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와 물의 대화
―물님, 빈몸으로 어디로 그리 급히 가시오?
―바위님, 바깥세상이 하도 보고싶어서
밤새 풀숲 헤치며 단숨에 달려왔다오.
―물님, 하루해도 긴데 잠시 쉬였다 감이 어떠하오?
―바위님, 안될 말씀이오.
고개너머 함께 갈 친구들이 날 기다린다오.
―물님, 난 당신이 참 부럽구려.
나도 매일 떠날 생각에 오금이 저리다만
여태껏 단 한치도 드텨보지 못했다오.
―바위님, 난 되려 당신이 부러울뿐이오.
한번 떠나면 영영 돌아 못 올 걸음 아니겠소.
바다에 닿으면 내 몸은 짠 눈물로 채워질거요.
해설: 이 시는 우화시寓話詩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우화시란 동식물 따위를 의인화하여, 교훈이나 풍자의 내용을 담은 시(고려대한국어대사전)를 말한다.
시인은 ‘바위’와 ‘물’의 대화를 통해서 서로 다른 인생 도리를 이야기하고 있다.
물은 “바깥세상이 하도 보고싶어서 /밤새 풀숲 헤치며 단숨에 달려왔다”. 여기에서 ‘물’은 꿈을 안고 열심히 세상과 부딪히며 살아가는 개척형의 삶을 은유하고 있다. ‘바위’는 그런 ‘물’에게 잠시 쉬어 가라고 권한다. 그러나 ‘물’은 “고개너머 함께 갈 친구들”이 기다리기 때문에 안된다고 한다. 이같이 ‘물’이 가는 길은 혼자가는 외로운 길이 아니라 같은 꿈을 가진 많은 ‘친구’들이 함께 가는 길이기 때문에 막을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다. 물론 그 길은 쉽지 않다. 바위에 부딪혀 산산이 부서질 때도 있고 태풍에 쓰러진 나무에 막혀 멈춰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물’은 드디어 ‘바다’(꿈)에 이를 것이다. 그동안에 흘린 ‘눈물’과 땀으로 짠 ‘물’이 되었지만 바다에 이름으로써 ‘물’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
그런 ‘물’을 부러워하는 ‘바위’는 현실에 뿌리를 내리고 착실하게 자기의 인생을 살아가는 삶을 은유하고 있다.
이 둘이 서로 상대방을 부러워하는 모습은 현실에 만족할 줄 모르는 인간의 본성을 보여주고 있다. 사람은 자기가 가지지 못한 것을 부러워하기 마련이고 그렇게 자기의 결핍을 인식하는 것이다. 하지만 ‘물’과 ‘바위’는 그렇게 상대방을 부러워하면서도 자기의 삶을 부정하지 않고 의연히 자기 길을 가고 있다. 자기의 삶을 끝까지 살아가는 것으로 결핍을 메우고 자기의 실존을 완성한다.
만약 이 시를 우화적 수법이 아니라 직설적으로 썼다면 아주 딱딱하고 음미할 여지가 없는 건조한 시가 되었을 것이다. 시인이 ‘물’과 ‘바위’라는 사람들이 잘 아는 사물의 모습으로 시적 형상화를 하였기 때문에 시가 친근하면서 설득력이 있고 예술적 향수를 줄 수 있었다.
석탑쌓기
오르며 소원 담아 한개 얹었다
내리며 심사 담아 한개 올렸다
드디여 내 키보다 높은 석탑이 일어섰다
석탑 어루쓸며 느끼는 인생살이
무슨 소원이 이리도 많았던가
무슨 심사가 이리도 촘촘했던가
여태 그 무거운 석탑 몸에 얹고 살았지
여태 그 견고한 석탑에 갇혀 살았지
석탑 내려놓으니 인생이 홀가분해진다
해설: 돌탑은 산신을 모시는 가장 기본적인 형태로서 자연신에게 행운을 비는 샤머니즘 풍습의 산물이다. 후에 불교가 들어오면서 고승의 사리나 유물을 보존하는 석탑이 생겼는데 지금에 와서 돌탑이나 석탑이나 사람들은 기복신앙祈福信仰의 상징물로 생각하고 있다. 뭔가 소원이 있을 때, 뭔가 힘든 일이 있을 때 사람들은 자기의 마음을 돌에 담아서 탑에 올려놓는다.
