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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딩드레스는 왜 흰색일까?
2013년 12월 05일 14시 38분  조회:4906  추천:0  작성자: 단비
관습에 대한 이해: 밴드왜건 효과 웨딩드레스는 왜 흰색일까?
 

크리스마스에 가족들의 선물을 사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세뱃돈을 주는 풍습은 누가 생각해낸 것일까? 돌잔치 때 금반지를 선물하게 된 배경이나 결혼식 예물로 다이아몬드 반지를 선물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상에서 언급한 많은 것들을 우리는 ‘관습’ 또는 ‘풍습’이라 부르며 대개의 경우 아무 비판 없이 그대로 따른다. 그런데 이러한 풍습은 대체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웨딩드레스는 흰색이어야 한다’는 관습 또한 경제원리를 통해서 의미 있게 설명할 수 있다. <출처: gettyimages>

지금 우리가 관습이나 풍습이라고 부르며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따르는 일련의 행위들이 형성되는 과정에는 의외로 경제원리를 통해 설명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물론 인류의 문화 행태라 할 수 있는 관습이 경제적인 요인만으로 형성된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관습이나 풍습이 형성되고 지속되는 데 있어 경제원리가 중요한 요인 중 하나였음은 분명하다. 지금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기는 ‘웨딩드레스는 흰색이어야 한다’는 관습 또한 경제원리를 통해서 의미 있게 설명할 수 있다.

순백의 웨딩드레스는 어떻게 탄생했는가

빅토리아 여왕의 웨딩드레스 <출처: Wikipedia>

원래 웨딩드레스가 반드시 흰색인 것은 아니었다. 20세기 이전까지 결혼식을 묘사한 여러 그림이나 문학 작품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노란색, 파란색, 심지어 검은 색의 웨딩드레스도 입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순백색의 웨딩드레스를 대중에게 처음 알리고 이를 추종하도록 만든 사람은 누구일까? 그 주인공은 영국이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불리며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에 영국 여왕으로 등극한 빅토리아 여왕이었다.

사실 빅토리아가 영국의 여왕이 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녀가 왕위 승계 서열에서 한참 뒤에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왕이었던 조지 3세에게는 네 명의 왕자가 있었고, 이들 왕자들에게도 각각 자식들이 있었다. 즉 빅토리아는 사촌들도 많았다. 빅토리아의 아버지는 조지 3세의 아들 중 막내였기 때문에 빅토리아가 여왕이 될 가능성은 희박했다.

하지만 빅토리아의 할아버지 조지 3세와 그녀의 아버지 에드워드를 시작으로, 둘째아버지 프레더릭 왕자와 첫째아버지 조지 4세가 차례로 세상을 떠났다. 더군다나 그녀의 사촌 언니들도 모두 예기치 않게 사망하면서 그녀는 어느 순간 대영제국의 왕위를 물려받을 순위권에 올랐다. 빅토리아는 결국 18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영국 여왕이 되었다.

누군가 어린 나이에 여왕에 등극했다고 하면 그 자체로도 커다란 뉴스거리가 된다. 더군다나 당시 세계의 중심국가인 영국의 여왕자리를 놓고 일어난 일이니 이는 세기의 뉴스거리가 되고도 남았다. 그 당시 영국은 자국의 시간이 밤이더라도 세계 어딘가 영국의 식민지 중 어느 나라는 낮인 곳이 있기 때문에 ‘해가 지지 않은 나라’로 불릴 만큼 전 세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가였다.

빅토리아 여왕의 결혼식 <출처: Wikipedia>

이러한 영국의 어린 여왕 빅토리아의 행적은 이후 전 세계의 초미의 관심사였다. 사람들이 가장 먼저 궁금해 하기 시작한 것은 당연히 과연 누가 그녀의 남편이 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많은 유럽의 국가들과 왕실들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영국과의 관계를 원만히 하기 위해 영국 여왕의 남편으로 자신들의 귀족 또는 왕족과 혼인을 올리기를 원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영국 왕실은 빅토리아에게 여러 국가의 왕자들을 소개했다. 빅토리아는 그중에서 그녀의 외삼촌 격인 벨기에의 왕 레오파드가 소개한 독일의 삭스 코버그 공국의 앨버트 왕자를 선택했다. 그녀는 앨버트 왕자를 만나자마자 사랑에 빠졌다. 이러한 사실은 그녀가 앨버트 왕자를 단 두 번 만난 후에 바로 청혼했다는 사실이나 얼마 전 공개된 빅토리아 여왕의 일기를 통해서도 확인된 바 있다.

