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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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의 밤>> 제2부(37)
2015년 02월 04일 10시 29분  조회:2655  추천:0  작성자: 김송죽
 

                          37

 

 

 

 

 

 

    목가선은 화남(樺南)을 경유하면서 곧추 남북으로 길게 뻗어있었다. 한데 화남시내는 정거장과 10여리가량 사이떠있었다. 그 사이는 비행장이다. 좀 둔덕지고 평평한 그 비행장은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면서 급히 만든것이였다. 

    해살이 호듯호듯 내리쬐였다.

    민호는 정거장을 향해 걸음을 놓고 있었다.

    비행장을 지나올 때다. 그의 뒤에서 누런 협화복을 입고 머리를 중모양으로 빡빡 깎은 젊은것이 셋이 따라오면서 일본말 조선말을 섞어가면서 저희들끼리 지껄이고 있었다. 내가 저 나이때는 독립만세를 부르느라했건만 네녀석들은 일본말을 배워 왜놈이 다 돼가는구나. 창씨개명을 하고....왜놈들이 조선지도를 저들 일본지도와 꼭같이 빨간칠을 먹인걸 보고 가슴아파나 하겠느냐. 민호는 뒤돌아보고나서 속으로 뇌이고는 흡사 애기엄마의 젖무덤같이 여기저기에 있는 격납고와 비행기들을 눈주어 보았다.

    셋은 뒷따르면서 음성을 낮춰 수군거렸다.

   《야야, 저사람 눈은 왜 자꾸 저기다 팔가? 수상하잖아?》

   《비행기 첨보는 되놈아니여?》

   《아니 그런것 같잖아. 모색이 어디....》

    민호는 귀바퀴를 세웠다. 조선에 일진회가 생겨 나라를 팔아먹더니 만주에는 신통히 모양이 같은 협화회가 생겨 왜놈의 개질을 하는구나. 민호는 그자들이 자기를 의심하기 시작하는것 같아서 때려 검질을 해치울 피자녀석들 하고 속으로 욕했다.

    민호는 걸음을 재우치면서 천옥령을 다시금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녀는 걸음마다 위험이 따를것이니 천만주의하라고 당부했던것이다. 그러잖아도 민호는 신경을 세우고있는건데 어쩌면 한발먼저 그녀의 도움을 받은 왕견이 변신술이 좋아서 잘배겨내고있는것 같아 부럽기도했다. 지금 어디서 뭘하는지?.... 민호는 천옥령을 만나고 보니 갑작스레 망운지정(望雲之情)이 되살아나면서 부모님들이 절절히 그리워지는지라 차라리 기차타고 먼저 고향에나 가보자고 맘을 먹었다. 하여 곧추 정거장으로 향한거다. 

    역전에 이르렀다.

    민호가 차표를 사려니 경찰이 또 그놈의 신민서사라는걸 외워란다. 련습을 해둔거니 외웠다. 그리고나서 차표를 끊었다. 한데 그가 방금 끊은 차표를 손에 쥐고 돌아서니 경찰 둘이 앞을 턱 막아서는것이였다.

    이 자식들이 왜 이러나? 민호는 가슴이 덜컥했다.  

   《어디로 가는거냐?》

    한자가 양복차림인 그를 치보고 내리보면서 캐묻더니 손을 내밀었다. 차표를 내놓으라는 뜻이다.

    민호는 차표를 주었다.

    경찰은 차표를 보지도 않고 제 호주머니에 넣었다.

    민호는 주먹이 나가려는것을 겨우참았다.

   《왜 이럽니까?》

   《왜가 뭐냐, 넌 의심스런 놈이야. 가자!》

    민호는 눈앞이 아찔했다. 아까 그녀석들이 밀고한게 아닐가?....

    짐이란곤 없었다. 차표를 떼고 남은 돈이 호주머니에 있었다. 그리고 회중시계가 있었다. 그자들은 그것을 몽땅 압수했다. 두 개남은 뽐창은 혁디에 찔렀는데 용케도 발각되지 않았다. 그것만 나졌더면 민호는 죽든 살든 당장 격투를 벌렸을것이다.

    이상했다. 정거장에는 오늘따라 웬 경찰이 많아졌다. 그리고 그만이 아니라 다른사람들도 잡혀들고 있었다.

   《가자, 걸으라!》

    경찰이 권총을 꼬나들며 위협했다.

    민호는 도망칠 기회를 노리면서 걸었다.

