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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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    김정은 왜?..중국은 행동할 것이다!(1) 댓글:  조회:2888  추천:0  2015-10-02
                 김정은 왜?..중국은 행동할 것이다!                                      김정은은 왜 국경절에 간단한 메시지만 보냈는가?                                            중국은 행동할 것이다! (번역련재15편)                             简单贺电国庆:中国将有所动作_今日头条_军事头条                                                               1                             김정은이 조선의 최고령도권을 이어받은 이래의 행동을 보면 외부에서는 이해되지 않는다. 그는 외사활동에 적게 참가하거니와 제 명의로 다른 사람을 보내군한다. 그 자신은 외사활동에 거의 참여하려하지 않는 것이다. 그는 중국 국경절에 마저도 오지 않았던 것이다.   한국 중앙통신 30일 보도에 따르면,조선최고령도자인 김정은은 최고인민회의상임위원회위원장 김영남과 내각총리 박봉주를 당날에 파견하여 중화인민공화국성립 66주년 경축에 참가하게 하면서 중국의 국가주석 습근평、국무원총리 리극강과 전국인민대표대회상무위원회 위원장 장덕강에게 축하문을 전달하게 한 것이다.   축하문은 다음다 같다. “중화인민공화국성립 66주년을 계기로 우리는 조선로동당,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인민의 명의로 당신들을 통해서 중국공산당과 인민정부와 인민들에게 축하를 보낸다. 중화인민공화국의 부강과 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축원한다.”   오늘의 중국과 조선지간의 관계를 보면 그것이 바로 새 신호로 되고있는 것이다. 김정은 정권을 잡아서 2012년부터 국경절에 시진핑주석에게 축하메시지를 좋게 보냈던 것이다. 그런데 지난해부터는 보내는 메시지에 북조선은 중국과 "특별한 관계"임을 강조하지 않고있다. 올해에 보낸 메시지는 내용이 간단하고 짧았다. 이에 대해서 사람들은 중국과 조선의 관계는 냉각상태가 아닌가고 분석하고있다. 이것이 두 나라지간의 관계를 잘 반영하고있는 것이다.   9월8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성립 67주년 국경절이 돌아오니 시진핑은 금년에도 그날을 기념하여 김정은에게 축하메시지를 보냈는데 조선에서는 "로동신문" 첫면에다 러시아와 쿠바지도자들의 메시지를 싣고는 중국에서 보낸 메시지는 뒷면에라 실었던 것이다. 이는 중국과 조선사이의 랭각상태를 그대로 잘 반영하고있다. 중국이 한반도문제에서 한국을 선호하니 조선은 그에 맛서서 불만을 토해낸 것이다.    김정은은 스스로 중국을 방문 할 기회를 놓쳐버렸다. 중국에서 항전승리 70주년을 경축하여 열병을 륭중히 거행했건만 그는 그것마저도 와보지 않았으니 출국방문을 아예 하지 않으려는 속셈인게 분명하다. 그러니 국경절에 그가 중국의 최고지도자에게 메시지를 보낸것은 통상적인 관행에 속하는 스타일이였다고 볼수밖에 없다. 어떤 특별한 의미도 없다.   그러나,돌아오는 노동당창건 70주년을 맞으면서 조선에서는 10월 10일을 게기로 전후하여 위성을 발사하는 것이 아니라 제4차 핵실험을 할 것이라고 관찰가들은 내다보고있다. 조선은 그것으로 국경절에 헌례하려는 것이다.                                              출처: 81군사 뉴스 네트워크  
163    일본 레드클래식: <<전쟁과 사람>> 댓글:  조회:2813  추천:2  2015-03-21
                              일본 레드클래식:                                           (日本红色经典)        야마모토 萨夫(1910년 7월ㅡ 1983년 8월)는 일본의 가고시마시에서 태여났다. 그가 맨처음으로 감독을 맡고 찍은 영화는 1937년에 나온 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후에 좌익사상을 가진 영화들을 적잖게 찍었는데 거개가 상업적인 가치도 있는 것들이였다..    주요한 작품으로는 외에도    ,    ,    ,    ,    ,     등이다.     야마모토 萨夫의 영화가 더러 중국에 들어와서도 상영되였는네 관중들의 인기를 끌었다. 오늘 내가 본 그의 력작으로 치고있는 2부만을 참고로 우선 내용을 소개하련다.      (1)    1928년, 신흥재벌 5대가족의 두령 고다이아츠코는 거실에서 가족의 추천을 받아 미국에 가게 된 맏아들 에이스케를 위한 송별연회를 차린다. 그는 자기가 계획적으로 차리는 그 가족연회석에서 아래사람들이 만주의 형세를 놓고 서도 담론하게끔 유도한다.    그의 맏아들 에이스케와 다른 한 사람 가지샤오지에는 만주에서는 장작림의 군대가 일본사람의 생명과 재산에 대해서 강경한 수단을 취하고있으니까 만주에 건너와 살고있는 일본사람들은 위협에 직면한 것이라면서 일본은 반드시 그에 대한 상응한 조치를 취해야지 그러지를 않았다가는 앞으로 더 살아가기가 어려울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관동군이 출병하여 장작림군대의 무장을 없애치우게 하는것 밖에 다른 출로는 없다고 한다. 가지샤오지에는 만주에 온 후 5대를 내려오면서 운송회사(运输公司)를 꾸리고있는데 편리를 리용해서 암암리에 독품거래를 하거니와 옛날 무사도의 정신으로 서슴없이 공포적인 수단으로 돈벌이를 하기도 하는 사람이였다.    5대가족의 한사람인 가지샤오지에는 관동군은 어물거리고 천황은 출병명령도 내리지 않고있으니 불안하다고 곱씹는다. 그는 언녕 장작림(张作霖)을 암살해버릴 궁리를 하고있었던  것이다.    1931년 9월 18일, 관동군은 심양교외에 있는 류조거우(柳条沟)에서 위력이 대단히 높은 폭발물을 터쳐 장작림이 타고가는 렬차를 전복시키고는 한심하게도 그것은 국민당군대가 전쟁을 도발하기 위해서 트집잡는짓이였다고  여론을 퍼뜨린다.    이 사건이 있은 후 그들 5대가족은 기회가 왔다고 군대측과 벌이를 벌려 횡재를 한다.    미국에 갓던 에이스케가 돌아온다. 그는 아츠코를 동북에서 철 산업을 하게끔 만들어놓는다. 한편 “상해사변”직후  아츠코의 장녀 유키코의 남자친구인 쓰게는 싸움판으로 출정하게된다. 하여 유키코는 복잡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세월을 보내게 된다.         (2)     일본의 침화전쟁은 날일갈수록 심해진다.  이에 따라서 일본사람의 그 5대가족에도 기쁨과 슬픔이 엉켜붙는 생로에 접어든다. 제5대인 아츠코의 둘째아들 슌스게는 제가 살아갈길을 제절로 찾는다면서 집을 떠나갔거니와 남편이 있는 유부녀 아츠코에 반하여 그를 사랑하게된디. 그 둘은 죽을둥살둥 모르고 영원히 붙어살려했지만 아츠코남편의 고압적인 조치에 어쩌지 못하고 고통만 겪는다.    한편 유부녀 아츠코의 둘째딸 쥰코는 좌익학생 코헤이와 가까워져서 그와 사랑관계를맺게되는데 반전운동을 해오던 코헤이는 어느날 그만 경찰에 체포되고만다. 쥰코는 그를 빼내오느라 갖은 애를 다 쓴다. 그럼으로 하여 코헤이는 마침내 감옥을 나오게 된다. 그러나 그들 둘은 붙어 살수 없게된다. 감옥을 나온 코헤이에게 군대에 나가라는 지령이 내렸던 것이다. 쥰코는 코헤이보고 제발죽지 말고 살아서 돌아와 다시만나자고 당부한다.    다른한쪽 아츠코의 큰딸 유키코의 남자친구 쓰게는 어느덧 중위로 승급한다. 그는 우여곡절 끝에 끝내 도쿄로 돌아온다. 그런데 그는 군무국장 나가타를 암살하는 안건에 말려들고만다. 그럼으로하여 그때로부터 그만 유키코와의 련계는 끊어지고만다.    다른한편 항일유격대원 서재림(徐在林)과 여유격대원 전명복(全明福)사이에는 사랑관계가 이뤄진다. 서재림은 “만주성위”에서 파견한 대표와 부대를 철퇴시키는 문제를 놓고 다투다가 끝내 도망치고만다. 전명복은 그만 총에 맞아 죽는다.    부유한 집의 미스로 태여나 “항일운동”에 참가한 조서방(赵瑞芳)은 일본의사 핫토리와 사랑을 맺는다. 커버 핫토리 때문에 그녀는 군사경찰의 체포를 피해 상해(上海)를 탈출한다.      (3)    1937년,일본은 침화전쟁을 전면적으로 발동한다. 아츠코의 큰딸 유키코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사랑하는 쓰게로 하여금 군무국장 나가타를 암살하는 안건에 말려들게했다가 그만 모든 련계를 잃고만다. 그와의 사랑이 담박해진 그녀는 자신을 헌신하려던 생각을 접어버리고는 한 금융거인의 아들한테 시집을 가려고 한다....      유게세의 딸 쥰코는 자기가 애모하던 좌익학생 코헤이가 입대하게 되니 그와의 련계는 끊어지고만다. 코헤이의 반전사상의 영향을 받은 그녀는 끝내 가정을 떠나 평화운동에 뛰여든다. 그랬다가 쥰코는 우연히 코헤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지금 중국의 항일운동을 원조하고있다는 소식을 듣게된다.     한편 아츠코의 둘째아들 슌스케는 일본의 중국침략을 반대했다가 체포되여 감옥에 같히며 감옥을 나와서는 다른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군대모집에 빨려들고만다. 대포밥이 되어야 하는 슌스케는 전쟁마당에서 제눈으로 직접 쓰게중위가 죽는것을 본다.      쏘련홍군의 훼멸성적인 타격을 받게 된 일본군은 하이라얼로 창황히 도망쳐 더 이상 싸움을 지속 할 수 없게된다. 목숨이 붙어있지만 실혼락담한 슌스케는 도망치는 난민들의 무리에 슬그머니 숨어들고만다.                   
162    <<에필로그>> 댓글:  조회:3078  추천:0  2015-02-04
        에  필  로  그             1976년 여름.    안경을 낀 용모단정한 지식인타입의 사나이 하나가 나들이차림을 하고나서 벽 한켠을 거의 차지하고 있는, 책들이 빼곡이 꽃혀있는 서가와 테이블과 이불장이 한데놓여있는 방을 일별하고는 문에다 자물쇠를 놓았다. 정민호의 양자 성국이다. 올해나이 33살인 그는 아직 장가도 가지 않은 독신이다. 그는 중국에서이 일어나기 착 전해에 사범학원을 나왔다. 운이 좋았다 할가 집은 망했어도 그만큼 공부한것이 다행이였다. 옹근 10년간이였다. 그가 교문을 나오자 온 나라가 혁명을 한답시고 뒷죽박죽이였다.     성국의 양부와 양모는 그가 소학교를 다닐때부터 아이의 장래를 봐야한다면서 염왕산을 나와 호적을 만들어 태평진에 붙이고 살았다. 그가 큰아버지라 부르는 왕견이네도 양부의 권고에 못이겨서 함께 염왕산을 나왔더랬다. 그러나 그들은 진의 량식국에 다니던 양부가 어느핸가 민족주의분자라는 덤터기를 쓰고 강직되여 일반과원으로 되는것을 보자 너도 장차 장평의 꼴이 되겠구나 이놈의 데도 사람이 살데가 아니라면서 염왕산과 그리멀지 않은 한 림장의 산림지기로 가버린것이다.     혁명이 일어나자 반란자들은 양부와 양모의 지난때의 력사를 문제로 삼으면서 그들을 로 몰았다. 게다가 가택을 수색하면서 만든지 40여년이 되는 자그마한 태극기까지 나와 양부에 대한 투쟁은 극에 이르어 나중에는 죽음까지 당하게 했던것이다. 그가 마지막으로 투쟁받은 곳은 집이 있는 태평진이 아니라 전부터 동포가 많이 모여 사는 목청마을이였다. 그날 그 장소에는 성국이도 있었다. 반란자들은 양부가 죽는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를 일부러 참가시켰던것이다.     그날은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음산한 날씨였다.     마을의 널직한 구락부는 이웃 금화마을의 사람들까지 와서 꽉 차  립추의 여지도 없었다.     혁명자들은 양부를 뒷짐묶어 커다란 패쪽을 목에 달아서는 무대아래의 걸상우에다 올려세워놓고 투쟁했다. 그날의 투쟁대회를 집행하고있는 자는 촌혁명위원회의 황용팔이였다. 황용팔인즉은 저 북쪽 먼 흑룡강가의 가진구마을에서 한때 밀수장사를 해먹으면서 세월을 보내던 그 김국정이란 사람의 네째 사위다. 성국의 양부를 내놓고서는 적발하는 사람이 없으니 그 집들이 지금은 성분좋고 력사가 깨끗한 사람으로 인정돼서 내좋은 세상이라 놀아대는 판이였다.     황용팔이 성국의 양부보고 모택동의 을 외우라했다.    《늙은것이 기억력이 없어서 외우지를 못했수다.》    《한편도 못외웠단말이냐?》    《예.》    《뭐라니, 이 두상짝이 정말 완고한 반혁명이구나.》     화금마을에서 온 혁명자가 양부의 목에 걸린 패쪽을 잡아 당기면서 욕지걸이했다.     이때 팔에다 붉은 완장을 띤 홍위병들이 대회장을 비집고 들어온 한 늙은 한족거지를 밖으로 내쫓고 있었다.    《취! 취! 취!》     아니 저분이 어떻게 알고 왔을가!?.... 성국이는 고개를 돌렸다가 람루한 옷을 입은 그를 알아보고 깜짝놀랬다. 그는 다른 살람이 아니라 왕견이였던것이다. 지나간 재해년간에 왕견큰아버지는 멧돼지를 사냥하여서는 고기를 여러축이나 가져다 주어 그들이 생명을 잃지 않게 했었다. 성국이는 외지에 나가 공부하면서부너 그를 드믈게 찾아뵈였는데 이런 장면에서 다시보게 될 줄이야!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생각이 돌지 않았다. 나가서 만나면 사람들은 단통 그를 의심하고 붙잡을것이다. 그래서 성국이는 나가지 않았다. 왕견큰아버지께서 왜 여기에 나타났을가?....     황용팔이 양부와 따지고들었다.    《이놈아 네가 삼일운동에 참가했다는게 정말이냐?》    《예. 참가했습니다.》     회의장이 술렁거렸다. 제 민족의 력사에 대해서는 전혀 배우지를 않아 깜깜인 젊은이들이 삼일운동이라는게 뭐냐, 그게 어느때 에 논 운동이냐, 저 령감도 운동원노릇을 했다는 말이지, 축구냐 롱구냐 아니면 달음박질이냐 하면서 무지를 표현했다.....     황용팔이 다시물었다.    《령감, 문화대혁명에 대한 감상이 어떤가?》     양부는 고개를 쳐들더니 입가에 조소를 머금으면서 대구했다.    《감상이라는게 별게없수다. 제 가시집믿구녕이 더 더럽건만 황용팔이가 개코도 모르면서 너덜대는게 우습구 한심할 뿐입니다.》     사람들이 그만 참을성을 잃고 킥킥 웃었다. 그통에 그만 투쟁마당이 엄숙성을 잃어갔다.    《이놈아, 토비질해먹은 네놈보다 믿구녕 더 더러운 놈 세상에 어디있냐. 네놈은 아직도 복벽음모를 꿈꾸면서 남잡이를 하자고 들고있어, 나쁜놈! 요물잡귀!》     대중앞에서 조롱당한 황용팔은 밸나고 분하고 악이 났다. 그는 씨근대면서 주먹으로 로인의 머리를 윽박지르더니 호주머니에서 태극기를 꺼내여 머리우에 들면서 높이 웨쳐댔다.    《혁명적군중 여러분! 보란말입니다. 이게 뭡니까. 남조선의 깃발이 아닙니까. 이놈이 이따위걸 여적지 깊숙히 숨겨두고 있었으니..... 그래 무슨 목적이였겠습니까?....우리의 사회주의 사회를, 무산계급의 정권을 뒤엎자고 복벽을 꿈꾸고 있은게 아니였던가? 이런 반혁명분자를 그래 살려둘수 있단말입니가?》    《저놈을 때려엎어라!》     누군가의 외침소리가 남과 함께 광열적인 홍위병들이 몽둥이를 들고 욱 달려들었다. 양부는 물매를 맞아 죽고말았다.     성국의 양부가 이렇게 생명을 잃은지 며칠안되여 목청마을에는 무서운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늙은 장인과 장모와 같이 있으니 처가살이를 하는 황용팔네 식솔 일곱이 하루밤새에 몰살을 당한거다.     이 사건은 폭발적인 특대뉴스가 되어 사람들을 전율케 했다. 이는 철두철미한 보복이였다. 성국이도 양모도 그러지 않았다. 그렇다면 잔인한 복수자는 대체 누구일가?....     양부가 세상뜨자 양모는 미쳐버렸다. 그녀는 태평진중심광장에 세운 위대한 수령의 석상앞에서 매일 손에 붉은 어록책을 들고 충성춤을 추고 침을 뱉아 소란을 피우더니 어느날 정신이 돌아지자 그만 목매여 자결사고말았다....     왕견을 찾아봐야 했다. 풀어야 할 수수께끼가 있는것이다. 그 수수께끼는 오직 그를 만나봐야만 풀릴것 같았다. 한데 그는 본래살던 곳에서 떠나 아예 자취를 감춰버린 것이다. 아직도 살아나있는지. 아마도 염왕산으로 들어간것 같은데 성국이 혼자의 재간으로는 거기로 들어갈 수 없는것이다. 하여 그는 여름방학이 돌아오자 품놓고 찾아볼 예산을 하고 홍림림장으로 갔다. 그곳 문화관에서 사업하고있는 왕국훈이 그와는 고중시절의 동창인데 그의 삼촌벌되는 사람이 산림직이여서 혹시 왕견의 종적을 알것 같아서였다.           그곳에 이르고 보니 해가 다 지는 저녁켠이였다. 전에 염왕산류자들이 다루던 아편밭이 지금은 림업로동자가족들이 모여든 커다란 마을이 되었다. 홍림에서 염왕산심처까지 기껏해야 50여리. 이미 20여리를 들어왔으니 남은것은 30리다.    《래일 하루면 얼마든지 들어갔다가 돌아설 수 있겠구나.》     성국이는 기뻤다.     한데 삼림지기 왕발이 자기는 여기서 염왕산으로 한발짝도 더 들어가보지 못했다며 나누울줄이야!    《거기가 어디라구 들어갑네까. 죽자구 들어가겠습니까. 해골이 가득허구 귀신이 득실거린다는 얘기를 못들었습네까. 아예 생각지두 말구 돌아가시우.》     왕발은 길잡이를 서주기는 커녕 손사래까지 쳐대며 가지 말라고 극구말리였다.    《글을 쓰겠거든 여기서 쓰시우. 조용한게 좀 좋은가유. 일년열두달을 있는대두 내가 가라구 쫓지를 않을테니까유.》     성국이는 이제 나이 쉰이라지만 형편없이 걷늙어서 령감꼴이나는 산지기의 호의에 감사는 하지만 이곳에 온 목적은 왕견을 찾자는것이니 한술 더 떠 보았다.    《한가지 더 물어봅시다. 국훈의 삼촌분께서는 왕견이라는 분을 아십니까? 지금까지 살아계신다면 년세가 거진 여든에 나지요. 본래는 태평진서 살던 분인데 재해년간에 여기 산을로 들어왔다고 합니다.》     왕발은 불쾌할 때 처럼 이마살을 찡그리더니 머리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난 모릅넨다. 그런 사람을 난 보지두못했습넨다. 여기 산에는 보다싶이 나하구 산귀신밖에 없습넨다.》     성국은 그의 말을 곧이듣고싶지 않았다. 여기서 30여년간이나 삼림지기를 해온 사람이 그래 여기에 와있은 사람을 보지도 못했다는게 어디 말이 되는가. 그리고 왕견역시 마찬가지다. 붙잡힐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이면 은거를 한다해도 산지기의 눈마저 피하면서 숨어살기까지 하겠는가. 그렇지는 않을것이다.     우직한 왕발은 조카가 데려온 손님이니 반가와는 하면서도 왕견의 말을 꺼내니 경계하면서 곁을 주려하지 않았다. 이러다가는 아무것도 알아낼것 같지 않아서 성국은 왕견인즉 자기의 큰아버지라했다. 그랬더니 삼림지기는 믿기는새려 더 의심했다.    《아니 손님은 조선족이 아니요. 헌데 그분이 어떻게 큰아버지루는 된단말이우. 정말 눈감고 아웅하자구드네.》    《민족이 다르면 큰아버지로 될 수 없다는 법이 있습니까. 정말입니다. 그 로인의 부인을 난 큰어머니라 불렀습니다. 성명이 소춘매지요. 어떻습니까, 내 말이 틀립니까. 틀리지야 않겠지요.》     왕발은 이마살을 잔뜩 찌프릴 뿐 의연히 믿으려하지 않는다. 말은 안해도 그의 얼굴표정을 보면 이 세상에 누구의 말을 믿는단말이냐, 오늘은 형님이요 동생이요 하다가도 래일이면 이놈 저놈하면서 물어먹고 잡아먹지를 않느냐, 친혈육간에도 부부간에도 주의요 립장이요 하면서 계선을 가릅네 하고는 남이 되고 원쑤가 되는 세월이 아니냐. 왕견이 너의 큰아버지라면 왜서 인제야 찾아보는거냐. 네가 공안의 추김이나 개가 되어 그를 찾느라고 여기로 기여든게 아니냐 하고 캐묻고 있었다.     성국이는 안되겠구나 이 두상이 이 모양이니 진득히 있으면서 알야내야겠다고 맘먹었다.     왕국훈은 잠도 자지 않고 당날로 돌아가고 성국이만 남았다.     이틑날 아침때 막을 나갔던 왕발은 털빛이 재색나는 산토끼 한 마리를 들고 들어오면서 요란스레 떠들어댔다.    《손님! 요놈 좀 보십쇼. 옹노에 걸린걸 납작 붙잡았습네다. 요놈을 어떻게 해드릴가요. 깝지를 벗겨 볶으랍니까 아니면 불에 구으랍니까?》    《맘대로 하시오. 내야 손님이니 주인해주는대로 먹지요.》    《내가 보증합죠, 보증하구말구. 선생이 나하구 같이 있는날까지는 고기반찬을 떨구지 않을겝니다. 떨구지 않구말구요. 내가 해드릴텐뎁쇼.》     태도가 어제완 판 달랐다. 하는 거동을 봐서는 왕발이 친선을 다하려는것 같았다. 한데 성국이는 이 삼림지기가 메스꺼울정도로 추접어서 처음에는 마음들지 않았다. 그가 문명이란 전혀모르는 산사람의 비문화적인 사유와 습관을 한몸에 갖고있는것만같았다. 우매한 인간의 단순함이랄가 순후한 그가 친절을 다할 때면 그것이 너무 지나쳐서 우습강스러울 정도였다. 그런데 지내보니 마음만은 막앞에서 흐르고 있는 개울물같이 맑았다. 왕발은 상처한지 20년이 넘건만 재취할 념을 하지 않고 내내 홀몸으로 적막한 이 산중에서 고독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한테는 아들은 없고 딸만 둘이였다. 큰딸은 저멀리 고향 산동으로 시집가고 둘째딸은 홍림의 어느 단위에서 사업한다고 한다.    《손님은 살이 아주 흰뎁쇼. 내가 얼굴이 그모양되면 우리 딸년은 기겁초풍할겝니다. 보시우 나야 이렇게 멧돼지가죽같잖은가유.》     이러면서 왕발은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자기의 손을 내뵈였다. 그의 손은 확실히 멧돼지가죽같이 터실터실했다. 그것은 살결이 좋지 않아서가 아니였다. 평시에 깨끗이 거두지 않아 그모양이 된게 분명했다.     내가 우선 너의 위생습관부터 고쳐놔야겠다. 성국은 아침을 제꺽먹고나서 막안의 짐들을 와락와락 걷어냈다. 왕발은 처음에는 영문몰라 어리둥절했다가 청결을 한다니 하는 수 없이 도와나섰다. 그들은 막안의 먼지들을 털어낸 후 황토로 검은 벽을 발랐다. 그랬더니 몇배나 환해지면서 막안은 면모가 일신했다.     성국이는 그한테 시범을 보여주느라 작식솜씨도 표연했다. 왕발은 각시있는 사람이겠건만 음식을 어쩌면 이리도 먹음직하게 하느냐고 칭찬이 대단했다. 이에 성국이는 자기가 여직 장가도 가지 않고 혼자살길래 작식재간이 느는것이라 했다. 그랬더니 왕발은 웃으면서 아 그런가, 그렇다면 우리는 둘 다 신세 꼭 같은거라면서 살갑게 굴었다. 그러면서도 왕발은 왕견이 살고있는 곳은 의연히 알려주지 않았다.     온지 나흘째 되는 날 성국이는 한가지 이상한 일을 당하게 되였다. 아침을 먹은 후 부엌설걷이를 끝내고 나서 구정물을 던지러 밖에 나갔던 그는 듯밖에 느닷없이 웬 한족녀인 셋이 이 외딴집을 찾아오는것을 발견했던것이다. 하나가 나먹은 중년의 부녀였고 둘은 젊은 각시였다. 저 녀인들이 왜 일찍이 이런 유축에는 찾아오는 걸까?....성국은 자못 의심스러워 하면서 눈여겨보았다. 산열매가 익는 철이라면 그것을 따러 심산으로 올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산열매가 익는 철도 아니였다. 옷입은 모양들이 에누리없는 나들이차림이였다. 세 녀인은 막가까이 왔다가 그를 발견하고는 무르춤했다.     감히 더 다가오지 못하고 주저하니 더 이상스러웠다.    《나가보시오. 웬 부녀들이 찾아왔구만요.》     성국이가 막안에 들어가 알려줬다.     왕발은 귀가 벌쭉해지더니 낯색이 금시 확 밝아지면서 나갔다.     성국이는 낯을 돌려 문쯤으로 내다보았다. 중년부녀가 왕발을 면목아는것 같았다. 그녀는 소마소마한 마음으로 집안에 있는 안경낀 사람이 공안이 아닌가 묻고 있었다. 왕견은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고나서 그녀의 귀가에 대고 무어라 수군거리더니 몸을 돌려 막안으로 들어오는 것이였다.    《선생, 내얼씨덩 갔다올테니 막에 가만있으시우. 혼자 절대 먼데루 나다니지를 마슈 함정을 파놔서....》     그는 부탁하고서 급히 되돌아 나갔다. 그리고는 녀인들을 데리고 막앞을 지나서 서쪽 어디론가 가버렸다. 그 행동이 과연 수상쩍었다. 괴상한걸! 저 사람이 여자들을 데리고 대체 어디로 갈가? 대체 뭘하러 온 여자들인데?.... 의문이 련줄 꼬리를 물면서 마음을 들뜨게 하고 괴롭히기도했다.     막서켠은 숲이 우거진 그윽한 계곡이였다. 그 계곡은 길지 않았다. 약 5리가량 들러가서는 높다란 산이 막혀 거기서 끝나고 있었다. 막이 있는 이 산과 줄기가 이어진 높다란 서켠산은 남쪽의 낮고 기복이 완만한 산과도 이어졌는데 어디나 없이 온통 수림에 덮혀 있었다.      산림지기는 그런 숲속으로 녀인들을 데리고 자취를 감춰버린거다. 설마 녀인들을 데리고 자자고 그러는건 아닐것이다. 하다면 우매한 녀인들이 미신에 젖어 명을 비느라 사신령을 찾아오는걸가? 미신을 믿지 말고 낡은것을 타파해야한다고 구호를 숱해외쳐왔지만 어떤 사람은 그럴수도 있을것이다. 정녕 그렇다면 여기 어디에 산신당이라도 있을게 아닌가. 하다면 그녀들은 왜서 제물도 없이 맨 빈손들일가?.... 의문은 의혹으로 커지면서 점점 더 짓꿎게 갈마들었다.     얼씨덩 돌아오마고 간 사람이 한식경지나도 오지 않았다. 저 왕발이 거짓말을 한거야. 성국이는 멍청히 앉아 기다리고싶지 않아서 나섰다. 그는 그들이 간 방향으로 걸음을 놓았다. 숲속을 얼마가량 들어가니 오솔길이 두가닥으로 갈라져 있었다. 하나는 실개울을 건너 남산으로 오르고 다른 하나는 실개울을 따라 서쪽으로 그냥 나 있었다. 성국이는 갈림목에서 잠시 머뭇거리다가 계곡을 그냥 들어가보기로 맘먹었다.     머루덩굴과 등나무덩굴이 얼기설기 나무에 뻗어오르고 감겨있었다. 각가지의 관목들이 가득자란 계곡은 새소리 뿐 인적기라곤 나지 않았다. 그래도 그냥들어갔다. 오솔길은 점점 희미해지더니 마침내 사라져버렸다.     젠장, 내가 길을 잘못선택했구나. 이젠 어쩐다?.... 계곡의 막바지에 이르자면 아직도 온것만큼은 더 올라가얄것 같았다. 숲을 꿰지르며 갈 멋은 없었다. 자칫잘못하면 방향을 잃을것 같기도 하고 왕발의 말같이 함정에라도 빠지면 큰일이다. 성국이는 되돌라섰다.     아까의 갈림목길에 다시이른 성국이는 방향을 돌려 실개울을 뛰여 건너 나무들이 설핏하고 바우들이 드믄드믄 보이는 남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나무를 더위잡으면서 산정에 오르고 보니 그 산의 남쪽 양지바른데는 시야를 막는 거목은 볼 수없고 대신 바위너설들이 많았다. 산골짜기도 북켠보다 훨씬 더 틔여 있었다.     《오!....아!....》     성국이는 두 팔을 머리우에 치켜 올리며 힘차게 웨쳤다. 그리곤 메아리를 들으려고 귀를 기우렸다. 한데 이런 기겁초풍할 일이라구야, 어디서 왔는지 털빛이 부잇한 황둥개 한 마리가 갑작스레 나타나 그한테 덥치는것이였다. 그놈의 개가 짖으면서 달려들었을 망정이지 안그랬더면 성국이는 그놈을 승양이로 여겼을것이다.     성국이는 몸을 재빨리 되돌려 바위뒤로 갔다. 그랬건만도 그놈의 개는 그냥 쫓아와 이낙스레 달려들어 그의 바지가랭이를 물어당겼다. 바빠맞은 성국이는 어마지두에 몸을 돌리면서 그놈의 턱주가리를 힘껏 차놓았다.     개는 깽깽 거리면서 나동그라졌다.     아래켠에서 웬 녀인의 자지러진 웃음소리 터졌다.     성국이는 개가 다시접어들것 같아 돌멩이를 찾아 쥐였다.     녀인이 웃음을 그치고 개를 불렀다.     성국이는 그쪽에다 눈길을 던져 개임자를 발견했다.     녀인은 누릿한 풍천옷을 입고 머리에 빨간 수건을 쳤는데 이쪽을 향해 익살궂은 웃음을 던지고는 제꺽 돌아섰다. 그래서 성국이는 그녀의 얼굴을 똑똑히 볼 수 없었다.    《개코같이 새수없구나!》     성국이는 혼자소리로 한마디 내뱉곤 진둥한둥 그곳을 떠났다.     막에 돌아오니 오라를 질 산림지기가 어느새 와있다가 제쪽에서 불평을 부렸다.     《아니 손님은 어디루 갔댔는뎁쇼? 안뵈길래 난 짐승이 물어갔나했는뎁쇼.》     빌어먹을것아 짐승이 물어가얄건 네녀석이다. 성국이는 밸나서 응대도 하지 않았다.     좀있으려니 아침에 보았던 세 녀인이 다시금 나타났다.     녀인들을 보자 왕발은 기분이 한결좋아지면서 서둘러 자기도 떠날차비를 하고는 성국이보고 말하는것이였다.    《선생, 내 아마두 홍림에 갔다와야겠수다. 마실 술이 다 떨어졌는뎁쇼. 간장도 사올겸.》     완발은 무서운 술고래였다. 그래서 하나입에 월급도 모자라 여기를 찾아오는 녀인들에게 길잡이를 서주고는 행아를 받아 그것까지 싹다 술을 사먹는 꼴이였다.     가랑이가 째진 바지를 그냥 입고있을 수는 없었다. 성국이는 돈 50원을 주면서 그보고 자기가 입을 값이 20원좌우되는 회색아니면 곤색나는 바지를 한 벌사고 나머지로는 몽땅 술을 사라했다.     《이러면 내가 선생돈을 너무쓰잖아.》     왕견은 미안한것 처럼 말하고는 입을 헤벌쭉 벌리면서 돈을 얼른 받아 넣었다.     빌어먹을 두상! 돌아와갖고 제대로 알려만주지 않으면 보지...      성국이는 별었다.     한낮이 되자 날은 몹시 찌물쿠었다.     흙칠을 했건만도 집안에서는 고리타분한 냄새가 그냥 풍기였다. 성국이는 서둘러 밀렸던 일기를 마저써놓고는 만연필을 수첩우에 던지며 급급히 바깥으로 나와버렸다. 이럴 때 제일 사랑스럽고 고마운것은 그래도 랭천이였다. 성국이는 개울가에 달려가자 웃동을 벗어 던지고 텁직하던 몸을 찬물에 씻기 시작했다.     그가 웃동을 방금 다 씻고나서 적삼을 주어 입자고 할 때였다. 언제 바라왔는지 아까보았던 그 개가 다시나타나 왕 왕 짖었다.    《급살을 맞을 놈의 개!》     화들짝 놀랜 성국이는 개울에 박아놓은 몽둥이를 제꺽 뽑아 자기를 향해 그냥 짖어대는 개를 겨누어 힘껏 뿌렸다.     개는 면바로 정갱이를 맞고 깽깽 거리며 달아났다.     막안으로부터 홀제 녀인 하나가 달려나오며 소리쳤다.    《세이 다 워더 거우!》     아까의 그 녀인이였는데 아무리봐도 조선족처녀같았다.     《동무네 개요?.... 잘됐어, 회계를 까야지.》     성국이는 단단히 걸고들 양 말해놓고 적삼을 주어입었다.     처녀는 사내의 바지가랭이가 째진것을 발견하자 표독스럽던 낯색을 대뜸 고치면서 미안해하였다.    《우리 개가 그랬나요?》    《그 개가 아니구 하늘개가 그랬겠소.》    《물렸는가요?》    《물렸소. 안물릴턱있소.》     실은 개가 그저 다리의 살가죽을 살짝 긁어놨을 뿐 이발이 들어가지는 않았다. 그래도 성국이는 아까 이 쳐녀가 얄밉게 깔깔 웃어대던 일을 상기하면 괘씸해서 유순하게 대해주고싶지 않았던거다.    《미안해요. 잠간만 기다려요. 제가 집에 가 약가져올테니.》     처녀는 몸을 돌려 바람같이 사라졌다.     성국이는 정신을 펄쩍 차렸다. 가만있자, 집에 갔다오겠다니?....그러면 여기 어디에 또 집이 있단말인가?.... 그렇지, 있겠지! 한데 저 처녀는 조선족이니 그게 뉘집일가?.... 왕발은 왜 다른 집은 없다고 새빨간 거짓말을 할까?.... 의문이 고패치면서 가슴이 들뛰기 시작했다.     아느새있으니 처녀가 돌아왔다. 그녀는 코등에 땀이 송골송골 내돋고 낯은 빨갛게 상기되여 있었다. 한쪽 새하얀 편의화와 곤색데트론바지의 아랫도리가 젖은걸 보니 개울을 급히 뛰여 건너다가 빠진게 분명했다.    《어서 약바르자요.》     처녀는 노란 가루약을 내놓으며 개한테 물린 자리를 보자했다.    《관두오. 약까지 바를 정도는 아니니까.》     성국은 게면쩍어 하면서 눈주어 그녀를 여겨보기시작했다. 모양을 내지 않은 품너른 적삼을 입고있었지만 몸매는 미끈하고 고왔다. 상기되여 발긋한 그녀의 아릿다운 용모는 성국의 눈길을 지긋이 끌었다. 아니 이럴수가!?.... 새까만 두 눈알, 짙고 가늘다란 반달눈썹, 당실한 코.... 성국의 눈앞에는 8년전에 실종되였던 정녀의 몰골이 피여올랐다.     성국이가 정녀를 마지막으로 본것은 사범학원을 졸업하기 전해의 여름방학이였다. 그때 양부는 그보고 작은집의 이사짐을 나르라했던거다.     성국이가 소시적부터 작은아버지라 불러온 정녀의 아버지 최기덕은 딸을 낳은 안해마저 얼마오래 돌볼 새 없이 남전북전하여 중국대륙을 다 해방시켰다. 그는 그래놓고도 집에 돌아오지 못하고 그길로 해방군옷을 지원군옷으로 갈아입고 조선으로 나갔던거다. 거기서 그는 정전이 될 때까지 싸웠고 복구건설까지 좀 하다가 귀국했다. 최기덕은 안강에서 얼마가량 지내다가 때묻은 북만의 M시정부기관에 조동되여 거기서 당의 사업을 하게 되었다. 이때에야 그는 태평진에 있던 가정도 그쪽으로 데려가게 된 것이다. 그때 정녀가 나이 18살이였는데 고중을 다니고 있었다.      두집은 소문을 내지 않았을 뿐 서로 사돈간으로 정해진지 오래다. 당사자들도 마음이 있어서 서로 사랑건만 만나기 어려웠다. 어려서는 철없어 그저 오빠 동생하며 지내온 그들이였지만 나이를 먹으면서부터는 점점 그 런 관계를 벗어나고 있었다. 택일하여 혼례식만 올렸더면 가정은 이루어졌을것이였다. 허지만 그들은 부부의 꿈은 이루지 못한채 그만 세월의 잔혹한 시달림을 받아야 했다. 이 터지니 잔치같은건 엄두도 못내고 두 집은 다 망하고 말았다.     처녀도 이쪽을 눈주어 파보기 시작했다.     성국이가 먼저 환열을 텃치였다.    《아니 이건 정녀아닌가!?》    《오, 옳아요. 아!....》     정녀는 이쪽을 확인하자 환성을 텃치면서 가슴에 뛰여들었다.     여기서 이렇게 만나다니! 둘은 부등켜 안은채 목메여 울었다. 기쁨인지 슬픔인지 원한인지.... 너무나도 지리한 어둠 끝에 맞아오는 상봉이요 행운이기도했다! 걷잡지 못할 감회가 사품쳐 올랐다.     정국은 사나이답게 먼저 눈물을 거두고 입을 열었다.    《정녀! 정녀는 지금 어데있소?》    《여기에 있죠, 왕견큰아버지네 집에요.》    《뭐라구! 왕견큰아버지네 집?.... 그가 아직도 살아계시오?》    《살아계셔요.》    《아아, 내가 찾아냈구나!》     성국은 미칠듯이 기뻤다.    《그분이 아버지와 날 구해줬어요.》     정녀가 눈물을 닦고 하는 말이였다.     방금 지나간 그 험악한 세월에 정녀의 아버지 역시 다른사람과 마찬가지로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몸을 다 바치노라했건만 결국은 로 몰려 투쟁받았다. 반란자들은 그가 정민호는 인간적으로 죄인이 아니니 전정대상이 아니라고 증명했다하여 그에게 보황파라는 모자까지 씨워 사경에 몰아넣었다. 그때는 반란파끼리 한창 투쟁성과를 비기는 판이여서 더구나 혹독했다. 밤자고나면 끔찍스러운 일들이 벌어졌다. 고의적인 살인도 꼬리물었다. 그러잖아 최기덕의 운명이 근심되여 가보았던 왕견은 그가 높다란 고깔모자를 쓰고 돌림투쟁을 받고있는것을 목격했다. 그는 탐문 끝에 수확기제조공장에 가 투쟁받고 창고에 갇혀있다는것을 알아내여 밤중에 문을 뜯고 들어가 가만히 빼내와 업고서 산으로 와버렸다. 그의 처 옥선이는 죄없는 남편을 두둔했다가 보황파로 몰려 매를 죽도록 맞고 일어나지 못한채 타계의 사람이 되고말았던거다. 왕견은 며칠후 정녀마저 산으로 데려왔다. 최기덕은 당장에서 반란자의 손에 목숨을 잃지 않았지만 산에 와서 겨우 5년을 더 살고 결국은 그 미열에 죽고말았다.     정녀가 먼저 입을 열어 해명되지 않은 일 하나를 알려주었다.    《큰아버지는 작은 아버지도 구할 맘이였어요. 건데 가서도 못업어와 그만....》    《그때 큰아버지가 온걸 내가 봤소. 양부는 그날 세상뜬거요.》    《큰아버진 그일을 알고와서 이를 갈더니....》     성국이 정녀의 말을 받아했다.    《그래서 복수를 한거지, 안그렇소! 황용팔의 집을 도룩냈지!》    《그래요. 그게 바로 큰아버지가 한 짓이애요.》     그를 내놓고 세상에 그같이 할 사람이 또 어디에 있으랴! 성국이가 백번도 넘게 점을 찍어 온것이 과연 들어맞았다!     왕견은 정녀를 친딸같이 여기면서 사회가 밝아지기 전에는 산밖으로 내보내지 않으리라했다. 산속에서 먹고 사는데는 아무문제도 없었다. 소춘매가 무복술을 익혀 늘 점을 치군했다. 그러다가 한해전에 타계했는데 로친의 그 취미를 령감이 받아가졌다. 그랬더니 그것이 돈버는 구멍수로 될줄이야! 무산계급혁명을 10년간이나 했건만 아직도 미신에 젖은 사람들이 가만가만 찾아와 운명을 점치고는 용돈을 뿌려주고갔던것이다. 중개인은 길안내를 서주는 살림지기 왕발이였다. 왕견은 그를 리용하면서 무릇 그 어떠한 남자든 끌어들이지 말것과 자기의 신분을 숨겨줄 것을 단단히 다짐놓았다. 우직한 산림지기는 토비의 성질을 아는지라 여지껏 언약을 충실히 지켜온 것이다.     정국은 정녀를 따라갔다.     여기는 염왕산으로 들어가는 입구였다. 남산아래의 꽤 널다란 공지에 강냉이밭이 있는데 그 속에 함석지붕을 한 오랜 귀틀집이 한 채 있었다.     《큰아버지, 그간안녕하셨습니까. 제가 성국입니다.》     성국이가 꿉썩 인사하니 낯이 고목같이 된 80고령의 왕견은 알아보고서 무척 반가와했다.     《네가 성국이냐! 내가 눈을 감기전에 너를 보게되는구나!.... 듣자니 세상이 바뀌였다는데 그게 정말이냐?》    《정말이구말구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큰아버지를 만나려고 찾아오질않았습니까. 지긋지긋하던 세월이 이젠 다 끝났어요. 틀리고  잘못된걸 바로잡을 때가 되였지요.》     성국은 미친년 널뛰듯 하던 문화혁명이 끝났음을 이렇게 알려주곤 과연 보고싶어서 이렇게 왔노라고 다시한번말하면서 원쑤를 갚아주어 구천에 간 양부가 눈을 감으리라했다.    《세상에 나같이 완고한 놈도 있네라. 어쩌겠냐 내 성질이 이렇게 돼먹은걸. 내 형제의 원쑤는 갚았네만 나는 순 악마네라.》     왕견이 하는 말이였다.     성국이가 여기까지 온 김에 염왕산이나 구경시켜달라했더니 왕견은 그래주마고 선선히 응했다. 하여 이틑날 성국은 정녀와 함께 왕견을 따라 답사를 떠났다. 산채자리와 그 후에 세웠다가 뜯어버린 집터와 류자들의 공동묘는 모두 숲에 묻히여 이제는 알아내기조차 어려웠다.... 미궁과도 같은 이곳은 확실히 토비들이 반거하는 소굴로 됨에는 세상에서 더 찾을 수 없는 명당일것이다. 하지만 사회의 발전과 문명을 싣고 흐르는 세월이 이미 페허로 되어버린 여기에다 다시는 류자의 꿈을 심어주지는 않을것이다.     염왕산을 나오면서 왕견은 한쌍의 젊은이를 보며 말했다.    《너희들이 다가 성가를 하지 않기를 잘했구나! 연분이란게 과연 따로있는모양이구나!》     성국은 그한테 둘이 약속한바를 알려주었다.    《큰아버지, 우린 어서 가정이뤄 큰아버지를 모시겠습니다.》     왕견은 젊은이들의 처사에 감개무량했다.    《말만해두 고맙네라!》     왕견은 몹시 늙었어도 아직 기억력은 좋았다. 성국이는 방학간을 여기서 함께 보내면서 그한테서 아직도 자기가 모르는 염왕산에 관한 얘기를 상세히 들어보리라 맘먹었다. 한데 그의 이 계획만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틑날 아침을 먹은 후 왕견은 오늘은 꿈자리도 좋고 점괘도 좋구나 만시름이 놓이는데 한번 취토록 마셔보련다 하면서 그들을 보고 술동무를 하게 가서 산림지기를 데려오라했다.     성국이와 정녀는 심부름을 하느라 그 집을 나섰다.      즐거운 기분이였다.     그들이 강냉이밭을 나와 동쪽 오솔길에 들어섰을 때였다. 홀연 뒤쪽에서 하고 총소리났다. 둘은 불길한 생각이 피끗들어 달려가보았다. 접침을 베고 눕는것 같던 왕견이 그사이 렵총으로 자결하고 만 것이다.     정녀가 슬피울었다.     성국은 왕발을 데려다 함께 로인을 매장하고 그곳을 떠났다.     태평진에는 로총각선생이 방학에 꽃같은 각시를 얻어왔다는 새 뉴스가 생겨났다.                                ㅡㅡㅡ 끝 ㅡㅡㅡ                                             1996년 5월 12일 할빈에서 초고.                            2006년 1월 18일 북경에서 탈고.                        인       물       표      정민호 .......... 한국독립군인. 염왕산류자. 오인. 오군자두령.    최기덕 .......... 싸할린의용대군인. 항일련군전사.    치더룽 .......... 두 군인을 사경에서 구원한 허저인.    유만진 .......... 허저인 가싼다.    나  쟈 .......... 유만진의 큰아들.    청  림 .......... 유만진의 둘째아들.    청  량 .......... 유만진의 셋째아들.    츄  얼 .......... 유만진의 딸. 정민호의 처.    위삼포 .......... 염왕산토비 괴수.    위용강 .......... 위삼포의 아들.    위향란 .......... 위삼포의 딸. 정민호의 정부.    소춘매 .......... 할빈 연하루의 기생.    위  진 .......... 염왕산 허저인류자.    왕  견 .......... 염왕산류자.    하진국 .......... 염왕산류자.    장  평 .......... 염왕산류자.    서은괴 .......... 염왕산토비.    황보재 .......... 염왕산토비.    가철군 ........... 건달.    진사해 ........... 염왕산에 괘주한 방량패토비 괴수.    곡치환 ........... 인육장사.    호덕화 ........... 변절자.    위  무 ........... 항일을 나섰던 토비.     주혜란 ........... 태평진 녀특무.    관배쌍 ........... 석보상. 할빈보안국특무.    전문방 ........... 항일에 나선 만성패토비 두령.    김웅렬 ........... 지하당사업을 한 항일간부.    도야진 ........... 영락촌지주.    천옥령 ........... 화남의 천지주딸. 반일부녀회 간부.    장두봉 ........... 태평진유지회 회장.    오도야마 ........ 태평진 일본군수비대 사령.    뚜르와체브...... 태평진주둔 쏘련홍군 사령원.                                                                                                                                              관련글:  머리말을 대신하여 쓴                                                       이 소설은 686페지에 글자수 866천자. 2008년 민족출판사 출판.                                                                                                            한국 아세아출판사 재판.                                                                                               ㅡ      
161    <<관동의 밤>> 제2부(43) 댓글:  조회:3223  추천:1  2015-02-04
                             43               아이는 귀엽고도 영준했다. 민호는 그 아이를 안아온 얼마후에 최기덕이보고 이 애의 친척이 혹시 어디에 있을지도 모르니 수소문하여 찾아보라 부탁했다. 최기덕은 친구의 분부인지라 사업이 다망하면서도 힘써 알아보았다. 결과 그때 호덕화악당의 강탈을 당한 그 열몇호의 동포는 다 목단강 고려인협회의 도움에 의하여 조선으로 돌아갔고 피살된 사람의 후사도 당지사람들의 손을 빌어 처리했거니와 북만에는 이 애의 친척이 없다는 것으로 결론내렸다.     그래서 아이를 그들 량주가 기르게 되었는데 날이 가면서 어른과 아이사이에는 친부모와 꼭 같은 정분이 생기게 되었다. 향란이는 아이의 원이름을 그냥쓰면서 성만은 정가로 고쳐버렸다.       한데 아이가 웬 일인지 시름시름 앓음자랑을 했다. 향란은 고와할줄만 알고 멍청해있다가는 생아이를 잃고말겠다며 어느날 둘쳐업고 태평진으로 말을 달렸다. 태평진에는 위만시절에 일본사람이 세운 구세병원(救世病院)이 있었는데 지금도 그때의 의사 하나나가 본국에 돌아가지 않고 남아있었다. 부인이 한족이라는 그 의사는 아이를 진차하더니 페디스토마증에 걸렸다면서 등안시말고 시일을 늘게 잡고 치료를 꾸준히 받으라했다. 하여 향란이는 아이를 입원시켰다.     북만의 봄이 마지막가면서 계절이 바귀여지고 있었다.      아이를 입원시킨지 3일만에 향란이는 뜻밖에 가슴을 들때리는 놀라운 소문을 듣게 되었다. 장평이 시하에서 위무의 손에 살해된 그 사실인것이다. 그 소문은 시하에 있는 친척집에 볼일이 있어서 갔던 사람이 돌아와갖고 퍼뜨린것인데 이 사건으로 하여 온 태평진이 부글거렸다.     명랑하고 수럭수럭한 그의 몰골이 눈앞에 선히 떠올랐다. 아아, 장평아 너는 어찌하여 그리도 처참히 되었느냐!... 향란이는 쏟아지는 눈물을 거두고나서 아이를 같은 소아과실에 들어있는 조선부녀한테 수고스러운대로 며칠만 봐달라 맡기고 인츰 염왕산으로 달려갔다. 민호한테 이 소식을 어서알려주기 위해서였다.     이날따라 구름이 하늘을 뒤덮어서 음침한데다 비마저 부슬부슬 내려 한산하기 짝이 없었다.     산채에서는 온 몸이 푹 젖어갖고 돌아온 향란이를 보자 모두 웬 일이냐며 놀랬다. 민호는 물론 다른이들도 그녀가 아이를 잃어서 이꼴로 비감에 잠겨갖고 돌아온줄로 알았다. 한데 그런것이 아니였다.  향란이는 숨가빠하면서 피를 뿜듯 한마디 토했다.    《장평이 잘못됐대요. 시하에서....선견군놈들 손에....배까지 갈리웠대요.》     염왕산류자들에게는 듣기 괴롭고 참기 어려운 비보였다.    《장평이가 잘못되다니, 어떻게 돼서?》     모두들 의문뿐인데 향란이는 비감이 젖어 한숨을 내쉬였다. 쏟아부은듯 머리를 함뿍적셔놓은 빗물은 이마로 흘러내려와 눈물과 범벅이 되어 발아래로 떨어졌다.    《한심해요 장평이 군직에서 나떨어지고 그렇게 됐대요.》    《뭐라! 군직에서 나떨어지다니? 왜서?》     류자들은 다시한번 놀랬다. 그들은 사문동이 태평진을 공략하려다못하고 쫓겨단 일까지는 알아도 요즘은 산을 나가는 류자가 없다보니 그 후 태평진에서 발생한 일은 깜깜 모르고 있었다.    《그의 재종형이 반란을 꾀하잖았나요. 그래서 장평이 화김에 재종형이고뭐고 화근을 뽑는다며 붙잡은 자는 하나도 남기지 않고 아예 싹 다 잠재워버린건데 책임간부인 그 김가가 장평이 자기를 무시하고 맘대로 했다 네 재종형이 나쁘지만 너도 믿을 수 없다면서 군직을 뗐대요. 내쫓은거와 뭐가 다른가요.》     향란이는 태평진에서 떠도는 말이 이렇다면서 알려주었다.         그 독립퇀이 원체 태평진의 자위대긴 하지만 동북인민자위군에 편입되였으니 장평의 군직을 떼고 안떼는거야 우에서 할 일이 아닌가. 한데 일개 군중사업간부가 무슨 권리로 장평의 퇀장직까지 맘대로 떼버린단말인가?....모를 일이였다. 리해되지 않았다.  민호는 김웅렬이란 그 공산당원이 대체  뭔데 권리가 그리도 막강할가고 생각했다. 최기덕의 앞에서는 어쩌지 못하던것이.     아무튼 일이 잘못된것이 분명해서 안타까왔다.     기실 김웅렬은 제 실권을 엄청넘어 행사했으니 대단히 큰 오유를 범했다. 하건만 장평이 토비출신이거니와 공산당의 령도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자유방종하니 이제 더 크고 무서운 무장반란이 일어날 위험이 충족하다 급박한 정황하에서 사전에 조치를 댄것이니 그런줄알라고 제멋대로 보고를 꾸며 상급당조직에 올림으로서 처벌을 회피한것이다. 한심한 기만이였다. 최기덕이 중상을 입지 않았어도 감히 그따위짓을 하지 못했을것이다.    《아무렴 죄지은 사람도 아닌데 그렇게 할수야....》    《요즘 우리는 산을 나가지 않다보니 이 일을 몰랐지.》    《그걸 알았으면 어쩌겠나.》    《알았더면야 가만있지 않지.... 그렇게는 못하게 하지....장평의 일인데 우리가 그래 무관할 수 있는가.》      모두들 의논이 많았다.      김웅렬의 처사에 대해서 민호는 분노했다. 아무렴 항일까지 한 사람을 그토록 헐값으로 취급한단말인가, 길가의 말똥도 주어 쓸라니. 장평은 민호의 오군자에 들어 왜놈과 싸웠다. 전공을 따지면 그한테도 공로메달을 두 개쯤은 달아줘야 옳을것이다. 그런 사람을 밑바탕이 나쁘다해서 숙청하다니 세상에 어디 이런 법이 있는가?.... 그지간 함께 있지 않았다해서 무관할 수는 없었다. 시체라도 찾아 묻어주고 대체 어떻게 되어 그런 흉사가 생기게 됐는지 그 연유를 알아내야했다.      20여명의 무장대가 산을 나가 태평진으로 갔다.     민호는 태평진인민정부에 들어가 직방 김웅렬을 만났다.    《이, 이거 어떻게 돼서 왔소?》     김웅렬은 래방자의 안색이 좋지 않음을 보자 긴장해졌다.     민호는 걷발린 인사따위는 걷어장지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당신이 장평을 쫓아냈소?》    《건 내일인데 거기서 념려할건 뭐요.》    《왜 념려안하겠소. 동고동락을 해온 사인데.》    《허! 동고동락이라.....》     김웅렬이 이쪽에서 내던진 말을 되뇌는데 음조에는 조소와 경멸의 냄새새가 풍기고 있었다.     민호가 물었다.    《왜 내말이 우습게 들리오?》    《듣자니 거기서는 서로 형제라 한다지.》    《왜 형제라 부르는게 우습소? 서로 친하니 그렇게 불러주는거요. 당신이 제 벗을 동지라 하듯이.》    《동지는 신성한 것이요.》    《형제는 더러운건가? 묻겠소. 듣자니 당신도 항일을 했다는데 총은 그래 몇방이나 쏴보고 일본놈은 몇이나 잡아봤소?》     김웅렬은 입을 다시열지 못했다. 떳떳하게 대답할 주제가 못된거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기가 일을 잘못처리함으로 해서 빚어진 처참한 죽음과 그 죽음으로 인해서 초래되는 악과에 대해서는 추호의 반성도 느낌도 없이 뻔뻔스러웠다. 시람이 어쩌면 이렇게까지 돼먹었을가?....민호는 격분이 부걱부걱 괴여올랐다. 김웅렬의 언동은 몽둥이찜질을 힘껏 안겨주고싶도록 적의를 자아내고 있었던것이다. 네녀석하고 말하니보다 차라리 담벼락하고 말하는게 났겠다. 민호는 쓰거워 말을 더 하지 않았다.     한편 태평진독립퇀은 염왕산철혈대의 갑작스런 출현을 심상치 않게 여겨 총에다 장탄하고 지켜보았다. 꼭마치 어느때 터질지 모를 시한탄이 떨어진 것 처럼 태평진의 분위기는 일촉즉발의 긴장에 쌓여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위삼포가 죽던 날 여기서 보안대와 염왕산류자지간에 류혈적인 혈전이 벌어졌던 무서운 장면을 회상했고 변절한이 되었던 위용강이 상망을 많이 내면서까지 야간탈주를 하던 때의 소란스럽던 일을 되새기였다.     염왕산류자가 태평진사람들에게는 지금까지도 의연히 강포하고도 무서운 존재로만 느껴지고 있었다. 비록 오인이나 장평같은 사람이 떠받들리우고 철혈대가 협객단이라며 호감을 품어왔지만.     누구나 다 이제다시는 성안에서 충돌과 참혹한 류혈이 벌어지는 것을 원치않거니와 그렇게 될까봐 가슴을 조이였다.     무장충돌이 발생하지 않았다. 철혈대는 결판내자고 찾아간 것이 아니였으니까. 철혈대류자들은 태평진정부 문앞에서 왜 이런 불상사가 생기게 처리하는가고 항의하면서 장평의 시체를 내놓으라고 했다.     김웅렬은 무서워서 감히 대갈쪽도 내밀지 못했다.     장평의 시체가 태평진에 없었다.     전신무장한 철혈대는 그길로 시하에 가서 이미 부식되기 시작한 버려진 시체를 찾아 거기 어느 산기슭에다 파묻고 돌아왔다. 장평은 위무의 손에 죽었다. 위무는 선견군사람이다. 하기에 염왕산류자들은 선견군을 원쑤로 보고 증오하면서 저주하게 되었다.    《장평의 원쑤를 갚자!》     모두들 부르짖었다.     민호는 정찰을 놓아 위무의 종적을 찾기시작했다.       민호는 이 기회에 최기덕의 병문안을 하러 가목사로 갔다.     시가지중심에 있는 광복병원에서 최기덕이 치료를 받고 있었다. 복부에 탄알을 맞은 그의 상은 이미 위험기를 넘겨 치료되고 있으니 근심하지 않아도 된다고 책임의사가 알려주었다.    《형님네 염라대왕이 때가 안됐다며 내 호구를 안받아주오.》       병문안을 간 민호를 보자 최기덕이 기분좋아 하는 말이였다.      《우리네 염라대왕이라? 오 하하하!....이름이 그 꼴이돼서.... 건데 이젠 염왕산이 제 사명을 다한것 같구나.》    《사명을 다한게 아니라 바뀌였지. 염왕산을 이제는 구세산이라  이름을 고치는게 합리할것 같소. 염왕산의 철혈대가 아니였더면 어쩔번했겠소. 화금이나 목청이나....우리 동포들은 떼죽음을 당하고말았을게요. 큰공을 세웠지. 방사령도 류정위도 철혈대의 공적을 높이 찬양했소.》    《오, 그래!? 그분들도 아시는구나.》    《왜 모르겠소. 연안에서 이리로 오자마자 알게된거라오. 군구건립식때도  말이 있었는데 염왕산의 철혈대는 동북에 있는 모든 산림대가 따라배워야 할 본보기라했다오.》     최기덕은 이러면서 합강군구의 그 두 령도자가 전번날 병원을 찾아와 상병들을 문안할 때도 염왕산류자가 항일을 한것과 철혈대가 악당을 징벌하고 선견군과 맛선것은 북만력사에 공적으로 기입될것이라면서 현황을 무척 알고싶어했고 최기덕이와 그 조직자인 민호의 신원을 캐물으면서 어느때든 한번 꼭 만나볼 의향임을 보여주더라고 말했다.     민호는 공산당군이 철혈대의 공적을 그같이 알아주고 관심하니 고맙고 감개했다. 당장 달려가서 그들을 만나고싶었다. 하지만  그럴수 없었다. 군구의 그 두 거물급지도자는 지금 다 이 시내에 있지 않고 의란에 가 있었던것이다. 동북에서의 선견군무장토비숙청 제2단계에 진입하여 전군이 한창 긴장히 보내고있는 때였다.      돌이켜보면 지나온 나날은 고난과 류혈로 이어진 자욱이였다. 철혈대는 여직 한번도 티각난적이 없이 일심동체되여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이 수립해 놓은 위엄이나 명성은 염왕산이 지난날에 날리였던 그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른것이였다. 현유 25명밖에 안되는 무력이지만 실력은 알찼다. 류자들은 환난상구(患難相救)하면서 지난때의 허물을 고치고 새인간으로 착실하게 되어짐을 자신의 의무로 삼고 있었다. 이거야말로 갸륵한 일이 아닌가! 자신이 창발한 도의(道義)로 군위(軍威)를 높혀가고 있으니 어찌 찬양하지 않으랴!    《요즘은 어떻게 보내고있소?》     최기덕이 물어보는 말이였다.    《태평진에서 근일에 너를 찾아오지 않더냐?》     민호가 그한테 되물어보았다.    《보름전에 한번오고는...거기서는 어떻게들 지내는지?....》    《다시와보지를 않았단말이지.... 참 너무하는구나.》    《사업이 바빠서 못오겠지. 형님은 그들을 탓하지 마오.》     최기덕은 말해놓고 민호의 낯색이 굳어지니 이상해서 물었다.    《왜 그러오? 무슨일이 생긴거요?》     민호는 숨을 길게 들이긋고나서 앉음자세를 고치였다.    《내 말을 듣고 너무 격동말거라. 장평이 죽었네라.》    《아니 뭐라오! 어떻게 돼서?》     민호는 김웅렬이 마음대로 장평의 퇀장직을 떼버린것과 그가  태평진을 나돌다 시하에서 위무의 손에 살해된 사실을 알려주었다.    《김웅렬 그 사람 미치지 않았어? 어쩌자구 그래? 제가뭔데?》     최기덕은 격분했다. 듣고보니 너무도 한심해서 한숨을 련발토했다. 장평이 장두봉일당을 즉각처결하기를 잘했노라고 하던 김웅렬이 자기와는 말도 없이 그를 제마음대로 처리하여 그같은 후과를 빚었으니 괘씸하기 그지없었다. 말끝마다 민주요 광명정대요 부르짖지만 돌아서면 독단독행하려드는 그를 선선히 받아주고 여지껏 믿어온것이 분하고 분했다. 최기덕은 당장 달려가 그를 후줄근히 패주지 못하는게 안타까왔다.    《김웅렬 이 자식 어디보자! 》     그는 그따위의 사이비한 인간은 절대 당내에 두지 말아야한다고 생각되여 당장 상급당위에 올릴 적발신을 쓰리라 맘먹었다.     새하얀 위생복을 입은 젊은 녀인이 들어와 상병을 간호했다.    《좀 어떠세요? 드린약을 다 자셨나요?》     그녀의 입에서 뜻밖에 옥같은 조선말이 굴러나왔다. 나부죽한 얼굴에 몸매고운 그녀는 침착하고 숙부드러워보였다.     《옥선이 인사하오. 내가 접때말하던 형님이요.》      최기덕이 알려주니 녀인은 다소 놀래는 빛이다.     《아, 그런가요! 그럼 이분이 바로 오인이라는.... 먼길에 모처럼 오셨네요. 고마워요.》      녀인은 웃음지으면서 다소곳이 아미를 숙여 반갑다는 인사를 하고는 민호를 다시보았다. 민호는 그녀와 이야기를 나눠보고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녀인은 과연 바삐보냈던것이다.       가목사를 떠난 민호는 염왕산으로 돌아가면서 먼저 태평진에 들렸다. 거기 구세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은 양자 성국이가 이젠 병이 다 낳았을것이니 데리고 가야했다.     향란이는 벌써 출원수속을 다해놓고 민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분은 어떻던가요? 나도 한번 가봐야잖아요.》    《치료가 빠르오. 가을전으루 출원하리라누만.》    《그런가요. 정녕 그렇다면 기쁜일이네요.》     향란이는 최기덕이 어서빨리 완쾌하기를 기원했다. 그녀는 누구보다 그의 혼인대사문제에 대해서 은근히 걱정한지 오래다.    《어쩔가요. 그분 나이 이제는 마흔넷이예요. 로총각으로 한뉘살수야 없잖아요. 당신과는 사교지간인데 이러고있어서야 면목이 서나요. 출원하면 잔치도 하게끔 당신이 책임지고 색시하나 구해놔야하잖아요. 색시감이야 목청, 화금에도 있을거고 여기 태평진에도 쌔쿠버린게 아닌가요.》    《내가 뚜쟁이질을 안해도 돼. 벌써 눈으로 점찍어놨데.》    《그래요! 어디의 새긴데요?》    《그가 입원한 병원에. 지금 거기서 호사장으로 사업하고있는데 당사자끼리는 벌써 혼약이 다 됐다는구만.》    《그래요! 참 어쩌면....나이는 얼만데요?》    《올해 설흔둘이라니 기덕이하구야 열두살차이지. 본남편이 오년전에 병으로 사망해서 여지껏 홀몸으로 지낸다는구만. 딸린 자식도 없이....내가 보겐 이쁘고 참하게 생겼더구만.》    《조선녀성인가요?》    《그렇소. 성명은 리선옥이라는가.》    《구슬옥자에 착할 선이라. 이름도 듣기좋네요.》     향란은 기뻐하면서 잔치준비를 잘해야겠다고 했다.    《성국아, 이젠 엄마랑 아버지랑 하고 같이가자.》     민호가 품에 안았던 아이를 내려놓으니 향란이가 점심때가 지난는데 시장하지 않는가했다.    《돌아가서 먹지. 콩을 다 심었는지.... 강냉이도 그렇구....씨앗들을 망종전에 다 넣어야 하는데.》    《왕견이 어련히 알아서 하잖았으리.》     향란은 다심한 남편이 배를 곯으면서 먼길을 다니는것만 같아서 데리고 관자집부터 가려했다. 한데 이건 또 웬일인가?     그 한집식구가 병실을 곧 나가려는데 여직같은 호실에 입원하고있는 중국어린아이의 애비가 들어와 모골이 송연해지는 끔찍스러운 사건 하나를 알려주는것이였다.    《저....못들었소. 동안서말이요, 조선사람을 몽땅 죽였다는구만!... 스므엿새날에!》     민호는 가슴속에서 널짱같은것이 뚝 떨어졌다.    《뭐라!.... 어떤놈이 그랬어?》    《곽청전이라구 허는 토비가 그랬다오.》     그 한족사나이는 밖에서 들은 소문이라면서 상세히 알려줬다.     26일이라니 바로 어제였다. 동안성 보안대총장인 34살난 곽청전(郭靑典)이 얼구이즈(二鬼子)들을 로야령을 넘기전에 없애치우자는 구호를 내들고 안팍으로 짜고서는 그곳을 자위하고있던 인민무장력이 잠시 동안성(밀산)을 떠난 기회를 리용하여 제가 갖고있는  무장대 700여명을 몰아갖고 갑자기 달려들어 그곳에서 살고있는 조선사람 수백명을 닥치는대로 학살하였던것이다. 이런 아비규환속에서 살아난 생명은 오로지 마음선량한 이웃의 한족아낙네가 죄없는 아이가 너무불쌍해서 제집아이의 옷을 갈아입히고 낯을 어지럽게 만들어 움속에 숨겨둔 그 애뿐이였다고 한다.    《뼈를 갈아치워도 시원찮을 악당놈들! 적수공권인 죄없고 불쌍한 우리 동포는 왜 살해하는가! 》     민호는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24년전, 밀산의 당벽진에서 그같은 참안이 발생하지 않았던가. 그때는 농사짓던 독립군전사들이 토비들의 손에 전부 참살되더니....지금도 생각하면 치떨리는데 그런 변이 또 생기다니!....이해의 5월은 밭농사를 많이 시작한 염왕산류자들이 가장 분망히 보내는 달이였거니와 북만에 거주하고있는 동포들에게는 흉살이 비쳐 불안에 떨게 만든 범상치 않은 달이기도했다.          위삼포가 죽은지도 어느덧 14년이다.     달력을 보니 이제 사흘이면 양력 5월이 막가는 날이자 음력 5월이 시작되는 날이기도했다. 민호는 향란이와 상의하여 이날에  위삼포의 유해를 염왕산에 이장하기로 했다. 고인의 아들인 위용강이 생전에 마음을 먹으면서도 감히 해내지 못한 일을 이제는 살아있는 그들이 해야했다.     25명의 염왕산류자 모두 흰상복을 입고 나섰다. 물론 무기들을 휴대했고 경계도 삼엄했다. 이장은 가탈없이 되어가고 있었다. 한데 그 일과는 아무관계도 없는 하나의 사소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장행렬이 염왕산으로 향하고있던 중 웬 얼간망둥이 셋이 나타나 자기들도 데려가달라고 했던것이다.        《이건 웬놈의 풀메뚜기들이냐?》     왕견이 권총으로 갈겨놓자는것을 민호가 막았다.    《관두오, 여우를 만난셈 치지.》     그 셋은 민호를 보더니 길복판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렸다.    《두령님! 두령님! 우리도 데려가주시오!》     입을 모아 빌었다.     민호는 이 자식들의 눈에도 내가 두령같아 보이는 모양이지 하면서 하도 짓꿎게 달라붙는지라 우선 물어보았다.    《너희들은 모두 집이 어디냐?》     셋중 생김새가 미끈하고 허울좋은 자가 허리를 펴며 대답했다.    《예? 저.... 이도강에 있습니다. 우린 모두.》    《농사지을게지 산에는 왜 들어가자는거냐?》    《농사질하기 싫어요, 정말로. 그리구 군대질하기도 싫고요.》     그 녀석이 얼굴에다 웃음까지 발라가면서 진지하게 말하는 품이 쉽게 물러설것 같지 않았다. 자기같은 사람을 받아주는건 지극히 정당하다고 여기는것 같기도했다.    《농사질하기도 싫고다. 군대질하기도 싫다. 그래서 산에 들어가련다 그거지? 그래 산에 들어가서는 뭘먹고 살테냐? 날거미잡아먹고 살지는 않겠지? 너희들은 곰처럼 제 발바닥이나 핥을거냐?》     그자는 입을 다물었다. 다른녀여석들이 고개를 드나 어정쩡 말이 없다. 보기만해도 정나미떨어지는 이따위 패물짝을 어디다 쓸가.    《허! 허! 허!》     민호는 어처구니없어서 웃기만했다.     허울좋은 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왜 웃어요, 두령님!》     과연 아귀무른 녀석이였다.     민호는 증이나서 발을 굴러대면서 큰소리를 딱 질렀다.    《이놈아!》     워낙 담은 없이 중정이 허한 자였던지 와들짝놀란다.    《이 걸레짝같은 놈들아, 우릴 뭘로알고 이꼴이냐, 물러갓!》        향란이가 철채찍으로 갈겨대니 멋도 모르고 사정들던 세녀석은 그만 혼비백산하여 엎드러지고 곱드러지면서 달아나버렸다.     이비슷한 일은 그 후에도 있었다.     7월중순의 어느날 정찰을 나갔던 두지개가 돌아와서 위무가 지금 이도하자부근에서 흩어진 선견군패잔병들을 다시모집하고있다고 보고했다.    《그놈이 꼭 옳은가?》    《백성들이 하는 소리를 들어보니 틀림없습니다. 그놈아니구야 누가 외짝귀겠습니까. 급이 없이야 그런 일에 나설수도 없을거고. 안그렇습니까.》    《하긴그래.》     민호는 고개를 끄덕이고나서 뒷짐을 지은채 방안을 뚜벅뚜벅  걸으면서 혼자소리처럼 말했다.    《내가 어떻게 하나 그 원쑤놈을 붙잡아야하는데....》     그의 소리를 잡아듣고 류자들이 너 한마디 나 한마디 한다.    《그놈만 붙잡느라말고 보이는 놈은 다 잡아.》    《다 잡는다니 말이 되나. 그런면야 염왕산은 포로영되고말지.》     《그자들을 먹일 물 어디있나.》    《농사지어 고라니좋은 노릇하게 할수야 없지.》    《그러면 보는 족족 잠재워버려.》     염왕산류자들은 모두 선견군에 대해 적개심을 품고 있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위무를 붙잡자고 부르짖었다.    《마인! 구도관자!》     민호는 곤 철혈대를 집합시켜 이도하자쪽으로 출발했다.     두지개의 정찰이 틀리지 않았다. 귀가 한짝뿐인 사람이 며칠전부터 이곳에 와 흩어진 잔병들을 모집하는 중이라고 그곳주민들이 반영했다. 민호는 어떻게 하면 위무를 빼우지 않고 붙잡을 수가 있을가 궁리하다가 철혈대를 가까운 수림속에 은페시키고 유자 여섯을 둘씩 세조로 만들어 이도하자주위에 있는 세개마을에 각각 나뉘여 정찰케 했다.     그들 세소조는 돌아와 갖고 다 자기들이 간 마을에 선견군패잔병들이 몇씩 있더라고 보고했다. 그중 두개지가 갔다 온, 이도하자에서 동남쪽으로 약 7리가량상거한 백여호되는 마을에 17명, 수자가 제일많고 그 마을에 위무가 있는 것으로 정찰이 되었다. 보아하니 그자들은 이도하자에는 자위무장이 있어서 감히 범접못하고 주위만 맴돌고 있는건데 입이 많으면 얻어먹기 힘들어 한데모이지도 못하는 꼴인것 같았다.     민호는 철혈대를 이끌고 두지개가 갔다 온 마을로 갔다. 때는 이틑날 동녘이 푸름푸름 밝아올 무렵이였다. 그들은 적이 들어있는 집을 물샐틈없이 포위했다. 그리고는 장밤 눈을 붙이지 못해 고개방아를 찟고있는 보초를 짹소리도 못하게 감쪽같이 죽여버리고는 돌습하여 아직 잠에 파묻혀 있는 자들을 몽땅 붙잡았다.    한데 꼭 붙잡자는 위무는 보이지 않았다. 포로들과 물으니 저녁을 같이 먹고는 어디론가 가버렸다는것이다.    《젠장! 여우를 놓치고 몸에다 노린내만 묻혔구나.》     민호는 너무도 맹랑해서 발을 굴렀다.     포로들은 위무가 어디에 갔는지 정말몰랐다. 그자를 붇잡자면 정찰을 또 해야했다. 기마대가 움직여야 하는데 두다리만 가진 이 자들은 어떻게 끌고다닌단말인가? 그것도 문제였다. 아무런 쓸모도 없는 자들을 염왕산까지 끌고 갈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죽여버리자니 너무 잔인한것 같고. 그럼 어떻게 해야하는가? 무장만 해체하고 놓아주자고 보니 그런다면 미친개를 붙잡았다가 살려주는 격이 되고만다. 총만 다시쥐면 의연히 그 적이 그 적이 아닌가. 하여 민호는 생각 끝에 이 자들을 합강군군에 넘겨주어 방사령이 처리하게 하자고 맘먹었다.     철혈대는 포로들을 한줄로 묶어갖고 그곳을 떠났다.     한데 오면서 생각밖의 일이 생겼다. 포로중 한자가 이것이 공산당계렬의 민민무장부대인 것이 아니고 염왕산류자무장인 철혈대라는것을 알자 비위좋게 흥정을 걸었던것이다.    《인제보니 자네들은 우리와 이웃간이 아닌가. 서로 척진일도 없는데 왜 이러오?》     민호가 쓰거워했다.    《이웃간이라? 척진일없다? 네 아갈머리에서 그따위 소리가 함부로 나와? 우리 사람을 배가르구두 뻔뻔스레 그따위소릴해?》     방금 말을 꺼냈던 자가 눈을 꺼무럭거리더니 항의했다.    《무슨소리요. 우리가 언제 그랬소? 정말 생사람잡네.》    《생사람잡는다? 너희들의 위무가 한 짓인데 생사람잡는다?》    《어이구 원! 죄는 도까비짖구 벼락은 고목이 맞는다더니....위무가 한일 우리하고 무슨 상관이요, 우리는 아주 영 딴팬데두.》    《뭐라? 그렇다면 너희들은?....》    《우린 곽털보패요.》    《뭐라! 밀산의 곽털보패라?....》     민호는 적이 놀랬다. 그러고 보니 이것은 장우신부대의 잔당이 아니라 며칠전에 피비린 동안참안을 빚어낸 곽청전의 악당들이였다. 천추에 용납못할 혈채를 짖고서도 갚지 않은채 인민무장부대의 추격에 들어 뿔뿔이 흩어졌다가 이제다시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하여 생겨난 승냥이무리였다.     위무는 이자들을 자기가 끌어보자고 애쓰는 판이다.     《바로 네놈들이였구나!》     민호는 제 눈으로 동포들을 숱해살해한 이 천죄만악의 살인악마들을 직접보니 전신만신이 떨려나면서 눈에서 불이 일었다. 하건만 대방의 이러한 심정도 모르고있는 자들은 철혈대를 그저 적수도 못되는 일개 비천하고 고립된 마적으로만 알고 우숩게 여겼던지 한수접고드는것이였다.    《좀 이러지들 말라구. 이러면 대단한 실수야. 중앙군하고 함부로 행패부리다니 원.》     민호는 말잔등우에 몸을 싣고 가면서 코아래로 그자를 랭정히 쏘아보면서 랭소했다.    《우리가 네놈들하고 행패부리지 않고 누구와 부리라니?》    《공산당군하고 그래야지.》     그 자는 대방이 제 감언에 마음동하는줄로 알았는지 제법 기운스레 입심을 뽑았다.    《이제 두고보란말이야. 국군은 곧 여기까지 들어올거야. 그때면 우리는 나서서 협력해야지. 그때 되면....그렇구말구 협력하기 위해 우리 선견군은 다시조직돼서 동산재기를 해야하는거야. 그러니....》    《닥쳐라!》     민호는 그의 장황설을 잘라버렸다.    《네녀석이 무슨 잠꼬대를 그리도 하느거냐.》    《잠꼬대라니? 고마운 충고를 하는데두 잠꼬대라니?》     다른 녀석들 거의가 그본새로 나왔다.    《미친녀석들, 그따위 충고를 내가 들으란말이냐, 그래? 네놈들은 아마도 잠을 재워야 그놈의 주둥아리를 다물것 같구나.》     돌을 캐낸 적막한 산벼랑가에 이르고 있었다.     민호는 대오를 멈추었다.    《모두 저 그늘밑에 가서 서거라. 너희들을 쉬워야겠다.》     민호는 그자들을 벼랑가그늘밑에 세워놓고 모두 총살해버렸다.          밀산부근을 한바퀴돌면서 한무리의 패잔병들을 규합한 사문동이 주동이 되어 장우신, 리화당, 손영구와 함께 조령을 또다시 탈환하였다. 그들은 그곳을 거점으로 동산재기를 꿈꾼것이다. 한데 끌어모은 오합지졸이 무려 9,000여명에 달했지만 무기가 없었다.    장우신은 군영물자를 얻어오자고 위만경찰출신인 자기의 심복 송문(宋文)을 장춘에 파견하였다. 그런데 송문은 석달이 되도록 종무소식이였다. 그래서 안달아난 장우신은 이번에는 부하 장혜민(張惠民)을 장춘에 파견했다. 장춘에 간 장혜민은 합강성판사처를 찾아갔다가 거기서 공교롭게도 송문을 만났다. 둘은 함께 심양에 가서 가목사에서 공산당 팔로군에 쫓겨난 국민당의 합강성정부주석 오한도(吳漢濤)를 찾아 장우신 등이 조령에서 겪고있는 실정을 말하고는 무기를 지원해줄걸 요구했다.     오한도가 말했다.     《자네들이 어려움을 겪고있는거야 말치않아도 난 다알고있네. 자네들은 있다는게 뭔가. 낡아빠진 총 몇자루뿐이지. 내 여기 총과 탄약이 있네. 그런데 보내자면 공중에서 던져얄텐데 던지자면 어디다 던지겠는가. 그게 팔로군손에 들어가면 남만 좋은일시키는게 아니겠는가. 돌아가 장선생보구 말하게 이기지도못하면서 정면으로 공산당군과 맞다들어 싸울 궁리는 말구 산속에 숨어서 실력이나 보존하라구말이요. 돈과 량식같은건 당지주민들한테서 꾸구.... 국부가 접수할 때 까지만 꾹 참으면서 기다리란말이요. 그때가서 다 결산해줄테니까.》     장혜민이 조령에 돌아와 장우신에게 오한도의 지시를 회보하니 장우신은 너무도 실망해서 기가 싹 죽고말았다. 별 뾰족한 수가 없었다. 장우신 등은 8월이 다가는 마지막날에 회의를 소집하고 지휘관들에게 오한도의 명령을 전달하고는 포위를 뚫고 나갈 방볍을 연구했다....     10월이 되자 이쪽에서는 제3차 조령공격전을 개시했다. 이번에는 여러부대가 땅크와 장갑차이 배합하에 분진합격(分進合擊)하는 전술로써 포위를 뚫고 나온 무리들을 모두 그곳에다 몰아넣고 총공격전을 벌리였다. 2일간의 치렬한 격전 끝에 선견군은 7,000여명이 섬멸되였다. 장우신, 사문동, 리화당의 주력은 완전붕괴되고말았다. 포위를 간신히 뚫고 나온 그 세 거두는 조령북쪽의 산속에 들어가 급급히 군관회의를 소집하여 명령이 없이는 다시는 집중하지 않기로 하고 남아있는 사람들은 제마끔 분산하여 잠복하는 방법으로 유생력량을 보존키로했다.     이리하여 몇 명씩 패거리를 지어서 산속에 숨어들기도 하고 버덕에 나돌기도 하면서 료략질을 하는 강도단이 숱해생겼다.          어느덧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지는 스산한 가을철이 돌아왔다.     어느날 정찰을 나갔던 류자가 돌아와서 염왕산동북쪽 의란과 방정사이에 있는 마을에 위무의 잔당이 20여명이 숨어있다고 보고해서 철혈대가 곧 출발했다. 그자들을 꼭 소멸해버릴 결심이였다.     그 산촌에 거진이르렀을 때 척후를 맡은 류자가 달려와서 그 20여명의 총쥔 자들이 지금 막 마을을 나오고있다고 보고했다. 어떻게 할것인가?....민호는 속히 안장을 떼고 한쪽다리를 고삐로 맨 후 말들을 풀밭에 몰아 넣으라 했다.     류자들은 명령대로 하고나서 모두 길옆숲속에 매복했다.     좀있으니 그 한떼의 비도가 나타났다. 그자들은 말 여러필이 풀밭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고있는것을 발견하자 야 이건 하느님이 우리를 살라고 내려보낸게 아니냐며 좋아서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자들은 말가까에 채 이르지도 못하고 탄알을 맞았다. 죽음과 고통이 발광했다. 너부러져 절명하는자 부상당해 딩구는자가 숱한데 몇놈은 이런 혼란속에서도 도마뱀같이 산속으로 내뺐다. 그 중에 위무도 있었다. 철혈대는 이번에도 맹랑하게 그자를 놓히고말았다.     이때 마침 합강군구의 한 부대도 이자들을 숙청하려고 찾는 중이였는데 성이 리씨라는 조선족련장이 그자들을 거의 잡아버린 민호를 만나자 무척 반가와했다.    《이름이 민호라는 대장이 동무였구만! 방사령은 늘 철혈대의 공적을 칭찬하면서 농후한 흥취를 갖고있소.》     하면서 민호보고 가까이 온 김에 한번 만나보라했다.     전번에 최기덕이도 권고한바가 있는지라 민호는 이 기회에 한번 방사령을 시원히 만나보고 돌아갈 생각을 하게 되였다. 그는 두지개더러 대오를 이끌고 먼저 산채로 돌아가라 시키고는 리련장을 따라 가목사로 갔다.     한편 사문동이나 장우신이나 다 처음부터 수편을 받아주지 않거니와 자기들과 대항해 나서는 염왕산의 철혈대를 눈에 든 가시같이 여기면서 이를 갈았고 백수를 써서라도 없애버리려했다. 한데 직접 만날수가 없었다. 이러던 차 사문동은 마침 철혈대가 염왕산을 나와 위무가 데리고 다니는 무리를 소탕하고 돌아가면서 돌배나무골에서 숨을 돌리고있다는 정보를 얻게되였다.      돌배나무골은 백호가 되나마나하는 작은 마을이였는데 사방에 산이 둘러있어서 흡사 함지박속에 돋아난 무더기버섯같았다. 그 마을에 성이 고가인 지주가 있었는데 두지개는 그와 오래전부터 안면이 있거니와 관계도 괜찮았던지라 한 사날가량 눌러있으면서 말도 사람도 쉬우고 산채로 돌아갈 궁리를 하고 들린것이다. 고지주는 자기 집은 배좁아 16명을 다 용납할 수 없다면서 마을밖에 있는 농막을 빌려주었다. 고지주는 밭을 20여쌍갖고있었는데 계절품팔이를 오는 농군들을 재우느라 그 막을 지은거다. 마침 가을걷이가 빨리끝나 품팔이꾼은 다 가고 막은 비여있었다.     한데 고지주가 두지개보다 사문동과 더 가까워 밀고할 줄이야.     이틑날 이른새벽에 사문동은 100며명의 잔병을 끌고 와서 이 초막을 포위했다. 전투가 벌어졌다. 류자들은 포위를 뚫고 나가려다  성공못하니 방어전으로 넘어갔다. 날아가는 총알이 에누리없이 사람을 꺽구러뜨리는지라 적은 감히 접근하지 못했다.     사문동은 키꺽다리 부하를 시켜 투항을 권고케 했다.       《철혈대는 듣거라. 너희들은 포위됐다. 살겠거든 손을 들라!》     제 목숨을 살리자고 손을 들 류자들이 아니였다.    《그따위 나발은 작작불라!》     두지개가 대구했다.    《나발아니다. 너희들은 공산군이 아니니 투항하면 살려준다.》     두지개는 살려준다는 말에 꿍꿍이가 있음을 알고 물었다.    《원쑤를 살려줘선 뭘하려나?》    《너희들은 원쑤아니다. 동고동락을 해야할 우방이다.》    《우방이라? 하하하....》     류자들은 그 소리가 듣기는 좋다면서 모두웃었다.     사문동은 이들을 설복하려했다.    《우방이 옳은거다. 우리를 염왕산으로 데리고 가거라. 거기가서 우리는 동고동락을 하면서 새날을 기다리자꾸나. 이제 국군이 들어오면 동북은 국민당의 천하가 될것이다.》    《저자식하는 말을 모두 들었지. 염왕산을 빼앗자는거다.》     두지개가 하는 말이였다. 다른 류자들도 모두 과연 그렇구나 하면서 한번다시 쓰거운 웃음을 던졌다.     날이 확 밝아오고 있었다.     시간만 끌었지 투항하려는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으니 사문동은 조급해났던지 키꺽다리를 시켜 또 소리치게 했다.    《염왕산류자들은 듣거라. 너희들은 꼬리방즈녀석한테 속히우고있다. 그자는 공산당과 결탁한 놈이니 없애버리고 넘어들오너라. 그런다면 너희들에게 상을 많이 주리다.》    《잘은 홀리네. 저자식 여우아니냐.》     도지개가 밉쌀스러워 중얼대고나서 키꺽다리가 다시 입을 벌리려 할 때 총을 갈겨 탄알을 넣었다.     키꺽다리는 논판에 세워놓은 허수아비 바람에 넘어가듯 보기좋게 뒤로 힌들번저졌다.     그자가 그 꼴이 되자 적은 총질하면서 달려들었다. 이켠은 희생자가 많아졌다. 반수넘었다. 그러면서도 투항은 하지 않았다.    《지독한 녀석들이구나!》     사문동은 초막에다 불을 지르라했다.     초막은 삽시에 불속에 잠기였고 이쪽은 탄알마저 떨어졌다. 아직 살아 움직일 수 있는 류자들은 육박전을 하려고 달려나갔지만 모두 총탄을 맞고 쓰러졌다. 부상당한 류자들은 불에 타죽었다.     장려한 최후였다! 염왕산철혈대는 이렇게 괴멸되고말았다!       염왕산동남입구에 있는, 전에 경비소로 리용되였던 작은 동굴앞에다 류자들의 시체를 묻어놓았다. 하여 이곳은 염왕산류자의 다른 한 릉원으로 되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로 날넘겨주소                   인간세월 얼마나 길고                   인생고개 얼마나 높아                   이탈 저탈 이리도 많으냐                   웃고 울며 넘는 고개                   아리랑고개로 날넘겨주소       민호는 혼자 노래불렀다. 탄식에 젖은 그 노래는 가슴을 내리훑었다. 허나 그를 내놓고는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다. 마치도 일장의 꿈을 꾸고난것 같이 미묘한 인간회귀였다. 다섯 살먹은 어린 성국이 하나가 더 끼였을 뿐 염왕산은 다시금 예전모양으로 돌아가  두집만 사는 고적한 동네로 변해버리고말았다.     계절은 드팀없이 바뀌여 겨울이 가고 봄까지 지나간 염왕산은 여름빛이 완연했다. 록음은 짙어갔고 계곡의 맑은 물은 새들의 노래를 들으며 경쾌하게 흘렀다.     8월중순의 어느날. 향란이는 손수지은 성국의 옷을 입혀보고는 만족스러워 하면서 반짇고리를 치운 후 앞집으로 건너갔다.     소춘매는 해여진 제 남편의 적삼을 깁고있는 중이였다.       향란이가 그보고 말했다.    《옥선이가 몸풀때 안됐을가.》     소춘매는 손가락을 짚어보았다.    《아직 열흘쯤있네요.》    《팔삭둥이도 있을라니 그 열흘을 주가 믿을가, 그러다 일찍밀고 나오면야 탈이지.》     향란이는 맹꽁이모양으로 앉아있지 말고 가보자했다. 하여 두 녀인은 남편들더러 한동안 수고스러운대로 제손으로 때시걱을 끄리면서 집간을 거두라 당부하고는 함께 태평진으로 갔다.     지난해 10월에 최기덕은 상처가 완쾌돼서 출원하여 태평진으로 돌아오자 인차 결혼식을 올리고 리옥선을 안해로 맞아들이였다. 그들의 신혼생활은 즐거웠다. 리옥선은 사업관계마저 구세병원으로 옮겨와 출근하면서 안살림도 남편의 뒷바라지도 잘해서 이웃에서는 알뜰한 각시라느니 유순하고 부덕이 있는 각시라느니 칭찬이 자자했다.     태평진에 공고한 인민정권이 수립되여 이제는 질서가 잡혀 안전했거니와 점점 활기를 띠면서 번성해가고 있었다. 하건만도 향란이만은 이곳이 전혀 정이 없거니와 오기만하면 남다른 감상에 사로잡히군했다. 그건 여기가 전에는 그녀가 적의를 품고 다니였던 곳이기때문이리라. 소춘매와 같이 와서 사진을 찍던 일, 별절한이 된 오빠를 보러왔던 일, 아버지를 모시고 왔다가 잃은 일, 복수의 길에 올라 사진사를 죽이고도 속이 풀리지 않아 일본인들에게 무시무시한 공포를 안겨주던 일.... 원한과 증오만 가져다 준 곳이니 사랑스레 안겨질리 만무였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태평진은 그녀가 오지 않으면 안될 곳이기도했다. 여기 병원에 왔길래 양아들은 병줄을 놓고 일어난것이다. 여기에 조선학교가 일어섰다. 장차 성국이도 여기에 와 공부해야 할 것이다. 지금 최기덕의 집이 여기에 있다. 큰집 작은집하면서 별스레 지내는 처지니 그래서 발길이 자주돌려지게 되는 곳이였다.     고맙게도 태평진 사람들은 그녀가 그저 염왕산두령 위삼포의 딸이라는것만 알았지 몇해전에 인심을 황황케 만들었던 그 녀강도였음은 모르고 있었다.     이해의 이른봄이였다. 오랬동안 산속에서 지낸 소춘매가 갑갑하다면서 날씨도 따스해지니 산밖을 한번 나가보자해서 향란이는 그를 데리고 태평진에 왔다. 두녀인이 버젓이 말타고 나타나니 사람들은 모두 경아한 눈으로 보았다. 그녀들의 표표한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어느것이 위삼포의 딸일가, 이쪽이냐 저쪽이나 하면서 추측들이 많았다. 그러면서도 감히 묻지를 못했다.     그날 그들은 장거리에 선견군두목들의 수급을 아홉 개나 달아놓은것을 보았다. 장방형의 나무함에다 하나씩 넣어 높이 달아놓고 구경시켰는데 그 몰골들이 각각이거니와 끔찍스러웠다. 장우신, 리화당, 손영구, 곽청전, 초경재....등 소문이 자자했던 두목들의 그것은 있었는데 사문동의 머리는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하는 말이 그것만은 기차에 달고 다니면서 널리 회술레를 시킨다는거다. 백성들을 그토록 불안케 했던 자를 이젠 잡았음을 믿게 하느라고.     염왕산철혈대가 붕괴된지 얼마안되여 선견군의 자랑이던 사문동, 장우신, 리화당, 손영구 이 네 큰 깃발은 련이어 꺾어졌다.     사문동은 사방대(四方坮) 산속에 있는 토지묘에서 붙잡힌 후 12얼 3일 벌리에서 목이 날아났고 장우신은 삼도통밀림에서 잡혀 12월 15일 조령에서 총살당했으며 리화당은 12월 12일 라라별(拉拉鱉) 산골에서 부상당해 붙잡혀 마차에 실려 나오자가 마교하라는 산을 넘을 때 말을 일부러 놀래워 차가 뒤번져지는 통에 깔려 죽었고 손영구는 대련포(大蓮泡) 산속에 있는 숯가마에 숨었다가 붙잡혀 이해의 4월 1일에 벌리에서 총살당했던것이다. 그 외의 선견군의 자질구레한 수괴들도 모두 하나하나 색출되여 공심받고 처형되고말았으니 이로써 북만토비숙청은 막을 내리였다....     향란이와 소춘매는 서둘기를 잘했다. 그녀들이 태평진에 온 이틑날부터 옥선이는 복통을 겪다가 날이 되니 해산했다. 딸이였다.    《아유 옥동녀를 낳았네! 우리 성국의 색시감이지!》     향란이는 무등 반가와했다.     두녀인은 한주일가량이나 산모를 돌봐주고는 산채로 향했다.     머리우에 뜬 해는 불을 뿜는것 같이 이글거렸다. 여러날째 비가 한방울도 내리지 않아 대지는 말라들고 있었다.     그들 두 녀인은 말을 달려 근 절반길을 줄려서야 마침내 시내가에 이르었다. 그 한갈래의 시내물은 저기 서쪽의 산간에서 흘러나오다가 가까운데있는 자그마한 야산의 기슭을 에돌아 방향을 동남쪽으로 돌리고 있었는데 물은 자갈많은 냇바닥이 다 들여다보일지경 맑았다. 그들은 약속이나한것 처럼 말잔등에서 뛰여내렸다.        말에게 물부터 먹이는것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나서 안장을 지운채 말을 놓아 자유로이 풀을 뜯게 하고는 저마끔 옷을 훌훌 벗고 물에 뛰여 들었다.     상쾌하기 그지없었다.    《아이좋아라!》    《호호호!....》     녀인들의 명랑하고 쾌활한 웃음소리는 산간의 고요를 흔든다.     시내는 그리 작은 축이 아니건만 물은 겨우 배꼽우로 올라오고 있었다. 그래서 박속같이 새하얀 녀인들의 몸체는 적라라하게 그대로 드러나 보이고 있었다. 그녀들의 말소리와 웃음소리에 어울려 나고있는건 오로지 냇가의 무성한 숲속에서 목청을 다투는 새들의 울음소리뿐이였다. 두 녀인은 마치도 소녀시절로 되돌아가기라로 한것 같이 즐거움에 잠겨 물치기를 놀기도 하고 물장구를 치기도 했다.     그녀들이 세상을 잃고 떠들면서 물장란을 치고있을 때 공교롭게도 불차개다섯이 여기를 지나게 되었다. 그 다섯중에 위무도 있었다. 지난해의 여름부터 아예 예전의 토비생활로 인생의 키를 돌려잡은 그가 수사가 하도심해 벌방에서는 이제 더 나돌수 없게되니 심산에 터를 잡고 해먹을 장구지계(長久持戒)를 세우고 동당 넷과 함께 염왕산으로 파고드는 중이였다.    《아니 저게 뭐야!?》     한자가 먼저 백마두필을 발견하고 탄성을 올리였다.    《가만, 안장을 지운거로구나!》     위무는 덤비지 말라 주의를 주면서 말임자를 찾느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녀인들의 맑은 웃음소리가 귀를 간지럽히며 들려왔다.    《엉, 저건!?....》    《계집들이구나!》    《저년들이 발가벗고....》    《으, 흐흐흐....》     황홀경이였다. 그자들은 경계심을 풀면서 뽑아 들었던 권총들을 도루집어 넣었다. 그러면서 이 떡을 어떻게 하면 내가 먼저맛볼가 궁리하면서 침을 흘렸다.     소춘매가 목욕을 끝내고 먼저나왔다. 한데 있어야 할 옷이 보이지 않았다.    《아이 괴상해라, 내 옷! 내 옷! 내옷이 없어졌네!》     그녀가 옷을 찾으려는데 어디선가 난데없는 괴한 셋이 불쑥 나타나 덮쳐들었다. 소스라치게 놀란 소춘매가 소리를 질렀지만 그 소리는 자신도 듣기 어려웠다. 가래짝같은 손이 입을 막은거다. 그자들은 그녀의 팔과 다리를 잡아 들고 숲속으로 들어갔다.     향란이는 이런줄도 모르고 흥흥 콧노래를 해가면서 물에서 나왔다. 소춘매가 보이지 않으니 시누이하고 불렀다. 다시 소리쳐 부르려는데 두녀석이 숲속에서 갑작스레 뛰여나와 덮쳐들었다. 화들짝 놀랜 향란이는 우악살스런 녀석의 억센 팔이 목을 감으며 끌어 안으려 할 때 무릎으로 그자의 불통을 힘껏 올리밖았다. 그리고는 목을 감던 팔을 풀면서 그자가 주저앉는 순간 손가락으로 다른녀석의 눈알 두 개를 빼버렸다.     《아!....아!....》     그자는 아파죽겠다고 비명을 내지르면서 딩굴었다.     향란이는 저쪽 숲속에서 다른 녀석들에게 깔려 버둥이치는 소춘매를 발견하고 그리로 달려갔다.     두녀석이 소춘매를 놓고 그한테 달려들었다.     알몸뚱인 향란이는 냇물에 다시뛰여들었다.    《으, 하하하....》     두녀석은 그녀가 궁지에 든줄로 알았던지 미친듯이 웃어대면서 아예 바지까지 벗어 던지면서 뛰여들었다.     손을 물에 넣어 자갈 두 개를 찾아 쥔 향란이는 그것을 뿌려 둘의 머리통을 깨놓아 대골이 나오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달려나가 소춘매를 찾았다.     한자가 그녀를 그냥 깔아뭉개고 있었다. 향란이는 달아가자바람으로 발길을 날려 그자를 꼭그려뜨리고 소춘매를 일으켰다. 그녀의 옷을 찾으려는데 불통을 채워 깜박 정신잃었던 자가 기여일어나고 있었다. 향란이는 다시달려가 그자의 머리를 차서 정신잃게 만들고는 소춘매와 같이 들어다 물에 처넣었다. 세녀석이 천당가고 눈알빼운 녀석은 어디로 달아났는지 보이지 않았다.     향란이가 옷을 입고나서 생각하니 소춘매를 깔아뭉개던자를 자기가 채 죽이지 않은것 같아 달려가보았다. 그자는 과연 숨이 붙어서 기여 일어나고 있었다. 한데 그자가 한쪽귀만 달고 있는지라 향란은 놀랬다.    《오, 네놈이 위무였구나!》     위무는 달아나려다 말고 덥쳐들었다. 한들 어쩐단말인가. 장성이 센 그였지만 머리를 이미 두 번이나 세게 채운데다 근본 상대가 못되였다. 향란이는 발길을 날려 그자를 다시금 정신잃게 만들었다. 위무는 의연히 아랫도리를 벗은 꼴이였다. 향란이는 그를 단장에서 죽이려다가 생각을 고쳐 바지띠로 그자의 손목을 돼지발쪽을 묶듯이 꽁꽁 묶었다.  홀벌로 죽일 원쑤가 아니였다.    《이놈아, 걸으라! 가서 염왕산의 맛을 보거라!》     위무가 손이 묶이운채 들고뛰려하자 향란은 손을 써서 그자를 다시정신잃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아예 윗도리까지 홀랑 다 벗겨서 말잔등에 올려놓았다.     위무는 염왕산입구에 있는 철혈대류자들의 묘소에 이르러서야 개복했다.     달포전에 돌을 깎고 다듬어서 한키넘는 초혼비를 만들어 여기에다 세웠는데 거기에는 아래와 같은 글이 새겨져 있었다.              중화민국 35년 10월 12일 선견군악당과 영용히              맛서 싸우다가 전몰한 염왕산류자들의 영령.       향란이는 위무를 말에서 끌어 내려 그 초혼비 앞에 무릎을 꿇리였다. 그 자가 일어나려하면 발로 걷어차서 다시쓸어눕히였다. 그러기를 여러번. 위무는 기진맥진했고 굶주린 모기떼는 진수성찬을 만났다고 떼지여 달려들었다. 위무는 서서히 숨이지고 있었다. 두 녀인은 그자가 빨간 옷을 다 입을 때까지 지켜보다가 염왕산으로 들어왔다.     이로써 원쑤는 다 갚았다.      
