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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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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졸혼 제1권(1) 김장혁
2022년 02월 14일 09시 55분  조회:1847  추천:1  작성자: 김장혁
     







                  대하소설
                                     
                           졸혼
(卒婚)
                                   
                               제1권
                                               
                                                              김장혁

                                 
                                            1. 생명의 끝자락에서


     문걸의 머리 속에 몇가닥의 해빛이 비껴드는 것 같더니 먹장구름이 마구 깨지며 불에 활활 타는 상 싶었다. 황혼이 벌거스름하게 가물거린다. 귀에서 바람 스치고 지나가는 듯하더니 귀구멍이 뻥 열린다.
“깨났어요!”
웬 녀인의 급촉한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문걸의 흐리마리한 눈에 하얀 모자를 쓴 걀죽한 녀인의 얼굴 허상이 천천히 들어왔다.
뒤이어 숱한 발자국소리가 어지럽게 들렸다.
“기적인데요.”
“진짜 살 가망이 없는가 했는데.”
느닷없는 침대머리에 둘러선 숱한 하얀 모자들의 경탄소리.
문걸은 맥없이 눈을 스르르 떴다.
“여, 여긴 어, 어딥니까?”
“병원 구급실이예요.”
문걸은 뭐라고 말하려고 피기 없이 허연 입술을 옴지작거리다가 말고 맥없이 눈을 스르르 감았다.
몇시간 후에 문걸이 다시 눈을 떴다. 흐리마리한 눈에 디룽디룽 매달린 링게르 병이 안겨왔다. 입과 코에는 산소호흡기가 덮씌워 있었다.
“정신이 들어요?”
하얀 모자를 쓴 걀죽한 얼굴이 다가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묻는다. 그러나 문걸은 대답할 맥도 없어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일주일만에 깨여났어요.”
(누구지? 영희? 춘희? 목소리가 틀리는데.)
사위를 천천히 둘러봐도 흰벽과 하얀 모자들뿐이였다. 사위가 온통 새하얗게만 보였다. 모든 것이 기억나지 않았다.
(어떻게 되여 여길 왔지?)
문걸은 온통 새하얀 세상에서 까마아득한 기억을 더듬으려고 애썼다. 아무런 기억도 없었다. 완전히 필림이 끊어졌다.
한참 후에야 머리에서 이상하게 토막토막 끊어진 허상이 마구 떠올랐다.
웬 일인지 머리가 천근무게 되는 것 같아 일어설 수 없었다. 누가 뒤통수를 탁 친 것 같았다. 입술이 마구 비뚤어지는 것 같았다. 누가 뒤에서 어깨를 꽉 짓누르는 것 같았다. 눈앞이 마구 캄캄해났다. 그래도 일어서려고 악을 썼다.
쿵!

“빨리! 휄체어를 가져오오!”
“빨리 구급실로!”
휄체어에 실려 달렸다. 새하얀 모자를 쓴 녀성 둘이 휄체어를 밀고 복도를 달린다. 복도가 진절머리 나게 길기도 길었다. 놀란 표정들이 옆으로 피하며 스치고 지나간다.
 
“빨리, 혈압!”
“50 대 62!”
“지혈제!”
“혈형?!”
“B형!”
“수혈합시다!”  

