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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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대학공부(김동진)
2008년 06월 12일 09시 34분  조회:1576  추천:67  작성자: 조글로

나의 대학공부


김동진


문학강좌를 청취하는 어느 모임자리에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손을 잡고 건네는 인사말을 알아듣지 못한적이 있다.

“당신은 늘 솔직해서 좋더라이.”

어두운 밤에 홍두깨 내밀듯이 하는 친구의 말에 나는 어안이 벙벙하여 “무슨 뜻인지?” 하고 반문을 하지 않을수 없었다.

“략력을 쓸 때 말이요 언제 보나 ‘통신학부’라고 밝히는데 그게 좋단 말이요.”

친구의 해석에 나는 “아무 일도 아닌걸 가지고…”라고 얼버무리면서 멋적게 웃고말았다.

사실대로 쓴 학력인데 그것을 가지고 친구가 말을 만드는것이 조금은 이상스럽게 느껴지긴 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 말속에는 거짓학력으로 자기를 포장하는 인간들에 대한 경멸이 숨어있음을 엿볼수 있었다. 친구는 자기의 곧은 성미를 이렇게 표현했던것이다.

살다보면 간력이나 략력을 써야 할 일들이 많다. 특히나 글쟁이들에게는 짜증날 정도로 많은것이 략력쓰기이다. 신문 간행물에 손바닥만한 작품을 발표해도 략력을 요구하니 말이다. 개인저서로 단행본을 출판하는 경우에는 더구나 빼놓을수 없는 략력이고보면 략력이란 상당히 중요한것 같기도 하다.

나의 경우를 보면 략력을 쓸 때 제일 시끄러운것이 학력이다. 등기표의 “문화정도”란에는 “대학”이라고 적으면 되는데 학력을 증명하는 학교이름을 밝히라고 하는 경우에는 문제가 조금 달라진다. 눈을 질끈 감고 “연변대학”이라고 쓰자 하니 남을 속이는 일이여서 그렇게는 못하고 사실대로 적어넣는데 란이 작기에 작은 글씨로 “연변대학 통신학부 조문전업(본과)”이라고 밝힌다. 

내가 굳이 이렇게 하는것은“통신학부”라는 네 글자가 특별히 빛나기때문이 아니라 내가 한 공부가 바로 그런 공부였고 그것으로 받은 고등학교졸업증서에 연변대학의 붉은 도장이 박히긴 했어도 통신학부 본과 조문전업 졸업생이라고 명백하게 씌여있기때문이다.

솔직히 말해 통신학부는 말 그대로 통신대학으로서 정규적인 대학과는 많이 다르다. 통신학부는 중등교육수준에 머물러 있는 중, 소학교 교원을 위주로 한 사회성원의 자질제고를 목적으로 하고 과외와 통신이라는 형식과 수단으로 교학을 진행한다. 그러므로 학원은 모두가 본직사업과 생산일터가 있는 사회인들로 구성되였다. 이렇듯 “연변대학”과 “연변대학 통신학부”는 운영방법이 서로 다른 두개의 개념이므로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는것이다. 그럼에도 지내보면 “통신학부”를 졸업한 사실을 감추려는 사람들이 있으니 이 역시 하나의 페단이 아닌가싶다.

졸업학교를 “연변대학”이라고 쓰고싶은 마음은 나도 마찬가지이다. “연변대학+통신학부”라고 쓰면 체면이 깎이는것 같고 남들의 눈에 시시하게 보일수 있다는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여 정규대학을 다니지도 않고 다닌것처럼 꾸미고싶지 않은것은 그것이 나를 속이고 남을 속이는 비속한짓이기때문이다. 그리고 속인다 하여 나의 이름이나 몸값이 부쩍 오르거나 남들이 우러러보는것이 아니기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단 하나 나도 고등교육을 받았다는것만 나타낼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한것이다.

말이 난김에 좀더 웃기는 일을 꼬집는다면 통신학부에도 단기반, 속성반을 망라한 3년제 전과반이 있었는데 그것을 졸업하고도 본과공부를 한것처럼 한점의 부끄러움도 없이 출판물에 “연변대학”이라고 올리는것이다. 전과를 다니고도 본과를 다닌것처럼 꾸미면 무슨 리득이라도 있는것일가? 당안에 기록되여있고 컴퓨터에 저장되여있는 사실을 속이려 들다니. 하긴 가짜증건이 범람하는 세월에 대학졸업장 하나 위조하는것쯤은 식은 죽 먹기겠지만 함께 다닌 동기생들과 곁에서 지켜본 동료들이 다 알고있다는 점을 망각하지 말아야 할것이다.
백번을 곱씹어도 나의 대학공부는 연변대학이 설치한 통신학부에서 한것이다. 그런 연고로 하여 나는 연변대학 통신학부를 잊을수 없다. 황차 그런 교학구조가 내가 지망하는 우리 글 공부를 체계적으로 많이 할수 있는 배움의 대문을 열어주었음에랴!

