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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황혼 제2권(23) 홀애비의 고민 김장혁
2024년 07월 19일 18시 44분  조회:670  추천:0  작성자: 김장혁
 
     
       김장혁 장편소설 황혼

    

           23. 홀애비의 고민


 
   장마철이 돌아오자 하늘이 구멍이 났는지 거의 날마다 소낙비가 억수로 쏟아지었다. 그런데 오늘 어쩌다가 아침해가 병원 뜰안의 수림을 유난히 비추었다. 나무이파리에 맺힌 비방울이 해빛을 반사해 반짝이며 삶의 미련으로 맺혀 도르르 굴러 떨어진다.
   종호는 지영과 함께 병원 뜰 안 수림에 나가 긴 장의장에 앉았다. 훈훈한 바람이 불어와 얼굴을 간지럽히었다. 종호는 지저귀는 새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시원한 공기를 한껏 들이켰다.
   그러나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햇볕이 어찌나 쨍쨍 내리쬐는지 종호는 무더위를 피해 지영과 함께 병실에 돌아왔다.
   종호는 환갑 나이도 지난 인생의 황혼을 생각하자 어쩐지 한없이 쓸쓸하고 서글프고 앞길이 캄캄해났다.
   나이가 들수록 기력이 쇠역해지고 인적 관계는 소원해진다. 남녀 사랑은 사막처럼 삭막해져간다. 여자들도 머리 허연 늙은이를 보면 눈초리 꼿꼿해서 기시하는 눈길을 보낸다. 연지꼰지 바른 젊은 아가씨들은 허연 수염을 보기만 해도 입귀로 비웃음을 흩날린다. 늙으면 진짜 섧섧한 일이 많기도 많았다.
   사실 종호는 암범 같은 악처와 부부 생활을 해본지도 20여년이 됐다. 그러다나니 여자가 어떻게 생기었는지 모를 지영이 된지도 오래다. 성욕도 인간의 본능인데. 허참, 인간의 잠재적 본능인 성욕도 제대로 만족보지 못하고 하루, 한달, 한해 자원을 낭비하면서 세월을 허송세월해 보냈다. 세상에 이런 바보도 있다면 누가 믿겠는가.
   “쳇, 현퇀급 부사장님이 여자친구 하나도 없다고 하면 누가 믿겠는가?”
   “글쎄. 숱한 애인을 감춰뒀을 거야.”
  "여자친구 많은 놈은 여자 하나도 없는 상한다는데."
  "찍 소리 없는 여끼 부뚜막에서 엉덩이로 호박씨 깐다고 하잖아? 흥!"
   “황차 본댁이 옆으로 오지 못하게 하는데. ㅋㅋ”
  구경 우리 세상에는 이런 바보 홀애비가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류려평은 30대 초반부터 은행에 들어가 저금소 주임으로 된 후부터 남들의 눈을 피해 암암리에 류덕배와 속살을 섞어댔다. 물론 더러운 교역 뒤에는 빨깍빨깍하는 돈 묶음이거나 금은장신구가 차례지었다.
   자기 밑구멍이 치치해 가지고 류려평은 쩍하면 종호를 의심하면서 잠자리에서도 곁을 잘 주지 않았다. 어쩌다 몸을 주어도 콘돔을 끼고 살자고 했다. 안 그러면 아예 생각도 말라고 했다.
   종호는 콘돔을 끼면 뻘꺽거리고 감각이 좋지 않았지만 굶은 놈이 별 수 없었다. 한달에 둬번 밖에 차례지지 않는 그 기회도 놓칠 순 없었다. 진짜 간신히 근근득식하면서 정욕을 말리군 해야 했다.
   류려평은 지행장으로 된 후 부터는 류덕재 행장한테 찰싹 달라붙어 미친듯이 더로운 교역을 해대면서 종호를 남편으로, 아니, 사람으로 보지도 않고 저돌적으로 푸대접했다.
   그녀는 어쩌다가 잠자리에 다가오는 종호를 보고 퉁사발눈을 흘기면서 핀잔을 주군 했다.
   “당신, 거기서  고약한 냄새 나오. 래일 병원에 가서 화험해야겠소.”
  “왜?
  종호는 외까풀눈이 데꾼해지었다.
  악처는 왕청 같은 소리를 쳤다.
