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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하얼빈역에서 정의의 총탄으로 조선침략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격살한 안중근 의사는 한민족의 민족영웅으로 역사에 기록되고 있다. 하지만 ‘국제평화주의자 안중근’은 아직 낯 설은 존재이다. 이런 의미에서 안중근 의사가 옥중 집필한 미완성 유고 “동양평화론”에 나타난 평화주의 신념, ‘동아시아공동체’에 대한 맹아적 인식을 재조명하는 중 · 한 · 조 3개국의 공동학술회의는 그 의미가 심원하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안중근의 애국 · 애족적 거사는 이토 히로부미가 ‘한중 공동의 적’이라는 시각에서 대서특필되었고, 중국인들은 안중근 의사를 ‘한국의 국혼(國魂)’, ‘아시아 제일의 의협(義俠)’이라고 불렀고, 주은래 총리는 안 의사의 의거에 대해 “중 · 조 양국 인민의 일본제국주의에 대항한 공동투쟁은 이때를 기점으로 시작됐다”고 높이 평가했다. 한편 안중근 의사는 조선과 중국에서는 민족주의 화신 및 애국충절의 상징으로 추앙받지만, 치욕과 심중한 타격을 당한 일본에게는 ‘현대 정치의 아버지’를 살해한 조선의 ‘편협한 자객’으로 인식된다.
20세기 항일민족영웅 안중근은 민족독립운동가, 국제평화주의자의 식견을 가진 동양평화론자, 독실한 천주교신자로 평가된다. 그동안 남과 북은 ‘민족 제1의 공적을 처단한 민족영웅’인 민족주의자 안중근에 집중조명을 해왔으며, 안중근의 동양평화사상은 간과되어 왔다. 한편 중국 근대민주혁명의 선구자이며 삼민주의를 제창한 중국의 국부(國父) 손중산은 아시아인민의 자유와 광명을 위하여 분투한 혁명자로 추앙받는다. 그동안 손중산의 삼민주의는 각광받아왔지만 동양평화론과 같은 맥락에 있는 대아시주의는 간과되어 왔다.
안중근의 유고 동양평화론은 중 · 한 · 일 3국 관계를 ‘대등한 국가관계’로 보았으며, 이웃국가에 대한 침략과 영토 확장을 비판하고 평화적 공존을 주장했다. 안 의사의 동양평화론은 동양3국이 평등하고 상호 협력하는 동맹관계를 건립해야 한다는데 취지가 있다. 한편 동양3국이 협력하여 서방제국주의 확장을 저지해야 한다는 대아시아주의와 오직 민족주의와 애국주의를 견지해야만 세계대동주의로 나갈 수 있다는 손중산의 국제주의사상은 안중근의 평등한 3국동맹 건립 및 동양평화를 실현해야 한다는 기본사상과 같은 맥락에 있다.
국제평화주의자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에서 나타난 동양평화사상과 동북아평화체제를 건립해야 한다는 주장은 시대를 초월한 ‘탁월한 발상’이며, 오늘날 동북아지역공동체의 주장도 안중근의 동양평화사상과 맥을 같이하며 별로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또한 민족주의자이자 세계주의자인 손중산의 대아시아주의는 당시 일본이 선양한 대아시아주의 침략이론과 본질적인 구별이 있다. 그의 대아시아주의는 아시아국가가 연합하여 구미열강의 침략에 대항하고, 아시아국가의 평화공존을 주장했다는 점에 역사적 · 현실적 의의가 있다.
안중근은 완전한 인물이 아니다. 그의 동양평화사상 역시 인종주의와 일본맹주론에서 자유롭지만 않다. 그를 무조건 영웅시하기보다 그의 삶과 죽음, 사상과 행적을 연구하고 그 의미를 공유하려는 노력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단순히 ‘국권 침탈의 원흉을 척살한 민족영웅’이라는 원초적 민족주의 후광에서 벗어나 동양평화론이 ‘편협한 민족주의나 지역주의가 아닌, 보편적 가치에 기여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요컨대 열린 민족주의를 지향하면서 국제평화주의자 안중근에 대한 심층적 재조명이 필요한 시점이다.
20세기 안중근의 동양평화사상이 민족독립과 국권보호를 전제로 한 평화사상이었다면, 21세기 ‘동북아지역공동체’는 평등한 국가관계와 상호 협력을 전제로 하는 미래지향적인 범아시아적인 정치 · 경제협력공동체로 볼 수 있다. 안중근과 손중산의 동양3국의 동맹건립과 평화체제구축의 발상을 온고지신의 차원에서 21세기 동북아공동체의 건립을 모색해나가는데 디딤돌로 삼아야 할 것이다.
* 본문은 지난 10월 25~26일 대련대학에서 개최된 “안중근과 동양평화” 국제학술심포지엄에서 필자가 발표한 <지정토론>을 요약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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