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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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    <<관동의 밤>> 제2부(26) 댓글:  조회:2324  추천:0  2015-02-04
                            26           향란이와 소춘매는 언젠가 장평을 태평진에 보내여 찾아온, 자기들의 모습이 그대로 박혀진 4촌짜리 사진을 다시꺼내여 그것을 액틀에 넣어 벽에 걸어놓고는 보면서 즐겁게 떠들었다.    《호호호....내 올케가 이렇게 멋쟁인걸 깜빡 몰랐네. 뭐라구 하면 좋을가. 그렇지, 백련이라구 하면 되겠네.》    《내가 백련이면 시누인뭐랄가, 붉은장미? 그래 그래야겠어. 내 비유가 틀리지 않을거야. 시누인 장미야. 아름다운 붉은장미!》     그랬다 사진속의 두 녀인은 다가 꽃같은 미모였다. 하지만 그녀들의 성정만은 물과 기름이 같지 않은 것 처럼 서로같지 않은것도 사진속에서 그대로 나타나고 있었다. 안색이 맑고 깨끗한 소춘매는 아련하고 부드러운데 비해 깔끔한 향란이는 명랑하고 쾌활한편이였다.     자기의 몰골을 빤히 들여다보고있던 소춘매가 얼굴에 웃음을 다시피여올렸다. 번화한 도시 화려한 화류항을 버리고 여기로 들어온지도 이제는 오래건만 아직 별로 축간데 없이 젊음을 간직하고 있었다. 이전의 아름다움과 매력을 잃지 않은것 같으니 그녀는 기뻤던것이다. 그렇다, 여지껏 근심걱정없이 편안히 지내왔으니 아무튼 행운이라해야 할 것이다. 그 어지러운 풍류장에서 속량하기를 잘했다. 그러지를 않았더라면 지금쯤 어떤 모양이 되었을가. 탕자들의 시달림도 시달림이려니와 복잡한 시국에 운명이 어찌될지도 몰라 초사하는 사이 이마에 주름살 하나라도 더 생겨 깊어졌으리라. 그녀는 말괄량이 기생엄마의 몰골이 새삼스레 떠올랐다. 그년은 과연 인정머리없고 어거지 센 흡혈귀였다.     그녀가 할빈 연하루에 있을 때는 기생이 모두 스믈둘이였는데 소춘매는 꽃중의 왕이런가 인물이 제일고왔거니와 비파도 제일잘탔다. 그녀의 꾀꼴새같은 노래소리에 반하고 자색에 반하여 풍류객들은 더구나 모여들었으니 연하루가 흥성한건 제대로 말해서 그녀의 덕이라해얄것이다. 하건만도 기생엄마는 만족도 모르고 잔소리를 해댔고 탐욕도 점점 더 커갔다. 무한정으로 지속되는 고달픔속에서 환멸을 느끼기 시작한 소춘매는 그제야 차츰 일신을 금옥같이 아끼면서 허탕한 여자로 그냥살지 않으려고 속량을 꿈꾸기 시작한건데 때마침 이쪽에서 손을 썼던것이다.     소춘매는 묘계로 자기를 빼내온 오인 정민호의 은공을 죽는날까지 잊을것 같지 않았다. 하여 그녀는 한때 시누이를 민호와 정식부부로 맺어주는것으로 은공에 어느정도 보답하려했다. 한데 그럴필요가 있는것 같지 않아서 그녀는 왼심을 쓰지 않았다. 그네들은 누구의 도움도 간섭도 바라지 않은 성의 동반자였다. 어떤때는 의견이 맞지 않아 옥신각신 하다가도 잠자리만은 너무나 자연스레 어울러지군하는 그들이였였으니까. 어떤때는 소춘매의 눈에 그들의 관계가 미묘하면서 애정색채도 유달리 짙고 달라 자글자글 재미가 있는것 닽이 보이기도했다.     향란이가 입을 열더니 오래동안 속에 넣고있은 것을 꺼냈다.    《올케, 올케는 태평진의 그 까치서방님같은 사진사는 언제부터  면목알았던가요?》     이런 질문은 대방을 나처하고 거북스레 만들리라는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속에다 그냥 넣고 삭일수 없었던것이다.     소춘매는 귀밑을 붉히였는데 대답이 애매했다.    《글쎄요. 내가 일면파에서? 아니면 할빈서?.... 아무튼 어느때 본 사람일텐데 전혀 생각안나요.》     향란이는 고개를 까댁였다.     소춘매가 눈을 할끗 빨았다. 시누이는 지금 속으로 네년이 앞문으로 받아주고 뒷문으로 내보낸 손님만도 기수부지겠지 하고 자기를 비난하는 것 같아서 야속했던거다.     향란이는 올케야 어떻게 생각하건 무감각한 듯이 여전한 투로 말했다.    《올케 기억나요, 그날 사진찍을 때 우리 먼저 멋쟁이 사내하고 팔끼고 사진찍던 여인말이이야?》    《시누인 해사스레 생긴 녀잘 그러지. 왜 생각안나겠어요.》    《올케보겐 그 여자 뭐같애요?》    《뭐라고 말할가.... 난 그런건 생각안했지. 한데 시누인 생급스레 나하고 그건 왜 물어요?》    《내 눈에는 그년이 구미여우같아 그래. 아무리봐도 그렇더라니까. 그런 녀잔 사내의 간이나 빼먹고 살 계집이야. 나도 여자지만 그렇게 해사떨줄은 몰라.》    《그 여자 해사떨었던가. 난 그런건 눈팔아보지도 않았지.》     소춘매는 그쯤한 일에는 흥취없는지 입을 다물었다.     이틑날. 산채를 나가 집에 갔던 새자 하나가 돌아와 갖고 울면서 자기의 가정이 그지간에 당한 불행을 공소하는 통에 온 산채가 불안해졌다. 사변이 나서 집집이 시달림받는다는 소문을 듣고나서도 그런 화가 간대르야 내 발등에까지 떨어지라며 무관심하면서 여기서 태평스레 보내는 사이 늙은 어머니와 처자가 다 일본군의 손에 살해되였던 것이다.    《왜놈들은 갑작스레 달려들었다오. 어떻게 했는지 아오. 반일둥지를 없애버린다면서 동네사람을 하나도 달아나지 못하게 했다는구만. 집에다 몰아넣구는.... 어떻게 했겠소.... 불을 질렀다오. 살겠다고 밖으로 나오면 분자(총)루 갈기고 청자(칼)루 찔러서 몰살을 했다오. 그런것도 모르구 이 얼빠진건 여적지 들어앉아 태평스레 보냈지. 내가 이러구 혼자살아서는 뭘해. 아아!....》     그래도 산사람이야 어쨌든 살고봐야지 따라서 같이 죽겠느냐면서 마음을 너르게 먹어라면서 그를 위안하는 류자들도 있고 우리 집은 어떤지 모르겠구나 근심하는 류자들도  있었다.     그 새자는 탄식을 뽑으면서 로파모양으로 넋두리까지 했다.    《식솔이 그토록됐는데두 이 머저리는 태평가만 부르로 있었지. 이놈의데에 들어앉아서..... 꿀단지를 파묻었나. 내가 글쎄 외 이놈의데만 들어앉아있었나말이다. 무정한 인간이야. 불효막심한 인간이야. 지독한 놈이야. 사람새끼 아니야!》     그가 너무나 시끄럽게 구는통에 중앙산채에서 사량팔주까지 나와보았고 나중에는 위삼포까지 웬일이냐며 나왔다.    《저 자식이 아마두 인사불성이 된것 같구나.》     위삼포는 리지를 잃은 새자의 입을 막아놓으라했다.     그래서 양즈방이 그를 인질을 가두던 방에다 집어넣었다.     그 새자는 밖으로 나오겠다고 발광하다가 그만 미쳐버렸다.     위삼포는 령을 내려 류자들을 다시는 산밖을 나가지 못하게 단속했다. 산채를 소란케하는 불리한 인소를 막자는 생각이였다.     향란이는 올케한테서 비파를 배우다말고 다시금 무예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철채찍다루는 솜씨와 뽐창다루는 솜씨는 귀신도 탐복시킬 지경이니 산채에서는 감히 겨룰자가 없었건만 그에 만족하지 않아했다.     소춘매는 그 재간이 부러워 자기도 배우리라 접어들었다가 안되겠던지 그만 기권하고말았다. 그녀는 책을 읽거나 산놀이를 하는 외 의연히 비파타고 노래를 불렀다. 비파소리에 노래가 있어서인지 산채는 생기가 흐르는 것 같았다. 류자들은 아는 노래가 많아 바닥날줄 모르는 그녀를 할빈명기로 여기고  황후같이 받들기도 하고 몸을 갖고싶어 침을 흘리기도했다.     정신을 홀홀하게 만드는 절묘한 곡이 가끔 류자들의 넋을 빼앗더니 요즘은 식어갔고 그녀의 얼굴에는 그늘이 비끼기 시작했다.                     갈라지던 그날부터                       애간장타던 이 가슴                       상사의 정은 언제나 사라지려나                       란간에 기대여 서니                       흰 버들꽃만 옷소매를 어루만지네                       시내물이 굽이돌고 산이 막힌 저쪽으로                       그대는 떠나갔네.       그녀는 조용한 방에 홀로앉아 비파를 가슴에 안고 노래불렀다. 어쩌면 관한경이 지은 이 산곡(散曲주)이 남편을 리별한 그녀의 절절한 상사의 정을 그대로 그려주는것만 같았다.      《시누이! 오랍은 산채를 떠난지 꼭 한달이지?》     향란이를 보자 그녀가 비파를 내려놓으며 하는 말이였다.    《남자들은 다 그모양인가봐. 집사람 애타게 소식기다리는 줄은 모르고.》     향란이 역시 오빠가 너무나 무정해지는것 같아 말했다.    《대체 어떻게 된걸가?...》     불만을 토해놓고서도 한편으로는 또 어쩐지 불기한 예감이 갈마들어 의문부호를 달았다. 그가 떠날 때 향란이는 어디에서 어떤일이 있더라도 열흘내에 소식을 알리라 당부했던것이다. 그런데도 오빠는 그 약속을 리행하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제 올캐가 속을 태우는것 같아서 자기도 파악이 없는 위로의 말을 했다.    《올캐 우거지상을 말아요. 이제 소식올거야. 의심이 병이라잖아. 아무렴 그사이 잘못됐을라구. 않그래요? 자, 심심한데 시집올 때 받은 장신구나 내놓아요, 내 좀 다시구경하게.》     소춘매는 말없이 덕대에서 대추빛나는 반들반들하는 자그마한 나무함을 내리여 시누이앞에 놓는다.     향란은 받아서 열어보않다. 비취박은 수식들 외에도 금팔찌, 옥비녀, 보석귀걸이, 진주보석, 록주옥, 단백석... 눈이 황홀할 지경이다. 하건만 이러한 금은보화도 간이 마르기 시작하는 녀인들에게는 기쁨을 주지 않았다. 그리 희한한것도 아니니 이 순간만 지나면 또다시 근심이 머리를 채울것이였다.      초여름치고는 화창한 날씨였다. 밝은 해는 염왕산을 호듯호듯 내리쬐고 있었다. 이날은 인원이 반수이상 줄어든 산채가 흡사 묘동때의 모양으로 조용했다.      양즈방에 가두었던 새자는 머리를 돌벽에 박아 자살해버렸다. 그가 죽어 소란은 멎으니 산채에는 점점 고적하고도 침울한 기분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왜 이럴가? 아마도 이건 산채에 남아있는 류자들의 생활이 전보다 무미하고 따분하고 따라서 공허해지는 것과 관계될 것이다. 그들은 바깥소식을 무척알고싶었으나 알 방법이 없었다. 산채에는 전문 밖의 형세를 정탐하고 수집하는 류자가 있기는 하지만 요즘은 왜선지 산채를 나가지 않거니와 산채를 나갔다온다해도 그는 일반류자나 새자들 앞에서는 입을 다물고 모든걸 발설하지 않는것이다.          소춘매가 늦잠을 자고 일어나 시누이방으로 건너왔다.     향란은 세수도 하지 않은 에푸수수한 몰골을 보자 물어봤다.    《올케는 간밤에 또 꿈이였지? 무슨꿈을 꿨나요?》    《간밤에는 아마 꿈이 없었은거같아. 몸이 자꾸자꾸 둥 둥 뜨는것 같더니 그만 잠들었어요. 그리고는.... 》    《올케, 그건 몸이 허약해서 그런건데 어쩌면 좋을가. 보약이라도 써얄텐데.... 식사를 제대로해요.》    《음식이 입에 댕겨야 먹지.》    《그럴거야. 그게 다 오빠탓이지. 왜 지금도 소식없는지 원!》     시누이의 동정깊은 말에 소춘매의 눈에 이슬이 가랑가랑 맺힌다. 소식없는 남편이 야속하기 그지없었던거다.     《난 어쩐지 그이가....》    《올캐 그따위 오도방정은 떨지 말아요.》     이때 위삼포가 왔다.     향란은 의아쩍어하면서 그를 여겨봤다.    《아버지, 무슨일인가요?》    《량태가 그러는게 너희들이 요즘 때를 자주건넨다구하더구나. 어디아프냐? 신외무물이니 다들 제 몸을 제절로 보살피거라.》         위삼포의 검죽죽해진 얼굴에 다심한 심려가 비껐다가 가시여지고 야 이 계집년들아 시계를 좀 봐라 해가 서발이나 올라오도록 자다가 인제냐 일어나다니 원 하면서 게으르고 라태함을 핀잔하고 있었다.     소춘매가 헝클어진 머리를 얼른 비더듬어 올리고나서 시아버지한테 물어보았다.    《저 아버님! 산을 나간 분들은 소식있나요?》    《아직은 없구나, 련락을 짓기루했는데.》    《아주 먼데로 간 모양이죠?》    《아무리 멀어도 만주땅을 벗어났겠냐.》     위삼포는 사실 답답하니 여기로 온것이다. 웬 일인지 요즘은  꿈도 없어서 딸과 며느리의 꿈얘기라도 듣고싶었던것이다. 한데 녀인들도 간밤은 꿈이 없었다니 그는 별말없이 돌아서고말았다.     위삼포가 비여있는 양즈방을 돌아보니 반둬더가 말했다.    《양즈방이 너무오래비여서야 될가.》    《빈들 어쩔텐가, 방표를 하자구?》    《뭘 좀 마스지 않고 될가.》    《인마두 적어졌데 어디가서 뭘 어쩐다구.》    《용강이를 내보내지 말았어야할걸 그러지 않았소.》    《무슨소리를.... 안내보내구는 어떻게.》     항일에 참전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위삼포의 태도가 의연했다.    《도대채 어디루갔는지 원!....》     그는 정찰을 내놓아 아들의 행방을 알아봐야겠다고 했다.     이때 뜻밖의 보고가 들어왔다. 외선경비를 서고있던 류자가 달려들어와 오인이 수백명의 기병을 거느리고 산채로 돌아오고있다는것이였다. 수백명이라니, 대오가 그렇게 강성해졌단말인가?!     여러 두령들은 보고를 받자 급히 영접하러 나갔다.     말발굽소리 요란한 중에 총소리 다섯방 울리였다. 오군자의 깃발을 날리고있는 대오는 자못 엄엄했다. 그리고 그것은 낯설었다.      《오, 자네들이 왔구려!》     위삼포는 반가움을 표시하면서도 감히 더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다. 그럴 계제가 못되였다. 민호의 웃음기없는 차고 심각한 얼굴을 보는 순간 불길한 어떤 예감이 전류처럼 그의 머리를 스쳤다.     중앙산채의 널다란 앞마당에 들어선 300여기의 기마대는 숙련된 잽싼 동작으로 다섯 개의 대형을 지었다.     분개없는 령감쟁이 이젠 로망이 들어 부엉이 셈을 하는가, 아무렴 량심팔고 이럴수야 있는가. 반일을 하자고 권유했더니 마지못해 응하더니 아들에게 200명이나 주어 데리고 나가 귀순시키다니 어디 말이 되는가! 오인 정민호는 한번 해보자고 이같이 인마를 이끌고 달려온 것이다. 그는 마치도 청동을 부어 만든 사람같이 말잔등에 꿋꿋이 혀리펴고 앉은채 내리지 않았다. 칼날같은 시선으로 자기를 환영하러 나온 두령과 류자들을 칼칼히 쏘아보고나서 머리를 쳐들었다. 이전보다 더 강직하고 결곡해보였다. 그의 그 자못 위엄스럽고 표표한 태도에 누가 감히 범접이나할가.     한편 성정이 엄한 위삼포는 존엄스레 지켜온 상하급간의 규례가 여지없이 무시되고있는지라 밸이 부걱부걱 괴여올랐다. 하지만 그래도 참는 수밖에 없었다.     민호는 자기를 언잖게 여기는 위삼포를 맞받아 차가운 시선을 던지면서 입을 열었다.    《맏두령, 이 오인은 오늘 휴식하러 산채로 들어온게 아닙니다. 한가지 일을 똑똑히 캐고 돌아갈테니 묻는 말에 대답해주시오. 왜서 일본군에 귀순했습니까?》     아닌밤중에 홍두깨모양으로 불시에 들이대는 이런 질문에 위삼포는 어처구니없어서 허허 웃고나서 볼멘 소리를 내뱉었다.    《누가 귀순했단말이냐?》    《위용강!》    《뭐라!?》     위삼포는 깜짝놀라 무르춤했다. 내내 결패있고 위엄스레 보이던 두눈은 단통 빛을 잃고 낯은 돌같이 굳어졌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량태의 말에 뒷이어서 다른두령과 류자들이 웅성대기시작했다.     그들은 믿지 않았다.    《이걸 보시오! 보면 알게될겁니다!》     민호는 품속에서 접은 종이를 꺼내였다.     반둬더가 그 종이장을 받아 펼치였다.     그것은 적들이 만주각지에 있는 토비들에게 귀순을 독촉한 회유문이였는데 내용은 이러했다.                 여러 무리들아, 어서 마음고치고 뉘우쳐 발길을                 돌리거라. 빨리깨닫고 빨리뉘우침은 죄를 삭감하는                 유일한 량책이니 너희들은 다가 그것을 잊지 말아                 야 할지어다. 지금이라도 늦이 않으니 초무를 받아                 들이거라. 그런다면 후한 상금이 내려질것이다.                 악명자자했던 염왕산도령 위용강도 수하를 150명이                 나 거느리고 스스로 태평진수비대를 찾아와 투항을                 자원하고 귀순해서 지금은 은덕높은 황군이 하사하                 는 후한 상금타고 부귀와 영화를 누리고 있다. 과거                 를 묻지 않을테니 여러 무리들아, 너희들도 그를 본                 받아 어서빨리 회개하고 발을 돌리거라.오로지 그래                 야만 살길은 나질것이다. 유공자에게 시시로 장려가                 있을것이니 모두알고 후회하는 일이 없게하라.                                                                          일본관동군××사령부                                                      1934년×일×일                  반둬더가 다 읽고나서 한숨쉬면서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의 손에서 흘러 떨어진 종이장이 땅에서 날렸다.     한 류자가 허리굽혀 자기 발끝까지 랄려온것을 주어본다.     적들의 그 사갈과도 같은 회유문은 이 사람손에서 저 사람손으로 넘어갔다.    《위용강이 그런짓을 하다니!》     양즈방이 읽어보더니 이러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믿지 못할 애였군!》     화서즈역시 불쾌한 낯색을 지으면서 내뱉더니 한마디 더했다.    《나가서 그런짓하는건 모르고 기별오기만 기다렸지.》     투항은 바로 굴복이였다. 하기에 염왕산의 두령은 누구나 다  여지껏 그것을 가장 큰 치욕으로 여겨왔다. 한데 오늘 위용강이 염왕산의 명예를 더럽히고 치욕을 불러왔다. 하여 사량팔주다가 관동군에서 낸 그것을 보고는 격분하여 심정을 토로했다.    《뭐라, 악명자자했다? 위용강이 귀순안하면 그따위소리는 안들었을건데.》     다른 류자들도 결이나서 오오했다.    《누가 우릴 그렇게 평가하는가?》    《거야 왜놈이지.》    《왜놈탓할것 없다 자길탓해야지.》    《중팔구 절팔구 자기는 호강하구. 하기는 잘한다.》    《제길할 이제는 누구를 믿나?》     이러한 가시돋힌 비난이 애비된 위삼포의 가슴을 란도질했다.      얼굴이 창백해지면서 노기가 가득피여 오르던 그는 마침내 입을 열어 한마디 씹어 뱉었다.    《그 녀석 뒤여지자구 환장을 했나보지. 각을 찢어치울 놈!》     그는 지탱못하고 비츨거렸다.     딸과 며느리가 그를 부축해서 집안으로 들어가 구들에 눕혔다. 그녀들은 낯이 새파랗게 질려갖고 그가 혹시 운명이나 하지 않을가 겁나했다. 향란이는 울기까지 했다.     산채는 이 사건으로 인하여 몹시부산했다.       오군자기마대는 산채에서 2일간묵고 염왕산을 나가버렸다.     류자를 맡겨 반일을 하라고 내보냈더니 반일은 하지 않고 되려 변절한이 되었으니 그보다 더 대역부도한 짓이 세상에 어디있는가. 그지없는 수치를 느낀 향란이는 아버지가 정신을 차리자 그의 앞에다 제 심정을 토해놓고말았다.    《난 오빠가 정말미워요. 죽이고싶도록 미워요. 오빠가 우리 위씨가문의 위신을 일락천장이 되게 만들었단말이얘요.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아요.》    《글쎄말이다. 남의 원망을 사게됐구나.》    《참 귀신이 들어도 곡할일이지. 오랍이 어쩜 맘이 그렇게 앵돌아질가요. 그리고 여기왔던 그 조선사람들은 또 어떻게 되고요?》    《그걸 누가알겠냐.》    《그들도 같이 귀순했을가요?》    《사상이 강철같으면 몰라도.... 네 오랍은 어디 남한테 호락호락 넘어갈 사람같더냐. 무슨놈의 감투끈인지 원!》     위삼포는 아들이 변심한 원인이 대체 뭘가고 이리저리 궁리하고 머리악을 썼지만 도무지 알 수 없어서 나중에는 여기로 들어왔던 세 조선사람이 실상은 일본특무가 아니였을가 하고 생각했다.    《이렇든 저렇든 이 일은 똑똑히 알아봐야겠어요.》    《내 생각에도 그러는게 좋겠다만....》    《내가 한번 태평진에 갔다오는게 어떨가요, 아버지?》    《네가! 혼자서 어떻게?....》    《오랍이 과연 귀순했다면 그놈들이 날 해칠리야 없잖아요.》      《하긴그렇네라.》     위삼포는 딸의 안전이 걱정되면서도 그나 며느리아니고는 위용강을 만나보고 올 사람이 없는지라 갔다오는것을 허락했다. 어떻든간에 시원히 알아봐야 할 일이였다.     한편 소춘매는 남편이 귀순해서 상금타고 거기서 부귀영화를 누리고있다니 별의별생각이 다 나면서 마음이 괴로와지기시작했다. 이러던차 시누이가 와서 자기보고 함께 태평진에 갔다오지 않겠느냐 하니 얼싸좋다고 나섰다.       이날도 천기는 좋았다. 말이 잔달음을 놓아 녀인들이 어깨에 걸친 하늘색의 마상유삼은 깃발같이 팔랑팔랑 날리렸다. 조롱에 갇혔던 새가 자유를 찾아 하늘을 나는것 같이 그들은 기분좋았다.     아침을 먹고 떠난 그들이 태평진까지 닿고보니 오후3시였다.     전에 왔을 때와 분위기가 달랐다. 토성의 대문을 지키는 자들이 행인을 엄하게 감시하고 있었다.     《올케 무서워말아요.》    《무서워안해. 시누이는 속이 떨려요?》    《피. 내가 겁쟁인가.》     대문에다 쌍보초를 세웠는데 보초가 입은 옷을 보니 전만 달랐다. 정안군이 아니였다. 복장색이 회색인걸 보니 본지방의 자위단이였다. 태평진을 수비하고있던 정안군도 아마 반일의용군을 토벌하느라 동원된것 같았다.     대문을 드나드는 사람이 적지 않건만 말타고 다니는 행인은 그들뿐이였다.     향란이는 주춤거리는 소춘매를 따라오라 눈짓하고는 앞장서 말을 몰았다. 보초들은 저들의 앞에 표표히 나타난 두 마상객을 보자 경계하는 한편 서라고 손짓했다. 아마 멋스러운 백마와 그것을 타고 온 녀인들의 겉모양마저 너무도 유표해서 눈길을 각별히 끄당기는 모양이다.     한자가 향란의 앞으로 다가오면서 버드러지게 물었다.    《어디서 오는거냐?》    《산에서 와요.》    《산에서 온단말이지....여기루는 왜와?》    《오빠를 보려구요.》    《오빠가 누군데?》    《염왕산의 위포토우.》     둘은 눈이 둥그래지면서 수근거리더니 하나가 전화를 걸었다.     이만하면 되련만 말을 걸던 자가 두 녀인과 그냥 집작거렸다.    《저 녀잔 누구여?》    《아무녀자면 그거알아 뭘해요. 념소자! 피자!》     시누이가 가차없이 욕설을 내깔리는 것을 보고 소춘매는 참지 못해 까르르 웃었다.     보초는 배때벋은 계집들한테 멋없이 놀림당한 것 같아 낯이 수수떡같이 되었다. 그가 밸을 못이겨 씩씩거리면서 앙갚음 할 적중한 말을 찾는 사이에 저쪽보초가 공순히 다가와 깝신거리며 방금 전화가 통했는데 큰길로 곧추 300m가량 들어가면 오른편에 화초담을 두른 청기와벽돌집이 있으니 거기서 위용강을 만나리라 알려주었다.     여기에 있구나! 두 녀인은 그가 확실히 귀순하였음에 다시한번  놀라면서 한편으로는 또 오늘 만날 수 있게 되었으니 공걸음을 하지 않아 다행인것 같기도해서 안도의 숨이 나갔다.    《시누이, 저길봐요! 벼루기하고 구자(순경)가 많네.》     소춘매가 사방을 두리번거리면서 하는 말이였다.     북문보초선에서 걸어온 전화를 받고 향란이와 안해가 찾아왔음을 알게 된 위용강은 그들을 맞으러 친히 밖으로 나왔다.     소춘매가 남편을 대하자 여보세요 하고 한번 불렀을 뿐 그들의 상봉은 반가움도 기쁨도 없었다.     향란이는 말잔등에서 내리지도 않고 오빠를 짓꿎게 쏘아봤다.    《얘가 왜이래, 엉? 허허허....》     위용강은 병신스레 허구푼 웃음을 웃었다.    《내가 왜 이러는가구? 수치스러운줄도 모르구 과연 뻔뻔스럽네요. 오랍은 무슨짓을 했어요?》     녀동생이 야박스레 내쏘는 암팡진 질문에 게면쩍어진 위용강은 두눈을 슴벅거리더니 보는바와 같이 편안히 잘 보내는데 왜 그러느냐며 자기가 귀순한것은 지극히 당연한것 처럼 변명했다.    《부친께서는 당신이 대역부도한 짓을 했다며 대노했어요. 졸도까지 하면서. 하마터면 세상뜰번했어요. 당신은 그래 이럴줄을 몰랐던가요? 참 어쩌면.... 어서 돌아가자요., 어서. 네.》     소춘매가 절절히 애원했다.    《오랍은 어떻게 할래요, 나하고 올케는 오랍데릴러 왔는데. 이건 부명이얘요. 어떻게 하겠어요, 그래 갈텐가요 안갈켄가요?》     향란이는 단호한 태도로 대답을 받으려했다.     바로 이럴때에 거리에 나갔던 주혜란이 돌아왔다. 그녀는 생각밖에 두 녀인을 문득대하자 그 자리에 못박힌 듯 굳어졌다. 온몸에 강직이 온것 처럼 아느새 미동도 없더니 그녀는 이들이 바로 언젠가 사진관에서 본적이 있는, 바로 그 산에서 온 녀인들임을 알아보고는 얼굴에다 웃음을 바리기 시작했다.    《아니 어쩜....면목 좀 있는 손님들같네요!》     향란이는 제가 구미여우같다고 했던 그녀를 곱지 않게 보았다.     주혜란은 누구도 응대없자 소춘매쪽을 향해 다시 야슬야슬 입을 놀렸다.    《옳아요. 언젠가 사진관에서 본 기억이 나네요. 내말이 맞죠? 듣자니 할빈서 기생방에 있었다면요. 내 말이 맞죠?》     분위기는 험악해졌다. 기구멍이 막힌 소춘매는 당장 울음이라도 토해낼것 같았다.     주혜란의 얄팍한 얼굴에 간교한 웃음이 피여올랐다. 남을 일부러 궁지에 몰아넣자고 드니 괘씸하기 그지없었다. 그녀의 그 음험하고도 지독한 속심을 알아본 향란이는 매서운 눈길로 다시쏘아보고나서 소춘매를 끌었다.    《올케 가자요! 여긴 우리있을데가 아니야!》     그들은 지체없이 말머리를 돌렸다.       두 녀인이 가버리자 주혜란은 멍하니 선채 눈을 내리깔고있는 위용강을 향해 무슨생각을 그렇게 하느냐면서 팔을 끼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녀인의 기막힌 아양에 넋을 빼앗겨 언녕 오줌을 쌋거니와 철석간장이 봄눈녹듯이 녹아버린 위용강이라 이때는 짜장 그녀의 손에 꼭 쥐여 놀고있는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그녀가 일본관동군사령부에서 사냥개를 훈련시키듯 잘 배양하여 내놓은 특무라는걸 위용강이 어찌알았으랴!        주혜란은 시샘꾸러기 녀편네모양으로 그앞에서 투정부렸다.    《왜요, 내가 벌써부터 미워나는가요? 내 모르게 그 기생년은 왜서 불러왔나요?》    《내가 불러온게 아니야.》    《그럼요?》     위용강은 꿀먹은 벙어리모양으로 말이 없다.     주혜란은 사나이를 아느새 눈박아보고나서 입을 다시열어 공격적인 질문을 들이댔다.    《내가 못들었는 줄 알아요. 제 오빠보고 가겠는가 안가겠는가 따지데요. 대체 어쩌자는건가요?》    《부친께서 몹시 노여워하신다오.》    《왜요? 늙은것이 아들이 귀순했다고 그러는가요?》     주해란의 이런 매정스러운 질문에 위용강은 정신을 펄쩍차렸다. 아니 이년이 대체 뭔데 내 부친을 맘대로 헐뜯으면서 이 야단인가. 대체 뭔데 어쨌다구?.... 이제야 비로소 사실을 음페해야 함을 깨닫고 그는 둘러댔다.    《아니요, 아니야. 그래서 그러는게 아니야. 산채를 나와갖구는 여지껏 기별하나 없어서 그런다오. 참 내가 언녕 알렸어야하는건데 그만....》    《그게 뉘탓인가요. 내탓이야 아니겠죠. 뭐랬어요. 산채에 알리자니 그런다면 너무갑작스럽다느니 어떻다느니 하면서 두고보자고했죠?.... 아무튼 세상이 다 알고 황군위해서 바친 몸인데 왜 그랬나요? 이제 뭘 두고볼게 있다구 그러는가말이애요?》     녀인은 야멸차게 슬까스르면서 깐작이였다.     위용강은 대답이 궁해졌다. 사실 자기의 귀순이 어떤 반응을 일으킬지 몰라 유예미결하다보니 여지껏 산채에다 알리는것을 미루어왔던것이다.     주혜란은 즉각 일본수비대에다 산에서 위용강의 녀동생과 안해가 왔다간 사실을 보고했다.     지난해 6월에 관동군사령부에서 내린 치안유지에 따르는 일반지도방침에 보면 그네들이 비적이라 칭하는 반일무장을 섬멸함에는 토벌이 위주였다. 때문에 그 요령의 첫 번째가 바로 각 촌마다 자위단으로 자위력을 키워 자그마한 반일무장은 발을 붙일자리가 없게함으로써 스스로 자멸하게 만들고 토비무력은 끌어 당기고 투항시켜 그들이 다시는 반일을 못하게 하는것이였다. 그러면서 그 토비무장을 만주국의 군대나 경찰이나 혹은 자위단으로 개편하지 않는것이다. 한즉 태평진의 일본주둔군사령 오도야마가 위용강을 보고 나는 장차 너를 중용하리라한것은 새빨간 거짓말이였다.     하지만 오도야마는 자기손에 들어온 이 토비무장을 절대 놓치려고는 하지 않았다. 왜서인가?  산길에 눈이 익은 그들을 자기가 반일의용군토벌을 나설때 끌고 다니며 부려먹기 위해서였다. ...............................................................................................................................          *관한경(1210ㅡ1280): 원조때의 위대한 희곡작가. 이도(지금의 북경)사람이다. 가무에     능했고 음률에 정통했으며 대량의 잡극대본을 썼을뿐만아니라 몸소 무대에 나서기도 했다.    
143    <<관동의 밤>> 제2부(25) 댓글:  조회:2440  추천:2  2015-02-04
                              25                     전화(戰禍)를 입고있는 만주땅. 새만주국이 성립되였어도 총소리는 멎는 날이 없고 곳곳에서 비명횡사가 끊지 않았다. 처절한 곡성은 듣는 사람이 구곡간장을 끊을 듯. 3천만이 당하고있는 처경에 그야말로 초목이 흐느낄 지경이다.     하건만 여기 염왕산만은 새외도원인양 매양 평화로운 기분에 잠겨있다. 물론 산밖의 소식이 들어오지 않는건 아니지만 집에 화가 떨어져 부득히 가야 할 사람을 내놓고는 어느 류자든 산채를 떠나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종전대로 마음편안히 주사위를 놀고 장기를 두고 술을 마시였으며 잡담과 음담패설로 세월을 보냈다. 이런 환경이 이네들에게서 반일의식을 흐리우고있었던것이다.     향란이가 몸단장을 끝내고나서 건너방에 가보니 오빠는 어디로 가고 올케혼자 책을 펼쳐들고 무엇엔가 정신팔고 있었다.    《올케는 뭘 그리보고있어요?》    《당사주. 재미있네요.》     소춘매는 얼굴을 들어 시누이를 향해 웃고는 다시 책에다 고개를 떨구었다.    《운수를 맟추느라? 팔자가 어떻대요?.... 내것두 좀 보지.》     향란이는 소춘매가 들었는지 말았는지 반응이 없자 두꺼비 메뚜기를 삼키듯이 탁 채여 책장을 훌훌 번져 그림만 보다가    《팔자도망은 독안에 들어도 못하는거야.》     하면서 탁상우에다 훌 던졌다.     소춘매는 토심스러워 눈을 할끔빨고나서 그 책을 다시주어들며 말했다.    《내 시누이걸 봐줄가.》    《그런거는 보나마나. 안보는게 약이야.》     향란이는 심드렁한 태도였다.     그 당사주는 전에 불임약만드는 법을 향란에게 가르친바있는 녀인이 보배처럼여겨 애지중지하면서 손에서 놓지 않아 가위에 보풀이 인 책이였다. 여지껏 어느 구석에 처박혀있었는지 보이지 않던것이 나왔다. 아마 오빠가 건사했다가 안해가 심심해하는 것 같으니 보라고 내놓은 것 같았다.     워낙 향란이처럼 책보기를 즐기는 소춘매는 마치 보배라도 얻은 것 처럼 손에 쥐고 놓지 않았다. 향란이가 다시보자니 던져버리자고 그러는 줄로 알고 뒤로 감추면서 방어태세까지 취하니 향란은 우수워죽겠다고 배를 끌어않았다.    《그만웃고 내말이나 들어봐요.》     소춘매는 시누이가 웃음멋기를 기다려 사주본 얘기를 했다.    《내나 시누이나 다 팔자는 기구해요. 둘다 무자식이래.》    《무자식이면 뭐래. 무자식이 상팔자지.》    《그게 어쩜 상팔자되나?》    《자식같아나 속태우는 일 없으니 그러지.》     향란의 대답은 단순하고도 시원했다.     평생 새끼하나 못낳아 볼 이 두 돌계집은 팔자얘기가 시들해지자 이제는 보름전에 산채에 왔다간 오인 정민호가 하고있는 일을 꺼내놓고 얘기했다.     중동철로에서 일해온 공인들로 조직된 한 자그마한 유격대가 해림웃쪽에 있는 고령자(高嶺子)에서 목단강으로 오는 렬차를 전복하고 거기에 탓던 일본군을 섬멸할 때 민호도 자기의 무장대를 거느리고 가 협력해서 그번의 전투가 큰 승리를 거두게되였다. 전복된 차에는 일본군의 군수품이 적잖았다. 이쪽에서는 군용털탄자 500착과 털내의 1,000벌외에도 탄약 50상자, 사탕가루 20포대, 밀가루 5마차를 염왕산에 갖고왔던것이다.     그것은 형세가 불리해서 큰가마를 마스지 못하고 들어앉아있던 류자들을 얼마나 기쁘게했는지 모른다. 위삼포는 돼지를 잡고 주연을 베풀어 염왕대류자들을 열열히 환영했던것이다.     그번에 민호는 한주일간 묵고 산채를 나갔다.     향란이는 올케앞에서 장성이 센 오인 정민호야말로 현시대의 영웅답다면서 안해가 리별한 제 남편을 그리듯이 그를 그리면서 신상에 어떤 변고라도 생길까봐 근심하고 념려하군했는데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난 꿈에 그이가 타고다니는 백말을 보았어요. 건데 웬 일인지 사람은 안뵈이구 말만 와서 울고가던란말이애요. 흉몽이 아닌지.》    《어린애를 강가에 내보냈나요. 어쩜 장참.... 이젠 그따위 불측한 생각을랑말아요. 내가 뭐랬어요, 그인 불사조라잖아. 싸움을 하느라니 너무나고달파 올수 없어 꿈에 백마라도 보라고 보낸거야. 안그래?.... 내 해몽이 딱들어맞을걸.》     소춘매는 놀림절반 위안절반해서 향란이를 웃기였다.     꿈에 백마를 보면 죽는 수라고 들어온 향란이는 올케의 해몽대로 좋은쪽으로 생각을 굴리면서 안도의 숨을 호 내쉬였다.    《올케! 갑갑한데 우리 바깥 좀 나갔다올까? 화장품도 살겸.》    《분과 크림을 벌써 다 썼나보지.》    《다 쓰기야 뭐. 바람쐬자구그러는게지.》     향란이는 말만들었지 어떻게 생겼는지 아직 한번도 보지 못한 일본병을 제눈으로 직접보고푼 생각이 났던것이다..     두 녀인은 각기 자기 말에 올라 태평진으로 달리였다.     향란의 말도 소춘매의 말도 다 털빛이 고운 백마였다. 그 말들은 원체 덩치크고 좋은데다 굴레며 안장이며 가슴걸이 따위의 갖은 삼거리는 물론 등자까지도 구리로 장식해서 멋들어졌다. 그런것을 얼굴고운 녀인들이 탔으니 금상첨화라 황홀감을 자아낸다.     위삼포가 안다면 그들을 절대 그런모양으로 버젓이 나돌게 하지 않을것이였다. 이게 어느땐가. 아직도 란리판이 끝나지 않았는데. 하건만 두 녀인은 여유작작하게 그따위가 다 뭐냐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마치 유람이라도 하듯이 기뻐했다.     한창좋은 봄날씨다.     태평진은 정안군병사들이 북문을 지키고있었는데 드나드는 사람에 대해서는 주로 남자들만 몸수색하고 여자는 별반 건드리지 않는것 같았다. 더구나 말타고 의젓이 나타난 두 녀인은 어느 세력가의 유한부인같아보였는지 허리까지 굽혀가며 들여보냈다.     해자를 파 토성을 쌓고 네귀에 포대를 세운 태평진의 거리에서 렬을 지어 다니는 일본병을 볼 수 있었다. 좀 긴장한 감을 던져주고있지만 이곳 주민들의 생활이나 질서는 그리흩어지지 않았는지 예전과 별반다른것 같지 않았다. 가게마다 문을 열었고 거리에는 의연히 분주할지경 나다니는 사람이 많았던것이다.               여기에 오면 말을 건사하기가 말째였다. 태평진에는 마방이 하나뿐인데다 그마저 동남쪽귀퉁이에 있거니와 늘 만원이여서 오래묵지 않을 사정이면 거기로 가게되지 않았다.     말을 어떻게 건사할가고 궁리하던참에 마침 저기 잡화점앞 행길가에 전선주 한 대 서있는것이 눈에 띠였다. 전기를 가설하느라 세운지 오라잖은것이였다.      두 녀인은 말을 그리로 끌고가 서슴치 않고 매놓았다.    《시누이, 혼자들어가 장봐요.》    《아니 올케? 누가 대낮에 남의 말을 감히 훔친다구 그래요.》    《그래두..... 난 말없이는 걸어못가겠어.》     소춘매는 이러면서 기여히 시누이혼자 잡화점에 들어가라했다.     향란이는 그러는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자기와 올케가 오래두고 쓸 분이며 크림이며 치약같은것들을 두루사고나서 더 사야할게 무엇일가 궁리하다가 올케를 주려고 클리프 몇 개를 더 사갖고 거기를 나왔다.     그가 밖에 나와보니 그사이 말을 매놓은 전서주가에 숱한 사람이 모여있었다. 향란이는 대뜸 일이 생겼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때려 그리로 달려갔다.    《올케 무슨일인가요?》    《이 경찰이 글쎄 날보고 벌금을 하래요. 호....》     시누이를 보니 구원자가 나진것 같은지 소춘매는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경찰은 향란이를 보더니 허리를 깜신거렸다.    《저 아씨님! 이런겝니다. 전선대에다 말을 매지 말라고 이미 통보까지 내렸는데 그냥 이렇게....》    《정말 시시하게 노네!》     향란은 그가 말을 더 못하게 문질러놓았다.    《깜박 모르구맨것두 그래 죈가요. 얼마를 벌금하래요?》     제쪽에서 외려 도리가 있는것 처럼 쏘아붙이면서 돈지갑을 여니 경찰은 손을 내저었다.    《관두시오! 관두시오! 제도를 다시위반하지 않으면 됩니다.》     시끄러워운지 그만 가버리는 경찰의 뒷등에 대고 향란이는 한마디 욕을 던졌다.    《피자!》     모여선 사람들은 저마다 말이 과연좋다고했다.     소춘매가 길건편에 있는 사진관에 눈길을 꽂더니 만면에 웃음꽃을 피웠다.    《시누이, 우리 왔던김에 사진이나 한 장 찍고갈가?》     류자들은 거의 사진을 찍지 않는다. 사진이 있어서 만일의 경우 그것이 경찰손에 들어가는 날이면 오히려 화를 자초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여 향란이는 나이를 서른살넘어먹도록 여직 한번도 사진기앞에 나선본적이 없다. 한데 오늘 올케가 기여이 기념으로 한 장 같이찍고싶어하니 막을 수 없었다.     마침 사진관에는 사진찍으러 온 사람이 거의 없으나다름없었다. 그들이 들어가니 소춘매모양으로 머리를 구불구불하게 서양식으로 빠마를 한 미모의 녀인하나가 제 애인인듯한 멋진 사나이와 머리를 맛대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들이 찍고나니 이쪽차례였다. 두녀인은 그 자리에 가 앉았다.    《아가씨, 아가씨는 여기분아니지요?》     사진을 다 찍고나서 생각밖에 사진사가 소춘매를 눈박아 보면서 건늬는 말이였다. 소춘매는 그가 전혀 면목이 없었다. 하여 어정쩡 보기만하는데 사진사가 다시금 알은체했다.    《아가씨는 할빈 연하루에 있잖았습니까? 참 오래간만인데요.》     사태가 좋지 않은지라 향란이가 제꺽 끼여들었다.    《사람을 잘못봤네요. 세상에 몰골이 같은 사람이 얼마라구요. 우리 올케는 아직도 할빈이 어디붙은것도 몰라요.》     사진사는 고개를 찌붓거리더니 그렇다면 내가 아마 사람을 잘못본게로군 하면서 미안함을 표시했다.     향란은 그보고 사진을 딱 두장만 씻어달라 부탁해놓고 소춘매와 함께 거기를 나와버렸다.       담즙질이 있는 위용강은 요즘 늘 꿈자리사나왔다. 남한테 쫓겨 기진맥진하지 않으면 매를 맞았다. 한정없이 깊은 웅덩이에 빠져서는 나오지 못하기도했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기도했다. 그러다가 요행 떠내려오는 통나무를 만나 끌어안고 보면 그것은 제 안해의 몸뚱이였다. 어떤때는 안해를 질식시켜 아부재기를 치게 만들기도했다. 그럴때면 위용강은 심장이 어찌나 세차게뛰는지 잠을 다시이루기힘들었다. 왜 이럴가? 내가 왜 악몽만 자꾸꾸는걸가?.... 한번 꾼 악몽은 강박상태에서 환각을 만들어내기도했다. 그것은 그를 몸서리치게 하는 스산한 장면이였다.     남편한테서 전염됐는지 소춘매도 가끔 꿈자리가 사나왔다.     《이건 아마 장평때문인것 같애요. 나가본걸 들어와서 그대로 번질건 뭐얘요. 어떤 얘기는 해도 듣지 말았어야 옳았어요.》     소춘매는 지어 밥맛까지 잃을 때가 있다면서 불평이였다.     위용강은 자기도 아마 그래서 그런모양이라했다. 간밤에도 그는 인중에 단추만한 콧수염을 단 안경쟁이 일본군장교가 긴 군도를 번쩍올려 자기 목을 내려치려는 꿈에 가위눌려 신음하다가 안해가 깨워서야 정신차릴 수 있었던것이다.     며칠전에 장평이 다른새자와 함께 볼일이 있어서 태평진에 갔다가 거기서 과연 끔찍한 일을 목격했다. 그곳을 점령하고있는 일본군이 반일분자를 잡아다 참혹하게 학살했다. 그자들은 장정 다섯과 부녀 둘, 아이 하나를 고문하여 거의 반주검이 되게 만들어놓고는 옷을 벗겨 웅덩이에 처넣고는 갇혀있던 굶주린 군견 20여마리를 풀어놓아 물어죽이게 했다. 아우성소리, 비명소리... 사나운 개들은 사람을 물어죽이고 살을 뜯어먹었는데 어떤 깨는 아가리에 시퍼런 창자를 문채 뛸쳐나와 질질 끌면서 거리바닥을 뛰여다녀 행인들을 질겁케 만들었다.     장평은 산채에 돌아와 본 그대로 생동하게 서술했던것이다.       품들여 점찍어놓은 큰기와가마가 몇개있었건만 모두 일본군쪽으로 넘어가 그들의 보호를 받고있어서 이전같이 쉽사리 들부실 수 없었다. 그리하여 위삼포는 일본군을 몹시 증오하게 되였다. 그는 이럴바하고는 차라리 일본군의 군고를 털어볼가고 궁리를 해보기도했다. 한데 그러자면 큰싸움을 해야하는데 제 혼자의 힘으로는 자신이 없었다. 하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일본군은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한편 의용군인 왕덕림의 구국군, 리두의 호로군, 정초의 자위군은 다가 처음에는 왁자하게 소문내던것이 새해를 잡자 년초부터 완강한 적의 진공앞에서 련속패전을 거듭하다가 나중에는 형편없이 되고말았다. 정초는 일본군에 투항했고 리두와 왕덕림은 배겨내지 못하고 국경을 넘어 로씨야로 철퇴했다.     일본군은 염왕산주위의 광활한 지역을 점령했다. 하지만 적들은 아직도 만주의 주요성시와 철도연선만 장악했을 뿐이니 위만정권은 사실상 공고하지 못했다.    《우리는 왜 이꼴이 되는가, 힘을 합쳐 싸우면 되련만.》     민호는 10월 중순에 이르러 의용군과 련합작전을 해오던 3,000여명의 한국독립군마저 맥을 더 쓰지 못하고 와해되였다는 소식을 듣고는 한숨을 길게 내쉬였다. 나도 그들과 결맹하여 꼭 련합작전을 해보자고했는데 그것이 수포로 돌아가고말았구나!     이 몇해간 한국독립군은 몇차례 싸움을 아주본때스레 했고 전과도 휘황했다. 구국군 시세영부대와 손잡고 함께 이쓰카라련대를 전멸시킨 수분대전자전투같은것은 청산리전투만 못지 않아 력사에 기록할만한것이였다. 한데 그렇게 싸워온 부대가 결국 자기가 믿어준 부대의 손에 리유도 모르게 하루아침에 무장해제를 당해서 그만 붕괴되고만것이다. 그 내막을 민호는 알수없지만 한국독립군이 그렇게 되였다니 가슴이 미여지는 것 같이 아파났다. 어쩌면 로씨야에 건너갔던 한국독립군이 그곳의 자그마한 역전마을이나답지 않은 블라고베쉔스크(해란포혹은 자유시라고도 부름)에서 남의 군권쟁탈에 휘말려 하루아침에 붕괴되고만 그 피비린 사변이 오늘 여기서 또다시 재연되는것일가. 아, 아, 세상도 야박하구나! 이제는 우리의 독립혁명은 누가 완성한단말인가?....     최기덕이도 그 한국독립군에서 총들고 싸웠을텐데 지금은 어떻게 되였는지? 살아나 있는지?....       민호가 모르는 일은 너무도 많았다. 한국독립군이 와해되자 주요간부들은 하나 둘 관내로 나갔으나 어떤 장병들은 나가지 않고 만주에 그냥남았다. 그들은 다른 의용군부대를 찾아 살림속에 들어가 총을 다시잡고 계속싸우고 있었던것이다. 최기덕역시 그중의 한사람이였다. 그는  한국동립당에서 군인모집이 있어서 빈현에 갔다가 거기서 다행히 민호의 백형 민수를 만날 수 있게 되였던것이다. 적기단사람은 아니지만  그역시 공산주의경향이 있 사람이였다. 하여 두사람은 만나자마자 남달리 친근한 사이가 되었다. 최기덕은 불행한 자유시사변때 흑룡강에 뛰여들었다가 4일만에 민호와 같이 극적으로 허저인손에 구원된 일로부터 시작하여 그에게 모든 것을 자세하게 알려주었다. 그들은 다가 언제면 민호를 다시만날 수 있을가고 늘 그리고있었던것이다.    《그야 다시 토비굴에 들어가도 반일에 나섰을겁니다.》    《나도 그리믿소, 적잖은 살림대들이 구국성전에 나섰으니.》        기덕이도 백형도 이렇게 단언하고 있었다.     한국독립군이 와해되여 장병이 제가끔흩어질 때 최기덕과 정민수도 갈라져 살림속에서 헤매다가 각기 반일부대를 찾았거니와 또한 거기서 지하공작을 나선 중국공산당원을 알게되어 둘은 각기 다 그 당에 가입한것이다. 항전대렬에 서서 선줄을 이끄는 조선사람의 혁명가와 투사들이 적지 않았다. 이즈음 할빈동부지구에서 중국공산당이 독립적으로 령도하는 하나의 무장대가 창건되기도하였는데 그 명칭은 주하동북반일유격대였다. 초창기 인원은 13명이고 대장은 이제 나이가 20대중반에 이른 조상지(趙尙志)이라는 한족청년이였는데 정치지도원과 경제부장을 맡고있는 사람은 다가 조선족이였다.     한편 자발적인 반일의용군가운데 아직까지도 항전을 계속하고있는 살림대가 적지 않았는데 그 중에서 기치중(祁致中)의 명산대(明山隊)(주)를 내놓고 손을 꼽아야 할 것이 아마 오군자(五軍子)였다. 오군자는 싸움을 잘하여 계속 이름을 날리고 있었던거다. 기덕이도 민수도 다가 오군자에는 염왕대라는것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서는 그것이 바로 염왕산 위삼포토비가 내놓은 반일무장일것이다, 오군자의 두령이 오인이라는 조선족사나이라니 그게 바로 민호일것이라고 짚고있던것이다.     날이 갈수록 동생생각이 간절해진 정민수는 내가 언제면 그애를 만나볼 수 있을가 했는데 마침 기회가 생기였다. 신분을 속이고 청림대(靑林隊)에 들어와 참모장노릇을 하고있는  김휘가 그를 조용히 불러 중요한 담화를 했던것이다. 김휘는 민수와 동갑이고 그도 3.1운동직후에 만주로 들어왔다.    《듣자니 오군자의 두령이 조선사람이라는데 그게 동무가 찾고있는 동생이 아닐가?》     그가 하는 말이였다.    《글쎄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어디 만날 수가 있어야지.》    《만나는 방법이 있지. 동무가 거기로 가란말이요. 토비무장이라해서 꺼릴거야 없잖소. 황차 그들이 우리보다 싸움을 더잘해 전과도 숱해올리고있는데. 우리는 되도록 손을 빨리써서 그들을 우리쪽으로 끌어오잔말이요. 모든 반일력량을 련합하여 반일반제투쟁과   유격운동을 전개하잔말이요.》     김휘는 이것은 당내에 하달된 상급의 지시라면서 반제통일전선을 집행하고 무산계급령도권을 쟁취해야한다고 했다. 그 가 말하는 상급이란 중공만주성위(中共滿洲省委)를 가리키는 것이고 거기의 결의(決議)니 곧 지시라는거다.    《나더러 토비속에 들어가보란말이지.》     그러잖아 백수를 써서라도 동생을 만나보고싶었던 민수는 자기를 믿고 임무를 맡기니 못하겠다는 말이 없이 흔쾌히 나섰다.          초가을의 어느날 정민수는 동생을 동생을 만나러 염왕산이 있는 장광재령에다 발을 들여놓았다. 수행인원 둘까지해서 모두 세사람이였다. 이것은 그야말로 위험한 길이였다. 하지만 대도리앞에서야 사리가 통할게 아니냐 하는 제 생각에서 신심이 부풀기도했다.     한데 그들은 정보를 잘못장악했다. 얼마전에 염왕대가 왔다갔을 뿐 오군자가 다 함께 염왕산으로 들어온적은 한번도 없는것이다. 민호도 다시들어오지 않았다. 그런줄을 모르고 그들은 여기에 있는줄로만알고 삼림을 파고들었던것이다.     산에서 발이 익은 그들이였다. 한들 낯선산에서야 무슨 용빼는 재간이 있는가. 더구나 짐승도 길을 잃고 울어댄다는 염왕산에서.     그들일행은 산채밖 50여리 지점에 설치되여있는 보초선에서 류자들의 손에 붙잡혔다. 류자들은 그들의 몸을 수색하여 권총 3자루와 경비로 쓰는 얼마가간의 돈을 빼앗아냈다. 무기에는 흥취없는 류자들이라 돈을 보자 그 자리에서 즉각 나누어가졌다.     수행인원중에는 춘만이라 부르는 조선젊은이가 있었는데 몸을 무리하게 수색당하고 보니 분하기 짝이없는지라 참지 못하고 우리는 반일부대의 대표다 너희들의 두령을 만나 단판할 일이 있어서 온건데 왜서 이렇게 무례한 짓을 하느냐고 그닥지 않은 중국말로 항의를 했다가 그만 혼빵났다. 류자들은 야 이 철도 모르는 메뚜기야 어디라구 이꼴로 놀아대는거냐 하면서 치고 박고해서 그를 늘어지게 만들었던것이다.     정민수가 이 젊은이는 아무것도 몰라서 망탕소리를 했으니 제발 용서해달라 빌었다. 그래서 춘만이는 더 큰 화를 입지 않았다.      보초선의 류자들은 그들 셋의 눈을 싸맨 후 말잔등에 태워서 산채로 들려보냈다.     위삼포는 선문도 없이 자기를 찾아온 세 사나이를 그닥반가와하지 않았다. 셋중 나이가 제일많은 사람이 자기는 이곳에 와있는 민호의 백형이라 자아소개를 하니 험하게 굴수는 없지만 그가 혹시 왜놈의 밀정이나 아닌지 해서 경계했다.     이쯤한건 각오하고 들어온 민수였다. 다행히 한어로 제앞의 말은 할줄을 알아서 그는 입을 다시열어 간절히 사정했다.      《절 제발믿어주십시오. 민호는 정말 제 동생이 옳습니다. 안그런걸 제가 이토록 우기겠습니까. 본인이 오면 제꺽알건데요. 걔를 만나게해주십시오. 저는 개를 볼려고 위험불구하고 찾아온겝니다.》     《네가 동생을 만자는 용의가 뭐냐?》    《그하고 한가지 사정얘길 할것있어서 그럽니다.》    《사정얘기라니 딱 그하고만 할 얘기냐? 그러니까 내가 들어서는 안될소리란말이지?》    《아, 그건 저....》    《왜서 말을 못해?》     대방이 쭈물대니 위삼포는 단통 낯색이 굳어지면서 눈살을 꼿꼿이 세운다. 그의 눈은 네놈이 나를 어째볼려고 게발아들어온 협화회녀석이나 아니냐 의심하고 있었다.     민수는 그제야 자신의 행동에 구멍이 났음을 깨닫고 가슴이 뛰기시작했다. 동생의 이름만 대면 반가와할 줄 알았는데 판판달랐다. 내가 어리석었구나, 행동이 너무가벼웠어. 스스로 반성해보면서 그는 생각했다. 변화무쌍한게 토비라는데 동생이 혹시 저 늙은것과 화합이 맞지 않은거나아닐가, 정녕 그렇다면 있어도 만나지 못하게 할 수도 있지. 이런 생각을 꼬리물고 불길한 예측들이 착잡하게 갈마들었다. 그는 머리가 뗑해나기까지 했다.     위삼포의 예리한 눈길이 그의 심리상태를 짚어보고 있었다. 흡사 사나운 삵이 토끼를 잡아놓고 먹기전에 혼을 빼듯이.      범에게 물려가도 정신만은 차리라했더라, 정신만은! 민수는 숨을 길게 들이긋고나서 그앞에 실속을 풀어놓았다.    《전 워낙은 한국독립군이였습니다만 지금은 청산반일부대에 있습니다. 두령께서 혹 소식을 들으셨는지요. 한국독립군은 갑작변을 당해 다 흩어지고....나는 동생을 찾느라 여지껏 헤맨겁니다..》    《여기에 동생이 있다는건 어떻게 알게된건가?》    《최기덕이라구 하는 동생의 친구가알려줘서요.》    《언제?》    《구일팔사변이 금방나서였습니다.》    《그렇다면 이젠 삼년철이 다 되는군. 건데두 인제야 찾아온단말이지? 꼭 그 목적뿐인가? 다른생각은 없고?》     위삼포는 바투들이댔다. 이 로련한 토비괴수는 대방의 똥집까지 다 들여다보는것만같았다. 