문에 보내 화험해야겠어요."
   여경은 지영의 성명,직장,핸드폰번호 그리고 투약혐의자 성명 등을 컴퓨터에 꼼꼼히 기록했다.
   여경은 컴퓨터를 들여다보다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류려평이라고?”
   “네. 류려평입니다.”
   여경은 다른 여경을 불렀다. 여경들은 컴퓨터를 들여다보며 눈길을 맞추었다.
   이윽고 여경은 지영을 마주 보며 나직이 말했다.
   "직장에 돌아가  소식을 기다리세요."
   여경은 부탁했다.
  "누구한테도 신고한 일을 까딱 알리지 마세요.류려평, 그 여자 거동을 비밀리에 면밀히 주시해 주세요."
   여경은 경찰서 전화 번호도 알려주었다.
  "수시로 연락 부탁드려요."
  "네.알겠습니다."
  여경은 지영을 경찰서 문 앞에까지 배웅해주고 손까지 꼭 잡아주며 작별인사를 했다.
   "안전에 주의하세요."
   "고맙습니다."
   지영은 택시를 잡아타고 급급히 병원으로 돌아갔다.
  지영이 퇴근하려는데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리었다.경찰서에서 걸리어 온 전화였다.
  "박지영씨, 경찰서에 오세요."
  "네.알겠습니다."
  지영은 택시를 잡아타고 쏜살같이 경찰서로 달려갔다.
  경찰서에 들어가자 여경이 경악할 소식을 알려주었다.
  "유리 쪼각에 묻은 액체에는 염화칼리움이 들어있다는 것이 밝혀지었어요. 염화칼리움은 여러번에 나눠 과량으로 주사하면 안락사를 당할 수도 있어요. 당장에서 사망하지 않고 천천히 사망하기에 사망원인을 밝히기도 어렵죠.대단히 교묘한 수법으로 남편을 안락사를 시키려고 들었군요."   
   지영은 너무나 섬찍해 뒤저참했다.
  (염화칼리움 때문에 리사장님이 겉늙었고 자꾸 앓았을까?)
   여경은 지영을 보고 물었다.
   "류려평은 직종이 뭔지요?"
  "딸의 말에 의하면 이전에 병원에 간호사로 근무하다가 후에 은행 지행장으로 근무했다던데요."
  여경보다 상사인듯한 경관이 다가왔다.
  "류려평을 즉시 나포해야겠어요.그 병원에 다시 나타날가요?"
  "글쎄요. 꼬리를 밟힐가 봐 다시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어요."
  경관과 여경은 눈길을 맞추었다.
  여경은 지영한테 물었다.
  "지금 류려평이 어디서 주숙하는지 아는가요?"
  지영은 쌍까풀눈을 치켜뜨며 궁리하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류려평이 딸의 세집에 주숙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류려평은 손에 쥔 돈이 없는지 남편의 로임카드 돈을 다 탐내 맨날 병원에 와서 서랍이랑 들추고 그래요. 경찰들이 수사하는 걸 알면 딸집에서 도망칠 수도 있지요."
  "딸의 이름은 뭔가요?"
  "리려화입니다."
"리려화 집 주소를 아는가요?"
"잘 몰라요. 저의 친구 나영과 물어보면 알 수 있을 겁니다."
  여경은 지영을 보고 부탁했다.
  "나영이나 류려평이 병원에 나타나면 즉시 경찰서에 신고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지영은 경찰서에서 나오면서 다리가 떨리는 감을 느끼었다.
  (악처, 리사장님과 안 살겠으면 리혼할게지. 어쩜 음흉하게 안락사까지 획책해?)
    인터폴 법망이 점점 어두운 그림자를 향해 서서히 조이어 들고 있었다.
    그물에 든 물고기는 간담이 서늘해 물 위로 펄떡펄떡 뛰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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