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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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과 진달래
2010년 05월 21일 11시 27분  조회:690  추천:20  작성자: 조글로

수필

조선족과 진달래

 

     조선족은 진달래에 대해 각별한 정감과 애정을 지니고있다. 중국에서 진달래는 조선족을 상징하는 꽃이며 조선족의 대명사이며 조선족은 “진달래민족”으로도 통한다.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주화(州花)로 진달래가 지정된것도 물이 곬을 따라 흐르듯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조선족에게 중국의 국화(國花)가 무어냐 물으면 매화라고 답하는 사람이 적지 않겠지만 매화가 도대체 무슨 과에 속하고 어떤 모양과 습성을 지닌 꽃인지 또 어느 지방에 피는 꽃인지 모르는 사람이 많을것이다. 반대로 한국의 국화가 무어냐 물으면 무궁화라고 대답할 사람이 적을것은 물론 무궁화에 대해 정확히 꼬집어 말할수 있는 사람은 더욱 적을것이다. 같은 핏줄이면서 처한 정치, 경제, 문화, 지역적 환경이 다른 것이 그 원인이라고 본다.

    조선족의 진달래에 대한 애정은 화끈하다기보다는 우리의 정감 속에, 생활 속에 스며들어 무소불재, 무처불유(無所不在, 無處不有)의 경지에 이르렀다. 연변의 거리에서 “진달래상점”이나 “진달래 냉면”과 같은 상가의 간판은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이고 조선족이라면 너무나 익숙한“장백의 진달래”와 같이 진달래를 노래한 가요도 적지 않다. 올해 중앙TV방송국에서 촬영제작한 조선족의 생활과 풍속을 반영한 15회 텔레비전 연속드라마의 제목도 “풍설속의 진달래”이다. “진달래문예상”은 자치주정부에서 설립한 최고 문예상이다. 근래 연길시에 “진달래광장”까지 생겨나 시민들에게 훌륭한 휴식공간으로 활용됨은 물론 시민들이 가까이에서 진달래를 접할 수 있게 되어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 요즘 들어 조선족민족의 전통과 문화, 역사, 민속풍정을 체험할 수 있는 부지면적이 179만 평방미터이고 계획 투자가 13억 원을 웃도는 대형 “진달래문화원”을 연길시에 건설한다는 소식이 전해와 우리들 흥분시킨다.

    진달래는 장백산과 함께 연변의 명물이다. 진달래 피는 계절이면 연변의 산촌마다 앞문을 열어도 진달래요, 뒷문을 열어도 진달래라, 연변은 진달래의 고향이 되기에 아무런 손색이 없다. 산이 있어 진달래가 자생하겠지만 진달래가 피어있는 장백산은 어떤 모습일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조선족여성에게 치마저고리가 가장 잘 어울리듯이 진달래는 자연의 조화가 이루어낸 장백산의 가장 기려한 복식이다. 산봉우리에 오롯하게 피어나면 수집은 처녀의 얼굴이요, 봉우리 가장자리에 피면 운치가 돋보이는 기운이요, 산의 가슴에 피면 봄바람에 부푸는 소녀의 산뜻 저고리이며, 산기슭에 피면 꽃을 수놓은 화려한 치맛자락이다.

   진달래는 음지와 양지를 가리지 않으면 토질에 타발없이 절벽에도 날파람 있게 피어나는 이악스런 꽃이다. 나의 고향은 두만강변 작은 마을이다. 4월 중순이면 두만강을 굽이돌아 병풍처럼 둘러싼 절벽들은 옅은 갈색으로부터 점점 진한 갈색으로 옮아가다 5월초면 층층기암은 진 붉은 진달래로 꽃대궐을 차린다. 멀리서 흐드러지게 피어난 진달래동산을 바라보면 빨간 단풍든 산처럼 눈부시다. 이 계절이면 물동이 이고 오락가락하는 처녀들의 얼굴도 연분홍으로 우련히 물드는데 전설속의 선경이 예 아닌가싶다. 주체할 수 없어 부글부글 토해내는 진달래의 꽃 냄새는 내처 바쁜 두만강을 희롱하기도 하고 산들산들 봄바람에 진동하는 무더기 향기를 싣고 바위라도 무너뜨릴 듯이 실랭이질하다가 멋쩍은 듯 돌아서 제멋대로 고개고개 골과 골 사이를 흥청거리며 누비다가 어느새 농갓집 울바자사이로 기어들어 잠자는 강아지를 코끝을 간지럽히기도 한다. 가슴이 벅차오르는 그 향기에 잠자던 모든 것이 깨여나 팔다리와 앙가슴에 벌떡벌떡 힘을 모으는 것이 아닐까.