    경찰이 그를 대합실과 이어붙은 저쪽방에다 밀어넣었다. 거기에 민호처럼 붙잡혀 들어온 자가 20여명되였다.

   《난 그걸 틀리게 외웠다구 붇잡혔수다. 원 억울해서.》

   《말마시우. 난 경찰이 차고있는 권총을 봤지유. 그랬다구 야 이놈아 뭘 보는거냐. 네가 이걸 빼앗자구 생각하는거지. 걸으라 하더란말이요. 세상에 이런 트집이 어디있소, 그래?》

   《난 석유한병 갖구 떠났다가 그만.... 그게 차간에는 금물이란걸  몰랐지. 내사 정말루....》

    모두 이러면서 무슨놈의 세상이 이렇게 험악한지 억울해서 못견디겠다고들했다. 신민서사를 잘못외웠다느니 권총을 봤다느니 석유를 가지고 떠났다느니.... 그건 다가 구실이였다. 잡혀들어온 사람은 다가 신체가 좋은 중장년이였지 로약자나 부녀는 없었다. 그래서 민호는 로력이 부족하니 역전에서 이따위 험한 짓으로 강제징집을 하고있다는걸 깨달았다.

    

    이윽고 경찰이 문을 열어주면서 줄을 서서 하나하나 나오라했다. 밖에는 전신무장한 군인들이 지키고 있었다. 악마가 아가리를 벌린것 같이 검은 유개화차바곤이 문을 열고 그들을 기다렸다.

   《어디로 실어가자는거냐, 나는 죄도 없는 사람인데.》

   《나를 집에 보내줘.》

   《억울해!》

   《안가겠다!》

    사람들은 반항했다. 그러다 경찰이 꽥 소리치니 그만둔다. 총구앞에서 반항해봤자 좋은 멋이 없다고 여겨 포기하는거다. 경장쯤은 될것 같은 자가 너희들은 다가 위험분자들이니 교육을 좀 받아야 겠다 잔말말고 걸으해서 모두 죄인모양으로 그 유개화차바곤에 올랐다. 민호는 도망치려했지만 기회를 찾지 못했다. 교육을 한다는것이 곧바로 강박로동일건데 장소가 어딘지 거기가서 보는 수밖에.

    경찰은 차바곤의 문을 닫고 밖으로 잠그기까지 했다.

    좀있으니 차대가리가 와서 그 바곤을 끌어다 다른바곤의 뒤에달고는 어디론가 달리기 시작했다.   

    반나절은 걸렸을것이다. 줄창 내달리던 차가 멎고 문을 열어주는데 내다보니 발톱까지 무장한 일본군인들이 그들을 맞아주었다. 그렇게 끌려온 유개차바곤이 몇 개되였고 붙잡혀 온 사람도 몇백명 잘되였다. 여기가 대체 어딜가?.... 그들은 다가 손에다 총창을 든 군인들의 감시속에 어디론가 끌려갔다. 철사망을 몇겹늘인 곳이였다. 거기서는 얼추보아도 천여명은 될것같은 사람들이 이미와서 돌을 캐고 나르는 일들을 하고 있었다. 다가 사상불온분자거나 사회부랑자로 잡혀온 사람들일것이다.

    여기는 기차머리를 돌리는 회전로가 있는 벌리였다.

    잡혀온 사람들은 산굴파는 작업을 했다. 안을 너르고 깊게 팠다. 민호는 첫눈에 이것은 왜놈들의 군사비밀공정이라는걸 알아맞혔다. 온 몸에 소름이 짝 끼쳤다. 비밀공정이 끝나는 날이면 에누리없이 여기서 일한 사람의 목숨도 끝날것이다. 도망치자! 아무 때건 공정이 끝나기 전에 이놈의 지옥에서 빠져나가야 산다!

    간격이 촘촘하고 높다란 철조망은 계곡을 넘고 산등성이를 넘어 어디론가 갔다. 주위를 대체 얼마나 너르게 쳐놓았는지 알수 없었다. 이런데의 자그마한 분지에 네채의 똑같은 길다란 벽돌집이 있있었다. 그 네채는 다가 여기로 잡혀와 죄인취급을 받고있는 무보수로무자들의 합숙이고 다른 두채의 벽돌집은 일본군병영이였다. 이 여섯채의 집둘레에 따로 철조망을 사각형이 되게 두겹쳐놓았는데 그 두겹의 철조망이 다 사이가 반자도 못되게 촘촘했거니와 높이가 둬길이나 되었다. 그리고 쌍겹철조망의 간격은 2m가량되였다.

