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이 차린 냉면집은 대림에서는 꽤나 잘 됐다. 좀 이른 저녁 때인데 벌써 손님들이 붐비였다.
려향이 벌써 와서 좌석을 예약해놓고 기다리다가 반갑게 마중 나왔다.
“이모!”
성림이 젤 먼저 두 손 벌리고 환호하며 달려나갔다. 성림은 자주 려향과 종호를 만나다나니 이젠 아주 친해졌다.
려향은 성림을 두 손으로 안아 번쩍 들었다 놓고나서 나영과 지영을 마중해 반갑게 자리에 안내했다.
뒤이어 그녀는 성림의 손을 잡고 자리에 가면서 귀띔했다.
“성림아, 이젠 날 누나라고 불러라.”
성림은 포도청눈이 새똥그래졌다.
“이모를 누나라고 불러라고?”
성림은 엄마를 돌아보았다.
나영은 뭐라고 대답했으면 좋을지 몰라 어정쩡해 서 있다가 종호를 쳐다보았다.
“얘는 돌아가면서 이모라고 불러.”
나영은 려향이 종호와 자기를 진짜 카시모도와 에메랄드로 엮어나가려고 하는 것 같아 피곤해났다.
옆에서 지영은 나영을 시답잖게 바라보았다. 그녀는 나영과 만나기만 하면 춘영이 떠올라 스트레스를 받았다. 춘영은 그녀의 남편과 눈이 맞아 암암리에 공원에서 차 안에서 바람 피웠다. 그 일만 생각하면 춘영과 딱 같이 생긴 나영마저 곱지 않았다.
종호도 뒤더수기를 긁적거렸다. 그도 속으로 려향이 고의로 자기와 나영을 카시모도와 에메랄드로 만들려고 벌수도 나란히 세워놓으려는 것을 직감했다.
(어림도 없어. 딸 같은 나영이하구 어찌?)
모두들 좌석을 정하고 앉았다.
이윽고 려향이 예약한대로 맥주도 오르고 맥주료리도 몇접시 올랐다.
나영은 맥주병을 보고 도리머리를 저었다.
“냉면집에 와서 냉면이나 먹으면 되지. 맥주를 마시고 어떻게 냉면을 먹겠는가요?”
종호는 나영을 마주 보며 우쭐 일어났다.
“무더운데 맥주나 먼저 시원히 들기오.”
종호가 맥주병을 들어 나영과 지영한테 돌아가면서 부었다.
나영이 려향 앞의 잔을 가져다 들었다.
“려향도 한잔 주세요.”
종호는 사람좋게 웃으며 려향의 잔에도 맥주를 부었다.
종호는 정중하게 좌석에서 일어나서 맥주잔을 들고 말했다.
“그간 이쁜 아가씨들 신세를 많이 졌소. 구명은인인 아가씨들과 또 이렇게 만나니 아주 기쁘오. 자, 우리 영원한 우정을 위해 오늘 맥 주나 한잔 들면서 즐겁게 보내기오.”
종호가 제의했다.
“내 ‘우리 영원한 우정을 위하여’ 하면 다 함께 ‘위하여!’ 하기오.”
모두들 일어났다.
종호가 맥주잔을 들고 소리쳤다.
“우리 영원한 우정을 위하여!”
“위하여!”
그들은 기분좋게 시원한 맥주잔을 쭉 들이마셨다.
저쪽 다른 상 사람들의 눈길이 단통 이쪽으로 모였다. 허보수 같은 한국인 냉면집에서 시끌벅쩍 떠들었다간 큰 일 난다. 그러나 조선족 냉면집인데다가 대부분 다 같은 조선족손님들이어서 별로 개의치 않았다.
종호는 나영을 건너다 보며 제의했다.
“나영인 이 조선족집에 와서 일하면 좋겠는데.”
나영은 씨무룩이 웃었다. 그녀는 속으로는 그 말도 일리가 있다고 여겼다.
그 놈의 색마 허보수의 음충한 우멍눈이 역겨워 하루라도 그 냉면집에 더 있고 싶은 생각이 꼬물만치도 없었다. 게다가 인터폴 지명수배도주범이란 딱지가 딱 붙어서 한 곳에서 오래 있을 수 없는 처지 아닌가.
