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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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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진달래 소야곡(48)
2020년 03월 18일 10시 02분  조회:1343  추천:1  작성자: 김장혁



                                             78. , 어머니
       먹장구름을 꿰뚫고 황혼이 붉게 타오르며 고향마을을 벌겋게 물들였다. 황혼의 꽃노을은 아직도 아름답건만 그 놈의 해가 꼴깍 넘어가는데야 무슨 수가 있는가? 꽃노을은 그리움과 아쉬움을 불태우며 어둠 속에 서서히 고향 마을을 떠나 사라지고 있었다.
일찍 아버지가 사망한 후 홀로 난 어머니를 모시는 일을 두고 자녀들은 진지한 토론을 한 적이 있었다.
백호와 명희는 맏아들이 부모를 모시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면서 당장 자기 집에 모셔가겠다고 했다.
성호는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딱 맏아들이 모셔야 한다는 도리는 없소. 나한테 효성할 기회를 주오.”
명희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생원이, 동서도 집에 없는데 세집에서 살면서 어떻게 모신다고 그러오?”
백호도 동감을 표시했다.
“괜히 엄마를 마음고생시키겠다. 한뉘 농촌에서 살아온 엄마를 농촌에서 편안히 살게 해라.”
밭고랑 같은 주름살이 패인 영옥의 얼굴에는 수심에 찬 어두운 그림자가 흘렀다.
“맏이네 말이 옳다. 난 시내로 가지 않겠다. 한뉘 흙을 가지고 역사질하면서 살다가 어떻게 시내 집에 갇혀 살겠느냐? 이제 몇해 살겠느냐? 하루라도 땅을 밟으면서 살게 놔둬라.”
성호는 억이 막혔다.
영옥은 뒤말을 이었다.
“맏이네 집에도 가지 않겠다. 큰집 앞을 서서 이때까지 고생했는데 또 내까지 애를 먹이겠니? 맏이네두 이젠 예순이 넘어 며느리 덕에 사는데 손비한테 시할머니까지 모시게 하겠니? 난 농촌이 좋다. 누구네 집에두 가지 않겠다. 나절로 먹고 싶은 걸 해먹고 무슨 근심이 있니?”
성호는 어머니 손을 잡고 실토정했다.
“우리 집은 잠시 곤난할뿐입구마. 이제 내 광고회사 경리로 돼 돈을 많이 벌면 집도 널직한 걸 사놓고 엄마를 모시겠습구마. 한나 에미도 오래잖으면 나옵구마.”
“언제 나오니?”
모두들 성호를 쳐다보았다.
“공안기관에서 다단계판매 총책인 한국 사장과 마케팀장 그리고 우리 옆집 엄씨를 나포해 비법수입을 압수했다오. 우리도 집과 택시까지 팔아서 공안기관에 바쳤소. 이제 공안국에서 다단계판매 피해자들한테 돈을 되돌려주면 정희는 몇해  감형될게오.”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영옥은 잠시나마 조글조글한 주름살이 좀 펴지는 상 싶었다.
“어머니께 효성을 하는데 무슨 맏이고 막내고 있습니까? 부모님들도 해방 전엔 아침을 잡숫고나면 저녁쌀을 근심하면서도 효성을 다하잖았습니까? 다른 생각을 하지 말고 우리 집에 가깁소.”
그러나 영옥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럼 우리 집에 놀러 가면 안됩둥?”
그 말에 춘애와 은숙마저 이구동성으로 “엄마, 아버지 돌아가서 외로운데 성호네 집에 놀러 갑소.”라고 했다.
춘자는 정색했다.
“부모를 모시는덴 우리 딸들도 책임이 있습구마. 국가에서 반포한 로인권익보장법에는 모든 자녀들은 보모를 봉양할 책임이 있다고 법률적으로 규정했소. 우리 누나들이 어찌 어린 남동생한테 엄마를 맡겨놓고 아무 책임도 하지 않겠소?”
그녀는 자매들을 돌아보면서 뒤말을 이었다.
“이후에 어떤 방법으로 엄마를 모시는가하는 건 천천히 잘 토론하면서 모시자. 우리 형제들이 돌아가면서 모시든지. 누가 부모를 모시든지 형제들이 효성을 다해 도와줘야지.”
대학문을 나온 춘자는 항상 집 안에서 중점발언을 하면서 동생들을 이끌어나가군 했다. 그녀는 아들 둘의 뒤시중을 하면서도 종종 부모에게 용돈을 부쳐보냈고   성호가 대학공부를 할 때에도 방학에 가면 꼭꼭 용돈을 쥐워주군 했다.
오늘도 그녀는 녀동생들을 돌아보면서 중점발언을 했다.
“우리도 이젠 며느리와 사위 눈치를 보면서 살잖니? 효성은커녕 버릇 없이 놀 때 얼마나 섭섭하느냐? 우린 엄마한테 미안한 일을 하지 말자. 이전에 막내동생이 우릴 보고 자식들한테 모범을 보여주라고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지당한 말이야. 우리 이제부터라도 후회없이 엄마께 효성을 다하면서 자식들한테 모범을 보여주자.”
은숙도 동감했다.
“맞소. 나도 사위 둘이나 삼아서 이젠 생각이 다르오. 사위는 진짜 곱기도 하고 어렵기도 합데. 혜옥이 우릴 모시겠다면서 우리 집에 들어와 함께 살게 됐잖소. 그런데 한데 있으니까. 서로 불편해 틀렸습데. 가시어머니는 사위가 오면 개물함지에 빠진다고 하던데. 어째 사위가 어렵고 눈치 보입데. 우리 둘이 있을 땐 그저 있는대로 먹으면 됐는데 그 놈 사위 온 다음부턴 어쩐지 밥상을 여겨보는 거 같아 눈치 보이잖겠소. 날마다 무슨 채를 해야 될지 때근심을 하게 됩데. 되나가란 말도 못하고 마당에 있는 사양실에 가매를 걸고 나가 살아라고 했지. 우리도 아직 예순도 안되는데 걔들이 모실 필요까지야 없지비. 사위는 사양실에 있긴 자존심에 허락되지 않는지 오락가락 하는게 모르겠소. 사위 살던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겠는지.”