동생을 만나보자고 왔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임무를 맡고 온 것이다. 그것을 숨겨서야 되는가?    《우리는 싸움을 그냥해왔지요. 지금도 하고있습니다. 그런데 그냥 싸우자고 보니 력량이 모자라서....》    《그래서 자는 범을 깨우는건가? 산에서 끌어내려구?》     위삼포는 경험도 수완도 없이 덤벼치는 그를 하룻강아지로 보고있었다. 그러면서도 험하게 박대는 하지 않았다. 그의 말이 거짓같게는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을 청산패의 라고 하는 민수와 둘을 민호가 맨처음 여기로 왔을 때 갇힌바있는 그 깔까래를 편 온돌방에서 그날밤을 지내게 했다. 그냥 쫓아버리기보다 좀 두고 볼 생각이였다.     한편 민수는 아무튼 말은 꺼내놓은것이니 동생을 만나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더라도 반일전을 잘해나가기 위해서 서로손을 잡을데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담판해보는게 났지 않을가 생각했다.     민수가 이러고 있을 때 향란이가 문득나타났다.     세사람의 눈길은 모두 그녀의 몸으로 날아갔다. 춘만이를 내놓고 다른 한 청년, 부대에서 련장노릇을 하고있는 안원식이 녀인의 도고한 태도에 어떤 위압감이 생겨 혀아래소리도 뇌이였다.    《저건 왼 계집년일가?》    《아마 두령의 딸님인것 같은데 입조심하라구.》     민수는 마뜩잖아하는 그한테 주의주었다.    《저 계집년도 토비니 사납겠지.》     춘만이는 들어올 때 곤욕을 치른지라 그녀를 밉게봤다.     한데 녀인의 태도는 생각밖에 달랐다. 그녀는 세사람을 번갈아보더니 입을 열어 물었다.    《세분중 누가 민호의 형님인가요?》     목소리가 부드럽거니와 화기애애한지라 셋은 멍해졌다.     향란이는 얼굴에 웃음지은채 다시물어왔다.    《어느분인가요? 듣자니 민호형되는 분이 동생보러오셨다니....달리생각말아요. 난 그분을 보러온거얘요..》     민수가 나섰다.    《접니다. 바로 접니다. 아가씨는?...》     녀인은 상냥한 웃음으로 존경을 표하면서 자기를 소개했다.    《전 향란이라고 부르는데 오인의 친구얘요.》     동생의 친구라니 민수는 알아맞히고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전에 최기덕이한테서 동생이 여기에 들어와 있으면서 토비두령의 딸과 치정관계가 있다는 소리를 들은바있었던것이다.     《오 알만합니다. 내 동생이 제 각시를 못찾고 여기서 다른녀인을 보구있었다더니 바로 그녀로구만!》    《그런것까지 알고있었나요.》    《그 애의 친구가 알려줘서....》    《그렇구만요! 참 그 친구는 어떻게 됐나요. 지금 생존인지?》    《생존이지. 나하구는 다른 삼림대에 들어 싸우고있지요.》    《아, 그런가요. 그러잖아 가끔 뇌군하던데.... 건데 참 안됐어요, 모처럼 찬아와갖고 만날분을 만나지 못해서.》    《아가씨, 건 무슨소립니까? 내동생이 여기에 없다는겁니까?》     향란이는 바로 그렇다는 뜻으로 고개를 까댁였다.    《대체 어떻게 된건가?》    《접때들어와 한주일가량있곤 나가서는 다시들어오질 않고있어요. 지금 어디에 있는지 나도 잘 몰라요.》    《걔가 여기사람이야 옳겠지?》    《옳아요. 옳구말구요. 왜 여기사람아니겠나요.》     향란이는 동생을 못만나서 몹시 서운해하는 사나이의 몸에서 눈길을 떼지 않은채 물었다.    《그러니 그분이 여게있을줄알고 찾아오셨겠군요?》    《그렇습니다. 오군자가 염왕산의 무장아닙니까. 그러니 여기에다 둔을 치고있는줄로 알았는데.》    《왜 여기다 둔을 치겠나요. 오군자가 다 우리 염왕산의 것이  아닌데요. 거기서 염왕대 하나만 우리해죠. 하긴 어찌보면 다 우리해같기도하지요. 거기 맏두령이 우리 사람이니까요. 오인이 누군지 알아요, 그가 바로 정민호인거얘요.》    《그렇겠지! 내 짐작이 들어맞았어! 하하하...》     민수는 웃고나서 혼자소리로 중얼거렸다.    《헌데 그자식이 여기도 안있구 어디루갔을가? 있어야할테데.》     조선말이여서 향란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없으니 방법없습니다. 나가 찾아봅시다.》     춘만이가 하는 소리였다.     안원식이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는 산채를 나가는게 그리급하지 않다면서 위삼포앞에 이미 찾아온 다른 하나의 리유를 내비치였으니 노여움을 다시촉발하더라도 되든 안되든 한번 더 끄집어내보자했다 이 훌륭한 토비무장을 반일전에 내몰지 않아서야 되겠느냐 하면서.    《생각은 무지개같소만 만나야 할 사람이 없는데 어디될가?》     춘만이는 되지 않으리라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무슨 토론을 그렇게 진지하게 하나요?》     향란이가 알고싶은지 물어보는 말이였다.    《위두령께서 반일을 어떻게 생각하고계십니까? 우린 그분하고 긴하게 상담할 일이 있어서 그럽니다.》     안원식이 알려주었다.    《참 괴상한 질문을 다하네요. 저의 부친이라고 왜 항일을 안하겠나요. 생각해봐요. 그것을 안할분이면 기마대를 주어서 데리고 나가싸우라했을가요. 그렇지 않아요?》    《하긴 우리도 그렇게 생각하고 들어온건데 아까 위두령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어보니.... 우리가 온걸 대단히 언잖아하시더구만, 사실은 내가 임무를 맞고 온건데.》    《수편하려구 드니 그러지요. 되지도않을 짓을.》    《왜 안됩니까?》     민수가 따지듯 하니 향란이는 맵짜게 쏘아붙인다.    《염왕산을 어떻게 보고그래요. 그깟 청룡대가 다 뭔데? 우릴 수편해서 제걸로 말들자구, 흥! 두꺼비 고니고기를 먹자는게지.》     듣고보니 과연그러했다. 한 개 사단의 힘이나 갖고있으면 몰라도 인원이 백명도 안되는 자그마한 청림대가 정비되고 완강한 염왕산토비무장을 자기부대에 끌어넣으려는 생각 그 자체가 어리석기 그지없는것이였다. 열망과 욕심이 분초를 가릴줄 모르면 그런것이다. 민수는 파악이 미숙했음을 이제야 심절이 느끼였다.    수편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같이 손잡고 련합작전은 할 수야 있지 않는가. 제기법이 다르지만 산속에 들어앉아있는 무장을 항전에 내몰면 구경은 같은것이라고 민수는 생각했다.    《련합작전을 해볼 의향이라면 용기를 내봐요. 저의 부친도 도리를 아시는 분이길래 무턱대고 반기를 들지 않을거얘요. 그러잖아 왜놈을 대단히 미워하고계시는데요.》     민수가 련합작전을 하련다니 향란이는 이같이 지지했다.     정민수는 위삼포를 다시만나 그의 앞에서 염왕산과 청림대는 련합여 항일을 해보는게 어떤가고 제기했다. 위삼포는 곰곰이 듣더니 항일이야 해야지 해야지 했다. 그러면서도 태도는 너무나 차가와 민수는 속이 개연치않았다.     이시각 위삼포는 언젠가 보승(保勝)이란 산림대가 이름이 쌍승(双勝)으로 고쳐진 일을 생각하고있었던것이다. 9.18사변이 나자 보승내의 원동북군병사였던 왕아신(汪雅臣)이란 류자가 항일을 반대하고 백성을 그냥 털어먹을각질하는 두목 보승을 죽여버리고는 그것을 쌍승이라 고치쳐갖고 항일을 하고있었던것이다. 염왕산도 자칫 그모양이 될것같아서 위삼포는 기분이 좋지 않았던거다.     민수는 향란이를 찾아 알아보는 수 밖에 없었다.    《위두령께서 련합작전을 동의하더구만요. 헌데 참 리해안됩니다. 위두령의 마음이 정녕 그렇다면 나하구 왜 그토록 랭담했답니까? 너무하지않는가요.》    《너무한게 뭐얘요.》     하면서 향란이는 제 아버지를 두둔했다.    《저의 부친께서는 이젠 년세가 많으셔 마상에 올라 산채를 나가 싸울 수 없는거얘요. 그런분하고 나가자면 반가와하겠나요.》    《오, 그렇지! 알만합니다!》     민수는 머리를 주억거렸다.     한편 위삼포는 당전의 형세가 염왕산류자라 하여 산채에만 그냥 들어앉아있게 하지 않음을 절실히 깨닫기시작했다. 황차 위험불구하고 찾아와 손잡고 싸워보자고 권유하는데 그것마저 거절한다면 그때는 평판이 어떻게 될지 그것이 우려돼였다. 하여 위삼포는 사량팔주를 모여놓고 회의를 열어 그들의 의사를 들어보기로 했다. 한때 용력을 들날렸던 팔대금강중 반수이상이 나이많아 이제는 총들고 나가 싸울 수 없었다. 허나 지금은 이전처럼 심드렁한 태도가 아니였다. 오인이 나가 용감히 싸웠기에 염왕산의 이름을 크게 세워준것이다. 그들은 다가 반일을 한다해서 산채가 뿌리빠질건 아닐테니 류자들을 할 일이 없어서 빈들거리게 말고 더 내보내여 왜적을 잡게하는게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위삼포는 마침내 그렇게 하기로 결심을 내렸다.          10일후. 만단의 준비가 되었다고 여겨지자 위용강이 200명류자를 거느리고 산채를 나갔다. 청산대의 대표로 온 이쪽 세사람도 말 한필씩 받아 타고서 함께나났다.     이 알쭌한 기마대에 비하면 지금 저쪽에 있는 청산대는 얼마나 초라한가. 말은 물론 무기마저 형편없는것이다. 민수는 자기가 이같이 훌륭한 기마대를 이끌고 동지들 앞에 척 나설때의 장면을 눈앞에 그려보면서 빙그레 웃었다. 수편은 하지 못햇지만 이 하나의 훌륭한 기마대를 반일에 내세우는것만으로도 그는 만족했다.     청림반일부대와 회합하기 위해서 남진하고있던 기마대는 태평진을 앞에 놓고 행진을 멈추었다. 태평진은 지난해 5월에 일본군에게 점령된 이래 그네들의 든든한 거점으로 건설되여 있었다. 주둔군은 무기장비가 훌륭했다.     민수는 눈앞에 있는 태평진이 생소하지 않았다. 전해의 여름에 민수가 소속해있었던 한국독립군은 쌍성(雙城)을 들이 칠 때의 모양으로 한조에 20명씩 15개조로 나누고 가운데 기관총대를 세워 정면과 좌측으로 태평진을 공격했으나 련합군의 배합이 제대로 되지 않은 관계로 성공못했다. 후에도 두차레나 들이쳤지만 번마다 실패하고말았던것이다.     태평진은 지금도 난공불락의 성새로 오연히 자리틀고 있었다.     이 완고한 보루를 그래 깨뜨리지 못한단말인가고 궁리하던 정민수는 머릿속에 문득 한가지 기발한 생각이 떠올라서 두 전우에게 말했다.     《우리 이렇게 하기오. 들어가서 가짜투항을 하잔말이요. 그래서 훌륭한 무기를 정비한 다음 거기를 살짝 빠져나오잔말이요. 기관총, 박격포가 생기게 될게 아니요. 연극을 잘만 놀면 성공은 떼놓은 당상일거요!》     안원식이 그 소리를 듣더니 펄쩍 뛰였다.    《무슨 궁리를 그렇게 하오. 요행동원시킨 병력을 잃어버리자구 그러오. 부대에서 기다릴텐데 빨리가기나하기오.》    《떼우다니. 다 된 밥을 갖고 걱정할게 뭐요. 부대로 돌아가는것도 그렇지 뭐가 급해서 그러오. 떠날 때 기한을 늘게잡은거요. 염왕산과 합작이 되겠다 시간도 있겠다. 거기다 이제 장비까지 더 훌륭히 갖춰갖고 돌아간다면야 그야말로 꿩먹고 알먹는게 아니겠소.》    《생각이야 좋지만 그렇게 될가. 내가 꿈꾸면 남은 해몽한다는 걸 알아야하오.》    《단단히 짜고들면야 제깟것들이 어떻게 안다구 그러오. 범을 잡자면 범의 굴에 들어가야지. 안그렇소? 그따위 겁쟁이심리같고는 아무일도 못해내, 아무일도.》     민수가 이러면서 하도 장담하니 나어린 김춘만이 위용강을 힐끗 눈깃질로 가리키며 묻는다.    《저 토비대장을 믿을만할가?》    《믿을만하지, 믿을만하구말구. 그렇지 않으면야 데리고나와?》      하도 신심있어하니 둘은 그만 입을 다문다. 그렇다, 믿지 못할 무장이면 어떻게 련합작전을 한단말인가 하고 생각해버렸다.     정민수가 자기가 고안해 낸 계책을 위용강의 앞에 내놓았더니 위용강은 처음에는 눈살을 찌푸리던것이 차츰 얼굴에 웃음을 피여올렸다. 자기 생각에도 그쯤한 모험은 해볼만했던것이다.     바둑을 한수만 잘못쓰면 실패하고마는건데....     깊이 판 해자, 높다란 토성, 엄엄한 포대.... 태평진은 이름그대로 태평스러운 자태이기도했다. 이런데로 200여명의 기마대가 흰기를 들고 입성하니 그곳의 일본군주둔사령관인 오도야마는 이게 웬 떡이냐싶어서 입이 함박만큼 버그러졌다. 그러잖아 염왕산토비를 끌어당기자고 머리를 쓰던참이였다. 반일의용군을 토벌하자면 산길에 환하고 미립있는 그들의 방조가 없시는 안되였던것이다.    《우리들의 패 하나가 밖에 나돌면서 황군께 적잖은 욕을 뵈인것 같은데 이제야 그 그릇됨을 깨달아 오늘 내가 먼저와서 투항을 신청하니 사령께서는 너그럽게 받아주십시오. 반만항일이 무모한줄로 압니다. 이제 사람을 보내여 오인마저 돌아서도록 할텝니다.》     위용강이 이같이 말하니 오도야마는 대단히 흡족해하였다.     그의 얼굴에 난 구렛나루수염이 다 웃어주는것만같았다.     오도야마는 위용강을 보고 적시에 총명한 선택을 했다고 칭찬하면서 그를 선견지명이 있노라 개여올렸다. 그리고는 그날저녁으로 연회를 크게 차려 그가 끌어 온 전체류자들을 환영했다. 이틑날도 사흗날도 역시 그모양으로 대연을 베풀었다. 오도야마는 금고를 열어 위용강에게 거액의 상금을 주었다. 그러면서 그 아래의 장자붙은 류자들에게도 급에 따라 일일이 상금을 주었거니와 새자에 이르기까지 돈을 아끼지 않고 뿌려주었다.     오래동안 가마를 마스지 못해 돈주머니가 비여있었던 류자들에게는 이것이 그야말로 꿈에도 생각못했던 일이라 횡재나 다름없었다. 하여 그들은 기뻐서 어쩔줄모르면서 반일이 다 뭐냐 위포토우는 과연 명지한 처사를 했다고 칭찬했다.     오도야마는 주위에 화초담을 두르고 청기와를 얹은 아담진 벽돌집 한 채를 위용강에게 주고는 여자까지 하나 들이밀었다.     주헤란이라 부르는 미인이였다.     때마다 주반상에 미주가효가 올랐다.     위용강은 차츰 주색에 빠지기시작했다. 한간과 특무들이 매일 동무해서 먹고 마시고 질탕놀아대면서 인생이 뭐냐 하루라도 즐겁게 놀고 쾌락하게 지내는 것이 인생이지 고생하며 목숨을 내받칠건 뭐냐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면서 황군은 은덕높고 후하다느니 마음만 맞춰주면 인재를 등용한다는지 어쩐다는지 했다.     한편 주혜란은 고집스럽고 오만한 토비사나이를 양초를 주물러 무르게 하듯이 녹여내기 시작했다.     밤자리에서. 사나이가 매달려 한창 껍썩거릴 때 요분질을 멈추고 캐물었다.    《나하고 노는 재미 어때요?》    《좋지! 좋아!》    《잘죽는다해도 가난하게 사는것만 못하잖아요. 숨끊어지면 이런 재미는 다 봐요.》    《건 나도알아.》    《알면서 왜 위험한 짓은 해요?》    《내가?....》    《솔직해요. 여긴 왜 들어왔어왔나요?》    《무슨소린지....》    《귀신은 속여도 내 눈은 못속여요. 솔직히 말해봐요. 여기로 왜 들어왔는가말이얘요?》    《......》    《남을 아두로 여기면서 자기만 총명한체말아요. 그게 뭔가요. 황군은 미런해서 그대에게 상을 주는줄알아요?》    《저....》    《빨리 재미나봐요.》     녀인은 태연하고 뜨겁고 열열했다.     위용강은 폭발하는 정욕을 만족스럽게 채웠지만 놀랜 가슴은 얼어들기 시작했다. 녀인이 발가벗은 자기몸뚱이를 보듯이 오도야 마가 이 위용강의 속궁리를 환히 알고있는 것만같았다. 그는 속으 로 자기와 말했다. 류자를 끌고 여기로 들어온 목적을 그 털보녀석이 언녕알고있는데도 눈가리고 아웅하다니 과연 미런한 짓이 아니냐. 바람안통하는 벽이 없다는데 비밀이 다른데서 새여나가지 않으리라고 어떻게 담보하겠느냐. 저 계집의 말이 맞다. 계속 아닌보살을 하고있다가는 후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구나 .... 위용강은 속히고있는 제 본심이 그들의 강박에 못이겨 드러나는 날이면 그때가서 차례지는 후과가 어떠하리라는것을 너무도 잘알고있다. 과연 주혜란의 말과 같이 잘죽는다해도 가난하게 사는것만 못한거다. 똥물창에 구불서라도 살아야지. 그는 죽고싶지 않았다. 인생락을 그냥 누리고싶었다. 마음만 맞춰주면 황군은 과연 이 용강이를 중용할지도 모르는것이다.     그랬다. 선악(善惡)과 정사(正邪)를 가리지 못해 혼매해진 위용강은 다음날 제발로 오도야마를 찾아갔다. 그리고는 그 앞에서 자기가 태평진에 들어오게 된 진상을 고스란히 고백했다. 애비가 충용하리라 믿은 위용강은 이렇게 시례지훈(詩禮之訓)을 잊고 변절한이 되고말았다.     정민수가 제아무리 총명하다한들 위용강이 이같이 제 구미에 당기는 떡만 골라먹는 인간임을 어찌알았으랴. 토비가 이럴 때 제 사욕과 리별한다면 출중한 애국공신이 될것이다! 오도야마는 세 조선족 반일용사를 비밀리에 생매장해버렸다. 누구를 원망하랴, 그들은 이렇게 미몽속에서 스스로 화를 당하고말았다. ..............................................................................................................................    * 明山隊는 일본군이 1933년 2월에 樺川縣의 駝腰子金礦을 점령하자 그곳의 공인들이 기의하여  조직된 것이다. 僞滿은 800여명의 경비대를 보내여 채금공인들을 감독케 하면서 혹사시켰다. 의기남아 祁致中(祁寶堂)이 압박에 견디다못해 6월하순에 친구 6명과 함께 금광을 지키는 일본군 7명을 때려죽이고 폭동을 일으키고는 공인 20명으로 동북산림의용군을 설립하고 항일에 나섰는바 이를 明山隊라 불렀다. 明山隊는 후에 東北抗日聯軍 제11군으로 발전하였는데 전성기에 기병이 1,500명에 달했다. 전공이 혁혁했다. 軍長은 祁致中이고 政治部主任은 조선청년 金正國이였다. 金正國은 1937년 12월하순에 日本關東軍司令部의 특무며 三江省協和會特別工作部部長인 金東漢을 총살했다. 金東漢은 한때 독립운동자로 분장하고 나섯다가 변절하여 大漢奸으로 전락한 자였다. ...............................................................................................................................          
142    <<관동의 밤>> 제2부(23) 댓글:  조회:2310  추천:0  2015-02-04
  관동의 밤   제2부                                                            23         잔뜩흐린 찌뿌둥한 날씨였다. 번개가 번쩍거리면서 우레가 요란 할 뿐, 이 구름장이 밀려가면 저 구름장이 밀려와 하늘을 덮으면서 대지를 그냥 어둠침침란 심연속에 몰아넣고 있었다. 아무때건 내릴 비라면 소나기가 되어 어서 콱 퍼붓기라도했으면 차라리 후련하련만.     진흙이 범벅이 되어 이겨지고 굳어진 농촌길로 검정소를 메운 수레하나가 덜거덕삐걱거리면서 가고있다. 두사람이 앉아가는데 물푸레회초리를 손에 쥐고 수레를 몰고있는, 턱수염이 히끗히끗 거칠게 난 사람은 환갑이 지난 로인이고 그와 좀 사이뜨게 앉은 다른  한 사람은 30대에 오른 건장한 젊은이였는데 그는 바로 정민호였다. 광음여류(光陰如流)라 과연 빠르기도하다. 어느사이에 세월이 이렇게 갔는가!     그는 회상했다.     한해전. 염왕산을 나온 민호는 목단강을 지나고 석두하자를 지나 방향을 계속 남으로 잡았다. 그는 왕청(汪靑) 덕원리에 들리였다. 거기는 3.1운동직후 백포종사 서일이 김좌진과 손잡고 손수창건한 군정부(軍政府ㅡ얼마후에 북로군정서로 고쳐짐)가 자리잡고있었던 곳이고 민호가 그를 찾아가 대종교에 가입하고 그 부대에 입적했던 잊지못할 마음의 고향이기도했다. 한데 그 마음의 고향은 어디로 가버렸는가? 망국의 설음을 가슴에 안고 고향을 떠나온 대종교도들이 하나 둘 모여서 커다란 부락이 된 그때의 덕원리가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쑥덤불속에 불에 타고 허물어진 벽들... 지금은 쓸쓸한 페허만 남아 그리움을 안고 찾아간 용사의 가슴을 아프게 칼질했다. 그사이 청산리싸움에서 대패한 일본군의 야수적인 보복에 들어 마을은 그모양이 되고만것이다.      만주에서의 독립혁명이 어떻게 이어져 나갈지 앞날이 그저 암담하게만 느껴지는 순간이였다.     민호는 거기를 떠나서도 3일만에야 마침내 두만강가에 있는 교포마을인 도문(圖門)에 들어섰다. 그는 거기서 타고 온 말을 떠돌이짐실이꾼한테 팔아버리고 강을 건너 고향으로 돌아왔던것이다.    《너 이놈, 이건 어디서 난거냐!?》     돈보따리를 구들바닥에다 던졌더니 아버지가 놀라 굳어지던 모습이야말로 가관이였다.     너는 만주로 가더니만 그지간 돈벌이를 했구나 하면서 죽지 않고 살아왔겠다 돈까지 많이 벌어왔으니 이제는 부자나답지 않아서 살아볼 멋이 있다면서 헐레벌쭉 춤이라도 막 출 지경 좋아서 어쩔줄모르는 아버지였다. 이 아들의 가슴에다 우국충정(憂國衷情)을 심어주던 의병의 의기는 어디로 가버렸는가?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더니 정말변했다. 고향의 모습도 아버지의 마음마저도.    민호는 그사이 자기는 목재판과 금전판을 돌아다녔노라했다. 이같이 거짓말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돈을 보니 돈벌이를 하다온줄로만 아는 부모들앞에서 그래 무어라고 하겠는가. 독립군에 들어 싸우다가 토비노릇을 하다왔다고 하겠는가. 그렇게 실말을 토해낼 수는 없었다. 그러니 자연히 거짓말이 나가는것이였다. 그냥 속여가면서 하회를 기다리는 수 밖에!     조선에서는 토비를 화적이라 부른다. 국토면적을 보면 관동땅에 비교도 안되지만 력사를 뒤져보면 여기도 그것이 득실거린 때가 있었다. 염왕산마적같이 세습적이고 유명한 큰무리는 아니지만 몇 명 혹은 몇십명이 작당하여 로략질해먹는 강도단은 옛날에도 지금에도 있었다. 왜적이 나라를 침략하니 그자들을 몰아내야 산다면서 항쟁에 나섯던 의병들 중 성공못하고 무리가 괴멸되니 어떤 찌꺼기들은 돌아오지 않고 산에 숨어서 료략질이나 해먹으며 살아가니 그역시 화적이나 다를바없었다.     민호의 아버지는 손에 잡았던 의병의 총을 놓았어도 그런자들은 인간망종이라며 미워하고 증오했다.     민호가 고향에 돌아와 보니 백형 민수는 집에 없었다. 짐작했던바와 같이 병이 나으니 자기도 동생처럼 독립투쟁에 참가하리라면서 만주로 되건너갔다고한다. 민호는 그를 보고싶었고 곁에 같이있고싶었다. 그래서 자기도 만주로 되돌아가려하니 부모님들이 그리 급히 서둘게 뭐냐 한해만 부모들 곁에 있어보라해서 눌러있는 판이다. 한데 눈치를 보니 부모들은 안속이 따로 있어서 그를 잡아두는것 같기도했다.     어머니가 너도 이제는 장가가 살림을 해야지 하고 권념하거니와 민호가 나이 설흔이 된데다 집에 있으니 본인의 의향이야 어떻던 자청혼이 련줄들어오기 시작했다. 좋은 색시감이 많았다. 하지만 민호는 마음이 선듯이 동하지를 않았다. 이방의 녀인이건 타락한 녀인이건 어쨌든 츄얼이가 아직 살아있지 않는가. 백년가약을 맺었던 안해였다. 그녀의 운명이 그같이 이제다시는 나오지 못할 수렁에 빠진데는 민호의 책임도 어느정도 있는것이다. 량심있는 인간이라면 사과의 말이라도 한마디해야 옳을것다. 그것도없이 무거운 자책감을 걸머지고 어떻게 다른 여자를 안해로 맞아들인단말인가?     그래서 들어오는 혼사마다 막는건데 그러니 그를 놓고 온갖풍설이 나돌기 시작했다. 이성에 무감각해진 사람이라느니 사타구니에 있는 그것이 일어서지 않아서 그런다느니 아마 연장이 제구실을 못하니 아예성가를 단념한 모양이라느니...  지어는 그애가 막벌이판에 나딩굴다 매독에 걸려 돌아온거 아니냐고 억측하면서 황당한 험구를 조작해내는 사람까지도 있었다. 다른사람이 아니였다. 늙은 부모님들을 원산근처의 어느 시골에 내처두고 저만 서울에 올라가 딴살림을 하고있는 중학시절의 동창생 김우일이 그랬다.     민호는 이 일을 알자 너무도 밸나서 펄펄 뛰였다.    《더러운 자식! 네입에서 아무렴 그따위소리가 나온단말인가.》     어서빨리 만주로 돌아가야겠는 생각이 굴뚝같이 일어섯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가버릴 수는 없었다. 우선먼저 그를 만나 회계를 까야했다. 그래서 그는 어느날 문득 서울로 향했던것이다. 김우일은 그사이 일본가서 류학하고 돌아와 지금은 서울 종로어디에다 사무소까지 꾸려놓고 변호사노릇을 하고있다고한다.             서울은 옛모습이 서서히 달라가고 있었다. 민호가 열일곱살나던해 중학을 다니겠다고 서울에 올라왔을 때 방금생겨났던 한강교를 지금 개축하고 있었고 여의도에 비행장이 들어앉았다. 꼴보기싫은건 왜놈들이 홍례문을 허물고 그 자리에다 옹근 10년간이나 품을 넣어 엄엄하게 일떠세운 총독부였다. 저 침략자들이 우리 나라를 영원히 제것으로 만들고 우리동포들을 노예처럼 부려먹자는구나 하고 생각하니 가슴이 부글거리면서 또다시 분노가 솟구쳤다.     김우일을 만났다. 민호가 그를 보자마자 네가 어쩜 나를 그렇게 더럽히느냐 했더니 그는 그게 무슨소린가며 뗑했다. 내가 그래 동창생을 감히 헐뜯을 사람같아 보이는가 자기는 그 어떤 험한 소리도 입으로 번진적이 없노라했다. 민호는 더 이상 캐고들지 않았다. 안했다는데야. 정녕 그렇다면 좋다, 아무럼 네가 원쑤진일없이 나를 그렇게까지야 대하랴 하고 이 일은 아퀴짓고말았다.    《네가 만주가서 돈많이 벌었왔다는데 그게 그래 정말이냐?》     김우일이 궂이알고싶었던지 자기는 다른동창생들로부터 그런 소문을 들었노라면서 물어보는것이였다.    《많이야 뭐. 좀 벌어왔지.》    《네가 애초에 도만(度滿)한건 그 목적이 아니잖았니. 그래 독립혁명은 거둬치웠니?》    《돈벌이를 했다잖아. 다들 그렇게 알고있더구나.》    《그래, 그래! 그렇게들 알고있어. 똑똑한 사람이면 제살도리를 하고봐야지, 안그래? 아무튼 돈벌어갖고 잘돌아왔다.》     민호는 이같이 말하고있는 그를 낯선사람을 대하듯이 다시봤다. 손에 태극기를 들고 함께 독립만세를 웨쳤던 동창생인데 지금은 이모양이였다. 그의 론리대로면 똑똑치 못한 사람들이나 지금도 머리를 깨치지 못해 계속 독립혁명을 한다고 나덤빌것이다. 과연 그렇단말인가? 이 비겁한 변절자야!    《여봐, 우일이! 듣자니 넌 그지간 일본류학까지 해서 변호사되여 지금 잘 써먹는다는구나. 그래 멋이 좋겠지?》    《좋고말고. 좋지, 좋아. 너도 가지 말고 공부나 그냥했던면 나처럼 됐을건데..... 되고말고. 넌 내보다 공부더잘하잖았나.》    《오, 그래? 하니까 너도 이젠 독립투쟁은 잊은것 같구나. 주먹쥐고 만세를 웨치던 그 용기는 어디로 갔느냐?》     민호가 물었더니 우일은 고개를 꺾었다가 다시들었다.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거냐? 보다싶히 나라는 철저히 망해버리고만게 아니냐. 만세를 그냥불러봤자 그게 그꼴일게고 총쥐고 해볼때도 이젠 지난거야.》     명철보신이나 하며 살아가자는 변색룡이였다.     민호는 그의 태도가 메스거웠다. 같이 마주앉아 속심을 나눌 대상이 아닌지라 그만 거기를 나와버리고말았다. 그리고는 원산을 향해 곧추 발걸음을 놓았다. 이번걸음에 아예 거기서 살고있는 큰누나나 만나보고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였다. 하여 가다보니 원산에 거의닿게된건데 공교롭게도 시골에서 사는 우일의 아버지를 만나서 지금 이렇게 그의 소수레에 앉아 함께 원산시내로 들어가고있는중이다. 우일의 아버지는 시내에 있는 종친집으로 간다고 한다.     동해바람이 습기를 몰아왔다.    《야 이눔의 소야, 다리가 졸아붙었냐.》     로인은 회초리로 걸음이 몹시 굼뜬 소의 궁둥이를 때렸다.     수레채를 목덜미에 올려놓고 굼벵이같이 느렁느렁 걷고있던 검정소는 다리각을 몇 번 빨리놀릴 뿐 걸음새가 매양 그모양이 되고만다. 천성이 그렇게 돼먹은 짐승이였다.    《만주가 어드래? 거긴 땅이 아주 너르다며?》     로인이 문득 입을 열어 물어보는 소리였다.    《너르고말고요. 널러도 대단히 너른데요.》    《거기 어디에 내 형도 있는데 지금 어떻게 보내는지..... 내형은 로씨야루 가 살다가 거기로 넘어왔네라.》    《아 그런가요. 그래 지금 소식이 영 불통인가요?》    《로씨야서 건너와 한번있곤 없지.》    《그분 만주 어디서 산답디까?》    《저 뭐라구하더라 동네이름이 가진구라구하는거같애. 마을이 북쪽으루 대단히 큰강을 끼고있다는구나.》     이럴변이라구야! 그렇다면 그게 민호가 알고있는 가진구의 그 딸부자집이 아닌가!    《우일의 큰아버진 성함이 뭔데요?》     민호가 속으로 찔끔놀라면서 물어보니 로인이 알려준다.    《김국정이라구하네라.》     옳구나! 민호는 입밖으로 당장 튀여나오려는 웨침을 목구멍으로 꿀꺽 삼켜버리고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이럴줄이야, 이놈의 집안은 늙은놈이나 젊은놈이나 다 그저그렇게 돼먹었구나!     부두가로부터 웅글진 배고동소리울려와 거리바닥에 갈아앉고있었다. 소수레에서 내린 민호는 태워줘서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를 던지곤 큰누나집을 향해 쥉쥉 걸음을 놓았다.          큰누나는 큰매부와 같이 어물전을 보고 있었다.     민호를 보자 그들은 그를 반겨맞았다.     저녁을 먹고나서다. 그들 부부는 오래간만에 찾아온 민호의 청을 거절할 수 없어서 함께 야경을 구경하러 부두가로 나갔다. 원산부두에는 전에 구경못했던 커다란 륜선이 정박하고있었는데 배의 이물에는 흰바탕에 접시모양으로 둥근 붉은 해를 그려놓은 히노마루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원쑤왜구의 국기를 보니 민호의 눈에서는 불꽃이 튀였다.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보기싫은 깃발이였다.     그 배가 고동을 틀자 민호는 혼자말로 뇌까렸다.    《꼴보기싫은 놈, 제집에 있을게지 여기까지 바라와 분주떨건 뭐야.》    《넌 누굴욕하니?》     큰누나가 물었다.    《저 왜놈의 배를 욕하오. 저것이 있을데는 있지 않고 여긴 왜 바라들어와 분주떠는가말이요.》     매부가 잡아듣고 민호의 말에 못을 밖았다.    《그 배가 왜 나뻐? 신사회 신질서 신문명을 나르는 밴데. 아무리 대한민국이요 뭐요해도 예전 그모양대면야 우리가 언제 저렇게 호화로운 배를 구경이나하고 타보기나하겠냐. 안그렇니. 그멋으로야 천상 개화를 못하지.》    《아니 매부, 뭐라오?!》     민호는 발끈했다.    《그러니까 매부의 주장은 개화를 하기위해서 남의 침략을 달갑게 받아야 한다 그 말인가요? 매부, 매부가 왜 그런소리하오?》     큰매부는 처남이 자기를 매몰스레 쌔려치니 기분잡치는지 얼굴에 노기를 띠면서 이쪽을 쏘아봤다.    《넌 조심하잖구 무슨말을 그렇게 망탕하냐. 이렇게 살면 무탈한거야. 너는 내가 뭐 바본줄아니.》    《바보아니면 그래 명지한 사람이란말이요? 큰매부도 단군의 후손인데 그래 제 민족의 얼은 어딜갔소? 떼여서 개를 먹였소?》    《챠, 이거?... 이제말 다시해봐라. 어디거 막굴러먹다와서는....》    《아니 처남남매간에 이게뭐요. 남들이 뭐라겠소.》     큰누이는 둘이 목에 핏대까지 세우면서 맞서는지라 서로 손찌검이라도 날가봐 놀래여 비린청을 뗏다.     민호는 치미는 밸을 못이겨 그날밤을 자지도 않고 집으로 돌아오고말았다. 인연을 끊기라도할듯이.       고향이 그리워 돌아오고보니 생각하던것과는 너무도 달랐다. 마을에는 소시적부터 함께 뛰놀며 자란 죽마구우(竹馬舊友)들이 있었건만 이제는 마음을 터놓고 회포를 나눌 지우로 사귈만한 사람이라곤 없었다. 사람도 그 사람 산천도 그 샅천이련만 이제 더는 그한테 따스함을 주지 않았다. 아기자기했던 그젯날의 인정은 어디로 가버렸는지? 세상이 야박해가고있음을 민호는 느끼였다.     그러면서 한편 젊은놈이 정당한 직업도 없이 건성으로 살아가자니 멋없기 짝이 없었다. 하여 무슨일이든지 해야겠다고 맘먹기도했는데 정작하자고 보면 손에 잡히는 일이라곤 없었다. 그래서 자연히 생각하게 된는건 만주에서 지내온 나날들인데 그것이 지어 그리워질 때도 있었다. 그닥 협오를 품지 않은데 원인이 있으리라.     설이나 쇠고서는 만주로 가버리자. 이번에 가면 천방백계를 다해서 김장군을 만나리라. 그분은 연해주에서 첵코병의 총을 사서 등짐으로 지어 날랐던 이 민호를 아직도 기억하고 계실거다. 동무가 갖고온 이 총 동무가 갖고 싸우시오 하면서 손수 어깨에 메워주기까지 했으니까. 자기부대에서 자기를 따라 목숨걸고 왜놈과 싸웠던 나를 몰라봐주지 않을것이다. 사연을 그대로 말하면 랭대하지도 배척하지도 않을것이다.     이러구러 하루가 삼추같이 느껴지면서 지겹게 지내던차 음력설을 쇠고 며칠안되여서 그는 뜻밖에도 하나의 놀라운 소식에 접하게되였다. 1930년 2월 9일자 에 실린 김좌진장군의 사망보도를 본것이다.                          《新民府首領 金佐鎭被殺設 해림에서                       청년에게 사격돼 事實眞假는 尙未判》       이게 어떻게 된거냐? 민호는 머리가 뗑해났다.     나흘만에 신문에 또다시 이 실리였고 그후도 여러날 련속해서 장군의 피살에 관한 보도들이 신문에 실리였다. 이로 인하여 온 조선땅이 술렁거리였다. 청산리싸움을 지휘하여 토벌에 나선 일본군을 대패시킴으로서 독립군의 위력을 크게 과시했던 그의 형상은 망국의 설음을 가슴에 안고 지겹게 살아가고있는 2천만의 머릿속에 영원히 지워버릴 수 없는 민족영웅으로 자리잡고있었기 때문이다.     민호는 그 보도들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읽어보았다.    《만주에 있는 우리 독립진영은 대들보가 끊어졌어요!》    《네 말이 맞다. 그런분이 어쩜 그렇게 쓰러지고마냐 참!》     아버지의 얼굴역시 침통한 기색뿐이였다.     민호는 신문에 실린 험악한 소식을 알려주었다.    《아버지 이것봐요. 박상실이라는 청년이 총을 쐈다누만요.》    《그자식 뭘해먹는 놈이라냐?》    《고려공산청년회의 사람이라구했어요. 전에는 김장군의 부하질을했노라 밝히기도했고요.》    《원, 하긴 잘한다. 그녀석 그러니까 배반을 한거구나. 사람웃긴다. 나라독립을 위해 몸바친 제민족 제동포 제사람을 죽이다니?》      우리는 왜 이꼴이 되는가?.... 김장군의 죽음은 살아있는 많은 사람들의 앞에다 하나의 커다란 의문부호를 던져주고 있었다. 항쟁에 나섰다가 왜병의 토벌에 들어 워낙 보잘것없는 대오가 괴멸되는통에 목숨을 겨우붙혀갖고 집으로 돌아온 이 전날의 의병은 만주땅에서 활발하게 벌어졌던 독립운동이 지금은 파쟁에 휘몰려 스스로 훼멸의 지경에 빠지는것만같아서 한숨을 쉬였다.     아니그럴 수 있으랴. 그역시 이 시각 아들처럼 나라의 광복은 더욱 묘연하고 막막하게 느껴질 뿐이였다.     며칠지나 민호는 아버지앞에서 정색하면서 말을 꺼냈다.    《아버지!》    《왜 그러니?》    《제가 아마도 한번갔다와야겠습니다. 백형이 살아있는지. 살아있다면 지금 어디서 뭘하고있는지 그거라도 시원히 알아봐야겟습니다. 그래야 아버지도 어머니도 시름놓으실게 아닙니까.》    《글쎄말이다. 소식이 전혀 깜깜하니 답답하구나. 그래 네가 네 형을 찾는다면 데리고올만하겠냐?》    《그렇게는 못할거얘요. 올사람이면 거기로 다시갔을가요.》    《하기는.... 개가 죽잖않고 살아만있다면... 하늘에 빈다.》     아버지는 이러면서 민호가 만주로 가는것을 더 막지 않았다.          얼음이 풀리기전에 국경을 넘어야했다. 민호는 부모님들이 제곁을 떠나가는것을 허락하자 곧 만주로 다시돌아왔다.     민호는 매일 신문을 보았다. 그는 김장군이 피살된 북만주의 해림근처 산시마을에서 조선사람의 유지 95명이 모여 장비주비회를 열고 후사처리를 토의했다는 소식보도를 봤다. 하다면 장의를 어느때 하는지? 그때가 되면 백형도 친구도 혹시 참가하게될게 아니냐 하는 생각이 들어 민호는 어떻게 하나 그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겠다고 맘먹었다. 허나 그것은 생각일 뿐 경비가 자못 심할테니 그쪽으로는 감히 접근하기는 어려운 처지였다. 그래서 그러면 어떻게 할것인가 머리를 쓰고있는데 마침 땅이 땅땅 언때라서 광중을 파기 어려움으로 초장을 지냈을 뿐 장례를 크게하지 않았음을 알게되였다. 이제 아무 때건 장례를 크게 하겠지.     민호는 해림에서 그리멀지 않은 한 편벽한 한족(漢族)마을에 끼여 사는 성이 남씨(南氏)인 동포집에 자리잡고 묵으면서 그를 내놓아 바깥소식을 듣고 있었다. 그 남씨는 언젠가 목단강 대차점에서 보았던 구가의 조선사람처럼 비루하게 고발할것 같지는 않았다.     남씨가 어느날 나갔다가 들어오더니 자기가 들은거라면서 민호에게 알려주었다.    《김장군헌테 총을 놓고 달아난 흉수를 아직두 봍잡지 못했답네다. 대신 그리하라구 시킨자는 언녕 잡아서 총살해버렸답네다.》    《아, 그랬답니까! 그자 이름이 뭐랍니까?》    《김뭐라더라?....이 정신봐라, 내가 듣구는 그만 깜빡잊었네.》     남씨는 꺼풀진 눈을 꺼무럭거리다가 갈퀴같은 손을 올려 더수기를 극쩍거렸다.    《생각정안나면 관두시오.》     민호는 자기보다 기껏해야 세 살을 더먹었건만 걷늙어서 중년이 다되여보이는 농민동포에게 말했다.    《저 한가지 심부름을 해줄수 없겠습니까. 이건 아주 요긴한겁니다. 수고를 해주면야 내가 그만큼한 보수를 주지요.》     민호는 빈털터리가 아니였다. 나다니면 쓸일이 많길래 그는 집을 나오면서 돈을 얼마가량 갖고왔던것이다.     남씨는 제집에 든 손님이 밥값 주숙비라면서 돈을 이미냈거니와 일을 해주면 또 얼마간 대가를 주리라는 말에 흔연히 동의했다.    《어디말해보우 내가 할만한 일이면사 어련히 해주지 않으리.》    《내 말하잖습디까, 잃어진 형님을 만나보자고 불원천리 찾아다닌다구. 내 형을 좀 찾아주시오.》     민호는 이러면서 낯이 생소한 자기가 나돌면 왜놈의 첩자가 아닌가 의심받아 공연히 졸경만 치를것 같아서 그런다고했다. 그랬더니 남씨는 그럴 수 있다면서 자기가 찾아주리라했다.    《그리고 한사람 더 찾아주시오. 중키에 반양머리인데다 미남입니다. 나이는 올해에 스믈여덟. 성명을 최기덕이라 하는데 나와는 절친한 사입니다. 그치는 로씨야서 건너와갖고는 다시건너간것같지 않은데 일명 최뾰돌이라도 부릅니다.》     민호는 두사람을 꼭 찾아보라면서 돈을 20원내놓았다. 남씨는 이것이 처음으로 많이 쥐여보는 돈인지라 은근히 기뻐하면서 찾아달라는 사람의 이름을 되뇌이였다.    《정민수라.....최기덕이 최뾰똘이라....》     대가를 내면서 사람을 찾아서인지 헛수고를 하지 않았다. 남씨는 3일간 밖으로 나다니더니 과연 한사람을 찾아서 데리고 돌아왔다. 최기덕이였다. 이렇게 만날줄이야!    《아유 이거 정형아니요! 죽잖구 살아있구만, 우라!》     그는 너무도 뜻밖인지라 문턱을 넘어 들어오면서 환성을 올리기까지 했다.     두친구는 얼싸 부등켜 안았다. 두손을 맞잡고 오래오래 마주보기도했다. 해후의 상봉이였으니 그 기쁨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저분께서 듣자니 정형은 고향서 가즈돌아왔다면요. 그래 고향계시는 부모님들은 다 무사하시오?》    《무사하다. 그러니까 내가 맘놓고 다시왔지. 참 세월이 빠르기도하구나. 우리 서로갈라진지가 몇해되냐. 아마 팔년이지?》    《그럴거요, 서로 못본지가. 내 정형의 소식을 다소간 았았더랬소. 그건 어래무에 다시가니까 나쟈형 알려주더구만. 그래 잃어진 아주머닌 찾아냈소?》    《찾긴했다만 만나보지는 못했다. 츄얼이는 할빈서....이젠 다 버린사람이네라.》     민호는 자기가 여차여차해 토비손에 떨어지게 된거라면서 여러해간 산채에 눌러있으면서 세월을 보내게 된 전과정을 그한테 쭉 얘기했다.    《연극이요! 정말희한한 인생연극이라니까!》     기덕이 귀담아 들으면서 가끔 부르짖군했다. 민호가 토비굴에 들어간 일을 모르는건 아니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그의 경력이 그를 다른세계로 몰아가면서 내심 감동시키고있었던것이다.     민호는 그가 맘속에 친구를 그냥 잊지 않으면서 몹시그리고있었음에 사의를 표하고나서 물었다.    《너는 그래 지금 어디에 있느냐?》    《목단강에 있소.》    《목단강에 있단말이지. 허니까 넌 이젠 도시사람됐구나.》     기름을 발랏는지 기덕의 멋스런 반양머리가 반들거렸다. 거기다 옷까지 정갈하게 입어서 멋스러워보이기까지 했다. 민호는 도시사람답게 때벗이를 한 그를 보고 또 보면서 입을 다시열었다.    《너 목단강서 뭘하니?》    《교편을 잡았소. 대중계몽을 하느라구. 이역시 생명같이 여기는 독립혁명의 줄기인거요.》    《잘한다. 그렇게 해야지. 나도 네가 그렇게 하리라고 믿는다. 그래 네가 지금 손잡고있는 사람들이 어떠냐. 신문을 보니 아주 큰 불행이 떨어졌더구나.》     민호는 친구가 지금 신민부에 들어 거기의 임무를 맡고 계몽에 나선줄로 알고 이렇게 말했다.     한데 대방의 반영은 판달랐다. 친구는 눈이 둥그래졌다.    《건 무슨소리요, 큰 불행이라는게?》    《김장군이 피살되잖았냐.》    《정형은 날 누구로 보오. 내가 그편사람인줄아오.》    《아니뭐라? 그편사람아니라니, 건 무슨소리냐?》    《난 적기단사람이요.》    《적기단사람이라니! 건 대체 뭔데?》     이름만 척 들어도 알만한것이였다. 독립운동전선에 민족주의니 공산주의니 하여 대립이 형성되여 서로 등을 돌리고 반목한것이 어제오늘이 아니였던것이다. 민호는 로씨야에 건너가서 그것을 심심히 느끼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모르는양했다. 기덕이는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고 대방을 응시했다. 적기단(赤旗團)은 공산주의계렬에 선 하나의 조직이였다. 로씨야에 있을적부터 이미 공산주의선전에 물이 든 기덕이였으니 그 조직에 가담하지 않을 리가없다. 찍어놓고 말해 그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했다. 그런데 그 공산주의계렬이라는것을 놓고 보면 전부터 이 파니 저 파니 파쟁이 심하여 내분이 생긴것이 아직도 단합되지 않고 있었다.     민호가 다시말을 꺼냈다.    《네 몰골이 예전만 별로달라진게 없다만 네 마음은 어쩌면 변해진것 같구나. 물어보자. 너희들의 그 적기단이란건 뭘하니?》    《공산주의혁명을 하고있지.》    《독립혁명은 집어치웠냐?》    《왜 집어치웠겠소. 공산주의혁명을 하면 그게 독립혁명을 하는것으로도 되는거요.》    《그럼야 저쪽이나 이쪽이나 적대될것까지야 없잖겠니. 건데도  왜서 김장군을 살해했니?》    《민호형님 그건 저.....》     최기덕은 자기가 가입한 적기단이 김좌진을 살해한것이 아니라 조공만주총국의 사람이 살해했다면서 그네들이 내세운 리유를 아래와 같이 구술했다.    《김장군은 할빈주재 일본총령사관의 경찰부장 마쯔모도와 밀담이 있었는데 마쯔모도가 그보고 돈은 근심말라. 독립군에 관한 정보와 공산당에 관한 정보가 수요된다. 조직의 명칭과 부서조직들간의 합작관계 등을 제공해달라하니 김장군은 그렇게 해주마 대답하여 활동경비를 타갖고와서 그것으로 산시마을에다 정미소를 세우고 제 향락을 누렸기 때문에 변절자로 락인하고....》    《뭐라, 변절자라구?》     민호는 격분이 치솟아 소리를 내쳤다.    《개같은 자식들! 그가 누군데 함부로 무함이야. 소금이 쉰들 그가 마음이 변할가! 그 부실한 자들이 분명 왜놈의 간계에 넘어가 엄청난 바보짓을 한거야 바보짓을! 이건 어느때건 민족앞에 사죄를 해야 할 일이야, 사죄를 해야 할 일! 천추에 용납못할 대죄를 범했으니까! 같잖은 놈들이 저들이나 잘할게지 누구를 보고 변절자라구. 원, 한심해서!....하늘이 내려다보고있다, 하늘이!》    《민호형님!....》     욕은 듣는사람이 먹는다고 최기덕은 머리를 푹 숙이면서 어쩔바를 몰라했다.     백씨네 식솔까지도 날벼락에 몹시놀랜 것 같았다.     민호는 끓어오르는 격분을 참느라고 오래도록 뜸을 드리였다. 그러고는 기덕이보고 그거야 네일이 아니잖니 부끄러워말거라 하고는 너도 이넨 장가가서 집간을 일궈야할텐데 보태쓰라면서 돈을 얼마가량 내놓았다. 기덕이는 로비가 모자랄텐데 왜 그러느냐며 받지 않으려했다. 민호가 얼굴에 노여움을 띠우면서 말했다.    《수달피는 발바닥만 핥는다냐. 공산주의자라고 바람마시고 사는건 아닐테니 잔소리말고 받아넣거라.》    《그럼....》     기덕이는 주는 돈을 마지못해 받아넣으면서 민호의 백형 민수가 이 근처에는 있는것 같지 않으니 자기가 책임지고 정의부(正義府)의 관할에 들어있는 할빈이남의 흥경, 통화와 저 압록강대안 참의부(參議府)의 관할에 들어있는 집안, 관전일대를 돌면서 한번 잘 찾아보겠노라했다.     그가 이같이 자진해 나서니 참으로 고마운일이였다.     츄얼이를 만나볼 일이 남았다. 판결을 했다니 그의 집에다 통지를 했을것이다. 모두들 어떻게 살고있는지 정황도 알아볼겸 민호는 친구와는 훗날 다시만나기로 약속하고 이틑날 곧 어래무를 향해 먼길을 떠났다.       조선은 3월이 되면 날씨가 따스하면서 벌써 봄빛이 완연하건만 여기 북만은 의연히 겨울추위가 가시지 않았다. 민호는 양피털가옷을 한 벌 사입는 수박에 없었다. 얼마남지 않은 돈과 비수를 품속에 건사했다. 손에다는 조선서부터 갖고 떠난, 얇고 가느다란 대오리깝지를 촘촘히 결어 만든 자그마한 려행용트렁크를 들었다. 그속에는 옷견지와 위생도구밖에 없었다. 일견하여 려행을 나섯거나 아니면 장사를 나다니는 사람같아보였다.     여기서 저 북쪽 변비의 동강까지 가려면 시일이 꽤걸릴것이다. 게다가 길도 잘 모른다. 하여 민호는 기차편으로 먼저 할빈까지 간다음 거기서 송화강을 따라 아래로 내려갈 생각을 했다. 송화강은 아직도 얼어붙은대로여서 썰매가 다닐테니까.     그의 타산은 옳았다. 송화강에 과연 썰매가 다니여 기차편으로 할빈에 도착한 민호는 말썰매 개썰매 바꿔타면서 백씨댁을 떠난지 5일만에 최후종착점인 동강근처 흑룡강가의 어래무에 이르었다.     어래무는 예전그모양대로였다. 짐승잡이가 그닥잖아서 산에서 일찍돌아오다보니 나쟈형제도 치더룽도 다 집에 있었다. 그사이 허저인장모는 폴싹 늙어버린데다 병까지 걸려 들어누워있었다. 생각던것과는 다르게 그들은 아직도 츄얼의 소식을 깜깜 모르고 있었다. 도리여 이쪽에서 츄얼이가 할빈의 한 유곽에서 몸을 팔다 일본사람이 죽어버린 일로해서 일본령사관의 경찰에 잡혀간일과 판결받아 무기형에 떨어진것을 아려줘야했다.    《이 사람아, 또 가버릴텐가?》    《지금은 안갈겁니다. 장모님 병치료를 해야지요.》     민호는 거기를 인차돌아설 수는 없는지라 몸에 소지하고있던 몇푼안남은 돈을 다 털어 내놓았다. 저승길에 호적을 올린거나답잖은 사람인데 이제 약이 무슨 소용이 있겠나만 그렇게라도 하면 다소의 위안이 될가해서였다.      츄얼의 향방을 알려면 이제는 할빈의 일본령사관을 찾아가는 길밖에 없었다. 천리길을 걸어서 갈 수는 없었다. 민호는 로비를 장만하느라 강이 풀리기전부터 빙창(氷槍)으로 얼음구멍을 내고 후리그믈을 넣어 고기잡이를 시작했다.     그 일을 하도 짓궂게 하니 한푼두푼 모아졌다.     강이 다 풀려 배가 다니기 시작하자 민호는 할빈으로 갔다. 츄얼이는 멀리가지 않았다. 바로 할빈에 있었다. 남강구와 이어붙은 향방(香坊)구에 있는 수인옷공장(囚人被服工場)에서 고역하고있었다. 한데 츄얼이는 판결받을 때 치즈란이란 이름으로 되었거니와 남편이 없는 매춘부로 기록되었기에 민호는 대면이 허락되지 않았다. 혹시 허락되였다하더라도 그녀가 대면을 받아주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여 민호는 어래무로 돌아가고말았다. 먼저 그의 친정집식구들을 동원시키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부모형제들은 있는것으로 기록이 되었기에 나쟈의 처와 린화의 처가 함께가서 그녀를 만나보고왔는데 츄얼이는 그들에게 자기가 남편을 찾느라 헤매다가 로비가 떨어져 굶으며 고생하던 일, 그러다가 목단강역에서 대머리 한족사내 곡치환이 녀공모집을 한다길래 그 말을 딱 곧이듣고 다른 녀인 둘과 함께 할빈까지 따라왔다가 속히워 유곽에 팔려가고 만 일을 울음과 함께 토했다.    《곡치환! 곡치환! 내 꼭 네놈의 명줄을 끊어놓고야말테다!》        민호는 주먹을 어스러지게 쥐였다.       이해의 여름과 가을에 두 번이나 해림근처의 한족마을에 사는  백씨댁을 찾아갔건만 모두 허탕치고말았다. 기덕이는 아직도 민호의 백형을 찾아내지 못했던것이다. 찾기만 하면 곧 백씨한테 알리기로했다. 기덕이가 이 집에 와서 남기고 간 말이인즉은 자기는 줄을 놓아 계속찾을테니 그런줄을 알고 민호는 위험하니 제발 나다니지 말라고 일러주라하더라는것이다.     하여 민호는 어래무에서 해를 넘기게 되었는데 그사이에 장모의 장례도 치르었다.     내가 이젠 나이를 31살먹었구나. 아까운 청춘을 그저 이렇게 흘러보내다니! 최기덕은 의연히 백형을 찾지 못했다. 그가 찾아주기를 앉아서 기다리자니 속에서 털이 날 지경이였다. 그래서 갑갑함을 못이긴 민호는 9월이 되자 아무렴 이제 또 다시잡히랴싶어 대담히 나섰는데 길림에 이르러서 그는 돌연한 사태에 그만 백형을 찾으려던 생각을 멈추고말았다. 만주에 주둔하고있던 일본관동군이 갑작스레  사변을 일으킨것이다. 9월 18일이였다.    《왜군이 봉청성 북대영을 포격했단다!》    《사람죽이고 방화를 한단다!》    《아수라같은 놈들이 란을 일으켰구나!》    《당장 여기까지 쳐들어올거란다!》    《저놈들의 나라에나 벼락이 떨어질거지!》     사람들은 불안과 한숨, 저주와 공포속에 떨면서 갑자기 어떻게했으면좋을지 몰라했다. 그야말로 날벼락이요 눈섶에서 떨어진 재난이였다. 이로하여 온 만주땅이 부글부글 들끓기시작했다.     민호는 발길을 돌려 어래무로 돌아오고말았다.    《어떻게 된 판이요?》     치더룽이 묻는말이였다.    《뭘말입니까?》    《시국말이요. 왜놈이 왜 갑자기 그 지랄피운다오?》    《거야빤하지요. 제놈들이 우리 조선을 빼앗아 가지듯이 만주도 빼앗아 제 땅으로 만들자구 그러는거지요.》    《그런놈을 가만둬?》    《가만둬서야 됩니까. 이 땅에서 몰아내야지요.》     력사이래 종래로 남의 침략을 달갑게 받는 민족은 없었다. 침략을 당하면 처지가 어떻게 된다는것을 너무나도 잘알기 때문이다. 하여 반항이 생기고 항쟁이 일어나는것이다.     11월중순에 이르러 만주각지에서는 침략자에 항거하여 각가지 형태의 무장대가 조직되였는데 그의 중축을 이룬 의용군으로는 주요하게 왕덕림(王德林)의 구국군(救國軍), 리두(李杜)의 자위군(自衛軍), 정초(丁超)의 호로군(護路軍)이였다. 이런 때에 북만에서 건립된 한국독립당은 자기의 관할내에 있는 36개 군구(軍區)에 총동원령을 내려 재만동포들이 군사행동을 하도록 하는 한편 의용군모집을 하고있었다. 민호는 소식을 듣고 기뻐하면서 빈현(濱縣)에 달려갔다. 한데 염왕산에서 보낸 력사를 말했더니 받아주긴새려 도리여 추궁하려드는통에 그는 목숨이야 잃지 말아야지 하고 내뺐다.      
