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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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사람과 짐승의 차이
2012년 04월 06일 14시 43분  조회:6324  추천:5  작성자: 김송죽
    지난해 말 한국 대구에서 “독립군총재 백포서일기념 국제포럼”이 열린바있다. 나는 주최측으로부터 꼭 참석해달라는 요청을 수차나 받았고 그 모임에만은 꼭 가리라했다. 그런데 정작 때가 되고보니 공교롭게도 집사람 병이 갑자기 더 위중해지는통에 대답한대로 응하지 못하고 아쉽게도 사론(史論)만 한편 써 보내고는 끝내  결석을 했던 것이다. 과연 불가피한 사정이였다.

   일이 그같이 공교롭게 되니 새해들어 회의주최측이였던, 대구에 설립된 그 “백포서일기념회”의 추상호 계획실장이 불참한 나에게 출판된 론문집을 우편으로 보냈거니와 나를 만나보러 일부러 북경에 왔던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왕징(望京)에 있는 민박에서 초면인 그를 접견하게된거고 그한테서 서훈회장으로부터 보내는 따뜻한 위문을 전달받음과 동시에 연4일간을 지하철로 다니면서 “백포기념회”가 이제 바야흐로 활발히 벌리게 될 가지가지의 일들인 독립군에 대한 심층깊은 연구와 더불어 백포서일의 일대기로 되는, 이미 인터넷에 올려 공개되고있는 나의 미완성작품ㅡ 대하역사소설 <<반도의 혈(穴>>과 더불어 다른 모든 저작들의 재판을 위한 여건으로서의 출판사설립 등 여러 중요사항들을 내놓고 진지한 토론이 있게되였던 것이다.
 

   지금 조글로에 발표되고있는 내 글이 권태를 주는지 누군가는

   “좀 현실적인것을 쓰시오 다 지나간것을 자꾸써서 뭘하오 지금은 이런걸 보지 않수다”고 선의적인 권념을 해왔다. 그래서 내가 서운한 감이 들기도한건데 그 반대로 “백포서일기념회”에서는 내 글의 가치를 인정하고 각별히 중시하니 나는 웃음이 나오면서 내가 오래동안 헛짓을 한건 아니였다는데서 힘이 생긴다. 나의 주장인즉은 지성인은 물론 그 누구나 제민족의 력사는 알아야한다는거다.

 

   추상호선생이 왔다가자 이어서 이달초는 한국 國學硏究所의 김동환박사와 임창경 두 박사가 기여히 만나자고 제의를 해와서 나는 접견을 했던 것이다. 헌데 이번역시 중병을 앓고있는 노친의 병구완을 내가해야겠기에 기일은 3일간이라지만 각박하게도 오후 짧디짧은 몇시간이였다. 부득한 사정이였지만 그같이 귀한 손님들을 내가 제대로 접대를 못해서 몹시 안스럽다.
 

   이번 역시 우리의 만남은 지극히 필요했거니와 적시적인것이였다. 

   우리는 민족의 수난기였던 지난세기의 력사에서 중대사로 거론이 되고있는 몇가지 주요사건을 내놓고 견해와 관점을 기탄없이 피력했거니와 또한 그렇게 함으로하여 기껍게도 공통한 인식을 갇게된것이다. 자칫 역사가와 소설가사이 불필요한 마찰과 혼선을 빚을수도있는 일을 우리는 동댕이친 것이다.   
 

   약정한 3일간의 대담을 끝내고 두분은 어제 곧바로 연변 화룡으로 향했다. 거기 청파호ㅡ 대종교의 라철, 김헌, 서일 삼종사가 잠든 성지(聖地)를 참배하고 환국(還國)하려는 것이다. 좋은 기회였건만 그들과 동행못하니 안타까움이 그지없다. 나는 20여년전 백포서일(白圃徐一)이 조천(朝天)한 밀산당벽진은 가봤지만 청파호는 마음에 그릴뿐 여지껏 한번도 가보지 못한것이다. 서일의 일대기를 쓴다는 사람으로서는 자격지심이 드는 일이아닐수 없다.

 

   김동환, 임창경 두박사는 우리 집 노친의 병치료에 보태쓰라면서 2천원을 기어히 내놓앗거니와 굳이 지하철역까지 나를 배웅하면서 부디 오래오래 앉아좋은 글을 완성해달라고 신신당부했다. 이같은 직심스러운 축복을 거듭거듭 받고보니 스스로 내 존재의 가치가 새삼스레 느껴지면서 전날 나를 해친 두 악한의 몰골이 눈에 밟혀 이 글을 쓰게된다.

