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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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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7)
2015년 05월 26일 09시 53분  조회:2726  추천:1  작성자: 김장혁
     

           6.
읽기 힘든


     자오록한 안개 카텐이  서서히 걷히며 하루 서막을 멋지게 열어놓는다. 보이지 않는 화가가 파란 하늘 도화지에  꽃구름도 둥실 띠워 놓고 자취를 감춘다. 아침 햇살이 은침, 금침으로 이영납새를 송곳질하며 콧노래를 부르며 기지개를 켠다.
    병완은 마루에 앉아 대통을 뻑뻑 빨면서 먹장구름이 몰려오는 하늘을, 변화 무쌍한 하늘을 내다보면서 착잡한 생각에 잠겼다.
   (안돼. 우리 집 대 끊기게 할 순 없어. 첩을 들여앉혀서라도 성칠한테 떡돌 같은 손자를 안겨 줘야지.)
       마당 백약나무 가지에 난데 없는 까치 날아와 꽁지를 달싹이며 까깍, 까깍 울었다. 
      (오늘 무슨  기쁜 소식이 있다고 까치 저리도 울어? 누가 오겠는가? 옛날부터 여자가 애를 낳지 못하는 건 칠거지악중의 으뜸가는 죄악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하옥은 시집 온지 10년이 넘도록 애를 하나 낳지 못하지 않는가.)
     병완은 대통을 문턱에 탁 털어버리며 중얼거렸다.
      “이러다간 장손을 안아보지 못하구 말겠다. 그만 기다렸으면 잘 기다렸지. 흥!”
     그는 지난해 가을 달밤에 성칠과 은녀가 한길수네 집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제방둑 버드나무아래에서 이야기 하는 것을 본 후에는 착잡한 생각에 빠지곤 했다.
     (은녀 영월 엄 씨만 아니어도 진작 새 며느리로 맞아들여 왔을 걸.)
     성칠의 일에 골머리가 아픈데 설상가상으로 막내딸 곰순마저 운주동의 전주 김씨네 맏며느리로 범석에게 시집 간지 석삼년이 지나가도록 태기가 보이지 않아 큰 근심거리였다.
     단오명절에 병완의 4대 스물일여덟이나 되는 식구들이 몽땅 영월동에 다시 모여 명절을 쇠게 됐다. 그런데 이튿날에 운주동의 최구장이 사촌동생 최구철과 조카 진달래, 맞아들 경숙과 둘째아들 경인을 데리고 영월동으로 찾아왔다.
    병완의 온 집안 식구들이 몽땅 나가서 마중하여 인사를 나눴다.
    특히 성칠은 구철의 앞에 넙죽 엎드려 큰절까지 올렸다.
    그때 얼굴이 가맣게 탄 진달래가 나와서 성칠의 손을 잡고 생글방글 웃으며 반기었다.
     "오빠, 그간 잘보냈는가요?"
    하옥은 먼 발치에서 두 손을 앞섶에 모아쥐고  멍해 서있었다. 성칠은 아내 하옥을 보기 민망하여 뒤를 흘끔 돌아보면서 인차 손을 뺐다.
      모두들 집안에 들어와 좌석을 정하자 최구장이 염소수염을 슬슬 어루만지더니 말했다.
      “지난해 이 집 맏아드님 신세에 감자농사도 지켜내고 멧돼지고기도 잘 먹었어요. 참말로 감사해요.”
    “천만의 말씀을. 우리 두 집안이야 진작 서로 사돈이 아닌가요. 내 막내며느리 최사련이는 개성 최 씨 아닙니까? 그 집과 한집안 사람들이 아니고 뭣이요.”
     한참 족보를 따지더니 최구장은 최사련이 자기 집안 누이벌이 된다는 것을 인차 확인했다.
     작달막한 막내며느리 최사련은 임신한 몸으로 최구장과 최구철에게 인사를 올린 후 부엌에 내려가 동서들과 함께 점심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한참 후 병완은 피뜩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서 또 인사를 올렸다.
     “어느 해 가을에 내 맏아들 성칠이 백두산까지 갔다가 최구철 영감의 신세를 많이 졌더구먼. 정말 감사하오.”
      최구장과는 달리 억대우같은 최구철은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단마디로 뚝 찍어 말했다.
      “우리 사냥꾼들이야 세상을 다 자기 집으로 여기죠. 수림 속에서 서로 만나면 형제처럼 생각하지요.”
     진달래는 성칠의 처 하옥만 자꾸 쳐다보았다.
    사실 최구장이 이번에 진달래까지 데리고 온 것은 진달래의 청에 못 이겨 성칠의 집안형편 특히 성칠의 아내가 있는가 없는가를 확인하려는 것도 있었다.
    최구장은 확실히 성칠에게 예쁜 아내가 있는 것을 보고 진달래의 혼사말은 접어두기로 했다.
    이때 최구철이 형님에게 눈짓했다.
    최구장은 뜻밖의 혼사 말을 꺼냈다.
    “김 영감, 우리 두 집안은 세세대대로 피를 나눈 형제처럼 보냅시다. 하긴 이번 걸음에 우리 집 둘째아들 경인과 이 집 맏손녀와의 혼사 말을 하러 왔소이다.”
   병완은 놀랍기도 하고 기뻐서 바로 앉으면서 만면에 환한 웃음을 지었다.
    “저, 칼을 잘 쓰던 총각과 말이요?”
    최구장은 “예, 그렇소이다.”라고 대답했다.
    병완은 경인을 마주 보면서 거듭 치하했다.
    "전번에 청명절에 굿 구경을 하다가 보니 칼도 잘 쓰고 날래더구먼.” 
    경인은 제꺽 일어나서 허리를 굽히며 겸손하게 답례했다.
    “재간 없는 놈을 치하해주어 고맙습니다.”
   병완은 인사를 받고나서 기준을 돌아보았다.
    “ 좋은 일이오. 그러잖아도 맏손녀가 이젠 시집갈 나이도 돼서 신랑감을 찾아주자고 하였소이다. 이제껏 혼사 말이 많이 들어도 마땅한 자리가 없었는데 잘 됐소이다. 어금이 애비는 어떻소?”
    기준은 경인을 다시 여겨보더니 시원하게 한마디로 뚝 찍어 말했다.
    “아버지 의향을 따르겠습구마. 아버지께서 결정을 내립소.”
     “이 일만은 아비가 결정하오.”
    그때 부엌에서 어머니와 함께 부엌일을 하던 어금은 부끄러워 손으로 얼굴을 가리면서 밖으로 나가버렸다.
    병완은 원래 불같이 급한 성미인지라 이 혼사 말을 응낙했다.
    “좋소이다. 귀 댁 둘째아들을 둘째 손녀 신랑으로 맞아들이겠습구마.”
    “감사하옵니다. 경인아, 이젠 가시조부모부터 인사를 올려라.”
    최구장이 부탁하자 경인은 가시집 어른들에게 순서대로 일일이 큰절을 올렸다.
    병완은  성희를 보고  술상을 차리게 했다. 이윽고 뜨거운 사돈의 정을 나누는 술판이 벌어졌다. 
    운주동에 돌아온 최구장은 둘째며느리를 삼게 되여 속이 흐뭇하기로 더 이를 데 없었다. 그러나 정작 사돈보기를 하고 결혼잔치를 치르자니 돈이 없어 한숨만 땅이 꺼지게 나갔다.
     집집마다 읽기 힘든 경이 있다고 최구장의 집에도 골치 아픈 일이 생겼다.
     다섯째아들 경석은 막내라고 응석받이로 자랐다. 그는 장가를 든 지 몇 해 되건만 어찌나 약 담배를 피웠는지 집 안에 큰 경을 칠 지경이었다.
    경석은 최구장의 집 앞 몇 집 건너 세간나서 살았다.
    최구장은 경석이 서당방을 나온 후 형내 할아버지 관준에게 보내 형내와 함께 한의를 배우게 했다.
    경석은 게을러 공부나 일이나 다 하기 싫어 했다. 그는 관준 스승한테서 귀동냥이나 해 침도 놓고 한의 처방도 좀 뗄줄 알게 됐다.
 그런데 량혜자한테 장가를 들어 세간 난 후부터 가장이노라고 병이나 봅네 하면서 집 일에는 손가락하나 까닥하지 않았다. 그후 우연히 약 담배에 맛을 들인 후부터 집구석에 들어 누어 약 담배만 풀썩풀썩 피웠다.
    혜자는 게으름뱅이 남편을 믿고 살기 힘들다고 내내 시아버지한테 찾아와서 고청을 들이군 했다.
    어느날 혜자는 경석이 시아버지 질책했건만 계속 집구석에 들어누워 약담배를 풀썩풀썩 피우는 것을 보고 눈이 퉁퉁 붓게 대성통곡쳤다.  나중에 그녀는 애 띠를 들고 뒤 산으로 스적스적 올라갔다. 그녀는 이를 옥물더니 정말 나무에 올가미를 매놓고 목을 턱 걸고 매달리고 말았다.
    경숙이 소문을 듣고 부랴부랴 뒷산에 뒤쫓아올라갔다. 제수는 글쎄 나무 가지에 애 띠로 목을 매 둥둥 달려 있지 않겠는가.
    경숙은 황급히 축 늘어진 제수 몸을 무릎으로 받치고 왼손으로 받쳐 들고 오른손으로 목을 맨 띠를 풀었다.
   그는 지체할세라 제수를 들쳐 업고 집으로 달려왔다.
   제수 몸이 축 처져서 자꾸 내려가 춰 업느라고 엉덩이에 두 손이 가닿았다. 그러자 혜자의 몸이 옴찔 움직이지 않겠는가.
   “부끄러운 걸 아는 거 보니 살아났구나.”
   경숙은 중얼거리면서 제수를 업고 집에까지 돌아왔다.
   시어머니 성단은 작은며느리를 경숙의 잔등에서 받아 함께 가마 목에 눕혔다.
   성단과 옥실은 혜자의 손을 주물러 준다, 수건을 젖혀 이마를 닦아준다 하면서 분주히 서둘렀다.
   소문을 들은 형내가 달려와서 발바닥과 코에 침을 몇 대 놓았다.
    한참 후 혜자는 한숨을 후- 내쉬었다.
    “이젠 살았구나. 아가야, 물을 받아넘겨라.”
     혜자는 시어머니가 숟가락으로 떠 넣는 물을 받아 겨우 넘기었다.
     그녀의 눈귀로부터 눈물이 주르르 흘러 양 볼을 적시면서 베개 잇에 뚝뚝 방울져 떨어졌다.
     최구장은 며느리 옆에 다가앉아 달래였다.
     “아가야, 내 경석이, 그 놈을 톡톡히 혼내 줄 테야. 다신 멍청이 짓 하지 말라우."
     혜자는 눈물을 주르르 흘리면서 간신히 띠염띠염 말했다.
    "아,아버님, 어, 어떻게 저런 나, 나그네를 믿고 살아-요. 죽, 죽기보다 못 해-유. 흐흐흑, 흑흑.”
     “쯧쯧쯧, 무슨 바보 같은 소리야? 새파란 나이에 이를 악물고라도 살아야지.”
    최구장은 답답해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집 안에서는 여인의 흐느껴 대성통곡 소리가 동네 떠나가게 끊임없이 울렸다. 애닲은 울음소리 사람들의 마음을 칼로 에이며 깊숙이 파고 들었다. 딱 마치 초상난 집 같아 스산하기 그지없다.
     집 앞의 살구나무에 웬 비둘기가 앉아 날개를 파닥이며 하옥의 처지 불쌍해 굿이나 하듯 섧게 꾸- 꾸- 울고 있다…
 
 
 
 
 
 
  제5 음모궤계



     1. 친일주구

    앞을 가리기 힘들게 눈보라치는 을씨년스러운 겨울. 박달나무가 얼어 탁탁 터지고 여우도 엄동설한에 눈물을 흘리면서 눈 덮인 수림으로 도망간다.
    휘몰아치는  친일 주구의 우멍눈이 눈보라 속에 숨어 교활한 눈빛을 번쩍인다. 아첨이 눈발 속에서 해해거리며 거만하게 딸까닥거리는 게다짝에 비굴하게 절을 꾸벅꾸벅한다.
     당나귀차가 명천 우시장 큰 거리 돌바닥길을 딸까닥딸까닥 절주 있게 달렸다. 당나귀차에는 중절모자를 쓴 한길수가 개화장을 짚고 앉아 우멍눈을 떡 감고 구두발만 흔들거리고 있었다. 그의 집에 마차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빨리 닫는 마차에 앉았다가 사고라도 날가 봐 당나귀차에 앉아 길을 떠났다.
   
     그는 지금 철주가 꼬드긴 대로 우시장에 와서 일본 쪽빨이들 품에 안기러 오는 길이었다. 한길수는 날개가 돋혀 한시급히 일본 사람들이 욱실거리는 명천으로 날아가지 못하는 것이 한이었다.
     (그 놈새끼 말대로 일본 사람들을 등에 업고 병완을 꺾어버리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래, 맏아들 말이 맞아. 이런 세월에 순풍에 돛을 달고 제 노릇이나 하는게 제일이지. 모슨 놈의 만세야?)
      그런데 한길수는 일본 말을 통 모르는 것이 참 답답했다. 불시로 배우는 수도 없는 일이어서 먼저 일본말 통역을 찾기로 했다.
    득호는 차를 세우고 뒤돌아다보면서 물었다.
    “주인어른, 우시장에 다 왔습구마. 어디로 가겠습둥?”
    “에이, 듣기도 싫은 함경도 도둑놈 사투리! 흥!”
    한길수는 우멍 눈을 번쩍 뜨더니 두덜거리며 등의자에서 몸을 뗐다. 한참 두리번거리던 그는 일본 병사들이 보초를 서는 초소가 있는 쪽을 개화장으로 가리켰다.
     “저리 가자.”
     득호는 기절초풍한 나머지 고삐를 쥔 채 멍해 주인어른을 뒤돌아다보았다.
     "아니, 쪽발이새끼들한테 무슨 경을 치자구 이럽둥?"
    한길수는 개화장으로 득호 잔등을 툭 치면서 재촉했다.
    "빨리 가잖고 뭘 해?"
   득호는 시에미 역정에 개 배때를 차듯 고삐로 당나귀 잔등을 탁 치면서 중얼거렸다.
   “저쪽은 허월향 기생집인데요.”
    길수는 발로 득호 엉덩이를 탁 차놓으며 왈칵 성냈다.
   “야, 이 놈아, 가라면 갈 게지. 뭘 알아서 꾸물거리느냐?"
   득호는 그제야 이 늙은 두상이 또 속이 근질거려나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당나귀 잔등을 쳐 차를 동남쪽으로 빨리 몰았다.
    “득호야, 집에 가서 기생집에 갔다는 말 절대 하지 마라. 알만 하냐?”
    “예, 목이 떨어지자고 혀바닥을 놀리겠습니둥?”
    “음. 우리 집에서 일하자면 입이 무거워야 해. 알만해?”
   "네. 주인어른이 기생집에 들린 걸 절대 입 밖에 내지 않겠습구마."
   ''에끼, 이 놈아, 차나 잘 몰아라!"
    한길수는 이젠 우멍 눈을 크게 뜨고 등의자에서 몸을 앞으로 떼고 여기저기 살피면서 득의양양해 코 노래를 흥얼거리었다. 그는 어쩐지 기생 월향의 기생방에 갈 때면 흥이 났던 것이다.
    (이래서 사내대장부는 창검 속은 쉽게 지나가도 미인관은 넘어가지 못한다고 하는 거야. 어험.)
     한길수는 여편네 월선이 허벅다리를 꼬집어 놓으면서 기생집출입을 하지 말고  해 넘어가기 전에 집으로 돌아오라는 말도 귀 등으로 흘려버리고 말았다. 하긴 이 근년에 마흔 고개도 넘은 월선과 밤잠을 억지로 자고 나면 이전에 애교가 찰찰 넘치던 월선이가 아니라는 것을 새삼스레 느끼게 됐다. 그리하여 흘러간 세월로 하여 마음이 별스럽게 쓸쓸해나기만 했다.
     그새 변화가 눈 뜨이게 생겼다. 허월향 기생집 옆에는 양옥으로 일본 기생집 사꾸라관이 일떠섰다. 일본 기생 년들이 게다짝을 짝짝 끌면서 화복을 입고 궁둥이를 비뚤거리며 기생집에서 나와 거리를 나돌아 다녔다.
    거리 곳곳마다 초소를 세우고 일본 헌병들이 시퍼런 총창을 들고 왔다 갔다 하면서 지나가는 행인들의 몸과 짐을 꼼꼼히 수색했다.
한길수 네가 초소로 다가가자 일본 헌병 둘이나 다가와 총창을 들이대고 내리라고 시늉하면서 뭐라고 씨부렁거렸다.
   “에참, 세상이 더럽게도 변했네. 이 우시장에서 누가 언감 내 앞길을 막는 놈이 다 있었던가? 오래 사노라니 원, 별것들을 다 보겠다.”
    “고노 빠까새끼(이 바보새끼)!”
   한 일본병사가 일어에 조선어를 섞어 고함치면서 총 박죽으로 길수의 턱주가리를 들이갈겼다.
   싸움꾼 출신인 길수는 낯을 옆으로 피하면서 날아드는 총 박죽을 왼손으로 비껴 치우면서 두덜거렸다.
    “야, 정말 이 새끼들!”
   길수는 개화장을 쳐들었다가 치미는 밸을 억지로 꾹 참았다. 그는 바위돌처럼 굳어졌던 박대가리 근육을 풀면서 억지로 웃음지으며 뭐라고 손시늉했다.
    그제야 일본 병사들은 한길수를 당나귀 차에서 내려오라고 손짓했다. 그 놈들은 몸부터 수색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당나귀 차까지 이리저리 수색한 후에야 놓아주었다.
   길수는 투덜거리면서 기생집 앞에 간신히 이르렀다. 그러자 벌써 문어귀에 서있던 기생 년들이 와르르 쏟아져 나와 아양을 떨고 교태를 부리면서 마중했다.
    “아유, 오랜만인데요. 영월동의 한 양반!”
    “어서 오세요. 당신 생각에 잠도 안 오데요.”
    “그래, 그래. 어험.”
     그제야 한길수는 금방 당한 굴욕감에서 서서히 풀려나오면서 길죽한 낯에 웃음 구름이 흐르기 시작했다.
    두 기생이 한길수의 양팔을 안고 기생집에 들어가 복도의 층계를 올라갔다. 그래도 길수는 어쩐지 이맘 때면 언제나 달려 나와 자기를 마중하던 월향이 보이지 않는 것이 속에 걸리었다.
    “월향이 없냐?”
    팔을 낀 기생년은 한참이나 아무런 대답도 없이 잠잠하다가 입귀를 배시시 열었다.
    “월향 언니는 오늘 귀한 손님이 있어요. 우리와 폭 취토록 술을 마시면 어때요?”
   길수는 성이 꼭두까지 치밀어올라 꽥꽥 고아댔다.
     "이 우시장에 날 내놓고 또 누가 있다고 그래? 그년 보고 얼른 나와 마중하라고 햇! ”
     이때 옆에서 부축하면서 층계를 오른 기생들이 기겁해 손으로 한길수의 입을 막으면서 월향의 방을 눈짓했다.
     한길수는 우멍눈을 가슴츠레 뜨면서 뭔가 눈치 챘다.
     (어떤 놈이 왔기에 이 지랄들인가?)
    길수는 월향을 찾아와 중대사를 토론하여야 하겠는데 웬 놈이 와서 붙들고 앉아있는 것이 아주 불안했다.
    그러나 옆에 꼭 붙어 옥방으로 들어가는 기생 년들이 어찌나 예쁜지 월향이고 일본 놈의 통역이고 만나는 일을 까맣게 잊어버리기 시작했다. 그는 점차 색마의 본성을 드러냈다.
     그는 양옆에 예쁘고 살 냄새 풍기는 기생 년을 두고서도 모자라 복도 벽에 줄느런히 걸어놓은 반라체기생년들의 사진을 흘끔흘끔 도적눈을 팔았다. 머리를 마구 흐트러뜨리고 두 손으로 반 라체 하신을 가린 기생, 일본 녀인머리처럼 부푼 머리카락을 휘감아 올려 동이고 젖가슴을 살짝 반쯤 드러낸 채 외면한 기생, 그 기생들의 사진을 보는 길수의 눈이 다 빠질 지경이었다.
     “아이유, 이 양반도. 우리 뭐가 짝져서 어디에 눈을 팔아요?”
     “빨리 우리 방으로 들어 가자요.”
    기생들이 뾰로통한 표정을 짓자 한길수는 기생 년들의 야들야들한 엉덩이를 툭툭 치면서 구슬렸다.
    “그래. 어서 들어가자. 요것아.”
   길수는 월향의 방을 그저 건너 갈 수는 없었다. 그런데 월향의 방에서는 웬 왜놈이 혀 꼬부라진 소리로 알아듣지도 못할 일본 노래를 부르면서 저인지 숟가락인지 술잔인지 사라인지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차라리 잘됐다. 이 젊은 기생 년들과 놀면 좀 좋아서. 월향은 월선처럼 이젠 한물 지나간 년이야.)
   길수는 복도 마지막까지 나가면서 칸칸의 미닫이문 옆의 벽에 걸린 기생 년들의 사진을 몽땅 점검했다. 그래도 어째 시원치 않았다.
그는 자기 양팔을 안고 있는 기생 년들에게 눈길을 돌렸다.
    왼쪽팔을 안은 기생은 얼굴이 걀쭉한 년인데 외까풀 눈으로 생글 웃으면서 애교를 부리는 그 눈이 아주 매혹적이었다.
    “이름이 뭐지?”
   걀쭉한 기생은 해시시 웃으면서 “뽕녀얘요.”라고 대답하며 몸을 비비 탈았다.
   “뽕녀? 좋아. 너와 함께 한판 하면 뽕뽕 가겠구나. 허허허.”
   길수는 이번에는 눈길을 돌려 오른팔을 안은 년을 훑어보았다.
   반 너머 드러난 풍만한 젖가슴이 백설같이 희고 보름달같이 둥근 우유 빛 얼굴이라든가 진주같이 반짝이는 쌍가풀 눈이라든가 오똑한 코에 키스를 기다리는 빨간 작은 입술이라든가 실로 정이 찰찰 흘러넘치고 그녀의 온몸에서 향기가 그윽하게 풍겼다.
    “에라, 오늘 질탕하게 놀아야겠다. 잘 모셔야 돼.”
   길수의 욕망에 찬 말에 기생 년들은 호들갑을 떨면서 미닫이문을 열고 길수의 팔을 감싸 안은 채 안방으로 들어갔다.
    “에이구, 한 양반. 진짜 황금 한양반을 가지고 왔나 봐.”
    “그래. 영월동 한 양반이 그래도 황금 한냥 반이야. 호호호.”
    안방에 있던 기생년도 일어나 사뿐사뿐 다가와 길수를 반겨 맞았다.
    “안녕하세요?”
    한길수는 탐스레 그년의 온몸을 눈으로 쓸어 만졌다.
   절반밖에 비단으로 가리지 않은 온몸이 다 익은 감같이 말랑말랑해보였다. 그래서 바삐 그녀의 허리를 껴안고 복숭아이마에 키스부터 뻑 안겼다.
    “넌 이름이 뭐냐?”
    “만금이예요. 이뻐해줘요.”
    한길수는 양팔에 계집 하나씩 끼고 구들에 들어앉으면서 떠들어댔다.
     “그래, 그래. 에이고, 요것들아. 오늘 늘어지게 놀자구나. 누가 소리할 줄 아냐?”
     “예. 옥설이가 소리야 잘하지요.”
     뽕녀의 말에 옥설은 벽에 기대놓은 가야금을 내려다 술상 저쪽으로 하여 놓았다.
    뽕녀와 만금은 바삐 술상을 차려놓고 한길수의 잔과 자기 앞의 잔에 술을 찰찰 넘치게 부었다.
    뽕녀와 만금이가 한길수의 양 무릎에 올라앉아 잔을 들었다.
    “자, 한잔 드세요. 우리 친애하는 한 양반.”
     “오, 그래, 그래. 너희들 남대치 말이 우리 함경도 말보다 참 듣기 좋구나.”
    한길수는 한잔 쭉 굽냈다.
    “캬- 거, 술맛이 좋다. 옥설아. 유행가 한곡 불러라.”
    옥설은 꽃방석 우에 치마를 꽃처럼 동그랗게 씌우면서 들어앉아 가야금을 둥기 당당 탔다. 뒤이어 온방에 둥기 당당 가야금소리에 맞추어 은방울 굴리는 듯 청아한 목소리가 간드러지게 울렸다.
 