  “에이즈에 걸렸는지 누가 알아요?”
  종호는 더는 참을 수 없었다.
  “뭐라고? 억이 막힌 소릴 하지도 마오. 내 바람 피운 일도 없는데 어디서 에이즈에 걸린단 말이오?”
  오히려 류려평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한심한 소리를 다 치었다.
  “청백한 척 말라고. 시내 몇몇 병원에 돌아다니면서 당신 병력서류를 다 꺼내 보면 진상이 다 밝혀질 수 있어.”
   악처는 종호를 마구 밀어내고 침실 문을 쾅 닫아버리었다.
  “옳소. 래일 당장 뒷조사를 하란 말이오. 더러운 년, 제 밑구멍이 치칫해 전탕 청백한 사람을 의심한단 말이야.”
  악처의 악담은 더욱 혹독해갔다.
  “지금 한자리 하는 놈 치고 애인 한, 둘이 없는 바보 어디 있어? 리사장님이라고 례외일 수 있겠어?! 흥!”
  기실 류려평은 류덕재 행장과 더러운 교역을 벌린 후부터 색안경을 끼고 종호를 보고 있었다. 
   요즘 그녀는 류덕재와 더러운 교역을 벌린 후 하신이 벌겋게 번지더니 어쩐지 자꾸 하신이 가려워났다. 나중에는 아랫배까지 띠끔띠끔 아파났다.
   산부인과에 가서 검사해보니 의사가 성병피부과에 가보라고 했다.
  류려평은 대개 짐작이 가서 자기 출근하던 병원의 눈을 피해 다른 병원 피부과로 갔다.
   녀의사는 류려평의 하신을 검사하더니 안경 너머로 이상하게 멸시하는 눈길로 류려평을 피뜩 곁눈질하더니 화험처방지를 떼 주었다.
  류려평은 두근닥근거리는 심장을 억누르면서 화험실에 가서 팔을 걷고 피를 뽑았다.
  오후에 화험 결과가 나왔다.
  더러운 매독에 덜컥 걸리지 않았겠는가.
  “이걸 어쩌는가?”
  류려평은 화험단을 보고 깜짝 놀랐다.
  기실 검진 결과 류려평은 매독에 걸린지 오래 자궁이 썩어떨어지기 시작했다.
  그 추악한 몰골이 들키울가 봐 류독재하고나 종호하고도 콘돔을 써왔다. 그런데 콘돔을 끼어도 쓸데 없었다.
   "콘돔이 구멍나 샜는가?"
   려평은 깜짝 놀라 퉁사발눈깔이 뒤집힐 정도였다.
    종호도 거기가 벌겋게 부어오르더니 가렵고 나중에는 띠끔띠끔 아파났다. 병원 피부과에 가서 검사하니 매독에 걸렸다고 했다. 화험결과도 역시 매독으로 나왔다.
   "더러운 년, 어데 가서 매독을 묻혀다 내게 전염시켜 놔?!"
    종호는 매독에 걸린 일은 속이고 치료하면서 려평을 다른 안목으로 살피기 시작했다.
   류려평은 매독, 자궁미란에 걸린 걸 안 다음부터는  종호한테 곁을 주지 않았다.
   그건 뭣 때문인가? 
   추악한 몰골이 탄로날가 봐 두려웠다. 그보다도 장기간 혹독한 성징벌을 하면 종호가 혹시 리혼에 동의하지 않겠는가는 계산도 따로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리종호는 사회 사업의 수요로 리혼해주지 않았다. 조직부에서 신문사에 내려와 가정형편이랑 조사할 때 리혼한 정황을 알면 장차 조직발전에 문제로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또 가정을 깨면 부모가 리혼한 집 애라고 려향의 전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고민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류려평의 리혼요구를 귀에 못이 박히게 해도 한사코 질질 끌면서 리혼하지 않았다. 나중에는 려향을 데리고 한국에 훌 나와 버렸던 것이다.
   한편 류려평은 류덕재가 사흘이 멀다하게 달려들기에 매독을 가만가만 치료해 나을 새도 없었다.
  (류덕재, 나쁜 놈, 어쩜 이렇게 더러운 전염병을 내한테 옮아놓는단 말인가? 그러고도 콘돔을 쓰지도 않고. 나쁜 놈새끼.)