문걸은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머리 속이 새하얗다. 딱 마치 인간세상을 떠나 온통 새하얀 다른 세상에 갔다 온 것 같았다.
이튿날에야 문걸은 좀 정신이 드는 것 같았다.
이때 걀죽한 얼굴에 부드러운 웃음을 짓는 간호원이 다가왔다.
“괜찮아요?”
문걸은 머리를 끄덕이며 나직이 물었다.
“무슨 병, 병입니까?”
간호원은 대뜸 얼굴이 굳어졌다.
“혈변이 심했어요.”
(오- 화장실에서 대변을 봤지. 불을 켜지 않아 혈변을 본 건 몰랐지? 그저 설사를 했는가 했지.)
이때 담당 녀의사가 들어왔다. 하얀 위생모를 쓴데다가 안경 밑까지 마스크를 딱 끼여 얼굴모양은 전혀 보이지도 않았다. 외까풀눈 눈귀를 보아 한 40대 중반은 돼보였다.
“이제 위경과 대장경을 해봐야 진단이 나옵니다.”
녀의사는 말을 마치자 문걸의 눈까풀을 뒤집으며 동공을 들여다보았다. 딱 구급실에서 그랬다. 동공이 퍼지면 죽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녀의사 말소리가 이상하게 좀 귀에 익어보였다.
(구급실에서 듣던 목소리?)
“지혈이 돼서 위험기는 넘겼어요. 그러나 절대 방심해선 안돼요. 침대에서 힘스레 돌아눕지도 마세요.”
(난 돌아눕기는커녕 입도 놀리기 힘든데.)
“요즘 혹시 무슨 약을 잡숫진 않았는가요?”
문걸은 한참 기억을 더듬다가 간신히 대답했다.
“아스피린…”
“아스피린?”
문걸은 머리도 끄덕이기 힘들어 눈까풀을 끔쩍이였다.
눈치 빠른 녀의사는 척 알아보았다.
“왜요?”
“심장이 좋지 않아서…”
녀의사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병원에 오기 전 날엔 아스피린을 대개 몇시에 잡쉈는가요?”
문걸은 겨우 기억을 더듬어 띄염띄염 대답했다.
“아마 밤 9시 반 쯤에…”
그제야 녀의사는 머리를 끄덕였다.
“알만해요.”
문걸은 잔등이 결려 견디기 어려웠다.
“누가 여, 여길 데려왔습니까?”
녀의사 대답에 놀랐다.
“120구급차에 실려왔어요.” 
(집에 누구도 없었는데. 누가 알렸을가?)
문걸은 녀의사의 왼쪽 가슴에 단 명찰을 보려고 애썼다. 그러나 명찰을 번져놔 이름을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링겔병을 쳐다보더니 비닐관을 톡톡 쳐 공기를 뺐다.
“됐어요. 쉬세요.”
녀의사는 조용히 나갔다.
간호원의 걀죽한 얼굴이 문걸의 얼굴 가까이에 다가왔다. 숨소리마저 들릴 지경이였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문걸네 옆집 아주머니가 복도에 쓰러진 문걸을 발견하고 120에 알렸다고 했다.
그제야 그는 자기가 그날 대변을 보다가 쓰러진 일로, 아침에야 정신이 들어 다시 일어나려고 해도 일어날 수 없었던 일로, 살겠다고 최후발악을 하며 벌벌 기여 문을 간신히 열고 복도에 나간 일을 간신히 떠올렸다.
“다행이예요. 120구급차에 실려 병원 구급실에 왔을 때는 완전히 혼미상태였죠. 휄체어에 싣고 달릴 때는 혈압이 엄청 떨어져 쑈크가 올 직전이였어요.”
“휄체어, 누가?”
간호원은 문께를 눈짓했다.
“저분 의사와 제가 휄체어에 싣고 구급실에 달렸지요. 그때 우린 다 사망했는가 했어요. 그러나 심장맥박이 가늘게 뛰더군요. 진짜 생사선에서 구급됐어요.”
“오-”
(왜 집에서 쓰러졌을 때 핸드폰으로 120에 알릴 궁리를 하지 못했을가?)
아마 출혈이 심해 아무런 궁리도 나지 않은 것 같았다. 그저 한발자욱이라도 바깥에 나가야만 살 수 있다고 생각했을 수 있었다.
“안해 전화번호를 알려주세요.”