141    장편소설 <<관동의 밤>> 제1부 (22) 댓글:  조회:2535  추천:0  2015-02-03
                            22      정직한 사람은 의담(義膽)에 의하여 구원받지만 사악한 인간은 버력을 입는다더니 과연 그러했다. 민호는 원쑤를 갚고보니 가슴속이 후련해났다. 량손에 수난자의 피가 랑자한 살인악마를 없애버렸으니 원쑤를 갚아준것이였고 만백성을 해치니 우환을 없애버린 통쾌한 일이기도하였다.       민호는 설분(雪憤)의 기쁨을 맞고보니 이제는 인육장사의 손에 의하여 타락해버린 안해를 구원해야겠다는 생각이 다시금 머리를 쳐들었다. 마음좋고 정실한 츄얼이가 어찌하여 곡치환의 손에 걸려들어 인생을 더럽히게 돼였는지 똑똑히 규명해야했다. 그래야만이  무고한 그의 통한을 풀어줄수도 있을것이였다.       이제는 안해를 구원하는 일이 남았다. 민호가 츄얼이를 다시찾아볼 의향을 내놓았더니 향란이는 아직도 그녀를 잊지 않느냐 무슨 미련을 그냥두고있느냐며 그닥 찬성하지 않지만 한편 또 그것은 남편으로서의 도의라면서 막지도 않았다.       민호는 위삼포를 찾아가 사정을 말하여 보름간의 외출허락을 받고 이틑날 곧 할빈으로 갔다. 한증속같이 찌물쿠는 여름날이였다. 인간이 많이 모여 붐비여서인지 도시의 공기는 산속같이 맑지 않았다. 하지만 산채에서는 볼수 없는 특유의 생기가 넘치면서 뜰끓고있었다.      민호는 양차를 잡아타고 곧추 도외로 갔다. 한데 무슨놈의 판국인지 그지간에 전에 와본 유곽은 간판이 없어지고 문도 봉해져 사람조차 볼 수 없었다. 대체 어떻게 된 판국이냐? 근 천리길이 헛걸음되고보니 민호는 졸지에 맥이 탁 풀리기까지 했다. 그는 가로수그늘밑에 가 앉으면서 머리를 푹 숙이였다.     이제는 어떻게 하면 좋을가?        땀을 들이고있는데 머리가 반백이 다 된 한 로파가 제 손자인듯한 어린애의 손목을 잡고 그가 앉아있는 그늘로 다가왔다. 한족(漢族)이였는데 근처 어디에 있는것 같았다.      민호는 그 녀인과 말을 걸어보았다.   《말좀 물읍시다. 저기 저 집이 전에 유곽인것 같던데 왜 간판이 없어졌는가요?》   《젊은이는 외지서 오셨소?》   《예. 방금 차에서 내려 오는길입니다.》   《그러게 깜깜부지지. 저건말이요 여기 어멈이 소송놀음에 망하는통에 간판까지 떼운거라오.》     《언제부턴가요?》    《이제는 아마 반년이 넘지.》    《그렇다면.... 여기에 있던 갈보들은 다 어디로 갔습니까?》    《아따,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소. 제갈데로 갔겠지.》     로파는 이같이 퉁명스레 말해놓고 민호를 다시금 여겨보더니 얼굴에 야릇한 웃음을 피워가며 물어왔다.    《젊은이는 기생을 찾소?》    《예.》    《어느 기생말이요?》    《치즈란이라는 기생입니다.》    《그 다즈년을 찾아왔구만!》     로파는 어감이 달라졌다. 웬일인지 흥미를 가지면서 웨치듯하는지라 민호는 캐물었다.    《보아하니 그 녀잘 잘알고있는것 같은데 대체 어떻게 됐습니까? 저는 그를 만나볼 일이 있어서 백수불구하고 찾아왔는데요.》    《그 다즈년을 만나보려구? 되지도 않을 소리를 하구있네. 그 갈보년은 왜령사관경찰에 잡혀가 판결을 받았어요.》    《아니 뭐랍니까? 왜령사관경찰에 잡혀가다니! 판결받았다구요? 왜서요?... 》    《그 여잘 보러 온 일본령감하나 있었는데 들어붙은채 그만 죽어버렸지. 그런걸 마상풍이라 한다우. 그런데도 그게 말썽거리가  돼서 결국은 갈보년이 바가지를 쓰고말았지 뭐요. 아무튼 그 갈보년의 조작이라구. 한심하기도하지, 무기도형이라니.... 그통에 어멈도 간판떼우고 다른 기생들은 얼싸좋다구 제갈데루 가버렸지유.》    《아, 그런판이였구나! 그런것도 이 멍청이는 여직 모르고있었지!》     그 한족로파는 조선말로 내뱉는 민호의 한탄을 알아들을 수 없는지라 두눈을 꺼무럭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젊은이도 다즈요? 그 여자하구는 어떻게 되길래?》     귀찮은 물음이라 민호는 아무런 웅대도  없이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그리고는 머리를 수굿하고 발이 가는대로 자신을 맏기였다. 어디로 향하고있는지 방향마저도 알수 없었다. 갑자기 쇄도하는 번뇌속에서 방황하고있던 그는 마주오는 인력거꾼과 마주쳐서야 비로서 정신을 차렸다.     철길건너 남강(南崗)에 일본령사관이 있었다. 민호는 발길을 그쪽으로 돌렸다가 그만두었다. 내가 거기를 왜 가느냐, 폭탄이나 한아름 안고가면 몰라도.... 못난짓이다.     제홍교건너 도리구(道里區)에서 헤매이던 민호는 거기 공장가 38번지에 조선사람의 천주교회당이 하나 있는것을 발견했다. 우리 동포 여기에 있구나!... 가슴속에 반가움이 사품쳐 올랐다. 한데 그 교회당이 안으로 문이 잠겨져 들어갈 수 없었다. 해도 그는 제 동포의 낯이라도 한번 보고 가려는 생각에서 섬섬대다가 나오는 사람이 없으니 그만 거기를 떠나고말았다.     민호는 다른거리에서 기독교교회당을 발견했다. 그것역시 동포교회당이였다. 민호는 대종교도였지 기독교인이 아니였다. 하지만 오래간만에 제 동포를 만나볼 수 있게 되였다고 생각하니 내심 반가우면서 감회가 깊어갔다. 몇해더냐, 제 민족어로 말해본지도 까마아득했다. 그는 동포를 만나 담은 몇마디라도 나누고싶었다.     례배일도 아니겠건만 여기는 문이 열려있었고 사람이 드나들었다. 민호가 대문가로 다가가 서성거리고있는데 마침 어른 한분이 지나가다가 그를 발견하고 누구를 찾느냐묻더니 데리고 들어갔다.     할빈의 조선인기독교회는 1921년에 설립되였는데 초기교도가 무려 280여명되였고 초대주인은 성이 백씨(白氏)인 목사였다. 그후 주인이 여럿바뀌였다. 민호는 자기를 만나주는 그 목사를 고스란히 따라들어갔다. 웬일인지 이시각 참회하듯 자신의 과거지사를 털어놓고 그한테서 따뜻한 위안의 말 한마디라도 듣고싶었다.     거의 밀페되다싶이한 자그마한 방안은 날아다니는 파리한마리 볼 수 없어 조용했다.    《보아하니 젊은이는 외지분같구료. 왜서 나를 찾았소?.... 내가 바로 이 교회의 목사요.》    《아, 그런가요!》     민호는 자못반가와 하면서 오롯이 몸을 가꾼 후 입을 열었다.    《목사님, 이런일입니다. 전도 원래는 독립군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팔자가 참 괴상하게 돌아갔지요.》     목사는 단통 이마살을 찡그렸다.    《젊은사람이 웬 신세타령이요. 그래 팔자가 어떻게 돌아갔다는건가?》    《이제 들어보시면 알게될겁니다. 전....》     민호는 다른일이 바쁜지 재우쳐묻고있는 그의 앞에서 3.1운동직후 자기가 국경을 넘어 만주로 들어오던 일, 만주에 와서는 처음 의렬단에 가입한 일, 그랬다가 대종교인이 건립한 독립군부대인 북로군정서 들어 청산리싸움을 치룬 일, 그것이 끝난 직후 밀산(密山)에 갔다가 이듬해정월에 호두(虎斗)를 거쳐 로씨야로 건너간 일, 로씨야에서 을 겪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일, 허저인마을에서 살다가 여차여차해서 친구인 니항군청년은 가고 자기만 남았다가 결국 거기서 허저인 가싼다의 딸과 결혼하여 살게 된 일을 말했다.     《가만!》      목사는 채 들을념을 하지 않고 그의 말을 중둥잘랐다.     《네가 그래 이방계집을 안해로 맞았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그녀는 마음곱고 인정있는 여자였습니다.》     《가만! 그래서 제 민족도 아닌 다즈를 얻었다는거냐?》     《그랬는데는 뭐가 잘못됐는가요?.... 우린 서로 끔찍이 사랑했는걸요. 결혼이 참으로 아기자기했습니다. 그러다가 내가 친구찾으러 흑하로 간 사이 그만 망나니녀석들이 랍치해갔던겁니다.》      민호는 그녀의 그후의 비극을 말했다. 즉 오랜 끝에 이곳 할빈에서 찾아냈는데 그녀는 이전의 모양은 없어지고 어느덧 륜락의 구렁텅이에 빠지고말았노라했다.     《네가 그런년을 아직도 찾고있다는말이냐 그래?》     《예, 바로그렇습니다. 이러나저러나 나의 안해가 아닌가요.》      목사는 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대단히 언잖아했다.     《하나님의 훈계를 듣지 않았으니 네절로 네 신세를 망친거로구나. 너는 여호와의 이같은 훈계를 받지 않은 탓에 스스로 고통을 걸머진거니 누구를 원망하겠냐.》     《목사님, 저는 누구를 원망하는게 아닙니다. 안해가 불쌍해서 그럽니다. 이방인의 녀인을 안해로 얻었다고 죄될거야 없잖은가요. 내 안해는 본래부터 음녀가 아니고 순결한 여자였습니다.》     《순결했다? 그런 녀인이 왜 지금은 음녀가 된거냐? 되지도 않을 소리. 들었느냐?》     《그렇지만 목사님! 저는 안해를 구하지 못해 죄스럽습니다. 그인 왜놈을 죽인 협의로 무기도형에 떨어졌답니다.》      민호는 그를 찾다가 여차여차해서 토비손에 잡혀 오늘까지 토비노릇을 해온 사실을 죽 말했다. 그랬더니 목사는 마치 벌레라도 삼킨것 처럼 역겨워하는것이였다.     《오, 주여! 죄인을 구원해주옵소서. 너는 길을 잘못걸었도다. 너는 그래 이런것도 몰랐단말이냐?》     《목사님, 모르는게 아니라 거기서 발을 뺄 수 없는겁니다. 저는 원쑤를 갚았습니다.》     《원쑤는 갚았다만 네가 죄짓는건 왜 생각못했느냐말이다. 》     《목사님, 깨닫지 못한게 아닙니다. 저는 독립혁명에 다시금 투신코저 거기를 나오려고한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를 죄인이라며 받아주지 않는걸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래서 토비노릇을 그냥하게됐다는거겠지. 알아들었냐.》     《미안합니다만 저를 잘못보셨습니다. 그리구 목사님도 세상물정을 더 알아야겠습니다.》     민호는 이런 말 한마디를 뱉어놓고 그만 나와버렸다. 자기를 악인으로만 보고있는 그의 설교가 전혀 귀에 들어가지 않고 밸만 점점 꼬였던것이다.       민호는 염왕산으로 인츰돌아오고말았다. 그래놓고 보니 츄얼이가 판결받아 어디로 옥살이를 갔는지 알아보지 않은게 후회되였다. 그는이제 염왕산을 영 나가버리면 그때가서 품놓고 안해의 행방을 알아보리라 맘먹었다. 죄로 이어가는 류자생활에서 발을 씻고 이제부터라도 인생을 참답게 살아보리라는 그였다.     그가 할빈에 갔다온지 며칠이 안되여 위삼포는 차챈더인 민호더러 묘동전에 목단강일대에서 깃대꽂은 기와가마 하나라도 찾아보라했다.     시간은 충족했다. 차라리잘됐구나 이 기회에 내할일이나 해보자. 민호는 그쪽으로 가는 기회에 거기 어디에 있을것만 같은 최기덕이와 백형을 찾아보리라했다. 그네들은 거기서 독립혁명에 몸을 잠그고있을것이다. 이제 그들을 만나 소식이나 알고 조선땅 고향에 돌아가 부모님이자 잘 모시며 살아가리라.     《여봐, 진국이 나좁보자.》     《형님, 무슨일이요?》     《바람 좀 안쐬겠나?》     《나하구 나가보자는거요?》     《위두령께서 명령을 내렸다. 날보고 들어앉아 알만까지 말고 유람좀 하다오라구.》      하진국은 띠우던 패쪽을 집어던지고 얼른일어나면서 벌씬 웃었다. 민호는 쟁반밟으러 갈때마다 그것을 이라했다. 그는 늘 그와함께 나다니기가 소원이였다. 여기로 들어오자 하진국이 그한테 류자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해준 보상으로 민호도 그한테 자기가 아는것만큼 세상이 돌아가고있는것을 많이 알려주었다. 그러다보니 두사람은 사이가 더 친근하면서 밀접해진것이다. 하진국은 다른새자들보다 박식해서 세상물정을 보고 분석할줄도 알아 언어가 좀 통했다. 하기에 말동무가 되어 같이 바깥구경을 하는것도 하나의 락인것 같았다.     둘은 말을 타고 산채를 나왔다. 한창 가을절기라 아름다운 산천은 그들에게 상쾌한 기분을 안겨주었다. 고마웠다. 자연만은 이같이 그 어떤 리해관계도 편견도 없이 세상사람을 골고루 제품에 안아주고 애무했다. 이것이야말로 그 어떤 하나님도 베풀지 못하는 거룩한 혜택이 아닐가싶었다!     저녁해가 설핏할 무렵에 그들은 목적지에 당도했다. 그들이 레루장을 넘어왔던 정거장쪽으로부터 이따금 되알진 차고동소리가 청청한 공중으로 울려펴지군한다. 아직은 포장이 잘 안되여 골이 패인 큰길에서 마차와 자동차가 한데붐비고 있었다. 이제 큰건물들이 하나 둘 일어서기 시작하는 도시는 깨끗지 않았다.     《형님, 여긴 어느때가야 할빈만큼 커지고 정돈될가?》     하진국이 물어보니 민호는 그저 아리숭한 추측을 했다.    《글쎄말이다. 할빈은 지금 시민이 사십만이 넘는데 여기야 언제. 반세기지나면 그렇게 되겠지. 북만주가 개발지대라서 그만해도 발전은 빠른축이야.》     하진국은 이제 막 도시로 건설이 되어가고있는 목단강이 장차 변하게 될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한가지 물음을 더내놨다.    《반세기라, 그때면 우리 염왕산은 어떻게 될가?》    《네생각에는 어떻게 될것같니?》    《점쳐볼가.》    《점이 아니고 발전할 시대에 따라서 상상해보란말이다.》    《내가 그걸 어떻게....》     마음이 성실하고 올곧아 때로는 롱담마저 진담으로 여기군하는 하진국은 두눈을 꺼무럭거리면서 과연 미래의 염왕산을 머릿속에 그려보는것이였다.     민호는 그 모양을 흥미롭게 보다가 입을 열고 물었다.    《너 진국이는 끄때까지도 염왕산이 그대로 있을것같으냐?》     하진국은 대답하지 않고 두눈이 퉁방울만해지면서 이켠을 보았다. 그의 눈이 아니뭐라구 이제말을 다시해봐라 하고 있었다. 하늘이 무너져 천지개벽을 한다해도 염왕산만은 그대로 남아있을거라고 굳게 믿거니와 그렇게 되기를 갈망하는 염왕산류자에게는 그런 말이 심장을 놀래우는 천둥같이 들리였을것이다.    《날 왜 그렇게 보니?》    《갑작스레 낯설어보여서 그러오.》    《그럴거다. 듣지못할 소리를 들었으니. 하지만 내 말이 공담은 아닐거다. 진국이 너 제 운명을 점칠만하냐. 염왕산도 제 운명을 점치기 어려운거야. 인간세상이 천변만화하는데 그래 그거라고 영구불멸할가. 그럴수야 없지. 안그래?》     하진국은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렇다고 형님말이 맞소 하고 맛장구치며 수긍하고싶지도 않았다. 자기는 인식이 그만했다.    《시내에서 밤을 지낼예산이요?》    《그래야지. 안그럴거면 왜 들어가겠나. 며칠간 묵으면서 예요(극장)도 가보자.》    《거기루말이지, 그럼야 좋지!》     하진국은 이번이야말로 진짜유람하는 멋이라면서 하하웃었다.     그들은 말을 타고 여기까지 왔으니 우선 말을 건사할 수 있는 려관을 잡이야겠기에 곧추 대차점(大車店)을 찾아갔다. 하진국이전에 몇 번 와보았다는 곳이였다. 대차점치고 그리크지 않았는데 촌에서 올라온 짐실이부업군 열대여섯과 수레장사군 몇이 먼저와서 투숙하고있었다.     그런데를 둘이 더 가니 자리가 만원이 되었다.     민호는 짐실이부업군 중 촌티나는 중년사나이 하나가 아무리봐도 동포같아 말을 걸어봤더니 과연 옳았다.    《내 오늘 여기서 제 동포를 만날줄은 정말 생각못했습니다.》     민호는 오래간만이라 무등기뻐했다.    《젊은인 어디서 왔능기요?》    《나말입니까 난 먼데서 왔습니다.》     민호는 자기가 염왕산에서 왔노라 말할 수는 없는지라 그보고 어디서 왔느냐 되물었다. 그랬더니 대방은 자기는 집이 구가(舊街)에 있노라했다. 그가란 민호도 알고있는 녕고탑(寧古塔)인것이다. 녕고탑이란 만족어로 , 이란 뜻으로서 본명은 우공탑(牛拱塔)이던것이 녕고탑으로 와전되였다. 지금도 녕고탑, 구가, 고탑, 녕고 등 여러 가지의 이름으로 불리우고있는 거기가 바로 청조(淸朝)의 개국시조(開國始祖) 누르하치가 태여난 곳이다. 누르하치는 그곳에서 태여나 자라면서 무예를 닦고 용맹과 기지를 키워 후세이 불후의 이름을 남긴것이다. 그리고 청조때 파해장군(巴海將軍)은 이곳에다 장군부(將軍府)를 세워 변강을 지키고 나라를 다스림에 탁월한 공을 세웠던것이다.     녕고탑은 이같이 력사유구한 곳이다. 망국의 한을 품은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은  바로 거기를 고향같이 여기면서 모여서는 장래를 담론하기도 하고 권력지배를 놓고 아귀다툼을 하기도했다.     한데 민호는 그곳이 그닥 인상이 좋지 않았다. 어느해인가 안해를 찾느라 돌아다닐 때 동포가 많이 모여사는 거기에 갔다가 밀정으로 오인되여 한바터면 잡힐번했던거다.    《거기 지금도 우리네 동포가 많이 삽니까? 살아가는 형편들이 지금은 어떤지요?》    《젊은인 거겔 갔댔능기여?》    《예, 몇해전에 가봤습니다. 내 일이 있어서.》     둘이 이야기를 하는 사이 조선말을 깜깜 모르는 하진국은 목침을 베고 누워 눈을 지긋이 감은채 제 생각에만 잠겨있있다가 그만 잠이 들어버렸다.     한편 동포사회에 대해서 깜깜했던 민호는 궁금증을 푸느라 그 사람과 이것저것 자꾸캐물었다.       촌티의 동포가 자기는 배가 아파 변을 봐야겠다면서 밖으로 나갔다. 한데 나간지 이윽하도로 돌아오지를 않았다. 민호는 로독이 밀려드는지라 팔베개를 하고 누운채 깜박 잠들고말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누군가 팔을 툭 툭 치길래 눈을 펀들 뜨고 보니 웬 낯모를 청년이 그를 깨우고 있었다. 그말고도 청년 둘이 더 있었다. 변을 보겠다며 나가던 사람이 이네들을 데려온게 분명했다. 저 륙시를 해치울 녀석이 나를 고발한게로구나. 민호는 기분이 탁 상하면서 당장일어나 그자를 한매 우려주고싶었다. 허나 그렇게 하면 일을 크게 만들 수 있는지라 그는 조용했다.    《손님, 손님은 조선사람이요?》     치머리를 곱게 한 30대의 젊은이가 민호를 칼칼히 쏘아보면서 캐물었다.    《그렇소 나도 조선사람이요. 보면 모르겠소.》    《어디서왔소?》    《북쪽에서.》    《남쪽에서 온건 아니여?》     나오는 말투가 살갑지 않았다. 대방을 간세(奸細)로 보는지 왜놈의 첩자로 보는지 눈살을 세워가면서 흘겨보는 꼴이 분을 돋구고있어서 민호는 성을 냈다.    《날 심문하는거냐 어쩌는거냐? 너희들은 대체 뭘해먹는 자들이냐?》    《챠 이거 뭐가 범무서운줄을 모른다더니....》     셋중 책임자인듯한 그 젊은이가 내뱉는 소리였다.  민호는 모욕을 당한것 같아서 발끈했다.    《저리 썩 물러갓! 돼먹지 못하게 누굴막보고하는 수작이냐!》     하진국이 그의 목소리를 듣고 잠을 펄쩍깼다.     저쪽 세 조선젊은이는 이켠의 노기서린 엄엄한 눈길에 부딧치자 그제야 자기들의 실수를 깨달았는지 멋없이 물러갔다. 필시 반간첩대원들 같건만 그 수완이 너무나 졸렬해서 민호는 욕지기가 나왔다.     《얼치기같은 놈들, 누구를 잡자구. 흥!》     액때침을 뱉고나서 그는 구가의 사람을 향해 된욕을 퍼부었다.     《나쌀이나 처먹은게 기껏안다는게 그것뿐이냐. 무슨할짓없어 개질이냐.》     그 사람은 똥망태라도 뒤집어 쓴 모양으로 낯이 벌개질 뿐 감히 대꾸질을 못했다.     하진국이 주먹을 메려는것을 민호가 제지시켰다. 주먹한대면 알아보겠지만 그럴필요까지는 없었다.     좀있으려나 나이지긋한 어른이 아까왔던 청년 셋을 앞세우고 대차점으로 들어왔다. 그는 문을 들어서면서부터 민호를 깐깐히 눈빗질해보더니 곁으로 다가와 마치도 로련한 숫범이 살어름에 발목을 다칠까봐 저겨딛듯이 이름이 뭔가 어서 왔는가 누구를 찾는가고 하나하나 조심스레 캐물었다.     민호는 자기의 성명과 찾고있는 사람의 이름은 제대로 댔지만 어디서 왔는가 하는 물음에는 제대로 대지 않고 저 북쪽 멀고도 먼 흑룡강가 동강근처의 허저인마을에서 왔노라했다. 자기들의 신분은 알려주지 않고 남만 무턱대고 의심하면서 미주알고주알 캐고드는 이런 사람앞에서 제 실정을 말하고싶지 않은 그였다.     저쪽은 민호가 동강근처에서 살다왔다니 아 그렇다면 윤세복(尹世覆)이라는 분을 봤겠구만했다. 윤세복은 1924년에 대종교(大倧敎) 제3교주로 된 사람인데 한때 교세를 확장하기 위해서 동강까지 간적이 있었다. 그런 사람의 이름까지 걸면서 민호의 신원을 조사하고있었다. 민호의 처지를 놓고 보면 원래는 이것이 과거에로 환원할 수도 있을 절호의 기회였다. 하건만 내내산속에 묻혀있었으니  윤세복이 누군지 그가 알 리가 만무였다.     민호는 무밋거리다가 의심만 깊어가고있는 대방의 핏기없는 차가운 얼굴을 보며 씩 웃었다.    《젊은이 왜 웃는가?》    《내가 모르는 생뚱같은 사람을 봤느냐 물으니 그럽니다.》    《아니 거기서 살다왔다면서 그래 윤교주도 모른단말인가?》    《뭐랍니까? 그분 교줍니까? 혹시 우리 대종교 교주아닌지?》    《그렇지 대종교 교주지. 자네도 그래 대종교인니가, 한데두 그걸 여적지 모르다니 맹상한 사람이군!... 열혈이 끓을 땐데 나라광복은 생각안하고 여적지 구석에 처박아있었다니 원. 한심하구나!》     노여움에 비난이 한데섞인 질타였다.     누가 나라광복을 생각하지 않는단말인가, 내가? 민호는 그가 자기를 몰라보면서 너무나 비하하니 분기가 솟구쳐 올랐다. 그는  숨을 거칠게 톱으면서 한마디 맞받아쳤다.    《말 좀 삼가시오. 어쩜 사람도 몰라봐주고 망탕소리합니까.》    《젊은인 그게 무슨소린가?》    《제만제노라 남을 너무 그렇게 갖잖게 보지말라는겁니다. 누군 무골충인줄압니까. 나도 독립의 총을 메고 싸웠던 사람입니다.》       《뭐라, 젊은이도 그래 독립혁명을 안다 그건가?》    《내라고 왜 모르오리까. 난 그렇게 까막바보는 아닙니다.》     하나는 의심하고 하나는 변명하고....본래 얼마든 쉬히 풀릴 수 있는 일을 둘은 점점 꼬아만가면서 무익한 말씨름을 하고 있었다.     민호는 전에 해림에 갔다가 한번 잡혔던 일이 상기되여 정신을 발딱차리였다. 내가 그때 뽐창을 뿌려 사람을 부상시켰더랬지. 이제다시 잡히기만 하면 오 네가 잡혔다가 도망쳤던 그녀석이로구나 하면서 불문곡직하고 총살해버릴것이다. 해석도 변호도 필요없다. 누가 내말을 들어주랴. 이 사람들과 말씨름을 오래해봤자 쓸데없다는것을 깨달은 민호는 돌연 한가지 소원을 내놓았다.    《나를 신민부에 계시는 김장군한테 데려다주시오. 그분은 나를 면목압니다. 난 그하고 할말이 있습니다. 꼭 만나게해주시오.》    《뭐라, 젊은이가 김장군허구 할말이 있다?》    《예. 지금 내가 여기서 아무리 말해봣자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믿어줘야 할 사람을 믿어주지도 않으니. 그래서 나는 꼭 장군을 만나자는겁니다. 그분은 나의 말에 귀를 기우릴것이고 나를 믿어줄겝니다. 내가 사할린 의용대에 들어갔다가 자유시사변때 살아난것부터 얘길해도 증명은 훌륭하게 될겁니다.》    《싸할린의용대라.... 자유시사변이라.... 》     그 사람은 민호를 다시금 여겨보더니 어느정도 믿음이 가서인지 아니면 의심되고 리해하기 어려운 이 청년이 김장군을 만나 꼭 해야 할 말이 있다해서 그러는지 그러면 좋다 내가 너를 데려다주마고했다.    《민호형, 이 사람이 뭐라구 하오?》     하진국이 웬 영문인지를 몰라 불쑥 물었다.    《나를 우리 독립군의 김장군한테루 안내하겠단다.》    《뭐라우? 우리라니? 오인형님, 형님이 그러니까 본래는 독립군이였단말이요?!》     하진국은 이제야 민호가 어떤사람이라는것을 알고 몹시놀랬다.    《되놈이구만! 누구여?》     그 사람은 하진국이 놀라면서 내던지는 말에서 이상스러운 어떤 낌새를 챘던지 상서롭지 않은 불순한 냄새를 맡아내려했다.    《내가 잘아는 중국친굽니다. 함께 석두하자에 가던길에 여기에 들렸지요.》     민호는 되는대로 거짓말을 꾸며갖고 림기응변했다.    《친구라.... 같이 석두하자에 가는 길이라.....》     그 사람은 혼자소리로 뇌이고있는데 보아하니 민호의 신원에대해서 다시금 의혹을 품는것 같았다. 민호는 그래도 이 사람을 통하여 우선 김좌진장군부터 만나보려고 생각하면서 더 캐묻기전에 손을 걸었다.    《저는 석두하자로 가지 않겠습니다. 아무래도 김장군부터 만나봐야겠습니다. 그러니 어른께서 저를 꼭 데려다주시오.》     저쪽은 그러마고 대답했다.     저녁켠이 되어왔다. 그들은 저녁을 먹고 출발하기로했다. 몇해전에 북만에 건립된 신민부(新民府)는 위치상 중동철로의 중간이 되고있는 여기 이 목단강시에서 서쪽으로 해림을 지나 산시(山市)라는 자그마한 역전마을에 있어서 거기로 가야 김좌진장군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지금 군사부위원장으로 사업하고있었던것이다.     민호가 관자집에 가면서 하진국이보고 내가 김장군만나러 갔다오겠으니 너는 그지간 시내를 떠나지 말고 예요에 가서 극구경을 하던지 아니면 야회에 가보면서 며칠간 기다리라했다. 그랬더니 하진국은 민호보고 또 잡히면 어쩔라구 그러느냐면서 못가게 극구말리였다.     바로 이때였다.    《바로 저자식이다!》     웨침소리가 나더니 조선청년 여럿이 달려와 민호를 체포하려했다. 공교롭게도 그들중에 전에 해림에서 민호가 뿌린 뽐창을 맞고 팔목이 병신된 청년도 끼여 있었다.     그들이 달려드는것을 민호보다 하진국이 먼저알고 손을 썼다. 자기가 먹던 죠즈접시를 뿌리면서 자리에서 뛸쳐일어난 그는 가까이 다가와 권총을 겨누는 치머리를 주먹으로 때려 단번에 꺾구러뜨리고는 발길 주먹질을 련거퍼해서 나머지 사람들도 모두 그모양으로 만들어놓았다.     바라던 일이 개코같이 틀어지고말았다.    《빨리가자! 풍자(말)있는데로!》     민호는 손을 다시쓰려는 하진국을 향해 소리쳤다.     그들은 재빨이 그 자리를 피해 대차점으로 달려가 말을 풀어 타고 시내를 나와버렸다. 민호는 예상밖의 일을 당하고 보니 기분이 몹시잡쳤다. 저쪽도 본래는 민호를 얼마든지 쉽게 체포할 수 있었다. 장군만나러 가겠다니 데리고 가다가 손을 쓰면야 될게아닌가. 한데도 그들은 의심이 여전한데다 해림의 그 청년이 볼일있어서 이 시내에 왔다가 소식을 듣고 나서는 통에 일이 이같이 번진거다.     민호가 독립군에 얼마간 두고있던 미련마저 이제는 산산히 깨지고말았다. 부서지고 날리는 마음을 그러모으고 안정하기어려웠다. 민호는 이렇게 목단강을 떠나 하진국과 함께 보름가량 아무런 보람없이 헤매다가 산채로 돌아오고 말았다. 뭐라고하겠는가. 민호는 위삼포앞에서 둘이 목단강일판을 돌아봤는데 마슬만한 기와가마가 없더라 굴뚝에다 깃대를 꽂은 기와가마는 더구나 하나도 찾아내지 못했노라 거짓말을 했다.            《소가 몇 마리있긴합디다만 너무여위여 먹을것같지 않습니다. 살이 오른다음에 보는게 좋암즉합니다. 우리안에 있는 놈이니 아무 때나 우리들의 가마에 들어올게 아닌가요.》     충고가 다분한 이런 보고를 듣고 위삼포는 고개를 찌붓거렸다.    《칼을 댈만한게 그리두없더란말이지.》    《그렇습니다. 말짱 풋살도 오르지 않았습니다.》    《정녕 그렇다면야 별수없지. 아무렴 비린내나는 놈이야 어떻게 먹겠나. 거기는 묵밭으루 남겨두었다가... 개황지가 적으면 륜작도 해야하는거네.》     품위가 떨어지는 좀스러운 짓은 하기싫어하는 위삼포였다. 그는 원계획을 포기하도 달리 머리를 쓰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방향을 길림쪽에 돌려보는게 어떨가했다. 그사이 깃대꽂은것이 늘어났을거야. 부자가 많은 그곳으로 전에 두 번 출마해 두 번 다 성공해서 단맛을 봤는데 그런 맛을 한번 더 보기싶었다.       보름후. 민호는 위삼포의 새지시를 받고 제가 이끄는 정찰대를 전신무장시켜 데리고 김림쪽으로 떠났다. 운수좋게 련방대나 경찰의 추격에 들지 않았다.     염왕산의 그들 10명류자는 말을 달려가다가 어느 한 마을에 들려 점심을 먹게되였다. 이렇게 나다니노라면 별일을 다 보게된다. 그들이 점심을 다 먹고 곧 떠나자는데 웬 젊은 놈 다섯이 찾아오더니 눈을 두리번거리다가 민호앞에 와 무릎을 꿇으면서 입을 모아서 간청하는것이였다.    《나으리, 우리를 받아주시오. 우리도 록림객이 되렵니다.》     민호는 괴이쩍어했다.    《너희들은 내가 누군줄알고 이러는거냐?》    《왜모르겠습니까, 염왕산협객아닙니까.》     그들중 한자가 이러면서 민호와 왕견을 번갈아보면서 전해에 그들이 두부방당나귀를 찾아준 일을 끄집어냈다. 다섯녀석이로구나, 여기서 또 만나다니!... 민호는 그때일을 상기하고 물었다.    《그렇지, 너희들은 오인당이지?》    《아닙니다. 우린 오룡회입니다. 그때의 오인당은 흩어져 없어지고 지금의건 내가 다시 국을 세운겁니다.》     국을 세웠다니 자식이 류자를 모집해서 새로 도당을 무은게로구나. 무슨놈의 협객이고 록림객이냐 염왕산이나 량산박이나 그게 그 꼴 토비라는 이름은 벗지 못하는거다. 본분에 맞게 농사나 지으면서 착실하게 살아갈게지 무슨궁리들이냐. 민호는 속으로 욕하면서 그들이 찾아온것을 달가와하지 않았다.     그의 이러한 심기를 눈치챘는지 다섯은 꿇어엎딘채 일어날 념을 하지 않고 이마를 땅에다 조아려가면서까지 기어히 받아달라 애걸했다.    《좋다, 너희들의 요구가 정 그렇다면 내가 받아주마. 그러되 시험은 쳐야겠다. 그래서 합격되면 데리고갈것이요 불합격이면 할애비가 와 빌어도 쫓을테니 그런줄을 알라.》     민호는 이러면서 수하새자들보고 유리병 다섯 개를 얻어 병마다 물을 골똑넣으라했다. 그리고나서 그것이 준비되자 민호는 재래의 방법대로 시험을 쳤다. 그는 먼저 주동분자인 그 오룡당에 있었던치부터 나오라해서 병사리를 꼭대기에 이게한 후 앞으로 걸으라했다. 그자는 멋모르고 시키는대로했다. 민호는 그자가 50여보갔을 때 권총을 갈겨 꼭대기에 인것을 박살냈다.    《아이구머니!》     그자는 그만 혼비백산하여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말았다.        왕견이 달려가 손을 그자의 사타구니에 넣더니 오줌을 쌌다면서 코를 쥐고 웃다가 발로 궁둥이를 차놓았다.    《에잇 파즈(겁쟁이)야! 이꼴을 갖구두 류자루되려해? 냉큼 썩 물러가!》     모두들 하하웃었다.     나머지 넷은 아예 기권하고말았다.     민호는 이제다시나타나면 아예 바지에 똥물을 싸게 만들어놓을테니 그런줄을 알라면서 그들을 쫓아버렸다.       그들은 이번걸음에 쟁반을 헛밟지 않았다.     염왕산에서는 이해의 초겨울에 계획대로 길림근처 어느 한 마을에 있는 깃대꽂은 기와가마 하나를 성공적으로 마사버렸다.     염왕산의 산채는 예전대로 무사태평했다. 다른류자들이 아무가탈없이 제나름의 생활을 여전히 해나가고 있을 때 민호만은 염왕산을 떠나갈 궁리를 하고있었다.    《요즘 신색이 왜 그래요. 어디가 불편한가요?》     향란이가 다소 눈치를 챘는지 물어보는것이였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이게 몇해요.》    《부모님생각나 그러는가요?》     녀인이 묻는 말에 민호는 그저 한숨만쉬였다.     향란이는 민호가 이제는 안해생각은 영 버리고 부모를 그리는줄로 알면서 아무리 천애지각에 있은들 불효자가 돼서야 되느냐면서 한번 고향가 그들을 보고오라했다. 영가버리라는 소리는 아니였다. 차첸더로까지 된 그를 이젠 영영 제사람으로 여기고있는 향란이였다. 발을 빼고 영가버랴야겠는데 민호한테는 그것이 바로 난제였다. 그깟거 가서 오지 않으면 단데. 그의 이런 속궁리를 위삼포가 눈치채고 놓아주지 않을것 같았다. 실속없는 약속은 죽음을 의미하는것이다.     마침 향란이가 나서서 도와주마고 했다.       《걱정말아요. 집에갔다오게 하라고 제가 부친님께 여쭈겠어요. 어때요. 그만하면 나도 성의는 다하는거로 되잖을가요. 부탁은 하나뿐이얘요. 가보고 다들 무사하면 너무오래 지체말고 돌아와요. 그렇게 할 수 있겠나요?》     민호는 향란이가 하는 말을 들으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이건 네하만이 바라는게 아닐것이다. 위삼포도 용강이도 그럴것이다. 말은 하지 않아도 이 정민호를 제 가족성원으로 여기고있으니까. 아무튼 우선 여기를 나가고봐야한다고 생각하면서 민호는 대방의 감정을 맞춰주었다.    《나도 갔다가 되도록 인차돌아올 생각이요. 염왕산을 어찌잊겠소, 더구나 향란아가씨를 두고서 내가.》     향란이는 민호의 말을 믿어주었다. 허나 위삼포는 믿지 않았다.    《그 사람이 내앞에서까지 여기를 병주고향이라면서 떠나지 않으리라 하지만 그걸 어찌 믿겠냐. 제새끼그립고 아까운건 세상동물이 다갖고있는 마음이네라. 한즉 이제 돌아가면 부모들이 붓잡고 놓지를 않을게다.》     위삼포는 이러면서 그를 집에 보내달라고 간청하러 온 딸보고 미련을 너무갖지 말고 현실을 정시하라했다. 위삼포는 물론 집으로 가겠다는 민호를 막지 않았다. 여기를 나간다해도 민호는 자기한테 해를 줄 사람이 아니라고 믿고있기 때문이다. 청가를 맞고 갔던 사람이 돌아오지 않을 경우면 그가 어떤사람임을 물론하고 염왕산의 법규를 무시하는 행위로 되기에 용서받지 못함은 물론 그를 믿고 허락한 맏두령인 자기는 결국 속히우고 우롱당하는것으로밖에 되지 않길래 분한것이다. 위삼포는 자기가 그런꼴이 되느니보다 민호의 진속말을 들어보고 차라리 그를 내보내기로 맘먹었다.     하여 민호는 희망대로 여러해를 가탈없이 몸을 잠그었던 염왕산을 나갈수있게되였다.     류자가 무리에서 퇴출하자면 향을 뽑아야 한다. 그러는걸 여기의 은어(黑話)로는 고 하는데 뜻인즉 손을 씻고 이제부터는 류자생활을 그만둔다는거다. 이것은 무릇 맏두령을 제외한 그 어떤 류자든 퇴출할 시면 꼭 거행하게되는 행사로서 가 어렵다하지만 향을 뽑는 일에다는 비하지도 못하는것이다. 발을 들여놓았다가는 빼기가 그렇게 어려움을 말한다.     자칫하면 목숨을 잃고만다. 만약 부모가 사망해 집식솔을 거둘 사람이 없어 부득불 나가야 할 경우면 내보는데 그래도 맏두령은 먼저 사람을 보내여 허실여부를 조사해서 처리하는것이다. 나갈조건이 떳떳치 못한 류자가 향을 뽑겠다해도 그가 향을 뽑는걸 허용은 한다. 그래놓고는 그의 거동을 지켜보는것이다. 거짓말을 하는 자일수록 행동은 더 천연덕스레 꾸미는것이다. 벌써 뒷조사를 다해서 속히고있다는것을 알고있던 맏두령은 그 자가 향을 뽑을 때 상을 탕 치면서 대노한다.    《깨끗치못한 녀석! 내오늘 너를 빼버릴테다!》     그러면 류자들은 퇴출자의 본심을 알고 분노하여 왁작떠든다.    《저놈이 버들을 뜯지 못하게하라!》    《저놈이 초롱을 놓지 못하게 하라!》     맏두령이 모자를 벗어 탁상에 동댕이치면 규률을 장악해온 수이샹이 나가서 호통친다.    《내가 교육을 적게했더냐 이 쓸모없는 물건짝아. 형제들을 고생시키지 말고 네절로 가거라!》     네스스로 명을 끊어버리라는거다.     향을 뽑고 나간 자가 관가에 잡혀 제 형제들을 팔아먹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래서 퇴출하려는 자가 향을 뽑을 때면 류자들은 다가 그를 독기서린 눈으로 쏘아보는것이다. 그 서슬에만도 담이 약한 자는 바지에 오줌을 싼다. 담이 큰자라 하더라도 등골이 싸늘해나는것이다. 성정이 흉포한 어떤 류자들은 두령의 령이 떨어지기 바쁘게 칼을 빼여들고 달려나가 그의 귀를 잘라버리거나 아니면 눈알을 뽑아버린다. 어떤때는 지어 그의 생기를 잘라버리면서 고 하거나 볼따구지를 베여내여 까마귀가 먹게한다.     류자가 많으니 별인간이 다 있다. 아직 늙지도 않으면서 아주 영 게을러빠져 맥골을 못쓰거나 꾀를 부리고 들어앉아 파먹기만하는 자도 있는것이다. 산채에 부담거리로 되는 그런 류자를 그냥둘수는 없어서 처리해버리는데 그럴때도 두령은 방법을 써 그가 향을 뽑게해서 죽여버림으로써 다른 류자들을 훈계하는것이다.     향뽑는 일이 이같이 힘들고 무섭다해도 리유가 정당하면 퇴출하는데 무릇 퇴출자에 한해서는 보증인이 있어야한다. 향을 뽑는건 절교함을 의미하기 때문에 원칙상 뽑고 간 사람은 다시받아주지 않는다. 좋은 말은 남이 밟아놓은 풀을 먹지 않는다.        달이 둥글어져 유난히 밝은 날 밤 향란이는 먼저 개인적인 정감으로 송별연을 차려 이제 떠나가면 다시올지 어쩔지 모를 민호를 청하여 마지막 밤을 함께 즐기였다.     이틑날 오전. 염왕산류자 전체가 중앙산채의 앞마당에 모이였다. 민호가 산에 들어와 를 할 때 처럼 두터운 판자로 든든하게 만든 단우에 돌을 파서 만든 네모난 검은 향로가 놓여있는데 그때와 다른것이라면 지금 거기에는 19가치의 향이 이미 꽂혀서 타고있는 그것이다. 자기가 때 불을 달아 꽂아놓은 그 향을 이제는 제 손으로 뽑아야 한다는거다. 향로에서 타고있는 향을 보면 꽂을때와 마찬가지로 앞에 3가치, 뒤에 4가치, 왼쪽에 5가치, 오른쪽에 6가치였고 가운데에 1가치가 꽂혀있는데 파아란 실오리같은 연기가 가믈가믈 피여오르면서 향긋한 향내를 대기속에 풍겼다.     이날의 의식도 역시 반둬더가 집행했다.     민호는 그가 시키는대로 앞으로 나가 먼저 가운데 꽂은 향부터 뽑고 꿇어앉아 입을 열어 높은소리로 말했다.                         사방에 십팔라한                         중간에는 맏두령이시네                         산채에서 흘러보낸 허구한 날                         형제들의 보살핌 많이받았네                         오늘 이 동생은 떠나갑니다만                         어찌 형제들이야 잊으리오                         동생은 부모곁에 돌아갑니다만                         마음만은 형제들을 떠나지 않으리오                         가마를 마슬때나 나가 돌 때나                         부디 개와 벼루기를 조심해주시오                         발밑에 땅이요 머리우에 하늘                         어디간들 목숨을 가르리오                         철마는 실없이 웃지 않고 ..........................................................................................................................................................................      * 솔소자ㅡ채찍.    * 개극ㅡ싸움.    * 초롱을 놓다ㅡ비밀을 발설하다.     * 꽃쟁반ㅡ곰보     * 예요ㅡ극자.    * 매매가 틀리다ㅡ일이 성사못되다.     * 파즈ㅡ겁쟁이.     * 비호자ㅡ돈    * 버들을 뜯다ㅡ도망치다.     * 풍자ㅡ말         * 꽃옷ㅡ모가나 등애에게 피가 빨려 죽게 만드는 형벌.                                    가슴도려내도 변심은 하지 않으리                         동생이어찌 못난짓해서                         산채의 안녕을 깨뜨리오                         맏두령님의 길성 높이걸려                         국은 언제나 붉어질것이니                         형제들은 부디 평안무사하시라.       한구절을 끝내고는 향을 한가치씩 뽑아 19구절의 문구를 다 웨치고나니 향이 다 뽑혀졌다.     위삼포는 만면에 웃음을 띠우면서 자리레서 일어났다.    《자네가 이젠 마음놓고 돌아가도 되네. 나갔다가 산채가 그리워지거든 아무 때건 다시와서 형제들과 한가마밥을 먹어도 되네.》    《맏두령님 감사합니다.》    《여봐라!》    《예 두령님!》     새자들은 일제히 응한다.    《떠나는이가 로비로 쓰게 비호자(돈)를 주거라.》    《예, 그렇게 하지요.》     새자들과 사량팔주 모두 제 주머니끈을 풀어 얼간씩 내놓았다.      민호는 여기에 온 이래 죽어버린 황보재나 진사해를 내놓고는 그 누구와 크게 척진 일이 없이 지냈거니와 여러류자들의 안목에 지략과 담량있는 용감한 사람으로 공인되였던터로 다가 갈라지기 아수해하였다. 그는 그만큼 류자들속에 위망을 세웠던것이다.     이날은 유달리 좋은날씨였다. 민호는 자기가 타던 말을 타고 그들의 전송까지 받으면서 기분좋게 염왕산을 나왔다.                                                    제 1 부  끝  
140    장편소설 <<관동의 밤>>제1부(21) 댓글:  조회:2363  추천:0  2015-02-03
                          21               위삼포는 이번걸음에 송곰보장원담장밑에다 새자 다섯을 버리고 창황히 와버렸다. 병가상사라고 하지만 신심있게 달려든 일이 추호의 소득도 없이 손해만 보고 패했으니 염왕산의 략탈사에서는 그야말로 보기드믄 수치였다. 하여 위삼포는 사량팔주와 더불어 이번의 출격역시 실패하고 만 리유를 규명하느라 여러면으로 분석하고 검토해보았다. 정탐을 떨떨하게 했는가? 그런것도 아니였다. 송지주네 가원을 지키는 무장은 틀림없이 20명뿐이다. 한데 그날밤의 방어력을 보면 다섯배도 넘을것이였다. 포대에 걸어놓은 태깔(주)까지 아가리를 연걸 보면 이쪽에서 가리라는것을 미리알고 만단의 대비를 하고있다가 반격한것만은 틀림없다. 그렇다면 이번의 행동계획도 밖으로 새여나갔단말인가? 어떻게?....     혹시 자기가 불민해서 정찰도중 송곰보로 하여금 미연에 대적준비를 하게끔 한게 아닐가 하고 생각하던 정민호는 아니다 반둬더를 시중들고있는 장평이 혹시 비밀적인 어떤 일을 알아갖고 진사해한테 발설하지나않았을가 하는 의심이 문득들었다.     진사해는 본래 밀산출신이다. 한즉 전에 그의 패가 밀산에다 지반을 두고있으면서 송곰보와는 사이가 좋았었을 수 있다. 그러하다면 이쪽에서 송곰보의 기와가마를 마스려한다면 그의 태도가 어떻게 되겠는가? 그는 어느 위치에 서겠는가 그 말이다. 염왕산에 투신했어도 염왕산과 감정이 깊은 사람이면 몰라도 지금보아서는 그렇지 않다. 진사해가 옛우정을 잊지 않아 이곳의 계획을 안다면 그한테 알려줘서 미리대책을 세우게 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민호는 장평을 조용히 불렀다.    《형님 무슨이요?》     지금은 민호와 향란이를 친형님 친누나같이 여기고있는 그다.     그를 볼때마다 웃는얼굴로 대해주던 민호였는데 오늘은 심각해진 기색으로 어름어름 살피다가 입을 열고 묻는다.    《한가지 묻겠다. 네가 언제 진사해한테 우리가 밀산가리라는걸 혹 발설한적이 없니?》    《없소. 나도 떠나는 날 아침에야 거기로 간다는걸 알았소.》     《그랬단말이지. 그렇다면 참.... 잘생각해봐라 네가 혹 말말간에라도 진사해앞에서 그가 모르는걸 번진적이 없는가구.》     장평은 눈을 꺼무럭거리며 생각하더니 한가지 이왕사를 더듬어냈다.    《내가 한번은 그보고 올묘동은 반달늦어질거라 말한적있소.》    《뭐라, 네가 그런 소리를 했다구? 넌 그걸 어떻게 알았냐?》    《양부한테서 들었소. 내가 올묘동때는 할빈가 놀다오겠다니 양부께서 올묘동은 아마 보름쯤 늦어질것 같다구했소. 난 그래서....》    《사달은 거기서났구나!》    《그게 어쩌믄?....》    《생각해봐라 진사해도 머리도는 사람인데 묘동이 늦어질 때는 꼭 어떤 행사가 있으리라는걸 짐작하지 않겠니.》    《참 그럴수도 있겠구만! 그럼 이건...》    《넌 이젠 정말 입을 단단히 닫아 걸어야겠다. 이제 한번다시 실수하는 날이면 큰일난다.》     민호는 속이 황황해서 두눈이 화등잔같이 된 장평을 까딱 말못하게 뒤를 눌러놓았다. 그는 이번일은 뛸데없이 진사해의 작간이라 짚었다. 그자는 남을 해치자고 기여든 엉큼한 승냥이다. 그런데도 자꾸 뒤를 재서야 어떻게 하는가. 이젠 달이 둥글어진거다. 이번기회를 빌어 복수를 하자. 민호는 이제 해야 할 행동을 생각했다.       그는 밀산에서 돌아오다가 얻은 그 말들을 보러 후근마사로 가다가 마침 위용강을 만났다.    《민호동생은 과연장해, 퇴로를 도왔겠다 말을 두필이나 얻어왔겠다. 내 방금 마사에 들어가보구 나오는 길인데 말이 괜찮아!》     음주를 했는지 기분이 자못 좋아하는 양이였다.    《위형이 마음들거든 한필 골라가지오.》    《내야 좋은 말 있잖아. 보아하니 진사해가 제 사족배기를 자네가 갖고 온 절따말하구 바꾸고 푼 생각이더구만.》    《허, 비위살좋네.》    《어디 줘보게나. 자넬 영웅이라구 칭찬하는 판인데 친절을 좀 베풀어보지.》    《구수지간에 친절이 다 뭐요.》     민호는 그가 부러 롱으로 해보는 소리라는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거치른 소리를 내뱉고는 자기가 방금 장평을 마난 일을 그한테 말하면서 밀산행을 두 번 다 실패케 만든자느 틀림없이 진사일것이라했다.    《그자식 속에다 칼을 품고있으면서두 입에는 꿀을 발랐네.》     위용강이 듣고나서 심각해지며 뇌이는 소리였다.     민호는 자기것으로 된 절따말을 가보고 거실로 돌아왔다. 그는 중앙산채의 동북쪽별채에 들어있었다. 그래서 창문을 열면 저기 마즌켠 새자들이 들어있는 두 산채사이로 그가 꿩망태를 메고 늘 날짐승잡이를 다니군하던 동북쪽골을 볼 수 있었다. 이 거실은 차챈더가 생전에 들었던 방이였다. 다른거실과 마찬가지로 출입문 하나는 중앙대청으로 나있어서 내외통행이 편리하게 꾸며졌다. 그리고  이 거실은 향란의 거실과 대각선에 놓여 있었다. 그들 두거실을 기준하여 보면 서북과 서쪽에는 위삼포, 위포토우부부, 량태와 즈좡이 들어있는 세별채가 있고 동쪽과 동남쪽에는 반둬더, 양즈방과 화서즈, 수이샹이 들어있는 세별채가 차례로 있었다.     민호가 여기로 자리를 옮길 때 향란이는 그를 도와 이미 저세상사람이 된 차챈더가 생전에 쓰던 물건들은 하나도 남기지 않고 없애치우고는 몽땅 새것으로 갈아주었다. 담대한 그녀가 사람죽은걸 무서워하지는 않지만 미신적인 관념에 잡히다보니 남과 다름없이 죽은 사람의 것은 께림직해 하는 성미였다.     어느날 한낮에 민호는 말안장을 수리했다. 그러다가 약속해둔 시간이 되니 향란의 거실로 건너갔다. 향란의 거실에는 소춘매와 진사해가 먼저와있었는데 향란이 혼자서 상을 차리고 진사해와 소춘매는 부피두터운 책을 펼쳐놓고 한창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다.    《어허 주인이 왔구려!》     진사해가 머리를 치켜들고 보더니 내던지는 소리였다.     아니 향란이가 왜 저녀석까지 청했는가? 민호는 속으로 고까와했다. 주석을 베풀려면 참석인원이 누구누구라는것을 의례 알려줘야 옳은건데 향란이는 그러지를 않았다. 대체 무슨 속궁리를 하고있는지 물어볼 수도 없는거고... 민호는 격해나려던 감정을 눅잣히고 다가가며 물었다.    《아주머니, 건 무슨책입니까?》     소춘매가 알려주었다.    《얘요. 읽어봤나요?》    《언제. 내같은게 글이 짧아 있대두 읽어내기나하겠습니까.》     진사해가 책을 쥐여 보라며 주었다.     민호가 받아서 펼쳐보니 남녀가 붙어서 섹스하는 장면을 그린 삽화들이 적잖았다.    《끔찍한데! 이건 대체 무슨 소설이게?》    《안의걸 좀읽어보우. 전탕 정채로운 장면만 썼는데 굉장하오. 으흐흐흐...》     진사해는 말해놓고 징글스레 웃었다.    《그 책을 단지 그렇게만 봐서는 맞지 않아요.》     향란은 이켠을 보면서 그의 관점을 시정했다. 그녀는 이마에 내려와 나실거리는 머리카락을 조용히 쓸어올리고나서 이번에는 민호를 향해 설명했다.    《그 책은 서문경이라는 상인이 부정한 수단으로 관리가 돼갖고 음탕호색으로 보낸 이야기를 썼는데 읽어보노라면 그때 사회가 얼마나 부패했는가를 알게돼요. 같은 책이라도 사람의 나름에 따라 감수가 다르겠지요. 안그런가요?》    《하하하.... 그렇지, 그래. 거야그렇구말구.》     진사해는 부접좋게 무안을 뭉때리고나서 향란이를 향해 아가씨가 이 책을 다 읽어본것 같은데 이야기의 줄거리라도 자기한테 한번 얘기해줄 수 없겠느냐했다.     자식이 얼마나 천연덕스러운가. 민호는 입가에 조소를 머금으면서 향란이를 보았다.    《그러지요. 그거야 못하겠나요. 이제 마지막까지 다 읽고요.》     향란이는 웃음까지 지어가면서 선선히 응대했다.     벽난로안에서 토막나무가 탁ㅡ탁ㅡ 불찌를 날리면서 타고있다.     창밖에서는 바람이 윙ㅡ윙ㅡ 기승부리며 눈보라를 일쿠고있지만 아름드리통나무를 무어서 지은 집안은 훈훈했다.     대청과 통하는 출입문이 열리더니 위용강이 방에 들어섰다.     향란이는 오빠를 보더니 약간 짜증석인 음성으로 나무렸다.    《오랍은 반강자를 새로고와갖고 오는모양이지. 기다리는 분들은 목이 늘어났을거얘요.》     위용강은 벌씬 웃으면서 갖고 온 술 두병을 탁상에 놓았다.    《오늘밤 우리 모두 취토록 몽두춘해보자.》     소춘매가 남편이 벗은 털가옷을 옷걸개에 걸면서 저만 취토록 마실 념을 말고 옆사람도 즐겁게 만들라고 가볍게 타일렀다.     민호는 람프심지를 돋구면서 다시금 이네들이 주석을 베푸는 진의가 대체 무엇일가고 생각했다.     그들 다섯은 둥근탁상에 둘러앉았다. 상우에는 향란이가 내놓은 산대추술 한병과 위용강이 방금 가져온 고량배갈(高糧酒) 두병이 놓여있고 두녀인의 솜씨로 정성스레 만들어진 소갈비찜과 노루간볶음, 꿩고기볶은, 소채갑회를 비롯한 여덟가지 채가 올랐다.     일견하여 마음먹고 준비한 음식이였다.     성격이 콸콸하고 노상 쾌활한 향란이가 먼저 남자들의 잔에다 산대추술을 붓고 저들의 잔에다도 넘쳐나게 붓고는 선포했다.    《오늘밤 술좌석은 이번 개극(싸움)에 공많이 세운 우리 차챈더분을 위로해서 오랍의 제의하에 형님이 마련된거얘요. 그리고 나도 좀 성의넣고요. 사해오빠역시 지지한거애요. 안그런가요?》    《그렇지, 그래. 나도 지지했어, 응당그래야한다구.》     진사해는 기회를 놓칠세라 자기의 태도를 보였다.     민호가 말했다.    《나를 위로하는거라니 대단히 갑사합니다. 헌데 이번 매매(일) 가 틀려서 나는 기분안납니다.》     진사해가 말꼬리를 제꺽물었다.    《세상일이 어찌 성공만있겠소. 공략에 패했어도 유공자는 장려함이 마땅하지. 안그렇소, 아가씨분들!》    《옳아요!》    《옳아요!》     두 녀인은 맞장구쳤다.    《공과 영예를 축하해서, 우리들의 우의와 친절을 위해서, 안녕과 장래를 위해서, 자 모두 잔을 쭉 내기요!》     위용강이 처음부터 좌석의 주흥을 돋구려했다.     나를 위로하는건데 진사해도 지지했다지?... 민호는 위용강이 주연을 베푼 진가를 알듯말듯했다. 갑을간 맞추며 즐겨봐야지.    《소아주머니의 노래를 좀 들어봅시다.》     술이 몇순배 돌아 취기가 오르자 민호가 청했다.     소춘매는 비파를 안더니 를 타면서 노래불렀다. 그녀는 듣던 소문과 같이 과연 재산을 팔아가면서라도 그냥듣고싶을 정도로 명창이였다.     향란이도 요청에 의해 소소를 불었다. 술이 잘된 진사해가 곡에 맞춰서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한가지 주장을 내놓았다.    《우리 지금부터 금곡주수를 해보는게 어떻소.》     시를 지어 별주내기를 하자는 소리다. 제법 문명인다운 창의같았다. 한데 그에 응하는 사람이 없었다.     향란이가 다른 한가지 제의를 내놓았다.    《그러지 말고 세 남성분께서 차라리 글쓰기시합을 하는게 났겠어요. 거야 얼마든 비겨볼 자신들이 있겠죠. 내하고 형님하곤 평을 할게요. 절대루 공정하게요.》     하면서 그녀는 일어나 지필묵을 가져다 구들우에 놓았다.     위용강이 팔을 홰홰 저었다.     《난 손떨려 기권이다. 사해형하고 민호동생 어디 해보지. 향란아 글귀는 네가 내놓는게 좋겠다. 되도록 족자 두 개에 붙일 수 있도록 네글자 네글자 모두 여덟글자가 되게끔.》    《그거야 쉽지요. 자 두분 다 여기와요. 누가 먼저쓸텐가요? 한분이 한구절 네글자씩. 들었어요?》     향란이는 엄한 시험관마냥 진사해와 민호를 번갈아보았다.     진사해가 비죽이 웃더니 먼저일어선다. 속으로 조선놈인 네가 넓적글을 알면 얼마알겠냐며 한수접고드는것이였다.    《먼저쓰시오, 내야 남이 쓰면 그걸 따라오릴줄밖에 모르는데.》      민호는 겸손히 사양하면서 그한테 선을 주었다.     향란이도 그렇게 하라고 암시를 하고있었다.     입만 벌리면 을 얼음판에 표주박밀듯 하는 진사해가 종이를 앞으로 끄당기더니 붓을 들어 쓸준비를 했다.    《사해오빠가 먼저니 앞구절을 써야죠. 자, 불러요. 화인악적!》     진사해의 낯빛이 돌연히 흐렸다가 천천히 다시개였다. 웬일인지 그는 손을 가늘게 떨면서 네글자를 썼다. 글씨가 그닥지 않았다.     이제는 민호차례였다. 학교다닐 때 선생한테서 서법을 배운게 참 다행인가싶었다.      