내가 연변대학 통신학부의 학원으로 된것은 1965년 7월이였다. 당시 나는 고중을 졸업하고 2년간 농사일을 한 뒤 시골중학교에서 민영교원으로 조선어문을 가르치고있었는데 어느날 우연하게 신문에 실린 연변대학 통신학부의 학생모집광고를 보았었다. 워낙 교편을 잡기에도 자신의 지식이 너무나 짧다는것과 더 배우지 않고서는 문학도 할수 없음을 고민하던차에 이런 기회를 만난것이다. 나는 무작정 신청수속을 하고 목단강에 설치된 시험장으로 향하였다. 시험은 글짓기였는데 나는 생산대의 로사양원이 추운 겨울밤에 새끼를 낳는 어미소를 보살피면서 송아지를 살리려고 자기의 이불을 가져다 덮어주는 이야기를 소재로 하여 어설픈 글 한편 써서 바치였고 그것이 통과되여 5년제본과생이라는 합격통지서를 받았다. 그때의 기쁨은 하늘의 별을 따온것만큼이나 가슴 벅찬것이였다.

이렇게 나는 그해 여름방학 이불짐을 메고 난생처음 연길로 가서 대학의 교정에 들어가보았고 대학의 학생식당에서 밥을 사먹었으며 대학생숙소에서 잠을 자보았고 계단식강당에서 강의를 들어보았다. 
하지만 이런 좋은 날이 얼마 안되여 동강이 날줄이야… 

겨우 한해(1학년)가 지나 1966년에 들이닥친 전국적인 대동란으로 풍지박산이 된것이다. 정규대학의 전반질서가 “홍색폭풍”에 의해 무너지는판에 통신학부의 운명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그뒤로 11년이라는 잔혹한 세월이 흘러가고 마침내 먹장구름을 헤친 해빛을 볼수 있었기에 다행히도 나는 1978년 10월에 78년급생이라는 이름으로 학적을 회복할수 있었고 그렇게 다시 5년을 공부해서야 비로소 1983년 12월에 졸업증서를 받게 되였다. 따져보면 1965년 7월에 입학하여 1983년 12월에 졸업했으니 통신학부 하나를 마치는데 18년 하고도 반년이 더 걸린 셈이다. 21살에 시작하여 39살에야 졸업한 대학, 그 사이에 졸업도 하지 못하고 눈감은 학우들도 적지 않았으니 실로 지루하기 짝이 없는 18년이였다. “10년동란대학”까지 다녔으니 대학을 두개 나왔다고 할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이런 비정상적인 이야기는 우리 세대에나 있을법한 일로서 이 정도이면 기네스북에도 오를수 있지 않을가싶다.

통신학부의 학습은 여러가지로 힘들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방학이면 목단강, 계서, 오상, 할빈 등지로 교실을 옮기면서 10여일씩 집중연수에 돌격식강의를 듣고 만장 같은 숙제를 하고 시험을 치고… 그속에 배우는 즐거움이 있었던것이다. 그러한 간고한 나날이 있었기에 김기종, 류은종, 김운일, 림휘, 서일권, 최희수 등 여러 다학박식한 교수님들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외국문학, 중국문학, 조선문학, 수사학, 론리학, 교육학, 심리학 등 18개 과목의 방대한 수업과정을 마칠수 있었고 바로 이러한 학업을 통하여 나는 지식이라는 힘으로 무지라는 악과 몰렴치를 벗어날수 있었다. 모르긴 해도 이만한 지식마저 없었다면 나의 인생은 많이 슬프고 암울했을것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 학력으로 하여 덕을 많이 보았다. 중학교 조선어문교학을 감당할수 있는 밑천을 장만하였고 문학을 견지하여 창작할수 있는 기초를 닦았으며 정규대학졸업생과 동등한 대우를 향수하는 혜택을 받았다.

하기에 나는 통신학부 졸업생이라는 말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으며 체면이 깎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와 반대로 우리의 통신학부에서 수많은 유능한 민족간부와 교학능수, 공정사와 기사, 작가와 시인이 육성, 배출되였다는 사실을 놓고 자호와 긍지를 느낀다.

꺼릴것도 없고 깎일것도 없고 부끄러울것도 없는데 무엇을 속일것이며 무엇을 감출것인가? 이것이 내가 오늘 “통신학부”를 들먹이는 리유이다. 나는 누가 나에게 언제 어느 대학을 다녔는가를 물으면 서슴없이 “연변대학 통신학부 조문전업(본과) 78년급생”이라고 대답한다. 나 같은 사람에게 대학물을 마실수 있도록 사회와 기층에 눈길을 돌린 당년의 연변대학 통신학부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말하는것이다. 


<<연변문학>> 2008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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