문걸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난감했다.
(내한테도 안해가 있는가?)
그는 아픈 마음을 쓸어내리고 한참 만에야 간신히 입을 열었다.
“미, 미국에 가, 가서 오지 못합니다.”
간호원의 걀죽한 얼굴과 초롱초롱한 깜장눈에는 놀라움과 더불어 동정의 잔물결이 잔잔히 흐르고 있었다.
간호원은 허리를 굽히더니 문걸을 안아 모로 눕혀 주었다. 결리던 잔등이 들리자 살 것 같았다.
“자녀들은요?”
순간 문걸은 그때만큼 외롭고 고통스러울 때가 없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난감하여 한참이나 눈을 감고 묵묵히 누워 있었다.
간호원은 기대에 찬 눈길로 문걸의 입을 바라보았다.
문걸의 입에서 한참만에 이런 말이 간신히 새여나올줄이야.
“아무도 없습니다.”
“네?”
간호원은 너무도 놀라 뒤로 물러섰다.
“미안해요.”
그녀는 다가와 문걸의 손도 주물러주며 부드럽게 말했다.
“구급환자이기에 옆에서 간호할 집식구가 있어야 하는데요. 조카나 친구라도 좋아요.”
문걸은 친인처럼 살뜰히 간호하는 간호원의 걀죽한 얼굴을 쳐다보았다. 순간 코마루가 시큰해나며 저도 몰래 뜨거운 눈물을 눈귀로 주르르 흘려 베개잇을 적셨다.
(글쎄, 정호한테 알리면 올 수도 있지.)
문걸과 정호는 죽자살자하는 한 고향 친구이자 사촌동서간이였다. 문걸은 정호를 내놓고도 도와준 친구와 동료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친구나 동료들한테 손을 내밀기 싫었다.
(아들딸한테도 알리지 못하면서 친구한테 알려?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먹어라, 쓰라 할 땐 좋지만 아플 때 알리면 부담을 주게 될게 아닌가? 더구나 퇴직한 후엔 단위 동료들도 하나, 둘 떠나가지 않았는가.)
문걸이 간호원한테 눈길을 돌리며 간신히 부탁했다.
“간, 간병원 찾, 찾아주세요.”
마스크 낀이 툭 풀리면서 간호원의 외씨처럼 걀죽한 얼굴이 다 드러났다. 그녀는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우유빛얼굴에 짙은 눈섭, 어글어글한 쌍까풀 깜장눈이 이뻤다. 그러나 쌍까풀 깜장눈에는 의아한 물결이 세차게 흘렀다.
“간병비 엄청 비싸요. 하루 24시간에 250원 내지 300원이래요.”
“간병비 근, 근심마십시오.”
“치료비도 금방 나간 의사가 먼저 댔는데요.”
“네? 명함은?”
“김춘희의사, 일본 도꾜의과대학 박사예요.”
“김춘희?!”
문걸은 너무도 놀라 벌떡 일어나려고 했다. 그러나 좀처럼 몸을 까딱 움직일 수도 없었다.
“이럼 안돼요. 내장에서 출혈할 수도 있어요.”
간호원은 그를 안아 되눕혔다.
“김춘희의사를 알아요?”
문걸은 머리를 가늘게 가로 저었다.
(세, 세상엔 같은 이, 이름도 많으니깐.)
“아차, 깜빡 잊었네요. 명함과 출생 년, 월, 일 어떻게 돼요?”
문걸은 목구멍으로 기여드는 목소리로 겨우 띄염띄염 말하였다.
“리문걸, 60세…”
간호원은 병지에 일일이 받아 쓰며 물었다.
“단위는요?”
문걸은 “건축설계원” 하고 대답하려다가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꿀꺽 삼켜버렸다. 퇴직한 후엔 단위에 손을 내밀기 싫었다. 더구나 단위에서 알고 영희한테 알리면 더 큰 일이였다.
간호원은 더 묻지 않고 병실에서 나갔다.
점심에 간호원은 중년녀성을 데리고 병실에 들어섰다. 간병원이였다. 그제야 문걸은 안도의 한숨을 후- 길게 내쉬였다.