《그럼 제가 한번 오려보지요. 두 아가씨께서 글씨가 개발 괴발이라구 웃지를 마시오. 자, 뭐라구 쓰랍니까?》     그는 붓을 들고 넌지시 말하면서 맞방망이를 뗐다.    《복연선경이라구 써요.》     민호는 적수보다 썩 활달한 필치로 종이에다 이라 네글자를 써놓고나서 붓을 놓으면서 한마디 던졌다.    《명필이 아닌 주제에 이만 각필합니다.》    《거 멋지게 썼군!》     위용강이 감탄했다.     두녀인은 어쩌면 이리도 잘쓰느냐며 손벽까지 쳤다    《허허, 내가졌군.》     진사해는 승인하는 수밖에 없었다. 말은 안해도 지고 분해서 속으로 조선놈이 한자를 내보다 잘쓸줄은 몰랐지 하면서 스스로 부끄러워하기도하는것 같았다.     위용강은 그가 어찌하던 제똥에 처박아놓고는 제흥에 겨워 목청을 돋궈가면서 두사람이 쓴 글을 붙여 읽었다.    《이라, 거 참 멋진 내용이로구나! 향란아 그래 넌 이런 글귀를 어디서 배웠냐?》     글을 풀이하면 뜻인즉 악한 짓을 많이하면 화를 입기마련이고 선한일을 많이하면 복을 받는다는것이다. 토비가 이런글을 즐기며 기억하거니와 감정에 융화시키고있으니 불가사이한 것 같지만 사실그러했다. 이날밤 주석을 베푼 주요목적이 실상은 민호를 위안하기 위함이 아니라 향란이가 이 글을 진사해에게 씌여 오빠더러 그의 표정을 살피게 하자는것이였다. 그들은 과연 진사해가 불안해함을 보아냈다. 마음속 가책되는 일 없고 지은죄없으면야 그럴가.          봄이 돌아왔다. 묘동에 나갔던 류자들이 돌아와서 산채는 자못 들끓기시작했다. 무예를 익히느라 훈련장과 사격장도 활기를 띠였다. 민호는 여러날 사격장에 나갔다. 독립군에 있을때도 이같이 맘놓고 실탄련습을 해보지는 못했다.     야바위를 놀거나 주사위를 던지거나 주련의 뒷글자를 짓거나 오도장군의 탈춤을 추거나 소를 질식시켜 죽이거나 수수께끼풀이를 하고 칼재간을 피우고 총쏘기를 비기고 연극을 노는 등이 산속에서 나날을 보내는 류자들의 일상적인 소일거리였고 오락이기도했다. 그중에는 엽전날리기 시합도 있었다. 염왕산류자들은 구멍난 동전을 실로 꿰여 나무에 달아매고는 먼데서 쏘아맞힐내기를 했는데 권주령을 불러 진사람에게 술을 먹였지만 엽전을 쏘아 날리면 못맞힌 사람한테서 탄알을 받아냈다. 이런 놀음은 실제상에서 실탄훈련과 마찬가지여서 사량팔주도 참가하는 때가 많았다.     그보다 더 광채로운 시합은 엽전을 공중에 높이 올려뿌리고 총을 쏘아 날려버리는 놀음이였다. 이런 놀음은 왕왕 정포토우와 부포토우사이의 비김으로 되군했다.     민호는 자기가 지금 차챈더노릇을 하고있지만 여러방면에 미흡한 점이 맣다는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었다. 꺽지손이 세야한다. 저것들을 마음같이 후려잡자면 담도 담이려니와 무예가 출중해야한다. 뽐창뿌리기만큼 사격술도 좋아야한다. 향란이와 총쏘기련습을 한것만으로는 아직도 멀었다. 향란이가 그보고 아직도 애기수평이얘요 하며 평가 할 때 그것을 놀림으로 여기고 얼마나 마뜩잖아했던가.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걸 놀림이나 비웃음으로 볼것이 아니라 적중한 편달로 받아들여야 옳은것이였다.     향란이가 민호보고 우리도 이젠 엽전날리기를 해보자했다. 이럴 때 왕견과 하진국이도 뛰여와서 그와 내기를 거는것이였다. 하여 넷이 시합을 하게되였는데 청하지도 부르지도 않은 진사해가 유유히 나타나더니 왕견이 맞히려는 엽전을 제먼저 쏘아 날려버리고는 득의만면하여 돌아섰다.    《자식! 괘씸하게 논다.》     왕견이 밸이 꼬여 그의 뒤통수를 갈기려는것을 민호가 제꺽 제지시켰다. 공연히 동티날번한 순간이였다.    《우릴 어떻게 보구저모양이야. 여기가 뭐 제놈의 독천장인가.》     하진국이 눈꼴시다며 내뱉는 소리였다.    《그저 작란으로 멋부려본건데 뭘그래요.》     향란는 좋은 말로 그들을 달랬다.     민호도 밸이 났지만 그녀처럼 우선 두친구를 떠들지 못하게 눌러놨다. 그리고는 생각했다. 진사해의 거동은 심상치 않았다. 자기의 실력을 과시하느라 그러는거니 독이 있는 시위고 도전이였다.       염왕산에 진달래꽃이 피고 봄빛은 차츰 흐드러져갔다. 민호는 아름답고 따스한 봄을 보내노라니 올해따라 소시적에 아버지, 어머니, 누나들과 함께 전춘놀이를 가던 일이 새삼스레 회상되면서 집식솔들이 사무치게 그리워났다. 그들은 지금도 이 아들의 생존여부조차 몰라 얼마나 속태우고있을가. 하건만 나는 지금도 멀쩡해서 해를 보내다니... 어서빨리 원쑤갚고 고향에 돌아가야 하지 않는가.     민호는 이미 위삼포에게 자기가 조사해낸 비밀을 고발해서 주의를 환기시켰던것이다. 위삼포는 벌써 진사해와 밀산의 송곰보의 관계를 연구해왔다. 그들이 서로 내통했다면 진사해를 반역자로 론죄하고 처단할것이다. 한데 아직 아무헌 증거도 쥐지 못했다. 위삼포는 이리저리 속머리를 굴린 끝에 송곰보의 입을 여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자면 송곰보를 잡아와야하는데 어떻게 무슨 방법으로 그를 잡아온단말인가?     이럴때 민호가 그를 찾아갔다.       《자네가 무슨일루 나를?》    《이젠 송곰보의 입을 여는 수 밖에 없는줄로 생각합니다.》    《내 생각에도 그렇소만 어떻게?》    《송곰보를 추앙자합시다.》     추앙자하자는건 인질로 잡아오자는 말이였다.     위삼포는 민호를 다시봤다.    《생각은 좋네만 어떻게 추앙자한단말이냐, 구미여우가 선불맞고 제굴에 딱 들어박혀있는데.》    《굴속에 숨은 너구리는 내굴을 피워 나오게 합니다.》     민호는 그의 앞에 묘계 하나를 내놓았다.     위삼포는 잠자코듣더니 껄껄 웃으면서 머리를 끄덕이였다.    《그게 될거같구나. 그리해보자.》     이틀후. 류자한패가 진사해몰래 산채를 나와 밀산으로 향했다.     이쪽에서 판단한것 처럼 밀산토호 송곰보는 선불맞은 승냥이같이 사나와지면서 조심성이 많아졌다. 그는 자기의 장원을 털려고 두 번이나 달려든 염왕산마적을 격퇴시키기는 했지만 이제 아무 때건 다시달려들거나 아니면 자기를 인질로 잡아가리라는걸 알고 호위를 몇배 강화하면서 문밖으로 까딱 나오지 않고 있었다.     이러던 차 하루는 괴상한 일을 당했다. 이날 아침을 먹은 후 송곰보가 구들에 비스듬히 누워 수연통을 빨고있는데 송곰보의 동생이 느닷없이 뛰여들어오면서 캐묻는것이였다.     《형님, 우리 가문에서 그래 누가 더 늙었소?》     송곰보는 이따위 무엄한 소리를 듣고보니 기분잡치는지라 몸을 벌떡 일으키며 욕설을 퍼부었다.    《제길할! 생급스레 백주에 무슨 창빠진 소리냐? 넌 내가 일찍죽으라고 오도방정을 떠는거냐?》    《아니요, 형님! 우리 산에다 누가 광을 짓고있으니 그러오.》    《뭐라! 건 무슨소리냐?》    《정말이요, 형님! 내말을 못믿겠거든 어디 나가보오!》     송곰보는 듣고보니 오장이 뒤집어지는지라 손에 들고있던 수연통을 동댕이치고 나가보려했다. 그러다가 그는 다시생각해보니 자기가 혹 남의 꾀임에라도 들것 같아 그만 도루주저앉으면서 동생을 시켰다.    《빨리가서 알아봐라. 어느 돼먹지 못한 놈이 언감생심 이 어른의 집자리를 함부로 다치는가말이다.》     동생이 금방나갔는데 이번에는 그집의 청지기가 달려들어와 바쁜소리를 했다.    《나리 저걸 어떻게 할가요. 내가 이건 우리 나으리자리니 광을 짓지 말라는데두 저것들이 글쎄 듣지 않고 그냥팝니다.》    《어느놈이 그래, 어느놈이?》     노기충천한 송곰보는 천장이 낮다고 펄펄 뛰였다. 여지껏 이 고장을 자기의 독천장으로 여기면서 무인불성(無人不誠)으로 살아온 그였다.     아까나갔던 동생이 다시달려오며 손사래쳤다.    《형님, 안되겠소! 안되겠소! 아무리 쫓아도 가지 않고 관을 묻으려하오. 너나 우리나 하늘을 다 같이 쓰고 사는데 무슨 네땅 내땅이냐 하면서 죽어라구 말을 듣지 않소.》    《뭐라, 빌어먹을것들!》     송곰보는 더는 참고 견딜수가 없는지라 문을 걷어차고 휑하니 밖으로 달려나갔다.     그의 장원에서 거리가 그리멀지 않은 거리에 그가 죽으면 묻힐 산자리가 있었다. 고개들어 보니 과연 붉은 관 하나가 그의 눈에 띄였고 상복을 입은 사람들도 보였다. 그 모양을 봐서는 에누리없는 상제들이였다. 하지만 송곰보는 한편 또 그것이 혹시 토비들이 분장하고 노는 연극이나아닐가싶기도해서 감히 한발짝 더 다가가지 못했다. 어느해인가 어씨성을 가진 접골의(接骨醫)가 토비들 손에 유괴되였던 일이 피끗 뇌리를 때렸던거다. 수분하의 어의사가 목단강에 갔다가 기차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였는데 마즌켠에 앉은 두 젊은 객이 담배연기를 그의 얼굴에다 자꾸뿜어댔다. 노한 어의는 참을 수 없어서 너희들은 대체 뉘집의 자식들인데 이리도 례모없이 불손스레 노느냐고 꾸짖었다. 그랬더니만 그 두 젊은이는 우리는 후례자식이다 어쩔테냐하면서 달려들어 그를 발로 차고 때리였다. 이때 건너편에 앉았던 중년사나이가 나서서 그자들을 치고 박고해서 쫓아버려 어의사를 곤경에서 구해냈다.     어의사는 물론 감지덕지해하였다. 서로 말이 오가는 중에 어의사는 자기편을 들어준 그 사람의 로부가 얼음판에 넘어져 다리가 부러진통에 지금 바로 접골의를 찾아가는 길임을 알게 되였다. 어의사는 걱정말라 내가 바로 접골의다고 했다.    《어이구 이렇게 공교로울변이라구야, 하나님이 도우시네!》     그 사나이는 이젠 아버지의 다리가 났게됐다며 무등기뻐했다.     어의사는 집으로 가지 않고 중도에서 내려 그 사람을 따라갔다. 그런데 정작 가보니 거기는 토비굴이였다. 어의사는 이렇게 감쪽같이 랍치되여 3개월간이나 토비들의 상을 치료해주고 풀려나왔던것이다.     지금 송곰보의 눈앞에 나타난 이 한떼의 상제들은 근본 그를 안중에 넣지도 않고 제할일만 다그쳤다. 송곰보는 더는 참아낼 재간이 없어서 달려가며 발연대로했다.      《야 이놈들아, 당장물러가! 당장물러가란말이다!》     소래기를 쳤건만 저쪽은 못들은 척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제야 송곰보는 자기가 격분되고 초조한김에 그만 무장을 풀어놓을 궁리마저 깜박잊었음을 깨달았다. 이제 들어가 무장을 데려오자면 늦을것이였다. 하여 그는 두 팔을 걷어붙이고 달려들었다.    《자식들, 정말 하룻강아지 범무서운줄도 모르는구나!》     이때였다. 상제들은 그렇다 우리는 범무서운줄을 모른다면서 그를 욱 둘러쌌다.     상제 하나가 관뚜껑을 열어놓으면서 껄껄 웃었다.    《잘나왔다. 우린 네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염왕산류자들은 눈깜짝사이에 그를 옴짝달싹 못하게 잡아 관속에 집어넣어 산채로 돌아왔다.     민호가 꾸민 계책이 이같이 성금이 났다.          산채는 들썽했다. 두 번씩이나 접어들었다가 마스지 못한 기와가마의 주인을 붙잡아왔으니 이젠 먹을 알이 톡톡히 생겼다면서 류자들은 기뻐야단이였다. 그러면서 한편 그들은 이번의 계묘는 누가 찾아낸것인지 그야말로 귀신이 들어도 곡할 지경이라면서 혀를 내두르기도했다. 자연히 그럴밖에.     장평이 민호를 찾아와 쪽지하나를 내놓았다.    《민호형님 이걸 보오. 진사해가 날보고 이걸 남모르게 송곰보한테 갖다주랍니다.》    《진사해가 송곰보한테라?.... 어디보자.》     민호가 얼른받아 펼쳐보니 그것은 똥줄당긴 진사해가 송곰보에게 보내는 밀신이였는데 내용은 이러했다.                    나락에 빠진자 흐느껴 우는데                    창생을 제도하는 부처님은                    무상무념하도다                    문이야 닫아 걸어야지                    일출을 다시보려거든.       어리석은 자식 허튼짓을 하고있네. 네 꿍꿍이가 이젠 다 빵장이 난거야. 민호는 랭소하면서 그 자리로 위삼포를 찾아갔다. 그리고는 그의 앞에다 이 글을 내놓으면서 말했다.     《보십시오, 빤하지 않습니까. 진사해는 송곰보가 자기를 물어먹을까봐 똥집이 달아나서 이 글을 쓴겁니다.》    《과연 그렇구나.》     위삼포는 머리를 끄덕였다.     이만하면 증거가 족했다. 그는 서둘러 송곰보를 심문했다.     견대팔에다 매발톱을 먹침으로 자자한 30여명의 경위류자가 중앙대청을 지켰다. 위삼포가 자기방에서 나와 호피를 깐 상석에 높이앉자 8대금강도 모두나와 제 자리에 가 앉았다. 대청의 분위기는 자못 엄엄했다.     송곰보는 이런데로 끌려왔다. 억울하고 분하기 그지없었다. 관동일판에 포악한 마귀라고 소문난 위삼포의 일빈일소에 목숨이 왔다갔다하는지라 그는 낯빛이 하얗게 질리면서 이마에서 땀방울이 송골송골 내배였다.     송곰보는 무시무시한 침묵속에서 거의울상이 되어 전신을 떨더니 마침내 정신차리며 항의해나섰다.    《나는 죄지은게 없소. 당신들은 겨울에 담장밖에다 송장을 다섯 개나 버리구 달아났더구만. 그런걸 내가 좋게 처리했지. 짐승이 건드리지 말라구. 이만했으면 잘해줬지 뭐요. 안그런가요. 난 워낙 맘이 선해서 남을 해친적없구 례모도 갖추면서 살아왔다니까. 정말이야. 여적지 염왕산이 어떻구 어떻다구 관가에 고자질도 안했다니까. 건데두 무슨 혐원이 있어서 이같이 욕뵈이는가말이요?》    《이 위삼포가 자네를 죄있어 잡아온게 아닐세. 임자한테 죄있구 없구가 내하구 무슨상관인가. 난 집법관도 아니니 그런건 차문도 하잖아. 임자가 실말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시체를 그토록 건사해줬다니 우선 고마운 일일세.》    《그렇잖구. 고마운 일이지.》     사량팔주 모두 입을 모아 맛장구쳤다.     그러자 송곰보는 안도의 숨을 후 내쉬면서 이마에 배여난 땀을 닦았다. 겁이 질린 낯색도 차츰 풀어지고 있었다. 아마 용기가 살아나는모양이다.     위삼포는 동강났던 말을 이어했다.    《훗날가서 찾아보니 없어졌더군. 그래서 나도 얼마쯤 그리짐작한거네. 지각있는 사람이 아무렴 남의 시체를 개 돼지한테 먹혔을가구. 아무튼 그일만은 감사하네, 건사해줘서.》     위삼포가 하는 말을 들어보니 자기를 해칠것 같지는 않은지라 송곰보는 절망이 차츰 가셔지기시작했다.     대방의 이러한 심기를 빤히 들여다보고있는 위삼포는 그의 마음을 끄집어 당기느라 한결 부드러워진 어조로 그루박아 말했다.    《장부일언이 중천금이야. 내 지금 자네와 약속해두지. 자넬 해치지는 않겠다구. 대신 묻는 말에 이실직고할만한가? 대답하게.》     송곰보는 랍치되여 올때에 생각한것과는 영 다르게 위삼포가 자기를 해치지 않으리라니 미칠것 같이 기뻤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또 그의 그 낙언이 과연 정말일가고 반신반의하다가 조용해지면서 자기한테 물어볼게 뭔가고했다.    《자네가 진사해허구 무슨사인가? 그걸 우선 제대루 말해봐.》     위삼포의 첫질문은 이러했다.     송곰보는 몸을 흠칠떨었다. 속으로 오 네가 내한테서 그걸 알아내자는게로구나했다. 위삼포는 가느다래진 매서운 눈매로 그를 이윽토록 여겨보다가 입을 다시열어 솔직히 대면 구차스레 닦달을 놓지 않고 집으로 고스란히 보낼거요 그러지 않으면 끝장이라했다.     송곰보는 어쨌으면 좋을지 몰라 끙끙 거리다가 마침내 입을 열어 실토했다.     《난 그사람을 면목안지 오랩니다. 그가 청보산패에 들어가기 전부터지요. 우린 가까운사이였습니다.》     위삼포가 알려는 그들의 암중결탁은 차츰 마각이 들어났다.    《한번은 그 사람이 관병에 잡힌걸 내가 구해줬지유. 천구백 이십일년도 여름에 그 청보산패가 당벽진서 농사질을 하는 고려사람 독립군인들을 끔찍스레 몰살을 하고나서입니다. 청보산패는 그리고도 살인을 멈추지 않고 고태자서 허저인을 숱해 죽였지. 그리고도..... 명이야 질긴 사람이지.》    《청보산이 고태자서 일을 친 후에는?》    《숙청에 들어 잡혔다가 도망쳤다데. 나를 찾아왔길래.... 》     송곰보는 자기가 그를 여러날 숨겨준일은 생략했다.    《그래서?》     위삼포는 집요하게 캐고들었다.    《날보구서 은공을 꼭 값아줄거라했지유.》    《그러누라 내가 자네를 아무 때 어쩌리라는걸 탐지해서는 그걸 가만히 알려준거겠지?》        위삼포가 그의 말을 중둥자르고 깝지속에 들어있는 비밀을 지레끄집어내놓으니 송곰보는 그렇다는 말도 못하고 턱주거리만 달달 떨었다. 그러다가 집재산같은건 둘째치고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판이라 그는 속으로 내가 그깟녀석을 비호해줄건 뭐야 내목숨이나 살리고봐야지 하면서 입을 다시열어 진사해가 염왕산에 들어가서부터 자기와 비밀리에 내통이 있은 일, 말하자면 위삼포의 행동을 탐지해 사전에 알림으로써 방비책을 대여 번번히 화를 모면케 한 사실을 말했다. 그러면서 송곰보는 지어 진사해가 염왕산에서 두령들이 자기를 그리 썩 달가와하지 않으니 그냥 기죽어 지낼 멋이 없다면서 기회를 보다가 위삼포의 목을 잘라 관부에 바쳐 상이나 타갖고 저  먼 운남쪽으로 내뺄 궁리를 하고있다는것 까지 발설하고말았다.      이제보니 그자야말로 숨통에 기여든 독충이였구나! 이 일을 알고 놀라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위삼포는 낙언대로 송곰보를 털끝하나 다치지 않고 이틑날 고스란히 짐으로 돌려보냈다.       내가 이날이 돌아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더냐! 정민호는 이제야 가슴속에 오래도록 맺혔던 적원(積怨)을 풀수 있게되였다.     염왕산에서 보기드믄 전편(典鞭)이 있었다. 이것은 같은 류자내에서 죄가 큰 류자에게 본때를 보이는것을 가리키는데 류자들이 집법대사(執法大事)를 치루는 하나의 독특한 활동이다. 만주에는 백성들이 폭죽을 텃쳐 귀신을 쫓아버리고 토비는 전편을 해서 귀신을 불러온다는 말이 있는데 사실그러했다.     산채의 남산기슭에 술상 하나를 차려놓았다. 수십년전의 어느땐가 위삼포가 제애비를 죽인 원쑤를 잡아다 을 시켰던 바로 그 장소였다.     전체류자가 비상소집령에 의해 장총, 단총, 검으로 전신무장을 한 후 말을 타고 집합장소에 모이였다.     길이 쭉 열리였다.     위삼포가 맨먼저 말을 달려오면서 권총한방을 공중에다 쐈다.     그의 뒤를 이어서 포토우 위용강이 말을 타고 모집장소로 달려왔다. 그도 권총 한방을 공중에 쏘아 산간을 울리면서 웨치였다.    《흑비호도착!》     량태도 말을 달려 들어오면서 총 한방을 울리고는 웨쳤다.    《황금산도착!》    《화룡호도착!》    《천로야도착!》    《관산자도착!》     .......     산채의 팔대금강인 사량팔주 저마다 한본새로 말을 달리여 들어오면서 권총을 한방씩 공중을 향해 쏘고는 자기가 왔음을 알리였다. 민호는 마지막 두 번째로 나타났는데 그의 별호는 오인(五 刃)이였다. 그가 언젠가 뽐창 다섯 개를 잘뿌리려 류자들이 지어 붙여준 별호였다.     두령들이 이런모양으로 출두함으로 해서 전체류자들은 오늘 전편이 있음을 명백히 알게되였는데 대체 누구를 잡아내는지 누구도 모르고 있었다. 하여 분위기는 더 긴장하고 무시무시했다.     보양이 잘되여 몸에 기름기 번들번들한 억대센 가라말을 탄 위삼포가 엄엄한 시선으로 전체류자들을 한번 휘익 쓸어보고나서 높은 목청으로 선포했다.    《류자노릇하면 사람의 명을 뽑을 때가있다. 그러나 좋은 사람의 명을 함부로 빼앗아서는 절대안된다.  내 이 위삼포는 세가지 사람의 명을 끝까지 뽑아버린다. 첫째는 탐관오리고 둘째는 나라를 쳐들어오는 외국놈이고 셋째는 산채에 기여든 망나니다.》     그는 부어놓은 술 한잔을 마시고나서 목청을 한결 돋구었다.      《나는 지금 우리 염왕산의 망나니를 빼버리련다.》     염왕산의 망나니가 누구란말인가? 긴장하다못해 당장 터질듯한 분위기였다. 가슴이 덜컥해난 진사해는 전신에 찬물을 끼얹는것만같아 몸을 부르르 떨었다. 위삼포가 자기를 죽이려한다는것을 눈치챈 그는 깜빡 잃어지려는 정신을 가다듬으면서 내빼려했다. 하지만 그것은 헛짓이였다. 그가 말머리르 채여 돌아설 때 향란이가 긴 바오리를 홱 뿌려 그의 목을 걸어챘던것이다.     진사해는 보기좋게 뒷재주를 치면서 말잔등에서 허망나가 떨어져 땅에서 딩굴었다.      《저놈을 달아나지 못하게 하라!》     위용강이 웨쳤다.     그 소리에 응하여 왕견을 비롯한 정찰대의 류자들이 일제히 욱ㅡ 달려들어 목에 감긴 바를 풀고 달아나려는 진사해를 붙잡아 뒷짐을 묶었다.    《저 녀석은 괘주를 해서 여기에 발을 들여놓은 이래 낯짝에 웃음바르고 보살질을 하면서 여지껏 실은 동상이몽으로 지내왔다. 서은괴를 꾀겨 반란을 책동했거니와 밀산에 사는 꽃쟁반(곰보)하고 내통하여 우리를 두 번이나 대패케했다. 어디 그것뿐인가. 아예 내 목까지 떼여서 관가에 바쳐 상을 타갖고는 멀리로 내뺄 궁리까지 했다니 참으로 한심하도다.》     위삼포의 말이 떨어지자 사적에서 분노한 웨침이 터졌다.    《저놈을 잠재우자!》    《저놈을 깝지발쿠자!》     위삼포는 술 하잔을 또 마시고 입을 다시열었다.    《자고로 간활한 역적은 은인도 원쑤로 치부하고 잡아먹군했다. 패가망신한 네놈을 받아준 내가 그래 잘못한게 뭐냐. 사람도 볼줄 모르는 그놈의 눈은 둿다가 뭣에 쓰겠냐.》    《쓸데없다!》    《쓸데없다!》     류자들은 야단스레 그의 누알을 빼던지라했다.     왕견이 비수를 제꺽 뽑아쥐더니 진사해의 눈을 푹 찔렀다.    《아이구!.....》     진사해는 넘무도 고통스러워 소래기를 지르면서 마치 물밖에 잡혀나온 물고기가 분대질치듯이 땅에서 마구딩굴었다.     위삼포는 그를 깝지바르려다 생각을 고쳐먹고 민호더러 이젠 너한테 맡겼으니 맘대로 처리하라했다. 민호가 몹시바라는 바였다. 그는 진사해를 발가벗겼다. 그리고는 두손을 묶은채 개같이 나무에다 데룽데룽 달아맸다.     굶주린 모기와 등애들이 성찬을 만났다고 떼지어 달려들었다. 진사해는 을 입었다. 그는 고통속에서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민호는 그자의 곁에 다가가 낮은목소리로 물었다.    《이놈아, 당벽진서 네놈손에 죽은 독립군과 고태자서 네놈손에 죽은 허저인의 혼백이 네꼴을 보자고 모여왔다. 감상이 어떠냐?》        
139    장편소설 <<관동의 밤>> 제1부(20) 댓글:  조회:2307  추천:0  2015-02-03
                          20                 염왕상에는 량식이 충족했다. 중앙산채를 중심으로해서 팔괘진을 이룬 주위의 여덟 개 산채에서 서쪽의 하나만이 식당이고 그 외의 일곱 개는 산채마다에 면적이 똑 같은 량식고 한칸과 마사한칸씩 좌우량켠에 붙어있고 중간의 3칸은 류자들의 거실로 되어있었다. 어느 산채에든 창고에는 량식마대가 차곡차곡 재여 있었다. 류자들은 흉풍을 모르다나니 여직 한번도 배를 골아본적이라곤 없었거니와 식량이 넉넉하다보니 해마다 곡주를 마음껏 고와서 마음껏 마시였다.     한데 지난해는 절기관계로 약담배농사가 거의나 황이되다싶히했다. 하여 위삼포는 올해들어 밀산의 송곰보를 노린건데 첫공격에서 그만 실패했다. 그랬다하여 맥을 놓거나 손을 뗄 위삼포가 아니였다. 한번 뺀 칼은 피를 보아야 했고 쟁반밟아 깃대꽂은 기와가마는 꼭 털어내야 한다는 위삼포였다.    《송곰보는 지금도 의연히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으니 건드리기 어렵습니다. 제생각에는 늦줄을 주었다가 시기를 다시잡는것이 좋암즉합니다.》     민호는 직접 밀산에 세축갔다와서 자기의 의견을 내놓았다.    《아마도 그럴수밖에. 이 일은 공력을 더 넣어얄것 같아.》     위삼포는 한번 실패하고나서 정신차리게 되는지라 실패한 원인이 대체 어디에 있는지 그것을 규명하기 전에는 절대 행동하지 않으리라 맘먹으면서 민호의 의견을 채납하는 한편 그더러 묘동기간이 되기전에 송지주가원의 상세한 지도를 한 장 그려내했다.     그것은 범의 굴에 들어가 자는 범의 수염을 뽑아오는거나 다를바가 없지만 위삼포의 지엄한 명령이니 우선 그렇게 하리라 대답해놓고 보는 수 밖에 없었다.     염왕산정찰대에 원래 7명의 류자가 있었는데 민호는 차챈더로 승급하자 즉시 자기와 갈라져있기를 원치않는 왕견과 하진국을 끌어다 인원을 보충했다. 그래서 지금은 그까지 해서 인원이 모두 10명으로 되었는데 그만하면 실력이 괜찮은 셈이였다.     어느날 민호는 류자 3명을 보상, 넝마주이, 피혁장사로 가장해서 장기적으로 내놓아 송곰보의 변경된 무력과 배치정황을 탐지해오도록 하고 자기는 직접 밀산에 나타나지 않았다. 향란의 말과같이 차챈더라해서 모든 정찰을 꼭 자신이 직접 나서서 해야되는건 아니다. 관건적인 때 나서면 되는것이다.     어느날 오전. 위삼포는 사량팔주를 불러 회의를 열고 가을철에 밀산을 내놓고 먼저 다른곳의 기와가마를 마슬 자기의 타산을 내놓으면서 굳이 여러사람의 의견을 들으려했다. 염왕산의 모든 대사가 그의 의사에 따라 집행되여온것만은 사실이다. 한데 위삼포가 왜서 굳이 다른사람의 의견을 듣자고하는걸가? 이럼으로써 그가 전번의 실패에서 주관독단한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반성하는 것이 되고 그것은 또한 민주를 충분히 발양하려는 그의 의도로도 되는게 아닐가. 그가 그렇게 함으로서 실패로 인하여 야기되였던 사량팔주의 불만을 다소 해소할 수 있을것이다.     민호는 속으로 너는 실로 지모가 있는 두령이구나 했다.     회의가 방금끝나자 후근사양실의 장령감이 위용강을 찾아와 알리였다.     《위포토우 가보슈. 말이 아마두 안되겠수자.》     결장염에 걸린지 오랜 위삼포의 말이 약을 써도 치료되지 않고 여위여가더니 이젠 제 수명을 다하는 모양이다.    《내 가보지요.》     위용강은 장령감을 따라 마사로 갔다.     말못하는 짐승이건만 주인을 아는지 눈물을 지으며 머리를 주억거렸다. 자기를 어떻게 해서든 구해달라고 애걸하는것 같았다.     가슴저렸다. 위용강은 여윈말의 이마를 쓰다듬어주었다. 여러해나 그를 잔등에 태우고 관동일판을 주릅잡으면서 용맹을 부렸고 사선을 함께 넘나들었던 애마건만 이제는 더 어쩌는 수 었었다.     위용강은 장령감한테 시켰다.     《북골루 끌고가시우. 소문내지 말구.》     북골은 산채의 북쪽에 있는, 류자들의 말이 죽으면 버리는 함지박같은 말북망산이다.    《나 원, 에에....》     오랜 말구완에 시들하지도 않은지 장령감은 아까와 혀를 찼다.     마침 장평이 와서 그는 그보고 함께 말을 끓어가자했다.    《나도가지.》     가지 않을것같던 위용강이 그들을 따라갔다. 그리고는 북산골에 당도하자 친히 제손으로 말대가리에 탄알을 쏴놓고 돌아왔다.     소춘매가 이 일을 알고는 아무렴 제말을 제손으로 어떻게 죽이느냐며 그를 감정없고 지독하다며 나무렸다.    《왜 이리두 귀찮게 구는거요.》     그러잖아 제손으로 말을 죽이고나서 애상(哀傷)에 마음괴롭던 위용강은 발로 문을 쾅 차고 밖으로 나와버렸다.     진사해가 장평한테서 위용강의 말이 죽었다는 소리를 듣고 일부러 위안하러 오다가 마침 집안에서 나오는 위용강과 맞띄였다.    《위포토우 거 참안됐수.》    《내 말이 잘못됐는데 거기서 안돼할거야 뭔가.》     안해한테 비난듣고 결나던참이라 위용강은 퉁명스레 내뱉었다.     진사해는 속으로 야 이 못난녀석아 시어미역증에 개배때기찬다구 말잃은 분풀이를 누구하고하는거냐 하면서도 입정을 계속놀려 입발린 위안을 했다.    《병이 고황에 들어 고치지도 못하는 말인데, 있어도 구실을 못하는 말인데, 그깟거 없어진들 뭘하나, 아까울게 뭔가. 새걸 하나 얻으면 되잖아.》     위용강은 그냥 역증냈다.    《그걸 누구는 모르는가 젠장!》     진사해는 그만 입을 다물어버렸다. 불쾌한지 그의 게뚜더기상이 더 보기 흉하게 이그러진다. 이녀석이 오늘은 왜 나하고 이러는걸가 하고 그의 그 가느다래진 눈은 유감을 표시하고 있었다.     이때 위용강의 가슴속에서는 말의 죽음에 대한 애달픔이 아니라 그에 대한 증오가 괴여오르고있었던 것이다. 그는 속으로 야 이 개같은 자식아, 네녀석이 서은괴를 추겨서 돼지대갈깝지를 발퀐다지 깝지발라치울놈같으니. 그러구는 여적지 내한테 붙어 놀았어. 이제 또 나를 어째볼테냐. 네녀석은 진짜 여우보다 더 교활하구 엉큼한 놈이였어 하고 욕했다. 그러다 그는 또 아니다, 내가 갑작스레 굴지말아야겠구나 눈치채게는 말아야지 그냥 친한것처럼 하라잖았는가 부명을 어기지 말아야지 했다.          산채에 주인잃은 말이 여러필있었다. 죽은 포토우 담추의 말도 있었는데 그 말 역시 가라말이였거니와 원주인을 닮아서인지 설깔이 매우사납고 용맹했다. 전에 그 말을 욕심낸적이 있었던 위용강은 탈말이 없게되자 그 말을 가지였다.     이틑날이다. 위용강이 새 가라말을 타보느라 밖에 끌고 나와 원래 자기말의 안장을 지우는데 후근사양실에서 술을 마시고 거나해진 진사해가 유유히 나타나 거들어주었다.      《허허 이놈이 과연 룡마는 룡마로다! 인제 다시금 비슷한 제주인을 만났다구 짝짝궁을 치겠구나.》     위용강은 일부러 넌덕부리는 그의 심기를 맟춰줬다.    《아니 그게 뭐 애기라구 짝짝꿍을 치겠소.》    《그, 그런가. 하하하....》     진사해는 소리내여 웃고는 허리굽혀 땅에 떨군 채찍을 쥐여주면서 입을 다시열었다.    《옛어, 솔소자(채찍)야 던지지 말아야지. 아무리 용한 기사래두 가질건 다 가져야 해. 그래야 재간을 부리는거아니요. 안그렇소. 자 한번 본때를 보여보라구!》     이 자식이 별스레 아첨을 하네. 위용강은 그가 주는 채찍을 받으면서 속으로 뇌였다. 이제는 그의 어떠한 호의도 밉게보였던거다.내가 이런놈을 친구로 사귀여왔으니 눈은 있어도 눈망울이 없었지.    《이놈뛰거라!》     위용강은 말을 달려 중앙산채주위를 돌기 시작했다.     숱한류자들이 그의 마상재주를 구경하자고 달려 나왔다.     위용강은 질주하는 말잔등에서 내리지 않고 여러 가지 동작을 피웠다. 누군가 던진 초모자를 쥐였고 허리굽혀 안해가 던진 명주수건도 채찍으로 걸어올렸다. 마치도 곡마단의 고예사모양으로 제몸을 이쪽 배 저쪽 배 엇바꿔 붙이면서 재롱을 부리기도했다. 몸이 건실하고 단단한 그의 행동은 그야말로 날래고도 용감했다.    《위포토우잘한다!》     류자들은 박수갈채를 올렸다.    《나는 언제 저렇게 할가.》     민호의 입에서는 은연중 부러움이 새여나왔다.    《련마하면 얼마든지 될걸요. 뽐창뿌리기도 배워냈을라니.》     함께 오빠의 마상재주를 보고있던 향란이가 하는 말이였다. 그녀는 제 오빠가 소시적부터 아버지한테서 말타는 것을 배웠다면서 그 재간을 고집센 이 여동생한테도 배워주었거니와 기마술이 좋은 사람만 보면 그와 시합하기를 즐겼노라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그같이 꾸준히 련마해낸 기마술이기에 염왕산은 물론 바깥의 다른 어느 무리에도 아마 그를 당할 류자는 없을거라했다. 제 오빠를 자랑하느라 부는게 아니였다. 민호는 다른 류자들한테서도 그런 소리를 들은것이다. 그렇다. 애써련마하면야 안될게 있는가. 문제는 의력이 있느냐없느냐지. 민호는 자기도 승마술을 잘배우리라 맘먹었다.      위용강이 말타기를 끝내자 소춘매가 소래에다 물을 떠다 주면서 남편더러 땀난 얼굴을 씻으라하고는 자기도 기마술을 배워야겠다고 했다.    《배워야지. 배워야하오. 말탈줄도 모르구야 어떻게 살겠소.》     위용강은 각시보고 제 말을 내놓을테니 아무 때건 품을 들여 향란이한테서 부지런히 배우라했다. 그리고는 불쾌한 소리를 한마디했다.    《건데 장평이가 아까 어째 구리두 웃었소. 입을 손으로 막아가면서. 내꼴이 뭐가 그리두 우수웠길래?》     소춘매도 장평이 웃는것을 본 기억이 났다. 진사해가 귀에대고 무어라 소곤대니 그렇게 웃었던것이다. 사람이 웃는거야 별일이 아니잖는가. 자기는 그걸 별로 다르게보지 않았건만 남편은 노여워하고있다. 하여 소춘매는 의아쩍은 눈매로 남편을 다시봤다.     남편은 저녁을 먹고나서 각시보고 장평을 불러오라했다.    《장평 좀 와줘요. 우리 집 사람이 보자해요.》     장평은 무밋거리다가 따라왔다.    《이자식아, 넌 아까 내 말타는게 그리두 우습더냐?》    《아, 아니요.》    《건데 왜 입을 싸쥐고 그렇게두 웃었냐? 날 놀리느라구?》    《아, 아니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돼먹지 못하게 그자식하고 들어붙어서.》    《저 그건....》     장평이 해석하려했지만 위용강은 참을성없이 그의 말을 분질러버렸다.    《넌 그하구 좀 작작 붙어놀아라. 너무 꼴사나우면 좋은 일 없다. 알아들었냐?》     장평은 위용강의 손에서 풀려나오자 그길로 향란이를 찾아가 억울함을 하소했다.     향란이는 그보고 아직 내막을 잘 몰라서 그러는모양인데 분을 삭히거라 내가 이제 오랍을 찾아가 얘기할테니 너는 그냥 진사해와 붙어지내면서 제할 역이나 놀아라했다.       가을이 돌아왔다. 밀산의 송곰보장원을 다시습격할 준비가 아직도 되지 않았다. 하기에 깃대꽂은 새기와가마를 다시찾기로했다. 이번은 방향을 염왕산서쪽 수백리밖으로 정했다. 차챈더로 된 민호는 밀산에 장기적으로 잠복시킨 3명외의 인원 7명에서 한조는 3명으로 다른 두조는 2명씩 모두 세조를  만들어 각각 쟁반밟을 임무를 주어 산채를 내보면서 자기는 왕견과 한조가 되어 하루뒤늦게 산채를나갔다.     먼길이였다.     《어 좋다! 알까는 암탉같이 들어앉아있을라니 갑갑해 죽을지경이던데. 그래 이번 가는데는 어딘가?》    《쌍성쪽이요. 왕형은 거기로 가본적이 있소?》    《안가봤어. 내가 전에는 쟁반밟는 일을 그리안했으니까.》    《참 그랬다지.》    《말타구가려나. 거기는 기차타도될텐데.》     지도 한 장을 펼쳐놓았다. 할빈에서 남쪽으로 뻗은 철길우에 표시된 여러 정거장들 중에서 하나를 짚으면서 민호는 말했다.    《이게 바로 쌍성이요.》    《대단히 멀구만. 먼저 말타구가다가 기차를 갈아타야잖아.》    《멀다해서 기차를 타? 그렇다면 가마마스러 갈때도 모두 말을 타고 가다가 기차를 갈아타야겠구만. 그 많은 말을 건사해줄 마사가 어디에 있다오?》    《오, 하하하.... 그래 그럴수야 없지.》     왕견은 이번에 기차타고 신선놀음하자던게 틀렸다면서 웃었다.     염왕산에는 군대의 작전지휘부못잖게 온 관동땅을 그린 커다란 지도 한 장과 구역들을 그린 자그마한 지도들이 숱해있었는데 그런 지도마다에는 륙로가 세밀하게 그려져 있었다. 그 지도가   출판사에서 출판하여 공개발행되고있는 지도에 비해 다른점이라면 국도외에도 인체의 모세혈관모양으로 얼기설기 수없이 뻗은 그 많은 길들이 거의다 그려진 그거다. 지어는 산속에 난 어떤 오솔길까지도 표기되여 있었다. 놀라운 이 걸작은 위삼포의 선대로부터 차챈더의 공력과 알심을 숱해들여 만들어진것이였다.     민호는 이번걸음에 장차 염왕산류자들의 발자국이 새로 찍히게 될 길을 찾아낼지도 모른다. 주어진 시일은 10일간이였다.          둘은 쌍성에 거의이르러 산간에서 인가를 하나 만났다. 여기도 마을마다 련방대가 조직되여 토비의 침입을 막고있는 통에 행동이 과연 불편했다. 시장기가 드는지라 그들은 말도 쉬울 겸 그 외딴집에 들리였다.     늙은 량주가 양봉을 하고 있었다.    《어디메서 오는 손님들이요?》     령감이 객들이 행색이 어딘가 달라보였던지 눈을 쪼프리며 묻는 말이였다.    《멀리서 오는 행객이우다. 지나가는 걸음이지요. 갖고떠난 걸 다 먹고 말도 배를 골았는데 좀 돌봐줄 수 없겠습니까?》     민호는 사정하면서 우선 돈부터 내놨다.    《허 이거, 무슨 이렇게 까지야... 》     주인령감은 이게 웬 떡이냐고 눈이 둥그래갖고 보다가 못이기는 척 받아넣는것이였다.     그닥 알뜰치 못한 로파가 저들이 아침에 먹다 남긴 수수밥을 질그릇에 담겨있는 그채로 내놓고 파와 된장을 주면서 먹으라했다.      왕견이 그것을 보더니만 눈알을 굴리였다.    《아니이게 뭐유. 돼지나 먹일 이따윌 그래 우릴 먹으라구 내놓는단말이요? 사람을 대체 어떻게 보구서 이모양이요. 돈을 좀 보오. 저그만치 오원각수란말이요. 령감네 저까짓 벌통몇개루 이만한 돈 벌기나하면서 이러우. 참 너무하는구만. 쩨쩨하게서리.... 싫소 우린 안먹겠소. 새밥하오. 채도 좀 먹음직하게서리 해야하오.》     민호가 참으라 눈짓했건만 왕견은 듣지 않고 할 말을 다했다.     《우리 돈은 뭐 가랑잎인가. 얼씨덩 말을 듣소. 안그랬다간....》     손님이 확실히 유다른지라 늙은내외는 겁을 집어먹고 찍소리못했다. 새밥을 하고 달걀도 몇 개 지졌다.     그들이 타고 온 말이 내다보이는 산비탈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민호가 주인과 물어봤다.    《령감님, 여기서 쌍성까지 얼마나 멈니까?》    《질러가면 삼십리고 둘러가면 오십리도 넘습네다.》    《거기 제일잘사는 부자집이 뉘집입니까?》    《행사업이라구 허는 분입지요.》    《령감은 그분을 잘압니까?》    《전에 같이살았으니 우리야 그네하구 구면입지유.》    《식솔이 몇이나됩니까?》    《로부모 아직 다 살아있구 큰아들 작은 아들 며느리 손자 손녀에 이것저것 다해 식솔이 모두 스믈다섯하구 거기다 부리는 종까지 다섯해서.... 건데 손님 그건 왜 캐묻소?》     령감은 그제야 눈치가 달랐던지 말을 하다말고 낯색이 변했다.    《그 집을 한번 가보자고 그럽니다. 들어갈 수 있겠지요?》     민호가 령감이 묻는 말은 마이동풍으로 흘러버리면서 집요하게 캐물으니 령감은 주저주저하다가 헐수 할수 없는지 알려준다.    《무장쥔 사람 열둘이나 지키구있수다.》    《거 아주 잘아는구먼요. 좀 더 상세하게 그걸 알려줄수 없겠습니까?》   《자네들은 그러니까....》    령감은 이쪽 둘이 어떤 사람이라는것을 짐작하고 무서워 부들부들 떨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인걸 이젠 알겠지요. 그러니까.... 령감님 절대 해치지는 않을테니까 안심하고 묻는거나 제대로 알려주시오.》    령감은 자기가 알고있는것은 방금 알려준것 뿐이라면서 더 말하지 않으려했다.    민호는 겁을 집어먹고 그냥 떨어대는 그를 구슬렸다.   《령감은 우리한테 알려주지 말아았어야하는걸 이미 적잖게 토설했수다. 돈받고 밥까지 해먹였겠다 관가에서 알면야 에누리없이 통비범으로 처분을 할겁니다. 안그렇습니까. 건데두 이제 입을 닫아걸어서야 무슨 작용이 있겠습니까. 참 생각도 아둔하지.》    령감은 들어보니 과연 그런지라 하는 수 없이 몇가지 아는것을 더 알려주었다. 그래도 제 눈으로 보고 그것을 확인해야했다. 민호는 그의 앞에다 돈 10원을 더 내놓으면서 당부했다.   《우가 거기로 갔다가 래일지나 모레쯤 돌아올것이니 그지간 말이나 잘 건사했다가 주시오. 그렇게 할 수 있겠지요?》   《그럽지유. 그럽지유.》    당부를 거절했다가는 당장 어떤 변을 치를 지 몰라 령감은 말을 곰상히 들어주었다.    하지만 그래도 거기를 떠나면서 왕견이 한마디 그루박았다.   《령감알아둬. 련방대에 보고만 하면 사돈의 팔촌까지 도룩을 낼테야. 들었는가.》        정찰을 해보니 쌍성부자집 하나는 치기 힘들것 같지 않았다. 한데 성내에 주둔하고있는 관병이 많아서 300명이 아니라 3000명갖고도 우선 성내로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쌍성에서 기차를 잡아타고 얼마가량 길을 줄이여 양봉하는 령감집으로 돌아온 그들은 점심을 해달라해서 먹고는 말을 타고 귀로에 올랐다.     돌아가는 길은 올때의 그 길이 아니였다.     저녁켠이 다 되여 갈 무렵에 그들은 행동거지가 일반백성들과는 달라보이는 사나이 다섯을 길에서 만나게 되었다. 그자들은 당나귀 두 마리를 끌고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째째한 녀석들이구나.》     왕견이 일부러 앞배에 찬 권총이 드러나게 하느라 겉옷섭을 헤쳐놓았다.     거리가 썩 가가와지자 민호가 말을 세우고 먼저 말을 걸었다.    《보보영두.》     한자가 두손을 모아 류자식의 인사를 하면서 캐물었다.    《선마만?》    《첨마만.》    《팔굽을 눌러라.》    《불을 꺼라.》    《리마인이구나. 어디사람들이냐?》    《우린 염왕산이다.》    《어이구!》     저쪽 다섯은 저마끔 주먹을 다시쥐며 작별인사를 했다.     좀 더 가니 자그마한 산아래에 인가가 기껏해야 30여호푼한  마을이 하나 나타났다.      《이놈의 계모점(농촌)에는 기와가마도 안뵈이는구만. 곤해죽겠는데 우리 들려서 눈이나 붙여볼가.》     민호가 의견을 내놓으니 왕건은 벌씬 웃는다.    《그러면야 작히나 좋아서. 내야 두손들어 찬성이지. 아까부터 눈까풀이 사돈정하자고드는데.》     매사불여 튼튼이라고 만일의 경우 몸을 쉽게빼기 위해서는 어느 류자나 마을에 들려 눌러있을 때는 대개 다 길가에 있는 집을 선택해서 들군한다. 영왕산의 두 류자는 그 마을에 이르자 길맨끝머리에 있는 집에 들리였다. 물론 누구나 토비를 제집에 재우기를 싫어했다. 하지만 돈만 뿌려주면 해결이 되는 때가 그래도 많았다.백성들은 관부의 단속도 무서워하고 토비의 위협도 무서워했던것이다. 똑같은 무서움에 시달리면서도 그들은 결국 련방대의 규률보다 돈이 유혹하는 쪽으로 마음이 더 쏠리고 마는것이다.    《우리 염왕산은 엽때껏 밀고자를 가만둔적이 없었어.》     왕견이 알아들으라고 내던지니 집주인은    《거야 의례 그래얍지요. 우리도 압니다.》     하면서 보초까지 서주겠으니 그들을 마음놓고 자라했다.     말은 듣기좋다만 과연 이 집에서 마음놓고 잘수 있을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주인사나이도 아낙네도 눈에서는 어딘가 적의에 찬 불안과 경계하는 빛이 번득였던것이다. 민호는 경각성을 높혀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밥을 먹고나니 식곤증이 몰리는데다 졸음까지 와서 눈이 맡붙고있었다.     이런때 집주인이 입을 열고 한가지 일을 불쑥 물어왔다.     《낮에 온건 어느패였소? 집집이 말끔히 뒤지더구만. 보다싶히 우리가 뭐있다구 그렇게 한심한 짓을 한다오?.》     민호는 정신을 펄쩍차렸다.    《어디서 온 패랍니까?》    《건 모르지. 물어보지 않았으니. 저들의 말루는 오룡당이라 하는것 같더구만.》    《오룡당? 가마있자, 그게 그럼 아까 당나귀몰고 가던치들 아니여? 다섯이였으니까.》    《옳아, 바로 그녀석들이야.》     민호도 왕견도 어렵잖게 짚었다.     주인이 눈이 둥그래지면서 그들을 번갈아보았다. 민호는 오다가 그자들을 만났노라했다. 집주인은 입을 다시열고 물었다.    《당나귀 몇마립디까?》    《두마리.》    《그럼 그게 맞구만. 두 마리지. 그것들이 두부방의 당나귀를 두 마리 다 몰고갔소. 그 집에서는 이젠 뭘루서 두부콩을 간단말이요. 남의 명줄을 끊는거나 다름없지. 한심하지!》    《왕형, 가기오!》     민호는 자리를 차고 벌떡일어났다.    《어디루가잔말인가?》    《멀리루 빼기전에 덜미잡아야지. 구도관자!》     둘은 함께 올 때 만났던 자들이 간 방향으로 말을 달리였다. 그리하여 서쪽으로 약 30여리가량되는, 낮에 그들이 경유한바 있는 한 마을에서 그자들을 찾아냈다. 다섯은 한 농가에 들어 셈평좋게 한창 술을 퍼마시고있는 중이였다.     민호가 낮에 말을 걸던 자와 보자고했다. 저켠은 목을 빼들고 이켠을 보다가 들었던 술사발을 내려놓으면서 올곧지 않은 투로 무슨일이냐고했다.     민호는 엄한 낯색을 지으면서 물었다.    《너희들은 낮에 뉘집의 당나귀를 몰아왔냐?》    《건 알아서 뭘해?》     상대방의 말이 입끝에서 끝나기 바쁘게 왕건이 마치도 두억시니같이 두눈을 부릅뜨면서 성을 벌컥냈다.    《자식, 돼먹지 못하게 뉘앞에서 말본새가 그래? 이분이 우리네 일곱째나리야.》     일곱째나리라는 소리에 저쪽은 감히 더 덤벼들지 못했다.     민호는 왕견을 달래는척 하면서 말했다.    《자, 자, 밸을 참소. 형제끼린데 잘못된 일이야 서로 좋두룩해야지 안그렇소. 그리구 거기서두 그렇지, 이분 삼촌의 걸 다 뺏어오다니 원. 당나귀를 말이요. 정말 철없이 노네.》    《저....》     오룡당의 도장수녀석은 이들이 염왕산패라는 것을 이미아는지라 겁을 집어먹고 감히 아무말이나 내뱉지 못했다.     민호는 한발나서면서 위협적인 투로 압력을 가했다.    《어쩔텐가?》    《저...》     민호는 한 대 쥐여박기라도할것 처럼 우뚤거리는 왕견을 참소 참아 하고 눌러놓고는 어조를 부드럽게 바꾸어 당신들도 모르고 한 짓을텐데 더 문책하지 않을테니 당나귀만 내놓으라 그러면 뒷끝을 달지 않으리라했다.     다섯떨거지 비도는 염왕산이 온 관동땅치고 제일무섭고 드센 마적떼임을 잘 아는지라 분한대로 당나귀를 내놓았다.        당나귀를 찾아줬더니 두부방에서는 너무너무 고마워 어쩔바를 몰라했다. 이틑날 아침에 두부방에서는 닭잡고 술상을 차려 두사람께 올리였다. 그러면서 주인은 당장 시집가게 된 방년의 딸을 곱게 단장시켜 들여보내여 술을 붓게했다. 주인이 여기는 아직 련방대가 없고 경찰도 없으니 안심하라 집사람과 친척이 파수를 서줄테니 하루이틀쯤은 묵어가도 된다면서 극구 만류했다.     민호는 왕견이 곤해죽겠다며 나누우니 하는 수 없이 그러면 하루 푹쉬고 래일아침 일찍이 떠나기로했다.     그집의 딸년이 세수물을 떠온다 발씻을 물을 떠온다 담배를 말아준다 불을 붙여준다 시중드느라 맴돌았다. 그녀가 하도 극진히 구는지라 민호도 왕견도 다소 이상스럽다했는데 아니나다를가 두부방주인은 저녁술상을 차리더니 민호앞에 말을 꺼내놓는것이였다.    《내 한가지 물어봅세. 자네들 록림객은 장가두 안가는가?》    《그건 왜 묻습니까?》    《은공을 다르게는 갚을 방법없네. 보아하니 내 딸이 아마 자네한테 맘을 주는것 같은데 데려가게. 그러면 나도 시름놓겠어.》    《감사하오만 그건 안됩니다. 외부의 녀인은 일절 입산을 허락잖는 제도가 있으니까요.》     민호는 이러면서 보상받자고 한 일도 아니니 다시말을 꺼내지도말라했다.     술상을 물리고 이제는 자려고 하는데 처녀가 다시나타났다.     민호는 그녀보고 말했다.    《밤이 깊었는데 아가씨도 이젠 그만 돌아가 자지.》     그랬더니 왕견이 이 바보야 주는떡도 안먹으려나고 마뜩잖아 하는 눈매로 찔 갈겨보고는 가래짝같은 손을 내밀어 처녀의 나근한 손목을 덥석잡는것이였다.    《새기올라오라구. 이눔의 허리가 시쿰한데 좀 안마를 해줘.》     아무튼 범행(梵行)이야 하지 못할 위인이 아닌가. 이 도척아 지랄이 나거든 어디 실컷 해보거라. 민호는 피해 밖으로 나왔다.     이리하여 이 고장에는 이 생겨났다.       위삼포는 민호의 정찰보고를 받고나서 쌍성의 부호를 털려던 계획을 포기하고말았다. 대신 쟁반밟으러 나갔던 다른 두조는 다가  들부실만한 기와가마를 찾아냈던것이다. 하여 위삼포는 깃대꽂은 기와가마 셋중에서 두 개를 성공적으로 털고 나머지 하나는 이듬해의 계획에 넣어버다. 그러면서도 그는 전부터 맘먹고있은 송곰보를 털 계획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묘동시간을 며칠늦추면서까지 밀산토호인 그를 털어 볼 궁리를 했다.     민호는 위삼포가 300여명의 류자를 휘동하여 번개식으로 염왕산서쪽의 기와가마 두 개를 들부시는 사이에 자기가 직접 정탐에 나서서 밀산 송곰보장원의 무력배치를 확정하여 위삼포가 요구하는 지도를 원만히 그려냈다.     위삼포는 이젠 모든 준비가 다되였다고 인정되자 황소등이 얼어터진다는 북만의 엄동설한이 시작된 12월중순께 자신이 직접 300명인마를 끌고 염왕산을 나와 제2차의 밀산행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토록 많은 노력을 들여 주밀하게 꾸미노라 한 일이 어떻게 된 판국인지 이번에도 대방이 미리알고 준비를 했다가 반격하는 통에 이쪽에서는 이번에도 피동에 빠지고알았다. 게다가 저쪽은 련방대와 경찰까지 동원해 협공하니 말이 아니였다.     이쪽은 그런대로 배겨내는데 이제 날이 밝으면 무슨꼴이 될 지 모른다. 호상련락이 되여 근처의 계서, 적도와 목릉의 련방대 그리고 관병까지 동원되여 포위망을 형성하고있으니 염왕산류자 300여명은 진퇴량난에 빠져 헤매치다가 일망타진이 되고말지 모른다. 유일한 길은 한시급히 포위를 뚫고 달아나는 것 뿐이였다.    《두령님, 뒤는 제가 맡겠습니다. 》     민호는 자진해나섰다.    《자네들 몇이서 당해낼만한가?》    《념려마시오. 힘껏 방법을 댈텝니다.》     차챈더가 지형에 익숙해서 자신있어하니 위삼포는 동의했다.     민호는 자기의 정찰대를 지휘하여 위삼포의 퇴각을 엄호했다.     한데 주력이 다 퇴각하자 10명의 정찰대가 그만 저쪽의 포위에 들고말았다. 민호는 대방의 화력을 자기혼자에게 끌어 그들마저 구출하리라 맘먹었다. 그는 모제르권총 두자루를 갖고 있었다. 대방은 그를향해 밀집사격을 해왔다. 하지만 캄캄한 밤이라 그것은 그저 눈먼 란사에 불과했다. 민호는 어느 아름드리 고목뒤에 몸을 숨기고 간단없이 응사했다. 사격술을 부지런히 련마했더니 잘 써먹게 되었다. 민호는 두눈에 심지를 돋구고 주위를 살피다가 물체같은것이 얼뜬거리기만하면 한방씩 갈겨대군했다. 그랬더니 대방은 이켠의 실정을 도무지 파악해낼 재간이 없는지 감히 접근하지 못하고 날밝기를 기다렸다.    이러는 사이 9명 류자도 하나다친데 없이 제가끔 제 말을 찾아 타고 위삼포가 간쪽으로 퇴각해버렸다.    한데 민호만은 불행하게도 자기의 말이 있는데 까지 가서 말을 잃고말았다. 제길할, 이젠어쩌는가? 그는 눈먼 총알에 치명상을 입고 쓰러진 말이 죽어가는것을 보면서 거기를 마지막으로 벗어났다.    전날에 내리고 싸인 눈이 거의 무릅가지 올라왔다. 민호는 그런데를 기기도 하고 구을기도 하면서 겨우빠져나왔다. 말이 죽어서 이제는 산채로 돌아갈 일이 아득했다. 머고도 먼 길이다. 그래도 아무튼 돌아가야하는 길이였다.     동녘이 차츰 프름프름 밝아오고 있었다. 사방을 둘러보니 몸은 어느덧 밀산 썩 서쪽에 와 있었다. 그는 염왕산이 있는 서쪽을 향해 부지런히 걸음을 놓았다.     어느덧 날이 휘영청밝았고 미구하여 동녘에 붉은 해가 솟았다.     맵짠날씨였다. 하지만 골에다 푹신한 여우털모자쓰고 털가옷을 입어서 땀이 났다. 그리고 점점 맥이 진해가면서 다리는 저울추를 달아맨것 같이 점점 무거워졌다. 제길할 이러다간 산채로 들어가고말것 같지 않구나.     《쨔! 쨔! 쨔!》      쉬여갈가어쩔가 하는데 마침 저기 뒤에서 빈마차 한 대가 달려오고 있었다. 살수가 나지는지라 민호는 안도의 숨이 나갔다.      그 마차에는 차몰이꾼하나뿐이였다. 민호는 마차가 가까이오자 내좀 타기오 한마디 던지고는 앉으라하건말건 올라앉았다.     《젊은이는 어디루 가게?》     《난 먼델갑니다. 이 마차 어디까지 갑니까?》     민호가 묻는 말에 나이 지긋한 차부는 채찍을 들어 앞을 가리키면서 자기는 저기 저 산넘에 있는 마을까지 간다고 알려주었다.     거기까지 가고는 또 걸어야한단말인가? 요행만난 마차득도 오래보지 못할것 같았다. 그러니 무슨 방법을 대야했다. 민호는 수레를 끌는 말이 욕심났다. 중도 사흘굶으면 딱정벌레를 잡아먹는다는데 뭘 볼게있는가.      말세필을 메운 마차는 가볍게 들추면서 내처달렸다. 이놈의 마차가 마을로 들어가기전에 내가 한필을 채야하는데.... 차가 산굽을 돌때 손쓰는게 좋을것 같았다. 민호가 이런 궁리를 하고있을 때였다. 공교롭게도 웬 말탄 녀석 둘이 앞에 나타나 총을 꼬나들면서 마차를 못가게 가로막았다. 둘이 작당을 한 떨거지 비도였다.     《누가 당쟈더냐?》      한자가 사나운 몰골로 물어왔다.     《내다, 어째그러냐?》     《너의 말을 좀 빌려야겠다.》     《너한테 총있지. 그것부터 내놔라.》      다른한자가 총끝을 민호쪽에 돌리면서 을러멧다.      민호는 품속에서 모젤을 한자루 꺼내여 옛다 갖겠거든 가져라면서 훌 던졌다. 두녀석은 번쩍거리는 권총을 보자 서로 먼저가지려고 말에서 뛰여 내려 달려갔다.      민호는 털가옷속에서 다른 모젤을 꺼내여 련방 땅! 땅! 갈겨 두놈다 쓸어눕혔다. 바보같은 녀석들, 눈깔펀히 뜨구서도 내가 무슨사람인걸 몰랐단말이냐. 민호는 마차에서 내려 던졌던 자기의 권총을 되주어 건사하면서 차부를 향해 말했다.     《놀래워안됐소. 본래는 내가 당신의 말을 욕심냈는데 저것들이 갖다바치는구만.》     민호는 말 한필은 타고 한필은 끌고 염왕산으로 돌아왔다.  