은숙은 화제를 바꿨다.
“이제 팔순이 넘은 엄마가 앉으면 얼마나 앉겠소? 우리 형제들이 돌아가면서 모시는게 좋을 같소. 우리 시집에서도 다섯형제가 돌아가면서 시엄마를 모시기로 했소. 시엄마 우리 집에 온데다가 혜옥이네두 우리 집에 들어와서 복잡해 죽겠소.  시엄마하구 혜옥이네 아니면 엄마 우리 집에 오면 좋겠는데. 살던 고향마을이지. 함께 살던 사람들이 많지 얼마나 좋겠소.”
맏딸 춘애만이 내밀게 없어 그러는지 묵묵히 앉아 있었다. 춘애는 아들 군춘의 딸 설매와 경미네 딸애 애화를 봐주고 용돈이나 얻어 근근득식하며 사는 어려운 형편이였다.
누나들의 말에 성호는 해가 서산에서 돋지 않는가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전에 부모를 모시는데 도와달라고 했을 때 “딸은 출가집 외인”이라고  딱 잡아떼지 않았던가?
좌우간 파릇파릇 싹트기 시작하는 누나들의 효성심이 고마웠다.
“엄마, 아예 우리 집에 가깁소.”
은숙의 요청에 영옥은 사양했다.
“고맙다. 누구네 집에도 가지 않겠다. 아직 혼자 살아도 된다. 이담 내절로 밥을 해먹지 못할 때나 보자.”
그때 춘자가 은숙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얘, 은숙아, 엄마가 어찌 마을과 동떨어진 사양실에서 살겠니? 너네 든 벽돌집은  부모 집이 아니고 뭐니? 엄마한테 돌려줘라.”
팩한 은숙은 단통 반박했다.
“그게 무슨 소리요? 우리 산 집이오.”
춘자는 랭소했다.
“야, 집값을 얼마나 냈느냐?”
“당장 만원을 물게.”
“야, 외상으로 산지 몇해나 됐니? 아예 벽돌집 엄마한테 돌려줘라.”
성호나 은숙은 뜻밖의 말에 깜짝 놀랐다.
은숙은 억이 막혀 입을 짝 벌린 채 한참이나 언니를 쳐다보았다.
“언니, 아무리 부모형제지간이라도 그렇지. 이미 산 걸 물리라는게 말이 되오?”
영옥은 손사래를 쳤다.
“야, 싹 그만둬라. 내 이제 살면 몇해 살겠다고 괜히 너네 싸우겠다. 너네 형제들이 싸우지 말고 살았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다섯 손가락에서 어느 손가락이 가시에 찔려두 아프다. 어느 자식을 욕해도 마음이 아프다.”
“부모자식지간에도 재산상속은 분명해야 합구마.”
“그만둬라. 내 때문에 계속 싸우면 양재물을 한사발 푹 타 먹구 죽어버리겠다. 내 죽는 걸 보자구 이러겠니?”
영옥이 너무나도 한심하게 나오자 모두들 그만두었다.
성호는 어머니를 위안했다.
“엄마, 절대 그 집 때문에 시비하지 않겠습구마. 근심하지 말고 우리 집에 놀러나 가깁소.”
그제야 영옥은 한숨을 후~ 내쉬였다.
집안은 다시 물 뿌린듯이 조용해졌다.
이튿날 영옥은 자녀들과 눈물을 흘리면서 갈라졌다.
은숙은 동구 밖에까지 따라오더니 뭔가 신문종이에 싼 걸 영옥한테 내밀었다.
“엄마, 집값이요. 먼저 1만원 주고 나머진 몇해 농사를 지어 꼭 주겠습구마.”
영옥은 “집값이라니 받을게.” 하고 보짐을 풀고 그대로 챙겨넣으려고 했다.
“엄마, 부모자식간이래도 돈은 세여 받으라 했습구마.”
“그래? 성호야, 세봐라.”
성호는 마지못해 돈을 세여본 후 엄마한테 되돌려주었다.
“아니야. 네가 보관해라.”
은숙의 말에 성호는 별수 없이 짐가방 안에 넣었다.
이윽고 성호가 부른 택시가 달려왔다.
성호는 어머니를 모시고 승용차에 올랐다. 한국에서 날아온 은자와 성숙은 하루라도 엄마와 더 동무해주려고 승용차에 올라 함께 시내로 떠났다.
아들딸들은 승용차가 아물거리는 점으로 될 때까지 동구 밖에서 손을 저으면서 서서 지켜보았다.
성호네 외통짜리 세집에 들어선 엄마는 마음이 아팠다.
은자와 성숙은 가슴이 갑갑했다.
(어쩜 마음씨 착한 막내동생이 이 지경이 됐단 말인가?)
성호는 어머니와 누나들을 대접하려고 물초롱을 들고 바깥으로 나가려고 했다.
“얘, 뭘 하러 가니?”
은자의 말에 성호는 희쭉 웃어보이며 “콩물국수나 대접하자고 그러오.” 하고 나갔다.
은자는 어머니를 보고 “에이구, 저 막내동생은 정말 효자입구마. 쟤네 좀 잘 살아도 엄마를 맡기면 좋겠는데.” 하고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때 성숙이 좋은 제안을 내놓았다.
“우리 쟤를 좀 도와 다시 일어나게 하면 어떻소?”
은자도 동감을 표시했다.
“좋지.”