                                                2. 짜증나는 잔소리

    문걸은 눈을 붙이기 힘들었다. 혹시 눈을 감으면 다시는 이 세상을 보지 못할가 봐. 구급해 구사일생으로 되살아나지 않았던가. 그날 아침에 옆집 한족아줌마가 복도에 쓰러진 것을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다시 눈을 떴겠는가. 춘희의사와 간호원이 휄체어에 밀고 달아다니면서 제때에 구급하지 않았더라면 진작 몇발자욱 옆에 있는 태평방에 옮겨졌다가 화장터에 실려 가지 않았겠는가.
문걸은 간호원이 침대머리에 둔 핸드폰을 간신히 들었다.
위쳇에 정호의 메시지가 제일 많았다. 쓰러져 구급실에 실려온 그날부터 줄곧 메시지가 오지 않았겠는가.
 
무슨 일 있느냐?
왜 대답 안해?
 
그런데 일주일 전에 함께 등산하러 가자고 약속한 등산대 녀친구 춘희한테서는 메시지가 하나도 오지 않았다.
(웬 일일가?)

이튿날 아침, 담당의사 김춘희와 간호원 등이 병실에 들어섰다.
“어떤가요?”
김춘희의사가 다가와 하는 살뜰한 문안에 문걸은 일어나려고 애썼다.
“움직이면 안돼요.”
간호원이 황급히 말렸다. 그녀는 문걸을 돌려 눕히고 이불깃을 꽁꽁 여며주었다.
“구, 구해줘서 감, 감사합니다.”
김춘희의사는 조용히 물었다.
“몇번 혈변을 봤는지 기억나세요?”
문걸은 눈을 감고 까마아득한 기억을 한참이나 더듬었다. 그러나 머리 속은 텅 빈 채 새까맣다.
한참 후 문걸은 간신이 띄염띄염 입을 뗐다.
“혈, 혈변인진 모, 모르겠습니다. 밤에 설, 설사를 서너번 본 거 같, 같습니다.”
김춘희의사는 의아해했다.
“변기를 보지 않았는가요?”
“위생실 전, 전등이 고장나…” 
김춘희의사는 머리를 끄덕였다.
목소리를 보나 걀죽한 얼굴이나 탄력있는 풍만한 몸매를 보나 딱 등산대 녀자친구 김춘희 같았다. 화가인 그의 눈은 틀림없었다. 아무리 안경을 걸고 마스크를 끼여도 너무나도 비슷해 궁금해났다. 다만 등산대 춘희는 쌍까풀인데 찬찬히 여겨보니 김춘희의사는 외까풀인데다가 안경을 낀 것이 미흡할 뿐이였다.
“치, 치료비 얼마 들었는지? 받으세요.”
문걸이 핸드폰을 쥐자 말렸다.
“후에 봅시다. 빈혈이 심한데요. 푹 쉬세요.”
그제야 문걸은 핸드폰을 쥔 자기 손이 피기가 하나도 없이 백지장같은 것을 발견하였다.
“혹시 등산대 춘희…”
“아니예요. 건강회복이 급선무예요. 푹 쉬세요.”
김춘희의사가 나간 후 간병원이 나직이 부탁했다.
“혹시 대소변을 볼 일이 있으면 사양말고 알리세요. 온 밤 소변 한번 보지 못했는데요.”
뒤이어 간호원은 문걸한테 알려주었다.
“일주일 동안 아무 것도 잡숫지 못하고 링겔로 버텼기에 대소변을 보지 못해요.”
간병원은 이번 환자는 림종간호를 해야 한다는 말은 들었다. 하지만 대소변도 보지 못한다는 말을 듣자 저으기 놀랐다.
간호원이 또 알려주었다.
“아직 신장이 제대로 작용하지 못하기에 잠시 소변보지 못했어요. 큰 문젠 없어요. 이제 신장기능이 회복되면 괜찮아요.”
그제야 문걸은 병이 중하다는 것을 느꼈다.
하루 24시간 간호원들이 련이어 단번에 링겔 두병씩 바꿔 달고 량손에 링겔바늘을 찔렀다. 이젠 손등의 혈관이 다 파나 링겔주사바늘을 찌를 혈관도 마땅찮았다.
문걸이 핸드폰을 들어 자기 모양을 동영상으로 촬영하며 들여다보니 얼굴에도 피기 하나도 없이 백지장 같지 않겠는가. 입술마저 피기 없었다.
