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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황혼 제3권(55) 5만원 내막 김장혁
2024년 10월 12일 09시 55분  조회:184  추천:0  작성자: 김장혁
 
 
    대하소설 제
3

         김장혁
 
     55. 5만원 내막
 

    절그럭 절그럭.
    구치소 감방 철문을 여는 열쇠 소리 들린다.
    드르릉-
    뒤이어 철문을 여는 소리 아츠럽게 들린다.
    여경은 구치소 감방 안에 들어서자 여수감자들을 쭉 쓸어보더니 나영을 손가락질하며 명했다.
    “나영이, 나와!”
    나영은 류려평의 눈치를 흘끔 곁눈질하면서 시치미를 땄다.
    “여긴 나영이 없어요. 박춘영 밖에 없는데요.”
    여경은 시끄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영을 손가락질하며 꾸짖었다.
    “너야! 잔말 말고 어서 제끼(빨리) 제끼(빨리) 나오락꼬! 꾸물거리면 면회 취소할 테야.”
    여경은 제주도에서 대륙에 나왔는지 짙은 제주도 사투리를 툭툭 내뱉었다.
   나영은 혀를 홀랑 내밀먼서 여경을 따라 철문께로 다가갔다.
   “잠간!”
   류려평이 다급히 소리쳤다.
   “나영이, 아니, 춘영이, 면회 좀 양보하면 안 되겠어? 내 급히 딸을 만나야겠는데. 안 되겠소?”
   “글쎄…”
   나영은 여경을 뒤돌아보았다.
   “뭐야!”
   여경은 류려평을 표독스런 눈길로 되돌아보았다.
   “면회 순서는 구치소에서 정하지. 너꺼들 마음대로 정하는 게 아니야.”
   나영은 류려평을 미안하다는듯이 돌아보고 눈을 질끔해보이고 나서 곰상곰상 여경을 따라  면회실로 걸어갔다.
   “누가 저를 만나려고 하는가요? 혹시 나영을 나포했는가요?”
   “가 보면 알 거야.”
   나영은 더 묻지 못하고 면회실에 들어갔다.
    그녀는 뜻밖에도 유리판 너머 종호가 앉아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카시모도!”
    나영은 콧마루가 시큼해 유리구멍으로 손을 넣어 종호의 따뜻한 손을 꽉 잡았다.
    “춘영이, 그간 얼마나 고생 많았소?”
    나영은 머리를 끄덕이면서 끊어진 구슬처럼 쓰라린 눈물을 줄줄 흐리었다.
    종호는 유리구멍을 사이에 두고 두 손으로 나영의 손을 꽉 잡아주었다.
    “절대 짧은 생각을 하지 마오. 우린 꼭 쨍 하고 해 뜰 날을 맞이할게요.”
    나영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선생님도 살기 아무리 험난해도 굳세게 살아나가세요. 제가 감옥에서 나가는 그 날을 기다리세요. 저는 리사장님께 모든 걸 기대해요.”
     그녀는 놀란 표정을 짓는 종호의 믿음에 찬 너부죽한 얼굴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카시모도, 성림인 잘 있는가요?” 
   종호는 머리를 끄덕이었다.
   “성림인 근심하지 마오. 우리 집에 데려왔소. 나와 려향한테서 한글을 배워서 학교에 가서 한글공부를 꽤나 잘한다오. 이젠 한국말을 아주 잘 하오. 고향에 있을 땐 한족 말 밖에 하지 않던게. 이젠 저네 언니 나영의 꿈대로 진짜 조선족 애가 돼 가고 있소. 속산토대도 있어 산수랑 제법 뾰족하게 하는 모양입데. 한국 여선생님이 표양까지 합데.”
    나영은 종호의 손을 꼭 잡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성림이 공부를 잘한다니 기뻐요. 리사장님, 저의, 아니, 나영언니의 유일한 꿈과 희망은 성림 밖에 없는데요. 나영언니        그렇게 사랑하는 카시모도는 꼭 성림일 자기 친아들처럼 보살피리라 믿었어요. 성림을 참된 조선 애로 키우는게 나영 언니 소원인데요. 그 소원이 성사될 거 같아 좀 안심되는군요.”
