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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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락서” 1
2010년 05월 21일 11시 19분  조회:625  추천:9  작성자: 조글로
수필

아름다운 락서  1

 

락서란 글자, 그림 따위를 장난으로 아무데나 함부로 쓰는것 혹은 그 글자나 그림이라고 사전은 해석한다. 바꾸어말해서 락서는 “장난글씨”인것이다.

    지금 우리가 사는 도시는 락서와의 전쟁을 치르고있다. 자고 깨나면 날마다 늘어나는 건물벽의 증건위조광고는 그야말로 몸에 돋은 소버짐처럼 두통거리이다. 좀처럼 지줘지지 않는 물감으로 씌여져서 그것을 지우려면 오히려 덧칠을 해야 하므로 도시의 악성종양은 점점 퍼져나간다.

    이렇듯 락서는 아름다울수가 없는것이 통념이다. 대부분 사람들의 머리속에는 락서라면 공중화장실의 지저분한 3행시쯤으로 알고있다.

    재작년말에 모아산등산로가 목책을 두른 나무계단으로 바뀌면서 안전을 위해 설치한 가드레일 즉 목책에 락서가 생기기 시작했다. 일찍 새긴 락서들은 비바람에 바래지고 그 위에 또 새로운 락서들이 어김없이 새겨지고있으니 락서의 생명력은 끈질긴것 같다.

    글이라면 광고지의 구석구석까지 빠뜨리지 않고 보는 습관이 있는 나는 매번 모아산에 등산할 때면 가드레일에 새겨진 락서를 빼놓지 않고 읽는다. 물론 보는이의 눈을 찌프리게 하고 마음까지 구겨지게 하는 락서가 적지 않다. 곳곳에 씌여진 “○○○만세!” 혹은 “×년 ×월 일에 ○○○가 왔다갔음.”라는 따위의 락서들은 일푼의 가치조차 없는, 락서를 한자의 오만함과 방자함까지 엿보여 기분이 씁쓸해난다.

    하지만 다닥다닥 나붙은 그런 락서중에는 북데기속의 낟알처럼 “알맹이”가 없는것은 아니다. 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고있는 락서가 그러하다. 이러한 락서들은 90년대초의 화장실락서와 큰 차이점을 보인다. 나는 그런 “알맹이”를 접할 때면 “락서문화”에 쏠쏠한 재미를 느낀다. 락서에 웬 “문화”라는 수식어를 붙이는가 하고 이의를 제기하는분들도 많을것이다. 사람들의 머리속에는 문화라는 단어는 품위 있는 학문이나 우아한 예술 정도로 각인되여있기때문이다. 짚고넘어갈것은 이런 락서행위가 옳은가 그른가를 떠나서 하나의 문화현상인것은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목책에 씌여진 락서의 내용을 미루어보아 락서를 한 임자들 대부분이 20대 좌우의 젊은이들이다. 락서는 남모르게 몰래하는 은밀한 행위이다. 자기과시욕이 강한 젊은이들은 락서에 버젓이 자신의 이름을 적어넣는것으로 보아 락서를 자신의 감정을 적라라하게 분출하는 공간으로 여기면서 락서에 대한 부끄러움이나 죄의식 같은것을 느끼지 않는것 같다. 나는 그러한 락서들이 그들만의 정서와 생각을 표현한 독특한 문화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들의 락서에서 요즘 젊은이들의 자화상을 읽는다. 

    모아산 등산길의 목책에 써놓은 락서들중에서 락서에 그친 락서는 차치하고 “알맹이” 락서가운데서 제일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내용들은 어떤것일가? 달라진 삶의 세태에 걸맞게 지금 젊은이들에게 최고의 화두는 사랑이고 행복이다.

   제스처가 돋보이게 하트모양을 이름사이에 넣은 “○○○♡○○○”나 “나 하루 빨리 내 반쪽 만나고싶어… ㅠㅠ 나 벌써 21살인데…”, “멋있는 남자친구가 생기게 해주세요.”라는 락서를 보고는 허파에 바람이 찬것처럼 크드득크드득 웃음이 절로 나온다. 방금 21살인데 벌써 21살이라니! 갓 20살을 넘기고서도 지천명의 나이를 산듯한 표현이 우스꽝스럽다. 소박한 문구에 담긴 아름다운 소망에는 유머까지 묻어나 모처럼 중년나그네의 마음까지 흥그럽게 한다. 자유롭게 련애할수 있고 사랑도 기침처럼 거침없이 뱉어내는 세태에 뭘 하느라 자기 반쪽을 찾지 못했을가? 홀연 그들의 신상이 궁금해지기까지 한다. 학업에 열중하느라 자기의 반쪽을 찾지 못한 젊은이라면 앞날이 촉망된다. 신체조건이나 가정형편으로 자기의 반쪽을 찾지 못했다면 젊은이의 처지가 안쓰러워진다. 세월이 흘렀다고 해서 사랑에 대한 아픔이 잊히랴. 나 또한 젊은 시절, 짝사랑하는 처녀의 환심을 사지 못해 전전긍긍하면서 보내던 불면의 밤은 얼마였던가.