160    <<관동의 밤>> 제2부(42) 댓글:  조회:2858  추천:0  2015-02-04
                              42               태평진공안국은 공안대로 공안대가 자위대로 이름이 고쳐졌다. 그러다가 이 자위대는 동북인민자위군이 건립되니 거기에 편입되면서 태평진 독립퇀으로 이름이 또 바뀌였다. 그러나 실제상 진내의 무장인원은 다해봤자 원유의 그 300여명밖에 안되였거니와 무기장비도 변변치 않았다. 쏘련홍군은 이제 아무 때건 갑자기 철거할 것이다. 그때되면 장우신이나 사문동은 얼싸좋다고 달려들것인데 요깟인원갖고 뭘 어쩐단말인가. 당랑거철(螳螂拒轍)이라 이 큰 태평진을 지켜낸다는건 그야말로 버마재비가 수레바퀴를 버티려하듯이 어림도 없는 일이였다. 사정이 이러하니만큼 최기덕은 뚜르와체브와 도와달라고 사정했다. 원래 사상도 주의도 같거니와 여기서 함께 지내는 사이 어느덧 교분이 두터워진 나어린 쏘련홍군장교는 그의 사정을 알아주었다. 하여 둘사이에는 비밀리에 협상이 이루어지게되였다. 그쪽으로부터 무기를 조달받기로 한것이다. 최기덕은 곧 대원을 확충하러 나섰다.     (최기덕이 퇀장이고 장평이 부퇀장이였다.)     그와 김웅렬, 장평 셋은 각각 구역을 떼맡고 나가서 인원을 모집하고 모금(募金)도 했다. 이 사업을 벌리면서 최기덕은 목청에 와있는 민호를 만났다. 그는 당전국세를 감안하여 자기와 뚜르와체브지간에 협상이 있은 사실을 알려주고나서 말했다.           《지금같아서는 내가 계획하고있는 일들이 가탈없이 풀려나갈것 같소. 우선 무기문제를 해결하게 됐으니까. 한데 태평진에는 수비력량이 너무도 박약해서 나는 여기에 있는 두 마을에서도 꼴꼴한 청년으루 얼마간씩 뽑아갈 생각인데 정형의 생각은 어떻소?》    《내 생각에도 그렇게 하는게 좋겠구나. 안그러구야 인원을 어떻게 보충받겠나. 청년들을 다 데려가라. 여기야 중장년들이 자위를 맡아도 얼마든지 되겠으니까. 이젠 그들을 묶어 세워야지. 그리고....이럴수록 통신련락이 잘되게 조치를 대야한다.》    《그렇구말구. 아마도 특별통신반을 따로내와야겠소.》     최기덕은 잠시 침묵했가 입을 다시열고 요긴한 문제를 내놨다.    《정형! 정형의 그 철혈대는 어떻게 할 작정이요?》    《어쩔거있나, 이미 두 마을에 아눠놨으니 그대로 있으면서 이제는 중장년들에게 무기조법을 배워주게해야지.》    《물론 그래야 하오만 내 뜻은....》    《뭘 그러니?》     민호는 그가 말을 하지 않고 끝을 흐리우는지라 다시여겨봤다. 요긴하게 할 다른말이 있거든 어서 해보라는 무언의 독촉이였다.     최기덕은 과연 찾아 온 본의를 그의 앞에 내놓았다.    《민호형님! 형님네 그 철혈대두 이 기회에 아예 우리 퇀에 귀속시키는게 좋잖겠소.》    《그렇게는 안될거다.》    《왜서?》    《내야 언녕부터 그럴 맘이 있었다만 다른 사람들이 그럴려고 않는다. 너도 알다싶히 모두가 출신이 토비아니냐. 류자는 정치를 모르거니와 관계치도 않는다. 애당초 알려고도 하지 않고. 게다가 너도 알다싶히 그들은 다가 사상이 말할수없이 불온하거니와 자유방종하게 사는데 습성이 돼서 그 누구의 지배도 속박도 받으려 하지 않는거다. 물론 저희들의 두령을 대하는것관 다르지. 사정이 이렇다는걸 알고.... 물론 너도 영모르는건 아닐거다.》     민호는 염왕산류자들은 호덕화를 붙잡아 처결했으니 이젠 할 일은 다했다여기고 싸움은 그것으로 기본상 종지부를 찍은거나 다름없다는 것, 여기로 올 때도 싸움을 하지 않고 그저 자위무장을 훈련시킨다니 군말이 없이 동원되였다는것을 알려주었다.    《그렇다면 알만하오.》     최기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는 항일년대에 염왕산에 수편하러 들어갔다가 위용강에게 퇴를 맞고 돌아나왔던 일이 다시금 상기됐다. 자기식의 생활과 관습에 물젖은 류자들을 제 나름대로 정치에 립각하여 모양을 고친다는건 어리석거니와 불가능한것이였다. 략탈을 그만두었다는 그 한가지만도 탈태환골을 한 셈인데 이제 무엇을 더 바란단말인가? 자기가 하기싫어하는 일을 하라면 그것은 강요가 될것이다. 강요해서 이루어짐은 불화를 심어놓은것밖에 더 되는가. 그는 철혈대를 자기 퇀에 끌어오려던 생각을 포기했다.     민호가 호언장담했다.    《철혈대가 저쪽으로 기울어질까봐 걱정은 하지 말라. 절대 그러지 않을것이다. 내가 보증하마. 그리고 또 한가지. 이 무리는 흩어진다해도 그 누구하나 사사로이 염왕산과 관계없는 일에는 발을 들여놓지 않을것이다. 염왕산의 법규가 지켜보고 있으니까.》     어느덧 염왕산류자의 혼불이 머리에 심어진 민호였다.       최기덕이 태평진에 돌아가서 자기가 목청에서 민호를 만나 담화가 있은것을 얘기했더니 김우렬은 듣고서 코방구를 뀌였다.    《흥. 아주 그럴듯한 감언인걸! 최서기는 그래 그따위소릴 곧이듣소. 난 콩으로 메주를 쓴대도 곧이듣고싶지 않소. 지금이 어느땐가말이요. 우리와 적, 혁명과 반혁명이 쪽 갈라져 대결하면서 판가름을 하는 판인데 그 사람의 태도가 그렇다니 괴상하구만. 그게 바로 기회주의표현이지. 그자는 철두철미한 량면파란말이요.》    《뭐라구!?》     최기덕은 성을 버럭냈다. 대단히 언짢았다.    《그따위소린 걷어치우시오. 왜 함부로 남을 헐뜯습니까. 민호가 그래 량면파란말인가, 참! 김동무는 대체 그를 어느만큼이나 알고있길래 그럽니까?.... 그 사람의 처지에서, 정확히 말해서 철혈대의 사람으로서 태도가 그런거야 당연하지. 괴상할게 뭔가? 제만 옳고 남은 다 그르다고만 봐서는 안됩니다.》     호된 반박이였다.     김웅렬은 할 말이 없었다.     최기덕은 색안경을 좀 벗고 세상을 보아라, 민호도 철혈대도 그들이 신분이 좋지 않다해서 나쁘게만 보고 배척해서는 안된다, 변증법을 배워 어디에다 쓰는가, 특수대상에 대해서는 특수한 방법으로 대응책을 내와 그들을 포용함이 마땅하지 않은가, 중간세력을 무시하고 천시하는건 책략을 모르는 젖빨개와 무식한 인간이나 할 짓이다라고 력설했다.     최기덕이 태평진에 돌아오자 이번에는 장평이 그의 지시에 따라 몇사람을 데리고 민호있는데로 달려가 그와함께 목청과 화금 두 마을에서 태평진독립퇀에 편입시킬 인원을 하나하나 선발했다. 그 일은 어려울것 없어서 쉽게 마무리졌다.     민호는 돌아가려는 장평을 따로 종용히 불러놓고 전번에 위무가 생각밖에 자기를 찾아왔다간 일을 꺼내놓았다.    《어언 십오년이 되는구나. 너는 우리가 오군자를 세우기 착전에 염왕산을 나왔다가 반일을 한다는 류자패 하나를 곡경에서 구해주던 일 생각나겠지?》     장평은 두눈을 꺼무럭거리더니 머리를 끄덕였다.    《생각납니다. 적한테 추격받던 자들을.... 그때 우린 그들을 구원해주다가 형제를 둘이나 잃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넌 그 패의 두령을 알만하냐?》    《왜 모르겠습니까. 위무가 아닙니까. 이전에 염왕산에 그하고  똑같은 이름이 있어서.... 건 왜 묻습니까, 형님?》    《그 위무가 날 찾아왔더구나.》    《언제요?》    《며칠된다.》    《왜 찾아왔습디까?》    《네가 생각해봐라 왜 왔겠는가구. 승냥이 좋은 맘먹구 문긁을 리야 없지. 안그렇니.》    《형님, 왜 그런소리 합니까. 그자가 뭐라고 했길래?》    《우리 철혈대를 수편하겠다더구나.》    《뭐라? 위무가? 별자식 다 보겠네. 지금 어디서 뭘해먹길래?》     《장우신부대에서 부관처 처장노릇을 한다더라.》    《부관처 처장이라! 허허허.... 그때는 물에 빠진 쥐색끼꼴이던 녀석이 운이 대통하는가. 어디서 금관을 훔쳐썼구만요. 쳇!....》     장평은 부러워하기는 커녕 되려 쓰거워했다.    《오인형님, 형님은 그래 어쩔 예산입니까》    《어쩔거있냐. 내 앞에서 말을 더 못하게 쫓아버렸네라.》    《잘했습니다. 염왕산을 수편하려들다니 원. 어리석은 놈이지.》    《너도 생각해봐라, 인원이 겨우 스믈다섯밖에 안되는 철혈대를 장우신이 왜 제쪽에다 끌어넣자고하겠냐.》    《형님은 어떻게 생각했습니까?》    《뚝배기보다 장맛났다고 사실은 그자들이 염왕산을 탐내고 그러는거지.》    《맞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장우신도 머리있는 사람이니 만일의 경우를 생각하고 그러는거다. 북만에서 염왕산만큼한 안신처를 어디가 찾겠냐, 안그렇니?》    《형님말이 맞습니다. 형님께서 면바로 알아봤습니다. 저들이 수편한 도야진을 없애치워 사문동이 절치부심하는 철혈대를 형님동생하는 장우신이 끌어당길때야....그자를 쫓아버리길 잘했습니다. 염왕산이 그자들의 손에 들어가게 해서는 절대안됩니다.》     민호가 그한테 물었다.    《장평아, 위무가 만약 찾아간다면 넌 어쩔테냐?》    《그자가 나를?》    《그렇다, 너를. 그자들은 지금 끌어당길만한 세력은 힘껏 끌어당기는 판이다. 네가 지금 태평진의 무력을 쥐고있으니 어느날 찾아와 꼭 수편하자구할거다. 두고봐라.》    《쳇, 나를! 유사이래 염왕산류자는 남한테 수편되는걸 제일 큰 수치와 모욕으로 여겨왔습니다. 어느놈이 감히 나를 너절한 변절한으로 만들어. 이 장평은 오인형님의 친구만을 내 사람같이 여길텝니다. 두고보시오만 난 그분만은 절대 배반하지 않을겁니다.》     그가 말하는 그분이란 최기덕을 가리키는것이다.    《고맙다, 장평아!》     민호는 그의 어깨를 정겹게 다독였다.     장평은 최기덕의 지시대로 두 마을에서 조선청년 100명을 뽑아 데리고 영락촌에 가 그곳에서 새로 모집한 100명과 합쳐 태평진독립퇀 3영을 건립했다. 그리곤 집단적인 훈년을 지도하는 한편 치안을 강화했다.     예견이 맞아떨어졌다. 아니나 다를가 3영이 건립된지 열흘이 안되여 민호가 짐작한바와 같이 위무가 장평앞에 나타났다. 그를 데리고 온 사람은 재종형 장두봉이였다. 바람없는데 파도가 일랴. 장평은 그가 찾아 온 원인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장두봉은 국민당부가 태평진에서 뿌리뽑히우고 유지회가 강제해산되자 마음괴로와 진정못하고 여지껏 외지에서 나돌았다. 지금 그의 배속에는 불만이 꽉 차 있다는것을 장평은 잘알고있다. 전에 장두봉은 지어 뼈에 사무칠지경 원한까지 품으면서 이를 북북 갈았다. 그러면서 최기덕을 비롯한 그 몇몇 공산당간부들을 욕했거니와 지어는 암살해버릴 궁리까지 했다. 한데 장평이 그것을 눈치채고 형님 미치지 않았소 무슨 망발을 그렇게 하자고 드오 그러고는 자긴 무사할것 같소 나는 그네들을 보호할 책임이 있소 털끝하나 다쳤다가는 내한테 큰일날 줄을 아오 하고 정색하여 색을 먹으면서 그를 단단히 경고했던것이다.     그 일이 있은 후로는 찍소리못하고 어디론가 가버려 여직 잠잠하던 재종형이 오늘 그한테 반갑지 않은 손님을 데리고 왔다.       《오, 형님이구만! 여직 어디가있다가 이제야 오오.》     장평은 면목없고 거래없는 손님따위는 아예 안중에 넣지 않는듯이 거들떠보지도 않고 재종형하고만 반갑다고 친절을 떨었다.     장평이 자기를 랭대하고 있음을 보아낸 위무는 심한 모멸감에  가슴이 찟기면서 무례하고 오만하기 짝이 없는 이 사나이의 따귀를 한 대 후려주고싶도록 몸을 떨렸다. 한들 마음뿐 참아야 했다. 자기는 불청객이요 자칫잘못했다가는 계획하고 온 일이 죄다 망가지고 말것같아 치미는 분을 지긋이 내리눌렀다.     난처한건 장우봉이였다. 그는 어색한 분위기를 돌려보려했다.    《장평아, 소개하마. 이 손님은 내가 잘아는 분인데....》    《나는 군부에서 파견되여 온 사람이요.》     위무가 그의 말을 허리자르며 자못 엄전스레 자아소개를 했다.    《난 국민당 제십오집단군 선견군 부관처 처장 위무요.》    《그렇소. 거게 앉으시오.》     장평은 그제야 손님쪽으로 얼굴을 돌리는데 덥지도 차갑지도 않았다. 그는 그의 구리빛나는 얼굴에 자리잡고 있는 치째진 갈고리눈을 보고 속으로 네가 과연 그때 일본놈의 손에 혼줄나던 그 패전대장이 옳기는 옳구나 하고 뇌였다.     대방도 장평의 강팔진 얼굴을 여겨보면서 속으로 네 이 염왕산류자놈아 상판이 생겨먹은것처럼 네녀석은 성깔이 셰퍼드같이 사납겠구나 하고 뇌였다. 위무의 구리빛 얼굴에서 웃음이 그믈그믈 피여오르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표정이 네 녀석이야 내 말을 듣겠지 급을 주고 잘써준다고 얼리면야 말을 안들을리있냐하고 있었다.     과연 위무는 입을 먼저 열어 장평의 심중을 떠보려했다.    《중안군은 요즘 인재를 등용하고있네. 기회가 참 좋지.》    《오! 손님은 그 소식을 나한테 알려주려고 오셨소?》     장우봉이 곁에 있다가 방금 위무가 한 말에 제꺽 꿀을 발랐다.    《이 위처장께서는 너를 도와주고싶어서 모처럼 찾아오셨네라. 한생에 운이 몇 번 틔겠냐. 천재일우의 기회니 놓지 말아야지. 안그렇냐, 장평아!》    《형님, 무슨소린지 난 듣고도 새통 모르겠소.》    《네한테 행운이 트일 기회가 왔단말이다.》     장평은 그 말에 속이 간지러워 못견딜 것 처럼 웃음을 흘렸다.    《하하하....행운이라니! 형님, 내한테도 행운이 떨어질가요.》    《떨어지지, 떨어지구말구. 바로 지금이야.》     위무가 질러 말하고 있는데 그의 갈고리눈은 먹이를 만난 맹금의 눈같이 광채를 뿌리기 시작했다.     장평은 속으로 이 미친놈아 행운이 다 뭐냐 내가 량심버리고 변절한이 되면 그게 행운이냐 하고 욕하고는 자신을 단근질했다. 눈먼 송아지 원앙소리 따라가듯이 행동하지 말거라 변질은 수치스러운 짓이거늘 새가 깃을 아끼듯이 제 명예를 아끼거라.     대방의 속심이 이러한 줄은 모르고 위무는 도지개를 틀며 제잡담하고 찾아 온 뜻을 급급히 털어놓았다.     《내 무장을 수편하겠다는 말인가?》    《그렇소. 바로 그말이요.》     장평은 그를 힐끗 보고나서 속으로 내한테 반변을 꾀하니 돌에서 기름을 짜내자는게지 네놈은 어리석어도 이만저만 아니구나. 염왕산류자를 어떻게 보는거냐 이 장평이가 너같은 심악한 놈하고 어울러지낼거면 차라리 구데기로 되고말거다 하면서 차고 심드렁한 태도로 물었다.    《손님말하는 행운이라는게 그건가?》    《그렇소. 바로 그거요.》     위무는 반죽족게 웃어가면서 선전했다.    《보다십히 우리 중앙군은 일취월장하고있소. 이제 오라잖아 전 만주땅을 차지하게 될거야. 듣자니 영왕산이 숨이 질겨서 다시살아난다구는 하지만 몇참이나 갈가. 국민당에 붙지 않고 명을 이어나갈가. 왜놈손에 망하듯 아무 때건 또 그꼴이 될거야. 그러니.....》     장평은 낯색이 굳어지면서 돌연 노기를 띠였다.    《나발을 잘 분다. 뭐 어쩌구어째? 누구를 막보고 그따위 소리를 줴치는거냐. 염왕산이 왜놈손에 망하듯이 어쩐다?....》     장두봉이 민망해서 재종제를 나무렸다.    《남은 호의로 말하는건데 넌 그게 뭐냐, 말 좀 들어다.》     장평은 몸을 홱 돌려 그를 쏘아보며 제독을 주었다.    《감탄고토라 내 맘에 달린게지 무슨 이래라 저래라요. 그리구 저사람봐, 수탉죽으니 여우가 운다더니 염왕산이 망했는데 어쨌다구 입 끝에 붙이구 함부로 나불대는가말이요. 싱거운녀석이지.》     장우봉은 그만 억이 막혀 말을 못하는데 위무가 대들었다.    《이 사람이 인사불성이네. 내가 어쩌면 싱거운 녀석인가?》     장평은 발연대로했다.    《야 이놈아, 남이 속마음 어떤지도 모르면서 반변을 추기며 다니니 네가 그래 싱거운녀석아니고 뭐냐. 네놈은 졸경을 치러야 정신차리겠다. 얘들아, 저놈을 여기서 곱게 보니지 말라!》     자위단원들이 장평의 명령이 떨어지자 달려들어 위무를 제꺽묶어 그 자리에 무릎꿇이였다.     전혀 예견못했던 갑작봉변이라 위무는 놀란토기 벼락바위쳐다보듯 장평을 올려다보면서 눈만 꺼무럭거렸다.    《네가 남을 허술히 보고 귀에다 요사한 바람을 불어넣을각질하는 모양인데 안되겠다. 내가 그놈의 귀부터 수술을 해야겠다.》       장평은 칼을 빼들고 달려들어 위무의 한쪽귀를 썩 베여버렸다.     귀가 떨어진 자리에서 피가 흘러 목깃으로 들어갔다. 위무는 아파죽겠다고 소래기를 질러대면서 딩굴다가 달아났다.       북만각지에 널려있는 여러 중앙선견군은 이해의 벽두부터 국민당의 국군과 배합하면서 기염이 고조되고 있었다. 복래툰(福來屯), 담가점(潭家店) 등 전역에서 단맛을 본 장우신을 비롯한 사문동, 리화당, 손영구 등은 련합하여 삼면으로 삼강인민자치군 주력이 있는 의란현 삼도강(三道崗)을 진공하여 일거에 북만의 인민자위무장을 섬멸해치우려했다.     하지만 그들은 마음과 같이 되지 않았다.     1월 29일, 녕안현림시참의회는 장개석에게 전보를 쳐 그가 군대를 파견하여 해방구를 진공하고 동북인민들의 평화적인 민주생활을 파괴하는것은 죄행이라 견책하면서 국공량당간에 맺은 정전결정을 즉시 집행하며 해방구에 대한 진공을 중지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장개석은 중경에서 맺은바있는, 내전을 견결히 피하기로 한 결의대로 하지 않고 내전을 일으키고 있었다.     한편 삼도강을 공점하려다 실패한 장우신은 제15집단군선견군지휘부가 있는 이도하자에 돌아가 숨을 돌리면서 춘절연회를 대대적으로 차려 사기가 저락된 장병들을 격려했다. 음력정월보름 이틑날이였다. 백여명으로 이루어진 양걸대가 이도하자에 나타났다. 성안에 들어간 양걸대는 북소리, 새납소리에 맞춰 춤을 멋지게 췄다.     장우신은 장병들을 위로하러 왔다니 흐믓해서 나와보았다.         어느덧 날이 어두웠다.    《땅! 땅! 땅!》     돌연히 매짠 총성이 세 번 언 대기를 찢어놓았다.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무장든 군인들이 번개같이 성안으로 돌입했고 그에 배합하여 양걸꾼들이 권총을 빼여들고 선견군을 쓸어눕혔다. 그들은 삼강인민자치군이였다.     《제길할거, 이게 어찌된 판이냐!?》     잠을 자려고 방금 자리에 누웠던 장우신은 혼비백산하여 신도미처 찾아신지 못하고 맨발바람으로 뛰여나가 말파리를 타고 도망쳤다. 그는 눈깜짝새에 병사 500여명과 총 300여자루, 자동차 5대, 대포 1문을 잃고말았다.    《패수살이 떨어졌구나, 패수살이 떨어졌어!》     장우신은 울화통이 터져서 소리쳐대면서 조령으로 피해갔다. 그가 건군식을 올렸던 조령ㅡ 그곳은 삼강, 목단강, 송강 3개성이 머리를 맞대이는 교제처이거니와 방정, 의란, 벌리, 림구 4개현이 맞대이는 곳이기도했다. 염왕산처럼 고산밀림지대고 땅이 비옥한 그곳은 예로부터 병가(兵家)들은 서로가지려고 다투는 곳이다. 항일전쟁때는 거기가 한때 항일련군이 자리잡았던 요지였거니와 일위군과 토비의 소굴로 교차되기도했다.     장우신은 염왕산을 손에 넣기 힘드니 이제부터는 여기에 들어 앉아 실력을 확충하면서 다시겨뤄볼 생각이였다. 그는 의란, 화남일대에서 활동하고있는 사문동부대와 삼도통, 방정일대에서 활동하고있는 리화당부대 그리고 벌리에서 반변한 손영구부대를 망라한 다른 여러 선견군부대들과 련락을 긴밀히 하면서 나쁜짓을 하기시작했다. 백성의 자위무장과 토개공작대를 습격하고 농회간부를 암살하며 철길을 파괴하였다. 하여 백성들은 원성이 높아지면서 중앙선견군을 이제는 토비라 부르게 되였다.                   《토비를 숙청하자!》                 《공고한 동북근거지를 건립하자!》                 《전국의 해방전쟁을 지원하자!》     도시와 농촌의 가두와 담벽에 공산당이 선전하는 표어들이 가득 나붙었다.     관내에서 공산당이 령도하는 중국인민해방군 한 개 대부대가 들어왔다. 그들은 북만에 있는 인민무장부대와 손잡고 동북민주련군을 조직하고는 국민당의 중앙선견군을 토비로 락인하고 숙청하기 시작했다. 한때 중앙군으로 행세하던 그 오합지졸의 무리들을 하나하나 숙청되 시작했다.     숨이 질긴 패주자들이 조령으로 몰려들었다.     1946년 2월 26일. 동북민주련군은 쏘련홍군한테서 자동차 80대와 장갑차까지 빌려갖고 조령에 몰려든 선견군을 공격하기 시작하여 동북토비숙청사상 유명한 조령전역의 서막을 올리였다.     이 전역이 시작되기직전에 외지의 난민, 특히는 조선족난민들이 적잖게 태평진에 쓸어들었는데 그 난민속에 국민당의 삼청당(三靑團)과 철혈단(鐵血團) 그리고 다른곳에서 패한 선견군의 잔여분자 몇이 석여 있었다.    《할빈에 국민당특무 삼백명이 파견되여왔다.》    《중앙선견군이 이제 태평진으로도 쳐올것이다.》     그자들은 들어오자마자 이런 요언을 퍼뜨려서 민심을 황황불안케 만들었다.     최기덕은 요언날조자를 붙잡아내려했지만 붙잡을 재간이 없었다. 나는 이 사람한테서 들었소 나는 저 사람한테서 들었소 하니 도대체 누구의 입에서 조작된건지 알 수 없었다.     이러던차 4월말이 되자 쏘련홍군이 갑자기 본국으로 철거했다. 그래서 허전한 감이 나는데다 3일만에 조령에서 밀린 사문동이 잔병 800여명을 끌고 태평진에 달려들었다. 이전부터 이곳을 눈독들여 온 그는 여기다 자리를 틀고 앉아서 맛서볼 타산이였다.     치렬한 공방전이 벌어졌다. 한데 태평진은 앞문에서는 범을 막고 뒷문으로는 이리를 끌어들이는 형국이 되고말았다. 성내에는 갑작스레 무장가진 자들이 30여명 나타나 소란을 피웠던것이다. 최기덕은 성문으로 쳐들어 오는 적을 막을라니 성내의 적을 대처할라니 그야말로 혼줄이 났다. 싸움은 점점 더 치렬해갔고 주검은 늘어났다. 게다가 총지휘인 최기덕은 날아오는 적탄에 중상을 입고 꼼짝못했다. 시간이 갈수록 뻗쳐내기 어렵게 된 태평진독립퇀은 증원병이 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이같은 위기일발의 시각에 마침 련락병으로부터 소식을 들은 동철부대가 그들을 구원하러 달려왔다. 600여명이였다. 사문동은 배후에 돌연스레 증원부대가 나타나니 성을 공략하려다말고 그만 줄행랑을 놓고말았다. 표범같이 사나운 그 조선족부대에 여러번이나 녹아난 사문동이였다.    (지난해의 9월, 집이 화남에 있는 항일련군출신의 김동철이 재난에 빠진 동포들을 구원하고저 가목사와 화남, 벌리, 의란, 부금, 보청 등지에서 끌끌한 청년들을 모집하여 조선족부대를 건립하여 삼강성군구 독립퇀으로 편입되였는데 전과가 혁혁하였다. 항간에서는 그를 습관상 동철부대라 불렀던것이다.)       토성밖에서 달려들던 적은 쫓겨났지만 성안에 나타났던 적은 달아나지 못하고 죽는 놈은 죽고 산놈은 몽땅 잡히우고 말았다. 조사해보니 30명중 7명이 난민속에 석여있던 자였고 그 외는 다가 본바닥사람이였다. 해산된 유지회의 골간분자였던 그들은 모두다 전에 협화회나 협화청년단이 아니면 협화의용봉공대에서 해먹던 치들이였다. 반란조직자가 장두봉이라는것이 밝혀졌다.     저것이 나의 재종형이란말인가. 장평은 그가 비렬하게 뒤에서 그따위 짓을 한것이 괘씸하거니와 수치스러웠다.     《더러운 피자놈! 끝내 너절한 짓을 했구나!》     장평은 밸김에 재종형은 물론 다른자까지 모두 총살해버렸다.     한데 최기덕이 중상을 입어 가목사군구병원으로 호송되고 주용전은 희생되였으며 조아민은 전에 벌써 남만으로 조동되여 없다보니 태평진의 실권을 혼자손에 넣게 된 김웅렬은 자기한테 비준을 맡지 않고 내란을 일으킨 자들을 죽였으니 그것은 공산당을 무시하는 용서못할 행위라면서 제마음대로 장평의 퇀장직위를 박탈해버렸다.    《왜 그럽니까, 그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백성을 위해 독충을 없애린것도 그래 죄가되는가?》     주민들은 장두봉의 처사가 리해되지 않아 따지고들었다.     그러니 김웅렬은 리유를 묘하게도 주어붙였다.    《죄는 안져두 우리는 그도 믿을 수 없다. 장두봉이 누군가. 그하고는 어떤 관계인가. 그 본신의 밑그루는 또한 어떤가?.... 바탕이 그런 사람한테 무장을 맡기고 어떻게 안녕하리라 믿겠는가. 이는 한차례의 계급투쟁이라는걸 잊지말아야 한다.》     장평은 결국의심분자, 위험분자로 선포되고말았다.    《공산당이 나를 속였다! 더러운 피자놈아, 어디 두고보자!》     졸지에 나래부러진 매같이 신세가 추락된 장평은 생각하면 할수록 억울하고 분하기만해서 길길이 뛰였다....       한편 태평진에 달려들었던 사문동은 동철부대의 추격을 계속받았고 조령에서 쫓겨난 장우신은 잃어버린 제 보금자리를 되찾아보려고 악을 썼다. 어느날 그는 인민무장주력이 소부대만 남겨놓고 전이한 틈을 타서 저의 잔병 400여명으로 조령에 돌입하여 그곳을 지키고있던 공산당측의 사람들을 살해, 축출하고는 되차지했다. 그리고는 각지에 흩어진 잔병들을 긁어 모아 800명의 대오를 다시만들었다. 하여 북만에서는 그것을 숙청하는 제2차조령공격전이 벌어지게 되었다.      그사이 원래의 삼강인민자치군이 동북민주련군 합강군구로 이름이 바뀌였는데 본부를 가목사에 두고있는 이 부대가 이번의 전투를 맡았다. 동북민주련군 합강군구는 전략을 모색한 끝에 유인술로 조령에 모여든 여러 중앙선견군잔여들을 숙청하기로 했다.     일본군이 투항 할 때 여러 비행장들에 그자들이 버리고 간 낡은 비행기들이 있었는데 북만에다 인민정권을 구축한 공산당은 그것들을 벌리부근에 있는 행수비행장(杏樹飛行場)에다 집결시키고는  몇명밖에 안되는 공근인원(空勤人員)으로 를 세운것이 하나 있었다.     누구의 계책이였는지 이쪽에서는 비행기의 기체에다 국민당의 청천백일기를 그린 후 5월 5일날에 그 비행기를 몰고 조령상공에 날아가 한바퀴 빙 돈 후 편지를 넣은 주머니 하나를 떨어뜨렸다. 그 주머니안에 들어있는 편지의 내용인즉은 동북행원주임(東北行轅主任) 웅식휘(熊式輝)가 장우신, 리화당이 공을 세웠기에 표양하련다. 5월 7일오전에 웅주임이 친히 조령에서 검열할것이니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조령동문밖에다 비행기가 착륙할 림시비행장을 닦고 전군은 집합하여 검열받을 준비를 하라. 그러면 공중촬영을 할것이며 무기와 새 위임장도 갖고 갈것이다 하는것이였다.     공을 받고 급도 추게 되어 기뻐난 장우신은 공산당이 어디 비행기가 있겠는가 하면서 편지내용을 딱 믿었다.     동북민주련군 합강군구에서는 비행기 두 대에다 인쇄한 선전삐라와 일본제폭탄 하나 기관총 2정을 각각 나누어 실었다. 한편 이쪽은 또한 5개퇀의 병력을 일제히 긴급출동시켜 6일날밤에 쥐도 새도 모르게 조령의 북쪽산에 들어가 매복했다.     이틑날 오전. 행수비행장에서 비행기 두 대 떴다. 그런데 한 대는 리륙하여 얼마못가 고장나서 그만 어느 한 산곡에 추락됐고 한 대만 조령상공에 날아갔다.     적들은 과연 비행장을 불나게 닦아놓고 몽땅모였다. 한데 그 속에는 백성도 끼여있어서 비행기는 폭탄을 던질 수 없었다. 그래서 선전삐라를 뿌리고는 총멘자들을 향해 저공소사만 한바탕 했다.     비행기가 이러는 사이 매복부대가 신속히 조령을 점령했다.     감쪽같이 속아넘어간 장우신은 120여명의 병력을 잃어버리고 창황히 도망쳐 장광재령의 밀림속으로 숨어버렸다.                 다른 지방에 널려진 잔당들은 5월 1일과 5월 4에 동녕, 수분하에서 폭란을 일으킨 뒤를 이어서  계속하여 5월 8일에는 수양에서, 5월 15일에는 목단강과 계서, 밀산에서 동시에 일으켰다. 허나 그것들은 다가 인민무장에 진압당하고 말았다.     폭란에 실패한 자들은 더는 본지방에 배겨낼 수 없으니 허망나돌면서 략탈을 해먹기 시작했다.     바로 이런 형세속에서 공산당간부 김웅렬의 버림을 받은 장평은 이제는 손을 씻으려 했던 옛 류자생활을 다시시작하려고 맘먹었다. 그는 자기의 정성을 몰라주는 김웅렬을 극도로 미워하고 증오하면서 이를 갈았다. 그는 처음에는 염왕산으로 들어갈가 하다가 그만뒀다. 일약에 장자붙은 우두머리로 되어 수백명의 무장대를 거느렸으니 그래도 한때는 내노라 세력을 부려본거다. 솔직히 말해 권리쥐고 행사하는 그 멋이 좋아 염왕산을 머릿속에 거의 잊다싶이한 그였다. 한데 이제 이 꼴이 되어갖고 찾아가면 모두 어떻게 보겠는가. 가엽이 여기고 불쌍해 하지 않겠는가. 자존심이 꺽일 일이니 그는 홀로 떠돌지언정 동정어린 구원은 받지 않으려했다.     장평은 염왕산의 썩 앞에 있는 망천령(望天嶺)쪽으로 향해가다가 길에서 행색이 보통사람과는 다른 수상한 사나이 셋을 만나게 되었다. 보아하니 떨거지토비 아니면 선견군의 패잔병들 같았다.     장평은 그들에게 말을 먼저 걸어보았다.    《여보게들, 어디루가는가. 한길인데 나두함께 동무하자구.》        셋은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았다. 어떤자는 눈살을 찌푸리고 어떤자는 가로보았으며 어떤자는 문신같이 두눈을 지릅떴다. 문득나타난 그가 혹시 뒤를 밟고있는 정탐이 아니냐 의심하고 놀래면서 경계하는것이였다.     장평이 담배갑을 꺼내느라 호주머니에 손을 찔렀더니 그들 셋은 다 비수를 빼들었다. 장평은 피식웃었다.    《이 사람들이 소자(눈)는 왜 이모양들인가. 토끼간을 먹었나.》      그들 셋중에 전에 토비질을 해먹은 자가 하나있어서 낯색이 좋아졌다.    《보보만?》    《근토만(장씨).이야.》    《십마만?》    《흐린돈후리는 사람이야.(비적)》    《동배로군!》     장평은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고나서 아직도 자기를 의심스러워 하는 이켠의 둘을 곱지 않게 째려보면서 한마디했다.    《날 왜 그렇게 봐. 공연히 신경쓰지마.》     방금 그와 대화가 있은자가 제 친구들을 향해 같은사람이라 말해 무기를 거두게 했다. 그는 성이 랭(冷)이고 이켠 둘은 각각 윤가와 고가였다.     장평은 그들에게 자기는 형제들을 다 잃어버리고 혼자떠도는 장돌뱅이라 자아소개를 했다. 그랬더니 셋은 그렇겠지 하며 믿어주었다. 지금세월에야 그런 사람이 쌔쿠버렸으니까. 알고보니 그자들은 장우신의 수하 랑아빈(郞亞彬)의 부하로서 우심툰(牛心屯)이란 곳에 반거해있다가 약 보름전에 민주련군의 한 기병대의 습격을 받아 붕괴되는 통에 둥지잃은 개미같이 헤매는 판이였다.     랭가가 장평보고 물었다.    《자넨 지금시절에 호적질해먹는 재미어떤가?》    《그전만다르지. 혼자니 족족하고 외롭고.》    《그럼야 혼자떠돌거뭔가. 사문동이나 장우신이나 리화당이나 장차 동산재기를 할거구 그러기 위해서 인마를 모집할건데....》    《나보구 그것들의 졸병질을 하라는건가. 퇀장을 시킨대두 사장을 시킨대두 난 싫어. 그 편으룬 안갈테야.》    《그렇다면 어느 편으루 갈건가?》    《난 아무편에도 안붙어.》     장평은 이렇게 말해놓고 도루권고했다.    《나하구 같이 호적질이나 해먹자구. 그게 나을거야.》    《그게 나을거라?》    《그렇잖구. 황초도 맛들일 탓일걸 몰라.》    《그 맛이야 나도 보았지.》     랭가는 장평의 충고를 받고보니 아예 옛위치로 되돌아가 비적질로 후생을 보낼 생각이 드는 모양이다.     그들은 지금 시하(柴河)로 가는 길이였다. 3개월넘어 중단되였던 목가선이 이젠 차가 통한다니 차를 타고 다니면서 철로연선에서 로략질을 해보자는 궁리들이였다.     장평까지 포함하여 이들 넷은 저녁켠에 시하에 도착했다.     지난 9월 시하의 국민당부 서기였던 주방지(周放之)라는 자가 여기서 유지회유격대라는것을 조직해 목단강군구에 편입되였다가 반변하여 사문동의 품에 안기였는데 민주련군을 상대로 몇 번 싸우고 보니 부하를 거진 다 잃어버렸다. 그는 력량을 다시모아 볼 궁리로 멀리 떠나지 않고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이곳은 지금 적아쌍방이 자주교차되면서 복잡했다.     장평은 선견군에 잡히면 자기는 토비라 대고 인민무장부대에 잡히면 태평진사람이라 댈 예산이였다. 어느 누구의 손에 잡히든 목숨만 보존하면 된다는 그였다. 한데 바로 이곳에서 액운이 자기를 기다릴줄이야 어찌알았으랴!     철길을 한옆에 끼고있는 삼림지구의 역전마을에 황을 걸어놓은 관자집이 눈에 띄였다. 장평은 배고푼지라 먼저 말을 꺼냈다.    《저기 삽수요(관자집)있구나! 구복이나 달래고 보자!》    《편아(돈)있나?》    《있구말구. 몽두춘(술)하자.》     장평이 돈이 있다니 그들은 좋아서 입이 헤벌쭉했다.     관자집에는 손님이 많았다.    《여긴 화방자(거지촌)아니냐. 외합(외지사람)이 많은것 같구나.》     장평의 눈에 손님들이 다가 본지사람같잖았다. 그는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여 나이 어린 고가에게 주면서 먹을것을 사라했다. 그리고나서 그는 빈자리에 앉자 팔굽을 상에 세우고 머리를 숙였다. 나돌때면 되도록 낯을 숨기느라 버릇된것이였다.     좀있으니 먼저 채와 함께 술이 상에 올랐다.     장평이 첫잔을 드는데 그를 건드리는 사람이 있었다.    《너 장평이지? 우린 여기서 만나는구나!》     장평이 머리들고 보니 귀가 한짝뿐인 위무였다.     장평의 동행자였던 다른 셋은 그를 보자 무척 반가와했다.    《아니 이게 위처장님아닙니까!》    《처장님은 어떻게 되어 여기로 오셨습니까?》    《우리는 어떻게 해야 부대를 찾습니까?》     위무는 그따위건 아랑곳하지 않고 장평을 쏘아보면서 이를 사려물었다.     제자리에 돌같이 굳어버린 장평은 그제야 비수와 권총을 빼든자 20여명이 자기를 포위하고있음을 발견했다. 이 한떼의 패주병들은 위무를 따라 헤매다가 여기와서야 숨을 돌리면서 주린 배를 달래던 중이였다.     위무의 치째진 눈이 너무나 기뻐서 푸뜰푸뜰 춤을 첬다.    《원쑤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속담그른데 없구나. 개같이 헤매는 꼴을 보니 너도 신세오그라진 놈이구나. 어디 내 귀를 하나 마저베보지.》    《내가 네놈의 귀를 하나 남겨둔게 죄였어.》    《이자식이 뭐라구? 묶어라!》     욱 달려들었다.     장평은 주먹질 발길질해서 대여섯을 꺾꾸러뜨렸다. 했지만 그는 결국 잡히우고말았다. 위무는 그를 꽁꽁 묶어놓고 염왕산으로 데려다 주면 살려주리라했다. 속셈이 환히 들여다보였다. 철혈대를 없애버리고 자기가 거기를 차지하여 토비로 살아가자는 심보였다.     장평은 그의 얼굴에다 침을 탁 뱉어놓았다.    《염왕산은 류자의 성지야. 네놈이 거기서 물을 먹자구드니(살자니) 어리석구나. 자격이나되는거냐, 이 너절한 패망졸부야!》     심한 모욕을 당한 위무는 이를 븍븍 갈더니 칼로 그의 배를 가르고 창자를 끄집어냈다.         
159    <<관동의 밤>> 제2부(41) 댓글:  조회:3071  추천:0  2015-02-04
                              41               최기덕 등 네사람은 로동자출신의 공안인원중에서 사상이 진보적인 3명을 입당시켜 모두 7명의 당원으로 지부를 내온 후 쏘련홍군의 협조하에 주요성원들이 한간들이며 국민당과 손잡고 있었던 유지회를 해산시키고 태평진인민정부를 수립했다.     이곳에 인민정권이 나오자 각처에서 새로 생겨난 토비들 때문에 떠돌고 몰려다니던 조선동포들이 쓸어들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태평진에는 워낙 조선호수가 5호밖에 안되던것이 어느덧 170여호로 급증했고 일본인 이민단이 떠나버려 쓸쓸하게 남아있던 목청과 화금은 조선사람의 마을로 변해버려다.     한데 이때 태평진에 관아무개란 자가 나타나 국민당접수대원(國民黨接受隊員)이 200명의 철석부대(鐵石部隊)를 거느리고 할빈을 접수했다느니 빈강성(濱江省)의 정권을 접수했다느니 하는 소문을 펏뜨려 민심을 소란케 했다. 오라잖아 여기로도 국민당의 부대가 온다느니 와서는 곧 공산당이 세운 정부를 무너뜨린다는지 어쩐다는지 풍설이 나돌아 주민들은 이놈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가 누구를 믿어야 하는가 불안해 하면서 안착못했다.     사실 그러한 요언들이 무근거한건 아니였다. 국민당은 해, 륙, 공세개의 길로 동북에다 대량의 군대를 파출해 이미 공산당의 무력에 의하여 해방된 산해관(山海關)과 금주(錦州)를 공점했다. 그들은 동북을 당장 저들의 손에 넣어버릴 태세였다.     이에 앞서서 일본의 괴뢰였던 만주국이 붕괴된 동북땅에는 사처에서 국미당의 지방부대들이 마치도 덤무지에 똥버섯나듯이 왁 생겨났다. 그중 가장 어마어마한건 선견군(先遣軍), 정진군(挺進軍), 광복군(光復軍), 충의구국군(忠義救國軍)이였다. 그외에도 무슨 보안대니 무슨 자위대니 하는것들. 민호는 그것들의 두목들을 하나하나 손꼽아가며 세여보았다. 사문동, 리화당, 장우신, 손영구, 정운봉, 마희산, 왕지림, 곡청전.....국민당의 위임장을 받은 그들은 거의가 항일시기에는 한때 이름이 뜨르르하다가 적앞에 귀순해버렸던 변절자가 아니면 한간, 특무 혹은 토비였다.     기염이 대단했다. 그들의 기고만장한 세력에 흡인되고 위협공갈과 유인에 배겨내지 못해 그쪽으로 넘어가는 지방무장들이 기수부지였다. 애초에 자발적으로 건립된 무장조직들이 많이 넘어가다보니 저쪽은 무력이 이켠의 10배도 넘어되였다. 목단강일대만봐도 목단강시와 녕안현성을 내놓고는 주변의 현성과 진이 모두 그자들이 점령해버렸던것이다.        민호는 산속에 있었지만 정찰을 내놓아 밤자고나면 복잡하게 변하고 있는 국세를 면밀히 탐지했다. 그것을 연구하고 제때에 대응책을 찾아야 생존의이가 있다고 생각한것이였다....              어느날 환갑줄에 든 몸집이 실팍한 대머리사나이가 여러 부하의 호위를 받으면서 태평진에 나타났다. 사문동(謝文東)이였다. 사문동은 자기의 부대를 이곳에다  진주시키려고 마음먹고 뚜르와체브를 찾아와 담화해봤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갔다.     그렇다고 먹은 마음을 쉽사리 거둬버릴 그가 아니였다. 군사학상으로 보면 태평진은 장광재령의 림해를 한쪽에 끼고 있어서 대공작전이 유격전으로 넘어갈 시는 주요한 전략적요충지로 될 수 있었다. 하기에 그는 여기에다 눈독을 들인것이다.     한편 지금 태평진에 있는 최기덕은 쏘련홍군이 오라잖아 철거하리라는것을 예견하고 자체의 무력을 키우려고 백방으로 애썼다.     11월이 되자 그는 장평과 조아민을 태평진동쪽 거리가 가까운영락촌에 파견하여 그곳의 지주 도야진(陶野進)의 무장을 수편하도록했다.     도야진은 염왕산류자들 손에는 한번도 털리운적이 없지만 다른 토비들의 성화를 늘 받아왔다. 하기에 토비라면 뼈에 사무치도록 증오하면서 두려워하는 사람이였다. 일본이 만주를 완전강점하여서야 그는 발편잠을 잘 수 있었다. 토비가 적어졌거니와 그 마을에 많은 위만군이 주둔했기 때문이다. 광복이 나자 도야진은 달아나는 그들의 무기를 거두어서 자신의 무장대를 꾸렸거니와 쏘련홍군에 의하여 길이 막히니 되돌아오는 50명을 숨겨두었다가 그들마저 자기손에 넣어버렸다. 그래서 그한테는 지금 100여명의 무장대가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토호의 실력까지 갖추게 된 그는 자기의 무력을 한번 과시하고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감히 그러지를 못했다. 쏘련홍군이 가까이에 있고 자칫잘못했다가는 그들에게 토비로 몰려 진압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잠자코 제 굴이나 지키려했다. 바로 이런때에 태평진에서는 그의 무장을 수편하러 갔던것이다. 도야진은 태평진의 무장은 완전히 공산당의 수중에 들어가버린것을 안다. 그래서 설강을 받고싶지 않았다. 그런데 그를 찾아 온 사람둘중 하나는 쏘련홍군복에 견장을 단 장교니 방법없었다. 말을 듣지 않았다가는 지금까지 숨겨둔 위만군을 전부 내놓으라 하거나 아니면 자기가 그들을 숨겨둔것을 트집잡고 붙잡아서 목을 칠까봐 무서웠던것이다. 하여 울며겨자먹기로 수편에 동의하는 수 밖에 없었던것이다.     이듬해 정월초의 어느 추운날 생각밖에 호덕화가 특사(特使)의 신분으로 도야진의 집을 가만히 찾아왔다.        《이것이 저의 위임장입니다. 보시는바와 같이 저는 성명이 호덕화인데 사문동사령께서 대인을 찾아보고 오라해서 이같이 위험불구찾아온겝니다.》     그의 초면인사가 이러했다.     도야진은 개털모자를 눌러 쓴 그를 마주보며 눈살을 찌프렸다.    《사문동이라?》    《예 바로 그분의 특사올시다.》    《그 지대사령이 내한테다 특사를 보내왔단말이지....》    《지대사령이 아닙니가. 지금은 군직이 대단히 높이올랐지요.》    《군직이 대단히 높이올랐다?》    《그렇습지요. 당국에 보조를 맞추니 벼슬이 관문에 오름이 순풍에 돗단듯합지요. 지금은 동북정진군제십군 상장군장이 되었소이다. 자 어떤가요?》    《허!....》     도야진은 맥빠진 소리를 냈다. 네녀석은 타고난 팔자가 좋은거냐 왜놈한테 귀순해서 천황한테서 금두꺼비를 상으로 받았더니 오늘은 또 급을 하늘높이올리췃단말이지. 도야진은 일찍이 일본군앞에 무릎꿇고 한간이 되어버렸던 사문동의 됨됨이를 알고있거니와 위인을 그닥잖게 보아왔는데 국민당이 그한테 준 어마어마한 군직에 눌리워 기가 시르죽었다.     호덕화는 백내장을 앓고있는 한쪽눈을 찌붓하고 보다가 근중을 떠보느라 입을 다시열었다.    《래의는 다름아닙니다. 한가지 극히 중요한 일을 대인과 상담하려고 합니다. 우리의 중앙군은 지금 계속 북진하고있습니다. 대인께서 보건대는 공산군이 이제 몇참이나 배겨낼것 같습니까. 그들이 지금까지 뻣대고있는것도 실은 쏘련군의 덕이겠지요. 이제 그들이 본국으로 철거하고나면 무슨꼴이 되겠습니까. 이거야 불보듯 빤한게 아닙니까. 금원제국인 미국이 우리를 받들어주고있습니다. 허니까 광명이야 우리쪽에 있는거지요. 안그렇습니까? 헌데두 대인께서는 아직도 공산당을 섬기다니 참....》     도야진은 손을 올려 제 이마빡을 문질렀다. 그늘지고있는 그의 얼굴에는 곤혹스러운 고달픔이 선히 내비치였다.     호덕화는 그를 넌지시 보다가 입가에 웃음을 흘리면서 동강났던 말을 이었다.    《사사령께서 대인의 무장대를 기의시킬 의향을 갖고있습니다. 공산당한테서야 기껏 받은게 중대장급이겠지요. 그게 다 뭠니까 쥐꼬리만한 벼슬이나 되는거지요.... 대인께서 사사령의 뜻만 맞춰준다면야 절대로 섧게는 안해줄겝니다. 나같이 아무렇게나 굴러먹던 놈도 다 부관이 됐을라니.... 잘 생각해보십시오.》     이러면서 그는 도야진을 한바탕 구슬렀다.     내가 원해서 공산당에 붙은건 아니였어 할 수 없으니 그랬던거지, 한데 저쪽에서는 지금 일부러 찾아와서까지 권고하지 않는가, 이건 천재일우야 하고 생각한 도야진은 기의에 동의하고말았다.    《여기로는 태평진서 두사람이 자주온다는데 이렇게 합시다. 첫째는....》     호덕화는 그와 반기를 들 날자를 정하고나서 물었다.    《듣자니 둘중 하나는 공산당원이구 하나는 토비출신이라던데 과연 그런가요?》    《그렇네. 조사를 면밀히 했구만. 조아민이라구 허는 사람이 군복입고 여기루 오는데 만만찮아. 그리구 한녀석은 태평진서 공안국장으로 있는 염왕산 토비녀석인데 아주 감때사납네.》    《그깟거야 깜장콩알 하나면 알아볼 수 있는걸요. 문제는 철혈대라는겁니다. 나를 붇잡자고 눈에 쌍불을 켠다는군요.》    《염왕산의 철혈대가? 대체 무슨 혐원이 있길래?》    《그런 사정이 있습니다. 저....》     호덕화는 입을 계속놀리려다가 그만뒀다. 자기가 변절한이 되었던 이야기가 자랑거리는 아니였기 때문이다. 그는 머리를 숙이고있다가 도야진보고 태평진에서 지금 실권을 쥐고있는 두 조선사람을 없애버릴 수는 없겠는가했다.     도야진은 머리를 가로저어 자기는 방법이 없음을 표시했다.     호덕화는 코소리를 킁킁 내다가 입을 다시열었다.    《대인께서는 꼬리방즈를 어떻게 봅니까? 얼구이즈들을요. 가만놔둘셈인가요. 듣자니 왜놈들은 대인의 땅을 억탈해서 저들의 이민단부락을 앉혔다면요. 그런걸 지금은 또 조선놈들이 차지했구. 그게 그래 얼구이즈가 아니고 뭡니까. 대인은 그래 제 땅을 그렇게 그냥 빼앗기고 말건가요?》    《찾겠어, 찾겠어! 목청도 화금도..... 그건 다 내 땅이야.》    《자기 땅이면야 찾아와얍지요. 그 좋은 흑토를 그저 그렇게 잃고말다니 원. 대인께선 분을 풀어야 합니다.》    《후!....》     도야진은 한숨을 길게 그으면서 어금이를 깨물었다. 북만의 지주는 대체로 령황지주(領荒地主), 점황지주(占荒地主), 권세렴토지주(權勢廉土地主) 이 세 분류였는데 그는 친척의 권세를 믿고 나라땅을 차지했던거니 점황지주에 속할것이다. 한즉 불법으로 차지한 땅을 도루내놓는게 마땅하지만 게걸스러운 하이네가 배터지는 줄 모르고 걷어먹듯 욕심사나운 그는 어떻게 하나 그것을 영원히 제것으로 만들고싶은 마음이 불붙듯 했다.     호덕화는 계속 부채질했다.    《사사령도 땅을 앗기우고나서 왜놈을 더 미워하게 된게 아닙니까. 십여년전 토룡산폭동이 실은 그래서 일어난게지요. 그분도 조선사람을 얼구이즈 라면서 곱게 안봅니다. 그러한즉 대인께서 제 땅을 도루찾겠거든 그하고 보조를 맞춤이 지당하다 그겁니다.》     이네들이 소곤소곤 나눈 밀담이 그만 이 집의 오랜 더부살이귀에 들어갔다. 도야진에게 멸시와 학대를 받으며 살아온 그는 이 일을 일러바침으로써 보복하려했다. 마침 이때 주용전과 장평이 도야진무장대의 장비문제 때문에 이 마을에 왔던것이다. 그는 쏘련홍군장교복을 입은 사람을 찾아갔다. 그런데 주용전을 만나지 못해 이 일을 장평한테만 고발했다. 그러잖아 정체불명한 사람이 도지주집에 들어가는것을 보고 수상쩍어했던 장평은 그자들의 음모를 간파하고 그 즉시로 말을 타고 태평진으로 돌아갔다.    《허참, 이 일을 어쩐다?》     최기덕은 그의 보고를 받고 몹시 불안해났다. 그는 도야진의 무장대를 당장 해산시켜버릴 궁리를 하고 이 일을 뚜르와체브와 말하고 도와달라했다. 그랬더니 뚜르와체브는 자기는 그런일까지 간섭할 권한이 없다면서 머리를 저었다.     어떻게 해야 도야진의 반란을 미연에 분쇄해버릴 수 있을가? 그는 태평진의 공안대를 출동시켜보려다가 그 생각을 걷어치우고말았다. 도야진은 토성과 포대에 의하여 반격을 할 것이니 붙으면 이쪽은 목숨만 잃을게 빤했다. 마음이 초조불안해난 최기덕은 마침내 민호가 자기보고 일이 있으면 알리라 그러면 자기가 도와주리라던 말이 상기되였다. 도야진이 사문동과 결탁하여 제 동포를 살해하려한다는것을 알면 그는 꼭 가만있지 않을것이다.     최기덕은 쪽지를 써서 장평에게 주어 즉시 염왕산에 보냈다.     이 몇달사이 민호는 호덕화를 찾는 한 편 략탈을 일삼는 작은 비적무리를 만나기만 하면 에누리없이 족쳤다. 그래서 항간에서는 염왕산의 철혈대를 토비헌병대라 부르기까지 했다. 한데 아직도 호덕화를 붇잡지 못했다. 한달전에 화남근처에서 호덕화를 발견했는데 철혈대는 그자의 무리를 숙청하면서도 맹랑하게도 그자는 놓쳐버렸던것이다.     목숨을 겨우 살린 호덕화는 사문동을 찾아갔다.     사문동은 그를 받아주었다. 병력을 3,000명가량 보유하면서 대포와 박격포, 경기관총과 무전전신국까지 갖추고있는 사문동의 그 부대는 북만에서 국민당계렬의 이름있는 40여개 선견군가운데서는  첫손을 꼽고 있었다. 그런 무리를 휘동하는 사문동이 일개 무명인간이요 15명의 졸개부랑배를 다 잃어버리고 알거지로 돼버린 그자를 쫓아버리지 않고 흔연히 받아준건 애잡짤한 관용을 베푼것이다. 사문동은 그가 옛부하니 정도 정이려니와 담대하고 약삭바르니 곁에 두고 써먹자고 했던거다....          다급한 말발꿉소리를 울리면서 장평이 염왕산에 왔다.     민호는 느닷없이 나타난 장평의 그 땀벌창이 된 얼굴빛이 황황함을 보고 적이 놀랬다.           《아니, 네가!....갑자기 웬 일이니?》     말에서 내린 장평은 숨을 가쁘게 내쉬면서 알려주었다.    《오인형님, 큰일났습니다. 우린 지난달에 영락촌 도지주무장을 수편했는데 그자가 글쎄 갑작스레 반변했습니다.》     민호는 그 소리를 듣고 대수로와하지 않았다.    《난 또.... 그게 뭐 큰일이냐, 밤자고나면 반변자가 무더기로 생겨나는 판인데.》    《그래서 그러는게 아닙니다, 형님! 이걸 보시오!》     장평은 갖고 온 글을 내놓았다.    《뭐라, 그자가 목청을 불바다로 만들자한다구!?》     민호는 최기덕의 글을 보고서야 정신을 펄쩍 차렸다.     그놈이 반변하면서 그 마을에 사는 우리 동포들을 살해할 잡도리구나! 민호는 언젠가 최기덕이한테서 목청의 토지문제 때문에 그 마을에 사는 조선사람과 도야진사이에 한번 마찰이 있었다고 알려주던 일이 상기되였다. 땅을 못가질바에는 보복이라도 하자는게 아닌가. 민호는 처참한 살육의 장면이 눈앞에 그려지자 동족애가 다시금 온 몸을 사르었다.     꾸물거릴 때가 아니였다. 일각의 유예없이 달려가 그 마을을 지켜줘야했다. 그는 즉각 령을 내렸다.    《마인!》(집합)     녀인 둘까지 나섰다. 민호는 소춘매 하나를 집지킴으로 산채에 남게 하고는 향란이까지 출전시켰다. 그는 손을 머리우로 높이 올려 하늘을 때리며 부르짖었다.    《구도관자!》(출격)     철혈대는 목청을 향해 쾌속출발했다.     대오가 목청마을에 거의이르렀을 때 척후를 맡은 류자가 말을 달려와 약 100여명되는 도야진의 무장대가 지금 목청을 향해 오고있는데 약 반시간이면 당도하게 될거라고 보고했다. 모사는 재인이요 성사는 재천(謀事ㅡ在人ㅡ成事ㅡ在天ㅡ)이라는데 이렇게 공교로울변이라구야!     내가 꾸물거리지 않고 달려오기를 잘했지 좀만 늦었더면 어쩔번했는가! 명지한 결단을 내림으로 하여 안도의 숨이 나온 민호는 그자들을 어떻게 대치할 것이가를 생각했다. 저쪽은 인원이 세배도 넘는데 어떻게 한다? 병법에 이르기를 용소자무애(用少者務隘)라했거늘 나는 위험한 곳을 골라 매복해있다가.... 마을에 들어가 지킬 생각을 해봤지만 그런다면 마을사람이 다칠건 물론 그것은 근근히 방어가 될 뿐이지 적을 소멸하지는 못할것이며 물러갔던 적은 아무 때건 다시달려들것이다. 민호는 다른쪽으로 머리를 굴려보았다. 그자들은 이 추운 겨울에 두다리로 적어도 30리길을 걸어왔으니 지쳤을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타고 온 말은 아직도 뛸수 있지 않는가, 우리가 주동이 되어 그자들을 도루진공한다면?.... 민호는 잠간 머리악을 쓴 끝에 그자들을 아예 밖에서 요정내기로 맘먹고 목청마을에 들리지 않고 지나서 계속전진했다.     철혈대는 목청마을에서 서남쪽으로 약 5리가량되는 산굽이에서 반란하는 도야진무장대를 만났다. 이때는 아침때가 이미지나서 겨울날의 차고 밝은 해가 중천으로 줄달음쳐 오르고 있었는데 도야진의 그 백여명은 민호가 예견바와 같이 먼길에 몹시지친데다가 강추위에 몸까지 얼어서 마치 게발을 놀리듯이 굼뜨게 걸어오고있었다. 철혈대는 합성을 지르면서 즉쳐나갔다.     전혀 생각밖이였다. 도야진의 무장대는 흡사 땅속에서 솟아난것만 같은 이 한떼의 용맹한 기마대의 돌연적인 습격을 당하자 떨어댔다. 너무도 당황해서 미처대항도 못하고 죽는 놈은 죽고 도망치는 놈은 도망쳐 대오는 눈깜짝새에 산산히 흩어지고 말았다. 도야진은 흩어진 대오를 수습할 재간이 없었다. 그의 무장대는 이렇게 붕괴되고말았다.     환갑이 다돼갖고 출마했던 도야진은 장평이 쏜 총에 맞아 즉사했고 도망치자고 산으로 바라오르던 호덕화는 다리에 관통상을 입어 말똥같이 데굴데굴 구러 아래로 떨어져 끝내 붙잡히고말았다.     철혈대역시 대가를 치렀다. 류자 5명과 말 7필을 잃은것이다. 하지만 저쪽에 비하면 그것은 경미한 손실이였다.     이것은 눈깜짝새에 종말을 본 통쾌한 섬멸전이였다!     철혈대는 전장을 수습하여 생긴 총 72자루를 갖고 목청으로 향했다. 민호는 그 마을에 들려 로획한 무기를 주어 앞으로는 그들이 자체로 자위를 하게끔 하는 한편 아침 한끼를 얻어 먹고는 파리나 빌려서 죽은 류자들을 싣고 돌아갈 생각이였다. 그런데?....     하마터면 앉은 벼락을 맞을번한 목청마을! 무자비한 복수에 들어 몰살을 당할번한 목청마을의 조선사람들! 그들은 그야말로 목첩에 다달은 재난을 아슬아슬하게 넘긴것이다. 하건만도 그들은 그것을 전혀모르고 태평가를 불렀다.                     화란춘성 만화방창  때는 좋다 벗님네야                         산천경개 구경가세  천리강산을 구경가세...        어느 량반의 목구멍에서 나오는지 청이 좋았다.     뻘빠진 사람아 천리강산 구경하며 노는게 그리도 쉬운줄 아느냐, 민호는 한심스러워 머리를 가로젖고는 대오를 이끌고 마을로 들어갔다. 머나먼 길에 격전까지 치렀으니 모두 지쳐 행색마저 거칠어보였으리라.    《토비왔다! 토비왔다!》     어느 약삭바른 녀석이 달아다니면서 소래기를 질러대서 마을 사람들은 모두 문을 꽁꽁 닫고 들어앉아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이런 제길할!》     민호는 치밀어 오르는 분를 겨우참았다. 그는 무척 애를 써서야 이 마을의 책임자인 툰장을 찾아냈다. 그는 그한테 방금전에 싸움이 있은것을 알려주고는 철혈대가 여기에 들린 리유를 말했다.     툰장은 나이많은 사람이였는데 그의 말을 곧이듣지 않았다.    《도지주가 우릴 해칠려구했다구? 땅때문에 다투기는 했소만 그도 우리편이라는데 아무렴 그랬을가. 모를소리요.》    《반변해도 제편입니까? 왜 그렇게 얼빠진 소리는 합니까?》    《내가 얼빠진 소리를 한다구? 흥. 자네가 오인이라구 허는 그 조선사람이겠지? 듣자니 당신은 항일도 한 사람이라는데 버덕으룬 기여히 나올 맘이 없는모양이지. 토비두령이 돼서 지금도 그냥 그 노릇이나 한다며?》    《무슨노릇말입니까. 우리 철혈대는 비적하고 맞다들뿐인데.》    《거야 제사람끼리 해내는게지유. 안그렇수?》     어쩌면 이럴수가 있는가, 어쩌면? 지난일은 지난일이고 지금은 지금이 아닌가. 어쩌면 이럴수가 있는가, 어쩌면? 개도 량심이 있는데.... 민호는 이 마을 사람들이 옛장부만 뒤지면서 전혀 몰라봐주니 야속하고 괘씸하기 그지없었다.    《저것도 밥먹고 사는 인간인가, 똥이나 처먹지!》     민호는 참을래야 참을 수 없어서 욕설을 퍼부었다.     그하고는 더 말하고싶지 않았다. 설복할 맥도 기분도 없었다. 그는 자기의 대오를 이끌고 태평진으로 들어갔다.    《나는 내 동포가 저꼴인걸 몰랐다. 말짱 맹탕이고 똥머지린줄을 몰랐단말이다. 분해서 원!》     어디다 골풀이할데라곤 없었다. 민호는 친구를 만나자 그앞에다 불만을 쏟았다. 생각하면 분해서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그의 공술을 듣고 보니 최기덕이도 분했다. 그렇다고 같이 풀풀거리며 날뛸수는 없었다. 주견도 식견도 없는 우매한 사람은 남의 감언에 잘넘어가는 거다. 보호를 제일받고 덕을 제일입는 인간들이 중국사람도 밉게보지 않는 철혈대를 편견으로 대하면서 백안시 할 때는 어떤자의 충둥질에 넘어가 놀아대고 있는게 분명했다.     그 자리에 김웅렬도 있건만 아무말없다. 민호가 그같이 풀풀거리며 왜장을 치건만 그는 못듣는체 못보는체 담배만 태웠다. 최기덕은 목석이 돼버린듯 무감각하게 태도표시가 없는 그를 다시봤다. 가만있자, 저 사람이 늦장가를 가느라고 목청에 자주다니더만 짓을 피운거나 아니여?.... 최기덕은 그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태평진에서 파리를 하나 얻었다. 민호는 죽은 류자를 실으라했다. 그들은 상한 다리를 부등켜 안고 우는 호덕화도 짐짝같이 올려놓아 함께 싣고 염왕산으로 돌아왔다.      향란은 비수를 찾아 손에 들고 호덕화의 껍지를 바르려했다.     류자의 보복이 잔인함을 알고인는 호덕화는 눈물코물 짜가면서 자기는 용서받지 못할 죄를 졌으니 죽어 마땅한데 제발 총을 갈겨 죽여달라고 빌었다.    《뼈를 갈아치워도 시원찮을 피자놈, 아가리를 닥쳐라! 네놈한테 자비를 베풀어주면 우리는 천벌을 받을거다.》     향란이는 기여히 그자를 깝지발쿠어 죽이려했다.     민호는 아이를 기르는 손에 피를 묻혀서야 되느냐 비린내를 발라서야 되느냐고 설복해서 다른 방법으로 사형했다. 그들은 호덕화를 발가벗기였다. 그리고는 뾰족하게 깎은 나무우에올려놓아 나무가 항문을 꿰고 몸속으로 들어가는 하늘구경을 시켰다. 그러면서 찬물까지 끼얹어 얼음옷까지 입혔다. 이러는것을 괘갑(掛甲)이라 한다. 죄악이 루루한 호독화는 이렇게 끝장나고말았다.     염왕산철혈대에 이제는 인원이 모두 25명. 그나마 둘은 녀성이였다. 소춘매는 비파타고 노래나 불러야지 말타고 싸울 녀성이 아니였다. 향란이도 그렇다. 이제는 나이가 46살이였다. 아이가 있으니 그나 정성스레 키우는 편이 더 나을것이였다. 왕견은 숨가쁜 이번 출전을 겪고나서 마음뿐이지 몸이 전같이 령활하지 못하다면서 자기도 이제는 들어앉아 뒷바라지나 착실히 하리라했다. 이래 빼고 저래 빼고나면 마상에 올라 출전할만한 사람은 20여명밖에 안되였다. 인원이 적은것이 문제로 되지 않았다. 민호는 대오를 보강하고싶지 않았다. 그럴 필요도 있는것 같지 않았다.     철천지 원쑤를 갚았으니 싸움은 이로서 끝내자. 광분적인 횡행은 끝난것이다. 인생의 새장을 열어야 한다. 다른 어디로든 갈데가 없었다. 있어도 가고싶지 않으니 죽는 그날까지 같이 밭농사나 지으면서 같이 살아다가 이 세상을 떠나가자. 많던적던 염왕산류자만으로 철혈대를 잘 꾸려 이를 차츰 자기생존을 위하는 생산집단으로 만들자는것이 공동의 요구며 희망이였다.         향란이가 민호를 향해 입을 열고 물어보았다.    《당신은 전날 요행만나 친구하고 왜 그렇게 밸썼어요?》     철혈대가 태평진에 들렸을 때 민호가 최기덕앞에서 조선말로 량심없는 제 동포를 욕한것을 놓고 하는 말이였다.     민호는 솔직히 알려주는 수밖에 없었다.    《목청에 사는 내 동포들을 욕했소.》    《건 왜서요?》    《그들이 생각밖에 피자보다 못하게 량심없이 놀아서.》    《아니 그날 그 마을에 액사가 나져서 외인의 입촌을 거려했다며요. 그렇게 하는게 조선민족의 풍속이라잖았나요.》    《내가 거짓말을 했지. 그러지를 않구 어떻게 하겠소. 사실은 그 마을 사람들이 우릴 토비라고 하면서 모두 숨어버린게구....내가 말해줫지만 툰장이라는 사람도 전혀 믿어주질 않았던거요. 그래서 우린 그날 목숨을 구해주고서도 받을 대접을 못받은거요.》    《어마나, 그런일이였던가요!》    《생각해보오, 형제들 앞에서 뭐라고 하겠소.》    《글세요. 아무렴......》     향란이는 이제야 의문을 풀면서 유감스럽던 일을 토로했다.    《굶어 간 사람을 밥 한숱갈 안주니 정말 기분상하데요. 우리 아니면 저깟것들 목숨이나 살렸을가. 알고보니 과연 피자보다 못하네요. 세상에 그같이 량심짝없는 인간들이 또 있을가요.》    《그러게 말이지. 생각만 해도 복장터지오. 우리 백의민족이 왜놈의 노예가 되더니 어찌하여 그 지경됐는지 수치스럽소. 후ㅡ》     민호의 아픈 속이 긴 탄식으로 뿜어 나갔다.     향란이는 낯색이 심각해지면서 입을 옥물었다.     민호는 정신차렸다. 성정이 바르고 굳은 그녀가 감정이 너무상해 뒤틀려지기전에 잡아놔야했다. 민호가 고향에 돌아가지 않은건 염왕산류자들의 힘을 빌어 시비가 모호해진 한족들의 눈에는 얼구이즈(二鬼子)로 보여서 란시에 험악한 재난받게 될 우려가 많은 동포들을 좀이라도 구해보자는 목적에서였는데 류자들이 피를 흘리면서까지 구원해주었음에도 그걸 모르니 무슨꼴인가. 류자들이 이 일을 안다면 분노한 나머지 선의도 모르는 자는 씨알머리를 없애야 한다면서 도로막짓을 할것이다. 이건 불보듯 빤한 일이다.     하여 민호는  향란이와 사정했다.       《나는 향란이를 믿고 숨기려던 일을 털어놓은건데 형제들까지 이 일을 알면 어떻게 되겠소. 그러니....》    《알았어요. 시름놔요. 나는 눈감을때 까지 입을 다물거얘요.》    《그래준다면 정말 고마운 일이요.》     둘은 그 어떤 경우를 닥치든 이일을 다른 류자들앞에서는 발설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향란이는 감정을 눅잧혔는지 만면에 웃음까지 피여 올리면서 민호와 물었다.    《그날 태평진서 말이얘요. 조선분 하나 더있더구만요. 단신은 그일 면목아나요?》    《깜장개털모자쓴 사람말이지.》    《그래요 얼굴이 둥글넙작한 사람.》    《나도 초면이요. 김웅렬이라던가.》    《그래요. 맞아요. 나하고도 그렇다하더군요.》    《그 사람 자아소개를 하더란말이지....》     민호는 입가에 미소를 피여올렸다. 그를 보고서는 별 말이 없던 사람이 향란이 앞에서는 자아소개를 해가면서 접근하더라니 이상야릇했다.    《그 사람하고 얘기를 나눠봤소?》    《물론해봤죠. 그분은 철혈대에 대해서 무척 흥미를 갖던데요. 심사가 어느쪽에 마음을 두나 알아보자는것 같던데요.》    《그래 뭐라구했소?》    《내가 말했죠. 염왕산은 어느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으리라고.》    《거 대답잘했구만. 그리구는 또 뭘?》    《그 생활이 재미있는가고 묻더구만요.》    《그 생활이라니?....》    《아마 우릴 략탈해먹고 사는걸로 아는것 같데요.》    《그래서?》    《내가 말했어요. 이젠 우리도 밭농사지어먹고 산다구요.》    《그러니?》    《그래야지 그런다면야 개조된는게군 하데요. 더럽스리 그게 무슨 말인가요. 우리가 뭐 죄인인가 개조니 뭐니.》     향란은 그의 입에서 그따위 말이 다시나오면 입을 조겨 병신으로 만들었으리라면서 제 비위를 무지하게 건드리면 하나님도 용서치 않으리라했다.       어느날 장평이 염왕산으로 왔다. 장우신이 태평진을 치려고 계획하는데 산에 있지 말고 와달라는 최기덕의 편지를 갖고 온거다.     김웅렬의 물음에 향란가 답변했듯이 염왕산의 처혈대는 여지껏 그 어느 편에도 속해있지 않았다. 비록 인원은 보잘나위없지만 실력만은 알찬 이 류자무장을 량켠에서 다 끌려했다.     민호는 장우신에 대해 잘 모른다. 그는 별호가 장헤이즈(張黑子)였는데 국민당 제15집단군선견군 중장총지휘로서 동북에서는 사문동다음으로 이름을 내는 지방무장두목이다. 그는 전에 장작림부 모퇀부관으로 있다가 일본군에 투항하여 한간이 됐던 인물이다. 8.15광복이 나자 그는 국민당 제15집단군참모장 곽장생(郭長生)의 눈에 들어 임명장을 받고느 쌍십절날 제 친신을 데리고 북경에서 동북으로 들어와 의란, 벌리, 림구, 목단강일대를 돌아다니면서 관직을 주고 매수하고 끌어당기며 기편하는 등 각가지 수단으로 지주, 한간, 특무, 위만경찰, 위만총공서인원, 구군관 그리고 위만군잔여와 항련때에 견정치 않았던 자들을 긁어 모으고 토비무장을 수편하여 20개 퇀을 편성, 8개의 처(處)가 있는 선견군을 만들어서 지난해, 즉 1945년 11월초에 조령(刁翎)에서 건군의식을 올리고는 지금 한창 기세를 올리는 판이다.     장우신은 삼강인민자치군의 손영구부대와 장덕지부대 그리고 목단강 제19퇀의 반란을 책동했는바 그것까지 다 합치면 병력이 4만명넘는다고 소문을 냈다.      내 동포를 구하자, 꺼려하고 미워해도 내 동포가 아니냐. 자기들이 구원받고있음을 제 눈으로 똑똑히 보고 느끼게 될 그때면 오해도 편견도 사라지게 될게 아니냐. 민호는 이번에도 꾸물거리지 않고 자기의 철혈대무장을 거느리고 염왕산을 나와 태평진으로 갔다. 인원은 그까지 포함해서 20명이였다.     최기덕은 민호를 만나자 태평진의 보위는 쏘련홍군과 공안대가 책임지니 그리알라 이미 다른형제부대와도 련락이 돼있으니 철혈대는 태평진밖에 있는 화금과 목청 두 조선족마을의 자위무장을 훈련시켜달라고 했다.    《그렇게 하지.》    《지난번에 목청사람들이 그만....》    《말말어 그런걸 속에 넣고있는 내가 아니야.》     민호의 태도가 이같이 명랑하니 최기덕은 기뻐했다.     화금과 목청 두 마을의 동포들은 자체의 자위대를 조직하여 마을을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자기 손에 쥐고있는 무기가 바로 철혈대가 반란자의 손에서 빼앗은것임을 알고있거니와 전에 일부사람들의 선전을 듣고 편견이 생겨 그들을 토비라면서 피하고 랭대했던 일을 미안해하면서 지금은 되도록 잘대해주려고 노력했다.     철혈대는 그 두 마을에 절반씩 나뉘여 가서 그들에게 무기조법을 가르치면서 함께 마을을 지켰다.     민호가 목청에 간지 사날만에 김웅렬이 그 마을로 왔다.    《오, 이거 면목있는 분이구만! 듣자니 철혈대는 철전지원쑤를 갚았다더군. 이젠 시름 싹 놧겠구만.》    민호는 이 사람이 무슨말을 이렇게 분별없이 하느냐고 보다가 퉁명스레 대꾸했다.    《시름 싹 놓으면 여기루 왔겠습니까.》    《오, 그렇지 그래! 하하하....》     김웅렬은 멋쩍었던지 웃으면서 어디론가 가버렸다.     민호는 그의 뒤모습을 힐끗보고는 피식웃었다. 저 량반이 여기과부를 얻어 산다는 말을 내가 들은것 같은데 또 사냥을 왔는가.     장우신은 태평진을 공점하러 오지 않았다. 올 수 없었다. 쏘련홍군이 무서워 소문만내고 덤비지 못하는것이다.       어느날 민호는 뜻하지 않던 손님을 하나 맞이하게 되었다. 9.18직후 언젠가 민호가 한패의 염왕산류자를 데리고 반일을 나섰다가 곤경에 빠진 토비항일패를 구해준적이 있는데 바로 그 무리의 두목이였던 위무(魏武)였던것이다. 구원해준 은혜를 잊지 않고 아무 때든 갚아주리라더니 오늘 그를 찾아온 것이다.     민호는 그가 십중팔구는 자기를 수편하러 왔을거라 속으로 짚으면서 스스럼없이 대댔다.     《중국에 아마 말이 있지. 그대는 그래 무슨일에 날 찾아왔는가? 》    《이게 내 신분증이요.》     위무가 속옷어디선가 누런색갈나는 접은 종이를 꺼내놓았다.     민호가 받아 보니 그것은 그를 국민당 제15군집단군선견군 부관처 처장으로 임명한 위임장이였다.     민호는 보고나서 돌려주며 말했다.    《항일을 하고 거기에 붙었는가?》     귀를 당기니 입이 움직이듯 조롱을 당해서 얼굴이 뜨거워 난 위무는 자기의 처사가 틀리지 않다고 변명했다.    《난 지금 장우신총지휘를 모시고있는데 뭐가 잘못인가?》    《장우신이라했지. 그사람 전에 뭘하던 사람인가?》    《민국때는 장작림의 부관으로 있었구....》    《제정때는?....》    《제정때는 저.....》    《이 오인이 한간질해먹은 놈은 곱게보지 않아.》    《허지만 지금은 잘씌우는데?.... 군자도 종시속이라 시대를 따라야지. 안그렇소?》    《시대를 따르면.... 나도 그래 그런사람곁에 붙으라는건가?》     민호는 그의 구리빛나는 얼굴을 다시 눈주어 보았다. 의연히 건강한 편이다. 일본군의 추격에 들어 똥줄빠지게 도망치던 때와는 달랐다. 일종의 만족감과 득의연한 빛이 보였다.     대방이 자기의 성의를 몰라주는지라 위무는 안타까운지 조급스레 진지한 충고를 담아 말한다.    《저 오인은 먼저 내 얘기를 들어보오. 소식이 벌써 신문에 났으리라 보는데 저.... 우린 요즘 고성에서 림구의 반란무장을 정돈 한후 의란의 이도하자와 삼도강일대에 가서 건군을 계속했구 자리도 잡아놨소. 그리구.... 방금 나하고 참모처장은 림구에 가 거기의 쏘련홍군사령관 벨린쓰끼와 담판을 했지. 공산당한테 쫓겨났던 국민당부를 다시금 림구에 들여놓기루서....정말이요. 합의를 봤단말이요. 그러한즉 이제 태평진 뚜르와체브도 그모양대로 할거란말이요. 생각해보오. 그때가서는 공산당이 무슨꼴이 되겠는가. 듣자니 오인은 지금 그쪽으로 많이 기울어진다더구만. 그래서야 되겠소. 그래서 오늘 내가....》    《뭐라, 그래서 되겠는가구?》     민호가 그의 말을 중등자르면서 낯색을 굳히였다.    《시끄럽게 노는군. 내가 아무데로 기울어지건 그게 너하고 무슨 상관이냐. 그래 대체 뭘하자구 온거냐? 그거나 어서말해라.》      《전에 날 구원해줬는데 이젠 내가 은공을 갚아야지.》    《은공갚겠다구했으면 갚아야지. 그래 어떻게 하자는거냐?》    《수편할려구.》    《뭐라? 그게 은공갚는거냐?》     민호는 자기는 그걸 받아줄 생각이 꼬물만큼도 없으니 저리썩 물러가라해서 그를 쫓아버렸다.    