    이런것이 근처 어느 산골에 더 있을것이다.

    여기 이 집중영분지의 서쪽산과 동북쪽의 산에는 모두 또치카가 설치되여 있었는데 그 또치카의 사격구에 도사리고있는 기관총은 항시 밖을 향해 사격물을 노리고 있었다. 그리고 입구로 되는 동쪽 저 철조망밖에는 한 개퇀의 병력이 주둔하고있는 대병영이였는데 역전으로부터 그 병영을 지나서 여기까지 오는 철길이 지금 한창 부설중이였다.  

    민호는 이틑날부터 화남역에서 잡혀온 사람들과 같이 굴파기공정에 나가야했다. 그는 밀차에 돌을 실어나르는 일을 했다. 손에다 총을 쥔 병사들이 여기저기 있었다. 어찌나 감시를 엄하게 하는지 낮에는 근본 도망칠 엄두조차 내기 어려웠다.

   《야 이놈아! 네 등대기는 왜 분가루같이 말라있는거냐?》

    저쪽에서 감독이 누구와 표독스레 씨벌이는 소리들려왔다.

    곁에서 맞지 않겠거든 웃동을 벗고 일해야한다고 알려줘서 민호는 얼른벗어던졌다.

    감독은 손에다 가죽채찍을 쥐고다니면서 누가 땀흘리며 일하지 않으면 그것으로 후려쳤다. 민호가 눈을 돌려가며 여겨보니 그자의 채찍에 얻어맞아 등가죽이 어룽어룽해진 사람이 적지 않았다.

   《돌탕을 쳐 없샐놈!》

    그의 입에서 은연중 이런 욕이 튀여나갔다.

   《뭐라구했어. 죽고싶어 그따위소릴 줴치는가.》

    곁에서 일하던 사람이 놀래여 한마디 일깨워주곤 입을 다물어버린다. 그는 성이 왕가라는데 키꺽다리였다.

    민호와 나이비슷한 조선사람 하나가  다가오면서 말을 걸었다.

   《임자는 어디서왔소?》

    왕꺽다리가 입을 다물라고 눈짓하는지라 민호는 그 말을 못들은척하고 일만했다. 그 사람이 다시 말을 꺼냈다.

   《가즈왔지요? 보아하니 조선분같은데 거기서는 어쩌다나니 이런데루는 왔습니까? .... 이눔의 일이 원.... 배겨낼만합니까?》

    실눈을 해갖고 말하는 품이 사위스러웠다. 이자는 어떤 놈일가?.... 여기도 피자가 있을것이다. 민호는 얼굴을 돌려 딴곳을 보면서 대답을 피했다. 그자는 대방이 자기를 소닭보듯 하니 싱거워났던지 무색하게 웃고는 그만 가버린다.

    여기에 동포가 저사람말고 더 있을것이다. 하지만 민호는 찾고싶지 않았다. 면목을 알필요도 익힐필요도 없었다. 믿지 말아야 했다. 지금은 누구든 믿지말아야 했다. 이 세월에 남을 경솔히 믿는건 제 목을 저당잡히는거나 다름없는 짓이였다.

    민호는 벽에다 2동이라 쓴 집에 들어있었다. 밤이 되면 남과  북 량벽을 따라 길다랗게 만든 장판우에서 250여명이 어물전에 내놓은 물고기마냥 배좁게 비벼대며 잤다. 민호의 한켠에는 2개월전에 여기로 온 나젊은 한족청년이 누워잤다. 그는 본래 화남 썩 북쪽 가목사와 가까운 신가점역(申家店驛)의 전철원이였는데 술을 먹고 출근했다가 직무태만이란 죄명으로 철로경호대에 잡혀가 처음에는 가목사에 있는  <교정보도원>에서 갇혔다가 이쪽으로 넘겨진것이다. 두해전에 거기서 항일련군의 한 소분대가 기차를 전복한 사건이 발생했는데 청년이 그 사건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건만 네가 그들과 내통한게 아니냐고 무턱대고 의심하면서 귀통을 때린통에 고막이 터져 한쪽귀는 영 절벽강산이 돼버렸다. 다른 한켠에서 바로 같이 일하는 그 왕꺽다리가 잤다. 올해 나이 민호와 동갑인 그는 농사일로 뼈를 굳힌 사람이다. 그는 마을에서 툰장질하는 자가 배급으로 내려온 빨래비누와 갱생부를 떼먹으니 불만품고 손찌검을 피웠다가 그만 사상불온으로 몰려 2개월전에 여기로 왔다고 한다. 집에는 로모와 아이들뿐인데 벌손이 이렇게 잡혀오다보니 생계가 어렵게 되었다. 그래서 자나깨나 집근심이고 한숨이였다.

