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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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교
2010년 05월 21일 11시 23분  조회:688  추천:11  작성자: 조글로
수필

페 교

 

   나는 국경절휴가를 이틀 앞두고 고향에 있는 외사촌동생네 아들 첫돌생일잔치 기별을 받았다. 나는 넉넉한 시간과 여유로운 마음을 지니고 고향행을 가지게 되였다.

아기가 첫돌생일상을 받는 날 이른 아침, 마을 사람들은 누구라 없이 잔치집에 모여왔다. 왜 그렇지 않으랴? 8년나마 고향마을에 아기첫돌생일잔치가 없었으니 말이다.

나는 아침식사를 마치고 고향마을을 둘러보았다. 나의 고향은 화룡시 덕화진 룡연촌이다. 두만강이 남에서 북으로 흐르고 두만강따라 마을의 입구와 출구가 열려있다. 봄이면 눈덩이같은 오얏꽃이나 진붉은 찔레꽃이 피여나는 언덕을 배경으로 뉘엿한 뒤산자락에 자리한 오붓한 마을이다. 가을이면 뜨락의 노랗고 빨간 열매와 주택의 빨간 기와지붕이 어울려 운치가 돋보이고 마을앞 무연한 황금들판을 감싸고 두만강이 흐르는 성경속의 고장이다. 그런데 그 고향이 그 어느때보다 멀어져보이는 느낌을 주는것은 왜일가? 나는 궁리끝에 마을에서 애들의 모습을 볼수 없고 티없이 맑은 웃음소리를 들을수 없는것에서 답을 찾았다.

나는 이미 여러해전에 폐교된 마을학교를 찾아갔다. 잡초가 무성한 운동장, 페인트칠이 싹 벗겨져나가 볼성사나운 학교지붕, 얼기설기 틈이 나 갈라지고 쪼그라든 학교정문의 학교간판, 어렴풋이 보이는 《룡연학교》란 활달한 글씨에서 지난날의 영화를 얼추 읽을수 있을뿐이다. 새 천년을 맞이하여 새로운 도약을 기약하여 온 나라가 시끌벅적할 때 20세기를 마무리하는 1999년 세밑에 룡연학교는 소리없이 페교되였다. 학생이 모두 4명밖에 남지 않은 학교는 뾰족한 해결책도 없이 바람앞의 초불처럼 힘없이 간들거리다 드디여 스러지고말았다.

내가 소햑교에 입학하던 1970년대초만 하여도 룡연학교는 학급마다 학생이 40명을 웃돌고 소학교 5년제와 초중 2년제를 갖춘 농촌학교치고는 규모 큰 학교였다.

나는 1학년때 공부하던 북쪽켠의 끝칸으로 발길을 향했다. 첫 수업시간이 한춘실선생님은 우리 나라의 위대한 수령 모주석에 대해 말씀하면서 그이의 어깨는 교실만큼도 넓다고 하였다. 범인(凡人)들의 어깨만 보아오던 우리들에게 있어서 선생님의 말씀은 너무나 큰 충격이였다. 나는 첫 공부시간에 이 세상은 더없이 넓다는걸 어렴풋이 알게 되였다.

나는 4학년때 공부하던 교실에 들어가 내가 앉던 맨 앞줄의 걸상에 앉았다. 4학년교실은 학교건물의 제일 남쪽에 위치했는데 바깥전망이 가장 좋은 위치이다. 단조로운 시골생활에 시들해진 아이들에게 있어서 외계에 대한 지대한 갈망과 호기심은 신작로에 대한 남다른 주목에서 발로되였다. 일년에 몇번 정도로 영사기를 실은 달구지가 마을길에 나타나면 아이들은 이구동성으로《영화다》라고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아이들이 그렇게 소란을 피우며 강의시간을 망쳐먹어도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노여움을 나타내지 않으며 얼굴에 잠시 엷은 미소까지 지으신다. 선생님이 똑같이 기쁜 날이 되기때문이다.

나는 교실을 떠나 운동장에 앉았다. 넓은 운동장이 좁다하게 사슴처럼 뛰놀던 어린시절이 그립다. 때로는 산에서 내려온 노루가 운동장에 뛰여들 때가 있었다. 그때면 노루를 붙잡느라 벅적이는 아이들로 운동장은 아수라장이 된다. 부룩송아지같은 시절이였다. 학교앞의 화단도 엉망이 된지 오래다. 백일홍, 다리야, 봉숭아, 코스모스가 여름내내 가을까지 서로 다투어 피여나고 바위틈에서 떠다 옮긴 네그루의 다복솔이 이채를 더해주던 앙증스러운 화단이였다. 내가 소햑교 4학년때 우리는 강기슭 백양나무를 베여서 여른 어깨로 하나하나 메여다 운동장 주위에 심었다. 뿌리도 없는 백양나무가 어찌 자라나싶었는데 우리가 늘 왼심을 쓰고 보살펴준 보람으로 세월의 풍상을 이기고 칠칠하게 자라 학교의 풍경에 이채를 더해주었다. 그런데 지금은 빈 그루터기만 남았다.