158    <<관동의 밤>> 제2부(40) 댓글:  조회:2396  추천:1  2015-02-04
                            40                 심록색칠을 먹인 쏘련홍군 찌프차 한 대가 험한 농로에 들어섰다. 운전석옆에 상사견장을 어깨에 단 젊은이가 앉고 그의 뒷좌석에는 중위견장을 단 그보다 나이를 더 먹은 사람이 앉았으며 그곁에 이미 불혹의 나이를 넘긴 사람이 앉아있다. 그는 량어깨에 대위견장을 달았다. 쏘련홍군장교모양의 차림새를 한 그 반양머리가 바로 최기덕이다. 그리고 그의 옆의 장교는 조아민, 그 앞의 상사는 주용전이다. 이 둘은 다 한족이였다.     운전수가 그렇게 조심스레 모느라하건만 차는 당장 곤두박질이라도 할 양으로 심하게 들추었다. 아무때나 뿌려나갈 수 있는 자기 몸을 건사하기 위해 그들은 무엇이든 단단히 잡아야했다.     찌프는 좋이 반시간을 싱갱이질해서야 마침내 수레와 소들이 다니면서 짓이개놓은, 진흙이 돌같이 굳어버린 험로를 벗어나 평탄한 신작로에 들어섰다.    《정말 개코같은 길이구나. 질러가는 길이 먼길이라더니 아마 이런걸 놓고 하는 말이겠지.》        최기덕은 안도의 숨을 내쉬고나서는 두덜거리면서 잔뜩 긴장해서 돌같이 굳어졌던 신경과 근육을 느슨히 풀었다.     쏘련에서 건너온 그는 상급의 지시에 좇아 지금 태평진으로 가고있다. 옹근 3년만에 다시밟게 되는 땅이다.     차체의 고르로운 률동속에서 지난때의 일들이 그의 눈앞에서 주마등같이 다시지나간다.     주가툰에서 왕견패의 류자를 수편하여 녕안쪽으로 갔다가 거기서 적의 토벌대를 만나 조우전을 하게 되었을 때 그는 경위병 둘과 함께 겨우 사경을 벗어났거니와 여러날을 고생하여서야 마침내 제 부대를 찾을수 있었던것이다. 그러나 본부대역시 얼마못가서 거의 붕괴의 지경에 이르었고 마침내는 유생력량이라도 보존해야 한다는 상부의 지시에 따라 우쑤리강을 건너 쏘련으로 간것이다.     쏘련으로 건너간 여러 항일부대는 쏘련홍군 제88특별려를 건립하고 남쪽의 쌍성자(双城子)와 북쪽 하바롭쓰크 근처의 수림지대의 농촌에 갈라져 있으면서 정비훈련을 했다.     최기덕은 북쪽영에 있다가 대일선전포고가 있은지 5일만에 300명의 간부대오에 끼이여 리조린(李兆麟)장군을 따라 수분하쪽으로부터 목단강에 도착한 후 거기서 며칠간 지내다가 배치되여 가는 길이다.     태평진에는 이미 쏘련홍군이 진주하였다. 중동철로를 따라서 서진하고 있던 원동제1방면군 중의 홍기제1집단군 어느 한 소부대가 태평진에 입주하면서 그곳에다 림시로 위수사령부를 세운거다.     최기덕이 이제 태평진에 가서 해야할 일의 첫째는 쏘련홍군을 협조하여 지방질서를 유지하고, 둘째는 지하당을 찾아 관계를 건립하는 것이며, 셋째는 정권을 건립하고 무장을 조직하는 것이며, 넷째는 군중조직인 민주대동맹(民主大同盟)을 건립하는 것이다.     최기덕은 생각했다. 우선 협조해 줄 사람을 찾아야 하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 지하당원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가? 우리가 온걸 알면 스스로 찾아오련만....     찌프는 태평진 남문가에 있는, 이전 일본수비대가 있었던 군영뜨락에 들어가 멎었다. 거기 불타지 않은 집에 지금 쏘련홍군이 주둔한것이다.     뚜르와체브사령원이 창문으로 내다보고 나와 그들을 맞이했다.    《나는 저녘켠쯤에야 당도할 줄 알았지요. 환영합니다!》     키가 헌칠한 노랑금발머리의 젊은 대위는 무척 반가와 하면서 악수를 청했다. 서로 초면에 이렇게 만났다. 뚜르와체브사령원은 듣던바와 같이 활달하고 기지있어 보이는 씩씩한 젊은이였다.    《한발늦었습니다만 우선 려독이나 풀고 사업을 연구합시다.》     그가 하는 말이였다.     이런 제길할 거, 그렇게 빨리서두느라했는데도 한발늦었다니 웬 말인가? 최기덕은 기분이 좋지 않아서 물었다.    《한발늦었다니 건 무슨소립니까?》     뚜르와체브사령원은 고뿌에다 물을 따라주면서 마치 간호원이 아직 병이 채 완쾌되지 않으면서도 출원을 급해하는 환자를 달래듯이 그를 자리에 눌러 앉혔다.    《먼저 물아나 마십시오. 조급해한다고 될일인것 같잖습니다.》    《대체 어떻게 된겁니까, 우린 급히 오느라 땀을 무척뺐는데.》    《말을 하랍니까. 이런겁니다. 한주일전에 벌써 국민당이 나타나서 제가 할 일을 먼저 다 해놓았다 그겁니다.》     뚜르와체브는 초조불안한 심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이 조선족군관의 재촉을 못이겨 말문을 열어놓고는 안색을 살피더니 좀 더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것이였다.    《그들이 벌써 저들의 당부를 건립해놓은겁니다. 우리가 진주하기 전에 생겨난 치안대도 국민당의 공안국으로 패쪽을 내걸었구요. 유지회가 지금 우리의 생활을 돌봐주고있는데 그들도 역시 국민당의 경향을 띄고있습니다. 정황이 이러하니....》    《알만합니다. 우리는 확실히 한발 늦었습니다.》     최기덕은 숨을 길게 내그었다. 예견못한건 아니다. 시간을 따져보면 월경하여 중간에 들리지 않고 곧장온다해도 늦을것이였다.          우선 이놈의 태평진이 그동안 면모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그거나 봐야겠다고 생각한 최기덕은 땀을 드리고나서 조아민과 주용전을 데리고 나섰다.     태평진거리는 저녁노을에 물들고 있었다.     거리에는 나다니는 사람이 적잖았다. 허나 복잡하진 않았다.     나이가 제일어린 주용전이 입을 열었다.    《연긴 아주 평화롭고 안정한 감이 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조아민이 그의 느낌을 부정했다.    《고요한 호수에 잡고기노는걸 어떻게 알가. 내가 보겐 이것이 외면현상에 불과한것 같애.》     그들은 상점, 극장, 관자집, 리발관과 가게들이 집중된 중심거리를 걸었다. 대통로를 따라서 북쪽을 향해 그냥 걸음을 놓고있던 그들은 길서켠 화초담을 두른 아담진 청기와벽돌집에 과연 간판이 버젓이 걸려있는것을 발견했다.    《허 이놈의데다 발붙이기 쉬울것 같지 않은데.》     조아민이 머리를 가로저으면서 하는 말이였다.    《우리는 저 노을같은 피를 흘릴 각오를 해야겠소.》     최기덕은 그의 말에 동을 달고나서 여기서 여러해전에 정민수일행이 조난당한 일을 그들에게 알려주었다.     조아민은 본래 남만사람이여서 북만의 일을 모르는게 많았다.    《듣자니 최참모의 친구가 토비라던데 그게 사실이요?》    《그렇소. 사실이요. 그도 본래는 한국독립군인이였고 나와 같이 토비를 축청하기도 한 사람이요. 토비라면 이를 갈던 사람이 왜서 토비질을 했겠소. 그럴 사유가 있었던거요. 말을 하자면 길지.... 그도 항일을 한거요. 오군자란 토비대를 이끌고말이요. 참멋들어지게 잘 싸웠지!》          주용전 상사가 참견했다.    《토비가 항일에 나선건 나도 압니다만 실지로 한게 얼마나 될가요. 난 어쩐지....》    《우리 공산당만 실지로 한건가, 다른사람은 안하고?....평가를 그렇게 해서는 안되는거야. 내 눈으로 본거니까 하는 말이다. 우리는 형이상학이 되지 말고 어디까지나 실사구시가 돼야 해.》     조아민은 그 말에는 자기도 동의라고 머리를 끄덕였다. 최덕이 토비의 항일을 두둔하는데는 리유가 있다는걸 알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지금 살아있을가요?》     그가 하는 말이였다.    《글세....살아있으면 얼마나 좋은가. 훌륭한 사람이지.》     최덕은 지금까지도 민호의 위인됨을 믿고 있었다.     이들 셋이 북문에 거진이르러 보니 과연 길동쪽켠에 이란 간판을 건 집이 한 채 있었다.     조아민이 가시돋힌 눈으로 그 간판을 여겨보면서 중얼거렸다.    《저놈의 널쪽을 떼버려얄텐데....》    《떼느라할것있는가, 거기사람을 내것으로 만들면 될건데.》     최기덕은 그보다 생각이 앞서고 있었다.     한데 조아민은 그의 생각은 실현하기 어려워 미몽으로 끝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사상을 내처럼되게 고칠수 있을가?》    《왜못고쳐. 생물은 진화하고 만물은 변하는건데 그것이라고 고정불변 할 수야 없지 않는가.》    《내 말은 고정불변한다는게 아니라 그게 어디 쉽겠나그거지.》    《어찌쉽겠소. 쉬울수야 없지. 그러니까 공작하는거지. 안그렇소. 우리는 어쨌든 여기에 있는 자위무장을 포기할 수 없단말이요. 안그렇소. 우리가 싫어하면 얼싸좋다구 적이 끌어갈 것이란말이요. 안그렇겠소?》    《하긴 그런데....》     조아민이 다시 입을 여는데 그 집쪽에서 낯이 강마르고 코날이 일어선, 성마가 강팔져 보이는 40대의 사나이가 이켠을 발견하고 급히 다가오며 인사했다.    《환영합니다! 환영합니다! 세분은 오늘 방금도착했다지요.》     최덕이 그를 눈여겨보면서 물었다.    《당신은 누고요?》    《저는 여기 공안국장 장평올시다.》     최기덕은 괴이쩍어서 물었다.    《장국장, 거 소식이 과연 빠르기도하구만. 우리가 방급왔다는건 어떻게 아오?》    《왜 모르겠습니까. 이 장평이가 하늘에다 눈과 코와 귀를 숱해걸어놓고있는데. 안그렇습니까, 공안국이 뭘하는 기관인가요.》     장평은 말해놓고 하하 웃었다.     최기덕이도 웃었다.    《그렇지, 그래! 하하하....공안일을 하자면 그래야지. 장국장은 과연 보통내기가 아닌것 같구만! 잘하오, 잘한다니까! 하하하....》     칭찬을 아끼지 않고 했더니 장평은 기분이 좋은지 벌쭉웃었다.     최기덕은 그의 몰골이 어쩐지 생소하지 않았다. 염왕산을 수편하러 들어갔을적에 거기서 본것같아  다시다시 뜯어보다가 말했다.    《장국장은 어쩐지 본지사람같잖구만.》     장평은 얼굴색이 굳어졌다.    《장교께서 그걸 어떻게 알아봅니까?》    《내눈이 밝아. 그런걸 혜안이라 했던가....》     장평은 적이 놀랬다. 속으로 이 사람이 쏘련에 있으면서 벌써 여기사람들의 믿그루를 조사하고 온게 아닐가했다. 그는 은근히 불안해 하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난 본지사람아닙니다.》    《그럼 그렇겠지! 내 눈이 밝다니까. 하하하...》     최기덕은 대방의 기분이 심란해진건 아랑곳하지 않고 제 기분에 들떠 소리내여 웃었다.     모두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했다.     최기덕이 염왕산을 수편못하고 나올 때 민호는 만일의 경우를 념려해서 이 날파람있게 생긴 새자를 자기는 동생같이 여긴다면서 호위로 산밖까지 딸려보냈던것이다. 한데 오늘 여기서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이야! 기덕은 그의 몰골을 아직도 기억하고있다. 한데 나이 더 어린놈이 대방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으니 야속했다. 내가 그렇게 변모했단말인가. 최기덕은 자기가 누구라는것을 알려주려다 그만뒀다. 다른 기회에 입을 열어도 되는것이다. 이 장평은 알것이다. 친형제같이 지냈던 민호의 종적을 알것이다. 그의 소식을 꼭 알아봐야한다. 염왕산이 괴멸되였다는데 죽었는지 살았는지? 살았으면 지금 어디에 있는지?.....      한편 장평은 장평대로 이 쏘련홍군장교가 자기의 신원을 알고있는것 같아서 기분이 개운치 않았다. 그는 속으로 짚었다. 이 공산당사람이 쏘련서부터 벌써 여기 사람들의 믿그루를 다 조사하고  올수도 있는거야, 저희들이 발을 붙이기 위해서는.... 그는 태평진에 느닷없이 나타난 세 사람을 경계하면서 조심스레 객실에 모시였다.     최기덕은 잠간들려보고 돌아갈 생각이였다. 우선 친구의 행방만 알면 만족이였다. 그만 있으면 손을 잡아주어 맡은바의 과업을 쉽게 밀고나갈 수 있겠으니까.     장평은 손수 차물을 부어주면서 이들이 공안국을 찾아온 목적이 무엇일가 생각했다.     최기덕은 권하는 찻잔을 입가에 가져가다말고 차탁에 도로놓으면서 말을 꺼냈다.    《장국장! 여기서 염왕산이 얼마나 머오?》    《백팔십여리될겁니다, 이백리라는 사람도 있지만. 건데 장교께서 나하구 그건 왜 물는가요?》    《다른일 아니요. 소식을 몰라서. 내 친구 하나가 전에 거기에 있었는데....》    《친구라니요!?》     장평은 이제야 대방을 다시 찬찬히 뜯어본다.     최기덕이 알려줬다.    《정민호라구 하는 조선사람이요. 장국장이 혹시....》    《아 오인말이지요. 나도압니다. 그분은 건재합니다.》    《그럼 아직 살아있다는 말인가!》     최기덕은 두눈이 확 밝아지면서 기뻐했다. 그리고 한편 또 속으로 틀림없구나 네가 바로 그때의 그 애가 맞구나 긍정했다. 한데도 장평은 의연히 자기를 모르는 양 하고 있었다. 실상 안다해도 내가 장교를 면목압니다 하면서 선듯이 나올리없다. 최기덕이 들어갔을 때 염왕산은 공산당의 수편을 받아주지 않았거니와 내쫓다싶이했던것이다. 그러니 지금와서 두려움에 저촉정서가 겹쳐서 아닌보살을 할 수 있는것이다. 그의 처지를 리해하면서 최기덕은 또 물었다.    《그 사람 그래 지금 어디에 있소?》    《예. 거기에 있지요, 염왕산에.》    《뭐라! 아직두 거게 들어박혀있단말인가?....그 사람 광복난거나 알고있는가?》    《왜 모르겠습니까. 알구말구요. 누구보다 먼저알고 나온 사람인걸요. 요즘도 여게와있다가 가즈돌아갔는데요.》    《그가 여게와있었단말이지! 정말이요?》    《정말입니다. 내가 아무럼 장교앞에서 함부로 거짓말할가요. 그하구는 친구간이라했지요. 사실 그러하다면 제 말을 믿으십시오. 그를 절대 나쁜사람으룬 보지 마십시오. 그도 항일을 했고 좋은 일을 많이했지요. 말하자면 조선사람치고는 의덕있는 웅걸입지요.》    《허! 의덕있는 웅걸이라. 헌데 그게 장국장의 평가요 아니면 백성의 평가요?》    《누구의 평가던 믿지 못하겠거든 어디 두고보시오. 난 더 말하지 않겠습니다. 이런 제길할!....》     장평은 비위가 뒤틀리는지 그만 올곧지 않은 소리를 뱉어냈다.     이쪽은 네가 토비였다만 형제는 팔아먹을 녀석이 아니구라 하고 속으로 감탄했다. 최기덕은 한편 또 민호가 시국에 눈이 밝은 사람이고 조선의 독립을 그토록 부르짖은 사람인데 왜서 광복이 됐는데도 버덕으로 나올 념을 하지 않고 아직도 산속에 그냥 들어박혀있는걸가고 의문을 가지였다. 무슨 생각을 하고 그러는지 앞으로 어쩔 타산인지?....     삼검불같이 엉켰던 의문은 장평이 입을 다시열어서 풀리였다.    《장교께서는 그분의 근황을 무척알고싶겠지요. 친구라니 알려드리겠습니다. 그인 본래 광복이 되니 고향으로 돌아가려구했지요. 그러던것이 아이를 하나 줏고 생각이 돌아진겁니다.》    《무슨소린지. 아이를 하나주어서 고향못간다니?》    《못가는게 아니라 가지않기루 한겁니다.》     장평은 민호가 강도놈의 손에 부모잃은 아이를 줏고 그 원쑤를 갚아주느라고, 재난에 빠지고있는 제 동포를 구하느라고 고향에 돌아가지 않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노라 알려주었다.    《오, 그렇겠지!》    《그렇지요. 일은 바로 그렇게 된거랍니다.》    《음.... 건데 저.... 난 여적지 염왕산은 왜놈의 손에 녹아 없어진걸로 아는데....》    《장교께서 그걸 어떻게 압니까?》    《내가 왜 모를가. 나역시 장국장모양으로 하늘에다 눈과 귀를 달아놓구있었는데. 알지 다 알지. 알아야 할건 빼놓지를 않고. 염왕산이 항일을 하것도. 그게 비록 토비긴해도....》    《토비! 토비! 그렇게 부르지를 마시오.》     장평이 낯을 붉히면서 그의 입을 막았다.    《오, 그래! 내가 주의하지.》     최기덕은 얼굴에 미안해 하는 기색을 지었다. 전에 민호가 그한테 화냥질하는 녀인을 보고 화냥년이라면 좋아하지 않는것 처럼  토비도 자기를 토비라면 좋아하지 않는다고 알려주던것이 새삼스레 상기되였다. 위삼포의 염왕산류자들은 사실그러했던것이다. 그들은 자기를 라 부르거나 아니면 그저 이라 불러주기를 소원이였던것이다. 위삼포의 선대인 위록산때부터 그러했는데 그들은 지어 류자를 토비라면서 비난하는 사람을 보면 죽이기까지 했던것이다.     최기덕은 그걸 그만 깜빡잊었다. 자기를 철저한 항일분자로 분장하면서 원래의 신분을 속이고있는 사람의 속마음을 알아주지 않은것이다. 그는 조심하면서 계속알아보았다.    《하다면 그인 지금 염왕산에서 누구하고 같이있습니까? 설마 혼자있는거야 아니겠지?》    《왜 혼자있겠습니까. 이젠 설흔명이나되는데.》     비밀이 아닌지라 장평은 그 30명이 여차여차해서 한데모이게 되었노라 알려주었다. 지어는 면서 염왕산에 들어가 다시금 기국(起局)한 사실까지도 다 알려주었다.    《오, 그랬구만!》     친구의 근황을 똑똑히 알게 된 최기덕은 그를 어서만나보고푼 생각이 불붙듯했다.       이틑날 최기덕은 조아민과 주용신을 불러 3인회의를 열었다. 그들이 이제 어떻게 지하당조직을 찾으며 군중을 여하히 적색조직(赤色組織)으로 묶어세울것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연구하고있는 중인데 사령부의 경위원이 마침 사람 하나를 데리고 왔다. 그는 나이 지긋해 보이는데 넓은 이마에 밭고랑같은 주름이 패이고 머리털이 다북떡쑥같이 더부룩한 사람이였다.    《어느분이 책임인지요. 저는 왕우재라 허는데 이곳의 지하공산당원입니다. 쏘련서 우리의 사람이 왔다길래 찾아온겁니다.》    《내가 책임자입니다. 찾아오셔서 대단히 반갑습니다. 그러잖아 어떻게 찾을가구 연구하던 중인데....자 앉으시오.》     최기덕은 그를 반겨주면서 걸상을 갖다놓았다.    《우린 모두여섯사람입니다. 나하구 사계유하고....》     왕우재는 손가락을 꼽아가면서 여섯지하당원의 이름을 하나하나 주어댔다.     최기덕은 수첩에다 그 여섯사람의 명단을 기입했다.     왕우재는 5년전에 적의 수색에 의하여 많은 동지가 체포, 학살되여 지부가 파괴되니 자기들끼리 당소조를 다시조직한것이 지금의것이라했다.     조아민과 주용전은 지하당조직을 찾았으니 이제는 한시름놓았다면서 기뻐했다. 그러나 최기덕은 여지껏 상급조직과 련계가 없었다는 그들이 진짜공산당원이 옳은지 아닌지 확인 할 수 없어 곤혹스러웠다. 제정의 폭압과 특무, 변절자들의 활약이 하도 창궐해서 여지껏 상급조직을 찾지 못했다고 하나 이런 기회에 정치깡패가 다른 심보를 품고 달라붙을 수도 있으니 정신차려야했다.     최기덕은 왕우재가 아무튼 제발로 찾아왔으니 고마운 일이라 웃는 얼굴로 대해주면서 그를 시켜 그 여섯지하당원이 모이게했다.    《우리는 자기의 사상과 주의를 펼쳐나갈 조직이 있어야겠습니다. 이미있는 당소조가 핵심이 되어 군중이 광범하게 참가하는 단체말입니다.》     왕우재가 이쪽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건의했다.    《단체의 이름을 공산주의자동맹이라 지읍시다.》     최기덕이 머리를 저으면서 반대했다.      《합당치않습니다. 우리는 지금의 단계에서 민주대동맹을 세워야 합니다. 알만합니까, 민주대동맹을 말입니다. 그것은 주권이 대중에게 속하며 인민을 위해 정치를 실행한다는 뜻을 표명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일이 뭔가요?》    《많지요. 먼저 군중앞에서 당전의 형세를 알게끔 선전하고 공산당 팔로군이 어째서 좋고 국민당이 어째나쁘다는것을 알려주어 그들을 깨우쳐야 합니다. 국민당이 지금 바로 내전을 일으키고있는게 아닙니까. 이런 상황에서 군중이 시비를 가르고 각성하게 말입니다. 그런 후에야 사상도 주의도 머릿속에 들어갈게 아닙니까. 층집을 오르자면 게단을 밟듯이 사업도 한계단 한계단 밟으면서 해나가야합니다.》    《알만합니다. 우리가 그쯤한 일은 얼마든지 해낼 수 있으니 맘놓구 믿으시오.》    《자기의 맹원을 적극적으로 발전시켜야 합니다.》    《그렇구말구요.》     그들이 장담하니 최기덕은 그러면 좋다 함께 힘써달라했다.     이렇게 되어 태평진에는 공산당의 외각조직인 나타나게 되었다. 위수사령부와 거리가 멀지 않은 큰길건너 동쪽구역의 한 자그마한 집을 얻어 간판까지 달았다.     최기덕은 이어서 장평을 시켜 민호를 데려오게 하여 만났다. 서로 몹시 그리던 친구의 상봉이라 감격은 이루헤아릴 수 없고 형언키도 어려웠다. 둘은 서로 격조히 지낸 지난날들을 돌이켜 보면서 가슴속에 서린 면면한 회포를 풀었다. 그리고 나서 앞으로도 계속 환난상구(患難相救)하는 사이로 되어 살것을 약속하기도했다.    《아무때건 어려움이 닥치면 날찾아와. 철혈대는 희생을 하면서라도 구해줄테니.》     민호가 태평진을 나오면서 한 말이였다.         팔자수염은 성명이 장두봉(張斗峰)이다. 그는 오도야마가 있을 때 특무질을 하면서 세력을 굳혀 유지회의 회장으로 까지 된자인데 지금은 국민당부와 관계를 맺아 거기서 시키는 말이면 곰상곰상 들었다. 죄가 루루하니 까딱잘못했다가는 목숨이 날아난다는것을 아는지라 충성을 다하는판이다.     어느날 그가 재종제보고 물었다.    《장평아 너는 민주대동맹간판이 나붙은걸 아느냐?》    《아오. 내가 왜 몰라. 건데 왜 그러오?》    《넌 그걸 어떻게 할 생각이냐?》    《어떻게 할게있소. 그건 내가 간섭할 조직이 아닌데.》    《그건 공산당분자가 운전하는 기구야.》    《공산당이 운전하건 국민당이 운전하건 그게 나하구야 무슨 상관있소. 난 그저 이 태평진이 안녕하게끔 치안을 잘하면 되는거요. 그게 내 책임이니까. 안그렇소?》    《넌 데체 어느켠에 설테냐?》    《건 무슨말이요?》    《넌 누구의 지지를 받겠냐 그 말이다.》    《거야 유지회의 지지를 받기로 돼있는게 아니요.》    《그럼 좋다 유지회의 지지를 그냥 받겠거는 내 말을 들으라. 내가 유지회의 총책이 아니냐.》    《난 치안에 관계되는 일이면 듣겠소만 나더러 그 기관을 해치라면 들을 수 없소. 내가 그따위 얼빤한 짓은 안하는 사람이니까.》     장정이 센 장평이 이렇게 나오니 그를 추겨 의 간판을 뜯어버리게 하자던 장두봉의 계획은 수포로 되고말았다.        한데 그 조직의 사람들이 스스로 불민한 짓을 했다. 약 보름가량지나서였다. 어느날 저녁켠에 태평진 큰술집주인이 노한 얼굴을 해갖고 공안국을 찾아왔다.    《여보시오, 장국장! 저기메 좀 가보시오!》    《무슨일인데?》    《그 녀석들 엉치질기게 들어앉아있더니....망나니짓을 하오.》    《사달을 피워? 누가?》    《로모즈들이. 그 녀석들이 글쎄 작부질하는 새기의 궁둥이를 만지면서 달라구 지랄피운단말이요. 말을 해도 듣질않구....》    《자식들이 어디와서.... 내가 버릇 좀 고쳐줘야 알가부다.》     술집주인의 고소를 받은 장평은 그 자리로 사람 댓을 데리고 그리로 달려갔다.     쏘련군인 둘이 술에 억병으로 취해 거의 인사불성이 되어있었다. 장평은 가자마자 그 두 쏘련홍군과 술상을 오래도록 벌려놓고 그들을 그지경이 되게 만들어 놓은 민주대동맹의 사람 7명을 붇잡아다 가두었다. 그속에 왕우재도 있었다.     그사이 몇몇 공안인원은 장두봉의 추김에 들어 달려가서 민주대동맹의 간판을 뜯어버리고 유리창을 산산히 부셔놓았다.     쏘련홍군위수사령부에서는 하는 수 없이 사과하고 두 사람을 빼내왔다. 이 일로하여 민주대동맹은 위신이 쫄딱했다. 군중들은 장두봉의 간책에 들어 민주대동맹은 주정뱅이동맹이라느니 건달뱅이동맹이라느니 하고 욕했다. 세운지 한달도 안되여 일이 이렇게 되였으니 최기덕이 역시 난처하게 되었다. 지하공산당원이라해서 군중사업을 맡겼더니 그꼴이 되었다. 최기덕은 당장 왕우재를 불러 문책하려다가 그만두고 조아민과 주용전더러 우선 나가서 민주대동맹사람들의 실태를 조사해보라했다.     임무를 맡은 그들은 한주일간 조사한 결과 민주대동맹에 대한 군중들의 평가가 총적으로 좋지 않은데 특히 총책인 왕우재에 대한 반영이 더 나쁘다고했다. 그는 지어 최기덕의 명함장까지 사사로이 만들어갖고 다니면서 군중을 기편하고 도처에서 일을 저지른다고 보고했다. 공산당원도 아니였다.    《그자식을 가만둬서는 안되겠구만. 내가 정신이 흐렸지. 사람의 것모양보고 소홀히 믿어줬으니.》     최기덕은 잃어버린 민심을 다시얻고 훼손된 공산당의 명예를 다시금 수립하기 위해 왕우재를 총살해버렸다. 그리고는 그 민주대동맹을 해산시켜버렸다.          최기덕은 하루속히 자기의 무장이 있어야 하거니와 군중조직을 다시내오면 그것을 맏아서 나설만한 진짜 자기사람이 있어야 한다는것을 절감했다. 쏘련군복을 입은 그들 세사람의 힘만으로는 어려웠다. 이곳의 풍토와 민정에 익숙한 사람의 협조가 절실히 수요되였다. 하여 상급에 반영하였더니 상급에서는 김웅렬이란 사람을 보냈다.     《난 김웅렬이요. 구일팔사변전부터 지하당사업을 했소. 그러느라 어디 안착해본적이 있는가. 구름같이 이리저리 옮기면서....》     김웅렬이 자아소개를 이렇게 하는것이였다.    《아 그렇습니까. 그지간 수고많으셨습니다.》     최기덕은 이렇게 말해놓고 득심이 생겨 웃음을 짖는 그의 둥글넙적한 얼굴을 다시금 여겨보았다. 첫인상이 그리좋게 안겨오지 않았다. 어쩐지 겸손하지 않고 불면서 자만하는 티가 다분히 보였다. 별사람 다 보겠다. 누군 뭐 편안히 지내다가 온줄로 아는 모양이지. 네가 중공당원일테지만 전에는 어느 파에 들어 입방아를 찌었댔는지 알게 뭐야. 대방이 자기를 굴러온 말똥같이 여기건만 김울렬은 입을 열고 계속 그 본새로 말했다.    《최동무도 알다싶히 우리 혁명자야 일반과 달라 각오를 한것이구 사상이 있고 주의가 바른게 아니요. 무산자의 철저한 해방을 위해서라면 생명이라도 바치겠다고 맹세를 한 사람이란말이요. 안그렇소. 그런데 이거 언제가야 복락을 누려볼지.》    《제가 누릴 복락을 생각할 새 있을가. 할 일이 가득합니다.》     최기덕의 정중한 응대에 힐난이 섞여있었다.    《하하하, 그 말이 맞소 맞아! 할 일이 많길래 날 여기다 보낸거겠지. 아무럼 휴양을 하라구 보냈을가. 그 비평을 접수하지.》     김웅렬은 부접좋게 받아 넘기였다.     최기덕은 엄숙성이 없이 떠드는 사람은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파견되여 온 사람을 랭대할 수도 없는지라 속으로 함께 사업하면서 지내보자 되도록 손을 맞춰야지 했다.     김웅렬은 오자마자 곧 대원모집에 착수했다. 모집은 심사가 엄격했다. 주요하게는 위만때의 로동자가운데서 선발했다. 그렇게 해서 12명을 모집했다. 그러나 무기가 없었다. 쏘련홍군은 무기가 있어도 사달이 생길가봐 주지 않았다. 그래 그들은 하는 수 없이 돈을 주고 아직 개인의 손에 널려있는 총을 사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이리저리 애쓴결과 보름만에 12명대원이 무장을 하게 되였다. 무장이 다 되자 민주대동맹간판을 걸었던 자리에다 태평진공안국간판을 내걸어 그 집이 이쪽측의 공안국으로 되었다.     장평은 이 일을 알자 자기의 무장을 끌고 가서 그곳의 공안인원 12명을 몽땅 체포하여 가두고는 무장을 빼앗아냈다. 그리고 나서 그는 그길로 위수사령부에 달려가 항의했다.       《어느놈이 로모즈사령원이냐?》     토비배짱이 그대로 남아있는 장평은 들어오자마자 눈알을 굴리면서 밸을 썼다.    《나는 항의한다! 가보란말이다. 태평진에 공안국간판이 두개붙었다. 이런눔의 란장판이 어디있는가. 왜서 공안국이 하나 더 생기게 허락하는가?.... 나는 항의한다!》     뚜르와체브사령원은 그 나이의 사람치고 인내력이 대단하고 참을성있는 젊은이였다. 그는 통역에게 저 사람이 게사니혼을 탄게 아니냐 하고는 장평보고 물었다.    《그대는 대체 누군가?》    《나말인가, 날 몰라서 물어?....난 이 태평진공안국 국장이다.》     《국장동지! 당신네 공안국에 지금 인원이 몇이나 되는가요?》    《그걸 몰라물어? 삼백이야 삼백. 생급스레 건 왜 물어쌋어?》    《숫자가 하도많아서 그걸 세여보자구해도 시간이 약차하게 걸리겠구만. 그래갖고 남이 열둘뿐인걸 미워하구 떠드는가. 듣자니 무장빼앗고 가두기까지 했다지. 그들도 그래 술먹고 주정했던가?》      《그러지야 않았지.》    《그런데 왜 가두었는가?》    《이건 내 권리야. 치안을 위해 가둔건데 잘못됐단말인가?》    《치안을 위해서 가뒀단말이지. 술도 안먹은 사람들이 그래 총들고 강탈이라도 한단말인가?》    《....》    《도리도 없으면서 떠드는군! 나는 위수사령원으로서 이곳치안을 위해서 아마 무례하게 사단을 일으키는 당신부터 가둬야겠소.》     사령원의 말이 떨어지자 쏘련군인들이 그를 붙잡아 가두었다.    《이 뒤여질 로모즈놈들아, 왜 죄없는 사람을 함부로 가두는거냐?....나를 내놔라, 나를!》     장평은 마치 철장에 같힌 표범같이 길길이 뛰였다.           최기덕이 그를 찾아갔다.     《여봐, 장국장! 날 좀 똑똑히 봐. 아직도 날 모르겠는가? 염왕산에 수편하러 들어갔던 조선사람 항일련합군대표말이야.》     장평은 두눈이 둥그래졌다.    《저, 그럼 장관은 오인하고 친한사람맞구만요! 건데 왜 여적지 잠자쿠있었나요? 오인을 데려오라구 심부름까지 시키면서두.》     장평은 민호마저 자기한테 쏘련군의 조선인장교가 누구란걸 알려주지 않아 몹시 야속해 하였다. 그는 최기덕이 자기를 해치지는 않으리라는것을 믿으면서 물었다.    《로모즈가 나를 어찌겠답니까?》     네가 이제는 겁을 집어 먹는구나. 최기덕은 나오는 웃음을 참아가면서 꾸며댔다.    《아까 말하는걸 들어보니 뚜르와체브사령원은 장국장을 가만둘 생각인것 같잖더구만. 쏘련홍군은 군법이 대단히 무서운거요. 더구나 사령부에 뛰여들어 소란피우는 자에 한해서는.... 그래서 내가 찾아온거요. 일깨워주려구. 이럴 때는 한가지 출로밖에 없소. 솔직히 고백해서 죄를 가르는 것이지. 알겠소, 그것밖에 출로가 없단말이요. 어쨌다구 남의 바가지까지 뒤집어 쓰고 죽음을 당하겠소... 어디말해보오. 이번일이 장국장 혼자의 주장이였소? 》     장평은 대답대신 머리를 가로저었다.    《그러면 누구의 주장이였소?》    《류한곤의.....》    《류한공이라.... 뭘하는 사람이요?》    《국민당부 서기장입니다.》    《그 사람이?》    《그렇습니다. 공산당이 장악하는 공안국이 있게되면 국민당의 세력이 없어지게 되고 국민당의 세력이 없어지게 되면 이 장평은 국장자리를 떼우게 되리라면서 날보구 그렇게 해야한다구했지요.》    《됐어, 알만해! 장국장은 속죄한 셈이야!》     위수사령부에서는 장평을 내놓았다. 그러면서 국민당부 서기장을 체포하여 지방치안을 소란케 한 책동분자로 론죄하여 처단했다.    《그 녀석마저 아예 시원히 베버릴거지.》    《누굴말입니까?》    《장평인지 장국장인지 하는 자 말이요.》     김웅렬이 엉뚱하게 줴치는 소리였다.     이 사람이 정신나가지 않았나? 최기덕은 그를 아느새 찍어박듯이 여겨보다가 물었다.    《그를 왜 죽이자는겁니까?》    《첫째는 국민당에 매수됐구....》    《매수되면 그게 죈가? 그는 깨닫고 돌아선 사람인데.》    《깨닫구 돌아서두 그렇지. 내가 말하자는 두 번째 리유는 그자는 믿구녕이 더럽다는거요. 듣자니 전에 토비질을 했다며.》    《지금이야 아니겠지. 한때는 토비질을 했어도 그는 손에 총잡고 항일을 했습니다. 왜서 공은 몰라봐줍니까?》     최기덕의 이 말속에는 항일했다는 네가 총한번 들고 싸우지도 않은 주제에 무슨 그리대단해서 주장을 부리느냐 너의 그 머리는 어디에 잘못된게 아니냐 하는 힐난이 확연히 내돋았다.     하건만도 김웅렬은 자기의 주견을 거두려 하지 않았다.    《본바탕이 나쁘니 끝까지 우릴 따르겠는지 믿기 어렵지.》     이런 돌대가리를 보지 그런 사유를 갖고 군중사업은 어떻게 하느냐?.... 최기덕은 극심한 편견으로 정신이 무장된 이 완고한 혁명간부를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을가, 상급에서는 왜 하필 이런 물건짝을 내한테 보냈는가고 속으로 불만스러워 하면서 거칠어진 음성으로 못을 박았다.    《밑그루가 나쁘다? 그렇지, 밑그루를 들춰보면야 물론 좋지 않지. 그렇다구 사람의 생명을 함부로 취급해서야 되는가. 그건 그렇고 김동무는 그 사람의 위신이 지금 어떤지나 압니까? 광복이 나자마자 그가 군중을 발동해서 일본군의 무장을 빼앗아 지금의 기초를 닦아놓은겁니다. 그래서 온 태평진의 백성들은 그를 공신으로 여기고 받드는데 그런 사람을 없애자니.... 우리가 그런다면 군중이 가만있을가? 김동무가 그래 여기의 무장을 령도나 할것 같습니까? 무모한 살인자를 가만둘 리가 있을가? 김동무는 제 목숨도 살려내지를 못할겁니다.》     김웅렬은 낯이 벌개나면서 입을 더 열지 못했다.     태평진에서 국민당의 세력은 없어져버렸고 그들이 장악하려던 공안국은 공산당손으로 넘어왔다. 최기덕은 장평을 의연히 공안국국장으로 임명하고 김웅렬은 군중공작만 책임지게 했다.      
157    <<관동의 밤>> 제2부(39) 댓글:  조회:2889  추천:0  2015-02-04
                            39               객을 꽈 박아 싣고 남쪽으로 달리던 차가 정거장도 아닌 산굽인돌이에서 갑자기 정거했다. 저기 앞에서 한떼의 비적이 레루장을 번지고 있었던것이다. 기차를 전복하고 략탈을 하려는것이다.    《왜놈이 망하니 비적이 끓는구나!》    《란시에 어떻게 살겠소. 빨리 이눔의데를 떠나야지.》     민호와 한바곤에 앉아가는 동포들이 하는 말이였다.     기차를 호위하는 쏘련군이 총을 갈겨 비적들을 쫓아버렸다.        례루장을 바로놓고나서 렬차가 다시달리기 시작했다.     한데 렬차가 어느 한 역에 서자 사람들은 끔찍스러운 장면을 보게되었다. 손에 흉기를 든 한무리의 악당들이 그 역에서 차가오기를 기다리고있는 사람들을 살해하고있었던것이다.     민호는 열어놓은 차창으로 죽어 넘어간 몇구의 시체를 보고 그것이 동포임을 알았다.     《아니 저놈이!》     한자가 한 손에는 칼을 다른 한 손에는 꾸레미를 쥐고 달아나고 있었다. 한데 뒤를 힐끔힐끔 돌아보는 그자가 낯이 익어서 민호는 다시한번 놀랬다. 그자는 다른놈이 아니라 호덕화였던거다.    《호덕화! 이놈 서라!》     고함을 내지른 민호는 차가 채 정거하기전에 창문으로 뛰여 내렸다. 그러는 사이 그자는 어디론가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내가 저 철천지 원쑤놈을 놓쳤구나!》     민호는 원통해서 소리쳤다.     어린애가 쓰러진 제 어미의 몸가에서 자지러지게 울고 있었다.     민호는 그리로 가보았다.     30대의 젊은 각시가 방금 호덕화의 칼을 맞고 쓰러졌는데 상처에서 진붉은 피가 쿨쿨 쏟아져 나와 땅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걔의 애비도 죽었소! 저게요!》     방금 략탈을 당한 사람중 누군가 알려주었다.     차가 멈추면서 총을 갈겨 비적들이 물러갔지만 10여호의 동포귀향민들은 차도 못타고 그놈들 손에 변을 당했다. 어떤 집은 장정이 죽고 어떤 집은 녀인이 죽고 어떤 집은 내외 가 다 죽어서 이렇게 아니만 남았다.     민호는 이가 갈리였다.    《네놈들을 보기만 하면 붙잡아 각을 찢어놓을테다!》     차가 떠나고 있었다. 그는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를 얼른 안고 뛰여 올랐다.     구원된 아이는 서너살밖에 안되는 남자애였다.    《피난가는기여.》    《아닌기여. 볼락커니 우리 모양으루 고향갈락고 떠난기여.》    《끔찍허지. 백죄 이게 무슨 변이여.》    《이눔의데는 정말 몬살데다.》    《몬살데니께 빨리가야지.》     남이 당한 불행이지만 몹시안타까와들했다. 같은 동포라 자기한테 떨어진 불행같이 여기면서 겁을 집어먹기도했다.      애가 그냥 울어댔다.     아낙네 셋이 이쪽으로 왔다.    《얘야 그만울어라. 에미애비 다 잃어 어떡하겠냐.》    《애가 배곱파 울잖을가.》     아낙네 하나가 강낭떡을 우는 애의 손에 쥐여주었다.     아이는 그냥 울어댔다. 아무리 얼리고 얼려도 소용없었다. 부모를 다 잃은 아이니 섧게 울었다. 낯설은 사람의 품이라서 그것이 아무리 포근해도 서러움을 달래지 못했다. 아이는 울고 울다가 맥이 지치는지 그만 스르르 눈을 감고만다. 잠이 든 모양이다.     기차는 내처 앞으로만 달리였다. 이제 더 가서 목단강역에 이르러 갈아타고 그냥 남으로 간다면, 중도에 변고만 없다면 래일아침녘에는 도문역에 닿을것이다. 거기서 두만강을 건너면 고향땅을 밟을 수 있게 되는것이다. 하지만 민호는 더 갈 수 없었다. 그는 목단강에 채 이르지 않고 자그마한 산골역에서 내렸다. 그는 여기서 질러가는 길을 알고 있었다.     흐릿한 날씨였다. 차에서 내린 민호는 태평진까지 백여리길을 걸어야했다. 렬차에서 내린 후에도 내처 눈을 감고있던 아이가 잠을 깼다. 자기를 품에 안고 가는 사람이 어쩌면 면목이 있는것 같기도한지 까만 눈으로 마록마록 올려다본다.         《요 불쌍한 것아, 네 운명이 어쩌면 이리도 기박하냐. 무정한 세월이지. 울지 말어라 얘야. 네가 운다고 엄마아빠가 눈을 다시뜨겠냐. 아마도 이젠 내가 너를 안고 방아를 쪄야겠구나.》     아이는 더 울지 않았다. 울어봤자 소용없는 줄을 알기라도 하는것 같았다.     민호는 그 아이를 웃기기도 하면서 말을 시켰다.    《울지 않으니 참 고운 애구나. 얘야 네 이름이 뭐니?》    《김성국.》    《오 그렇냐, 김성국이라. 넌 이름도 곱구나.》     아이는 제 성명만 알았지 아버지도 엄마도 이름이 뭔지는 아직 몰랐다. 아마 배워주지를 않은모양이다. 민호는 아이가 건실하고 귀여웠지만 이 애가 부모의 이름을 아직 모르니 친척이 있어도 찾아주기 어려울것 같아 근심스러웠다.    《야 요놈아, 내가 시름꺼리를 안아온것 같구나.》     아이는 웃었다. 아직은 철부지였으니까.     산간을 벗어나니 꽤 널다란 길이 나졌다. 그 길을 따라 내처 서쪽으로 갔다. 그러다가 갈림목에 거진이르러 같은 방향으로 가는 사람 둘을 새로만나게 되였다. 둘다 검정치마에 흰옷을 입었는데 머리에는 보따리를 이렀다. 저고리의 고름이 바람에 팔팔 날리고 있었다. 분명 동포녀인들이였는데 하나는 점고 하나는 늙었다. 보아하니 모녀가 아니면 고부간일것이였다.     혼자서 고적한데 동포를 만나 길동무를 하게됐으니 미상불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는지라 민호는 걸음을 부지런히 놓아 따라잡으면서 말을 걸었다.    《조선분들이구만! 어디로 가십니까?》     두 녀인은 무르춤 서서 이쪽을 보았다.    《에그, 손님도 조선분임둥!》     깜장옷고름을 단 로파가 반가와 하면서도 얼굴에 다소 미안해하는 빛을 띠였다. 아마 면목모를 사람이 뒤를 바싹따르니 따게 보고 불안스러웠던모양이다.     《하하, 날 의심했던 모양이구만.》    《글쎄요....》     각씨가 말을 하려다말고 사나이의 품에 안긴 아이를 본다.     로파가 민호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물어왔다.    《어디메 감둥?》         《나말입니까, 태평진에 갑니다.》    《그러믄 같이 동무하게 됐네. 우리두 그쪽으루 가꼬마.》    《댁이 태평진에 있는모양이죠?》    《아니꾸마. 그 뒤의 목청에 있쓰꾸마.》     목청에는 일본이민단속에 조선사람 열둬호가 끼여 살았는데 그 마을의 일본사람들이 화금으로 피해가자 그들도 따라갔더랬다. 그러다가 일본사람들이 본국으로 돌아간다면서 어디론가 훌쩍 가버리니 그들은 마치 병아리가 오리무리에 끼였다가 배척당하듯 나앉아 하는수 없이 목청에 되돌아가 사는 판이였다. 한데 민호는 아무리봐야 로파가 면목이 있는지라 전에는 어디서 살았느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로파가 자기는 전에 가진구에서 살다가 지금의 그  목청마을에 이사를 왔노라했다. 그렇구나, 그 딸부자집이 맞구나! 민호는 흑룡강가에서 밀수장사를 해먹으면서 독립혁명에는 꼬물만큼도 관심없던 한 사람의 몰골이 새삼스레 떠올랐다. 그의 이름이 김국정이라는것 까지도 아직 기억에 남아있었다.       품에 안긴 아이가 또 보채기 시작했다.    《오오오, 이놈아 배고프냐?》     민호는 아이를 달래다말고 두 녀인을 향해 비라리를 했다.    《그 보따리에 먹을게 있거든 좀 주시오. 애가 아마 배곱파 이러는것 같습니다.》    《집의 애깁둥?》    《아닙니다.》    《그럼 뉘집앤가요?》     각시가 처음부터 이상스런 눈길로 보고있더니 캐물었다.    《오다가 주은애요.》    《어마나!》     그녀는 걷다말고 눈이 동그래진가.     로파도 걸음을 멈추고 굳어진다.    《아니 그게 무슨소림둥? 주었다니?....》     민호는 기차타고 오다가 목격한 일을 알려주는 수밖에 없었다.     두 녀인은 듣고서 혀를 끌끌 찼다. 애가 운명이 참 기구하다하느니 민호를 세상에 둘도 없이 마음좋은 사람이라느니했다.     각시가 머리에 인 꾸러미를 내리자 로파가 먼저 꾸러미를 내려 헤치여 삶은 강냉이를 한이삭 꺼내였다.    《여기걸 주자. 그건 꺼내지 말거라.》     민호는 반갑게 받아 아이손에 쥐여 주면서 물었다.    《두분은 어떻게 되는 사입니까?》     로파가 알려주었다.    《얘는 내 딸이꾸마. 집이 저어기 이도하자에 있습지비. 내가  일이 있어서 갔다가 오는건데 길에 도적놈많아서 혼자못간다면서 이렇게 따라나섰으꼬마. 이러구 보니 손님을 참 잘만났네 동무하게 돼서. 얘 분선아, 으전 그만 돌아가거라.》     댁의 로인은 없는가고 물어보니 집에 있다는거다. 이젠 령감이 됐을텐데....민호는 속으로 뇌이면서 이마살을 찌프렸다.    《원, 두분 다 우둔하구만요. 도적이 씨굴씨굴한데 나다니지를 말아야지 어쩔라구 그럽니까. 그래 사위되는 분은 없습니까?》       《사위말임둥 있스꼬마. 있어두 저그만치 일곱이나 되꾸마. 얘가 네번째 딸이꼬마.》     로파는 사위많은걸 자랑삼아 말했다.     민호는 각시를 다시봤다. 이 로파의 네번째딸이면 나를 주자던게 아닐가. 대체 어떤 남편을 얻어 사는지 궁금해났다. 하여 너짓이 물어봤다.    《이도하자 사위분은 누군지 왜 장모를 이렇게 보낸답니까?》    《황용팔이를 모릅네까유. 걔가....》      각씨가 로파를 말을 더 못하게 하느라 얼른 해석했다.    《우리 나그넨 집에 있어도 사정있어서 못떠나요.》    《그 사람 무슨눔의 병인지 여러달째 구들장만 지키구있어.》     각시는 어미가 앓고있는 사위가 미워 구시렁거리는것이 보기싫은지 말머를 돌렸다.    《여러집이 털렸어요. 밤에 낯가리구 칼들고 와서는.... 모두들 말하는게 그것들이 다 웃마을에 사는 되놈들이래요. 원 어쩌면 제바닥 사람끼리 그런짓을 하는가요. 애 아버지가 일어나면 우리도 목청가 살아야겠어요.》    《거기라고 안전할까, 나쁜놈은 어디나 다 있는데.》     민호는 그녀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나 알아보려했다.     로파가 전번때 있은일을 말하는것이였다.    《손님은 그래 모름둥. 우리 거기서 하마터면 몰살을 할번했쓰꾸마. 일본이민단하구 같이 있다가.... 마침 오인이라구 허는 사람이 나타나 못그러게 해서 구원이 된게꾸마. 듣자니 조선사람이라는데 낯이 어떻게 생겼는지 하느님같이 고마분 분이지.》     민호는 동포들이 자기가 해놓은 일을 공으로 여겨주면서 잊지 않으니 고마웠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또한 혼란스러운 이 세월에  딴심보를 품은 자들이 조선사람을 얼구이즈(二鬼子), 즉 두 번째 일본놈이라면서 무지한 한족들을 선동하여 무시무시한 어떤 거조를 낼것만 같아서 은근히 근심스럽기도했다.        올때 장평보고 말을 건사해달라고 맡겨둔 일이 있어서 민호는 태평진에 이르나 그를 찾아 곧추 치안대로 갔다. 위삼포가 조난당한 예전의 유지회접대실이 지금은 치안대실로 사용되고 있었는데 민호는 거기서 뜻밖에 자기를 마중나온 향란이를 만났다.    《원 올사람 오잖을라구.》    《이게 며칠인가요. 듣자니 지금 사처에서 도적이 끓는다는데..... 건데 얘가 누구의 앤데 안고와요?》    《우리 애지. 오다가 주었소.》    《무슨소린지.... 롱담작작해요. 애가 귀엽게 생겼네요.》    《롱담아니야. 얜 내가 주은애요. 그렇지, 성국아? 네가 말해보렴. 믿질 않는구나.》     이때였다. 옷입은 주제들이 람루하긴 해도 끌끌한 사나이 스믈여섯이 욱 쓸어들어 오면서 불렀다.    《오인형님!》    《엉!?....》     민호가 고개들어 보니 그들은 다가 전에 염왕산에서 휴척을 같이해왔던 류자들이였다. 너무나 뜻밖인지라 민호는 혼을 잃은 사람같이 어안이 벙벙해지고말았다.    《아니 이게 꿈이냐? 생시냐? 너희들은 엽때껏 어데 있다가 이렇게 나타느는거냐?》    《하하하!.....》     모두 집안이 떠날갈지경 일장의 폭소를 텃치였다.     향란이가 웃다말고 알려주었다.    《이분들은 오인만나러 왔어요. 여게와서 기다린지가 벌써 닷새째 되는걸요.》    《나를 기다렸어? 하하하!....》     그제야 민호도 소리애여 웃으면서 하나하나 눈주어 다시봤다.     26명중 15명은 마수재를 따라서 목청에 가마마스러 갔다가 살아난 류자들이고 11명은 민호를 따라 화금에 갔다가 포위에 들어 싸운 끝에 거기를 뚫고 나와 염왕산까지 들어가놓고 다시 사지판에 들었다가 겨우살아난 류자들이였다. 그들은 다가 여지껏 장광재령의 평정산(平頂山)과 로독정(老禿頂)에 숨어서 원시인같이 지내다가 우연히 서로 만난것이고 이제야 일본이 망한것을 알고 버덕으로 나온것이다. 실로 숨이 질긴 기구한 행운아들이였다.    《오인형님, 우린 처음에는 저마끔 흩어졌다가 하나둘 만나고 만나다보니 지금은 보는바와 같이 이렇게 대오가 된겁니다. 어떻게 살았겠습니까, 료략질을 내놓구는.》     여럿중 전에 제2련에서 패장노릇을 했던 두지개(杜之開)란 류자가 이러면서 마침 오인도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고 왔노라했다.     그들은 다가 염왕산의 포토우두령이 태평진에 나타나 일본군의 무기고를 털었다는 소문을 듣고서는 정녕 그렇다면 그건 바로 오인 정민호일것이다, 그가 여직 살아서 동산재기(東山再起)를 하는 모양이다 하면서 급급히 달려왔다고 한다.     민호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예전에 오군자두령질을 할 때 어느덧 나도모르게 급인지풍(急人之風)이 있는 협객으로 이름나더니 이제 또 그모양이 되는가, 아무튼 이것들이 나를 믿고 찾아왔으니 버리지는 못하겠구나.      《이 오인이 본래는 고향돌아갈 생각이였다만 지금은 가지 않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내가 주어 온 이 애를 보아라. 부모가 악당의 칼을 맞아 사고무친한 고아로 되고말았다. 누가 이렇게 만들었는지 아는가. 호덕화 놈이다. 이건 내 눈으로 친히 본거다.》    《아, 호덕화! 오인형님이 그래 그놈을 봤단말입니까?》     호덕화의 이름이 나오자 류자들은 모두 눈에서 불이 일었다.     이미 향란이로부터 염왕산이 괴멸하게 된것은 호덕화가 변절하여 길잡이를 서줬기 때문이라고 들었던것이다.    《그놈은 철천지 원쑤다!》    《그놈을 꼭 잡아야 한다!》     스믈여섯 류자는 모두 한결같이 웨치면서 이를 갈았다.     민호는 속으로 됐구나 됐어 너희들의 가슴속에 복수가 불타고있으니 됐구나 됐어 하면서 그들을 향해 단호히 말했다.    《악당의 귀축같은 만행을 저주하고 증오한다면 그것은 품이 서는것을 의미한다. 여기 우리들 중 누가 이제 호덕화모양으로 악행을 하려는 사람이 있겠는가. 나는 없을줄로 믿는다. 그것이 죄악이란걸 안다면 절대하지 않을것이다.》    《옳은 말이요! 우리가 악당으로는 되지 않을것이요!》     누군가 부르짖었다.     민호는 들피지고 강강한 모습들을 보면서 한결 정중하고도 박력있는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참으로 감사한 말이다.... 그러길래 이 멋으로 사는건 인간의 도리가 아니다.... 목숨을 초개같이 알되 그것을 헛되이 던져서야 되겠는가. 삼생의 죄를 씻기 위해서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의로운 노릇을 해야한다.... 지금 혼란한 시기를 당하여 불쌍한 생령들이 도탄에 빠지고 있다. 우리는 그들을 구원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과 죄가 맞붙는 싸움을 해야한다. 우리가 항일을 한것 처럼.》    《우리는 오인형님의 지시를 받겠습니다!》     류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웨치였다.       이때 장평은 제 일을 보느라 어디에 나가서 없고 향란이는 민호가 주어온 아이를 데리고 놀았다. 이미 석녀로 되어버리고 만 향란이는 이젠 아이를 밸 수 없는지라 남의 아이라도 하나 가져다  길러볼 생각이였으나 민호의 생각이 어떤지 몰라 여직 입을 열지 못하였던것이다. 한데 오늘 뜻밖에 민호가 아이를 하나 안아왔으니 차라리 잘된것 같았다. 향란은 무당절반 의사절반 되면서라도 내가 이 아이를 길러 내 자식으로 만들어보리라 맘을 먹었다.       《본인은 이곳 유지회사람이요. 당신들 중에 누가 두령인가?》     웬 사나이가 곁다리 둘을 데리고 나타나 집안에 모인 사람들을 향해 말을 걸길래 눈여겨 보니 면목있는자였다.     저 피자놈을 내가 또 만나게 되는구나!.... 향란이는 숨결이 거세여지면서 젓가슴이 오르내렸다. 당장일어나 요정내고싶었다. 내가 그때 저자를 아예 없애버렸어야 옳았는데....     기름을 바른것 같이 윤기나는 까만 팔자수염이 뱁새눈과 강마른 얼굴을 장식해주고 있었다. 선량한 티라곤 손톱만치도 없이 매끄럽게만 생겨먹은 그자는 언젠가 향란이가 아버지의 산소에 분향을 하려고 여기에 왔다가 사진을 가지고 뒤를 따르기에 철채찍을 휘둘러 꼭그려뜨렸던 그 둘중의 한자였던것이다. 그는 아직 향란이를 알아본것 같지 않았다.    《저분이 우리의 두령이요, 왜그러오?》     두지개가 턱짓으로 민호를 가리켰다.     태평진유지회의 사람이라는 그 팔자수염은 민호를 한참이나 눈박아보고나서 머리를 다시돌려 두지개를 보며 말했다.    《오, 임자로구만. 십년전에 여게와있지 않았는가?》    《맞소 맞아. 나 여게와 있었어. 메기눈 작아도 볼건 다 본다더니.... 건데 온데는 는 어쨌단말이요?》     도지개의 멸시담긴 언사에 팔자수염은 이마살을 찌프렸다. 그의 그 가느다랗게 치째진 뱁새눈은 넌 불청객이야 이놈하고 내쏘는것 같더니 입에서 욕이 나갔다.    《이 토비놈아! 사단을 일으키고 간 일을 벌써잊었냐. 낮가죽 가려운줄도 모르구 또 와서는....흥!》     용강이를 따라서 들어왔다가 가버린 일을 두고 하는 말이였다.     도지개가 욕을 먹고 가만있을리 만무였다.    《뭐라, 내가 낮가죽가려운줄도 모른다?.... 당나귀입술이 말의 입에 맞지 않는거야. 누가 할 소릴 누가 해?》     팔자수염은 이쪽이 배포유한데다 모두들 자기 하나를 쏴보는지라 그만 움이 질려 말을 더 못하고 턱만 까불었다.     향란은 그를 보면서 지난때의 일을 다시금 후회했다. 왜놈들은 망해서 쫓겨났다. 하건만 그놈들한테 붙어서 피자노릇을 하던 저따위놈들은 남아서 주인행세를 하자고 드니 한심하구나. 내가 그때 저놈을 아예 없애버렸어야 옳은건데 과연 잘못했구나.     향란이는 팔자수염을 이번까지 세 번째 본다. 첫 번째는 아버지의 묘에 분향하러 왔을 때고 두 번째는 사진사 왕아명을 찾아왔을 때다.     그날 한낮때였다. 향란이가 말에 안장을 지워갖고 초옥서쪽에 있는 개울가로 끌고 가 물을 먹이고있는데 소춘매가 어느새 알고는 달려와 걱정했다.    《시누이 그냥 가려오. 가지말란데두 그러네. 시누이를 빼앗겨버린 그놈들이 다리가 졸아붙었다구 가만있을가, 원. 어떻게 하나 붙잡자고 눈에 쌍불을 켜고있을건데.》    《이런것 저런것 무서워 주저하구서야 어떻게 산채를 나가며 내가 어떻게 위씨가문의 딸노릇을 할가. 날 어디 붇잡아 보라지.》     향란은 이러면서 고집스레 말을 타고 태평진에 왔던것이다.     해가 서산에 넘어가 땅거미지기 시작했다. 이 시각을 맟춰서 온 향란이는 그때도 말을 성밖의 그리 멀지 않은 밭곁의 풀밭에다 몰아넣어 저절로 풀을 뜯게 해놓고는 성내로 들어왔다. 향란이는 먼저 사진사의 집을 찾아가기로 맘먹었다. 지지당부했건만 사진을 내돌려 자기를 위험에 처넣은 그를 살려두지 않으리라했던것이다. 등잔불을 켠 집들은 창문이 밝았다. 거리에 가로등이 설치되였어도 을 지원하느라 전기를 절약하라면서 켜지 못하게 했던것이다. 성안이 어둡건 환하건 향란은 자기가 활동하는데 크게 영향될 것 없다고 생각했다. 담이 그만큼 커있었던거다.     사진관 바로 맞은켠에 가게방이 하나 있고 그 가게방과 이웃하여 협착한 공간을 리용하여 절름발이 신기료가 신깁는 방을 꾸려놓고 있었다.     향란은 거기로 가서 절름발이와 마즌켠 사진관 사진사네 집이 어디에 있는가고 물어봤다.    《아주머닌 어디서 왔소?》     신기료는 빤히 올려다보면서 되묻는것이였다.     《륙도구에서 왔어요.》     향란은 거짓말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먼데서 헛걸음했구만.》    《왜서요? 사진사가 집에 없는가요?》    《저걸 보시오. 벌써 나흘째나 문이 꾹 닫겨있다니까요. 아명은 어디 외출을 한게 분명하지.》    《그가 어디로 외출했을가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소. 알겠거든 댁네하구나 물어보슈.》    《아니 그런데 저....》     향란은 어쨌으면 좋을지 궁리가 미처돌지 않아 잠시 망설이였다. 그러다가 그저는 돌아갈 수 없어서 물어보았다.    《그래 집은 어딘지요. 그가 없으면 댁네라도 만나봐야겠어요.》    《저 옆쪽에 골목있잖우. 저기루 가서 왼편으루 돌아서면 벽돌담이 있는데 널문을 했지유. 거기루 들어가면 됩니다.》     그런즉 사진관이자 곧 저택이 되는 셈이다. 향란이가 절름발이 시키는대로 큰길을 건너 골목을 돌아가 보니 과연 한길되게 쌓은 벽돌담이 나지고 널대문도 있었다. 한데 대문을 열자고 보니 밖에다 자믈쇠를 놓은채 그 집은 고즈너기 어둠속에 잡겨있었다.     그자의 녀편네도 없단말인가? 요렇게 공교로울 변이라구야 내가 공탕을 하다니. 염왕산 류자들은 강탈을 해도 여지껏 주인없는 집은 침범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는건 비겁한 자의 졸렬한 행동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향란이는 신기료를 다시찾아갔다.    《왜 집도 비였소?》     녀인이 인차돌아오는것을 보자 그가 먼저물었다.    《대문을 잠갔네요.》    《그러면야 복장점에서 안돌아온게지. 거기나 가보오.》    《복장점이라니요?》    《아니 모르는가, 아명은 돈많이 벌어 복잠점차린걸.》    《그런가요. 그렇다면 운이 튼 사람이네요. 사진관을 차렸겠다 복장점을 차렸겠다. 어쩌면 복이 그리두 굴러들가.》     향란이는 장탄설을 늘여놓다말고 그가 알려주는대로 사진사가  차린지 그 복장점을 찾아갔다. 멀지 않았다. 남쪽으로 좀 더 나가니 간판을 내건 복장점이 나졌다. 사진관을 차려 돈을 얼마나 많이 벌었으면 이토록 남이 없는 세를 내며 살가. 태평진에는 복장점이 여러개있었다. 향란은 전에 자주다녀서 다 알고있지만 새로 생긴 이 복장점은 처음와보는것이다.     카텐을 쳐서 창문이 그리 밝지 않을 뿐 불을 켜놓았으니 안에 사람이 있다는걸 말한다.     《그렇지, 내가 빈손으로는 돌아가지 않게 됐구나.》     향란이는 웃음이 절로흘러나왔다.     사위가 조용했다. 향란은 미리준비해갖고 온 검은천으로 복면하고 문가로 다가갔다. 귀를 기우렸더니 안에서 사람의 말소리가 도란도란 나고 있었다. 혼자서 중얼댈리는 없는것이다. 하나는 여자목소리고 다른 하나는 남자목소리였다. 사진사가 출장을 했다니 저년은 필시 다른사내와 마주하고있으리라.     도란도란 나던 말소리가 갑자기 웃음으로 바뀌면서 높아졌다.    《아유 간지러워라! 호호호....》    《흐흐흐....》     둘은 분명 그짓을 하고 있었다. 집안으로부터 나오고있는 닉음(溺音)은 당장뛰여들어 강탈을 하려던 녀인의 의지를 뒤흔들었다. 향란은 내가 이럴때 뛰여드는건 남의 은사를 휘젓는 갈개꾼짓이다. 참자 조금만 더 참자했다.     이윽하여 조용해졌다. 아무소리도 나지 않았다. 이제는 끝난모양이다. 한데 사나이가 거기서 얼른나오지를 않으니 향란이는 초조해났다. 어떤 자식인지 남의 녀편네와 아예 딱 붙어서 이 밤을 보낼셈인가. 그러면 안되겠는데. 향란이는 집안정형을 알고싶었다. 그래서 그 복장점의 다른 한 창문에 가보니 마침 카텐의 한쪽이 덜가리워져서 안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사진사녀편네는 드세게 찧어댄 방아공이에 열이 난 방아확을 식히느라 그러는지 알몸뚱이로 탄자를 편 바닥에 반듯하게 누워있고 사나이는 옷을 입고 있었다.     향란이는 그 사나이가 옷을 다 입고나서 몸을 이쪽으로 돌리는 순간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랬다. 팔자수염을 괘씸하게 자래운 그는 언젠가 사진을 가지고 성밖까지 뒤를 밟아나왔던 자였던것이다. 자신도 알지 못할 감정이였다. 향란이는 다른때는 늘 내가 응당 그놈은 죽여버렸어야 했을걸 하면서 후회했건만 정작다시보니 이상하게도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      팔자수염은 거기를 나와 어딘가 어둠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안에서 돌차간 인기척이 났다. 향란이는 녀인이 문을 잠그자고 일어난다는걸 제꺽알아챘다. 어물거릴 때가 아니였다. 그녀는 복장점의 문을 뚝 떼고 안으로 성큼 들어서고있었다.    《악!》     사진사녀편네는 복면한 사람이 귀신같이 나타난지라 그만 혼비백산하여 숨넘어가듯 단마디 비명만 내지르곤 털썩 주저앉았다.    《발정을 한 계집년!》     향란은 한마디 욕을 해놓고 불빛에 번득이는 비수를 코앞에 들이댔다. 아직 몸에 실한오리도 걸치지 않은 녀인은 고양이한테 잡히운 쥐모양으로 바들바들 떨었다. 목구멍이 꺽 메여 소리를 지를 수 없고 오금이 졸아들어 달아날 수도 없었다.    《여게 도루누웠거라, 어서! 일어나면 없애치울테다!》     넋이 떨어진 녀인은 목숨이 경각에 달린것 같아 방금 팔자수염과 극락을 보았던 탄자우에 다시눕는 수밖에 없었다.     향란은 그녀가 눕자 진렬장에서 까마반들반들한 수달피목달개를 단 값진 녀인용털가옷을 두벌꺼냈다. 털세타 네벌과 남성옷 두벌 그리고 남성용과 녀성용적삼도 각각 몇벌씩 꺼냈다. 그런 후 그녀는 그것들을 꾸러미에 싸갖고 나와버렸다.      사진사는 제 복장점을 털리우고서도 경찰에 보고하지 않았거니와 이웃과도 까딱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것은 그번 략탈이 어느 혐원이 있는 악한 녀인이 제 안속을 채우느라 계획적으로 남의 은사를 들춰낸것이라 여겨지는 한편 이 일을 내놓고 떠든다면 도적도 못잡고 공연히 추문만 퍼져 세상사람들의 조소와 비난을 받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때로부터 향란은 정식으로 손을 펴기 시작했던것이다.     이듬해의 청명절이 돌아오자 향란이는 제 아버지의 산소에 참배하러 간 기회에 두 번째로 그 복장점을 털어냈다. 그번에도  사진사녀편네가 면바로 집에 가지 않고 복장점에 있었는데 향란이는 수건으로 그녀를 아갈잡이를 시킨 후 침대에 꽁꽁 묶어놓고는 상점안의 옷들을 걷어 트렁크 두 개에 골똑넣어갖고 돌아왔다.     그번까지 당하고서야 사진사네는 경찰에 보고했고 그와 함께 태평진에는 흉맹한 녀강도가 있다는 소문이 쫙 퍼졌다. 그게 누구일까고 말이 많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리저리추측만 할 뿐  근거가 똑똑치 않으니 누구나 명확히 알아맞히지 못했다. 태평진에 복장점이 여럿되는데 이 녀강도가 사진사네 한집에만 달려들고 다른집은 건드리지 않는게 이상했다. 그러면서 다른 또 한가지는 일본사람은 보는족족 해치니 더구나 수수께끼로 되고 있었다.     지난해의 초겨울. 향란이는 사진사의 집을 세 번째 습격했다. 그번은 그녀가 략탈을 목적한것이 아니라 사진사를 아예 없애버리려 한 것이다.     사진사 왕아명이 마침 집에 있었다.     그의 녀편네는 친정에 가고 없었다.     그날밤은 웬 일인지 전기를 주었다. 그래서 집집마다 오래간만에 전기불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불빛이 밖으로 한점도 새여나가서는 되지 않았다. 기실은 이것이 방공련습이였던것이다.    《엑크!》     사진사는 복면한 녀강도가 집안에 뛰여들자 궁둥이를 총에 맞은 노루모양 풀쩍 뛰였다.    《도, 돈을 줄께!.... 여, 여게있어!.....》     사진사는 벌벌 떨면서 뒷걸음쳐 벽가에 놓여있는 책상에 다가가 뻬랍을 뽑고 손을 넣었다.    《허튼수작말어!》     향란이는 어느결에 허리에 감고있던 철채찍을 풀어 그자의 팔목을 후려갈겼다.     권총이 땅에 떨어졌다.     향란이는 철채찍을 휘둘러 그를 한쪽구석에 몰았다.     어께와 목이 찟기운 사진사는 울상이 되여 원성을 텃드렸다.    《네년은 대체 누군데 우리만 그냥 못살게 구느냐, 엉?》    《내가 누군지 아직도 모르겠냐, 이 한간놈아!》     향란이는 유연한 태도로 낯을 가리웠던 수건을 벗었다.    《이젠 알만하겠지?》    《아, 알만하오. 자, 잘못했소.》     향란이는 가증스러은 그자를 향해 경멸을 보내였다.    《더러운 피자놈! 잘못했다면 다냐. 사진사의 탈을 쓰구 왜놈의 첩자질이나 하고....네놈은 대체 몇사람이나 잡아먹었냐?》     자기가 이미 용서받지 못할 짓을 했고 피하지 못할 사지에 들었음을 깨달은 사진사는 발작적으로 고함을 내질렀다.    《강도야!》     향란이는 철채찍으로 그의 입을 갈겨놓았다.     사진사는 두손으로 얼굴을 감싸안고 딩굴면서 피를 억물었다.     누군가 잠그어 놓은 앞문을 발로 걷어찼다.    《그게 누군가요? 왜 그 모양인가요?》     향란이가 화난 소리를 질렀다.    《무슨 소리요. 소래기는 왜 질렀소?》     방공훈련에 동원된 순경이였다.    《소리라니요, 누가 소리쳤게?》     순경은 여자의 목소리라 뭐라고 구시렁대면서 가버렸다.     향란이는 상우의 재떨이곁에 있는 석냥갑이 눈에 띄이자 그것을 손에 쥐였다. 뻬랍을 뒤지니 인화지와 사진건판들이 가득나왔다. 그녀는 쓰레기통에 구겨 던진 종이와 신문지들을 커다란 그림병풍가에다 모아놓았다. 그리고는 그 우에다 뻬랍안의 것들을 마저털어 놓은 후 석냥을 그어댔다. 불이 당기였다. 향란이는 사진사가 바당에다 떨어뜨린 권총을 주어 들고 뒷문으로 해서 밖으로 나왔다.     달빛이 흐르는 밤은 고요했다.     태평진을 나와 마상에 올라앉아 뒤돌아보니 성안에서 불길이 일기 시작했다. 향란이는 소란해지기 시작하는 태평진을 뒤에 남기고 말을 달려 그날밤으로 염왕산에 돌아왔던것이다.     사진사의 죄는 파라척결(爬羅剔抉)했지만 특무녀석의 죄는 그대로 숨겨져 있었다......    《여보시오, 무슨일있습니까?》     민호는 입을 열고 그 팔자수염과 물었다.    《당신이 두령이요?》     팔자수염은 이켠을 다시보며 얼굴에 노기를 피웠다.     이 자식이 왜 이모양이냐. 민호는 그를 갖잖게 여기면서 여전한 투로 말했다.    《대체 무슨일인지 어서 말이나해보시오.》    《우리는 당신들을 환영하지 않으니 어서 여기서 가버리란말이요..... 왜 그러겠는가. 그건 이런거야. 염왕산은 전에 여기서 좋은 일 하잖았거든. 원한을 많이 끼쳤어. 그래서 주민들은 환영하지 않는단말이요.》     두지개가 참지 못하고 일어서면서 발끈했다.    《그따위 개나발같은 소리는 작작해라. 이눔의데가 다 뭐야. 우리 위두령은 여게왔다가 눈감았다. 그때 일 우리는 뭐 속에서 내려간줄 아느냐?》     향란이가 격분했다.    《저 미친 녀석을 좀 가르쳐줘요.》     말이 떨어지기바쁘게 류자들이 달려들어 그를 붙잡았다.     이러자 다른 둘은 그만 혼겁하여 밖으로 내뺐다.     류자들은 그러잖아 심심하던 참이라 네놈이 제발로 잘 찾아왔구나 태평진 주민들이 우릴 환영하지 않으면 꼴이 어떻게 되는가를 좀 보여줄테다면서 팔자수염을 몸에 실한오리 없이 쫄닥벗겨 밖으로 내쫓았다. 그리고는 좋다고 손벽을 쳐대며 왁작 웃어댔다.     좀지나니 장평이 일이 났다는 소리를 듣고 헐레벌떡 뛰여왔다.     《너무하오! 너무하오!》     류자들이 그의 말을 문질러버렸다.    《뭐가 너무했단말이냐.》    《너무한게 없다.》    《그만쯤했으니 우린 대자대비를 베푼거다.》     장평이 울상이 되어 알려줬다.    《그게 나의 재종형이요.》    《뭐라구!?.....하하하!....》     류자들은 다가 일순간 멍해졌다가 다시 폭소를 텃치고말았다.    《그런 재종형이 있다고 말이나할게지.》     그저 이런 작난이나 분풀이로 무마해버릴 일이 아니였다.     오늘 이같이 한자리에 모인 가운데는 한때 위용강을 따라왔던 자도 있어서 태평진사람들은 그의 얼굴을 기억하니 자연히 말성이생기기 마련이였다. 염왕산토비는 다 없어졌다더니 어디 그렇지 않구나, 그자들이 뭘하자고 여기에는 모이는가 불만품으면서 불안해 하는 사람이 적잖았던겄이다.     장평은 그래도 주대있는 사나이였다. 그는 종숙이 노여워하건말건 재종형이 욕하건말건 남이야 지벌대건말건 다 꿈만해하면서 류자형제들의 해후의 상봉이니 경축하지 않아서야 되느냐며서 돼지잡고 술받아 연회상을 크게 차려 위로했다.    《스믈여섯에 넷을 가하고 거기다가 나까지 합하면 모두 설흔하나. 염왕산은 아직살아있소!》     장평은 좋아하면서 오늘 이같은 만남은 신불의 덕택이라했다.     그런것 같기도했다. 목에 모두 옛모양으로 부대화상을 걸었다.     장평이 입을 다시열었다.    《오인형님, 지금 염왕산에는 산채도 없잖은가요. 형편이 그같이 좋잖은데 이 동생이 의견을 한가지 내놓으랍니까.》    《말해봐 뭔데?》     민호는 귀가 솔깃해졌다.     장평이 입을 다시열었다.    《내 의견은 이런겝니다. 형님들은 다 여지껏 산속에 갇혀셔 고생많이 했는데 이제는 다시 산에 가지 말고 그냥 여기에 눌러있는게 좋잖은가하는겝니다. 우리 치안대하고 합치든지 아니면 독립으루 되던지 건 맘대루구. 그러면 난....》     두지개가 팔을 홱 저어 그의 말을 잘라버렸다.    《가만, 네 의견은 그래 우리더러 밥을 얻어먹기 위해  태평진보초를 서라는거냐?》     다른 류자들도 굶을지언정 그 노릇은 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관심이 고맙다만 장평아, 우리는 환영도 하잖는 여기에 눌러앉아있을 수 없네라.》    《너나 여기서 대장질을 해먹거라. 우리는 산에 들어가서 다시기국하련다.》     민호와 도지개의 말이였다.     그들은 마음먹은대로 하였다. 연회를 파하자 장평 하나를 내놓고 류자들은 그 자리로 떠나 오인 정민호와 향란이를 따라 염왕산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중앙산채의 페허위에 터를닦고 통나무를 베여 커다란 집 한 채를 지어놓고 어느날 의식을 거행하여 새로 기국했다.     민호는 30명의 류자로 새로 조직된 자기의 이 대오를 라 이름을 달았다.      