 옆침대 환자도 온 밤 구급받다가 새벽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 담당의사가 황급히 달려들어와 청진기를 가슴에 대보고 눈까풀을 뒤집고 동공을 들여다보더니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간호원들이 산소호흡기를 떼내고 침대채로 밀고 태평방으로 나갔다. 쉰도 안되는 한창 나이 젊은이가 이 세상을 맥없이 떠나가는 비극이 벌어졌다. 가족들이 손으로 입을 막고 따라 나가면서 통곡쳤다. 구급실에서 몇발자욱가지 않으면 태평방이였다. 녀인네들의 통곡소리가 처량하게 들리였다.
문걸은 옆침대 있던 환자의 처지가 남의 처지 같지 않았다.
그는 침대에 누워 까딱할 수조차 없어 눈을 맥없이 내리깔았다. 언제 저승사자가 자기를 불러갈지 모를 판이였다. 눈을 뜨고 창밖을 내다보니 눈이 푸실푸실 내렸다. 그때만큼 네모난 차창 밖으로 마냥 보이는 흐리멍텅한 하늘 그리고 쏟아지는 함박눈마저도 그렇게도 희귀해 보일 때가 없었다. 아니, 창 밖에서는 피눈물에 젖은 새하얀 절망이 마구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이제 며칠 저 창문에 비낀 네모난 하늘을 바라볼 수 있을가?)
똑똑똑.
노크소리가 들렸다.
문을 떼고 들어온 이는 뜻밖에도 정호와 순정이 아니겠는가.
“이게 웬 일이냐?”
정호는 침대머리에 달려와서 문걸의 손을 잡고 놀라했다.
“자식, 이런 일이 있으면 알려야지.”
문걸은 그저 눈을 끔뻑이며 억지로 웃어보였다.
정호는 일주일 동안이나 핸드폰은 울리는데 련계 안되자 문걸네 집으로 찾아갔던 것이다. 옆집 아줌마한테 물어서야 사연을 알고 안해 순정과 함께 병원 구급실을 허둥지둥 찾아왔던 것이다.
“영희한테 알려야지.”
순정이 핸드폰을 입에 올리자 문걸이 손사래를 치며 제지시켰다.
문걸은 산소호흡기가 달려 있어 말할 수 없었다. 아니, 한입으로 그 리유를 다 말할 맥조차 없었다.
문걸은 기실 간병원과 간호원이 어찌나 살뜰히 간호하는지 영희를 알리지 않은 것을 후회하지도 않았다.
(에이, 영희 생각만 해도 진절머리 나.)
그는 몇번이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도리머리질 했다. 영희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살 것만 같았다.
날마다 영희는 아침부터 잔소리는 끝이 없었다. 구들을 닦아라, 설거지를 해라. 침대밑을 싹싹 닦아라.
사발과 쟁개비를 쳐들고 쌍까풀눈깔을 데굴데굴 굴리면서 “사발 밑굽까지 싹싹 닦아라”, “기름때는 세척제를 묻혀 빡빡 닦아라.” 맨날 짜증내면서 야단치지 않았던가.
둘이 사는게 사내느라고 틀을 차리고 돕지 않겠는가 해서 팔을 걷고 나섰건만 그놈의 앙칼진 잔소리에 여름날에도 온 집안에 서리 칠 지경이였다. 진짜 스트레스였다. 짜증났다. 그래서 로씨야 저명한 작가 레브. 똘쓰또이는 황혼에 로친의 잔소리 진절머리나서 집을 뛰쳐나가 엄동설한에 헤매다가 씨비리 산골의 한 기차역에서 얼어죽었다고 하지 않았는가. 어진간했으면 역무일군이 로친한테 알리려고 하자 똘쓰또이는 "얼어죽는게 로친 잔소리 듣는 것보나 낫소. 절대 로친한테 알리지 말라."고 유언을 남겼겠는가. 
고놈의 오똑한 칼날코는 매고양이 코보다도 냄새에 더 령민했다. 영희는 항상 냄새, 냄새 하면서 씩씩 칼날코를 발름거리며 냄새를 맡아대고 잔소리를 쳐댔다.
“좀 샤워하고 침대에 오르세요.”