    밤에 자리에 눕자 그가 민호의 귀에대고 가만히 알려주었다.

   《아까 낮에 본 그 조선사람은 본질이 좋잖은 놈이요. 그놈하고 가깝던 사람 다섯이 도망치려다가 잡혀서 목이 날아났소. 왜놈이 어떻게 알까. 그놈이 고발하게 분명하지.》

   《입이 가벼워 노총을 지른모양이구나. 건데 그자는 왜 그따위짓을 한단말인가?》

    민호는 꺽다리가 미리알려주서 고마웠다.

    

    지치고 고달픈 날이 하루하루 지겹게 흘러갔다. 일이 고된다가 식생활마저 점점 못해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래도 강냉이가루떡을 먹이던것이 이제는 도토리가루와 강냉이줄기가루에 콩깨묵을 혼합해서 만든 떡을 먹으라고 주었다. 배도 불릴수 없는 량이다.

    사람들은 기진맥진하여 쓰러졌다. 그렇건마 감독의 채찍은 의연히 사정을 몰랐다. 우수운것은 그렇게 더럽게 먹이고 학대하면서도 <성전에 위훈떨친 영령>에 감사를 드리라는것이였다. 점심때면 떡과 소금물에 삶은 감자 한알씩 쥐고 서서 남쪽을 향해 묵도를 하고나서야 먹을 수 있었다.

   《한얼님! 한얼님! 오, 한얼님! 저 더러운 전쟁광신자들에게 어서빨리 죽음을 내려주시옵소서!》

    민호는 매번 그 짓을 할때마다 속으로 이렇게 빌면서 어떻게 하면 여기를 탈출할 수 있을가 궁리했다. 한데 혼자도망치자니 자기곁에 있는 두사람이 불쌍했다. 

   《로왕, 내말들어. 한숨만쉬지 말고 용기를 내자구.》

    어느날 밤 자리에 눕자 민호는 왕꺽다리귀에대고 말했다.

   《후ㅡ이놈의 일 언제면 끝날지.》

   《어느때 끝나면.... 그때를 기다리는가?》

   《왜 안기다려. 집으루 돌아갈건데.》

   《돌아가? 얼빠진 사람!》

   《그러면?....》

   《돌려보낼줄아는가. 안보내. 보낸다는건 거짓말이야. 죽여. 죽인단말이야. 싹 다 죽인단말이야. 이게 군사비밀공정인걸 모르나.》

   《허 그럼 어쩐다?》

   《어쩔거있나. 도망쳐야지. 도망쳐야 살아.》

   《어이구 말두마오. 되지두않을 소리. 내와서 죽은것만두....》

   《자식 이제보니 허깨비로구나.》

    민호는 다시 더 권하지 않았다. 탈주를 혼자하는 수밖에 없다.

    영양실조와 과로와 질병으로 하여 절조망에 같힌 사람들은 날이갈 수록 점점 더 많이 쓰러지고 주검은 늘어갔다. 그렇다하여 공정에 영향이 미치는건 아니였다. 여기서 죽어가는 수자만큼 새인원이 보충되고있었던것이다.  자꾸죽고 자꾸왔다. 로력이 설사 다 죽는다해도 공지에 인원이 줄어들것 같지 않았다. 일본군은 중국사람 하나 죽어가는것을 감자한알 썩는것만큼도 못여기는것 같았다.

    여름이 다가고있는 어느날.

    촌에서 방금잡혀온 청년 하나가 일을 하다가 나는 억울하다 나는 집에 가겠다 떠들어댔다.

    감독이 달려왔다.

   《이자식, 왜 이 지랄이여. 너 미치지 않았냐?》

   《난 근로대에 갔다왔다. 두해나 일하고왔다.》

   《그런데 왜 왔냐?》

   《밭에서 강냉이를 구워먹었다구해서....》

   《그래 나더러 어떻게 해달라는거냐?》

   《그게 뭐 죄라구 날 잡아왔는가말이요다. 내 밭의 강냉이를 내가 구워먹었는데.》

   《이놈아, 강냉이를 구워먹었건 삶아막았건 그걸 내하고 말해선  뭘하는거냐.》

   《나는 죄없어 날 보내달란말이야.》

   《좋다. 내가 네 소원을 풀어주마. 가자.》

    그 젊은이는 헤벌쭉 웃으며 따라갔다.