그러나 그녀는 허보수가 다른 집보다 더 많이 주는 로임의 유혹에 미련을 두고 하루하루 이를 악물고 벋티고 있었다.
나영은 자기 대답을 기다리면서 뚫어지게 바라보는 종호의 눈길을 보고 대충 대답했다.
“차차 좋은 일터를 알아보지요.”
“야, 배고파 죽겠다.”
이때 성림이 떼질썼다.
“아이구, 미안해. 언제나 어린애 입부터 챙겨야는데.”
종호는 우쭐 일어나 명태채접시를 성림이 앞에 가져다 놓으며 가리켰다.
“성림아, 뭘 먹고 싶니?”
성림은 숨김없이 말했다.
“새우깡 먹고 파요.”
“얘, 냉면부에 와서 무슨 생똥 같은 새우깡 소리야. 이제 집에 돌아갈 때 슈퍼에 들려서 할아버지 준 돈으로 새우깡 사줄게.”
성림은 단통 상을 이그려뜨리며 입이 뾰로통해졌다.
“안돼. 새우깡 먹개!”
나영은 부랴부랴 멜가방을 들추더니 감자깡을 꺼내 성림 앞에 내밀었다.
“요거 먹으면서 좀 기다려라. ”
종호는 려향한테 5만원권 한장 꺼내 내밀었다.
“려향아, 슈퍼에 가서 새우깡 사다 줘라.”
“네.”
려향은 두말 없이 5만원권을 받아들고 바깥으로 치마바람을 일구며 총총히 달음박질쳐나갔다.
그제야 성림은 저가락을 집어 명태고기를 뜯어 입에 넣고 오물오물 씹어 먹기 시작했다.
“아이유. 요것아, 어쩜 이렇게 말을 일으켜.”
“애들이 다 그렇지. 뭐. 더 말하지 마오.”
이윽고 려향이 새우깡 두 봉지에 아이스크림까지 두루 애 먹어리 한 비닐주머니를 들고 왔다.
“우와-”
성림은 환성을 질렀다.
그는 려향의 손에서 새우깡을 받아 맛나게 먹으면서 생글방글 웃었다.
나영은 미안해 어쩔줄 몰라했다.
“성림아, 이모 감사하다고 해라.”
성림은 려향을 쳐다보면서 곱게 인사했다.
“누나, 감사해요.”
“호호호.”
모두들 웃음보를 터트렸다.
지영이 손으로 입을 막으며 웃다가 한마디 툭 내뱉었다.
“촌수 좀 별나다.”
종호와 나영의 눈길이 공중에서 마주치며 뼐찌가 튕기었다.
나영인 제꺽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며 화제를 돌렸다.
“려향인 이젠 문학박사공부 졸업했잖아?”
려향은 씨무룩이 웃으며 머리를 끄덕이었다.
“네. 졸업했소.”
지영이 끼어들었다.
“려향이 문학박사학위 탔는데 언제 축하파티 열어야지.”
“절대 그러지 마오. 지금 취직이 어려워 속이 타 죽겠소. 파티 참가할 기분이 없소.”
나영이 넌지시 한마디 물었다.
“지금 취직방향은 어느 쪽이오?”
려향은 좀 시끄러워하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지금 한국 한 반도체회사에 취직하려고 하는데. 전업도 맞지 않고 일이 꼬이오.”
나영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학국인 석사, 박사생들도 취직하기 어려운데. 조선족이 한국에서 취직하기 그리 쉽겠소? 나를 보오. 문학석사생이지만 주방에서 냉면이나 만들고 있잖소?”
지영은 생각이 달랐다.
“문학박사니깐. 혹시 운수 좋으면 좋은 회사에 취직할 수도 있겠는지 몰라.”
지영의 말은 순전히 위안하는 말이라는 것을 려향도 말귀를 알아들었다.
종호는 일이 글러진 걸 눈치채고 다급해졌다.
“그래 오늘 면접 갔던 일은 어떻게 됐니?”
려향은 머뭇거리다가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회장님 비서로 면접을 봤는데요. 내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면접이라는게 커피를 타서 회장님한테 드리는 거 시험치더군요. 그외 회장을 만나면 인사하는 것 등등 별의별 례의범절이랑 면접 보더군요.”