“목욕하곤 털이랑 때랑 널린 걸 깨끗하게 청소해놓으세요.”
“위생실을 좀 깨끗이 쓰세요.”
상해에 아들딸 집에 갔을 때는 잔소리군들이 더 늘어나 진짜 하루 살기조차 구차해졌다. 아들딸이 퇴근해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문걸은  좀 쉬라고 설거지를 도맡다 싶이 하였다. 머리 시허연 령감이 기름이 덕지덕지한 그릇을 까실 때였다. 영희는 애 둘이나 안고 앉아 있고 아들과 며느리는 핸들 들어누워 텔레비죤을 보거나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판이다.
딸도 매한가지였다. 괜히 한집 건너 아래층에 집을 사줘서 딸년은 쩍하면 본가집에 기여들어와 실컷 파먹고 핸들 들어누워 애 궁둥이나 톡톡 두드리면서 엄마와 합세해 늙은 아버지를 보고 잔소리만 한다. 진짜 온집 식구들은 머리와 수염이 시허연 령감이 청소하고 설거지 하면 돕기는 커녕 몽땅 검사원이 돼 이 구석 저 구석 샅샅이 검사한다.  고놈의 입술들을 나풀거리면서 별의별 잔소리만 끝없이 쏟아져나온다.
딸 지예는 외까풀눈을 가슴츠레 뜨고 전기밥가마를 쳐들어보이며 잔소리했다.
“요 구석에 납짝 들어붙은 밥알도 싹싹 닦으십시오.”
“장대걸레 물을 좀 잘 빼고 닦으세요. 온 집 구들에 물칠하겠습니다.”
“요걸 보세요. 침대 밑에 먼지가 그대로 있습니다. 닦았는둥 마는둥 합다. 흐흐흐.”
“사발에 기름때 덕지덕지해 어디 더러워 밥을 떠먹겠는가요?”
“세척제를 좀 작작 쓰세요. 일년에 세척제를 몇병씩 먹겠어요.”
진짜 잔소리에 짜증났다. 온집 식구들 몽땅 머리 시허연 령감한테 잔소리하고 일을 시켜먹고 명령하고 검사독촉하는 최고지도자들이였다. 퇴직하고 늘그막에 제일 까다로운 잔소리대장들을, 피해 전근해갈 수도 없는 종신 지도자들을 만났다. 진짜 한국에 가 남의 집 시종을 하면 어디 이런 로임도 없는 머슴이 있겠는가.
문걸은 혼자 주방에서 설거지하면서 한탄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였다.
(세상이 바뀌였어. 잘못 돌아가고 있어. 이젠 우리 경상도 전통가정관념이 몽땅 무너졌어. 이젠 아들며느리 시부모 모시는게 아니라 시부모 아들며느리를 모시는 판이야. 모든 건 아들며느리 지시에 따라 움직여야 하지 않는가.)
외손자놈의 눈에도 보기 구차한지 어머니를 보고 종알거렸다.
“어머니, 어째 할아버지 혼자 일하구 엄마랑 아빠랑 다 놉니까? 할아버지 깨끗하게 닦았는데 왜 자꾸 욕합니까?”
죄꼬만 애한테서 장훈을 받은 며느리는 그저 시아버지를 핼끔 곁눈질할 뿐이였다.
역어빠진 며느리는 직접 시아버지한테 잔소릴 하지 않고 베개버리송사를 하군 하였다. 진짜 간사한 우회적 잔소리 끝이 없었다. 아들놈이 잔소리를 하는 날이면 십중팔구는 또 며느리 베개머리 송사로 인한 잔소리를 한 것이 틀림없었다.
맏손자놈은 할아버지 불쌍했는지 걸레를 찾아들고 아빠가 먼지 있다고 잔소리하는 구들구석을 쓱쓱 닦았다.
“얘, 더러워. 누가 널 그런 일 다 하라느냐?”
며느리가 짜증냈다.
문걸은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내 고생하는 것 쯤은 괜찮아. 그런데 장차 내 뒤를 이어 녀편네와 자식놈들한테서 세상 잔소리를 다 들으면서 고생할 아들과 손자들을 생각을 하니 불쌍했다.)
