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록음짙은 가로수의 그늘에 앉아 삼복철 찜통더위를 식히면서 그늘을 만들어준 나무에 감사를 드리다가 생각을 뿌리쪽으로 돌려보았다.
뿌리란 땅속에서 수분과 양분을 공급하여 식물의 몸을 일으켜세우고 자라나게 하는 식물구성요소중의 말단존재이다. 그러한 특정적인 밑바닥 삶으로 하여 안타깝 게도 인간들의 기억속에서 망각될 때가 많다.
허구한 날, 해빛 한점 없는 땅속을 안간힘으로 파고들어 줄기와 가지가 크고 잎이 무성하게 푸르도록, 그리고 꽃이 피고 열매가 주렁지도록 물과 양분을 쉬임없이 공급하는 뿌리는 생명이 맡겨준 직책 하나를 평생의 사명으로 받들어가고있는데 우리가 그것을 잊고 살 때가 많으니 실로 뿌리앞에 미안하다는 생각이다.
누가 알아주거나 말거나 불평 한마디 없는 뿌리! 자신을 희생하여 묵묵히 큰일을 할뿐 종래로 자기자랑을 해본적이 없는 뿌리! 더구나 한번도 그 누구의 찬사를 바란적이 없는 뿌리! 이 어찌 뿌리의 미덕이 아닐것인가!
흙묻은 구불구불한 힘줄로 지하에서 얼키고 설키면서 천지간에 푸른 생명의 사시를 엮어가는 뿌리야말로 “이름없는 영웅”이요, “숨어사는 영웅”이 되기에 손색이 없으리라.
잡초에 대한 신개념
“엄밀한 의미에서의 잡초는 없습니다. 밀밭에 벼가 나면 잡초고 보리밭에 밀이 나면 또한 잡초입니다. 상황에 따라 잡초가 되는것이죠. 산삼도 원래 잡초였을겁니다.”
이는 17년간 혼자서 산야를 돌며 4439종의 야생들풀씨앗을 채집했다는 고려대강병화교수님의 말씀이다. 의미심장한 이 말씀이 산에 들에 여기저기 절로 나서 자라는 풀이면 다 잡초라고 생각해온 나의 사전식 개념을 여지없이 뒤집어놓았다.
다 같은 풀이라 해도 제자리를 차지한 풀은 잡초가 아니요, 제자리가 아닌 곳에 부끄러운줄 모르고 앉아있는 풀이 잡초라는 신개념을 안겨준것이다.
사람이라고 어찌 다를수 있을것인가. 대중이 수요하는 곳, 마땅히 있어야 할 곳이 아닌데 기어코 눌러앉아있다면 잡초취급을 받아 미움을 당하고 잡초처럼 잘리거나 뿌리를 뽑히게 될것이다. 그러니 잡초가 되지 않으려면 언제 어디서나 앉을자리, 설자리, 누울자리를 잘 판단해야 한다는 말이다
나는 지금 잡초에 대한 신개념으로 지금의 내 자리가 과연 내가 있어야 할 자리인가를 다시금 생각해 본다.
아무리 성을 쌓고 남은 돌이라 해도 그리고 다 우려먹은 김치독이라 해도 있어야 할 자리에 있다면 “잡초”로는 되지 않을것이다.
빨래터
현지창작팀을 따라 조양이라는 시골에 갔을 때였다
산책삼아 마을을 한바퀴 돌아보는데 어디선가 귀에 익은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따라가보니 마을서쪽을 감돌아흐르는 자그마한 개울가에서 중년아줌마가 한창 빨래를 하고있었다.
“토닥토닥”, “찰싹찰싹”, 가락맞게 울리는 방치질소리!
그 소리를 듣노라니 오래전에 기억의 저켠으로 밀려난 빨래터가 보이였다.
동구밖 시내가의 빨래터, 너부죽하고 반반하게 생긴 큰 돌 몇개를 빨래판으로 고정시킨 자리, 바로 그곳에서 수도가 없고 세탁기가 없는 세월에 우리네 녀인들이 물을 긷는 역사를 덜면서 끝이 없는 빨래를 하지 않았던가.
빨래터는 시골녀인들이 세간살이의 고달픔과 지긋지긋한 가난의 때를 두드리는 자리였고 한담과 수다에 동네방네의 크고 작은 뉴스를 곁들이며 정보를 교류하고 정감을 소통하는 간이무대이기도 하였다.
그곳에는 흐르는 맑은 물과 반듯한 빨래돌과 빨래감과 빨래방치가 어울려 만들어낸 조화로운 음악절주가 있었다
“토닥토닥”, 그 소리는 우리의 가슴을 파고드는 정겨운 울림이였다.
“찰싹찰싹”, 그 소리는 우리의 살림을 정화하는 알뜰한 삽곡이였다.
연변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