나영과 지영은 서로 눈길을 맞추며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려향은 뜨거운 눈물을 주르르 흘리면서 말했다.
“내 무슨 문학박사를 졸업하고 회장네 생활비서를 다 하겠습니까? 회장한테 커피나 타주고 따라 나니면서 옷이나 건사하면서 청춘 세월을 보내겠습니까? 모욕감을 다 느꼈습니다. 회장 비서는 제가 배운 문학과는 아무런 관계없는 일입니다. 난 그런 생활노예비서 죽어도 못하겠습니다.”
종호는 무거운 한숨을 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그 속탄 한숨은 파란 연기로 뿜겨나와 공중을 헤맸다.
이윽고 그는 한마디 더 캐물었다.
“최전무 자기 비서로 쓸 예산이더니?”
려향은 도리머리를 저었다.
“아니예요. 회사 총수 비서라던데요.”
“최전무라니? 누구요?”
나영이 뭔가 떠오른듯이 제꺽 물었다.
려향은 나영의 표정을 살피면서 대답했다.
“최군철이라고 부르는 전무인데. 최전무는 보라매공원 부근에서 저를 구한 구명은인이오.”
나영은 깜짝 놀라며 일어나기까지 하면서 물었다.
“혹시 최정호 국장 아들을 그러오?”
려향은 콕콕 찌르는듯한 예리한 눈길로 나영을 쏘아보며 물었다.
“언니, 최전무를 잘 아오?”
그러나 나영은 말끝을 얼버무렸다.
“이전에 국내 신문에서랑 리군철이라는 이름 본 거 같아 그러오. 그런데 내 좀 아는 군철은 리군철인데. 리군철은 아마 부총경리 한다던데…”
려향은 나영이 진작 최군철을 잘 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활딱 발가놓지 않기로 했다. 그것은 나영의 옛 상처를 들추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종호는 머리를 끄덕이었다.
“그래, 최전무는 원래 리씨였어. 그런데 리문걸이란 사람이 친아버지 아니란 걸 알고 친아버지 최정호의 성씨를 따라 최씨로 고친 거야. 최전무네 족보는 아주 복잡해. 건 차차 얘기하고."
종호는 얼굴을 옆에 앉은 려향한테 돌렸다.
"면접엔 통과됐느냐?”
려향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건데 왜 그래?”
려향은 종호를 쳐다보면서 또박또박 말했다.
“최전무 비서면 구명은인이어서 그만한 심부름 쯤은 해 드릴 수 있겠는데요. 면목도 모르는 년세 많은 회장이라서 좀…”
“정 마음에 안 들면 그만 둬라.”
종호는 이렇게 말하려다가 그만 두었다. 좀 여유를 두고 싶었다.
“로임은 얼마나 준다더니?”
“한 350만원 준다더군요.”
나영과 지영은 입을 함박만큼이나 쫙 벌리었다.
“땡이구나.”
“대박!”
“호박이 넝쿨 채로 굴러떨어졌구나.”
종호도 한마디 했다.
“괜찮구나. 딱 문화단위에 들어가야 문학을 하니? 회사에 있으면서도 생활체험을 많이 하고 경험을 쌓아가노라면 자연히 문학 창작을 할 수 있겠지. 이건 네가 한 말 같은데. 넌 사회에 초보 아니냐? 고만한 것도 치개노릇이라고 하지 못하면 어디로 가도 일하기 힘들다.”
나영도 스스럼없이 말했다.
“저네 아빠를 보오. 신문사 사장님이 한국에 나와 그 위험한 건축공지에서 다 일하잖았소. 내랑 보오. 문학석사생에 전람관 부관장 출신도 한국서 냉면을 만들면서 살지 않소?"
지영도 머리를 끄덕이며 한마디 했다.
“이번 파리 올림픽 배드민턴 금메달리스트 한국 선수 안세영을 보오. 7년 동안이나 선배들의 빨래를 하고 청소를 했다잖소. 회사에 들어가면 커피 타주는 일이겠소? 그보다 더 한 일도 해야지.”
지영은 자기 신세도 보태 말할가 하다가 그만뒀다. 자기가 종호의 대소변을 받아내면서도 350만원을 받던 일을 이 자리에서 꺼내긴 민망했던 것이다.