 

   나를 해친 두 악한은 정장송(鄭長松)과 장동화(張東華)였다. 그 둘은 “문화혁명”때 내가 써놓은 첫장편소설원고와 일기책을 빼앗아 간 것이다. 옹군4년간이였다. 그자들의 작간에 의해 나는 지옥에 떨어졌거니와 온갖의 비인간적인 학대속에서 상상키어려운 곡경을 치룬것이다.

 

   내가 반생을 넘어 살아온 흑룡강성 화천현 성화향은 지금도 6개마을로 이루어진건데 1960~70년대는 “성화공사”라 불렀거니와 6개 마을의 6개소학교와 중학교는 하나의 련합지부가 되어 공청단활동을 했던 것이다. 그때 중심소학의 교도주인이였던 정장송이 공청단지부서기를 맡고 소선대총보도원이였던 내가 공청단선전을 맡았더랬다. 우리는 같은해의 같은날에 학교당지부에다 입당지원서를 써바친 것이다. 그런데 정장송은 인차 입당이 되었어도 나는 종시되지 않았다. 알고보니 내가 렬사의 자식이고 사업을 잘하긴해도 아버지가 생전에 력사문제가 있은거로해서 나는 입당은커녕 외려 등때기에 검은딱지가 붙었던 것이다.
 

   1964년 여름이였다. 촌에서 벌어진 이른바 “정치를 맑게하고” “경제를 맑게하고” “사상을 맑게하고” “조직을 맑게한다”는 4청운동이 학교까지 온건데 정장송이 온공사의 교원회의를 열고 자기는 입당을 했길래 스스로 “당의 화신” 으로 자호를 한다하고는 “계급투쟁뚜껑을 여는 첫포”를 한학교의 김용천(金龍天)선생을 향해 쏘는 것이였다. 그가 적발한 “죄”인즉은 김선생이 10여근 되나마나한 싸래기를 주머니에 넣어 쟈므스(佳木斯)시내에 갖고가 아는집에다 팔마먹은 것이였다. 나는 그가 그러는것을 보다못해 아니 같이 이사를 온 “연변내기”로서 그러면 그건 너무나 몰인정스러운게 아니냐, 애가 앓아 돈이 바쁘서 싸래기를 팔았다는데 그걸 자산계급사상이요 자본주의길로 가오 하면 이 세상에 바른사람이 대체 몇이나되겠느냐, 너무그러지 말라고 했다.
 

   그랬더니 정장송은 눈살을 곤두세우면서 “당신은 왜서 4청을 반대하는가?”, “계급의 적을 공공연히 비호할텐가?”하면서 당장 화살은 내한테 돌렸던 것이다. “원고료는 액외의 수입이니 받으면 학교에 들여놔야지 그걸 혼자쓰는건 철두철미한 자산계급사상이다.”라는 것이였다.
 

   너무나도 유치한 소리라 나는 하도 쓰거워 말도하지 않고 참았다가 회의후에 그를 불러 정면으로 그것도 말이라구하는가, 그렇게 공산(共産)을 부르짓겠거든 어디 당신의 녀편네를 내놔서 공산(共産)으로 만들어보라했다. 그랬더니 그는 낯이 단통 지지벌개지면서 이를 쁘드득 가는 것이였다. 그리고나서는 “김송죽이 투고한 원고는 다 돌려보내라, 우리가 검사하겠다.”는 어리석은 편지를 신문사에 했거니와 “문화혁명”이 오니 “맛이 어떠냐?”면서 얼싸좋다고 보복을 한 것이다. 종당에는 판결에 넘겨진 내가 무죄로 결판이 나니 정장송은 “김송죽을 무죄로 판결하면 성화공사 5000명 반란파는 문화혁명을 헛한게 아닌가, ‘그물에서 빠진 우파분자’라는 모자라도 씌워달라“고 했다. 과연 히질게 물고늘어지는 박해광이였다.

 