이제 영국 여왕의 남편이 결정된 마당에 전 세계인이 다시 궁금해 하기 시작한 것은 어린 영국 여왕의 결혼식이었다. 결혼식을 앞둔 영국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 등지의 많은 나라의 귀족들은 모든 것을 다 가진 여성이 선택한 결혼식은 어떠한 방식이며 드레스는 무슨 색일지 등에 대해 뜨거운 호기심을 보였다. 이에 대한 빅토리아 여왕의 대답은 바로 흰색이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알려진 사실이지만 빅토리아는 심각한 외모 콤플렉스가 있었다고 한다. 콤플렉스 때문인지, 아니면 18살 신부의 풍부한 감수성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면 그저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앨버트 왕자 앞에서 최고의 신부가 되고 싶은 마음 때문인지 모르지만 그녀는 그 어떤 여왕보다도 결혼식에 심혈을 기울였다.

빅토리아 여왕의 웨딩슈즈 <출처: Northampton Museum at en.wikipedia.org>

평소 미술에 관심이 많았던 빅토리아는 자신이 입을 드레스를 스케치하며 직접 디자인하는 의욕을 보였다. 그때 그녀가 일찍부터 낙점했던 것이 바로 드레스는 무조건 흰색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드레스뿐만이 아니었다. 결혼식장 자체도 흰색을 위주로 꾸미도록 지시하였으며, 각국에서 신부의 들러리로 초청된 12명의 공주들에게도 하얀색 드레스를 입히도록 하였다. 당시 여왕의 결혼식을 묘사한 기록들을 보면, 여왕의 결혼식에서 흰색이 아닌 것은 여왕의 가슴에 달린 파란색 브로치뿐이었다고 한다. 이 브로치는 신랑 앨버트 왕자가 준 선물이었다. 신랑이 준 선물은 어쩔 수 없었지만 그 밖의 모든 것들은 흰색을 사용해 분위기를 연출한 것이다. 어찌 보면 오늘날 우리가 결혼식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예식장 장면을 그녀가 처음 구성했다고 할 수 있다.

당시 영국 <더 타임즈>의 보도 내용 중에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인 적은 영국 역사상 없었을 것이다.”라고 표현한 구절이 있다. 당시 빅토리아 여왕의 결혼식이 얼마나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켰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빅토리아 여왕의 결혼식 장면은 그림, 사진, 언론기사를 통해 전 세계 여성들에게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이를 통해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 여성들은 세계 최고의 권력을 가진 여성이 선택한 웨딩드레스는 바로 흰색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 뒤로 많은 여성들이 자신도 순백의 결혼식을 올리길 꿈꾸었다.

밴드왜건 효과는 어떻게 확산되는가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선망하는 사람이 입은 옷이나, 먹는 음식, 사는 거주지를 추종하는 것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경제학에서도 다른 사람들의 구매 행태에 영향을 받아 유발되는 소비 현상을 설명해주는 이론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밴드왜건(bandwagon) 효과이다.