괜히 애들한테 잘못된 풍속을 물려주는 것 같아 당장 상해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애 셋을 보느라고 고생한다고 안해를 도와 청소하고 설겆이하고 애도 봐주는 것 쯤은 괜찮았다. 그러나 안해가 잠자리를 함께 하지 않는 것만은 진짜 고통스러웠다. 요행 어쩌다가 안해 옆에 누우면 발로 침대에서 차 밀어내고 지랄발광할 때가 많았다.
“애를 보고 곤해 죽겠는데 늙은게 주책 있소? 할아버지 다 된게 아직도 그 지랄하고 싶은가?”
어떤 땐 아예 문걸이 자기 곁에 다가들지 못하게 객실에서 손자들을 양팔에 안고 잤다.
그때만큼 고통스러울 때가 없었다. 청소하고 잔소리 들으면서 스트레스를 받아도 괜찮았다. 그래도 꾹 참고 살 수 있었다. 그러나 기본욕구마저 만족보지 못할 때만큼 고통스러울 때가 없었다. 머리 뗑해나고 마구 미칠 것만 같았다.
(이건 숱한 미녀모델에 대한 질투인가? 성복수인가?)
가슴이 갑갑해 당장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그때마다 문걸은 끌신을 끌고 상해 시내 거리에 나가 한참씩 돌았다. 그러고서야 한숨을 길게 쉬며 집으로 들어와 뜬눈으로 보낸 적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그는 끝내 속병이 나고야 말았다. 병치료를 받으려고 상해 포동비행장에서 비행기를 타고 하늘로 솟아오르는 순간 얼마나 좋은지 몰랐다. 그 놈의 짜증나는 아들집을 떠나 잔소리를 듣지 않으니 숨이 활 나왔다.
영희는 고향에 있을 때에는 집일은 꼬물만치도 하지 않고 날마다 짙게 화장하고 명품 복장과 가방 등으로 전신무장하고 사교무청에 가서 사교무교수들과 빙글빙글 돌아가지 않으면 어중이 떠중이들과 마작놀러 다녔고 교수들과 등산하러 다니지 않으면 유람하러 다녔다.
원래 1급무용수 인물체격에 화려하게 치장하고 나서자 느춤을 겔겔 흘리면서 나는 교수요. 나는 고급공정사요 하며 따라다니는 놈들도 많았다. 그래서 그릇과 녀자는 내돌구면 못쓰게 된다고 하지 않았는가.
영희는 남편을 의심하고 깐깐히 살피는 일에는 게을리하지 않았다. 진짜 의심병이 심했다. 문걸이 정호랑 한잔 하고 밤에 좀 늦어 집으로 들어오면 칼날코를 발름거리며 입으로부터 목, 가슴, 지어 거기까지 냄새를 맡아본다.
쌍까풀눈에 의심이 꽉 차 날카롭게 쳐다본다.
“웬 분내야? 어데 가서 색깔 했지?”
“아니, 웬 헛소리야. 생사람 작작 잡아라.”
문걸은 영희를 훌 밀어놓으면서 침실로 들어갔다.
영희는 따라 들어오면서 심문했다.
“오늘 누구랑 어데서 술 마셨어?”
문걸은 대수롭잖게 두덜거렸다.
“정호랑 술 마셨어. 뒤조사라도 할 예산이야?”
영희는 침실에서 문걸을 마구 떠밀어내며 호통쳤다.
“왜 묻는 말 대답 안해? 어데서 마셨어? 옆에 녀잔 없고? 또 미녀모델하고 마셨지?”
문걸은 곧이곧대로 실토정했다.
“정호랑 술 먹고 노래방에 갔댔어.”
“헐, 참 잘하는구만. 안해 보고 밤중까지 기다리게 하고 자기는 나가서 웬 계집들 껴안고 돌아가고. 흥!”
“나쁜 짓 하지 않으면 됐지. 왜 이리 의심해.”
문걸은 옷을 훌훌 벗어버리고 샤와실에 들어가버렸다. 기실 정호랑 함께 노래방에서 나와 안마방에 가서 마사지 받고 샤와까지 하고 왔다. 허나 고놈의 칼날코는 무슨 고양이 코인지 냄새를 잘도 맡아내지 않았는가.
문걸은 샤와를 틀어놓고 머리부터 씨원히 쌰와하면서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언제까지 저렇게 의심 받고 밥먹듯 잔소리 들으면서 살아야 할가?)