성숙은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우리 한국에서 번 돈을 뀌워줘서 재차 택시를 사게 할가?’
은자도 무릎을 쳤다.
“그래, 택시업을 계속 해서 세집살이두 끊내게 하자.”
영옥은 량손으로 은자와 성숙의 손을 잡고 기뻐 어쩔줄 몰라했다.
“택시두 하구 며느리도 나오면 얼마나 좋겠느냐?”
모두들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점심에 한나가 학교에서 돌아와 반색했다.
“안녕하세요?”
“그래, 이젠 처녀 다 됐구나. 이젠 몇학년이냐?”
은자가 묻자 한나는 걀죽한 얼굴에 볼우물까지 옴폭 파면서 “고중2학년인데요.” 하고 생글방글 웃었다.
이윽고 성호가 물초롱에 콩국수에 채 몆접시 들고 와서 모두들 맛있게 점심식사를 했다.
성숙이 성호를 마주 보며 먼저 말을 꺼냈다.
“얘, 지금 택시를 하면 돈을 벌 수 있을가?”
“벌순 있소. 그런데 무슨  밑천이 있어서?”
“우리 뀌워줄게. 택시를 해서 새 집을 사고 네가 엄마를 모시면 어떻니?”
“그럼 얼마나 좋겠소? 그런데 한국에서 애나게 번 돈을 뀌워주면 매형이  좋아하겠소?’
성숙은 개의치 않았다.
“야, 매형은 막내처남이라면 아끼지 않는다. 그럼 우리도 엄마를 네한테 시름 놓고 맡기겠다. 세집에 살면서야 어떻게 부모를 모시겠니?”
성호는 코마루가 시큼해나 “감사하오.” 하고 말하면서 눈시울까지 붉혔다.
며칠 후 기쁜 소식이 또 하나 생겼다.
“정희가 출소해 집으로 돌아오게 됐소.”
성호는 기뻐 어쩔줄 몰랐다.
“올케까지 돌아오면 얼마나 좋겠느냐?”
“덕을 많이 쌓았다고 막내남동생을 하느님이 돕는 모양이야.”
“호호호.”
누나들과 엄마는 기뻐 어쩔줄 몰라했다.
뜻밖에도 정희는 출소해 세집으로 돌아오려고 하지 않고 본가집으로 가겠다고 떼질을 썼다.
그녀는 다단계판매에서 꼴을 먹고 시어머니와 시누이들을 볼 면목이 없었다.
“그래 한뉘 시집식구들을 보지도 않고 살겠소?”
성호의 말에 정희는 수척한 얼굴이 대뜸 새파랗게 질렸다. 그녀는 외까풀눈을 치뜨며 헛소리를 쳤다.
“말리지 마오. 집과 택시마저 날려버린 더러운 년인데. 내가 당신이라면 리혼해버렸겠소.”
성호는 눈물을 줄 끊어진 구슬처럼 줄줄 흘리는 정희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당찮은 소리요. 사람이 있어야 돈이 있지. 돈이야 없다가 다시 생기는 법이요. 이제 다섯째누나와 여섯째누나 한국에서 돈을 부쳐오면 재차 택시를 살 예산이요. 우리 택시를 해서 집도 사고 엄마를 모시고 잘 살아보기요.”
정희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게 어디 그리 쉬운가요? 집에 갈 면목이 없소. 본가집에서 혼자 조용히 있게 해주세요.”
성호는 별수 없이 정희를 본가집에 데려다주었다.
“절대 짧은 생각을 하지 마오. 마음이 진정되면 꼭 집에 돌아오오.”
정희가 다행히 머리를 끄덕였다.
성호는 가시부모께 인사를 드리고 정희를 맡겨놓고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와 누나들은 홀로 집으로 돌아온 성호를 보고 의아해했다.
성호는 선의적인 거짓말을 했다.
“본가집부모를 본 후 올게요.”
며칠이 또 지나도 정희는 머리도 내밀지 않았다.
누나네는 기다리다못해 올케를 만나보지도 못하고 한국으로 떠나갔다.
성호가 핸드폰을 아무리 쳐도 정희는 받지도 않았다. 몇번 더 치자 성가신지 아예 핸드폰을 꺼버렸다.
성호는 최후방법으로 한나를 외가집에 보내 엄마를 데려오라고 했다.
(아무리 감옥밥을 먹고 절망에 빠졌더라도 제 새끼 말이야 듣겠지.)
한나는 아버지 부탁대로 사과랑 바나나랑 사들고 외가집에 갔다.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다 큰 외손녀를 반겨 맞았다.
정희는 딸을 보자 와락 끌어안더니 “엉엉” 어린애처럼 대성통곡쳤다.
“어머니~ 집으로 가자요. 네?”
그러나 정희는 그저 울기만 했다.
엄교수 내외는 딸과 외손녀를 와락 끌어안고 함께 눈물을 흘렸다. 진짜 초상난 집같이 통곡소리 쓸쓸히 울려퍼졌다…
보름 후에 성호는 은행에 가서 누님들의 사랑이 폭 슴밴 한화 1,500만원을 찾아내 인민페로 바꾸었다.
은행을 나서는 성호는 가슴이 설레이고 어깨에 힘이 솟구치는 감을 느꼈다.
그는 심사숙고 끝에 가정을 살리려고 부득불 두번째로 모험의 길에 들어서지 않으면 안되였다. 짧은 시간에 뭉치돈을 쥐려면 물고기장사나 소장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번개처럼 번쩍 뇌리를 쳤다.
그러나 고민끝에 물고기장사는 포기하기로 했다. 개혁개방을 한지 20년이 되여  교통이 편리해졌기에 천수해의 식품상점이 아니라 시골의 죄꼬만 상점에도 신선한 물고기가 흔해빠졌다.
소장사는 감히 하는 사람이 적어 그런가. 알고보니 의연히 내몽골 소값과 고향의 소값은 엄청나게 차났다.