종호는 한마디 보탰다.
“회사에서 다시 찾으면 가 봐라.”
그러나 려향은 도리머리를 저었다.
“에이, 그 회사에 가기도 싫어요.”
종호는 이맛살을 찌프렸다.
“어째?”
려향은 말을 꺼낸 바 하고는 속속들이 털어놓았다.
“그 최전무 밑에 불여우 같은 년 보기도 싫어 가기 싫습니다.”
“누군데?”
“마끼라는 녀잔데요. 최전무 비서죠. 오늘 면접 보러가니 고 녀자 면접관 자리에 딱 앉아 있지 않겠습니까? 그 녀자는 최전무를 내게 빼앗길가 봐 질투하는지 나를 꼿꼿한 눈길로 쏘아보면서 요것 조것 캐묻고 이래라, 저래라 하면서 애먹이더란 말입니다. 그 녀자 꼴이 보기 싫어 그 회사에 갈 마음 없습니다.”
모두들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제야 종호는 주름살이 죽죽 간 너부죽한 얼굴에 웃음기 흘렀다.
“들어보니 아무 일도 아니구나. 녀자 하나 때문에 취직을 포기하겠니? 그 녀자와도 이후에 관계개선을 하면 돼. 내게 좋은 방법이 있다.”
려향은 기대에 찬 눈길을 아빠한테 돌렸다.
“마끼라는 그 녀자는 김춘희박사네 딸이야. 일본 의과대학 석사생이야. 전번에 내 말하던 아빠 대학동기 딱친구 성호 기억나지?”
“네.”
종호는 뒷말을 이었다.
“성호네 딸 하나한테 물어봤어. 하나는 마끼하구 한 회사에 있는데 마끼 정황을 손금 보듯하더구나. 마끼는 그의 양아버지자 지도교수 야마구찌 다이로 교수가 지어준 이름이고 그의 아빠가 지어준 본명은 허가은이라더라. 최전무하구 마끼는 련인관계라더라. 열애 중에 처녀애들은 련인 주위 처녀들을 보통 아주 민감하게 반응을 보이기 마련이야. 이제 춘희 박사하구 잘 말해서 너네 관계를 개선하게 할게. 어느 회사나 가도 그런 일은 수두룩하다. 넌 아직 사회경험이 없어 그러는데. 사회에 나오면 그런 인간관계와 갈등을 잘 처리해나가야 해.”
러향은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목석처럼 앉아 있었다.
나영이 맥주잔을 들고 말했다.
“자, 우리 려향씨가 한국 유명 반도체회사 회장님의 비서로 취직할 걸 미리 축하해 한잔 들자요.”
종호도 맥주잔을 높이 들었다.
“그게 좋겠소. 취직이든 뭐든 모든 건 관념문제라고 보오.”
지영은 맥주잔을 들고 옆에 앉은 려향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려향은 마지못해 맥주잔을 들었다.
모두들 즐겁게 맥주를 쭉쭉 마시었다.
성림은 먼저 냉면을 쪼르륵쪼르륵 맛있게 먹으면서 희희닥거렸다.
종호는 오랜만에 젊고 이쁜 아가씨들과 만나니 맥주도 술술 넘어갔다.
그는 아가씨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혈액순환도 잘 되고 별나게 기분이 상쾌해짐을 은은히 느끼었다.
그러나 환락의 분위기에도 려향만은 만감이 교차했다. 눈앞이 캄캄해났다. 그녀는 아직도 자기가 친딸이 아니라는 참혹한 현실을 모르는아빠가 불쌍했다. 아직도 오리무중에 빠진 채 자기를 친딸처럼 관심하는 아빠의 지극정성에 오히려 죄송해 바늘방석에 앉은 것만 같았다.
순간 려향은 콧마루가 시큼해나 눈물이 글썽해 아빠를 쳐다보며 훌쩍거렸다.
종호는 황급히 손으로 려향의 들먹이는 려향의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또, 또, 또. 무슨 일에 또 우니. 모든 일이 잘 될 거야.”
그러자 려향은 흑흑 흐느끼며 더 구슬프게 훌쩍훌쩍 울었다.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