    세월이 흘러 세속이 많이 변한탓일가? “련애”라는 “련”자도 입에 뻥긋하지 못하던 지난 세기 60년대와 70년대를 지나온 사람들이라면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수 없다.

     락서에 대한 기억이 새롭다. 1970년대 말, 내가 초중2학년을 다니던 시절에 생긴 일이다. 내가 공부하던 시골학교에 초특급뉴스가 생겼다. 누군가 학교담벽에 만철이와 영숙이가 과수원에서 “뽀뽀”하는것을 보았다고 락서했다. 학교가 발칵 뒤집혔다. 만철이와 영숙이는 아이들의 손가락질과 눈총에 서리 맞은 배추잎이 되여 목이 꺾였다. 그들은 결국 초중도 졸업하지 못한채 학교문을 나서야만 했다. “련애”는 벌겋게 달아오른 교실의 난로처럼 근접하기 어려웠거니와 길가에 나뒹구는 분변처럼 불결한것으로 알고있던 시절이였다.

    작년 초여름의 어느날, 나는 모아산 등산길에 올랐다가 계단밑에 “지영아, 사랑해, 결혼해줘!”라는 문구가 적힌 색종이 포스터가 3백여장 나붙은것을 발견했다. 장엄한 행사 같은 젊은 남자의 프러포즈에 마음까지 숙연해지는 느낌이였다. 인적이 뜸한 밤에 허리를 한껏 굽히고 그 많은 포스터를 한장한장 계단밑에 붙여가며 행복의 밑그림을 그리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가! 해돋이가 시작될 무렵, 사랑하는 처녀를 이곳까지 데리고 와 포스터가 붙은 계단을 밟으며 깜짝 프러포즈를 할 때 처녀의 느낌은 어떠했을가! 그 장면을 외간나그네가 상상해보아도 프러포즈를 받은 처녀는 발뒤꿈치에서부터 찡한 감각이 솟구치며 당장 하늘에 날아갈듯한 기분이였으리라. 젊은이의 용기가 부럽고 랑만적인 무드를 연출한 젊은이의 아이디어에 높은 점수를 주고싶다.

    내 젊은 시절의 무드는 지나가는 동네강아지가 핥아먹었는지 싱겁기 그지없었다. 대학시절, 컴컴한 밤, 짝사랑하는 처녀를 숙소옆 담벽에 불러내다 시작과 끝이 한데 맞붙은 번개같은 프러포즈. “우리 련애하자.” “난 네가 마음에 안든다.” 짝사랑하던 녀자의 퇴박을 맞고 돌아서던 내 젊은 날의 초라한 초상이 지금도 선연하다. 땅이 꺼질듯한 한숨과 초라한 모습을 감춰준 컴컴한 밤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꿈과 행복은 마음가짐에서 싹트고 열매를 맺는다. 꿈을 꿀수 있는것만으로도 행복한 젊은 시절, 젊음은 넘쳐나는 꿈의 번열을 작은 가슴에 다 담을수 없어, 또는 더는 주체할수 없어 꿈과 행복에 대한 열망을 목책의 이리저리에 락서하게 되는가부다.

    “시험지 다 잘 맞게 해주세요.”

    얼마나 기특한 소원인가! 이 세상에 믿을것은 자기밖에 없는줄 잘 알면서도 평소에 갈고 닦은 학업에서 좋은 성적이 있기를 기원하는 젊은 학도의 바람에는 어찌 자기욕심만 얽혔다고 하랴. 가족과 고마운 주위사람들에 보답하고싶은 갸륵한 마음의 향기가 솔솔 풍겨오지 않는가.

    “날 사랑하는 사람 모두 사랑합니다.”

    “한 사람의 쾌락은 쾌락에 그치지만 두사람의 쾌락은 행복이다.”

    이 세상에 제일 행복한 사람은 자기 주위의 사람들을 사랑할줄 아는 사람이다. 사랑하는 마음은 지심의 샘물을 길어올리는 펌프이며 청량한 산소를 뿜어내는 엽록소이다. 남을 배려하고 사랑할줄 아는 사람은 아침산소처럼 싱그럽고 가을산소처럼 청신한 존재이다. 마음을 비우고 자기 재산을 툭툭 털어 바닥에 웅크려있는자를 보살펴주는 위인도 우러러보이지만 자기힘으로 가족을 행복하게 하는 범부에게도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형님, 오빠 있으면 참 좋겠네.”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주는 재산가운데서 가장 값진 재산이 형제라는 속설이 있다. 핵가족화시대에 가장 모자라는것이 형제인듯싶다. 머나먼 인생의 뒤안길에 뒤처진 생각을 추스러주는 가위가 되고 미끄러지는 내리막길에 붙잡을수 있는 가지가 되여주는 형제가 있다면 인생은 결코 고독만은 아닐것이다.