그는 단돈 5만원만 가지고 기차를 타고 밤도와 내몽골 쪽으로 달려갔다.
이전에 갔던 자그마한 시내에 가서 기차에서 내려보니 별로 변한것이 없었다. 그는 근 20년전 기억을 더듬으면서 이전에 들었던 려관으로 찾아갔다. 가을을 맞은 려관 울 안에는 전에 없이 울긋불긋한 갖가지 꽃이 활짝 핀 화단이 화려하게 펼쳐져 그윽한 향기를 풍기고 있었다.
려관 주인은 옛날 성호한테 소를 팔았던 목민 운두라바한의 딸 쑤싼나가 아니겠는가.
예전처럼 어글어글한 쌍까푼눈과 오똑한 코를 가진 쑤싼나(목란꽃)는 싱그러운 목란꽃처럼  예뻤다.
“와~ 오빠, 오랜만인데요. 참말 반가와요. 어떻게 돼 또 여기까지 왔어요?”
중년에 들어선 쑤싼나는 려관주인 틀이 잡혀 있었다.
“아버지랑 모두 잘 있소?”
“그래요. 아버지와 우크라한은 항상 오빠를 외우군 했어요. 어쩜 조선족 가운데 오빠 같은 매가 있는가 했어요. 우리 몽골족은 푸르른 초원에서 나래치는 매를 영웅의 상징이라고 보는데요. 오빠는 진짜 장백산 기슭에서 나래치는 매예요. 이전에 소무리를 강탈한 날강도들을 붙잡았지요. 또 여기까지 도망쳐온 조선족살인강탈범들도 나포하는데 한몫 했지요. 총을 든 강도들을 적수공권으로 용감히 싸워 나포했지요. 오빠는 진짜 우리 내몽골 초원의 용맹한 매와 같아요.”
성호는 희죽이 웃다가 정색했다.
“신셀 좀 져야겠소. 쑤싼나네 소를 사가야겠소.”
쑤싼나는 환성을 질렀다.
“잘 됐어요. 그러잖아도 아버진 소를 팔려고 했는데요. 인차 전화로 련계해드리죠.”
이윽고 쑤싼나는 손수 차를 몰고 성호를 무연한 초원이 펼쳐진 본가집으로 달려갔다.
성호는 달리는 차창 밖으로 이전에 자기가 소를 몰고 오다가 강도들한테 붙잡혀 묶이워있던 나무숲이 우거진 모래언덕을 다시 살펴보았다.
“잠간 세우오.”
쑤싼나는 승용차를 급정거했다.
성호는 승용차에서 내려 길가의 고목에 다가갔다. 그는 강도들한테 자기가 묶이웠던 고목을 매만지면서 마음 아픈 추억에 잠겼다.
쑤싼나는 눈물까지 글썽한 성호를 보고 물었다.
“오빠, 이 나무와 무슨 인연 있어요?”
“그래, 그때 우란크한과 함께 소를 몰고 여길 지나가다가 강도들을 만나 하마트면 죽을 번했지. 그때 난 입에 문 비수로 온몸을 묶었던 바줄을 끊고 간신히 강도들의 마수에서 벗어났지. 너네 아버지를 비롯한 온집 식구들이 목숨 걸고 구했기에 오늘의 내가 있지.”
쑤싼나는 성호의 아픈 추억이 깃든 나무를 매만지다가 머리를 들었다.
“어서 가자요. 해가 지기 전에 려관에 돌아가야 해요.”
그들은 수림 속의 모래 둔덕에서 내려와 다시 승용차를 타고 푸르른 초원으로 달렸다.
한 반시간 후에 성호는 푸르른 초원에 자리잡은 몽고포에서 운드라바한 부자를 만날 수 있었다.
20년만에 성호를 만난 운두라바한은 머리마저 희슥희슥했다. 그러나 그는 예전처럼 말을 타고 달리고 소들을 양새끼처럼 다루었다.
“진짜 내몽골 초원의 용맹하고 날랜 매입니다.”
성호는 엄지를 내둘렀다.
당년의 우란크한도 이젠 마흔고개를 쳐다보는 중년이 다 돼갔다. 그는 예쁜 색시에 열댓살 되는 딸까지 있었다.
“형님!”
“아우!”
그는 오랜만에 만난 친형제처럼 성호를 와락 끌어안았다. 그도 그럴것이다. 그들은 강도를 만났어도 생사를 함께 하면서 강도들과 목숨 걸로 싸웠고 공안국을 협조해 강도들을 나포한 내몽골족과 조선족 영웅형제 아닌가.
노란꽃을 수놓은 푸르른 초원에는 용맹하고 날랜 매 두마리가 훨훨 나래치고 있었다. 쥐새끼들이 깜짝 놀라 풀숲 속 쥐굴에 숨어버렸다.
성호는 친혈육의 정이 넘치는 운드라바한 가족의 도움을 받아 아주 손쉽게 소 60마리나 사서 기차에 부쳐 고향에 보낼 수 있었다.
성호가 떠날 때 쑤싼나는 가족을 대표해 하얀 하다를 목에 걸어주었다.
“감사하오.”
성호는 불시에 뭘로 보답해줄지 몰라 난처했다. 고향이라면 천지꽃산에라도  달려올라가 진달래꽃이라도 한줌 꺾어다주지 않겠는가. 그는 피뜩 손목시계가 눈에 띄자 쑥 벗어 쑤싼나의 손목에 채워주었다.
“고마워요. 조선족오빠한테서 받은 선물을 영원히 기념물로 보관하겠어요.”
쑤싼나는 성호를 눈물이 글썽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성호는 쑤싼나 일가와 아쉬운 석별의 정을 가까스로 참으며 리별하고 고향에 돌아오는 길에 돌아섰다.