      첫사랑에 마음을 적시던 그 날 밤
      오동추야 기나긴 정열의 깊은 밤
      나는야 못 잊어 차마 못 잊어
      내 사랑 멀리멀리 가버린 첫사랑
 
      가야금아 둥기 당당 울려라
      강남에 날아갔던 제비는 돌아오고 
      훈훈한 봄은야 찾아왔건만
      언제 돌아오랴  기약없이 떠나간  첫사랑
  
      “그래, 그래. 너의 첫사랑 내가 이렇게 돌아오지 않았느냐? 그런 의미에서 한잔 들자. 오, 요것아. 헤헤.”
      길수는 왼팔로 뽕녀를 안고 오른손으로 술잔을 입에 가져가려고 했다.
      그런데 만금이 술잔을 앗아 입에 가져갔다.
     길수는 양팔에 뽕녀와 만금을 안고 만금이가 입에 부어주는 대로 술을 마셔댔다. 입귀로 술이 흘러 비단적삼을 적셨다.
    “어, 술맛 좋구나. 옥설아, 거 쓸쓸한 노래 그만 부르고 여기 와서 술이나 따르라.”
    옥설은 가야금을 내려놓고 나비가 날아와 꽃 위에 옮겨 앉듯이 다가와 섬섬옥수로 술병을 들어 놋 잔에 찰찰 넘치게 부어 길수의 앞에 드렸다.
    “아이고, 요 손이 어쩌면 이렇게 부드럽고 매끌매끌하냐? 요 손으로 입에 부어넣어라.”
    옥설은 두 손으로 잔을 들어 한길수의 침이 발린 입에 술을 부어넣었다.
    “어허, 술맛이 참 좋구나. 세상에 이런 재미보다 더 좋은 게 있다더냐?”
    한길수는 만금과 뽕녀의 허리를 놓고 술병을 쥐어 두 잔에 술을 찰찰 넘치게 붓더니 한잔은 옥설에게 주고 나머지 잔은 자기 손에 쥐였다.
    “옥설아, 너를 만나 정말 기쁘구나. 한잔 들자.”
   댕그랑.
   한길수와 옥설은 놋 술잔을 마주치고 기분 좋게 죽 들이마셨다. 술이 묻은 옥설의 빨간 입술은 앵두처럼 더욱 빨갛게 물기가 돌았다. 옥설을 쳐다보는 한길수는 말 이발을 드러내며 음탕한 웃음을 술이 발린 입가에 띠웠다.
뒤이어 그는 두 손으로 옥설의 하얀 얼굴을 받쳐 들고 은은한 정이 그윽한 깜장 눈을 들여다보면서 지껄였다.
   “야, 요년. 하늘이 어쩜 오늘 나에게 너같이 예쁜 애를 주었을까. 네 고향은 어디냐?’’
   옥설은 고개를 다소곳이 숙이면서 “김해예요.”라고 대답했다.
   한길수는 “그래? 김해라. 멀기도 먼 곳에서 왔구나.”라고 하면서 기막힌지 옥설을 놓아주었다.
   “얘, 앉아라. 김해가 얼마나 좋은 고장이니 이런 시골에 와 이런 돈을 버느냐?”
  옥설의 깜장 눈에는 이슬이 반짝였고 머리는 폭 숙여졌다.
  “너 무슨 일이 있었느냐? 말해라. 이 영월동의 한길수는 여기 우시장의 왕이니까 어느 놈이 너를 업신여기거나 못살게 굴면 내가 어디까지라도 쫓아가 그 놈의 대갈통부터 박산내겠다. 겁나 말고 어서 말해라.”
   옥설은 고개를 천천히 들고 한길수를 바라보았다. 그 눈길은 반신반의하는 표정이었다.
   눈치 빠른 한길수는 얼른 옥설의 손을 잡고 잔등을 살짝살짝 다독여주면서 지껄여댔다.
   “자, 어서 말해봐. 객지에 나와서 고생이 많지? 성씨부터 말해봐. 집에는 누구랑 있냐?”
   만금과 뽕녀는 질투의 눈길로 옥설을 쏘아보았다.
   옥설은 눈물을 흘리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리 집은 김해에 있는 김해 김 씨예요. 우리 집에는 우리 오누이밖에 없어요.”
   “그래. 네 집이 아주 가난한 모양이지. 이런 일을 하러 이런 시골에 보낸걸 보면.”
   한길수가 아무래나 지껄이는 말에 옥설은 화도 내지 않고 묵묵히 하얀 볼에 눈물만 하염없이 줄줄 흘리었다.
     그러자 한길수는 가래 같은 손으로 옥설의 볼의 눈물을 닦아주면서 혀를 끌끌 찼다.
     “쯧쯧, 울지 마라. 얘, 네가 울면 내 가슴에 칼이 박히는 것 같이 아프다. 네가 여기까지 오게 된 데는 필시 무슨 말 못할 연유가 있겠다. 어서 말해 봐.”
     이때 말수 적은 옥설이 갑자기 한길수의 손을 뿌리치면서 훌 일어나면서 그릇이 깨지는 듯 악청으로 소리를 질렀다.
    “누가 여기 오기 싶어서 고향을 떠나 왔는가 해요? 누가 이런 노리개질을 하고 싶어 하겠어요? 저 일본 놈들이 붙잡아 와서 여기까지 끌려왔지.”
    한길수는 펄쩍 놀라 일어났다.
    “그게 무슨 소리냐? 일본 사람들이 말이 아니구먼. 이런 일이야 어디 강박하면 되는가? 혹시 너 네 집에서 일본사람들에게 빚을 많이 진건 아니야?”
    옥설은 문께로 나가면서 “쳇, 우리 집은 김해에서도 한다하는 부자 집인데 바다를 건너온 일본 사람들에게 무슨 빚을 진단 말인가요? 만금과 뽕녀와 술을 천천히 드세요. 난 오늘 기분이 엉망이 돼서 나가봐야 하겠어요. 후에 놀러 오세요.”
   “아, 아니. 옥설아, 가지 말라.”
   한길수는 보배나 잃은 듯이 허전해 옥설을 따라 막 일어나 나가려고 했다. 그 바람에 중절모자가 벗어지면서 번들 이마가 드러났다.
만금과 뽕녀는 배를 끌어안고 깔깔깔 웃어댔다. 그녀들은 황급히 중절모자를 주어준다 번지진 술잔을 주어다 놓는다 하면서 킬킬거렸다.
   원래 이마 벗겨진 사내가 바람기가 세다고 했다. 또 월향의 말대로라면 번들 이마 한길수는 너무 바람을 피워 여인들과 섹스를 하다나니 여인들이 너무 바빠 위의 한길수의 머리를 끄당겨서 머리털이 다 빠져 번들 이마로 됐다고 하기도 했다.
   이때 바깥에서 웬 여인의 앙칼진 목소리가 울렸다.
    “이 년아, 어디로 갔는가 했더니 잘한다. 네가 감히 내 발등을 디뎌? 이년, 이 경칠 년아. 오늘 죽어봐라.”
    찰싹!
   옥설의 새된 비명소리 들려왔다.
   한길수가 나가 보니 개 난장판이 벌어졌던 것이다. 글쎄 월향이가 옥설의 귀를 삐틀어 쥐고 방치로 옥설의 엉덩이를 사정없이 내리치고 있었다.
   월향은 한길수를 발견하자 독살스런 눈길로 그를 쏘아보았다.
    “퉤, 더러운 영감태기, 그 우멍 눈깔에도 젊은 계집이 보이는 모양이지. 옛날에 누구 덕에 영월동을 가진 걸 다 잊었어? 배은망덕한 더러운 영감태기!”
   시어미 역정에 개 배때를 찬다고 월향은 옥설의 머리채를 휘감아 쥐더니 마구 끄당겼다.
    옥설은 두 손으로 머리를 틀어쥔 월향의 손을 잡고 “애고고.” 하며 휘청거렸다.
    그 바람에 나체나 다름없는 옥설의 우유 빛 젖가슴이 반쯤 드러나 출렁거렸다.
   여기저기서 문이 열리며 색정광이들이 쏟아져나왔다. 그들은 큰 구경거리나 생긴듯이 한길수와 월향을 손가락질하면서 웃고 떠들어댔다. 월향은 숱한 사람들 앞에서 한길수를 망신시켜주려고 한손으로 옥설의 머리채를 틀어쥔 채 다른 손으로 불시에 한길수의 귀 쌈을 찰싹 갈겼다. 그 바람에 한길수의 중절모자가 월향의 손에 빗맞아 벗겨지면서 잔등으로 굴러 땅바닥에 뚝 떨어져 나뒹굴었다.
순간 한길수의 번들 이마가 훌렁 드러나 전등불빛아래 번들거렸다. 한길수는 번들 이마의 땀을 뚝뚝 손으로 찍으면서 월향을 콱 밀치고 옥설의 머리채를 틀어쥔 손을 풀려고 모진 애를 썼다.
    “옳다! 잘한다. 이 년 놈들이 작당을 해서 나를 때리려고? 아이고, 분해라! 나 죽는다! 아이고, 이 개 쌍년아, 죽여치우겠다!”
    월향은 원통해 악을 딱딱 쓰면서 고함치고 옥설을 꼬집고 쥐어뜯어댔다. 갑자기 그녀는 옥설의 머리채를 놓고 번들 이마를 찰싹찰싹 갈겼다.
    구경꾼들은 복도가 꽉 차고 떠나갈듯이 배를 끌어안고 웃어댔다.
    이때 어느 방에서 나왔는지 한 주정뱅이가 장단까지 메고 나와서 두드리면서 노래를 불러댔다.
    “얼씨구 좋다 둥둥. 절씨구 좋다 둥둥. 잘도 싸우라 둥둥. 무기를 대줄게 둥둥. 죽을 내기로 싸워라, 둥둥. 우리 선수 잘 한다 둥둥. 죽여라, 살려라! 둥둥 당당 둥둥 당당!”
    갑자기 월향의 방문이 쭈르르 열리더니 코 수염을 기른 사나이가 허연 훈도시 바람에 튀어나왔다.
주정뱅이들과 색정광들이 죽 비켜섰다.
   “콘칙쇼(닥쳐)! 난노 고도까(무슨 일이냐)?”
   코 등에 붓으로 점을 똑 찍어놓은 듯 코 수염은 아주 위엄스러웠다. 그 뒤로 갱핏하게 생긴 조선인이 뒤따라와 머리를 조아렸다.
   뒤이어 그자는 주정뱅이들에게 위엄스런 눈길을 돌리고 우쭐해서 고함쳤다.
    “우리 우시장 일본제국 헌병대 대장이시자 총경찰국 끼무라 국장이시다. 너희들이 언감 여기 와서 끼무라 국장의 주흥을 깨뜨리느냐? 어째 대가리가 목에서 떠나고 싶으냐?”
    한길수는 제 정신이 펄쩍 들어 코수염을 바라보았다. 보통 키에 똥똥한 땅딸보 끼무라 국장은 옴몸에서 위엄과 힘이 빛발 쳤다.
    끼무라는 한길수를 보더니  꽥 고함쳤다.
    “빠까새끼 모노라!”
    무지한 길수는  의아한 눈길을 보냈다.
   "저 양반, 뭐라구 하오? 뭐? ‘바가지새끼 못 놀아? 내가 바가지라고? 원, 참.”
   그 말에 통역 강철이는 어처구니없어 손으로 입을 싸쥐고 웃었다.
   끼무라는 강철과 길수를 번갈아보더니 더구나 언성을 높여 욕지거리를 했다.
    “빠까모노(바보)라! 혼야꾸시데(번역해줘)!”
    “뭘? 빠개지게 못 논다고?”
    끼무라 국장은 다가오더니 한길수의 귀 쌈을 찰싹찰싹 갈겼다. 그가 뭐라고 꽥꽥 고함치자 통역이 이렇게 번역해주었다.
    “온 조선이 일본제국의 땅이 됐으니 이 땅 우의 산이고 강물이고 계집이구 몽땅 우리 황군의 것이야! 네가 함부로 놀라는 계집들이 아냐!”
    길수는 얼얼해나는 귀 쌈을 손바닥으로 붙들고 그 말을 들으면서 귀뿌리가 웅 하는 것을 느꼈다.
    (별 놈 다 있구나. 네놈들이 오지 않았을 때 이 우시장에서 누가 감히 이 어른의 뺨을 쳤니? 우시장의 계집은 몽땅 내 것이었는데 이 오랑캐들에게 수모를 당하다니? 시비도 없는 일본 놈들과 못 놀겠다.)
    밸 같았으면 옆에 보이는 걸레대로 오랑캐 개 대가리를 박살나게 때리고 싶었다. 젊었을 때 같으면 그의 소 발굽 같은 주먹이 진작 코 수염의 면상에로 날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영월동을 독차지하려면 이 모든 것을 참아야 했다.
    볼을 싸쥔 길수의 이글거리는 눈길을 보고 끼무라 국장은 기생방에 되들어가 군도를 들고 나왔다.
   그때 옥설과 만금이가 끼무라의 양팔에 매달리면서 말리였다.
    “류 통역 좀 일본말로 말리세요. 영월동 갑자 한길수 어른이시오.”
    옥설의 말에 그제야 제 정신이 펄쩍 든 통역 류강철은 끼무라국장의 귀에 대고 뭐라고 쑹얼거렸다.
   끼무라 국장은 한길수의 번들이마를 쏘아보다가 자기 팔을 감싸 안은 하얀 두 팔을 내려다보더니 군도를 든 채 지껄였다.
   “고노 빠까 또 난노 간께이까(이 바보와 무슨 관계인가)?” 
    기생 년들이 끼무라가 뭐라고 지껄이는지 알 턱이 있는가? 그저 머리만 끄덕이면서 군도를 앗아내려고 했다.
    화날대로 난 끼무라 국장은 두 기생 년을 활 뿌리치고 서리발치는 군도를 들고 한길수에게 덮쳐들어 내리찍었다. 하도 한길수가 옛날 솜씨가 있어 옆으로 몸을 날리면서 날아드는 군도를 피하였으니 말이지 몸이 진작 두 동강이 나고야 말았을 것이다.
    한길수는 일본 국장에게 반격을 가할 수도 없는지라 이리저리 날아드는 군도를 좁은 복도에서 피하다가 다리야 날 살리라고 층계 쪽으로 황급히 달아났다.
    이때 월향은 그 꼬락서니가 보기 좋다고 손벽을 쳐댔다. 그녀는 진물로 더러워진 팬티를 쭉 벗어 자기 옆으로 달려 지나가는 한길수의 번들 이마에 꾹 씨워 놓았다.
    뒤에서 끼무라가 군도를 휘두르면서 달려왔다.
   "사람 살려라!"
   한길수는 새된 비명을 지르며 번들 이마에 팬티를 뒤집어 쓴 채 아래층으로 달아났다.
   그는 황급히 당나귀 차에 달려가 올라 앉으려고 버둥거렸다. 갑자기 일본 헌병 놈들이 달려들어 허리춤을 꽉 잡아챘다. 그 바람에 바지가 쭉 벗겨지면서 한길수의 함지만한 엉덩이가 훌렁 드러났다.
    한길수는 인력거에서 허망 눈길에 떨어져 굴면서도 바지춤만은 춰 입었다. 월향의 팬티를 번들 이마에서 벗겨 던지며 일어섰다.
그는 이쪽에 군도를 쥔 끼무라 국장의 뒤를 따라오는 통역에게 고함쳤다.
    “이보게, 국장님께 잘 말해주게나. 사실 저분께 드릴게 있어 왔네.”
   통역은 재미나서 구경만 하다나니 또 통역할 것마저 다 잊고 멍해 서있었다.
    이때 옥설과 뽕녀가 끼무라 국장의 뒤를 쫓아와 양팔을 안고 군도를 휘두르지 못하게 말리면서 살뜰한 몸짓으로 애교를 부렸다.
    끼무라 국장은 통역을 되돌아다보면서 꽥 고함쳤다.
    "류상(류군), 하야꾸 혼야꾸(빨리 번역해)!” 
   강철은 한길수란 건달두목을 알고도 남음이 있는지라 길수에게 좋게 마구 날조해 통역했다.
    “저 영월동 한길수령감은 대일본제국 끼무라 국장에게 선물과 함께 할 말이 있다고 합니다. 이 계집들은 마음속에 끼무라 국장 밖에 없다면서 오늘 밤에 둘이 다 국장님을 잘 모시겠다고 합니다.”
    그 말이 마음에 들었던지 끼무라는 군도를 든 채 두 계집을 차고 월향의 칸으로 되들어갔다.
    옥설은 끼무라를 끼고 기생집 문턱을 넘어서면서 당나귀 차에 올라탄 한길수에게 눈을 찔끔 감아보였다. 월향은 길수를 허비고 뜯고 싶었다. 그년은 끼무라가 옥설을 안고 들어가는 것을 보고 끼무라에게 원망에 찬 눈길을 보냈다.
   주정뱅이는 모든 일이 끝났는데도 또  뜨르륵 딱딱 둥둥 장단을 치면서 흥타령인지 넉두린지 지지벌거렸다.
   “얼씨구 좋다. 둥둥. 절씨구 좋다! 둥둥. 잘도 싸워. 둥둥. 무기를 대줄게, 둥둥. 죽을내기로 싸워라. 둥둥. 우리 선수 잘 한다 둥둥. 죽여라 살려라 둥둥!”