우리는 물건을 구매할 때 가격, 디자인, 성능 등 여러 가지 요인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구매를 결정한다. 그런데 이때 우리가 고려하는 사항들은 이러한 제품 내부 요인 이외에 다른 사람들이 해당 재화를 얼마나 많이 구매하는지에 따라 영향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경제학에서는 기본적으로 개별 소비자들은 다른 사람의 소비 행태와는 관계없이 자신의 구매 행태를 결정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말하자면, 개별 수요는 서로 상호 독립적으로 작용한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실제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목격되는 소비 행태는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예를 들어,특정 브랜드의 청바지가 유행이라 나도 덩달아 샀던 경험이 있다거나 정반대로 다른 사람들이 너도 나도 구입해 너무 흔해 보여서 정작 사고 싶었던 옷이어도 구매를 포기했던 경험을 떠올려본다면 이러한 사실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개인의 소비 행위는 다른 사람의 소비 행위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이처럼 다른 사람의 소비 행태는 또 다른 사람의 소비에 영향을 주는데, 이를 설명하는 이론 중 하나가 밴드왜건 효과이다. 밴드왜건 효과는 사람들이 많이 소비하는 재화를 나도 덩달아 소비하는 것을 말하며 이 때문에 ‘편승 효과’라고도 불린다. 원래 밴드왜건이란 서부 개척시대의 마차를 가리킨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황금을 찾아 서부로 떠날 때 덩달아 서부로 간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빗대어 이러한 소비 행태를 표현하게 되었다. 앞에서 제시한 사례처럼 특정 청바지가 유행한다고 해서 나도 하나 구입해본 경험이 있다면 이것은 밴드왜건 효과를 몸소 실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빅토리아 여왕의 웨딩드레스는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동일한 선택을 유발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즉, 다른 사람들의 편승 효과를 유발할 원인임은 분명하다. 특히 그녀는 많은 영국인들의 사랑을 받는 여왕이었기에 그녀의 모든 행동은 추종과 선망의 대상이었다. 영국인들이 빅토리아 여왕을 얼마나 진심으로 사랑하고 존경했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설문조사 결과가 하나 있다. 영국의 <텔레그래프>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재위 60주년을 기념하여 영국의 가장 위대한 군주를 묻는 설문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당시 설문조사 결과 빅토리아 여왕이 현 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35%)에 이어 2위(24%)를 기록하였다. 당시 설문조사가 현 여왕의 60주년을 기념하는 과정에서 실시된 조사였다는 점을 고려할 때 실질적인 1위는 빅토리아 여왕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아무리 존경하고 사랑하는 여왕이 선택한 웨딩드레스라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곧바로 이를 추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편승 효과를 유발하기 위해서는 흰색의 웨딩드레스가 전 세계, 전 계층이 쉽게 선택할 수 있는 가격 수준이어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흰색의 웨딩드레스는 상류층의 전유물로 동경의 대상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19세기 이전의 웨딩드레스는 흰색이 오히려 적었고 여러 색의 웨딩드레스가 더 많이 선택되었다. 아내의 웨딩드레스를 그린 폴 루벤스의 1630년 작품 <출처: Wikipedia>

실제로 당시 서민들은 자신의 웨딩드레스를 고를 때 단순히 결혼식 예복으로만 사용할 것이 아니라 이후의 집안 행사뿐 아니라 일상생활 중에도 즐겨 입을 수 있는 것으로 골라야 했다. 이 때문에 쉽게 때가 타거나 변색될 우려가 있는 흰색으로 웨딩드레스를 맞춘다는 것은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었다. 그래서 19세기 이전의 웨딩드레스는 흰색이 오히려 적었고 여러 색의 웨딩드레스가 더 많이 선택되었다.

이러한 실용적인 목적 때문만이 아니라 당시에는 흰색 옷감이 다른 색의 옷감보다 훨씬 비쌌다. 옷을 진한 색으로 염색하는 것보다 흰색으로 표백하는 것이 더 어려웠기 때문이다. 빅토리아 여왕이라면 흰색 옷을 입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겠지만, 일반인들에게 흰색 옷, 그것도 흰색 웨딩드레스는 동경의 대상일 뿐 결코 그에 편승한 소비 행태를 보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20세기 들어 상황이 달라졌다. 표백 기술이 보편화되면서 흰색 옷감의 가격이 다른 색 옷감의 가격과 비슷한 수준으로 내려온 것이다. 사람들이 이전보다 더 쉽게 흰색의 옷들을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이 도래하였다. 이와 함께 웨딩드레스하면 흰색을 떠올릴 수 있도록 만들어준 또 한 번의 사건이 등장했다. 1920년에 세계적인 디자이너 코코 샤넬이 하얀 웨딩드레스를 선보인 것이다. 이 때문에 순백의 웨딩드레스가 다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상에서 열거한 바와 같이 흰색의 웨딩드레스가 보편화되기까지는 세계적인 여왕과 디자이너의 선택, 그리고 소비자들도 기꺼이 선택할 수 있는 가격 수준이 뒷받침되었다.