138    장편소설 <<관동의 밤>> 제1부(19) 댓글:  조회:1902  추천:0  2015-02-03
                            19                   한가지 불길한 추측이 민호를 짖굳게 괴롭히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츄얼이도 나덤비다가 인육장사의 마수에 걸려들어 어느 호색한에게 팔려가 육체를 유린당하거나 아니면 이제다시는 남편을 대할 면목이 없다여기고 이왕에 버린 몸이니 에라 모르겠다며 스스로 매춘부로 타락하지 않았나 하는 그것이였다.     어쩌면 기생노릇을 해온 소춘매가 그 도시에 있는 매춘부들의 정황을  알수도 있을것만 같아 그는 다시 그녀를 찾아갔다.    《어서 앉으세요. 요즘 뭘하길래 까딱 뵈질을 않았나요.》           장차 산채의 압채부인으로 될 새각시는 그를 무척반갑게 대했다. 호색군들의 지긋지긋한 시달림속에서 그녀를 구원해줬으니.    《신혼의 재미좋습니까?》     민호는 소춘매가 성의껏 불까지 붙여주는 담배를 받으면서 입을 다시열었다.    《한가지 알아볼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뭔데요. 말씀하세요.》    《춘매아주머닌 혹시 거기 할빈의 어느 유곽에 이름을 츄얼이라고 하는 젊은 여자가 있다는 소릴  듣지 못했습니까?》    《허저인안해를 찾는다죠?》    《예. 그렇습니다. 이젠 여러해됩니다.》     민호는 제 남편한테 들어서 대략알고있는 소춘매에게 지난때  자기의 신상에서 발생했던 불행한 일을 쭉 얘기했다. 그랬더니 소춘매는 워낙 유정한 녀인이라 곰곰이 새겨들으면서 그게 어쩌면 남의일같지 않고 자기일같다면서 눈물까지 짓는것이였다.    《나도 진작생각해봤어요. 십중팔구는 신세기구하게 된 여자예요. 호! 이놈의 세상이 왜 이리도 험악하기만한가요.》    《아마 조물주가 심술궂어 인간세상을 이모양으로 만들어 낸 모양입니다.》     민호는 말을 이렇게 밖에 못했다.     춘매역시 세상이 이모양으로 돼먹은 원인에 대해서라면 그 누구와 물어봤자 긍정적인 해답을 들을 수는 없을것이요 그저 막연하게만 느껴지는지라 멋쩍게 힛쭉웃고나거 화제를 돌려 지금 제 시누이로 된 향란이와 그와의 관계를 물었다.     민호는 전에 츄얼의 행방을 알려고 자기와 향란사이에 협약이 있은것은 숨기지 않고 털어놨다.     소춘매는 아 그런가고 찔끔 놀래는 것 같더니만 그렇게 로맨틱한 애정이 더 아글자글한 맛이 있을거라면서 웃었다. 그녀는 나를 좀 봐요 어제까지 음란하고 방자한 탕자들의 노리개질을 했습니다만 오늘은 어느덧 심기일전(心機一轉)해서 산채의 귀부인으로  된게 아닙니까 호화롭던 화류항을 버리고 산속에 들어와 천만사람이 듣기만해도 눈살을 찌프리는 토비와 배필을 무을줄이야 어찌알았으랴 이것역시 기이하고도 로맨틱한 인연이 아니겠는가했다.      그렇고 보니 아닌게 아니라 그도 민호도 어딘가 운명이 비슷한데가 있어보였다.     《어쩌겠어요, 이게 다 타고나 팔자소관이거니해야죠.》    《타고난 팔자소관이라, 하긴 그런것 같기도합니다만 너무나 억울해서 그럽니다. 그래 아주머닌 정말 아무것도 모릅니까?》     민호가 재삼 끈질기게 물으니 소춘매는 어쨌으면 좋을가 여짓여짓 하다가 입을 다시열어 알려주었다.    《저 이봐요, 가슴이야 아플테지만 어떡하겠나요. 각오를 해야죠. 안그래요. 듣자니 할빈 도외에 화옥당이라는 유곽이 있는데 거기에 몸파는 다즈녀인이 하나있다는 소리를 제가 들은적이 있어요. 인물이 괜찮아 손님을 끄는모양데요. 건데 성명이 판달라요. 그 여잔 치무슨 란이라던지.....》    《치무슨란이라? 그렇다면 틀림없어!》     소춘매는 이쪽에서 몹시 격동하니 되려 의아쩍어했다.    《어쩜 그렇게 딱 찍는가요. 성명이 판다르잖아요.》    《이름이야 다르지만 성씨는 같은걸요.》    《아니 여긴안해가 성이 유씨라며요?》    《그렇지, 유씨지요, 유추얼! 허저인은 유씨하고 치씨가 동성동본이 되니까 족계를 따지면 그렇게 되는거랍니다. 참 어쩜...》     민호는 치즈란(齊芝蘭)이 뛸데없는 안해 츄얼이라 짚었다.     눈물이 자꾸솟구쳐 눈앞을 흐릿이 가리웠다.       할빈(哈爾濱).     중동철로의 중심이자 북만주의 수부요 동방의 모쓰크바로 불리우고있는 할빈은 한창 번영기를 맞아 들끓고 있었다. 각국의 령사관이 자리틀고 앉아 서로 주인행세를 했다. 이해의 통계를 보면 할빈은 도시주민 총 42만중에 로씨야인 7만 2천명과 일본인 3천명을 비롯해 외국인이 무려 7만 6천명이 되었지만 상점은 총 6,702개 중 외국인의것이 2,422개였고 공장은 모두 279개 중 근 반수를 점하는 129개가 그들 외국인의것이였다. 한즉 이 신흥의 도시가 실제상에서는 로씨야, 일본, 영국, 미국, 독일, 프랑스 등 여러 열강들이 세력을 확장하고 경제침탈을 다투는 곳이였다.     지난해, 즉 1926년도에 동성특별구시정관리국(東省特別區市政管理局)에서는 로씨야인들이 장악하고 있었던 시공의회(市公議會)를 해산하고 할빈자치림시위원회(哈爾濱自治臨時委員會)를 성립하였는데 할빈에 주재하고있는 영국, 일본 이태리, 미국 등 령사는 영국과 로씨야가 협정에 위반된다는 명의로 중국내정을 간섭하면서 중국정부에서 할빈시정권을 걷어들이는데 래해 항의했고 지어는 할빈자치림시위원회를 승인하지 않는다는 성명을 발표하기에 까지한 것이다. 그런즉 할빈은 그야말로 외국인의 천하나 다름없었다.     이국색채가 다분한 각양각색의 건물들이 다투어 일어섰고 거리에는 양차, 전차, 하이야와 트럭이 씽씽 달렸고 밤이면 상점마다 현대문명을 상징하는 전등불과 광고판들이 현란했다. 이같이 공상업이 흥성함과 더불어 유흥업역시 활개치고있었는데 그중에서도 도박과 유곽이 제일흥기했던것이다.     이런판에 민호는 몇해전에 일어진 제 안해를 찾느라 헤매였다.     민호는 전번에 와서 돌아다니였던, 고루거각이 일떠서고있는 남강의 대직가에서 위치상 동북쪽이 되며 도리구(道里區)와 이어붙은 송화강가의 도외구(道外區)에서 마침내 이란 간판을 내 건 유곽을 찾아냈다.     베란다가 서로 련결된 자그마한  2층사합원이였다.     도외구의 골목들은 외국인주택과 학교와 교회당이 있는 남강의 아스팔트길이나 돌을 밖아 만든 도리의 중앙대가와 같은 좋은 길이 아니였다. 소슬한 가을바람이 먼지를 날렸고 술에 곤드레만드레 취한 주정뱅이들이 쌍스러운 욕을 입에 물고 활개치며 거리바닥을 쓸었다. 도외구는 이같이 워낙 환경부터 다른데와는 비교도 못되였다. 졻다란 옛길에 아직도 나무단을 실은 말수레가 다니니. 푸른벽돌로 지은 고풍의 단층건물들은 낡고 궁상스러워보였다. 로동자와 막벌이꾼, 무직업자와 부랑배가 한데 모여들어 지지고 볶아대면서도 이럭저럭 그런대로 어울려 살고있으니 빈민구를 겨우벗어났구나 하는 감을 주고 있었다.     이런데 있는 유곽이니 거기를 드나드는 자들이 또한 어느류형이겠는가. 유곽의 문은 돈만 팔면 출입이 다 같다는데....     서민의 차림새를 한 민호는 도적놈모양으로 주위를 힐끔힐끔 살피다가 간판을 다시올려다봤다.     출입문이 열려졌기에 안으로 들어갔다.     《손님은 제가 모시지요. 저기로 가자요.》     그를 먼저발견한 중년의 녀인이 얼굴에 웃음을 개여바르면서  달라붙었다.     내가 네년을 보자구 온게 아니야. 민호는 뱀같이 감겨드는 그녀의 팔을 탁 쳐 물리치고는 다시 거들떠보지도 않으면서 응접실 한쪽벽에 있는 사진판으로 다가갔다. 채색도안을 놓아 꾸민 베니어합판에는 20여명의 머리모양이며 옷모양새가 각이한 매춘부들이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매 장의 사진마다 아래쪽에 카드를 꼽게 만들었는데 어떤것은 비고 어떤것에는 노란 카드가 꼽혀있었다. 카드가 꽂힌데서는 지금 손님을 받고있을것이다.     갑자기 사내의 마음을 음탕하게 자극하는 흐드러진 웃음소리가 나길래 고개돌려 보니 어느 방에선가 방금 그 일을 끝낸것 같은 갈보년이 위생실로 가고있었다. 할짓을 다하고 유곽을 나가는 사나이..... 둘이 또 헤벌쭉거리면서 들어온다.    《있구나!》     매춘부들의 사진을 천방지축 헤집고있던 민호의 두 눈길이 마침내 하나의 사진에 딱 멎으면서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신음에 가까운 탄성이 튀여나왔다.     유두마저 보일지경 앞가슴을 다 드러낸 반라체에 머리를 틀어올린 젊은 녀인이 웃을 듯 말 듯 어딘가 애수담긴 눈으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겉모양은 변했어도 사진속의 그녀는 틀림없는 츄얼이였다. 씌여진 번호는 제12호. 노란카드가 꽂혀있었다. 민호는 눈에 섹스하는 장면히 밟히자 현훈증이 나면서 온 몸이 무너져 내리는것만같아 더 지탱못하고 벽가의 나무걸상에 주저앉고말았다.     세상에 이보다 더 큰 모욕과 수치도 있단말인가! 민호는 경련이 일듯 떨리는 손바닥에 얼굴을 파묻으며 머리를 푹 숙이였다. 낯은 화로불에 가죽이 익어버리는 것 같았고 떨려나는 가슴은 무형의 란도질에 갈기갈기 찢기고 탕쳐지는것만같았다.    《에그, 별 못난량반 다 보네. 누군 뭐 빠진 밑구녕인가보지. 남이 받고있는데두 보겠다니 씸암돼진들 배겨낼가 원.》     필시 이 유곽의 어멈일시 분명한 녀인이 방금 들어온 둘중 어느 하나를 향해 뇌까리며 퇴박주는데 처뱉는 말슴새를 보니 이미 닳고 닳은 계집이였다.     민호가 내가 아무래도 손님이 돼갖고 츄얼이를 만나얄게 아닌가 하고 생각을 달리고있을 때 방금 퇴박맞은 사나이가 무어라 구시렁대면서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한데 그의 얼굴을 다시보는 순간 민호는 전기에라도 닿인듯 와뜰놀랬다. 그자는 다른사람이 아니라 바로 가철군이였던것이다.     내가 저놈을 여기서 만나는구나!     정신을 펄쩍차린 민호는 마치 용수철에 튀듯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다음순간 이런소리 들려왔다.     《그년하나 다 닳겠다.》     어멈이 씨벌대는 쌍스러운 푸념을 귓등으로 들으면서 민호도 밖으로 나갔다. 그는 가철군을 미행했다.     가철군은 에서 동쪽으로 좀 동안뜬 한 려관으로 들어갔다. 민호역시 거기로 들어갔다.     《방금들어온 객이 어느방에 들었습니까? 검정가죽잠바에 목긴 가죽장화를 신은 사람말입니다.》     물어봤더니 려관주인이 안쪽에 있는 한 방을 가리켰다.     독방이였다. 발정한 수캐모양으로 헤집고 다니던 가철군은 자기뒤를 따라 들어 온 사나이가 여지껏 적수로 여겨온 어래무 허저족마을의 한국독립군청년임을 알아보고는 아연실색했다. 졸연간에 이런 일을 당하고 보니 기가 질린 그는 짹소리못하고 사시나무떨듯 전신만신 떨어댔다. 어쩔 방법이 없었다. 출입문은 이쪽이 막아섰고 창문도 안으로 잠겨져 뛸데없으니 독안에 든 쥐였다.    《헛궁리말고 거기앉거라!》     민호의 첫마디호령이 떨어졌다. 그처럼 가죽잠바를 입은 민호는 뽐창을 쥔 손을 호주머니에 지른채 벗티고 서서 마치 매가 먹이를 노리듯 그자를 노려봤다.    《어이구!》     가철군은 포개놓은 이불우에 털썩 주저앉으며 신음소리냈다.     민호는 바당에 서있고 그는 침대에 있었다. 당장 죽여버리든지 아니면 태를 쳐놓던지 하고싶었으나 참아야했다. 우선 알아봐야 할 일이 있었던것이다.    《이놈아, 넌 내가 누구라는 걸 알겠지? 그리구 내가 너를 찾고있다는것도 알겠지? 살겠거든 내가 물어보는 걸 제대로 대거라. 인자방금 유곽에는 왜 들어갔댔냐?》     저쪽은 협박을 받자 떠는 음성으로 대꾸했다.    《츄, 츄얼이를 보자구.》    《그럴테지! 그래 츄얼이 여게있는건 어느때부터 아느냐?》    《어, 어제방금.》    《어제방금.》    《어제방금이라? 정말이냐?》    《정, 정말이요.》    《정말이라? 그럼좋다, 정말이라하자. 그래 넌 그가 여게있는건 어떻게 아느냐?》    《곡치환이 알려줘서.》     민호는 다시한번 놀랬다.    《뭐라! 곡치환이가?》    《그렇소. 그가 츄얼이를 여기다 팔아먹을걸 내가 인제야 알구서는....》    《곡치환! 곡치환! 내가 네놈을 살리지 말았을 걸 그랬구나!》       민호는 전에 인질로 랍치해왔던 그 조롱박같이 생긴 인육장사놈을 눈앞에 다시그렸다. 위삼포가 그자를 죽이지 않고 살려보내게 한것을 후회했다. 그러잖아 그자가 인육장사를 하는 놈이라니 츄얼이도 혹시 그자의 마수에 걸린거나 아닐가 하고 생각했더니 이럴줄이야! 내가 머저리였지!    《건데 네가 츄얼인 왜 또 찾는거냐?》     이런 질문에 가철군은 감히 대답못한다. 그는 츄얼이를 꾀여내든지 아니면 협박해서라도 자기가 데리고 살던지 하려고 맘먹으면서 만약시 그것도 되지 않으면 아예 죽여버리려고 여기를 찾아왔던것이다. 워낙 지은 죄가 있어서 한곳에 지긋이 마음붙이고 살수없게 돼먹은 그는 요몇해간 관내까지 나돌면서 건달노릇을 했다. 그러다가 집으로 온건데 자식때문에 밥통떼우고 남의 입 끝에 올라 눈총받으며 살던 아버지가 아들을 보자 분을 이기다못해 넌 내아들아니다 이놈아 하며 쫓아내서 이제는 이런 맘을 먹기에 이른것이다.     민호는 입을 꾹 다물고있는 가철군을 이윽히 쏘아보다가 한마디 더 물었다.    《야 철군이 이놈아, 넌 네집이 망한게 네탓이라는 걸 알겠지. 건데도 왜서 내한테다 독수를 뻗힌거냐?》    《거야 칼들고 배값받아내니까 그랬지.》     상대편의 대답이 뜻밖에 떳떳한지라 민호는 어이없어 입을 하 벌렸다가 물었다.    《그래 그저당하기만해야한단말이냐? 네놈이 남의 배를 강탈했는데.》    《그래두 그렇지.》    《이런 뻔뻔스런 놈이라구야 원! 너희들이 그래 유씨네 배를 빼앗아다는 어디다 어쨌냐?》    《로모즈한테다 팔았소.》    《그랬을테지. 도적이 매를 든다더니 그리구서도... 건데 한가지만 더 물어보자, 내 사정은 어떻게 알았냐?》    《그건 저 가진구에 사는 꼬리방즈한테 들어서.》    《아니 뭐라?!》     민호는 한번다시 놀랬다. 가진구의 그 김국정이라는 딸부자가 생각났다.     《그것도 동포라 믿어줬더니 한동아리였구나! 빌어먹을!》     격분해서 민호의 얼굴이 돌연히 험악해지자 가철군은 그가 자기를 당장 죽여버릴줄로 알았는지 손을 먼저쓰느라 발딱일어나 덮치였다. 민호는 호주머니에 지르고있던 손을 제꺽뽑아 주먹으로 대방의 코등을 기운껏 올리박았다. 코등을 깬 가철군은 정신을 깜빡잃고 꼭그라졌다. 그랬다가 그는 정신을 다시차리며 씨벌이였다.    《두고봐, 너도 끝장이 오라잖다.》    《개자식! 진사해가 너의 복수를 해줄줄아냐. 그녀석 언녕 내한테 명줄잡혔어.》     가철군이 절망에 떨면서 다시덤벼들려하자 민호는 뽐창 하나를 뿌려 그의 이마에 박아넣고 거기를 나와버렸다.       얼굴표정이 그 사람의 내심을 보여주는 거울이였다. 일이 여의치 않은 사람이거늘 얼굴이 희색일 수 있으랴. 왕견은 예정보다 일찌기 산채로 돌아왔거니와 얼굴에 화기라곤 없는 민호를 보자 큰눈을 데룩거리면서 물었다.    《갔던 일이 어떻게 됐어? 왜 금시돌아왔나? 또 허탕인가?》    《아니요. 허탕은 아니요.》    《그럼 각실 찾았다는 말인가?》    《그렇소. 찾아냈소. 내 접때말하던 그 유곽에 있더구만.》    《그러면야 만나보구왔겠지.》    《만나보질 못했소.》    《아니뭐라. 제각실 찾아냈다면서? 일부러 보러간 사람이 만나지도않고 돌아오다니 원 무슨소린지. 개바우돌에 갔다왔구나.》     왕견은 어이없는 일이라면서 놀림절반 비난절반 꾸짖었다.     하진국이도 와서 왕견이 하는 말을 듣더니만 민호를 과연 맹랑한 사람이라했다.     민호는 그들에게 자기가 할빈으로 가자마자 유곽을 찾아가 거기에 츄얼이가 있다는것을 확인한것과 그를 만나보려했으나 만나보기에 앞서 우연스레도 츄얼이를 찾아간 가철군을 발견한것과 그를 미행한 끝에 려관에 들어가 위협해 그한테서 사건이 꼬여진 내막을 알아낸것 그리고 여차해서 그의 명줄을 끊어놓고 그만 돌아오고만것을 알려주었다.     《그러니까 원쑤를 면바로 만나 복수를 했군, 잘했어!》    《아무럼 똑똑한 사람이 허탕을 칠가, 됐소!》     왕견도 하진국도 이제야 석연치 않던 얼굴에 웃음을 피여올리면서 제일같이 좋아했다. 염왕산의 그 많은 새자들 중 처음부터 변함없이 민호를 따르면서 속맘을 주는건 그래도 이 둘뿐이였다.     물론 이번걸음이 허탕은 아니였다. 원쑤하나를 없애버렸으니까. 하지만 민호는 그랬다해서 속이 후련한건 아니였다. 소춘매의 말을 들은 후부터 안해가 만약 이 세상에 살아있다해도 십중팔구는 아주 영 버린 몸이 되었으리라 생각했었는데 그것이 과연 딱 들어맞거니와 제 눈으로 보고서 확인까지 하고 오니 자신이 되려 그녀한테 배척단한것 같으면서 모욕과 수치감이 가슴을 썰었던것이다.     아 이놈의  성실치 못한 나약한 인간의 저주받을 자존심!     민호는 술이라도 콱 먹고 대취해버린다면 번뇌도 고뇌도 싹 다 잊을것 같았다. 그는 술을 찾았다. 반에는 어느 새자든 갖다놓은것이 없었다. 하진국더러 취사칸에 가 가져오라 시켰더니 그는 가도 문을 잠갔을거라며 등을 딱 붙이고 일어나지 않았다.       《에잇, 쪼개서 쥐부스럼에도 못써먹을 물건짝아.》     민호는 손바닥을 쫙 펴 소리나도록 그의 뒷잔등을 한매 갈겨놓고 밖으로 나왔다.     취사칸에 가보니 과연 문에 쇠를 놓아 들어갈 수 없었다.     오늘따라 개도 짖지 않는 산채의 밤은 유달리 고요하다.     고개돌려 보니 중앙산채 향란의 거실에 아직 불이 밝아 민호는 취침시간이 다 되어오는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쪽을 향해 걸음을 놓았다.    《난 또 누구라구! 언제돌아왔나요?》     향란이는 그를 웃음으로 반기였다.    《녁켠에 왔소.》    《그러길래 난 보지 못했지.》     향란이는 무엇인가를 캐물으려다 말고 사나이가 자러온줄로 알고 금침에 손을 댔다.    《나 몽두춘허려구. 반강자있겠지?》    《있어요. 마시려거든 마셔요.》     술은 언제나 갖춰두고 있었다. 녀인은 밤중이 되건만 자기를 찾아와 술을 찾는 사나이를 정찬 눈매로 쳐다보면서 남편의 구미를 맟을줄 아는 세심한 주부모양으로 군말없이 벽가에  놓여있는 탁자쪽으로 가더니 거기 궤속에서 술병을 꺼내놓았다.     술은 전날 민호가 마시다가 채 못마시고 남은건데 깔축없이 그대로 있었다.    《술은 있는데 안주는 뭐로 할가요, 곤곤자밖에 없는데?》     향란은 삼은 닭걀 몇 개를 담은 그릇을 내놓았다.    《그거면 돼.》     민호는 녀인이 발쿼주는 닭걀을 안주해서 술을 마셨다.     향란이는 그가 갑작스레 례모없이 무감각해진것 같아 주시했다. 하지만 불쾌함을 표면에 나타내지 않으려하면서 속으로 할빈갔다오더니 왜 이럴가고 속으로 점쳤다. 갔던일이 마음과는 달리 여의치않은모양이구나 하는 생각이 갈마들었다.     민호는 달걀 네 개를 안주해서 병에 들어있는 반근술을 다 마셔버렸다. 취기가 올랐다. 그는 향란이를 덥썩 끌어안았다. 녀인의 박속같이 희고 말큰한 젓가슴이 얼굴을 살뜰히 쓸어주었다.    《불이나 끄자요.》     향란이는 사나이가 체면을 잃고있지만 거절하지 않고 고스란히 받아주었다. 에서 받은 타격에 대항하는 분풀이였다. 숨을 거세게 톱으면서 행동이 거칠어진 사나이는 거의 발광하듯이 그녀를 오래도록 학대했다.    《오늘 왜이래요 할빈가더니만 병걸린거 아니애요?》     향란이는 당혹함을 그저 이 한마디로 발로했다.     녀인은 그가 갓던일이 어떻게 됐는지 몹시 궁금했지만 이틑날도 사흗날도 지긋이 입을 다믈고 캐묻지 않았다....       민호가 염왕산에 들어와 네 번째맞는 묘동이 돌아왔다.     민호는 이번 묘동기간에는 아무데도 가지 않고 산채에서 보낼작정이였다. 그의 이같은 결정이 물론 곁에있어주기를 바라는 향란이를 기쁘게 만들었다. 향란이는 20발배기 모제르 한자루주면서 민호보고 매일 탄알 5발씩 쏘아 누가 관혁을 더 많이 맞히는가 내기를 하자고 제의했다.    《좋지, 좋아1 해보려거든 해봐!》     황차 묘동기간에 사격련습을 하려고 계획하던 참이라 민호는 제의를 흔쾌히 받아주었다.     그때로부터 서쪽골 사격장에는 매일 그들 둘이 나타났고 그때마다 총소리가 산간을 울리였다.     이번 묘동에 밖으로 나가지 않은 60여명의 류자들은 남쪽산채와 북쪽산채에 갈라져있었는데 민호는 남쪽산채에 있었다. 어느날 사격을 끝내고 숙사로 돌아오니 류자들이 한창 수수께기풀이놀음을 하고있었다. 대머리포토우가 거기에 와 있었다. 그는 성명이 담추(覃秋)고 별호는 비룡(飛龍)이다. 맏두령과 사량팔주를 비롯한 위층류자들은 묘동이 돌아와도 여지껏 산채를 나가는 법이 거의없다보니 이렇게 수하의 새자들과 섭슬려 날을 보내기일쑤였다. 향란의 말마따나 그렇게 하면 산채에 남은 류자들을 위로하는 겸 상호간 리해를 깊게하고 우의를 돈독히 키우는것으로도 되는것이다.     포토우가 수박을 고르듯이 번들거리는 제 이마빼기를 손가락으로 톡톡 치더니 입을 열었다.    《곧은 몸 삐뚜렁 목 그래도 손님오면 먼저나가네.》    《삼척동자도 알아맟히지요. 그건 긴 대통아닙니까.》    《맞네. 긴 대통이지. 그럼 또 하나 내볼가. 한집식구건만 앉은 놈 서지 못하고 선놈 앉지 못하는게 뭔가?》     모두들 눈을 꺼무럭거리면서 얼른알아맞히지 못한다.     민호가 모았던 량미간을 펴고 먼저주어댔다.    《그게 절간에 있는 불상들이 아닙니까. 선놈이야 평생 앉지 못하고 앉은 놈이야 서지를 못하지요. 안그렇습니까.》    《오, 그래! 바로그거야!》    《맞아, 맞았어!》     새자들은 모두 탄사를 뽑으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대머리는 빙그레웃더 민호를 향해 입을 다시열었다.    《그럼 이걸 알아맟히게. 털배때기 씹구멍에 들어가 뼈좆문다지는게 뭔가?》    《하하하....》     모두들 웃음을 텃뜨렸다.     민호도 따라웃었다.     건실한 사나이로서 의례 구실을 해야하는 그놈의 연장을 사타구니에 가두어 놓고 쓰지 않다보니 기능을 상실해 이제는 불깐 말같이 생각이 있어도 일어나지 않아 원망 끝에 에라 팔자가 이런걸 어쩌나 별수없지 하고는 남들앞에서는 되려 모두들 나를  보거라 계집볼 궁리를 하잖으니 몸이 튼튼하지 않느냐 뭐니뭐니해도 이게 제일좋은 보생법이네라 하고 선전했다는 포토우다.        민호는 그를 다시보았다. 속으로 젊잔을 빼는 네입에서도 묘한 쌍담이 나올때가 있구나 하면서 입을 열어 답을 맟췄다.    《그건 칫솔질하는겁니다.》     새자들은 대답이 맞다면서 한번다시 탄사를 올렸다.    《그래두 자네가 도는게 빠르군.》     포토우는 민호를 칭찬하고나서 듣자니 요즘 실탄련습을 열심히 하고있다는데 이제 어느때 자기와 비교해보자했다. 민호는 동의하나 계획했던 훈련이 끝나면 하자했다. 최고수평에 오르지 않고는 포토우와 겨뤄볼 궁리를 말아야함을 그도알고있었던거다. 독립군에 있을 때 홍범도가 포수출신이 돼서 총잘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염왕산의 이 포토우역시 포수출신이여서 그런지 귀신이 놀랄지경 사격술이 뛰여났다. 민호는 괘주를 한지 얼마안되여 하진국이한테서 이 명사수의 전설같은 래력을 들은바있는데 이야긴즉 이러하다.     길림(吉林)에 만석자랑을 하는 성이 왕씨(王氏)인 지주 하나가 있는데 심보가 고약했다. 그자는 남을 부려먹고는 언제나 무슨 트집이든지 잡아서 삯전을 깎거나 아예 주지 않았다. 그 수작에 들어 뼈빠지게 일하고도 단돈 한잎못쥐고 집으로 돌아간 사람이 얼만지 모른다. 바로 그 왕지주가 도적을 막기위해 불질잘하는 사람을 찾다보니 포수인 담추를 마음들어했던것이다. 그는 품값을 많이주마하고 그를 자기집호위를 서게했다. 왕지주한테는 커다란 과수원이 하나 있었다. 담추가 그자의 집에 간지 3년되는 해의 가을이였다. 왕지주는 그보고 과수원에 도적이 드니 그걸 지키라면서 만약 과일을 따들이기 전에 한개라도 잃어진다면 그때는 한해의 보수는 주지 않으리라했다. 이에 그도 그럼좋다. 나역시 한가지 요구있다. 집사람이건 친척이건간에 무릇 내몰래 달려들어 과일을 따다가 들키면 그때는 불질을 할것이니 그런줄을 알라했다. 왕지주는 별다른 생각없이 그럼 그리하라했다.     담추가 과수원을 지킨지 5일째되는 날 밤이였다. 삼라만상이 고요한데 홀연 널다란 과수원 저 귀퉁이에서《똑! 똑!》소리가 나는것 같았다. 하여 귀를 다시기우리고 들어보니 그건 분명 누군가 과일을 훔치는 소리였다. 담추는 먼저 기침을 깆어 자기가 자지 않고있음을 암시했다. 한데도 저쪽은 그냥따는것이였다. 아무렴 이렇게 먼거리에서 가만가만 따는걸 네녀석이 알겠냐 생각하는모양이였다. 빌어먹을게 그만큼 성심다했으면 감사하달게지 삯전을 깍자고 수작부리다니 원. 언녕부터 그자의 속심을 알고 분노한 담추는 총을 질끈 갈겨 단방에 저쪽을 꺾구려놓고말았다.     죽은건 왕지주의 삼촌이였다. 그날 왕지주의 삼촌이 조카집에 놀러왔다가 그한테서 담추가 포수출신이 돼서 불질을 아주잘한다는 소리를 듣고는 그렇다해도 아무럼 귀까지 뛰여나게 밝겠느냐 하면서 제 조카를 도와 계책을 이루게 한다는것이 그만 황천객이 되고만거다.     담추는 그날로 거기를 떠나 염왕산에 들어와 마적무리에 가담해 류자로 됐고 불질을 잘하는데다 귀까지 하도밝고 행동이 날래여 비룡이라 별호를 지어 부르게 된것이다.       묘동이 끝나 이듬해 봄이 돌아왔다. 위삼포는 또 한차례 기와가마를 마슬 계획을 세웠다. 이번에 목표물로 정한건 밀산(密山)의 대지주 송곰보였다. 전에 청보산패가 그 근방에 있으면서도 감히 손을 대지 못했거니와 다른 어떠한 토비도 그를 감히 건드리지 못했다. 한것은 군대에 나간 그의 아들이 장교가 되여 군사를 휘동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이면서도 송곰보는 자체의 호위력을 증강하여 지금은 너깟것들이 다 뭐냐 덤벼들겟거든 어디 덤벼들어봐라고 깃대까지 꽂기에 이른것이다.     내가 거만한 저자의 콧대를 꺾어놓고말테다고 마음먹은 위삼포는 준비가 되자 단오를 쇠고 3일만에 300명의 인마를 끌고 원정에 나섰다.     그런데 이쪽에서는 옆에 채 붙기도 전에 뜻밖에 강력한 반격에 들어 쟁반밟으러 갔다와서 앞장을 서던 두 류자가 넘어지고 이어서 포토우마저 쓰러지고말았다. 하여 의켠의 맹공격은 좌절당하고말았다. 위삼포는 인명만 내고 철퇴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가 가마마스러 나섰다가 이같이 참패당하기는 생전처음이였다.    《내가 무슨짓을 해느냐. 아, 어찌하여 이지경이 됐느냐.》     염왕산에 돌아온 위삼포는 울화통이 터져 죽을것만같았다.     이럴때면 그는 문을 닫아 걸고 방안에서 혼자 골을 쓴다.     차챈더가 죽자 적임자가 없어서 여지껏 그 자리를 메우지 못했는데 이제는 그 좋은 포토우까지 잃었다. 대오를 이끄는 코기러기가 없어서야 되는가. 그 자리까지 비울수는 없어서 위삼포는 아들을 정포토우로 승임시키고 비여있는 차챈더의 자리에다는 별수없이 조선족청년을 세우기로 맘먹었다.     산채에서눈 포토우를 비롯한 류자몇의 장례를 치르고나서 이틀만에 두사람의 승임도 서포되였다. 류자가 사량팔주에 드는 례식이 괘주할 때와는 퍽 달랐다. 괘주할 때는 향을 피워 꽂지만 이때는 마당에서 향을 피우는 의식은 없고 대중앞에 선서만한다. 그런 후 승직자가 선대두령들의 위패가 있는 사당에 들어가 참배만 하면 행사는 끝나는것이다.     그러면서 점심이나 저녁에는 의례 주연을 크게 베풀어 모든 류자들을 즐겁게 한다.     이날 오전에 정포토우로 승직한 위용강이 전체류자들의 앞에서 사격표연이 있었다. 그는 자기가 애용하는 모제르권총 두자루를 량손에 하나씩 쥐고 나섰는데 그 자태가 자못 름름했다. 새자둘이 유리접시 하나씩 손에 쥐고있다가 동시에 공중에 높이 올려뿌렸다. 위용강은 량손에 쥔 권총을 갈겨 접시두개를 박살냈다.              《잘한다!》     박수갈채가 터졌다.     포토우로 되자면 반드시 량손잡이가 돼야하는데 위용강은 그 수준에 도달한것이다.     다음에는 화살맞히기 표연이였는데 그는 통나무등에 꽂아놓은 화살을 처음에는 10보 다음에는 30보 그 다음에는 50보거리에서 권총을 쏘아 꽂는족족 다 맞혀 날려버렸다.    《명사수다!》     그의 재능을 지켜보고있던 류자들은 이번에도 박수사태를 쏟으면서 탄사를 련발했다.     닫는 말우에서 량손에 권총쥐고 좌우로 몸을 돌려가면서 쏘거나 엽전을 날려보내기 표연도 있었다. 이제 남은것은 어두운 밤 향을 피워놓고 일정한 거리에서 그것을 쏘아 맞히는것이였는데 위용강은 그것마저도 자신있어했다.      남의 그같은 사격술을 보고나서 민호는 스스로 얼굴이 붉어나면서 자곡지심이 들었다. 못난물오리 이제겨우 개울물을 건너고서는 바다를 무서워하지 않는듯이 자기야말로 그깟재간갖고 만족했으니 실속없는 자만이였음을 그는 깨닫게되였다.        《축하해요.》     의식이 끝나서 향란이가 민호의 승직을 축하했다.    《감사하오. 그런데 저....》     민호는 혀끝가지 나온 말을 되삼켜버렸다. 차챈더로 되고싶은 마음을 전번어느땐가도 내비치긴했지만도 정작되고보니 왜선지 돌연스러운 감이 났던거다. 팔대금강으로 떠받들리우는 사량팔주가 되려면 류자노릇을 적어서 20년이상은 해야한다고 왕견도 하진국이도 말하지 않았던가. 한데 나는 염왕산에 들어온지 이제 4년밖에 되지 않는다. 하도 대단한 파격승급이니 되려 불안스러웠던거다.    《저의 부친님께 감사드려요.》     아니나다를가 향란의 입에서 또 튀여나오는 당부였다.     소꼬리보다 닭대갈노릇하는게 더 놓다만 그야말로 죽음의 신이 휘파람불며 부르고있는데로 먼저나서야한다는 생각이 드니 기분이 저절로 시들해짐을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위씨네를 위해 헌신하지 않았던들 오늘 이 벼슬이 차례지지 않았을건데... 민호는 이런 상념에 줄달음치려는 자기를 다잡아놓고나서 고개를 천천히 치켜 들면서 녀인에게 물었다.    《나보고 위두령한테 감사드리라는데 그래 뭐라고 해야하는지 그걸 좀 알려줄순없겠소.》    《어쩜 신통히 서당초학동이를 닮았을가. 그걸 다 알려달라니.》     향란이는 토심스레 뱉어놓고는 결국 입을 놀려 알려주었다.    《이 한 몸을 염왕산위패로 서게끔 해줘서 고맙습니다해요.》    《오, 그렇게 하란말이지!》     민호는 한마디 맥빠진 감탄을 내뱉고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죽으면 여기 염왕산의 토비귀신으로 추앙되리라고 생각하니 영광이나 기쁨이 아니라 내가 이제는 과연 염왕의 팔열지옥에 빠진거 아니냐 정년 그렇다면 죽어 귀신이 된다해도 저 세상에서 고통이 아니냐 하는 생각이 가슴을 때려 전신이 싸늘해났다. 그는 자신에게 재삼물어보았다. 네가 그래 이젠 진짜토비로 됐단말이냐? 정직개결하리라던 독립군 민호는 어디로 가버리고 점점 이모양으로 탈태환골을 한단말이냐?.... 생각하면 과연 끔찍스러운 일이여서 내가 그래 자신이 옳은가고 의심까지 하게되거니와 그것을 도무지 현실로 받아들이기조차 어려웠다.     정오부터 벌려놓은 연회석은 두부장끓듯 그냥끓었다.    《승진을 축하해요!》     두 번째로 웃음지으며 찾아온 사람은 소춘매였다. 그녀는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의 품에 안기게끔 해준 그를 처음부터 지혜많은 좋은사람으로 여기면서 늘 감지덕지해하고 있었다.     민호는 선연한 그녀의 모습을 마주보면서 신사답게 고개를 끄덕여 답례했다.     흥성한 연회석에 눈길이 달리고 있는 소춘매의 아련한 얼굴에는 웃음꽃이 남실거렸다. 사람마다 세상을 보는 안광은 제마끔이였다. 소춘매의 눈에 정인군자란 이 세상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존재로 여겨졌다. 그런 사람으로 나서서 행세하는 어른도 지내고 보면 다가 낯짝에다 탈을 쓴 위선자에 지나지 않았다. 차라리 자 보아라 나는 이런사람이다 하고 제할짓을 떳떳이 하는 자가 외려 더 실다운 인간으로 돼보이였다. 하여 이젠 자기가 평생을 기탁하고 몸을 맡긴 위용강은 물론이고 민호까지도 그녀의 눈에는 호걸풍의 사나이로 안겨졌던것이다.      《차챈더두령! 두령님님께서 받으시오!》     술이 얼근히 된 류자여럿이 이켠으로 욱 쓸어와 메뚜기를 쫓는 수탉모양으로 답치기를 놓으면서 분대질을 쳤다.     민호는 사량팔주석에 앉아만있을 수 없어 술잔을 들었다.    《오!... 》    《아!...》     그가 자리에서 얼른일어나니 류자들은 환성을 올렸다. 그 무리에 진정으로 축하하는 자가 있고 덩달아 끼여 노는 자도 있을것이였다. 직심스러운 왕견이와 하진국의 얼굴도 보였다.     손에 쥔 술잔을 높이들고 자기와 건배를 청하는 자들과 술잔을 맛쪼을 때다. 진사해가 중뿔나게 나타나 엉너리를 떠는것이였다.    《첨자만두령님의 행운을 축하해서 자 나두한잔!》    《건 무슨뜻인가?》     왕견이 그 소리를 잡아듣고 눈알을 굴리였다.    《불알이 세쪽같아서. 하하하....엉? 이거 내가 롱담이 그만 지나쳤군!》     진사해는 매양 그본새로 너털웃음쳤다.     민호는 물러가는 그의 뒤통수에 눈총을 놓고나서 땅바닥에다 침을 탁 뱉었다.    《구데기같은 자식, 그 꼴이 몇참갈가!》      
137    장편소설 <<관동의 밤>> 제1부(18) 댓글:  조회:1789  추천:0  2015-02-03
                            18                 차챈더는 그길로 포도영에 넘겨져 목이 잘리였다. 그의 죽음은 염왕산의 큰 손실이였다. 물론 후임이야 있겠지만 그만큼한 사람을 얻을것 같지 않았다. 그 일이 어느 누구보다 행명을 잃기 쉬워 오래해내기 힘들었다. 염왕산에 차챈더의 장악하에 단독으로 정찰대가 조직되여있었지만 내부인원이 오래온정되지 않는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만일의 경우 차챈더가 생명을 잃는다면 그 자리를 맡을 사람이 있어야했길래 후임자를 정해뒀는데 그 류자는 지난해겨울 쟁반밟으러 나갔다가 벌써 잘못되였다. 운수좋아 죽지 않아도 한번 발각된 사람이면 그 지방에는 다시나돌기 어려운일이여서 부득불 사람을 바꾸게 된다. 그러니 이 일은 누구든 하기 힘들어하는것이다.     민호는 이젠 화남쪽으로 다 갔다. 하지만 그는 그 노릇을 버리고싶진 않았다. 시킨다면 그냥 하리라 작심했다. 외사량의 세 번째 자리에 앉고푼 그였다.    《지금 차챈더의 후임을 놓고 토론이 많아요. 들어봤나요. 누가 적임자일가구요.》    《거기생각에는 그래 누가 승임할것같소?》    《그 자리에 오르고푼가요?》    《시키면야.》    《호....》     남을 위해 괴로운 치닥거리를 하고있는 이 다심스러운 녀인은 구름장이 비끼는 얼굴을 들더니 뜻밖에 마주보면서 한숨쉬였다.    《들어요. 황천길에는 로소가 없어요. 전번에 둘다 잘못됐더면 어쩔번했어요.》     걱정이 고마웠지만 민호는 부러 그녀를 역정나게 굴었다.    《내같은게 잘못된들 누가 구곡간장 끊어질가.》     향란은 과연 눈살을 곤두세웠다.    《말을 그렇게 밖에 못하겠나요. 그놈의 똥집은 대체 어떻게 돼먹었는가요.》    《허허허....》     민호는 허거푸게 웃으면서 그녀앞에 자기가 천지주손에 잡히자 이젠 끝장이구나 하여 눈앞이 캄캄해나도록 절망했던 일을 솔직히 토로했다.    《웃지마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런 범의 굴에 들어가보긴 처이였소. 무예도 깊지 못한 주제에 잡히우면 어쩌나 생각하니 아닌게아니라 개발에 땀까지 나더구만.》    《정작 잡히우고보니 또 어떻던가요.?》    《절망했다가 무감각해졌고 그러다가 다시 정신차리고.... 어떻게 살길은 없겠는가 생각했지. 낸들 그래 생명아까운줄 모를가.》    《그랬겠지요. 살고푼건 인간의 본능이니까요. 황차 피값도 못받고 눈을 감으면야 얼마나 원통한일인가요.》     태도가 다시금 온화해진 녀인은 정찬 눈매로 민호를 보면서 속내를 짚어내려했다.    《내한테 솔직히 말해요. 정말 차챈더노릇하고푼가요?》    《시키다면야.》    《늘 나다닐만한가요?》    《왜서 나다니지 못하겠소. 화남쪽으룬 못가도 다른데야 얼마든갈수있잖소.》     이 소리에 향란이는 다른말이 없이 그를 눈박아보기만했다. 마치 하늘을 파고드는듯한 그의 맑은 눈은 네가 밖에 나도는 자유를 얻는다면 그 기회를 빌어서 잃어버린 제 각시나 찾아보자는게 아니냐고 캐고 있었다.     흰모래도 갯속에 오래묻히면 검어지는거다. 아닌게아니라 쟁반을 밟는답시고 마음대로 나돌 수 있는 자유를 얻은 사이 잃어진 안해도 계속찾을 겸 동포들이 살아가는 형편도 알고싶으면서 한번 실망을 주었지만 그래도 미련이 가는, 동포의 자치와 항일을 준비하는 그 정부라는것을 기여히 찾아 형세를 알고싶기도한 민호였다.     민호와 향란이가 만나서 이같이 차챈더의 후임문제를 입 끝에 올리고 있을 때 다른 한곳에서는 위용강과 진사해가 역시 차챈더의 후임문제를 놓고 담론하고있었다.    《내 이 위용강이가 헴이 들어서는 이번까지 차챈더후임이 다섯 번째입니다. 반둬더와 양즈방과 화서즈, 즈좡은 선대부터 그냥 그분들이고 량태와 수이샹은 원래분들이 타계하니 갈리우고 포토우는 세 번갈리운겁니다. 그런데 차챈더는 다섯 번이나 자리를 메우게됐거든요.》    《가슴아픈일이기는 하오만 병가상사라 이역시 불가피한게지.》    《하긴 그러한데 적임자가 없어서....》    《왜 없겠소. 사람이야 있지. 고를줄몰라 그렇지. 시킨다면 나도하겠소. 믿어만주면.》     진사해는 제 속심을 이같이 슬쩍 내비쳤다.     위용강이 빙그레 웃었다.    《왜 믿어안주겠습니까. 그 래 참말로 그 자리에 서곱푼가요?》     《허허허....》     진사해는 허구푼 웃음으로 직답을 뭉때리고는 머리를 가로저었다.    《위두령의 명령이면야 사심탑지하오리만 내가 어디되겠소. 보다싶히 내얼굴에 이놈의 기념딱지가 있어서 육갑을 하기전에는....》      하면서 진사해는 자신도 늘 상서롭지 못하게 여기고 미워하는 흉터를 만지면서 상을 찌프렸다. 게뚜더기가 오늘따라 더 험상스레 이지러진다.       민호가 향란의 거실을 나와 자기 반의 산채쪽으로 가다가 공교롭게도 앞마당에서 그들 둘과 마주쳤다. 그는 그들을 그저 앓은체하고는 지나치려했다. 그러나 진사해가 위용강이와 말하는척 하면서 이쪽을 조롱하는것이였다.    《여보게, 황우도 댕댕이넝쿨에 걸려 꼭그라질라니 그 사람이라고 왜 실수 할 때가 없겠나. 봐줘야지. 황차 벼슬운이 터졌다구 입이 함박만해진 사람인데.》     민호는 몸을 홱 돌려 그자를 쏘아봤다.    《누굴놓고 하는 소리야? 남을 얕잡아보고 공기놀리지 말어!》      위용강이 이마살을 찌프려 가면서 민호를 나무렸다.    《민호동생은 왜 쩍하면 성깔부터 부리는거요, 누가 나쁜말을 하는것두 아닌데.》     진사해가 너털웃음쳤다.    《허허허.... 그렇잖구. 누가 뭐라구했길래 저러나. 공연히....》     뱃놈 배돌려대듯 말은 잘 돌려댄다 자식. 입에 침이나 바르지. 민호는 속으로 쓰거워하면서 되돌아서서 갈길을 갔다. 이젠 제법 활개펴면서 교기부리는 꼬락서리가 과연 눈이 시여 욕지기가 나왔다. 간에 불이 붙지만 참아야했다. 치망설존(齒亡舌存)이라잖는가.      숙사에 돌아오니 새자들이 진사해를 놓고 한창 이야기하고있는 중이였다.    《그 사람 게뚜더기 아니면야 미남이지.》    《미남? 그게 표준이 어떻게 된거니?》    《표준이야 사나이다운게지.》    《사나이다우면 미남인가, 쳇.》    《그가 미남이라? 추남은 아니구?》    《상판은 언제 그모양됐다니?》    《언젠지는 몰라두 계집한테 받은 선물이라는 소리도 있구....》    《곰발톱에 긁혔다는 소리도 있구....》    《아니 건데 어쩌누라 계집한테는?....》    《아직 상중인 과부가 있었다나. 생각이 나 그년한테 덮쳤다가 채도자에 맞았대.》    《그래서? 그년을 가만둬?》    《훗날 상처가 나아 가보니 그새 과부는 어디론가 개가를 하고 없더래. 그래서....》    《그래서 보복도 못했다는거겠지. 건데 왜 설이 다르구나. 내가들으려니 가마마스러갔다가 그렇게 됐다더구나.》    《그걸 곧이듣나. 그자는 망해버린 청보산 대포쟁이야.》    《맞아, 그녀석은 대포쟁이다. 헌데두 그런 놈 할애비처럼 여기고  믿어줘? 에잇 바보같은 녀석들!》     왕견이 투박스레 뱉어내어 새자들이 주고받던 얘기는 아퀴지었다.     민호는 오늘에야 비로서 진사해가 왜 게뚜더기로 되었는가를 말했다. 그가 비렬한 수작으로 한 허저인의 매를 욕심내여 빼앗으려다가 주인의 드센 손에 그렇게 된거라 알려줬더니 새자들은 모두 그러면 그렇겠지 하며 잘코사니를 불렀다.       한때 위삼포는 아들을 면전에 앉혀놓고 하필 생육이 어려운 기생을 성취하려할건 뭔가고 소매하기도했으나 아들의 심기를 돌려세울 방법이 없음을 깨닫고는 네생각 네멋대로 하라고 방임하는 태도였다. 그러면서 한편 또한 과년한 딸이 약혼도 안하고 외간사내와 극친하게 어우려 노는것을 알면서도 내쳐두고 있었다. 출가전에 아이를 낳아 이 애비의 얼굴에 똥칠만 하지 않으면 된다고 묵과하니 어찌보면 그것이 무난히 너그러운 아량같기도했다.     향란이가 아버지앞에서 허락을 빌지 않아서 그렇지 자기는 조선사나이한테 시집가고싶다는 의사만 내비쳐도 지금같으면 반대하지 않고 흔연히 동의할 위삼포였다. 그만큼 민호를 안중에 넣을 정도에 까지 이른것이다. 한편 또한 그가 민호에 대한 자애심이 각별하다는것을 설명하기도했다. 이런상황임을 향란이가 귀띰해줬거니와 그 자신이 감촉하기도 한 것이다.     하루는 향란이가 민호앞에서 제오랍의 일을 놓고 상심했다.    《언젠가 난 오랍하고 따지고 물었어요. 오랍은 장가를 갈텐가 안갈텐가 하구요. 그랬더니 하는 말이 왜 안가겠니 가야지 하더군요. 보아하니 오랍은 지금도 다른녀잔 안중에 두지 않고 그 기생만 딱 맘에 들어 잊지를 않는것 같애요.》     민호가 말했다.    《본인의 생각이 정 그렇다면 그렇게 할게지 좀자를건 뭐요.》    《기생엄마가 한사코 내놓으려 하지 않으니까 그러지요 뭐.》      《단판은 해봤다오?》    《왜 안했겠나요. 했지요. 전번 언젠가 가서 해봤대요. 그런데 몸값을 어찌나 엄청부르는지.....》    《그래서 얻고푼 여자도 못얻고 한숨만뺀다 그 말이겠지. 참 어쩜....대포걸어놓은 기와집도 마슬라니 그깟 기생엄마따위를 못이긴다는게 어디 말이되오. 인제보니 용강이도 허깨비였구만.》     사내의 말에 비난적인 냄새가 물큰나는지라 향란이는 곱지 않게 피끗봤다. 하면서도 그녀는 민호앞에서 오빠를 두둔해 대꾸질을 하지 않았다. 내막이야 어떻든 객관은 들으면 누구나 다 그렇게 말을 하게되니까.     위용강이 마음속에 두고 사랑하는 소춘매가 지금은 일면파에 있지 않고 할빈의 연하루(燕河樓)에 가 있었다. 그건 그 도시에서 이름있는 큰 기생집이였다. 소문과 같이 소춘매는 인물곱고 악기잘다루고 노래또한 잘 불러서 그 누구보다 인금이 높은 기생으로 발돋음했다. 일면파의 부호인 외삼촌이 염왕산류자손에 한번 털리우고나서 당치도 않게 자기가 재난받은건 바로 처조카인 그녀가 토비와 내통이 있었기 때문이라 넘겨집고는 그 보복으로 일면파에 있는 그녀를 높은 가격에 할빈의 그 기생집에다 팔아넘겼던것이다. 하여 연약한 소춘매는 억울함을 하소연할 곳도 없이 남에게 영 매인 몸이 된건데 위용강은 그 일을 뒤늦게야 알고 할빈에 가 그녀를 만나보고 빼내오려했다. 하지만 연하루의 주인녀가 관부를 끼고 어찌나 감시가 엄하고 드세게 노는지 여지껏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벙어리냉가슴않듯 혼자 속만 끓이는 판이였다.     민호는 향란이한테서 이런 사정을 듣고나서 눈을 꺼무럭거리면서 내가 출마해서 한번 도와줄 수는 없을가 궁리했다. 그는 아직도 위용강의 환심을 사지 못하고 있었다. 무경각하게 진사해의 꾀임에 들어 그자의 입김에 놀아대는 그를 이제는 제곁으로 끌어붙여야했다. 기회가 온것이다. 이제 나서서 혼사만 시켜놓으면야 아무리 목석같은 인간이라해도 감지덕지해할것이다.     화남의 천지주집에서 받은 상처도 다 나았다. 민호는 연하루의 형편부터 알아보기 위해 어느날 할빈을 향해 산채를 나갔다.     할빈에 이른 민호는 연하루기생집을 어렵잖게 찾아냈다. 할빈에는 일본사람이 경영하는 기생집도 있고 로씨야사람이 경영하는 기생집도 있고 중국사람이 경영하는 기생집도 있어서 간판이 가지각색이였다. 이 업이 그리도 잘되는건가?...     연하루기생집의 주인은 성이 마씨(馬氏)였는데 두해전에 교통사고로 죽고 지금은 그의 녀편네가 그것을 경영하고 있었다.     할빈에서 2일간지내고 산채로 돌아온 민호는 향란이앞에서 신심있게 말했다.    《이 일은 공력이 좀 들 뿐 돈을 한푼도 던지지 않고서도 얼마든 해결할 수 있을것 같더구만.》     향란이는 속으로 못내 기뻤지만 반신반의했다.    《어떻게 무슨 방법으로 그렇게 쉽사리될가요?》    《방법이 간단하지. 표를 잡아오면 되는거요.》    《누구를 표로 한단말인가요. 주인마님이야 아니겠죠?》    《그년을 왜 잡아와, 아들이 있는데.》    《아들을요?》    《그렇소. 마씨가 생전에 종자로 받아놓은 아들애가 하나 있는데 이제 다섯 살이더구만.》    《그 애를 인질로 녀인하고 교환하자는건가요? 그 방법이....》    《그렇지. 여러방면으로 생각을 짜봤자 이보다 더 좋은 수는 없을거요. 방법이 폭력적이여서 신사답지는 못하지만 둘러치나 메치나 매일반이란말이요. 우리 처지에 무슨 례모고 체면이고 가릴게있단말이요. 따지고 보면 남의 귀녀를 팔아먹은 놈이나 그를 사서 노래팔고 춤팔게 하는 년이나 다 똑같은 흡혈귀들인데 뭐. 우리가 그런자들을 어려워하고 곱게 대해줄게 뭐요. 안그렇소?》     향란이는 다소곳이 고개꺾고 생각한 끝에 그의 말에 수긍했다.      인자하게 놀아서는 해결될 일이 아니였다.     이 일은 크게 고려할필요조차 있는것 같지 않아 향란이는 즉시 제 오빠를 찾아갔다.     위용강은 녀동생이 인질로 소춘매를 바꾸어 올 계획을 말하자 처음에는 아무렴어찌 그렇게까지야 막짓을 하겠느냐며 뗑하다가 해석을 듣고는 차츰 납득되는지 머리를 끄덕였다. 