               2. 먹은  똥을

     한길수는 고양이에게 쫓긴 쥐처럼 당나귀 차에 앉아 꼬리 빳빳해 도망갔다. 그는 맥없이 고개를 숙이고 왼손으로 이마를 짚고 착잡한 생각에 잠기었다.
     (젠장, 우시장에서 한다하는 한길수가 이게 무슨 꼴이람? 머리에 털이 돋아나서부터 언제 오늘처럼 이렇게 개꼴망신을 당한 적이 있었는가? 참, 일본 사람들과 놀기 힘든데. 이럴줄 알았더라면 영팔과 응삼을 데리고 왔겠는 걸. 그래두 병완을 꺾자면 참아야는가? 흥! 더러워서, 원? 어떻게 해야 끼무라 국장과 친해질 수 있을까?)
     득호는 해도 중천에 걸렸는지라 주인에게 묻지도 않고 당나귀차를 몰고 영월동으로 돌아가는 길에 들어섰다.
    “에끼, 이 등신 같은 물건짝아, 일본 사람들과 친하기는커녕 개꼴망신을 당하구  어떻게 머리를 들고 집으로 돌아가느냐?”
    한길수가 꽥꽥거리자 당나귀차는 시내 쪽으로 되달렸다.
    한길수는 한 주막집에서 내린 후 득호를 보고 영월동에 가서 응삼과 영팔, 수길을 데려오라고 했다.
   득호가 황급히 당나귀차를 몰고 떠나려고 할 때다.
   한길수가 불러세웠다.
    “잠간! 응삼을 보고 금덩이도 푸짐히 가지고 빨리 오라구 해라!"
    그는 호주머니를 쳐들어보였다.
    "요걸루 될 거 같잖다."
    “예. 주인어른!”
   득호는 당나귀 잔등에 채찍을 안기면서 영월동으로 부랴부랴 떠나갔다.
   한길수는 주막집에 들어가 조용한 쪽으로 가서 빈 상에 마주앉았다.
   그는 주인 보고 개고기를 한 사발 달라고 해 막걸리를 게걸스레 쭉쭉 들이켰다.
   한참 막걸리로 답답한 마음을 지지니 그제야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는 상 싶었다. 그는 막걸리를 마시면서 어떻게 하면 일본 사람들과 다리를 놓겠는가고 머리 속에서 궁리가 뱅뱅 맴돌았다.
   얼마나 시간이 갔을까. 해가 거의 중천에 걸렸다. 한길수가 답답한 막걸리를 쭉쭉 들이켜고 있을 때다.
    바깥으로부터 응삼과 영팔, 수길이 달려 들어왔다.
   응삼이 실 돌피 같은 허리를 꿉썩 굽혔다.
   “주인어른님, 오래 기다리지 않았습둥?”
   “그래, 자, 앉아라. 너희들도 막걸리 들어라.”
   한길수는 주인답게 막걸리를 권했다.
    막걸리를 한 순배 돌린 후 한길수는 통탄했다.
    “야- 이전에 이 우시장에 오면 누가 감히 나와 말대구나 했겠느냐? 그런데 지금 바깥세상은 영 딴 판이구나. 철주 말처럼 우시장도 영 일본 사람들의 세상이 돼버렸구나.”
     그는 뒤이어 울분을 이기지 못해 주먹으로 술상을 탕탕 치면서 근심했다.
    "이후에 일본 사람들이 내 밭과 삼림을 내놓으라면 어쩌지?"
      응삼은 양미간을 찌푸리고 뱁새눈이 실눈이 돼 쑹얼거렸다.
     "일본 놈들도 푹 삶아논 개다리 잘 삶아놓으면 근심할게 없습구마. 차마 웃는 낯에 침을 뱉겠습둥? 해해해."
    그는 주인에게 막걸리를 따라 올렸다.
     “주인어른, 먼저 통역이나 만나 끼무라 국장과 만나게 다리를 놔달라고 해봅시다."
     한길수는 응삼한테 손삿대질하면서 명했다.
    "당장 일본 놈들 초소에 가보게나."
     "옛!"
    응삼은 영팔과 함께 일본 헌병이이 지키는 초소 앞에서 경찰국 2층 양옥 쪽을 들여다보면서 군관 같은 놈이나 통역 같으루 한 놈을 눈뿌리 빠지게 기다렸다. 그러나 종시 그런 놈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경찰국장과 강철이 혹시 아짇고 기생집에 있을 수도 있어.)
    응삼은 영팔을 데리고 기생집 쪽으로 가 기웃거렸다.
    “뭘 해? 가라, 가!”
    일본 헌병이 총박죽으로 응삼과 영팔을 떠밀면서 꽥꽥거렸다.
    이때 기생집에서 군도를 찬 콧수염쟁이놈과 통역 같으루 한 조선인이 기생 년들의 부축을 받으면서 혀 꼬부라진 소리로 뭐라고 떠들면서 나왔다.
    그런데 그 조선인은 눈에 퍽 익어보였다.
    (아니, 저게 서당방 친구 류강철이 아닌가? 살았구나. 살았어. 하느님이 류강철이를 보내주는구나.)
    응삼은 끼무라 국장에게 허리를 90도로 꿉썩해보이고 나서 강철을 보고 소리쳤다.
    “이보게, 강철이!”
   그런데 강철은 응삼을 몰라보았다. 그는 날카로운 눈길로 응삼의 아래위를 훑어보며 물었다.
    “누구던가?”
    “응삼이, 응삼이네. 우리 운주동에서 최구장의 서당 방에서 천자문을 배우지 않았는가?”
    그제야 강철은 아는 척 했다.
     “아, 이제야 알기는구먼. 여긴 무슨 일로 찾아왔소?”
    응삼은 동문서답했다.
    “일본에 유학 갔다더니 높이 솟았구먼."
    강철은 안경알을 춰올리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경찰국장의 통역을 해 밥벌이나 하네."
   "때마침 잘 됐네."
   응삼은 강철을 한쪽으로 데리고 가서 나직이 말했다.
   "좀 시간을 내오. 긴히 여쭐 말이 있네.”
   옆에 서 있던 끼무라 국장은 버릇처럼 깍지를 건 엄지와 식지로 콧수염을 쓸쓸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다레까?(누군가?)”
   강철은 일어로 “내 소굽시절의 친구지요.”라고 대답했다.
   뒤이어 그는 “점심에 다른 일이 없으면 이 친구하고 만나게 허락해 주십시오.”라고 청을 들었다.
   “요로씨(좋아.)”
   찌프차 한대가 달려와 앞에 멈춰 서자 끼무라 국장은 호위병과 함께 척 앉아 먼지를 뽀얗게 일구면서 사라졌다.
   강철은 응삼이 이끄는 대로 한길수가 기다리는 술집으로 갔다.
    그는 술집에 들어갔다가 한 시간 전에 난동을 피우던 건달의 번들이마를 보고 뒤지참하더니 되나가려고 했다.
   “어이, 통역선생. 섭섭히 대하지 않겠으니 가지 마오.”
    강철은 문 밖에 나가 뒤따라 나온 응삼에게 물었다.
    "저건 씨름판에서랑 생떼질 쓰던 그 건달 아니야?”
    응삼은 홱 뒤돌아다보더니 입가에 식지를 댔다.
    “쉬- 말조심하게나. 저 양반 이 우시장을 쥐락펴락 하는 대장부야. 내 주인어른이야.”
    그제야 강철은 주춤 멈춰섰다.
    “그래. 무슨 일이냐?.”
    응삼은 뱁새눈으로 술집 주위를 흘끔흘끔 둘러보았다. 뒤이어 호주머니에서 잔등에서 둘러멘 주머니를 끄르더니 금빛이 번쩍번쩍 하는 금덩이 하나 꺼내 스리슬쩍 강철의 손에 쥐어 주었다.
    “부탁이네. 우리 저 주인어른을 경찰국장에게 연줄을 달아주게나. 우리 주인어른은 자네 은공을 잊지 않을게요.”
    “그 일?”
   강철은 서너 냥은 될 금덩이를 놓칠 수 없었다.
    (밑져 본전이니까. 한번 나서 보자.)
    그는 대번에 환한 웃음을 지으면서 금덩이를 호주머니에 슬쩍 주어 넣더니 응삼의 어깨를 툭툭 쳤다.
    “동기친구를 봐서라도 한 영감을 한번 도와주지. ”
    “고맙네. 우리 어른께 여쭈어서 자넬 꼭 후한 대접을 하게 하겠네.”
   그런데 강철이가 상을 찡그리면서 이런 말을 할 줄이야.
    “네 주인이 주색에 너무 빠졌더라. 오늘도 대취해 개꼴망신했다. 대일본제국을 위해 일하려면  주색에 너무 빠져선 안 돼. 아까도 끼무라 국장앞에서 그게 뭐야? 쯧쯧."
    응삼은 강철한테 바짝 다가섰다.
    "꼭 잘 말해주게나. 사내가 어찌 한두번이야 주색에 빠지지 않겠는가? 꼭 잘 말해주게나. 부탁이네."
    강철은 짐짓 제빠드해보였다.
    "내 말은 해보겠네만은 끼무라 국장님이 한 영감을 받아주겠는지 잘 모르겠어.”
   응삼은 강철이 금덩이를 더 받아 먹으려고 일부러 그런다는 것을  불 보듯  꿰뚫어보아냈다. 그러면서도 겉으로는 모르는 척 하면서 바싹 달라붙었다.
   “이보, 들어가 우리 주인을 보기오. 우리 주인은 인심이 후한 분이야."
  강철은 마지못해 응삼에게 끌려들어가듯 술집으로 되들어갔다.
   한길수는 우멍눈을 활짝 뜨며 반색하였다. 그는 손으로 버릇처럼 번들이마를 쓱쓱 쓰다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권했다.
   “면목 있는 분이구먼. 아까 추태를 보여서 미안하오.”
   한길수는 기생집에서 추태를 보인 것이 마음에 걸렸다.
   “천만에 말씀. 피차일반입구마.”
   류강철이 발라 맞추는데 한길수는 응삼에게 눈짓했다.
   응삼이 금덩이가 들어찬 주머니를 어깨에서 끈을 끌러 내려놓았다.
   한길수는 가래짝 같은 손을 주머니에 쑥 넣더니 단번에 금덩이 두개나 꺼내 류강철의 앞에 척 내놓았다.
   “자, 받게나."
   강철은 황금덩이를 보고 반색하면서도 사양하는 척 했다.
  한길수는 우멍눈으로 강철을 엄엄하게 바라보며 입을 뗐다.
  "무거운 부탁을 합세. 나는 대일본제국을 위해 일하고 싶은데. 으흠, 경찰국장님에게 알선해주게나. 이후에 내가 허리를 펴게 되면  자네를 잊지 않을게.”
   류강철은 금덩이를 스리슬쩍 받아쥐고 허리를 꿉썩거렸다.
    “우시장에서 한 어른의 성선은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 압니다. 저는 한 어른을 위해 할 일이 있는 것만도 아주 행운으로 생각합니다. 이 금덩이 없어도 제가 어련히 알아서 해주지 않으리라고 이럽니까?”
     한길수는 금덩이를 손수 쥐여 영팔이 손에 쥔 주머니에 넣어 강철에게 건네주었다.
     “자, 이거 무거운 부탁을 하기오. 이후에 사노라면 이거겠겠소? 허허허.”
    그제야 류강철은 별 수 없다는 듯이 묵직한 금주머니를 받아 챙기었다.
    “근심하지 말고 기다립시오. 오늘 오후에 꼭 한 어른을 만나도록 끼무라 국장에게 잘 말씀드리겠습니다.”
    한길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례하면서 술집 바깥까지 바래다주었다.
    한길수는 류강철에게 부탁했다.
    “좋기는 경찰국청사에서 국장님을 만났으면 좋겠소.”
    류강철은 “그게 좋겠습니다. 기별을 기다리십쇼.”라고 한마디 말하고는 자리를 급급히 떴다.
    응삼은 밖에 나가 득호를 보고 당나귀 차에 류강철을 모셔다주라고 분부했다.
    류강철은 당나귀차에 앉아 떠나가면서 어깨가 으쓱해났다. 
    (어떤 금덩이야? 이런 거간이야 말로 백번이라도 설 수 있지. 한길수 영감에게 면목을 내고 금덩이도 챙기니 . 헛참, 이거야 말로 꿩 잡고 알도 먹고 둥치를 털어 불을 때는 격이 아니겠는가. 흐흐흐.)
     그는 당나귀차를 타고 부랴부랴 집에 가서 금덩이 세 덩이를 아내에게 맡기였다. 그는 점심도 먹지 못하고  당나귀차를 타고 단숨에 우시장경찰국으로 달려갔다.
    우시장에서 2층 양옥집은 일본 경찰국 청사 밖에 없었다. 경찰국을 둘러싼 벌건 토성 네 귀의 초소에는 총칼을 비껴든 일본 헌병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 보초를 서고 있었다. 자못 경계가 삼엄했다.
     강철이 통행증을 내보이자 대문보초병은 들여보냈다. 그는 곧추 끼무라 사무실 앞 복도 걸상에 앉아서 경호원과 함께 이 말 저 말 하면서 끼무라 국장이 오기를 기다렸다.
    한참 후 끼무라 국장은 경호원과 함께 뚜벅뚜벅 2층 복도로 올라왔다. 류강철은 기립하여 서 있다가 끼무라 국장이 다가오자 허리를 구십 도로 꿉썩 굽히며 인사했다.
    끼무라 국장은 사무실에 들어가 틀스럽게 군도를 벗어 검 틀에 걸어놓고 의자에 앉았다.
    강철은 인차 끼무라 국장의 옆에 다가가 무거운 입을 떼였다.
    “국장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끼무라 국장은 이전과는 달리 너무나도 굳어진 류강철의 표정을 보고 “무슨 중대사가 있는가?”라고 물으면서 왼쪽앞자리를 권했다.
    류강철은 아주 그럴듯하게 말했다.
    “이 우시장을 다스리자면 순수한 일본헌병들로만은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일본제국을 도와 일할 당지 조선인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끼무라는 류강철의 말에 동감을 표시했다.
    “소우데스네(그렇습니다). 나도 그 일 때문에 요즘 류 군과 말하려던 참이요. 좋기는 우시장에서 아니, 온 명천에서 영향력이 있는 자들이면 더욱 좋소. 그런 자들을 우리 옆에 사냥개처럼 길러두면 우리 안보에 좋지.”
    끼무라가 의기투합해 하자 류강철은 말이 술술 흘러나왔다.
    “국장님, 그 적임자가 나졌습니다.”
   끼무라는 코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어떤 사람이요?”라고 물었다.
    “그 어른은 이전부터 이 우시장이고 온 명천까지 쥐고 흔들던 깡패두목입니다.”
    류강철의 말에 흥미가 갔던지 끼무라는 벌떡 일어났다.
   “빨리 그 자를 내앞에 불러오오. 바로 그거네. 나는 우시장의 한다하는 깡패, 건달들을 묶어세워 우리 대일본제국의 충실한 제2의 헌병대나 다름없는 조선인경찰대를 묶어세우겠네. 지방관리도 몽땅 우리에게 충성하는 자들로 시킬 예산이네. 그게 누군지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는가?”
    그런데 류강철은 그 다음 말을 인차 하지 않고 차물을 마셨다. 그러자 끼무라 국장은 아주 조급해 류강철의 입에서 눈을 떼지 않고 초조한 표정을 지었다.
    류강철은 차잔을 놓으면서 천천히 입을 떼였다.
    “끼무라 국장님은 그분을 진작 오늘 오전부터 알고 있습니다.”
    끼무라는 안경알 안으로 사기 눈을 희번뜩거리더니 책상을 탕 쳤다.
   “혹시. 오전에 옥방에서 기생 년을 셋이나 데리구 놀던 그자 말인가?”
   류강철은 우쭐 일어나서 끼무라 국장의 옆으로 다가갔다.
   “맞습니다. 이전에 이 우시장에서 그분의 이름만 들어도 어린애들도 울음을 다 그칠 정도였습니다. 지금 영월동에 숨어서 살지만 그분의 수하에는 이 우시장이고 명천에고 숱한 주먹치기친구들이 있습니다.”
    끼무라 국장은 의자에 되 주저 앉으면서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 그자는 내 검도를 대여섯 번이나 피했소. 사람이 주먹치기군은 틀림없소. 아주 날랜 사람이지.”
    그 말에 강철은 일이 돼 단다고 속으로 쾌자를 불렀다.
    그런데 끼무라의 그 다음 말은 아주 실망스러웠다.
    “류군은 사람을 잘못 보았네. 그렇게 아침부터 주색에 빠진 자가 어떻게 우리 대일본제국 경찰국장의 한 팔이 되겠는가?”
  (쳇, 자기는?)
   먹은 소 똥을 싼다고 강철은 거기에서 물러설 인간이 아니었다.
   “주색에 빠진다고 다 국장님의 한 팔이 되지 못한다는 법이야 없잖습니까? 문제는 일본제국을 위해 일을 하려는가 하지 않으려는가 하는 마음이, 아니, 충성심이 관건이라고 봅니다. 그는 능력도 있고 주먹도 세고 친구나 부하가 많습니다. 장차 국장님을 위해 큰일을 할 사람이니 한번 기회를 주어 보십시오. 낭패는 없을 겁니다. 또 장차 목숨을 걸고 사람 잡이를 해야 할 사람들이 한가할 때에는 주색에 조금 빠진들 무슨 큰 일입니까?”
    끼무라는 한숨을 후 내쉬더니 손가락으로 사무 상을 똑똑 치면서 한참 궁리를 굴리었다.
    드디어 그는 버릇처럼 코 수염을 쓸면서 자기 충실한 통역 류강철을 유심히 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좋아,  먼저 만나봅세.”
   “하잇(옛)! 와까리마시다(알았습니다)! 지금 당장 불러오겠습니다.”
    류강철은 차렷 자세로 군례를 올린 후 사무실에서 나갔다.
    그는 사무 청사 마당에 나가 일본 헌병이 모는 삼륜오토바이에 앉아 인차 약속한 술집으로 달려갔다.
   그는 헐레벌떡거리면서 술집에 뛰어 들어가자마자 한길수에게 구십도 경례를 올렸다.
    “한 어르신님, 끼무라 국장께서 지금 당장 한 어른을 만나겠답니다.”
   한길수는 번들 이마의 땀을 닦으면서 응삼에게 눈짓했다.
   응삼이 제꺽 눈치채고 또 금덩이 하나를 꺼내 류강철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강철이는 감히 받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러지 맙소. 내가 어디 금덩이를 받자고 나섰습니까? 한 어른은 우리 이 우시장의 영웅호걸인데요. 금더이를 보고 나선게 아닙니다.”
    한길수는 더는 굳이 주지 않았다. 그는 속으로 강철이가 아주 역은 놈이라고 생각했다.
   (네놈이 언감 금덩이에 눈이 어두워 너무 욕심을 쓰면 이담 가만놔들 거 같애? 흥, 이 어른이 장차 칼자루를 쥐면 네놈에게 준 금덩이의 두 배도 더 받아낼지 모르니까.)
   “으흠, 가보세.”
   한길수는 일어나 떠나려다가 되앉으면서 머뭇거렸다.
   “그런데 오전에 일을 쳐놓아서 망신스러워 어떻게 국장님을 만나겠소. 인상이 영 좋지 않겠는데 가서 되겠소?”
   류강철은 허리를 굽히면서 여쭈었다.
   “근심하지 마십시오. 제가 국장님께 오전의 오해를 풀리게 잘 해석해드렸으니까 끼무라 국장은 양해하였습구마.”
   “그래? 으흐흐. 참 수고 많았네.”
   한길수는 용기를 얻고 강철을 따라 술집 밖으로 나갔다. 마당에 오토바이가 있었지만 한길수는 앉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자기 당나귀 차에 오르려고 했다.
    강철은 바삐 말리면서 한길수가를 자기 오토바이 쪽으로 부축해갔다.  
   한길수는 응삼을 보고 금덩이보자기를 달라고 하여 어깨에 둘러멨다.
   “자네들은 저 술집에서 술이나 마시면서 기다리게나.”
    분부를 마치자 강철한테 손을 홱 휘둘렀다.
    응삼과 영팔, 수길은 오토바이를 타고 쏜살같이 멀어져가는 한길수 잔등에 대고 구십도 경례를 했다.