그런 석탑이기에 시인은 “오르다”와 “내리다”는 방향을 나타내는 단어에 맞춰서 위로 향하는 단어 “오르다”에는 바람과 원함을 나타내는 단어 ‘소원’을, 아래를 향하는 단어 “내리다”에는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일이라는 단어 ‘심사’(心事)를 이어줬다. 사람들은 흔히 소원을 빌 때는 하늘을 우러러 빌고 마음속에 고민거리가 있을 때는 그것을 내려놓으려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쌓아 올린 석탑은 결국 그 자신의 마음의 짐이 되고 마음은 ‘석탑’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소원’이나 ‘심사’를 붙잡고 있으면 마음이 거기에 매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인은 석탑을 내려 놓으라고 호소하고 있다. 그 무엇에 집착해서 살기보다 그 하루에 충실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사는 것이 결국은 ‘소원’을 이루는 길이며 ‘심사’를 없애는 길이기 때문이다.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떠오르게 하는 시이다.
계단
고임돌 없는 루각이 없듯이
계단이 없는 루각도 없습니다
한평생 뼈가 부서지도록
가녀린 어깨를 내밀어
내 삶의 계단이 되여주신 어머니
높은 곳에 올라
멋진 풍광 두루 돌아보고서도
왜 눈물만 앞을 가리웁니까
이젠 그만 계단을 내리렵니다
조용히 어머니 곁으로 돌아가
아픈 어깨를 주물러 드리겠습니다
해설: 이 시는 일생을 자식을 위해서 헌신해온 어머니를 노래한 시이다. 시인은 성공한 자식을 ‘루각’에 어머니를 ‘계단’에 은유하고 있다. 높이 솟은 ‘루각’같이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올라서 “멋진 풍광 두루 돌아보”듯 성공한 삶을 돌아보면 성취감을 느껴야 할 텐데 시적 화자는 도리어 ‘눈물’이 앞을 가리운다고 한다. 자신의 성공의 길에 어머니가 ‘계단’이 되어주었다는 것을, 그래서 쉽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적 화자는 이제 ‘계단’에서 내리려 한다. 즉 어머니의 부담을 덜어드리고 “조용히 어머니 곁으로 돌아가 /아픈 어깨를 주물러 드리겠습니다”하고 효도를 다할 마음을 표현하였다.
‘루각’에 ‘계단’이 있는 것이 당연하듯이 사람들은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은 응당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받기만 하는 경우가 많다. 시인 김인덕은 이런 사람들에게 알기 쉬운 표현으로 시적 형상화를 하여서 어머니의 사랑을 소중히 여기라는 깨우침을 주고 있다.
살구꽃이 폈으니
살구꽃이 폈으니
우르르 술 마시러 가기오
당신의 친구의 친구라도 괜찮소
살구꽃 나무 아래서
술잔에 꽃잎 띄워
술 거나하게 마시다보면
꽃보다 더 예쁠 게 아니겠소
살구꽃보다 더 많은
지난일들을 안주 삼아
우리 다 같이 어우러져
거나하게 마시다보면
우리도 한창
꽃철이 아니겠소
해설: 살구꽃은 복숭아꽃과 더불어 연변의 봄을 상징하는 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봄 하면 ‘사쿠라’(벚꽃)가 떠오르는 것처럼 ‘살구꽃’ 하면 연변의 시골마을을 떠올리게 된다. 순 관상용인 벚꽃보다 어린시절 흔히 먹었던 과일인 살구를 연상시키는 살구꽃은 그래서 더 친근하고 따뜻한 느낌을 준다. 시인 김인덕은 아마 살구꽃의 그런 이미지로부터 이 시를 썼을 것이다.
봄이 되어 겨울동안 쪼들렸던 심신을 풀어주고 새해의 기운을 받기 위해서 사람들은 살구꽃나무 밑으로 “우르르” 몰려든다. 평소라면 서먹했을 “친구의 친구”도 그 자리에서는 즐거운 분위기에 휩쓸려 다들 함께 어울리게 된다.
살구꽃의 꽃말은 “아가씨의 수줍음”이다. 술기로 홍조가 오른 모습과 수줍음에 발그레한 홍조를 띤 아가씨의 모습이 오버랩 되면서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진다. 그동안 힘들었던 일, 아프던 일, “살구꽃보다 더 많은 /지난일들을 안주 삼아” “거나하게 마시다보면” 그 모든 아픔이 치유되는 것 같다. 그래서 시적 화자는 “우리도 한창 /꽃철이 아니겠소”하고 사람들에게 ‘희망’과 ‘자신감’을 불러일으켜준다.
봄이면 흔히 볼 수 있는 꽃놀이 풍경이다. 하지만 시인은 그 평범한 ‘봄놀이’에 ‘살구꽃’이라는 고향의 봄을 상징하는 꽃의 이미지를 가함으로써 힘겹게 살아온 사람들에게 고향의 따뜻함과 새롭게 시작해보려는 ‘희망’의 마음을 심어주었다.
이원수의 동요〈고향의 봄〉이 낭만적인 향토애를 자아내는 작품이었다면 김인덕의 <살구꽃이 폈으니>는 현실적이면서도 희망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동북아신문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