156    <<관동의 밤>> 제2부(38) 댓글:  조회:2722  추천:0  2015-02-04
                  38                  염왕산은 옛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게 변해버리고말았다. 하지만 여지껏 상상했던 그것과는 달랐다. 민호는 설계가 독특한 중앙산채를 비롯하여 여덟방위에 나뉘여 앉았던 똑같은 크기의 모양좋던 그 산채들이 다 비행기의 폭격에 날아나고 불타버렸으니 그 페허마다에는 쑥과 잡풀과 나무들이 무더기로 자라나 염왕산은 온통 고총을 방불케 하는 북망산일것이며 보이는것은 류자들의 해골일것이니 귀신이 수파람할것이다. 이젠 영원히 사람의 말소리도 웃음소리도 말들의 투레질소리도 들을수 없고 볼수도 없으리라 여겼는데 정작와보니 그렇지 않았다. 우선 여기에 외롭게나마 초옥 두채가 있어서 아직도 생명이 살아있음을 보여주니 그야말로 상상밖이요 꿈에도 바라지 못했던 기적이였다!     민호는 두 팔을 공중에 뻗어 올리면서 부르짖었다.    《오, 염왕산아! 내가 오기를 잘했구나!》     그의 출현은 적막하고 고적한 이곳에다 커다란 생기와 활기를 부여했다. 제일 기뻐하는 사람은 물론 향란이였다.      민호는 몸을 돌려가면서 휘둘러 보았다. 하나의 의문이 갈마들었다. 왜서 초옥은 한 채 짓지 않고 두채지었을가? 그것도 가지런히 짓지 않고 동안뜨게 지었으니 왜서일가? 다해봤자 사람이 셋인데 왜서?....왕견과 소춘매가 한동이 되어 향란이를 외목낸거나 아닌가?....화목하지 않단말인가?....지금의 모양을 봐서는 그런것 같지도 않은데 도대체 왜서일가?....수레와 쟁기가 눈에 띄였다. 말 세필에  소도 두 마리나있었다. 저것들은 다 왕견이 손수 거두고있을거라고 민호는 생각했다. 각자모두 제살도리를 하겠지만 공동의 생활을 영위코저 제일로심초사를 할건 그래도 왕견일것이다. 그만이 힘꼴쓰는 사람이니까.    《왕형! 왕형은 그지간 수고많고 고생도 참 많았겠소.》     민호가 말했더니 향란이가 곁에서 알려주었다.    《그래요. 우리 여자들이야 밥이나 먹을줄 알지 뭘 알겠나요. 우선 집짓는 일부터 모든 일이 그분의 힘 그분의 손이 안간게 없어요. 지금보이는 터전말고도 저 골안에 있는 밭까지도 거진다 혼자서 도맡다싶이 다루는데요. 이젠 그야말로 실농군이 됐어요.》     왕견이 웃었다.    《어디 나만 농군이 된건가. 다 같이 됐지.》     소춘매가 웃음띤 얼굴로 말했다.    《하긴 그래두 힘든 일이야 당신이 도맡았지. 안그래요? 그럴 능력도 없어갖고 여자치마밑에나 기여드는 남자면야 누가 고와나할까, 아무짝에도 못쓸 그런 남자면 말이얘요. 안그래요?》     모두 하하 웃었다.     향란이 한마디 보탰다.    《우리가 이제는 제 손꿉놀리는 로동자로 변했나봐요.》    《그렇지. 그렇구말구. 가마를 마스지 않아두 얼마든 살아가게 됐으니. 오인 자네두 알다싶히 우리네 이 염왕산에야 짐승이 워낙 많잖은가. 손꼽만 놀리면야 고기도 떨구지 않고 먹지.》     왕견은 자기도 이제는 전에 민호가 하던 모양으로 사냥에 흥취를 붙이였노라 자랑했다.    《거 잘하는구만! 그래야지. 헌데 왕형, 반강자는 하시오?》    《아따, 그걸 왜 안해. 반강자 안하구서야 살멋이 어디있는가. 오인까지 왔으니께 이젠 좋아.》     왕견은 술친구 하나 더 나져 기분이 좋은모양이다.     《그건 우리 손으로 고와요. 순 수수쌀갖고요.》    《그대가 마실 반강자없을가봐 그러나요. 우리 염왕산에 언제 그것이 말라봤게요.》     소춘매의 말 끝에 향란이가 이러면서 제만 부지런하면야 매일 주지육림(酒池肉林)에 묻혀 살아갈 수도 있노라했다. 지금 온 만주백성이 그놈의 성전지원(聖戰支援)바람에 무차별혹사를 당하고있다. 최저의 생존권리마저 잃어가고 있다. 걷어갈건 다 걷어갔고 빼앗을건 다 빼앗아 백성들이 거의 아사(餓死)지경에 이르고있는데 비하면야 여기가 고적하긴해도 편안하고 풍부해서 진짜무릉도원인 셈이 이닌가. 다시생각해봐도 여기로 온것이 명지한 행동이였다.     《오인 이걸 봐. 우리야 아직두 눈을 멀뚱멀뚱뜨구 살아있지를 않어. 신불이 그냥 가호해줄거야.》     왕견이 이러면서 제 목에 걸려있는 부대화상을 매만지다가 고개를 찌붓하고 묻는다.    《거긴 이걸 어떻게 했소?》    《부대화상말이요. 여기를 빠져나갈 때 그만....》    《잃어버렸겠지. 근심말우, 나한테 있으니까.》     민호가 말을 하다말고 꼬리를 흐렸더니 왕견은 그도 자기처럼 그걸 잃었으리라 생각하고 하나주었다.     어느날 중앙산채의 페허를 뒤지다가 그가 즈좡이 생전에 갖고있었던 철궤를 하나 발견했는데 그 안에 류자들의 명부와 함께 부대화상여러개가 고스란히 보관되여있었던거다.     민호는 노랗고 반짝이는 부대화상을 목에다 다시걸었다. 그러고보니 자기는 마치도 산을 나갔던 중이 제 절간으로 다시온것 같고 던져버렸던 옛 생활의 궤도를 다시찾아 들어선 감이였다. 내가 이제 또 토비질을 한단말인가? 그러지는 말아야지, 절대로! 운명이 다할 때 까지 함께 살아가자! 넷이 손맞추어 인간다운 새 생활을 영위해 가자! 현실은 여생을 다시계획하게 하면서 그한테 새 희망을 안겨주고 있었다.     개과천선(改過遷善)이라할가! 왕견역시 자기는 이제 후반생마저 죄로 엮어간다면 죽어서 검림지옥(劍林地獄)에 떨어지고말거라면서 악행만은 더 하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민호는 략탈을 천직으로 삼고 자의로 감행한것은 죄악이였지만 반만항일을 해온것은 공이요 자랑스러운것이니 과거의 죄를 어느정도 미봉한 것으로 된다고 했다. 그랬더니 왕견은 반만항일이 아무리 정당한 것일지라도 이제다시 나가 싸울 생각은 꼬물만치도 없다면서 자기는 죽는 날까지 여기를 떠나지 않으리라했다.     《거야 왕형맘대로하시오, 누가 막을 사람없으니.》     민호는 그런일을 가지고 쟁론하고싶지 않았다.     무정한것이 세월이였다. 향란의 고운 얼굴도 이제는 늙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막연한 기다림에 시달리다보니 눈가에 주름살만 더 늘어났고 말한다. 향란의 이같은 외벌적인 원망이 민호에게는 외려 고맙게 안겨왔다. 자나깨나 이 한 사나이를 잊지 않고 마음깊이 그려온 그 정성이 그지없이 갸륵해서 철석간장도 울릴것이다.     향란은 왕견이나 소춘매와는 생각도 주장도 판판 달랐다. 그녀의 가슴속에는 복수의 일념밖에 없었다. 그것은 여지껏 식지 않고 끓고있는 용암같아서 때가 되면 활화산같이 폭발하는 것이였다. 그녀가 그지간 단창필마로 산을 나간것이 얼만지 모른다. 살인을 무수히했다. 일본사람은 만나기만 하면 죽여버렸다. 군인이건 아니건 가리지 않았다. 지어는 아이까지도 종자를 말려버리겠다며 죽여버렸다. 태평진일대에는 무시무시란 살인안건이 꼬리를 물었고 사람들이, 더욱히는 일본사람들이 공포에 잠겨 떨었다. , 으로 소문이 난 그 살인마가 바로 그녀였건만 경찰은 아직까지도 단서를 잡지 못했다. 눈에 쌍초롱을 켜고 찾지만도 그 정체를 알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염왕산의 녀비도가 아직 살아서 복수를 창궐하게 할줄은 그 누구도 생각못했던것이다.     중국에는 맨발로 있는 자는 신신은 자를 두려워하지 않다는 속담이 있다. 생활이 궁핍해진 향란이는 략탈도 서슴치 않고 감행했다. 그녀가 지금 입고있는 옷으로부터 트렁크세개에 꽉 차있는, 그 철철이 갖추어진 옷들은 다가 그렇게 해서 장만된 것이였다.     일본군은 만주에 들어와 악한 짓을 너무많이했다. 하여 그 벌이 무분별한 복수자에 의하여 지어는 죄없는 이민들에게까지 떨어지고 있었으니 그들로 놓고보면 그것은 그야말로 억울하기 그지없는 일이였다.    《말을 하자면 끝이 없어요. 어디서부터 얘기하면 좋을가요.》     향란이는 자기가 해온 일들을 서슴없이 구술했다.    《나는 갈아입을 옷도 없었어요. 생각해봐여 그렇게 겨우살아난 년이 대체 무슨꼴이였겠나요. 우리가 한데모여 살게 되자 올케가 제 옷을 같이입자면서 먼저 한 벌 주더군요. 가을까지는 그럭저럭 지낼 수 있어도 추운 겨울은 어떻게 보내나요. 올케도 솜옷은 단벌이였죠. 그래서 내가 맘먹고 그 일을 시작한거얘요. 빼앗자, 모조리 빼앗자!.... 나는 처음에는 태평진의 그 사진사의 집에다 손을 댔던거얘요. 어디 맛좀보아라, 난 네놈을 두고두고 녹여낼테다 하고.》    《왜 그하구는 그랬소? 일본사람도 아닐텐데.》     민호는 모르는지라 의아해하였다.    《그놈은 피자예요. 우릴 잡자고들었단말이예요.》     향란이는 언젠가 자기와 소춘매가 태평진에 가 사진을 찍고나서 사진사보고 사진을 딱 두장만 씻고 더는 씻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했건만 사진사가 약속을 지키지 않고 더 씻어서 특무들에게 주어 수사를 하는 통에 하마터면 붙잡힐번했던 사실을 말했다.    《하니까 그자역시 한동아리였다 그거지?》    《그렇지요. 나도 그렇다고 봐요. 안그러면야 왜 그걸 특무한테 줬겠어요. 안그래요? 사진관 간판걸고 그런일해먹는 놈이였죠.》     소춘매가 하는 말이였는데 틀리지 않았다. 사진사역시 일본특무였던것이다. 복수는 자비가 아니였다. 민호는 향란이가 시원한 노릇을 했다고 했다.       달이 차면 기울기 마련. 침략자의 운명도 끝날 때가 돌아왔다.     민호가 염왕산에 온지 아직 4개월이 채 안되는 8월 9일 축시경. 아직 모두 잠속에 있는데 우릉우릉 소리났다.     《어마나! 비행기!》     향란이가 잠결에 비행기소리를 듣고 소스라쳐 깨여났다.     민호는 그녀가 들깨우는 바람에 맨 속곳바람에 밖으로 나왔다.     날이 푸름푸름 밝기시작하는데 비행기 다섯 대가 염왕산 상공을 가르면서 서쪽 어론가 날아가고 있었다.    《저것이 왜 또 올가?》     한번 되게 당해본 향란이라서 겁부터 앞서는 모양이다.    《들어가기요. 아까운 폭탄을 여기다 떨굴가. 그러진 않을걸.》     민호는 말을 이렇게 했지만 향란이를 데리고 들어오면서 저것이 대체 무슨 비행기일가 하고 속으로 점쳤다.     이틑날 한낮에는 20여대의 비생기가 역시 동쪽에서 날아와 서쪽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무슨 비행길가요?》    《일본공군이 련습하는게 아니여?》     소춘매와 왕견이 주고받는 말이였다.    《왜서 빨간 동그라미를 안그렸네요.》     향란이는 자기가 이전에 본 비행기와 다름을 보아냈다.    《저건 쏘련비행기같아. 틀림없이 쏘련비행기야!》    《그렇다면?.....》    《전쟁이 붙은게지. 쏘련군이 쳐들어오는게지. 두고봐.》     민호는 자기의 판단이 맞다고 단정했다. 만주국의 상공에 뜬 비행기의 기체에 빨간 동그라미를 그려놓치 않았으니까.      그 이틑날도 그런 비행기가 날아갔다.    《무슨 일이 났다는데두. 내가 나가봐야겠어.》     민호는 산속에 이모양으로 그냥 들어앉아있다가는 천지개벽을 한대도 모르겠다면서 말을 타고 산을 나갔다.     그는 산에서 나오기를 잘했다. 과연 쏘련군이 만주로 쳐들어왔던것이다.     두해전 독일이 쓰딸린그라드전역에서 대패한 것을 계기로 제2차세계대전의 종국은 전쟁발동국들의 파멸로 막을 내리기 시작했던것이다. 그해의 7월에 무쏠리니가 실각되더니 9월에 이딸리아는 련합국에 항복하고말았다. 전해의 1월에 쏘련군이 폴란드에 진입, 6월에는 련합군이 북불(北佛)에 상륙했고 7월에는 사이판섬에 있던 일본군이 전멸당했으며 도죠내각이 총사직했다. 그리고 11월에는 미국의 B29비행기가 북규슈와 도꾜를 폭격했다. 이해에 들어와서는 2월에 미군이 류오지마(硫黃島)에 상륙, 그곳에 있던 일본군을 전멸했고 4월에는 쏘련이 일쏘(日蘇)중립조약의 불연장을 일본에 통고함과 동시에 미군이 오끼나와도에 상륙했고 5월에는 독일이 련합군에 무조건항복했거니와 일본의 도꾜, 요꼬하마 등이 미군의 대폭격을 받았다. 6월에는 오끼나와도에 있던 일본군 20만명이 전멸당했거니와 8월잡아서는 미군이 히로시마와 나까사끼에 원자탄을 투하했다.      엇그저께, 즉 8월 8일 쏘련외무상 몰로또브는 일본에 향해 일본시간으로 9일날 0시부터 쏘일 두 나라지간에는 전쟁상태에 처한다고 대일선전포고를 했던것이다. 이리하여 와실리예브스끼원수가 지휘하는 쏘련원동군 150만은 1만여리의 전선에서 14년간이나 만주에 도사리고 있은 일본관동군에 향해 전면적인 대진공을 개시한것이다.     태평진에 거진이르러 민호는 문득 길서쪽 저기 낮다란 산기슭에 있는 위삼포의 묘를 향해 긴칼차고 누런 장교복을 입은 자가 녀인과 아이 둘을 데리고 가는것을 발견했다. 녀인이 입은 옷맵시를 보고서 그는 그것이 일본장교의 일가족임을 알아맞혔다.     장교가 앞장섰는데 걸음걸이에 따라서 옆꾸리에 찬 닛본도가 거들거렸다. 크고 실팍한 체격에 얼굴은 털보같아 보이니 그는 아마도 오도야마일것이다. 한데 저자식이 제 식솔데리고 저기는 왜 가는걸가?.... 괴이쩍었다. 그저스치고 지나버릴 일이 아닌지라 민호는 말을 세우고 지켜봤다. 사이거리가 그리 멀지 않았고 주위에는 그들 외에 아무도 없었다. 저켠에서 그를 발견했으련만 왜선지 별다른 반응이 없다.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것 같기도했다.     그 나지막한 산기슭에 드나노나 묘가 하나밖에 없다. 풍수를 보는 사람이 언제 그 산은 좋지 않다고 했었는지 태평진사람들은 묘지를 멀리쓰면썼지 거기로는 눈길조차 돌리지 않던차 염왕산의 토비까지 묻히게 되니 더욱 꺼려하면서 발길을 얼씬하지 않았다. 한데 그런곳으로 저 일가족은 왜 찾아가는걸가?      녀인이 자기가 안고간것을 사나기가 가리키는 곳에다 펴놓는다. 아마 탄자일것이다. 녀인은 거기에다 아이 둘을 앉히고나서 무릎꿇고 두손모아 마주서있는 사나이에게 무어라 빌었다. 그러자 사나이는 욕지걸이를 해댔다. 녀인은 무릎꿇고 고개를 푹 숙인다. 사나이가 닛본도를 쭉 뽑더니 아이들의 목을 내리쳤다. 그리고나서 이어 칼을 번쩍 날려 녀인의 목까지 베여버린다.    《아니 저 지독한 자식이!》     소름이 끼치는지라 민호는 두눈을 눈을 딱 감았다.     민호가 눈을 다시뜨고 보니 일본장교는 남쪽켠을 향해 무릎꿇고 앉아 무어라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소리를 지르면서 칼로 제 배를 가르고 쓰러지는것이였다.     《오도야마야, 오도야마! 네 끝장이 이렇구나!》     민호는 오도야마일가족의 자살을 확인하고나서 말머리를 태평진쪽으로 다시돌렸다.     온 태평진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장교를 잃어버린 일본군은 마치도 대가리떨어진 파리모양으로 갈팡질팡했다. 한데도 주민들은 아직도 웬 영문인지를 모르고 있었다.     이런판에 민호가 나타났다.    《오인형님!》     사나이 하나가 높은 목소리로 부르면서 달려왔다. 고개돌려 보니 장평이였다. 가량가량한 얼굴에 오똑 일어선 콧날, 어젯날의 몰골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아니 넌 장평이 아니냐! 내가 너를 여기서 만나다니!》     민호도 그를 보자 무척기뻣다. 여기서 그를 만날줄은 꿈에도 생각못했던거다.    《오인형님, 형님도 나처럼 넘어가지 않으셨구만! 명이 기니까 우린 이렇게 다시만지요, 형님! 안그런가요, 형님!》     장평은 너무도 반가와 민호의 손을 잡고 놓지 않았다. 그는 민호에게 자기는 종숙이 되는 사람이 이 태평진에서 협화회의 회장노릇을 하길래 그 덕에 여지껏 무사히 지냈노라했다.      한창 복새통이 벌어지고있는 판이라 길게 얘기할 새도 없었다.    《오인형님, 그런데 저것들이 어째서 저럽니까?》    《야 이 아득신아! 보고도 모르겠냐. 왜놈이 망한다, 망해! 저 일본놈들은 도망치자고 저러는거다!》    《아, 글쎄!.... 건데 오인형님은 어데계시다 나타난겁니까?》    《난 지금 염왕산에 있다. 거기 너의 향란누나랑 소춘매아주머니랑있고 왕견형님이랑 같이있었네라.》    《아, 그렇습니까! 그런걸 난 여직몰랐지!》    《난 비행기 뜨니 감각이 달라서 나왔네라. 한데 나오고 보니...나오길 잘했지! 하마터면 왜놈망하는 꼴을 구경못할번했구나.》    《날 데리고가요. 나도 산에 갈텝니다.》     장평은 민호를 만나고 보니 떨어지고싶지 않아 굳이 따라가겠노라했다. 민호는 안된다 가도 우선 잠자리가 없으니 훗날 다시보자면서 그를 얼리였다.     《오인형님! 저것들이....》    《엉?.... 그렇지!》     창황히 도망치고있는 일본군인들 쪽으로 눈길을 다시돌린 민호는 한가지 궁리가 번개같이 머리를 스쳐 부르짖었다.    《우린 모두 밥통들이구나! 너도! 나도!.... 빨리! 지금 곧 네 친구들을 모이게 하라! 저놈들이 창고에 불을 지르기 전에 창고를 털어내자! 빨리!》    《참 그래야겠구만!》     장평은 정신을 펄쩍 차리면서 어디론가 뛰여갔다.     과연 생각과 같이 일본군은 창고에다 불을 지르기 시작했다.     장평이 뛰여가며 소리치니 일부 미런하고 우둔한 자들이 불길이 일기시작하는 창고로 무모하게 달려들다가 일본군이 갈겨대는 총에 맞아 번져졌다. 그제야 사람들은 그쪽으로 더 가지 않고 모여 장평이 이끄는대로 민호쪽으로 달려왔다. 100여명 잘되였다.     민호는 그들을 향해 웨쳤다.    《살겠거든 맹탕덤비지 말고 내 지휘를 따르라! 우리는 함께가야한다! 가자, 먼저 무기부터 털자! 손에 총이 있어야 한다!》     누군가 일본군의 무기고가 서남쪽 포대가에 있다고 알려줬다.    《길을 안내하라! 자, 모두 함성을 지르면서 가자!》    《와아!!!....》     모두 고함을 지르면서 말탄 민호의 뒤를 따라 달려갔다.     일본군은 무기고에다 불을 지르려다가 갑작스레 터진 함성을 듣고는 쏘련홍군이 쳐들어오는줄로 알았던지 그만 내빼기시작했다.     전해에 태평진앞에 멀리 벌목장으로 들어가는 한갈래의 협궤철로가 부설되였는데 일본군인들이 더러는 거기서 기차를 기다려 타고가려다가 성안에서 터진 웨침소리와 총소리를 듣고는 그만 창황히 줄행랑을 놓았다.     태평진에 일본군창고가 세개있었는데 두개에 불이 달리고 하나는 달리지 않았다. 무기고를 털어 손에 총을 쥐니 담이 커진 사람들이 서슴치 않고 불이 붙고있는 창고에 뛰여들어 속을 털어냈다. 사탕포대, 과자포대, 비누상자.... 멜만한건 메고 질만한건 지고 들만한건 들고 닥치는대로 보이는대로 갖고 달아났다.     민호는 무기고에서 새 38식보총 두자루와 탄알 한상자를 얻고나서 닉크샤크 두 개에다 통졸임과 과자, 사탕 등 먹을것을 쑤셔 넣고 탄자를 꿍쳐 말잔등에 지워갖고 태평진을 나왔다. 그는 위삼포의 묘에 들려 거기서 자살한 오도야마의 군도와 권총까지 마저가지고 염왕산으로 급히 향했다. 광복이 되고있는 소식을 어서빨리 산속사람들께 알려주고싶었던것이다.     아, 이날이 돌아오기를 그 얼마나 오래기다렸던가!     그가 갖고 온 소식, 그가 갖고 온 물건들은 그가 어서돌아오기를 기다리고있었던 사람들에게 열광적인 기쁨을 안겨주었다.    《왜놈들이 망한다구!?》    《아이구 좋아라!》    《그봐요, 나도갔을걸 그랬지.》     왕견도 소춘매도 희색이 만면했고 향란이는 기뻐하면서도 민호가 자기를 데리고 가지 않았다고 도달대며 불만이였다.     일본이 망하면 만주국도 따라서 망하게 될 것이다. 우리 조선은 어떻게 될가?....흥분과 환희에 잠기기 시작한 민호는 하루가 삼추같았다. 하여 그는 태평진에 갔다가 돌아온지 3일만에 다시 산을 나오게 되었다. 그는 먼저 향란의 동의를 얻으려했다.    《내가 아마도 나가봐야겠소.》    《같이가자요. 나도 나가보겠어요.》    《제발 그러지 말고 가만있소. 내가 한고패돌면서 먼저 형세를 알아볼테니 아직은 가만있으란말이요. 돌아와서 산을 나가던지 앉아있던지해야지, 안그렇소?》    《이번에 가면 어디로 가겠나요?》    《화남에.》    《거기루는 왜서요?》    《내가 접때두 말하잖았소, 태극기를 맡기고왔다구. 》    《그게 뭐 그리두 급한가요?》    《빨리찾아와야지. 난 광복이 되는 날에 그걸 들고 독립만세를 부를테요!》    《그리구는요?》    《그리구는 고향에 돌아가지.》     햐란이는 말을 더 하지 않고 눈을 살풋이 내리깔았다.     그제야 민호는 제 감정에만 사로잡히다보니 옆사람은 생각지 않았음을 느끼였다. 물론 고향에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한다면 자기 하나를 믿고 정과 마음을 다 쏟아 온 이 녀인은 어떻게 해야하는가, 정부기관의 혼인증서가 없을 뿐이지 여직 부부나 답지 않게 살아온건데 그녀의 처지도 응당 생각해줘야 할것이다. 한데 그것도 생각지 않았으니 소홀해고 신중치 못한것이요 지어는 무시하는 것으로밖에 되지 않는다. 무론 이 시각 그 문제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이 돌지 못한것도 있지만.     민호는 미안해서 너스레떨었다.    《부인님! 가슴을 풀떡거리지 마소. 새침해서 돌아앉지마소. 》     《아유 입 좀 다물어요. 말장단에 정신이 휑해요.》     향란이는 인츰 다시쾌활해졌다.    《그래 화남엔 언제갈래요?》    《부인님 동의하면 래일당장.》    《건 안돼요.》    《왜서?》    《래일이 무슨날인가요?》    《래일이?.... 량력으루 팔월 십구라.... 》    《음력으로는요?》    《음력으로?.... 칠월 십이일이지. 오, 그렇구만!》     민호는 또 한번 실수했다. 래인은 향란의 생일이였던거다.    《생일상안차려주면 동무라도 해줘야죠, 안그래요? 어쩜 둘다 그리 무정하게 놀아요. 제 귀빠진 날은 기억하면서.》     소춘매가 한마디 뚱겨주고 사나이들의 데면함과 무감각함을 싸잡아 나무렸다.     민호와 왕견은 벙어리처럼 마주보며 벌씬 웃을뿐이다.     이틑날 향란의 생일상을 차려 네사람은 잘먹고 즐겁게 보냈다.     민호는 이틑날 염왕산을 나왔다. 일본천황이 투항조서를 내린지 닫새째되는 날이였다.          민호는 태평진을 약 3리가량 앞에 두고 북문으로 쓸어나오는 한떼의 인간들을 발견했다. 어떤자는 어깨에 총을 메고 어떤자는 손에다 몽둥이를 들었는데 얼추잡아도 500명은 잘될것 같았다. 어디로 뭘하러 가는지 웃고 떠들며 오다가 이켠을 발견하고는 멀리서부터 호통쳤다.    《넌 웬 놈이냐, 거기 섯거라!》    《오지 말고 섯, 이놈아!》     무모한 자가 총을 갈길것 같아 민호는 말을 세웠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한 자가 부르짖었다.    《아니 저분은!?....》     그들속에 장평이도 끼여있었는데 그가 알아보고 달려왔다.    《오인형님이구만! 하마터면....》     민호를 다시만나게 된 그는 몸을 돌려 높은 목청으로 모두에게 알려주었다.    《다들 봐라, 우리 형님 오인두령이시다!》    《아, 오인두령님!》     그들은 염왕산의 포토우 오인이하면 항일장령이라 소문나서   아는지라 모두 무척 존경했다. 전번날 다 같이 뭉치여 창고를 털게해서 무모한 인명사고를 피면케한것도 실은 그의 공이 아닌가!     그사이 태평진은 거기에 있던 협화회가 유지회로 탈바꿈했고 장평은 토비출신이지만 항일을 한 믿천이 있어서 어느덧 진보하고  공있는 사람으로 부각되여 떠받들리고있는 판이였다. 그가 지금은  이곳 치안대의 대장이였던것이다.     장평은 자기수하의 300명 무장인원에다 그곳주민 200여명을 더 동원시켜 함께 데리고 이렇게 성밖으로 나온것이다.     한편 민호는 지금 그가 이 한무리의 민간들을 준동하여 무슨 가량없는 짓을 하려드는지 알수 없었다.    《장평동생, 보아하니 구도관자같은데 누구하고 울려보자고 떠나는건가?》     구도관자란 모여서 출격하는것이요 울린다는건 싸움을 한다는건데 장평이 시뚝해서 알려주는것이였다.    《우린 지금 화금에 갑니다.》    《거기룬 왜서?》    《목청에 살던 일본놈들이 싹다 거기에 모였답니다.》    《그런데?》    《잠재워야죠. 오인형님 잘왔습니다. 함께가서 복수합시다!》    《뭐라! 복수? 그들이 그래 원쑤였더냐?》     민호는 낯이 단통 돌같이 굳어지면서 심각해졌다.     그 두부락을 털자고 왔다가 녹아난것이 어제일같지만 지금 그 마을에 모인것이 복수의 대상은 아니였다. 그들도 먹고 살아가기위해서 고향을 버리고 이 먼 북만땅으로 이사를 온 백성이였다. 그들에게 무슨 죄가 있단말인가? 일본군이 도망가고 없으니 죄없는 그들을 살해하여 분풀이를 하자고 드는건 무리고 죄악이였다.   《그렇게 해서는 절대안된다.》    민호는 말했다.      《너희들이 백성이듯이 그들도 백성이지 군인이 아니다. 실상 군인이라 해도 총을 놓으면 살려주는데 적수공권인 부녀와 아이들을, 로약자들을, 농사를 지어먹고 살아온 사람들을 살해할 리유가 무엇이란말인가? 원한이야 있지만 우리가 그래서는 아니된다. 그것도 모르고 우쭐대면서 제 손에 피를 묻힌다면 그건 도루죄를 짓는것이다.  잘 생각해봐라, 그렇지 않은가?》     민호는 그것이 우매한 개장수나 할 무모한 짓이라 통박했다.    《그 말이 맞아.》     무리속에서 이런 말이 튀여나왔고  술렁대기 시작했다. 그들도 자신의 무모함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민호가 채 하지못한 말을 마저했다.    《....그래서 내 생각은 이 자리에서 모두 돌아가는게 좋다는거다. 이럴때 우리는 인간다운 너그러움과 자비를 베풀어주자!》     선전은 호소로 변하여 효력을 보았다.     장평은 그 자리로 자기가 휘동하는 이 한무리를 돌려세워 태평진으로 되들어갔다.       천황이 투항조서를 내렸지만 관동군의 일부 악질적이고 완고한자들은 저희들의 사전책에는 이란 단어가 없다면서 총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이미 투항한것을 몰라서 무모한 반항을 계하는 사병들도 적잖았다. 하여 어떤데서는 반격이 계속되고 있었다.     시국이 이같이 복잡하고 혼란하다보니 차가 제대로 통할 수 없어서 민호는 10일만에야 겨우 화남에 당도했다. 그지간 천옥령의 남편은 쏘련홍군에 의하여 감옥문이 열려 구출되였다. 그곳에도 유지회라는것이 생겨나 태평진처럼 자체의 치안을 유지하고 있었다. 민호는 천옥령의 손에서 그녀가 책임지고 잘 건사해두었던 태극기를 찾아갖고 그 자리로 돌아섰다.     역전에 가니 거기에 동포가정이 몇호 나와 있었다. 민호는 그들을 대하고 보니 동포애가 가슴속에서 사무쳐 다가가 어디로들 가느냐 물어봤다. 그들은  환고향하느라 차를 기다힌다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태극기를 들고가야지요. 준비들을 했습니까?》    《아버지 태극기가 뭔가요?》     민호의 말을 듣고 소녀하나가 제 아버지와 물어본다.    《엣날 조선의 깃발이였네라. 본지가 아득하구나!》    《그럴겁니다. 이젠 맘놓고 구경들하시오. 내한테 있습니다.》       민호가 품속에서 그것을 꺼내니 모두 보고 탄성이였다.     조선이 일제에게 먹혀서 어언 삼십육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망국의 깃발마저도 마음놓고 구경할 수 없었던 암흑의 시대, 인간최저의 자유와 권리마저도 박탈되였으니 그래 짐승보다 더 나은것 무었이였던냐? 눈물을 머금으며 참고 천대를 받아야했거늘 망국노가 된 민족의 그 고달픈 삶과 가슴저미는 슬픔을 누가 알아주랴. 이 치욕은 천만대를 내려가며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155    <<관동의 밤>> 제2부(37) 댓글:  조회:2633  추천:0  2015-02-04
                            37                 목가선은 화남(樺南)을 경유하면서 곧추 남북으로 길게 뻗어있었다. 한데 화남시내는 정거장과 10여리가량 사이떠있었다. 그 사이는 비행장이다. 좀 둔덕지고 평평한 그 비행장은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면서 급히 만든것이였다.      해살이 호듯호듯 내리쬐였다.     민호는 정거장을 향해 걸음을 놓고 있었다.     비행장을 지나올 때다. 그의 뒤에서 누런 협화복을 입고 머리를 중모양으로 빡빡 깎은 젊은것이 셋이 따라오면서 일본말 조선말을 섞어가면서 저희들끼리 지껄이고 있었다. 내가 저 나이때는 독립만세를 부르느라했건만 네녀석들은 일본말을 배워 왜놈이 다 돼가는구나. 창씨개명을 하고....왜놈들이 조선지도를 저들 일본지도와 꼭같이 빨간칠을 먹인걸 보고 가슴아파나 하겠느냐. 민호는 뒤돌아보고나서 속으로 뇌이고는 흡사 애기엄마의 젖무덤같이 여기저기에 있는 격납고와 비행기들을 눈주어 보았다.     셋은 뒷따르면서 음성을 낮춰 수군거렸다.    《야야, 저사람 눈은 왜 자꾸 저기다 팔가? 수상하잖아?》    《비행기 첨보는 되놈아니여?》    《아니 그런것 같잖아. 모색이 어디....》     민호는 귀바퀴를 세웠다. 조선에 일진회가 생겨 나라를 팔아먹더니 만주에는 신통히 모양이 같은 협화회가 생겨 왜놈의 개질을 하는구나. 민호는 그자들이 자기를 의심하기 시작하는것 같아서 때려 검질을 해치울 피자녀석들 하고 속으로 욕했다.     민호는 걸음을 재우치면서 천옥령을 다시금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녀는 걸음마다 위험이 따를것이니 천만주의하라고 당부했던것이다. 그러잖아도 민호는 신경을 세우고있는건데 어쩌면 한발먼저 그녀의 도움을 받은 왕견이 변신술이 좋아서 잘배겨내고있는것 같아 부럽기도했다. 지금 어디서 뭘하는지?.... 민호는 천옥령을 만나고 보니 갑작스레 망운지정(望雲之情)이 되살아나면서 부모님들이 절절히 그리워지는지라 차라리 기차타고 먼저 고향에나 가보자고 맘을 먹었다. 하여 곧추 정거장으로 향한거다.      역전에 이르렀다.     민호가 차표를 사려니 경찰이 또 그놈의 신민서사라는걸 외워란다. 련습을 해둔거니 외웠다. 그리고나서 차표를 끊었다. 한데 그가 방금 끊은 차표를 손에 쥐고 돌아서니 경찰 둘이 앞을 턱 막아서는것이였다.     이 자식들이 왜 이러나? 민호는 가슴이 덜컥했다.      《어디로 가는거냐?》     한자가 양복차림인 그를 치보고 내리보면서 캐묻더니 손을 내밀었다. 차표를 내놓으라는 뜻이다.     민호는 차표를 주었다.     경찰은 차표를 보지도 않고 제 호주머니에 넣었다.     민호는 주먹이 나가려는것을 겨우참았다.    《왜 이럽니까?》    《왜가 뭐냐, 넌 의심스런 놈이야. 가자!》     민호는 눈앞이 아찔했다. 아까 그녀석들이 밀고한게 아닐가?....     짐이란곤 없었다. 차표를 떼고 남은 돈이 호주머니에 있었다. 그리고 회중시계가 있었다. 그자들은 그것을 몽땅 압수했다. 두 개남은 뽐창은 혁디에 찔렀는데 용케도 발각되지 않았다. 그것만 나졌더면 민호는 죽든 살든 당장 격투를 벌렸을것이다.     이상했다. 정거장에는 오늘따라 웬 경찰이 많아졌다. 그리고 그만이 아니라 다른사람들도 잡혀들고 있었다.    《가자, 걸으라!》     경찰이 권총을 꼬나들며 위협했다.     민호는 도망칠 기회를 노리면서 걸었다.     경찰이 그를 대합실과 이어붙은 저쪽방에다 밀어넣었다. 거기에 민호처럼 붙잡혀 들어온 자가 20여명되였다.    《난 그걸 틀리게 외웠다구 붇잡혔수다. 원 억울해서.》    《말마시우. 난 경찰이 차고있는 권총을 봤지유. 그랬다구 야 이놈아 뭘 보는거냐. 네가 이걸 빼앗자구 생각하는거지. 걸으라 하더란말이요. 세상에 이런 트집이 어디있소, 그래?》    《난 석유한병 갖구 떠났다가 그만.... 그게 차간에는 금물이란걸  몰랐지. 내사 정말루....》     모두 이러면서 무슨놈의 세상이 이렇게 험악한지 억울해서 못견디겠다고들했다. 신민서사를 잘못외웠다느니 권총을 봤다느니 석유를 가지고 떠났다느니.... 그건 다가 구실이였다. 잡혀들어온 사람은 다가 신체가 좋은 중장년이였지 로약자나 부녀는 없었다. 그래서 민호는 로력이 부족하니 역전에서 이따위 험한 짓으로 강제징집을 하고있다는걸 깨달았다.          이윽고 경찰이 문을 열어주면서 줄을 서서 하나하나 나오라했다. 밖에는 전신무장한 군인들이 지키고 있었다. 악마가 아가리를 벌린것 같이 검은 유개화차바곤이 문을 열고 그들을 기다렸다.    《어디로 실어가자는거냐, 나는 죄도 없는 사람인데.》    《나를 집에 보내줘.》    《억울해!》    《안가겠다!》     사람들은 반항했다. 그러다 경찰이 꽥 소리치니 그만둔다. 총구앞에서 반항해봤자 좋은 멋이 없다고 여겨 포기하는거다. 경장쯤은 될것 같은 자가 너희들은 다가 위험분자들이니 교육을 좀 받아야 겠다 잔말말고 걸으해서 모두 죄인모양으로 그 유개화차바곤에 올랐다. 민호는 도망치려했지만 기회를 찾지 못했다. 교육을 한다는것이 곧바로 강박로동일건데 장소가 어딘지 거기가서 보는 수밖에.     경찰은 차바곤의 문을 닫고 밖으로 잠그기까지 했다.     좀있으니 차대가리가 와서 그 바곤을 끌어다 다른바곤의 뒤에달고는 어디론가 달리기 시작했다.        반나절은 걸렸을것이다. 줄창 내달리던 차가 멎고 문을 열어주는데 내다보니 발톱까지 무장한 일본군인들이 그들을 맞아주었다. 그렇게 끌려온 유개차바곤이 몇 개되였고 붙잡혀 온 사람도 몇백명 잘되였다. 여기가 대체 어딜가?.... 그들은 다가 손에다 총창을 든 군인들의 감시속에 어디론가 끌려갔다. 철사망을 몇겹늘인 곳이였다. 거기서는 얼추보아도 천여명은 될것같은 사람들이 이미와서 돌을 캐고 나르는 일들을 하고 있었다. 다가 사상불온분자거나 사회부랑자로 잡혀온 사람들일것이다.     여기는 기차머리를 돌리는 회전로가 있는 벌리였다.     잡혀온 사람들은 산굴파는 작업을 했다. 안을 너르고 깊게 팠다. 민호는 첫눈에 이것은 왜놈들의 군사비밀공정이라는걸 알아맞혔다. 온 몸에 소름이 짝 끼쳤다. 비밀공정이 끝나는 날이면 에누리없이 여기서 일한 사람의 목숨도 끝날것이다. 도망치자! 아무 때건 공정이 끝나기 전에 이놈의 지옥에서 빠져나가야 산다!     간격이 촘촘하고 높다란 철조망은 계곡을 넘고 산등성이를 넘어 어디론가 갔다. 주위를 대체 얼마나 너르게 쳐놓았는지 알수 없었다. 이런데의 자그마한 분지에 네채의 똑같은 길다란 벽돌집이 있있었다. 그 네채는 다가 여기로 잡혀와 죄인취급을 받고있는 무보수로무자들의 합숙이고 다른 두채의 벽돌집은 일본군병영이였다. 이 여섯채의 집둘레에 따로 철조망을 사각형이 되게 두겹쳐놓았는데 그 두겹의 철조망이 다 사이가 반자도 못되게 촘촘했거니와 높이가 둬길이나 되었다. 그리고 쌍겹철조망의 간격은 2m가량되였다.     이런것이 근처 어느 산골에 더 있을것이다.     여기 이 집중영분지의 서쪽산과 동북쪽의 산에는 모두 또치카가 설치되여 있었는데 그 또치카의 사격구에 도사리고있는 기관총은 항시 밖을 향해 사격물을 노리고 있었다. 그리고 입구로 되는 동쪽 저 철조망밖에는 한 개퇀의 병력이 주둔하고있는 대병영이였는데 역전으로부터 그 병영을 지나서 여기까지 오는 철길이 지금 한창 부설중이였다.       민호는 이틑날부터 화남역에서 잡혀온 사람들과 같이 굴파기공정에 나가야했다. 그는 밀차에 돌을 실어나르는 일을 했다. 손에다 총을 쥔 병사들이 여기저기 있었다. 어찌나 감시를 엄하게 하는지 낮에는 근본 도망칠 엄두조차 내기 어려웠다.    《야 이놈아! 네 등대기는 왜 분가루같이 말라있는거냐?》     저쪽에서 감독이 누구와 표독스레 씨벌이는 소리들려왔다.     곁에서 맞지 않겠거든 웃동을 벗고 일해야한다고 알려줘서 민호는 얼른벗어던졌다.     감독은 손에다 가죽채찍을 쥐고다니면서 누가 땀흘리며 일하지 않으면 그것으로 후려쳤다. 민호가 눈을 돌려가며 여겨보니 그자의 채찍에 얻어맞아 등가죽이 어룽어룽해진 사람이 적지 않았다.    《돌탕을 쳐 없샐놈!》     그의 입에서 은연중 이런 욕이 튀여나갔다.    《뭐라구했어. 죽고싶어 그따위소릴 줴치는가.》     곁에서 일하던 사람이 놀래여 한마디 일깨워주곤 입을 다물어버린다. 그는 성이 왕가라는데 키꺽다리였다.     민호와 나이비슷한 조선사람 하나가  다가오면서 말을 걸었다.    《임자는 어디서왔소?》     왕꺽다리가 입을 다물라고 눈짓하는지라 민호는 그 말을 못들은척하고 일만했다. 그 사람이 다시 말을 꺼냈다.    《가즈왔지요? 보아하니 조선분같은데 거기서는 어쩌다나니 이런데루는 왔습니까? .... 이눔의 일이 원.... 배겨낼만합니까?》     실눈을 해갖고 말하는 품이 사위스러웠다. 이자는 어떤 놈일가?.... 여기도 피자가 있을것이다. 민호는 얼굴을 돌려 딴곳을 보면서 대답을 피했다. 그자는 대방이 자기를 소닭보듯 하니 싱거워났던지 무색하게 웃고는 그만 가버린다.     여기에 동포가 저사람말고 더 있을것이다. 하지만 민호는 찾고싶지 않았다. 면목을 알필요도 익힐필요도 없었다. 믿지 말아야 했다. 지금은 누구든 믿지말아야 했다. 이 세월에 남을 경솔히 믿는건 제 목을 저당잡히는거나 다름없는 짓이였다.     민호는 벽에다 2동이라 쓴 집에 들어있었다. 밤이 되면 남과  북 량벽을 따라 길다랗게 만든 장판우에서 250여명이 어물전에 내놓은 물고기마냥 배좁게 비벼대며 잤다. 민호의 한켠에는 2개월전에 여기로 온 나젊은 한족청년이 누워잤다. 그는 본래 화남 썩 북쪽 가목사와 가까운 신가점역(申家店驛)의 전철원이였는데 술을 먹고 출근했다가 직무태만이란 죄명으로 철로경호대에 잡혀가 처음에는 가목사에 있는  에서 갇혔다가 이쪽으로 넘겨진것이다. 두해전에 거기서 항일련군의 한 소분대가 기차를 전복한 사건이 발생했는데 청년이 그 사건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건만 네가 그들과 내통한게 아니냐고 무턱대고 의심하면서 귀통을 때린통에 고막이 터져 한쪽귀는 영 절벽강산이 돼버렸다. 다른 한켠에서 바로 같이 일하는 그 왕꺽다리가 잤다. 올해 나이 민호와 동갑인 그는 농사일로 뼈를 굳힌 사람이다. 그는 마을에서 툰장질하는 자가 배급으로 내려온 빨래비누와 갱생부를 떼먹으니 불만품고 손찌검을 피웠다가 그만 사상불온으로 몰려 2개월전에 여기로 왔다고 한다. 집에는 로모와 아이들뿐인데 벌손이 이렇게 잡혀오다보니 생계가 어렵게 되었다. 그래서 자나깨나 집근심이고 한숨이였다.     밤에 자리에 눕자 그가 민호의 귀에대고 가만히 알려주었다.    《아까 낮에 본 그 조선사람은 본질이 좋잖은 놈이요. 그놈하고 가깝던 사람 다섯이 도망치려다가 잡혀서 목이 날아났소. 왜놈이 어떻게 알까. 그놈이 고발하게 분명하지.》    《입이 가벼워 노총을 지른모양이구나. 건데 그자는 왜 그따위짓을 한단말인가?》     민호는 꺽다리가 미리알려주서 고마웠다.          지치고 고달픈 날이 하루하루 지겹게 흘러갔다. 일이 고된다가 식생활마저 점점 못해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래도 강냉이가루떡을 먹이던것이 이제는 도토리가루와 강냉이줄기가루에 콩깨묵을 혼합해서 만든 떡을 먹으라고 주었다. 배도 불릴수 없는 량이다.     사람들은 기진맥진하여 쓰러졌다. 그렇건마 감독의 채찍은 의연히 사정을 몰랐다. 우수운것은 그렇게 더럽게 먹이고 학대하면서도 에 감사를 드리라는것이였다. 점심때면 떡과 소금물에 삶은 감자 한알씩 쥐고 서서 남쪽을 향해 묵도를 하고나서야 먹을 수 있었다.    《한얼님! 한얼님! 오, 한얼님! 저 더러운 전쟁광신자들에게 어서빨리 죽음을 내려주시옵소서!》     민호는 매번 그 짓을 할때마다 속으로 이렇게 빌면서 어떻게 하면 여기를 탈출할 수 있을가 궁리했다. 한데 혼자도망치자니 자기곁에 있는 두사람이 불쌍했다.     《로왕, 내말들어. 한숨만쉬지 말고 용기를 내자구.》     어느날 밤 자리에 눕자 민호는 왕꺽다리귀에대고 말했다.    《후ㅡ이놈의 일 언제면 끝날지.》    《어느때 끝나면.... 그때를 기다리는가?》    《왜 안기다려. 집으루 돌아갈건데.》    《돌아가? 얼빠진 사람!》    《그러면?....》    《돌려보낼줄아는가. 안보내. 보낸다는건 거짓말이야. 죽여. 죽인단말이야. 싹 다 죽인단말이야. 이게 군사비밀공정인걸 모르나.》    《허 그럼 어쩐다?》    《어쩔거있나. 도망쳐야지. 도망쳐야 살아.》    《어이구 말두마오. 되지두않을 소리. 내와서 죽은것만두....》    《자식 이제보니 허깨비로구나.》     민호는 다시 더 권하지 않았다. 탈주를 혼자하는 수밖에 없다.     영양실조와 과로와 질병으로 하여 절조망에 같힌 사람들은 날이갈 수록 점점 더 많이 쓰러지고 주검은 늘어갔다. 그렇다하여 공정에 영향이 미치는건 아니였다. 여기서 죽어가는 수자만큼 새인원이 보충되고있었던것이다.  자꾸죽고 자꾸왔다. 로력이 설사 다 죽는다해도 공지에 인원이 줄어들것 같지 않았다. 일본군은 중국사람 하나 죽어가는것을 감자한알 썩는것만큼도 못여기는것 같았다.     여름이 다가고있는 어느날.     촌에서 방금잡혀온 청년 하나가 일을 하다가 나는 억울하다 나는 집에 가겠다 떠들어댔다.     감독이 달려왔다.    《이자식, 왜 이 지랄이여. 너 미치지 않았냐?》    《난 근로대에 갔다왔다. 두해나 일하고왔다.》    《그런데 왜 왔냐?》    《밭에서 강냉이를 구워먹었다구해서....》    《그래 나더러 어떻게 해달라는거냐?》    《그게 뭐 죄라구 날 잡아왔는가말이요다. 내 밭의 강냉이를 내가 구워먹었는데.》    《이놈아, 강냉이를 구워먹었건 삶아막았건 그걸 내하고 말해선  뭘하는거냐.》    《나는 죄없어 날 보내달란말이야.》    《좋다. 내가 네 소원을 풀어주마. 가자.》     그 젊은이는 헤벌쭉 웃으며 따라갔다.    《저 철없는 녀석 좀 보지!》     민호가 한마디 내던졌을 뿐 모두 말이 없었다. 미욱하도록 단순하고 어리석은 그가 당하게 될 화를 그저 안타까와 할 뿐이였다.     병영에 있는 일본군인들은 감독이 데리고 온 그 청년을 처음에는 그저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차다가 나중에는 마대에 넣어 둘러메쳤다. 그래놓고는 재간있거든 네발로 걸어가라했다. 청년은 일어나지도 못하고 벌벌 기더니 이틑날 죽고말았다. 같이 온 사람들이 그를 파묻었다. 잡혀온게 억울하다고 집으로 가겠다했다가는 자기도 영락없이 그꼴이 될게 빤한지라 감히 불평을 토하지 못했다.     10월말이 되니 나뭇잎들이 다 떨어지고 땅이 얼어들기 시작했다. 스산하기 짝이 없는 이런 때에 또 하나의 끔찍한 주검이 생기였다. 그도 민호와 한동에 있는 사람인데 탈주를 시도하다가 탈로난것이다. 일본군인들이 아침에 일장소로 나가기 전에 일군을 모두  네쭐씩 량쪽에 갈라세워놓았다. 감독이 무어라 수군대자 두 일본군이 대렬속에 있는 사람 하나를 끌어냈다. 그 사람은 묶이우지 않겠다고 반항하다가 되게 얻어맞았다.     일본군은 그를 중간에가 무릅꿇여 앉히였다.     닛본도를 찬 장교가 나서더니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는 중국말로 경고했다.       《대동아공영과 만주국의 안녕을 위하여 싸우고있는 우리 황군은 딴마음이 없이 봉공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런데도 너희들은 왜 이를 몰라봐주고 허튼꿈을 꾸는가말이다. 내 오늘 불충실한 자를 집에 보내줄테니 어디 구경을 해보라.》     말이 끝나자 칼이 번쩍했다.     그 청년의 머리는 몸채체서 떨어져 땅에 구을렀다....       비밀공정은 시간을 끓었다.     이듬해의 초봄. 음달의 눈은 아직그대로건만 양지쪽은 녹아서 질적질적 하다가도 밤이 되면 다시 꽛꽛이 얼어버렸다. 꽃샘잎샘에 반늙은이 얼어죽는다더니 과연 그런가보다! 바로 이런때의 어느날 밤중에 갑작스레 총소리났다. 모두들 잠을 깨며 웬 일인가했다. 이럴때 잘못덤비다가는 변을 당한다는걸 아는지라 사람들은 가딱 움직이지 않았다. 다행히 총소리는 한번 나고 더 나지 않았다. 그래서 모두를 또 탈주자가 나져 도망치다가 총에 맞아 죽었을거라했다.     이틑날 아침때. 일본군은 전번과 마찬가지로 공정에 나가기 전에 사람들을 집합시켜놓고는 팔을 상한 사람 하나를 끌어내왔다. 다른동에 있는 사람이였는데 간밤에 모험적으로 탈주를 시도하고 철조망을 넘다가 넘지 못하고 그만 보초병에게 발각되여 그가 쏜 총에 팔을 맞고 아래로 떨어졌던거다.     일본군인들은 그를 끌어내다가 이번에는 칼도 쓰지 않고 세빠트 세 마리를 풀어놓아 물어죽이게 했다. 비명소리는 듣기 아츠러웠고 붉은피는 땅을 물들였다.     감독이 나서서 씨벌이였다.    《다들 보았겠지. 도망치지 말란말이다. 생각해보란말이야. 철조망밖에 또 철조망있구 개가 지키고 있는데 어디로 간다구 그러는가. 그렇지 않은가. 공정만 끝나면 편안히 돌아들갈텐데 왜 그리두 급하게 서두르는가말이다. 어리석게.... 나도 중국사람이니 생각해서 권하는바이다. 그러니 모두들 내 말을 듣거라!》     민호는 일을 하면서 그자가 하던 말을 상기하고 입을 열었다.    《그자식이 자기도 중국사람이라했지. 피자도 사람축에 드나.》     곁에는 왕꺽다리밖에 없었다. 그가 물었다.    《이자뭐랬소. 피자라는게 뭐요?》    《개라는거야.》    《그게 조선말이요?》    《아니야. 토비말이야.》    《토비말이라? 동갑이 토비말은 어떻게 아나?》    《어떻게 알겠나. 말하자면 이런게지.... 내가 바로 토비야.》    《허 우습다. 동갑이 어떻게?.... 대포두 잘분다.》    《왜 난 그노릇못하는 사람인가.》     이래도 믿지 않았다. 마음좋은 사람은 토비질할리만무라는거다.     왕꺽다리는 일이 끝나면 집에 보내주리라는 감독의 말을 믿어야 옳지 않느냐했다가 네 머리는 어쩌면 소대갈보다 더 미런한가고 민호한테 되게 놀림받았다. 왕꺽다리는 그래도 민호를 좋아했다.어쩐지 그에대한 인상이 그 누구보다 좋았던것이다. 그러면서도 같이 도망갈 엄두는 내지 못하니 안타까운 사람이였다.     철조망주위에 전등불이 있기는 해도 탈주사건이 생기니 일본군은 마음놓을 수 없는지 병영앞에다 망대를 높이하고 우에다 탐조등을 하나 가설했다. 탐조등을 돌리면 철조망주위를 대낮같이밝게 할 수 있었다. 지어 개미가 기여가는 것 까지 볼 수 있을 지경이다. 민호는 적이 탈주를 점점 더 엄하게 단속하는것을 보아  이 비밀공정이 대단히 중요하다는걸 알았거니와 날이 가고 공정이 되어갈 수록 그만큼 죽음을 시각이 박두해오고있음을 감촉했다. 자꾸주저말아야했다. 과단성있게 여기를 빠져나가야했다.     일본군이 경각성을 높이도록해주는 일들이 자주나졌다.     어느날 민호가 일하고있는 곳에서 다섯이 병영에 불리여 가더니 매를 실컷맞고 돌아왔다. 여기로 온지 얼마안되는 그들은 일본군이 너무나 잔인하다고 뒤에서 말했는데 그것이 밀고되였던것이다. 모두들 밀고자는 로표(朴氏)라했다. 바로 민호곁으로 다가들다가 물러간 그 조선사람이였다. 같이 지껄려놓고 저는 불려가지 않았으니 탄로난것이다. 워낙 그는 밀고하면 그 다섯은 목이 날아나고 자기에게는 관대한 배려가 내려 집으로 보낼줄로 알았는데 일본군인들은 웬 일인지 그들을 죽이지 않고 때리기만 하여 내보냈거니와 자기를 집에 보내지 않았다.     《미친개는 잠을 자면서도 남을 물 궁리를 하는거다. 제 리득을 바라고 더 미칠듯 물것이다. 저 자식이 사람을 얼마나 해칠가.》     민호는 모두들 정신차리라고 여러번이나 조용히 일깨워주었다. 이런 일깨움은 모마운것이였다. 하기에 많은 사람이 말머리무거운 민호에 대해서 유다른 호감을 가지게 되였다.          《사람해치는 벌레면야 없애버려야지! 조선에 는 속담이있다. 일하는것만도 지겨운데 이 많은 사람이 그 한녀석 하나때문에 간을 그냥졸여서야 말이되는가.》     어느날 민호는 그자를 없애버리려고 맘먹고 손은 자기가 쓸테니 그저 맞춰만달라고 몇사람과 짰다.     산굴은 높이 15m, 너비 30m로 반원을 이루면서 암석이 굳은 산을 이파고 들어갔다.     청명이 다가오는 어느날 막장일을 하던 민호가 그자를 자기곁으로 불렀다.    《어이, 로표 나 좀 보자구!》    《왜 그러오?》     로표는 말없이 일만 수걱수걱 해오던 사람이 이제는 동포인 자기와 가까이 지내자고 그러는 줄로 알고 기분좋게 다가왔다.    《로표는 내가 조선사람이란건 어떻게 알아봤소?》    《거야 동포니까 알아봤지. 한핏줄이 아닌가. 내 눈은 못속여.》    《그 눈 그리두 령묘한가. 그럼 어디 맞혀보오. 박동무가 보겐 내가 뭘해먹던 사람같은가?》     민호는 박동무라는 세글자에 악센트를 박으면서 그를 시험을 치듯이 물어봤다.     순간 로표의 두눈이 확 밝았다가 꺼졌다. 그는 감았던 눈을 다시뜨며 마치 관상쟁이 관상보듯이 작고 동그란 머리를 이쪽저쪽 번져가며 대방을 보고나서 늘어지게 말했다.    《내보겐 막일해먹고 산 사람은 아닌거고..... 손을 보면.... 총을 다루던 사람같고.... 어떻소 내 말이 맞지.》    《맞아! 맞아! 》    《전에 독립군에 다니지를 않았소?》     독립군에 있을 때 서로간 동무, 동지라 부른적이 있었는데 이자는 그것을 알고 민호의 신원을 맞혀내고 있었다.    《아니요. 난 토비질을 했소.》    《무슨 망탕소리를....》    《그러고 보니 로표는 과연 지인지감이 있는 사람이구료.》    《뭐 그렇게 까지 총명하겠소만 나도 둔한 놈은 아니요.》    《로표가 둔한 사람일리있소. 보오 둔한놈이야 제가 어떻게 될것도 모르구 혀바닥을 망탕놀리지 않소.》    《그러게말이요. 주의해야지.》    《듣자니 매를 맞고 나온 다섯녀석은 황군을 욕했다며.》    《그랬어. 그건 내가 들은거야.》    《로표도 같이 찧고 까불고 하지 않았소?》    《내가? 허허허...여기를 빨리 나가는 방법있지. 그런놈 스믈만 적발하면....》    《오 그래! 내보게도 로표는 둔한사람같진 않아. 정말루 영리한 사람이야....적선지가에 필유여경이라....자!》     민호는 말을 하다말고 그보고 저 돌을 들자해서 그가 머리를 아래로 숙였을 때 자기가 들었던 돌로 그의 머리를 내리깠다.    《적악지가에 필유여앙이랬다, 이놈아!》     민호는 그가 죽는것을 보면서 소리쳤다.    《사람상했다!》     주위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감독이 고함소리를 듣고 달려왔다.    《어떻게 된거냐?》    《떨어지는 돌에 맞았소!》     여럿은 이구동성으로 웨쳤다.    《자식이, 여긴 왜 바라와서....뭘 보구들있어. 얼른끌어내가라!》      목격자의 반영이 일치한지라 감독은 다르게 생각하지 않았다.     밤에 잠자리에 눕자 왕꺽다리가 제 입을 귀가에 가져왔다.    《당신은 정말해냈구만!》     혀를 끌끌 차면서 깨단을 했는지 한마디 더했다.    《과연 토비같으오 우둔한걸 보니!》    《토비아니면 그러지 못하는가.》    《못하지. 누가 감히 그렇게 하겠소.》    《이것보지 바보같은 소리 또 하는구만. 왜 그렇게 못한단말인가. 악이나구 맘만 먹으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노릇이야.》    《난 그렇게는 못하겠어.》    《자기를 잡자해도 못할가. 그럴수 맞아. 당신이야 파즈니까.》    《건 또 무슨소리요, 파즈라는게?》    《바지에 오줌싸는 겁쟁이. 그런 사람은 토비질도 안시켜.》         그날밤음 몹시 어두웠다.      밤중에 민호는 신호줄을 당기였다. 그것을 당기면 바깥벽에 달아놓은 주먹만큼한 작은 종이 울린다. 그러면 보초가 듣고 달려와서 무슨일이냐고 묻는다. 대개는 밤똥을 누기 위해 밖으로 나가야할 때만이 그것을 쓰는것이다.     2동의 보초병이 신호를 듣고 달려와 누군가고 물었다.    《나는 112호! 쏘개를 만나서....아이구 배야!》     민호는 지금 당장 내깔릴지경이라했다.     보초병은 별로 의심치 않고 문을 열어주었다.     민호는 밖으로 나오나마자 목을 탈아 그자를 죽여버리고 옷을 벗겨 입었다. 그리고는 모자와 신도 벗겨 쓰고 신었다. 그의 행동은 과연 잽쌌다. 이제는 총까지 쥐였는데 저쪽에서 제1동의 보초병이 주적주적 걸어왔다. 아마 무슨 예감이라도 들었던모양이다.     사이거리가 불과 대여섯보밖에 안되였다. 민호는 뽐창을 뿌렸다. 면바로 숨통을 찔렀다. 적보초는 짹소리못하고 꼭그라졌다. 민호는 인차 전기불이 덜비쳐 어둑시그레한데로 갔다. 총을 먼저 철조망밑으로 내보낸 후 철조망을 천천히 조심스레 넘어갔다. 두겹다 안전하게 넘었더. 그런 후 총을 갖고 곧추 남쪽방향으로 내뺐다.     병영의 군인 하나가 소변을 보러 밖에 나왔다가 보초가 둘다 잘못된것을 발견하고 긴급경보를 울리면서 탐조등을 돌리였다. 그러나 이때는 민호가 남쪽의 외선철조망까지 이미 넘은 때였다.     그의 성공적인 탈주는 온 병영을 잠에서 깨웠을 뿐만아니라 동쪽입구에 있는 큰병영까지 놀래워 온 퇀이 출동하여 산을 수색하는 대소동을 일으켰다.     산몇개를 넘으니 깊은 계곡이 나졌다. 민호는 그 계곡을 가로지른 철교를 건너서 남쪽방향으로 갔다. 그가 철길을 따라 산굽이를 돌고있을 때였다. 저 뒤에서 화물차가 고동을 틀면서 달려오고있었다.    《오! 내가 흑룡강에 뛰여들었을 때 뗏목이 내려오더니 오늘은 기차가 달려오는구나!》     운수좋았다. 마침 올리막이여서 철교를 건너온 화물차가 여기에 이르러서는 속도가 늘어졌다. 민호는 그 차에 뛰여올랐다.     화물차는 밤새도록 달리고 달리였다.     날색녘이였다. 민호는 차가 한 산골정거장에 이르자 뛰여 내렸다. 관동군은 군사비밀공지에서 탈출한 자를 속히 잡으려고 번개식의 을 내릴것이다. 한데도 그냥가서는 어떻게 하는가. 국경선을 물샐틈없이 지킬건 물론이다. 거기를 넘을수 없으니 고향으로는 다 간것이다. 그럼 어디로 가야하는가? 이젠 정말 다른 방법이 더 없없다. 염왕산으로 들어가자 그래도 거기가 낯익은 곳이 아닌가. 거기 어디든 숨어서 광복이 날때까지 기다리자. 민호는 이같이 마음을 먹었다.     그의 손에 생명잃은 일본병이 씀씀이 헤프지 않은지 호주머니에 돈까지 얼마간 남겨주었다. 민호는 그 돈으로 배를 곯지 않으면서 서쪽으로 계속 걸어서 3일만에 마침내 태평진에 당도했다. 그는 지금 완전한 일본병의 차림새였다. 하여 조사도 받지 않고 성내로 들어갈 수 있었다. 해도 여기서 오래어물거릴 처지가 아니였다. 이날이 바로 청명절이였는데 날씨가 무척좋았다. 내가 여기로 온바에는 위삼포의 산소나 보고 입산해야 옳지 않은가. 이건 응당 차려야 할 례절인거야. 민호는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맴돌아서 상점에 들려 향과 지전을 사갖고 태평진을 나와 곧추 위삼포의 묘가 있는 서북쪽으로 걸음을 놓았다.     민호가 위삼포의 묘에 거의이르러 보니 거기에 그먼저 벌써 사람이 와 있었다. 세여보니 모두 셋이다. 민호는 적이 놀라면서 속으로 저건 누굴까했다. 자기같은 염왕산류자가 아니고는 여기에 올 리가 없는것이다. 좀더 가까이에 다가가면서 보니 하나는 일남이녀였다. 대체 누굴까?....     저켠에서도 이켠을 발견했다. 그들은 슬금슬금 자리를 뜨고있었다. 한데 그 거동들이 어쩌면 눈에 익은것이였다. 아니 저건 향란이 아닌가! 그는 그쪽으로 급히 걸음을 놓으면서 소리쳐 불렀다.    《향란이!》     향란이는 무르춤 서서 이켠을 유심히 바라본다.     다른 두사람도 이켠을 유심히 본다. 그러면서도 이쪽이 어깨에 총을 멘 일본군인행색이라 몹시 경계하고있음이 분명하다.    《나요 나. 오인이야, 오인.》    《아, 옳구만!》    《어이구!》    《기뻐라!》     저쪽의 일남일녀는 왕견과 소춘매였다.     대방이 누구라는것이 확인되자 그들은 환성을 올리면서 달려가고 달려왔다. 이렇게 그들은 만났다. 과연 뜻밖의 상봉이였다. 그들은 서로 부둥켜 안으면서 일희일경 어쩔줄을 몰라했다.                          