                   
                             3.
도감의




     원쑤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한길수와 류강철이 끼무라 국장의 사무실에 들어갔을 때다.  뜻밖에도 월향이 콤파스처럼 두 다리를 벌리고 서서 표독한 눈길로 쏘아보지 않겠는가.
     한길수는 월향한테 손삿대질하면서 이빨을 악물고 당장 잡아 먹을 상 했다.
     “이년, 팬티를 다  내 머리에 씌워?"
     월선은 눈에 쌍불을 켜고 달려들었다.
     “더러운 두상, 날 버리고 젊은 년들과 놀아? 오늘 내 죽고 네 죽고 해보자!”
    월향은 이를 악물고 걸레대를 마구 휘둘렀다.
     
     “콘칙쇼(닥쳐)!"
     끼무라는  한길수 부처간이 고양이와 쥐처럼 싸우는 꼴을 보다 못해 꽥 고함쳤다.
     경호원들이 우르르 뛰어들어왔다.
     월향은 한길수를 손가락질하며 대성통곡쳤다.
     "끼무라 국장님, 저 놈을 박살냅소, 저놈, 오전에 광기를 부리던 저 놈을 잊었습네까?" 
     끼무라는 엉거주춤 일어서 월향을 손삿대질했다.
    "경호원, 저 년을 끌어 내가!”
    승냥이가 병아리를 채가듯 경호원들이 월향의 팔을 잡아끌고 나갔다.
    그제야 한길수가 한숨을 후- 내쉬었다.
     그가 둘러보니 100 평방미터는 실히 될 사무실은 일본 냄새가 물씬 풍겼다. 끼무라 국장이 앉은 정면에는 고약딱지 일본국기와 “무훈영구”라는 글자를 새긴 무사도 기발이 걸려있었고 사무실 양옆 벽 밑에는 사꾸라 꽃이 만발한 그림으로 단장한 병풍이 둘러서 있었다. 그 앞에 좌우로 참대의자가 죽 두 줄로 놓여 있었다.
    사무실이 조용해지자 끼무라 국장은 군도를 왼손으로 잡고 거만하게 다가와 한길수의 손을 꽉 잡으면서 아래위를 다시 유심히 살펴보았다.
   “한군, 당신의 성선은 잘 알았소이다. 한군, 우린 영원한 친구로 될 수 있네.”
   이제껏 우시장에서 누구에게 허리를 한번 굽혀보지 않은 한길수였다. 하건만 일본 사람의 세상이 되고만 우시장 땅에서 이젠 끼무라 국장한테 처음 허리를 굽혔다.
    “끼 국장님, 저는 강철통역을 통해 어르신님의 천하에 빛나는 슬기와 뛰어난 무공을 널리 알았습구마. 오늘 또 드넓은 흉금으로 오전에 있은 오해를 일소해버리고 포옹해주니 정말로 자식을 안아주는 친부모처럼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끼무라 국장은 류통역의 통역을 듣고 아주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왼손으로는 한길수 어깨를 툭툭 다독였다. 마치 사냥군이 사냥개 대가리를 다독이듯이.
    "허허. 별말을. 녀색을 밝히는덴 자네나 나나 피차일반이지. 주색잡기엔 자넨 내 버금은 가겠어."
    끼무라는 이렇게 말하려다가 목구멍까지 나온 말을 꿀꺽 삼켜버렸다. 사냥개 앞에서 체모를 잃는 것 같았다.
    끼무라 국장이 제자리에 가서 앉아 이렇게 달리 말했다.
    "사내대장부란 드문드문 유흥을 즐길 수도 있네. 그러나 한도를 넘어선 안돼."
   "네, 네. 그렇습죠."
    한길수는 허리를 꿉썩거리며 어깨에서 금덩이 주머니를 끌러서 끼무라의 사무상 위에 올려놓았다.
    “끼 국장님, 이건 국장님을 처음 만난 인사입니다. 적은대로 받아주시고 저를 믿어주십시오.”
    끼무라는 사무 상에 부딪쳐 묵직한 소리가 나는 주머니를 내려다보면서 눈이 둥그래졌다.
    한길수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황금빛이 반짝이는 금덩이들을 꺼내 사무상 우에 죽 내놓았다. 황금 쉰 냥은 족히 될 것 같았다.
   그러나  끼무라 국장의 표정이 대번에 바위돌처럼 굳어졌다.
    “이이에(아니),  간상(한군), 난 황금덩이보다 당신의 충성심을 요구하네. 그게 황금보다 더 귀중하네. 알았소이까?"
     류 통역이 통역해주자 한길수는 잔등에 식은땀을 쪽 흘리면서 오리무중에 빠졌다. 속으로는 황금덩이보다 더 좋은 것이 뭐가 있어서 이러나고 원망했다.
    “끼 국장님, 이 황금덩이는 저의 충성심입니다. 이 금덩이는 내 어떻게 마련한게라구 이럽둥?”
    무지한 한길수는 끼무라 국장이라고 하니 성이 끼고 이름이 무라인가고 끼 국장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융통성이 있는 류 통역이 끼무라 국장이라고 다 붙여 통역해주었기에 오해는 사지 않게 됐다.
    끼무라 국장은 안경알 너머 한길수를 쏘아보면서 총알을 내뱉듯이 한 마디 한 마디 내쏘았다.
    “난 황금보다도 한상이 대일본제국 위해 목숨 바칠 충성심을 더 요구하네.”
    류 통역이 통역해주자 한길수는 끼무라 국장의 사무 상 앞에 털썩 꿇어앉아 맹세하듯이 말했다.
    “끼 국장님, 저는 목숨을 다 바쳐 대일본젝국에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저를 믿어 주십시오. 저는 끼 국장님의 한 팔이 돼 이 우시장일대를 대일본제국 끼 국장님의 새 세상으로 만들어 드리겠습구마.”
    끼무라는 안경알 밑으로 간사한 웃음을 지으면서 지껄였다.
    “요로씨이(좋아), 바로 그거네.”
    끼무라 국장은 의자에서 일어나 한길수의 앞에 뚜벅뚜벅 다가왔다. 그는 두 팔로 한길수를 끌어안아 일으키면서 자리를 권하고 그 옆에 나란히 앉아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한길수는 손수건으로 번들이마에 돋아난 땀방울을 닦으면서 오전에 있은 일을 구구히 설명했다.
     끼무라 국장은 말을 질질 늘여놓는 걸 딱 질색했다.
     끼무라는 한길수의 잔등을 툭툭 다독여주면서 뇌까렸다.
     “괜찮네. 중국 속담에 ‘싸우지 않으면 사귈 수 없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우린 첫 만남이 참 우스웠지만 대일본제국에 대한 충성심이 있는 한 친근한 벗으로 될 수 있네.”
    “고맙습니다.”
    끼무라 국장이 박수를 툭툭 쳤다.
    일본 시녀들이 우르르 나오더니 푸짐한 술상을 차렸다.
    “간상이나 내나 다 술을 좋아하지 않소. 자, 한잔 들면서 이야기하기요.”
    그들이 댕그랑 술잔을 마주칠 때다.
    병풍 뒤에서 화복차림을 한 일본 기생들이 악기랑 들고 게다짝을 짝짝 끌고 사뿐사뿐 걸어 나와 곱게 인사를 드렸다.
    끼무라 국장은 한편으로 조선 사람들과 싸우면서도 항상 경찰 국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일본 기생집 사꾸라관의 기생들을 데리고 놀았다. 오늘도 우시장에서 처음으로 친일 하려는 조선 사람을 접대하려고 일본 기생년들을 경찰국에까지 불러 왔던 것이다.
    일본 전통민요 “사꾸라” 곡이 은은히 울렸다. 일본 기생 년들이 돌아가면서 사꾸라 춤을 곱게 추었다.
    피리소리에 맞춰 병풍 뒤에서 게다소리가 딱딱 나고 가늘고 하얀 손들이 병풍우로 올라왔다 내려갔다 한다. 뒤이어 반 라체를 한 일본 기생 년들이 병풍 뒤에서 흘러나와 춤판을 벌렸다.
    일본 기생 년들이 추는 춤판을 한참 멍하니 쳐다보는 한길수는 선경에 들어선 것만 같아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하기 힘들 지경이었다.
    한참 후 끼무라는 술상과 기생 년들을 물리고 사무 상에 되돌아가 의자에 앉았다.
    “만난 첫날부터 일을 좀 시켜야 하겠소. 지금 이 사무실이 너무 비좁아서 멋있게 3층집으로 지어야 하겠네. 간상이 총도감을 맡게나.  지금부터 목수를 구해 박달령의 적송을 많이 베서 실어 와야 하겠소. 장차 우리 대일본 제국에서 백두산의 적송을 실어가려면 갑산으로 가는 길도 잘 닦아야 되겠네.”
     끼무라 국장은 작은 일부터 시켜보고 능력을 보아서 한길수를 써주기로 하였던 것이다.
    그 눈치를 챈 한길수는 대뜸 “제가 도맡아서 새 경찰국청사를 짓겠습니다. 목수랑 목재랑 인부랑 근심하지 마십쇼.”라고 선선히 대답했다.
     끼무라는 흡족한 표정을 지으면서 술잔을 들어 한길수에게 주었다.
    “자, 간상(한군), 간상이 경찰국 청사를 명년에 멋있게 지을 것을 미리 축하하여 한잔 듭세.”
    끼무라와 한길수는 술잔을 부딪치고 나서 죽 들이켰다.
    “간상, 우리 일본대제국을 위해 일하려면 우리 일본의 선진문명을 받아들여야 하겠네.”
    끼무라 국장이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한길수는 머리를 끄덕이면서 연신 “예, 예.” 하고 대답했다.
    끼무라 국장은 강철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강철은 병풍 뒤로 가더니 이발사를 데리고 왔다.
     강철은 한길수가를 보고 “끼무라 국장은 어른님을 관심하여 머리를 깎아드리라고 하였습니다.”라고 공손히 말했다.
그제야 제 정신이 든 한길수는 자기 외채머리를 만지면서 끼무라 국장의 희죽이 웃는 낯을 바라보았다.
     “부모가 준 머리털이 아까운데..."
    "고린내 나는 머리카락마저 아까워?”
    끼마라 국장의 위엄에 찬 말을 강철이가 통역해 듣고 별수 없었다. 한길수는 끼무라 국장이 지켜보는데서 둬 자 길이나 되는 머리채를 썩뚝 베 버리지 않으면 안되였다. 한칼, 한칼 발치에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보며 한길수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끼무라는 거울을 손수 들어다 한길수에게 비춰 보이면서 지껄였다.
     “보라니깐. 간상, 하이칼라 번대머리에 얼마나 잘 어울리는가?  허허. 얼마나 신사다운가? 이제야 진짜 우리 대일본제국의 총도감 같네그려. 흐흐흐.”
    끼무라는 손벽을 딱딱 쳤다. 시녀들이 술 두 잔을 쟁반에 들고 다가왔다.
    끼무라는 한길수와 잔을 마주치고 굽을 죽 내였다.
    한길수는 울분과 함께 그 술을 목구멍에 부어넣었다.
    끼무라는 술잔을 놓으면서 명했다.
    “한 군, 내일부터 목수와 인부를 징집해 경찰국 청사를 짓게네.”
   강철이 옆에서 일일이 번역해주자 한길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 아니, 당장 동삼이 닥쳐오는데 어떻게 집짓기를 합네까?"
   "뭐라고? 초겨울이 돼 괜찮아."
   그래도 한길수는 어정쩡해 서서 끼무라 정신 있는가 쳐다보았다. 강철이 옆에서 허벅다리를 툭툭 치며 눈짓했다.
    그제야 한길수는 마지못해 연신 번들이마를 조아리었다.
    “알았습구마. 명령대로 하겠습구마.”
    끼무라 국장은 새로 얻은 개 한 마리를 귀여워하듯 한길수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그의 손을 굳게 잡아 흔들었다.
    한길수는 어깨 축 처져 경찰국 대문 어귀에서 진작 기다리던 당나귀 차에 올라탔다.
    가을해도 뉘엿뉘엿 져가고 있었다. 하늘의 구름장들에도 불이 달린 듯이 뻘겋게 불타고 있었다.
     길수는 당나귀차에 앉아 건들건들 몸을 흔들며 시내거리를 달렸다. 이때 술집 부근에 이르자 큰길 옆에서 진작부터 기다리던 응삼 등이 마중했다.
     “일이 어떻게 되였습둥? 아니, 머리채는 어쨌습둥?”
    응삼이 긴장한 표정을 지으면서 묻자 한길수는 언짢은 기분을 감추면서 큰소리부터 쳤다.
    “끼무라 국장은 대일본제국의 사람이 되려면 머리채부터 바치라고 해서 바쳤네. 끼 국장은 네 눈깔로 그래도 이 한길수가를 알아보더구나. 날 총도감으로 임명했어.”
    “예? 아, 예. 감축드립구마.”
    응삼과 영팔, 수길은 모두  숱한 금덩이를 내밀고 고작해야  고까지 총도감인가 하는 표정이었다. 상우남면 파출소 소장도 아니고.
     한길수는 제 좋은 꿈을 꾸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총도감을 잘하면 이제 경찰서장을 시키겠는지 누가 아느냐?)
     그는 버릇처럼 득호 잔등을 구두발로 툭 찼다. 
    "어서 가자, 해 넘어가는구나.”
    “이라! 쨔!”
    득호는 당나귀 엉덩이를 채찍으로 연신 갈겼다.
    "주인님, 빨리 가겠으면 날 차지 말고 당나귀를 찹소."
   허길수는 단통 우멍눈을 부라리면서 욕했다.
    "웬 대꾸질이냐? 널 차면 어째? 당나귀를 차면 말을 알아듣니?"
    당나귀는 해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려고 차를 끌고 네 굽을 안고 달렸다. 그 뒤로 응삼과 수길, 영팔이 말을 타고 전후좌우로 옹위하고 달렸다.
    한길수는 가을바람을 한껏 들이켜니 가슴이 후련하고 뿌듯해났다. 그는 말 이발을 입술 새로 드러내면서 음흉한 낯에 별의별 엉뚱한 궁리를 다 하고 있었다.
    (흥, 이제 일본 경찰국장을 등에 업었으니 영월동이겠는가? 아니야, 온 명천일대를 독점해 버릴 테야. 병완이, 네 놈이 나한테 허리를 굽히지 않고 어디 배겨내는가 보자.)
     병완을 떠올리자 으쓱해졌던 어깨가 축 처지는 감이 들었다. 이전에 병완을 얼리고 닥쳐보았지만 후려채지 못한 것이 속에 걸리었다.
     그러나 끼무라 국장을 떠올리는 순간 다시 입술을 깨물었다.
     (끼무라 국장을 등에 업은 이상 병완 같은 시골 놈이 언감 나와 어쩐단 말인가? 은녀랑 되빼앗아와야지. 흥!)
     그는 눈을 떡 감았다.
     순간 그의 눈앞에는 이런 흐뭇한 장면이 떠올랐다. 자기가 권총과 군도를 척 차고 일본군모를 삐딱하게 눌러쓰고 가죽장화를 척 신고 병완이랑 호령한다. 은녀랑 월향이랑 옥설이랑 숱한 미녀들이 전후좌우로 자기를 옹위하면서 애교를 부린다.
    한참 후 우멍 눈을 스르르 떠보니 당나귀 차는 어느덧 운주동강이 감돌아 흐르는 치마봉 기슭을 달리고 있었다. 아래쪽에서는 개울물이 은빛달빛과 구름을 싣고 쏜살 같이 흐르고 있었다.
     길수는 술기운이 뻗치는데다가 가을바람을 맞으니 열기를 띤 얼굴이 선선해나고 배가 울렁거렸다. 이제 바야흐로 군도와 권총을 차고 경찰두목질을 할 생각을 하니 가슴이 뿌듯해나고 별스레 울렁거리었다.
     “오─”
     “예?”
    득호는 주인이 무슨 분부가 있는가 하여 뒤를 돌아다보았다.
    “아니,  아무 일도 아니야. 빨리 몰게나.”
     “예. 짜! 짜!”
   당나귀는 채찍을 맞고 대가리를 양쪽으로 떨어대더니 네 굽을 안고 딸까닥 딱까닥 달리기 시작했다.
   빨리 달리는 당나귀 차의 바퀴처럼 길수의 사유도 다급해졌다. 술기운이 도도해지자 혈액순환도 생각도 빨리 굴렀다.
   순간 월향에게 오전에 개꼴망신을 당하던 일이며 그 젊고 예쁜 기생 옥설을 가지고 놀지도 못하고 끼무라가 휘두르는 군도를 피해 달아나던 일이며를 생각하니 세상이 더럽게 변했다는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그는 월향이 원망스러웠다. 이전에 자기가 10여년 다닐 때 언제 한번 자기에게 소홀히 대하였던가. 그런데 지금은 일본 끼무라 경찰국장에게 찰싹 달라붙어 자기를 개 닭 보듯 한단 말이다. 그뿐인가! 끼무라 국장을 등에 업고 나를 업신여겨도 분수가 있지. 숱한 사람들 앞에서 자기 번들 이마를 치고 더러운 속옷을 벗어 내 머리 꼭뒤에 씌우기까지 하다니?
    (참 야속해!)
   (월향이, 마흔 고개를 쳐다보는 네년이 없으면 데리고 놀 계집이 없을 것 같냐? 얼마든지 있지, 있어. 옥설이, 만금이, 뽕녀. 어허이구, 보름달 같은 그년들이면 네년보다 훨씬 낫고 실컷 놀 수 있다. 퉤!)
    해가 뜨자 달이 지듯이 옥설이랑 길수의 눈앞에 나타나자 월향은 매력을 잃고 말았다. 마찬가지로 월향에게도 끼무라 국장이 나타나자 건달부자 길수가가 마음속에서 사라지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월향은 그날 오후에 끼무라 국장의 사무실에 가서 자기 기생방에 와서 옥설이랑을 끼고 애를 먹이는 한길수를 없애치워 달라고 고발하러 갔던 것이다. 그러나 끼무라 국장의 호된 꾸지람을 듣고 쫓기어 났던 것이다.
    그런줄도 모르고 한길수는 집으로 돌아가면서 당나귀 차 우에서 자기 좋은 생각을 굴리고 있었다. 그는 어떻게 하면 월향의 기생방에 있는 옥설이랑, 뽕녀랑, 만금이랑 예쁜 기생들을 몽땅 데리고 놀겠는가고 궁리했다.
    (아니, 이 세상의 미녀들이란 미녀는 몽땅 데리고 놀고 싶다. 아이고, 세상의 미인들아, 어째 내 애간장을 이다지도 애태우게 하느냐?)
    그는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오전에 옥설과 뽕녀, 만금을 만나 술을 몇 잔 마셨지만 월향과 10년 동안 논 것보다 기분이 훨씬 좋았다. 그런데 월향을 외면하고 그 애들과 논다는 것은 암 펌의 입안에서 토끼를 빼내는 격이기도 했다. 황차 월향은 일본 경찰국 국장 사무실에도 드나드는 수기생이 아닌가?
    (어떻게 한다?)
   저 멀리 어슴푸레 마을이 다가온다. 그는 집에 있을 때에는 마을의 고운 계집애들을 데리고 놀고 고을에 가면 옥설과 만금이, 뽕녀와 놀아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이전에 월향과 함께 기생집에 있던 월선이도 한때는 아주 예뻤다. 그래서 기생집출입을 밥을 먹듯이 하던 길수는 기생집만 가면 월선이 아니면 월향에게 달라붙어 술을 처먹고 녀색을 즐기었다. 월선에게 빠져버려서 그는 어떤 때에는 영월동에서 내려오면 한 보름동안 아예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리하여 본댁이 철주를 싸 업고 우시장에 내려와 기생집에 와서 길수를 불러 가기도 한 적이 있었다.
    길수는 본댁이 미워서 기생집 주인에게 황금덩이를 쥐어주고 월선을 떼 내 영월동에 데려다 첩으로 들여앉혔다. 그리하여 본댁은 철주를 싸 업고 서울 쪽에 있는 본가 집으로 달아났던 것이다. 길수는 말을 타고 쫓아가 본댁에게 황금덩이를 주면서 로비라도 하라고 했다. 그러나 본댁은 눈물 한 방울 떨구지 않고 그 황금덩이를 한 냥도 받지 않고 가버리었던 것이다.
   길수가 월선을 첩으로 데려온 데는 그럴만한 속셈이 있어서였다. 수기생 월선이가 기생집에 들어앉아 있는 한 월향을 비롯한 다른 기생들과 놀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월선을 집에 데려오니 집에 있을 때에는 월선과 놀고 고을에 가서는 월선의 여동생이자 처제인 월향을 비롯한 더 젊은 개생들과 마음껏 놀 수 있어 아주 좋았다.
    (그런데 지금은 달라. 월선도 월향도 다 늙었어. 고 옥설을 월선 대신 둘째 첩으로 들여앉히고 고을에 가서는 뽕녀와 만금을 데리고 놀았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데 그 암범 같은 월선이가 가만 있겠는가! 시골의 은녀를 부엌데기로 들여와도 어찌 하나 퉁 사발 눈깔에 쌍불을 켜고 달려드는 게. 에이고.)
    순간 그의 눈앞에는 마름 응삼의 색시 춘실의 고운 모습이 피뜩 떠올랐다.
    경상북도에서 난 춘실은 어려서 부모를 잃고 이모네 집에서 눈치 밥을 먹으면서 자랐다. 그런데 춘실은 이모부가 죽고 이모계부가 들어오자 팔자가 바뀌어 버린 여자였다. 글쎄 이모계부가 쩡하면 달려들어 어린 그녀를 능욕하려고 들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모네 집에서 뛰쳐나와 조선 팔도를 헤매다가 우시장 거리에서 밥을 빌어먹으면서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어느 날 한길수에게서 밥을 몇 때 얻어먹고 이 시골에 따라와 응삼의 처로 됐던 것이다. 그리하여 춘실은 주인어른이라면 응삼보다도 아버지처럼 공대했다.
    (아무리 계집이 없어도 내 어찌 굴 어귀 풀을 뜯어 먹으리오?)
    이때 그의 눈앞에는 또 새별 같은 깜장 눈에 쌍 머리채를 치렁치렁 땋아 늘인 은녀가 피뜩 떠올랐다. 점점 능금같이 익어가는 그 복성스러운 얼굴이 그의 가슴마저 찡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억대우 같은 병완이 떠올랐다. 설상가상으로 은녀를 좋아한다고 온 마을에 소문난 성칠을 떠올리자 도리머리 질이 나갔다.
   “안 된다! 안 돼! 오! 안 된단 말이다!”
   “예?”
   득호는 주인어른의 말에 당나귀고삐를 쥔 채 몸을 뒤로 돌렸다. 그 바람에 당나귀 고삐를 왼쪽으로 꽉 당기고 말았다. 당나귀가 코 구멍이 아파 왼쪽으로 대가리를 돌리면서 달려 나갔다.
   “아이쿠!”
   당나귀 차가 길수와 득호를 실은 채 낭떠러지에서 굴러 개울물에 풍떵 떨어졌던 것이다.
  “ 빨리 주인어른을 살려라!”
   응삼이랑 바삐  개울물에 우르르 쓸어달려 내려갔다. 길수는 다행히 깔려죽지는 않았다.
   대신 당나귀차  밑에서 구렁인지 뱀인지 욕지거리가 마구 쏟아져 나왔다.
   “개자식, 어떻게 차를 몰았기에 이 지경 만들어?!”
그런데 이번에는 기어 일어나는 길수의 낯에 당나귀가 걸쭉한 똥물을 찔찔 쏴놓았다.
    “에 퉤퉤! 득호, 이 자식 어디 죽어봐라!”
   길수는 차밑에서 벌벌 기여 일어났다.
   “아니, 주인어른, 죽지 않았습둥? 천만다행입구마.”
   “뭐라고? 이 자식!”
   길수는 일어나자마자 득호에게 주먹을 턱 안겼다.
    득호는 개울물에 벌렁 엉덩방아를 찧었다. 이때 응삼 등이 내려와 당나귀 똥을 낯에 바른 번들이마를 보고 겨우 웃음을 참았다. 그들은 길수를 부축하고 개울물에 똥투성이 머리를 닦아주었다.
  “에, 퉤, 퉤!”
  수길과 영팔이 양쪽에서 길수를 부축해 둔덕으로 올라갔다.
   당나귀차는 또다시 어둠을 타 분주하게 산골길로 달렸다.