    고중할 바는 없지만 우리네 선조들이 쪽박 차고 남부여대하여 두만강을 건넌 때도 진달래 피는 계절이었으리라. 그네들이 기름이 자르르 도는 이 땅에 개간의 첫 보습을 박고 씨앗을 뿌릴 제 폐부깊이 감돌아치는 진달래 향기와 억- 막혀오는 환희로움에 전율했으리. 진달래 피는 샘물터에서 목을 축이며 분홍빛 내일을 설계했으리. “첫 농사를 잘 지어서 조선에 계시는 부모님과 형제들도 모셔와야지. 쌀뒤주도 여러 개 갖추고 술독 부러지게 흰 쌀밥 먹고 뜨스한 구들에서 사랑의 새끼 꼬면서 한 백년 살가부다.”

    진달래는 우리 민족의 희로애락을 넉넉히 담은 정감의 꽃이다. 장미의 랑만도, 튤립의 화려함도, 올리브의 깊은 사색도 지니지 않은 수수한 꽃이다.

    진달래는 랑만을 외면한 꽃이다. 연인에게 장미를 선물하는 할아버지에게서 들을 수 없다. 진달래는 덜먹총각의 나무지게에 얹혀왔다가 처녀의 손에 쥐여지지 못한 채 총각에 집 창턱에 속절없이 피였다가 고스란히 지고 마는 못난 꽃이다. 진달래는 너무 흔하다보니 사고파는 가치를 지니지 않으며 고대광실보다는 봄 햇빛이 조으는 초가집의 창턱이 훨씬 어울린다.

    진달래는 화려함도 갖추지 못한 꽃이다. 가지가 많아 지저분한 느낌이 들고 가지는 연한 갈색으로 우아하지 못하며 덕지덕지한 바늘조각으로 고귀하지 못하다. 또 꽃은 수효가 너무 많고 꽃잎은 작아서 조촐한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다.

    진달래는 사색적인 꽃도 아니다. 겉볼안 같은 우리 민족의 성격과 흡사한 꽃이다. 진달래는 기나긴 동북의 겨울을 용케 이겨내고 새봄을 맞아 흥에 겨워 멋에 겨워 한껏 피어나는 꽃이다. 우리 민족은 진달래 꽃철이면 모여앉아 “진달래 꽃전” 놀이를 하였다. 진달래 꽃잎을 따다가 씻어서 곱게 빻은 찹쌀가루를 버무려 한입에 먹을 수 있게 둥글납작하게 만들어 먹는 것이 “진달래꽃전”이다. 화전놀이의 참뜻은 부지깽이도 심으면 살아난다는 봄이 되었으니 모두 일손 맞춰 어거리 대풍을 약속하자는 화합의 잔치라 하겠다. 어수선했던 겨울의 삭 거름을 진달래 꽃불에 활활 불사르고 논밭 둑을 손질하는 가래질을 품앗이로 시작한다. 들쥐대신 나타나는 종달새의 우짖음에 취해 흥겨운 밭전놀이도 잊지 않았다.

    진달래는 자기의 키를 훨씬 넘는 오기와 굴강함을 지녔으며 독립과 자유를 위해 서슴없이 자신을 불사르는 불사조의 신념을 갖춘 꽃이다. 진달래는 시간을 거슬러 지난세기 초, 안동 김씨인 할아버지가 안동 김씨인 김좌진장군을 따라 진달래 피는“아리랑 산”언덕길로 멀어져가던 진한 감동이며 그 자국마다 장한 뜻이 어려 새봄에 유난히 붉게 피어나는 꽃이다. 진달래 피는 동산에 올라 오늘도 하루 동안 남편을 기다리다 보람 없이 하산할 적 할머니의 이마에 어렸던 실망의 석양이 그늘로 바낀 꽃이며 풀뿌리로 보릿고개를 달래면서도 쌀을 구하러온 독립군지사에게 마지막 쌀 한 자루를 넘겨주던 할머니의 간절한 소망이 담긴 꽃이다.

    어디 그뿐이랴. 소왕청의 고요한 밀영 앞, 진달래 비낀 계곡의 물에 서슬 푸르게 총칼을 갈던 젊은 독립군의 굳은 의지이며 허술한 밀영에서도 스스로 나슬나슬 피어나는 여전사의 아름다운 청춘이며 안중근의사가 내쏜 총에서 번쩍이는 정신의 불꽃이며 코신을 거꾸로 신고 적을 유인했다는 여전사의 지혜로움이 서린 꽃이다.