154    <<관동의 밤>> 제2부(36) 댓글:  조회:2902  추천:3  2015-02-04
                            36                 염왕산이 완전히 괴멸되던 그날.     정민호가 총소리에 놀라 깨여났을 때는 이미 늦었다. 300여명의 일본군이 쥐도 새도 못빠지게 할 양으로 그들을 포위하고 죄여들었던것이다. 그 첫방은 새벽녘이 되니 몰려드는 잠을 못이겨 고개방아를 찧고있던 보초가 다행히 육감적으로나마 적이 왔다는것을 알고 어망결에 갈긴것이였다.     잠에 골아떨어졌던 류자들은 모두깨여났다. 혼탕이 벌어졌다.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되고말았다. 이런데다 대고 적은 몰사격을 부었다. 아직 날이 채 밝지 않은 박암속에서 벌어진 혼전이였다. 탄우속에서 사람도 말도 절명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몸서리치는 일이였다. 민호는 말을 찾았다. 죽지 않은 말이 있었다. 그 말은 탄알을 맞지 않았건만 놀래여 날치였다. 밈호는 그 말을 붙잡으려고 뛰여갔다. 그러나 그가 곁에 가자 말은 꼭그라지면서 비명을 질러댔다. 얼굴이 해쓱해진 민호는 절명하고있는 그 말에 몸을 딱 붙이고 정면에서 불질하는 적병 셋을 련방 쏴눕혔다.     그래서 출구가 생기자 냅다뛰면서 소리쳤다.    《나를 따라오라!》             민호는 이렇게 포위를 뚫고 나왔다. 정신없이 달려가던 그는 가로놓인 삭정이에 다리가 걸리여 곤두박질쳤다. 정신이 아찔했다. 땅을 짚고 일어나려다가 되주저앉고말았다. 정신상 육체상 다 큰 타격을 받은지라 그는 눈앞이 캄캄해났다. 질풍같이 지나는 오열에 온 몸이 떨렸다. 이게 무슨놈의 꼴인가, 무슨놈의 꼴? 이젠 어떻게 해야하는가?.... 지렌마에 빠졌을 때의 모양으로 그는 어찌할바를 몰라 한동안 망연자실했다.     뒤쪽에서는 총소리가 그냥 들볶아댔다.     민호는 다시금 정신차리고 일어섰다. 그는 산채의 동산수림속에 들어 있었다. 앞으로 그냥 내뛰였다. 그러다가 총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도망치기를 멈추고 뒤쪽을 돌아다보았다. 그를 따라온 류자는 하나도 없었다. 제길할것 하나도 포위를 못뚫었단말인가? 그는 털썩 주저앉고말았다. 걷잡지 못할 공허감이 가슴을 꽉 채웠다. 눈물이 당장 막 쏟아지려했다. 울지는 말아야했다. 울음이 비감을 몰아와 그를 허물어뜨릴수 있으니. 마음을 그렇게 도슬려 먹으니 공포도 불안도 가뭇없이 사라졌다. 오로지 여기를 어서 벗어나야한다는 하나의 집념이 그를 채찍질하고 있었다.     이제는 말도 없다. 탄창이 비여버린 권총은 해서 뭘하는가. 그는 그것을 던져버렸다. 일어서자, 넘어지지 말아야한다. 몸을 다시일으킨 민호는 산을 넘고 또 넘었다. 동녘이 밝아왔다. 그는 그쪽을 바라고 그냥갔다. 그래서 오후 해질녘이 거진되여 강가에 이르렀다.     그것은 남쪽에서 내려와 곧추 북으로 흐르는 목단강이였다.     흐르는 강물을 보니 가슴이 오리오리 찢어졌다.    《나는 파멸되였구나! 철저히 파멸되였어! 아아ㅡ하!》     민호는 목놓아 소리치고나서 강변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목놓아 실컷 울었다.     한바탕 통곡하고나니 가슴이 좀 후련해나는것만같았다.     옷을 벗고 강물에 뛰여들었다. 차고 시원한 물은 불덩이같이 달아오르고 땀으로 더러워진 몸을 식혀주고 씼어주었다. 피곤은 점차 사라지고 몸은 거뿐해나면서 정신도 차츰 맑아졌다.     어래무에 가자. 인정깊은 어래무사람들은 나를 잡아 죽이지 않을테니 거기로 가자. 거기 어느 산속에 숨어 짐승이나 잡아먹고 짐승처럼 살다가 짐승처럼 죽어버리고말자. 자유로운것 같지만 자유롭지 못하고 추궁받는 몸이 되었으니 고향에도 다른 어디에도 갈곳이 없는 신세가 아닌가.     강을 따라 아래로 내렸다.     내려가면서 목에 아직도 걸려있는 부대화상을 잡아챘다.    《네갈데로 가거라. 나의 그 생활도 이젠 끝났다.》     그는 부대화상을 흐르는 강물에 던져버렸다.     내내 물을 따라 내려가던 민호는 강변에 다가붙은 한 마을을 지나다가 쪽배 하나가 기슭에 매여있는것을 발견했다. 때는 이틑날 동녘이 푸름푸름 밝아오고있는 새벽이였다. 좋구나, 잘됐다. 민호는 추호의 주저도 꺼리낌도 없이 그것을 풀어 타고 강을 내려갔다.     한데 창자가 점점 등가죽에 가 붙기시작했다. 무슨 방법으로 이놈의 구복을 달랠가. 민호는 처녀성복전도 훔쳐먹어야 맥이 나는건데 하면서 아래로 그냥 내려가다가 마침 한곳에 이르러 강바닥모래를 파는 사람을 만났다. 저 사람들이 먹을것을 갖고있을것이다. 급하면 관세음보살 어려우면 나무아미타불이라햇더라. 그는 정말 배가 곱파 죽을지경인데 제발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빌었다.    《당신은 대체 누군데 이 모양이요?》     그 사람이 경계하는 한편 기색이 몹시 심각해지며 캐물었다.    《왜놈과 싸우다가 이렇게.... 도와주시오. 잊지 않겠습니다.》     저쪽은 난경에 처한 항일련군으로 알아채고 경계심을 풀면서 태도가 좋아졌다.    《왜서 사람을 그리두 붙잡는지 원. 석달전이외다. 우리 마을서두 몇이 잡혀가서는 감감 무소식이외다.》     나이 쉰살을 넘었을 그 사람은 자기가 먹을 점심밥을 싼 보자기를 풀면서 밑도 끝도 없는 말을 했다.     석달전이면 5월에 발생한 대수색일것이다. 일본군과 위만군은 3월 15일에 여기 북만의 파언(巴彦), 목란(木蘭), 동흥(東興) 세 개현에서 돌연스레 공산당원과 애국적인 군중을 대거체포하더니 5월 28일에 또다시 그같은 방식으로 수색체포작전을 하여 도합 720명을 잡아갔는데 그 중에서 126을 참혹하게 학살한것이다.    《산사람은 산에서 살아야지 나와서는 배기기 어렵수다.》    《그 말씀이 감사하오만 이젠 산속에서도 백여내기 어렵수다.》     민호는 그 사람의 선의적인 충고를 이렇게 받으면서 주는 밥을 게눈감추듯 먹어버렸다.     운명이 어떻게 될지 그는 쪽배를 몰아 계속 아래로 내려갔다.     밤에 의란에 이르러 쪽배는 마침 송화강에 밀려들었다.     의란아래 송화강남안의 가목사는 이때 벌써 의란보다 인구가 몇곱절이나 많은 신흥도시로 발족했거니와 삼강성(三江省)의 수부로까지 되어 민호가 언젠가 안해찾으러 떠나면서 콜트(colt)권총을 산적이있는 열래진 서쪽 저아래 부금, 동강, 무원을 포함한 여러현과 동안성(東安省)까지 포함한 광활한 지역을 관할하고 있었다.     이 도시에는 일본주둔군이 있거니와 관동군정보부의 지부와 관동군헌병대가 있었으며 위만헌병 제7병퇀도 있었다. 그것뿐아니다. 혹독하고 무서운것은 은페된 특무기관들이였다. 삼강성경무청이 바로 특무기관이였다. 삼정화원(三井花圓)이란 아름다운 이름으로 부르기도 하고 삼도리화연구소(三島理化硏究所)라 부르기도 하는 특무감옥은 전문적으로 항일분자들을 잡아다 가두고 그들을 고형하고 학살하는 악마의 소굴이며 지옥이였다. 그리고 또 있었다. 간도성의 연길에 본부를 두고있다가 몇해전에 북만으로 옮겨온 가목사시의 치안공작반(治安工作班)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치안반의 100여명 조선사람의 깝지를 쓴 특무는 모두가 한때는 반만항일을 하다가 변절한 공산당원과 독립군이 아니면 민족을 구한다고 납뜨던 얼뜨기혁명가들이였다. 그런자들이 지금 눈에 쌍불을 켜고 로획물을 찾고 있었다.      민호는 상황이 이러함을 모르는게 아니다. 악마의 손은 만주국어디에나 다 뻗치고있는것이다.     붙잡히지 말자, 구사일생으로 죽음을 면했는데 이제 잡히기만 하면 끝장이다. 민호는 밤에 철교밑을 지나 가목사를 벗어져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다. 그랬다가 부금(富錦)에 당도해서야 그는 자기가 스스로 범의 굴을 찾아왔음을 깨닫게 되였다. 여기는 가목사보다 썩 더 위험한 곳이였던것이다. 관동군은 대쏘작전(對蘇作戰)을 준비하면서 대부분의 병력을 북만국경선일대에 배치했거니와 이 지대의 경비를 특별히 가강하고있었던것이다.     민호는 거루배짐군을 만나 아래의 형편을 물어봤다.     《임잔 뭐하러 거기루 가오. 조사가 심한걸 모르오?》     하고 그 사람은 알려주었던것이다.    《그렇게 심합니까?》    《보아하니 본지방사람같지는 않은데 정신차리오.》     거루배짐군은 이러면서 아래의 동강일대에는 위만의 경찰대가 늘어서서 조금이라도 의심되는 사람은 무조건 잡아 가두고 심문한다고 알려주었다.     민호는 자기가 지금 허저인이 사는 어래무에 가는 길이라면서 정녕 그렇다면 흑룡강쪽으로는 꿈에도 가기가 어렵겠구만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은 아 그런가 그러면 가지 말라 자기는 어래무란 마을이 어데붙었는지는 모르지만 허저인들은 전해에 모두 부금아래의 소택지로 쫓겨간것만은 똑똑히 아는거니 목숨을 잃겠거든 흑룡쪽으로 가라했다.     부금아래의 소택지라니 어딜가? 그들을 가두느라 집체이주를 시키것만은 분명한데 곳을 모르면서 찾아가자니 아득했다. 하지만 거기를 내놓고는 선택할 곳이란 없었다. 이미내친 걸음이니 가야했다. 민호는 아래로 더 내려가지 않기로 맘먹었다. 그는 거루배짐꾼에게 위탁해서 자기가 훔쳐서 타고 온 배를 헐값으로 팔아버렸다.     민호는 그곳을 떠나 부금아래를 향해 걸음을 놓았다.     일본군은 허저인들이 항일련군에 참가하고 항일련군과 련계하는것을 막으며 국경선을 청결하느라 두해전에 지지거, 모루훙커, 하위, 가진구와 친더리 등지의 허저인은 모두 부금아래의 소택삼림지대에 몰아넣고 1. 2. 3부락을 만들었던거다.     부금일대는 워낙 인구가 희소한 곳이여서 마을을 만나기가 힘든데다 실상 만난다해도 마을로 들어가기 어려웠다. 어느 마을이면 자위단이 없고 협화회가 없겠는가. 국경이 가까우니 더 심할것이다.      민호는 이 점을 미처생각못했던것이다.      쫓기듯 하는 먼길에 다리골이 빠질지경인 민호는 마을을 만나도 감히 들어가지 못하고 배가 고프면 감자를 파먹거나 풋강냉이를 먹으면서 밖에서 밤을 지내군했다. 그러다가 어느 한 마을밖에서 밭으로 가는 농군을 만나 그한테 물어서야 허저인들이 사는 마을로 가는 바른길을 알수있게 되였다.     결심먹고 찾는 곳이라 없을리 없다.     민호는 마침내 허저인마을에 이르렀다. 두마을사이에 그리넓지 않은 한갈래의 흐릿한 냇물이 흐르고 있었다. 마을의 조무래기들의 이 시내의 위쪽에서 물탕을 치면서 놀아대고 아래에서는 조약돌을 뿌려 물수제비뜨는 내기를 하고 있었다. 민호가 조약돌을 뿌리며 노는 아이들한테로 말을 물으러 다가가는데 마침 한 중년의 부녀가 반두를 들고 고기잡으러 오고 있었다. 민호는 몸을 돌려 그 녀인가까이로 갔다.    《저 말좀 물읍시다.》     그녀는 무르춤하면서 다소 경아한 눈으로 사나이를 보았다.    《이 마을에 혹시 어래무에서 이사온 집이 없는지요?》    《있어요. 바로 이 마을에 다 이사왔지요. 손님은?....》    《나도 전에는....》    《손님은 유씨댁을 찾아오지 않는가요?》    《그렇습니다. 저.....》    《아유이런!....》     녀인은 갑자기 탄사를 내지르고는 손에 들었던 반두마저 떨구면서 반가와 어쩔줄을 몰라했다. 나쟈의 동생 린화의 처였던것이다.     그런것도 알아보지 못했다. 어쩌면 이다지도.... 민호보다 나이가 다섯살이나 적으니 그녀는 올해 38살일것이다. 한데도 로파모양이 되었으니 세월이 무정한가, 세상이 혹독한가? 모두들 편안한가 물었더니 그녀는 눈물을 훔치였다. 장모가 몹쓸 점염병에 걸려 돌아간 후에는 린화가 아편쟁이로 돼버렸다는거다. 남편마저 인간페물이 되니 있으나마나한거요 끈떨어진 신세나 답지 않게 된 이 녀인은 지금 제 손으로 고기를 잡아 먹으면서 근근히 연명해가고 있었다. 나쟈의 부부는 살아있지만 아들셋에서 둘이나 병마에 잃었다. 의란에서 공부해 거기서 그냥 사는 청량이 하나만 무고했다.     그녀가 들어가 알려서 나쟈가 잃었던 제 매제를 맞으러 달려나왔다. 그는 이 마을 자위단의 단장이였다. 하여 민호는 마음놓고 마을로 들어갈 수 있었다.     가난이 왜 이리도 질길가!     처남의 집이라해서 들어가 보니 가랑이가 째지게 가난해서 눈뜨고 보기어려웠다. 머리가 반백이 되어버린 나쟈의 처는 단물이 난 옷을 입었고 마대로 솜을 싸놓은것이 이불이랍시고 낡아버린 궤짝우에 당그랗게 놓여있을 뿐 벽에는 서발막대기 휘둘러도 걸릴것 없었다. 나쟈가 사는 주제가 이러하니 다른집들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그들이 지금 먹고있는것은 알곡이 아니라 동아와 물고기와 야채뿐인데 그것마저 배를 불리기 어려웠다. 이같이 극빈한 처지에서 허약자는 늘어나고 밤자고나면 힘꼴쓰던 장골도 꺾꾸러진다고 한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흥농합작사는 다른 종족들한테서 량곡출하를 강요하듯이 허저인들의 손에서 헐값으로 어렵품들을 걷어간다니 하늘에 대고 통곡이나 할 일이였다. 계다가 정부는 이라는것 까지 발급해 허다한 사람이 린화모양으로 아편에 중독되여 일을 못했고 부녀는 생육을 잃다보니 워낙 얼마안되던 이 민족은 거의 멸족의 지경에 이르고 있었다.    《가련하오... 이대루야 어떻게 살겠소. 아 하 망할놈의 세상!》     민호는 눈물날지경 불쌍하여 울부짖었다.     나쟈는 영리별인줄로 알았던 사람이 찾아오니 반갑기 그지없지만 지금 살아가는 신세가 하도 기구해서 눈물을 흘렸다.    《하늘도 무심하지. 사람사는 세상을 어쩌면 이꼴로 만든단말이요. 매제도 이제는 늙는구만!》    《늙어도 한얼님의 덕분인지 목숨하나는 잘 붙어있소.》     민호는 자기가 살아온 얘기를 했다. 그리고나서 츄얼의 소식을 아는가고 물었다.    《츄얼이는 이젠 이 세상사람아닐세.》    《뭐라오!?....》     민호는 눈앞이 아찔해났다.    《이제는 다섯해가 되는구만. 걔도 병으루 앓다가 그만....》     나쟈의 처가 한숨지으면서 남편의 말꼬리를 이었다.    《병도 병이겠지만 그래서 죽은것 같지 않아요.》    《그럼 어떻게 죽었단말입니까?》     나쟈의 처는 비애에 잠기면서 입을 다시열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볼러갔을 때였어요. 그때도 시누인 제 남편을 외우더군요. 자기는 남편앞에 죄지은 녀자라면서 또 울었어요. 그리구는 자기를 속여 그 지경으로 만든 곡가놈을 찾아 원쑤갚지 못하는걸 몹시 원통해하였어요.》    《그러던가요! 헌데도 난 그놈을 여직 살려줬지. 후ㅡ》     민호는 죽은 안해앞에 미안해하면서 회오의 한숨을 지었다.     나쟈의 처가 동강났던 말을 이었다.    《시누이는 그리구 한가지 일을 부탁하데요.》    《무슨일을?》    《태극기라는것을 자기가 건사했는데 그것을....》    《뭐랍니까, 태극기를 건사했다구요!?》    《그래요. 시누이가 그걸 건사했대요. 남편이 중히 여기던것이라구요. 자기 품에 건사하기는 어려워 그것을 화옥당 자기있던 방 마루밑에 압침으로 붙여놨대요. 그래놨으니 아무때건 남편이 찾거든 거게있다고 알려주라고 나한테 부탁했어요.》    《그러더란말이지!》     민호는 목이 메이도록 감사했다.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낯이 확 달아났다. 자기는 전혀 생각지도 않은것을 츄얼이가 그리도 중히 여겼으니 무엇이라 말을 할가....     최기덕이 어래무를 떠나간지 며칠안되여서다. 츄얼이가 하루는 흑룡강에 떠있는 쏘련배를 보고와서 희한한지 말했다.    《여봐요, 난 오늘 굉장히 큰 배를 구경했어요.》    《군함이요?》    《아니애요. 군함이면 대포있겠는데 그런건 없는 배였어요. 그렇다구 객선도 아니구요.》    《군함도 아니고 객선도 아니라. 하다면 그건 짐배겠구만.》    《아마 그렇겠죠. 다른 배일수야 있나요. 앞코에 빨간 깃대를 꽂았는데 그게 바람에 팔팔 날리는게 어쩜 그리두 보기좋나요. 참 조선기도 그같이 보기좋은가요?》    《보기좋지. 그 기보다 훨씬 더 먼저 만들었고 더 아름답지.》     민호는 이러곤 그 모양이 어떻게 생긴거라고 입으로 묘사했다. 그리고는 츄얼이더러 옥당목을 사오라해서 훗날 아예 한포기 정성껏 만들었고 그것을 태극기라 부르는데 독립의 그날이 돌아오면 만세를 부르면서 하늘에 펄펄 날리리라 했던것이다.     츄얼이는 그 깃발을 잘 포개여 천에 싼 후 베개로 사용하는 가죽부대속에 넣어 건사했다. 선연한 깃발은 망국한을 품고있는 그에게 꿈에서마저 국치를 잊지 말라고 일깨워주곤했던것이다.     오늘 이 시각 츄얼의 그 갸륵한 소행이 그를 다시일깨워준다.     그런데 츄얼이는.... 3년전에 츄얼이와 한감방에서 지냈던 동강진의 녀인 하나가 만기출옥하여 돌아와 츄얼이는 감창에 걸려 고생하다가 그것이 치료될 무렵 우울증에 결려있더니 유언도 없이 단식사(斷食死)를 했노라 알려주었다고 한다.     과연 기구한 일생이였다!     나쟈가 이제 가면 어디로 갈테냐, 만주땅에서는 이러고 다녀서는 몸둘곳도 없잖으냐, 자기가 보를 서줄테니 귀순하라했다.     귀순이라니 웬 말인가! 민호는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 민호가 구데기되여 밟혀죽는대두 그짓은 안할테요.》     민호는 여기에 더 있고싶지 않았다. 그는 나쟈보고 쓰지 않는 작살이 있거든 달라했다. 나쟈는 그건해서 뭘하려는가 하면서 주었다. 민호는 그것으로 뽐창 세 개를 만들었다. 하나는 곡치환의 가슴에 박아주고 둘은 만일의 경우 목숨이 경각에 달리면 쓸것이다.     나쟈는 귀가 질긴 민호를 더 붇들어 둘 재간이 없었다.    《형님! 내가 이러구 떠나서는 언제다시 올지 모르겠구만. 하기야 죽지 않고 오래사노라면 다시만날날이 있겠지만. 부디 몸무사하길 바라오. 그리구 자....》     민호는 올때 쪽배팔아 생긴 돈 절반을 갈라 나쟈에게 주면서 그것으로 우선 집식솔들을 옷부터 해입히라했다.    《이돈!.... 매제도 쓸일이 많겠는데....》    《내 걱정은 마오. 이거면 돼. 없으면 또 방법나지겠지. 혼자몸에 어디가면 못살라구.》     민호는 사흘을 묵고 떠났다.     곡치환! 곡치환! 네놈은 어디에 있느냐. 땅속에 들어갔대도 내  너를 기어이 찾아 낼테다. 민호는 가목사에 이르러 옷을 사서 몽땅 갈아입었다. 산사람의 티가 나지 않게끔 신사답게 분장해야했다. 양복차림을 했더니 제절로도 의젓하고 태깔이 나는것 같았다.     민호는 곡치환의 집이 아성에 있다는 기억이 나서 그리로 갔다. 한데 가보니 곡치환이 아성에 없었다. 누군가 몇해전에 일면파로 이사를 갔다고 알려주었다. 그래서 가보니 거기에도 없었다. 본댁을 차버리고 다른 계집차고 가버렸는데 누구도 종적을 모른다는거다. 늦바람에 오금이 풀린모양이다.     그 미꾸라지같은 놈을 내가 어디가면 붙잡을 수 있을가?.... 두달을 돌아다니고 나니 돈이 들창났다. 망문투식(望門投食)을 하기도 어려운 세상이였다. 민호는 돈있는 신사를 만나면 돈을 억탈해냈다. 여기서 붇잡힐것 같으면 저기로 피했다. 호구도 신분증도 소개신도 없는 검은 사람이고 사회의 죄인이 된 그는 오직 이렇게 밖에 사는 수 없었다. 붙잡히는 날이면 끝장이니 그야말로 사자밥싸가지고 다니는 신세였다. 죽은 사람이니 정이 멀어가지만 품고 간 원한만은 어떻게 해서든 꼭 풀어주고말리라는 그였다.     민호는 이 도시에 가 찾다가 없으면 저 도시로 저 도시에서 찾다가 없으면 또 다른 도시에 가 찾았다. 곡치환은 꼭 도시에서 살 놈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이듬해 여름 할빈에 가서야 비로서 그자를 찾아냈다.     자가사리끓듯 하는 시장과 조용한 공원을 한고패돌고 난 민호는 그곳 남강구 대직가에 있는 극락사(極樂寺)에서 곡치환을 보았다. 분명 곡치환이였다!     환갑이 언녕지난 그자는 젊은녀자를 끼고 함께 천왕전(天王殿)의 미륵불에 불공하고 나오는 중이였다. 웬 신사가 곡선생 하고 부르니 왜 그러우 하는 대답소리를 잡아듣고 고개돌려 보았더니 마침 그였던것이다. 하마터면 모를번했다. 이젠 이게 몇해인가!     양복입고 중절모쓰고 구두신고 개화장집고.... 한뉘 인육장사로 살아온 곡치한은 늙긴해도 아직 꿋꿋했다.     곡치환은 종루구경을 하고나서 자기를 부른 신사와 함께 녀인을 끼고 부도탑쪽으로 갔다. 불공하러 오는 사람들은 천왕전 뒤 석가모니상이 모셔져있는 대웅보전까지 밖에 못들어가는데 부도탑까지 구경시키는걸 보면 일개 인육장사놈이건만 절의 중과 관계가 괜찮은모양이다.      민호는 담장밖에서 그자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망할자식, 네놈 하나를 찾느라 온 만주땅을 헤맸다.》     민호는 이제라도 찾아냈으니 기쁘기 한량없었다. 조롱박같이 매끄러운 이자가 하도 린색해서 곡뽀드라지라는 별명을 가진 일과 인질로 잡혀와갖고도 돈 한푼없다며 떼질쓰길래 유서를 남기라했더니만 수수께끼같은 글을 지어 바치던 일, 그통에 되려 겨울구두속에 감춘 금과 돈만 아끼우고 만 일을 상기하면 웃음이 나왔다. 내가 그때 저녀석의 얕은 꾀를 과연 본때스럽게 까밝혔더랬어. 그러면서도 저놈이 제 각시를 팔아먹은건 몰랐지. 그러고 보면 결국 내가 멍청이였어. 하지만 됐어. 오늘은 단단히 결산을 해야지.     머리우에서 해가 이글거리면서 불비를 퍼붓고 있었다. 저놈의 홍광자(해)가 지랄이 나는거냐 제길할거. 민호는 가로수 그늘을 찾아갔다. 부도탑구경을 간 자들이 인차돌아오지 않았다. 이놈의 월자(시계)가 드디가는거냐 내가 속이 끓는거냐. 민호는 번들거리는 줄에 매여 연미복의 웃호주머니에 넣은 회중시계를 꺼내보았다.    《제길할 녀석, 왜 아직두 바라나오지 않을가.》     오래도록 나오지 않아 초조해나기시작했다.     욕지걸이가 다시나가는데 마침 그 셋이 담장밖으로 나왔다.    《정말 때려죽일 놈이구나, 마지막날까지 날 고생시키니.》      민호는 입속으로 중얼대면서 곡가를 째려보았다.     저쪽사나이는 제갈데로 가버리고 곡치환은 제 계집년을 데리고 서쪽으로 향했다.     녀인은 머리우에 펼쳐 든 고운 양산을 한들거리면서 뭣이 그리도 좋은지 허리를 꼬아가면서 깔깔 웃었다. 이년아 개화자(양산)쓰고 웃긴해도 두고봐라 네년도 넋담떨어질거다. 민호는 뒤를 따르면서 속으로 주절댔다. 네년이 본댁첩년 다 쫓아내고 늙다리한테 붙은걸 보면 돈에 몹시 감질이 난게지 아무렴 그놈의 주글주글한 변자가 욕심났겠냐. 그 돈 오늘 나도 좀 써봐야겠다.     거리의 번들거리는 레루장우로 전차가 절그럭거리면서 오고있었다. 저쪽은 그것을 타려고 서둘렀다. 민호도 서둘렀다.     전차가 코앞까지 와서 멎었다.     그들이 오르자 민호도 제꺽올랐다. 놓치지 말아야했다.     곡치환은 전차가 종점역에 이르러서야 내렸다. 민호도 내렸다.     그 둘은 한 협착한 골목을 빠져나가 길건너의 벽돌담장을 높이 한 집의 대문앞에 이르러 멈췄다. 녀인이 죄꼬만 핸드백에서 열쇠뭉치를 꺼내여 대문의 자물쇠를 열고는 둘이 함께 들어갔다. 반남아 숨겨진 별장을 방불케 하는 이 서양풍의 아담진 단층집이 곡가의 거처였다. 대문에 쇠를 놓고 다니는걸 보면 수전노가 돈쓰는것이 아까와 하인도 두지 않는 모양이다.     민호는 지금이 바로 손쓰기 좋은 때라 여겨 대문에 노크했다.      딸깍딸깍 게다짝을 끄는 소리 들리더니 계집이 대문을 빠끔히 열고 내다본다.    《누구세요?》    《곡선생을 찾습니다.》     손님이 신사다운데다 자태가 의젓하고 태연하니 그녀는 아마 령감쟁이와 거래하는 사람인줄로 알았던지 회의도 경계함도 없이 들여놓고는 안쪽에 대고 소리쳤다.    《여봐요, 손님왔어요!》     곡치환은 더운날에 신사차림하고 나다녀 번열이 났던지 맨 런닝그에 속곳바람에 앉아있었다.     민호는 집안에 성큼 들어섰다.    《곡선생 안녕하시오? 내가 왔어.》     곡치환은 부채질을 하다말고 멍하니 올려다봤다.    《당신 누구요?》     민호는 그를 눈자리나도록 여겨보면서 입을 열었다.    《날 모르겠습니까? 곡선생이 사람을 몰라보다니, 원.》    《당신 누군데?》    《불청객입니다. 곡선생은 아직두 사람장사를 합니까?》    《이, 이사람이! 무슨소릴 이렇게.... 난 장사꾼아니야.》    《그래?.... 그러면야 탈태환골을 했군!》    《대체 누군데 남의 집에 뛰여들어 지랄이야?》    《나말이지. 난 염왕산토비야. 타버린 뼉다구를 보구서도 너 곡치환만은 알아보는 사람이야.》     화가 눈섶에서 떨어졌다. 곡치환은 단통 낯이 하얗게 질리면서 벌벌 떨었다. 계집년역시 토비라는 소리에 아연실색하면서 감히 고함도 내지르지 못한다.     뒷창문은 닫겨졌고 바깥은 높은 담장이 막혀있다. 소리를 친다해도 쉽게 구원받기 어렵게 이웃과 담을 쌓고 사는 독집이였다.     어진 혼이 나간 곡치환은 번들이마에 내밴 땀을 손으로 닦으면서 목청을 떨었다.    《어, 얼마를 내라우? 내, 내라면 내지. 도, 돈이 있으니까. 싸, 싹다주겠어. 여보! 그 트렁크를 내놓소!》    《됐다! 그따위소리는 뒀다해!》     민호는 움직이려는 그를 찍듯이 박아보면서 무서운 질문을 들이댔다.    《스므해전에 네가 다즈녀잘 하나 꾀여서 화옥당에 팔아먹은적 있나없나?》    《다즈녀자라?....》    《어물쩍하게 모르쇠를 놓지 말구.》    《다즈녀자라?....》    《그렇다, 츄얼이라구 하는 다즈녀자를 말이다.》    《아! 저....》    《생각날테지. 내가 바로 그 여자의 남편이다. 네놈은 술집작부노릇하면 월급많이 받는다고 거짓말하구는 데려다 팔아먹었지.》    《아, 그건 저....》    《그건 어쨌다는거냐, 네가 데려간 그 집이 술집이였냐?》    《내가 실은....》    《네가 실은 어떻다는거냐. 이놈아, 남의 유부녀를 꾀여다 팔아먹고는 무슨 변명이냐. 네놈은 그래먹어서 이렇게 뺀뺀하게 살이 진거냐. 사람의 깝지를 쓰구 전탕 짐승의 짓만 해온 이 더러운 망나니놈아!》    《제, 제발 용서해주슈. 내 정말이지 있는 돈 다 주겠소.》    《이놈아, 돈이면 다냐! 헛튼궁리는 작작해라. 내 오늘 너를 잡아 원혼이 된 내 안해의 원쑤를 갚자고 온거다!》     민호는 부르짓고는 덮치려고 일어나는 그에게 뽐창을 뿌렸다.    《억!》     곡치환은 면바로 심장을 맞고 바당에 폭 꼭끄라졌다.     민호는 마지막 숨을 모으느라 턱을 까불이는 그자의 속곳을 쭉 내리우고 자지를 쭐 뽑아냈다. 그리고는 그것을 들고 바들바들 떨고있는 녀인앞으로 다가갔다.    《저런놈허구 붙어사는 네년인들 량심좋겠냐. 엣다, 이거나 처먹고 늘어져라.》     손에것을 입에 넣자고 가져가니 녀인은 기절해 넘어졌다.     민호는 이것으로 복수를 다하고 판을 때렸다.     이제는 피해야 한다. 그는 트렁크를 열고 그안에 있는 적잖은 액수의 돈을 몽땅 꺼냈다. 녀인이 기혼만 하고 죽지 않았으니 이제 개복할 것이다. 그러나 개복해도 정신이 제대로 돌아서자면 시간이 걸려야할것이다. 민호는 거기서 나와 곧추 도외로 갔다.     전의 유곽집이 그대로 있었고 간판도 걸려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라는 간판이 아니고 이란 네글자를 쓴 것이였다. 유곽이 려관으로 되었으니 다행이였다. 민호가 여기로 오면서 줄곧 가졌던 우려는 어느정도 풀리였다. 모종의 원인으로하여 만약 이 유곽이 없어졌거나 이것이 사택이나 상점이나 다른 무엇으로 되어버렸다면.... 갈보들이 들었던 방을 전부 뜯어 고칠것이요 그러면 집안의 구조나 장식이 변해버릴텐데 마루밑에다 붙여놓은 태극기가 지금까지 있을리있겠는가.     들어가 보니 고맙게도 집안은 옛모양 그대로라 민호는 기뻤다.    《손님도 려관잡으려오?》     콧등에 안경을 건 백머리의 접빈하는 늙은이가 이쪽을 향해 묻는 말이였다.     민호는 가까이 다가가 알아보았다.    《십이호실에 손님들었습니까?》    《안들었소.》    《그 번호가 이 집이 유곽일 때 쓰던 그대룬가요?》    《그대루지. 안고쳤어.》    《그럼 됐구만!》    《손님은 아마 그 방에 단골이였던 모양이구료.》     늙은이는 입가에 야릇한 웃음을 물며 등기부를 펼치였다.     이제 소개신이나 증명을 보여달라할것이다. 민호가 말했다.    《등기는 하지 마시오. 난 묵지 않고 돌아갈 사람입니다.》    《그럼?....》     민호는 주위를 피끗살펴봤다. 다른사람이 없었다. 그는  돈 백원을 제꺽 꺼내여 주면서 수작을 걸었다.    《나를 십이호실에 데려다주시오.》     돈을 받아쥔 로인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민호는 자기를 괴이쩍게 보는 그를 향해 집요하게 말했다.    《거기가서 얘기합시다. 절대 애하게는 하지 않을테니까.》     로인은 별스런 손님이 궤술을 쓴다하면서도 근 넉달월급과 맛먹는 돈이 주머니에 날아드는지라 군말없이 들어주었다.     츄얼이가 전에 오입쟁이들을 맞아들이군 하던, 흡사 성냥갑과도 같은 방에는 통풍창모양의 자그마한 뙤창문이 하나있고 바닥은 널따란 판자 세쪽을 무은 마루였다. 저밑에 있겠구나! 민호는 마루널을 들고 밑면에다 압침으로 네면을 붙여놓은 물건을 찾아냈다. 그것은 누른색나는 얇다란 방수포주머니에 네겹으로 접어 넣은 태극기였다.     려관의 중국로인은 눈이 둥그래졌다.    《그게 대체 뭐요? 손님은 그걸 찾느라구 왔소?》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 방에서 살던 갈보남편의 사주단자랍니다.》    《그게 그리두 귀한 물건인가, 뭐. 새빨간 거짓말을 하네.》     로인이 코빠는 애가 아닌이상 믿어줄리 만무건만 민호는 옳다고 우기면서 령감하구야 상관없는 일 아닌가. 돈을 그만큼 받아먹었으면 더 캐 묻지 말라하고는 그곳을 인차나와버렸다.     지금 민호는 몸에다 세가지 물건을 지니고 있었다. 뽐창과 태극기와 돈이였다. 돈은 물론 그가 곡치환의 집을 나오면서 트렁크안에서 꺼낸것이였다. 살인을 하고 돈까지 강탈했다. 그러니 살인법에 강탈범인것이다. 한데 그 수전노가 이 많은 돈을 왜서 은행에 저금하지 않고 집에다 두었을가?.... 그게 의문이지만 여하간 그덕에 유용하게 쓰게됐으니 고맙고 기뻤다. 그러잖아 호주머니가 비여 강탈하지 않면 굶어야 할 형편이였는데.     한편 또 돈이 있어도 자기가 화약을 지고 불더미를 찾아가는것 같기도해서 해서 그는 긴장했다. 지금쯤은 경찰의 수사가 시작되였을 수도 있는것이다.     가자, 어서 내빼자. 태극기를 감추고 돈도 감추고 쓰자. 한데 어디로 간단말인가, 이제 또다시 부금아래로?.... 안된다, 거기는 안된다. 그러면 어디로 간단말인가?.... 갈 곳도 몸둘 곳도 이 땅에는 없었다. 이런 세상에서 이만큼이라도 활개치는것이 스스로 기적같이 여겨지기도했다. 영원히 붙잡히지 않으려거든 애초에 마음먹은바와 같이 산속에 들어가 원시인으로 사는 길밖에 없다. 그래 오로지 그렇게만 살아야 한단말인가?.... 만약 구실을 달아 부적(附籍)을 만든다면, 그런다면 인간세상에 우선 발은 붙이게 될게 아니냐. 민호는 그길로 화남으로 갔다. 여러해전부터 거기에 사는 천옥령의 남편이 경찰로 있다는 것을 아니 그의 도움을 받아보자는거다.     그런데 정작가보니 궁리가 어리석었다. 천옥령의 남편은 몇해전에 나쁜분자은익죄로 잡혀 판결받아 12년징역에 언도되여 옥살이를 하고 그녀 혼자서  아이 셋을 자래우며 고생스레 살아가고있었던것이다.     협화회 회장노릇을 하면서 한간으로 전락된 천지주는 사위가 나라의 죄인이라해서 딸마저 랭대하면서 아예 거래를 못하게 한다고 한다.    《이 지경이 되고보니 내 곁에는 이젠 아무도 없게됐어요. 마치 온역신이라도 된것 같아요. 남들이 다 외면하는 속에서 살아가자니 정말 지겨워요.》    《우리 형제가 이토록되게 만들었구만. 참 안됐습니다. 미안합니다. 늦었습니다만 인제라도 사죄하지요.》     천옥령한테서 왕견의 정황을 다소알게 된 민호는 과연 왕견을 대신하여 허리굽혀 사과했다. 그리고나서 그는 말했다.    《꼴을 보니 왜놈들은 망할 징조를 하고있습니다. 무슨 니 니 이니 그런건 다 개나발입니다. 요즘 돌아다니면서 볼라니 한심하더구요. 무슨놈의 운동은 그리두 많은지. 농업증산출하운동이니 흥아운동이니 광공증산운동이니....》    《어디 그것뿐이라구요. 근로봉사운동이요 하면서 성전건국지원을 하라구 하지요. 그래서 일판에 뽑혀가는 사람은 얼마나많다구.》    《그것보시오 백성을 그렇게 못살게 들복구야 나중에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야말로 발악이지요. 압박과 착취를 죽어라고 하니까 이건 제 망할징조를 보이는겁니다. 두고보시오 왜놈들은 오라잖아 꺾구러지고말겝니다.》    《글쎄요. 그놈들이 빨리망해버렸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때되면 애의 아버지도 옥살이를 거두고 돌아올건데요. 그렇잖아요.》       《나올겁니다. 꼭 나올겁니다. 일본은 지금 태평양에서 거듭거듭 패전을 한다는 소문이 돈지 오랍니다. 두고보시오 일본도 망하고 만주국도 망항할 날이 오라잖다니까요.》     민호는 그녀에게도 자신에도 신심을 돋구느라 이렇게 말했다. 천옥령이 아직도 가슴속에 반만항일감정을 품고있으니 대견하고 고마웠다. 지주의 딸이고 남편이 경찰인 녀인이 각오가 이같이 높고 굳은것은 그야말로 중국부녀의 자랑이 아닐 수 없다!    《믿고오셨는데 어떻게 할가요? 장차 어떻게 살아갈건가요?》    《글쎄요. 솔직히 말해 막연합니다. 정 안되면 다시 산으로 들어가 새날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지요.》    《과연 그런수밖에 없을가요?》    《나도 그렇게 하는건 신통치 않은 막수라는걸 압니다. 그래서 때로는.... 나는 본래 의렬단원이였구 독립군이였습니다. 안중근, 윤봉길을 본받을 생각도 납니다. 그들처럼 내 생명으로 조선과 중국을 침략한 왜놈의 우두머리를 하나라도 없애버리고 싶습니다.》    《그런가요! 실로 장부다운 기개네요! 그런 소릴 들으니 내 가슴이 막 뛰네요!》     천옥령이 감격되여 하는 말이였다.     민호는 여러말을 더 할 수 없었다. 좀이라도 더 지체했다가는 애매한 사람에게 루를 끼칠것 같았다. 그는 자기가 쓸 돈을 얼마가량 남기고는 천원이 넘는 거액을 그녀앞에 내놓았다.    《이 돈 받으시오. 받아야 합니다. 생활에 보태쓰십시오. 빼앗은 돈이기는 합니다만 빼앗아야 할 돈을 빼앗은거니 꺼려할것 없습니다. 마음놓고 쓰시오.》     사나이의 곡진한 태도에 천옥령은 거절할 수 없었다.     천옥령이 돈을 받는것을 보자 민호는 태극기를 꺼내여 그녀에게 주면서 잘 건새해달라했다. 천옥령은 그러마고 선선히 대답했다.      
153    <<관동의 밤>> 제2부(35) 댓글:  조회:3080  추천:1  2015-02-04
                             35                 파괴되고 불에 타버린 산채들, 땅을 벌겋게 피로 물들이면서 널려있는 시체들, 죽어 뻐드러진 말들.... 무자비하게 훼멸된 염왕산의 살풍경은 짐승마저 놀라서 달아나게 할 지경이다.     채 타버리지 않은 중앙산채에는 아직도 연기와 그을음내새가 그대로 감돌고있었는데 그 속에서 인간의 생명 하나가 불사조마냥 소생하고 있었다. 다른사람이 아니다. 바로 향란이였다. 그녀는 페허에 묻힌채 여지껏 혼미상태에 있다가 이제야 깨여난것이다. 내가 죽지 않았구나! 다른사람들은 어떻게 되였을가?.... 빠개지듯 하던 머리의 동통이 멎자 그녀가 제일먼저 떠올린 생각이였다.     왜 이지경이 되었던가?     향란의 머리속에 그 경과가 우렷이 떠올랐다.       《비행기다! 비행기다!》     누군가 밖에서 소리쳤다.     향란이도 비행기를 보러 달려나갔다.     량태가 어디엔가 갔다오고 있었다.    《저놈이 또 그따위걸 뿌릴려구 오나.》     그는 비행기를 밉쌀스레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모두 나와서 그놈을 올려다봤다.     비행기는 염왕산상공을 한바퀴 빙 돌고는 전번처럼 산채중간을 가르고있는데 고도가 점점 낮아져 비행사의 머리까지 다 보일정도였다. 밖에 나와 그것을 구경하고있는 류자들은 이제 곧 삐라를 뿌리는 줄로 알았다. 그러나 비행기는 삐라를 뿌리지 않고 마치 매가 토끼를 챌때 처럼 고도를 더 낯추어 내려오면서 앞머리의 턱아래로 불을 뿜어댔다. 맨먼저 량태가 꺾꾸러지고 뒷이어 새자 셋이 넘어갔다. 기총소사를 맞은것이다.     경황실색한 류자들은 돌차간에 당하는 일이라 미처 어쩔바를 몰라하다가 비행기가 날아가버리자 죽어 자빠진 사람한테로 욱 모여왔다. 몸을 꿰뚫고 나가버린 탄알구멍은 보총에 맞은것 보다 곱절도 더 커서 끔찍스러웠다.     여럿은 시체 넷을 양즈방에 날라가고 다리에 관통상을 입은 화서즈는 중앙산채로 업어 들여갔다.     향란이는 솜과 가제를 찾다가 그것을 넣은 위생가방을 북쪽산채에 두고 온 것이 생각나 가져오려고 달려갔다.     그가 위생가방을 들고 급히 돌아오는데 다시 우릉우릉 소리나면서 이번에는 비행기 3대가 나타났다.      향란이가 밖에 나왔다가 다시나타난 비행기를 발견하고 미처 어쨌으면 좋을지 몰라 선자리에서 망설이고있는 장평을 향해 고함치곤 뛰여가다가 중앙산채에 딸려있는 서쪽 어느 별채의 창문이 열려있는 것을 발견하고 몸을 날려 거기로 들어갔다.     그래서 3초나 지났을 가, 하늘이 째지듯 휘파람소리가 남에 뒷이어서 고막이 당장 터질 것 같이 천둥보다도 더 굉장한 폭음이 나면서 중안산채가 결단났고 그녀는 무엇엔가 뒤통수를 되게 얻어 맞아 그만 정신을 잃고말았다.     일본비행기가 투하한 첫폭탄이 중앙산채를 명중했다. 그래서 그안에 몰려들었던 류자들은 향란이 한사람만 남기고 모두 폭사당하고 만거다.     향란이는 충격파에 넘어지고 날려온 중간벽채가 창턱에 쓰러진 밑에 있었길래 몸이 상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천만중 다행이요 백사일생(百死一生)이라 하겠다!     저건 무슨놈의 구제비소리냐?.... 향란이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소리에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 소리는 먼곳에서 나는게 아니라 바로 머리우 가까이에서 나고 있었다. 넘어진 벽이 창문을 채 가리우지 못했다. 아래귀퉁이가 약간 틔여 있어서 거기로 신선한 아침공기가 들어오고 있었다. 밖에서 나는 소리가 좀 멀어지자 향란이는 안간힘을 써서 몸을 일으켜 티인 곳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원쑤놈들이였다! 황록색군복을 입고 센또보시를 쓴 일본군인의 각반친 다리가 눈앞에서 왔다갔다했다. 그자들은 날창꽂은 총을 손에 쥐고 페허속어디에 살아있는 류자가 숨지 않았나해서 수색을 검질기게 하고있는 중이였다.     동산에 방금 오른 해가 군복을 입지 않은 한자의 몸을 비추었다. 그자의 몰골을 보는 순간 향란이는 와뜰 놀랬다. 어느땐가 여기를 탈출한 호덕화였다!     저 피자놈이 끝내 일본놈들을 끌어왔구나, 돌탕을 쳐 없앨 놈!...향란이는 이를 갈았다. 그녀는 손을 허리에 가져가 앞배를 더듬었다. 잠잘 때를 내놓고는 거의 몸에서 떠나본적이 없는 뽐창 세 개가 아직있었다. 그녀는 하나를 뽑았다. 그러나 일어나 앉지도 못하는 협착한 공간에 갇힌 몸이라 그것을 쓸 재간이 없었다. 내가 원쑤놈을 눈앞에 놓고 살려주다니. 향란이는 원통하기 그지없었다.     발작소리 지적지적났다. 그자는 개처럼 일본놈을 따라 어디론가 가버렸다.     이윽해서 말발굽소리 요란스레 나더니 차츰 멀리사라졌다.     정신이 썩 맑아진 향란이는 적들이 멀리 가버린것 같자 틈서리를 비집고 간신히 기여나왔다.    《오랍! 내 오랍은?....》     향란이는 산채의 앞마당에 널려있는 시체들 중 수이샹이 있는것을 발견하고 놀랬다. 이 사람은 오인 민호와 함께 가마마스러 산채를 나간게 아닌가. 저 류자도 그리고 또 저 류자도....그런데 이들은 어떻게 되어 여기에 와 이모양이 되었는가? 돌아왔단말인가? 그 시체들은 총창에 찔려 형편없었다. 향란이는 오빠도 민호도 그 모양이 된것 같아 울음이 터졌다. 그러나 그녀는 울수도 없었다. 겨우 한마디 곡성만 토해놓고서는 그만 그 자리에 졸도하고만거다.     뜨거운 햇볕이 뜻밖에 날아든 재액에 황천객이 되고만 영령들을 무마했다.     향란이가 의식을 다시금 회복했을 때는 해가 썩 올라와 있었다. 그녀는 타버린 동쪽산채로 갔다. 거기 앞마당에 널린 몇구의 시체를 발견해서야 그녀는 자기가 혼미상태에 있은사이에 가마마스러 산채를 나갔던 일부의 류자들이 돌라왔다가 역시 참혹한 죽음을 당했음을 확인했다. 그많은 시체속에도 정민호는 보이지 않았다.    《그이는 어디에 있느냐?.... 어디서 잘못되였냐?.... 우리는 어쩌다나니 이 모양이 되었냐?... 부대화상! 부대화상!.... 아아, 자비도 모르는 걸레짝아!....》     향란이는 땅이 꺼지도록 한숨쉬였다.  그리곤 풀썩 주저앉아 목놓아 울기시작했다.          염왕산의 오불꼬불한 계곡에 일남일녀가 들어선지 오래다. 한 사람은 왕견이고 다른 한 사람은 소춘매다.     왕견은 걸음이 점점 빨라갔다.     소춘매는 팔을 벌리고 뚜벅뚜벅 걷는 사나이의 화장걸음도 미처따르지 못해 뒤에서 탈탈거리다가 아예 주저앉으면서 쫑알댔다.    《혼자가겠거든 어디 그냥가봐요.》    《어? 허....》     왕견은 뒤돌아보며 벌씬 웃었다.     《내 업어줄가.》    《그따위소리나 자꾸....》     소춘매는 눈을 할끗 빨았다.     그녀는 하루라도 푹쉬고 싶었다. 그래서 마음내키지 않았건만  왕견이 들어주지 않으니 방법없었다. 혼자 오두막에 남아있을 수는  없는지라 오늘 이렇게 따라나선것이다.     둘은 마침내 한 계곡에 이르러 걸음을 멈추었다. 몇해전에 왕견이 유인해 전멸시킨 일본토벌대의 백여구되는 시체와 말의 주검이 해골이 되어 여기저기 무더기로 널려있었다.    《하하하!.... 보우, 보란말이여! 틀림없잖아. 내가 그놈들을 몽땅 이렇게 잠재웠다니까. 하하하!.... 이 왕견의 손에서 이런꼴되면서두 무슨놈의 무훈장구야. 개똥나발이지! 하하하!....》     왕견은 온 산이 들썽하도록 한바탕 후련히 웃어댔다. 아무 때건 한번 꼭 와서 확인해 보려던 그겼다.     《당신은 영웅이 옳아요! 그리구 세상에 둘도 없는 악마구요!》     기분이 명랑해진 소춘매는 사내의 볼에 입을 맟추고 물었다.    《산채가 여기서 아직도 먼가요?》    《질러가면 칠리. 둘러가면 삼십리야. 여기까지 오고보니 본래사람 생각이 나나?》    《도는게 바르네요. 날 빼앗길가봐 그러나요. 건 안심해요. 모두들 지냄이 어쩐지?...》     소춘매는 가슴이 답답해난다면서 산정에 올라가 바람이나 시원히 쐬고 돌아가자했다.     왕견은 녀인을 달랑 업고 뾰족한 산꼭대기로 올라갔다.     소춘매가 방향을 가려낸 후 손을 들어 한곳을 가리켰다.    《산채가 아마 저쯤에 있겠죠?》    《그래 맞아, 거기야. 건데 웬 그스름내가 이리두 나?》    《글쎄요. 어제 비행기가 뜨더니....》     둘은 불길한 예감이 머리를 때리는지라 아느새 서로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그들은 약속이나한것 처럼 산을 급히 내려 발길을 곧추 산채쪽으로 돌리였다.     그스름냄새는 갈수록 짙어갔다.     그들은 걸음이 점점 빨라갔다.     오로지 발눈이 익은 사람만이 다닐수 있는 지름길을 걸어 마침내 서남어구에 이르었던 그들은 눈앞에 벌어진 전경에 그만 악연해지고말았다.    《여보, 산채가 몽땅 타버렸구만! 염왕산이 녹았어!》    《저길봐요!》     소춘매가 곡성을 듣고 웨치였다.    《울음소리 안들려요. 누굴가?.... 그렇지, 시누이얘요!》    《향란이가 옳네. 이런 제길헐! 어떻게 된 판이야?》     둘은 달음을 놓았다.    《시누이! 아이....》     소춘매는 목놓아 부르면서 달아가자바람으로 향란이를 부둥켜 안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우, 엉? 어떻게 된 일인가말이여?》     향란이는 두 사람을 보자 깜짝놀랬다. 마치 꿈을 꾸는것 같기도 하고 반갑기 한이없었지만 설음만은 멎지 않고 북바쳐서 더 세게 목놓아 울었다.     두녀인은 부등켜 안은채 눈물을 한바탕 흘리고나서야 그쳤다.     그러는 사이 왕견은 한심하게 살풍경한 산채를 돌아보았다.     향란은 눈이 다시금 둥글해지면서 갑작스레 나타난 두 사람을 한참 번갈아보다가 입을 열고 물었다.    《이게 꿈이요 생시오? 두분 다 어디에 있었기에 이렇게 왔어요? 여긴 어떻게 돼서 오게됐나말이애요?》    《아마두 천제님이 길을 끌었나보지, 이런 꼴을 보라구서.후ㅡ》     왕견은 한숨을 길게 뽑고나서 자기와 소춘매가 만나게 된 과정과 여기로 오게된 연유를 먼저 간략해서 알려주었다.     그는 소춘매를 데리고 할빈을 탈출할 때 역전에서 화물차에 뛰여 올랐다. 철로에서 일한 덕에 그것이 어디로 달리는 차라는것 쯤은 쉬히 알아낼 수 있었다. 과연 면바로였다. 그들을 태운 화물차는 수분하쪽으로 달리였다. 그러니 이 차는 장광재령을 꿰지나게 되는것이다. 산을 내놓고는 숨을데란곤 없었다. 그들 둘은 다 이제부터는 속세를 버리고 심산에 들어가 숨어살면서 숨이 지는 그날 까지 나오지 않으리라 했다. 워낙 산에서 살아보아 산에 정이 들었던 그네들이 아니였던가! 잃어버린 그깢 도시생활쯤이 애잡짤한것도 아니였다. 이러한 감정바탕이였기에 그들은 야속하고 사납고 험악한 인간사회와는 거리가 뜬 심산을 자기들이 소원하는 안양정토(安養淨土)로 만들리라 결심한 것이다.     그들을 실은 기차는 절주있는 바퀴소리를 내면서 경쾌하게 달리였다.     중동철로ㅡ 총길이가 3,200리나 되는 이 철길은 중국이 로씨야로부터 호로권과 행정권을 접수한 후로는 동성철로라 이름을 고쳤다. 이름을 고쳤건 고치지 않았건 그 철길이 내내 그 철길이였다. 위만주국은 1935년봄에야 1억 7천만원의 대가를 지불하고 이 철로를 로씨야로부터 샀다. 지금은 철로경호대가 든든하지만 이전에는 그렇지 않아서 이 철로는 늘 토비들의 습격을 받군했던것이다.      한때 염왕산은 이 철로에서 달리는 기차를 털어먹고 살았다.     위삼포는 그 숱한 마적무리들 중에서 그야말로 유인과 폭력을 겸하여 쓸줄을 아는 지모출중한 두령이였음에 틀림없었다.     그때 호로지휘권을 행사하는 최고기구는 동성철로호로군총사령부였고 총사령은 장작림의 의형제인 길림독군(吉林督軍) 손렬신(孫烈臣)이 겸하고 있었다. 총부는 할빈시 남강구에 있는 원로씨야호로군자리였다. 총부에 참모, 비서, 부관, 군법, 군수, 교제 등 기구와 감옥까지 그럴듯 하게 설치해놓았고 한 개려의 병력이 이 철로를 호위하고 있었다. 하지만 상층인물들이 부패무능한데다 병사들의 자질이 낮다보니 이 기나긴 철길을 제대로 관리해내는 재간이 없었다.     왕견은 나이 24살을 먹던 해 고령자(高嶺子)에서 화물차를 습격했던 한차례의 략탈을 특히 잊지 않는다.     고령자역 좌우의 석도하자(石道河子)와 횡도하자(橫道河子)에는 다 호로병이 있었다. 하지만 그번의 략탈은 아주 성공적이였거니와 성과가 휘황해서 산채를 부유하게 만들었다. 방법이 어떠했던가? 아주간단했다. 위삼포는 그곳을 지키는 한개반의 호로병을 몽땅 매수하여 그들이 토비의 습격을 막지 않을 뿐만아니라 지어는 략탈에 배합하도록 만들었던것이다. 어찌나 묘하게 짜고했는지 손렬신은 물론 장작림마저도 죽을 때 까지 그번의 큰 략탈을 다른 일반토비들이 한줄로만 여겼지 그것이 염왕산의 위삼포가 한짓인줄은 몰랐다.     이로부터 위삼포는 돈만쓰면 귀신도 매돌을 돌린다더니 그말이 과연 틀리지 않는구나했다.     한쌍의 도주자를 실은 화물차는 정오무렵에 고령자역에 도착했다. 왕견과 소춘매는 긴 화물차의 맨 뒷꼬리에 달린 차장바곤에서 내리였다. 그들은 객차를 타기보다 썩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왔다. 이제 여기서부터 여러날을 품놓고 산속을 파고들면 되는거다.     한데 그들은 고령자에서 생각밖에 불쾌한 일을 격게 되었다.     둘이 죠즈를 사놓고 한창 먹고있을 때였다. 경찰하나가 나타나더니 유독 그들만을 딴눈으로 보면서 캐고드는것이였다.     《손님들은 본고장사람아니지. 어디서 오는 길인가?》     왕견이 입에다 죠즈를 넣다말고 대꾸했다.    《아무데서 오건 음식먹는 사람하고 왜 시끄럽게 구오?》     대방의 대답이 올곧지 않은지라 경찰은 그를 칼칼히 쏘아보고나서 낯을 이켠에 돌렸다. 그는 몸가짐이 전형적인 도시풍의 우아한 소춘매의 매무시에 눈을 박으면서 입을 다시열었다.    《아가씨, 그 트렁크안의건 뭔지요?》    《녀인의 짐짝에 뭐가있겠나요. 입을 옷과 잡것들이 있어요.》     그 트렁크안에는 두사람의 옷과 거액의 돈이 들어 있었다.    《그걸 좀 검살해야겠어.》     경찰이 기여히 수색하려고 들자 왕견이 거치른 소리를 토했다.     《돼먹지 못한 자식! 남의 아낙네짐짝에는 왜 침흘리는거냐.》    《잔말말고 검사나 받아. 의심스러우니 그러는거야. 저....》    《야 이자식이!》     왕견은 그자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발딱일어나면서 주먹으로 불이 번쩍나게 귀통을 우려주었다. 경찰은 비츨거리면서 권총을 뽑았다. 하지만 쏘지 못했다. 발길이 먼저날려가 그를 꼭그라뜨린것이다. 왕견은 목을 탈아 그를 아예죽여버리고는 땅바닥에 떨어진 권총을 주었다.    《어리석은 놈! 천하에 네놈들밖에 없냐 그래.》     집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아연실색했다.     왕견은 누구든 문밖으로 나오기만 하면 쏠것이다 으름장을 놓고는 제 녀인을 데리고 거기를 나와 산속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산발을 타고 곧추 북으로 들어가면서 칠도구동산을 지나고 파송림을 지나 3일만에 대도정에 이르러 발길을 멈추었다. 지도에는 해발 1,291m로 표기되여있는, 주위 수백리가 무인지경인 이 인적부처(人跡不處)의 심산은 몇십년전에 위삼포의 아버지 위록산이 자리를 잡으려했던 곳이다.     할빈의 보안국에서 통집령까지 내려 붇잡자는 두 살인범은 여기에다 터를 잡고 움막을 지어 신혼의 새살림을 시작했던것이다.     여기서 염왕산이 그리멀지도 않은 거리였건만 와볼 생각이 없다보니 오늘에야 이렇게 나타난것이다.     염왕산의 괴멸을 직접 제 눈으로 보았고 향란이 한테서 들어 그 경과까지 대략알게 된 그들은 산채가 페허로 되었다 하여 발길을  인차돌릴 수는 없었다. 류자형제들의 시체들을 제 눈으로 보고서야 어찌 까마귀가 달려들게 하랴. 왕견은 폭격에 형체가 없어져버린 남쪽산채의 페허속에서 삽과 곡괭이들을 찾아냈다. 기운쓸만한 사람은 자기하나뿐이였지만 엄청한 작업을 시작했다. 그는 동쪽산채페허의 뒷켠에다 광을 하나 너르게 짓기시작했다.     두 녀인은 시체들을 하나하나 날라왔다.     합장을 다 끝내고나니 이틑날 저녁켠이 되었다.     셋은 다 지쳐버렸다. 하지만 큰일을 해냈기에 시름이 놓였다.    《이젠 할 일을 다 했으니....》    《시누이 우리 함께 가자요. 여기를 떠나자요.》     왕견도 소춘매도 향란이를 데리고 여기를 얼른 떠나려했다. 그런데 향란이가 두분이 돌아가요 나는 여기에 남을래요하면서 고집쓰며 나누울줄이야 어찌알았으랴.     왕견과 소춘매는 너무 어이없어 아느새 말이 나가지 않았다.     그녀가 고집쓴다해서 에라 모르겠다 그럼 너혼자 콱 있어보라고 내치고 갈수는 없는 일이라 왕견은 어린애를 달래듯 권고했다.    《위아가씨 가기오. 귀신이 수파람하는 이런 허지에 혼자 어떻게 산다고 이러오. 자, 자, 일어나시오. 갑시다, 가자니까.》     소춘매역시 제발 고집부리지 말라고 빌다싶이했다.    《시누이, 혼자 어떻게 있는다구이래요. 이젠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어야지. 그렇잖아요. 자, 일어나요. 고집말고 제발.》     그러나 아무리어째도 향란이는 한번 아니하니 다였다.     제길할 년, 제 애비의 성질을 어쩜 저리두 똑 떼 닮았을가. 왕견은 얼려도 말을 들어주지 않는 그녀가 몹시 민망스러웠다. 그러나 그렇다해서 내놓고 꾸짖을 수는 없었다. 그녀는 위씨가문의 사람이다. 여기서 태여나 여기다 태를 묻은 고향이니 그럴 수 밖에.     죽어도 염왕산귀신이 되려는 그녀를 당해내는 재간이 없었다.     왕견과 소춘매는 하는 수 없이 자기들이 대도정에서 여기로 옮겨오기로 했다. 아무튼 향란이를 버리고 따로 살 수는 없었다.     그들 셋은 페허들을 하나하나 뒤져 장차 살아가는데 쓸만한 물건들을 찾기시작했다. 하여 마침내 한 산채의 창고자리에서 강냉이쌀을 둬마대 파내고 식당이였던 서쪽산채의 페허속에서 다행히 깨여지지 않은 작은 솥과 식기와 소금궤도 찾아냈다. 목숨이 붙었으니 이같이 살길도 나지는것이였다.     일본군은 페허속에 그런것들이 남아있으리라고는 생각못했거니와 이제 또 누가 이런데서 살랴싶어 죽지 않은 말과 소만가지고 가버렸던것이다.     사람마다 연기가 다를뿐 인간의 삶 그자체가 하나의 극이였다.  향란은 희비애환으로 뒤얽혀진 여생을 어떻게 보내야할지 막연했다. 오빠도 민호도 없었다. 가까운 사람이란 오로지 소춘매와 왕견일 뿐이니 그들에게 의탁하는 수밖에 없는 홀몸이였다. 그녀는 사는 날까지 살아보자면서 팔자를 허무한 래일에 맡기였다.    《세상에 아마 사랑만큼 자사자리한건 없을거애요. 어찌 시기하겠나요. 막을수는 더구나없는거고요. 내가있다고 어려워말고 두분은 아기자기 부부정을 가꾸면서 살아야해요. 어찌보면 잘된 일이였지. 두분 다 여기에 있었더면 어쩔번했어요. 이렇게 하자요. 난 내방자리에다 내 집을 짓겠으니 두분은 아무데나 제맘드는데다 집을 지어요. 우리는 페허속에서 식량을 더 찾아낼 수 있을거얘요.》     향란이는 인정스럽고 활달한 녀인이였다. 그녀의 이 한마디가 용기를 북돋우어 왕견은 여기에다 당장 살림집을 짓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두 녀인을 데리고 대도정에 가서 거기에 있는 모든 살림도구들을 날라왔고 근 두달이나 품을 넣어 꽤 아담진 초옥 두채를 지었다. 사이거리가 50m도 안되였다. 하나는 향란의 집이고 하나는 왕견부부의 집이였다. 그들은 잠만 갈라 잘 뿐 먹기는 같이먹었다.      염왕산의 류자가 깨끗이 전멸된게 아니였다. 지꿎게 붙어있는   잔명들이 이렇게 부활하기 시작했다.       왕견은 올때 고령자에서 얻은 권총을 애지중지여겼다. 작은 탄창에 들어있는 탄알 몇 개가 지금은 뽐창과 비수와 철채찍을 내놓고는 그들 셋의 훌륭한 자위무기였다. 왕견은 자기의 육체가 든든함에 기뻣다. 자기에게는 두 녀인을 끝까지 먹여살려야 할 책임이 있다고 스스로 각오한 그는 오금에 녹이라도 쓸가봐 가만있지 않고 매일 이 일 저 일을 찾아했다. 근면한 살림꾼으로 변해가고있었던거다. 그도 민호처럼 사냥에 취미를 붙이였다. 옹노를 놓아 꿩, 자고새, 토끼를 잡아 거의 때마다 고기찬을 떨구지 않았다.     향란은 왕견의 정성이 고마왔다. 그러면서 한편 그가 잡아오는 산새의 고기를 먹을때마다 민호생각이 나군했다. 전에 늘 고기를 먹게하더니....지금 어디에 있는지? 죽지 않고 살아만 있으면 아무 때건 여기를 찾아오련만.... 그것이 막연하기는하지만 한오리의 실날같은 희망이기도해서 향란이는 더욱 이곳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여생을 한몸으로 지내자고 가약을 맺지 않았던가, 미처 잔치를 하지 않았을 뿐.     어느날 향란이는 방정에 갔다와야겠다면서 차리고 나섰다.     왕견도 소춘매도 그녀가 갑작스레 그러는걸 보고서 무슨일이냐고 물었다. 향란이는 자기가 꼭 찾아봐야 할 사람이 하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게 누구라는건 알려주지 않았다.             《열흘이면 비슷할거야. 돌아올테니 근심말아요.》     소춘매가 그래도 근심스러워 충고한다.    《기껏해야 이틀이면 갔다 올 길을 열흘씩이나? 대체 무슨 사람을 찾자고 그래요?.... 가지말아요. 지금은 나돌때가 아니야. 행인조사가 얼마나 심하다구 그래요. 소개신 증명없인 어딜가나 하루밤도 잘 수 없어요. 진쟈(신당)를 만나면 허리굽혀 인사해야지. 서사니 뭐니하는걸 외워야 차도 배도 탈수 있어요.》    《내가 뭐 기차타러 가는가 배타러 가는가. 두발로 걸어다는데야 지껄이는 놈 없겠지.》     향란이는 소춘매가 그리말려도 듣지 않고 떠났다. 여기로 일본토벌대를 끌고왔던 그 호덕화가 바로 방정사람이니 거기가면 그의 종적을 찾아낼 수 있으리라 여겨졌던것이다. 그자의 명줄을 자기손으로 꼭 끊어놓고야말리라 결심한 향란이였다.     방정에 도착한 향란이는 전에 다니며 사귀여 둔 집에서 자면서 호덕화를 찾아내려했다. 그 집은 그녀와 동성이였는데 아들은 협화청년단원이였다. 하지만 부모들이 오래전부터 위삼포와 은밀한 교분이 있었던걸 아는터여서 향란이를 내쫓지도 잡아가게 고발하지도 않았다.     방정은 현성이여서 일본군도 만주국군도 있었다. 하지만 경계가 어찌나 심한지 병영가까이 접근하기 어려웠다. 호덕화가 과연 적군속에 있겠는가 다른데는 있지 않을가?.... 아침부터 해질녘까지 술집, 려관 상점들을 훑었건만 호덕화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북데기에 떨군 바늘을 찾자는 격이였다.     한편 아무증명도 소개신도 없는 토비녀인이 문득와서 자기 집에 묵으니 그 종친집은 단가마에 앉은거나같았다. 향란은 남을 너무나 궁지에 몰아넣는것 같아 사흘만에 거기를 나왔다.     염왕산으로 돌아오느라 현성밖으로 나온 향란이는 길 저켠의 둔덕우에 전날오면서 보았던 진쟈에 눈길이 다시갔다. 그것은 나무판으로 벽을 만들고 웃갓을 씨운건데 앞쪽에 벽돌을 펴서 작은 운동장같이 만들어 놓은 공지가 있고 그 공지의 앞에 그리굵지 않은 나무로 문짝이 없는 대문을 해서 세워놓았다.     한떼의 소학생들이 렬을 지어 허리를 꿉석거리고 있었다.    《쓸데없는걸 만들어놓고 지랄이네!》     향란은 정부의 처사에 쓰거워했다.     세해전인 1940년 5월이였다. 강덕황제 부의는 일본에 가 천황을 배견할 때 천황이 그한테 아마데라스오미가미라면서 칼과 구리거울과 옥구술을 주니 받아갖고 돌아와서는 그것이 신성불가침의 대신(大神)이라면서 제궁옆에다 를 짓고 모시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전국에다 라는것을 내렸는데 그같은 모양의 진쟈(신묘)가 마치도 흐린날 소똥무지에 똥버섯돋듯이 일시에 온 만주전역에 생겨났던것이다.                 짐은 금번                  건국신묘를 경건히 세움으로써 국가근본을                  장구히 다지고 국가강령을 무궁토록 펼치                  고저 조서를 내려 만백성에게 알리노라....       웃머리는 이같이 떼고 시작한 는 강덕황제가 아마데라스오미가미를 모시고 존중심을 다 바치겠다느니 국민만복을 비는것을 영구한 대전으로 정하겠다느니 대대손손으로 하여금 이를 존중하게 하겠다느니 계승하여 영원히 따르게 하겠다느니 하면서 신도로 국가근본을 다지고 충효의 교리를 국가강령으로 삼을것이라느니 뭐니했다.     강덕황제는 달마다 초하루와 보름이면 에 가서 제를 지냈다. 그러면서 만주국의 백성은 자기를 따라배우라면서 그 누구든 진쟈앞을 지날 때면 반드시 허리를 90도로 굽히고 인사해야지 그러지 않으면 에 준해서 징벌하리라했다.       소춘매가 이런줄을 알라고 했을 때 향란은 더러워죽겠네 그게 다 뭔데 중국사람이 신으로 믿고 받든단말인가 하면서 코웃음을 쳤던것이다. 내 저놈의걸 없애치워야지.     그는 과연 지키고 있다가 학생들이 가버리자 진쟈의 웃갓을 벗겨버리고는 각을 뜯어버리고 돌아왔다. 그리하여 방정에서는 수천명 협화회의 사람들이 동원하여 반동분자를 찾느라 일장의 대소동을 벌리였다. 그들이 염왕산의 녀토비가 아직 살아 그런 고약한 짓을 했으리라고 꿈엔들 생각했으랴!     향란이는 방정에 갔다가 돌아오면서 그짓만한게 아니다. 들에 놓아 풀을 먹이는 말 두필이 눈에 띠이니 그것까지 훔쳐왔던거다.    《하하하.... 이거 위아가씨가 대단히 좋은일을 했수구레! 그러잖아 농사짓자면 쟁기를 끌 놈이 있어야하는데. 하하하.....》     누구보다 기뻐한건 왕견이였다.     향란은 그보고 물었다    《그래 이젠 산밖을 안나갈 예산인가요?》    《왜 나가지 않겠소만 되도록 적게 나갈 생각이우다.》    《건 왜서요?》    《자꾸나거서는 뭘하겠습니까. 가마를 마슨면 몰라두. 이제는 그럴 신세두 아니니 들어앉아 농사질이나 해먹는게 똑 제일이지.》    《그게 소원이면 어디 그래보시오만 난 가만있지 못하겠어요.》     하면서 향란이는 자기가 방정에 갔다온 리유를 말했다.     왕견은 그가 호덕화를 찾는다니 눈이 등그래졌다.    《아니 그 녀석이 이 널다란 만주땅 어디에 숨어있는줄을 알고 아씨는 그럽니까!?》    《그렇다구 나더러 찾지 말고 내쳐두라는건가요? 어찌 그럴수 있어요. 복수를 하지 말라는건 아니겠지요?》    《그 소리야 아니지. 복수는 해야하는건데 의아가씨가 눈먼 강아지 어두운 밤에 엄벙덤벙 하는것 같아서 그러지요.》     소춘매도 한마디 충고했다.    《시누이 그만둬요. 경찰 특무가 욱실거리니 나돌지 말아요.》    《그걸 무서워하면 어떻게 해요. 난 그놈이 승천입지를 한대도 그여히 찾아내고야말테야.》     향란은 한번 먹은 마음을 버리지 않으려했다.       북쪽산채페허앞에 위용강의 묘와 가지런히 수이샹, 즈좡, 량태의 묘가 있었다. 그것들은 왕견이 두 녀인을 데리고 따로만든거다.     향란이는 오빠의 묘앞에 서서 마치 산사람하고 하듯이 말했다.    《오랍은 부서를 찾던 날 부친님의 시신을 꼭 여기다 모시자고 말했지요. 그래놓고 오랍은 돌아갔네요. 할수있나요 오랍은 명이 그만한걸. 걱정말아요. 부친의 시신을 이장하는 일은 내가 아무 때건  할거얘요. 그때면 오랍은 저승에서 부친을 가까이 뵙게될거얘요.》     소춘매가 찾아왔다. 그녀는 향란이가 혼자말하니 정신이 들락날락 하지 않나해서 눈이 동그래졌다.    《아니 시누인 누구하고 그렇게 말해요?》    《내 오랍하구서.》    《무슨얘기를?》    《아버지의 시신도 이리로 모셔오리다했어요. 이건 오랍이 생전에 나하구 애기있었던거얘요. 이젠 그가 갔으니 내가 해야지.》    《그렇군요. 우리도 집에서 말이 있었어요. 위두령의 산소를 여기로 옮겨와야한다구요. 안그래요. 아버님을 외롭게 산밖에다 그냥둘수야 없지. 거리가 머니 청명절이 돼도 벌초를 못해드리지....》    《멀어못해드린다는건 리유가 되지 않지. 난 딸구실을 못했어.》     이틑날 향란은 단신으로 아버지의 산소를 보러갔다. 적들이 못쓰게 하지나않았나 근심했더니 다치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그저 풀이 무성할 뿐이였다. 그녀는 아버지의 산소에 분향하고 돌아가리라했다. 하여 그녀는 태평진에 거의가서 말다리 하나를 고삐에 맨 후 옥수수밭가의 풀밭에 몰아넣어 저절로 풀을 뜯게 하고는 곧추 성내로 들어갔다.     여기서도 방정과 마찬가지로 행인이 많아서 그런지 성문을  심하게 단속하지 않아 출입이 용이했다. 향란이는 가까운 상점에 들어가 향과 누런지전을 얼마가량 사갖고 얼른돌아섰다.     성문을 나온 향란이가 아버지의 산소쪽을 향해 한창 걸음을 놓고있을 때였다.    《게 좀섯거라!》     웨치는 소리가 나기에 뒤를 돌아다 보니 사나이 둘이 자전거를 타고 뒤쫒아오고 있었다. 향란이는 일이 잘못됐구나 저것들이 어떻게 냄새맡고 여기까지 쫓아올가했다.    《어디루가는가?》     한자가 가까이로 오더니 자전거에서 내리며 물었다.     다른 한 자가 웃호주머니에서 사진을 꺼내는데 피끗보니 그것은 여러해전에 올케와 같이 찍은 사진이였다.     아니 저것이 어떻게?.... 향란이는 특무들이 자기를 찾고있다는걸 제꺽알아챘다. 그녀는 그자들이 어물거리는사이에 허리에 감은  철채찍을 얼른 풀어 휘둘러서 둘다 그 자리에 꼭그라뜨렸다.    《더러운 피자놈들, 내가 네놈들손에 잡힐려고 온줄알았더냐.》      성안에서 일본군인들이 나오는것 같았다. 향란은 특무손에 나도는 사진을 찾았고 그자들의 몸을 들춰 권총 두자루와 증명서와 얼마간의 돈을 가지고 황급히 염왕산으로 향했다.     추격받지 않고 무사히 돌아왔다. 한데 그는 두가지 일을 하지 않아 마음이 석연치 않았다. 하나는 아버지묘에 분향을 못하고 온 것이고 다른 하나는 특무들의 명줄을 끊어놓지 않은것이였다.             
152    <<관동의 밤>> 제2부(34) 댓글:  조회:3143  추천:1  2015-02-04
                           34               오래동안 일어나지 못하고 병상에 누워있는 반둬더 전문방은 피골이 상접한데가 수염이 온 얼굴을 덮고있어서 보기조차 끔찍했다. 이제는 목구멍으로 죽물도 넘기지 못하고 배만 불러가고 있었다. 산채에 나이 70이 되는 의사가 있긴하나 환자가 불치의 병에 걸렸으니 이젠 속수무책이다.     전문방이 이같이 저승길을 가고있건만 정신만은 또렷하니 별일이다. 몸 가까이에 두해전에 민호가 그를 보라고 준 선전삐라 한 장이 있었다. 그것은 동북항일련군 제3로군의 명의로 발표한 이였다. 그 글에서는 항일은 계속될것이며 민중은 일제와 만주괴뢰의 리간책동에 넘어가지 말고 반일사상을 버리지 말라고 호소하였다.     민호와 위용강이 가자 전문방은 앓음소리를 멈추었다.         《내야 다 글러먹은건데 아까운 약은 왜 자꾸쓰나. 관두게.》    《그런 말씀은 왜 하십니까. 병을 어떻게 하나 치료해야지요. 천도가 무심치 않으니 이제 꼭 치료해낼겁니다.》     민호는 아무런 파악도 없는 말로라도 그를 위안하려했다.    《뭐든 좀 드셔야겠는데....》     위용강역시 해도 쓸데없는 말로 그를 위안하려다 그만뒀다.     환자가 오히려 그들에게 권유했다.    《나 때문에 자꾸 수고마오. 살만큼 다 살아 아까울거 없는데.》     그는 맥이 없어서 쉬였다가 다시이었다.    《용기를 내세. 사기가 오르게.... 병법에 이르기를 사기가 고앙충실(高昻充實)하면 나가 싸우고 저락심허(低落心虛)하면 퇴각하라했으니 그걸 명심하고.... 보아하니 이젠 쉴만큼 쉬였겠다 싸워보는것도 괜찮지 않을가. 내 생각은.... 너무나 무심심할텐데.》    《왜 싸우지 않겠습니까. 싸워야지요. 우리가 용기없어서 그러는게 아닙니다. 형세부득하니 좀 더 안병부동할 뿐이지요.》     위용강이 변명쪼로 하는말이였다.    《형세가 어떠하길래?》     환자가 물는 말이였다.     민호는 그한테 산밖의 정항을 알려주었다.    《지금은 전에 비해 항일이 더 어렵게 되었습니다. 싸움은 지속되고 있지만 점점 더 힘겨워지지요. 사문동의 부대나 리화탕의 부대나 그런건 다 허물어진지도 오라잖습니까. 이제는 다른 항일부대들도 인원이 팍 줄었고 로씨야로 넌어간다고 합니다. 거기가서 휴전하고 련병을 했다가 동산재기를 할 타산들이겠지요.》    《그.... 그러구 보면.....우리는....무사한 축이라는건가?》    《그렇지요. 십팔라한이 보유하사 덕분에 산채는 아녕합니다. 그저 반둬더 형님께서 완쾌하기만을 삼가빕니다.》     전문방은 낯에 웃음기를 띠였다.     그가 이제는 장운천이 죽어서 그가 생전에 거느리던 무리를 왕견에게 맡겨 밖으로 내보낸 그 염왕산의 독립패라 명명한 무리의 운명에 대해서는 입밖에 더 번지지 않았다. 염왕산의 두령들은 그 독립패가 염왕산의 외각을 지키면서 싸움을 잘했다는것을 알고있었고 어느 한 항일유격대와 협동작전을 하려고 찾아갔다가 찾지 못한 채 염왕산으로 들어오려다가 녕안일대에서 추격해온 일본군과 맞붙은 통에 인마가 거의 전멸되였다는것도 알고 있었다. 왕견이 염왕산으로 돌아가지 못했을 뿐 다른 류자 몇은 구사일생으로 위험에서 벗어나 염왕산으로 돌아갔던거다. 전문방은 자기가 위용강과 같이 그들을 밉게만 보고 벌을 주느라 쫓아내나 다름없이  내보낸건 극히 잘못된 일이라고 반성하면서 늘 마음상 가책을 받아왔던것이다.    《우린 너무나 무책임했어. 그러지를 말았어야하는건데....》     그의 입에서 나오는 이런 말과 탄식을 민호가 들은것만도 몇십번이 될거다. 그 패를 책임졌던 왕견마저도 어떻게 되었는지 생사조차 모르게 되어 민호는 그의 의견대로 조사조를 내와 온만주 3성을 돌게 했지만 결국 헛탕치고말았던거다.     세월이 오래되니 그도 이제는 잊혀지는지 그 말은 하지 않고 앞일을 념려했다.          《사변이 난지두 이제는....오....옹군 열한해가 되고있지?》    《그렇습니다.》    《그으래 장차는?...》    《싸워야지요. 침략자를 몰아내구야 무기를 놓을텝니다.》    《그렇습니다. 황하까지 가지 않고는 단념하지 않을텝니다.》     민호의 말에 뒷이어서 위용강도 하는 말이였다.     전문방의 얼굴에 다시한번 웃음이 피는것 같더니 눈을 감는다. 그리고는 다시못떴다. 숨을 거둔것이다.....       무더위가 계속되고 있었다. 어느날 적의 동향을 정탐하러 산채를 나갔던 정찰반의 류자들이 돌아와서 이본군은 지금 군사련습을 대대적을 하고있다고 보고했다.    《뭐라, 군사련습을 한다! 그자들이 갑자기 그건 왜 할가?》     위용강의 얼굴에는 의문의 그림자가 덮히였다.    《세계대전을 일으켰으니 제 력량을 과시하느라 그러겠지 아무렴 우릴 겨누고 하는 짓일가, 그렇지는 알을거야.》     민호가 분석을 했다.     그의 분석이 틀리지 않았다.     일본관동군은 이해의 7, 8월사이에 북만에서 이른바 이라 이름지은, 100만명이 동원됐다고 하는 한차례의 군사련습을 크게 벌리였다. 이번에 참가한 실제수자는 군인이 70만명, 말 14만필, 비행기 600대, 공사수리인원이 20만명이였다. 태평양전쟁개전후 일본관동군의 일부병력이 남으로 나가서 관동땅에 주둔하고있는 수자가 감소된 형편에서 일본은 세상사람들 앞에 보아라 우리는 아직 후비력이 이렇게 강하다고 시위하는것이였다.     한편 일본군은 아무데도 수편되지 않은채 항일을 견지하고있는 염왕산을 어떻게 하나 제쪽에 끌어당겨보려고 두 번이나 견주었다가 두 번 다 실패하고말았다. 거짓투항을 했다가 범의 아가리에서 겨우 빠져나온 위용강의 결심이 드놀지 않았다. 그는 처음에 찾아온 일본군측의 대표는 곱다랗게 돌려보냈지만 두 번째로 다시들어온건 대표는 아예 생매장을 해버렸다.....     전문방이 죽고도 산채에는 병을 몹시앓는 류자가 서넛되였는데 그중의 하나가 또 죽었다.     환자를 돌보러 북쪽산채에 갔던 향란이가 돌아와 알리였다.    《단자만(손씨)이 눈감았어요!》     오인 정민호는 그 소리가 마치 귀뿌리를 빼는 총소리같이 들려 와뜰놀래면서 신경질을 썼다.    《아니 그런 병도 못고친단말인가, 그래?》     향란이는 억울해서 대꾸질했다.    《모두 병이 고황에 들었는데 의원인들 무슨 방법이 있겠나요.게다가 약마저 제대로있기나한가요.》     올해들어 류자셋이나 황천으로 가버렸다. 산밖은 이젠 립추의 여지도 없이 적의 세상이 되고말았다. 적들은 저들의 치안을 강화하느라 경제봉쇄를 하는바람에 돈이 있어도 약같은것은 구하기 힘들어 능히 고칠 수 있는 병도 고치지 못하고 주검을 내는 판이다.     민호는 이런 사정을 번연히 알면서도 한마디 더했다.    《장평은 어떻소. 불쌍한 앤데 걔마저 눈감게 말아야지.》     장평은 양즈방이 죽은 후 민호와 향란이를 더 극진히 믿고 따르는데 그도 병에 걸려 벌써 여러날째 앓고 있었다.     향란은 낯을 돌려 눈물을 훔치였다. 성격이 대쪽같은 이 녀인이 조만해서는 이러지를 않는다. 민호는 그녀가 이러는것을 처음본다. 그녀는 날이갈수록 전도가 암담하면서 예견못했던 어떤 불길한 예감이라도 드는 모양이다.     《향란아!》      저쪽에서 위용강이 민호와 마주하고있는 그녀를 부르는데 어딘가 흥분된 목소리같았다.     《왜 그래요?》      향란은 몸을 돌려 오빠의 몰골을 빤히 쳐다봤다.     《내 좀 보자. 여기루 오너라.》      향란은 따라가면서 오빠가 왜 나를 따로보자고 이러는걸가 고 속으로 점쳤다. 그녀는 한때 욕계삼욕(欲界三欲)에 사로잡혀 부화한 생활을 했던 제 오빠가 소춘매를 놓치고나서는 다시 속현(續絃)할 생각이 없다는걸 안다. 하여 속으로 우리 위씨가문은 과연 대가 마르는구나 했다.     《네가 이게 뭔가구 봐라.》      위용강은 자못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 여러겹으로 접은 백당목을 내놓았다.     《오랍 이건뭐요!?》      향란이도 적이 신비하여 부르짖었다.     《부친께서 남긴 부서로구나!》     《아니 이걸 어디서 찾았어요?》     《저기 당화기안에 있더구나.》     《아이참, 그런걸 왜 인제야 찾았어요?》     《글세 나도모르겠다. 인제야 머리돌았구나.》      위삼포의 방 한쪽구석으로해서 여러해째 그 자리에 움직지 않고 놓여있는, 채화를 그린 커다란 자기항아리가 놓여 있었다. 위용강은 남자치고 그렇게 데면데면한 축이 아니였다. 한것도 여지껏 이 안에 이런 귀품이 들어있으려니는 생각지도 않다가 우연히 그 안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나서 들여다보니 백지로 감은 두루마리가 있어서 꺼내보니 아버지의 친필로 된 부서(符書)였던거다.     향란이가 펼쳐보니 붓으로 아래와 같이 또렷이 씌여졌다.             자고로 목숨가진 자 제 생존을 위해 버둥이치는게 인간세상이노라.          사람이 유순하면 남한테 멸시받고 말이 좋으면 남을 태우니라.          네가 명지적견이 있다면 국은 밝아질것이요 우매하면 암담해지리라.          충언을 마음속에 받아두어 랑패없으나 간언을 들으면 패가망신하니라.          마치가 가벼우면 못이 솟아나거니 엄할 때는 추상같아야 하네라.          내 일신의 영화만 생각하고 형제민족을 떠남은 역적과 다를배없네라.          내 스스로 죄악의 장본인이 되지 말고 시례지훈을 명심해 새겨두거라.          재난이 래림할 때 덤비지 말고 지기와 용기만 있으면 살길은 나지리.       내용이 이러하였는데 시간을 보니 오빠가 태평진에 들어가 있는기간에 아버지가 분병을 앓으면서 써둔것이였다.     이 부서를 다시금읽어보는 위용강은 이 시각 꼭마치 자기가 아버지의 면전에서 그의 엄한 교시를 듣고있는것만 같았다.    《오랍은 어때요?》    《뭐가?》    《이 부서가요.》    《......》    《어떻소. 오랍한테는 구절구절 덕담같지 않아요.》    《그렇구나!》    《부친께서는 우리 위씨가문이 그릇될까봐 자식에게 이같이 당조짐하고 돌아가셨으니 과연 명지한 처사를 하셨지.》    《네 말이 맞다. 부친께서는 선견지명이 있어서 당래지사가 어떠하리란걸 알고 나를 이같이 일깨워주신거야. 내 눈이 이제 좀 더 밝아지는것 같구나.》       《그렇다구요! 정녕 그렇다면야 오랍이 오늘 이걸 찾아낸건 여득만금보다 더 기쁜일이지. 안그래요? 호호호.....》     향란이는 의기소침해지고있던 제 오빠가 정신나 하는 모양을 보고 기뻐했다.    《그런데 난 부친님을 아직까지도 산밖에다 두고있구나. 난 그야말로 불효막심한 자식이지.》    《나도 불민했으니 이 일은 오랍만 탓할게 아니지. 이러자요.》    《어떻게 하자는거냐?》    《래일이라도 이장하자요. 그러면 될거 아닌가요.》    《그게 그리 간단한게 아니다. 생각해봐라. 우리가 도적놈처럼 이장한다면 구천에 가신 아버지께서 노여워하지 않겠니, 이 용강이가 비겁쟁이라구.》    《어쨌든 이 일이야 남이 알게야 할 수 없잖은가요. 그러니 아무튼 밤에나 가만히 제를 지내고 움직여야지. 안그래요, 오랍?》     향란의 말에 리유가 없는것이 아니다. 아버지의 유해를 좋은 곳에 모셔 부귀하게 되기를 바란다면 꼭 이 염왕산으로 옮겨와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일을 적이 미리부터 예견하고있었다면, 그런줄도 모르고 이켠에서 손을 댄다면 그때는 무경각한 토끼모양으로 제 스스로 옹노에 걸려들고말게 아니겠는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네놈들이 제 애비의 시체를 그냥 바깥에 내쳐둘까 하면서 태평진에서는 그 산소를 유인물로 삼고 감시하는것만같았다. 하기에 보다 안전책을 세워야하는것이다....       지난겨울에 염왕산류자들은 포수대를 내와 여우, 승냥이, 노루, 사슴, 곰 등 짐승들을 많이 잡아서 산채에서는 거의 때마다 육붙이를 떨구지 않았거니와 가죽을 수백장얻었다. 천이 없어서 근심할것있는가. 이젠 그것이면 옷을 훌륭하게 만들어 입을 수 있었다.  그 해결책은 민호가 생각해낸 것이였다.     민호는 류자 30여명을 선발해서 제혁술을 배우게끔했다. 그가 그들에게 강의를 하고있는데 위용강이 와서 조용히 불러내여 한가지 의견을 들어보자는것이였다.    《여보게, 우리 그 두녀석을 빼버리는게 올잖아?》     그가 말하는 두녀석이란 투항을 획책한 류자들이다. 위암을 앓다가 죽은 반둬더 전문방의 장례를 치르고나서였다. 그가 생전에 데리고왔던 새자들의 정서가 전만다르게 갑작스레 변해가고 있었다. 그래서 조사해봤더니 패장과 반장질을 하고있는 두 녀석이 적에게 투항할 궁리를 하고 함께 염왕산을 빠져나가자고 다른 새자들을 선동했던것이다.    《그 의견에는 나도 동의야.》    《그럼 무슨 방법으루 할가?》    《첩라(향뽑기)하기오.》    《괘주를 한치들이 아닌데.》    《그래두 그렇게 하는게 정당하고 격에도 맞다고 생각하오.》    《하긴그래. 그러면 그렇게 하지. 언제할가?》    《달이 둥글어지거든. 오늘이 며칠이요?》    《열사흘.》    《그럼 이틀 부해(물)를 더 먹겠군.》     향뽑는 날이 돌아왔다. 전체류자들이 중앙산채의 앞마당에 집합했다. 민호가 염왕산을 나갔다가 다시들어온 후 산채는 반둬더가 두 번 바뀌였다. 전문방의 후임으로 된 마수재가 이날의 향뽑기의식을 집행하게 되었다.    《내 먼저 한가지 선포하지. 무릇 염왕산을 떠나갈 사람은 반드시 첨라를 해야한다. 의견이 없는가?》     반대하여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몇해전 민호가 여기를 나갈 때 처럼 향로에서 향 19가치가 타고있었다.    《자 그럼 시작하지.》     마수재가 입을 다시열었다.     이번에 첨라하기로 되어있는 두 인물중 반장노릇하던 자가 먼저나섰다.                     십팔라한 사방에 있고                       맏두령님이 가운데 있네....       그가 향을 다 뽑자 류자들은 랭소하며 웅성거렸다.     위용강이 노한 눈길로 쏘아보고있다가 웨쳤다.    《이 불칙한 놈 산채를 왜 나가려는지 이실직고하라!》    《이실직고해라!》    《이실직고해라!》     류자들이 소리쳤다.    《저녀석은 적에게 투항하자구 산채를 나가는거다!》     누군가 비밀을 까밝혀놓았다.     그러자 사군데서 웨침이 터졌다.    《저놈을 달아나지 못하게 하라!》    《뽑아버려!》    《지금당장 잠재우라!》     위용강이 명령했다.    《마인(묶어라)!》     류자 몇이 욱 달려들어 그자를 포승지워 꿇어앉히였다.     다음차레는 패장이였다. 그는 본래배짱이 센 자라 추호의 주저함이 없이 태연스레 걸어나왔다. 그러던 그가 향로앞에 채 이르지 않아 갑작스레 몸을 돌리더니 어느결에 비수를 뽑아 들고 위용강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자는 칼을 미처 쓰기전에 쌩 날아오는 뽐창에 순통을 맞고 그 자리에 폭 꼭끄라졌다. 향란이가 뿌린것이다. 그자는 그렇게 황천으로 가고 묶이웠던 자는 위용강의 칼에 목이 날아났다.     그 둘의 음모자들을 처단해버리자 민호가 나서서 부르짖었다.    《형제들아! 우리는 그래 관동땅 삼천만이 왜놈의 노예로 변해버렸음을 그래 보지못했가? 원쑤들은 굴복치 않는 우리들을 소멸하려고 오늘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더더욱 단결하여 의기투합해야 할 때에 변절자가 나졌으니 이를 어찌 가만둘수 있단말인가....우리가 살길은 오직 하나ㅡ끝까지 싸우는 것 뿐이다. 마지막 한 사람이 남을 때 까지 육탄혈전하여 저 잔악한 왜적을 물리치고 강토를 찾아야 한다!》     이 일이 있은 후 다시는 감히 투항을 꾀하는 자가 없었고 류자들이 동요하는 현상도 없게되였다....       새해의 봄이 돌아와서야 까딱않고있던 염왕산이 마치도 동면을 깨고난 곰같이 다시금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사이 죽을 사람은 죽고 가겠다는 사람은 내보내여 다시 예전의 수자만큼 되어버린 류자를 3개련의 기마대로 편성하여 위용강, 정민호, 마수재의 휘동하에 혹은 분산 혹은 합치기도 하면서 염왕산근처 수백리를 주름잡으며 략탈을 감행했다. 그들의 습격을 받는 대상은 거의가 부호나 경찰서들이였다. 부락마다 토성을 쌓아놓고 자위단이 지키고 있었지만 그따위 무력을 갖고서는 신출귀몰하는 이 토비를 당해낼 수 없었다.     처음에는 항일련군이 산속에 숨어있다가 다시활동하는줄로 알았던 일본군은 그것이 두 번이나 설강을 받지 않고 물리친 염왕산토비라는것을 알고는 이를 븍븍 갈았다. 제일 안달아난 사람은 물론 태평진의 수비군사령 오도야마였다.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관동군을 일본황군의 꽃으로 부상하게 다소나마 공적을 쌓은 그는 자기의 코앞에서 다시금 날뛰기시작하는 이 한떼의 맹수를 저지시키지 않고는 위신이 서기 힘들었다.     여름철을 방금잡아서다. 태평진에서 동쪽으로 수십리에 있는 이도하자에서 기와가마를 마스러 왔던 염왕산 류자 하나가 말이 자위단의 총에 맞아 꼭그라 질 때 떨어져 다리를 상한채 붇잡히우고말았다. 이도하자자위단에서는 그를 곧 태평진의 일본수비대에  넘겼다. 오도야마는 이때 한창 염왕산을 토벌할 계획이였으나 길잡이를 구하지 못하던차라 그를 잡아오니 보배라도 주은것 같이 기뻐했다. 그런데 포로가 본래의 염왕산류자인것이 아니라 항일련군 제8군에 있다가 우두머리가 일본군에 투항해서 대오가 와해되니 염왕산에 들어와 류자로 된 자였기에 산길을 잘 모르고 있었다. 오도야마는 그가 아무쓸모도 없는 걸레짝같아 죽여버리려했다. 그러다가 머리가 다시돌아 그자를 살려놓고 염왕산류자들의 성분과 정서를 공술케 하는 한편 작전을 다시연구했다.     어느날 염왕산상공에 쌍옆비행기 한 대나타났다. 그 비행기는 탄알이 미치지 않을 정도의 고도에서 한바퀴 선회하더니 산채를 가로지나면서 삐라를 무수히 뿌리였다. 그것이 바람에 날려가고도 적잖은것들이 산채에 떨어져 류자들이 주었다.     일본관동군이 류자들에게 투항을 선동한것이였다.   염왕산 류자들에게 알린다. 지금은 략탈을 일삼으면서 죄악으로 살 때가 아니거늘 너희들은 신의 섭리를 깨닫고 어서빨리 정신을 차려야 할 것이다. 아세아와 세계의 안녕과 복리를 위하여 태평양전쟁에 참전한 우리 대일본제국군은 지금 거듭거듭 싸움에서 일취월장하고 있다. 항일련군은 이미 끝장을 보았고 반만항일조직들은 분쇄 되여 만주제국은 평화지대로 개변되였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너희들만 남 아서 일일 소란을 계속함은 부질없는 미런한 짓일뿐이다. 염왕산류자들은 듣거라. 무장을 놓고 자수함은 인생의 새 출발을 의미함이니 국가와 정부는 관용을 베풀어 과거를 묻지 않고 생로를 주리라. 사문동과 리화당을 보거라 항일에 선봉이던 그런 장령도 회심하니 새사람이 되지 않았느냐. 황군은 낙언을 지 켜주고 있으니 항일의 총을 메였다가 토비된 자는 기억하라. 때를 놓치지 말 고 너희들의 장령을 본받거라. 토비와 그냥있으면 끝장이 좋지 않으리라. 오 로지 멸망뿐임을 알거라. 지금 너희들이 섬기고있는 두령의 감언리설은 너희 들을 자유롭지 못하게 묶고 있네라. 각성하고 그것을 끊으라! 반란하고 돌아서거라!! 어서빨리 투항하거라!!!         거짓말을 해가면서 위협하고 얼리였다. 우선황군이태평양전쟁에 거듭거듭 승전하면서 일취월장하고있다는 것부터 새빨간 거짓말이였다.     일본은 태평양전쟁 개전직후 얼마간은 남방지역에서 승전을 거듭했으나 지난해의 후반기부터는 점차 반공(反攻)태세를 갖춘 련합군의 공세에 부딧쳐 미드웨이해전, 구아들카낼작전에서 대패한것을 고비로 올해부터는 전면적인 패퇴를 거듭하고있는 판이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삐라를 본 류자들은 일본군의 감언리설에 마음이 동하기 시작했다. 특히 항일련군 8군에 있다가 그것이 와해되니 주인잃은 개모양으로 산속을 헤매다가 염왕산에 의해 구출되여 류자로 된 자들이 더 그러했다. 그런자가 8명있는데 그들은 전에 저들의 상관이였던 사문동(謝文東)이나 9군 군장이였던 리화탕(李華堂)을 선견지명이 있는 사람으로 평가하기까지 했다.     사문동은 집이 화남근처에 있는 대지주로서 9.18사변전에는 의란현 보안단총(保安團總)으로 있었다. 그러다가 1934년도에 일본이 땅을 강점하는것에 반항하여 토룡산(土龍山)의 농민폭동을 일으켜 일본군지휘 이스카라대좌를 죽이고 항일에 나섰다. 그의 부대는 1936년말에 공산당에 수편되여 항일련군 제8군이 되었고 그는 군장이 되어 항일을 했다. 그러다가 1939년봄에 일본군에 투항하여 대한간이 된것이다.     정민호와 위용강을 비롯한 염왕산류자모두가 사문동은 변절한이 되어 일본천황이 내린 금두꺼비상까지 탔다느니 지금은 적도(적도)에서 협화회 회장노릇을 하고있다느니 무슨 더 큰 벼슬살이를 한다느니 소문이 난게 어제오늘이 아니였다.      리화당역시 그따위인물이다. 그는 길림자위군 리두의 96퇀 영장으로 항일에 참가했다가 사문동처럼 1936년에 공산당에 수편되여 항일련군 제9군 군장이 되었던것이다. 그는 한때 동북항일련군총사령부의 부총사령노릇까지 했던 사람이다.     적에게 귀순하여 한간으로 전락한 이런 인물들이 지금  염왕산을 와해시키려는 일본군의 선전도구로 리용되고 있었다.    《더러운 피자놈들!》     민호는 일본놈이건 한간놈이건 싸잡아 때려엎어야 할 개라면서 류자들의 손에 들어간 삐라들을 말끔히 거두워 태워버리는 한편 그를 놓고 다시 더 운운하지 못하게 했다.     그런들 이미 꿰여진 초롱에 물이 새지 않으랴!     사흘만에 사문동의 부대에 있었던 그 8명이 호덕화란 류자까지 하나 꿰여 데리고 염왕산을 탈출해버렸다. 일본군에 귀순한 이전의 군장을 선견지명이 있다고 말하는 소리를 다른 새자가 들었으니 그가 고발해서 엄한 추궁이 있을것만 같아 겁을 집어먹은것도 있거니와 지금의 모양을 봐서는 살멋이 있지만 파시스적인 경찰국으로 되어가고있는 위만의 정권이 이제 더 강화되고 공고해진다면 이 한무리의 토비는 사면초가를 당해 정말 나가지도 못하고 산속에 갇혀 한생을 옴짝달싹 못하다 죽을것같았던것이다.    《내 그놈들을 모조리 꺾구러놓는건데 잘못했어!》     위용강은 그자들을 빼워버린걸 몹시 후회했다.     제아무리 총명하다해도 염왕산 본래의 류자가 아니고 가마마스러 몇 번 나든 것으로 미궁과도 같이 오불꼬불한 염왕산길을 익힐 수는 없는것이다. 하기에 민호도 그깟것들이 없어졌으면 없어졌지 했다가 다시생각해보니 그런것이 아니였다.    《그자식들 호덕화를 길잡이세워 빠져나간게로구나!》    《그놈이 귀순하면 큰일인걸!》     위용강역시 불안스러워했다.    《그자를 찾아내여 없애버려야하오.》     민호는 말하고나서 즉시 류자 20명을 출동하여 그자들이 빠져나갔으리라 짐작되는 동북쪽골을 훑으면서 추격케 했다. 하지만 그것은 헛짓이였다. 목숨내걸고 도망친 자들이 붙잡힐리 만무였다.     염왕산에는 그들말고도 항일을 하다가 부대를 잃었거나 아니면 부대가 와해되니 갈곳 없어 헤매다가 염상산류자를 만나 구원되여 산채로 들어온 사람이 아직 32명이나 있었는데 위용강은 사량팔주와 의논도 없이 그들을 몽땅 양즈방에다 가두었다. 그리고는 차챈더를 데리고 가서 가두어놓은 사람중 네가 쟁반밟으러 데리고다닌 자가 누구냐해서 셋이나 끌어내다가 불문곡직하고 총살해버렸다. 이렇게 눈깜짝새에 원인도 모르고 억울하게 죽은 그들 셋 가운데는 조상지가 한때 몸을 담그었던 조양대(朝陽隊)의용군 사람도  하나 있었다. 그는 지난해 2월에 로씨야로 건너갔던 조상지가 인원이 몇 명 안되는 소부대를 거느리고 흑룡강을 건너 동북으로 되돌아와 유격전을 하면서 라북현(蘿北縣) 오동하(梧桐河)의 위만경찰분주소를 습격했다가 중상을 입고 체포되여 희생되였다는 소식을 듣고는  땅을 치며 통곡했던것이다.           병을 다 앓고 언녕 완쾌해진 장평이 헐레벌떡 달려와 알려서 정민호는 달려나갔다.     위용강이 사형장에서 돌아오고 있었다. 그는 그를 서라해서 되게 닦아주었다.    《아니 대체 어쩌자고 그러오? 죄도 없는 사람을 그러다니?》    《그게 다 우환거리야.》    《왜서? 어쨌다구?》    《그 녀석들 길을 알아.》    《길을 알면 다 우환거린가? 자 그럼 여기 나부터 그래봐!....한심하구만. 왜서 군심이 소란해지는건 생각안하오? 엉? 왜서?....》     위용강은 벙어리로 되었다. 할말이 없었던거다. 그러면서도 그는 양즈방에 아직 갇혀있는 29명을 인차내놓을 생각은 안했다. 생각이 짧고 극단적이며 조포한 그가 다행히 감정이 풀리여 그들까지 총살할 생각은 먹지 않았다. 그러나 단단히 일러서 내놓겠다는거다. 무엇 때문에? 어쨌다구 그들만이 그같은 억울함을 당해야 한단말인가?.....     산채에서는 사량팔주가 당전의 형세를 분석하면서 여러날 행동계획을 연구했다. 결과 그들은 여지것 항일련군을 토벌해 온 일본군은 이해에도 이왕년과 마찬가지로 겨울이 되면 산을 엄하게 봉쇄할 것이며 가능하게는 집중적인 대토벌을 감행할 수도 있으리라했다. 그런다면 이쪽은 나덤빌 필요가 없다. 천연요새나답지 않은 여기에 꾹 들어박혀서 롱성을 하면서 기여드는 자들을 잡기나 하면 될것이다.    《그렇게 하자면 지금이라도 나가 가마를 마사야겠소. 먹을 량식이 오라잖아 들창나겠으니말이요.》     량태가 이러면서 겨울을 나기 어렵다했다.     과연 그렇다. 먹을 량식도 장만해 놓지 않고 어떻게 들어앉아있는단말인가. 의논이 백출했는데 민호는 가을전부터 출동해서 적의 량식고를 털자는 자기주장을 세웠다.       어느날 향란이가 민호앞에 자진하여 혼인문제를 내놓으면서 대방의 의사를 알아보았다.    《어쩔텐가요. 어느때까지 이멋으로 지낼건가요. 오랍도 독촉해요. 이제는 도적고양이처럼 눈치놀음은 그만하고 서로 마음 훌 놓고 시원스레 지내도록 결정짓고말라구요.》    《결정하라니 혼인을 말이요?》    《그거아니고 뭐겠어요.》    《잔치를 하고 살라는 말이지....》     민호는 혼자소리처럼 뇌이곤 벌씬 웃었다.     사실은 그도 언녕부터 향란이와 정식부부를 맺고 살고푼 마음이였으나 그렇게 한다면 재처를 하지 않고 혼자지내는 위용강의 감정을 상하게 할것 같아서 말을 못하고 있었던것이다. 위용강이 그들의 혼인을 동의한다면야 이제 더 어물거릴게 뭔가. 민호는 그의 앞에서 대사문제를 정식으로 내놓고 결정지으리라했다.    《바람이나 좀 시원히 쐬자요. 늘 들어앉아있자니 갑갑해 못견디겠네요. 가마마스러 언제쯤 나갈 예산인가요?》    《차첸더가 산채를 나갔으니 이제 쟁반밝아오는걸 보구서.》     민호는 아직 파악없으니 이같이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정말 속에서 불나겠네요.》     향란이는 기와가마를 마스러 가지 않으면 당장 말을 타고 나가 마음껏 달리며 싸우고싶다고 했다. 그녀의 에는 자기가 여직까지 참가한 개극(싸움)을 41차로 기록해놓고 있었다. 이 41차의 싸움은 기와가마를 마스는 일이 아니였다. 위삼포는 생전에 자기 딸이 기와가마를 마스는 일에 나서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리유라면 어지러운 싸움에 두령의 딸님이 지체가 떨어진다는거다. 하다면 41차의 출전(出戰)은 무엇이였던가? 그것은 다른패와 마찰이 생겨 피를 흘리는 싸움이 생겼을 때의 출전인것이다. 그럴때면 향란이도 빠지지 않고 나섰던것이다. 서로 명줄을 끊어 놓으려는, 생사를 판가름하는 그 치렬하고도 무시무시한 격전은 그녀를 명실공히 염왕산의 값진 맹금으로 길러낸것이다. 위삼포는 자녀를 이같이 자래운 것으로 하여 생전에 자호를 느끼기까지 했던것이다.     민호는 위삼포가 현세에 살아있지 않다해서 부명을 어겨서야 되겠느냐고 충고하여 향란이가 기와가마를 마스러 따라나서는것을 완곡히 사절해왔다. 그역시 강탈행동에 마저 녀인을 끌고다니고싶지 않았던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녀다 일본군과 싸우겠다니 나가지 못하게 막을 리유가 없었다.      《왜놈과 싸울시 함께 줄전하기요.》          바람이 아무리 세차게 불어도 산채에는 모래가 날리지 않았다. 겹겹이 둘러있는 높은 산 울창한 밀림이 그 어떠한 사나운 바람도 막아주고있었던것이다. 이같은 무풍지대다보니 그 모양으로 류자가 앓아죽고 탈주자가 생기고했어도 그 시기만 지나면 산채는 다시금 평온한 상태로 돌아가군했다.     말들은 산골방목장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었고 새자들은 가파른 산을 오르내리는것을 고생으로 생각하지 않고 약초캐러 다녔다. 그리고 제혁술을 배운 새자들은 여러 가지 짐승가죽을 이기였고 피복공장의 새자들은 이긴 가죽으로 옷을 부지런히 만들어내고 있었다. 어찌보면 적의 경제봉쇠가 략탈을 천직으로 삼아 온 이 한떼의 인간들을 순박한 로동자로 전변시키는것 같기도했다.                      염왕산!  염왕산!                    림해심산  천야만야                    오방장군  길을잃고                    울고가는  고장일세                    십팔라한  보유하사                    백년행락  꿈을품고                    태평연월  기리하세       향란이와 함께 맑은 개울물이 흐르는 서쪽골에 가서 목욕을 하고 돌아오던 민호는 어디선가 이런 노래소리가 들려오길래 살펴보니 그건 유아원의 애들같이 줄을 서서 산채의 널다란 마당을 정보로 행진하는 다섯 새자의 입에서 나오고 있었다.     《호호호!.... 별일 다 보겠네. 무슨일에 저리도 흥나할가요.》     향란이는 그들이 재미있게 논다고 웃었다.    《백년행락 꿈을 품고 뭘 어쩐다?》    《못알아들었나요. 태평세월 기리하래요.》    《허, 허허!.... 어디서 저런 노래는 나왔소?》    《글쎄요. 나도 몰라요.》     그 새자들은 중앙산채를 돌면서 목청빼여 그 노래를 반복했다     이쪽은 그네들을 향해 웃음을 날리면서 가까이 다가갔다.     《포토우형님!》    《향란아가씨!》    《왜 웃습니까?》    《우리가 부르는 노래 듣기 어떻습니까?》     새자들은 행진을 멈추고 말을 걸었다.     향란이는 그냥 웃으면서 듣기좋다고 했다.     민호가 그들에게 물어봤다.    《너희들이 말해라. 태평세월을 어떻게 기리한단말이냐? 대체 무슨 방법으로?》     새자 하나가 모호한 대답했다.    《방법은 무슨 방법이라구. 오방장군도 들어왔다가는 울고가니까 그렇게 되는게지요 뭐.》     다른 새자가 그의 대답에 한마디 덧붙이였다.    《우릴 내놓구야 누가 감히 여기를 나갈가. 전번에 떠나간 치들도 아마 다 짐승의 밥이 됐을건데요.》     그들은 이 염왕산이 안전하니 태평가가 절로나오는거라했다.     민호는 머리를 가로 저었다.    《아니다. 우리 여기가 그토록 안전한건 아니다. 도망친 녀석들이 적을 뭍혀갖고 들어올 수도 있는데 어찌 태평할 수 있겠냐.》     다섯중 한 새자가 민호를 향해 반박쪼로 물어왔다.    《아니, 오인형님도 우리 염왕산은 천연요새라 하잖았습니까? 그래놓구 이제와서는....》    《그때야 나도 그렇게 말했지. 말했어. 허나 지금은 달라졌지. 벌써 한번 습격까지 당한걸 벌써잊었단말이냐. 황차 길을 아는 변절자가 생겼겠다. 그놈을 잠재우기 전에는 안전할 수 없다는걸 너희들은 다 알아야겠다.》     민호는 사량팔주를 포함하여 염왕산 류자거의가 아직도 자연적인 천험을 지나치게 믿고 경각성이 점점 무디여가고있음에 근심면서 조속히 방법과 조치를 대야겠다고 생각했다.     회의를 열고 이 문제를 내놓으니 사량팔주 모두가 의례 경각성을 높혀야지 하면서도 기와가마를 마슬데만 더 골몰했다. 염왕산에는 사실상 염왕산을 영원히 안녕하게 만들 영략(英略)이 있는 용장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적을 경시하고 만용을 부리는 강공책(强攻策)을 자기들의 지도방침으로 내세우고 있었다.       염왕산에서 동남쪽으로 약 150여리되는 곳에 화금(華錦)과 목청(木靑)이라는 두 개의 일본인 이민단부락이 새로생겨났는데 그 부락의 창고와 자위단실에 쌀이 많은 것으로 정찰이 돼서 그들은 이 두 마을을 한꺼번에 털기로 작정했다.     어느날 산채에는 로약자들만 리질을 앓고있는 위용강과 함께 남고 그 외의 류자들은 모두 두패로 편성되여 길을 떠났다. 그 길은 그냥가면 태평진에 이르게 되는데 갈림목에 이르러 한패는 민호가 거느리고 동쪽의 금화로 가고 다른 한패는 마수재가 거느리고 서쪽의 목청으로 갔다.     갈림목에서 가는 거리가 엇비슷해서 두패는 거의 같은 시각에 각각 마을에 도착했고 또한 거의 같은 시각에 공격을 개시했다. 자위단은 창황히 맛서나섰다. 하지만 실력이 워낙 약한 그들이 마치 굶주린 이리떼같이 사납게 달려드는 토비를 당해내는 재간이 없었다. 화금마을에 달려든 류자건 목금마을에 달려든 류자건 모두 자위단의 무장을 해재하는 한편 그들이 먹자던 부식품이며 창고에서 털어낸 량식들을 각각 마차 20여대에 마음껏 실었다.     이쯤하면 이번출동이 성공한 기미가 보이는데 두쪽 다가 진퇴량난에 빠질줄이야 어찌알았으랴!     이 두 마을은 다 토비가 달려들고 전화가 통하지 않게 되자 사람을 가까운 이웃마을에 보내여 전화를 치게 했다. 그 두곳의 전화를 받은 오도야마는 이 일을 즉시 목단강본부에 알리는 한편 태평진과 가까운 영락촌(永樂村)에서 한창 훈련중이던 위군까지 동원시켜 도합 1000여명을 거느리고 신속히 나왔다. 그는 화금과 목청에 갈라져 간 류자들이 략탈한 량식을 갖고 염왕산으로 미처 내빼기 전에 길을 막고 소탕전을 벌리였다.     이쪽은 둘 다 포위에 들었거니와 서로 련락도 짓기 어려웠다. 반둬더 마수재는 염왕산으로 돌아가는 길이 막히니 략탈했던 량식을 버리고 류자들만 끌고 서쪽으로 내뺐다. 그러나 얼마못가서 그들은 이미 련락이 가서 출동한 일본군과 위군의 포위에 들어 녹아나고말았다.     이때 화금쪽에서도 민호가 량식실은 마차들을 얼마끌고 가지도 못하고 적과 창황히 맞다들었다. 허나 배도 더되는 강대한 무력앞에서 승부를 겨룬다는건 대부등에 겯낫질하듯이 어림도 없는 노릇이였다. 민호는 뒤로 퇴각하려했다. 그러다가 그는 뒤쪽에는 수백개의 마을이 있고 이미 련락이 통해 길목마다 복병이 배치되여있음을 깨달았다.       《아아!....》     절망과 분노가 그를 사로잡았다.     여기서 이렇게 다 섬멸되고만단말인가? 그래서는 안된다! 담은 얼마라도 살려내야 한다! 심장이 죄여드는 한순간이 지난 후 그는 과단성있게 류자들을 앞으로 계속 내몰았다. 하여 일장의 격렬한 격전 끝에 그는 끝내 포위를 뚫고 나왔다. 그러고 보니 과반을 잃어버리였다. 그를 따라서 혈로를 뚫고 나온자는 근근히 40여명밖에 난되였다. 그야말로 저돌적인 맹진에 이만큼이라도 구원된 것이다.      그는 이 류자들을 거느리고 염왕산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이건 또 웬일인가!? 염왕산에 들어오고 보니 더 참혹한 광경이 그를 기다리고있었다. 산채는 그사이 비행기의 폭격을 받아 몽땅 없어져버린것이다.     민호는 억이 막혔다.    《천도가 무심하구나! 이게 무슨일이냐, 아아!》     함지박같은 염왕산은 연기가 자오록했다.     류자들은 모두 절망하여 땅바닥에 풀썩풀썩 주저앉고말았다.     중앙산채는 아직도 타고 있었다. 민호는 거기로 달려갔다. 그는 부러진 들보에 깔려죽은 위용강과 즈좡의 시체를 발견했고 안쪽에 불에 그슬린, 누가 누군지를 가려볼 수 없는 시체들을 여럿발견했다. 보아하니 모여서 무엇을 하다가 폭격맞은 것 같았다. 중앙산채를 비롯하여 그 주위에 둘러앉은 다른 여덟 개의 든든하고 커다란 귀틀집들도 다가 폭격을 받아 어떤것은 날아나고 어떤것은 불에 타고 있었다. 그런대로 시체를 거의 찾았건만 향란이와 장평 그리고 또 몇몇의 시체는 끝내 찾지 못했다. 그들은 아예 분신쇄골이 되고말았단말인가! 민호는 눈물이 나왔다.     참혹한 죽음! 참혹한 괴멸이였다!....     매캐한 연기가 안개같이 갈아앉아 눈뜨기 어려웠다. 그런 속에서 시체들을 끄집어 내니 날이 어두워졌다. 굶고 지쳐버린 류자들은 온 몸이 녹초로 되었다. 그들은 폭격에 죽은 소를 껍지발라 살을 베여 굽어서 먹었다. 그리고나서는 파도같이 밀려드는 피로와 식곤증을 이기지 못해 어빡자빡 쓰러져 잠에 골아떨어지고말았다.     민호는 적이 달려들것만 같아 잠을 자지 않으려했지만 허사였다. 그도 눈가물을 치다가 끝내 잠에 잡히고말았다.     한데 이 얼마안되는 이들마저 이틑날 새벽에 북쪽으로부터 기여들어 온 적의 습격을 받아 어떤 사람은 죽고 어떤 사람은 간신히 목숨붙어 도망쳤다.     염왕산은 이렇게 괴멸되고말았다!     철저히 끝장나고말았다!      