          4. 꼬임


   한길수는 오른손으로 옆구리를 짚고 응삼의 부축을 받으면서 간신히 비틀비틀 집에 들어섰다.
   월선과 후처의 아들 선주는 마중 나왔다가  무슨 큰 봉변을 당하기나 한 것처럼 기절초풍할 지경이었다. 번대머리 뒤에 둬자나 되던 머리채가 보이지 않찮는가.
    “아니, 영감, 그 몇 대 안 되던 머리털마저 어쨌어요? 홀랑 벗어진 게 무슨 꼴인가요?”
   월선의 말에 한길수는 손을 내저으면서 돌려 맞췄다.
    “모르는 소리를 작작 해. 이 어른은 일본 선진문명을 받아들이구 총도감을 바꿔 온 거야. 이후에 누구든지 머리채를 자르고 하이칼란지 하이딸인지 해야 된돼.”
    생벼락 같은 소리에 월선과 선주는 입을 함박만큼 쫙 벌렸다. 그들은 머리채를 감싸쥐고 덴덥해 눈마저 휘둥그래졌다.
    “철주넨 왜 보이지 않느냐?”
    월선은 어둠 속에서 눈을 흘기면서 선처 아들을 헐뜯었다.
    “서울로 떠났어요. 뭐 일본으로 유학을 가겠다고 합디다.”
    “그래? 그래도 그 녀석이 장차 큰일 할 놈이야. 지금 세월에 일본말을 배워 두는 게 낭패 없어. 이 골짜기 둼 무지에 박혀서 애비 벌어 놓은 걸 받아먹겠어? 그 녀석 둘째 놈보다 썩 나아!”
   그 소리에 월선은 두덜거렸다.
   “영감도, 정말 손바닥과 손등이 다르다고 어쩌면 내 난 새끼를 그렇게 낮잡아 말해?”
    한길수는 허리를 만지며 상을 찡그리면서도 끼무라 국장의 위엄스러운 목소리가 귀전에 들리는 상 싶었다.
    “내일부터 목수와 인부를 구해서 경찰국청사를 짓는 일을 시작해야겠네.”
   길수는 방에 들어가 누웠다가 앓음 소리를 내면서 간신히 기여 일어났다.
   “게 응삼이 있는가? 고새도 참지 못해 여편네 궁둥이를 쫓아갔는가?”
   온 울안을 울리는 그 고함소리에 누가 태만하겠는가.
   응삼은 끌신을 작작 끌고 부랴부랴 본채에 들어왔다.
   “주인님, 찾았습둥?”
  응삼이 다급히 마루에 올라왔다.
  “앉게. 긴히 의논할 일이 있네.”
   길수는 등잔불 밑에 베개로 왼쪽옆구리를 받치고 비스듬히 기대 누워 우멍눈으로 응삼을 마주보며 말했다.
  “끼무라 국장은 내일부터 목수와 인부를 끌어다가 경찰국청사를 지으라고 하였네. 그런데 내 아무리 생각해봐도 목수는 저 병완을 초과할 사람이 없는데. 그 뜨개소 같은 놈이 고분고분 말 듣겠는가? 숱한 인부를 며칠 새에 어떻게 끌어간단 말인가? 여기 영월동의 열대엿 살 이상 되는 사람을 몽땅 끌어가도 3층집을 짓기에는 엄청나게 모자랄 텐데 말이야. 아이고, 이 일을 어쩐단 말이냐?”
   한길수는 땅이 꺼지게 한숨을 후 내쉬었다.
   응삼은 옆에서 길쭉한 박대가리를 기웃거리더니 한참 후에야 얍슬한 입술을 나불거렸다.
  “병완은 억지로 우격다집해선 안됩구마. 우시장에 절대 끌어가지 못합구마. 얼려 데려가는 수 밖에 없습니다. 끼무라 국장은 삯전을 주겠다 했습둥?"
   “삯전 같은 소리를 다하네. 남의 나라두 통 채로 빼앗아간 그 도적놈들이 삯전을 주자겠는가?"
  응삼은 한숨을 푸 내쉬었다.
    “이후에는 일본 사람들을 욕하지 마옵소. 말말 간에 그런 말이 불쑥불쑥 나가면 큰 야단이 나겠습구마.”
    “그래, 그건 네 말이 옳아.”
   길수가 혀로 입술을 감빨면서 수긍했다.
   응삼은 뒤이어 이런 수를 내놓았다.
  “이렇게 하깁소. 좋은 청부업거리가 생겼는데 삯전도 푼푼히 준다고 말입니다. 그러면 살기 바쁜 가난뱅이들이 좋다고 왁 쓸어 갈 겁니다.”
    그제야 한길수는 일어나 상을 찡그리면서 허리를 붙잡았다.
   “그래도 자네 그 박대가리에서 잔꾀가 잘 나오네그려. 허허. 아이고, 허리야.”
     응삼은 바삐 길수를 부축해 눕혔다.
    “근심맙소. 이 응삼이 있는 한 경찰국청사 아니라 온 우시장을 다시 지으라고 해도 근심할게 없습구마. 인부가 모자란다는 구실로 주인어른은 운주동과 신흥동, 가마골까지 온 상우남면을 다 관할하게 해달라 하깁소.  인부도 채우고 장차 일이 잘 되면 면장이나 군수로 승진하는데 길을 닦아놓는게 아입둥?  이거야 말로 일거양득이지요. 헤헤헤.”
    한길수는 응삼의 말에 귀맛이 당겼다.
   “그래? 그래. 내가 면장이나 군수가 되면 자넨 꼭 아전이  될 수 있어. 허허허.”
   이튿날 기운봉 쪽에 해가 두둥실 뜨기 바쁘게 응삼은 영팔을 데리고 병완을 부르러 떠나갔다.
    그들은 여우들처럼 징검다리를 홀짝홀짝 뛰어넘어 개울물을 건너 둔덕우로 올라가면서 보니까. 식전아침부터 뭘 찧는지 물레방아가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병완은 마당에서 도끼로 나무를 팡팡 패다가 응삼과 영팔이 다가오자 패놓은 나무토막들을 한쪽에 주어 쌓아놓았다.
    “영감, 주인어른이 도감어른과 긴히 상론할 일이 있다고 모셔오라 합더구마.”
   “또 무슨 일로? 혹시 은녀를 데려 가려는 건 아니겠지?”
   응삼은 허리를 꼽싹거리었다.
    “예, 아닙니다. 가보면 알겁꾸마. 좋은 청부업거리가 생겼습꾸마. 어서 가시죠.”
   그는 가슴츠레한 뱁새눈으로 병완의 눈치를 살폈다.
   “좋은 청부업거리면야 자네들이나 가서 할 게지. 당장 감자도 파구 강냉이도 뜯어 들여야겠는데 바쁜 사람을 찾아와 뭘 하오?”
   응삼은 진작 병완이 이렇게 나오리라고 진작 짐작했었다. 
   그는 웃음을 낯에 게 바르면서 지껄였다.
   “김도감어른, 우리 주인어른은 도감어른하구 서로 도우며 화목하게 살자고 은덩이도 드리고 은녀도 내보내 주었소. 지금 주인어른이 허리를 상해서 오지 못했는데 한번 가보면 어떻습둥?”
   병완은 너무 한감이 들어 도끼를 스르르 놓았다.
   “그래, 주인어른이 모질 상했는가?”
   “예. 당나귀차 운주하에 떨어져 허리를 모질 상했소.”
   응삼의 말에 병완은 나무토막을 모아놓고 일어서면서 “가봅세.”라고 했다.
  성칠이가 집에서 나오면서 물었다.
  “아버님, 어데로 갑니까?”
   병완은 되돌아보면서 대수롭잖게 말했다.
   “한 영감이 허리를 상했다는데 피뜩 가보고 오겠다."
   물레방아를 찧던 성희와 하옥은 떡가루가 묻은 손을 앞치마에 닦으면서 둔덕 아래로 내려가는 병완의 뒤 잔등을 바라보면서 근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병완이 토성 안 대문에 들어서자 한길수는 우멍눈으로 쏘아보며 속으로 윽별렀다.
  (저 놈을 그저 방망이로 뒤대가리를 쳐 죽였으면!)
    그러나 그는 신음소리를 내면서도 짐짓 마루에까지 나가 마중하며 아닌 보살을 떨었다.
    “김 도감, 어서 오오. 아이유, 내 허리 아파서 땅바닥까지 나가 마중하지는 못하겠소. 어서 올라오오.”
   병완은 마루에 성큼 올라서며 문안부터 했다.
    "허리를 모질 상했다던데. 어떻소?” 
    길수는 흡족한 표정을 지으면서 병완의 손을 잡고 비틀비틀 웃방으로 들어갔다.
   “김 도감을 보니 허리 병이 낫는 것 같네. 허허허. 아이유.”
    한길수는 입술에 게발린 소리를 하다가 앉으면서 신음소리를 냈다.
   응삼이 달려들어 와 한길수를 부축하여 앉혔다.
    병완은 앉자마자 머리채를 싹둑 잘린 번대 머리를 마주보면서 놀라 했다.
    “아니, 머리채는 어쨌소?”
   한길수는 번대 머리를 손으로 쓱 씻어 올리면서 지껼였다.
   “시원한 게 너무나 좋아서? 우시장에 갔다가 일본 사람들 신식을 따라서 머리채를 잘라버렸소.”
   병완은 한숨을 후 내쉬면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대체 무슨 청부업거리가 생겼기에 이른 아침부터 나를 불렀소? 난 할 일이 많으니까 얼른 말하오.”
   그러나 길수는 정지를 내다보면서 소리쳤다.
    “여보, 김 도감이 왔는데 술상이나 차려 가져오오.”
   병완은 넉가래 같은 손을 저으면서 사양했다.
    “이러지 마오. 한 영감, 난 가을이 돼서 일이 바쁘오. 어서 할 말이나 하오.”
    그럴수록 한길수는 늦장을 피웠다.
    어느 결에 월선이와 둘째며느리 남복금이가 술상을 맞들어 들여왔다.  
    “아무리 농번기라도 술이야 한잔 마시면서 얘기하기요. 자, 한잔 받소.”
    한길수가 놋 술잔에 막걸리를 부어 권하자 병완은 어찌는 수가 없어 받고 길수 앞에 놓인 놋 술잔에 한잔 따랐다.
    길수는 술잔을 들고 수작을 피웠다. 
    "병완이, 우린 씨름판에서 싸움 끝에 정 든  형제간이 아니고 뭐요?  자, 한잔 들기요.”
   병완은 마지못해 놋 술잔을 들어 댕그랑 마주 치고 굽을 쭉 냈다. 길수는 곁의 응삼에게도 한 잔 부어주었다.
    응삼은 속으로 슬그머니  병완을 질투하였다.
   (네깐 놈이 주인어른을 도와 뭐 해준 일이 있느냐? 상대접을 받아? 흥!)
   그는 한뉘 슬슬 기면서 고생한 자기를 푸대접하는 주인어른이 한없이 원망스러웠다. 아니, 쓸개가 다 쓰려났다. 그는 그런 질투와 원망을 놋 술잔에 담아 단숨에 쭉 들이켰다.
    막걸리가 서너 순배 돈후에야 한길수는 무거운 입을 떼였다.
    “이보게, 김 도감, 이번에 내 좋은 청부업거리를 얻어놨으니까. 우리 마을 사람들을 잘 살게 만들 예산이네.”
    병완은 세 귀 눈에 의아한 눈빛을 띠우면서 턱밑에 바투 들이댔다.
   "툭 까 놓고 말하오. 무슨 청부업거리오?” 
   길수도 더는 질질 끌고 싶지 않았다.
   “어제 우시장에 가서 3층집 짓는 일을 맡아 놨네. 자네 좀 목수 일을 맡아주게. 그리고 마을사람들을 이 좋은 청부업에 동원해주게나. 삯전을 딱딱 주는 일이니까. 참 좋은 돈벌이기회네.”
    병완은 닭다리를 하나 쥐여 한입 뚝 떼여 씹으면서 완곡하게 거절했다.
    "숱한 감자와 강냉이는 누가 걷어 들이겠소? 맏손녀 어금이가 추석이 지나면 당장 결혼해야 하겠는데 혼수 감을 장만해야겠는데.”
     길수와 응삼은 개의치도 않았다. 병완은 십중팔구는 그렇게 나오리라고 미리 짐작했기 때문이다.
    응삼은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는 주인을 보자 팔을 걷도 나섰다. 그는 바가지로 오지독안의 막걸리를 푹 퍼서 병완의 앞에 놓인 놋 술잔과 길수의 앞에 놓인 놋 술잔에 찰찰 넘치게 따랐다.
    “김도감, 집일이야 성칠이나 안분들이 하면 되지. 이런 청부업거리 어데 가 얻소? 우리 주인어른이 얻지."
   병완은 눈을 떡 감고 묵무부답하고 목석처럼 떡 앉아 있었다.
   응삼은 한길수한테 뱁새눈을 찔끔해보이고나서 뒤를 이었다.
   "한번 우리 주인을 돕는 셈 치고 나서줍소. 그러면 우리 주인어른께서 그 감자와 강냉이를 판 돈만큼 벌게 하지 않으리라고 그럽둥? 거저 김 도감에게 은덩이를 수무 냥이나 줄라니 고만한 게야 어련히 봐주지 않으리라고 그럽둥?”
    응삼의 말은 실로 그럴듯했다.
    “그런데 우시장에 무슨 부자가 있어서  3층집을 다 짓는다오?”