정호는 거의 날마다 순정을 데리고 문걸의 병문안을 와서 뒤바라지도 거들었다.
어느날, 정호는 순정이 자리를 비웠을 때 나직이 물었다.
“기어이 영희하구 갈라져 살겠느냐? 봐라, 이럴 때라도 영희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문걸은 그저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였다.
“의심병에 걸린 영희를 보기만 해도 진절머리 나. 술 한잔 해두 집에 가면 외깐 녀자하구 술 마시고 바람 피웠는가 의심해.”
문걸은 이렇게 대답하고 싶었지만 산소호흡기 때문에 한마디도 말할 수 없었다. 입술을 뗄 맥마저 없었다. 아니, 영희 말을 꺼내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게 싫고 염오감이 나는데야.
정호는 순정이 자리를 비운 틈에 또 물어보았다.
“앓을 땐 옆에 사람이 있어야 해. 영희한테 알릴까?”
정호가 핸드폰을 들자 문걸은 정호의 손을 잡아 끌어당기더니 손바닥에 뭐라고 쓰는 것이였다.
정호가 찬찬히 여겨보았다.
 
절대 영희한테 알리지 말라
 
“왜? 그래? 다 죽게 됐는데. 생존이 급선무야.”
정호는 애탔다.
문걸이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핸드폰 건판을 눌렀다.
 
      영희는 날마나 밤이면 침대머리에 꿇어앉아 기도해. 날 바람피우다가 썩어지라고. 하느님이 어서 데려가라고. 날마다 울고 불고 하면서 기도드려. 그 통곡소리 기절난다. 이젠 함께 살지 못해.
 
정호는 머리를 끄덕이였다.
“그럼 애들한테 알리자.”
문걸은 산소호흡기를 마구 떼고 고함쳤다.
“관둬! 다 쓸데 없어!”
정호와 순정은 눈길을 마주치더니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소릴 치는 걸 보니 이젠 살아났구나.”
침대머리에 앉은 간병원도 놀라 눈이 데꾼해졌다가 얼굴 근육이 천천히 풀렸다.
“이러면 안돼요.”
 간호원이 황급히 뛰어들어와 산소호흡기를 달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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