    등산로목책에는 젊은이들의 고뇌, 좌절을 담은 락서들도 적지 않다.

    “난 뭐이래!”

    지팽이라고 짚은 나무가 중하를 이기지 못하고 비틀리여 끊어질 때의 허무함, 하는 일마다 고배를 마셔온 젊은이의 고뇌가 엿보인다. 젊은 시절은 여린 심성만큼 실패에 민감한 시절이다. 고뇌는 엉킨 실타래처럼 풀기 어려운듯 보이고 앞길은 맑은 물에 먹물을 풀어놓은듯 캄캄하여 망막에는 그늘이 비끼기가 일쑤다. 하지만 청춘의 가슴에는 언제나 맑은 물이 요동치며 흘러오고있다는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실패앞에서 세월이 약이라고 하기엔 우리의 청춘은 너무나 값진것이다.

    “내가 받은 그 마음의 상처 그대로 돌려줄거야! 사람 넘 쉽게 보지마!”

    깊은 마음의 상처를 안고있는 이 젊은이는 글을 쓸 때 마음의 분노를 문자에 담았는지 획이 비뚤비뚤하고 거칠다. 복수의 진원지인 마음속에서 찬바람이 쌩― 불고있으니 손인들 떨리지 않을수 있겠는가. 배반당하면서 입은 깊은 상처를 자기가 직접 조제한 마음의 용서로 치유하지 않는다면 당신의 추한 상처에서는 계속하여 진물이 흐를것이다. 용서라는 비타민으로 행복을 가꾸는것만큼 아름다운 보복은 없을것이다.

    조선어표기법을 완전히 무시한 락서도 간과하지 못할 현상이다. 인터넷시대가 도래하면서 요즘 젊은이들은 문자표기법에 준하지 않는것을 류행처럼 따르고있다.

    “미서니랑 엄마랑 오끅미 마다매랑 오끄미 마다바이랑 와따가씀.”

    이 락서에서는 “엄마”란 단어와 “랑”이란 토를 빼고는 전부 다 틀린 문자표기로 되여있다. 젊은 세대들의 조선어문자사용이 점점 황페화되여가고있는 현실이 안타깝기도 하다.

    요즘 시대는 아이디어 하나에 의해 승부의 세계가 엇갈린다. 락서문화는 락서만으로의 가치에 한정되지 않으면서 락서에 대한 시각도 바뀌고있다. 락서문화는 주류문화가 아닌 하위문화로서 변화, 창조 등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는데 사람들이 열광하고있는것이다. 아무렇게나 갈겨쓴 글, 아무렇게나 그린 그림들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락서의 무한한 잠재력을 발굴하고있는것이다.

    락서그림이나 락서문자의 다양한 이미지를 평범한 청바지와 셔츠, 운동화에 넣어 더 의미 있고 가치가 높은 제품을 만들어 내고있는가 하면 류동인구가 많은 곳의 카페나 음식점에서 “락서문화의 장”을 직접 조성해 고객들의 눈길을 사로잡고있다.

    포털사이트 구글에서는 사내 벽면을 모두 화이트보드로 꾸며놓아 직원들이 언제든지 자유롭게 락서할수 있도록 했다. “락서속에 세상을 바꿀만한 아이디어가 있다.”는 구글 창업자의 말대로 포털사이트 미국 본사에서는 10년째 락서경영을 하고있다.

    최근에는 락서를 합법적으로 받아들여 관광명소로 발전시킨 곳도 있다. 한국 경북 포항시의 “락서 등대”라 불리우는 포항항동방파제 등대는 3년전까지 락서로 골머리를 앓던 곳이였지만 “산발적인 락서를 한곳에 몰아넣어 보자”는 취지로 최근 2m짜리 락서판을 설치해 년평균 35만명이 들르는 관광명소로 거듭났으며 욕설이 란무했던 락서들이 락서판을 만든 후부터 소원, 사랑고백 등의 내용으로 바뀌였다고 한다.

    디지털시대, 락서는 무궁한 창의력을 가진 존재로 평가받으며 새로운 문화 코드로 떠오르고있다. 따라서 락서문화를 무작정 반대하고 밀어내기보다는 옳바른 락서문화를 정착시키고 발전시켜나가는것이 바람직한 자세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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