한편 류려평은 바보 같은 홀애비 남편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언제까지 저 바보를 속이면서 살 수 있을가? 아예 훌 리혼하고 말가?)
  그런데 전통파 종호는 려향의 전도를 보고 절대 리혼해주지 않았다.
  그러자 악처는 심지어 각방을 쓰면서 살기 시작했다.
   문을 꼭 잠궈 버리고 려향을 데리고 자면서 종호를 언저리에 오지도 못하게 했다. 그것은 종호에 대한 류려평의 일종 가혹한 성징벌이기도 했다.
  이전에 부부 금술이 좋을 때는 종호와 류려평은 찰떡부부처럼 들어붙어 하루에도 서너번씩 부부 생활을 했다.
  어떤 때에는 부부 생활을 해야겠는데 점점 커가는 려향이 애를 먹이었다. 점심에 제꺽 그래고 출근해야겠는데 학교에 갔던 려향이 불시에 집으로 돌아왔다.
  바빠맞은 종호는 려향한테 용돈을 쥐어주면서 얼리었다.
  “이걸 가지고 양꼬치나 먹어라.”
  “아- 좋아라!”
  려향은 돈을 받아쥐고 양꼬치 먹으러 달아갔다.
  그새면 그들 부부는 오후 출근시간을 맞춰 제꺽 콩닦개를 닦아 먹군 하듯 재빨리 일을 끝냈다.
  (그때는 얼마나 열렬했던가? 그런데 몇달이 되도록 한번도 부부생활을 못하게 하니. 이거 원, 참.)
  종호는 널직한 세칸들이 새 아파트에서 살아도 행복한 감을 느끼지 못했다. 콧구멍만한 닭굴자리 셋집에서 뜨거운 사랑으로 몸을 달구면서 추위를 이기며 살아가던 때가 그리워났다.
  (글도 쓰지 못하고 사랑이 없이야 무슨 사는 재미 있는가?)
  종호는 여직껏 류려평이 류덕재와 오래동안 간통한 일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저 류덕재 덕분에 류려평이 저금소 주임, 지행장으로 된 것을 알뿐이지 아파트까지 사주었다는 것까찌는 모르고 있었다. 류려평과 아파트를 무슨 돈으로 샀는가고 물어보니 본가집에서 준 돈으로 샀다고 했다.
  그때 종호는 류려평을 보고 엄숙하게 말했다.
  “우린 아무리 가난하게 살아도 절대 부정당한 방법으로 돈을 벌지 말아야 하오.”
  류려평은 퉁사발눈을 뒤집힐 지경으로 흡뜨면서 욕설을 퍼부었다.
   “오- 당신이야 이 세상에서 혼자 청렴한 간부인게 무슨. 제 노릇을 하나도 못하는 리사장님을 믿고야 언제 새 아파트에서 산다오? 가시집 신세에 사는 주제에 잔소리를 작작 하라고. 흥!”
   종호도 육정칠욕이 있는 열혈 사나이었다. 그는 어떤 때에는 끓어오르는 정욕을 참을 길 없어 려향이 쌔근쌔근 잠든 다음에 발끝걸음으로 려평이 각방으로 사는 침실 문에 다가가 귀를 기울이다가도 조용히 노크했다.
   
  “여보, 문을 좀 여오.”
   그러나 려평은 문을 꽁꽁 잠궈 놓은 채 두덜거리었다.
  “왜? 시끄럽게 굴어? 애를 깨우겠다. 썩 가지 못해?!”
   (오늘 밤에도 끝이구나.)
  그러나 종호는 미련을 버리지 않고 문꼬리를 쥐고 려평을 설득하려고 들었다.
   “려평이, 도대체 무엇 때문이오. 이 문을 여오. 좀 대화하기오.”
   “당신과 할 말이 없어. 내일 굴암돼지 엉덩이를 사다줄게. 정 하고 싶으면 돼지 옹고지에 대고 해라. ㅋㅋ”
   종호는 당장 문을 박차고 들어가 려평의 주둥이를 막 막아 쳐놓고 싶었다. 그러나 겨우 참아가면서 내심하게 말했다.
   “그것도 말이라고 하오? 우린 부부가 아니오? 부부라면 성적인 의무를 다 해야 하오. 대방의 성적 욕구를 만족시켜야 할 의무가 있단 말이오. 그러잖으면 무슨 부부요?”