151    <<관동의 밤>> 제2부(33) 댓글:  조회:2912  추천:0  2015-02-04
                            33               철로에는 할 일들이 많았다. 왕견은 철길가의 풀을 뽑거나 잔돌을 펴거나 침목을 갈아대는 등 허드레꾼의 일을 그냥하기 싫어 정거장에서 짐을 싣고 부리는 상하차공으로 들어갔다. 그 일이 힘들기는해도 목재판에서 목도를 하던것에 비하면 퍽 낳았거니와 벌이도 괜찮았던거다.     《뿡!》     길다란 짐차바곤을 꼬리에 단 화물차가 고동을 빼면서 상하차장에 들어서고 있다. 무져놓은 침목에 궁둥이를 붙이고 있던 30여며명의 로동자들이 허리를 펴면서 일어나 주밋주밋한다. 차가 들어왔으니 또 한바탕 기운을 써야한다.     《거기서 아직두 꾸물대는게 누구냐?》     십장이 앙칼지게 목청을 뽑았다. 그자는 나이 40전에 등이 난 놈이여서 모두들 무서워했다. 칙간에 간 왕견은 뒤를 다 보자 바지띠를 매면서 어정어정 걸어나왔다.    《넌 빨랑빨랑 오잖구 뭘 꾸물거리는거냐.?》     십장은 이켠에 대고 눈을 부라렸다.    《자식이 어쨌다구 저 야단이여.》     그따위소리쯤은 개방구만큼 여기는 왕견이였다.    《야 저놈봐라. 귀구멍멧냐?》    《자식이 게사니고기를 먹었냐. 왜 꽥꽥거려.》     왕견이 맞받아 내던지니 모두들 말뚝같이 서서 보았다. 여직 십장하고는 감히 맛서는 자가 없었는데 온지 얼마안되는 이 사람만은 그렇지 않았던거다.     십장은 낯에 독이 올라 퍼래지면서 그를 쏘아봤다. 자기보다 체대크고 우악스레 생겨먹은 그를 더 이상 어쩌지를 못하겠는모양이다. 여러사람앞에 제 위신이 일락천장이 되는것 같았던지 그는 혼자소리로 한마디 씨벌이였다.    《자식, 어디보자!》     왕견은 보면 어쩔테냐 너깟것이 했다가 소춘매가 십장하고는 되도록 맛서지 말라고 신신당부한지라 참았다. 밸김에 한매답새겼다가는 수가 날것 같아 못들은 셈 치고 일을 시작했다.     역전에 방금들어선 유개화차바곤에는 건설용재들이 아니라 올망졸망한 이사짐들이였는데 가마와 궤짝과 고리짝, 밥상, 독같은것과 섬태기로 싸서 새끼로 동인 다른 어떤 가장집물들이였다. 올망졸망한 짐마다에는 꼬리표가 붙어 있었다.       《이건 어디서 오는 이사짐인데 말짱 이 모양들이냐?》     왕견은 혼자소리로 뇌면서 가마짝을 내리였다.     얼추보기에도 수백호가 넘을것 같은 그 이사짐들은 다가 저 머나먼 일본에서부터 부쳐오는것이였다. 일본은 만주를 완전히 강점하자 20년내에 1백만호 5백여만의 인구를 이곳에 이주시켜 땅을 개척케 하고 안착시킴으로써 장차 만주국을 조선모양으로 저희들의 식민지로만들고 국토로 만들어버린다는, 소위 7항 국책의 하나를 실천에 옮기고 있었던것이다.      《제 땅에서나 살게지 왜 여기룬 게발아들어오고있어.》     누군가 혀아래소리로 내뱉는데 가시가 돋혔다.    《그건말이야. 바로 이런거야....》     왕견은 일본은 철두철미한 침략자요 만주를 완전히 제땅으로 만들자는것이 본래부터의 목적이다고 말하려다가 참고말았았다.     장기계약이 아닌 일급을 받고 일하는 이 상하차공가운데 김선생이라 부르는, 보리밭무우같이 허여멀끔하게 생긴 사나이가 하나 있었는데 그가 가까이 다가오더니 왕견에게 곁을 주는것이였다.    《가즈온 분이지요?》    《그렇수다.》    《어디서 왔나요?》    《나말이지. 쓰레기장에서 왔지. 자갈도 펴구 침목도 갈구....》    《그럼야 내내 철로서 일했구만요.》    《그렇수다.》     이번에는 왕견이 무거운 궤짝을 등에 지면서 그한테 물었다.    《임자는 조선사람이지?》    《그렇습니다.》     왕견이 생각했다. 생김새도 그렇고 말씀새를 보면 막일을 해먹을 사람같지는 잖은데 웬일일가, 이런데루 온게?     그 조선사람이 또 말을 걸어왔다.    《왕씨라지요. 올해 년세얼맙니까?》    《나말이요. 마흔셋이야.》    《오, 그럼 내가 형님이라 불러야겠네요. 난 갖마흔입니다.》    《야 이 빌어먹을 잡것아, 조심하잖구 뭘해. 짐이 망가지면 네 목을 잘라서 배상하겠냐?》     저켠에서 십장이 누구하곤가 을러메고 있었다.    《저자식의 배속에는 똥이 없구 욕만 찬건가.》     왕견이 혼자소리처럼 뇌이는데 김선생은 고리짝을 들면서 한술 더 떴다.    《침목을 갈아대는데서도 들볶는가요?》    《거긴 저렇게 눈꼴시게 노는 놈 없었어.》    《건데 왜 여기루왔습니까?》    《돈을 한푼이라도 더 벌어볼까구.》    《집에 잔밥많은모양이지.》    《잔밥이 뭐여. 난 외톨이야. 나서면 그림자밖에 없는 놈이야.》    《그런신세면야 돈 더 벌어 뭘합니까.》    《이거 별소리 다 한다. 김선생은 돈이 싫소?》    《오, 그렇지! 하하하....》     이틑날 쉴참이였다. 누구도 왕견을 가까이하려하지 않났지만 유독 김선생만은 그러지 않고 또 말을 걸어왔다.     《왕형께서는 여기서 산지 오랩니까?》    《아니요. 난 온지 한해두 채 안돼.》     왕견은 그사이 얼마나다니지를 않다보니 여기가 아직은 거의 생면이나답지 않은데 산지 오래다면 여기저기를 물을것만 같아서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여기오기전에는 어디서 살았게요?》    《석금강에서. 난 거기 금광에서 복사씻기를 했더랬지. 그러다가 이제는 도시맛을 보곱푼 생각이 나길래 여기루 온거야. 》    《오, 그렇구만요.》     김선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왕견은 그를 힐끗 가로봤다. 이 녀석이 기신기신 게발아들고있네. 나하고 이런건 왜 물어쌋는거냐?....자기의 신원을 누구한테도 털어놔서는 안되기에 그는 홀지에 정신차렸다. 무망간의 실수로 일생을 망쳐먹을 수 있었다.     어느날 무개차에 레루장을 다 싣고나서였다. 십장이 그보고 레루장을 몇 개나 멧는가고 묻는것이였다. 왕견은 자기가 몇 개를 메였던지 기억나지 않았다.    《스믈두갭니다, 십장님.》     함께 목도를 했던 쑈리가 대신 알려주었다.    《내가 너하고 물었냐, 못난자식!》     십장은 눈알을 부라리다 그만 가버렸다.    《십장이 왜 저래, 기록부를 보면 알걸 갖구. 씨!》     쑈리가 두덜댔다. 이제 나이가 17살인 그 애보다 두살위인 형은 항공학교의 학원이다. 쑈리는 제 형은 이젠 비행사가 될거라며 자랑했고 그래서 명랑한것 같았다. 그 애의 형이 다니고있는 항공학교는 성립된지 오라잖은데 이 할빈시의 왕강(王崗)에 있었다.     왕견은 쑈왕을 마주보며 껄껄 웃었다.    《꼴보면 몰라. 그녀석 날 안걸이할려구 집작거린거야.》    《인제보니 그런것 같네요.》     쇼리는 이러고는 눈을 꺼무럭거리더니 알려주었다.    《아저씬 무섭잖아요. 주의해요. 모두들 그러는데 십장이 전에는 토비질을 했대요.》        《그랬을테지! 아무렴 서당샌님질을 했겠냐.》     왕견은 놀라지 않았다. 그자의 행동거지를 보고 그쯤은 짐작이 갔던 그였다.     쑈리는 십장이 쩍하면 사람을 때리거니와 마음대로 해고까지 시킨다고 알려주었다.    《그 자식이 그래?... 별놈 다 본다. 대채 누굴 등대구서? 왜놈한테 붙은거 아니여? 개는 무서워하면 더 사나와지는거다.》     왕견은 이쯤 말해놓고 그가 자기를 어떻게 대하나 어디 두고보자했다. 어거지 세보이는 자기를 미리꼭뒤눌러놔야 제 손아귀에 넣을수 있다고 여기는것 같았다.     아니나다를가 일이 거진 끝날무렵인데 십장이 오더니 또 왕견보고 레루장을 얼마멨느냐고 물었다.     왕견은 속이 뒤탈렸다.      《시끄럽게 노네. 넌 내하구 그건 왜 자꾸물는거냐?》    《물어보기싶어 물는건데 무슨 대답질이냐?》     십장은 이러면서 거만을 빼고있는데 득의연한 그의 얼굴에는 맞같지 않으면 내가 너를 쫓아낼테다 하는 위협이 로골적으로 내비치고 있었다.     나를 해고시면 뚜드려패고 가버릴판이지. 왕견이 속으로 이러면서 십장의 말을 귀등으로 들으니 이번에도 쑈리가 대신말했다.    《십장님, 마흔일곱갭니다.》     십장은 어느결에 손이 번쩍 올라가더니 그의 따귀를 갈겼다.    《내가 너하고 물었냐, 고약한 놈!》     쑈리는 뺨을 붙들고 비츨거렸다.    《야 이자식아, 걘 왜서 때려?》     왕견은 참을 방법이 없었다.    《이건 내 권리야.》    《사람을 맘대루 때리고 내쫓는게 네 권리란말이냐? 좋다, 그럼 내 권리를 뵈여주마.》     왕견은 말과 함께 주먹으로 그의 귀통을 한 대 우려줬다.     십장은 비츨거렸다.     왕견은 그가 넘어가지 않으니 발길질해서 꺾구려놓고 말했다.    《이 호두정만이 널 잠재워줄 수도 있어.》     십장이 기여서 일어나려다말고 빈다.    《형님! 내 잘못했소.》     이쪽이 자기와 같은 류자출신임을 알아보았던것이다.     왕견은 말을 더 하지 않고 내쳐두었다.     모두들 경아했다. 주먹이 빠르고 행동이 날랜 그가 과연 금전군이였을가, 다른 무엇을 해먹지는 않았을가고 했다.     김선생이라는 그 조선사람이 다시금 다가들었다.    《거 아주 속시원 한 일 했습니다. 다들 미워했는데.》    《그런가. 저깟녀석이야.... 당하기만해서야 되나.》    《말이 많습니다. 건데 그 재간은 언제 배웠습니까?》     왕견은 웃었다.    《뭐 재간이랄거있나. 그저 좀 익혀둔건데.》    《그저 이럴때나 써먹자고 익혀둔 재간같지는 않습니다. 전에 뭘했는지요?》    《김선생은 뭘했어?》    《말하자면 길어요. 나야 독립군에 있다가....》    《뭐라! 김선생도 그래 원체는 그거였는가?》    《그렇습니다. 독립군을 아는것 같구만요.》    《내가 좀....》     왕견은 입밖으로 튀여나오자는 말을 되넘겨버렸다.     저쪽은 눈을 깜작이면서 한마디 더 캐물었다.    《만주제국의 정책을 어떻게 봅니까?》    《나하구 그따위걸 물어선 뭘해. 오늘 반강자 오늘 먹고 오늘 취하는 놈인데. 난 그런건 모르구 사는 인간일세.》     왕견은 과연 그런데는 무심한듯했다.     김선생은 실눈에 잔웃음을 바른채 고개를 끄덕였다.     이 녀석이 나하고 그건 왜 캐물었어? 왕견은 그를 의심했다.          이럭저럭 한해를 다 보내고 새해를 맞게 되었는데 벽두에 하나의 놀라운 소식이 폭탄마냥 터져 온 할빈사람들을 놀래웠다. 할빈의 왕강(王崗)에 있는 만주국항공학교의 80여명되는 학원이 항일련군에 넘어가느라 기의했다는거다.     그런 소식을 들어서 이틀만이다. 다른때는 사뭇 명랑하던 쑈리가 침침한 얼굴로 일장소에 나타났다. 그래서 누군가는 저애가 먹지 못할 음식을 걷어먹고 간밤에 속탈을 만난모양이라 했다.     속탈만난 애는 아니였다. 왕견은 그의 얼굴에 비감이 비껴있는것을 발견하고 무슨일이 생겼냐고 조용히 물어봤다.    《내 형이 죽었대요.》     쑈리는 울먹이는 음성으로 알려주었다.    《아니 뭐라! 비행기 모는 기술을 배운다던 네 형이 말이냐? 거 참 않됐구나. 그도 기의를 했겠는데 어떻게 돼서?》    《도중에 추격받아 거의 다 죽었대요. 초삼일에.》    《원 저런!》     왕견은 녕안에서 자기의 독립패역시 추격해 온 일본군과 조우전을 하다가 괴멸한 일을 상기하고는 한숨을 길게 내쉬였다.     김선생이 다가오고 있었다.     두사람 다 입을 다물고말았다.     기의를 일으켰던 80여명 항공학원거의가 일본군의 추격으 벗어나지 못하고 목숨을 잃어버린 사건이 일간신문에 특대뉴스르 보도되어 누구나 다 알게 되었다. 사람들이 곳곳에 모여서는 의논이 많았다.  기의를 잘못서둘렀다느니 생명이 아깝다느니.....     역전의 상하차공들도 그 일을 놓고 말이 오갔는데 거개가 기의를 일으킨 젊은이들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일본군을 저주했다. 한데 제 감정을 숨기지 않고 표달했다가 일을 칠줄이야. 그로부터 며칠지나 하루는 한떼의 경찰이 나타나더니 상하차공들을 하나도 빠지지 못하게 모여놓고는 이미 작성해 온 명단에 따라 사람 7명을 앞으로 나오라해서는 그들이 반만항일을 선동했다며 손목에 쇠고랑을 채워 끌고갔다.     왕견은 처음부터 입을 걷어닫고 남들이 하는 말을 그저 듣기만했기에 무사했다. 하늘이 귀를 달고있는건가? 경찰이 어떻게 알고 사람을 붙잡아갈가? 모두들 의문을 사면서 전전긍긍하는데 김선생이 혀를 끌끌 차면서 왕견의 앞으로 다가왔다.    《혀밑에 도끼있다는데 입조심할게지.》     왕견은 그를 마뜩잖게 여겨봤다.    《그런줄을 알면서 왜 말을 못하게 막지는 않았나?》    《내가 어디 안합디까, 했는데.》    《거야 불 바람 다 불고 난 담이지.》     왕견은 표리부동한 그를 앞에 놓고 보면서 속으로 이건 뛸데없이 네녀석의 작간이다 하고 단정했다.     사람들은 일을 하려해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기분이 싹 사라진 일장소는 마치 일장의 광풍에 페허로 되고만것 처럼 스산하기 짝이 없었다. 모두 30명중 7명이나 잡혀가다니!     이 일을 당하여 제일 당혹해 진 사람은 십장이였다. 그는 저켠에서 누구와 말하고있는 김선생을 눈짓으로 가리키곤 자기가 전날 친히 목격한 한가지 사실을 말했다.    《왕형은 저자가 수상하지 않소. 왜놈의 피자 끄나블이 된놈같애. 내가 전날밤 저녀석이 경찰서에서 나오는걸 봤더랬소. 내 눈으루 직접. 거긴 왜 드나들가? 왜?.... 안그렇소?》    《내 그런놈인걸 알았어!》     왕견은 얼굴에 노기를 띠였다.    《왕형, 어쩌면 좋겟소?》    《어쩔거있냐. 검질을 해치워야지.》    《그 일은 내한테 맡기시오, 형님!》     퇴근해서였다. 김선생은 술집에 들려 술을 마시고 집으로 가다가 벽돌장에 머리통을 맞아 대골을 쏟았다.     정거장에서는 상하차공을 더 받아들이였다. 화물차가 역구내에 들어서면 짐을 부리고 싣은 일이 이전상태로 회복되여갔다.       년말이 되자 일본은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다.     어느날 오전 어깨에 벼돌장같은 견장을 단 철도국경찰이 나타나더니 상하차장에서 일을 시작하기전에 로동자들을 한군데 집합시켜놓고는 강덕황제가 만주국국민들에게 내린 를 내리읽었다.           대만주제국황제는          천명을 받들어 만백성에게 고하노라.  동맹국          대일본제국천황페하께서는 본일  미영 량국에          선전포고를 내리시였나니 선명한 조서는 휘황          찬란하고 천리에 합치되느니라. 짐은....                         이같이 시작된 는 황제자신이 일본천황페하와 정신이 동일체와 같다느니 만백성도 그 신민과 더불어 일심동체가 되어야 한다느니 뭐니 하면서 재래부터 존재하는 불가분리의 관계를 공고히 다져야 하거니와 공동방위의 대의에 기초하여 생사존망을 가르지 말아야한다고 했다.     을 지원하는 바람이 온 만주땅을 휩쓸기 시작했다.     연하루에서 매일마다 벌어지고 있는 술상에는 번번이 일본이 고취하는 과 이 뛰여올라 사람마다가 운운하는 열점으로 되었다. 전에는 토요일이 되면 혹 가군하던 거기로 왕견은 매일가게 되였다. 돈많은 관배쌍이 그를 술친구로 사귄것이다. 그가 사귄 술친구들은 왕견 하나를 내놓고는 다가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였다. 늘 스스로 주의하다보니 말수가 적어진 왕견은 자기가 마치 오리무리에 끼여든 닭과도 같은 감각이였다.     한데 귀신이나 알런지! 이상하게도 번대머리가 좋다며 사귀고있는 술친구중 몇은 종적없이 사라지고말았다. 번대머리는 자기도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노라한다.           이듬해. 여름철이 한창이던 어느날이다. 그날도 연하루기생집의 위층방에서는 석보상 관배쌍의 주최하에 술상이 벌어졌는데 참석자가 8명이였다. 술이 얼근히 되자 그들도 전에 하나하나 사라져버린 이 대머리의 지난술친구들 모양으로 시국을 론하기 시작했다.       누군가 농촌에서는 흥농합작사가 태평양전쟁이 일어나니 출하(出荷)와 로공(勞工)으로 사람을 못살게 구는 모양이라했다. 그러자그게 다 그놈의 성전인지 뭔지 하는걸 지원하다보니 생기는 일이 아닌가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바로 관배쌍이였다.    《쉬ㅡ 관선생은 전도가 양양한걸 모릅니까.》     왕견이 어쩌다가 속에 없는 충고를 한마디 해보았다.     그러자 다른 한 사람이 일본의 승전을 구가했다.    《황군은 무훈장구고 필승불패야. 좀 보란말이요. 말라이를 제꺽 먹지 않았는가. 괌도두 먹구. 미얀마두 먹구. 지금은 필리핀이야. 보란말이야 어떤가구!....》     취중무천자라 왕견이 그가 너무도 재잘거리는지라 보다못해 한마디 툭 내쏘았다.    《저 사람이 참새를 볶아먹고 온게 아녀. 그깟것들 뭐가 어쨌다구 그렇게 춰올리면서 불어대는건가. 내 이 주먹한테두 다 넋살먹는 놈팽이들인데.》     다른사람들은 웃어넘겼지만 번대머리만은 그 소리를 귀속에 깊이 잡아넎었다.     태평양전쟁이 일어남으로 하여 제2차세계대전은 무한정 확장되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지각있는 사람이면 인류에 막대한 재난을 들씌우는 이런 전쟁을 염오했다. 그들은 관방에서 아무리 이요 이요 해도 반감을 가지면서 제 속심을 드러냈다.  보안국은 바로 이런 사람들이 대중에게 반전사상을 고취한다고 여겨 진압을 계획했다. 보안국은 특무조직을 더 가강히 했다. 이해에 들어보안국은 특첩반(特諜班)이라는것을 하나 더 설치했는데 할빈 도리구에 있는 이베리아관자집, 고의가에 있는 유람선조합, 그리고 관배쌍이 경영하고있는 석보상점이 그네들의 주요활동거점이였던것이다. 보안국은 그뿐만아니라 도리구 중앙대가에 송화숙(松花塾)이라는 비밀감옥까지 만들어 놓고 반만항일을 견지하거나 반전혐의가 있는 사람이면 임의로 체포하여 고문하고 비밀리에 학살했다.     왕견이야 이런줄을 꿈엔들 생각했으랴!.     이틀이 지나서다. 밤이 늦었는데 생각밖에 소춘매가 문득 나타났다. 협약대로 하면 한자리에 들 날자가 아니였다. 한데도 그녀가 찾아오니 왕견은 무척 반가왔다.    《하 이거 오늘은 웬 바람이 들어 이리두 일지기!?....》     소춘매는 그런 롱은 받아줄 겨를이 없었다. 그녀는 수색이 가득한 얼굴로 사나이를 눈박아보았다. 왕견은 그제야 자기의 일신에 어떤 심상찮은 일이 생겼음을 짐작하고 정색해서 물었다.     《무슨일이요?》     녀인은 걱정실린 음성으로 되물었다.    《전날 술좌석에서 뭐라고 지껄였나요?》    《내가?.....》    《날보고 조심하라하구는. 제 입으로 그래 신세망칠참인가?》     속이 꿈틀해난 왕견은 두눈을 꺼무럭거리며 머리를 굴려봤지만 헛짓이다. 취중에 뭐라 지껄였던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제손에 황군이 녹아났다구 했다면요. 무슨 얼빤한 소릴 줴쳤는가요? 그게 뜨물켜고 줴친거야 아니겠죠. 사람이 어쩜 그리두 정신없이 놀아요?》     《허 이거.... 소아가씬 그런걸 누구한테서 들었소?》     《관선생이 그러더군요. 그분이 날보구서 이러더란 말이얘요. 헌병대에서 의심분자는 말끔히 잡아가두는걸 그래 모르는가요?》     왕견은 속이 한번다시 꿈틀해나면서 일깨워준다는 그 대머리 석보상이 목이 메이도록 고마웠다.     훗날 만나자 대머리는 자기니까 그렇지 누가 생각이나해주랴 면서 일후 정말 입조심하라고 일깨워주는것이였다. 왕견은 무지감사해서 말문이 다 막히였다. 이토록 맘좋은 사람의 사돈녀인을 내가 넋담떨어지게 돈을 강탈했으니 천벌을 받아 마땅하지 하고  지난날 제가 저지른 죄악까지 끄집어내서 용서를 빌고싶었다.     그가 사려에 잠기는것을 보고 관배쌍은 입을 다시열었다.  자기처남이 지금 일본헌병대와 관계있는 한 주요기관에서 사업하고 있다는것, 그래서 자기는 그한테서 정보를 알게 된건데 아직도 신분을 속히고 정부를 기만하는 사람은 정말 가만두지 않을거라했다. 뚜렸한 정책을 실시하고 있는데 그것인즉 그냥 고집하는 사람은 엄벌에 처하고 자수하는 사람은 관대하게 처리 할 뿐만아니라 기회를 주어 립공속죄하게 하며 상을 주고 벼슬까지 준다고했다.      석보상은 이러면서 손을 올려 번들거리는 대머리를 슬슬 문지르더니 례를 하나들려주리라면서 입심을 다시뽑았다.    《왕선생은 소본량의 얘길 못들었습니까. 못들었다면 내가 알려주지. 소본량은 본래 유명한 토비였는데 황군한테 귀순했길래 운이 대단히 텃지요. 일본은 봉천에다 을 지어주었거니와 그한테 미녀까지 몇을 주었답니다. 그래서 지금은 예황제부럽잖게 살아가고있지요. 생각해보시오. 산속에 들어박혀 반만항일이나 그냥해서야 무슨 전도있겠습니까. 안그런가요. 복락이야 꿈도 못꾸지요. 죽은 정승 산개만 못하다니까. 사람이 죽고서야 뭘 볼게있다구. 살고봐야지. 않그렇습니까?》     그는 자기 생각에도 소본량은 머리가 돈것 같다고 보탰다.     소본량(邵本良)은 본래 토비였는데 변절한이 되어서 과연 유명해졌다. 일본관동군은 그자를 수편하여 동변도초비소장총사령(東邊道剿匪小將總司令)으로 임명하고 대량의 무기를 대주었으며 비행기까지 배합해 항일련군을 토벌케 했던것이다.     우레가 잠자는 벌레를 깨우듯이 관배쌍의 충고는 외려 왕견을 정신차리게 만들었다. 그는 요몇해간 세상일에 무관심하며 살아왔지만 속이 영 죽어버린건 아니였다. 이제보니 저 녀석은 여적지 내 믿그루를 캐온거야, 헌데두 이 뻑구기는 영 모르구있었지.     보안국의 특무인 대머리는 왕견이 할빈에 나타나자 의심하고 신원을 캐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마음과 같이 얼른되는 일이 아니였다. 그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셋집을 얻어주고 일자리를 구해주었으며 그를 근친으로 끌어넣기 위해 애썼던것이다. 그러는 사이 보안국은 한편으로 만주에 와서 독립형명을 한답시고 돌아다니다가 경찰에 잡혀 죽게될것 같으니 제 동지를 팔아먹고 변절한이 돼버린 김선생을 역전로동자들 속에 잠입시켜 탐지케 했고 그자의 보고에 따라 석금강에 가 왕견의 뒷조사를 해보았던것이다. 그러는 중에 그에게 신분조사도 없이 부적(附籍)을 해준 화남의 호적경찰인 천옥령의 남편이 잡혀나왔다. 하여 할빈보안국에서는 마침내 왕견의 신원을 밝혀낸것이다. 그들은 왕견을 잡아 죽이려다가 아직은 살려놓고 그를 리용하는게 더 나을것 같아서 생각을 고쳐버렸다. 염왕산이 아직 그대로 남아있거니와 일부의 항일련군인이 그곳에 들어가 은신하리라 판정했기 때문이다. 정녕 그렇게 되는 날이면 염왕산은 세상에서 더는 찾아 볼 수 좋은 은신처로 되거니와 그들이 동산재기(東山再起)를 꿈구는 안양정토(安養淨土)나 다름없게 될 것이였다. 그렇다면 그것은 실제상 일본이 장차 지나(중국)의 전역을 장악함에 공고한 후방기지로 만들자고 하는 이 만주땅에서 염왕산은 심장에 박혀진 한자루의 비수로 될 것이다.    일본관동군은 백수를 다해서 이 비수를 꼭 뽑아버리려 했다.    왕견은 용케도 로동자로 가장한 특무의 손에 걸려들지 않았다. 하지만 세월이 하도 오래니 그는 긴장이 풀리였다. 딱 믿어주고싶도록 친근히 구는 자가 있으니 그만 한번의 취중에 끝내 원형이 들어나고만거다.    일본관동군은 왕견을 길잡이로 쓰려했다.    한편 용케도 적들의 이러한 계묘를 즉시에 간파하게 된 왕견은 분신쇄골이 되더라도 형제들을 배반하지 않으리라 마음을 도슬려 먹었다. 그는 아직도 의리에 충직한 류자였던것이다.    어느날 아침 왕견은 오늘이 바로 자기의 생일날이라면서 석보상을 집에 청했다. 소춘매가 와서 술상을 차리고 있다니 아 그런가고 하면서 관배쌍는 별다른 생각없이 따라나섰다.    한데 와보니 그를 기다리고있는것은 술상이 아니였다.     왕견은 그가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돌아서면서 무쇠같은 주먹으로 강타를 먹여 꼭끄라뜨리고는 비수로 목을 썩둑 잘랐다.   《아이 끔찍해라! 이젠 어떻게 할가요?》    소춘매가 안절부절을 못했다.   《내가 이걸 헌병대에 보내야겠는데...》   《아니 뭐라구요! 정신나가지 않았어요? 퍼런 대낮이애요.》   《그럼 집에다 보내버릴가. 제집사람이 이렇게 됐다는거야 알려줘야지. 안그래?》    왕견은 소춘매보고 해엽자를 한 장 쓰라고 했다. 녀인은 너무도 한심해서 몸이 굳어진채 입을 막았다.   《정말 환장했네요. 어쩜 정신이 그렇게 돌아요. 사람두 참!... 뭘 꾸물거려요. 어서 여기서 내빼기나하자요. 됐어요!... 빨리!》    소춘매는 보자기에 석보상의 잘리운 머리를 싸고있는 왕견의 너부죽한 뒷잔들을 주먹으로 들때리면서 독촉했다.    왕견은 자기가 자른 머리를 바게쯔에 넣어 한손에 들고 석보상의 집을 찾아가 문가에 놓고 돌아섰다.     시간이 얼마간지나서였다. 그들은 정거장에서 화물차를 잡아타고 총망히 할빈을 떠나고말았다.        
150    <<관동의 밤>> 제2부(32) 댓글:  조회:2518  추천:0  2015-02-04
                               32               왕견이 석금강에 가자 한모작패가 된, 거기에 있은지 오랜 금점꾼들이 그한테 이 금광에서 전에 발생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제일 희한한건 40여명이나 되는 경찰이 눈깜짝새애 반일군의 손에 무장을 빼앗기고 해산됐으며 대장은 그날밤에 총살당했다는것과 다른 한가지는 콩기름방을 차리고있던 자가 평생동안 모여놓은 금 두 대두병과 돈 몇만원을 다 빼앗기였거니와 그도 녀편네도 다 목숨까지 잃어버렸다는것이였다. 그건 다른것이 아니라 몇해전에 민호가 염왕산의 기마대를 이끌고 나와서 한 그 일이였다.     왕견은 자기도 끼여들어 감행했던 그번의 행동이 귀맛을 당기게 하는 아름다운 전설처럼 되여진지라 기분이 아주좋았다.         《거 희한하구나. 어떤 사람들인지 내가 봤더면...》    《봤더면 어쩔거우, 박수라도 쳐줬을가.》    《그렇구말구. 거기는? 하하하....》     그의 입에서 웃음이 나갔다.     석금강에 금맥이 터졌다고 소문이 나서 요몇해간에 모여온 금점꾼이 근 천여명에 달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어중이떠중이 오가잡탕이라 성분이 과연 복잡하기도했다. 그래서 경찰의 감시와 조사가 심했다. 일본경찰 20여명에 만주국경찰이 근 50명에 달했는데  그들이 하는 일이란 캐낸 금을 금고에 넣어 보관하고 지키다가 그것을 자동차에 실어서 가야 할 곳으로 가지고 가는 외 반일선동분자를 색출하는 일이였다. 가끔씩 잡히는 자가 있었다.     이런 환경속에서 함정맛을 보고 겨우 살아난 짐승모양으로 조심성이 많아진 왕견은 토비배짱과 습성이 드러나지 않게 하느라 용케도 자신을 분장했다. 모두들 그를 생김새와는 다르게 어리무던하다고 볼 정도였다. 그래도 각별히 조심해야했다. 막벌이꾼가운데 왜놈의 개가 있을 수 있으니까.     왕견은 워낙 손이 커서 씀씀이가 헤픈 사람이였지만 차츰 구두쇠로 되어갔다. 그는 자기가 버는 돈을 아끼면서 모으기시작했다. 한것은 그에게 하나의 황홀한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다. 할빈에 간 소춘매가 재가를 하지 않았다면 그녀를 안해로 맞아 자기도 한번  남처럼 살림살이를 보리라는 그것이였다.          이런 미몽을 갖고 3년간 부지런히 벌어서 손에 돈을 적잖게  쥐게 되자 왕견은 할빈으로 갔다. 여름이 한창이였다. 거리에 사람이 바글거렸다. 어느덧 북만에서 국제활동의 중심지로 자리를 굳힌  할빈은 이전만 훨씬 더 번화해진것이 분명한데 도처에 경찰이 나타나서 살벌한 감을 주기도했다. 일본은 여기다 총령사관을 둔 외에도 지금은 관동군의 헌병조직까지 두었고 만주괴뢰국은 민생부(民生部)의 판사처와 롱단적인 공사를 모두 여기에 두어서 할빈은  그야말로 일본사람이 세력을 펴는 천하로 변해가고 있었다.     왕견은 할빈에 당도하여 그날밤을 려관에서 보내고는 이틑날 오후가 돼서야 연하루 기생집을 찾아낼 수 있었다.      《제길할, 계집이 뭔데 이 호두정만을 다리각 싹 물러나게 만들어놓느냐..》     옷을 잘입은 신사들이 기생집을 뻔질나게 드나들고 있었다. 보아하니 경영이 잘되는것 같은데 돈만 팔면 누구나 맘대로 드나들 수 있는 유곽과는 다르게 품위도 갖춘것 같았다.     빨간치포를 차려입은 젊은 아가씨가 문전에서 해죽거리면서 손님을 맞아들이군 하는데 왕견이 다가가니 태도가 달라졌다. 우선 낯색부터 차갑게 굳어지는것이였다.     이 계집년이 내가 어떤 사람이란걸 알아본건 아닐텐데 왜 저럴가, 내 몸에서 무슨 냄새라도 나서 그럴가?.... 대단히 언잖고 기분이 상했지만 되도록 상냥하게 물었다.    《저 아가씨, 말좀물읍시다. 여기 소춘매라구 하는 기생이 있는지? 전에 있었더랬지 나이는 올해 서를 여덟이구.... 》     치포입은 녀인은 웬 주제사납게 생긴 사나이가 나이까지 대면서 소춘매를 찾는지라 이상한지 아래우를 다시 훑어보고며 물었다.    《손님은 누군신가요?》    《나말이지. 난 저.....》    《명함장있나요? 있으면 저한테 줘요. 제가 갖다전할테니.》     그러니 소춘매가 여기에 있다는 말인지라 왕견은 얼굴에 기쁨을 확 피우면서 재우쳤다.    《됐어, 내가 찾았군!.... 건데 아가씨, 방금 나보구 뭐라했더라. 명함장을 달라구?....원, 거북의 잔등에서 털뽑자구드네. 들어가 얼씨덩 알려주슈, 왕견이란 사람이 소아가씨를 보러왔다구말이야!》        그 녀인은 갑작스레 수다스러워지면서 진정못하는 별스러운 손님의 독촉에 못이겨 안으로 달려들어갔다.     좀있으니 소춘매가 달려나왔다.    《아유, 이게 웬 일이가요!?.....》     소춘매는 무척 반가와 하는데 꽃무니돋은 화려한 비단치포를 떠쳐입은 단아하고 아름다운 그녀의 몸에서는 맡기 어려운 향기와 어울려 향긋한 술내가 풍기고 있었다.     왕견은 사내답니 못하게 울먹거리는 음성으로 찾아온 리유를 그녀에게 알려주었다.    《나 소아가씨보구퍼 찾아왔소. 차타구 아침에 내려.... 무슨 시가지가 이리두 널러. 제길헐 첨각자(소) 관청에 끌려온것 같이 어리둥절해서....》    《할빈이 처음길이죠. 어디다 자리잡았나요?》    《류수요(려관)말이지. 내사 그눔의 이름을 아나. 저.... 사람이 드나드는데를 널찍하게 만들어 놓구서는 꼭대기다 세멘으루서 둥그렇게 판을 만들었는데 거기다가 천구백십이라구 숫자를 그려놨던군. 바로 그 집이야. 간판은 한쪽옆으루 붙혀놓구.》    《간판글자쯤이야 알아둘게지.... 그게 어느 거리에 있나요?》     녀인의 책망섞인 말에 반문맹이나답지 않은 왕견은 낯이 고추물에 익는것만같았다.    《저기 다리있구 그 밑으루서는 기차가 다녀. 철길이 여러갈래야. 여기서는 꽤 멀어. 거기 큰 거리는 돌을 밖아서 길바닥을 만들었더구만. 그 길에서 옆쪽골목으루 들어가서....》    《그러면 그게 도리의 중앙대가 어디겠네요. 여긴 남강이얘요.》     소춘매는 아미를 숙인채 잠간 궁리하고나서 입을 다시열었다.    《저 이렇게 하자요. 저녁때 내가 그리로 가자요. 어디든 나가지 말고 날 기다려요.》     손님들과 술자리를 같이하고있다가 나온 소춘매는 오래지체하면 실례거니와 행인의 눈길을 모으면서 밖에서 그냥 얘기할 수는 없는지라 이같이 약속해놓고는 총망히 되들어가버렸다.     아무튼 찾았으니 됐다! 왕견은 기분좋게 발길을 돌렸다.      한데 려관에 돌아와 담배를 피우자고 호주머니에 손을 넣으니 담배갑이 없거니와 이쪽호주머니의 돈지갑마저 없었다. 백주에 입고있는 제 옷의 호주니를 말끔히 털리우면서도 모르고있었다니!    《이런 제길헐, 어느놈이 이랬어!?》     거액의 돈을 눈깜짝새에 잃고보니 왕견은 한심해서 눈앞이 캄캄했다. 그러잖아 돈을 도적맟일가봐 안으로 빈침을 꽂았는데 어느 솜씨잰 녀석이 아래를 째고 홀랑 뽑아낸거다. 남강에는 추림(秋林)이라는 상점이 있는데 기윽자형의 그 연두색나는 커다란 서양식 건물의 경영주는 서양사람이다. 매상고가 전 할빈치고 굴지거니와 만주땅 어느 도시에도 그와 견줄만한것이 없을지경 유명했다. 왕견은 그 상점을 구경하느라 들어갔다가 나오느라 인파속을 헤집을  때 소매치기를 당한것 같았다. 아니면  소춘매한테 사줄 반지와 팔찌, 목걸이를 미리봐두느라 보석상점에 들렸 때일까?....귀신이 곡할 일이라 오금이 풀리여 맥없이 그 자리에 주저앉고말았다.        《우리가 기와가마를 마슬때 그 주인도 심정은 이랬을거다.》       류자들이 감행한 략탈로 인하여 곡경을 치룬 기와가마주인의 그 아픔을 이제와서 자기가 벌로 맛을 보는것만 같았다.    《인과보응이야! 인과보응이야!》     그는 이렇게 웨치기도했다.     려관비는 뭐로 결산하고 나간단말인가? 돈없으면 정막강산이요 돈있으면 금수강산이라는데 과연 그런것 같았다. 어쩌면 좋을가?.... 왕견이 막연하여 누워서 이 궁리 저 궁리로 파밭을 매고있을 때 소춘매가 나타났다. 인력거를 불러 타고 달려온 것이다.    《어, 왔구만!》     왕견은 웃음으로 맞이했다. 허나 그가 지은 웃음은 실그러진 어색한 웃음이였고 거동역시 병신스러웠다.    《절 기다렸죠?》     소춘매는 여전히 반가워하는 기색이였다.     그녀는 그사이 머리를 새로틀어올리였고 치포대신 담청색나는 얇은 모직양복을 갈아입었다. 어깨에다는 숄을 걸치고. 스커트아래로 굽놉은 구두를 신은 말쑥한 다리가 드러나고있는 그녀는 짜장 현대식녀인의 타입이였다. 미인의 풍모는 천연조각이라더니 그녀는 마치도 바람에 스러지지 않고있는 한떨기의 수련과도 같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녁화장을 담담하게 한 그녀의 얼굴에는 어느덧 잔주름이 잡히고 있었다. 염왕산에 있을 때보다는 살결도 좀 못해진것 같았다. 매일 주지육림에 빠져 호화롭게 살아왔어도 속절없이 흘러가는 세월이 남기는 그림자야 어찌당하랴.       소춘매는 손이라도 잡아줄 왕견이 우거지상이 되어 거북스레 서있는 꼴을 보고 이마살을 찌프렸다.    《왜 그래요? 내가 온게 기분나뿐가요?》    《아, 아니....》    《그럼 왜서요? 말해요, 왜 이래요?》    《후....》    《무엇이 고까와 그래요?》    《......》    《난 낮에 손님을 상대하고있었던거얘요. 내가 하는 일이 노래하고 춤추고 손님접대하고....그런일인걸 모르고 왔나요?》    《어, 저....》     왕견은 자기가 당한 일을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그러면 녀인이 단통 자기를 등신이라할것 같아 입을 더 열지 못했다. 응당 털어놓고 시원히 알려줘야했건만 그러지 않고 답답할 지경 주저하면서 녀인의 낯을 어름어름 피하기만했다.     소춘매는 정말 기분상했다. 사나이가 노여움이 들어 자기를 이같이 대하는거라고만 생각한 그녀는 그가 그러는 원인을 더 캐묻지도 않고 그만 돌아가고말았다.     이거 춘매가 갔어? 제길헐.... 무연히 마음떠져있던 왕견은 녀인이 바람같이 사라져버려서야 펄쩍 정신차렸다. 그는 달려나가 부르려했으나 이미 늦었으니 그만 도루 풀썩 주저앉고말았다.      《에잇 못난놈아! 불러서는 뭘하나? 붙잡아서는 뭘 하나? 빈 털털이로 된 주제에! 후ㅡ》     왕견은 심장이라도 토해낼것처럼 한숨쉬였다. 그는 또다시 신세를 한탄하면서 온갖 사려에 잠겨 모대기다보니 반수반성으로 그날밤을 보냈다.     이틑날이다. 다행히 바지호주머니에 잔돈이 얼마가량 남아서 왕견은 우동 한그릇을 사먹고 곧추 칼파는 상점을 찾아갔다. 한데 상점에서는 비수를 팔지 않았다. 그는 하는 수 없이 날이 한뼘가량되는 과일칼 한자루를 사서 품에 감추면서 나왔다.     서양사람들이 제 심미에 따라 설계하고 만들어 놓은 각양각색의 건축물들이 제모습을 보이고 있었는데 그것들이 이 시각에는 토비행실이 골수에 까지 배여있는 사나이의 일거일투족을 지켜보는것만 같았다. 그는 그래도 그깟것은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일본인의 은행을 찾아갔다. 그것은 도리구의 한 번화한 거리에 있었다.     때는 오전 9시경이였다.     거기서 그는 조용히 과녁을 찾기시작했다.     좀 있으니 옷을 화려하게 차려입은, 유한부인같아 보이는 한 뚱보녀인이 인력거에 앉아오다가 은행문앞에 이르러 내렸다. 왕견은 자기도 볼일있는 것 처럼 태연히 그녀를 따라 은행으로 들어갔다. 그 녀인은 악어가죽으로 만든 자그마한 핸드백에서 저금통장을 꺼내더니 저금했던 돈을 찾았다. 피끗봐도 거액이였다.      왕견은 그녀먼저 거기를 얼른 나와버렸다. 그리고는 그녀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좀있으니 그 뚱보녀인도 은행을 나오는데 몸이 무거우니 걸어가기 실은지 인력거나 양차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왕견은 그녀의 곁에 가서 칼을 빼여 옆꾸리에 댔다.    《그 돈 몽땅 내놔. 안그러면 알지, 이거야!》     뚱보녀인은 칼을보자 기겁하여 부들부들 떨었다.     왕견은 그녀손에서 돈가방을 제꺽채갖고 사람들 속으로 유유히 사라져버렸다.     뚱보녀인은 목구멍이 꽉 막혀 소리한마디도 내지르지 못한 채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고말았다. 그녀는 한해전에 일본본토의 일본산업주식회사(日本産業股分公司)가 만주에 들어와 꾸린 만업(滿業)의 일을 하고있는 한 권세자의 부인이였는데 아들이 장가를 가게되니 저금했던 돈을 찾아냈다가 이런 끔찍스런 변을 당한것이다.     이 일은 특대뉴스로 되어 당날로 온 할빈시내를 들썽하게 만들어놓았다. 백주에 칼들고 이같이 공공연히 작경을 노는 강도가 세상에 몇이나 될가, 그것도 집안이나 구석진데서면 몰라도 행인이 욱실거리는 거리에서.      소문이 짝 퍼지는 통에 려관에 든 왕견도 저녁켠이 되기바쁘게 그것을 들었다. 눈감으면 코떼울 세상이라느니 뭐니 하면서 손님들은 한숨과 경탄을 뽑았다. 이런 강탈쯤은 수염한대를 뽑듯이 식은죽먹기로 여겨온 왕견이라 제가 잃은 돈만큼은 안되지만 거액이라 웃음집이 흔들거렸다. 그 누가 배포유한 이 손님이 그런 짓을 했으려니 생각이나했으랴!     이틑날도 사흗날도 소춘매는 찾아오지 않았다.    《허, 이거 어떻게 된거야?》     왕견은 속이 달아나기시작했다. 그는 그녀가 속이 단단히 옹쳐서 그러는것 같아 그날 그렇게 대해준 원인이라도 해석해야겠다는 생각에 연하루를 찾아갔다.     이번에는 전번같이 허술한 모양새로 가지 않았다. 머리를 다듬고 면도질도 다시했고 값진 양복을 한 벌 사입고 중절모자도 쓰고 구두도 사신어서 자기를 신사같이 외모를 바꾸었다.    《내가 또왔어. 소아가씨 있겠지?》     말을 거니 문가에서 접객을 하고있는 전날의 그 빨간치포입은 소녀는 버들가지같은 허리를 굽혀 머리가 땅에 거의닿을지경 인사를 곱게 하면서 반겨맞는것이였다.      《예 있습니다, 손님! 어서들어가세요! 오셔서 반가와요!》     왕견이 들어가 보니 이 아담진 2층집은 아래층을 하나의 너른 방으로 쓰고 위층에는 자그마한 방을 몇개 꾸미였는데 장식이 화려하고도 사치했다.     이 기생집 주인마님은 전해에 자궁암으로 사망하고 언젠가 민호의 손에 랍치되였던 그 마님의 아이가 지금은 가업을 물려받았는데 아직은 나이 어리거니와 공부중이라서 소춘매가 대리로 주인행세를 하고 있었다.     연하루는 이전이나 지금이나 그녀가 있음으로 하여 손님이 많이 모여들고 영업이 잘되여가고 있었다. 본래 기생몸인 그녀가 극적으로 토비한테 시집가 압채부인노릇을 하다가 거기를 뛸쳐나와 다시금 옛직업을 찾아하고있는 것이 사람들에게 흥미를 자아내게 만드는 기이한 로맨스여서 지어는 그 일을 소재로 하여 연극을 꾸미자고 달려드는 사람까지 있었다.     소춘매가 할빈에 다시나타나자 일본헌병대는 그녀에게 눈길을 꽂으면서 자못 중시하게 되였다. 일본군은 염왕산을 토벌하는데 그녀를 길잡이로 세워볼 생각이였던것이다. 한데 소춘매는 토비굴에 들어갈 때나 나올 때나 모두 눈을 싸매서 자기는 길을 모른다고 딱 잡아떼서 더 조련하지 않았다. 그렇다해서 일본헌병대가 그녀를 영 포기한것은 아니였다. 지금 그녀는 보안국(保安局)의 수사명단에 들어 있었다. 그렇다는것을 본인이야 어찌알랴.     보안국은 만주국의 특무조직이였다. 이 특무조직은 관동군에서 1937년 11월 30일에 제출한 에 의하여 생긴것인데 관동군참모장의 지휘를 받으며 조직상에서는 관동군참모부 제2과의 분지(分支)로 되고 있었다.     일본은 침략적인 9.18사변을 일으켜서 옹근 6년만인 지난해에야 만주전역을 기본상 장악하게 되였다. 하지만 만주국과 접경하고있는 쏘련이 간첩을 파견하고 아직도 반만항일을 견지하고 있는  지하조직들이 건전히 남아 활동하고있어서 지도민족이라 자부하고 나선 대화민족(大和民族)이 위협을 받고있는 상황이니 무력방위나 경찰세력만으로는 치안을 유지해나가기 어렵다고 여겨져 관동군은 이같이 특무조직을 내와 비밀전(秘密戰)을 벌리고있는 판이다.       연하루로 각 계층의 인물들이 자주모여들었다. 하여 이 기생집은 자연히 보안국에서 점을 찍게 된 것이며 그리하여서 어느 하루도 특무의 그림자가 나타나지 않은적이 없다. 그 특무조직의 총반장(悤班長)과 반장(班長)은 일본사람이고 그 외의 인원은 모두 한족(漢族)이였는데 그들은 다가 공개된 직업을 갖고 있어서 모르는 사람은 진가를 가려낼 수 없었다.      왕견이 들어가 보니 아래층에는 다른 기생들과 작부와 녀사환 뿐 소춘매는 보이지 않았다. 하여 그는 곧추 위층으로 올라갔다. 거기 한칸에 술상이 벌려져 있었다. 박수갈채 속에 웃음이 터지고 있었다. 어느 기생이 방금 노래를 끝마친모양이다.     출입문이 반쯤 열려졌기에 안쪽을 들여다 보니 소춘매가 웬 안경낀 50대사나이곁에 붙어서 술잔을 맞쫓고 있었다. 왕견은 더 보고싶지 않아서 낯을 돌려버렸다. 이때 문가에 앉아있던 기생이 어느새 그를 발견하고 일어나 나오면서 손님은 누구를 찾는가고 물었다. 왕견이 미처 입을 열기 전에 소춘매가 어느결에 제꺽알아보고 나왔다.        《아니 난 또 누구라구!》     그녀는 사뭇 놀라면서 반가와했다.    《내가 이거 술상이 있는줄을 모르구 올라왔지.》     왕견은 궁하게 된 처지를 의뭉스레 뭉때렸다.    《장참인걸요 뭐. 어느 날이면 술상없고 손님없을가요. 자 들어가 한자리하자요.》    《내가? 불청객인데 거기룬 왜 들어가.》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왕견은 소춘매에게 끌려 발을 들여놓고 있었다.    《여러분께 소개하겠어요. 저의 오빠얘요.》    《오빠라구?....》    《아, 그렇소!?....》    《소아가씨한테 오빠있었는가?》    《금시초문인걸!》     좌중은 문득 나타난 불청객과 녀인을 번갈아보면서 혹은 웃음짓고 혹은 반신반의하면서 눈을 슴벅거렸다.     왕견은 속으로 내가 들어오지 말아야 할 데를 들어왔구나했다. 한들 이제 도루나가랴, 눌러앉는 수밖에.     소춘매와 술잔을 맞쫏던 대머리가 일어나더니 인사차림했다.    《자 어려워말구 앉으시오. 우린 다 한동포아닙니까. 한잔같이합시다. 소아씨님의 오랍이라니 무척 반갑구만요!》     다른사람도 따라서 어색한 분위기를 깨느라 인사를 차렸다.     대머리는 자기가 석보상점(石寶商店)주인이라면서 성명은 관배쌍이라 자아소개를 했다.     어느 석보상점일가? 그게 내가 들려봤던 그 상점이 아닌지. 왕견은 그를 본 기억이 없다. 이 큰 도시판에 석보상이 관배쌍 하나뿐일수는 없는것이다. 왕견은 그한테 자기는 성명이 왕후도(王後道)라 알려주었다. 그가 은신처를 찾아 석금강으로 갈때 천옥령의 경찰남편이 제멋대로 지어준 이름이였다.     이름이 엉뚱한지라 소춘매의 얼굴에는 돌차간 놀랜 빛이 피였다가 사라졌다.     왕견은 속으로 참 내가 소아가씨한테 고친 이름을 미처 알려주지 못했구나 하면서 자기가 기실은 소춘매와는 친형제도 친척도 아니고 소시적부터 한마을서 앞뒤집에 가깝게 살면서 극친히 보낸 사이였노라했다.    《그렇다면야 한집사람이나답지 않지 뭐.》      좌중은 이러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왕견은 앉자마자 그들과 어울리느라 술잔을 들었다.     주석은 날이 어두워서야 파했다.     소춘매는 뒷수습을 다른사람에게 맡기고나서 자기는 왕견을 따라나섰다.    《그 사람 장사아치가 돼서 그런가. 거 말솜씨가 변설이더구만. 사람이 시원시원하고 유식하구.》     왕견은 소춘매가 부른 양차에 올라앉자 관배쌍의 위인됨을 놓고 말했다. 그 대머리가 별스레 친절을 보여 인상이 좋았던것이다.    《좋은분이길래 나도 고맙게 굴지요. 안그러면야 그 늙다리를 누가 받아주겠나요. 전에는 한번도 오지 않던 분이 지난해부터 아예 단골손님이 되었어요.》    《단골손님이라. 허허허.... 그 민둥산이 그리두 댕겨. 허니까 녀색을 좋아하는 치구만!》    《원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외도한번 안하는 분인데.》     왕견이 찌뿌둥해지는지라 소춘매는 야속해서 가로보며 그런 시샘은 어디서 배웠는가고 놀려주었다.     왕견은 입만 쩝 쩝 다시였다.     소춘매는 이 말은 이만하자면서 화제를 돌려 그사이 염왕산의 안부를 물으면서 왕견이 할빈에 온 목적을 똑똑히 알려헸다. 그녀는 왕견이 내내 염왕산에 있다가 곧추 여기로 온줄로 알았던거다.     왕견은 소춘매에게 그녀가 떠난 후 위용강이 자기를 딴눈으로 볼 것 같아 조심스럽던 일, 그러던 중 마침 임무를 맡고 흑산패를 찾아가 그 무리의 류자를 수편했던 일, 패장이 되어 그들을 데리고 나와 싸웠던 일, 그러다가 녕안쪽으로 나가 적과 조우전을 해서 대오가 철저히 붕괴되여 버린 일, 석금강에 가 은신하면서 3년간 금점을 한 일 등등 지나온 일들을 하나 빼놓지 않고 다 말했다.     소춘매는 전혀 뜻밖인지라 놀라기도 하고 감격하기도 했다.     왕견은 자기가 할빈에 온건 오로지 하나의 리유ㅡ 과연 정말 소춘매가 사무치게 그립고 보고싶었기 때문이라 토로했다. 다행히도 소춘매가 시집가지 않아 왕견은 무등기뻤다.     한데 소춘매쪽은 그같지 않았다. 왕견이 재가를 할 생각은 없느냐 하는 물음에 그녀는 가볍고 담담하게 알려주었다.    《시집가선 뭘해요. 가고싶지 않아요.》     시집가서는 뭘하는가말이지 시집가고싶지 않단말이지 고작한다는 소리가 그것이란말인가. 왕견은 듣고싶지 않은 소리를 듣는지라 기분이 푹 상했다. 녀인이 나도 우리 서로가 다시만나기를 고대했어요 하면 얼마나 좋으랴. 왕견은 마음속에 그녀 하나를 두고 아글타글 돈을 모은 일과 고생스레 찾아 온 일을 생각하면 자기의 정과 성의를 몰라봐주는 그녀가 뺨을 갈겨놓기싶도록 괘씸했다.     이날밤 소춘매는 연하루에 돌아가지 않고 한자리에 들어주었다. 그래서 왕견은 속이 좀 풀렸거니와 녀인이 그러는것이 무척 고맙기도했다. 다시생각해보면 그녀가 자기를 받아주는것 같기도해서 왕견은 그녀를 향해 자기는 언제 할빈을 떠나갈지 모르겠는데 여기에 있는 기간 신분이 드러나지 않게끔 보호해달라했다. 그 일에 대해서는 소춘매 역시 생각하고있는지라 어련히 그러잖으리했다.       왕견은 믿음성있는 소춘매를 만나고 보니 마음속 그릴때보다 더더욱 욕심나 미칠지경이였다. 그러나 그녀를 안해로 맞으려는건 침을 뱉아 하늘의 별을 맞혀보자는 것 처럼 어리석은 짓이라는걸 알았다. 그 어느 누구의 손에도 매이지 않고 자유의 몸이 되려는 그녀는 자기를 탐내는 모든 사나이들의 공유였지 왕견이 독점해버릴 몸이 아니였던것이다.     광음은 화살과 같고 주야는 북과 같다더니 세월이 과연 빠르기도하다. 어느새 여름이 다 가고 가을이 오는 것 같더니 어물거리는 사이 겨울절기에 들어섰다. 어쩐다 석금강으로 다시간다? 거기로 내가 다시간단말이지?.... 그래 거기로 가지 않으면 어디로 간단말인가? 내가 데리고 살지 못할 계집믿고 여기에 그냥 눌러있을 멋도 없지 않은가. 과연 어쩌면 좋을가?..... 왕견이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면서 마음들떠 있을 때 마침 소춘매가 찾아왔다.    《가자요. 날따라와요.》    《어두루?》    《글쎄 따라오기나해요. 내가 셋집하나 잡아놨어요.》    《허 이거 나더러 이젠 류수요(려관)에 그만있으라는건가. 아예 주저앉아 살라는거아니여? 그렇다면야 더좋은거구!》     왕견은 녀인이 자기가 있는걸 부담스러워 하지 않고 생각해주니 고맙기 그지없었다. 앞이 막막하던것이 열리는것 같았다.     소춘매는 그보고 사내장골이 아무하는 일도 없이 려관밥만 축내서야 어디되겠느냐면서 자기가 이제 안성맞춤한 일자리를 구해주리라했다. 왕견은 그녀의 생각이 이같이 주도함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셋집은 사람 두셋쯤 얼마든지 들수 있었다. 소춘매는 그가 쓸 가장집물들을 사고 구해서 그 단층집 셋방을 마치 신혼의 살림집모양으로 아담하게 꾸려놓기까지 했다.       왕견이 셋집에 든지 약 보름만에 일자리가 나졌다. 소춘매가 가까운 사람을 다리놓아 그를 철로에 밀어넣은것이다. 하는것이 물론 잡일이였다. 소춘매는 그보고 먼저 발을 붙여놓고 하느라면 장차 봉급도 오르고 개끗한 일을 할지도 모르니 제발 십장하고 우락부락하지 말고 관계를 좋게하라고 당부했다.     왕견은 시키는대로 하리라했다. 이때의 왕견은 불혹지년(不惑之年)에 다 이르렀지만 몸만은 건강하여 젊은이들보다 못지 않게 기운썼거니와 마음이 좀스러운데 없이 헙헙하고 성미또한 걸걸해서 함께 일하는 벌이꾼치고 좋아하지 않은이가 없었다. 지어 어떤 젊은이들은 허물없이 롱담까지 했다.     새해년초의 어느날 독신사나이들이 그보고 집간도 이루지 못한 분이 무슨멋에 혼자있으면서 매일 먼길에 탈탈 거리느냐 자기들이 있는 합숙에 오라했다.     가까이서 소춘매를 보는 재미가 드믄드믄 있는 왕견이 그런 호의쯤 받아줄리만무였다.      아직 스므살도 안먹은 젊은녀석 하나가 어우렁더우렁 지냈더니만 발칙스레 롱을 걸어오는것이였다.    《왕아저씨?》    《어째 그러냐?》    《래일모레면 춘절인데 왕아저씬 죠즈삶아 누구하고 같이 잡수렵니까?》    《조왕신하구 같이먹지.》    《그 조왕신 조개있나요?》    《조개라니 없어. 수캐야.》    《수캐끼리면 어디다 비비나요?》    《엑키 고약한 놈!》    《하하하....》     모두들 웃음보를 텃치였다.     다른 젊은 놈 하나가 웃음 끝에 동을 달았다.    《왕아저씬 들었나요, 돼지대갈먹는 날이 지나면 저 우경술집건너 번대머리네 딸님이 시집간대요. 하면서요. 왕아저씨는 구경안갈래요. 벌써부터 소문이 파다한걸 보면 부자집의 고명딸 잔치가 대단할 것 같습니다. 온 시내가 들썽하게.》    《그런데룬 왜 가. 남 기뻐하는거나 구경하느라구? 가겠거든 너들이나 가거라.》     왕견은 말해놓고 보니 궁금한지라 물어봤다.    《건데 번대머리는 뭐하는 사람이게 부자루됐냐?》    《석보상점차려서 부자됐죠.》    《뭐라? 그러면 관배쌍의 딸이 시집간다는 소리냐?》    《그렇고말고요. 왕아저씬 그 사람을 어떻게 아나요?》    《내가 그 사람이야....》     왕견은 더 말하고싶지 않아서 입을 다물어버렸다.     근일에야 소춘매가 하는 말이 셋집을 얻어준것도 일자리를 구해준것도 다 관배쌍이 나서서 힘썼기 때문이란다. 왕견이 그런걸 왜 인제야 알려주느냐고 했더니 소춘매는 그깟일에 왼심 좀 쓰고 고맙다는 인사를 받겠냐며서 본인이 말하지 말라해서 여지껏 입을 봉하고있었노라 했다. 하여 왕견은 그 대머리가 마음씨 정말좋은 사람으로 안겨왔던거다. 하지만 지금 그와같이 일하고있는 젊은이들은 그에 대한 인상이 그닥좋지 않은것 같았다.      남이야 인상이 이렇건저렇건간에 왕견은 왕견이대로 관씨댁의 잔치라니 내가 응당 이럴때 인사차림을 해야잖겠냐했다.     이날밤 소춘매는 다른때보다 퍽 늦게야 찾아왔다. 그녀는 한주일에 한번씩 오군한다. 이쪽은 그녀가 하는 일에 대해서 일체 간섭을 말아야했다. 이는 소춘매가 요구한 것이고 왕견도 그렇게 하리라 대답해서 둘사이 맺어놓은 불가침조약이였던것이다. 왕견은 소춘매가 자기를 그만큼이라도 대해주니 불평이나 불만을 부릴 아무런 리유가 없었다.      난로에서 석탄이 황황 타고있어서 방안은 훈훈했다.    《날 오래기다렸죠. 딱한 사정있어서 그만....》     소춘매는 구들에 펴놓은, 자리가 절반비여있는 이불을 힐끗 보고는 옷을 벗으면서 혼자 제멋에 겨워서 노래를 불렀다. 그것은 이란 일본노래였다. 노래가 명곡인데다 녀인이 목청고와 귀맛이 좋았다. 하지만 가사는 한마디도 알 수 없었다.     소춘매는 그사이 어느덧 앵무새같이 일본말을 배웠거니와 부드럽고 잔잔한 오까상의 애교까지도 빼놓지 않고 배워서 배우가 연기를 하듯 제법 흉내를 냈다. 아마 그래서 연하루에는 일본사람도 드나드는 모양인데 오늘밤은 소춘매가 인금이 높아감을 생각하고는 자아도취에 빠져 그러는것 같았다.     아무튼 그녀가 기분좋아하면 왕견도 따라서 기분좋았다. 한데 옷을 홀랑 벗은 그녀를 보니 젓싸개가 제대로아니여서 왕견은 기분상했다. 제길할, 네년이 어느 녀석하고 붙어 놀다왔느냐?....     곤하다며 자리에 눕자마자 잠에 골아떨어졌던 소춘매는 이틑날 아침 왕견이 잠을 깨기전에 살며시 일어나 벌써 가버렸다.     한족들이 돼지대갈을 먹는 날이 방금지나자 관배쌍이 제 딸의 잔치에 참석해달라는 청첩을 보내왔다. 왕견은 그것까지 받고보니 잔치에 꼭 가봐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되였다. 그는 소춘매와 잔치에 가면 자기는 부조돈을 얼마내야할까고 물었다. 그랬더니 소춘매가 그런건 자기가 알아서 어련히 처리하지 않으리 하면서 왕견보고 그날 옷이나 정갈하게 입고 참가하라 당부했다.     왕견은 시키는대로했다.     잔치날 음식은 바로 석보상점 건너의 그 우경술집에서 차렸다.      왕견처럼 청첩을 받고 간 사람이 대단히 많았다. 관배쌍은 만면에 웃음을 그득담고 그를 맞아주었다. 왕견이 그와 인사말을 나누고 있을 때였다. 뚱보녀인 하나가 문득나타나 이켠을 보았다. 대머리는 그녀인이 나타나자 안사돈께서 왔는가 하면서 인사를 차렸다. 그러고나서 왕견을 향해 몸을 다시돌려 저 녀인인즉 흥업은행의 행장부인인데 아들이 각시를 잘얻어 입을 다물지 못한다고 알려주었다. 왕견은 그녀의 얼굴을 다시한번 뜯어보고나서 그만 온 몸에 강직이 온 사람모양으로 그 자리에 돌같이 굳어지고 말았다. 그 녀인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언젠가 왕견한테 거액을 강탈당했던 그 녀인이였던것이다. 이런 제길할 그러니까 내가 관배쌍의 사돈집을 강탈했던게로구나!         왕견은 지난때의 행실을 돌이겨 보면서 스스로 자책했다.     마침 그녀는 왕견을 알아보지 못했다.     왕견은 이날 진주성찬도 맛을 모르고 넘겼다.     돌아올 때 왕견은 소춘매보고 오늘밤은 자기와 지내달라했다.    《왜요, 제도를 고칠텐가요.》     소춘매는 롱쪼로 한마디 던졌다.    《그건 아니여. 한가지 요긴하게 알아볼 일이 있어서....관배쌍의 안사돈되는 여자 뚱보옳은가?》    《옳아요. 연분홍비로도치포를 입은 그 뚱보녀인이죠. 건데 생급스레 그건 왜 묻나요?》    《옳다면 난 미안한 짓을 해서 그런거야.》    《미안한 짓이라니요. 누구한테 무슨일에요?》    《소아가씬 지난해 여름에 여자 하나가 백주에 은행앞에서 강도한테 당한 일 기억안나?》    《기억나요. 온 시내를 들썽케 했던 일인데 왜 기억안나겠나요. 그게 그럼.....》    《내가 한 짓이였어.》     왕견은 어쩌면 이럴수가 하면서 놀라고있는 소춘매앞에다 그때 자기가 그런짓을 하게되였던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호, 어쩜....》     소춘매는 곤지바른 죄꼬만 입으로 놀램을 련신발했다.     하지만 이 일로 인하여 그들은 사이가 좀치도 버성기지는 않았다. 생활은 그들이 그려놓은 궤도우에서 그냥 무난히 엮어나갔다.    