고향에 돌아온 성호는 큰조카 일복과 둘째조카 정국을 데리고 천수해역에 가서 소떼를 몰아 고향 마을에 있는 사양실에 왔다. 그는 큰형님과 일복한테 로임을 주기로 하고 소를 방목하고 소사양실을 관리하게 했다. 장날이면 소를 가지고 가서 손수 한마리 한마리 처리했다. 초겨울이 다가올 때까지 소를 몽땅 처리해 단돈 2만원을 벌었다.
돈을 벌자 성호는 고향 빈곤호를 잊지 않았다. 그는 새해 농사를 짓겠는데 부림소가 없어 쩔쩔 매는 동불사령감과 세린하령감한테 소를 빌려주었다.
성호는 자기 번 돈을 은행에 선불금을 내고 대부금을 맡아 시내에 76평방메터 되는 엘레베터아빠트 한채 샀다. 뒤이어 가시부모의 가옥소유증을 은행에 차압하고 대부금을 내서 단통 택시 2대나 샀다.
한대는 사촌처남 준식과 준호가 몰게 하고 한대는 시내에서 운전수 둘을 고용해 몰게 하였다.
모든 일을 차근차근 해놓은 후 성호는 정희를 집에 데려왔다.
정희는 출소한 시간이 꽤나 돼 심리상태가 안정돼 순순히 새 아빠트로 돌아왔다. 이웃들도 그녀가 수감생활을 한 일을 모르기에 눈치가 보이지 않아 좋았다.
영옥을 보자 정희는 귀 밑까지 붉히면서 무릎을 꿇더니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며 대성통곡했다.
“어머님, 미안해요. 흑흑흑, 이제야 찾아뵙는 이 불효한 며느리를 죽여주옵소서. 흑흑흑…”
영옥은 며느리를 꼭 껴안아주면서 위안했다.
“아가야, 울지 말라. 다 며느리 잘못이 아니요. 사기군들한테 깜짝 속아 그랬지. 이제부터 우리 재미있게 살아보기요.”
“예-”
그제야 정희는 머리를 들고 일어나 앉으면서 손으로 눈시울의 눈물을 닦았다.
그녀는 팔을 걷어붙이고 집 구석구석을 걸레로 말끔히 청소한다, 이불장과 옷장을 뒤적여 세탁기에 걷어넣고 말끔히 씻는다. 때때로 시어머니 어디 불편한데 없는가 이것저것 문의하고 약방에 가서 약을 사서 대접한다 하면서 분주히 돌아쳤다.
동네 로인들은 이 집 며느리가 할머니한테 무슨 약을 대접해 무병장수한가고  놀러와 약통을 가지고 가서 아들딸을 보고 그 약 사달라고 재촉하였다.
영옥은 하얀 머리카락을 훔치면서이 불안과 거죽에 풀을 먹여 방치돌에 놓고 방치로 둥당둥당 두드렸다.
한나는 학교에 돌아오면 사과배를 깎아 할머니와 부모한테 돌아가면서 권했다. 그 모습을 보고 성호는 얼마나 기뻤는지 몰랐다.
(이제야 가정 같구나.)
정희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시내 목욕탕에 가서 때밀이군을 시켜 때밀이까지 해주게 했다.
며느리 성의와는 달리 시어머니가 노여워할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집에 돌아온 영옥은 며느리가 남새를 사러 장마당으로 간 틈을 타서 책을 보는 아들의 칸으로 건너와서 넌지시 말했다.
“며느린 내 때 많다고 더러워하는 것 같다.”
“아니, 어머니, 웬 말씀입니까?”
영옥은 터놓고 말했다.
“숱한 사람들 앞에서 쫄딱 벗겨놓고 때를 빡빡 밀게 하지 않겠니? 내 몸에서  국수오리만한 때 쭉쭉 일어나는 걸 보고 얼마나 창피했는지 몰라.”
성호는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다.
“엄마, 별 거 다 창피하다고 합구마. 며느린 엄마를 시원하라고 목욕탕에 모시고 간 겁니다. 왜 오해합둥?”
“걷어치워라. 어쩐지 시내 며느리 어렵구나.”
“오해하지 맙소. 엄마, 며느리 효성을 한겝구마.”
영옥은 자기 편을 들지 않는 성호를 보고 앵돌아졌다.
(옛말에 아들을 장가보내면 며느리한테 빼앗긴다더니 실말이구나.)
며칠 후 이번에는 정희가 성호한테 조용히 말을 건넸다.
“여보세요. 어째 시어머니 몸에서 무슨 냄새 나는 거 같애요.”
“고양이 코 해가지고 무슨 냄새 난다고 자꾸 그러오?”
정희는 대뜸 걀죽한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언제 자꾸 말한다고 그래요?”
성호는 코를 벌죽거리면서 냄새를 맡는 시늉을 했다.
“어째 냄새 나는 걸 모르겠는데? 괜히 신경 쓰지 마오.”
정희는 정색했다.
“어머니를 목욕시켰는데도 어머니 방에서 매캐한 냄새 나요.”
성호는 듣다못해 우쭐 일어나 어머니 방 쪽으로 가서 코를 실름거리면서 냄새를 맡아보았다. 아무리 맡아보아도 어째 무슨 냄새 나는 것을 맡아낼수 없었다.
그는 어머니 방 맞은 편에 있는 화장실을 보고 혹시 화장실에서 난 구린내를 가지고 그러지 않는가고 들여다보았다.
“옳지. 그럼 그렇지.”
그는 세면대 밑으로 뻗어나간 비닐하수도관이 련결된 도관구멍이 헐렁한 것을 발견했다.
(그래, 가능하게 저 하수도 구멍에서 역한 냄새 올라왔겠다.)
성호는 상점에 가서 반창고를 사다가 하수도 련결부위의 틈을 꽁꽁 막아놓았다.