    “흥! 생활이 령점이 돼가지고서도 누굴 교육해? 무슨 대방의 성적 욕구를 만족시켜줄 의무 있다고? 그래 안해는 남편의 정욕을 해소하는 도구인가 하니? 퉤, 더럽다, 더러워. 너도 남편이냐? 널 믿고 살다간 한지에 방아를 걸겠다. 남자 구실도 온전히 못하면서. 내 보고 옥 같은 몸을 들이대라고? 픽, 기름개구리 학의 고기를 먹으려고 든다고나 해라? 꿈도 꾸지 말라.”
   종호는 문고리를 맥없이 놓고 돌아섰다.
   격분과 정욕을 이기지 못해 그는 소낙비 쏟아지는 날에 우산을 들고 바깥에 나가 돌아다니었다.
   먹장구름이 뒤덮인 하늘을 바라보니 슬픔과 고독이 싸늘한 가슴에 창창 쏟아져 겹겹이 쌓인다.
   그는 공원 수림에 들어가 돌아다니면서 끓어번지는 격분과 몸을 식이려고 들었다. 허나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그는 우산을 쓰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그는 대변실에서 우산을 걸개에 걸어놓고 앓음소리를 내면서 변기를 마주 하고 섰다. 뒤이어 그는 눈을 지긋이 감고 열렬히 살 때 류려평의 우유빛 엉덩이를 상상하면서 그걸 꺼내 주물주물 주물렀다. 숨소리 거칠어진다. 손놀림이 빨라지자 한참 후에 열기가 쑥 빠져나가면서 신음소리를 토해냈다.
   핸드폰이 나오면서 종호는 류려평이 점점 더 곁을 주지 않아도 개의치 않았다. 그의 자위는 더 현대화로 발전했다. 그는 삼복철에 더워서 류려평이 문을 걸지 않고 빠끔히 열어놓고 잘 때면 가만히 침실 문을 열고 들어가 류려평의 하연 허벅다리와 우유빛 젖무덤 그리고 탄탄한 엉덩이를 핸드폰으로 촬영해  3류동영상처럼 저장해두었다.
   고독한 밤이면 종호는 행인이 없는 공원 화장실이거가 강가 버드나무숲 속에 가서 그 동영상을 보면서, 려평과 열렬히 속살을 섞던 장면을  련상하면서 정열을 배설하군 했던 것이다.
   어떤 때에는 수영장에 가서 잠수해 여인들의 하얗고 야들야들한 허벅다리를 훔쳐보면서 자위를 하기도 했다.
   (아, 오늘도 고독하게 자위했구나. 불쌍한 홀애비 신세.)
   종호는 자기 불운한 팔자, 기구한 운명을 한탄하기도 했다.
   그것도 우연히 한두번이면 모르겠다. 내내 정욕만 끓어번지면 습관처럼 손으로 수음(手淫)하면서 자위를 하니 이젠 그것도 말을 잘 듣지 않았다. 이젠 진짜 콩물에 불궈놓은 果子처럼 시들어서 거의 고자나 다름없게 됐다. 이젠 각일각 페남자로 돼버려가고 있었다.
   부부 음양조화가 잘 안되니 엔돌핀도 생성되지 않았고 건강에도 여기 저기 자주 이상이 생겼다. 륙십대  중반인데 머리가 파뿌리처럼 돼버렸다. 말하긴 좀 그런데 어데라 없이 털은 거의 다 싯허얘져 대중욕탕에 가서 샤와 하기도 민망했다. 얼굴도 주글주글해지고 이마에는 주름살이 밭고랑처럼 패여갔다. 겉보기에도 나이보다 퍽 겉늙어서 칠순을 훨씬 넘긴 령감처럼 보이었다. 거리에 나서면 모두 "아바이,", "할아버지."라고 부른다. 
    아바이라고 부르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는 인생 황혼이 너무나도 서글프고 쓸쓸하기만 했다.
    (아직 세상에 해놓은 일도 없고 손자도 안아 보지 못했는데. 벌써 아바이라니? 원, 참. 세월도 한심하지. 내 인생아, 황혼아, 야속하다, 야속해.) 
    아니, 세월을 탓하기보다 악처를 만난 악연을 탓해야 할 거야. 가정불화로 인해 얼마나 속을 태웠는가?