149    <<관동의 밤>> 제2부(31) 댓글:  조회:2332  추천:2  2015-02-04
                               31             양화와 공파가 가슴에 품어왔던, 추운 겨울을 보내고 따스한 봄이 돌아오면 자기말을 잘듣는 새자들을 골라 데리고 빠져나가 석금강에 가 거기에서 금점꾼을 더 끌어들이는 한편 금광의 금을 빼앗아 그것을 밑천삼아 따로 기국해 보려던 미몽은 골통이 탄알에 구멍나는바람에 그만 산산히 부셔지고말았다.     루루히 죄악을 쌓고있는 자들을 용서함이 없이 처단해 버리니 진가툰 사람들은 속이 시원해 하면서 염왕산 독립패가 이제는 과연 반일군맛이 난다고 칭찬했다.     한편 적잖은 새자들은 형제 셋이나 한꺼번에 목숨이 날아나는것을 보고는 전전 긍긍했다. 이제는 규률을 위반하지 말아야겠구나 죄를 지으면 나도 뛸데없이 저모양이 될테지 하면서 왕견과 최기덕 이 두 권력자를 경원하기 시작했다. 그중의 또 어떤 새자들은 만용을 부리는것이 오랜 습성으로 되였는지라 위협이나 압력에 그냥 눌리워 억제속에서 지내려하지 않았다. 그런자 몇이서 이전만 활기가 적고 침침한 기분을 만들고 있었다.          《무슨 짐승이라구 우리에 갇혀지내겠나.》    《내가 누군데 남의 쇠사슬에 매여 산단말인가.》    《전에는 이렇지 않았는데. 제멋대로 떠도는 구름의 좋아.》    《구관이 명관이지.》     이러면서 그들은 지난날을 동경하면서 흑산패의 죽어버린 장운천두령을 그리였다. 왕견이 아주 영 나빠서가 아니였다. 그가 최대표의 말을 듣고 새자들을 너무 강포하게 제 손탁에 넣는것 같아  불만이 생긴것이다. 정서가 이쯤되니 딴 마음을 먹고 처형된 양화와 공파의 뒤를 계승해서 암암리에 따로 작당하느라 선줄을 끄는 자가 나지게 되였다.   《우린 여기를 떠나버리자.》   《그러는게 좋겠다.》   《가자! 네가 가면 나도가겠다!》    이리하여 7명의 새자가 비밀리에 탈주를 계획했다.    한데 그 들의 그 계획은 그만 사전에 드러나고말았다. 쪽박(입)이 무른 자가 비밀을 루설하는 바람에 많은 사람이 알게 된 것이다.    왕견이 마침 외지로 나가고 없어서 기덕이 혼자 이일을 관여하게 되었다.   《누가 여기를 떠나자고 줄을 끄는지 나서거라.》    기덕이는 새자들을 다 모아놓고 주모자를 찾았다.   《제가 그랬습니다.》    생각밖에 선듯이 나서는 자가 있었다.   《솔직히 말하겠으니 최대표께서는 노여워마사오. 우리두 이젠 제살도리를 해야겠습니다. 한생이 얼만데 그냥 이 모양으로 지내겠습니까. 고생을 사서 한 필요야 없잖은가요.》     그가 내뱉는 소리였다.    《뭐라, 그렇게까지 됐다는건가!?》     기덕이는 적이 놀랬다. 그 말을 분석해보면 반일을 하는것은 고생이다 안해도 되는것을 해서 고생할거야 없잖은가 하는것으로 된다. 그런즉 이제다시 반일선전을 해도 그게 귀구멍에 들어갈리만무였다. 이런자들을 무슨짝에 쓰겠는가, 붙들어두자는게 어리석었다. 기덕이는 갈데로 가게 내버려두는게 상책이리라 생각했다.     왕견이 돌아왔다.     《왕패장보겐 우리의 대오가 어떻습니까?》     기덕은 좋지 않은 기색으로 말을 꺼냈다.    《내가 없는연에 무슨 일이라도 생겼소?》     느낌이 좋지 않은지라 왕견은 대뜸 심각해지면서 되묻는다.    《여지껏 곪아왔습니다. 종낭같이..... 툭텃쳐 응어리를 빼버리면 시원해질것 같습니다.》    《그래서 거기생각에는....》    《대오를 당장 정돈하자는겝니다.》    《정돈한다? 어떤 방법으루서?》    《소용없는자는 다 빼버리지요.》    《아니 뭐라! 빼버린다구?》     왕견은 낯색이 변하면서 이그러졌다. 빼번린다느건 죽여버림을 이미하는건데 왕견은 절대로 그렇게는 하고싶지 않았다.    《아무죄도 없는데 가겠다구해서 그래서야 되겠소. 공파나 양화같이 일을 저질렀으면 몰라두....건 안돼! 안된다니까!》     기덕은 그제야 자기는 토비가 언어를 어떻게 쓴다는걸 잘 모르다보니 실수했다는걸 깨닫고 급히 시정했다.    《내가 말을 잘못했구만. 용서하시오. 내 뜻은 그게 아닙니다. 대오에서 나가자는 자는 내보자 그겁니다. 마음없이 시집온 년이 남편과 붙어 살면 얼마살겠습니까, 안그렇습니까.》    《그 말이 맞아. 그건 나도 동의야.》     이리하여 둘은 의합이 맞게되였다.     이틑날 왕견은 새자들을 다 모여놓고 선포했다.    《모두 듣거라. 내 오늘 자유를 줄테니 갈 사람은 손을 들라.》     새자들은 왕패장의 진속을 몰라 곤혹스러워했다.     한자가 눈을 꺼무럭거리며 생각하더니 물었다.    《손을 들면 어찌렵니까?》    《어찌기는 어째, 가겠다면 보내는거야.》    《그게 정말입니까?》    《이자식, 넌 내 말을 개방구로 여겼냐? 돼먹지 못한 놈!》     왕견이 와락 성내면서 움을 질러 그 새자는 목을 움츠렸다.    《왕패장의 말을 믿거라.》     기덕이가 입을 열어 이같이 말머리를 떼고나서 온화한 투로 계속했다. 모두들 그동안 고생을 많이했다, 그러나 그것은 나라를 건지기 위해 겪는 고초였으니 유감으로 될 수 없다, 반만항일은 계속해야한다,  이 위대한 대업을 완수함에는 자각된 각오가 있어야지 억지나 강박으로는 되지 않는것이다, 그러니 가겠으면 가거라, 이제는 형제가 아니니 당장 이 자리에서 총과 말을 바치고 가야한다고 그는 말했다. 그러고나서 그는 나가서 반일군을 팔아먹서는 안된다, 누가 만약 그러기만하면 네가 승천입지를 한다해도 우리는 찾아내여 없애치울것이니 그런줄을 알라고 했다.        퇴오를 하자고 밀모한 그 7명이 손을 들었다.     왕견은 말한대로 그자들을 내보냈다.       어느날 뜻밖에 산채에서 민호가 문득찾아왔다. 왕견을 내보내놓고 오래도록 너무나 무관심해서 죄스러웠던거다. 이 한패의 류자가 눈먼 고양이 갈밭매듯 고정된 숙영도 없이 여기 저기 헤매는것만 같고 그러다가 적의 포위에나 들어 넋통먹는것 같아 근심되기도했거니와 염왕산을 수편하러 왔던 최기덕을 이쪽에다 돌리여 독립패를 수편하거나 그렇게 하지 못할 경우 기률이 란잡한 그들을 틀어잡고 반일전을 계속하도록 이끌어주라했는데 대체 어느 정도인지 그것을 알고싶기도했던것이다.     환경이 달라 서로 격조히 지내온 그들은 만나자 그지간 지내온 상황을 서로알아보았다. 민호는 왕견과 최기덕이 패덕한을 처결하고 불온분자들을 대오에서 내보낸것은 아주잘한처사라했다.    《세상은 변해가고있다. 이 대오가 토비노릇을 다시하게해서는 절대안된다. 천죄만악의 야수로 만들지 말아야 한다.》     민호는 돌아가면서 기덕에게 이같이 신신당부했다.     만주국이 만주제국으로 변하고 세습황제로 등극한 부의는 길을 잘들인 개처럼 괴뢰질을 착실히 했다. 병력이 막강한 관동군은 마치도 땅에 쏟아부은 진득진득한 력청모양으로 장애가 적거나 약한데는 한곳도 빼놓지 않으면서 검질기게 세력을 굳혀가고 있었다.     강판이 짱짱 얼어터지고 갈라지는 북만의 엄동이 시작됐다.     양역설이 지나 춘절을 한주일 가량 앞두고 왕견은 적기병 1백여명이 진가툰을 향해오고있다는 급보를 받았다.     어떻게 할것인가? 왕견은 창황히 맛서려다가 그만뒀다. 첫째는 적의 수가 3배나 되고 둘째는 방어가 되지 않았으며 셋째는 마을에서 붙으면 주민들이 상하게 될 것이다. 그는 철거하기로 했다.    《에이구 어쩌믄 좋아, 거두어 줬다고 할건데.》    《일본군은 우릴 못살게 굴거야.》     독립패가 떠나는것 같으니 마을사람들 불안에 떨었다.    《일본군이 들어오면 울면서 말하시오. 토비들이 마을을 점령하구는 잠을 재우라 이불을 하라 밥을 하라면서 못살게 굴었다구. 강간하고 살인을 하고... 귀축간은 만행을 했다고 공소하시오.》     기덕은 이렇게 하는게 더 나을것 같아서 시켰다.     왕견은 마을사람들과 영 가지 않고 곧 다시돌아오리라했다.     적의 기병이 서쪽으로부터 급속히 달려들고 있었다.    《압련자(승마)! 나를 따라 철퇴하라!》     왕견이 웨치자 이쪽은 말을 타고 번개같이 마을을 빠져나갔다.     적들은 이쪽이 수자가 적으니 사기올라 고함치며 추격해왔다.     기덕이는 난생처음 이런 추격을 받아본다. 그는 등자에 발을 꽉 끼운채 죽을둥 살둥 전 속력으로 말을 몰았다. 눈바람이 사정없이 뺨을 때렸고 뒤에서는 적의 기병이 꼬리마냥 떨어지지 않고 그냥 악을 쓰며 추격해왔다.     내내 심산길이였다. 어디로 가고있는지 알수 없었다. 전체 류자들은 그저 앞장선 왕견의 뒤만 바싹따랐다.     적은 마침내 점점 멀어져가고 있었다.     기덕이 물었다.    《여기가 어딥니까?》    《염왕산이지.》    《그렇다면 먼저 알려야 되지 않겠습니까.》    《어디다?》    《산채에다.》    《거긴 왜서?》    《우린 지금 산채로 가고있지 않습니까.》    《아니야. 도루나가고있지.》    《아니 왜서 도루나갑니까?》     물어봐도 왕견은 대답이 없었다. 그저 뒤만 바싹 따르란다.     윙ㅡ윙ㅡ몰아치는 모진 눈보라에 심산이 떨고 있었다. 오로지 북만에서만 볼수 있는 큰풍설ㅡ대포연설(大炮烟雪)이 터진것이다!      그렇게 검질기게 뒤쫓던 적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독립패기마대는 밤중이 되자 진가툰으로 다시돌아왔다.     적기병은 다시나타나지 않았다.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나고 나흘이 지나도 다시나타나지 않았다.     왕견은 입을 뻐개고 소리내여 웃었다.    《됐어, 됐단말이야! 마달산이야, 마달산!(길을 일었다) 내가 그놈들을 모두 잠재웠어, 잠재웠다니까! 하하하.....》     그의 말이 맞았다. 그 백여명의 일본군토벌대는 염왕산의 미로에 들어 헤매다가 끝내 심산을 나오지 못하고 몽땅 말과 함께 지치고 얼어 강시가 된 채 눈에 파묻히고 만 것이다. 이듬해에 계절이 바뀌여 날씨가 더워지자 송장이 썩어 지독한 냄새가 골안을 오래도록 메웠다....     이런줄을 다른 사람이야 어찌알랴.     왕견이 기마대를 이끌고 진가툰에 다시들어갔더니 마을사람들은 불안해하면서 의논이 분분했다.     《다시오리라더니 과연 왔네.》    《왜 또 왔을가?》    《왜병을 꼬리묻혀갖고 오는거 아니냐?》    《그러면 거덜나는데.》     겁을 미리집어먹고 이러면서 다른마을로 솔가도주를 하는 집까지 나졌다.     마을이 부산해지건말건 왕견은 돼지를 한 마리 사서 잡고는  술까지 받아다 류자들을 배껏 먹고 놀게 했다.     마을사람들은 도대채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했다.    《이 사람아, 왜군이 오면 어쩔라구 이러나. 쫓겨다니는 주제에  셈평좋게 들어앉아 술마시다니?》     마을의 령감 하나가 일부러 왕견을 찾아와 꾸짖으려했다.    《먹고푼건 먹어야지. 령감 속태우지 말어. 왜군이 오면야 언녕 뒷따라왔지. 안와요, 안와. 이젠 안와요. 말짱 귀신이 됐을거요.》    《맞붙지를 않았다며?》    《그렇지유 맞붙지 않았지. 꼭 맞붙어야 귀신으루 만드나 뭐.》     왕견은 이같이 댓구를 해놓고 생각해보니 찾아와서까지 캐묻는게 그저일같잖아 령감을 다시쳐다봤다.    《령감! 령감의 그 귀구멍으루 뭐가 들어간거 아니요?》     령감은 그만 말을 더 하지 않고 가버렸다.     왕견도 기덕이도 생각밖에 그사이 마을사람들의 정서가 돌연스레 바뀌여진것을 보고 정신차렸다. 진지주일가? 그는 아닐것이다. 그를 내놓고 이 마을에 친일분자가 없겠는가?... 어느 녀석이 뒤에서 마을 사람들을 선동해 이 기회에 염왕산의 독립패를 축출하려고하는게 분명했다.     기덕이 물었다.      《왕패장! 이 마을 보장은 어떻습니까?》    《그 사람이야 뜨뜨미지근하지. 거기 생각에는 그래 그가 탈난것 같은가?》    《그렇지요. 우린 여적지 그를 너무방임한것 같습니다.》    《조사를 해보면 알수있을거야.》     왕견은 당장 새자를 보내여 보장을 데려오게 했다. 그랬더니 새자가 돌아와서 하는 말이 보장은 마을에 없다는 것이였다.     그 사람이 이런 때에 어디에 갔을까? 의문이 갈마들고 있는데 사흘만에야 그가 다시나타났다. 왕견은 그를 불러다 물어보았다.    《보장어른은 그지간 왜 보이지 않았습니까?》     보장은 대답못하고 어물거렸다.     왕견은 그를 괘씸하게 여겨 직방 명토를 박았다.    《경찰에 가서 뭐라구 고자질했소? 귀신은 속일수 있지만 나 이 왕견이를 속이진 못해!》     보장은 성을 발끈냈다.    《생사람잡네!》    《뭐라, 내가 생사람잡아? 임자가 고약한 짓하는건 아니구?》     토비패장의 상판이 험악해지는것을 보자 보장은 겁을 집어먹으면서 자기는 큰집에 볼일이 있어서 갔다왔다하고는 자기가 외출해도 너의 비준을 맡아야 하는가 했다.     《왜 요럴때 딱 볼일이 생겼나말이요. 까마귀날자 배떨어진다구 일이 생기자 보장이 없어지니 별일이 아닌가.》     왕견이 보장과 이러고있을 때 진지주집의 행랑방에 있는 늙은 머슴이 혼자소리로 네가 끝내 입덕을 입는구나해서 기덕이는 그걸 잡아들도 그와 보장이 뭐라했길래 입덕을 입는가고 캐물었다. 그랬더니 늙은 머슴이 보장은 왕견의 독립패가 일본기병이 오니 가버리는것을 보고는 진지주와 저 꼴을 봐라 이제 곧 일본기병손에 녹아날거라면서 이제는 반만항일은 다 끝나는거다 말했고 마을사람들과도 그렇게 말해서 독립패가 다시 마을로 들어오는건을 실어하게 만든거라 알려주었다. 기실 보장은 반만항일을 하면 좋은 끝장이 없을것이니 그런줄을 알고 모두들 만주국과 관동군을 옹호해야한다고 선동하기까지 했던것이다.     그가 그렇게 했으리라 속으로 짚었던 왕견은 기덕이한테서 진지주집의 늙은머슴이 그 사실을 설토해서 확인이 되었다는 말을 듣자 그 즉시오 온 마을사람들을 한데모이게 하고는 제 집으로 돌려보냈던 보장을 다시오라해서 그들이 보는 앞에서 몇마디 캐묻고는 골통에다 권총알을 쏴넣고야말았다.     왕견은 그 짓을 해놓고는 손에 권총을 그냥 쥔채 부르짖었다.    《모두 잘 듣거라, 나 이 왕견은 말이다 료략질을 많이 해먹기는 했다만 지금은 보는바와 같이 반일을 하고있는 사람이다. 나는 두가지 사람한테는 인정이라는게 없다. 제 형제를 팔아먹는 놈하구 왜놈의 개로 돼버린 놈이다!》         일본은 만주에다 더많은 병력을 투입하였는바 헌병, 항공, 철도, 자동차대를 제외한 보병, 기병, 포병, 통신병만해도 80,400여명이나 토벌에 나서서 전면적인 수색전을 벌리였다. 그들을 상대하여  반일구호를 항일로 바꾸고 설립을 선포했던 동북항일련군(東北抗日聯軍)은 11개 군으로 까지 발전하여 그 인원수가 한때 30,000여명에 이르었지만 배도 훨씬넘는 정규화된 적을 당해내는 재간이 없어서 어떤 군은 몇 번의 크게 격전을 치르지도 못하고 그 우두머리가 투항하고 변질하는바람에 붕괴되였으며 다른 부대들도 무장인원이 줄기만 하여 은밀한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유격전을 계속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때 까지 뻗칠 수 있겠는지 처지가 점점 더 형영키어려울정도로 변해가고 있었다. 만주제국은 성립된 이듬해에 이라는 통고를 내린바있다. 그 내용인즉은 무릇 토비와 내통하는 자는 목을 자른다는것이였는데 괴뢰정부는 실제상 항일군마저 토비로 밀몰아버린것이다. 광대한 민중을 항일유격대와 격리시키고 련계를 끊게 만드는 지독한 책략이였다.        허나 이런 상화에서도 염왕산을 비롯한 여러 토비무리들은 그리 어렵지 않았거니와 의연히 자유로운 편이였다. 그들은 항일을 달면 넘기고 쓰면 뱉듯이 하는 판이였다. 사상바탕이 이러하니 어찌 믿을수 있으랴. 한때 요란스레 떠들며 쳐들었던 반일기치를 집어던지고 감쪽같이 자취를 감춘 산림대가 적지 않았는바 그들대부분이 옛행실을 다시시작했다. 그쯤하면 괜찮으련만 어떤무리는 지어 일본군밀정의 설강에 넘어가 저쪽편에 수편되여서 총부리를 이켠에 돌려대기까지 했다.      통고가 내려 겁을 집어먹은 진지주가 차츰 왕견을 멀리하게 되었다. 하여 항일을 나선 이 한패의 류자가 염왕산밖에서는 발을 붙이고 활동하기 차츰 더 어렵게 되었다.     이러구러 새해의 여름이 다되였건만 염왕산은 기별이 없었다.     왕견은 두덜거렸다.    《제길할거, 위용강이 나를 따돌리는게 분명해. 안그럼 왜 아직두 대갈쪽하나 내밀지 않겠나. 저는 꾹 들어앉아있으면서.》     기덕이도 언영 그런감촉이였다. 이쪽의 형편을 알려주면 산채에 들여놓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왕견보고 그렇게 하라고 시키고싶지는 않았다. 왜놈과 싸우지 않고 들어앉아있어서는 뭘하는가. 기덕이는 이런 정황이니 왕견의 독립패가 차라리 여기를 떠나 자기가 소속해있는 유격대와 합치게 하려고 마음먹었다.      그가 자기의 타산을 내놓았더니 왕견은 듣고 머리를 젓던것이 다시생각해 보니 별 방법이 없겠는지 그럼 그렇게 하자고 했다.     그들은 9월초에 저쪽의 유격부대와 련락을 취하는 한편 유격근거지를 향해 출발했다. 그것은 순리로운 려정이 아니였다. 그들은 가는 도중에 적을 만나면 싸워야했다. 그러면서 우회하다보니 예정기일이 지나서야 목적지에 당도할 수 있었다. 한데 그나마 도착하고 보니 아군은 없고 밀영도 말끔히 타버려 말이 아니였다.     기덕이는 가슴이 철렁했다.     깨여진 그릇과 여러 가지 취사도구들, 메워진 우물, 짓밟아놓은 채마밭.... 눈에 안겨오는 것이란 오로지 눈뜨고 보기괴로운 참경뿐이였다. 필경 왜놈병사들이 해놓은 짓이였데 부대와 동지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행방이 묘연했다.      부대는 철거했을것이다. 철거한 동지와 부대를 찾아야한다. 그런데 어떻게 찾는단말인가? 인가를 만날 수 없는 산중이였다. 페허로 되여버린 숙영지에 낟알이 남아있을 리 없었다. 30명넘는 인마가 어떻게 명줄을 건사한단인가? 전에 보았던 산재호를 지금은 싹 다 집단부락에다 몰아넣은 통에 지금은 하나도 찾을 수 없었다. 악착스런 적들은 그야말로 깨끗히 청향을 했던것이다. 그러면서 경제상에서 계속 봉쇄정책을 씀으로써 백성들이 항일부대에 식량을 대주지 못하게 하고 상점들에서는 천 한자, 소금 한알도 팔지 못하게 하여 총잡고 항일하는 사람들이 먹을 것 입을 것이 없어 산속에서 굶어죽고 얼어죽게 만들려고 시도했다. 이따위의 비민분리책(匪民分離策)을 고안해낸 적의 그 악랄함에 격분될 뿐이였다!     적은 또한 련합항일을 못하게 하느라 는 회유책까지 내왔다.     왕견의 독립패가 바로 삼림대에 속하는것이다. 하지만 관동군에서 저들의 100여명되는 기병을 산속에 유인하여 동태처럼 만들어버린 이 토비항일무장을 가만둘 리 만무였다. 이 기마대를 추적하고있던 일본군은 왕견이 녕안일대에 나타나자 눈에 쌍불을 켰다.     염왕산의 독립패는 기진맥진했다. 그들은 항일군이 천안두(泉眼頭)에 있다는 것을 알고 그리로 향했다. 한데 그들은 가다가 공교롭게 중도에서 추격하는 일본군과 마주쳐 격전을 하게 되었다. 과연 재수머리 없는 싸움이였다!     쌍방은 다 사상자를 많이 내면서 세시간남짓 싸우다가 날이 어두워져 지척을 분간할 수 없게 되어서야 그만뒀다.     탄알을 맞은 말들이 마치도 낡아버린 풀무같이 풀덕거리면서 도처에서 죽어갔다. 사람들도 죽고 흩어졌다. 그리하여 대오는 궤멸되였다. 완전히 괴멸되고말았다!     왕견은 기덕이를 찾았으나 찾을 수 없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수조차 없었다. 이게 무슨놈의 꼴이란말인가? 왕견은 자기가 이제는 옆에 새자 한명도 남지 않은 알자 외톨패장이 되고만것을 깨달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어떻게 된 일?!....》     굴왕신같은 어둠속에서 방향마저 가릴 수 없게 된 그는 절망 끝에 발광이 나가면서 당장 미쳐버릴것만같았다. 그러다가 그는 그래도 살아야겠다는 하나의 짓꿎은 욕망이 머릿속에 일어서서 다시금 정신차렸다.                             어두운 밤이 무서울게 뭐냐                     내한테는 구리손 철지갑있다                     칠간팔금강이 내한테 있다                     사방비추는 불룡도 내한테 있다       왕견은 어둠속을 헤매다가 퍼더버리고 앉아 주문을 외웠다.     그래도 눈앞은 칠흑같이 어둡기만했다.     이틑날 날이 밝아서야 그는 자기가 철도와 그리 멀지 않은 개활지 변두리에 있는 한 산기슭에 와 있다는 것을 알게되였다. 그 철도는 3년전에 개설하기 시작하여 전해의 년말에 이르러 완공한, 저 남쪽 수백리밖에 있는 두만강연안의 도문으로부터 줄을 그은듯 북으로 곧게 뻗어 들어와서는 중동철로의 중간에 위치한 목단강시를 꿰지나 계속 북으로 수백리 곧게 들어가 송화강가에 있는 신흥의 도시인 가목사에 닿고있는 도가선(圖佳線)이였다.        《등이 터졌다, 등이 터졌어! 무우쪽같이 오그라진 내 신세야!》     그는 자기가 죽지 않고 목숨이 붙어있는것만도 다행이라 여겨져 헤스트리처럼 발작적으로 웃고는 소리를 내질렀다.    《내가 그래두 넘어지질 않았어! 으, 하하하!.... 이게 다 부처님이 가피했기때문이 아니냐! 아아, 부대화상! 부대화상!》     자기가 죽지 않고 산것이 명조(冥助)라고 생각한 그는 부대화상이 그지없이 고마워져 입이라도 맞춰주려했다. 한데 목에 걸려있어야 할 부대화상이 없어졌다. 어느결에 줄이 끊어져서 잃어진거다.    《부대화상이 나를 떠났어? 나를 버린거야? 엉엉....》     왕견은 난생처음 목놓아 울었다. 자기는 버림받은 것 같아 주먹으로 땅을 치면서 까지 우는데 그 모양이 마치도 푸주간에서 제 친구의 피를 보고 발을 구르며 고함치는 황소같기도했다.     그렇게 실컷 울분을 풀고나서 뒤로 벌렁 누워버렸다.     잠잠하고 조용해졌다. 그는 마음을 가라앉히면서 눈앞에 장광재령의 웅위로운 모습을 떠올렸다. 남쪽으로 나가면서 구름을 떠이고 우뚝 솟은 대도정(大塗頂), 파송림(爬松林), 칠도구동산(七道勾東山), 대석두산(大石頭山), 평정산(平頂山).... 그선 산봉우리와 형제되여 위용을 보이는 염왕산ㅡ거기는 그가 정든 고향이였다!     염왕산으로 돌아가 볼가..... 못난자식! 반가와도 안할텐데 거기룬 왜 들어가. 왕견은 자기가 이젠 새자마저 다 잃어버렸기에 철저히 버림을 받게 되였다고 생각했다.     그는 신경질적으로 단호히 부르짖었다.    《안간다, 안가! 다신안간다!》     그럼 어디로 간단말인가? 팔자가 아무리 사나와 운명이 희롱을 당한다해도 나만은 그래도 승천입지라도 할것 같던 자신심이 무너지고 있었다.     매 한 마리가 머리우 저 공중에서 유유히 원을 그리고 있었다. 그것을 올려다보노라니 자기는 자유의 몸이 되리라면서 염왕산을 떠나가버리던 소춘매의 그 사랑스러운 모습이 새삼스레 눈앞에 떠올랐다. 소춘매는 떠날 때 자기는 할빈에 가면 다시 연하루에 들어갈지 어쩔지 그건 미정이라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산밖멀리까지 바래준 그를 잊지 않을테니 생각나면 자기를 찾아오라했다. 그녀는 연하루에 다시들어갔거나 아니면 시집갔을 수도 있다. 이게 몇해냐. 무슨 미치고 창빠진 년이라고 일개 보잘것 없는 토비를 기다리고있을가. 한데 그러면 나는 어디로 가야하는가? 그렇지, 소수분하(지금의 綏陽)로 가자, 거기에 삼이 있잖은가, 거기서 며칠간 쉬고는 금전판에나 가자. 이젠 그렇게 숨어서 사는 수밖에 없다.     기차고동이 울렸다. 차량 여러개를 길게 단 화물차가 남쪽의 산굽이에 나타나 북으로 달리였다. 왕견은 여기가 전에 자기가 쟁반밟으러 다닌적이 있는 녕안의 남쪽일것이라 짐작하면서 일어나 철길쪽을 향해 걸음을 놓았다.     철길을 따라서 북으로 한참가니 자그마한 정거장이 하나 나졌다. 동경성(東京城)이였다. 그 자그마한 정거장을 일본군인이 날창까지 꽂은 총을 꼬나들고 지키고 있었다. 그깟것이 두려운건 아니지만  조심은 해야했다. 붙잡히면 볼장은 다 보니까.     왕견은 역전마즌켠의 숲속에 숨어서 북으로 달리는 차를 기다렸다. 그 차를 잡아타고 목단강까지 가서 거기서 동쪽으로 가는 차를 갈아타면 삼촌이 사는 소수분하에 닫게되는것이다. 한데 차가 드믈게 다니거니와 웬 일인지 정거장을 지나가기만 하고 서주지를 않았다. 그러다 해가 서천에 떨어질 무렵에야 마침내 북으로 들어가는 화물차 하나가 정거했다.     왕견은 일본병이 모르게 얼른 뛰여올랐다.     그가 오른 무개차바곤에는 침목과 기와가 반반씩 실려있었는데 녕안을 지나 목단강 역에서 멈출줄을 알았았는데 멈추지 않고 계속 북으로 달리였다. 하여 왕견은 내릴 수 없었다. 차는 속력을 내여 질주했고 뛰여내리자니 다리각이 부러질것 같았다.         《에라 모르겠다.》     왕견은 도루주저앉아 달리는 차에 몸을 맡겨버렸다. 가는데까지 가고 볼 판이라고 배짱을 세우려다가 화남에 사는 천지주가 문득 생각나 그는 옳지 하고 손벽을 짝 쳤다. 민호가 전에 면목을 익혀놓은 그가 반일사상을 가졋으니 찾아가면 쫓지는 않을상싶었었던것이다.      그 화물차는 목단강과 가목사의 중간역인 벌리역에서 멈추었다. 증기차머리는 자기가 끌고 오던 차량들을 떼어놓고 회전레루에 올라 방향을 바꾸더니 거기에 이미 정거해있던 다른 차량들을 달고 남쪽으로 다시달리였다.       천지주가 있는 화남에 가자면 아직 북으로 더 들어가야했다. 왕견은 부득불 그곳까지 걸어가는 수 밖에 없었다.     화남에 당도하고 보니 이틑날 오전 9시경이였다. 그는 곧추 천지주집을 찾아가 대문을 두드렸다. 그 집의 청지기가 나왔다. 누군가 묻길래 이름을 대지 않고 염왕산 오군자 사람이라하면 알것이니 그렇게 주인한테 전해라했다. 그랬더니 한식경이 지나도록 천지주는 대갈쪽도 내밀지 않았다. 그제야 왕견은 이미 통보가 내린줄을 알면서도 그것은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찾아온 자기야말로 소보다 더 미런하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내가 왜서 그걸 망각했던가, 넋을 잃어 이지경이 된 자기가 원망스러웠다.     천지주는 집에 있으련만 대하지 않고 경계함이 분명했다. 이제는 그래 발길을 돌려야한단말인가? 가면 어디로 간단말인가? 왕견은 문뜩 그의 딸 천옥령이 생각났다. 그녀는 적극적인 반일부녀회의 간부였는데 그도 제 애비처럼 마음이 돌아섰을가 하면서 갑을간 만나나 보자고 발걸음을 놓았다. 한때 오군자가 자리잡고 꽤 오래머물러있었기에 그녀의 집이 어디에 있다는것도 잘알고있는 왕견이였다.     살수가 나질려니 그랬는지 천옥령이 마침 집에 있었다.    《누구신가요?》     그녀는 느닷없이 나타난 왕견을 보자 몹시 놀라는 한편 경계하고 있었다.    《마님, 나를 알만하겠지. 난 온인하구 같이 와 있었던...》    《아, 그렇군요! 건데 왜 또 왔나요?》     천옥령은 당황한 빛을 감추지 못했다.     왕견이 입을 다시열었다.     《마님 날 믿으시우. 나쁜맘먹구 온게 아니오. 난 젊은마님이 사상이 진보하구 하도 맘좋길래 찾아왔지요. 내 부대가 왜병하구 맞붙어서 싸우다나니 그만.... 》    《쉿!》     천옥령은 손가락을 제 입에 급히 대여 사나이의 말문을 막아놓고는 밖에 달려나가 대문을 얼른 잡가놓고 들어왔다.     사나이의 어지럽고 너부죽한 얼굴에는 초조와 불안과 애원이 엉겨붙어 가련하고 불쌍해보였다.    《앉아요. 어떻게 된 일인가요? 정말 뜻밖이네요! 우리 집 사람이 경찰이얘요. 놀랍지요?... 그래요 경찰이란말이얘요. 그렇다구 겁낼건 없어요. 보다십히 집에 없잖아요. 그래서 어떻다는건가요? 말이 통 귀에 들어오지를 않네요.》    《그럴거야 몹시 놀랜 가슴이 돼놔서.》    《절 믿고 오셨으니 이렇게 하자요. 내 말을 들어야해요. 지금이 어느땐가요. 몸에 철붙이같은건 갖고있지 않나요?》    《없습넨다. 보시오, 청자한자루도 건사못한 알몸입니다요.》     왕견은 그녀의 앞에서 되도록 차근하게 자기가 데리고있던 독립패가 당한 불행을 쭉 말했다. 거짓없이 엮어진 전투담은 반일감정이 죽지 않고 아직도 가슴속에 남아있었던 녀인의 심금을 울려놓으면서 하츰 련민의 정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했다. 천옥령은 그를 구해주기로 맘먹었다.       《우리 집 사람은 맘놔요. 내가 있잖은가요.》    《그러니 이 호두정만(왕씨)이는 발이 안빠질거란 말이지유!》    《내가 남편이 거기를 붙잡지 못하게 할텝니다.》     왕견은 과연기뻤다.     천옥령은 세수물을 떠놓았다.     그리고나서는 돈지갑을 찾았다.    《엣어요. 이 돈을 쓰세요.》     그녀는 왕견이 세수를 다하자 돈을 얼마가량주면서 그보고 멀리가지 말고 자기집에서 약 20보쯤 가까이에 있는 작은 리발관에 가서 우선 머리부터 깎으라했다.     왕견은 옥령이 시키는대로했다.     그녀는 왕견이 리발을 다 하자 그길로 데리고 려관에 가 자리를 잡아주었다. 려관주인이 그녀와는 외가친척이 되었다.      저녁때 남편이 퇴근하여 집에 오자 천옥령은 이 일을 그한테 말했다. 남편은 듣고서 깜짝 놀랬다. 하지만 그는 안해가 이미 써놓은 죽이라 하는수 없이 그녀의 주장에 수긍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호적경찰이였는데 경장몰래 왕견에게 신분증을 해주었다.     왕견은 그걸 가지고 석금강에 가 금점꾼노릇을 하기시작햇다. ...............................................................................................................................   *  편아를 고르다ㅡ돈을 나누어 주다.   *  방표ㅡ인질로 붇잡다.  *마달산ㅡ길을 잃다. ...............................................................................................................................
148    <<관동의 밤>> 제2부(30) 댓글:  조회:2464  추천:0  2015-02-04
                              30               왕견이 독립패의 임무는 염왕산 서남으로 부터 서북에 일르기까지 변두리에 있는, 아직은 집단부락에 들어가지 않은 자그마한 마을들이 왜놈의 편에 붙지 않게끔 조치를 대는것이였다. 그 조치라는것이 바로 보동이나 갑장이 한간으로 되었는가 되지 않았는를 알아보고 한간이면 잡아 죽여버리는것이였다.     만주국은 만주국대로 우리는 우리대로 청향(淸鄕)하고 유지(維持)한다는 것이 염왕산의 구호였다.     왕견은 자기까지 포함하여 40명밖에 안되는 독립패의 인마를 거느리고 근 한달가량 눌러있었던 맹가강을 떠났다. 북쪽 50여리 지점에 위군 1개반이 진주한것을 알아낸거다. 위군이 무엇 때문에 보잘것없는 마을로 오는걸가 많으면 몰라도 한 개 반이 와서 대체 무엇을 하자는걸가고 이리생각 저리생각한 끝에 그는 그자들이 아마도 염왕산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찾자고 그럴거라고 속으로 짚었다. 사실 그렇다면 그건 에누리없이 정찰을 다니는 적일것이다.     적이 그켠에서 설사 염왕산입구를 찾아내다해도 감히 들어오지는 못할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어쨌든 방임해 둘 일은 아니니 멀리 쫓아버리든지 아니면 소멸해버리리라고 왕견은 맘먹었다.     왕견이 말잔등에서 근들거리면서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그려보고있는데 양화가 다가붙이면서 그에게 말을 시키였다.    《왕패장!》    《왜 그러니?》     왕견은 그를 돌아다보며 귀찮아했다.    《내 한가지 물어보랍니까.》    《뭘말이냐?》    《듣자니 왕패장은 오군자때 차챈더노릇을 했다는데 보다싶히 지금은 패장노릇하니 어떤가요?》    《나보고 감상을 말하라는거냐?》    《급을 내리먹었으니 분하잖은가유.》    《자식! 별소리 다한다. 분할게 뭐냐, 난좋다.》    《건 왜서요?》    《난 이 독립패의 두령이야.》     왕견은 독립(獨立)이란 이름에 자호를 가지고있었다. 아무튼 이전만 덜위험하거니와 자유를 부릴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였다.      《왕패장!》    《왜그러니?》    《한가지 더 알아볼가요.》    《알아볼게 뭐냐?》    《저...오인하고 위아가씨는 잔치도 안하구서....》    《건데 어쨌다는거냐?》    《자꾸붙는다는데....》    《남이야 붙건 말건 네 상건할게 뭐야.》    《상관인게 아니라....》    《그런거나 캐구있어? 돼먹지 못한녀석! 저리 썩 물러가!》     왕견은 성을 벌컥내면서 채찍으로 그자의 말을 답새겼다.     말이 놀래여 화닥닥 달아났다.     위만군은 인마가 나타나자 마을을 빠져 달아났다. 한데 웬 일인지 총소리 한번 나지 않아 놀라지 않았으련만 마을안에는 애들과 짐승만 보일뿐 어른은 보이지 않았다.       《이눔의데가 왜 이래?》     왕견은 통신원새자를 불렀다. 언젠가 민호가 산채의 서쪽골에서 본 암팡지게 생긴 그자였다.    《네가 저기 저 집에 들어가봐라. 어른이 있는지 없는지. 있으면 얼른 내앞테 데리고 오너라.》    《무슨 어른을? 갑장? 패장? 보동은 없을게구.》        《아무든 다 돼.》     암팡진 새자가 그 집으로 달려가더니 과연 중년사나이 하나를 찾아내여 데리고 왔다.     왕견은 그 사람보고 물었다.    《뭘해먹는 사람이요?》    《농사질을 해먹지요.》    《내 묻는건 그게 아니구 무슨 노릇을 하나 그거야.》     사나이는 주름투성이 얼굴에 다소 겁기를 띤채 대방의 감사나운 몰골을 보다가 시선을 어름어름 피하면서 무겁게 입을 열었다.    《갑장질을 합네다.》    《언제부터?》    《가즘니다. 반년도 안됩니다.》    《만주군이 여기루 온지 며칠되는가?》    《오늘까지 엿새.》    《뭘하러왔다는가?》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알려주지 않는데.》    《그럴 수 맞아. 그걸 알자는 내가 어리석지. 그건 그렇고 그래 우리가 왔는데 어쩔참이요. 말하자면....》    《경찰서에서 대단히 되게 굽니다. 패에서 누가 하나 죄지을 일을 해두 그 패에 든 열호가 련좌금이라 해서 이원각수씩 내야합니다. 미루시 검거하면야 그게 감면되구요.》     그가 말하는 죄지을 일이라는것인즉 반일군을 도와주거나 감싸주는것을 가리켰다. 죄없는 백성들이 이같이 앞뒤로 고생이였다.    《됐어 그만지껄이구 가. 가란말이야. 가서 일러바쳐, 우리가 왔다구.》    《저 국군은 알고갔으니 내가 보골안해두되지요.》    《그러니 일러바치지는 않겠다는건가. 그럼 좋아, 점심때가 됐는데 구복을 달리게 먹을거나 내놔. 마흔명이야.》     갑장은 그러리라면서 물러갔다.     한데 웬 일인지 그러고 가서는 오래도록 감감 무소식이였다.     왕건이 새자를 그집에 다시보내여 알아보니 갑장이 없어졌다. 자기도 반배를 겨우불리며 살아가는 주제에 이들에게 밥을 해먹였다간 어떤 화가 떨어질지 몰라 아예 솔가도주를 해버린것이다.    《빌어먹을 것이!》     왕견은 갑장이 달아나도 집은 가지고 달아나지 않았으니 밸김에 불을 질러놓고 가버리려했다. 그랬다가 가보니 그 집의 돼지우리에 50여근이 나갈 돼지 한 마리가 있는지라 맘을 고쳐먹었다.     《잘됐다, 불은 놓지 말고 저것이나 잡아 튀를 하거라.》     류자들은 얼싸좋다고 패장의 령이 떨어지기 바쁘게 돼지잡고 닭잡고 쌀뒤주를 뒤져 밥을 해서 먹고는 그 마을을 떠나갔다.          그들이 이번에 간 마을은 거기서 북쪽으로 곧추 50여리 더 들어가 있는 진가툰이란 마을이였다. 그 마을역시 현성과 거리가 먼 편벽한 곳이여서 그런지 만주군과 경찰의 발길이 아직은 그리닿지 않았거니와 집단부락으로도 건설되지 않았다. 보갑제가 나오면서 각곳에 자위단이 나졌지만 이 마을은 아직 자위단도 없었다.     왕견은 거기서 진득히 눌러있으면서 겨울을 지낼 생각이였다.      오래전에 그가 자주다녀 사이가 좋았던 마을의 갑부 진지주는 그들을 군말없이 받아주었다. 염왕산과의 옛정도 정이려니와 관방의 처벌이 무서워 이들을 딴눈으로 보고 랭대했다가는 일본놈들한테서 아직받아보지 못한 벌을 이네들한테서 받을것 같아 두려웠던것이다. 토비가 악이 나면 로소삼대를 몰살하려든다는것을 잘아는 그였다. 하길래 그는 있는 힘껏 마음을 맞춰주려했다.       왕견은 천지주집이 크긴하나 많은 류자를 다 용납할 수는 없어서 밥만 한데서 먹고 잠자리는 몇곳에 갈라놓는 수밖에 없었다.     이 마을의 보동은 천지주가 아니고 다른사람이였다. 여기에 온지 며칠안되여서다. 저녁켠인데 그 보동이 왕견을 찾아와 당신들은 여기로 오기전에 어디에 있었댔느냐 물어보는것이였다.    《그건 왜 묻는거요?》    《좋잖은 소문이 돌아서 그럽니다.》    《좋잖은 소문이라니, 어떤건데? 난 왜 못들었을가.》     그들이 오면서 저지른 그 갑장네 집을 털어먹은 일과 같은것이 발생할까봐 미리 방비하는것 같아서 그는 모르쇠를 놨다.    《반일을 한다면야 옳은일이라며 환영하지만 로략질을 하면야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욕하지요. 내가 듣자니 어떤 항일군은.....》     왕견이 그의 말을 중둥잘랐다.    《어떤 항일군은 어떻다는건가. 우린 올때 앞마을에 들려 갑장집을 탕쳐먹었지. 왜 그게 나쁜짓이였던가? 자기편군대가 왔으면야 말루만 반갑다말구 곱다랗게 받다줘야지 안그렇소? 건데두 갑장녀석이 처신을 어떻게 했는갈 보란말이요. 점심을 해먹이겠다 대답해놓구서는 도망쳤단말이요. 세상에 그런 놈이 어디있어. 표리가 부동한거지. 믿지 못할 놈이였어. 구복은 달려야지 그래서 그 집의 돼지를 잡아먹은건데 뭐가 잘못됐는가?》    네가 주지 않으면 빼앗아 먹는다는 강포한 자의 당당한 리론이였다. 보동은 말을 더 했다가는 자기도 그런꼴이 되고말것 같아서 그만 물러가고말았다.     민호가 항상 강조했듯이 민심은 절대 잃지 말아야했다. 왕견은 이 점을 알고있기에 새자들앞에서 략탈을 절대 엄금한다고 강조했거니와 누가만약 그런 짓을 하면 용서치 않으리라했다.     그들이 진가툰에 자리잡은지 근 한달이 되여오는 어느날이다. 정오무렵인데 한 새자가 달려들어오면서 웬 군복입은 사람들이 왕패장을 만날일이 있어서 찾아왔다는데 어떻게 하라는가했다.    《군복입은 사람이라? 그게 그럼 만주국군아니여? 그놈들이 왜 날 찾는대?》     왕견은 대뜸 적이 자기를 투항시키자고 설강하러 온줄로 짐작하고는 안색이 좋지 않아 벗티고있다가 아니다 누가왔건간에 아무튼 만나줘야하겠다 찾아왔으니 그쪽은 손님이고 나는 주인인 셈인데 례모야 차려야지 하면서 대체 누군데 들여보내라했다.     반양머리에 눈썹이 짙고 단단하게 생긴 사나이가 경위원 둘을 데리고 나타났다. 회색군복입고 권총까지 버젓이 찬 그는 위용강을  수편하려고 염왕산에 들어갔던 최기덕이였다.     《왕견패장이지요? 나는 동북반일련합군의 대표인데 한가지 요긴하게 상의 할 문제가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자, 이건....》     최기덕은 이번에도 위용강에게 보이였던 그 큰 도장박힌 종이장을 꺼내놓았다.     왕견은 염소 개울물에 제 얼굴을 비춰보듯이 머리를 기웃거리며 보다가 되돌려주면서 한마디 심드렁하게 내뱉었다.    《이게 뭐여, 나는 이런건 몰라!》    《왕패장이 이걸 모를수 있지만 정민호야 알겠지요?》    《뭐라! 이제뭐랬어?》     왕견은 초면의 사람이 정민호의 이름을 대니 적이 놀래는 얼굴로 그를 다시한번 여겨보았다.    《나는 정민호의 친구입니다. 염왕산에 들어가 그를 만나보고 오는 길입니다. 륙년만이지요.》     왕견은 그의 말을 듣고보니 언젠가 민호가 제 친구가 하나 있는데 여차여차해서 갈라진 후로는 다시만나보지 못해 서운해 하던 일이 생각나는지라 얼른 일어나 손을 잡아주면서 반가와했다.    《내가 실수를 했구만, 귀객인걸 모르구.》    《실수아닙니다, 제가 소개를 늦게해서 그렇지요.》     정민호는 이러면서 자기가 여기로 오게 된 리유룰 말했다.     반일전에 나선 왕견이 외선임무를 맡고나와서 정처도 없어 때로는 풍찬로숙을 하면서까지 떠돌테니 고생인들 얼마나 많겠느냐 그것만으로도 과연 장한 일을 해내고있다고 칭찬하고나서 적은 날이갈 수록 반일군토벌에 혈안이 되어갖고 날뛰고있다는 것, 이러한  상황에서 동북반일련합군이 정식으로 창건된것이니 모든 반일력량은 굳게 뭉쳐야 할게 아닌가고 그는 말했다.    《그렇구말구, 뭉쳐서 싸워야지!》    왕견은 때로는 머리를 주억거리였다. 그 말이 틀리지 않는다면서 진지하게 들어주었다. 허나 그러면서도 대방이 자기가 휘동하는 인마를 수편을 하려는 의도를 갖고 온게 아닐가 생각하면서 정신을 도사리기도했다. 그 절대 수편되지는 않으려는 그였다.     최기덕이 염왕산에 가자 민호는 다음과 같이 알려줬던것이다.    《말이 외선임무지 기실은 그런게 아니야. 이 염왕산이 천연적요새나 다름없는데 바깥을 지켜서는 뭘해. 그 녀석들을 내가 주장해서 수편하고 보니 잘못했어. 생각던거완 영 다르게 말이 아니란말다. 내 손으로도 두녀석이나 없애치웠지....솔직히 말해서 왕견의 그 독립패는 고생을 콱해봐야 나아지리라해서 내가 보낸거야. 잘만 교양하고 이끌어주면 반일은 할 수 있을것 같으니 한번 가봐.》     토비가 다르긴 달랐다. 최기덕은 그늘밑에 어빡자빡 제멋대로 자빠져서 걸찍한 진담류설이나 늘여놓고 있는 류자들의 개잘량같은 꼴을 자기가 직접대하고 보니 기가 찼다. 똥통을 물통으로 만들어도 냄새는 그냥 나는거다, 내가 저것들을 과연 마음과 같이 개조시킬 수 있을가? 손아귀가 어지간히 세지 않고는 안되겠구나. 그의 머릿속에서는 이런 생각이 꼬리물고 고패쳤다.     그렇다고 먹고 온 마음을 버릴수는 없는 그였다.     왕견이 자기는 어디까지나 반일을 할것이다, 하지만 그 어떠한  반일부대에든 대들어가지는 않으리라면서 네가 나를 수편하러 왔으면 곱게 돌아가라했다. 최기덕은 수편할수 없음이 번연한지라 그럼 서로 련락이라도 하고 때와 경우를 봐서 련합작전같은걸 하는데는 동의하는가 물었더니 왕견은 그건 얼마든지 되리라했다.    《감사합니다. 그만큼이라도 우릴믿고 나서니 고맙습니다.》     최기덕은 사의를 표시하고나서 한가지 충고를 했다.    《출전을 안할시 어떻게 보냅니까, 그저 무료하게 보내는것 보다는 하다못해 둘러치기 메치기라도 련습하는게 좋잖겠급니까. 내 의견은 이러합니다.》    《거 좋은 건의를 했소. 그러잖아 나도 생각이 그리루 돌아가구있었는데.》     왕견은 기덕의 충고를 흔연히 받아들이면서 자기가 교련질을 할테니 보라했다.     그게 빈말이 아니냐했더니 과연 오후부터 류자들을 집합시켜놓고는 그들에게 악 악 소리지르면서 발로 차기 주먹으로 치기를 배워주기 시작했는데 그의 말로는 그것이 소림무술이라했다.     웃통을 벗어재낀 왕견은 몸이 과연 실팍했는데 그가 움직일 때마다 끈을 달아 목에다 건 부대화상이 발광하듯 요동쳤다.    《왕패장은 무예술이 과연 이만저만이 아니구만요! 건데 그건 뭡니까. 목에다 건것이?》     기덕이가 땀으로 맥질한 얼굴을 수건으로 닦고있는 그를 향해 걸어가며 물었다.    《이걸 처음보는가유, 오인한테도 하나있을텐데.》    《난 보지못했습니다.》    《부대화상이지유. 이걸 걸어야 진정한 류자라구 할 수 있지.》     왕견은 자호감이 흐르는 목소리로 알려주었다.     그럴만도하겠다. 독립패의 새자들은 다가 그의 목에 걸려있는 부대화상을 부러워하고 있었다.       최덕이 여기에 온지 약 보름만에 진가툰북쪽 이도하자(二道河子)에 삼림경찰대가 나타났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그 삼림경찰대라는것은 두엄무지에 똥버슷 자라듯이 이해부터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지경 왁작 생겨나기 시작하는데 그것이 삼림경비를 하자는게 아니라 실은 일본군과 배합해서 반일군을 토벌하자는것이였다.    《그걸 없새버려야지. 않그렇습니까, 왕패장?》     기덕의 생각이 이러했거니와 왕견도 마찬가지였다.    《기계는 부리지 않으면 녹쓸고 사람은 움직이지 않으면 병신이 되는거야. 나가보자!》     그는 독립패의 인마를 곧 출동하려고 집합시켰다.    《왕패장, 우리 거기루 가면 먹을알이 있는가요?》     한 새자가 이도하자로 간다니 따지듯 물어보는 말이였다.     왕견은 대답을 인차못하고 난색만 지었다. 그것은 략탈을 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것이여서 먹을알이 없다거나 그런건 생각말라고 한다면 새자들은 행동이 시들해질것이고 그렇다 하여 들어주자니 규률을 위반하게되는것이였다.     이런 처지를 당하자 최기덕의 머릿속에 한가지 기발한 생각이 피끗 떠올랐다. 벌목장이니 목재를 팔것이요 그러면야 금고가 있을게 아닌가. 그걸 털면 문제는 해결될 것같아서 그가 말했다.    《형제들은 걱정마시오. 아무렴 빈손으로 돌아올가. 싸우기만 잘하시오. 그런다면 상은 있을거요.》    《편아를 고른단말이지!》(주)    《와!....》     새자들은 마치도 굿들은 무당모양으로 기뻐했다.     최기덕은 말해놓고 보니 자칫 불량한 일이 생길것 같기도해서 한마디 그루밖아 강조했다.    《모두 기억하라. 내 말은 민재를 털라는게 아니다. 누가 만일 그 짓을 한다면 용서치 않을것이다.》     대오는 곧 출발했다.     그쪽도 머리를 달고있는 인간이니 멍청하지 않았다. 나다니는 정탐이 있고 끄나블이 있어서 진가툰에서 수십기의 인마가 자기들을 치러가는 기미를 알고는 20여명 삼림경찰대가 지레달아나 이쪽은 허탕치고말았다.     먼길을 급행하다보니 말도 사람도 지쳤다. 그들은 이도하자에서 며칠간 묵으면서 휴식하고 진가툰으로 돌아가기로 작정했다.     한편 최기덕은 지금까지 되어 온 상황을 보고하기 위해 왕견의 곁을 임시떠나게 되었다. 그도 염왕산토비를 수편하려고 나섰다가 태평진에서 목숨을 잃고만 민호의 백형과 꼭같은 경로를 걷고있었다.  한국독립군에 있다가 그것이 붕괴되니 관내로 나가지 않고 남아서 산속에 들어가 어느 한 자그마한 반일부대에 입대하여 일본군과 싸웟고 지금은 동북반일련합군의 대렬에 들어 염왕산토비를 수편할 임무를 맡고 나다니는것이다.       바라던것이 일장의 백일몽으로 되고만지라 새자들은 최기덕이 경위원 둘을 데리고 가버리자 뒷공론이 많았다.    《씨팔거 좋다말았네.》    《우린 편아한잎도 못갖고 맥만뺐지 뭐야.》    《이러니 저러니 해두 우린 속힌거다.》    《믿지못할 사람이였어.》    《그자식 말한대로 안하구 갔지 뭐야.》     그저 이멋으로는 돌아가려는 그들이 아니였다. 양화와 공파가 고생스레 여기까지 와같고 빈손에 돌아가다니 어디 될 말이냐며 봉창을 하자고 선줄을 끌면서 어쨌으면 좋을지 몰라하는 왕견에게 다가와 부채질했다.       《왕패장님은 선심을 써야지요.》    《모두 떠드는걸 보란말입니다. 안그랬다가는 큰일납니다.》    《삼림경찰대가 돈꿰까지 가지고 달아났다니 리유는 되는건데 그렇다해서 그래 편아를 다른 방법으루는 고르지 못할까?》    《알골을 쓰잖아도 방법이야 있지.》     그 둘은 왕견의 앞에서 이렇게 찧고 까불면서 하다못해 방표(주)라도 해갖고 돌아가자고 닥달을 놓기까지 했다.     왕견이 처음에는 무슨 소리를 하느냐며 눈알을 굴리였다. 그리고나서 다시 생각해 보니 강포무지한 이 녀석들이 저희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돼지껍지를 바를것 같아서 속이 떨렸다. 게다가 절기가 바뀌느라 그런지 북방의 삼림지대는 기온이 떨어져 벌써부터 서늘해지고있건만 아직까지도 산채에서는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너희들은 올겨울을 밖에서 지내라고 내쳐버릴 예산인지 이젠 그만돌고 돌아오라는 말이 없는거다. 진지주가 40명도 넘는 사람을 먹여주고 재워주는것만도 부담이 과중한데 거기다가 어찌 겨울철옷까지 지어달라겠는가, 이모저모로 생각한 끝에 왕견은 하는 수 없이 그럼 그리해보자고 대답했다.          그들은 이도하자를 떠나면서 과연 20명이나 인질로 잡아갔다. 한데 살펴보면 그들은 다가 목재판이 아니면 목재가공소에서 막벌이를 해먹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였다. 한데도 그들은 그래도 돈이 있겠지 하면서 그 짓을 하는 판이였다.     왕견은 이도하자근처에 있는 한 마을에 들어가 얼마간 눌러있을 잡도리를 하면서 양화와 공파를 각각 양즈방과 화서즈로 임명하여 인질을 다루도록했다.     첫날이다. 날이 어두워지자 양화와 공파는 마당에 불을 피워놓고 잡아온 인질들을 둘러앉게 하고는 수건을 뭉쳐 공같이 둥글게 만들어 그것을 돌리게 했다. 돌리던 인질이 너무 피로하고 곤해서 깜박 잠든 사이 돌던 공이 멈추면 채찍으로 때렸다.     인질들은 공을 돌리지 않고 반항했다. 그들가운데는 홍표(녀인질)도 3명이나 있었는데 그녀들이 낮은 목소리로 노래불렀다.                     찬바람 불어와 몸은 떨리고                     가난뱅이 신세 쓸쓸하구나                     날따라 고생은 많아지거니                     누구의 탓인지 그대는 아느냐                       사변을 일으킨 원쑤 일본놈                     그놈들이 원한을 크게 하였지                     천추에 용납못할 일제왜놈을                     총들고 싸워서 모조리 없새자.       두절로 되어진 노래를 이렇게 부른 다음에는 홍표하나가 가사를 고쳐가면서 다음과 같이 불렀다.                      한민족 한겨레 형제자매건만                      어이하여 이리도 혹독하느냐                      말하라 너의 죄를 네가 알테니                      누구를 위하여 날치고 있느냐                        티끌이 모여서 태산이 되듯이                      죄악은 모여서 바다로 되거니                      가슴에 손얹고 생각해보거라                      일본놈과 다른것 무엇인가를.      《가만둬라!》     양화가 때리자고 채찍드는것을 보자 왕견이 소리쳐서 제지시켰다. 그도 노래에 귀를 귀우렸던것이다. 홍표가 분명 자기를 놓고 노래를 불른것 같아 량심상 가책되면서 가슴이 결리였던것이다.    《모두 풀어놓거라!》     그는 명령을 내렸다.    《아니 어쨌다구서? 난 그리고싶잖은데.》     양파가 오만상을 찌푸리면서 반대했다.    《왕패장! 그런다면 우린 헛고생아닌가요.》     공파역시 반대하고 나섰다.     왕견은 제 주장을 단호히 세웠다.    《잔말말고 모두 풀어놓으란말이다. 너히들은 그래 천벌이 무섭지 않느냐?》     그의 커다란 두 눈알이 불덩이되여 구으르는것 같았다.     양화도 공파도 그리고 다른새자들도 모두 감히 엇서지 못했다. 그들이 억척스러운 토비의 패악함을 알거니와 그를 여기서 죽여버고 도망쳐 각기 흩어진다해도 보복심이 강한 염왕산이 자기는 물론 가족까지도 가만둘리 없느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왕견은 인질을 다 제집에 돌려보내놓고나서 자기도 무리를 거느리고 진가툰으로 돌아왔다.          나뭇잎들이 단풍들더니 어느덧 한 잎 두 잎 가지에서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염왕산에서는 의연히 돌아오라는 지시가 없었다. 네가 몰라보면 나는 나대로 살아갈판이지 뭘 볼게있는가! 왕견은 배심이 나서 명실공히 독립이 되려고 작심힜다.     그가 이러고 있을 때 최기덕이 다시돌아왔다. 위용강의 눈에 나서 십중팔구는 염왕산과 거리가 멀어지게 되리라는것을 짐작하고는 이 한무리의 토비를 포섭해 반일을 계속하게 하자는것이였다.     한데 그같이 훌륭한 포부를 갖고왔음에도 그의 눈앞에 보이는 현실은 이전만 더 심한 실망을 안겨주고 있었다. 그가 왕견을 앉혀놓고 당전의 형세가 점점 더 준엄해지고있다고 알려주고나서 관동의 3천만백성이 살아 갈 길은 오직하나ㅡ반일항전을 계속하는것이라 알려주면서 일본군을 몰아내고 괴뢰만주국을 뒤엎어야 한다 말하고 있을 때 밖에서 새자들이 떠들어대는데 그 꼴이 말이아니였다. 그자들은 쌍소리시합을 하다가 마침 발정한 개 두 마리 나타나 흘레를 하니 열이 올라서 왁작했던것이다.    《붙었니?》    《붙었어.》    《저놈이 잘두 찔러댄다.》    《하하, 저놈이....》    《저런! 빼지 못하네.》    《아캐가 찝었서. 단단히 찝었어.》    《아니다. 수컷이 변자가 불었다. 땅땅 불었다.》    《네것도 불어나잖아 쥐는걸 보니.》    《야 이 발정한 수캐야!》    《하하하....》     뜨믈같이 혼탕해지고 곰팡이 낀 머리를 어떻게 하면 씻을가?....     기덕은 한숨짓고나서 자기가 없은 사이에 어떻게 지냈는가 물으니 왕건은 숨기지 않고 그대로 알려주었다. 기덕은 속으로 단단한 박달나무도 좀이 먹을라니 넌들 온전하랴 하면서 그를 충둥질한 양화와 공파를 불렀다.    《대표께서 우릴 왜 불렀습니까?》     공파가 자못 의아해 하였다.    《이번 출장에 먹을알이 없어서 불만이 있겠지?》     기덕이 그하고 묻는데 양화가 입정을 먼저놀린다.    《불만이라니, 없습니다. 없지요. 우린 왕패장말도 잘듣고 대표말도 자듣겠습니다. 응당 그래얍지요. 안그렇습니까, 응당!》     공파가 그의 말을 더 곱게 장식했다.    《우린 왕패장도 최대표도 높이 받들겠습니다. 응당 그래얍지요. 안그렇습니까, 응당!》     그리고나서 둘은 돌아서서는 다른 곡을 불렀다.    《저깟것들 우릴 어떻게 해. 자유를 부려야한다, 자유를!》    《우린 개보다 못한 신세야. 차라리 따로 기국하고말자!》     말은 이렇게 해도 아직은 제 용망 제멋대로 할 형편이 못된 그들이였다. 그러니 겉으로라도 복종하는 양 해야했다....     기덕은 두 경위원과 함께 마을사람들한테도 반만항일선전을 적극적으로 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부녀회를 조직하기에 이르었다. 그것이 마을부녀들의 친목을 위한것이라 하지만 실제상에는 반일외각조직이였다.     추위가 별스레 급작스레 들이닥치고 있었다. 산채에서 급양이 없으리라는것을 알아차린 왕견은 기덕이와 상의하여 기와가마 하나를 마스기로 작정했다. 그들이 점찍은 기와가마는 친일부호가 아니였다. 진가툰과 백여리상거한 집단부락에 설립된 대흥고분유한공사(大興股分有限公司) 산하의 한 영업소였다.     어느날 그들은 그 마을을 돌연습격하여 영업소의 돈궤를 안아왔다. 그래서 겨울나이 동복과 모자와 신발을 해결했거니와 이불까지도 만들 수 있게되었다. 이 일을 마을의 부녀회에서 맡아했다.     이불 두채가 솜은 있는데 거죽이 모자라 채 꾸미지 못한것을 왕견이 진지주한테서 돈을 빌려 내놓으면서 그들더러 마저꾸며달라했는데 그 이불 두채가  양화와 곡파가 덮을것이였다. 새이불이 만들어지는 족족 새자들이 나누어 가졌는데 그들이 너그럽게도 자진 마지막에 가져도 된다해서 그리된것이다.     그 둘은 왕건과 기덕이가 주숙하고있는 진지주집과 거리가 뜬 한 홀아비집에 들어있었다. 홀아비가 겨울이 돌아오니 끼니끓이기가 싫었던지 조카집으로 옮겨가 거접했다. 그래서 그 집에 새자만 셋이 들어있게 되었다. 이런데로 어느날 어슬녘에 성이 초씨인 부녀가 다 꾸며진 이불을 안고갔다.     마침 그때 자리를 옮겨 온 새자가 오줌을 잘못깔려 바지가랭이를 적셔갖고 들어 온 꼴을 보고 너도 개하고 붙어서 헐레를 하고 온거냐며 놀려주고있는 판이였다. 녀인이 이불을 갖고 문득 들어가니 웃고 떠들던 양화와 공파는 어마뚝해서 입을 다물었다.    《이불이 늦게 꾸면져 미안해요.》     초씨녀인은 갖고 온 이불을 주면서 말했다. 마음씨 고운 녀인이였다. 그녀는 왔던김에 이들의 더러워진 속옷을 빨래라도 해주고 가려했다. 그런데 어찌알았으랴, 뜻밖의 화를 입을줄이야.     양화가 공파에게 손가락으로 제 코구멍을 쑤셔보이자 공파가 슬며시 일어나 녀인의 손목을 슬며시 잡았다. 그리고는 헤식은 웃음을 흘려가면서 억벌로 끌었다.    《아주머니, 헤헤헤.....여기루 올라옵소. 우리하구 좀 놀다갑소.》    《놔요! 이걸 놔요! 왜 이래요?》     초씨녀인은 이자의 행동거지가 사위스러워 뿌리치고 가려했지만 때는 이미늦었다. 다른 하나의 억센 손이 입을 막아 소리를 지르지 못하게 하면서 옷을 벗겼던거다. 욕정이 발작한 두 녀석은 그녀를 소제해준다면서 란폭하게 유린했다. 그리고나서 너도 하거라 말을 듣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해서 이쪽 새자도 달려들게 만들었다.      한편 초씨년인네 집에서는 초저녁에 나간 사람이 늦도록 돌아오지 않으니 황황해났다.     초씨녀인의 시누이가 왕견을 찾아왔다.    《이불 두채 다했어요. 그래 갖고나간 사람이 아직도 안와요.》    《찾아봤소?》    《찾잖구요. 왜 안찾았겠어요. 가볼만한 집은 다 가봤는데요.》     초씨녀인의 남편도 안해를 찾다가 못찾으니 왕견을 찾아왔다.    《우리 애어민 밤마실을 다니지 않소. 귀신한테 잡힌것 같소.》     왕견은 그들의 고소를 받고나서 곧추 양화와 공파가 들어있는 집으로 갔다.    《그 아주머니말입니까, 초저녁에 이불을 갖다주구는 제꺽 돌아갔는데 어디루 갔을가?....》     물어보는 말에 세새자는 대답이 똑 같았다.     온 마을이 소연해졌다. 마을 사람들은 이틑날에야 마을밖 토피를 치느라 흙을 파서 생긴 웅덩이에서 목을 죄여 죽인 초씨녀인의 시체를 찾아냈다.     분노한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어 오구탕을 쳤다.    《살인귀를 마을에다 들여놓았구나.》    《저것들이 언제면 바라갈가.》     염왕산의 독립패는 증오와 저주를 받았다.    《마인!》     왕견은 류자들을 집합시켜놓고 다짜고짜 양화와 공파를 덜미잡아냈다.    《내가 그리두 주의를 줬는데두 네놈들은 야화요(강간)를 해?》     패장의 살기등등한 눈살에 가슴이 찔려 바지에 오줌을 흘렸던 새자가 그만 무릎을 꺾고 머리를 땅에 조아리면서 자기는 핍박에 못이겨 그짓을 했으니 제발 살려달라고 애걸복걸 하면서 울었다.     살려줄 수 없었다. 총 셋방이 그들의 명줄을 끊어놓고말았다.        