정희는 계속 노린내 난다고 했다.
성호는 더는 참을 수 없었다.
“거 정말 냄새, 냄새 하면서 더럽게 논다. 무슨 냄새 난다고 자꾸 그러오?”
그는 옆에 멍해 서 있는 한나를 보고 나직이 물었다.
“무슨 냄새 나니?”
한나는 쌔물쌔물 웃기만 했다.
“냄새 나니? 안나니?”
그래도 한나는 쌔무룩이 웃기만 했다.
성호는 성이 꼭뒤까지 치밀었다.
“더러운 모녀, 이제 냄새 난다는 말만 해봐라. 가만 놔두지 않겠다.”
그는 그 놈의 냄새 때문에 고부 사이가 벌어지고 남편과 안해, 어머니와 아들간에 서로 오해하고 복잡해지기 시작할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성호는 어머니와 안해 사이에서 시집살이를 하면서도 서로 오해하지 않게 잘 설명하였다. 그는 될수록 안해를 설복하는 쪽으로 노력했다.
한나를 시켜 할머니한테 배도 깎아드리게 하고 뜨거운 물도 떠가게 했다. 퇴근만 하면 어머니칸에 들어가 얘기도 나누고 어머니한테서 살아온 얘기도 들었다.
또 어머니가 심심해하는 것 같아 모시고 객실에 나와 텔레비죤도 함께 보았다. 그러나 한나가 대학시험준비를 하는데 영향이 갈가봐 나중에는 어머니 방에 텔레비죤을 들여다놓고 구경하게 하였다.
쉬는 날에는 어머니 손을 잡고 승강기를 타고 내려가 집 동쪽의 양지바른 층계에 앉아 볕쪼임도 시켰다.
성호가 출근한 날이면 영옥은 뻐스정류소 걸상에 앉아 새하얀 머리카락을 흩날리면서 언제면 아들이 오겠는가고 하염없이 기다리군 했다. 아들이 오는 것을  보지 않고는 언제까지고 엉덩이를 떼지 않고 덤덤히 앉아 눈이 시리게 기다리군 했다. 그 애타는 기다림 속에 늙은 어머니의 모성애가 더욱 짙게 무르익어갔다.
아들만 퇴근해 저쪽에서 오는 것을 발견하기만 하면 반가와서 주름살이 밭고랑처럼 파인 얼굴에 함박꽃웃음을 짓군 하였다.
성호는 “엄마, 오래 기다렸잖습둥? 이젠 올가가깁소.” 하고 어머니 손을 정답게 잡고 집으로 올라갔다.
동네 할머니들은 “야, 어디 저런 효자가 다 있겠소?” 하고 혀를 끌끌 차군 했다.
성호는 동네 할머니들한테도 허리 굽혀 인사하고 식품상점에 들려 어머니가 잡숫기 싶어하는 과일이며 돼지고기며 붉이며(배추)를 사올려갔다.
정희는 남편이 사온 남새와 돼지고기를 한데 볶아 맛있는 채를 지어 시어머니 밥상에 올렸다.
그런데 새로운 변화가 생겼다.
정희와 한나는 영옥과 성호가 식사를 다하기를 기다려 숟가락을 드는 것이였다. 이전에는 네식구가 한 밥상에 앉아 다정하게 식사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정희가 “냄새”, “냄새” 한 후부터 생긴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비극적인 현상이였다.
성호는 화나서 밥상이라도 활 번져놓고 싶었다. 그러나 말썽이 생기면 어머니가 더 눈치를 보게 되고 마음이 안정될 것 같지 않아 억지로 꾹 참았다.
밤에 잠자리에 들어 성호는 넌지시 말을 꺼냈다.
“어째 엄마와 함께 한 밥상에서 먹지 않소?”
정희는 반대 쪽으로 모로 돌아누우면서 나직이 대답했다.
“어쩐지 시어머니한테서 역한 냄새 나요. 아니, 아주 지독한 냄새 나는 거 같아 마주 앉아 먹지 못하겠어요.”
“그래도 그렇지. 어쩜 그렇게 눈치 없소. 엄마가 며느리를 뭐라겠소?”
성호는 정희를 끌어안아 돌려눕혀놓고 똑바로 마주 보면서 애원했다.
“어쩌겠소? 그런대로 함께 식사하기오. 멀찍이 앉아서 제꺽 잡숫고 일어나오.”
그러나 정희는 앵돌아졌다.
“못하겠다는데 강요하겠어요?”
“제 그렇게 노니까 한나마저 따라 먹지 않지. 계속 이렇게 해나가면 뭐요?  만약 남들이 보면 뭐라겠소?”
정희는 이불을 훌 차버리며 발딱 일어났다.
“정 이러면 난 이 집에서 살지 못하겠어요. 내 어딜 훌 가버리든지 해야지. 원,  어디 혼자 효도 하란 말인가요.”
“지금 뭐라오?”
정희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에 노기가 꽉 찼다.
“리혼하자면 누가 겁내는가 해요?”
성호는 자기 귀를 의심했다.
(이제 어머니를 모신지 몇달이 돼서 ‘리혼’ 소리까지 한단 말인가?)
“금방 뭐라오?”
“아이유, 내 정말 이 놈의 집에서 답답해 못 살겠다. 활 리혼해버리고 말았으면!”
성호는 “내라고 리혼하자면 못할 거 같애? 나도 진짜 피곤하다, 피곤해.” 하고 말하려다가 용하게 꾹 참았다.
정희가 일시 밸김에 한 말을 가지고 탄할게 없었다. 더욱이 이 가정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감내하고 받아들이고 참으면서 인생의 행로에서 한발작한발작 조심성있게 걸어나가야 했다.
정희는 옷을 주섬주섬 주어입으면서 두덜거렸다.