한데 안해를 얻겠다고 자기가 직접나서서 덤비기는 뭣해서 더수기를 벅벅 긁었다.    《오랍보고 나서서 춤추라는건 아니요. 솔직히 말해 오랍한테야 신통한 방법도 없을게고요. 안그래요, 오빠?》    《.....》     향란이는 그길로 화서즈를 찾아가 오빠의 대상자를 구해오는 문제를 내놓고 말해보았다. 그랬더니 화서즈역시 위용강이 각시를 얻는 문제에 대해서는 자기도 관심하고있는바니 표만 잡아오거라 그러면 자기는 있는힘껏 노력해보겠노라했다.     하여 민호는 다시 할빈(哈爾濱)으로 가게되였다.     할빈에 도착한 그는 그날부터 려관에 자리잡고있으면서 손쓸 기회만 노리였다. 그는 갑진 연미복에 신사차림을 하고 연하루에 다니였는데 3일만에야 소춘매를 조용히 만날 수 있었다.    《손님께서 절 만나자고 일부러왔다구요?》     녀인은 다소 의아해하는 눈길로 자기앞에 나타난 초면의 사나이를 말끄러미 올려다보았다. 내가 언제 어디서 이 사나이를 보았던가고 기억을 더듬고 있었다.    《소아가씬 절 모를겁니다. 우린 다 초면이니까요.》    《글쎄요. 그러기에.... 무슨일있나요?》    《소아가씬 왜서 내가 누군갈 묻진않습니까?》    《호! 그래요. 제가 그걸 홀 잊었네요. 호호호....》     소춘매는 간드러지게 웃었다. 사나이를 많이 접촉하고 다루어 본 녀인의 집업적인 가식된 명랑한 기분이였다. 향란이보다 키가 좀 작고 균형잡힌 몸매에 용모가 단아한 그녀는 올해 스믈다섯살이라 하는데 그 나이에 비해 좀 더 숙성해보였다.     민호는 화류계에 몸을 잠그고있는 이 녀인이 불현간 자기의 신분을 알게 되면 불쾌해할것 같아 조심하면서 입을 다시열었다.    《소아가씨보겐 내가 무슨사람같이 짐작됩니까?》     소춘매는 입가에 웃음을 빼문채 까만눈을 깜짝거렸다.    《글쎄요. 옷맵시를 보면 신사답구요.》    《내가 신사답다? 하하하....》    《왜 그래요? 그럼 아닌모양이지? 어디서왔나요?》    《난 소아가씨가 잘아는 분이 있는데서 왔습니다. 이래두 짐작이 안갑니까?.... 저 소아가씬 아마 위용강이를 알겠지요?》    《어마나!》     소춘매는 적이 놀래면서 일시 어쨌으면좋을지 몰라했다.    《미처생각못했을겁니다. 소아가씨를 찾아온건 다름아니라....》     민호는 그녀를 진정시키고나서 찾아온 리유를 말했다.     소춘매는 생각던것보다 더 반가와했다. 지금도 의연히 위용강을 사모하고있는 그녀는 하루빨리 자기를 여기서 빼내여 데려가주기를 바랐다. 주색에 탐닉하는 자들의 성화를 받아내기 지긋지긋해서 어떤 때는 막 죽고싶은 생각까지 난다고했다. 여지껏 자기의 몸이 남에게 매여온 화류계에 염오와 환멸을 느끼고 있었던것이다.     손만 맞춰주면 계획한 일이 무난히 풀릴것 같았다.    《주인집에 어린자식이 하나 있더구만. 아마도 내가 그 애를 인질로 잡아가 교환물로 만들어야겠습니다.》     민호가 알려줬더니 소춘매는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생각을 굴려본 끝에 그렇게 하는게 좋겠다고 동의하면서 방법까지 내놓았다.    《그 애가 올해 다섯 살이얘요. 나이어려 아직은 학교안가고 로씨야 백계유치원에 다니고 있어요. 그러니 거기를 오갈 때 업어가는게 좋을것 같애요.》     민호가 물었다.    《그렇게 해서 될가?》     물론 그렇게 하는건 위법이이여서 안되는 일이였다. 유아원선생이 로씨야인인데 기생집의 귀공자를 매일 하이야로 실어가고 실어왔던것이다. 물론 중도에서 얼마든 랍치 할 수 있지만 고려되는 점이 하나있었다. 일단 중도에서 랍치하면 아이를 잃어버린 책임은 그 로씨야인에게 돌아갈것만은 사실이요 그는 이 일을 자기들의 거류책임자에게 보고할것이니 그러게 되면 자연히 지금 여기로 망명해 온 모든 로씨야인들을 격노시켜 문제는 커지게 될것이다. 민호는 자기가 획책한 일로 말성이 많아지는것을 원치않았거니와 더욱히는 염왕산을 외국인들에게까지 저주와 겨룸의 대상으로 만들고싶은 생각은 없었다. 하여 그는 다른방법을 모색하게 되었다.     할빈에는 외국인들이 세운 교회당외에 절간도 몇 개 되었다. 연하루기생집 어멈이 무신론자는 아닐테니 례배를 하거나 불공을 다닐것이니 그런 기회를 리용할 수 있지 않을가. 하여 알아보니 연하루기생집이 있는 남강대직가(南岡大直街)에만도 동정교의 니꼴라이교당을 비롯하여 기독교회당이 있고 극락사(極樂寺)가 있으며 문묘(文廟)도 있어서 찾아드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민호가 소춘매를 다시만나 물어보니 연하루기생집 어멈은 매달초하루가 되면 아들을 데리고 문묘에 분향하러 간다고 알려주는것이였다.     그렇겠지, 그녀라구 자식과 제 일신의 안녕을 빌지 않을가. 력서장을 뒤져보니 이틀만 지나면 이해의 9월초하루였다. 민호는 간단히 필요되는것을 준비하고나서 그날이 되자 곧추 문묘를 향해 걸음을 놓았다.     이제 세워진지 한해밖에 안되는 문묘는 전당, 문과 겯채가 둘러서 하나로 크게 이루어 진 삼진원락(三進院落)인데 소문과 같이 옛멋이 다분한 방고(傍古)의 건축물이였다. 전원은 수진원락(首進院落)으로서 원내에는 소나무가 있고 붉은 담이 둘러있었다. 원의 남쪽켠에 반달형의 띄같은 늪에 홍교(虹橋)가 날듯이 가로놓였는데 백옥으로 조각한 란간은 령용했고 늪북켠의 주원(主院)으로 들어가는 령성문(靈星門)에 얹은 유리기와는 눈부신 황금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거기를 지나 주체를 이루고 있는 중원에 들어서니 화려하고 웅장한 옥석란간을 두른 단우에 앉은 정전(正殿ㅡ大成殿)이 자못 정중하고 위풍스러운 기세를 보이고 있었다. 바로 이 전내에 공자(孔子)와 사배신(四配神)을 비롯하여 12선현(十二先賢)의 위패가 모셔져 있었다. 그리고 후원인 숭성사(崇聖祠)에는 공자전의 5대선조가 모셔져있었던것이다.     이날 문묘는 분향하러 오는 사람이 많아 붐빌지경이였다.     흰말을 메운 양차(洋車) 하나가 달려오더니 문묘앞에 이르러 멈추었다. 래객을 초조히 훑고있던 민호의 시선이 그리로 달려갔다. 아니나 다를가, 차문이 열리더니 차안에서 귀부인다운 호화한 차림의 녀인 하나가 어린 남자애를 데리고 내리였다. 기다리며 찾는 그 연하루기생집의 어멈이였다. 큰키에 말대갈상의 곱지도 않은 그녀는 일견하여 고집드센 말괄량임이 분명했다.     한데 팔자가 좋아서인지 그런 녀인한테 아는 사람은 많은것 같았다. 그녀는 여기와서까지도 틀거지를 차리고 있었다. 내 오늘 네년의 간담에 얼음덩이를 놓겠으니 어디 견뎌보거라. 민호는 그녀의 뒤를 바싹 따라 정전까지 들어갔다.     그녀는 곧추 공자상앞으로 가더니 아들을 옆에 세워놓고 향몇가치를 고른 후 끄트머리에 불을 달아 향로에 꽂고는 손바닦을 합장하여 앞가슴에 올렸다.     향로에 꽂은 향이 타면서 파아란 연기가 가믈가믈 피여올랐고 녀인은 눈을 지긋이 감은채 입속으로 무어라 중얼대기시작했다.     민호는 그녀의 경각성을 알아보느라 묘손을 걸었다. 생면의 사람이 곁에갔건만 그녀는 거들떠보지도 았는다. 어린 아들녀석이 두손을 합장하고 눈을 감으면서 신통히 제 어미모양을 취하고 있을 때 민호는 손바닥에 감추고있던 몽혼약봉지를 텃쳐 아이의 코에 댔다. 그래놓고는 아이가 실각하여 쓰려지려 할 때 슬그머니 안고  거기를 나와버렸다.       민호가 산채로 돌아오자 화서즈는 당날로 염왕산을 나와 할빈으로 향했다.     그가 할빈에 이르러 보니 벌써 당지신문에 아이가 실종된 보도가 실렸고 연하루기생집은 문을 닫아 외래인의 출입을 엄금하면서 경계하고 있었다. 하여 화서즈는 조심하면서 무척 애를 써서야 안에다 연통할 수 있었다.     아들을 감쪽같이 잃은 기생어멈은 꼴이 말이 아니였다. 그녀는 자기가 신수사나와 명복을 빌려갔다가 도리여 앙화만 입었다고 울며불며 장탄설을 늘이였다. 가끔 봉두란발을 쥐여 뜯으면서 내가 무슨 죄를 졌길래 이런 험악한 일을 당하냐고 한탄하기도했다. 그모양이던 그녀는 하인이 들어와 외지에서 웬 나이지긋한 손님한분이 찾아와 요긴한 일을 상담코자 마님을 만나자한다니 그제야 정신을 펄쩍 차리면서 그 손님이 어데있느냐 어서들어오게하라했다.     녀인은 화서즈가 앞에 나타나자 례모를 차릴 념은 하지 않고 재우쳐 묻기부터했다.            《우리 행아가 지금 어디있어요?》    《우선 진정을 하시오.》     화서즈는 혹시 엿듣는 자가 없는가고 주위를 살피고나서 입을 다시열었다.    《댁의 아들은 무사하니 안심하시오.》     기생어멈은 사나이를 뚫어지게 보면서 떠는 음성으로 물었다.    《거기서 우리앨 훔쳐갔는가요?.... 그렇지요?.... 누가 볼려니까 안고가더라는데.... 왜 그래요? 걔가지금 어데있는가요?...》    《마님! 이만하면 언녕 짐작이 갈텐데.》    《.......》    《보다싶히 나는 이젠 늙은몸이외다. 내가 왜서 불원천리하구 예까지 왔을까?》     불원천리라는 소리에 녀인은 낯이 대리석같이 하얘졌다.     화서즈는 속으로 그렇다 나는 네년이 미처생각못한 먼데서 온 사람이다 하면서 그런줄을 알라는 뜻에서 머리를 조용히 끄덕이곤 입을 다시열었다.    《먼저 내 앞에서 맹세부터해야겠수다. 이 일을 입밖에 소문내지 않겠다구서.》     음성은 낮으나 화서즈가 놓고있는 이런 다짐속에는 거역할 수 없는 어떤 힘과 위협이 물씬 풍기고 있었다.     기생어멈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리곤 집요하게 캐물었다.    《우리 행아가 정말 무사한가요? 갠 지금 어디에 있나요?》     《우리 산채에 있수다. 염왕산에.》    《어마나!》     녀인은 초풍할지경 두눈을 까뒤집었다.    《왜 이러우. 아들은 무사하다구 내가 말하잖소.》     녀인은 그래도 고통스러워했다. 그녀는 마치 날아오는 돌덩이에 가슴을 되게 얻어맞기라도한것 같이 두 손으로 부등켜안더니 이윽하여 입을 옹쳐물면서 숙였던 고개를 다시들었다.    《얼마를 내라는가요?》    《돈은 필요없어.》    《그럼 어쩌자는건가요?》    《사람하나하구 교환해야겠소. 마님이 지금 부리구있는 소춘매라는 기생하구서리. 걔가 진작부터 우리네 위도령허구 눈이 맞아 배필을 뭇자고한거야 거기도 알고있는게 아닌가. 헌데두 왜 내놓지를 않는가. 남의 복락을 깨뜨리면서 제 배만채워서야 어디쓰겠소. 늘어나지 못할 짓이야. 고집스레 그러면 죄짓는다는걸 알아야지. 않그렇소. 내가 이같이 찾아온것만두 대득인줄 알구 자 어쩔테요. 아들을 갖겠소 아니면 춘매를 갖겠소?》    《춘매를 내놓겠어요. 가져가요. 에그, 그 애꾸러기를 내가....》    《언녕 그래야지.》     화서즈는 히죽이 웃었다.     녀인은 제발 아들을 병신으로 만들지 말고 돌려달라 그 애 하나만 믿고사는건데 애가 잘못되는 날이면 자기도 이 세상에 살멋이 없다고 했다.     화서즈는 만일의 경우 실수가 없게하느라 그녀와 협약을 맺고 글까지 받아냈다. 그 내용인 즉 이 일을 10일내에 입밖에 내지 않으며 아들을 돌리는 즉시 소춘매도 산채로 보내며 만약 협약을 무시하고 이 일을 관방에 알리거나 경찰을 움직여 류자를 한명이라도 해칠 시에는 아들은 물론 마님의 친척까지 도룩을 내리라는것이였다.     계획한 일이 뜻대로 되어갔다. 류자 3명이 변장하고 할빈에 잠입했는데 민호는 그들의 보호속에서 인질을 돌려주고 소춘매를 데리고 염왕산으로 돌아왔다.       위용강이 장가를 가게되였다. 이것은 염왕산의 대희사였다. 이번의 혼례식을 책임진 반둬더가 산채에 산채에 나팔수가 있건만도 례를 륭중하게 하느라 외지의 악사를 더 청하기로했다.     잔치이틀전에 왕견이 임무를 맡고 방정에 갔다.    《당쟈더! 산채에 대사가 있어서 내가 왔수다. 위도령이 색시를 얻어 장가가는데 잔치를 해야지. 흥을 돋구게 사람을 보내주슈.》     그가 해엽자까지 내놓으니 사실인지라 방정에서 류랑예인단을 저의 악사여럿에게 금구각(金口角)이며 새납, 쟁쟁이, 북을 쥐여 데리고 산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오래전에 벌써 이곳에 출입이 있어서 구면이였던거다.     산채에서 하는 혼례라 하여 바깥혼례만 못한게 아니였다. 형식이 외려 더 화려했다. 이날 신랑은 나라황제만이 입을 수 있다는 주황색나는 비단옷을 입고 중절모쓰고 허리에는 누런띠 앞가슴에는 커다란 붉은 꽃을 달았으며 신부는 빨간치포떨쳐입고 꽃신을 신었으며 온갖의 금은보석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머리에다는 홍라사너울까지 썼다.      폭죽소리 요란했다.      주례를 서는 반둬더가 축복받는 신랑각시더러 아버지께 길러준 은공에, 며느리로 맞아주는 고마움에 감은숙배(感恩肅拜)한 후 사량팔주에게는 담뱃불을 붙여주어 성가를 하도록 도와주었음에 감사를 표시하게 했다.     주연이 벌어졌다. 악사들은 구조룡(九條龍)을 불었다. 그것은 류자들을 위해 작곡되였는바 그들이 제일 즐겨부르고 즐겨듣는것이였다. 18라한이 둘씩 룡 아홉 마리에 갈라타고 하늘을 나르는, 인간세상을 유람한다는 즐겁고 경쾌한 곡이였다....     《오빠어때요?》      왈패스런 향란이가 제 오랍의 곁에 다가붙더니 귀에다 입김을 불어넣었다.     《뭘말이냐?》     《신혼생활.》     《허허허....》     《웃어버리면 그만인가. 어서 감사나드려요, 웃지 말고.》     《오! 그렇지, 감사하다 향란아!》     《누가 내한테 이래라는가. 멀쩡한 량반. 오빤 이번일 뉘덕인것두 모르나요 그래?》     《오, 그래! 그래! 내가 그한테 인살해야겠구나!》       위용강이 왜 모르랴. 그는 이번일을 성공시킨 민호의 극진한 로고에 진심으로 감격하고 있었다.      위용강은 이틑날 민호를 찾아갔다.     《어이, 내 좀 보자구!》      위용강은 만면에 웃음을 바르고 살가운양했다.      자식 개도 먹여주면 꼬리젓는데 저깟게 안오구될가. 민호는 그가 자기를 찾는 리유를 번연히 알면서도 일부러 아니 네가 생급스레 나를 왜 찾느냐 하는 뜨아한 표정으로 맞아주었다.     《무슨일인데 날보자구?》    《할말이 있소. 날 미워말라구.》    《내가 거길 미워했던가.》     민호는 귀뚜라미 할 소리를 두꺼비가 하네 하려다 그만뒀다.     위용강은 게면쩍은지 허허 웃는다. 남앞에서 호기를 뽑으며 거만을 부리던 그 용기는 어디로 갔는지. 민호는 지난일을 생각하면 괘씸하기 그지없었다. 허나 지나간건 지나간거요 앞길이 있는데 옹쳤던 맘을 그냥되새기면 사나이가 아니라고  자조(自嘲)했다.     위용강이 입을 다시열었다.    《여보게 민호동생! 오늘 나하구 같이 몽두춘하는게 어때. 딱 둘이서말이야?》    《그래볼가. 나도 생각은 있는데.》     외모는 거울로 보고 마음은 술로 보는거야. 내 오늘 너의 진속을 알아볼테다. 민호는 그의 청을 선선히 받았다.      중앙산채를 이루고있는 한 별채에 이전부터 위용강의 방이 따로있었는데 그 방은 향란의 거실과 가까왔다. 안벽전체가 판자로 되어진 그 아담진 방은 다시금 장식되여 방금 잔치를 한 신혼부부가 밀월을 보내는 보금자리로 변했다.     민호가 용강이를 따라 들어가 보니 새각시가 얌전하게 앉아 책을 보다가 일어나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며 인사를 차리는데 주안상이 언녕 차려져 있었다. 미안해 할 것 없었다. 먹으라고 차린 음식이니 머고봐야했다.     술이 둬잔 넘어가 목구멍을 적시자 두사람다 말문을 열었다.     민호가 신혼의 재미가 어떠냐 물었더니 위용강은 그걸 굳니 물어봐야 알겠냐면서 꿀맛이야 그걸 맛본 사람이 잘알게 아니냐면서 화제를 돌렸다.    《여보게 민호동생, 우리 향란이가 어때? 맘에 들테지? 아무리봐도 자네들은 그저일같잖아.》    《하하하, 그저일같잖다! 쟁반잘밟았네. 자칫하면 우린 처남남매간이 될런지도 모르지.》    《벌써 그정도루됐단말인가, 하하하!》     위용강은 입을 뻐개고 웃었다.     수풀의 꿩을 개가 내몰고 네 오장의 말을 술이 내모는구나. 됐다. 술이 좋기는 좋구나. 민호는 그의 가식없는 소탈한 거동에 여지껏 옹쳤던 감정이 봄눈이 녹듯이 녹아버리기 시작했다. 따지고 보면 그들 둘지간에야 사극(私隙)이 백해무익이였다. 오늘보니 위용강은 사실 악의가 오리오리 맺혀 독으로 굳어버린 랭혈동물이 아니였다. 유감이였다면 들말처럼 날뛰는 용력과 헙헙한 사나이다운 성격이 아첨과 떠받들림에 흔들려서 대곧지 못하게 간교한 자의 비위를 맟춰 놀아온 그것이다.     민호는 이때라 생각하고 술 한잔을 부어 같이 굽을 내고나서 한술 더 떳다.    《용강형! 장차도 그모양으로 날 배척하지야 않겠지. 귀구멍너르면 바람이 잘 들어가는거요.》    《챠 이거!....》     위용강은 팔을 홱 저어 이켠의 말구멍을 막아놓고 실토했다.    《지난일은 노엽게 됐소. 이 용강이가 민호동생하구는 접촉이 적다보니 리해가 어리석었구만. 어쩌겠소. 날 용서해주오. 두고보오만 이제다시는 안그럴거요.》    《고맙소, 용강형!》     민호는 그의 반성을 흔연히 받아주고나서 소춘매를 보니 머릿속에 피끗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서 그녀께 물었다.    《참 아주머니, 아주머니가 있었던 연하루에 한인말고도 족이 다른 기생은 없었습니까?》     소춘매는 의아스레 보면서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없었어요. 우리 거겐 말짱 한인기생뿐인데요. 건 왜물어요?》      민호가 무밋거리자 위용강이 입을 먼저열어 물는것이였다.    《동생은 잃어진 안해가 혹시 거기루 가잖았나해서 그러오?》      민호는 그렇다고 머리를 끄덕여보이고나서 캐물었다.    《진사해가 용강형과 언제 그 일을 놓고 말이 있은것 같구만.》     위용강은 그렇다고 머리를 끄덕이였다.    《건데 사해도 지금은 어데있는지 아는것 같잖더구만. 원한은 그가 만들어 놓은것 같은데.... 어쩌겠소, 내 생각에는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안해부터 찾아보는데 좋암즉하구만.》    《그 의견이 고맙소만 난 그보담 먼저해야 할 일이 있어서....》    《먼저할 일이라니 뭐요?》    《원쑤갚는 일.》     민호는 알려주고나서 그의 눈길을 맞받으며 그루박았다.    《용강형은 제발 내일에 방해말아주오. 난 이 원한을 기어히 풀고야 말테요.》     위용강이 량미간을 그러모은채 오래동안 침묵하더니 마침내 입을 열었다.    《하긴그래. 닭하구 족제비가 한우리서 살기야 어렵지. 건데....》      위용강은 법규가 있는지라 말꼬리를 잇지 못하고 끊었다가 마음을 고쳐먹었는지 입을 다시열어 두 마리의 호랑이가 맞붙어 싸우면 기필코 다치게 되는데 그 중 한 마리는 승하고 한 마리는 패할것이요 자기는 그런 대결에 아예 개입하지 않겠노라했다.     서은괴가 총살당하고 황보재가 암살되는 사건이 있었지만 위용강은 의연히 진사해와 사일를 가깝게 하고 지냈다. 한즉 그들사이에 무슨말인들 없었으랴. 위삼포는 숲을 건드려서 공연히 잡으려던 뱀이나 놓칠가봐 아들이라해도 여지껏 그한테 진사해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뇌이지 않았다. 향란이 역시 아버지의 분부대로 그의앞에서 진사해와 관련되는 그 어떤 말도 까딱 입밖에 내지 않았다. 그러바보니 진짜 뻐꾸기는 위용강이였다.         
136    장편소설 <<관동의 밤>> 제1부(17) 댓글:  조회:2255  추천:0  2015-02-03
                           17               새해의 봄기운이 짙어가고있는 염왕산은 다시금 활기넘치기 시작했다. 그 어떠한 외계의 간섭이나 속박이 없는 여기서는 온갖의 짐승들마저 자유로와서 번식이 왕성한것만같았다.     이러한 환경속에서 민호는 사냥에 더 취미를 붙이였다. 허저인들과 같이 있을 때 그들한테서 배운 사냥술이 오늘와서 아주요긴하고도 값진 기술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었다. 기뻣다. 그 재간을 마음껏 써먹을 좋은 때인것이다.     여기는 보통백성이 모여 사는 그런 범세계가 아니요 토비들의 산채였다. 외계사람들은 소름끼쳐 의례 제나름대로 상상하고 부르는 악마의 락원이였다. 말하자면 염왕산이란 이름그대로 인간지옥으로 리해되는 다른 하나의 세계였다. 한즉 지성인이라해도 누구를 막론하고 여기서는 그 어느 누구와도 혁명이니 정치니 사상이니 리상이니 추구니 하는따위를 놓고 운운할 장소가 못되였다. 하지만의기상투(義氣相投)한다면 지기의 벗을 만날 수도 사귈수도 있는 곳이기도했다.     한데 민호는 여직껏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그는  스스로 자기를 향해 나는 어디까지나 한국독립군인이여야 한다, 나에게는 원대한 직책이 있는거요 그것이 있기에 어디까지나 성결한 사람으로 인간답게 살아야 하는거다, 악행을 하지 말고 선행을 하면서 내가 목적한 바를 끝까지 이루어야 한다고 말했다.     객관이 보기에는 남과 어우렁더우렁 즐겁게 지내는 것 같았지만 기실은 고독하고 외로워 그것을 달래기 위해 그가 택한 하나의 방법이 바로 잔짐승잡이였던것이다.     동북쪽골안을 자기의 사냥기지로 정해놓고 잔짐승잡이를 시작한 민호는 거의 매일 다니다싶이하는데 멧닭과 자고새같은것이 잡히면 그는 그것들을 다른 새자를 시켜 향란이한테 갔다주게 했다. 그러면 향란이는 그것을 취사반에 넘겨 채를 만들도록했던것이다.      향란이는 그것을 절대 혼자먹지 않고 맛좋은 산새고기볶음을 아버지를 비롯한 여러 두령들도 맛보게했던 것이다. 하니까 받아먹는 사람은 자연히 그걸 잡은 사람에게 감사를 표하기 마련이였다.     위삼포도 사량팔주도 다가 민호는 과연 부지런한 사람이라 칭찬했다. 그러면서 한결같이 모아진 의견이 민호는 총명한데다  사람이 성실하고 담대하니 족은 비록 다르지만 능력이 승인될 시면 그를 중용해야한다는것이였다. 하여 한달가량의 이 끝나자 민호는 위민을 대신하여 그 반의 반장으로 임명되었다. 그것은 그가 장차 중용되자면 반드시 옳라야 하는 첫계단이였던거다.     왕견은 그보고 가끔 위나리의 딸님을 품에 끼고 자니 인끔이 오르는것이라했고 하진국은 사실은 그래서 그런게 아니라 지나온 표현이 민호에게 벼슬운을 가져다준거라했다.     속담에 고 했더라. 한즉 나는 이제 금이 되었을가 옥이 되었을가? 아니다 나는 금도 옥도 아니다. 토비들 속에서 내가 닮으면야 토비를 닮겠지 누구를 닮겠는가. 정인군자야 닮을 수 없지. 토비! 뼈에 사무치도록 증오하고 저주하여 한때는 목숨걸고 숙청하던 내가 토비굴에 떨어져 토비가 되더니 이제는 과연 그 토비의 반장으로까지 승진했다. 아닌게 아니라 생각만해도 끔찍스러운 일이였다.     이것이 또한 필연이라고 그는 생각하기도했다. 위삼포나 사량팔주가 자기를 신임하고 믿어주는 표징으로 되기에 민호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어느때면 여기를 나가게 될 지 그때까지 그들의 의심도 미움도 사지 말아야했다.     어느날 밤 향란이가 민호를 만나자마자 충고했다.    《저의 부친님께 감사드려요.》    《또 그소리구만.》    《왜요. 그게 낯깎이는 일인가요?》    《낯깎일거야 없지만도.》    《그럼 왜서요?》    《날 포토우로나 시키면 몰라도 그깟 따라지반장을 시키는데두  그래 감지덕지하란말이요.》     민호가 자기보다 한 살이 더많은 향란이를 대해서 하는 말씀새가 그사이 어느덧 바뀌우고말았다. 여기 이 염왕산에서는 위나리의 딸님을 어렸을적부터 그의 아버지와 사량팔주를 비롯한 위망높은 년장자들을 내놓고는 모두가 공경하고 받들면서 쓰고있는 존경어를 그만은 걷어치운것이다. 이것은 좀이라도 더 가깝고 무람없이 지내기를 원하고 있는 향란이가 주동적으로 그한테 그렇게 해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향란이는 사내의 생각이 어리석은지라 비난쪼로 뚱겨주었다.      《체! 높이 앉으면 좋은건 아네요. 포토우가 되는게 뭐 나무에 바라오르듯 쉬운줄로 아는모양이지.》     번연한 일이지만도 민호는 부러 주장을 뺏다.    《내가 안될게 뭔가 그래?》    《흥! 그리도 자신있는가요. 아직은 어림도었어요.》    《왜 어림없다구.》     향란이는 그의 말을 정식으로 들었던지 손가락을 굽혀가며 알려주었다.    《첫째는 담량이 있어야 하고 둘째는 사격술이 뛰여나게 좋아야해요. 그것이 대중의 공인을 받아야하거니와 저의 부친의 눈에 들어야한단말이얘요. 어디 대답해봐요. 그렇게 되기나하는가구.》     그렇다. 표준이 대단히 높아 일개 보통류자가 포토우로 된다는건 하늘의 별따기였다. 하지만 민호의 가슴속에서는 바로 그 하나의 야심이 뼈같이 굳어지고 있었다. 성인도 시속을 따르는거야. 내가 여기서 부처님으로 되지 못하는 바에는 한번 이네들의 꼭대기를 눌러놓지 못하는가. 여기 염왕산의 류자들은 위씨가문의 가규(家規)를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여기면서 위삼포의 말 한마디를 금언(金言)같이 받드는데 내 말도 그렇게 듣게끔 한번 만들어보고싶은 민호였다. 내가 이 한무리의 악당을 선하게 만들수만 있다면....          그후의 어느날이다. 사냥을 나섰더니 길에서 여우를 만나서인지 자고새 한 마리도 걸려주지를 않았다. 하여서 기분이 잡치는대로 돌아가려는데 저기 얼마멀지 않은데서 새자 하나가 돌 몇 개를 쌓아놓고 제를 지내고있는것이 문득 눈에 띄였다.     저쪽은 인기척이 나자 와뜰 놀랬다. 여겨보니 그는 묘동때 아무데도 가지 않고 산채에 남아있었던 한반의 새자 팽덕이였다.     민호는 그쪽을 향해 걸어갔다. 반장이 된 자기를 놓고 뒤에서 군말이 있었던 그를 민호는 딴눈으로 보지 않고 외려 웃는 얼굴로 대해주었다.    《여기서 제를 지내누만. 누구의 제요?》    《반장! 나는 어머님의 제를 지내고있었소.》    《어머님께서 돌아가셨소?》    《그랬소. 겨울에 돌아가셨다누만. 오늘이 지일이 돼서 내가 이렇게 종이라도 태워드리는거요.》     팽덕이는 모자도 쓰지 않아 바람에 날리고있는 더벅머리를 푹 숙이고 한웅쿰도 안되는 재를 멀거니 내려다보면서 무슨 생각에 깊이  잠기는것이였다. 묘동때 집으로 갔더면 어머님이 운명하시는 것을 보았을 수도 있었으련만!     민호는 오늘따라 그가 측은하게 여겨졌다.     염왕산에는 새자들이 제지내는 묘가 따로 없었다. 위삼포는 군심(群心)을 와해시킬가봐 새자들은 일률로 집사람의 제를 지내지 못한다고 반포한적이 있다. 하지만 그래도 효심이 지극한 새자들은 웃사람의 눈을 기여가면서라도 이같이 가만히 제를 지내고 있었다. 그 누군들 부모없이 세상에 태여났으랴. 이 일만은 알아도 그 누구든 고해바칠각질을 하지 않았다.     민호는 그보고 마음놓고 제를 지내라했다.     팽덕이는 그제야 소리내여 울면서 시설질했다.    《어머님, 나의 어머님! 어머님은 이 아들을 낳아 키우느라 고생인들 적게 하셨습니까. 이런 불효자를 낳고서도 기뻐서 남한테 자랑많이하셨다는 어머님. 고집이 센 이 아들땜에 눈물많으시고 한숨많이 지으시다 돌아가신 어머님. 이 아들은 운명하시는것도 지켜보지 못했으니 불효막심합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후회뿐입니다. 내가 묘동때 왜 가지를 않았던지. 잡힐까 두려워 다섯해나....》      팽덕이는 눈물을 쥐여 짜면서 그냥 시설질이였는데 그것은 자책과 후회에 깊이깊이 젖은것이였다.     산에 들어와 5년이 되도록 집에 한번 가보지 않은 그의 탈가는 그야말로 한 켤레의 비감한 애정사를 엮고 있었다.     팽덕의 아버지는 부지런하지만 마음이 올곧지 않은 지주였다. 그는 밭을 50여쌍이나 다루면서 농군 여럿을 두고 부리였다. 서당을 얼마간 다녀서 먹물을 먹은 팽덕이는 의표단정한 젊은이였는데 아버지는 그가 자기를 따라 가계나 이어나가기를 바랄 뿐 아들이 제 욕망대로 출세하는건 바라지 않았다. 팽덕이가 한번은 어머니와 먼 인척관계된다는 이웃마을 하씨댁(河氏宅) 아들잔치를 보러간 일이 있다. 그때 그 하씨댁에는 장가가는 아들을 내놓고도 방년이 다 된 딸 서용이가 있었다. 팽덕이와 서용이는 만나자마자 첫눈에 정이 들었다. 그래서 둘은 어느덧 사랑의 도가니에 빠지고말았던거다. 그때 이미 장가갈 나이되였던 팽덕이는 부모앞에 자기는 이미 하씨댁의 서용이와 언약이 되었다고 고백했다. 그랬더니 아버지는 하씨댁은 째지게 가난하다면서 그 집의 딸은 절대 며느리로 삼지 않겠다고 잘랐다. 이에 팽덕이도 맞받아 자기는 서용이 아니고는 장가를 가지 않으리라 성명을 발표했던것이다.     그는 이틑날 서용을 찾아가 이런 상황을 알려주면서 자기의 감정은 절대 변하지 않으리라했다. 서용이 역시 죽는 날 까지 그를 사모하는 마음은 변치않으리라했다.     팽지주는 집을 나간 아들이 여러날되도록 돌아오지 않는지라 사람을 내놓아 찾게 했더니 팽덕이는 서용이를 데리고 제 이모집에 가있는것이였다. 그네들의 그같이 대담한 행위가 봉건적인 유교사상이 머릿속에 꽉 들어찬 부모들에게는 례교를 더럽히고 가문을 망신시키는 대역부도한 행위로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불효막심한 놈! 네녀석이 애비의 낯에 똥칠하고 패가망신을 시키는구나.》     그의 아버지는 대노하여 펄펄 뛰다가 그 자리로 달려가 아들의 덜미를 잡아왔다. 그러면서 한편 네딸같아나 내아들을 버리게 되니 부정한 그 계집애를 당장 멀리시집보내라했다.     하씨네는 마음이 옹골치 않은 팽지주의 성화를 받아낼 재간이 없어서 서둘러 딸을 멀리에 시집보내고말았다. 비록 적빈여세(赤貧如洗)한 농가집의 딸이긴 하지만 학덕이 있었던 서용은 강박에 못이겨 사랑하는 이를 떠나 멀리 타향에 시집가면서 애닯은 시 한구절을 지어서 가만히 보냈다.                   북두칠성 돌아진다고 서러워 마시라                   동이 트면 새날은 밝아오거니                   불속에서 벼려진 쇠 불어진들                   그대를 따르는 마음이야 꺽어지랴       사랑하는 녀인의 철석같은 마음을 읽어본 팽덕이는 자기도 그를 사랑하는 마음은 영원히 변치않으리라면서 아무 때건 한몸이 되어 살아보리라 결심하고 집을 나와버렸다. 그는 집을 나올 때 화김에 아버지보고 부모가 자식의 혼인자유를 너무도 무리하게 간섭하니 살멋이 없다, 나는 이제부터 차라리 록림객이 되어 제멋대로 살아가리라했다.     구공서(區公所)와 향공소(鄕公所)마다에 포도영(捕盜營)이 있어서 도적을 잡고있었는데 만약 어느집에서 토비가 나진것을 속히고 보고하지 않았다가 그것이 발각되는 날이면 리유여하를 불문하고 모조리 로 치고 죽이였다.     이러한 정황이니 팽지주는 부모를 거역하고 탈가한 아들이 여러날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자 똥집이 달면서 결창이 났다. 그는 제아들이 틀림없이 말한대로 토비질하러 가버린것만 같고 이제 아들이 토비로 된 사실이 드러나는 날이면 온 집안이 몰살을 당할건 명백한지라 그만 향포도영을 찾아가 우리 집의 팽덕이가 여차여차해서 토비로 돼버렸다, 나는 불효막심한 녀석을 미워하거니와 부자관계도 끊으련다고 공포했던것이다.     한데 누가알았으랴 며칠안되여 팽덕이가 흥얼거리며 마을에 다시나타날줄이야.     마을사람들은 그를 보자 놀라면서 알려주었다.         《이 태평스런 놈아! 여긴 왜 오는거냐. 너의 아버지는 네가 토비질하러 갔다고 보고를 했는데.》     원래 팽덕이는 아버지를 한번 혼내우느라 그런 소리를 줴치고는 친구집에 가 놀다가 돌아오건데 가짜일이 그만 진짜일로 되고말았다. 붙잡히면 목이 날아나는지라 팽덕이는 그길로 도망쳐 산채에 들어와 토비로 되고만것이다.          민호의 반이 외선물먹는 순번이 돌아왔다. 그는 자기반의 새자들을 데리고 산채에서 퍼그나 떨어진 바깥경비선으로 갔다. 산을 10여메터가량 들이 판 동굴이 하나있는데 그것이 보초보는 류자들의 숙영이였다. 앞은 숲이 무성해서 모르고는 찾기 힘들었다. 거기서 정면으로 거퍼 30보도 되나마나하는 곳에 산채와 외계를 이어주는 한갈래의 길이 있었다.     그들이 여기로 온지 사흘만에 왕견이 보초임무를 수행하게되였다.     오후. 아직은 저녁을 먹기전인데 동쪽으로부터 네사람이 오고있었다.      《보보만!》     왕견이 총을 꼬나들었다.     저쪽은 와뜰놀라면서 무르춤섰다.    《선마만?》    《우리는 강호사람이요.》     넷중 하나가 대답했다.    《강호사람옳은가?》     왕견은 그들을 치떠보고 내리보고하다가 하나하나 몸수색을 했다. 호금(胡琴) 둘과 옷보따리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은 방랑예인이였다.     염왕산은 여지껏 이런사람들을 해친적이 없었다. 그들도 오락을 즐기기 때문이였다.     처음말하던 사나이가 그중 제일 나이많아보였는데 그가 나서서 사정하는것이였다.    《어른님께서 우릴데리고 산에 들어가 며칠간 노래나 부르게 할 수 없겠습니까?》    《그렇게 하지! 돼! 돼!》     왕견은 흔연히 대답하고는 그들을 숙사에 들여보냈다.     민호는 그들의 우려를 풀어주었다.    《여기가 처음길인모양이지. 당신들이 강호사람이고 우린 록림객이니 따지고 보면 한집안과 마찬가지지. 안그렇소. 안심들하오.》     《감사하외다. 그럼 굳게 믿겠수다.》    《자, 대객에 초인사는 흑토자지요. 맛이 괜찮으니 한 대씩 썰어보지.》     민호는 그들앞에 담배통을 내놓았다. 그리고는 먼저 좀 구경시켜줄 수 없겠는가했다.     그들은 그리하마고 이쪽의 요구를 쾌히 들어주었다.     저녁을 먹자마자 두예인이 옷을 갈아입었다. 하나는 남자로 하나는 여자로 분장했다.       《형제여러분 수고하십니다. 그럼 지금부터 놀아보겠습니다. 어느것부터 먼저할가요?》     이런 방랑예인들은 류자들의 심미를 알고있길래 되도록 그들의 비위를 맞춰주려고 애썼다.     하진국이와 팽덕이가 각각 요구를 제기했다.    《연청이 실파는 단락을 해보시오.》    《그리구 량산호한에서 아는것만큼 다해주시오.》    《그렇게 합지요.》     둘이 호금을 켜고 둘이 얼런쫜(二人轉)을 했다. 새자들은 들을수록 재미있는지라 따라부르기까지 했다.     민호는 이틑날 오후에야 예인들을 산채에 들여보냈다.          향란의 말이 맞았다. 류자내에서 급을 추자면 맏두령과 사량팔주의 마음에 들어야했다. 그러자면 오로지 자기의 용맹을 충분히 과시해야했다.     민호가 그러리라 마음을 먹고있던차 한차례 기회가 생기게 되었다. 그것은 완고한 인질을 고패틀어놓는 일이였다.     류자들이 일단 인질을 잡아오면 그 다음의 일은 양즈방이 맡는다. 만약 비호(주)를 놓치여 큰벌이를 할것도 못한다면 그것은 실직과 마찬가지여서 양즈방은 오로지 인질을 다루는데만 온 신경을 다 쓰는것이다.     어느날 한 괘패(주)가 염왕산을 찾아왔다. 그는 전에도 한번 밖에서 인질을 찾아준적이 있었다.     매사에 조심성이 있는 양즈방은 돈벌이계약을 맺기전에 괘패와 따지였다.    《당신이 말하는 곡가는 아편장사도 하고 인육장사도 해서 백만장자루 됐다는데 그래 그자를 안지는 얼마나 오래오?》    《이젠 거의 이십년이 됩니다.》    《개인원한이나 품고 이러는게 아니요? 남의 칼을 빌어서 복수하자는거나아닌가말이요?》    《아닙니다. 그런건 절대아닙니다.》    《절대아니란말이지. 그렇다면 좋네. 그렇지 않구 딴마음일 땐 알겠지. 추호도 양보없다니까. 그래 얼마로... 먼저말해보오.》    《사륙으로 합시다. 내가 사.》    《안되오. 그러면 거기서 너무먹어. 일구로 하자구.》    《그러면 난 너무애한데요.》    《애하다? 목숨도 안내놓구 혼자 그만큼가지는것두 애하다? 욕심이 과인하구만.》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여. 거둬치워. 그따위 가마쯤은 우리도 얼마든 찾아내니까.》     이쪽이 고집센지라 괘패는 생각을 다시굴린 끝에 지고만다.    《그럼 좋두룩합시다.》     량자간에 마침내 협약이 이뤄졌다.     하지만 그래도 이쪽에서는 믿을만한 사람을 찾아 비호인질로 잡을 곡씨(曲氏)에 대해 조사를 다시해보기로했다. 협약이 된다해서 절대 괘패를 경솔히 믿을 수 없었다. 한것은 자칫하면 남의 꾀임에 들어 애매한 사람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는건 양즈방이 여태껏 지켜온 작법이였던것이다.     어느날 류자몇이 가서 곡가를 붙잡아왔다. 조사해보니 그자는 확실히 아편장사와 인육장사를 했다고 소문이 났거니와 탐욕이 많고 린색하기 그지없어서 라는 별명까지 갖고 있었다.     그런 자를 잡아온 첫날부터 양즈방이 취급하기 시작했다. 한데 그자는 죽으면 죽었지 집사람들이 돈을 갖고와서 자기를 데려가게 하려고는 하지 않았다. 그래서 양즈방은 물론 화서즈나 반둬더도 머리를 앓게 되었다.     염왕산의 화서즈는 구변좋고 일처리를 잽싸게 하는 사람이였고 반둬더 역시 계모가 좋은 늙은이였다. 인질을 잡아오면 양즈방이 책임지고 다루지만 인질한테서 돈을 어느만큼 짜내면 합당하겠는가 하는 문제를 놓고는 세사람이 공동히 연구하는 때가 많았다. 돈액수는 인질의 실정에 근거해야지 맹탕해서는 안되는거다. 내지도 못할 돈을 내라면 인질이나 상하게 할 뿐 결국은 헛짓이 되고마니까.     이쪽에서 정한 금액은 5천원이였다.     곡가는 5천원을 가져오라는 말에 눈이 까뒤집혀 질 지경이다.     《어이구 오천원이 뭐유, 단돈 오원도 없는데.》    《거짓말은 하지 말거라. 넌 화방자도 아니야. 네가 그토록 거지인걸 우리가 잡아왔겠냐.》     이쪽에서 믿어줄리 없었다.     그자가 유명한 구두쇠임을 알게 된 화서즈는 그의 집에 찾아가 식솔들 앞에 해엽자를 내놓으면서 설복하려했다.    《이집에 이런일이 떨어졌으니 불행인것 같지만도 불의지재로  복을 누리니 인과보응이지요. 나도 공무를 집행하는 사람이니 별수가 없고요. 우린 막부득한 사정이 아니구는 막짓을 안합니다. 그러니까 좋게 말할 때 고스란히 들어주는게 좋암즉합니다. 한사람같아나 온 집안이 들볶이우면서 시달림받을거야 없잖습니까. 그러니 집에서 잡혀간 주인처럼 쓸데없는 고집은 부리질랑 말고 되도록 속한 시일내에 우리가 제출한 요구를 들어주기 바랍니다. 그만한 돈이야 내놓고서두 그냥 호강살이할게 아닙니까. 동정해서 하는 충고니 재삼연구하기 바랍니다.》     이렇게 권고해봤지만 곡가의 식솔들은 돈을 벌었는지 어쨌는지 자기들은 구경도 못했는데 여구한들 무슨 방법있겠느냐했다.     화서즈의 방문은 헛물켰다.     곡가의 녀편네와 첩년도 꼭 같은 구두쇠여서 돈을 감춰두고 내놓으려 하지 않나싶어 이쪽에서는 돼지 혀를 베여 헝겊에 싸 그의 집에 보내면서 봐라 곡가의 혀를 잘랐다 이래도 고집부린다면 인질을 아예 없애치우겠노라 위협했다.     그랬건만도 저쪽은 반응이 없었다. 돈은 확실히 곡가가 혼자서 주물러온것 같기도했다. 그깟인간하나를 없애치워도 무방한데 수고스레 잡아오고도 푼전한입 짜내지 못한다면야 이건 너무나 맹랑한 일이거니와 염왕산의 무능을 의미하는것이기에 사량팔주 모두가 머리를 쓰게 되었다.     세상에 그같이 완고한 수전노도 있단말인가? 향란이를 통해 이 일을 알게 된 민호는 그자가 대체 어떻게 생겼는가 부러 가보기까지 했다. 쥐눈깔에 조롱박같이 매끄럽게 생긴 녀석이였다. 네놈은 생김새만 봐도 남의 등치고 간빼먹을 놈이로구나. 때려죽일 놈이 아편장사에다 인육장사까지 했다지. 그래 모은 돈 우리가 빼앗지 않고 누가 빼앗을가. 민호는 완고통인 그자를 자기가 한번 다뤄보고싶은 생각이 불쑥났다. 이건 워낙 그같은 류자는 참여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는 한번 격발된 욕망을 눌러 삭히기 어려웠다.     곡가의 몰골이 눈에 밟혀 잠도 오지 않았다. 아무렴 미움받으랴. 남앞에서 한번도 꽝포를 놓은 적이 없는 민호는 대담히 양즈방을 찾아가 제 속맘을 털어뵈였다.      《감청하오니 용서하십시오. 제가 한번 그자를 마나보랍니까?》     《네가?》     양즈방은 묵묵히 가늠하는 눈매로 그를 아느새 여겨보더니 마침내 거절하지 않고 재간있거든 그래라했다. 아무런 성과없이 패해도 탓하지 않을것이라는 말까지 하면서. 고마웠다. 유사이래 양즈방이 제 직권을 일개 반장급의 류자에게 주어 행사케한적이라곤 없었는데 오늘 양즈방이 그 규례를 타파해버렸다. 이 일은 물론 그 두사람밖에 모른다.      《이젠 내가 널 취급하기로 했다. 이름이 뭐냐?》     나이 마흔을 넘긴 그자는 넌 대체 누구냐고 눈알을 팽그르 굴리더니 뜨아하게 입을 열었다.    《내 이름을 알려구. 난 곡치환이야.》    《곡치환 듣거라. 제이름을 그같이 헌신짝같이 내던지는 사람이 목숨아까운건 왜 그리도 모르냐. 왕고지을랑 작작부려라.》    《내가 왕고집부린다? 참 억울해서.》    《억울하다?》    《아이구 골통이야!》    《엄부럭떨지말라, 이자식!》     민호는 그자가 자기를 얕잡아보고 노는 꼴이 너무도 괘씸해서 얼뺨을 붙이였다. 그리고는 숨겨둔 돈 오솝소리 내놓아라 좋게 말할 때 듣지 않고 계속 고집쓰면 아예 없애치우고말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양즈방이 벌써 그런 말을 몇 번곱씹었는지 모른다. 해도 그는 여직 손은 대지 않았다. 한데 이 젊은이는 대체 누군데 몇마디안짝에 눈에서 불이 번쩍하게 만드니 곡가는 속이 떨려나기 시작했다.     민호는 그가 한풀꺾이였음을 눈치채자 한가지 수를 썼다. 그는 곡가를 향해 너같이 완고한 백치는 아예 없애벌리기만 못하니 권유가 필요없다. 집사람들께 할말이나 있거든 적으라면서 종이와 연필을 주었다.     그랬더니 곡치환은 이제는 정말 끝장인줄로 알고 눈물 코물짜가며 울다가 과연 유언이라면서 짤막한 글 하나를 썼다.                            염왕산에 잡힌 몸 끝장볼제                       슬픈 끝에 떠오르는 생각 하나                       상하가 내려가고 올라감은                       잊지못할 천도인가 하노라.       대체 무슨놈의 유언 이래? 민호는 그가 쓴 글을 다시한번 음미하고는 그자를 향해 조소를 날렸다. 그리고는 곧추 양즈방을 찾아 달려갔다.      《이건 그자가 제집사람들게 남기는 유언이랍니다.》     양즈방도 대체 무슨놈의 유언이 이런가고 하면서 보고 또 보았다. 한데 지식있고 경험있다는 양즈방이건만 아무리 뇌즙을 짜도 모두 네구절로 되어진 유언의 내용을 풀이할 재간이 없었다.     그가 민호를 향하여 너는 알만하냐고 묻는 눈길을 보냈다.        《여기를 보십시오.》     민호는 곡치환의 걸작으로 되는 그 유언의 세 번째구절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수수께끼야 바로 이 구절에 있잖은가요.》    《하긴 그런것 같은데 뭔지 풀이가 안되는구나.》    《상은 우고 하는 아래가 아닙니까. 윗것이 내려갈 때 아랫것이 올라오는게 뭐겠습니까. 그건 양말을 신거나 신을 신는 형용이 아닌가요.》     양즈방은 듣더니 얼굴이 금시 확 밝아지면서 무릎을 탁 쳤다.     《그렇지, 옳아! 그녀석이 양말아니면 신속에다 뭘 감춘게다!》     그날밤으로 당장 한패의 류자가 염왕산을 나가 곡가의 집에 갔다.     짐작과 맞아떨어졌다. 류자들은 가자마자  곡치환이 신던 양말과 신을 수색했는데 마침내는 그자의 목긴 겨울털구두속에서 묵직한 금주머니는 찾아낸거다.     곡치환은 장래를 생각해서 자기가 애써 긁어 모은 불의지재(不義之財)를 전부 금으로 바꾸어 그것을 양말속에 넣고 꽁꽁 기웠다. 그래놓고는 집사람몰래 가끔 혼자서 그것을 제 손바닥에 올려놓고 흡족스레 근떠보군했던것이다.     곡치환은 자기가 유언을 그같이 쓰면 머리가 총명한 첩이 받아보고 알아맞히여 금이 들어있는 털구두를 다른 어디에 깊숙이 숨겨둘줄로 알았다. 한데 자기가 쓴 유언은 집으로 전해지기도 전에 들통날줄이야 어찌 알았으랴. 염왕산 류자들 속에 자기의 그 글귀를 어렵잖게 풀이할 사람이 있는줄은 몰랐던것이다.        《고마와요. 그대가 우리 염왕산을 위해 또 한차례 공세운걸 축하해요.》     생각이 주도면밀한 향란이는 자기의 방에다 술상을 차려 민호를 대접했다.    《어찌 내하나의 공이라 할까. 향란이가 알려주지를 않았다면야 난 곡치환을 대면하지도 못했을건데. 안그렇소. 그러니 공이야 먼저 거기로 돌아가야 마땅하지.》     민호는 반죽좋게 그의 감정을 맞추었다.    《호호호... 너무 겸손하네요. 나더러 그래 공 절반을 받으라는건가요.》    《그렇지. 우리의 합작이 계속잘되기를 희망해서.》    《오, 그래요! 그럼 오늘밤은 합작잘되나볼가요. 호호호....》     향란이는 술잔을 맞쪼으면서 간드러지게 웃었다.     이날 그들의 밤생활은 과연 유감없이 합작이 잘되였다.       가을이 되자 차챈더가 민호를 불러 자기와 함께 쟁반밟으러 나가자했다. 쟁반밟으러 나가는 류자는 반드시 믿을만한 사람이여야 하거니와 관부와 아무런 인척관계도 없는 사람이여야한다. 그렇지 않다가는 산채의 비밀이 드러나 벼루기(경찰) 한테 일망타진이 될 수 있는것이다.전에도 몇 번 쟁반밟으러 다닌적이 있는 민호는 어느모로 보든지 믿을만해서 차챈더는 마음들어했던것이다.     염왕산의 차챈더는 날래고 정찰경험이 풍부한 사람이였다. 그는 본래 봉천근처 소가툰(蘇家屯) 주둔군의 정찰반장이였는데 어느 한차례의 훈련때 상관과 감정충돌이 생겨 총을 쏘아 그를 사살하고 도망쳐 토비로 된거다. 용감하거니와 행동이 민첩한 그는 자신이 직접 쟁반밟으러 나가서는 장차 들부시게 될 기와가마의 형편을 구체적으로 장악하군했다. 특히 암창(暗槍)이 설치된데를 귀신같이 알아내여 자기측에 희생과 실패가 없도록하군했다.     류자들은 야간에 기와가마를 습격하는 경우가 많은데 암창이 설치된 곳을 미리알아두지 않았다가는 담을 넘어 안으로 들어가긴해도 줄을 잘못 건드려 총소리를 내는 통에 그 자신이 죽고마는건 더 말할 것 없거니와 기습작전이 미리탄로나서 강력한 반항에 맞다는 통에 애를 먹는것이다. 