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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백산기슭에 자리잡은 연변은 8할이 산악으로서 수많은 종류의 꽃이 봄부터 여름까지 산과 들에 만발하여 그림처럼 아름다운 고장이다.
나는 산행을 하면서 꽃과 대화하기를 즐긴다. 광막한 하늘에서 미소한 존재로 보이는 별만큼이나 작고 이름 없는 꽃일지라도 꽃과 조용히 마주하고있노라면 조곤조곤한 그들의 삶의 이야기가 무변광대한 우주의 신비처럼 다가와 생명의 유열을 느낀다.
연변을 꽃동네로 단장하는 그 많은 종류의 꽃중에서 우리네 정서를 가장 닮은 꽃은 무엇일가? 물론 연변의 주화(州花)가 진달래이고 진달래하면 조선족을 떠올리는것은 이미 중국에서 정석으로 굳어진지 오래 되였으니 진달래가 우리의 정서를 가장 닮은 꽃임에 틀림없을것이다. 하지만 과경민족으로서의 조선족은 시루떡처럼 복합적인 중층성격구조를 지녔음을 감안하면 우리네 정서를 닮은 꽃이 하나만 아닐것이라는 개연성을 떨쳐버릴수 없다. 하여 나는 민들레꽃, 사과배꽃을 진달래꽃과 더불어 우리네 정서를 가장 잘 대변하는 꽃중의 삼총사가 아닐가는 생각을 가져본다.
민들레꽃은 노비신세가 되고 일제의 등살에 못 이겨 한(恨)을 품고 그리움이라는 사치품을 보따리에 싸들고 두만강과 압록강을 건너와 노랗게 피여난 할머니 할아버지의 꽃이다. 우리의 조상들은 팔뚝 같은 강냉이 이삭 달리고 미운 놈 기장밥 해준다는 간도의 “락토”에 터를 잡고 손이 갈퀴가 되여 갈뿌리 나무뿌리를 걷어내고 노란 민들레 부락을 일구었다.
민들레꽃은 수레바퀴에 짓뭉기고 과객에 짓밟혀도 체념으로 끝나는 무력에 빠지지 않고 억제로 인한 불안의 우울증에 걸리지 않았다. 민들레꽃은 한겨울, 시들어버린 잎은 땅우에 착 붙이고 뿌리는 칠흑 같은 땅밑에서 실타래로 엮여있다가 봄을 맞아 잎을 들어올리고 작은 꽃을 모락모락 피운다. 꽃이 이울면 산과 들, 돌너덜까지 햐얀 민들레씨를 곤곤히 퍼뜨리며 왕성한 생명력을 세상에 과시한다. 이처럼 민들레꽃은 백성에 비견되는 민초(民草)이다.
바람 세찬 광야에 피여나 삭막했던 겨울의 메마른 정서를 달래주고 싱그러운 새봄의 정취를 한껏 불러일으켜주는 진달래꽃은 또 어떠한가!
진달래꽃은 일명 두견으로 목구멍에서 피가 날 때까지 밤낮으로 운다는 진달래꽃의 전설을 보아도 분명 통한과 비원을 한몸에 지닌 꽃임에 틀림없다.
진달래꽃은 당신이 가진것 전부를 남김없이 자식에게 주고서도 더 주지 못해 로심초사한 부모님의 한(恨)이 침점하여 핀 꽃이며 자식에 대한 부모님의 분홍빛 희망이 서린 꽃이다. 꽃돗자리 차린 진달래꽃의 호연지기는 부모님의 사랑처럼 무조건적이고 드팀이 없다.
진달래꽃에서 낮에는 요염한 자색을 뽐내다가 저녁무렵이 되면 꽃잎이 반쯤 자지러지는 데이지의 약한 모습도, 청색으로 피였다가 연한 분홍색으로 변하는 수국의 변덕도 찾아볼수 없다. 겨울추위도 강건하게 이겼으니 이른봄 꽃샘추위야 무슨 대수랴! 응달쪽 소나무숲사이로 흰 백설을 떠이고 등불을 밝히듯 피여난 진달래에 마주하면 숙연해지는 마음을 금할수 없다.