“시어머니를 모시고 오더니 완전히 안해는 왼눈으로도 보지 않네. 이런 나그넬 믿고 어떻게 살아?”
성호는 어머니가 저쪽 방에서 듣는 것 같아 꼭뒤까지 치미는 밸을 꾹 참고 또 참았다.
그는 언성을 낮춰 조용히 타일렀다.
“정희, 우린 필경 대학문까지 나온 인테리 아니오? 이제 엄마 앉으면 몇해 앉겠다고 이러오. 우린 효성을 다해 어머니를 모시기요.”
정희는 픽 코웃음쳤다.
“이보세요. 동문, 결혼해서 20년이 되도록 날 해준 게 뭔가요? 옷 한벌 사줬소? 어딜 데리고 유람 갔소? 맛있는 음식을 한때 사준 적이 있소? 엄마 온 담엔 그저 ‘엄마’, ‘엄마’ 하면서. 언제 안해를 살뜰히 생각해준 적이 있는가요? 날 대를 잇는 도구로 써먹지 못하니 이젠 다 파먹은 헌 김치독처럼 내동댕이를 치려는게  아닌가요?”
성호는 정희 말을 들으면서 참담한 심정의 늪에 빠지고 말았다. 그러나 바깥으로 나가려는 정희를 용기내서 쫓아가 끌어안았다.
“미안하오. 정희, 너무 등한했소. 이제부터라도 잘 생각해줄테니 널리 량해하오.”
정희는 어린애처럼 왕왕 대성통곡쳤다.
“잔치첫날부터 시엄만 우리 엄마 젖값에서 옷감 한벌 줴내더구만요. 나는 무남독녀로 자라서 형제가 많은 동무넬 은근히 부러워했어요. 그러나 동무네 형제 열이지만 날 도와준 게 뭔데요? 남들 같으면 막내올케 시어머니를 모신다고 비단보에 싸서 이고 다닐 거야. 손가락 하나 싸맬 천이라도 사줬는가?”
성호는 어머니 방 쪽을 내다보더니 황급히 문을 닫았다.
“어째 겁나는가? 사실이 아닌가? 말해보라고.”
정희는 단말마적으로 대들며 성호를 마구 밀쳤다.
“정희, 건 내 알아봐줄테니 섭섭한게 있으면 나하구 말하오. 다 내 잘못이오. 그래도 이번에 다섯째누나와 여섯째누나네 돈을 보내와서 이 집과 택시 두대나 사지 않았소?”
“누가 코구멍만한 집 크게 보는 거 같애?”
“이제 택시를 해서 돈을 벌면 한국 유람도 데리고 가고 옷도 근사한 걸로 사줄게.”
“말만 들었으면 방귀를 타고 서울로 가겠다. 이날 이때까지 생각해주지 못한게 언제 생각해주겠소? 인생이 얼마라고 이렇게 항상 아글타글 하면서 살아야 하오?”
성호는 정희 가출을 어떻게 한나 말리려고 슬슬 얼렸다.
“쥐구멍에도 해볕이 들 때 있다고 내 이제 돈을 벌면 정희도 호강할 날이 있을 게오.”
“픽!”
정희는 코웃음쳤다.
“마흔고개 넘도록 하루라도 돈을 흔자만자 써본 적이 없어요. 당신 믿다간 한지에 방아 걸겠소. 당신은 마음만 고왔지. 제노릇을 할 사람이 아니오. 원래 동무 아버지부터 그래요. 공안국장을 하다가 농촌에 락향할 게 뭔가요? 한뉘 사회사업을 했다는 분이 자녀들한테 물려준 게 뭔가요? 동무도 아버질 닮았소. 소장사구 물고기장사구 해서 남은 게 뭔가요?”
“부모까지 욕보이지 마오.”
그러나 소용없었다. 정희는 계속 떠들어댔다.
“택시는 해서 돈을 얼마나 벌었어요? 사처에 벌려는 잘 놓아두 뭘 벌었소? 제노릇은 못하고 남한테 머절싸한 인심만은 후하게 잘 베푼단 말이오. 셋째누나한텐 밭을 주고서도 쌀도 받지 못했지. 그 좋은 벽돌집을 지어서 2년도 못 살고 셋째네를 눅거리로 줬지. 그것두 외상으로 줘버렸지. 순흰지 뭔지 하는 계집의 집엔 돈을 뀌워주고도 일전한푼 받지 않았지. 어째 아직도 첫사랑을 잊지 못해 그 쌍년한텐 선심을 베푸는가요? 사처에 정을 줄줄 늘여놓으면서. 내 학생 연화마저 빼앗아다 정을 베풀었지. 당신 정말 미안하지 않아요? 나한텐 보따리, 근심거리 밖에 주지 않았잖아요? 할 말이 있으면 해보라고. 흥.”
그때 한나가 문을 뚝 떼고 들어와 야단쳤다.
“야~ 아빠, 엄마, 좀 싸우지 마십시오. 어찌나 떠드는지 공부를 하지 못하겠습니다.”
성호는 한나한테도 미안했다.
“오, 그래. 우리 싸우지 않을게.”
한나는 새침해 돌아섰다.
정희는 성호를 훌 밀어놓고 기어이 바깥으로 나갔다.
“여보, 어디로 가오.”
“걱정말라고. 내야 어디로 가든.”
정희는 문을 쾅 닫고 휑 하니 가버렸다.
한나는 황급히 뛰여나와 멍해 서있는 성호를 보고 “아버지, 빨리 따라가보세요. 혹시 자살이라도 하면 어쩝니까?” 하고 소리쳤다.
“오, 그래. 나가보지.”
그때 어머니가 방에서 나와 울상을 지었다.
“얘, 어서 나가봐라. 내 때문에 싸운게 아니냐?”
“아닙구마. 엄마. 들어가 텔레비죤이나 봅소.”