    리종호 사장님은 우점도 많고 아는 것도 많지만 치명적인 결점이 있었다. 혹시 그는 가정이 화목해야 만사가 잘 풀린다는 것을 잘 모르는 것은 아닌지? 
     종호는 정열이 끓어번지는 젊은 시절에 사랑이 없는 가정, 허울 밖에 없는 이 놈의 가정에서 딸애의 전도를 망칠가 봐 남모르게 이렇게 수십년을 자위로 달아오르는 몸을 식여왔다. 바보처럼 홀애비 아닌 홀애비로 살아왔다. 그는 바보처럼 금욕주의자로 살아왔다.  
    사랑하는 안해가 없고 음양조화가 잘 안된 것도 종호가 자살하려고 한 원인 중 하나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려향이 다 큰 다음에도 말할 수 없었다. 딸한테 고통을 주고 싶지 않았다.
   어떤 때에는 부부의 살뜰한 정도 없는 류려평과 리혼할가고도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려향이 리혼한 집 애라고 놀림을 받으면서 고생스레 자랄가 봐, 려향이 한쪽 날개 끊어진 새처럼 될가봐, 이날 이때까지 참기도 어려운 고통을 이를 악물고   참으면서 리혼하려는 생각을 눅잦히며 단념했던 것이다.
   그는 리혼은 단념하고 류려평과 졸혼하고 각기 완전히 자기 삶을 살아 왔다. 그러자 자유로워 얼마나 좋은지 몰랐다. 그는 한국에 나와 글을 써 책을 내면서 살았다. 류려평은 려향까지 한국에 류학보내 애비한테 맡겨놓고 고삐 끊은 들말처럼 제 마음껏 마작이나 놀로 마사지방이나 술집에 드나들면서 미친듯이 류덕재와 바람을 피우면서 살았다.
   종호는 사람이 사는 의의는 성생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유익한 글을 쓰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때문에 류려평과의 사랑이 사막화돼가도 개의치 않고 모든 정력과 재력을 영웅과 렬사들의 사적을 써서 책으로 묶어 내는데 쏟아부으면서 살아왔던 것이다.
   수전노 같은 류려평은 미인계와 직권을 빌어 돈을 긁어모으는 재미에 살았다. 그는 심지어 부정축재를 은행에 저금하면 탄로날가 봐 황금으로 바꿔 집에 놓은 커다란 금고에 감춰 두었다. 나중에 종호한테 들키울가 봐 종호 몰래 다른 곳에 본가집 엄마 이름으로 아파트를 따로 사놓고 황금과 현금을 치워 두고 아무도 얼씬하지 못하게 하고 혼자 가만히 한주일에 둬번 누가 다치지 않았는가 살펴 보군 하였다.
   녀탐관은 쇠살창에 갇힌 후에야, 중국 수사기관에 차압된 후에야  숱한 돈을 하나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려향한테도 주지 않은 것을 후회하였다. 한국에 류학간 려향한테 주면 애비한테 줄가 봐 학비도 일전한푼 대주지 않았던 것이다.
   종호는 장의자에 앉아 쓸쓸히 자살하려고 베었던 왼손목을 내려다 보았다. 칼로 벤 흉터가 마음이 아프게 시야에 들어왔다. 이젠 혼은 올똘해져 주글주글하게 늙어가고 쇠약해가는 육체에서 떠나지는 않았다.
   (사회에 아무 유익한 일을 하지 못하면서 늙어만 간다면야 무슨 사는 의의가 있는가? 그저 허연 밥을 먹고 소화시켜 누런 똥을 만들어 배출하는 일 밖에 더 있겠는가?)
   종호는 또 우울해지며 별다른 곳으로 혼을 몰고 갔다. 누구도 인생의 황혼을 피해 갈 수 없다. 황혼이 다가올수록 이일 저일 섭섭한 일이 삼검풀처럼 엉켜 가슴을 조여 침침해나고 서글프게 한다.
  저물어 가는 저녁에도 삼복지간 씨뻘건 태양은 서산 마루의 누르스름한 구름을 뻘겋게 불태운다. 피빛으로 물든 황혼빛 락조가 비낀 병원 뜰 안은 쓸쓸한 적막이 콧노래를 부르며 잠꼬대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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