   《저 철없는 녀석 좀 보지!》

    민호가 한마디 내던졌을 뿐 모두 말이 없었다. 미욱하도록 단순하고 어리석은 그가 당하게 될 화를 그저 안타까와 할 뿐이였다.

    병영에 있는 일본군인들은 감독이 데리고 온 그 청년을 처음에는 그저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차다가 나중에는 마대에 넣어 둘러메쳤다. 그래놓고는 재간있거든 네발로 걸어가라했다. 청년은 일어나지도 못하고 벌벌 기더니 이틑날 죽고말았다. 같이 온 사람들이 그를 파묻었다. 잡혀온게 억울하다고 집으로 가겠다했다가는 자기도 영락없이 그꼴이 될게 빤한지라 감히 불평을 토하지 못했다.

    10월말이 되니 나뭇잎들이 다 떨어지고 땅이 얼어들기 시작했다. 스산하기 짝이 없는 이런 때에 또 하나의 끔찍한 주검이 생기였다. 그도 민호와 한동에 있는 사람인데 탈주를 시도하다가 탈로난것이다. 일본군인들이 아침에 일장소로 나가기 전에 일군을 모두  네쭐씩 량쪽에 갈라세워놓았다. 감독이 무어라 수군대자 두 일본군이 대렬속에 있는 사람 하나를 끌어냈다. 그 사람은 묶이우지 않겠다고 반항하다가 되게 얻어맞았다.

    일본군은 그를 중간에가 무릅꿇여 앉히였다.

    닛본도를 찬 장교가 나서더니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는 중국말로 경고했다.   

   《대동아공영과 만주국의 안녕을 위하여 싸우고있는 우리 황군은 딴마음이 없이 봉공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런데도 너희들은 왜 이를 몰라봐주고 허튼꿈을 꾸는가말이다. 내 오늘 불충실한 자를 집에 보내줄테니 어디 구경을 해보라.》

    말이 끝나자 칼이 번쩍했다.

    그 청년의 머리는 몸채체서 떨어져 땅에 구을렀다....

 

    비밀공정은 시간을 끓었다.

    이듬해의 초봄. 음달의 눈은 아직그대로건만 양지쪽은 녹아서 질적질적 하다가도 밤이 되면 다시 꽛꽛이 얼어버렸다. 꽃샘잎샘에 반늙은이 얼어죽는다더니 과연 그런가보다! 바로 이런때의 어느날 밤중에 갑작스레 총소리났다. 모두들 잠을 깨며 웬 일인가했다. 이럴때 잘못덤비다가는 변을 당한다는걸 아는지라 사람들은 가딱 움직이지 않았다. 다행히 총소리는 한번 나고 더 나지 않았다. 그래서 모두를 또 탈주자가 나져 도망치다가 총에 맞아 죽었을거라했다.

    이틑날 아침때. 일본군은 전번과 마찬가지로 공정에 나가기 전에 사람들을 집합시켜놓고는 팔을 상한 사람 하나를 끌어내왔다. 다른동에 있는 사람이였는데 간밤에 모험적으로 탈주를 시도하고 철조망을 넘다가 넘지 못하고 그만 보초병에게 발각되여 그가 쏜 총에 팔을 맞고 아래로 떨어졌던거다.

    일본군인들은 그를 끌어내다가 이번에는 칼도 쓰지 않고 세빠트 세 마리를 풀어놓아 물어죽이게 했다. 비명소리는 듣기 아츠러웠고 붉은피는 땅을 물들였다.

    감독이 나서서 씨벌이였다.

   《다들 보았겠지. 도망치지 말란말이다. 생각해보란말이야. 철조망밖에 또 철조망있구 개가 지키고 있는데 어디로 간다구 그러는가. 그렇지 않은가. 공정만 끝나면 편안히 돌아들갈텐데 왜 그리두 급하게 서두르는가말이다. 어리석게.... 나도 중국사람이니 생각해서 권하는바이다. 그러니 모두들 내 말을 듣거라!》

    민호는 일을 하면서 그자가 하던 말을 상기하고 입을 열었다.

   《그자식이 자기도 중국사람이라했지. 피자도 사람축에 드나.》

    곁에는 왕꺽다리밖에 없었다. 그가 물었다.

