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후 무도장에 가길 원했었던 아버지
10여년전일이다.
퇴직하고 집에만 계시던 아버지는 어느날 무도장으로 놀러다니겠다고 선포하였다.
어머니는 아무 말없었고
오빠는 자기도 아버지랑 같은 남자라 항상 무조건 아버지 편에만 들다보니 역시 무언이였고
올케는 며느리라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영 반기지 않은 눈치였다.
아버지는 자기주장이 강한 분이여서 거의 누구도 아버지 생각을 꺾을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나에게 도움을 바랬다.
"주책없는 너네 아버지 니가 좀 말려달라!"
아버지를 설득하려 나는 주말에 고향으로 내려갔다.
아버지가 즐기는 타입의 세타, 잠바, 모자를 사가지고
"아버지! 무도장은 안됩꾸마!"
"어째 안되니?"
"무도장에 다니다보면 쉬쉬한 소문이 생기는건 시간문제인데 아버지는 남의 말밥에 오르는게 좋습둥?"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슬픈 표정뒤에는 화가 숨어있었고
꼭 마치 "새끼 무슨 쓸모있나"식이였다.
사실 우리 동네 점잖은 분이 계셨는데 무도장에 다니면서 짝꿍과부아줌마하고 눈이 맞아서 영화구경도 같이 다니면서
동네에 수많은 가쉽거리를 제공하였었다.
그것도 모자라 림종시에는 그 과부아줌마를 불러서 아끼던 손목시계를 사랑의 증표로 남겨주기도 하였다.
그분의 안해되는 분은 앓는 남편을 허탈하게 지켜보기만 하였구..
동네 이런 일이 있었던지라
나는 양보할수가 없었다.
"어떤 리유에서든 무도장은 안됩꾸마! 아버지도 우리 자식들 생각해서 이미지 관리 하셔야 합꾸마. 우리는 아버지 얼굴에 먹칠 하지 않으려고 노력을 다해서 열심히 사는데 아버지는 왜 자식들의 얼굴을 생각하지 않습둥?"
아버지는 나의 이말에 할말을 잃었다.
"평생 운동만 하여서 이젠 운동이 지겹다."
뜻인즉 운동하기는 싫으니 춤이라고 추면서 퇴직후의 외로움을 달래고픈 마음이였다.
"그럼 양걸춥소! 양걸도 춤이잼둥. 머 동네 과부들하고 눅거리 향수 뿌린 노친네들하고 오늘은 이 노친 내일은 저 노친 보기싫습꾸마! 아버지는 엄마 동네영감들하고 안고 춤추면 좋겠습둥?"
그날 아버지는 크게 화냈다. 내가 사드리는 옷이면 무조건 좋아하시던 아버지는 그날은 그 옷들을 다 던지면서
"다 필요없다. 싫다! 안입는다!"
그렇게 화내면서 놈을 내신게 거의 반년이 흘러갔다.
아마 퇴직후의 우울증 비슷한거였지만
나로서는 반대였다.
우리 딸들은 다 외지에서 살고 있지만
아들 며느리하고 가까운데서 사는데 혹시라도 이야기꺼리 만들면 오빠하고 올케가 힘들어질것 같아서
만류할수 밖에 없었다.
그 이후 아버지는 로년대학에도 다니고 문구장에도 다니고 글도 쓰시면서
의미있는 로년을 보내셨다.
물론 노여움도 다 사라지고.
올해 생일에 그 이야기를 내가 다시 꺼내니 아버지는 웃으면서
'어째 내 꼭 무도장에 다니겠다!"고 하셨다.
나는 "아버지 가면 나두 가겠습꾸마!"그랬고
"저눔이 가시내~~"
아버지의 말이다.
지나간 이야기를 아버지와 나눌수 있다는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이런게 사는 재미라고 생각한다.
ㅎㅎㅎ
아버지 말을 하고 나니 아버지가 보고싶고 눈물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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