진달래꽃의 향기는 목이 꺽 메도록 진동하는 라이라크향기처럼 부담스럽지 않다. 진달래꽃은 성정이 내밀하고 은근한 꽃으로 그 향기는 닿일듯 말듯, 있는듯 없는듯 오래동안 같이 하여도 질리지 않는다.
진달래꽃은 완만하고 둥근 형태의 산과 부드러운 곡선으로 흘러가는 강물과 썩 잘 어울리는 꽃이다. 진달래가 피여나는 연변의 산과 들 어디에 가도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에 돌아간듯 정다운것은 진달래꽃의 푸근함때문이리라.
봄이 벌써 허리가 잘려나가 가슴 한구석 못내 아쉬울 무렵이면 뒤동산에 소담스런 함박눈이 내려앉은듯 사과배꽃이 만개한다.
완만한 구릉으로 끝간데없이 펼쳐진 과수원 사과배꽃길, 아지랑이꽃이 하얗게 색을 맞춰 더욱 로맨틱한 사과배과수원길을 걷노라면 별유천지에서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다. 은은하고 깨끗한 사과배꽃향기를 찾아 벌나비떼가 날아드는 봄잔치에 나그네의 가슴마저 설레인다.
봄에 꽃이 만개하는것은 가을에 열매를 맺기 위함이다. 한점의 미련도 없이 바람에 눈송이처럼 쏟아지는 사과배꽃의 향연을 본적 있는가. 하루밤새 조락하면서도 하늘하늘 춤추는 신명의 거동을 보았는가! 사과배꽃의 향연은 내 몸을 불살라 신명을 일으키는 조선족의 역동성이다.
봄의 희생과 여름의 가꿈이 있었으니 가을의 결실이 어찌 풍성하지 않겠는가! 사과배나무는 돌배나무에서 왔지만 사과배는 크기에서 돌배를 훨씬 초과한다. 사과배나무는 사과나무에서 왔지만 사과배는 맛의 여운이 사과보다 길고 아삭아삭한 맛이 일품으로 세계인의 입맛을 잡기에 족하다. 사과배는 조선족의 브랜드이며 무한한 가능성의 지표이다. 사과배는 바로 대륙적 기질의 웅혼성과 반도의 온순하고 인후한 성질을 골고루 갖춘 조선족의 자화상이다. 조선족은 단순히 발생하는것과 되여지는것에 만족한것이 아니라 살겠다는 의욕과 창의성을 가지고 살아온 민족이다.
민들레꽃, 진달래꽃, 사과배꽃은 울금향의 화려함도, 장미꽃의 우아함도, 수국의 청초함도 지니지 않았다. 민들레꽃, 진달래꽃, 사과배꽃은 꽃집의 꽃바구니보다 고향의 뒤산이나 려염집 창턱의 수수한 병(甁)에 더 잘 어울리는 내밀한 아름다움을 지닌 꽃이며 각개의 아름다움보다 뭉침의 아름다움을 지닌 꽃이다. 그들은 빛갈과 생김새와 향기가 구색을 맞추고 미묘한 조화를 이루어 순리의 아름다움, 소박한 아름다움, 무심한 아름다움을 한몸에 지녀 항상 정겨울뿐이다.
나는 조선족의 심성을 꼭 빼닮은 민들레꽃, 진달래꽃, 사과배꽃을 사랑한다.
한점의 흐트러짐도 없이 올올하고 모든 색의 근원으로 되는 민들레꽃의 노란색은 끈끈한 우리의 전통이요, 색갈의 사생아로 태여나 이 색과 저 색의 경계를 거침없이 허무는 진달래꽃의 연분홍색은 우리의 역동이요, 사과배꽃의 흰색은 희망을 배태하는 우리의 미래이다.
전통은 근간이고 미래는 좌표이며 역동은 가능성이다. 우리네 정서적뜰에 민들레꽃, 진달래꽃, 사과배꽃이 사시절 만개하고있으니 우리 조선족은 복 받은 민족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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