   《이자뭐랬소. 피자라는게 뭐요?》

   《개라는거야.》

   《그게 조선말이요?》

   《아니야. 토비말이야.》

   《토비말이라? 동갑이 토비말은 어떻게 아나?》

   《어떻게 알겠나. 말하자면 이런게지.... 내가 바로 토비야.》

   《허 우습다. 동갑이 어떻게?.... 대포두 잘분다.》

   《왜 난 그노릇못하는 사람인가.》

    이래도 믿지 않았다. 마음좋은 사람은 토비질할리만무라는거다.

    왕꺽다리는 일이 끝나면 집에 보내주리라는 감독의 말을 믿어야 옳지 않느냐했다가 네 머리는 어쩌면 소대갈보다 더 미런한가고 민호한테 되게 놀림받았다. 왕꺽다리는 그래도 민호를 좋아했다.어쩐지 그에대한 인상이 그 누구보다 좋았던것이다. 그러면서도 같이 도망갈 엄두는 내지 못하니 안타까운 사람이였다.

    철조망주위에 전등불이 있기는 해도 탈주사건이 생기니 일본군은 마음놓을 수 없는지 병영앞에다 망대를 높이하고 우에다 탐조등을 하나 가설했다. 탐조등을 돌리면 철조망주위를 대낮같이밝게 할 수 있었다. 지어 개미가 기여가는 것 까지 볼 수 있을 지경이다. 민호는 적이 탈주를 점점 더 엄하게 단속하는것을 보아  이 비밀공정이 대단히 중요하다는걸 알았거니와 날이 가고 공정이 되어갈 수록 그만큼 죽음을 시각이 박두해오고있음을 감촉했다. 자꾸주저말아야했다. 과단성있게 여기를 빠져나가야했다.

    일본군이 경각성을 높이도록해주는 일들이 자주나졌다.

    어느날 민호가 일하고있는 곳에서 다섯이 병영에 불리여 가더니 매를 실컷맞고 돌아왔다. 여기로 온지 얼마안되는 그들은 일본군이 너무나 잔인하다고 뒤에서 말했는데 그것이 밀고되였던것이다. 모두들 밀고자는 로표(朴氏)라했다. 바로 민호곁으로 다가들다가 물러간 그 조선사람이였다. 같이 지껄려놓고 저는 불려가지 않았으니 탄로난것이다. 워낙 그는 밀고하면 그 다섯은 목이 날아나고 자기에게는 관대한 배려가 내려 집으로 보낼줄로 알았는데 일본군인들은 웬 일인지 그들을 죽이지 않고 때리기만 하여 내보냈거니와 자기를 집에 보내지 않았다. 

   《미친개는 잠을 자면서도 남을 물 궁리를 하는거다. 제 리득을 바라고 더 미칠듯 물것이다. 저 자식이 사람을 얼마나 해칠가.》

    민호는 모두들 정신차리라고 여러번이나 조용히 일깨워주었다. 이런 일깨움은 모마운것이였다. 하기에 많은 사람이 말머리무거운 민호에 대해서 유다른 호감을 가지게 되였다.

     

   《사람해치는 벌레면야 없애버려야지! 조선에 <의논이 맞으면 부처도 앙군한다>는 속담이있다. 일하는것만도 지겨운데 이 많은 사람이 그 한녀석 하나때문에 간을 그냥졸여서야 말이되는가.》

    어느날 민호는 그자를 없애버리려고 맘먹고 손은 자기가 쓸테니 그저 맞춰만달라고 몇사람과 짰다.

    산굴은 높이 15m, 너비 30m로 반원을 이루면서 암석이 굳은 산을 이파고 들어갔다.

    청명이 다가오는 어느날 막장일을 하던 민호가 그자를 자기곁으로 불렀다.

   《어이, 로표 나 좀 보자구!》

   《왜 그러오?》

    로표는 말없이 일만 수걱수걱 해오던 사람이 이제는 동포인 자기와 가까이 지내자고 그러는 줄로 알고 기분좋게 다가왔다.

   《로표는 내가 조선사람이란건 어떻게 알아봤소?》

   《거야 동포니까 알아봤지. 한핏줄이 아닌가. 내 눈은 못속여.》

   《그 눈 그리두 령묘한가. 그럼 어디 맞혀보오. 박동무가 보겐 내가 뭘해먹던 사람같은가?》

    민호는 박동무라는 세글자에 악센트를 박으면서 그를 시험을 치듯이 물어봤다.