돌이켜보면 1970년대중기에만도 우리 마을은 삽상한 활력으로 넘치였다. 그 시기 학교주변에 병원, 상점, 구락부 등 덩치 큰 건물들이 일떠섰다. 학교에서는 재물공장도 꾸리였다. 아이들이 부뚜막의 재가루를 끌어다 학교에 바치는데 그 재가루를 물에 여러날 담그면 물은 적색으로 우러나온다. 우러난 물을 큰 가마에 붓고 센 불에 끓이면 물은 증발하고 적갈색 고체의 재물가루가 생산된다. 그때 어문교원으로 계시던 허봉남선생님이 재무공장을 노래하는 노래를 지으셨다. 《재물가마 끓는다. 벌렁벌렁 끓는다. 우리 학교 재물가마 벌렁벌렁 끓는다...》

재물가마 끓듯이 번창했던 마을이 경상도 세월의 긴 흐름속에서 한순간에 왔다가 사라져버린 신기루에 지나지 않는다. 1990년대 개혁개방의 소용돌이는 청승궂게도 마을의 젊은 처녀들을 싹쓸이해가고 덜먹총각들만 덩그라니 남겼으니 장가는 꿈에나 들 노릇이다. 아이들이 줄어드니 페교를 불러올수밖에...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덕화진내에서 몇년을 사이두고 간헐적으로 길지학교, 류동학교, 류신학교, 룡연학교가 페교되였다.

듣건대 구라파에서도 1960년대를 전후하여 농촌마을들에서 페교가 온역처럼 번져져나갔다고 한다. 1950년대에는 마을교회가 문 닫으면 마을이 망하는줄 알았는데 1960년에 농촌학교가 련이어 페교되면서 비로소 농촌마을의 급속한 황페를 절감하였다.

1960년대 영국농촌에서 발생한 일이다. 도시 변두리에서 허드레일을 하면서 아이 여섯을 힘들게 키우던 위그든씨는 아이들을 거느리고 가까운 농촌마을을 찾아 려행을 떠났다. 마을의 고요를 깨뜨려버린 불청객들의 출현은 마을사람들의 호기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해거름이 될무렵, 촌장이라는 어른이 위그든씨의 가족을 마을에서 가지는 성대한 파티에 초대하였다. 파티에 참가한 위그든씨는 기쁜 소식의 날벼락에 맞아 정신을 차릴수가 없었다. 촌장이 위그든씨를 마을의 영예촌민으로 초대하여 좋은 일자리와 로후까지 보장해준다는 선포하였다. 조건은 단 하나, 위그든씨의 아이들이 무료로 마을학교에서 공부해야 한다는것이였다. 사연인즉 마을학교에 4명의 학생만 남게 되여 폐교의 운명을 맞게 되였는데 고마운 하느님이 한꺼번에 아이 여섯이나 보내왔으니 촌장과 마을사람들은 페교를 막기 위한 마지막 대책으로 위그든씨에게 희망을 걸었던것이다.

나도 그런 기적을 잠간 기대해보지만 부질없는 허황한 꿈이란걸 너무나도 잘 알고있다. 하지만 이상한것은 덕화진내에서 유일한 한족마을인 자그마한 차창촌이 우리와 같이 똑같은 사회변혁을 겪으면서 오히려 번창일로를 거듭한것이다. 소학교마저 없던 마을이 소학교, 초중까지 갖춘 큰 마을로 탈바꿈했다는것이다. 그들의 비결은 땅처럼 드팀없는 성격과 착실한 삶의 자세에 있다고 본다. 물론 더 좋은 삶을 위해 리향한 마을사람들을 탓할수만은 없는것이다. 내전국가인 소말리아에 돈벌이 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온 조선족녀성이 있다. 《남들 모두 가보는 축국 한번 해보고싶었습니다. 그런데 그 소말리아란 국가가 내전으로 대낮에도 총소리가 콩볶듯할줄 몰랐지요. 브로커들의 감언리설에 깜빡 속히웠지요.》

사촌동생은 지금 농촌에서도 자기만 부지런하면 도시 월급족 못지않게 얼마든지 잘살수 잇는데 아이때문에 어쩔수 없이 고향을 뜨게 될것이라고 안타까운 심정을 내비쳤다. 아무런 대책없이 리향한 고향사람들이 또 다른 리산의 아픔을 겪으면서 드디여 가정이 깨지는 비극을 너무나 많이 보아왔기에 앞날이 근심스러울뿐이라고 하였다.

우리는 다른 민족과 다르다. 우리가 리향하면 우리는 선조들이 일구어놓은 삶의 터전을 잃고만다. 두말할것 없이 조선족의 삶의 터전은 150년이라는 개척의 력사를 갖고있는 농촌이다.

다행스럽거나 할가. 조선족은 긴 세월의 풍상에도 끄떡없이 지켜온 건실한 전통문화의 씨앗을 갖고잇다는 점이다. 한세기전 우리 선조들이 두만강을 건늘제 한톨의 씨앗이 전부의 희망이였다면 지금 우리에겐 문화라는 무가지보(無價之寶)의 씨앗이 있다. 그 씨앗은 렬악한 환경에서도 높은 발아률과 왕성한 생명력을 가졌다. 이제 우리는 세계란 광활한 무대에 흩어져살면서 새롭게 민족문화의 씨앗을 뿌리고 뿌리를 내리는 작업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것이다. 이는 우리가 살아남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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