   성화향백성들이 다가 나를 배척하면서 혹독하게 군건 아니였다. 절람관을 차려가면서 돌림투쟁을 했을 때에 성광마을의 로지서 장우곤(張宇坤)댁에서는 맛좋은 음식을 푸짐히 차려놓고 나를 많이먹어라했고 성화촌의 건설원로(建設元老) 리재근서기는 마지막에 나가면서 “억울해도 참고 견디시오, 절대 굽어들지 말고!”하고 조용히 귀띔해주었던 것이다. 내 책이 나와서였다. 성화향운동대회날이였는데 전에 한때 향장을 지냈다가 현으로 간 장영무로인은 일부러 술병을 들고 나를 찾아와 술잔에다 기여히 가득부어주면서 지난일을 량해하라했고 공사당위서기로 오래있다가 화천현에 현장으로 조동된 선우승(鮮于承)은 마취도 하지 않고 강다짐으로 맹장수술을 받은 내가 소염제한알도 구하지 못하는 처지였을 때 와보고는 페니실린 24병을 갖다주어 위험고비를 무난히 넘게했거니와 책이 나오니 축하를 한다면서 나를 힘껏 포옹했던것이다. 내가 홍광마을서 “문학크루쇼크”를 조직한건 공사당위서기였던 그에게 청시하여 그의 정식비준을 받은것이였다. 그러했지만 나는 “자본주의집권파”로 몰리우는 그를 련루시키지 않으려는데서  시종 입을 다물었던 것이다.  나의 그런 처사에 감격했던 그였다.         

   

   사람축에도 못가던 내가 끝내 문학에 성공하여 신문꺼리가 되니 한족기자들마저 련줄찾아오니 한때 온 성화향은 들썽했다.

   정장송은 그제야 가슴이 찔리는지 아니면 인성(人性)이 부활해서인지 두 번이나 우리 집을 찾아와 자기 때문에 나는 하지 말아야 할 고생을 숱해했거니와 여지껏 입당도 못한거니 “죄를 미봉하는 셈”소개인이 되여 나를 꼭 입당시켜주겠노라하는 것이였다.

   나는 아무응대없이 속으로 웃고말았다.
 

  “자식, 교활하기는 원....입당이 뭐 교환물인가? 네놈은 과연 여우대갈꼬깔이나 쓰고 살 놈이로구나.”            

   내노친이 저새끼가 어쨌다구 우리집에는 또 바라오느냐, 보기만해도 눈에서 불이 나는데 하면서 입당만해보라, 아예 이혼하고말테다고 성명을 내렸던 것이다. 정장송은 60도못살고 어느핸가 위장암으로 죽고말았다. 아무튼 그렇게라도 사과를 표시했으니 더 욕을 더하지 않겠다.

 

   그러나 장동화는 다르다. 나는 조물주가 오망을 써서 짐승의 동체에다 사람의 깜지를 씌워 그를 만든게아닌가 한다.

   다 지나간 일인데 에라 잊고말자했다. 그러나 그가 자진해서 사단을 일으키니  가만둘수 없다. 내가 그곳을 떠나기 전이였는데 하루는 그가 성화향직공로인회 회가를 지어서 들고와 나보고 봐달는것이였다. 그래서 보게된건데 곡은 그만하면 되었어도 가사는 형편없었다. 무슨 공산당의 빛발아래 어떻구어떻구한것이 그대로 문화혁명때의 구호를 토막쳐 라렬한 것이였지 로인회가가 되여 입에 올라 불려지기는 도무지 어려운것이였다. 그래서 내가 아니 장선생, 지금이 어느땐데 아직도 이런 글을 씁니까했더니 그가 나보고 그러면 가사는 차라니 김선생이 맡으라는 것이였다.

그래서 내가 고쳐쓴건데 그 원문이 이러하다.

 

                송화강구비치는 성화벌이

                정들어 한생을 살아왔는가 

                머리에 흰서리 내린 우리들

                황혼이 손을 저어

                락원에 모였네

                아, 여생도 보람차게 가꾸며

                즐겁게 살아갑시다

 

                흐르는 세월이야 멎으랴만

                한생의 복락은 빛과 같아서

                고생을 참으며 겪은 우리들

                황혼이 손을 저어

                락원에 모였네

                아, 여생도 보람차게 가꾸며

                즐겁게 살아갑시다

 

   노래는 인츰불리워졌거니와 다른마을 론인회에까지 보급되였다.

향소재지의 직공로인회에서는 음악을 아는 소학교퇴직녀교원 한금옥선생이 손풍금을 띠워가면서 배워주었다. 그런데 어느날 그 선생이 그만 자기는 여직 이렇게 재미있게 만들어진 가사를 처음본다고 말해서 그만 예상밖의 사달이 생기고말았던 것이다. 장동화가 그 말을 잡아듣고는 왜서 가사를 잘썼다하면서 곡을 잘썻다는 말은 하지 않는가고 걸고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다툼이 생긴건데 그것이 어느덧 두집사이의 싸움으로까지 번졌던것이다. 

 

   며칠안되여 년말이 되였길래 로인회에서는 일년간의 총결을 짓고 음식을 쓴건데 그날 한상에 마주앉은 내가 장동화보고 “아니 장선생, 그깟 갖지도않은 문젤같고 쩨쩨하게 두집 싸움까지 할건 뭡니까? 더 웃기지 마십시오.”했다.

