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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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런(北京人)과 서울인의 음주문화 차이
2009년 01월 25일 18시 25분  조회:3671  추천:166  작성자: 김범송

  베이징런(北京人)과 서울인은 같은 동양문화권에서 속하고 유교문화의 영향을 받은 동아시아의 이웃국가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부동한 사회문화와 생활습관 및 음식문화를 소유하고 있고 술 마시기를 즐기는 아시아인임에도 불구하고 엄연한 차이의 음주문화를 갖고 있다.

  아래에 베이징과 서울에서 다년간 생활하면서 필자가 체감한 이 두 지방 시민들의 음주문화 차이점에 대한 소견을 몇 가지로 나누어 진솔하게 적는다.

  베이징과 서울사람들은 대부분 술 마시기를 즐기며 음주량과 술상소비 역시 대단하다. 그들의 일상에서 음주는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며, 친구사귀기와 비즈니스 및 팀워크 결성에 술상이 결코 빠질 수 없다. 북경인들은 떠들썩한 술상 분위기를 즐기고 주위를 크게 의식하지 않으며 도수가 높은 배갈에 여러 가지 요리를 청해놓고 한 장소에서 긴 시간을 할애한다. 반면 서울인들은 한 가지 위주의 담백한 요리에 도수가 낮은 소주를 선호하며, 조용한 분위기속에서 낮은 소리로 말하고 한 장소에서 오랜 시간을 소모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베이징사람들은 술상에서 상대와 정(情)을 논하며 관시(인맥)를 구축하는데 음주목적이 있는 반면, 서울인들은 팀워크를 돈독히 하고 일상에서 지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데 큰 비중을 둔다. 이 또한 한국에서 회식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흔히 베이징인들은 요리를 많이 먹고 술을 마신 후 식사는 나중에 한다. 그들은 술상 예절에 크게 구애받지 않으며, 술상에서의 흡연을 실례로 간주하지 않는다. 반면 서울사람들은 먼저 밥을 먹고 술을 마시며, 분위기에 따라 장소를 이동하면서 소주와 맥주를 번갈아 마시기를 즐긴다.

  한편 북경과 서울사람들은 모두 지방특산(술)을 선호하는 ‘신토불이’ 경향이 강한 편이다. 대부분의 북경인들은 지방특산으로 도수가 높은 얼궈토우(二過頭)와 연경(燕京)맥주를 즐겨 마시며, 서울인들은 참이슬(소주)과 하이트 · 카스(맥주)를 선호한다. 요즘 서울사람들은 일명 ‘50세주(백세주와 소주를 섞은 술)’와 ‘소맥(소주와 맥주를 짬봉한 것)’을 즐겨 마신다.

  평소 북경인들은 연장자와 술을 마셔도 곧 잘 어울리며, 선후배 관념과 위계질서가 상대적으로 박약하고 그것에 대해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비즈니스 술상에서도 직장상사를 크게 의식하지 않으며 분위기에 맞춰 돌아가면서 술을 권하고 술상의 만남(친분)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한다. 그들은 술 권하기를 즐기고 권주하는 사람은 대개 단숨에 굽을 비우며, 가끔 요리를 손님에게 직접 집어주면서 친분을 과시하기도 한다. 북경인들은 술상에서 비즈니스와 관련한 부담되는 이야기를 하지 않으며, 친절을 베풀면서 손님을 취하게 하고 자신도 취토록 마신다. 그들은 귀한 손님을 초대할 때 고급술과 많은 요리를 청하는데, 술 브랜드와 요리의 수량에서 주인이 손님에 대한 접대레벨과 친분관계를 알 수 있다.

  반면 서울인들은 비즈니스 술상에서 상하 · 수직관계와 위계질서가 명확하며, 상사의 면전에서는 가급적 말을 아끼고 과음을 삼가는 것이 술상매너로 지켜진다. 서울사람들은 보통 낯선 상대에게는 술을 권하지 않으며, 간단한 식사 후 그다음 본격적으로 술을 마신다. 그들은 장소를 옮기면서 술을 마시며, 분위기에 따라 양주와 소주 · 맥주 등 술 종류를 바꾸어 마신다. 대개 한국인들은 술보다 고기위주의 요리와 식사에 신경을 쓰며, 소고기와 회(膾) 요리를 고급음식으로 손님접대를 한다. 다만 평소 음식을 끊여먹고 생음식은 기피하는 중국인들에게 생선회 같은 요리가 크게 환영받지 못한다는 것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한편 장소를 이동해 술 마시는 음주문화는 ‘빨리빨리’의 한국인의 성격과 성급한 기질에 적합하며 금방 술상의 분위기를 돋우는 데는 별로 문제가 없지만, ‘만만디(천천히)’의 기질과 늦게 끓어오르는 중국인들의 성격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장소이동’의 음주문화는 술상의 분위기를 돋우는데 일정한 시간을 소요하며, 한번 달아오른 술상의 분위기를 끝까지 지키면서 술을 마시는 중국인들의 술 습관과 음주문화에는 저촉된다. 그것이 대다수의 중국인들이 한 장소에서 장시간 술을 마시면서 쉽사리 장소를 이동하지 않는 원인이기도 하다.