     그녀는 면회실 밖을 흘끔 곁눈질해보이며 뒷말을 이었다.
    “나영 언닌 좋겠다. 그들 모자를 지극히 아끼는 카시모도 있어서.”
    종호는 나영한테 용건부터 말했다.
    “나영이, 아니, 춘영이, 내 리혼수속하러 고향에 피뜩 갔다가 돌아와야겠소. 내 가면 성림을 잠시 지영한테 맡겨놓기로 했소. 그래서 지영이 저네 세집에 들어갔는데 괜찮지?”
    “되구 말고요.”
   나영은 두말 않고 동의했다.
    “지영이 셋집을 따로 잡을게 있는가요? 우리 집에 와서 함께 살아도 돼요. 우린 서로 의지하면서 살아온 딱 친군데요.”
    종호는 나영이 평온한 심태를 보아 한발짝 더 나가 말했다.
    “내 생각엔, 에헴,”
    종호는 나영의 눈치를 보면서 말했다.
    “나영이 언니 귀국해 사법기관에 자기 죄행을 성실하게 탄백하고 편안하게 사는게 좋을 거 같소. 언제까지 인터폴에 쫓겨다니면서 심장을 조이면서 살겠소? ”
    나영은 종호의 손을 스르르 놓으면서 머리를 천천히 숙였다.
    “나영이도 이전에 그런 생각을 했답데다. 나영인 전람관 공금을 5만원 탐오한 죄 밖에 없는데요.”
    종호는 머리를 끄덕이며 나영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나영한테 탄백할 용기를 북돋아주려는 것이었다.
    “나영언니는 성실하게 탄백하고 관대처벌을 기대하는게 명지한 선택이라고 생각하오.”
    나영도 종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 돈 5만원도 나영언니 혼자 염채기에 처넣은게 아니랍디다.”
    “뭐라고?”
    종호는 외까풀눈이 데꾼해졌다.
    “그 돈 5만원은 전람관 재건 대부금을 내오려고 나영언니와 최정호 국장이 은행 류덕재 행장과 류려평 부행장한테 주었다던데요.”
    종호는 깜짝 놀랐다. 그의 짙은 눈섭꼬리마저 위로 치켜 올라갔다.
    그 시각 면회실 흑유리판 건너 감시실에 앉아 있던 여경과 남경장도 그 이변에 저으기 놀랐다.
    나영은 종호의 눈치를 흘끔 보며 중얼거렸다.
    “이런 말 해서 되겠는지요? 리사장님 사모님을 해칠 거 같은데요.”
    종호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오. 절대 아니오. 류려평과 류덕재 같은 부패분자들의 죄행은 인정, 사정을 두지 말고 만 천하에 까밝혀야 하오. 황차 난 류려평과 리혼하기로 했소. 이제라도 나영 보고 사법기관에 이실직고하라고 하오. 사람도, 원, 참, 억울하게 혼자 죄를 들쓰고 있을게 뭐요?”
    종호는 금방 류려평이 싸인한 리혼청구서를 꺼내 보였다.
    “잘했어요. 이제 감옥에서 나가면 나영언니와 함께 아름다운 미래로 달려가세요.”
   종호는 장난 같은 말에는 개의치 않았다.
    그는 나영을 마주 바라보며 충고했다.
    “나영언니 보고 그 5만원 내막을 사법기관에 사실대로 신고하라고 하오. 어쩜 이전에 신고하지 않았는지 모르겠소.”
    나영은 머리를 다소곳이 숙였다. 그녀는 이젠 속일게 없어 종호 앞에서부터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그땐 나영언니 눈에 아마 콩깍지 낀 거 같애요. 나영언닌 최정호 국장을 미친듯이 짝사랑하다나니 성실하게 탄백하지 못한 거 같애요. 최정호 국장을 해칠 거 같아 억울한대로 혼자 그 탐오죄를 뒤집어 쓴 거 같아요. 최정호 국장은 적어도 나영을 전람관 부관장으로 제발해준 분 아니고 뭔가요?”