그랫더니 그가 하는 대꾸안즉 “김선생만 칭찬하니 그러는게지.”였다.

    이건 뭐 유치원애의 발상인가! 나는 하도 어처구니없어서 한마디 더했던 것이다.

   “아니, 장선생님! 한금옥선생이 나를 좀 칭찬해주는게 그리도 듣기싫습니까? 선생님은 지난일을 생각해서도 어쩌면 이렇게 까지야..... ”

   그랬더니 장동화가 더 뻔뻔스레 나오는것이였다.

   “내가 어쨌다는 말인가? 난 당신한테 미안한 일 한게 하나도 없어.”

   량심을 때여 개를 먹였는가? “무죄석방”이 된 내가 이웃마을에 전근하여 소학생을 가르치면서 빼앗겨 잃어진 첫장편소설을 비밀리에 다시썻더니 그걸 어떻게 냄새맡고는 또 잡자고들었던 자였다. 교학검사를 한답시고 와서는 우리 집에 잘다닌 하향지식청년더러 나의 반동적인 언행을 적발하라했거니와 “송죽이! 왜 또 글을 쓰는가? 전공사 군중이 몇해간이나 동원되여 사람이 되라고 도와줬건만 지금까지 글쓰는 버릇을 고치지 못하니 정말 너무 악질적이다.”고 하였던 그였는데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모양이니 나는 더 참을수 없었다.

   “아니, 장선생! 내한테 미안한 일을 한게 하나도 없다? 정말그런가? 장선생은 내 일기책을 가져가면서 뭐라했는가? 보고서는 돌려준다고 했지? 그래 한권이나 돌려줬습니까?....” 하니 그가 또 하는 말인즉은

   “그랬는데는 어쨌말인가? 그래 문화혁명에 불만이 있는가? 쏸좡(算帳)을 하겠거든 모택동하구하라구!” 였다.

   세상에 원, 이렇게 뻔뻔스런놈도 있단말인가? 너무나도철면피했다!

   나는 소가죽같이 두터운 그의 낯짝을 쏘아보면서 한마디 내뱉었던 것이다.

   “그것도 말이라구하는가?”

   그랫더니 그가 자기가 하는게 말이 아니면 그래 뭔가하면서 채접시를 쥐여 뿌리는것이였다. 나는 날아오는 그것을 잽싸게 피하고 일어나면서 여기서 싸우지 말고 밖으로 나가자했다. 그래 격전장이 옮겨진건데 모두들 깜짝놀래서 밖으로 우루루 나왔다. 그는 밖에나와서도 나에게 그냥 발질주먹질을 해댔다.

이래도 내 손은 그냥 참고 놀아야하는가? 격분이 끊어오른 나는 더는 인(忍)을 지켜낼 수 없어서 끝내 한 대  답새기고말았다. 

   그자의 코등에서 안경이 날아났고 얼굴반쪽이 단통 피멍이 들면서 벌겋게 변해갔다. 평생처음이다. 이건 내가 어려서 군인들한테 배운 솜씨를 보여준것이다. 생각밖에 가해진  타격에 악연해진 그는 그만 얼빠진 개같이 반항을 잃고말았다.

   이틀지나 그는 마을에서 사라졌다. 짝작얼굴을 해들고는 나다니기 창피했던 모양이다. 저 북쪽 흑룡강가 어디선가 음식집을 꾸리는 딸집에 피해갓던 그는 한달만에야 돌아왔는데 오자마자 향사법조리에게 신소장을 올리였다. 나 이 김송죽이가 공산당원인 자기를 함부로때린건 문화혁명에 대한 보복이니 엄하게 처리해달라는 것이였다. 여지껏 자기를 스스로 신성불가침의 존재로 여겨왔으니 삶아놓은 소대가리가 웃을일이였다. 언젠가 한국가서 돈팔아가며 제딸같은 젊은녀의 믿구녕을 뚜지고와서는 그걸 자랑이라고 입끝에 달고다닌  물건짝이다.  아무렴 그렇게까지 부끄러운줄모르다니?  나는 그를  사람이 아니라 시궁창에 바라다니는 더러운 부덕쥐로 본다. 

   투구나신(鬪毆裸身)이라했다. 인원수만 많으면 위력이   세지는걸가? 아니다!

공산당은 신성한 조직의 명예에 똥칠을 하는 그따위 부패분자를 제때에 사출하여 척결함으로써만이 군중의 위망과 실력을 확보할수 있을것이다.   

                                                 2012년.4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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