무엇이 타인을 추종하게 하는가

빅토리아 여왕의 가족. 1846년. <출처: Wikipedia>

마지막으로 흰색의 웨딩드레스를 입고 결혼했던 빅토리아 여왕의 순탄하고 아름다운 결혼생활도 편승 효과를 유발하는 데 한 몫 했을 것이다. 21년 동안의 결혼 생활 동안 9명의 자녀를 낳고 행복한 나날을 보냈던 여왕은 남편이 갑자기 병에 걸려 사망하자 이후 자신의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무려 40여 년의 세월 중 많은 시간 동안 상복을 입으며 생활했다는 미담이 전해질 정도였다. 그녀의 자식 9명 모두 유럽의 주요 왕족들과 결혼하며 비교적 순탄한 결혼 생활을 했고, 이로 인해 빅토리아 여왕은 말년에 “유럽의 할머니”라는 별칭도 얻게 되었다. 흰색 웨딩드레스를 입고 결혼한 여왕의 결혼 생활에 대한 이러한 다양한 미담들은 많은 신부들로 하여금 흰색의 웨딩드레스에 긍정적인 선입견을 갖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빅토리아 여왕은 흰색 웨딩드레스 이외에도 여러 가지의 편승효과를 유발한 여왕이었다. 아동복의 대명사인 세일러 복장을 아이들에게 처음 입힌 사람도 빅토리아 여왕이었다. 1845년 영국 왕립 해군이 빅토리아 여왕의 아들인 에드워드 왕자에게 해군복을 선물했는데, 여왕은 왕자에게 이 옷을 입혀 공식 행사에 참석시켰다. 이러한 사실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당시 해군복을 납품하던 회사가 해군복을 어린이용으로 변형하여 만들어 공급하기 시작하였고, 유럽 귀족들 사이에서 아이들 복장으로 세일러복이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지금도 그 전통이 남아 있어 빈 소년합창단 등이 세일러복을 유니폼으로 채택하고 있다.

스카치위스키가 고급 술의 대명사가 된 데에도 빅토리아 여왕의 기여가 컸다. <출처: Guinnog at en.wikipedia.org>

스카치위스키가 고급 술의 대명사가 된 데에도 빅토리아 여왕의 기여가 컸다. 로크나가(Lochnagar) 위스키 증류소의 존 베그는 자신의 위스키 증류 과정을 여왕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내용의 편지를 영국 왕실에 보냈다. 실제로 왕실 가족은 다음 날 증류소를 방문해 스카치위스키를 시음했다고 한다. 이 후 빅토리아 여왕은 로크나가 증류소에 왕실이 인증한 위스키라는 칭호를 하사하였고, 여왕 스스로 보르도산 포도주에 이 위스키를 섞어 마시는 것을 즐겼다. 이러한 음용 방법이 ‘빅토리아 여왕의 술’로 알려지면서 그동안 영국 사회에서 저평가되었던 스카치위스키는 영국 상류사회의 대표적인 음료로 그 위상이 높아졌다.

이 밖에도 여왕이 즐겨 사용하며 기사작위를 부여한 도자기인 로열덜튼은 세계적인 명품 도자기가 되었고, 여왕이 아침에 즐겨 먹던 케이크는 빅토리아 스펀지케이크로 불리며 오늘날까지도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이상의 내용들을 보면, 전 인류가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며 따르는 관습도 처음에는 사소한 일화에서 시작된 것들이 참 많은 듯하다.

 

박정호/KDI 전문연구원

평소 “배워서 남 주자!”라는 신조를 갖고 있어 EBS, KBS 라디오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금융소외계층 등을 위한 강의활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한국경제신문 등 여러 매체에 자유기고가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경제학자의 인문학서재]1,2권과 [공기업 취업전략](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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