어머니는 방으로 들어가면서도 장탄식했다.
“에이구, 내 빨리 죽어야 하는데. 팔순이 넘도록 오래 살아서 애들을 별 고생 다 시킨다. 에이구, 하느님도 눈이 멀었지. 어쩜 날 데려가지 않소? 이 놈 늙은 건 어째  죽어지지 않을가? 쥐약이라도 있었으면 걸직이 타 먹고 죽어버려야 하는 건데.”
성호는 황급히 옷을 껴입고 바깥으로 따라나갔다.
한나는 할머니를 부축해 방에 들어갔다.
성호는 눈보라 휘몰아치는 달빛어린 큰 길에서 긴 머리카락을 흩날리면서 서쪽으로 가는 정희를 발견했다. 아마 서쪽에 있는 대학교 아빠트단지에 있는 본가집으로 가는 것 같았다.
성호는 정희를 억지로 붙잡아 둘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뒤쫓아가지도 않았다.  그는 화를 내고 달아나는 정희를 보고 오히려 어머니가 불쌍했다.
(아, 어머니, 한평생 고생하면서 우리 아홉 자식을 낳아 키운 우리 어머니, 어쩜 숱한 자식들을 두고 늘그막에 이런 마음고생을 해야 합니까? 이 도리깨아들을 죽여주옵소서.)
이튿날 한나가 학교로 간 후 영옥은 막내아들을 보고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옛말에 굽은 나무 집을 지킨다고 했느니라. 뭐나 차한 자식이 부모를 지키지. 늙은 거 때문에 너넬 더 마음고생시키지 못하겠다.”
성호는 그 말의 참뜻을 다 리해하지 못했다. 다만 자기들이 싸워서 어머니가 얼마나 눈치 보고 오시럽겠는가고 생각됐다.
“엄마, 미안합구마. 우리 때문에 어제 밤에 제대로 쉬지 못하지 않았습니까? 근심하지 맙소. 절대 엄마 때문이 아닙구마. 오해하지 맙소. 정희 감옥에서 금방 나와서 직업두 떼웠지. 신경이 좋지 않습구마. 몇달 지나면 낫겠지요.”
어머니는 머리를 끄덕이면서 한숨만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사흩날만에 해가 서산에서 뜨지 않았는가?
정희가 집으로 돌아왔다. 아마 본가집 부모가 잘 설득해서 보낸것 같았다. 손에 팔모밥상을 달랑 들고 왔다.
그녀는 성호를 보고 나직이 종알거렸다.
“여보세요. 이 팔모밥상에 어머니를 따로 모시면 어떨가요?”
그 기발한 생각에 성호는 쾌자를 불렀다.
“그게 실제적인 거 같소.”
그날부터 정희는 맛있는 채와 밥 그릇을 팔모밥상에 담아 어머니 안방에 들여갔다.
영옥도 별로 다른 말이 없었다.
성호는 어머니가 고독해할가봐 안방에 들어가 동무해 식사하기도 했다.
정희와 한나가 집에서 나가자 영옥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팔모밥상을 잘 사왔다. 옛날부터 우리 조상들은 이런 팔모밥상에 시부모를  대접했지.”
그 말에 성호는 한시름을 놓았다.
영옥은 며느리를 돕느라고 집이 빈 다음에 객방이고 침실이고 돌아가면서 걸레로 말끔히 닦아놓았다. 또 손을 걷고 설걷이를 해놓기도 했다.
그런데 말썽은 끊이지 않았다.
정희는 집에 돌아왔다가 음식그릇을 다친 것을 보자 대뜸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다못해 퍼러뎅뎅해났다.
“에이유, 누가 그릇에 손을 대랍니까? 더러워 못 살겠다. 원!”
“뭐라오?”
성호는 더는 참을 수 없었다.
“엄마 손이 더럽다니? 엄마 그 손의 때를 씻어먹으면서 우리 열 자식들이 자랐소. 팔순 되는 엄마는 돕느라고 그랬는데. 그것두 말이라고 하오?”
정희도 너무한감이 들었던지 엄마 방을 힐끔 곁눈질하더니 언성을 낮췄다.
“까딱 다치지 않는 게 돕는 게요.”
성호는 더 할 말이 없었다.
정희가 밸을 쓰고 나간 후 영옥이 방에서 나왔다.
“얘야, 날 집에 돌려보내달라. 난 며느리 눈치 보여서 한날 한시두 살지 못하겠다.”
그러나 성호는 어머니를 눅잦혔다.
“엄마, 좀 힘들겠지만 꾹 참고 눌러있습소. 이제 어디로 간다고 그럽둥?”
영옥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야, 며느리 눈치밥을 먹지 않았으면 더 편안할 거 같다. 빨리 날 집에 돌려보내달라.”
성호는 딱 잡아뗐다.
“엄마, 엄마를 마을과도 떨어진 외딴 소사양실에 보내고 시름놓지 못합구마.”
“보내주지 않으면 내 혼자라도 얼마든지 갈 수 있어. 너네 몽땅 나간 후 내 아무때나 문을 꾹 닫아놓고 뻐스를 타고 가면 되지.”
“엄마, 절대 그러지 맙소. 팔순 넘어 어떻게 혼자 산다고 그럽둥?”
“어째, 엄마 쥐약을 사다 풀어먹구 죽는 걸 보자구 이러니?”
성호는 마구 막아서는 안겠다는 것을 직감했다.
“엄마, 이제 내 쉬는 날에 다시 보깁소.”
그제야 영옥은 허리를 구부정하고 어정어정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성호는 어떻게 하면 어머니를 효성을 다해 잘 모시겠는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북풍이 기승스레 불어쳐 모래알 같은 눈풍설이 창문을 쓸쓸히 두드리였다. 쓸쓸한 겨울 달빛이 차창가에 매달려 구슬프게 그네를 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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