    병완이 묻는 말에 응삼이가 제꺽 “그거야…” 하고 입을 열려는데 길수가가 손으로 슬쩍 그의 허벅다리를 꼬집어놓았다.
    “양, 저, 우시장에 그런 대부자 있소. 삯전은 근심하지 마오. 내 달마다 딱딱 주겠소. 한마을에서 살면서 내 거짓말을 하겠소? 자네 정 믿지 못하면 선전을 줄 수도 있소.”
    그제야 병완은 한숨을 후 내쉬면서 막걸리 잔을 또 들었다.
    “글쎄, 돈을 벌수만 있다면 가서 목수 일을 할 수도 있지.”
    한길수는 대번에 찌푸렸던 낯에서 어두운 그림자를 말끔히 걷으면서 놋 술잔을 높이 쳐들었다.
    “자, 김 도감, 오늘 통쾌하게 한잔 듭세."
    병완은 한길수 잔과 마주치고 막걸리잔을 굽냈다.
     길수는 사기나 너스레를 떨어댔다.
    "자네 도감까지 맡소. 영월동 사람들을 집짓기에 동원해주오. 영월동에서 자네 말이라면 누가 듣지 않겠수?"
   병완은 생각 밖으로 손사래를 치며 사양할줄이야.
   "아니, 도감은 그만 두오. 무슨 일인지 모르구 어찌 마을 사람들을 동원하겠소?"
   한길수는 소발굽 같은 주먹으로 병완의 어깨를 툭 쳤다.
   "야따, 목수하구 도감 삯전은 따로 한몫씩 줄 테니. 근심하지 말게나. 하하, 이거야말로 꿩 먹고 알 먹고 둥지 털어 불을 때는 격이라 일거양득이 아니겠소? 자, 한잔 들기오.”
   그제야 병완은 웃으면서 통쾌하게 한 잔 냈다.
   일이 돼가는 걸 보고 응삼도 따라 막걸리를 한 사발을 죽 굽을 낸 후 병완을 쳐다보면서 간사한 웃음을 지었다.




            5. 고양이  생각




     길수와 응삼은 웃음주머니 흔들거렸다. 둥글소 같은 병완이 모르쇠를 댈까봐 은근히 근심했댔는데 일이 술술 풀릴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 했다.
     길수는 막걸리 기운이 점점 피자  한시름을 턱 놓고 목침을 베고 그 자리에 스르르 쓰러져 굳잠에 빠지고 말았다.
    응삼은 몸채에서 나오자 사랑채로 나갔다.
     춘선이 문소리 들리자 도도거리었다.
   “주인영감은 병완 영감이 뭐 그리 대단해서 하느님처럼 모신대요? 흥, 제 애비라도 그렇게 모시지 못할 거야.”
   “쉿-”
   응삼이 뾰족한 턱으로 바깥을 가리키었다.
   춘선은 계속 도도도 했다.
   “듣겠으면 들으라지. 뭐? 우리 나그네가 주인 어른을 도와 사사건건 얼마나 고생했는데 왜 독집 한 채 주지 않는대요? 저 병완 영감이 뭘 했다고 도감에다가 은덩이를 스무 냥이나  준대요? 이른 아침부터 병완을 불러다가 상빈대접을 한대요?”
    응삼은 여윈 주먹을 쳐들어 춘선의 머리 위에 쳐들었다.
    “야, 이년아, 낮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들어. 작작 떠들어라. 입이 성해있는 게 원수냐?”
    춘선은 주먹을 피해 저쪽으로 드텨 앉으면서 계속 종알거렸다.
    “에이고, 바보 같은 나그네. 그렇게 여편네와나 우쭐거려. 한뉘 꿉씬거려도 차례진 게 뭔가요? 맨 함경도 머저리들이 산골에 처박혀서 노는 꼬락서니 보기도 싫어, 보기 싫어! 흥!”
    춘선의 콧방귀에 응삼은 성이 꼭뒤까지 치밀었다.
    “빌어먹을 년, 너 남대치는 뭘 그리 잘 났냐? 굶어 죽는 거 주인이 데려다가 걷어 주고 이렇게 유식한 나그네한테 시집보내주니 어째 배때 쑤셔나니? 응?”
   춘실은  “빌어먹을 년”이란 말이 제일 귀에 거슬리었다. 그건 길거리에서 빌어 먹으면서 여기까지 왔다가 한길수를 따라 응삼에게 시집왔기 때문이었다. 응삼이 금방 “빌어먹을 년”이라고 했다고 그녀는 가마뚜껑을 들었다 쟁강 놓으며 가마뚜껑을 끌어안고 엉엉 울어댔다. 
    “에이, 빌어먹을 년.” 
    꼴보기 싫어 응삼은 길죽한 말대가리를 흔들면서 바깥에 나가 버렸다.
    한편 집으로 돌아온 병완은 집 식구들에게 금방 한길수에게서 들은 말을 죽 했다.
    성칠은 머리를 절레절레 가로 저었다.
    “아버지, 좀 심중하게 고려하시오. 한 영감이 무슨 일로 선심을 다 쓰겠습니까? 콩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난 믿어지지 않습구마.”
    그러나 병완은 자기 주견을 세웠다.
    “밑져 본 전이라구 삯전만 주면 해 볼만 해. 어금의 혼수도 마련하구. 마을 사람들도 몇 푼 되지 않는 밭을 믿고 어떻게 명년 보리 고개를 넘기겠니? 이 좋은 기회에 좀 벌어서 쌀이나 사서 보태면 좀 좋아?"
    성칠은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다.
   "그러다가 한길수 삯전을 안 주면 어쩝둥?"
   "삯전을 주지 않는 날부커 일하지 않지. 뭐.”
   병완은 벽이라도 차고 나가는 불 같은 성미였다. 그 성미를 알고 있는 성칠은 더 말리지 못했다.
   병완은 마른기침을 하며 우쭐 일어났다.
    “난 우시장 갈 차비를 하겠다. 너희들은 밭에 가서 감자나 파오너라.”
    병완은 시름이 놓이지 않는지 성칠을 되돌아보면서 부탁했다.
    “며칠 사냥을 못하더라도 밭일을 해라.”
   “예, 아무튼 우시장에 가서 몸조심 합소.”
   성칠도 우쭐 일어나 바깥에 나갔다.
   그는 외양간에 들어가 소를 풀어내다가 소 수레에 메웠다. 그는 어머니와 아내를 수레에 앉히고  감자밭으로 떠나갔다.
   
     한참 후 응삼이 영팔을 데리고 헐레벌떡거리면서 올리막으로 올라왔다.
    “김 도감, 주인어른께서 허리 아파서 오시지 못하고 분부를 전하라고 하시여 왔습네다. 헤헤헤.”
    병완은 귀찮은 표정을 지으면서 세 귀 눈으로 응삼을 건너다보았다.
    “금방 다 말했는데 또 무슨 잔소리 그리 많느냐?”
    이번에는 영팔이 썩 나서면서 대답했다.
    “저, 주인어른은 김도감이 혼자 우시장에 가지 말구 마을 사람들을 데리고 가랍디다.”
    병완은 목수도구를 넣은 멜 통을 메고 둔덕 아래로 내려가면서 대답했다.
    “알았네. 내 저기 덕성과 덕팔이, 창렬이, 동훈이랑 다 데리고 가지.”
   응삼과 영팔은 기뻐서 병완의 앞에서 춤이라도 출 듯 껑충껑충 뛰어 개울물 쪽으로 달려갔다.
    영팔은 징검다리를 단숨에 달아 건너갔다. 그런데 응삼은 징검다리를 토끼새끼처럼 뛰어 건너가다가 그만 돌을 빗 디뎌 그만 개울물에 풀러덩  빠지면서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물병아리를 방불케 하는 응삼은 실 돌피 같은 몸을 겨우 일으켰다. 이윽고 그는 저 멀리 뛰어간 영팔에게 손을 휘저으면서 토성 안으로 오소리처럼 쫑드르르 달려갔다.
    병완은 그 우스운 모양을 보고 피씩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먼저 덕팔네 집을 찾아갔다. 평소에 말수가 적은 덕팔은 기침을 쿨룩쿨룩 하며 시름시름 앓는 노친으로 하여 속을 여간만 태우지 않았다. 며칠 전에 병완은 덕팔에게 둬 냥짜리 은덩이를 가져다주면서 노친을 데리고 운주동에 있는 신설 집 자기의 관준 형님을 찾아가보라고 했다.
   병완의 형님 병관의 맏손자 관준은 이조말년 궁정의 어의였던 할아버지 김승중의 한의술을 물려받아서 어진간한 병은 사람의 얼굴을 보고서도 척척 진단해 처방을 떼였는데 약이 병에 말을 참 잘 들었다. 그리하여 병완이가 한번 관준 손자를 찾아가보라고 하는데도 고지식한 덕팔은 말을 들을 염을 하지도 않았다. 하긴 덕팔은 천생 남의 빚을 지거나 공짜를 얻어먹으면서 살지 않으려는 외고집쟁이였다. 그는 병완이 공짜로 주는 은덩이를 받으려고 하지 않았고 관준 의사를 찾아가 볼 엄두도 내지 않았다.
    (어떻게 하나 이번에 덕팔도 돈을 벌어 노친의 병을 치료하게 해야겠는데.)
    병완은 이런 생각을 구을리면서 개울 건너편에 있는 덕팔의 낮다란 초가집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때 때마침 덕팔이 넓은 어깨에 통나무를 메고 뒤울 안에서 앞마당으로 나왔다.
    병완은 삽작문을 열고 울안에 들어서면서 덕팔의 어깨 우에서 통나무를 받아 내려놓으며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우시장에 좋은 부업거리 생겼네. 우리 함께 가 보기오. 한두 해 일하면 노친의 치료비두 벌게 아닌가?”
    덕팔은 통나무를 턱 깔고 앉더니 숨을 헐떡거리면서 자세히 물었다.
    “무슨 일이기에? 가을걷이도 하지 않고 우시장 한끝으로 가겠소?”
   병완은 덕팔의 옆에 나란히 앉으면서 담배물주리를 꺼내 담배를 꿍꿍 다져넣고 붙여 물었다.
   “한길수가 우시장에 가서 층집짓기를 맡아 왔다오.”
   덕팔은 네모 번듯한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쳇, 한길수를 믿고 돈 벌자구?  한길수 콩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믿지 못하겠소. 죽게 일해서 그 놈이 좋은 노릇을 하자고? 쳇!”
   “길수는 달마다 품삯을 딱딱 주겠다고 했소. 한마을 사람들인데 선전을 줄 수도 있다고 하더구먼. 품삯을 주지 않으면 돌아오면 되지. 뭐?”
   병완의 말에 덕팔도 담배를 붙여 물더니 담배연기를 후 길게 내뿜었다.
   “그럼 한번 가 본다? 가을은 철규와 점순에게 맡기지.”
   이렇게 돼 병완은 덕팔을 데리고 떠나게 됐다. 
   병완과 덕팔이 목수도구상자를 메고 개울을 건너 둔덕에 올라서는데 창렬이 허리를 구부정하고 나왔다.
    “형님네는 어디로 가오?”
   병완은 걸음을 멈추고 “우시장에 집짓기부업을 하러 가는 길일세. 그런데 몸은 어떤가?”라고 문안부터 했다.
   덕팔도 시시콜콜 앓는 창렬에게 동정의 눈길을 보냈다.
   창렬은 삽작문을 열고 나와 기침을 쿨룩쿨룩 깇으면서 간신히 말했다.
   “그래도 병완 형님이 준 은덩이로 약을 지어다가 먹었더니 많이 낫소.”
   그는 덕팔한테 부러운 눈길을 보냈다.
   “혹시 흙짐이나 멜게 있으면 나도 좀 부르오.”
   병완은 생강처럼 바짝 마른 창렬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동생, 이 몸으로 어데 가서 일을 한다고 그러오. 집에서 병 치료나 잘하게나.”
   창렬은 바깥으로 나오면서 부탁했다.
  “저 상호라도 좀 데리고 가면 좋겠는데.”
   은녀와 상호가 삽작문을 나서더니 허리를 굽히면서 이구동성으로 곱게 인사했다.
    병완은 상호를 대견스레 아래위를 훑어보았다.
   “얘들, 이젠 어른이 다 됐구나.”
    창렬은 집안형편이 가난하여 겨우 늦장가라도 들어서 얻은 은녀와 상호를 바라보면서 희죽이 웃음을 지었다.
    순간 그의 이마에 난 밭고랑 같던 주름살이 쭉 펴졌다.
    “우리 먼저 가서 품삯을 제대로 받게 되면 상호도 데리고 가지.”
    