147    <<관동의 밤>> 제2부(29) 댓글:  조회:2947  추천:0  2015-02-04
                             29                  겨울철을 잡자 염왕산은 류자 300여명이 긴급출동하여 맹가강의 대부호인 맹지주의 장원에 달려들어 그의 식솔과 종들이 먹을것만 내놓고는 나라에 바치려고 입고한 량식을 마차 50여대에 실어 몽땅가져왔다. 염왕산은 그 기와가마는 절대로 건드리지 않으리라한 자신의 낙언을 배반한것이다. 각지에 집단부락이 생겨나고 있었다. 보갑제도가 나오고 유지회의 활략이 강화되면서 이전처럼 기와가마를 마스기는 어려워지는 형편에서 이번의 행동이 계획된것인데 내막을 보면 그것은 략탈이 아니였다. 염왕산과 맹지주간에 미리 연통하고 의합이 맞아 사전에 엄밀히 짜고 꾸민 일장의 연극이였던것이다.     만주국은 농업을 권장한다고는 하나 농사를 아무리 잘지어도 사탕주고 어린애를 얼리듯 량식을 헐값으로 거두어가니 맹지주는 불만품고 차라리 이럴때 교분이 두터웠던 염왕산의 식량난을 해결해주는 편이 났겠다고 맘을 먹은것이다.     이런줄을 모르는 사람들은 토비는 토비구나 이제는 제 굴앞도 못살게 구니 그 본질이야 저승간들 고치랴고 비난했다. 토비가 남한테 비난받는것이야 여상사한 일이니 이상할 것도 두려울 것 없거니와 그러는것이 외려 관방의 이목을 흐리워 맹지주를 보호하 는데도 훨씬 나은것이였다.      《아니 이번의 구도관자(출격)는 벼락불붙었나보죠. 어쩜 그리두 빨랐나요. 그 기와가마는 아마 너무도 물렀던가봐요.》     소춘매가 왕견을 보자 하는 말이였다.    《말두마슈 식은죽먹기였지유. 날쏘시개소리(총소리) 몇 번 나니까  파수가 분자(총)던지고 달아나데. 그래 대문 활 열구는 맘껏 싣구 돌아왔지유. 개극(싸움)이야 웃마을의 자위단허구 붙을번했지. 건데 몇놈 데우고 잠재우니 그만 에크 안되겠구나 그만두데. 저깟것들 아무렴 우릴 당해낼라구. 어림두없지.》    《대체 어느 가마를 마쉇게요?》    《맹가강의 맹지주.》    《아니 거길 때리다니! 듣자니 그분하곤 교분이 두터웠다는것 같은데요. 이젠 정말 막짓을 하네요.》    《막짓이라니야. 세월이 궁하게 만들었는데....하래비거래두 훔쳐먹어야 사는거요. 안그런가요 소부인.》     왕견은 이러면서 운명이 저승에 전당잡혀 오늘일지 내일일지 하는 판에 토비가 정인군자노릇을 하겠느냐 그런다면야 소웃다 구럭터질 일이지 했다. 다년간 자유방종한 생활을 해오다가 요몇해간은 전에 없던 규률에 속박되여 지겹게 지내온 이 류자는 이번걸음을 아주 만족스러워했던것이다. 략탈을 천직으로 삼아 온 류자들의 심리상태가 거의 이러했다. 그러다보니 요즘은 략탈을 우선하고 반일은 다음에 하자는 주장이 머리를 쳐들기도했다.    《소부인은 요즘 앓지나않는가유? 몰골이 왜 그렇게 못쓰게 돼가는가유? 그 곱던 얼굴이 말이 아니구만! 혹 용강맏두령이 부인한테 등한한거나 아닌가우.》     남한테 떠받들려야 할 압채부인이 남편과 틀려져 별거를 하고있는 일이 시시하게 류자들의 화제거리로 말밥에 올라 왕견도 모르지는 않으련만 의뭉스레 자기는 모르는양하고 있었다. 룡이 물밖에 나면 개미가 침노를 한다더니 속담그른데 없는것 같았다. 소춘매는 남편과 그 지경이 되니 자기를 딴눈으로 보면서 두꺼비 파리노리듯이 슬금슬금 곁에 다가드는 사나이의 속심을 모르는게 아니지만 만나면 동정하고 관심해주니 그리밉지는 않았다.     위용강은 맏두령이 되어 상좌에 오르자 그날로 제 이불짐을 아버지방으로 옮겨갔다. 그래서 소춘매도 올케를 괴롭히지 않고 잠자리를 제방으로 다시옮겨간것이다.     소춘매는 고달플 때가 있기는했지만 섹스를 쾌락을 주는 오락락으로 여기고 많이 즐겨온 녀인이라 어쨌든 그 방면의 기질은 남다르게 뛰여나기마련이다. 그 불가결의 오락을 놀아본지도 이제는 오랬다. 가끔 올케를 찾아갔다가는 안에서 나는 거센 숨소리를 들을 때면 독수공방을 하고있는 자신이 가련하다못해 불쌍했다.     내가 왜 이런 징벌을 받아야 한단말인가? 그래 누구를 위해 절개를 지켜야한단말인가? 과연 그럴필요가 있단말인가?.... 남자의  그 장기가 점점 더 못견디게 그리워나면서 몸이 달아나 그녀는 방선을 풀기시작했다.     한편 성정이 워낙 소탈하고 방자하게 돼먹은 왕견은 그녀가 경계를 풀고 곁을 주고있음을 눈치채자 담이 커져 수작질했다.    《소부인님, 허허허.... 아마 미용해드릴 사람 없는모양인데 내가 허허허....》    《구접스레 놀지 말고 저리 썩 물러가요.》     소춘매는 매정스레 퇴박놓으면서 쫓아버렸다.     하지만 그러기는했어도 그녀는 어느날 밤에 사나이가 기여드니 소리없이 받아주었다.     한번 두번 재미는 늘어갔다.     그러다가 꼬리가 기니 밟히였다. 왕견과 붙어서 한창 고조에 치닺느라 몸부림을 치고있을 때 향란의 눈에 들키고만것이다.    《어머나! 무슨짓들을 해요? 미치지 안않았어? 》     향란은 혐오를 품으면서 제 올케를 꾸짖었다.     그러나 소춘매는 태연했다. 당황해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았다. 되려 오연히 변명해나서기까지 했다.    《시누이만 녀잔가. 나도 여자야. 감정은 다 같은거야.》     물론 그러했다. 인간은 목석이 아니요 육정이 있는건데.....그걸 모르는 향란이가 아니지만 허겁지겁 옷을 주어입고 창황이 자리를 피하는 사나이를 주먹으로 되게 우려주었다.       향란이가 오빠를 위해 그랬다지만 과분한것이였다.     소춘매는 내가 왜 이런데 그냥 박혀있어야 한단말인가, 나를 동정하는 사람도 없는데? 가슴에 은결이 든 소춘매는 이틀후 소리없이 염왕산을 떠나고 말았다.     번개가 잦으면 벼락늦이라 그녀가 배부도주(背夫逃走)한것이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였다. 하지만 너무도 돌연스러워서 민호는 놀랬다. 좋게 해결될 수 있으련만 어찌하여 이런일이 생긴단말인가? 내가 어떻게 데려온건데. 기분이 좋지 않았다. 부부간의 불화가 그렇게 만들었겠지만 민호는 소춘매가 자기와도 한마디 말없이 가버린게 야속했다. 하여 향란를 찾아가 자기의 섭섭함을 말했더니 향란이는 눈물지으면서 자기가 목격한 일을 그에게 얘기했다.    《그런판이였구만!》     민호는 고개를 숙이고 방안을 뚜벅뚜벅 거닐다가 물었다.    《이 일을 누가 또 알고있소?》    《지금은 나혼자밖에 몰라요.》    《그럼됐소. 이 일을 입밖에 소문내지 말아주오. 누구하고도.》    《그러지요.》     향란이는 머리를 끄덕였다.     왕견이 제 각시와 치정관계가 있은것을 오빠가 알면 아무튼 가만있을리 만무였다.       염왕산류자는 어느날 북진하여 토성자(土城子)마을을 들이쳐 그곳에 자리잡고있는 위만군을 쫓아버리고 돌아오다가 이번에는 하가툰(河家屯)에 들어간 일본군 첨병반(尖兵班)을 섬멸하여 기관총 1정과 새 구구식(九九式) 보총 6자루, 박격포 1문을 로획했다.     민호는 로획품을 갖고 산채로 돌아온지 며칠안되여 흑산(黑山)이라 부르는 한 삼림대가 인본군의 손에 녹아나 잔병 들이 갈팡질팡한다는 정보를 새로입수했다.     관동류자들은 의거(義擧)가 있었다.     위용강이 민호와 어떻게 했으면 좋을가고 물었다. 그러자 민호는 류자들은 강호의 의기를 몹시 중시하고있지 않는가 같은 무리끼리 재난당한것을 빤히 보고도 못본체하면야 그건 독초자(다른마음)가 아니냐했다. 하여 구원하는것이 옳다고 둘은 마음을 같이 맞추었는데 문제는 도탄에 빠진 그들을 그저 건져주느냐 아니면 아예 수편(收編ㅡ받아주다) 하는가 하는것이였다.     이 문제를 사량팔주가 다 모인 자리에 내놓고 토론을 붙이였다. 그랬더니 나중에는 차라리 수편하는것이 좋겠다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지게 되었다.     이제 해야 할 일은 사람을 파견하여 그곳 두령을 설강하는 것이였다. 누구를 대표로 파견날 것인가?     흑산토비의 두령은 본명이 장운천(張雲天)이였는데 담이 크고 감때사나운 사람이였다. 듣는 말에 의하면 그는 자기를 수편하자고 설강하러 가는 사람이면 그가 일본사람이건 중국사람이건 가리지 않고 죽여버린다고 한다.     이번에는 류자가 류자를 수편하러 가는것이다.     제깟게 감히 염왕산을 깔보고 독수를 뻗쳐, 그러기만 하면 네깟건 형체도 안남게 갈아치우고말테다. 민호는 흑산을 같잖게 보면서 자기가 갔다오겠다고 나섰다. 그랬더니 모두들 포토우가 없으면 싸움을 어떻게 하느냐며 동의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민호는 생각 끝에 그렇다면 내가 한 사람을 고르겠다면서 왕견을 추천했다.     민호가 그를 내보내자고하는건 첫째 그는 담략이 있고 믿을만한것이고 둘째는 그를 위험에서 구원해내자는거다. 안해를 놓쳐버린 위용강이 혹시 눈치채고 그를 해칠 수도 있으니 이럴때 빼돌리는게 어느모로 보나 좋을것 같았던것이다.     두령들은 한결같이 그의 제의를 동의했다.     어느날 왕견은 대표신분으로 흑산을 찾으러 길을 떠났다.     설한풍이 휘몰아치는 엄동이였건만 만주전역에서 전대미문의 집단부락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적들이 반일군을 민가와 철저히 격리시킴으로써 그들로부터 식량을 비롯한 모든 필수품을 지원받지 못하게 고립시키자는 지독한 책략이였던것이다.     이런때에 부평초같이 떠도는 반일력량을 하나라도 자리잡게끔하는건 실로 은공이 되는것이다!      흑산 류자들은 어느 한 자그마한 마을에 들어있었다. 일본토벌대는 그 마을을 지나 다른 한 유격대를 쫓아 멀리 가버렸던거다. 병은 고칠 수 있어도 운명이야 어떻게 고치랴. 목숨을 겨우살려내고 가쁜 숨이 좀 놓이게 된 장운천은 래일을 어찌알랴 오늘술은 오늘먹고 오늘취해볼 판이지 하면서 히망도 목표도 없이 막연하게 날을 보내고 있었다.     보초가 달려들어가 염왕산에서 손님이 와서 두령을 만나자고 한다니 장운천은 머리도 들지 않고 장기를 그냥 놀면서 왔으면 들여보내라했다.     집안에 들어간 왕견은 자기보다 나이가 훨씬많아보이는 그한테 인사차림으로 몇가지 손세를 해서 먼저 자기가 온 뜻을 간단히 알려주었다. 장운천은 입가에 알기어려운 미묘한 웃음을 짓더니 엽초를 말면서 엉뚱한 말을 꺼냈다.       《난 풀둥구리(담배) 좀 썰어야겠다. 동생한테 봉성자(석냥)없나?》     《내가 홀 까먹구 그걸 안가지구왔지. 자 여게다 달아보슈.》        왕견은 그 뜻을 알아차리고 화로에서 이글거리는 숫덩이 하나를 손으로 쥐여 들이대면서 그더러 불을 붙이라했다.     구들에 올방자를 틀고 앉은 장운천은 한쪽바지가랭이를 쓱 걷어 올리여 제 장단지를 가리켰다.    《여게다 놔라.》    《그럴거야 있습니까. 내 여기두 되지요.》     왕견은 어룽어룽한 사문을 먹침한 자기의 팔에다 그것을 올려놓았다. 숯덩이가 살을 태워 역한 노린내가 집안에 찼다. 하건만 왕견은 꿈적하지 않고 바당에 선채 그가 장기두는것을 구경하는데 얼굴에 고통스러워 하는 빛이란 추호반점도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장운천은 장기판을 밀어놓고 고개돌려 이쪽을 다시보는데 수염이 꺼칠한 얼굴에서는 감탄하는 빛이 떠올랐다.    《염왕산에 강호가 모였다더니 과연 헛소리같지 않구나!》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강호라니요. 나같은 무명소졸이 강호가 될가요.》    《아니 그럼 동생은 사량팔주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인가?.... 모를소리다. 그래갖고 무슨 자격으루 날 만나자는건가?》    《자격이야 있지요. 나는 염왕산의 대표루 왔으니까.》     이러면서 왕견은 과연 염왕산인장이 박힌, 그를 대표로 보내는 파견장을 내놓았다.    《개극을 한번 크게 치르고나니 뒷 일이 하도많아 형님들은 모두다 몸을 뺄새없지유. 그래서 내가 온건데 왜 안되는가유?》    《어, 어, 아니네! 아니야! 사정이 그렇다면야 나도알만해!》     장운천은 태도가 좋아지면서 얼굴에 웃음을 띠우기까지 했다.     염왕산에서 일개 말직류자를 담판대표로 보낸것이 속으로 언잖았지만 감히 맛설 수도 배짱부릴 수도없는 그였다. 지금은 자기의 신세가 개가죽이 불에 오그라지듯 하는 판인데야.     왕견은 그한테 염왕산의 근황을 알려주고나서 나날이 급변하고있는 형세에 대처키 위해서는 류자끼리라도 힘을 합쳐야한다고  말했다. 그리고나서 이어서 염왕산은 이켠의 난처를 알고 자기를 보냈으니 과연 몸을 의지할데 없거든 청할때 따라붙으라했다.     장운천은 꺼칠한 턱수염을 벅벅 긁었다. 별수가 없었던것이다. 우선 목숨은 건지고봐야했다. 가면 자리도 주리라니 그는 설강을 접수하고 수편에 동의했다.     흑산패는 50명류자중 말이 있는 자는 17명밖에 안되였다. 게다가 적지 않은 류자가 총도 없이 칼만갖고 있었다. 이래갖고서야 발톱까지 무장한 왜놈의 군대와 어떻게 맛서 싸운단말인가?     왕견은 그들을 이끌고 곧 염왕산으로 향했다.     한데 어찌알았으랴, 가는 길이 이리도 평탄치 않음을. 그들은 새벽녘에 한 마을을 지나다가 그 마을을 지키고있던 자위대의 습격을 받아 장운천두령을 잃었거니와 새자도 8명이나 버리였다. 그래서 염왕산으로 들어온 류자는 41명밖에 되지 않았다.     그들은 염왕산에 들어오자마자 무기와 말을 보충받고 하나의 독립패로 편입되였다. 그리고 임무를 훌륭히 완수한 왕견이 아예 독립패의 패장직을 맡게 되였다.       춘절을 한주일가량 앞둔 양력1월하순의 어느날 염왕산을 장기적으로 나가있는 차챈더가 류자청찰병에게 급보를 적어 보냈는데 내용인즉 근간에 활동이 심한 일본군 도려(屠旅)기병 200여명이 지금 태평진으로 향했으니 그런줄을 알라는것이였다.     염왕산두령들은 즉각 회의를 열고 적의 동향을 분석했다. 그것은 태평진주둔군과 배합하여 여기 이 염왕산을 한번다시 습격해보려는 꿍꿍이가 아니면 다른 어느 반일부대를 토벌하자는것일거다. 약 한달전에 있은일이다. 일본군과 위군(만주국군)은 800여명의 병력으로 남쪽으로 이동중인 조상지(曺尙志)의 반일부대 200여명을 소탕하려 맘먹고 그들이 숙영을 포위하고는 장장 8시간이나 싸웠다. 하지만 결국은 제쪽에서 되려 120여명의 병력을 잃었거니와 조상지는 조상지대로 부대를 이끌고 포위를 돌파했던것이다.     그 소식이 염왕산에 전해져 류자들을 크게 고무했다.     적이 태평진까지 오자면 거리가 멀어서 시간이 꽤 걸릴것이다. 그리고 다른 한가지, 도려가 태평진에 들어가자면 반드시 태평진 동쪽 약 15리지점에 있는 한 골짜기를 지나야 한다. 그 골짜기는 흡사 구유모양으로 생긴 하나의 협곡인데 길이가 5리가량되고 량켠은 가파른 둔덕이다. 적을 가두고 때리기 좋은 지형이였다.     민호는 앉아서 적이 들어오기를 기다리기보다 나가서 소탕하는것이 더 낳으리라 생각하고 작전방안을 내놓았더니 대부분두령이 찬성하였다. 하여 그의 주장은 채납되였던것이다.     염왕산에서 400명인마가 산채를 나와 눈구름을 날리면서 그곳으로 달려갔다.     과연 짐작했던바와 마찬가지였다. 이켠에서 거기에 당도한지 얼마안되여 적의 길다란 기병대가 나타나 그 골짜기에 들어서기 시작했던것이다. 민호는 물론 마즌켠에서 습격을 준비하고있는 위용강도 속으로 됐다 이놈들은 다 잡아놓은거라며 기뻐했다.     열, 스믈, 설흔, 마흔....     한데 어찌알았으랴, 작전이 헝클어질줄을! 적이 아직 반수도 들어오기 전인데 어느 성급한 자가 제멋대로 총질을 했던것이다. 그 바람에 적은 전진을 멈추어서 이미 골짜기에 들어선 자들만 주검을 내게되였다. 가자니 앞에서 총알이 날아오고 량옆은 오르기 힘든 언덕이라서 말머리를 돌려 내빼는 수밖에 없었는데 날아오는 총탄에 맞은 자들은 말에서 굴러떨어지기도 하고 자벌레뛰듯 뒷재주를 치기도 했다.....     전투는 빨리끝나버렸다. 이쪽은 한명의 사상자도 없는 반면에 적은 32명살상, 13명포로였으며 로획한것은 소총 40자루와 말 13필뿐이였다.    《이깟거 뭐야, 이깟거! 눈꼽재기두 안되지, 눈꼽재기두! 그놈들을 다 잡아치우자했는데, 다 빼앗아자했는데! 다! 다!》     위용강은 일본관동군의 이 정규부대를 전멸하여 한번 본때를 보이려했던것이 계획이 그만 다 파탄된지라 분하고 분해서 침을 탁 탁 뱉아가며 펄펄 뛰였다.    《어느 녀석이 내 명령이 없이 총을 쐈어, 어느 녀석이! 총싼 녀석은 여기루나와, 여기루! 냉큼!》     그는 제마음대로 총을 갈겨댄 흑산류자를 잡아내여 그 자리에서 총탁으로 답새겨 머리통을 묵사발이 되게 만들었다.       염왕산이 예로부터 언제한번 술독이 말라본적이 있었던가! 기와가마를 마스었건 못마스었건 싸움에 이겼건 못이겼건 경축하느라 술, 위로하느라 술.... 술은 언제나 마시였으니 그것은 스스로 제도화되다싶히 고착된 습성으로 되고만게 아닌가.     경쾌한 내납소리에 북소리 한데 어울려 들려왔다. 이번에도 출전했던 류자들이 돌아오자 산채에서는 음악소리속에서 주연을 벌리였는데 술에 얼근히 취한 위용강이 양즈방보고 양즈방에 가둔 포로를 전부끌어내라했다.     마침 그 소리를 민호가 잡아들고 물었다.    《어쩌자고 그러오?》    《그깟것들 살려둬선 뭘해 판산(밥)이나 축내는걸.》    《잠깐만, 위형은 머리가 그렇게 밖에 안도는가?》    《거기생각은?.....》    《그 표(인질)를 갖고 오도야마와 흥정을 해보자는거요.》    《그게좋아. 그래두 자네가 머리도는군! 하하하....》     위용강은 손벽을 짝 쳐가며 웃었다.     화서즈가 태평진의 오도야마사령앞으로 보내는, 우리 손에 너희들 도려기병 13명이 포로되였으니 찾아가겠거든 포로 한명당 탄알 한상자씩 교환하자는 해엽자 한통을 갖고갔다.    《과연 토비는 토비로구나!》     그 글을 받아본 오도야마는 분이 나기도 하고 탄가사 나가기도했다.     별수가 없었다. 이런 상황임에도 토비손에 떨어진 자기사람을 구원하지 않는다면 그로 인하여 전군에 미치게 될 영향을 고려해서도 울며 겨자먹기로 요구를 들어주는 수밖에 없었다.     때는 오후2시. 약정한 그 시간이 되자 오도야마는 과연 탄알 13상자를 가지고 지정한 장소에 나타났다. 길이가 40여메터되는 다리를 두편사이에 놓고 하나는 저쪽에서 하나는 이쪽에서 서로 대치하였는데 오도야마는 이쪽에서 해달라는대로 탄알 13상자를 먼저 다리중간에다 갔다놓았다.     쌍방은 다가 무기를 휴대한 자는 뒤로 50여메터 썩 물러났다.     이켠의 산굽인돌이에서 홀연 말탄 사람 다섯이 포로 13명을 길다란 포성에 한줄로 묶어갖고 나타났는데 앞장선 사람이 바로 위용강이였다. 그는 말에서 내리자 포로들을 끌고 다리중간에 서서 기다리고있는 오도야마앞으로 걸어갔다. 면목이 익숙한 그들 둘은 오래간만에 만났지만 대방을 향해 고개를 까댁이고 얼굴에 약간 웃음을 발랐을 뿐 말은 한디도 없이 교환을 이루었다.     저쪽에서 군관 하나가 나와 포로된 자들을 하나하나 보고 인정했고 이쪽에서는 반둬더 전문방이 나가 그네들이 갖고 온 13상자가 탄알이 옳은지 아닌지를 검사했다.     쌍방은 그것이 끝나자 각기 자기편쪽으로 향했다.     이때 량쪽은 다 손짓해서 포로들은 저쪽으로 건너가고 류자 13명이 달려가 탄약상자 13개를 둘러메고 뛰여왔다.     류자들이 메여 온 탄알상자를 말파리에 방금싣자 저켠에서 오도야마가 아직 다리를 채 건너가지 못한 포로들을 엎디라고 고함쳤다. 이쪽에다 기관총을 갈기자는것이였다. 한데 어찌알았으랴, 그의 고함소리가 입끝에서 채 떨어지기 전에 이쪽에서 명사수들이 먼저손써 매복한 기관총수의 머리통을 갈겨놓을줄이야!          방금 수편한 흑산패의 류자들이 산채의 한방을 차지하고 있었다. 하루세끼밥을 배불리먹고 동빈설한에 따뜻한 온돌에서 자면서도 하는 일 없으니 무료했던지 여러잡생각끝에 불만을 토했다.    《그 자식을 눈감긴건 억울해.》    《걔가 잘못했어두 그러진 말아야지.》    《너무했어, 몸서리치게.》    《규률이 다 뭐야. 쇠도 너무강하면 부러지는거야.》     위용강이 도려를 매복습격할 때 저들의 동료를 죽여버린 일을 놓고 하는 소리였다.     화제가 어느덧 돌아간다.    《야 이거 그냥 들어앉아있을 판인가?》    《안그러면....넌 목숨을 내던지고싶냐?》    《넌 반일을 안하려나?》    《뭐 반일을? 체, 왜놈이 내 살부지수아니야.》    《그렇다구 넌 이제는 외돌참이냐 그래?》    《나하구 그렇게 색먹고 따지지 말어.》    《쉿! 왕패장 들을라, 경칠라구.》    《듣겠으면 들으라지 그도 제 목숨은 아까와할거야.》    《그런사람같잖아.》    《그래 그런사람같잖구 우둔한 도깨비같애.》     왕견이 어떤 사람인지를 잘 모르면서도 뒤공론질이였다.     이때 창고의 쌀마대를 쥐가 구멍내지 않나해서 검사를 다니던 량태 백두옹이 뎅걸뎅걸 잡스레 지껄이는 소리를 듣고 들어왔다.    《오, 하하하! 량태님께서 왕림하셨수?》    《량태님 한잔안냅니까, 왜놈하고 매매도 잘됐는데.》    《더도말고 한잔만 제꺽하게 주십쇼.》     방자한 녀석들이 늘큰히 앉아 렴치를 잃는지라 량태는 한심해서 웃고말았다. 그랬더니 곁을 주는줄로 알았던지 한녀석이 두꺼비모양으로 엎디여 절까지 해가며 조른다.    《량태님! 량태님! 자비하신 량태님!》     고약한 놈들같으니라구 이 늙은걸 가지고 노느냐. 량태는 자기가 수모를 받는것 같아 안색이 좋지 않았다.    《넌 대체 누구냐?》    《예 저말입죠. 독립패의 부패장입지요. 허니까 저의 의견이야 들어줘얍죠. 안그렇습니까?》    《내가 안들어주면?》    《그러면야 떠듭지요. 우린 목랑청아니야.》     억이 막힐 소리였다.    《야 이 육시를 할 놈아, 네 아갈머리에서 그런말이 함부로나와?.....인제보니 네녀석들은 말짱 여기로 처먹으러 들어왔구나. 돼먹지 못한 녀석들!》     량태는 싸잡아 욕해놓고 문을 열고 거기를 나와버렸다.     민호가 마침 왕견을 찾아오다가 량태가 문을 탕 닫는데 온 얼굴에는 노기가 가득한지라 적이 놀랐다.    《아니 량태형님, 무슨일입니까?》    《들어가 물어보게. 통 말이 아니야.》     량태는 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독립패는 규률이 너무나 물란하다고 했다.    《왕패장이 있습니까?》    《없어. 걔가 없으니 더 막소리지. 아무리 생각해도 갱충맞은 짓을 한거야. 저것들을 원체 끌어들이지 말아야했을걸 그랬지.》     량태는 어리무던한 늙은이로서 여지껏 산채에서 존경받아온 사람이였다. 수하 류자들을 제 동생이나 자식처럼 여기고있는 그는 조만해서는 성내는 법이 없는데 오늘 이렇게 노여워하는것을 보니 문제가 엄중했다. 민호는 속으로 안되겠다 이놈들은 다른패와 성질이 다르니 틀어쥐고 단단히 교육해야겠구나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더니 그철도 어느새 다 가고 또다시 여름이 왔다. 산간은 청신하고 아름다웠다. 계곡에서는 수정같은 실개울물이 돌돌돌 노래하며 흘렀고 각가지의 새들이 이 나무 저 나무 옮겨가며 제 목청을 자랑했다.     민호는 향란이가 동무해달라해서 산채의 서쪽골로 갔다.    《그 적삼벗어요. 여러날되도록 왜 갈아입을 념을 안해요.》     향란이는 갖고 온 빨래와 함께 그의 적삼도 씻으면서 한가지 근심스러운 일을 말했다,    《오랍은 이제야 올케생각이 몹시나는모양인데 어떻게 하면 좋을가요?》    《그걸 어떻게 아오?》    《저번때는 나보고 춘매가 가면서 무슨말이 없던가구 묻더니 어제는 네 올케 언제오겠다고 말하더냐고 묻는단말이얘요..》    《그래 뭐라고했소?》    《뭐랄게있나요. 다시 올 사람이면 갔겠는가구했지요.》    《야박한 소리를 했구난.》    《그래요. 나도 말해놓고 보니 너무 야박하게 대한것 같아요. 물론 오랍잘못이 백분의 백이지만도.》    《나더러 할빈행차를 한번 더 해달라는거요?》    《글쎄요. 어떻게 했으면 좋을가요?》    《그 사람일이야 이젠 내가 비쳐도 안비쳐도 되는게 아닌가.》     민호는 두동싸게 말했다. 향란이는 눈을 할끗 빨면서 그따위 동떨어지는 소리는 제발하지 말라했다. 민호는 그가 어찌든 그 일로 다시 할빈에 가고푼 생각은 없었다.    《솔직히 말해 난 이젠 굿이나 보지 오지랖넓게 간섭하지 않을테야. 정말이요.》    《그렇겠지요. 리해할만해요. 나도 앵돌아진 올케를 이제다시 돌아서게 한다는건 되지도 않을 짓인걸 알면서도....》     중이 달아나면 절당을 내놓고 어디로 갈가. 소춘매가 십중팔구는 연하루를 다시찾아갔으리라. 자기가 싫어서 떠난 곳으로, 염오하면서 버리였던 그 생활속으로 다시들어갔을것이다.     향란이가 다 한 빨래를 말리우느라 풀우에 널고나서 민호곁에 다가와 나란히 앉아 볕쪼임을 하고있는데 키가 잘달막하고 암팡지게 생긴 새자 하나가 사방을 두리번거리면서 개울을 따라올라오더니 이켠에 사람이 있는것도 보지 못하고 앞을 지나 계속 산속으로 들어가는것이였다. 저자식이 어디로 가는거야 도망치느라 저러는게 아닌가 미친자식!     민호는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서라! 어디로 가는거냐?》     저쪽은 와뜰 놀라면서 그 자리에 섰다. 왕견패의 새자였다.    《여긴 염왕산이야. 왜 혼자 짐승의 밥이 되곱푸냐?》     그자는 되돌아오면서 둘러댔다.    《나도 놀러왔다가. 헤헤헤....》       8월이 되자 차챈더가 또 하나의 정보를 보내왔다. 서남과 서북쪽으로 일본군이 움직이고 있는데 아마도 염왕산으로 다시기여들것 같으니 사전에 대책을 대는게 좋겠다는것이다.     두령들은 그 정보를 받고 적이 염왕산으로 들어오자는건 뱀이 참대통으로 들어오는것과 같기는 하지만 만일의 경우를 생각하여 염왕산주위에 붙지 못하게 하는것이 좋겠다고 했다. 하여 어느날 400명의 기마대가 동원하여 어느 한 항일의용군을 뒤쫓다가 방향을 염왕산쪽으로 돌리고있는 일본군을 반습격하여 쫓아버렸다.     대오는 어느 한 커다란 마을을 공점하고 거기서 하루밤눌러있게 되었다. 지난해의 말까지 통계를 보면 만주국전역에 집단부락이 1,172개 생겨났는데 이 마을 역시 네주위에 빙 둘러 토성을 쌓고는 귀퉁이에다  높다란 망경대까지 만들어 놓은 집단부락이였다.     이틑날 아침. 출발직전에 한 로파가 찾아와 울면서 간밤에 자기네 집에 들었던 류자 둘이 옷을 훔쳤다고 고소했다.    《마인!》     이번의 출격을 쥐휘하고있는 민호는 즉각 류자들을 집합시켜놓고 각 패에서 자기의 인원을 점명케 했다. 그랬더니 수편한지 얼마안되는 흑산패의 새자 둘이 없어진것이 발견되였다.     민호는 왕견보고 다른새자를 시켜 그들을 찾아보도록했다.     이윽하여 그 없어진 새자둘을 찾아냈는데 그들은 도적질한 옷을 다른사람에게 팔고있었던것이다.     민호는 그자들을 칼칼히 쏘아보았다.    《너희들은 무슨짓을 했느냐?》     두 새자가 제딴에는 리유가 있는것 같았던지 오감스레 웃어가면서 넉살부렸다.    《용돈이 다 떨어져서. 헤헤헤....》    《그렇습죠. 나도 손이 너무말라서....》     그자들이 노는 작태에 더욱 격분됐다. 민호는 불길이 일어나는 눈으로 그자들을 쏘아보면서 갈린 목소리로 꾸짖었다.    《이 부량한 놈들! 작심삼일이로구나! 네놈들은 그래 염왕산의 규률도 법도 모른단말이냐?》     그제야 두 새자는 낯이 질리면서 제발 한번만용서해달라했다.     《용서는 무슨놈의 용서야. 너같은 망종들 때문에 국이 밝아질것도 밝아지지 못하고 어지러워지고있다.》     민호는 당장에서 그자들을 처단하고 마을을 나와버렸다.     그 사건이 이같이 처리된건 당연하지만 늦게야 수편된 류자들에게는 받아내기 어려운 위협과 압력으로 받아졌다. 그들은 감히 내놓고 말을 못하고 뒤에서 꿍꿍댔다.     전에 언젠가 량태를 격노케 만들었던 두 새자가 왕견을 붇들고 불만을 토로했다. 하나는 성명이 양화(梁和)라는 새자고 다른하나는 공파(孔波)라는 새자였다.       《패장형님! 대체 우릴 어쩌자는겝니까? 그까지 옷 몇견지가 뭔데 아까운 형제의 생명을 빼앗습니까? 무슨 돼지라고 옴짝달싹못하게 수족을 묶습니까? 숨넘어갈 때까지 이러구살아야하는가?》    《인간은 날적부터 제 하늘 제가 이고 살게된거야. 감탄고토라잖아. 기률이구 난장이구 맞깥잖으면 버리고 가버릴 수도 있지. 건데두  이러니 저러니 흠잡으니 어디살겠어. 이 공파의 머리도 어느날 적표(떼여버림)할런지 모를일이지.》     왕견이 그들에게 일깨워주었다.    《맘이 그렇게 돌아서서야 되니. 싸움잘하구 국이 밝아지게 할려면 의례 규률이야 자각적으루 준수해얄게 아니여. 건데 그렇게는 안하구서 위반을 하니 백성이 우릴 어떻게 보겠나? 우리가 지금은 백성지지를 받아야 해. 그러지 않구는....세월이 달라진거야.》     민호의 처리가 잘못된게 하나도 없다고 비호했다.    《왕패장까지 편을 아들어주면 우린 누굴 믿으랍니까?》    《우린 왕패장을 맏두령보다 더 믿고있는데....병졸없는 장군은 거지장군이야.》     양화와 공파는 겨끔내기로 불만을 토하면서 자기들은 다가 왕견을 하늘만큼 믿고 속말을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그를 친형같이 여긴다는지 하느님같이 여다는지 거짓말을 했다.     난 이것들을 끌어왔고 그래서 한급가진거다. 이들은 나를 믿는 새자니 바로 내것이지. 말이 맞아 병졸없는 장군이야 거지장군이지 뭐야. 이것들이 없어지면 나는 뭐루되는가. 왕견은 그들을 너무 속상하게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상황에서 왕견의 독립패는 단독으로 임무를 맡고 어느 한 마을에 남게되였고 주력은 산채로 돌아왔다.       며칠이 지나서다. 염왕산에서는 외선경비를 맡고있는 류자들로부터 동북반일련합군(東北反日聯合軍)에서 대표를 보내왔다는 보고를 받게되였다. 위용강은 또 무슨놈의 대표냐 하면서도 갑을간 접견하기로 했다.     대표는 경위원 둘을 데리고 왔는데 그들 세사람은 이전에 정민수가 들어올 때의 모양으로 눈을 싸매고 산채까지 들어온 후 싸맨것을 풀고는 물 한모금도 대접받지 못한채 두령들을 만났다.     중앙대청에는 류자 40명이 량켠에 갈라 렬을 지어섰다. 세사람은 그들이 손에 쥐고있는 서리발치는 칼날을 하나하나 비껴지나서 8대금강이 앉아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세상에 이런놈의 접견이 어디에 있는가. 담판을 하러왔는데 대표를 이모양으로 대하다니!    셋은 가운데 놓은 의자에 가 앉았다.       방금전 자기의 경위원 둘과 함께 회색군복을 입고 혁띠에 권총까지 차고 나타난 대표를 봤을 때 민호는 깜짝놀라 하마터면 소리지를번했다. 그 대표는 다른사람이 아니라 바로 최기덕이였던 것이다. 오매에도 잊지 못할 친구를 이렇게 만나다니!    최기덕역시 그런것 같았다. 그역시 민호를 알아보았겠지만 이쪽에 딴눈길을 보내지 않으면서 먼저 위용강의 앞에다 크고 붉은 인장이 찍힌 련합군사령부의 위임장을 내놓으면서 자기는 성명이 최기덕인데 대표로 파견되여 여기에 왔노라했다.    최기덕은 언제배웠는지 그리 류창하지는 않으나 얼마든 알아들을 수있는 한어로 자기가 위험불구하고 여기까지 찾아온 리유를 설명했다.   《뭐라, 나를 수편해보려구! 어림도 없는 노릇이지! 공산당이 뭐냐. 이 용강이는 이젠 아무도 믿지 않으니 돌아가거라!》    위용강은 대방이 꺼내놓은 동북반일련합군에 들라는 제의를 칼로 무를 잘라버리듯이 단마디로 거절해버렸다.    그의 태도가 이같이 말도 다시붙여보지 못하게 단호했거니와 사량팔주도 거의 그와 같은 생각이여서 염왕산을 수편하려고 설강하려 온 최기덕은 목적을 이룰수 없었다.       
146    <<관동의 밤>> 제2부(28) 댓글:  조회:2630  추천:0  2015-02-04
                           28               어제하루 해를 볼 수 없더니 오늘은 마침 웃날이 들었다.     향란이는 말을 계속달리였다. 이번걸음은 올케와 함께 오빠만나러 태평진에 가던 때의 기분과는 완전히 달랐다. 신심을 보이면서 용감히 떠나기는 했지만 이러다가 내가 오인을 찾아내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위구가 갈마들어 음침한 날씨처럼 개운치 않으면서 초조해났다. 그곳에 있기나하는지? 그사이 다른데로 자리를 옮겼다면 이 넓은 만주땅 어디에서 찾는단말인가? 오인은 전번에 왔을 때 자기들은 전에 기국했던 천묘령에 발을 붙이고 할동한다고 알려준바있다. 하여 곧추 그리로 향하는 판인데 그 구역에 채 이르기 전에 날이 저믈었다. 향란이는 인가를 찾아 밤을 지내야 했다.     말을 멈춰세우고 사방을 둘러보니 가는 방향은 아니지만 그리 멀지 않은 산아래에 흡사 북망산같아보이는 궁상스러운 마을이 하나 있는것이 눈에 띠였다. 향란이는 거기로 말을 몰았다.     가까이에 이르니 개짖는 소리 들려왔다.     《저 게모점에는 피자가 왜 저리도 헐떡거릴가?》(주)     의문스러워 주저하다가 내친 걸음이니 그냥갔다.     마을어구에 다 이르러서 향란이는 손에 총을 쥔자가 보초를 서고있음을 발견했다. 둘이였다. 일본군이 아니였다. 옷모양새와 거동을 보니 군인이 아니고 웬 잡놈같았다.    《거 참 멋진거구나.》    《내것하고 바꾸면 좋겠다.》     둘이 주고받는 말소리가 솔솔 불어오는 바람에 실려왔다.     저것들이 이 말을 욕심내는 것 같은데 어쩌면 좋을가. 향란이는 속으로 이러면서 대방의 신분을 알수 없어 잠시 주저했다. 그러면서도 걸음을 그냥 놓고있는 말을 세우지는 않았다.     가까이 가자 한자가 총을 꼬나들면서 목청을 뽑는것이였다.    《누구야, 서라!》     향란이는 말을 세우고 응대했다.    《길가던 사람이요.》     박암속에 얼굴을 잘 알아볼 수 없는데 목소리를 들으니 여자라 둘은 들엇던 총을 내리우면서 다가들었다. 그들은 이켠의 얼굴을 뜯어보면서 경아해하고 있었다. 웬 계집인데 겁도 없이 이런 세월에 말타고 버젓이 나다니는가 하는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자기는 어쨌든 불차고 태여났으니 사나이요 너는 여자요 하면서 한수 얕잡아보고 드는것이였다.      그자가 거드름을 빼면서 이쪽을 향해 물어왔다.    《뭘하는 계집인데 여기루는 왔는가?》     초면에 처뱉는 말씀새부터가 막굴러먹은 불한당이라 향란이는 속이 괴여올랐다. 그러면서도 아직은 손쓸 정도는 아닌지라 참으면서 되도록 좋은 어투로 알려주었다.    《날이 저물어 하루밤 묵어갈려구 그래요. 뭘하는 분들인지?》     《그걸 알고싶어? 우린 반일부대야.》     제 신분을 이리도 경솔히 내뵈일 수 있을가? 향란은 한편 의심하면서도 그와 물어보았다.    《방금 반일부대라했지요? 그렇다면 어느 부댄가요?》    《우, 우리말이지. 우린 오군자야.》    《뭐라구요! 오군자라구요?》     향란이는 오군자라는 소리에 그만 놀랍기도 반갑기도 하거니와 옹쳐진 의문이 풀리지도 않아 다시캐물었다. 그랬더니 그자가 혀를 털었다.    《쩌, 쩌, 쩌.... 이거 왜 사람을 믿지 못할가.》    《넌 웬 녀잔데 우리가 누군갈 캐물는거냐?》     다른 한 자가 총부리를 높이면서 하는 말이였다.    《보고도 모르다니. 난 오군자를 찾고있어요.》     향란이는 오군자부대가 이런 개잘량일 수는 없는데 하고 반신반의 하면서도 그자들이 옳다고 우기니 가슴놀이 뛰였다.     저쪽은 이제냐 녀인이 어딘가 다르게 보였던지 태도를 고치며 물었다.    《뭘하는 사람이야?》    《남의 운수를 봐주지요.》    《산만자(점쟁이)란 말이지?》     둘은 믿지 못하겠는지 한발 더 다가들었다.    《더러운 돈 주무르는 사람아니구?》(주)     그자들은 녀인이 도박쟁이나 아닌지 의심했다.     향란이는 신경질이 났다.    《귀찮게 노네. 잡답제하고 두령이 누군지나 알려줘.》    《그건알아 뭘해?》    《만날일이 있어서. 거거아!》     향란이는 이 한마디로 자기이 류자신분을 드러내고말았다.     그자들은 허투로 범접할 수 없었다. 한자가 향란이를 인도하여 마을로 들어갔다.     마을에 들어 가 보니 뉘집에선가 울음소리 들려오는데 손에 꾸러미를 든 자들이 싸지르고 있었다. 그래서 개가 몹시 짖어대는 모양이다. 거지나 답지 않은 빈민의 마을에 들어 략탈을 하다니, 이게 그래 오군자부대란 말인가? 옳다면 변했어, 변한거야. 오인은 친일분자나 한간부호를 털고 징벌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래놓고서는왜?.... 향란은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들은 마을복판에 있는 한 집앞에 이르었다. 향란이는 말고빼를 참나무울바자에다 얼른 매여놓고 그자를 따라 들어갔다.     그리 너르지 않은 방안에 열댓되는 자들이 모여 왁작 떠들면서 술을 먹고 있었다. 고콜불이 너불거리면서 히미한 방안에 그림자를 만들어 그들 하나하나가 흡사 검덕귀신같기도 하고 변술부리는 도까비같기도했다.     향란이를 데리고 들어온 보초가 안켠에 앉은 자의 곁에 다가가 귀에 대고 무어라 알리는 사이 문가에 앉은 자가 석냥을 득 그어서 녀인의 낯가까이로 가져왔다.    《어허, 저건 어디서 나진 꽃이야 엉? 하하하....》     한자가 복덩이가 굴러왔다면서 징글스레 웃자 미처생각못한 추접은 말들이 이 입 저 입에서 꼬리물고 줄지어 나왔다.     《고년 쟁반이(얼굴) 기뚝차게 곱구나!》    《기뚝찬데!》    《한판 굴러볼가부다.》    《임마, 너한테 진상하는 오고지(보지) 아니야.》    《내가 먼저맛볼테야.》     한자가 일어나 답치기를 놓다가 취기를 이기지 못해 상을 엎지르며 넘어졌다.     주먹이 날아갔다.    《이 자식아, 제몸도 주체못하는 주제에 뜨물세수가 뭐야.》    《으 하하하....》     일장의 폭소가 터진다.     반일군은 무슨놈의 반일군이야, 떨거지 강자(돼지)들이지. 참고있을자리가 아니였다.    《이 두꺼비들아, 고니고기 먹고싶거든 오줌물에 제 낯짝이나 비춰보거라.》     향란이는 구접은 자들이 무례하게 노는 꼴을 칼칼히 쏘아보다가 한마디 내뱉고는 곧 물려나오려했다.     이때 도장수(都將帥)인듯한 자가 소리쳤다.    《마상!》     한자가 명령대로 향란을 붙잡았다.     갑작스런 복새통에 고톨불이 꺼졌다.     향란이는 자기를 붙잡고 놓지 않는 자의 머리털을 움켜잡으면서 무릎으로 턱주가리를 올리박아 꼭그라뜨리고는 몸을 빼여 날래게 밖으로 나오면서 허리에 감은 철채찍을 풀었다. 그 무리에도 날랜자들이 있어서 그녀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바깥까지 쫓아나왔다. 향란이는 철채찍으로 갈겨 득달같이 달려드는 다섯녀석을 다시일어나지도 못하게 밀대를 놓고는 울바자에 달려가 말고삐를 풀었다.     집안에서 그년을 놓치지 말고 붙잡으라는 고함소리가 그냥났고 몇이 더 쓸어나왔다. 그사이 벌써 말잔등에 몸을 얹은 향란은 자기를 끌어내리려는 자들을 뿌리치고 마을을 나와버렸다.     향란이는 하늘의 별을 보고 방향을 잡으면서 말을 계속 몰았다. 그러다 새벽녘에 어느 한 산간마을을 지나게 되었는데 그 마을을 지키던 보초가 알아보고 소리쳤다.    《아니 이거 위아가씨아닙니까!?》     그는 염왕산의 류자였다.    《아유, 이럴변이라구야!》     향란이도 반가와 탄성을 올렸다.    《오인이 여게있나요?》    《있습니다, 있구말구요. 위아가씬 그일 찾아왔겠죠?》    《그래요. 날 그분하테 데려다줘요.》     오군자의 지휘부가 마침 이 마을에 자리잡고 있었던것이다.       《호! 운수꺼벅거릴땐 나다니지 말라했지. 가짜리규가 있었다더니 가짜오군자가 있어서 하마터면 욕을 치를번했어요.》     향란이는 민호를 만나자 이러면서 만시름을 놓았다.     민호는 그녀가 오면서 겪은 얘기를 들으니 눈에서 불이났다.    《더러운 놈들, 고약한 짓을 하고있네. 백성들이 이 오군자를 뭐로 보겠는가.》     인원이 불과 20여명밖에 안되는 날부란당이 이런 란리에 남의 이름을 도용하여 돌아다니며 략탈질을 해먹고 있었다.      민호는 몹시 격분했다.    《갈테요! 한놈도 남기지 않고 씨알머리를 없애버릴테요!》      반둬더 전문방이 당장 거조를 내려는 그를 진정시켰다.    《이보게 오인! 사람이 밸날 때 같으면야 씨알머리를 없애치워도 시원찮지만 그래서야 될가. 자칫잘못했다가는 되려 우리가 반일부대아니구 살인백정이란 욕을 먹을 수 있는거요. 안그러오. 그러니까 그러지를 말고 내 생각같아서는 이렇네....》     그는 자기의 주장을 내놓았다. 그 주장인즉은 미물인 짐승도 길들일탓에 달렸는데 차라리 이럴때 그자들을 경고하고 교육해서 버릇을 버리고 반일에 나서게끔 인도하는게 더 났지 않겠는가하는것이였다.     민호는 다시 곰곰히 생각해 보니 그의 말이 물색없는 소리는 아닌지라 막설할 수 없었다. 이 오군자를 보더라도 본분이 그런자들인것을 설강하고 수편해서 지금의 대오로 모양을 갖추게된게 아닌가. 그자들을 설강해 보아 말을 들어주면 좋고 듣지 않고 엇서거나 대항하면 그때는 리류가 충족하니 없애버려도 늦지 않는것이다.     민호는 그 날부란당을 설강(선전)할 임무를 왕견과 하진국 두사람에게 주었다.     향란이는 민호에게 그사이 염왕산에서 벌어진일들을 상세하게 알려주고나서 자기가 여기까지 찾아온 목적을 말했다. 그랬더니 민호는 그들을 구원하는것은 자신이 해야 할 응분의 직책으로 여기면서 이렇게 말했다.    《모두들 향란아가씨만큼 나를 리해해줬으면 오죽좋겠소. 그러면야 고마운 일이지. 내가 왜서 염왕산과 등을 지겠소. 그럴 리유가 하나도 없지. 용강형이 귀순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아닌게아니라 별궁리를 다했더랬소. 그런데 지금은 회개하고 돌아섰다니 아주 반가운일이요. 응당 그래야지!》     민호는 이제야 백형 민수가 독립군에 들어 총을 잡은것도, 독립군이 붕괴되니 청산의용대에 든것도, 자기를 보러 염왕산에 들어간것도, 위삼포를 반일에 나서게끔 설강한것도, 200명의 대오를 끌고 태평진에 들어갔다가 잘못된것도 비로서 알게되였다.    《용감한 형님이 우둔한 짓을 했지. 너무나 어리석었어!》     그는 제 형을 이같이 평했다.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들께 무엇이라 알린단말인가, 시체마저 찾을 길 없으니 통분했다.       민호는 지체함이 없이 련락병을 보내여 근처 여러마을에 나뉘여 주둔하고있는 만성, 마수재, 금보 동래호에게 각각 알리였다. 하여 이틑날 오전내로 전원은 한곳에 집결했다.     오후. 오군자의 300여명 기마병은 깃발을 펄펄 날리면서 기세높히 염왕산을 향해 출발했다.     향란이 민호와 나란히 가면서 남앞에서는 말하기 부끄러운 위씨가족의 딱한 사정 한가지를 그한테 말했다.    《이걸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 올케하고 오랍관계가 형편없이 버성겨졌어요. 오랍이 그리고 돌아온 후부터 올케는 근본 한자리에 들려고도 하잖아요.》    《한자리에 안들면.... 그래 춘매아주머닌 잠은 어디서 자게?》    《지금도 그냥 내방에 와서....》    《싸우진않는가?》    《만나서도 여지껏 서로 말한마디도 없어요. 나하고 함께 태평진에 갔을때였어요. 오랍이 데리고 놀던 계집이 올케보고 할빈기생이 아니냐고 했죠. 올케는 그게 큰 모욕이 돼서 지금도....》    《그럴 수 맞아. 속담에도 있잖아, 화냥년보고 화냥질했다해도 좋아는 안한다는.》      《아마그런것 같애요. 올케는 그까짓거하고 맘 너르게 먹으면 좋으련마.... 오랍도 그렇지, 잘못을 먼저빌면서 속심나눴으면 좋으련만  훌륭한 닭은 개와 다투지 않고 대장부는 여자와 다투지 않는다해서 그러는지 네똥집돌아가라 내쳐두는것 같아요.》    《내쳐두는게 아니라 낯이 가려운걸 아니까 그러겠지. 몸의 상쳐는 고치기 쉬워도 마음의 상처는 고치기 어려운거야.》     민호는 그저 이정도로밖에 말할 수 없었다.     그날밤 보초를 섯던 류자가 가만히 오빠가 주혜란녀인을 죽이고 배를 갈라 심장을 꺼내여 그것으로 술을 먹었노라 알려준바있다. 소춘매가 그 사실을 안다면 주혜란한테 멸시를 받아 생긴 분노쯤은 골백번 풀어졌으련만 향란은 그 일을 아직까지도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고있는것이다. 오랍이 남한테 사람아니고 식인종이라는   말을 들을것 같아서.        민호도 잘알고있다싶히 염왕산은 팔괘진을 이루면서 동남, 서북, 서남, 동북 네귀에 각각 길이 열려져있는것이다. 한데 산속에 잡아들면 그것은 여러갈래로 석갈리는 미로여서 다녀보지 못한 사람은 들어가기만하면 나오지도 못하고 헤매다가 지쳐죽거나 아니면 짐승의 밥이 되고마는 것이다.     부상당했거나 말이 총알을 맞고 꼭그라지는 통에 포로되여 태평진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류자중 어떤자는 목숨이 아까와 적의 길잡이로 나설것이다. 길잡이가 생겼을 시 적들이 가만있을 리가 있는가?... 하루라도 빨리 염왕산을 뽑아버리자고 달려들것이다. 왜 그럴가? 원인은 간단했다. 그곳은 지금 그렇거니와 앞으로도 반일군이 자리틀고 앉는 난공불락의 병영으로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민호는 북만에서 반일투쟁을 견지하자면 염왕산을 잃지 말아야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있다. 대를 이어 내려오며 건설된 토비소굴의 위치와 환경이 그같이 가치가 컷던것이다.      민호는 여지껏 유격전을 해왔다. 그는 자기의 대오를 이끌고 태평진을 우회하여 염왕산에 접근했다.     우연이였던지 아니면 필연이였던지 일은 묘하게 되어갔다. 민호는 염왕산입구에서 눈지 얼마오라잖는 말똥을 발견했고 얼마가지 않아서는 한때 자기가 와있었던 외선초소마저 비여있음을 발견하게 되였다.     《적이 염왕산에 기여들었다!》     그는 긍정적인 판단을 내렸다.     대오는 쾌속전진했다.     그들은 차츰 저 앞쪽 어디선가 박격포탄이 작렬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 소리는 저녁때가 되어오는, 산그림자가 지고있는 골짜기로 빠져나오고 있었다.     산채가 가까워질수록 총소리도 들리였다. 무질서한 대응사격이 보여주고있는 표적이였다. 태평진에 주둔하고있는 관동군 오도야마사령이 전날 태평진을 미처 빠져나가지 못하고 포로로 되고만 류자다섯중 둘이 투항하여 길잡이가 생기자 염왕산토비굴을 아예없애버릴 예산으로 300여명의 수비대병력을 총동원하여 건곤일척(乾坤一擲)의 공격전을 개시한것인데 생각밖에 경각성높은 염왕산류자들이 사전에 만단의 대적준비를 하고있다가 완강한 저항을 하는 통에 진공은 고사하고 산채에 채 접근하지도 못한채 사상자만 내면서 시간을 소모하고있었던것이다.      한창 이런때에 하늘에서 떨어지기라도한것 처럼 오군자기마병이 갑작스레 나타났다.    《왜놈들에게 본때를 보이자!》     그들은 달려오던 그 바람으로 적의 뒷통수를 냅다갈겼다.     이것은 전혀 예상못했던 타격이였다. 배후로부터 이같이 날벼락을 맞게 된 오도야마는 진퇴량난이라 당황망조하여 어쩔줄을 몰라했다. 결국 그는 근 반수의 병력을 잃어가면서 산속으로 도망쳤다. 총탄을 맞고 꼭그라진 자, 너부러진자, 비명속에 숨을 거두는 자....화약연기 안개처럼 자오록한 염왕산 동남골은 살풍경이였다.     오도야마의 참패야말로 얼굴을 못들고 다닐 수치였다. 그는 분김에 군도를 빼여 길잡이로 써먹었던 류자둘의 머리를 날려버렸다.     한편 전장수습을 끝낸 염왕산은 환락의 불도가니로 되였다. 사기진작한 류자들은 일본군은 격파할 수 없는 강군이 아니구나 두려움만 없으면 얼마든지 쳐물리칠 수 있는 적이구나했다. 지어 어떤 류자들은 이제보니 우리와는 비교도 안되는 허깨비였구나 하고 평하면서 자신을 지나치게 과대하기도했다.     그런심리는 경계심을 마비할 수 있으니 위험스러운 것이였다.     위기를 아슬아슬하게 넘긴 위용강은 오군자가 가슴이 울렁거리도록 고마웠다.    《오인 나 좀!....》     그는 민호를 불러놓고 달려와 두 손을 잡고는 아래말을 잇지 못했다. 그래서 민호가 입을 먼저열었다.    《아무튼 돌아와서 고맙소. 이제는 넘어져도 함께 넘어지고 망해도 함께 망하기요! 세상에 공포된 염왕산의 수치를 벗어야하오 그러기 위해서 우리 손잡고 육탄혈전을 해나가기오!》    《그러기오! 맹세하오! 이제다시 변절한이 된다면 오인이 나를  옷벗겨놓소!》     위용강이 토해놓는 말이였다.     옷을 벗기라는건 깝지를 발라라는 말이였다. 토비들이 쓰는 가장 잔인한 사형방법이 바로 깝지를 바르는것이였다. 그들은 울라를 만드느라 소가죽을 벗길 때면 종종 이런 지독한 짓을 하군한다. 대체 어떻게 하는가. 먼저 소를 꼼짝못하게 나무에 매여놓고는 칼로 네발목의 깝지를 빙돌려 에여놓고 같은식으로 목의 둘레도 에여놓는다. 그런 후 목가죽에 칼끝을 넣어 쭉 내려와 배꼽아래까지 다 그어놓고는 네다리도 안쪽을 그렇게 그어놓는다. 그리고 나서 목가죽에다 쇠고리 몇 개를 단단히 건 후 매놓은것들을 풀고 몽둥이로 소의 궁둥이를 세게 답새긴다. 그러면 소가 놀래여 앞으로 내뛰게 되는데 깝지가 홀랑 다 벗겨지고마는것이다.     토비들은 소를 깝지바르듯이 사람도 깝지를 발라내는데 잔인하기 그지없는 이 사형방법은 오로지 극악한 철천지원쑤를 죽일때만 사용했다. 위삼포는 진사해를 그렇게 처단하려했다. 그런것을 민호가 그것이 너무나도 참혹하여 그저 꽃옷을 입히고말았는데 오늘은 위용강이 스스로 자기가 낙언을 지키지 않으면 그렇게 죽여버리라는거다.     중국에 다투고나서야 더 가까워진다는 리언(俚諺)이 있지 않는가. 이번일까지 격고보니 서로알만했다. 민호는 위용강의 손을 다시 굳게 잡았다. 이제는 서로 믿을만했다. 사교를 맺을만도했다.     승리연을 크게 차리면서 이제는 오군자가 염왕산과 합치여 이곳을 본영으로 하기로 결정지었다.     류자무장을 합하면 모두 560여명 되였다.     이제는 염왕산의 맏두령이 누가되여야 하는가 하는 말이 나왔는데 민호는 이 문제는 의논할여지도 없는것이요 의논하면 잘못되는것이라 찍으면서 제 주장을 다음과 같이 피력했다.    《선장자리를 선장이 지키듯이 맏두령의 자리는 위포토우가 앉아야합니다. 그렇게 하는것이 너무나 당연하지요. 이 염왕산을 누가 개척하고 지켜왔습니까, 위씨일가족이 아닙니까. 위포토우가 실력이 없다면 몰라도. 안그렇습니까?》     들어보니 맞는말이라 모두 그렇게 해야한다면서 찬동했다. 그리하여 위용강은 아버지의 자리를 승계하게 되었다.     민호는 포토우로 되었고 사량팔주는 정과 부로 하여 각 2명씩있게되였다. 그리고 류자무장을 조직함에는 의연히 군사편제를 사용했는데 류자 40여명으로 경비대를 내오고 500명으로 기동작전련 5개를 만들었다. 련에는 패, 패에는 반. 후근에 20명..... 있어야할것은 다 있고 나누어야할것은 다 나누었다.     이제는 국을 밝게하기 위해 일본군과 싸우는 중임이 남았다.     민호는 명의상 포토우였지 기실은 총지휘나답지 않았다. 여지껏 작전은 그가 지휘해왔고 앞으로도 지휘해야하니까. 류자들의 깨버릴 수 없는 재래습관으로부터 굳어진 조직형식을 보존하면서 항전을 해야하는데 문제는 그와 위용강이 어떻게 마찰이 없이 잘 융합되는가하는것이였다. 민호는 잘 융합되리라 생각했다.     이번에 치른 공방전이 짧은 시일내에 연출된 원인을 분석하면서 앞으로의 대책을 모색할 때 민호는 중대한 문제를 하나 생각해냈다. 그것은 적의 길잡이를 꼭 없애버려야한다는 것이다. 염왕산류자는 법규가 대단해 각자는 그것을 절대적으로 엄수하는줄로만 알았는데 이번에 보면 그런것도 아니였다. 포로가 죽더라도 길잡이를 서주지 않으면야 오도야마가 병사를 끌고 감히 쳐들어올가? 그러지 못하는것이다. 그의 손에 포로된자가 아직 몇이 남아있는지 그들이 배신하지 않으리라고 어찌믿겠는가. 포로된자 중 전향한 자가 몇이며 누구인가를 구체적으로 알아봐야했다.     민호는 날아올 화살은 미리뽑아버려야한다고 했다.      그랬더니 모두 그래야한다고 했지 다른말이 없었다.     왕견이 민호의 명령을 받고 정찰반에서 행동이 가장 령민하고 쪽박(입)이 굳은 류자 3명을 골라데리고 산채를 나갔다.     그들은 맡은 임무를 제대로 집행하고 있었다.     그 넷이 밤중에 토성을 넘어 태평진에 잠입한지 3일만에 염왕산류자였던 자의 잘리운 목이 하나 진복판 전선대에 걸렸다. 왕견이 포로된 자를 색출하여 하나 처형한 건데 그것은 경고였다.     경계가 삼엄한 진내에서 이런일이 발생하니 특무들은 눈에 쌍초롱을 켜고 잠입한 자객을 수사하는 한편 장차 써먹기 위해서 살려두고있는 포로들을 보배같이 여기면서 보호했다. 한데 살아있던 류자 셋이 한꺼번에 자결하고말았다. 그럴 수밖에. 자기가 이제 일본군의 길잡이를 서준다면 아무 때건 형님동생하며 지냈던 류자들 손에 저렇게 목이 날아날것은 물론 무자비한 그들에 의하여 온 가족이  화를 입을게 빤했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다른 하나의 우환거리는 오군자의 이름을 내걸고 도처에서 료락질을 해먹고 살아가는 그 날부란당이였다. 사세가 너무도 급촉하여 미처 처리못하고 온건데 그자들이 지금도 그냥 그멋으로 돌아다니는지 민호는 되도록 그자들을 설강(說降)해서 수편(끌어옴)할 생각을 갖고 하진국을 거기로 파견했다.     한데 그가 떠나간지 보름이 되었는데도 아직 돌아오지 않거니와 소식조차없었다. 민호는 속이 달아나기시작했다.     성질이 급한 왕견이 민호를 세 번째 찾아온다.       《여보게 우리 진국이 아직두 안왔지?》    《안왔소.》    《어떻게 된 판이여?》    《글쎄 낸들 알수 있어야지.》    《모르면 알아봐야지. 멍청한 사람아.》     민호는 그의 비난을 듣고서 그 자리로 청찰원 둘을 보냈다.     그랬더니 6일만에 그들이 돌아와 하는 보고를 들으니 기막히였다. 하진국은 이미 피살되였고 그 한무리의 날부란당은 지금도 돌아다니면서 료락질을 하고있었던 것이다.    《내가 얼빠진 노릇을 했구나!》     하진국을 잃고보니 민호는 통곡이 나갈 지경이였다.     딱친구를 잃은 왕견은 더더욱 분통이 터져 길길이 뛰였다.    《그자들을 빼버려! 빼버려! 어쩔테야, 네가 안가면 내가 갈테다! 내가 갈테야!》     이 억척보두를 당해낼 자는 없었다. 민호는 류자 30명을 주어 그를 내보냈다.       하늘에서는 비를 머금은 검은 구름이 바람에 흩날리였다.      사람을 갑갑하고 울적하게 만드는 을씨년스러운 날씨였다.     왕견이 이끄는 기마대는 그 날부란당을 찾아내려고 동분서주했다. 흡사 먹이를 찾아 헤매는 승냥이떼와도 같이.       어느날이다. 그들은 호수가 얼마안되는 마을로 들어갔다. 때는 정오무렵이였는데 30여명의 인마가 갑작스레 나타나는바람에 마을안은  복새통이 났다. 개들이 악패듯 짓어댔고 사람들은 놀래여 토비가 왔다면서 숨었다.     왕견이 어디론가 허둥지둥 가고있는 로인 하나를 불러 세웠다.    《령감, 왜 이러우 우리가 왔는데.》    《너희들은 어느패냐?》    《오군자외다.》    《또 그놈의 오군자냐. 푸대죽도 못먹는 집에 뭐가 있다구 자꾸달려드는거냐?》     그 로인은 증오의 불길이 황황 일고있는 눈으로 그들의 모양새를 다시한번 일별하고나서 두말없이 돌아섰다.    《이런 제길헐!》     왕견은 두덜대면서 그를 다시세우려했다.    《령감, 제길할! 달아나긴 왜 달아나우. 거기 좀 서시오. 서라니까. 한가지 물어볼거있수다.》     아무리 불러도 그 로인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쥉쥉 가버렸다.    《제길할! 다 그놈들탓이다!》     왕견은 그 마을을 나와버렸다.     모두들 시장끼가 들었다. 산구빈돌이를 앞에 놓고 지친 말도 쉬울 겸 안장에 처맨 건량대(乾糧袋)를 풀어 대충요기를 하고있는데 웬 말탄 녀석이 산구비를 돌아섰다가 이켠을 발견하고 멍해있더니 말머리를 되돌리는것이였다.        《게섯거라!》     왕견은 그자가 그냥 내빼려는것을 알고 권총을 제꺽뽑아 련거퍼 두방갈겼다.     첫방은 말궁둥이를 맟히고 두 번째 방은 말의 뒤다리를 맟혔다. 말은 궁둥이를 하늘높이 치켰다가 뛰지 못하고 풀썩 주저앉았다. 그통에 녀석은 지붕에서 떨어진 박같이 허망나가딩굴었다.     류자들이 달려가 그자를 붙잡아왔다.    《넌 웬놈이냐?》     왕견이 물었다.    《어이구. 어이구....》     그자는 여럿이 자기를 둘러싸는지라 두눈을 두리번거리더니 갑자기 울상이 되어 제 엉덩이를 만질 뿐 대답이 없다.    《자식, 엄부럭떨긴 제기!》     왕견이 화가 동해 큰 눈알을 부라렸다.    《이놈은 귀구멍을 뚜져놔야 알가부다.》     다른 한 류자가 비수를뽑았다.    《저, 저 말하지.》     그자는 그제야 느릿이 입을 여는데 과연 명창이였다.    《나는 오군자사람인데...》    《네가 오군자사람이라? 하하하....》     류자들은 모두 어이없어 폭소를 텃치였다.     그자는 말끝도 채 맺지 못하고 들통이 나 그만 남의 놀림마가리로 돼버렸다.    《야 이놈아, 네가 오군자라했지. 이름은 뭔데?》    《그렇다면야 우린 한형제구나. 그렇지?》    《이 어리석은 놈아, 네가 오군자면 나를 알만하냐?》    《?........》    《하하하....》     비난과 욕질이 빗발치듯했다. 그자는 털썩 주저앉아 턱주가리를 덜덜 떨어댈 뿐 어쨌으면 좋을지 몰라 쩔쩔맸다.      왕견이 그의 뒷덜미를 잡아 일으켰다.    《가자, 걸으라. 너희들 오군자가 있는데루 우릴 모시거라.》     바로 가려는 마을이였다. 날부란당녀석들이 며칠채 가지 않고 그 마을에 들어있었는데 이자는 정찰임무를 맡고 나섯다가 운수사나와 그만 포로가 되고만 것이다. 왕견은 그자의 입을 통해서 인면수심(人面獸心)의 그 한 무리가 설강하러 간 하진국을 공산당사람으로 몰아 죽이였거니와 남은 감히 못하는 료락질을 항일에 나선 오군자의 명예를 도용하여 기편하고 폭력을 쓰기도 하면서 계속 서슴없이 감행하고있다는것을 확인했다.     천추에 용납못할 죄요 살려둬서는 안될 놈들이였다.     한데 마을로 들어가자고 보니 한낮에 싸움이 붙을 것 같고  그런다면 무고한 주민이 곁불에 화를 크게 입을것 같아 피하여 린근은 산속에 숨었다가 밤중에 보초를 죽이고 엄습하여 두집에 나뉘여 자고있는 그자들을 몽땅 붙잡았다.     목숨이 귀한건 알았던 모양이다. 그자들은 죽음이 림박했음에도 살아보려고 설강을 받겠다고했다. 왕견은 인간도 아닌 너깟들을 누가 받아주느냐면서 마을밖으로 끌고 나가 모조리 죽여버렸다.  그리고나서 도장수의 머리를 베여 친구의 제단에 올려놓았다.    《진국아, 이 형님이 네 원쑤를 갚았네라. 사람의 인생이 영구불멸하는게 아니요 만세란건 있을수도 없는거야. 눈뜨고 살았으니 어차피 눈감고 가야잖니 저승가서 안식하거라.》 ...............................................................................................................................    * 게모점ㅡ농촌.   * 피자ㅡ개.  * 더러운 돈 주무르는 사람ㅡ도박군.  *마상ㅡ붙잡다. ...............................................................................................................................  
145    <<관동의 밤>> 제2부(27) 댓글:  조회:2957  추천:0  2015-02-04
                          27                    위삼포는 정신이 다시맑아지자 마치 알을 품은 암탉모양으로 애지중지 보존해 온 류자들의 수를 점검했다. 지금 산채에 남아있는것이 자기까지 포함해서 101명밖에 되지 않으니 원유의 1/3도 채안되였다. 나는 어찌하여 이 지경이 되었느냐 생각하면  그저 한숨밖에 나가지 않았다. 불효막심한 아들녀석이 돌아서지 않으면 그가 데리고 나간 200명류자는 다 잃어버리고만다. 오인은 50여명을 끌고나가서 여섯배로 만들었건만 자식은..... 본래는 기뻐해야 할 일이였건만 이꼴이 되고말았다. 위삼포는 이번에 오인이 대굳게 나오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서늘했다.    《세상에 이 위삼포를 감히 질책하며 훈계하는 녀석이 있다니! 아, 내 신세가 어이하여 이지경이 되였는가!  사변이 잃어나지 않았다면 이런일이 생기지도 않았을것을.》     하면서 세월을 원망해보기도 했다.     위삼포는 자기가 불민해서 미런한 짓을 한것이라 생각하기도 하고 민호의 형이 산채를 찾아와 항일에 나서게 든장질을 했기 때문이라 생각하기도 했다. 그가 야 이놈아 네놈이 이 늙은것의 복장이 터지게 만들었구나 하고 민수를 죽어라고 저주하고있는데 경위를 서고있는 류자가 달려들어와 보고했다.    《맏두령님! 위아가씨하고 소부인께서 돌아옵니다.》     위삼포는 진정했다.       《여기 내 앞으로 오게하거라.》     령이 떨어지기 바쁘게 두 녀인이 중앙산채에 들어서는데 향란이는 입에 밤을 문 꼴이고 며느리는 기분이 잔뜩 상한 꼴이였다.    《모양들이 왜 이래?》     위삼포가 물으니 향란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오랍을 봤어요. 과연 속상하는 일이얘요. 오랍은 정말 귀순했어요. 상받고 부귀영화를 누린다하잖았어요. 정말그래요. 지어... 》      그녀는 딴녀자하고 산다는 소리까지 하려다가 제 올케를 힐끗보고는 그만 입을 단아버린다. 소춘매는 끝내 울음을 텃치고말았다.      며느리의 가엽은 꼴을 보니 위삼포는 화가 더나서 곁에 없어서 듣지도 못하는 욕을 아들에게 했다.    《쓸개빠진 자식 제 애비를 속혀가면서 그따위로 살아간단말이냐? 무도막지한 놈 같으니라구 원!》     성질이 화약같은 그는 자기가 당장가서 아들의 멱살을 쥐여 올것 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발연대로하고있는 그 모양은 흡사 선불맞은 호랑이와도 같았다. 맏두령이 너무 격분하여 리지를 잃을것 같아 사량팔주는 제발참아달라고 그를 진정시켰다.     위삼포는 여러날을 두문불출했다. 이것이 그한테는 아마 살아생전에 겪어보는 제일 준엄한 시련이 될 것이다.       부부간의 정과 사랑이 남에게 빌려주는 놀음감이 아니였다. 소춘매는 시누이와 함께 태평진에 가서 제 남편이 다른 녀자와 속살을 섞고있음을 확인하고 돌아와서부터는 그에 대한 정도 미련도 싹 다 떨어지고말았다. 위삼포는 며느리의 쑥대강같이 허트러진 머리꼴을 볼때마다 기분이 상하면서 가슴에서 화가 그냥 일군했다. 마른나무에 당긴 세찬 불이 채 타지 않고 스러질리 만무였다.    《안되겠다. 내하구 같이 가서 네 오래비를 덜미잡아오자.》     위삼포는 어느날 딸을 보고 말했다.     향란이가 거절할리없다..     위삼포는 어느날 끝내 딸과 함께 호위류자 다섯을 골라서 데리고 산채를 나와 태평진으로 향했다.     하늘을 덮고있던 비구름이 벗겨져서 좋은 날씨였다. 일행 일곱은 두 녀인이 전번에 왔을 때와 같은모양으로 오후에 태평진에 당도했다. 한데 지금은 북대문에 보초가 둘이 아니라 네댓됐다. 그들이 드나드는 사람을 깐깐스레 조사하는것을 보니 경계가 전만 썩  삼엄해졌음이 분명했다. 그래도 어쨌든 들어가야 할 그들이였다.     보초서는 자들은 이켠의 말탄 일곱사람을 서라해놓고 총을 꼬나든채 어디서 오느냐고 캐물었다. 향란이가 선듯이 일을 열어 우리는 염왕산에서 오는데 오빠를 만나려한다고 했다.       《아, 그런가요! 그런걸 우린 또.....》     보초 하나가 사나운 몰골이던것이 대뜸 양같이 순해지면서 친절을 부리기까지 했다.    《잠간만 기다려주시오, 잠간만. 내 얼씨덩....》     그 보초가 책임자같은데 웬 일인지 그들을 성안에다 선듯이 들여놓지 않고 이러면서 어디론가 달려갔다.     다른자들은 호기심을 갖고 이켠을 지켜봤다.     위삼포는 달려간 자가 아들에게 자기가 왔음을 알리는줄로 알았다. 그래 말잔등에서 내리지 않고 불편한대로 기다리고있노라니 아느새지나서 과연 10여명이 급급히왔다. 입은 옷을 보니 그들은 자위단도 아니고 류자도 아니였다. 위용강도 보이지 않았다.     향란의 머릿속에 불길한 예감만 갈마들었다.      《아니, 보자는 오랍은 안오구 저것들이 와서는 뭘 하자구?》     그자들은 모두 검정바지에 팔짜른 흰적삼을 입고 있었다. 기중 나이많은 50대의 한 자가 맥고모를 썻는데 긴 끈을 어깨에 걸어 멘 커다란 목갑권총이 한쪽 옆구리에서 거들거리고 있었다.     나이 많은 자가 위삼포앞으로 곧추 다가오더니 맥고모를 벗어 손에 쥐고 허리를 굽혀 인사차림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로인장께서 아마 위대장님의 부친이겠죠? 찾아오셔서 몹시 반갑습니다. 원로에 로고가 많으셨으리라 믿습니다.》     아들이 나오지 않아 화가 나는데다 나으리라 부르지는 않고 방자하게 자기를 이웃로인대하듯 하니 속이 꼴리기 시작한 위삼포는 그자를 곱지 않게 보면서 내뱉었다.    《넌 대체 어떤놈이냐?》    《예? 저, 저는 여기 유지회 회장이웨다.》    《네가 유지회 회장이라, 건 또 무슨 벼슬인데?》     위삼포가 흥미를 가지면서 내뱉듯이 건성으로 물어보고있는 이런 가벼운 어조에는 비꼬는 뉴앙스가 다분했다. 기실 그는 몰라서 물어보는것이 아니였다. 일본관동군은 올 3월초 만주국의 집정제를 군주제로 고치고 아이신줴러 부의를 황제로 올려놓아 그를 세습군주가 되게 만들어주었다. 국호도 만주제국이라 고치고 년호를 강덕(康德)이라 달았으니 부의를 또한 강덕황제라 부르게도 된것이다. 이 철두철미한 괴뢰정권이 웃꼭대기로부터 발끗까지 저의 통치기구를 개선했는데 본래있던 청향위원회(淸鄕委員會)를 6월에 유지회(維持會)로 이름을 바꾸었던것이다. 이 치안조직의 통수는 바로 일본관동군사령관이였다.      태평진의 유지회역시 주둔군과 배합하여 진내에 잠복해있는 비밀적인 반일조직이나 반일사상을 갖고있는 사람을 색출하여 적들에게 넘겨줌으로써 적이 그들을 고문하고 학살하게 만들고 있었다. 하기에 주민들은 거의가 겉으로는 유지회를 옹호하는 것 같아보지만 속으로는 무서워하면서 몹시 증오했다.         그런자들이 지금 나와서 위삼포일행을 영접했던것이다.     위삼포는 처음부터 그들을 똥개만도 못여기고 있었다.    《나는 너희들을 보자구 온게 아니다. 그러니 어서 용강이를 나오라구 해라.》    《로인장! 아, 저 나으리님! 아드님이야 이제 곧 대면하시게 되지요. 우선 숨을 돌리면서 로독부터 풀어야하잖습니까. 자, 자, 갑시다. 멀잖습니다. 저깁니다.》     그는 위삼포일행을 북대문에서 가까운 길동켠의 한 청기와벽돌집으로 안내했다. 앞벽의 문가에 라 쓴 간판이 걸려 있었다. 이 유지회건물의 왼편에 있는 집이 자위단실이였는데 그 자위단실 뒤켠 널다란 운동장에서는 얼추계산해도 500명이 실히 될 자위대원들이 한창 오후훈련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지금 태평진에 있는 일본수비대는 병력이 모두해야 300여명밖에 안되였는데 병영은 남쪽켠에 있었다.     유지회의 왕회장은 보초가 달려와 위삼포가 왔다고 알리니 즉시 오도야마에게 이 일을 보고하면서 전번에 두 녀인이 와서 위용강에게 취한 거동을 보아 이번에 그의 아버지가 온 목적 역시 아들을 끌어내자는 심사가 아니닌지 모르겠다고 했다. 오도야마는 왕회장에게 먼저 그의 래의를 알아내라고 지시했다. 위삼포가 온 목적이 과연 그렇다면 수단을 가리지 말고 그를 돌려세우라는거다.     유지회의 왕회장은 이전부터 소문듣고 알아온 토비두목을 직접대하고 보니 오금이 떨려났지만 자기뒤에는 강대한 일본군이 있는지라 기운을 내여서 임무를 완성하느라 부산떨었다. 그는 수하 사람들에게 닭을 잡고 물고기를 사다가 얼른 음식상을 준비하라 해놓고나서 자기는 시종 손님들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손수 차물을 따라준다 담뱃불을 붙여준다 성의를 보여주고 있었다.     향란이는 속으로 저게 어쨌다구 벼락친절을 보이는거냐 덩치값못하고 개처럼 알찐거리네 하면서 랭소했다.     참대를 결어서 만든 등의자에 펀안히 앉은 위삼포는 피우던 담배를 비벼껐다. 아들을 생각했다. 애비가 왔건만 아직도 나타나지 않고있으니 그지없이 괘씸했다. 그는 몸자세를 고쳐 앉고는 눈을 지긋이 내리깔면서 속으로 윽별렸다.        《쓸개빠진 놈! 귀순이 뭐냐, 귀순이! 애비낯에 똥칠을 하다니 원! 보기만 하면 육장을 낼테다!》    《오랍은 대체 무슨짓을 하고있어요. 량심이 있나요 없나요?》     향란이는 오빠를 만나면 첫마디부터 꾸짖어놓으리라 별렀다.     누구하나 왕회장의 친절을 친절같이 받아주지 않았다. 하여 객실은 무거운 침묵속에서 시간만 흐르고 있었다. 왕회장이 몇 번이나 말을 꺼내려다가 위삼포의 태도가 하도 엄하고 쌀쌀하니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왕회장님, 손님음식상이 다 되었습니가.》     한자가 와서 알리였다.    《저....자, 갑시다. 시장하실텐데.》     위삼포는 들었는 둥 말았는 둥  아무응대도 없다.    《왜 그래요. 곤해하시는 분을 좀 작작 건드려요.》     향란이는 그를 향해 막설하고나서 다섯류자보고 너희들이 먼저가서 먹거라 하면서 한마디 일깨워줬다.    《구복만 달래고 판산은 적게들 해요.》     그들이 나가자 손가락에 커다란 금반지를 낀 사나이가 하나 나타나 객실에다 발을 들여놓더니 문가를 한발도 떠나지 않았다. 그자의 몸에 권총이 있는것을 발견하자 향란이는 손이 무언중 뽐창이 꽃혀있는 머리로 올라갔다.     유지회의 왕회장은 위삼포가 차려주는 음식도 먹을 념을 하지 않고 죽은듯이 함구무언이니 갑갑함을 못이겨 끝내 입을 열어 이쪽을 건드렸다.    《저.... 한가지 물어봅시다. 위나리께서 모처럼 여기까지 왕림하신 목적이 뭣인지요?》     위삼포는 고개를 천천히 들고 그를 쏘아봤다.    《사사를 캐서 노여우리라 봅니다만 이건 내가 먼저알아야겠습니다. 아드님께서야 만주제국을 위해 봉공하려고 출발한것이니 천만지당하지요. 로인님, 그렇지 않습니까.》    《봉공이라? 지당하다? 량심팔고 개로 되는것도?》    《무슨말씀을 그렇게....》    《이놈, 언감생심 나하구 그걸따지고 물어? 돼먹지 못한 놈!》     위삼포는 어금이를 깨물더니 불시에 손바닥을 쫙 펴 그의 따귀를 철썩 갈리였다.     미처피할 사이도 없었다. 왕회장은 얼뺨을 맞고 그 자리에서 팽이처럼 팽그르 돌더니 그만 넉장거리로 나가 넘어졌다.     문가에 섰던 자가 왕회장이 죽는 줄로 알고 어느결에 권총을 뽑아 위삼포에게 갈겼다.     향란이는 뽐창을 뿌려 그자를 꼭끄라뜨리곤 총을 맞은 아버지를 급히 안았다. 이러는 사이 왕회장이 뛸쳐일어나 엎드러지고 곱드러지면서 밖으로 내뺐다.     밥을 먹던 류자들이 총소리나니 상을 엎어지르면서 밖으로 달려나왔다. 위삼포는 가슴을 맞았으나 아직 숨은 넘어가지 않았다. 류자하나가 그를 둘쳐업자 모두 그를 호위하면서 말이 있는데로 달려갔다.     한편 왕회장이 황황겁겁 달려가 알려서 훈련하고있던 자위대원들이 신속히 무기를 잡고 쓸어왔다.     이켠은 자칫하면 포위에 들번했다. 향란은 길을 인도하면서 제무리를 지휘했다.       《압련자말고 상탁!》(주)     이때 위용강이 마침 저택에 있었는데 보초가 달려들어오며 정황이 있다고 알려서 나와 보니 수백명 자위대원이 총을 들고 이켠으로 오고있는지라 즉각 류자들을 일으켜 대적태세를 취했다.     류자 하나가 사람을 업은 외 다른사람들은 그를 호위해 말을 방패로 삼아 총구를 대방에 겨누면서 뒤로 급히 밀려오고 있었다.     향란이가 높이웨쳤다.    《오랍, 아버지 뎃어!》(주)     과연 업혀오는 사람이 아버지가 옳은지라 위용강은 갑자기 미쳐난 사람모양으로 길길이 뛰였다.    《어찌된 일이냐, 어찌된 일?》    《저놈들하고 물어봐요.》    《답새기라!》     일곱이 담장안에 들어서자 이켠에서 총을 갈겨대기시작했다.       길을 메우면서 죄여들던 자위대원들은 은페물을 미처찾지 못해 쓰러졌다. 그러면서도 물러가지는 않았다. 그들은 동쪽구역을 차지하고 이켠을 향해 어설픈 맛불질을 해댔다. 하지만 자위대원은  불질잘하는 류자들의 손에 사망자만 늘어갔다. 과연 참중했다.     오도야마는 처음에는 반일군이 쳐들어오는줄로 알고 놀랬다. 그러다가 그런게 아니라 자위대와 입성한 토비간에 마찰이 일어난것임을 알고 한시름놓으면서 비상소집령을 내려 자기의 수비대를 출동시켰다. 그는 누가 총질을 멈추지 않으면 누구를 답새기리라 선포했다. 량켠다 그가 개입해서야 불질을 멈추었다.    《제편끼리 싸우다니!》     오도야마는 부레가 끓어 펄 펄 뛰였다. 그는 길에 널려진 숱한 시체를 한번다시 보고는 쓸쓸히 웃으면서 대체 어떻게 된건가고 알아보았다.     목숨을 잃지 않은 왕회장은 그의 앞에 달려와 일이 되어진 경과를 사실대로 고해바쳤다. 그는 일본말을 괜찮게 했던거다.    《내가 아들을 찾아온 그 령감을 접대했지요. 그런데 령감쟁이 차려주는 음식도 먹지 않고 밸만 쓰더란말입니다. 그래서 나는.... 두마디안짝에 귀뺨을 때립데다. 난 형편없이 넘어갔지요. 그걸보고  호위가 총을 놔서 령감을.... 》    《그래서 저모양이 됐다는거냐? 건데 자위대는 왜 출동했냐?》    《그, 그건 저.... 내, 내가 알렸더니....》    《이 밥통같은 녀석! 일은 네녀석이 그르쳤구나!》     대노한 오도야마는 군도를 쫙 뽑더니 단칼에 그의 목을 날려버렸다. 그깟거 하나 없어져서야 아까울것 없지만 토비무장을 잃른다면 아까운것이였다.     치명상을 입은 위삼포는 혼미상태에서 깨나지 못하고 입에 피를 억문채 숨을 거두고말았다. 여직 잔병한번 알아본적이 없는 그는 체질이 좋아 아직은 얼마든 더 살수있는 사람이였다. 아들을 찾아오지 않았언들 이렇게 죽지 않았을것이다.     아버지가 제 때문에 죽음을 당했다는것을 알게 된 위용강은 이제와서야 자기는 과연 불효자식이였음을 절실히 뉘우치면서 후회하기 시작했다.     한편 오빠를 원망하면서 아버지의 횡사를 통탄해 하는 향란의 애절한 울음은 귀순을 잘한일로 여겨온 류자들을 깨우치면서 그들도 두령의 죽음에 대해서 몹시 슬퍼하게 만들었다.          《참 아니됐어. 이건 응당 생기지 말아야했을 불행이야. 나는 황군을 대표해서 돌아가신 이의 안식을 비는바이요.》     오도야마가 위삼포의 조난에 이같이 애도를 표시했다.    《쳇, 닭이 죽으니 여우가 눈물흘리는게지.》     향란의 뇌임이였다.     오도야마는 위삼포의 장례를 어떻게 치르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관심이 특별했다. 그는 위용강을 보고 장비일절을 관동군에서 책임질테니 장의를 굉장하게 하라면서 유체는 어떻게 하나 염왕산으로 들여가라했다. 위용강은 그럴것이라했다. 그런것을 향란이가 아니 오랍은 정신나가지 않았는가 하면서 견결히 반대하고 나섰다. 그녀는 오도야마가 이 기회에 염왕산 산채의 실태를 료해하자고 그런다는것을 눈치챘던 것이다.    《오랍 정신차려요. 저 사라자(털보)가 왜 저런 말을 할가? 사라자는 부처님이 아니야. 저자의 말대로 하면 우리 산채로는 선두자(정탐군)가 묻어들어갈게 아니요.》     들어보니 녀동생의 말이 옳은지라 위용강은 과연 정신차리고 다시 제주장을 세웠다.    《참 그렇지! 우리 류자들은 액사한 유해를 자리옮기는 법이 없다. 그러니 나는 부친님의 시신을 여기에다 묻으련다. 내 맘에 드는 산이나 고르게 해달라.》     통역관을 통해서 이 말을 들어본 오도야마는 하는 수 없이 그러면 그렇게 하라했다.    《좋아, 좋아! 그럼 그렇게 하지! 난 자네가 충실하리라 믿네!》      털보는 입을 뻐개며 웃기까지 했다. 염왕산 산채의 실정을 탐지못한다해서 해를 볼건 없었다. 피장파장이다. 오도야마는 위삼포가 여기에 묻히면 아들은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도 태평진을 떠나지 않으리라 여겼던것이다.     이리하여 위삼포는 염왕산에 들어가지 않고 먼저 태평진에 묻히게 되었다. 그의 묘가 있는 곳은 태평진에서 서북쪽으로 거리가 약 7리가량 떨어진 한 자그마한 야산기슭이였다. 위용강은 시기를 보아 장차 아버지의 시신을 염왕산에 이장할 생각이였다.     향란이는 아버지의 장례가 끝나자바람으로 함께왔던 류자 5명을 데리고 염왕산으로 돌아갔다.      《화모자(총)는 안써도 청자(칼)는 쓸거야. 침룡(베개)은 같이 베도 동상이몽. 한조자(수건) 수병자(비누) 같이써도 해태자(창녀)는 선두자(특무)요. 제발 내말들어줘요, 오랍.》     이것은 떠날 때 오빠한테 가만히 부탁한 말이다.     위용강은 그것을 명심해 들었다.     한편 주혜란은 이번사건이 있은후부터는 위용강의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고 그의 일거일동을 감시했다. 위용강이 오늘와서까지도 그것을 모르는바 아니지만 그녀의 은근한 감시를 벗어나 다른일을 하기도 어려웠다. 주혜란은 그야말로 그의 몸을 칭칭 감고있는 한 마리의 독사와도 같았다. 위용강은 이제와서야 자기는 처음부터 그 독사에게 자기의 령혼을 빼앗기였음을 깨닫게 되였다. 이제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그것이 문제였다. 길을 잘못걸었으니 돌아서야 하는데 자칫잘못했다가는 자기를 감고있는 간휼한 독사년에게 물려 볼장은 다 보고마는 것이다.     어찌알랴, 인간만사는 새옹지마(塞翁之馬)라 모든 것이 전전(轉轉)하고 무상하여 인생의 길흉화복을 예측키 어려우니 하루의 안녕도 24시간을 다 지내봐야 알게 아닌가!          어느덧 여름절기도 다가고 있었다. 여지껏 토비사나이 하나를 금장이 금불리듯이 제마음대로 갖고 놀아온 주혜란은 오도야마로부터 이제 가을철을 잡으면 곧 시작될 일본군의 토벌작전을 잘하기 위해 위용강의 사상실태를 진일보장악하고 그를 반일군토벌에 앞장나서게끔 사상준비를 시키라는 지시를 받았다.      아직도 교묘하게 위장해서 자기는 정체가 드러나지 않았다고 여기는 주혜란은 위용강의 감정을 온당하게 지배하려들었다.   《여보세요. 얼빠진 사람깥이 뭘 그렇게 생각하고있나뇨. 오늘밤은 만져주지 않을래요?》    그녀는 실한오리 없는 알몸으로 누워서 사나이를 불렀다.    위용강은 눈이 툭 불거지도록 그녀를 여겨보았다. 저승간 아버지가 다시 부활하여 이 세상에 돌아온다면 자기는 죽을때 까지 매일매일 그의 앞에 무릎꿇고 엎디여 머리를 조아려가면서 사죄하리라 맘먹고있던참이다. 계집이 방정맞게 그런 생각을 뭉그러뜨리니 위용강은 불쾌했던것이다.     주혜란은 눈을 할끗빨았다. 사내의 정서변화를 직감한 그녀는 속을 옹쳐 물면서 애교를 떨었다.        《아이참, 왜 날 그렇게 봐요. 저 불량한 눈 좀 보지. 그러지 말고 어서와요. 놀아보자요.》    《어, 허허. 그, 그래. 놀아보지. 흐흐흐....》     위용강은 녀인의 나른한 육체가 안겨지자 남근이 딴딴하게 일어서면서 못견디게 요동쳐 서둘러 옷을 벗어 던지고는 달려들었다. 다른때와는 다르게 지압도 안마도 키스도 없이 그것을 말둑박듯 쿡 찔러 넎었다.    《아이 아파라! 오늘은 왜 이 지랄이여?》     녀인은 사내의 거칠고 조포한 행동에 반항하려했지만 그가 타고 올라 기운껏 내리누르는지라 어쩔 수 없었다.     주헤란은 미친 놈 방아짷듯 헐씨근대며 굴러대던 사나이가 뺄것을 다 빼고 늘어지기를 기다렸다가 물었다.     《어때요. 황군덕에 극락을 이만큼봤으면 이젠 보답해야죠.》       《뭘 어떻게 보답하라는건가?》    《내달부터 토벌이 시작돼요. 함께 출전해야죠.》    《출전하라, 나더러 반일군잡이를 하라는건가?》    《그렇지요. 이제 오도야마사령이 부를거얘요. 그렇다는걸 알고 미리 사상준비를 해야죠. 안그런가요?》    《쳇!.... 》    《체가 뭐얘요, 말안들으면야 좋은일없지. 개를 뭣에 쓰자구 기르겠나요.》    《이년이!?》     녀인의 외람된 실수에 불똥이 튄 위용강은 불현간 사나운 개모양으로 성깔을 부리였다. 주혜란은 이전만큼 만만히 보고 말을 제멋대로 던지였다. 이것은 그야말로 만회할 수 없는 큰 실수였다. 몹시 격노한 위용강은 일어나는 그녀를 주먹으로 갈겨 쓰려눕혔다. 그리고는 옷을 주섬주섬 주어 입으면서 주절댔다.    《이제보니 이게 다 네녀의 탓이였다, 불여호같은 쌍년!》     버스럭대는 소리나기에 돌아다 보니 주혜란이 머리맡벽에 걸려있는 칼집에서 칼을 빼고 있었다. 위용강은 잽싸게 달려들어 그녀의 손에서 칼을 빼앗아냈다.    《네년이 날 어쩔려구, 흥! 내 오늘밤 너를 잠재워줄테다!》     녀인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면서 발작적으로 몸을 떨었다. 오도야마의 총애를 받아오던 마타하리는 자기의 말일이 닥왔음을 직감하고 절망한것이다.     위용강은 그녀를 다시한번 주먹으로 때려눕혀놓고는 소리도 지르지 못하게 수건으로 아갈잡이를 시켰다. 그리고는 포승줄을 찾아 옴짝달싹못하게 팔과 다리를 묶은 후 술궤에서 배갈 한병을 끄집어냈다. 이때야 녀인은 비로서 정신이 들었다. 한들 어쩐단말인가. 여지껏 잠자고있던 토비의 야성이 발작한 위용강은 손에다 칼을 쥐고 온몸을 떨어대고있는 녀인곁으로 다가갔다.    《내가 아무래도 네년의 심통이 어떻게 생겨먹었는갈 봐야겠다. 아무리봐도 네년은 인간이 아니고 요귀다.》     그는 칼로 녀인의 배를 갈랐다.     그리고는 심장을 뜯어냈다.     그는 뜯어낸 심장을 안주하여 술 한병을 다 마시였다.     문밖보초를 서던 류자가 그제야 어떤 감촉이 들던지 들어왔다.    《보거라, 내가 저년을 수습했다. 저년은 사람아니구 요귀야. 난 머저리돼서 여적지 요귀한테 홀려 놀았다.》    《요귀면야 처치를 잘했지!》    《안되겠다! 가자, 가! 여기를 떠나야한다!》    《형님, 지금말인가요?》    《그렇지, 지금 당장! 네가 형제들을 깨워라, 마인(집합)!》     이때는 야밤삼경이였다.     가마를 마스면서 훈련된 류자들이라서 동작이 빨랐다. 하건만 이네들의 이러한 비밀적이고도 돌연적인 행동이 오도야마가 느려놓은 그믈을 쉽사리 찢어버리기는 어려웠다. 오도야마는 충돌이 발생한 후 위용강이 반란을 일으켜 도망칠것을 대비해 백배의 감시를 해왔던것이다.    《제길할거 밝았네! 물이 새나갔나?》(주)     출발하자고 보니 저애가 나타났다. 가까운 자위단에서 그들의 동향이 이상함을 미연에 알아채고는 북문을 지켰던것이다. 위용강은 이미 내친 결심이니 거둘수는 없었다.    《구도관자!》(주)     갑작스레 터지는 총소리가 밤의 고요를 깨뜨렸고 온 태평진이 잠을 깨기시작했다.     류자들은 봉쇄선을 뚫고나가야했다. 총소리 콩볶듯하는 속에서 말들이 울부짖으면서 절명했다. 이쪽은 대가를 치르고서야 성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위ㅡ》     위용강은 사격권을 벗어나서야 고삐를 채여 말을 세웠다.     몸을 돌려 뒤쪽을 보았다.     말들이 앙칼지게 울부짖었다.     그의 뒤를 바싹따르던 말들이 달음질을 멈추고 있었다.     위용강은 입으로 달아오른 열기를 확 내뿜고나서 높은 목청으로 불렀다.    《곽락준이!》     대답이 없다.    《곽락준이 어디에 있는가?》     의연히 대답이 없다가 저 뒤에서 누군가 알려주었다.    《곽락준이 넘어갔소!》(주)    《뭐라, 네가 똑똑히 보기나한거냐?》    《보잖았으면 내가 말할가.》     곽락준은 염왕산을 나오면서 기마련을 새로편성할 때 선발될 1련의 련장이다.    《경지강!》     그도 대답이 없다. 다시불러도 역시.    《왜 대답이 없는가, 경지강도 넘어졌는가?》    《그랬소.》     어디선가 신음에 가까운 석쉼한 대답이 들려왔다. 그러니 2련의 련장도 죽은것이다.     패장들을 찾기시작했다.    《마승구있는가?》    《어째그러오. 나 여기있소.》    《됐어, 넘어가지 않았으니!》     위용강이 대오를 점검해보니 류자가 54명이나 없어졌다.    《제길할거!》     상망이 참중했다. 어쩌면 잃어버린 류자가 신통히 민호가 데리고 나간 류자수와 같을가! 남은 그것으로 력량을 몇배 장성시켰건만 자기는 되려 그만큼 잃어버렸으니 대체 무슨꼴인가. 위용강은 망연자실했다. 염왕산이 생겨 가마를 마스면서 잃은 유자를 다 합쳐도 이렇게까지는 되지 않을것이다. 아버지를 잃고 류자를 잃고 신망을 잃고...위용강은 회오의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산채에 이르고 보니 해가 바지랑대만큼 올라왔다.     기쁨이 잠겨야 할 산채가 외려 싸늘한 두려움이 안개처럼 덮히였다.  일본군이 가만있을리 만무하다. 태평진을 뛸쳐나왔으니 다행이긴하지만 잃어버린 54명의 류자중에 부상당하고 죽지 않아 포로된 자는 없겠는가. 우환을 꼬리에 달았으니 산채를 자연히 불안하게 만들어놓은것이다.     목첩에 닥다들린 시급한 정세에 대처하기 위해서 사량팔주는 반둬더의 장악하에 회의를 열었다. 그 회의에는 향란이도 참석했다.     반둬더가 말했다.    《여기에 남아있은 백 열여섯에다 백 마흔 여섯을 합하니 이제는 모두해봤자 이백 예순 둘뿐일세. 적은 노려보다가 쳐들어오자구 할것이요.》     수이샹이 말결을 달았다.    《우리는 대처해야지! 결판을 내야지!》     이에 처음부터 위용강을 내보내는데 대해 그리 썩 달라과 하지 않았던 양즈방은 산채를 지켜서라도 결사적으로 싸워야겠소만 일패도지(一敗塗地)를 예상케 하는 지금의 처지에서 어떻게 하면 류자들의 사기를 돋구겠느냐했다.     사실 형편이 그렇긴해도 투항하거나 귀순하려고 마음먹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들은 오랜 의논 끝에 오로지 방어를 가강히 하면서 안병부동(安兵不動)하는것만이 유일한 생로라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지게 되었다. 그것이 과연 명지한 방법일가?     향란이가 일어나서 한마디했다.    《전 과연 리해안되네요. 모두 이런 형편에 처해갖고도 왜서 오군자의 지원을 받아볼 생각들은 안합니까? 소식만 전하면 달려와 구원해줄텐데.》     양즈방이 머리를 저었다.    《오인이 이제는 우리하구는 척진것 같은데 힘을 써줄가?》     다른 두령들도 그같은 견해였다. 지어는 제 손으로 지은 죄과면 제가 받아야지 나가 싸우는 사람까지 괴롭힐거야 뭔가 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에 향란이는 오인이 우리와 척을 졌다고는 생각말라 그는 오빠가 귀순하니 불만을 품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를 남으로 보는데 어찌면 남이 되는가 그까지 아예 버릴셈인가 그도 그렇고 그가 데리고 나간 류자들도 다 우리 사람이 아닌가 그러니 소식만 전하면 달려올것이다 달려와 함께 싸울것이다 하고 말했다. 하여 의논이 다시 진지하게 벌어졌는데 모두들 향란의 말이 맞다 오인에게 지금 염왕산이 당하고있는 처지를 알린다면 그는 방법을 댈것이라는 것으로 인식이 통일되였다.     한데 그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찾는단말인가?     향란이는 그 임무는 자기가 맡겠다고 자진해나섰다.     어느날 향란은 과연 말 한필을 타고 민호를 만나러 떠났다. ...............................................................................................................................    *  압련자말고 상탁ㅡ말을 타지말고 행동에 배합하라.      *  데다ㅡ총에 맞다.      *  물이 새나가다ㅡ비밀이 새여나가다.      *  구도관자ㅡ함께 모여서 출격.      *  넘어가다ㅡ총에 맞아 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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