    순간 로표의 두눈이 확 밝았다가 꺼졌다. 그는 감았던 눈을 다시뜨며 마치 관상쟁이 관상보듯이 작고 동그란 머리를 이쪽저쪽 번져가며 대방을 보고나서 늘어지게 말했다.

   《내보겐 막일해먹고 산 사람은 아닌거고..... 손을 보면.... 총을 다루던 사람같고.... 어떻소 내 말이 맞지.》

   《맞아! 맞아! 》

   《전에 독립군에 다니지를 않았소?》

    독립군에 있을 때 서로간 동무, 동지라 부른적이 있었는데 이자는 그것을 알고 민호의 신원을 맞혀내고 있었다.

   《아니요. 난 토비질을 했소.》

   《무슨 망탕소리를....》

   《그러고 보니 로표는 과연 지인지감이 있는 사람이구료.》

   《뭐 그렇게 까지 총명하겠소만 나도 둔한 놈은 아니요.》

   《로표가 둔한 사람일리있소. 보오 둔한놈이야 제가 어떻게 될것도 모르구 혀바닥을 망탕놀리지 않소.》

   《그러게말이요. 주의해야지.》

   《듣자니 매를 맞고 나온 다섯녀석은 황군을 욕했다며.》

   《그랬어. 그건 내가 들은거야.》

   《로표도 같이 찧고 까불고 하지 않았소?》

   《내가? 허허허...여기를 빨리 나가는 방법있지. 그런놈 스믈만 적발하면....》

   《오 그래! 내보게도 로표는 둔한사람같진 않아. 정말루 영리한 사람이야....적선지가에 필유여경이라....자!》

    민호는 말을 하다말고 그보고 저 돌을 들자해서 그가 머리를 아래로 숙였을 때 자기가 들었던 돌로 그의 머리를 내리깠다.

   《적악지가에 필유여앙이랬다, 이놈아!》

    민호는 그가 죽는것을 보면서 소리쳤다.

   《사람상했다!》

    주위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감독이 고함소리를 듣고 달려왔다.

   《어떻게 된거냐?》

   《떨어지는 돌에 맞았소!》

    여럿은 이구동성으로 웨쳤다.

   《자식이, 여긴 왜 바라와서....뭘 보구들있어. 얼른끌어내가라!》      목격자의 반영이 일치한지라 감독은 다르게 생각하지 않았다.

    밤에 잠자리에 눕자 왕꺽다리가 제 입을 귀가에 가져왔다.

   《당신은 정말해냈구만!》

    혀를 끌끌 차면서 깨단을 했는지 한마디 더했다.

   《과연 토비같으오 우둔한걸 보니!》

   《토비아니면 그러지 못하는가.》

   《못하지. 누가 감히 그렇게 하겠소.》

   《이것보지 바보같은 소리 또 하는구만. 왜 그렇게 못한단말인가. 악이나구 맘만 먹으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노릇이야.》

   《난 그렇게는 못하겠어.》

   《자기를 잡자해도 못할가. 그럴수 맞아. 당신이야 파즈니까.》

   《건 또 무슨소리요, 파즈라는게?》

   《바지에 오줌싸는 겁쟁이. 그런 사람은 토비질도 안시켜.》

   

    그날밤음 몹시 어두웠다. 

    밤중에 민호는 신호줄을 당기였다. 그것을 당기면 바깥벽에 달아놓은 주먹만큼한 작은 종이 울린다. 그러면 보초가 듣고 달려와서 무슨일이냐고 묻는다. 대개는 밤똥을 누기 위해 밖으로 나가야할 때만이 그것을 쓰는것이다.

    2동의 보초병이 신호를 듣고 달려와 누군가고 물었다.

   《나는 112호! 쏘개를 만나서....아이구 배야!》

    민호는 지금 당장 내깔릴지경이라했다.

    보초병은 별로 의심치 않고 문을 열어주었다.

    민호는 밖으로 나오나마자 목을 탈아 그자를 죽여버리고 옷을 벗겨 입었다. 그리고는 모자와 신도 벗겨 쓰고 신었다. 그의 행동은 과연 잽쌌다. 이제는 총까지 쥐였는데 저쪽에서 제1동의 보초병이 주적주적 걸어왔다. 아마 무슨 예감이라도 들었던모양이다.

    사이거리가 불과 대여섯보밖에 안되였다. 민호는 뽐창을 뿌렸다. 면바로 숨통을 찔렀다. 적보초는 짹소리못하고 꼭그라졌다. 민호는 인차 전기불이 덜비쳐 어둑시그레한데로 갔다. 총을 먼저 철조망밑으로 내보낸 후 철조망을 천천히 조심스레 넘어갔다. 두겹다 안전하게 넘었더. 그런 후 총을 갖고 곧추 남쪽방향으로 내뺐다.