하기에 차챈더의 정찰이야말로 매번 승패에 관건적인것이다. 염왕산의 차챈더는 공을 많이 세운 류자다.     내가 누구를 위해 또다시 희생을 무릅써야하는가? 민호는 가기싫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때가 되자 차첸더는 피혁자사꾼으로, 민호는 천장사꾼으로 가장하고 함께 염왕산을 나와 동북방향으로 수백리빢에 있는 화남(樺 南)쪽으로 갔다. 그곳 어느 계모점에 성이 천씨(千氏)인 지주가 있었는데 그는 토성밖에 널장자를 겹하고 포대까지 있는 붉은 기를 꽂은 대지주였다.     련방대나 경찰의 수사에 잡히지 말아야했다. 붙잡히면 볼장은 다본다. 그 마을에 들어간 두 사람은 의심을 모으지 않게 하느라 갈라져서 따로따로 싸구려를 불렀다.     천장사의 싸구려소리를 들은 천지주의 마누라가 딸이 시집갈 때 입을 옷감을 사야겠기에 민호를 자기 집에 불러 들이였다.     별채만도 대여섯되는 것 같았다. 그가 들어간 본채의 동서 량칸은 모두 널찍하고 밝거니와 가난한 사람은 상상도못할지경 호화로왔다. 민호의 눈에는 이 집이 과연 산호랑이눈섭도 부러울것 없이 사는 부호같아보였다.     천지주의 딸님은 이름이 옥령(玉玲)이였는데 깔끔하게 생긴 처녀였다. 총명하고 영리한 묘령의 그녀가 어려서부터 무예를 익히여 걷보기와는 다르게 웬간한 사람은 옆에 붙지도 못했다. 옥령은 자기처럼 무예하는 사람을 좋아했다. 천파는 청년의 곁으로 얼른 다가든 그녀는 제맘에 드는 천을 고르다가 무심결에 자기 손이 그의 손과 다이는 순간 속이 꿈틀했다.     이 사람은 절대 천파는 사람같지 않구나. 손이 거칠고 쇠같이 굳은걸 보니. 틀림없이 총칼을 다루는 사람일것이다. 속으로 이렇게 짚으면서도 그녀는 한편 또 대방의 영준하고 름름함에 저도모르게 마음이 끌리는지라 옷감을 고르는것 처럼 하면서 자주 눈빗질해보았다.     집안을 다 살펴보고 난 민호는 그녀보고 소변을 보겠는데 칙간이 어디에 있는가고 물어서 밖에 나왔다. 그는 서쪽켠에 있는 남북방향의 별채에 암창이 네곳있고 동남쪽 외양간근처에도 두곳에나 있는것을 발견했다.     이때 집을 나갔던 천지주가 돌아와서 생면의 청년이 수상하게 돌고있음을 발견했다. 민호도 거의 동시에 자기의 정체가 발각되였음을 깨달았다.           민호는 여기를 급히 빠져나갈 속셈으로 집에 들어가 보따리를 거두었다.    《아가씨, 미안하게 됐습니다. 래일다시고르시오.》     그를 뒷따라서 들어온 천지주가 랭랭한 조소를 날리며 다가와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    《젊은이! 뭐가 그리바쁜가. 천을 팔고가야지.》     민호는 보지기를 싸면서 응대했다.    《오늘은 안팔겠습니다. 래일다시오지요.》     이미 엎어지른 물이였다. 그가 허리를 펴기도 전에 어디서 나타났는지 억센 사나이 둘이 불시에 달려들어 팔을 잡았다.     천지주가 너털웃음을 쳤다.    《허허허.... 이 천모를 건드리는게 그리 쉽지 않을걸!》     민호는 항의했다.    《왜서 사람을 함부로 붙잡습니까?》    《내 눈을 속이자구, 흥. 넌 토비야. 알려주마 너하고 같이 온 녀석은 언녕잡혔다.》     차챈더가 잡히다니!.... 민호는 찾물을 맞은것 같이 등골이 싸늘해났다. 하지만 그는 당황해하지 않았다. 그런 빛을 보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던것이다. 그는 지어 태연자약한 태도로 나왔다.    《무슨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나를 잘못봤구만요.》    《내가 잘못봣다? 자식이, 어디다대고 하는 소리냐.》     천지주는 네가 아마 매맛을 봐야 노근노근해질가보다 하면서 끌어내가라했다.     그들은 민호를 빈창고로 끌고갔다. 그리고는 거기에 있는 기둥에다 매여놓고는 채찍을 안기면서 신분을 제대로 대라했다. 민호는 아무리어째도 자기는 천파는 조선사람이지 다른짓을 하는 사람은 절대아니라고 벗티였다. 천지주는 네가 조선사람이라해도 내 눈에는 토비로만 돼보이니 어디 향포도청에 가서 대꾸질을 하라했다.     천지주의 딸 옥령이는 아버지가 하는 말을 듣고 와뜰놀랬다. 전번날 련방대에서 토비의 머리를 여러개 잘라 마대에 넣어 향포도영으로 가져가는것을 보았는데 그것은 흡사 호박을 따넣은것 같이 둥글둥글했다. 얼마나 끔찍스런 일인가. 저 젊은이도 가기만 하면 그모양이 되고말것이다. 아까운 사람이 목이 날아나서야어디.....     옥령이는 밤중에 식칼을 들고 가만히 나가 기둥에 묶어 놓은 바를 끊어버렸다.    《어서달아나요.》    《아가씨가 왜 날구해주오?》    《그 목숨을 잃는게 너무도 아까와서 그래요.》     세상에 이처럼 고마운 일도 있는가! 민호는 속이 물큰하도록 감격했다.    《아까씨, 잊지 않고 은혜를 갚을텝니다.》     거기를 빠져나와 줄행랑을 놓았다.          천지주의 가죽채찍이 민호의 팔과 등과 가슴에다 숱한 상처를 만들어 놓았다. 그것은 마치도 여러마리의 뱀이 감겨 그를 졸려죽여버리자고 꿈틀거리는것만같았다.     염왕산에는 전문 류자들의 병을 봐주는 의사가 따로 있었다. 하지만 민호는 자기가 당한 일을 소문내는것이 질색이여서 의사를 ............................................................................................................................          * 흑토자ㅡ담배. 초권, 해초, 풀둥구리라 하기도 함.    * 썰다ㅡ담배를 피우다.         * 외선물먹이는 순번ㅡ산채밖 외선의 경비를 서는 차례.         * 괘패(掛牌)ㅡ밖에서 인질을 찾아주는 사람.   찾아가지 않고 자약으로 상을 치료하려했다. 그는 독립군에 있을 때 배워둔대로 자지색가지를 여러개 구해다가 남비에 두고 오래닦아 밑에 앉은 재를 보드랍게 뽀아서 물에 개여 상처에 발랐다.     향란이가 상처를 보더니 놀라면서 이렇게 피멍이 시퍼렇게 졌을 때는 누렇게 돼버린 가지를 짓찧어서 두껍게 바르는 편이 더 났다면서 가지를 얻어다 손수 그렇게 해주었다.     확실히 효험이 더 좋은것 같았다.     자약을 마지막으로 갈아대던 날 향란이가 씻어서 말린 붕대를 갖고 와 갈아주면서 캐물었다.    《지금도 천지주의 딸님을 잊지 않고있나요?》    《그건 왜 물는거요. 내가 그녀를 잊을수야 없지.》     향란이는 입을 다시열지 않고 꼭 다무는데 방금내던지 그녀의 말에는 빈정대는 뉴앙스가 다분히 묻어 있었다. 힐끗 쳐다보는 올곧지 않은 그녀의 눈은 츄월이와 내가 있는데 이제 옥령이라는 여자하나 더 끼였으니 너는 도대체 어떻게 할참인가고, 누구를 더 마음에 두겠느냐고 캐묻고 있었다.    민호는 그의 이런 속내를 짚어내고 야 이 암상꾸러기야, 나를 좀 작작 괴롭히거라, 이 사나이 가슴속에는 대업이 있을뿐이다했다.    
135    장편소설 <<관동의 밤>> 제1부(16) 댓글:  조회:2492  추천:0  2015-02-03
                             16               민호가 돌아오니 한반의 류자들은 무척 궁금했던지라 아니 넌  보름씩이나 어데 가 있다가 인제야 돌아왔느냐고 입가진것마다 겨끔내기로 물어댔다. 민호는 공개하기 어려운일이라 자기는 위삼포의 명을 받고 할빈에 갔다왔노라고 대답하여 안해를 찾아다닌 사실을 숨기였다. 그의 일을 알고있는 사람은 오직 하진국이와 왕견뿐이였다. 그 둘은 쪽박이 굳은 사람이다.     민호는 산채에 돌아오자 분위기가 이전만 좀 다르다는 감을 느꼈다. 다른때같으면 장기를 두거나 주사위를 놀거나 아미면 육담을 늘이면서 벅작고울 사람들이 그저 조용히 마작쪽만 주물렀다. 한풍이 휩쓸고 지나나간 듯 집안에 화기라곤 돌지 않았다. 그리고 까불이 왕은경이가 보이지 않았다.     민호는 그 애의 사촌형인 왕견이보고 물었다.    《은경인 왜 안보여. 걘 쟁반밟으러 나갔소?》    왕견은 고개를 외로 탈아버릴 뿐 대답이 없다.    아니 이 사람 왜 이래? 그가 난색이니 민호는 괴이쩍어했다.    하진국이 눈짓으로 민호를 밖에 끌어내다 알려주었다.    《은경일 빼버렸소.》    《아니 뭐라?…왜서?…무슨일에?…》    놀라 어안이 벙벙해지는 모양을 보면서 하진국은 이미 열어놓은 입으로 듣기도 끔찍스런 한심한 사건 하나를 말했다.    《뒤여질라구 환장했는지 원. 그자식이 글세 개하구 야화요(강간)를 했단말이요.》    《아니 뭐라!?…개하구 그짓을 했다?… 원 무슨소린지…아무리 쌔번진들 어쩜 그렇게까지야…치사하게.》     《글쎄말이요. 그랬다구서 위삼포는 산채를 망신시키는 세차즈라면서 일이 발각이 된 당날루 그앨 빼버린거요. 개까지 함께.》     그 말을 듣고보니 아닌게아니라 반에서 기르던 개도 보이지 않았다. 누런 암캔데 민호가 오니 그때 벌써 새끼를 두배째 낳았다고한다. 제 장단지를 칼로 찍고 제 귀를 베고 임신부의 배를 갈라 태아를 끄집어내고 짐승을 강간하고… 인간으로서 보통 할 수 없는 희한한 일들이 여기서 만들어지고 있었다.   《자식이! 추접게 놀더니 끝내 그꼴루되고마는구나.》    민호는 내놓고 웃지도못할 그런 일이 발생했으니 반장의 처지가 어떻게 됐겠는가고 했다. 그런데 하진국이 하는 얘기를 들어보니 전혀 생각밖이다. 왕은경이 그짓을 하는 것을 밝혀낸것도 반장이고 우에다 고발한것도 반장이거니와 총을 쏴서 그의 숨통을 끊어놓은것도 반장이라한다.   《아니 고생도 슬픔도 기쁨도 같이해야한다는고 늘 입에 달고있던 녀석이 그렇게까지 한단말인가?…제 반에서 생겨난 패륜아를 감싸줬다가는 아마 추궁이 될까봐 되게 무서웠던모양이지 그꼴로 논걸 보니… 그래두 그렇지 아무렴 어찌…제명대루 못살 놈이야!》     민호는 위진을 욕했다.     제반 새자들의 가슴에다 불만의 씨만 심어놓은게 분명했다.     민호는 우울해진 왕견이 이제 아무때건 감정을 이기지 못해 성질을 부릴 것 같아 어느날 쟁반밟으러 나갈 일이 있게되자 자진해서 차챈더의 허락을 얻어 데리고 함께 산채를 나갔다. 마침 왕견도 가슴답답해 시원히 바람이나 쐬려던참이였다.      그들은 언젠가 300여명류자가 동원하여 상탁(주)이 있었던, 위용강과 진사해가 깃대를 꽂고 온(주) 통에 재난을 면치 못한 그 기와가마가 있는 연수일대를 다시돌고나서 귀로에 올랐다가 염왕산북쪽 약 100여리 지점에 있는 진가툰에 들리였다.     그 마을의 툰장이자 점황지주인 진씨는 1000여헥타르의 땅을 혼자 독점하고있었는데 마을의 농호는 거의가 그의 땅을 소작짓고있었다. 진씨는 차지(借地)로 준 땅을 내놓고도 여러쌍지기의 밭을 자기가 손수다루고있었기에 상기적으로 집에 두고 부리는 농군만도 여나무명되였다. 진씨는 그같이 부유한 사람이지만 여지껏 토비의 시달림은 받지 않고 살아왔다. 한것은 가까이에 있는 위삼포가 그를 보호해줬기 때문이다.    환갑이 가까우나 그리 늙어보이지 않고 풍수좋은 진씨는 자기집에 나타난 두 류자손님을 각근히 대해주었다. 그는 왕견과 잘아는사이였다.   《압련자!》(주)    왕견이 소리치자 진지주집의 하인이 곰상히 말 두필을 끌고 먹이러 갔다.    진지주가 왕견을 향해 물었다.   《임잔 이번에 무슨 길이우?》   《산채루 돌아가는 길에 들렸습네다. 나온지는 여러날되지요.》   《사흘만 더 일찍왔어두 좋았을걸.》   《무슨소린가유?》   《점산두라는 패가 여게 와 재를 치구갔네.》    점산두(占山頭)라니! 그건 또 어디서 나타난 잡놈들일가?… 민호는 물론 왕견도 처음들어보는 토비무리다.    《그자들한테 그래 뿌려줬는가요?》    왕견이 물어보는 말에 진씨는 웃으면서 머리를 가로저었다.   《내야 당하질 않았지… 감히 덤벼들기나 할 자들인가… 다해봤자 열명도 안되더래.》    말을 들어보니 역시 좀팽이 류자들이다.    해도 진씨의 말을 들어보니 여간만 지독하지 않는 강도단이다.   《글쎄 강령감네가 뭐 있다구. 요몇해간 보따리장사해서 좀 모았다구할수야있지. 그래서 명색이 가게방이랍시구 하나 꾸려놨다우. 그런데두나 그 녀석들이 글세…그 집의 아들을 잡아다가 어떻게 했는지 아오. 고구마를 구웠다우… 돈 천원이 어디우… 그 집에서 그걸 어떻게 낸다구…날 찾아왔더구만. 사람이야 구해놓구봐야잖소. 그래서 내가…》   《돈을 대줬다는건가요?》   《그렇네 반은 내가 대줬지.》   《잘했습니다.》    민호는 그의 처사를 칭찬했다.    고구마를 굽는다는건 쇠를 달구어 지지는 것을 말한다. 그렇게 하면 인질은 고통스러워 고함을 지를것이고 집사람들은 그 고함소리에 가슴찢기고 뼈가 갈리여 한시급히 요구에 응하게끔 하자는 잔인한 수단이였다.     전날 민호와 왕견이 들렸던 연수근처의 한 마을에서 생긴 일이다. 다섯놈이 어느 집의 15살나는 딸을 화방자로(주) 잡아다놓고는 아무날전으로 돈갖고 와서 찾아가라 그러지 않으면 죽여버리라했다. 그 집에서는 하는 수없이 집재산을 다 팔아버렸다. 그리고도 액수가 모자라기에 소녀의 어머니가 제 피를 뽑아 팔아 부족되는 부분을 보태였는데 그 어머니는 딸이 풀려 돌아오기전에 그만 죽고말았다. 딸이 돌아와 보니 어머니가 죽은지라 자기가 살아서는 뭘하느냐며 역시 강에다 몸을 던져버렸다. 아버지는 어떻게 됐는가. 마누라가 죽고 딸까지 죽어버리니 내 혼자 살아서는 뭘하느냐며 나무에다 목을 달아매고말았다. 세 식구가 단란하게 살아오던 그 한 가정은 토비들 손에 이같이 비참하게 훼멸되고말았다.    《째째한 놈팽이들! 목대를 분질러놔야 할 놈들!》    왕견마저 악당들을 저주했다. 비록 도척(盜跖)(주7)의 후계로 되어 하늘을 쓰고 도리질하면서 백주창탈을 업으로 이 세상을 제멋대로 살아가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자긴 여직 그렇게 까지는 잔인하게 놀지 않았노라면서.    허, 이것보지! 리성이 부활해 량심을 호소하는거냐. 고통의 모든 의미를 리해한다면 넌 아마 부처님이 될거야. 민호의 생각이다.    사람마다 제가 즐겨보는 천국은 따로 있는 모양이다. 진씨가 염왕산 그늘덕을 입고있는지라 왕견은 그의 앞에서 제법 은인행세를 했다. 나는 여러날이나 잘 먹지도 못했다 몽두춘을 해야겠다 주두리 넓은 놈이건 헤버리는 놈이건 아무거나 잡거라 표양자(죠즈)든 진수산(이밥)이든 하거라 요구를 내놨다.     진씨는 두말없이 그것들을 달갑게 받아주었다. 그는 종들에게 명령해 서둘러 닭을 잡고 죠즈를 싸고 술상을 차려올리게 했다.     두 사람은 배껏 먹었다.     두 머슴애가 상을 거두면서 나지막한 소리로 주고받았다.    《얘야 오늘 온 손님들 무슨 사람이게 우리 주인이 이리두 잘 접대한다니?》    《애두 참. 네 눈으루 보면서두 모르니. 산에서 온 사람이야.》    《산에서 온 사람?…》    《것두 몰라?…토비야.》    《토비!? 그런데…왜 무섭게는 생기지 않았구나.》    《무섭긴. 사람인데. 누구보담두 잘 먹구 잘 노는 사람들이야.》    《그럼 우리두 토비질이나 해볼까.》     등을 베개로 밭히고 벽에 비스듬이 지개여 두눈을 지긋이 내리감은채 철없는것들의 말수작질에 귀구멍을 열어놓고있던 민호는 불현간 몸을 발칵 일으키면서 호되게 꾸짖었다.    《이놈들! 무슨 소릴 그렇게 해쌌는거냐? 뭘 해먹을 짓없어 토비노릇하겠다는거냐, 엉? 이제 다시 그따위소리만해봐라. 아가리를 찢어놓고말테다, 이놈들!》     머슴아이들은 그만 혼겁하여 달아나버렸다.     둘이 거기를 떠나자니 진씨가 근심스러워 만류했다.    《두분께서는 이대로 훌쩍 가버리려오. 며칠만 좀 더 눌러있으시지. 아마두 마을이 안녕치를 않을것 같아서 그럽네다. 듣자니 그 녀석들말고도 생전 못들어본 흉한 떼거리가 싸다닌다는데…》     속셈이 빤했다. 진씨는 염왕산의 위력을 빌어 만일의 경우 광기부리며 달려들 떨거지 토비들의 략탈을 피면해보자는 생각이였다. 어쩌면좋을가?…민호는 단둘이서 그자들의 행패를 막아낼수있겠는지 자신이 서지 않으나 믿고 하는 사정이니 뿌리칠수도 없는지라 그러면 사날만 더 눌러보지요 하고 주인의 청을 들어주었다.    《맹가강에 갔을적에는 내가 동생의 말 잘안들었소만 이제야… 뭐든 지시만내리라구. 그러면야 내가 어련이 듣지 않으리.》     왕견이 스스로 다지는 맹세였다.     민호는 그러는 그가 좋았다.     산채로 인차돌아가지 않기를 잘했다. 이틑날 민호가 왕견이를 데리고 전날 점산두토비손에 아들을 랍치당한 가게방을 가보자고 나섰다가 공교롭게도 진가툰에 기여든 다른 한 비도무리와 맞띄웠다. 인원이 모두 12명. 역시 좀팽이였다.     그자들의 눈에도 이켠이 어디든 행색이 달라뵈였던지 마주치자 류자식으로 말을 걸어왔다.   《보보만!》(주)   《첨자만(주). 넌 누구냐?》   《나는 나다.》   《팔굽을 눌러라.》   《불을 꺼라.》   《리마인이야.》    이번에는 이쪽에서 캐고들었다.   《보보영두!》(주)    두눈이 치째지고 바르잖게 생긴 녀석이 이쪽은 다해봤자 둘뿐인지라 허수히 보고 거만을 뺐다.   《내가 흑패천이다. 모아산 흑패천을 모르냐.》    이런 경우를 당해 성미가 화약같은 왕견이 참아 견딜리만무였다. 독이 난 그는 낯색이 단통 지지벌개지면서 욕을 퍼질렀다.   《야 이 랑비(주)같은 녀석아, 네가 똥패천은 아니구 흑패천이냐. 누굴 업시보구 이모양이냐, 엉? 돼먹지 못하게.》   《아니 저놈이!》    저켠이 총을 빼들자 왕견도 어느결에 빼든다.    이런 일촉즉발의 시각에 민호는 용케도 따라움직이지 않고 무겁한 태도로 침착하게 맛서나섰다.   《너도 염왕산이야 알겠지. 우린 염왕산이다. 대체 어쩔테냐?》   《아! 그럼 저…》    흑패천은 독이 났지만 감히 손 쓸 념을 못했다. 전혀 당황해 하는 티라곤 없는 상대측의 배때벋은 패기에 눌렸거니와 염왕산이라는 소리에 기가 질리기도 했던것이다.     민호는 기회를 놓지 않고 그루밖아 따지고들었다.   《너희들은 십팔존계률을 아느냐?》   《저, 저…》    두목은 꺽꺽거리더니 낯을 돌려 제 졸도들에게 들었던 총을 내리우라 명령하고는 타협조로 빌붙기시작했다.   《우린 오복자땜에 예까지 밀려온거요. 어쩌겠소. 형제지간에 사정 좀 봐주구려.》   《사정이라니. 벼루기가 쫓는가? 개가 쫓는가?》   《내 말하잖우. 오복자곯았다구서.》    그 소리에 왕견이 다시금 눈알을 부라렸다.   《네녀석들은 오복자곯은것만 알구 그래 염왕산 날쏘시개(탄알) 무서운건 모른단말이냐? 미런한 자식들! 썩 물러가라, 당장!》    흑패천의 두목이란 녀석이 생긴 모양을 봐서는 감때사납고 어거지센 것 같지만 감히 엇서지 못했다.    꼴을 보니 뒷근심달고있는 놈이구나. 이럴때는 계속 되게 굴어야 하는거야. 민호역시 낯색을 엄하게 굳힌채 말곁을 달았다.   《너도 위삼포가 어떤사람이란건 알겠지. 여지껏 형제간의 의리를 중히 여겨왔거니와 함부로 범계하는 자, 도에 어긋나는 짓을 하는 자에 대해서는 추호의 양보도 없었단말이다. 사실이 이러니 어쩔텐가? 고집부리고 그냥 놀아볼텐가 아니면 오솝서리 물러갈텐가? 말해봐!》   《물러가지. 물러가지.》    흑패천은 꼬리를 빼는 수밖에 없었다.    이리하여 진가마을 사람들은 한차례 눈섶에 떨어진 화을 모면했다. 안도의 숨이 안나갈 리있는가. 그들은 너무도 감지덕지해서 염왕산의 두 류자를 훌륭한 협객이라느니 호한이라느니 은인이라니 칭찬이 대단했다.    둘은 이번 행차에 깃대를 꽂지 못했다. 솔직히 말해 민호가 자진해서 쟁반밟으러 나오기는했지만 의식적으로 깃대꽂을 기와가마를 찾지 않았던거다. 이 민호는 천죄만악의 토비떼를 숙청하느라 제 생명을 바치고 싸웠던 사람이야. 그러던 내가 부득한 사정에 이눔의데다 몸을 담근건데 그냥 진짜토비행세를 하면야 어디 사람이 되겠는가. 그렇게만 한다면 나는 당벽진에서 토비들 손에 살해된 내전우들의 원혼앞에, 고태자에서 살해된 허저인들의 원혼앞에, 토비손에 재난당한 이 관동땅의 무고한 백성앞에, 그리고 재난을 앞에 놓고 조이는 가슴을 붙안고 떠는 모든 백성들 앞에 천추에 용납못할 죄인이 뒤여 나중에는 천벌을 받고 말 것이다. 량심 이렇게 호소하면서 가끔 주의를 환기시켰던거다.        위삼포가 아무리 형통한들 남의 속맘까지야 어찌알랴. 여러날이나 나가있으면서도 들부실 기와가마 하나 찾지 못하고 돌아왔지만 그를 꾸짖지 않았거니와 민호가 범계한 서패천을 쫓아버렸다니 외려 기뻐하면서 대단히 잘했다고 칭찬했다. 민호는 언젠가 맹가강에 갔다가 인질로 잡혀간 애를 찾아줬을 때 처럼 다시한 번 물망에 오르게 되었다. 물론 이번엔 왕견이도 함께 상까지 받았다.    《길마를 지워보면 말이 좋고 나쁨을 알수있는거네.》     위삼포가 팔대금강인 사량팔주가 다 모인데서 민호의 소행을 놓고 이렇게 다시 한번 말 할 때는 그가 언녕 제 안중에 들어 장차 써줄 생각까지 있어서였다.    무의식속에 고개를 쳐든 운이라할가. 여기서 발탁하여 우위를 잡게 될 기회가 서서히 다가오고있었건만 민호는 그런 것 까지는 꿈에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염왕산류자들은 식량만은 략탈하지 않고 여지껏 제 돈을 주고 삿다. 자금은 주로 아편을 팔아 마련되였다. 그러나 식량을 구매하자면 해마다 미리 잘 연통해야했다. 관방에서 토비에게 먹을 것을 대여주면 《통비범(通匪犯)》으로 론죄하여 가차없이 목을 잘랐기 때문이다. 형편이 그러했건만 농사군들은 갖은 방법을 다해 정부를 속여가면서 제가 지은 낟알을 한근이라도 토비에게 팔아먹으려 했다. 그네들이 그같이 위험을 불구하고 량식을 파는 원인이 어디에 있을가? 다른게 아니다. 그것은 바로 염왕산은 언제나 쌀값을 후하게 주었거니와 뒷수습을 잘해주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쌀판 이들이 후환이 없게끔 해주었다는 그거다. 위삼포는 만약 어느 마을에 고발자가 나지기만 하면 에누리 없이 그의 가족을 도룩냈다. 징계가 그러했길래 그들은 서로 감싸면 감쌌지 남을 물어먹는 짓은 절대 하려하지 않았다. 위삼포는 이같이 염왕산 주변에 있는 마을들을 어렵잖게 제 식량공급기지로 만들어놓은 것이다. 그리고 그런 마을들은 실제상 그의 보호권내에 들어 다른 토비들의 위협을 적게 받았으니 편안히 보낸셈이다.     이해는 쌀농사 작황이 이왕년보다 많이 못했다. 그래도 염왕산류자들이 먹을 량식이야 있겠지만 떨거지패가 나타나 성행하니 어느정도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견됐다. 하여 위삼포는 쌀수매예약을 좀 더 일찌기 하기로했다. 량태는 그렇게 하는것이 옳아 서둘렀다. 그는 우선 이미있던 량공대(糧工隊)부터 다시고쳤다. 원래 5명뿐이던 량공대인원을 배로 늘이였거니와 원래의 성원중 젊은 사람 셋만 남기고 늙다리 둘은 퇴역시켰다. 그리곤 류자들가운데서 사격술이 좋고 날파람있는 자를 선발해 인원을 확충했던 것이다.     일정한 전투력을 갖춘 이 량공대총책에 바로 민호가 위임됐다.      민호는 새로 구성된 량공대를 세 개 소조로 나누어 세 개 마을에 파견하면서 하루밤사이에 예약임무를 끝내고 날새기전에 맹가강남쪽에 모이게끔했다. 꼭마치 커다란 고분과도 같은 그 독산(獨山)의 남쪽 기슭에 토비말로는 계모점(鷄毛店)이라고 하는, 호수가 무려 40여호밖에 안되는 자그마한 농가마을이 하나 있었다.     제시간에 임무를 다 완성하고 집결한 10명의 류자가 그 마을에서 눈을 붙이고 나서 이틑날 한창 아침밥을 먹고있는데 그 마을 저선(底線―련계인)의 아들이 달려와갖고 무장갖춘 자들 한떼가 지금 막 마을에 달려들고있노라 알려주었다.     련방대가 온걸가?…민호는 들었던 밥공기를 덜렁놓고 시급히 대처할 준비를 했다.     30여명이 마을에 달려들었다. 한데 그자들의 모양새를 보니 련방대같지 않았다. 다른패거리의 류자들일가? 민호는 불을 걸지 않고 먼저 통화해보았다.   《보보영두!》    저쪽은 대답이 없다.    자식들이 어쩌자는거냐. 민호는 응대하기는커녕 이쪽에서 내치는 소리를 듣고는 바빠라고 몸을 숨기는 그자들을 향해 다시한번 높이 웨쳤다.    《래래봉!》(주)     했더니 저쪽은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거니와 이쪽을 향해 총질을 하는것이였다. 그래서 이쪽에서도 맛불질을 했는데 대여섯이 곤두질하면서 련거퍼 쓰러지자 나머지 녀석들은 그만 에구머니야 줄행랑을 놓고말았다.     비겁한 놈들!     량공대의 류자가 그자들 중 궁둥이를 얻어맞아 달아나지 못한 녀석 하나를 찾아내여 끌고왔다. 땅딸보녀석이였는데 이쪽에서 자기를 죽일가봐 와들와들 떨면서 련신 신음소리를 냈다.    《네놈은 어느패냐?》    《나…나는, 오…오련 삼패입니다. 자, 장관님!》    《뭐라, 오련 삼패라!?》     민호는 량미간을 끌어모았다. 여기 염왕산을 내놓고야 어디에 또 그렇게 군인편제가 되어있는 큰 류자무리가 있단말인가. 모를일이라 생각을 굴리다가 그는 언젠가 송화강북쪽에 있는 소백룡비도가 가목사(佳木斯)를 쳐들어온다니 그 자들의 침입을 막기위해 의란에서 파견되여왔던 관병들이 되려 토비만 못지 않은 짓을 해서 화제가 됐던 일이 떠올라 그자를 다시여겨봤다. 지금 자기 앞에 꿇어앉아 팥죽땀을 흘려가면서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하고있는 이 작자 역시 그따위 군인이 아닌가 싶었다.    《내가 널 잠재우지 않을테니까 그 대신 묻는 말에 곰상히 대답이나하거라. 그렇게 할수있겠냐?》     포로는 믿지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민호는 자기가 방금 한 말을 한번다시 번지고나서 캐물었다.    《너희들은 어디서왔느냐?》    《연수서왔습니다, 장관.》    《연수서라…거기서 뭘해먹었냐?》    《…》    《네가 방금 오련 삼패라구했지?》     포로는 대답못하고 엉엉 울었다.    《이자식이 울긴 젠장! 솔직히 탄백해야 살려주지. 말해봐, 너희들은 거기 관병맞지.》     포로는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건데 어떻게 된거냐. 여기룬 왜 왔어?》    《영장이 우릴 시켜서…》    《영장이 시켰다? 뭘 시켰단말이냐?》    《훈련두 없이 매일 빈둥거리자니 갑갑해서…그래서 우린 견디지 못하겠다구 의견을 드렸습지요.》    《그래서?》    《갑갑하다지. 거야 내가 풀어줄 방법있지 합디다.》    《그래서?》    《영장은 우릴 군복벗고 이렇게 옷을 갈아입게 했습니다.》    《옷은 왜 갈아입혔냐?》    《우리두 나와서 료략질을 하라구요. 정말입니다. 그래서…그래서 우린 그러다가 상급에서 검사나 오면 어쩌는가구했습지요. 그랬더니 영장이…》    《뭐라더냐?》    《우릴 임무를 집행하러 내보냈노라구하겠답디다. 그러면서 우리더러 한달만 나가 토비질하다가 부대로 돌아오라했습니다. 매인당 천원 하나는 바치기로 하구.》    《빌어먹을 관병략탈!》     민호는 관병을 저주했다.          사람의 감정을 쥐고 몹시 흔들어놓은 사건이였던만 시간이  차츰가고 새사건이 생겨나니 색이 바래졌다. 염왕산을 부산하게 만든 을 꼬리물고 생겨났던 은 한달이 되자 새로 발생한 왕은경의 에 자리를 냈다. 하여 여지껏 그 장본인으로 주시되여왔던 진사해는 남의 입끝에 올라 더 씹히지 않게 되였다.     그는 근심이 풀리니 행실이 가벼워가고 있었다. 언젠가 향란이가 위로의 말을 해준다음부터일 것이다. 싸늘하게 얼어든 가슴을 그녀가 온기를 보내여 녹여주자 그는 엉뚱하게도 그것을 이성의 체온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게다가 드믄드믄 맞띄울때마다 보게되는 녀인의 부드러움과 흐트러지지 않는 도고한 자색이 점점 더 그의 눈뿌리를 빼고 있었다. 그럴때마다 희망이 거품같이 부풀어 그녀를 갖고푼 욕망이 불붙듯 하는 진사해였다. 하여 마침내 그는 저팔개모양으로 제 꼴도 보지 않는 속한이 되고말았다. 내가 언제면 저년을 품에 넣고 자볼가 하는 생각에만 달라붙다보니 상대가 때론 자기를 거들떠보지 않는데도 애절한 미련을 그냥 품은채 될수만있으면 가까이 접근하려애썼다. 가련할지경 짖꿎게.     어리석음을 깨달으면 그때는 미런한 짓을 하지 않으리라.     향란은 자기를 넘써볼 주제도 못되돼갖고 덤비는 그를 길가의 언 말똥보다도 못여겼다. 그러면서도 그런 내색을 전혀 표면에 나타내지 않았다. 그녀는 속으로만 웃었다. 이 못난 수캐야 너도 암내에는 견디지 못해 발정하겠지. 내가 곁을 좀만 줘도 바지에 오줌쌀 놈이로구나. 난 네놈이 경각심풀고 내흉한 본심을 드러나게 만들자는거다. 그러느라 너를 우선 내 치마자락에서 맴도는 얼치기로 만드는거야.      이러다보니 어느덧 미묘한 삼각관계가 이루어졌다.     진사해도 머저리는 아닌지라 민호와 향란의 관계를 조심스레 관찰하면서 자신의 언동을 십분 주의했다. 그는 향란의 앞에서는 민호를 평가하거나 헐뜯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되도록 민호와는 마찰도 피면하려했다.     하지만 본심이야 어찌 개변하랴. 그러던 그가 어느날 조용한데서 민호를 대하고 보니 감정이 나서 끝내 정적을 깨뜨리면서 제 심태를 드러내고야말았다.    《여봐 벼슬운이 열린 것 같은데 내가 축할 하지. 어떤가?… 그리구 아마두 만난김에 일깨워주겠어. 이란 말 있잖아. 너무 그러지 말라구.》   《건 또 무슨소린가?… 쇠통 남알아듣지두 못할 말만 하니 원!》    《그것두 못알아듣겠나. 남 리간질해서 쌈붙이지 말라는거야.》      네 녀석이 갑자기 이건 또 무슨소리냐? 민호는 자기 앞에서 웃음을 느긋이 흘리면서 위협적인 교기까지 부리는 그를 마주쏘아봤다. 인(忍)자의 마음심(心)위에는 칼(刃)이 있다. 민호는 불집이 났지만 참아야했다. 의문이 신경을 오리오리 끄당겼다. 대갈통을 갈라치울  녀석이 어떻게 냄새맡고 이럴가?… 조사하고 밝혀내야했다.    민호는 저녁켠에 하진국이와 왕견을 불러놓고 이 일을 말했다. 그랬더니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이 일은 틀림없이 반장인 위진의 작간이리라 했다. 진사해가 전에 은괴와 사이가 가까웠던것 처럼 지금은 위진과 점점 더 가까워지고있다는거다.      민호는 그런줄을 미처몰랐다. 그래서 요즘도 위진이보고 진사해는 너희들 허저인의 원쑤란걸 잊지 말라, 너도 허저족이 아니냐, 그런자를 그냥 형제로 여겨줌은 제 민족에 대한 배반이라는것을 알라고 일깨워줬던거다. 네 충고가 옳다며 머리를 주억거리던 위진이 아닌가. 그러던 그가 변심했단말인가?    민호는 사람이 틀려먹었다고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랬더니 이쪽 둘은 그가 저들의 말을 믿지못해 그러는줄로 알고 펄쩍했다.   《하하 이거! 넌 아마 그 사람이 반장이래서 맹산군 호백구를 믿듯 되게는 믿는모양이구나. 이눔의데서는말이야 오늘 반강자 오늘먹구 오늘취사는 사람은 래일을 생각안하는거야. 누가 잘만 긁어주면 좋아서 따라웃어주지. 위진이가 바로 그런 사람으루 돼버렸어.》     왕견이 제법 식견넓은 사람모양으로 뚱겨주는것이였다.     민호는 그런소리를 듣고보니 내가 아닌게아니라 그자를 너무 경솔히 믿었구나 하는 후회가 썰물같이 가슴에 밀려들었다. 그자의 배신은 모멸감을 던져주면서 그를 격분케 만들었다.    이대로는 참고 묵색일수 없어서 그는 곧 위진을 찾았다.    위진은 남쪽산채에서 얻어온 강아지에다 딸랑방울을 금방달고나서 손을 씻고 있었다.   《위반장 내 좀 봅시다.》    대방의 차가운 낯색을 대하자 위진은 얼굴에 금시 피여오르던  웃음기를 거두면서 긴장해하였다.   《나하구 할 말이 뭐여?》   《저기 조용한데루 가서…》    그를 밖으로 불러내다놓고 민호는 직방따지였다.   《내가 위반장하구 한 말 진사해한테는 왜 번졌습니까?》   《엉? 저, 저 그걸 나쁘게 생각말구. 저…》    위진은 말을 꺾어먹었다.    개같은 자식! 뒤가 켕기니 이 꼴이구나, 때려죽일놈의 새끼. 민호는 속에서 울화가 왈칵 치밀었다. 내가 널 그래도 속대 좀있을 인간이리라 여겼으니 어리석었구나. 자조끝에 그는 이전의 모양으로 또다시 증오가 괴여오르기 시작했다.    상면에 난감한 빛을 피운 위진은 몸가짐도 떳떳치 못했다. 떳떳이 가꿀 수 없었다. 민호는 주대없이 발거리를 놓아 남을 함정에 밀어넣으려 든 그를 속으로 넌 과연 돼지보다 더 미런한 놈이구나 하고 욕하면서 추호도 양보하지 않으리라 별렀다.   《나더러 그걸 나쁘게 생각말라구? 그래 내가 위반장이 놀아대는 꼴을 곱게보란말인가?》    《이봐, 민호! 여기 염왕산에서야 우린 다 형제간이 아닌가. 그러니까…내 아무리 생각해봐두…서로간 등지고 지내는건말이야…그러믄 좋은거같지를 않아서. 그래서 난…정말이네…백장도 칼을 놓으면 그 자리에서 성불을 하는거야. 안그런가. 진사해 그 사람말이야 내보게는 자네말하는거같이 그렇게 나빠보이진 않아. 악한은 절대아니란말일세.》   《걷어치워! 그런 말 어디서 나오는거요! 악한아니면 그래 그가 부처님이란말인가? 한심하지 그사이 마음이 이렇게 까지 앵돌아지다니 원!》    민호는 돌연히 괴덕부리는 그가 뺨을 갈겨놓기싶도록 가증스러워 한마디만 내뱉고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더 말해서는 뭘 하랴. 위진은 이미 변심해 다른 하나의 독충으로 돼버린데야. 믿는 남에 곰이 핀다더니 아마 이런걸 두고 하는 말이겠지. 그들은 어느덧 개와 원숭이처럼 사이가 나빠지게 돼버렸다.         그로부터 썩 지나 어느날. 전부터 위진이 놀아먹는 꼴을 밉게 보아온 왕견이 민호를 두둔하면서 곪아온 제 속을 많은 새다들 앞에다 텃쳐놓고야말았다.     《여 위진이! 우린 그래두 네가 반장이라구 존경해주는데 그게 뭐야. 자길 믿구 한 소릴 남께 고해바치다니 원. 그게 어디 사람이 새끼가 할 짓인가. 임마, 메뚜기두 낯짝있구 벼루기두 이마빡이 있는거야. 그런데 너는?… 량심은 떼여서 개를 줬느냐, 던져버렸냐?…피자똥에 미끌어 소똥에 코나 박고 뒤여질 놈!》     이 자식이 왜 이래? 다짜고짜 퍼질러대는 욕설에 위진은 그만 억이 막혀 낯색이 하얗게 질렸다. 해도 그는 감히 맞다들지 못했다. 량쪽다 목숨잃을 위태로운 혈투는 말아야했다. 대방의 성미를 잘 알고있는 그는 자신을 달래며 참는 수밖에 없었다.      외손벽이 소리나랴. 한쪽에서 욕을 먹고도 잠잠하니 왕견도 제똥에 물러앉듯이 그저 그쯤하고 만다.     묘동(猫冬)이 돌아왔다. 이것은 류자들이 산채를 떠나 겨울을 나는 휴가일인데 이때가 염왕산의 한량(閑良)들로 놓고보면 제일 자유를 부리며 놀아보는 즐거운 기회이기도했다. 그래서 그들 모두가 묘동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린거다.     민호는 이 기간에 진사해를 없애치우고 조선으로 내빼는게 어떨가 궁리하다가 거둬치웠다. 그런다면 그 하나만을 처리 할 뿐 가철군은 살려주게 되며 잃어진 안해는 더 찾기 어려운 것이다. 내가 지금 가버릴수 없다. 네놈하구는 소금이 쉴때까지 해볼테다. 민호는 장구지계를 세우고 계속 지긋이 눌러있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오동하를 훑고나서 변비에 있는 그 궁상스러운 어래무에 갔다 온 일을 다시상기했다. 사위가 홀연히 나타나자 일희일경 어쩔줄을 몰라하던 허저인장모, 여지껏 토비노릇하다가 온다니 놀래여 낯이 대리석같이 새하얘지던 아낙네들, 눈을 흡뜨면서 사냥총을 찾아쥐던 처남 나쟈… 그때 차라리 그네들한테 따귀를 한 대 얻어맞던지 아니면 한바탕 된 욕이라도 먹었더면 좀 후련하련만. 버리지 못하는 죄책감이 늘 그를 시달리고 있었다.     그는 올 묘동때는 한 번 품놓고 찾아보리라 작심했다.    《올겨울은 크게 행사없으니 여러 형제들은 많이 산채밖에서 지내도록합세. 집이 있는 이는 제 집으로 가고 제 집이 없는 사람은 친척을 찾아가구 친척도 없는 사람은 기생을 찾아가던지 유곽을 찾아가던지 아니면 벌이를 더 하던지 맘대로들하게. 이왕년과 같이 사월보름이 귀일이니 명심들을 하게.》     위삼포는 이같이 묘동을 선포하고나서 주의사항 몇가지를 강조한 후 산채를 지킬 류자 60여명만 남기고 그외는 다 내보냈다.     올겨울은 가마를 마스느라 죽음을 무릅쓰고 위태로운 싸움을 하지 않게 된 류자들은 저마다 불룩한 돈주머니를 차고 산채를 나간다. 처자가 있는 사람은 집으로 곧추가지만 집도 처자도 없는 독신들은 거의가 자기가 보아둔 계집을 찾아간다. 독신류자가 좋아하는 그런 녀인들을 접기녀(接技女)라 했다. 뜻인즉 한때를 끼고 살아보는 계집이라는거다. 그런 녀인들 중에는 제 남편이 있는 것이 적잖았는데 그 남편이라는 것도 집을 나가 뜬벌이를 하거나 풍각쟁이노릇을 하거나 아니면 비라리를 하면서 녀편네가 그사이 다른 사내와 붙어지내는것쯤은 대수로와하지 않았다. 지어 묘동기간에  돈벌이가 된다고 여겨 일부러 제 녀편네를 토비와 붙이는 자들도 적잖았다. 맡아놓은 접기녀도 없는 류자들은 우리야 알짜떠돌이가 아니냐. 해태자(주)를 보던지 라방토우(주)를 살던지 해보자며 자유만세를 불렀다. 묘동기간에 야회(주)를 꾸리여 목돈을 쥐거나 번 돈을 가랑잎날리듯 싹 다 날려버리는 자도 있었다. 그런 사람을 방태자라 한다.     왕견이 민호에게 물어보는것이였다.    《동생은 또 제 각시찾누라 팔방돌이해얄테지?》   《그래야죠. 건데 원쑤갚으려다 새원쑤 하나 더 생긴건 어쩌오.》    《그게 뭐 대순가. 메뚜기 류월한철뿐인걸 몰라.》    왕견이 이러면서 눈웃음치는데 그 웃음에는 어느덧 소름끼치게 하는 음험한 살기가 번득이고 있었다.    이번에는 민호가 그한테 물어봤다.   《왕형은 올 묘동에 뭘하려우. 또 접기녈차고 놀테요?》   《나 올 묘동에는 그럴생각이 없어.》    그의 말끝을 하진국이 이었다.   《왕형은 나하구 목재판으루나 류송장으루 살아볼 생각이요. 위진이 그 자식 돈 더 벌어보자구 그런데루 찾아간다나.》    오 그런가, 인제보니 네 녀석들은 속궁리가 달랐구나. 민호는 야수가 사냥물을 뒤쫒고있음을 감촉했다.    묘동기일이 음력 4월중순까지니 그때면 류송철이기도해서 벌목일이 끝나면 다시 류송장을 찾아가는 류자가 적잖았다.         장백산에는 홍송, 백송, 들메 등 여러종의 귀중한 목재들이 많았다. 하기에 그곳은 겨울이 되면 벌목군들이 구름같이 모여들군하는데 염왕산이나 다른 패의 류자들이 겨울 한철을 보내는 좋은 은신처이기도했다. 떼돈을 바라는 류자들은 다가 로동조합에는 들지 않을 것을 조건으로 하는 고용계약을 맺고 산에서 지낸다.     운수도구가 그닥잖고 교통이 발달하지 못하다보니 베어낸 목재는 거의가 압록강과 두만강, 혼돈강 등 크고 작은 물길에 의하여 각지로 운송되는데 봄에 뗏목문이 열릴 때면 제일분망했다.    듣는말에 의하면 림강(臨江)으로부터 안동(安東)에 이르는 구간에 험구가 무려 9881곳이나 되여 뗏목이 그런 험구를 지날 때면 귀신이 늘 사람의 목숨을 빼앗각질한다고 한다. 그런다고 물목을 열어 뗏목을 놓을 때면 본영의 지배인은 뗏목장들에게 돼지를 잡아 제까지 지내면서 한 패 한 패씩 보내는데 그 장면이야말로 짜장 장엄한 생리사별(生離死別)의 시각을 방불케 하는것이다.     류송군들은 뗏목이 물길을 따라내려가다가 험구인 물목에 이르러 뗏목이 암초에 걸리는 것을 제일무서워한다. 그러기만 하면 물목이 막히는 통에 뒷따르던 떼목이 앞의 뗏목을 올라타고 앉아 그만 산더미처럼 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문 그런 곳만 맡아보는 자가 따로 생겨난건데 그것을 주관하는 자 대부분이 꺾지손이 센 토비출신의 류자였다. 따라서 그런 장애를 전문풀어주는 사람가운데도 또 더 고급적인 기술자가 있기마련인데 그런 사람을 《줄밥먹이》라 불렀다. 한데《줄밥먹이》는 물론 토비출신의 류자가 독점하는 막벌이벼슬자리기도했다.     물길을 따라서 내려오던 뗏목이 암초에 걸리게 되면 험구를 지키는 주인이 인차 《줄밥먹이》를 부른다. 그래서 량자간에 협약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4백원이다. 누가 해보겠는가?》   《…》   《5백원!》   《…》   《6백원!》   《내가 할테요.》    대개 이런 식으로 나설 사람이 정해지는거다.    기실 덧쌓인 그 많은 통나무가운데서 걸린 놈은 한두가지다. 하니까 그것만 뚜장질해 벗겨놓으면 문제는 대개 해결이 나는거다. 그런데 작업상황만은 상당히 위험해서 자칫하면 걸린데를 풀어놓았지만 제 몸을 미처 피하지 못해 무너져 내리는 뗏목에 깔리거나 치이거나 찟겨져 눈깜짝새에 분신쇄골이 되고마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하길래 이 일을 혼자서는 절대못하는거다.    바로 이같이 위험한 작업을 담대한 왕견이 맡아나섰다. 그는 누구보다 경험이 많았던것이다.    그는 뗏돈을 나누어 갖기로 하고 함께 간 염왕산류자들로 조를 무었다. 그 속에 반장 위진이도 끼이였다.    류송은 압록강이나 두만강, 혼돈강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였다.    송화강으로도 하는데 이듬해 봄에 이 강의 상류에 있는 한 물목에 뗏목이 걸려 층집같이 높이 쌓여 그것을 풀어줄 사람을 찾고있다는 소식이 날아왔다.     왕견은 그 소식을 접하자마자 곧 선손을 썼다.    자기 패를 데리고 거기로 간 그는 정황조사가 끝나자 곧 일에 달라붙었다. 왕견은 다른사람들 보고 이제 나무가 무너져내리거든 여차여차하게 행동하라 시키고나서 자기는 따로 하진국이와 위진을 데리고 나섰다.    그들 셋은 다가 손에다 길이가 3메터가량되는, 끝이 창과 갈고리로 만들어진 장대를 들었다.    자뜩 불어오른 물이 뗏목사이로 폭포같이 쏟아져내리고 있었다.    뗏목밑에 바투다가간 왕견은 밑부분에 깔려있는 통나무들을 하나하나 자세히 검사했다. 그러다 그는 마침내 물밑에 삐죽히 올리민 암초에 걸려있는 놈을 찾아내고야말았다.   《어이 위반장, 여기루 오라구. 이거 나혼자는 될거같잖아.》    저쪽에서 걸린 놈을 찾느라 여념이 없던 위진은 자기를 부르는지라 그리로 갔다.    왕견은 그와 함께 쇠장대로 든장질해 마침내 걸린 놈을 풀었다.    물목이 갑작스레 터져 폭포마냔 쏟아지기 시작했다.    왕견은 거기를 뛸쳐나오느라 장대기를 돌리는 순간 위진이 딛고 선 통나무를 살짝 건드려놓았다.    위진은 통나무에서 미끌어 떨어져 물에 빠지고말았다. 그는 나오려고 허우적거리다가 통나무를 끌어안았다. 하지만 이때는 와르르 무너져내리는 무수한 통나무들이 그를 깔아놓아 그만 형체도 없게 만들어놓고말았다.    누가알랴, 그것은 정상적인 사고로밖에 보이지 않은데야.    위진은 이렇게 눈깜짝새에 아까운 목숨을 잃고말았다.        묘동이 끝나서 나갔던 류자들이 산채에 다시모였다.    민호도 돌아왔다. 한데 그는 이번에도 헛수고만했다. 넓디넓은 이 관동땅에서 잃어진 안해를 찾는다는건 그야말로 북데기에다 떨군 바늘을 찾는 격이였다.    그와 왕견 그리고 하진국 셋은 한자리에서 조용히 다시만났다.   《그 녀석을 빼버렸다니 속시원하구만!》    민호가 하는 말에   《앓던 이 빼버린것만큼이나 시원할거야. 그렇지.》    하진국이 동을 달았다.   《한녀석 더 있잖아. 그녀석마저 빼버려야 시원할건데…》   《진사해말이지. 그녀석두 빼버릴 날이 있을거다.》    왕견은 이러면서 속담에도 구두쟁이 셋이 모이면 제갈량을 당한다고했잖안냐했다.    셋은 웃었다. 그리고는 음험하고 유쾌한 살인을 상상해보았다.     《보복》이 곧 시작되였다. 이것은 매번 묘동이 끝나면 련이어서 뒤따르는, 산채에서는 아예 명문화되다싶히 빼놓지 않는 중요한 행사이기도했다. 어떤 류자들은 묘동기간에 경찰에 잡히우고마는데 은어로는 그것을 《발이 떨어졌다》고 한다. 그렇게 된 자를 보면 거개가 취중실언을 한 탓이였다.    관방에서 토비를 대처하는 수단역시 간단치 않았다. 어떤 류자들은 경찰에 잡히워갖고는 그들의 호된 고문을 당해내지 못해 끝내 내부의 비밀을 루설하거나 제 동료를 팔아먹고만다. 그래서 목이 날아나는 자가 한둘이 아니였다. 그런자들을 상대로 해서 벌리는 류자들의《보복》은 보통 한달내 ...............................................................................................................................    * 야화요ㅡ강간.     * 상탁ㅡ행동에 배합함.  * 깃대를 꽂다ㅡ마사버릴 기와가마를 정탐하여 결정하다.    * 압련자ㅡ말을 놓아 먹이다.  * 뿌려주다ㅡ털리우다.  * 보보만ㅡ너의 성을 대라.  * 랑비ㅡ떨돌이 류자.    * 화방자ㅡ홍표, 꽃인질, 무른 인질이라고도 하는데 녀성인질을 가리킨다.  * 첨자만ㅡ정씨(丁氏)     * 보보영두ㅡ두령이 누군지 대라.  * 날쏘시개ㅡ탄알.  * 오복자ㅡ똥집.  * 범계ㅡ토비들의 관할범위.    * 래래봉ㅡ어디서 왔느냐.    * 묘동ㅡ류자가 산채밖을 나가서 겨울을 지내는 일.  * 해태자ㅡ기생. 갈보.    * 라방토우ㅡ남편있는 녀인과 한집에서 사는 노릇.  * 접기녀ㅡ한시기 얼마간 끼고 살아보는 계집.    * 야회ㅡ본래는 밤에 하는 모임. 특히는 서양풍의 사교모임인데 여기서는 도박판으로 쓰였음.  에 끝내는데 방법은 여러 가지다. 두령은 우선 수하의 새자들을 점명하여 오지 않은 자가 누군가를 알아보고 그가 오지 않은 리유를 조사한다. 그래서 묘동기간에 그가 경찰에 붙잡혔다면 어떻게 되어 붙잡혔는가? 붙잡히운게 제 잘못인가 아니면 다른 누구가 물어먹어서인가? 네가 잡혀서는 누구를 물어먹었는가?…그래서 제 형제를 해친자가 나지면 그 어떠한 방법을 써서든 붙잡아 목을 잘라 원쑤를 갚아주었고 내부의 비밀을 조금이라도 루설했거나 변절한 자가 있어도 역시 추호도 양보없었다.    산채로 돌아왔으면 만사필인것이 아니였다. 묘동기간에 산밖을 나가서 의리를 버리고 배신하고서도 자기의 행실을 감추자고드는 자가 있는 것이다. 하길래 두령들은 묘동후 《보복》이 끝났다하더라도 갖은 수단과 방법으로 계속해서 개개인의 뒷조사를 하고 마무리짓는 것이다. 대오를 정리하는 이 일은 이같이 신비하면서 무시무시한 음영을 던져주면서 산채의 명줄을 지켜나갔다.     왕견이나 하진국이나 민호나 다 이러한 환경속에서 무사히 지냈다.            