   병완과 덕팔은 곧장 토성 안에 있는 길수네 팔간대청으로 들어갔다.
    그때 대문 앞에 진작 한길수와 응삼, 영팔이 진작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병완은 걸어 나가 문안부터 했다.한 영감,  밤새 허리 아파 고생이 많았겠소.” 
    한길수는 반색을하였다.
   “자네가 일하러 가겠다니 허리 병이 뚝 떨어 기는 것 같네. 흐흐흐.”
   뒤이어 그는 개화장으로 땅을 짚고 서서 말했다.
   “아무튼 우시장에 가서 응삼과 합작해 일군들을 잘 관리해서 집짓기를 잘하게나. 내 여기서 마을사람들을 더 동원해가지구 며칠 후에 따라가겠네. 그럼 어서 길을 다그치오. 난 집에 들어가 좀 누워야겠소.”
    병완은 덕팔, 최동욱과 함께 병수가 모는 마차에 앉아 우시장으로 떠났다.
    개화장을 짚고 대문어귀에 선 한길수의 우멍 눈에는 살기에 찬 음흉한 눈빛이 서려있었다.
    (은녀를 당장 빼앗아 와야지. 아니야, 괜히 병완과 성칠이 펄쩍 날뛰겠다. 그러면 집짓기가 끝장나고 내 창창한 앞길이 막힐게 아닌가? 안되지. 꾹 참아야지. 내가 이 영월동과 운주동을, 아니야, 온 상우남면 나가서 우시장까지 쥐락펴락 할 때는 은녀 하나뿐이겠는가? 온 우시장의 계집들을 몽땅 내 집에 잡아와야지. 으흠!)
    한길수는 제 좋은 궁리를 하면서 대문어귀에서 떠나 집울 안으로 들어갔다.

    한편 병완이네는 경찰국 대문 앞에서 총창을 비껴든 일본 헌병들에게 몸수색부터 당했다. 병완은 머리가 썩둑 잘리어 나간 것 같은 일본 놈 군모 밑의 짧은 머리를 보니 사람 같지 않아 보였다.
   응삼이 무슨 종이장을 꺼내 일본놈 한테 건네고나서 뭐라고 손방아를 찧어댔다. 헌병은 종이장과 응삼이네와 병완이네를 번갈아 훑어보더니 응삼을  2층집 대문 안에 들어가게 했다.
   한참 후 응삼이 강철을 데리고 나왔다. 강철은 병완을 보고 아는 척 했다.
   “아니, 이거 퍽 눈익은 분이먼."
   응삼은 실돌피 같은 허리를 :쭉 펴고 병완을 춰올렸다.
   "이분은 우시장을 뒤흔들던 씨름장수 김병완 어르신님이네."
   "오- 글쎄 면목 있다니까."
   강철은 병완의 소발족 같은 손을 잡아 흔들었다.
   "장사님, 반갑습니다.”
   수다스러운 그 인사수작에 병완은 그저 눈인사를 할 뿐이었다.
     응삼이 어색한 기분을 깨려고 병완과 강철의 앞에서 실 돌피 같은 허리를 꼽싹거렸다.
     “김령감, 이 양반은 내 동창생 류강철입구마. 이전에 운주동의 최구장에게서 천자문이랑 함께 배운 동창생이오. 류 선생은 일본까지 유학갔다가 와서 우시장에서 아주 갑부로 됐지요. 그래서 이번에 3층집을 짓게 됐소.”
     강철은 없는 배를 쓱 내밀고 어깨가 으쓱하여 부자인 척하면서 거들먹거렸다.
     “집만 잘 지읍시우. 삯전은 근심하지 맙소.”
    사실  일본 경찰국을 짓는 일이라면 병완이랑 목수를 그만 둘 것은 불 보듯 빤했다.  그래서 응삼과 한길수는강철의 집을 짓는다고 거짓을 꾸며댔던 것이다.
    병완은 묵무굽답하고 돌부처처럼 덤덤히 앉아 있었다.
    그는 류강철이 일본 헌병군복을 입은 것을 보고 눈에 거슬렸다.
    (이 놈도 일본 사람들의 덕분에 갑부로 된 게 아닌가?)
    류강철과 응삼은 병완 등을 마차에 싣고 경찰국에서도 한 1리쯤 떨어진 뒤 산 쪽으로 달려갔다.
     둔덕진 곳으로 올라가 한참 걸으니 평평한 땅이 나졌다.
     류강철은 모자를 벗어 땀을 씻으면서 가죽장화를 신은 발까지 탕탕 구르며 지껄여댔다.
    “바로 이곳이네. 풍수쟁이를 청해 우시장 주변산수를 답사시켰지. 풍수쟁이는 이곳이 바로 우시장에서 집을 지을 천하제일 명당자리라더구먼.
     병완이 그 곳을 둘러보니 참말로 명당자리인 것 같았다.
      동쪽과 북쪽에는 기운봉에서 뻗어 내려 온 깎아지른 듯 험산준령이 병풍처럼 둘러서있었다. 서쪽에는 남대성하 지류가 흘러 지나가고 있었으며 둔덕아래 남쪽으로는 우시장 시내가 한눈에 안겨왔다. 참말로 우시장 시내에서 개미새끼가 기어가도 손금 보듯이 환히 살필 수 있는 천혜의 군사요충지였다.
     병완은 류강철을 피뜩 곁눈질해보며 속궁리했다.
     ( 저눔이 갑부는 갑분 모양이지. 무슨 돈으로 3층집이나 짓는단 말인가?)
     병완은 류강철에게 “그래 집 도본은 어디 있소?” 하고 물었다.
     류강철은 없는 배를 쑥 내밀고 날카로운 낯을 이쪽에 돌렸다.
      “도본이라니?”
   그는 의아해 병완이를 돌아다보다가 깨달은 것이 있는지 머리를 꺼떡거렸다.
   “아, 설계도를 그러겠구먼. 근심하지 마시오. 이제 일본 설계사가 설계도를 가지고 올겝구마.  오늘은 공지나 돌아보고 푹 쉽소. 요 사람들로야 어떻게 일을 시작하겠습둥?”
   그러나 병완은 조급해났다.
    “이보, 그것도 말이라고 하오? 우린 밭에 강냉이하구 감자를 걷어 들이지 못하고 널어 놓은 채 하루 품삯이라도 더 벌려고 여기까지 왔단 말이요.”
   대뜸 붉으락푸르락해 지는 병완을 보자 강철이 쪽에서도 물러서지 않고 눈알을 굴리면서 떽떽거렸다.
   “이 영감이, 어느 안 전이라고 함부로 고함질인가? 품삯은 무슨 엿 먹을 품삯이란 말인가? 일하기 전부터 품삯을 달라고? 흥!”
    응삼은 실눈으로 병완의 노한 얼굴을 살피더니 손으로 강철의 허벅다리를 스리슬쩍 툭 치며 뱁새눈을 찔끔해보였다.
    “김 도감, 노여워하지 마오. 오늘 놀아도 삯전은 우리 한 어른께서 다 주오. 삯전 근심은 하지 마오. 오늘은  이제 일군들이 오면 그들을 지휘해 먼저 토성을 파면 되오.”
   덕팔은 성이 꼭뒤까지 치밀어 오른 강철과 병완의 얼굴을 번갈아보았다. 그의 너부죽한 얼굴에는 근심에 찬 그림자가 얼굴에 흘러지나갔다.
   강철은 분을 이기지 못하여 씨근덕거리다가 발로 돌 쪼각을 탁 차버리고 “흥!” 하고 코 방귀를 뀌더니 저 멀리로 가버렸다.
    바빠 맞은 응삼은 강철을 따라가 팔소매를 잡아당기면서 나무람했다.
    “자네 어째 일을 망치자고 이래? 지금 일손을 하나 얻어 온다는 게 하늘에 별 따기인 걸 모르는가? 우리 주인어른이 손이 발로 되게 빌어서 데려온 일군들이네. 우리 주인어른은 자기 호주머니를 털어 품삯을 주기로 했네.”   
    강철은 침까지 퉤 내뱉었다.
    “대일본제국의 경찰국을 짓는데 무슨 놈의 삯전인가?”
   “언성을 좀 낮추게나. 저 영감들이 듣겠네. 성질이 불 같아. 벽이라도 마구 박차고 나갈 령감이야.”
   응삼은 뱁새눈으로 힐끔 저쪽 병완을 훔쳐보았다. 다행히도 병완과 덕팔도 뭐라고 쑤근거리면서 이쪽의 말을 듣지 못한 것 같았다.
   그때 덕팔은 병완에게 근심을 털어놓았다.
   “저 일본 군복을 입은 치머리가 삯전을 정말 주지 않으면 어쩌겠소?"
   "삯전을 주잖으면 그만 둘판이지.뭐."
    "저 말하는 거 보오. 무슨 경찰국을 짓는다고 하지 않소?”
   병완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잘못 들었겠지. 우시장에 경찰국이 있는데 또 무슨 경찰국을 짓는다고 그러오? 우리 처음 들렸을 때 일본 헌병이 총창을 꼬나들고 보초를 서던 대문 안 집이 바로 일본경찰국이라던데.”
   그러나 덕팔은 계속 의심하는 눈치였다.
    “그런데 살림집터가 이렇게 엄청나게 클 수 있소?”
  병완도 반신반의했다.
   “글쎄 일본 사람을 초과하는 부자가 우시장에 있을 수 있소?  이제  도본이 오면 대개 알 수 있겠지.”
    “삯전을 주기만 하면 뭘 짓던지 관계는 없지.”
    덕팔은 더부룩한 구레나룻을 매만지면서  땅바닥에 누워있는 너럭바위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품삯을 주지 않으면 돌아가 한 영감과 따지겠소.”
    병완의 그 말에 덕팔과 동욱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이때 응삼과 강철은 마차를 타고 어디론가 먼지를 뽀얗게 일구면서 달려가 버렸다.
     한참 후 류강철과 응삼이 일본 군복을 입은 자와 함께 마차에 앉아 달려왔다.
    마차에서 내린 일본 사람이 누런 종이 장을 꺼내들고 여기저기 가리키면서 뭐라고 말하자 류강철이 머리를 끄덕였다.
    이윽고 응삼이 병완과 덕팔을 불렀다.
     그들은 일본 설계사의 설계도대로 먼저 동서가 한 150미터, 남북이 한 100여미터 되게 말뚝을 박고 하얀 실을 쭉쭉 쳐 놓았다.
     한참 역사를 하고나니 해가 중천에 둥실 걸렸다.
     응삼이 우시장에 내려가더니 뭔가 한보자기를 사들고 왔다.
    “자, 풍찬노숙하면서 우리 동창의 집을 짓느라고 고생들이 많소. 오늘은 이걸로 점심과 저녁이라고 먹소.”
    응삼이 보자기를 풀자 누런 강냉이떡에 마늘짠지였다. 병완이네는 집을 떠난 이상 별수 없이 그들은 강냉이떡도 맛있게 먹었다.
    덕팔은 강냉이떡을 한입 뚝 떼여 씹으면서 또 근심을 털어놓았다.
     “이제 해가 저물면 밤에 어데서 자오?”
    응삼은 뱁새눈을 한껏 크게 뜨면서 대답했다.
    “옳소. 오후에는 저기 가져온 재목으로 기둥을 세우고 초막을 짓소.”
    병완 등은 점심식사가 끝나기 바쁘게 먼저 토성을 쌓기로 한 북쪽에 인부들이  들 수 있는 움막을 짓기 시작했다.
    해질 때까지 경사진 둔덕을 파고 반토굴 움막을 대충 지어놓았다.

    엿새 후에 한길수가 직접 마차를 타고 공지로 찾아왔다. 그는 개화장을 짚고 다 지어놓은 인부가 들 움막을 둘러보더니 아주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병완이, 수고 많았네. 먼저 엿새 품삯을 주겠소.”
    보통 하루품삯이 8전이나 10전이면 대단했는데 한길수는 한마을의 사람들이라면서 20전씩 주는 것이었다.
    병완은 한길수를 보고 “허리는 괜찮소?” 하고 문안부터 했다.
    한길수는 허리를 만지면서 상을 찡그렸다.
    “아직도 조금만 힘써도 아프오.”
    병완은 대통을 꺼내 담배를 쑤셔 넣으면서 넌지시 물었다.
    “좌우간 품삯을 주니 고맙소. 그런데 어째 류 통역이 삯전을 주지 않고 한영감이 주오?”
    한길수는 그들이 든 움막 구들에 걸터앉더니 둘러댔다.
    “류 통역이 돈이 바빠서 그러는데 좀 기다리오. 그건 그만두고 병완이, 자네는 아직 목수 일을 할 게 없으니까 토성을 쌓는 일에서 손을 떼게나. 우리 마을 일군들로는 근본 이 집을 명년까지 다 짓지 못하오. 운주동과 신흥동, 가마골로 나와 함께 돌아다니면서 일군들을 더 모집해 와야겠네. 자네 아들과 손자들까지 다 데려오오.”
     한길수는 우멍눈으로 묵묵히 앉아있는 병완의 눈치를 힐끔 살피였다.
    거부하는 눈치가 보이지 않자 뒷말을 이었다.
    “거 최구장이 아들이 여럿이 되던데. 사돈인 자네가 나서서 좀 동원해보게나.”
    병완은 귀가 솔깃해하겠는가 하였는데 병완이 벌컥 성을 낼 줄은 천만뜻밖이었다.
     “한영감은 언제부터 나를 그렇게 얕잡아보기 시작했소? 내가 그까짓 도감을 바라고 여기로 왔는가 하오? 삯전이라도 벌어서 맏손녀 혼수 감이나 마련할 까고 온 게지.”
    한길수는 번들 이마에 송골송골 돋아난 땀방울을 팔소매로 뚝뚝 찍었다.
    “허허허, 김 영감, 내 말을 잘못해 미안하오. 품삯은 꼭 줄 테니 좀 동원해주오. 하루에 쌀 너 근씩 버는데 좀 좋아서 그러오? 한 일 년 일하면 농사 질을 하기보다 훨씬 낫게 벌게 아니오?”
    “에헴!”
    병완은 마른 기침을  하더니 뒷말을 이었다.
     “품삯만 주면 누군들 일하러 오지 않겠소?  동원해 보지.”
     “알았네."
   한길수는 개화장을 짚고 엉거주춤 일어나면서 오만상을 찌푸렸다.
    "아이유, 요 허리가 아파서.”라고 하면서
     한길수는 움막 앞에서 우뚝 멈춰서더니  병완을 되돌아보았다.
    “내 마차에 앉아 집에 갔다가 오오.” 
    병완은 덕팔과 동훈을 되돌아보면서 작별을 고했다.
    “내 집에 갔다올테니까. 마가을 추위에 몸 주의하게나.”
    덕팔은 “형님, 잘 갔다가 오오. 우리 집사람과는 무사하다고 잘 전해주오.” 라고 말했다.
    그는 삯전 1원 20전을 병완한테 건네주면서 부탁했다.
    “내 노친한테 전해주오. 삯전을 버는데 철규도 오라고 전해주오.”
     그러나 최동훈은 자식을 하나도 보지 못해 그저 삯전만 병완의 손바닥에 달랑 올려놓았다.
     “이거나 우리 집 사람에게 주오.”
    병완은 품삯을 잘 건사한 후 한길수와 함께 마차에 올라탔다.
   서산을 바라보니 해가 어느새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면서 땅에 얼굴을 비빌 지경이었다. 마차는 먼지를 새뽀얗게 일구며 산둔덕을 내려 영월동을 바라고 달려갔다.





                     6. 벼락을 맞은 번대머리




      마차가 우시장을 벗어나 시골길로 한참 달릴 때다.
      한길수가 마차 위에서 무릎을 탁 쳤다.
     “아차, 깜빡 잊었구나."
    그는 응삼을 돌아보며 물었다.
    "자네 최구장의 서당방에 가서 공부한 적이 있지 않은가?”
    “예.” 
    한길수는 응삼의 어깨를 탁 쳤다.
   “하늘이 나를 돕는구먼. 자네는 이 길로 먼저 최구장을 찾아가서 운주동 사람들을 동원해 달라고 하게나. 끼무라 국장이 다그치라고 하던데.”
    응삼은 뱁새눈이 실눈이 돼 상을 찡그리었다.
   "좀 살살 칩소. 간 다 떨어지겠습구마."
    “잔말 말구 어서 운주동하구 신흥동, 가마골에두 돌아다니면서 인부를 모집하라구. 한 백명 있어야 돼. 알겠는가?!"
   “백명이나?"
   "백명이면 백명이지. 뭐 잔말이 그렇게두 많아?"
   "예, 알았습구마.”
   응삼은 땅방울같이 을러메는 길수 앞에서 잡소리 집어삼켰다.
   마차는 둬 시간 달려서 운주동과 영월동으로 가는 길이 갈라진 갈림길에 들어섰다.
   병수가 마차를 세우자 응삼이가 마차에서 노루새끼처럼 폴짝 뛰어내렸다.
   응삼은 떠나가는 마차에 대고 실 돌피 같은 허리를 꿉썩거렸다.
   마차는 또다시 한참 제방둑길로 달렸다.
    그때 병완이 마차에서 뛰어내렸다.
    “마차를 세워. 병완이, 웬 일인가?”
   한길수가 이상해했다.
   득호가 말고삐를 채 달리는 마차를 세웠다.
   병완은 제방둑길 옆으로 내려갔다.
   “저 산등성이에 있는 감자밭에 좀 가봐야겠네. 제때에 거둬들이지 못해 멧돼지들이 파먹지나 않았는지 모르겠네.”
   “음, 알았네. 자네도 마을사람들을 많이 동원해보게나.”
   “그러지.”
   병완은 허리를 구부정하고 산등성이로 성큼성큼 올라갔다.