    병영의 군인 하나가 소변을 보러 밖에 나왔다가 보초가 둘다 잘못된것을 발견하고 긴급경보를 울리면서 탐조등을 돌리였다. 그러나 이때는 민호가 남쪽의 외선철조망까지 이미 넘은 때였다.

    그의 성공적인 탈주는 온 병영을 잠에서 깨웠을 뿐만아니라 동쪽입구에 있는 큰병영까지 놀래워 온 퇀이 출동하여 산을 수색하는 대소동을 일으켰다.

    산몇개를 넘으니 깊은 계곡이 나졌다. 민호는 그 계곡을 가로지른 철교를 건너서 남쪽방향으로 갔다. 그가 철길을 따라 산굽이를 돌고있을 때였다. 저 뒤에서 화물차가 고동을 틀면서 달려오고있었다.

   《오! 내가 흑룡강에 뛰여들었을 때 뗏목이 내려오더니 오늘은 기차가 달려오는구나!》

    운수좋았다. 마침 올리막이여서 철교를 건너온 화물차가 여기에 이르러서는 속도가 늘어졌다. 민호는 그 차에 뛰여올랐다.

    화물차는 밤새도록 달리고 달리였다.

    날색녘이였다. 민호는 차가 한 산골정거장에 이르자 뛰여 내렸다. 관동군은 군사비밀공지에서 탈출한 자를 속히 잡으려고 번개식의 <통집령>을 내릴것이다. 한데도 그냥가서는 어떻게 하는가. 국경선을 물샐틈없이 지킬건 물론이다. 거기를 넘을수 없으니 고향으로는 다 간것이다. 그럼 어디로 가야하는가? 이젠 정말 다른 방법이 더 없없다. 염왕산으로 들어가자 그래도 거기가 낯익은 곳이 아닌가. 거기 어디든 숨어서 광복이 날때까지 기다리자. 민호는 이같이 마음을 먹었다.

    그의 손에 생명잃은 일본병이 씀씀이 헤프지 않은지 호주머니에 돈까지 얼마간 남겨주었다. 민호는 그 돈으로 배를 곯지 않으면서 서쪽으로 계속 걸어서 3일만에 마침내 태평진에 당도했다. 그는 지금 완전한 일본병의 차림새였다. 하여 조사도 받지 않고 성내로 들어갈 수 있었다. 해도 여기서 오래어물거릴 처지가 아니였다. 이날이 바로 청명절이였는데 날씨가 무척좋았다. 내가 여기로 온바에는 위삼포의 산소나 보고 입산해야 옳지 않은가. 이건 응당 차려야 할 례절인거야. 민호는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맴돌아서 상점에 들려 향과 지전을 사갖고 태평진을 나와 곧추 위삼포의 묘가 있는 서북쪽으로 걸음을 놓았다.

    민호가 위삼포의 묘에 거의이르러 보니 거기에 그먼저 벌써 사람이 와 있었다. 세여보니 모두 셋이다. 민호는 적이 놀라면서 속으로 저건 누굴까했다. 자기같은 염왕산류자가 아니고는 여기에 올 리가 없는것이다. 좀더 가까이에 다가가면서 보니 하나는 일남이녀였다. 대체 누굴까?....

    저켠에서도 이켠을 발견했다. 그들은 슬금슬금 자리를 뜨고있었다. 한데 그 거동들이 어쩌면 눈에 익은것이였다. 아니 저건 향란이 아닌가! 그는 그쪽으로 급히 걸음을 놓으면서 소리쳐 불렀다.

   《향란이!》

    향란이는 무르춤 서서 이켠을 유심히 바라본다.

    다른 두사람도 이켠을 유심히 본다. 그러면서도 이쪽이 어깨에 총을 멘 일본군인행색이라 몹시 경계하고있음이 분명하다.

   《나요 나. 오인이야, 오인.》

   《아, 옳구만!》

   《어이구!》

   《기뻐라!》

    저쪽의 일남일녀는 왕견과 소춘매였다.

    대방이 누구라는것이 확인되자 그들은 환성을 올리면서 달려가고 달려왔다. 이렇게 그들은 만났다. 과연 뜻밖의 상봉이였다. 그들은 서로 부둥켜 안으면서 일희일경 어쩔줄을 몰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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