  베이징인들은 절친한 사이가 아니거나 초면일 경우에는 식당에 초대하지만, 상대를 친구 혹은 친분이 가까운 사이라고 생각하면 집으로 초대해서 술자리를 벌인다. 이때에는 부부가 함께 부엌에서 요리를 만들고 고급술과 찻물을 곁들여 풍성한 만찬을 준비한다. 그들은 온가족이 배갈과 와인 및 음료를 마시면서 손님과 함께 식사를 하며, 손님에게 번갈아 술을 권하고 요리를 집어주면서 친절을 베푼다. 술상은 오랜 시간 지속되며 가족 같은 분위기속에서 손님은 정에 못 이겨 저도 모르게 만취하게 된다. 따라서 식당 혹은 집에서 초대되었는가는 북경인들의 손님에 대한 친밀감과 친분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잣대가 된다.

  만약 외국인으로서 북경인의 집에 친구 혹은 귀빈으로 초대되었다면, 상대방이 당신에 대한 신임이 굉장히 두텁고 돈독한 친분이 이미 이뤄졌다는 것을 말해준다. 하지만 주인의 친절에 못 이겨 과음하여 취중실수를 한다면 초대된 손님으로서 큰 실례가 된다.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진 음식은 집주인의 성의를 보더라도 골고루 많이 먹고 ‘잘 먹었다’는 인사치레를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처음으로 (친구)집에 초대된다면 친구부인과 아이들에게 약간한 선물을 준비해가는 것도 외국인으로서 좋은 이미지를 남기는 효과를 얻을 것이다.

  반면 집이라는 사적인 공간에 친구를 초대하는 북경인들에 비해 서울인들은 절친한 친구 사이라고 해도 쉽사리 집에 초대하지 않으며, 흔히 고급식당이나 번화한 거리에 위치한 특식요리점에 손님을 초대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서울인들에게 집이라는 사적 공간은 타인에게 쉽게 공개할 수 없는 사생활범주에 속하며, 웬만해선 집으로 손님을 청하지 않는다. 혹시 집에서 손님을 초대하더라도 식사와 술상을 구분하여 고기요리 등 풍성한 음식상을 마련하지만, 초대한 손님에게는 식사를 위주로 하고 권주는 삼가는 것을 예의로 간주한다.

  한 · 중 양국의 사회문화와 생활습관의 차이로 인해 북경인과 서울인 사이에는 엄연한 음주문화 차이가 존재한다. 예컨대 평소 서울인들이 가까운 친구 사이에 술잔을 주면서 술을 권하는 (술)습관은 북경인들에게는 실례가 된다. 이는 손님의 주량과는 상관없이 연신 술을 권하며 본인 젓가락으로 손님에게 요리를 집어주는 중국의 술문화에 한국인들이 바로 적응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아울러 도수가 높은 술을 마시는 북경인들은 음주 후 많은 찻물을 마시지만, 담백한 소주를 선호하는 서울인들은 음주 후 커피를 즐겨 마신다.

  한 장소에서 도수 높은 배갈에 느끼한 볶음요리와 찻물이 동반되는 것이 북경인의 음주문화라면, 장소를 자주 바꾸며 도수 낮은 소주에 담백한 요리를 먹는 것이 서울인의 술문화이다. 한 · 중 양국 간에 현존하는 문화차이 인정과 수용이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와 돈후한 우의 증진에 가장 중요한 필수적 조건이라고 한다면, 소주와 삽겹살 조합의 술문화와 얼궈토우와 양고기 샤브샤브를 애용하는 음주문화 모두가 존중을 받아야 하는 이유가 된다.

  요컨대 한 · 중 두 나라의 엄연한 문화차이를 인정하는 동시에 음주문화를 비롯한 식생활의 문화차이를 상호 긍정하고 적응하려는 노력이 우리에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것이 서로에 대한 오해와 불신을 줄이고 신임과 우의를 돈독히 하는 첩경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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