   마차는 계속 어두워져가는 강둑길로 달려갔다. 저 멀리 어슴푸레 마을이 다가왔다.
   한길수는 고을에 기생년을 가득 두고서도 영월동에도 놀이개계집을 둘 예산으로 은녀를 한사코 자기 집에 끌어다 넣었던 것이다.
  (성칠이, 그 새끼, 사냥해서 엄창렬의 빚을 문다고? 사냥하기 어디 그리 식은 죽 먹긴가? 쳇!)
   순간 길수는 눈앞에 머리채를 치렁치렁 땋아 늘인 풍만하고 생생한 은녀의 반달 같은 얼굴이 떠올랐다.
   (은녀는 정말 우리 산골 치고는 이뻐. 토스래기 감자처럼 복실복실 하구 사과처럼 사박사박한게. 고 계집 정말 통 채로 먹어도 비린내 나지 않을 거야. 으흐흐.)
   그는 본처를 맏아들 철주와 함께 서울로 보내고 월선을 들여앉힌 자기가 잘못했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꼈다. 월선은 어려서는 순수한 계집으로 써먹기는 좋았다. 그런데 마흔 고개가 가까워 가면서 우악스러워져 쩍 하면 한길수가 어데 가서 다른 계집을 데리고 노나 눈만 밝히고 심술을 부리는 것이었다.
   (에참, 월선이 눈치가 보여서 어디 은녀를 데려와도 챌 틈이 있는가? 흥! 참 재수 없어. 처녀라면 눈독을 들이는 줄 알고 눈깔이 화등잔이 돼서 살핀단 말이야.)
   순간 그의 눈앞에는 마름의 색시 춘실의 모습이 피뜩 떠올랐다.
   (그래, 은녀를 삼키지 못하면 춘실이라도 데리고 놀았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오늘 응삼이를 가마골에까지 가보라고 해놨으니 이 틈에 스리슬쩍. 으 흐, 흥.)
   춘실은 어려서 부모를 잃고 이모네 집에서 자랐다. 이모부가 세상 뜨면서 이모계부가 들어왔는데 그자는 색정광이었다. 이모가 없기만 하면 춘실에게 슬금슬금 다가들어 손을 잡고 지분거렸다. 춘실은 능구렁이 같은 이모계부의 능욕에 신물이 나서 도망쳐 나왔다. 그녀는 우시장의 거리를 헤매다가 그만 건달 놈들에게 걸려들어 혼난 적이 있다. 그 후 춘실은 건달들과 휩쓸려 다니면서 마구 굴렀다. 하여 이모네는 춘실이 열다섯 살 나던 해에 스물다섯 살이나 연상인 응삼에게 시집보냈던 것이다.
   (춘실이, 그년이 걀쭉한 게 예쁜 거야. 으흐흐, 오늘밤에 놀아 볼가? 춘실을 건사하느라고 응삼이가 야단치지만 이 어른 앞에서는 안 될걸. 흥!)
   그는 눈을 지긋이 감고 걀쭉한 춘실을 끌어안는 꿈도 꾸었다. 그런데 불시에 그의 눈앞에 춘실의 몸에 휘감긴 숱한 사내들이 떠올랐다. 순간 역겨운 반감이 목구멍까지 울컥 치밀었다.
   (춘실의 몸뚱이는 기생년들보다 더 더러워. 안 돼, 그년은 한물 지나간 년이야. 에- 퉤, 퉤!)
    그는 다시 머리채를 치렁치렁 땋아 늘인 은녀를 떠올렸다.
    (오, 은녀, 그 년 터질 것만 같은 하얀 젖무덤, 펑퍼짐한 엉덩이, 아이고 생각만해도 죽을 거 같애.그래, 춘실이 같은 건 열개를 주고서도 못 바꾸지.)
   은녀 하얀 허벅다리와 엉덩이를 련상하자 한길수는 그게 불끈 일어서는 걸 어쩔 수 없었다. 부글부글 끓어번지는 성욕으로 온 몸이 찡 전률했다.
   "오홍!"
   그가 고양이 불알 앓는 소리로 신음소리를 뱉어냈다.
   “아이쿠!”
  마차가 제방둑길 굽인 돌에서 그만 운주하 강바닥에 쿵 굴러떨어졌다. 하도 강둑의 팔뚝만큼 한 버드나무들이 굴러 떨어지는 마차를 조금 막아주었으니 말이지. 무슨 사고가 났을지 몰랐다.
   마차가 굴러떨어지는 순간,  득호는 훌쩍 뛰어내렸다. 하지만 한길수는 마차와 함께 그만 사품 치는 차디찬 가을강물에 빠지고 말았다. 마차 밑에 깔린 길수는 강물에서 허우적거렸다. 다행히도 가을이여서 강물이 얕았으니 말이지 여름철처럼 큰물이 졌을 때 같았으면 길수는 영낙없이 물에 빠져 죽었을 것이다.
   득호는 제방둑아래로 느릿느릿 내려가면서 물었다.
   “주인님, 괜찮습둥?”
  한길수는 물에서 허우적거리면서 상을 찡그린 채 호통쳤다.
  “야, 이 놈아, 아이고, 번마다 사고내니?! 아이고.”
  득호는 이를 쁘드득 갈았다.
  (개새끼, 항상 내 머리를 개화장으로 딱딱 치던 놈. 이번에도 썩어지지 않았구나. 내 네놈을 죽이지 못한 게 한이야.)
  “빨리 내 다리를 빼내라. 애고고, 아파 죽겠다. 사람을 살려라. 아이고, 나 죽는다, 죽어.”
  득호가 느릿느릿 내려가 안간힘을 다해 마차 한쪽을 들었다.
 그제야 길수는 마차 밑에 깔린 다리를 빼내고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그런데 이게 뭐야?
  물에서 벌떡 일어난 말이 똥물을 쫙 내갈겼다. 그 통에 한길수의 번대머리는 말똥물벼락을 맞고 말았다.
   “에퉤, 퉤! 재수 없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 등을 깬다더니, 에퉤, 퉤. 번마다 똥물 벼락이야. 이게 무슨 꼴이람?”
  한길수는 양손으로 낯에 뛴 말 똥물을 쓱쓱 닦으며 욕설을 퍼부었다.
  “개자식, 마차를 어떻게 몰았으면 이 넓은 길에서 강바닥에 처박힌단 말이냐? 에, 퉤, 퉤, 더러워라. 이전에도 딱 여기서 당나귀차를 번지더니. 이제 집에 가봐라. 네놈을 가만 놔두는가. 개 놈 새끼!”
  득호는 손바닥에 물을 담아 길수의 번대머리를 빡빡 닦어주면서 중얼거렸다.
  “죽었는가 했는데. 죽지 않았으면 다행입지.”
  길수는 아픈데 약을 올려 주는 것 같아 고래고래 고함쳤다.
  “이 개놈아, 내 죽기를 그리두 바랐느냐? 개자식! 말하는 거 보면 고의로 차를 번지지 않았어?!”
  길수는 부아가 터져 똥물이 다 씻어진 번대머리로 득호의 면상을 들이받았다.
  떵 소리와 함께 득호는 면상이 쥐가 밟아놓은 장마당이 돼서 강물 속에 썩박나무처럼 쓰러졌다.
  “아이고, 주인님도, 살려주니까. 뜨개소처럼 뜨긴?”
  길수는 강물에서 절버덕절버덕 걸어 제방둑으로 나가면서 고래고래 고함쳤다.
  “개자식, 집에서 쫓아내지 않는가 봐라.”
  길수는 제방 둑에 올라서서 발을 탕탕 구르면서 운주하강반이 다 떠나가게 고래고래 고함쳤다.
  “저 물에 빠진 마차를 어쩌느냐? 엉?”
  득호는 마차에서 말을 벗겨내면서 대구했다.
  “말이나 가져가고 마차는 내일 사람들을 데려다가 끌어 올려가지.”
  한길수는 야단쳤다.
  “마차를 잃어버리는 날엔 네놈의 목을 썩 베서 마차에 제사를 지내겠다.”
  득호는 말을 제방 둑에 끌어올려가면서 계속 맞대구를 했다.
  “무슨 장사가 있어서 마차를 강바닥에서 끌어다가 가져간다고? 해가 다 졌는데 내일 와서 끌어가지.”
  “무슨 일이오?”
 그들이 강바닥에 떨어진 마차를 내려다보면서 한참 찧고 박고 할 때다.
 생각지도 않은 병완이 돌아왔다.
  “저걸 어쩌느냐? 이 놈 새끼, 마차를 어떻게 몰았으면 강바닥에 처박혔다니까. 난 마차에 깔려 하마터면 죽을 번했네.”
  병완은 강바닥에 절벅절벅 내려가 마차를 들여다보더니 소리쳤다.
  “득호, 마차에 말을 메우게나. 내 뒤에서 밀게.”
  득호는 제방 둑에 떡 서서 두덜거렸다.
   “아무리 힘이 세도 말도 못 끌어올리는 마차를 어떻게 건지겠소? 내일 마을 사람들을 데려다가 끌어올리기오.”
   길수가 발을 탕 구르면서 득호의 뺨을 찰싹 갈겼다.
  “냉큼 말을 메우지 못할까?”
   득호는 병완이 마차를 바로 잡아 세워놓기를 기다려 말을 마차에 메웠다. 말이 앞에서 끌고 병완이 뒤에서 끙끙거리면서 힘써 떠밀자 마차는 힘겹게 한발자국한발자국 제방 둑으로 올라왔다. 그런데 원래 경사도가 급하여 말이 그만 무릎을 꿇었다.
   “말을 채찍으로 치게!”
   병완의 고함소리에 득호는 말 잔등을 채찍으로 짱 내리쳤다. 놀란 말이 벌떡 뛰어 일어나면서 우로 껑충 뛰어올라갔다.
   그때 병완은 마차 뒤끝을 번쩍 들어 둔덕 우로 떠밀었다. 마차는 제방 둑으로 올라갔다.
   병완은 손에 묻은 모래먼지를 툭툭 털었다.
  길수는 병완의 소 같은 힘에 혀를 끌끌 찼다.
  “아직도 힘이 무짐작이군.”
  길수는 분질러진 개화장을 들어 득호의 어깨를 탕 치면서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개놈새끼, 네놈은 한뉘 머슴질이나 하다가 썩어질 놈이야. 죽을 번 한걸 생각하면 네 각을 다 뜯어 버려도 원수를 다 하지 못하겠다.”
  “아이고, 주인님, 왜 이렇게 모질게 치오? 내일부터 내 마차를 몰지 못하면 누구 마차를 타고 명천에 갑둥?”
  득호가 익살을 부리자 길수는 뺨을 찰싹 갈겼다.
  “다시 마차를 몰아? 병수를 몰게 하면 했지. 마구간이나 쳐내라.”

  마차는 다시 어둠을 밟으면서 느릿느릿 달려 끝내 영월동에 이르렀다.
  높다란 토성 앞에서 한길수는 개화장을 짚고 쩔뚝거리면서 오만상을 찡그리었다.
  한길수는 집대문 안에 들어서기 바쁘게 엄살을 부렸다.
   “여보, 아이고, 나 죽소.”
  월선이 버선 바람으로 황급히 마루 아래로 뛰어내려 암범처럼 달려 나오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영감, 어찌된 일이예요? 어데 아파요?”
  월선은 한길수의 팔을 부축하다가 상을 찡그렸다.
   “으, 차가와! 아니, 옷도 폭 젖었구먼요. 어떻게 된 거요? 또 허리 뚝 부러지게 기생년들하구 놀았는가요? 풍류를 즐기구 아픈 건 괜찮잖은가요?”
   한길수는 월선의 살진 팔에 몸을 기대면서 오만상을 다 찌푸렸다.
  “마차 번지어졌어. 아이고, 허리, 다리 다 아파 죽겠소. 아니, 팔만 부축해 되오?”
   그러자 월선은 팔마저 활 놓아버리면서 발까지 동동 굴렀다.
   “어데 가서 오입을 하다가 혼나고 집에 돌아와 여편네하구 생 지랄이야!”
  길수는 절뚝거리면서 겨우 다리를 옮겨 디뎠다.
  “그런 일 없어!”
  그때 응삼의 집 방문이 배시시 열리였다.
  응삼의 처 춘실이 걀쭉한 낯을 반쯤 드러내며 바깥동정을 살폈다. 은녀도 물동이를 이고 대문 안에 들어섰다.
   한길수는 여자들을 보자 더 죽는 소리를 냈다.
   “이 쌍년들아, 제 집 주인이 아파 죽어도 대갈도 내밀지 않느냐? 저런 못된 계집들이라고야. 아이고, 나 죽는다, 나 죽어.”
  그제야 춘실은 끌신을 작작 끌며 달려 나와 한길수의 한쪽 팔을 부축했다.
  “아니, 주인어른, 어쩌다가 이렇게 모질게 다쳤어요?”
   길수는 침방울을 튕기면서 고양이 불알을 앓는 소리를 쳤다.
   “아이고, 저 득호란 녀석이 마차를 운주하에 처박았댔어. 아이고.”
    “저런! 우둔한 놈. 그래 마차는 마사지지 않았어요?”
   월선이 마차를 벗기는 득호를 흘겨보면서 묻는 말에 길수는 월선을 활 밀치면서 버럭 화를 냈다.
   “저리 비켜! 내 상한 게 중요하냐? 그따위 마차가 중요해?”
   그제야 월선은 혀를 홀랑 내밀었다.
   “당연히 우리 주인님이 중요하지요. 해해해.”
   월선은 부엌 문선을 잡고 서있는 은녀가 눈에 뜨이자 호통 쳤다.
   “이년아, 멀쩡히 서서 뭘 해?! 주인어른을 부축하지 못하고.”
   월선은 참말 시어미 역정에 개 배때를 차는 격이라고나 할까.
   은녀는 머리를 숙이고 바삐 춘실과 함께 한길수를 거들어 마루에 올랐다.
  한길수는 겨우 걷네 마네 하면서 호통 쳤다.
   “저리, 피하란 데도! 보기도 싫다.”
   월선은 눈을 흘리기면서 영감의 팔을 활 놓아 버렸다.
   (에구, 어째, 어떤 땐 내 궁둥이를 졸졸 묻어다니다가, 흥! 이젠 다 파먹은 김치 독이라고 헌신짝 버리듯 하려고? 흥, 바람둥이 개 버릇을 개를 떼 주겠어? 양태머리 체네 보니 또 싱숭생숭해나나 보지.)
    방안에 들어가자마자 한길수는 앓음 소리를 내며 쿵 쓰러졌다.
   “아이고, 나 죽는다. 아이고, 내 다리야, 허리야! 여보, 젖은 옷을 벗기고 새 걸로 바꿔 입혀주오. 허리에 요도 깔아주오. 아이고, 저기 냉수도 한 사발 떠오오.”
    월선은 밀창을 활 열고 들어와 두덜거렸다.
   “어떤 땐 ‘저리 피켜!’라고 호통질치더니, 흥! 어떤 땐 시중이 끝이 없어? 쳇!”
   월선은 영감의 젖은 옷을 와락와락 벗겼다.
   한길수는 황급히 사타구니를 두 손으로 붙잡았다.
  월선은 춘실과 은녀를 올려다보면서 호령햇다.
   “잠간만 나갔다가 들어오너라.”
   춘실과 은녀가 나가면서 미닫이를 닫아버렸다.
   월선은 사타구니에 걸친 젖은 것마저 벗기고 고리궤짝 안에서 새것으로 꺼내 바꿔 입혔다. 그리고 고리궤짝 우에 얹어놓은 요를 와락와락 내리워 길수의 허리 밑에 펴주면서 두덜거렸다.
   “에구, 한 둬달은 편안히 자게 됐구먼.”
    한길수는 신음소리를 연신 내면서 요를 깔고 들어 누우면서 욕설을 퍼부었다.
   “아이고, 남은 아파 죽겠는데 계속 악다구니질이야.”
   월선은 젖은 옷을 훌 안아 미당이를 열고 활 내던졌다.
   “은녀야, 그걸 씻어 말리어라. 이 바쁜 양반이 래일 입고 가야지.”
   은녀가 젖은 옷을 들어 부엌 쪽으로 내려갈 때였다.
   “아이고, 나 죽는다. 춘실아, 들어오너라. 은녀도. 얼른!”
   한길수는 미닫이를 열고 들어오는 춘실을 보더니 우멍 눈에서 한 가닥의 이상한 빛이 번쩍였다.
   “춘실아, 여기 다리를 좀 주물러라. 아파 죽겠다.”
  춘실은 감히 손을 척 대지 못하고 월선의 눈치를 올려다보았다.
  월선은 또 빈정거렸다.
   “주물러 줘라. 젊은 년의 손길이 더 좋은 모양이야.”
   월선은 아예 안방에서 훌 나가더니만 미닫이를 쾅 닫아버렸다.
   (허리와 다리를 상한 놈이 설마 일을 치겠어? 흥!)
  월선은 안방에 대고 소리쳤다.
   “은녀야, 넌 부엌에 내려와서 저녁상이나 차려라.”
   “예.”
   은녀는 위방에서 나와 부엌에 내려가 젖은 옷을 함지에 불러놓고 저녁밥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그는 어느 것부터 먼저 했으면 좋을지 몰랐다.
   위방에서 색정광 한길수가 수작을 피우는 소리가 역겹게 들리었다.
   “아이고, 좀 우로 올라가면서 꽝꽝 주물러라. 오, 오호, 그래, 어 시원하다.”
   춘실의 간드러진 목소리가 들리었다.
   “주인어른, 우리 집 사람은 함께 오지 않았어요? 아니면 우시장 공지에 있어요? 좀 우리 집사람을 많이 봐주세요.”
   “그래, 근심하지 말라. 오늘 신흥동에 인부들을 모집하라고 보냈다. 에구, 아픈 데를 그렇게 주무르면 어찌나? 살살 만져라. 응, 응, 오호, 그래, 그렇게 살살. 그래. 아, 참 좋아.”
   월선은 아래 방에서 위방에 대고 입귀를 비쭉거렸다.
   (에구, 연놈들이 한창 논다. 음특한 놈, 허리 분질러져 가지고도 또 거기 근질거리는 모양이지.)
   이때 안방에서 길수의 소리가 울렸다.
   “거게 은녀 있냐? 춘실이 힘들어하니까. 이젠 네가 올라와 문질러라.”
   월선은 듣다못해 위방을 향해 소리쳤다.
   “아니, 저녁밥상을 차리는 애를 불러 가면 저녁은 언제 들겠어요?”
    “안 먹어도 돼. 아파죽겠는데 저녁은 무슨 놈의 저녁. 아픈 데부터 만져야지. 으 흐, 시원하다.”
    월선은 두덜거리면서도 은녀를 올라가라고 눈짓했다.
   은녀는 행주에 손을 닦고 나서 위방 미닫이를 주르륵 열고 들어갔다. 이윽고 위방에서 한길수의 만족한 말소리가 들렸다.
    “어, 시원하다, 시원해. 에구, 젊은 년의 손이 다르긴 달라. 보들보들한 게, 어, 시원하다. 시원해.”
   아랫방에서 월선은 위 방에 대고 “퉤!” 하고 침을 뱉더니 입귀를 비쭉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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