    종호는 피씩 코웃음쳤다.
    “최국장은 인간성이라고는 꼬물만치도 없는 배신자요. 여자들도 젊고 이쁠 땐 데리고 놀지만 자기한테 불리하기만 하면 가차 없이 헌신짝 차 버리듯 한단 말이오.”
    나영은 종호의 손을 스르르 놓더니 천정을 쳐다보며 쓰라린 회한의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면서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그런 거 같아요. 후에 알고 보니 제가 전람관 재건비용 5만원을 탐오한 걸 그 놈이 심계국에 고발하지 않았겠습니까? 그것도 그 놈을 따라 한국에 들어와서야 심계국에 있는 사촌오빠를 통해 알게 됐어요.”
    종호는 너무 한심해 주먹으로 면회실 면회대를 탁 쳤다.
    “보오. 얼마나 음험한가? 앞에서는 저를 이뻐하는 척 하고 암암리에선  뒤통수를 쳤단 말이오.”
    “그래요. 그놈이 그런 두 얼굴을 가진 음험한 놈일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
    나영은 고통스레 뒷말을 이었다.
    “지금 보면 그 놈은 그 5만원 사건을 고발해 나를 당황하게 만들어놓았지요. 그 다음 날 동정하고 구하는 척하면서 데리고 일본과 한국 여기저기 도망쳤지요. 그 놈은 날 자기 정욕을 말리는 도구로 쓰려고 했지요. 난 그 늙다리 놈을 따라 일본이고 한국이고 돌아다니면서 줄곧 쫓겨다니면서 개고생이란 개고생은 다 하겠습니까?”
    나영인 처음엔 “나영언니”, “나영언니” 뭘 어쩌구 저쩌구 했지만 나중엔 “나는”, “날”, “내” 어쩌구 저쩌구 말실수를 했다. 그런줄도 모르고 둘은 계속 말했다.
     종호는 시간이 퍼그나 간 걸 알고 마지막으로 충고했다.
     “이젠 최정호 국장이나 류덕재, 류려평의 죄악을 사법기관에 폭로하라고 하오. 그 놈들의 죄행을 폭로하면 할수록 나영인 꼭 관대하게 처벌받을 거요.”
     나영은 머리를 끄덕였다.
     “난 남편 철석을 보고 집에 돈으로 그 돈 5만원도 사법기관에 가져다 바치라고 했어요.”
    종호는 면회대를 치며 일어났다.
     “오- 그랬구만. 알고 보니. 나영은 탐오죄라기보다 공금남용죄 밖에 더 할게 없소. 꼭 경하게 처리받을 거 같소. 나영인 당장 귀국하는게 옳은 거 같소.”
    나영은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글세요. 저도 나영언닌 자기 대신 나를 감옥에 처넣자고 할 거 같잖은데요. 전번에 벌써 경찰들은 나영이 수원에 있다는 걸 다 위치추적했던데요. 나영언니 숨으면 언제까지 숨어다닌단 말인가요? 붙잡히면 둘 중에 하나는 나영으로 쇠고랑이를 차고 귀국해야 될게 아닌가요?”
    종호는 머리를 끄덕이었다.
    “저네 쌍둥이자매가 명지한 선택을 하기 바라오. 나영인 하루속히 인터폴에 신분을 제대로 밝히고 귀국해 사법기관에 성실하게 탄백해 관대한 처벌을 받아야 하오. 그게 유일한 재생의 길이라고 생각하오.”
    나영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그만 하세요. 시간 됐어요.”
    종호는 나영을 두고 가기 아까워 손을 놓지 못했다. 그는 나영의 손을 꽉 잡아 자꾸 흔들었다.
    나영은 뜨거운 눈물을 펑펑 쏟으며 종호와 쓸쓸히 리별했다.
    “우리 다시 만나요. 카시모도-”
   나영은 끝내 오열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녀는 여경한테 끌려가면서도 흑흑 흐느껴 울었다.
   지루한 고통에 그녀는 마음이 진절머리나게 질렸다. 진짜 이런 고통의 심연은 언제까지일지 누구도 짐작하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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