    진달래는 독립투쟁에 남편을 바치고 중국의 항일전쟁에 자식을 보낸 우리 민족 여성들의 생생불식(生生不息)의 꽃이다. 14년(1931-1945) 중국항전시기 10만 조선족 열혈남아들      이 침략자를 몰아내는 성전에 떨쳐나섰다. 연안에서 태항산까지 장강이북에서 해남도까지 불사조마냥 광활한 중국대지를 주름잡으면서 침략자를 무찔렀다. 또 10만 조선족청년들이 민주와 자유를 위해 중국해방전쟁에 뛰어들었다. 진달래는 쓰러진 열사를 가리는 꽃이며 적탄에 구멍 난 용사의 가슴에서 흐르는 피로 물든 꽃이다. 하기에 중국의 저명한 시인 하경지는 이렇게 읊조리지 않았던가. “산기슭마다 진달래가 붉게 피어있고 마을마다 열사비가 솟아있네.”

    진달래는 당대에 이르러 끈기와 인내로 갖은 시련을 이겨낸 엄마의 꽃이며 비명에 돌아간 누님의 한이 돋친 꽃이다. 전례 없던 동란시기, 제전(梯田)을 쌓을 돌을 캐던 누님이 날려 오는 남포 돌에 맞아 비명에 돌아갔다. 엄마는 누나의 이름을 목 터지게 부르며 두 손으로 누나의 무덤을 허비였다. 엄마의 분질러진 손톱과 두드러진 손끝에서 피가 질박히 흘러 누나의 무덤을 허비였다. 엄마의 분질러진 손톱과 두드러진 손끝에서 피가 질박히 흘러 누나의 무덤가를 흥건히 적셨다. 진달래는 엄마의 그 피눈물이 스며 피어난 꽃이며 청춘의 꽃망울을 채 터치우지도 못한 채 찬 땅에 누운 누나의 한(恨)이 송골송골 배여나 핀 꽃이다. 이제 남은 다섯자식을 남 부럼 없이 당신 손으로 키우려고 부엉새의 하소연과 동무하여 새벽가지 싸리광주리를 곁을 적 어머니의 이마에 구슬처럼 맺힌 새벽이슬이 피어난 꽃이며 삶의 목도채에 눌리어 덩굴처럼 휘어진 아버지의 안쓰런 허리에 내 돋힌 땀방울과 고달품의 뒤안길에서 허무하게 토해낸 아버지의 한숨이 점철된 꽃이다.

    진달래는 겸양의 미덕을 갖춘 꽃이다. 가난한 집 살림에 한꺼번에 둘 다 고중에 보낼 수 없어 탄식하던 어머니를 위로하며 엄마의 손에 쥐여진 땀 절은 돈을 남동생에게 쥐어주며 환하게 웃던 작은 누나가 있었다. 당연한 듯 그 돈을 받아 쥐고 공부하여 대학 간 남동생이 있었다. 못난 그 동생은 지천의 나이에야 그 제날 누나의 웃음 속에 맺힌 이슬을 읽었으니 이제야 가슴 치며 통탄한들 뭣하랴.

    우리 민족은 얼마나 많은 고난의 령(嶺)과 설음과 한(恨)의 고개를 넘어왔는지 진달래의 뿌리를 캐보면 너무나 잘 알 것 같다. 험난한 세상의 고달품을 감내하여 가슴속깊이 감추느라 설음이 한 되어 뿌리마다 얼키고 설키였으리. 그래서 화사하게 피어난 진달래는 더욱 값진 것이요, 더더욱 눈물겨운 것이리라. 진달래 꽃 웃음 속에는 민족의 수난사가 깃들어 있고 희로애락의 절창이 담겨져 있고 미래에 대한 지향이 깔려있다.

    진달래는 미래 지향의 꽃임에 틀림없다. 진달래는 짧은 한생 일월을 다투어 잎 먼저 꽃을 피우는 강한 개성과 저력을 지닌 꽃이다. 세상에 수없이 겪었으니 이제 닥쳐 올 역경쯤은 무슨 대수이랴. 단 하나의 씨앗으로 절벽에 뿌리내리고 군락을 이루었으니 이제 닥쳐올 고독이야 무슨 대수이랴. 진달래는 태어날 때부터 화려함과 고귀함과는 담을 쌓았으니 이제 주어질 무대가 허술한들 어떠랴. 진달래는 타향에 동떨어져 피어있어도 더더욱 세인의 주목을 끄는 신기로운 꽃이다.

    이제 진달래는 단순한 꽃의 의미를 벗어나 민족정신의 늪에 앙금 된 색 바래지 않는 얼이며 떠도는 영혼이 안주할 수 있는 아늑한 고향집 뜰이며 세새대대 지키고 가꾸어가야 할 민족문화의 가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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