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탱이의 歸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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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동행 8] 나, 덤으로
2015년 11월 25일 14시 51분  조회:2212  추천:0  작성자: 단비
나, 덤으로

-황인숙(1958~)


 
기사 이미지


 
나, 지금
덤으로 살고 있는 것 같아
그런 것만 같아
나, 삭정이 끝에
무슨 실수로 얹힌
푸르죽죽한 순만 같아
나, 자꾸 기다리네
누구, 나, 툭 꺾으면
물기 하나 없는 줄거리 보고
기겁하여 팽개칠 거야
나, 지금
삭정이인 것 같아
핏톨들은 가랑잎으로 쓸려다니고
아, 나, 기다림을
끌어당기고
싶네.


모리스 블랑쇼는 글쓰기가 “진정한 절망 속에서만” 가능하다고 했다. 진정한 절망이란 존재의 바닥을 경험하는 것이다, 글은 다름 아닌 그 바닥의 표현이다. 온전한 척 어깨에 힘을 준다고 해서 존재의 빈틈이 가려지지 않는다. 그나마 남아 있는 “푸르죽죽한 순”같은 생명성은 바로 그 바닥에서 발견되며, 그 때에 진정한 “기다림”과 기다림을 “끌어당기”는 힘이 생겨난다. 온전히 바닥에 내려갔을 때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절망 없이 희망 없다. 황인숙 시집 『슬픔이 나를 깨운다』 수록. <오민석 시인·단국대 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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