134    장편소설 <<관동의 밤>> 제1부(15) 댓글:  조회:2476  추천:0  2015-02-03
                       15               황보재의 죽음은 염왕산에다 풀기어려운 수수께끼 하나를 만들어놓았다. 그도 다른날이면몰라도 공교롭게도 딱 서은괴가 처형된 날에 그도 죽었거니와 그 죽음이 너무도 이상했던 것이다. 황보재는 왜 죽어야하고 흉수는 누구일가? 어떤 사람은 민호라느니 어떤 사람은 진사해라느니… 저마다 생각나는대로 짚어댔다. 그런데 뽐창을 보면 그것은 다른 누구의것인게 아니라 바로 황보재 그 본인의것이니 더욱 이상했다. 황보재가 제 뽐창으로 자결했단말인가? 무엇때문에?…아무리 생각해봐야 그럴 리유가 없는 사람이였다. 그렇다면 이것은 타살이란말인가. 십중팔구가 그런 것 같기도한데 그렇다면  살인자는 대체누구일가? 추측과 의논이 백출하는 중에 진사해를 살인혐의로 짚는 사람이 점점 더 많아갔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의심에 불과 할 뿐 그렇다고 꼬집을만한 근거도 없었던것이다. 게다가 진사해본신도 자기는 절대 살인을 하지 않았다고 나선다. 그는 자기가 술을 마시자고 장령감의 후근사양실에 갔는데 마침 황보재가 느닷없이 나타나 말도 없이 남먹자고 부어놓은 술을 다 마셔버렸다 그리고는 그결에 그만 취해버렸다 그런걸 자기는 제자리에 눕히려고 부축해갔을 뿐이라 자변하면서 완강히 나섰던것이다. 다가 알다싶이 그와 황보재는 자별한 사이였다. 본인의 말마따나 어느때보나 둘은 다정한 사이요 마찰이란건 없었는데 무슨 리유로 친구를 죽인단말인가?… 리유가 이러한즉 진짜흉수는 과연 그가 아닌상싶기도했다. 그렇다면 그를 죽인게 누구란말인가? 사이가 줄곧 나빴던 정민호란말인가? 말을 들어보니 그도 아니다. 사자가 뽐창을 맞은 그 시각에 민호는 분명 제 숙사에서 잠을 잤다하지 않는가…    이것은 향란이 하나만을 내놓고는 귀신도 모르는 일이였다.         이렇든 저렇든 의심의 대상으로 지목되고 있는 진사해는 눈에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자기를 사멸의 궁지에 빠뜨려 넣고 있음을 깨달으면서 이 험악한 수렁에서 빠져나오려고 버둥이쳤다.     많은 새자들이 이제 더는 그를 친근하고 부드럽게 대해주지 않았다. 만나면 인사도 없이 딴눈으로 보면서 경계하기 시작했다. 따돌리우고있음이 분명한데야 어찌 기가 죽지 않으랴. 이제는 꾀도 지혜도 핍진해 거의 탈진상태에 빠지나답지 않은 그는 우거지상이 되고말았다. 이러한 형편에서 안달고 당황하기도 한 그는 에라 한 번 죽지 두 번죽겠냐하면서 차라리 달아나버릴가고 생각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막궁리도 잠시였을 뿐. 하늘에도 땅에도 그가 숨어버릴데라곤없었다. 악마가 못찾아내는 것을 위삼포는 찾아낼 것이다. 일단 달아만난다면 그건 제 스스로 죄를 승인하는것으로밖에 안되는 것이다. 그러면야 목숨은 다 살려낸게 아닌가.          불한당이 악행을 하기는 천만쉬운것이였다. 이거 내가 악한짓 너무해서 홀벌로 죽지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나기도 하는 진사해. 그는 올해만도 무고한 사람을 둘이나 죽이였다. 봄에 황보재와 같이 목단강쪽으로 쟁반밟으러갔을적이다. 둘은 가다가 한 곳에 이르러 저기 앞에서 만삭이 되어 배가 남산만큼한 임신부 하나가 뚱기적거리며 마주오고있는 것을 발견했다.     진사해가 입을 먼저열고 지벌이였다.   《보재, 저것봐라. 저년의 배속에 뭐가 들어있겠냐?》   《아따 임신부의 배속에 뭐가 들었겠소. 사람의 새끼가 들었겠지아무렴 두꺼비가 들었겠소.》   《아니다. 내 말은 그게아니구 저년의 배속것이 남자겠냐 녀자겠냐 그거다.》   《오―나더러 그걸 알아맞히라는거요.》   《그렇다. 네 투시력이 어느정돈갈 오늘 시험쳐보자꾸나.》   《투시력시험이라. 그렇다면 가만있자…그렇지! 남자야!》   《아니다. 녀자야!》   《남자요!》   《녀자다!》   《남자란데두그러네. 배가 물항아리만한걸 보란말이요.》   《쳇! 알긴 잘안다. 그럼좋다. 네 말이 맞는가 어디볼가.》    진사해는 서슴없이 권총을 꺼내여 단방에 그 임신부를 쏴죽이고칼로 배를 갈라 태아를 끄집어냈던 것이다.    그 다음번은 연수쪽으로 쟁반밟으러 갔을적이다. 그때도 그가 황보재와 같이가게 되였었는데 그번에는 가다가 길에서 도붓장사를 하나 만나게 되였다. 그날도 진사해가 말을 먼저끄집어냈다.   《보재야 저녀석봐. 저녀석 돈 많겠냐 적겠냐?》     《저 따위가.... 가랑잎에 똥싸먹을 장사꾼인데두?》   《그래 두 내 가질거야있겠지.》   《그렇다구 털겠소 째째하게스리.》   《챠 이거, 그놈의 입에서 별소리 다 나온다. 날 째째하다니. 네가 그래 어느때부터 보살이됐냐.》   《내가 보살루돼서가 아니라…혼자길가는 사람이나 중이나 장돌뱅이따위는 건드리지 않기루돼있지 않소. 아무리어째두 규률이야 지켜야지.》    《규률은 무슨눔의 개나발같은 규률이야. 위삼포는 쓸데없는 그따위거나 만들어 제 사람의 손을 묶어놓고있지 뭐야. 그런다구 백성들이 우릴 착하다구할가. 우린 정인군자가 아니구 토비야, 토비! 본직이 살인하구 빼앗각질하는 강도란말이야!》    이러면서 진사해는 그 도부상을 잡아세워놓고 몇푼안되는 돈을 말끔히 털어냈다. 그리고는 그가 자기의 눈두덕에 난 흉터를 보았으니 아무때건 소문이 나서 시끄러우리라 여기고는 아예 그 자리에서 죽여버리기까지했던 것이다. 산채에서는 호인풍의 사나이란 평을 받아온 그가 밖에 나와서는 바로 이러했다. 자기가 간담상조하게 된 사람이 실은 사람을 파리잡듯해온 진짜살인광임을 황보재는 미처몰랐던것이다.. 그가 청보산패에 있을 때였다. 사람의 생간을 먹으면 처음은 눈이 빨개졌다가 점차 파래지면서 나중에는 해리의 눈처럼 밝아진다는 말을 주어듣고는 거울까지 갗춰놓고 들여다보면서 련거퍼 다섯사람이나 죽이고 간을 빼먹었다. 온 관동땅을 들썽케했던 《당벽진참안》을 빚어냈을 때는 방향잃고 헤매는 나젊은 조선독립군전사를 붙잡아 그 자리에서 머리를 깨고 대골을 빼먹었다. 그런짓을 했길래 그는 민호를 볼때마다 자기가 그때 저질러놓은 죄행이 다시금상기됐고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기분이 잡치군했다. 한 것은 눈이 밝아지기는커녕 그후부터 이뿌리가 통세나는 무서운 병만 얻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따위짓은 다시는 하지 않고있는건데 어쩐지 민호가 자기를 뒤쫓고있는 독립군의 유령같기도해서 내가 과연 아무때건 저놈의 손에 잘못되지 않을가 하는  무서움에 가슴이 떨려나기도했던것이다.       산채에는 전에 진사해의 절름발이 할애비가 다 호적질을 해먹었다는 사이비한 얘기가 나돌아 심심해죽자는 류자들의 무료증을 풀어주고 있었다.    전에는 로씨야에서 정배살이하는 죄인들이 적잖게 변경지대에 몰려와있으면서 그곳의 한인(漢人)도적과 배가 되어 료략질을 해먹었다. 한데 그 이방인들은 동양인과는 유전인자가 달라서인지 거의가 붉은 수염이 얼굴을 덮고 있어서 퍼그나 이색적이였다. 그렇다해서 항간에서는 그자들을 몰잡아 홍호자(紅胡子)라불렀다. 수염이 붉은 마적이라는 거다.    함풍(咸豊)년간(1831년ㅡ1861년)에는 악질토호들이 사사로이 검객을 모아 그들이 붉은수염을 달고다니면서 백성집을 털게 했다.    진사해의 할애비도 그렇게 살고싶었다. 그런데 사지가 남처럼 성하지 않고 절름발이가 돼놔서 처음에는 퍼그나 고민했다. 내가 왜 이렇게 병신이 됐느냐고 신세를 한탄하기도 하고 팔자를 원망하기도했다. 그러면서도 다른 어떤 벌이로 생계를 유지하고푼 맘은 없어서 머리통을 다시굴려본 끝에 결국은 일확천금을 꿈꾸고 나도 한 번 홍호자노릇을 해보자고 맘을 먹었던것이다.    민호가 있는 산채의 류자들이 그를 입길에 올려놓고 굴리였다.   《어떻게 했는질아나. 그도 붉은 수염을 만들어달았대.》   《절름발이가? 그리구는?》   《그리구는 길목에 앉아서 지켰지 뭐야. 그리구있다가 지나가는 행인이 나지면 하구 고함을 쳤다는구나.》   《그래서?》   《그래서 어쨌겠나. 행인은 하면서 화뜰놀라는건 사실일거구.... 그러면서도 내빼려구하지.》   《그러겠지. 아무렴 다리각이 졸아붙었다구 그저 당하기만 하겠냐. 우선 달아나구봐야지.》   《체, 달아나? 그게 그리쉬울가. 이쪽은 한단말이야. 그가 절름발인걸 아는 사람이면야 어디…문제는 그런 경우를 당하면 거개가 쥐나 토끼새끼모양으루 담이 작아지는데 있는거야. 안그래? 행인은 그눔의 으름장에 넋담떨어져서 그만 꾸레미를 팽가치구 걸음아 날살리라 이거야.》   《하하하하…》    모두들 귀맛당기는 이야기가 소가지를 간지렵혀서 웃어댔다.      한쪽에서 꿩망태를 틀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볼만장만 듣고만있던 민호가 한마디 참견했다.   《쓴오이덩쿨에 쓴오이밖에 달릴게 있나. 원체 종자가 나뻐.》        염왕산은 주위의 골짜기에 곡식밭 뙈기들이 있어서 그런지 꿩도 많고 자고새도 많았다. 민호는 때로는 살구씨를 구멍뚫어 우레를 만들어 그것을 켜서 꿩을 얼려잡기도했다. 여기는 잡아먹을만한 새가 적잖았다. 하건만 민호 한사람을 내놓고는 웬 일인지 술먹고 육담이나 했지 손꿉을 놀려 그런걸 잡아먹을 궁리를 하는 사람이라곤 거의 없었다. 언젠가 그런 짐승을 잡아먹으면 묘동때 좋지 않다는 소릴들었는데 아마 그래서 그모양인것 같았다.      민호가 꿩망태를 방금 다 만들자 밖으로부터 말소리들려왔다.   《위아가씨 오셨구만! 민호형을 찾겠죠! 어서들어가시오!》   《그이가 있나요. 있으면 얼른 나오시라해요.》    향란이가 날 왜 또 찾을가? 민호는 들어와 이르기전에 나갔다.    둘은 북쪽골로 향했다.    이런 조용한 만남이 민호는 좋았다. 아느새 가다가 그가 먼저 황보재의 괴이한 죽음에 대해서 말을 꺼냈다.   《황보재가 왜 그모양으루 죽었는지 참…아무리 생각해봐두 귀신이 곡할일입니다.》   《그게 그리두 이상한가요.》   《이상하잖구요. 그게 그래…》    민호가 머리를 살살 젓는걸 보고 향란이는 웃었다.   《그깟일같아나 머리앓지 말아요. 거치장스럽던 혹을 떼버리면 홀가분할거고 그 사람 없어지니 마음 더 편하잖아요.》   《하기야 그렇습니다만… 날 내놓구서는 여기서 그하구 척지은 사람이 없는줄로 알았는데 그런 흉사가 생겼으니… 대체 누가 뭣땜에 그랬는지 그게 의문스럽기만해서.》   《그걸 그리두 알고푸나요?》    향란이는 민호를 말끄러미 보면서 입가에 실웃음을 그렸다.     민호는 이제야 짚혀지는지라 걸음을 뚝 멈추고 서서 그녀를 다시 눈여겨봤다.    향란이는 고개를 외로 꼬았으나 더는 숨기려 하지 않았다.   《이젠 아버지께서도 알고계셔요. 보재는 내가 빼버렸어요.》   《뭐라?!…》   《내가 빼버렸어요. 왜요. 잘못됐나요?》   《난 위아가씨가 그렇게 독할줄은.... 지난날정을 봐서두 어찌…》   《그걸 모르는 내가 아니얘요. 하지만 죄없는 목숨이야 건지고봐야지. 안그래요.》    향란이는 이러면서 어느날 밤 보재가 취중에 한 짓을 알려줬다.     보재가 그렇게까지 됐단말인가. 자칫하면 내가 소리한번 못쳐보고 죽을번했구나. 민호는 그녀가 자기를 살리기 위해 손을 먼저쓴 것을 알았다. 한데 안도의 숨은 나가나 민호는 그녀한테 고맙다는 말은 하고싶지 않았다. 어쩐지 맘이 그리 석연치않았던것이다.    얼마간 틔여진 골안. 여기는 면적이 10여헥타르되는 콩밭이 골을 따라 길게 누워있었다. 그리고 해마다 풋것을 먹느라 후근의 부지런한 류자들이 강냉이를 심어놓은 자그마한 뙈기밭도 있었다. 곡식밭이 이같이 있으니 짐승이 모여들기마련이다.    오늘도 공탕은 아니다. 그사이 콩밭머리에 놓고갔던 착고에 자고새 한 마리 끼여 있었다. 민호가 그것을 벗기자 향란이가 제꺽 받아들고 보면서 좋아했다.    《우릴 행복하게 해주느라 찬거리생기는모양이네. 어쩔가요. 오늘 저녁상도 제가 차려야겠죠. 같이 조용히 몽두춘도 하고요.》   《그러지. 좋은 안주에 반강자없는 식사는 멋없지요. 난 아가씨가 아주 깔끔한 주부같아서 좋네요.》    민호는 흔연히 동의하고는 하하 웃었다.     가을절기가 바야흐로 끝나가고있는 조용한 골안에는 기분이 한결명랑해진 이들 두 사람이 간단없이 주고받는 말소리뿐이였다.     민호는 갖고 간 착고를 마저 다 놓았다. 그리곤 산채로 돌아가려고 향란이보고 자고새를 넣은 꿩망태를 달라해서 어깨에 멨다.   《뭘 그리급해해요. 좀 놀다가자요.》    향란이는 말라가는 풀을 깔고 앉았다. 몇 번 일깨워줬더니 지금은 몸가짐이 이전과 완연히 달랐다. 그의 앞에서는 전혀 오만을 부리지 않거니와 몸가짐도 퍽 조심했다. 그녀의 몸매는 단아한 용모에 어울려 한결 매력이 있었다.   《꺼겅―꺼겅―》    어디선가 장끼의 울음소리 들려온다.    향란이는 일어나 사방을 둘러보곤 얼른 제자리에 도루주저앉는다. 사내가 멘 꿩망태를 슬쩍 건드려놓고. 윤기도는 그녀의 눈동자에는 긴 눈섭이 요염하게 그림자를 떨어뜨렸고 미소를 머금은 입술은 감추지 못할 욕정에 빨갛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처녀가 늙으면 망짝지고 산에 오른다더니! 민호는 속으로 뇌이면서 그녀를 다시봤다. 오빠가 기생을 안해로 맞아들이면 자식을 못봐 위씨가문은 대가 마를거라 근심하던 녀인, 그러면서도 저는 평생 아이를 낳지 않으리라 결심까지 내렸다는 녀인―전에 엄마의 늙은 녀종이 남겨놓고 간 밀방으로 약을 써서 자신을 스스로 불임하게 만들어버린 이 돌계집은 내놓고 말은 하지 않지만  실은 이성지간의 육체결합을 가장 즐거운 오락으로 여기고 갈망하는 성애주의자(性愛主義者)였다. 그리고 그녀는 출중한 무예와 더불어 나무릴데 없는 글래머 걸(glamour girl)― 육체적으로 아주 매혹적인 녀인임에 틀림이 없었다.    민호가 그녀의 정부라는건 이미 공개되나답지 않은 비밀이였다.    사나이가 망설이는 것 같자 녀인은 꿩망태를 다시한번 건드렸다. 민호는 오늘만은 그러고싶지 않았다. 어쩐지 잃어진 안해에게 미안하고 여지껏 찾지 못해 죄를 짓는것만같아서. 안해를 꼭 찾겠다며 떠난 녀석이 여기에 갇혀 멀쩡하게 해를 거듭넘기면서 공전만하고 있었다!     향란이는 민호의 이러한 속내를 제꺽 짚어 보고 짚어보고 낯색이 어두워졌다.    《갑자기 또 각시생각나는가요?》    《점 잘 치는구만!》     민호는 솔직히 승인하면서 눈길을 건너산쪽에 던졌다.     《그럴거얘요. 한달을 살아도 정들었던 안해였을테니.》    《솔직히 말해 그렇습니다. 현숙한 안해로 되어서 백로해로할 녀자였던걸요.》    《오, 그런가요! 저의 말을 격하게 들을실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런 남편이면야 그녀는 눈을 감아도 무척 행복할거얘요.》    《그럴가?》    《그렇잖구요.》     비웃음이 아니였다. 조롱도 아니였다. 향란이는 진정으로 감오하여 하는 말이였다.     민호의 구리빛나는 얼굴에 웃음이 피여올랐다. 질투하여 소가지를 낼줄로 알았던 녀인이 그러지 않고 선의적으로 나오면서 참답게 대해주고있음에 고마왔다. 대방을 존중하는 마음이 없다면 이러지 않을 것이다. 남을 리해할 줄 아는 녀자다. 그같은 리해심은 두말할 것 없이 우의를 돈독히 하고 보다 진지한 신뢰를 촉구하게 될게 아닌가. 서로간 사이가 이정도로 됐는데야 더 주저할것 뭔가.     민호는 입을 다시열었다.   《향란아가씨!》   《왜 그래요?》   《아가씨가 날 좀 도와줄수 없을가.》   《뭘말인가요?… 제가 그대를 도와드릴 수 있는게 뭔가요?》   《진사해는 내 안해가 어떻게 됐는지를 알고있을텐데…》    민호는 지난때 발생한 일을 내놓고 상세하게 이야기했다.    향란이는 내심히 들어주었다. 그녀는 까딱하지 않았다. 비상한 흥미를 가지면서 어느덧 그 이야기에 빨려들고 있었다. 가끔가다 《아, 그런가요!》하고 감탄사를 발하여 자기의 감정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그녀는 깊은 동정을 품고 사나이를 다시금 여겨보기도했다. 이 용감한 조선독립군인이 겪어온 풍상과 경난은 절대 가볍게 들어둘 이야기가 아니였던것이다. 투쟁으로 엮어내는 인생! 하지만 지겨움도 고민도 없었다. 어쩌면 그는 자기가 타고난 불운과 맛서싸우는 것을 천직으로 여기는 사나이 같기도했다. 사람이 용감하지 않구야 그렇게 할수있는가. 전에는 미처몰랐던 이런 깨달음이 그녀로 하여금 한결 짙은 련민과 동정을 품게 하면서 숭경에 가까운 심정으로 그를 지지해나서게 만들었다.    향란이는 맑은 이슬이 미음도는 고운 눈을 들어 사나이를 올려다보면서 입을 열었다.   《안해는 꼭 찾아봐야해요. 어쩌면 찾아낼수있을 것 같네요.》   《그래서 난 아가씨께 도움을 청하는겁니다.》   《저더러 진사해한테서 안해의 행방을 알아보란거겠죠.》   《그렇지. 바로 그겁니다.》   《그러면요…》    향란이는 문득 말을 끊더니 한식경이나 입을 닫아걸었었다.     왜 이모양이냐? 이 녀자가 나하구 뭘 말하자는걸가?… 민호는 수삽스러운 대방의 속내를 짚어내지 못하고 침묵속을 방황했다.    갑갑해났다. 그냥 이러구있을수는 없었다.   《그러면 어떻다는 겁니까? 왜 말하려다가 그만둡니까? 시원히 해야 나도알지.》   《한가지 요구있어서 그래요.》   《요구?》   《그래요. 요구라기보다 차라리 협약이라는 편이 더 났겠네요.》   《협약이라? 무슨소린지…향란아가씨가 그래 나하구 협약을 맺자는겁니까.》   《그렇지요. 동의하면 나도 힘써보고…》   《동의하면 힘써보겠다…?》   《그래요.》   《뭔데 어디 말해보시오.》   《말하지요. 만약 민호씨께서 안해를 찾아낸다해두 여기를 나가기전에는…생각해봐요. 워낙 녀자가 있다해도 아무나 맘대로 여기에 데려다 살수야 없잖아요. 그러니까 내 말인즉은…》    말을 다 들어봐야 알가. 민호보고 염왕산을 나갈때까지는 자기를 버리지 말고 만족시켜달라는 그 소원이였다. 그깟거야 못들어줄게 뭔가. 민호는 그 요구를 선선히 수락했다. 한데 설사 안해를 찾았다쳐도 여기를 빠져나갈 수 있겠는가가 문제다. 도적놈 배에 오르긴 쉬워도 내리긴 참으로 어려운것이다.        한편 일불이살륙통(一不一殺六通)이라 서은괴가 일을 설치고 죽어버린데다 황보재마저 괴사(怪死)를 하는 통에 혐의자로 몰려 궁지에 떨어진 진사해는 어떻게 하면 목전의 처지를 돌려세울건가고 그냥 머리통을 앓고 있었다. 적중한 방도가 나지지 않았다. 어쩌면 백사가 여의치않아 자기는 이젠 촌보를 헛디뎌도 나락에 떨어져 분신쇄골이 되고 말 백척간두에 서있는것 같기도 했다. 내가 이놈의데다 발을 들여놓을건 뭔가 아예 여기로 올 궁리도 말았어야했을건데 하고 그는 후회가 막심해갔다. 이제 무슨 방법이 있으랴. 세상에 후회를 치료해 주는 약은 없었다.    가철군은 전에 벌써 그가 염왕산에다 발을 붙이고 동산재기를 꿈꾸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면서 극구말렸던 것이다. 그자식 그땐 머리가 어쩜 그리두 잘 돌았을가!    《사해형! 제발 내말듣소. 다른데루는 가도 염왕산에는 가지마오.  사해형이 아무리 지혜령통해서 권모술수를 쓴대두 뼈속까지 독이 배여있는 위삼포를 그래 삶아낼만하겠소. 듣자는 그 수괴는 계모가 난당이라 여기 북만은 물론이거니와 온 관동땅에도 겨룰자가 없다는데 안그렇소. 공연히 섶을 쓰고 불가마에 뛰여들지마오.》    《모험이라는건 나도 안다만 방법있냐. 사실말해 내가 이제 국을 다시 만들기는 다틀려서 그런다. 염왕산이 대물림이라지만 그것이 영원히 위씨네거로만돼야한다는 리유야 없잖으냐. 그놈의 세습제를 내가 들어가 망가놓을테다. 처음 얼마간은 머리숙여야 하고 수모도 받겠지만 차츰지나누라면 달라지겠지. 결찌가 많아지면 그게 바로 내 성장이구 력량인거야. 때를 잡아 왈칵 뒤집어만놓으면 그때는 모든게 이 사해의 거로 될거란말이다. 알았냐. 그래서 난 거기를 놔둘 수 없단말이다.》    《생각은 좋지만 만사가 뜻대로되는건 아니잖소. 내가 꿈꾸면 남은 해몽한다는걸 사해형도 알아야하오.》    《아무튼 난 가련다. 산에 들어가잖구야 어떻게 범을 잡겠냐. 그깟거 눈감으면 한 번 감지 두 번 감을가. 넌 이 형님이 어떻게 성공하나 그거나 지켜보거라. 국이 밝아지면 그땐 내가 널 의례 부르지 않으리. 그때가 되면 우린 이 관동을 독천장으루 삼고 한 번 실컷 지랄발광 네굽질을 하면서 맘껏 살아보잔말이다. 백년행락은 못하더래두 그렇게… 인생이 한 번 뿐인거야.》    진사해는 이렇게 장담하면서 줴치곤 갈라졌던 것이다. 참으로 어리석었다. 여기다 발을 들여놓은 그 시각으로부터 자기가 금고종신(禁錮終身)이라는것을 알기나했으랴!     그자식이 지금 어디에 가 있을가. 진사해는 지금도 의연히 자기와는 사교지간이라여기는 가철군의 행방을 몰라 아타까와하면서 몹시 그리였다. 약삭바른 그를 장차 옆에 두고 지내려했다. 진사해는 아첨을 해가면서라도 자기의 감정을 발라마추는 인간이면 좋게 보고 믿어주는 위인이였다.    어느날 향란이는 후근마사에 가 장령감을 찾아 그보고 내가 진사해를 조용히 만날일이 있으니 가서 데려오라했다.        장령감은 가더니 얼마있지 않아서 진사해를 사양실로 데려왔다.    위두령의 딸님이 날 만나자구한단말이지… 대체 무슨일에?…술좌석이 벌어졌을 때를 내놓고는 그리 교제도 없이 지내는데…사나운 그놈의 암캐가 혹시 내 일을 냄새맡고 버르집자고 드는거나 아닌지?…종잡기어려운 의문과 의심이 갈마들면서 마음번거로와 진사해는 다소 주저하다가 따라온거다.   《아가씨께서 날 찾았습니까?》   《그랬어요. 들어와요.》    향란이는 말투를 봐서는 여전하지만 경계하는 낯빛이라 우선 긴장부터 풀게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웃음기어린 부드러운 태도로 그를 살갑게 맞아주었다.    그러나 상대측은 의연히 경계심을 풀지 않고 있었다.    《무슨일에 아가씨가 나를?…》   《호호호…아니 날 왜 그렇게 서먹하게 대하나요. 다른일아니얘요. 아침에 식당서 볼라니 아까운 분이 몰골이 영 말이 아니더군요. 그래 내가 찾은거얘요. 신외무물이라 사람은 누구나 몸이 중천금아닌가요. 무리하게 혹사말아요. 내 말은 너무 그렇게 고민하지 말라는거얘요. 그러다가 지쳐눕기나하면 어쩔라구요.》    뜻밖이였다. 녀인의 입에서 튀여나오는 이런 지극한 념려와 애틋한 관심에 사나이는 얼어들던 가슴이 화끈 더워나기시작했다.   《고맙습니다, 아가씨! 그래두 아가씨만은 날 믿어주는구만요!》   《왜 저만이겠어요. 아버지도 오빠도 다 믿어주는데요. 보재의 피살건을 우린 거기다 밀지 않아요. 흉수는 꼭 다른누굴테니까요.》    향란이가 내친 이런 확신에 가까운 림기응변은 효력을 냈다.    《그게 정말입니까! 과연 그러하다면 난 절이라도 올려야겠군요.  사실말이지 난 형제들이 나를 믿어주지 않구 그냥 의심하면서 백안시하는게 억울합니다. 향란아가씨도 알다싶이 내가 그하구야 그 누구보다도 극친한 사이아닙니까. 나도 인피를 쓴 놈인데 어찌 그런짓이야 하겠습니까. 안그렇습니까. 원 참 억울해서.》    진사해는 이러면서 죄는 도깨비가 짓고 벼락은 고목이 맞는다느니 어쩐다느니 자기의 억울함을 하소했다.   《그래요. 지은 죄도 없어갖고 바가지를 뒤집어써서야되나요. 억울할거얘요.》    녀인이 자기를 의심하지 않거니와 이같이 편을 서주기까지 하니 진사해는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 허허 웃었다. 그리고는 지어 엉뚱한 생각에 단침을 삼키면서 죽어버린 황보재의 생전의 신세를 부러워하기까지 했다.    《보재가 그렇게 고기값을 못하구 갔지만두 생전에 아가씨께 남못받는 대접을 받았으니 운수야 참 대통한 녀석이였지.》   《그래요. 그인 생전에 나를 거의 독점하다싶이했거든요.》   《허던것이 어떻게 돼서 물러나구말았습니까?》   《그걸 몰라서 나하구 물는가요?… 생각해봐요. 끈짜른 드레박갖구야 어떻게 우물의 물을 길어먹나요. 안그래요. 안되겠으니 저절로 물러난거죠뭐얘요.》    《오, 그래!? 하하하…》    녀인이 추호의 부끄럼도 없이 내던지는 저돌적인 언동에 진사해는 눈이 휘둥그래지더니 입을 크게 벌리고 요란스레 웃어댔다.   《아무때봐도 아가씬 가식없구 소탈해 좋구만. 완벽한 녀자는 아마 그런 천부 하나씩은 다 갖고있는모양이지. 정말입니다. 어찌보면  위아가씨는 설보채같기두해서 나는 볼때마다…》   《호호호…별소리 다 하네요. 내가 어쩜 설보채같겠나요. 칭찬이 과분해서 낯이 숯불에 익어드는 것 같네요.》   《정말입니다. 아가씨는 우선 자색부터 설보채만 못지 않지요. 진심의 말입니다. 그러니까 아가씨한테 그 고려놈도 반한거아니겠습니까. 참 어떻습니까, 아가씨를 끔찍히 사랑하겠지요.》    《그래요. 그인 날 지극히 사랑해줘요. 나도 그렇구요. 그런데 참 별일이지. 접촉은 잦건만 아직도 난 그일 리해할 수 없네요. 뭔가를  나한테 숨기고 있는 사람만같아서요. 그리구…난 보재를 살해한 흉범은 바로 그가 아닌가구 자꾸의심하게된단말이얘요.》    이러면서 향란이는 진사해의 앞에서 만약 제 예감이 맞아떨어지는 날이면 그를 극형에 처함이 옳다고 했다.    녀인의 입에서 이런 말이 거침없이 나오리라고는 생각못했던 진사해는 불시에 온 몸에서 심줄이 튀면서 용기가 솟아났다.   《아 어쩌면…아가씨의 생각이자 바로 내 생각이였구만! 난 어녕 그렇게…》   《보아하니 사람 잘못받아 산채만 소란케 만드는 것 같애요. 안그런가요. 그일 괘주시키지 말구 내쫓아 차라리 제 다즈각시나 찾게했더면 좋았을걸그랬네요. 안그런가요.》   《체, 제깟게 나간다구 찾을가. 못찾아, 못찾아!》   《아니 그걸 어떻게 장담하나요.》   《내가 왜 장담못해. 그건…》    진사해는 말끝을 그만 사리고 만다. 한 번 다시 녀인을 유심히 보는 눈, 웃음은 짖는다만 어쨌든 흉하게만 보이는 그 게뚜더기 눈은 이 시각 네년이 정말 민호를 의심하고 이러는거냐 아니면 사내맛 바꿔보자구이러는거냐 하고 속으로 점치고 있었다.   《왜요. 날 믿지 못해 말 못하는거죠. 정녕 그러하다면 관둬요.》   《아, 아닙니다. 그런게 아니라 저…》    진사해는 황급히 변명했다. 녀인이 제 속창을 빤히 들여다보고 이는것만같아서. 내가 이 녀자한테 배척당하면 어쩌나하는 생각에 당황해지기도했다. 하지만 그건 잠간사이. 자제력을 갖고있는 그는 마음의 평온은 찾으면서 얼굴에 웃음을 발랐다. 원인은 다른게 아니다. 이시각 녀인의 요염한 자태가 눈을 희롱해서 이성에 굶주리다못해 무감각해진 사내의 잠재한 의식을 못견디게 든장질하고있기 때문이였다. 고니의 고기를 먹고싶어하는 두꺼비랄가, 이 시각 그는 네년을 데리고 노는 놈 따로있다냐 이젠 내가 출마를 해봄도 괜찮은거야 하고 엉뚱한 궁리를 했다.   《아가씨 웃질마시오. 민호 그 녀석 각시잃어진건 제대루말해서…그건 내가 한 짓이외다.》    그는 끝내 괘방을 치고말았다.   《아유, 별소리 다하네! 아무렴 거기서 어찌…호호호!》    향란이는 우습다고 입을 싸쥐며 도리질했다.    진사해는 녀인이 제 말을 곧이듣지 않는 것 같자 헤벌려지는 입을 다물면서 거짓말이 아니니 믿어달라했다.     《정말입니다. 아무렴 혀가 무르다구 내가 아가씨앞에서 언감생심없는 일을 왕창꾸미겠습니까. 그 사람의 다즈각시는 나하구 철군이가 랍치해서… 앙갚음을 하느라구요. 본래는 잠재워버릴려다가 고년이 하두 고우니까 그만 살려뒀지요. 우린 한동안 오동하에 가 있다가…그러다가…보다싶히 난 여기로 들어오구만겝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그 녀잔 지금도 살아있겠네요. 그렇죠?》   《그렇지. 내 생각은 철군이 그 녀석은 호색한이 돼놔서 거기서 그냥 데불구살거라는겁니다.》   《철군이란건 누군가요?》   《내 친굽니다.》    여기까지 말해놓고 진사해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이쪽도 그의 닫힌 입을 굳이 다시열려하지 않았다. 이만하면 민호가 얻으려는 정보와 비밀은 다 알아낸 것 같았다.    진사해는 녀인의 기만술에 보기좋게 넘어가고서도 그것을 감촉못한채 자기가 그녀를 손에 넣기라도한것같이 좋와했다.        한편 향란이가 발쇠를 서준 덕에 이제야 비로서 제 안해의 생사여부와 그녀가 가있는 곳 까지 알게된 민호는 위삼포를 찾아가 보름간의 외출허가를 받았다. 지지리 애태운 끝에 찾아온 기회였다.    그는 산채를 나오자 곧추 오동하에 갔다. 그런데 오동하에 가서 써캐훝듯했건만 거기에 츄얼이가 있기는 고사하고 가철군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민호는 산채로 되돌아오려다가 생각을 고쳐 발길을 곧추 어래무쪽으로 돌렸다. 그때 츄얼이를 찾아나간 나쟈형제와 치더룽을 만나보지도못하고 훌쩍 떠나온건데 혹시 그들이 후에라도 츄얼이를 찾아가지 않았을가 하는 생각이 머리에 돌아서였다.    그사이 어래무마을은 변하지 않고 궁상그대로였다.    린화의 각시가 마침 밖에 나왔다가 마을로 돌아온 민호를 발견하고는 달려들어가며 소리쳐 알려서 나쟈의 처가 나오고 뒤미쳐 장모도 달려나왔다.    《아이고 이 사람아 살아왔고나!》   《이게 어찌된 일인가요! 엽때껏 어데가있었나요?》   《츄얼이 집에 있어유?》    민호는 일희일경 어쩔줄몰라하는 녀인들에게 마치 이웃집에 마실을 갔다가 돌아온 사람모양으로 오래간의 만남을 반가와하기에 앞어 안해의 정황부터 알아보았다.    《아니 이 사람아! 자넨 그래 엽때껏 츄얼이두 못찾고 이러나?…아이고 내 딸아!》    허저인장모는 사위가 딸을 못찾았다고 머리젖는 것을 보자 락담하여 한숨을 훌 내쉬더니 땅을 치며 울음을 텃뜨렸다.    처남 나쟈도 마침 집에 있었는데 유령처럼 불쑥나타난 사나이를 경아한 눈으로 이으토록보다가 입을 열었다.   《아니 매부는 그래 여태껏 어디가 뭘하고있었더랬소?》   《염왕산에서 토비노릇했소.》   《아니 뭐라?…다시말해봐. 토비노릇을 했다구?…제 녀편네는 찾잖구 그래 여직 백주창탈이나하구다녔단말인가?》    나쟈는 목청을 곤두세우며 발작적으로 부르짖더니 제 사냥총을 찾아 들었다.    넋이 나갈지경으로 경겁한 아낙네들이 새된 비명을 내지르면서 달려들어 그의 손에서 부덕부덕 총을 앗아냈다.    민호는 갈린 목소리로 웨쳤다.   《형님 날 죽이오! 제 색시두 하나 건사못한 이 불민한 놈을 차라리 없애주!》    나쟈는 숨을 거세게 톺았다. 량볼근육이 간헐적으로 실룩거린다.     장모가 사위의 손을 꼭 잡고 대체 어떻게 된거냐고 물었다.   《난 방정으루간다잖던가요. 여기서 떠나 동강서 배타고 열래진까지 갔습니다. 거기서 권총 한자루 사갖구는…바로이겁니다.》    민호는 품속에서 골트권통을 꺼내놓았다. 그는 그 권총을 사갖고 가목사와 의란을 거쳐 방정에 갔던 일, 거기서 려관에 머므르면서 여러날이나 안해를 찾아 헤맨 일, 그러다가 경찰의 수사에 들게되니 쪽배에 숨었다가 이틑날 말을 빼앗아 타고 현성을 탈출했던 일, 그랬다가 추격받아 가고가다나니 나중에는 염왕산토비굴에 떨어진 일, 거기를 나오려던 차 마침 원쑤가 들어오니 그를 잡자고 자기도 그만 류자로 되여 여지껏 눌러있은 일을 쭉 말했다.   《그래 그놈은 잡았는가?》   《아직 못잡고있습니다. 손쓸 기회를 종시 만나지 못해서요. 그러다보니 세월은 흘러서… 원쑤는 아무 때건 갚을겁니다.》    장모가 흐르는 눈물을 닦고나서 말했다.   《옹군 세해철이 되네 이 사람아. 츄얼이는 자네가 나간지 석달만에 돌아왔더랬네. 진사해라구 하는 놈허구 가철군이라구 허는 놈한테 잡혀간거라네. 저 오동하라는델 가서…강이 얼어붙으니까 도망쳤다네. 그래 집에서 자네가 돌아오기만 기다리고있는데 마침 자네허구 같이 여게 와 있었던 그 사람이 왔던거네.》   《아니 뭐랍니까. 내 친구가 왔더랬습니까?》   《그랬어. 그 사람 자네보러왔다가 없으니까 그만 가버렸지. 저 녕안쪽으루말이네. 거기메 자네네 사람의 군대가 모집돼서…그 사람 로씨야서 건너와갖구는 아마 다른데루갔던모양이지. 일은 이렇게 된거네. 그 사람이 가서두 오래도록 자네가 돌아오질 않고있으니 츄얼이가…닭한테 시집갔으면 죽더래두 닭을 따라야잖는가 이 사람아. 그래서 츄얼이는 떠나간거네 자네를 찾아서. 우리 생각두 그랬구. 자네가 혹시 그쪽갔다가 군대에나 들어가잖았을가했네. 그런데 인제보니 자넨 거기루두안가구 왕청같은델 가 있다가 인제야 이렇게 나타난게 아닌가. 원, 어쩜!… 귀신이 피똥쌀 일이지!》    한숨많은 장모는 한바탕 장탄을 늘여놓았다.    민호는 그날밤을 지내고 인츰 어래무를 떠났다.    두줄기의 실배암같은 레루장이 동에서 서로 한없이 긴 평행선을 그어놓고 있었다. 그우로 괴물같은 검은 장사가 나타나 달리면서 만고의 정적을 깨뜨린지 이제 겨우 20해포. 토비들의 준마와 비기는 그것이 생김으로하여 널다란 관동의 이 북만땅도 뒤늦게나마 인류문명의 새 장을 열어가고 있었다.    바로 이 철로연선에 있는 해림(海林), 산시(山市)와 석두하자(石頭河子), 그리고 목단강(牡丹江)과 그 이남의 녕안을 중심으로 해서 남쪽으로는 천리넘는 저 멀리의 백두산록(白頭山麓)에 닿으는 광활한 지역을 관할하는, 이름을 신민부(新民府)라 지은 조선족의 망명정부가 근년들어 생겨났으니 그것은 바로 일본놈께 제 나라를 잃고 살길을 찾아 국경넘어 이곳 북만까지 깊숙히 들어와 사는 동포들의 자치를 목적해서 이룩된 정부였다. 그것의 조직자와 지도자는 우국우민의 독립투사들이였다. 초라하긴하지만 준국가식의 그 정부는 중앙위원회와 더불어 혁명원로들로 참의원(參議院)과 검사원(檢査院)을 두어 삼권분립의 민주제도를 확립하고자 하면서 산하에 500여명의 보안대와 별동대까지 두어 자신을 보위하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였다. 그들은 또한 서쪽으로 수백리되는, 로씨야와 가까운 국경지대인 십리평(十里坪)산골에다 사관학교까지 세워 군사를 양성하는 한편 자기의 관할내에서 군구제(軍區制)와 둔전제(屯田制)를 실시하여 18세이상 40세이하의 청장년들에게 군사훈련을 시켜 항전을 준비하면서 상비군을 보충하고 있었다.     이런때에 민호느 자기의 허저인 안해를 찾는 한편 독립진영의 형편을 알고자 그 구역에다 발을 들여놓았다. 그런데 운명이 이같이 희롱을 당할줄이야. 그는 안해를 찾지도못하고 적의 밀정으로 의심되여 어느날 해림에서 보안대의 손에 잡히우고말았다.   《넌 누구냐?》   《정민호올시다.》   《뭘하는 사람이냐?》   《안해를 잃어버려서 찾고있는중입니다.》   《또 그 소리냐, 이실직고를 해.》   《정말입니다. 거짓말아닙니다.》   《거짓말아니라? 그럼좋다. 네가 여기의 정황은 왜 탐지하는거냐?…넌 이것 저것 캐물었다지. 그리구 권총은 뭣에 쓰느라구 갖고다니는거냐? 솔직히 말해. 어디서 무슨 임무를 맡았는가말이다.》    《너무 그렇게 의심마시오. 사실은 나도 독립군인이였습니다. 반일투쟁을 해온 사람입니다. 첨엔 김원봉의 의렬단에 들었다가 북로군정서로 너머갔고 청산리싸움끝나서는 로씨야에 건너가…자유시사변에 그만....》   《가만! 그러니까 나도 독립혁명에 몸바친 사람이라는 소리냐?》    《그렇죠. 거짓말아닙니다. 조사해보시오. 그러면 알게될겝니다.》    《어디루가서 조사하란말이냐. 우린 뭐 할 일없어서 널 붇들구있는줄알어. 이실직고하면 될걸가지구 왜 이모양이냐. 그래 그것두 말이되기냐하느냐? 이제야 알구서 찾아왔다. 안해를 찾는다…오년철이나되는데 어데가있다가 인제야 나타났느냐말이다.》   《처음에는 어래무라는 허저인의 마을에 있으면서 거기서 장가를 갔구…그래 살다가 안해가 잃어져서…》    자초지종을 차견히 얘기했더면 이렇게 되진 않으련만 처음부터 저쪽에서 무턱대고 의심하면서 다구쳐 족치는통에 그대로 응변하다보니 점점 더 험하게 궁지에 드는 꼴이 되고말았다.   《어디서 뭘해먹었냐말이다.》   《저…》    언어도단이였다. 민호는 자기가 토비노릇해온 사실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미처 생각이 돌지 않아 어물거렸다.    보안대의 사나이가 발끈했다.   《넌 아무리봐도 문제있는 녀석이다. 걸어라!》   《어디루갑니까. 제 말 좀 자상히 들어보시오. 처음부터 차례로할텝니다. 그러면 알게될겝니다.》   《난 알만큼알았다.》    보아하니 그 사람은 이 민호를 에누리없는 적의 첩자로 인정하고 처리할 잡도리인 것 같았다.    세상에 이럴법이라구야! 내 목숨이 경각에 달린거아니냐. 고질된 의심은 풀기힘든것이니 대응책은 오로지 수단을 가리지 않는 강포한 행동뿐이였다. 내가 그러지를 않으면 여기서 볼장은 다보는 거야. 민호는 속으로 뇌였다. 얼마간걸어가다가 그는 자기를 어디론가 압송하고있는 젊은보안대원을 향해 나 오줌마려운데 어쩌라는가 하면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를 압송하던 보안대원은 마려우면 눌게지 무슨 투정질이냐했다. 민호는 돌아서서 띠를 푸는척하다가 앞배에 차고있는 뽐창 하나를 뽑아 돌아서며 훽 뿌렸다.   《앗!》    보안대원은 비명을 지르면서 땅에다 총을 떨구었다. 뽐창은 날가 가 견준대로 그의 팔목에 적중히 박혔던거다.    민호는 거기서 도망쳤다…        신수멀끔한 놈이 운수는 개코같구나. 무슨눔의 일이 오리변자모양으루 요렇개 배배탈리는거냐 제길할! 민호는 안해를 찾지 못하게된것도 그렇거니와 맘속에 두고 몹시 그려오던 독립군에서마저 자기를 랭혹하게 대해주니 야속했다.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렴 상세한 조사도 하지 않고 무턱대고 의심만하면서 사람의 생명을 함부로 취급하려드니…물론 적의 잠입과 파괴를 막느라 그러겠지만 거칠고 조폭한 그따위의 취급법은 커다란 기대와 희망을 품고 찾아간 사람의 정직과 선량함을 너무나도 몰라봐주고 우롱하며 타격하는것이였다. 개밥에 도토리라더니 내가 그 신세로 된거아니여. 지나친 의심과 배척에 민호는 정나미떨어지고 있었다. 그는 자기가 여지껏 느껴보지 못했던 극심한 고독속에서 소외감을 절절히 느꼈다.    안해를 어떻게 하면 찾을수있을가? 녕안에 가 돌아봤더니 거기에 사는 동포가 몇년전의 어느 계절인가 민족을 분간키어려운 미모의 젊은 녀인이 제 조선인 남편을 찾아다닌적이 있었노라알려주었다. 하니까 츄얼이는 이 일대에 와서 민호를 찾은것만은 확실하였다. 지금은 어디에 가 헤매고있는지?…혹시 정의부(政義府)가 있다는 남쪽으로나 참의부(參義府)가 있다는 서간도쪽으로 가지나않았나싶었다. 민호는 이미나선바에 위험이 닥치더라도 그곳들을 한 번 돌아보고싶은 마음이 불붙듯했다.    그러나 염왕산을 나올 때 허가맡은 기일이 다되였으니 백수불구 우선 산채로 돌아가고봐야했다.     
133    장편소설 <<관동의 밤>> 제1부(14) 댓글:  조회:2837  추천:0  2015-02-03
                         14             류자들은 꿈을 대단히 중히 여긴다. 간밤에 꿈을 꾸었다면 그 꿈을 꼭 해몽했고 그런후에야 행동했는데 특히 맏두령이 더 그러했다. 만일 아이들이 나가는 상여를 붙잡고 우는 꿈을 꾸었다면 그것은 대단히 불길한 징조로 여겼고 큰 바람이 부는 꿈을 꾸었다면 그것은 바람이 재산을 날려보낼 징조라면서 산채밖을 나가지 않았다. 꿈에 늙은 범을 보았어도 산채밖을 나가지 않았다. 늙은 범은 산신령나으리였는데 나가기만 하면 강자를 만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더욱히는 개가 사람쫓는 꿈을 꾸었거나 나무에서 사람이 뛰여내리는 꿈을 꾸었다면 절대 가마마스러 나가지 않거니와 새자들이 개별적으로 산채를 나가는것 조차도 허락치 않았다. 그따위 꿈은 경찰이나 군대가 류자를 잡자는 흉몽으로 풀이되기 때문이다. 한즉 두령이 꾸는 꿈은 실제상 산채의 모든 행사를 결정하고 모든 류자의 행동을 통제하는 지휘봉이나답지 않았던것이다.     맏두령이 이같이 꿈을 중시하니 그본새로 아래 사람들도 그러했다. 꿈을 꾸고는 저마다 오늘은 좋으리라 혹은 나쁘리라 어떻고 어떠하리라했다. 이같은 꿈풀이가 사회와 접촉못하고 산속에 같혀 무료하게 나날을 보내는 그들에게는 하나의 심심풀이기도했다.     닭도 오리무리에 오래있노라면 오리의 지절대는 소리를 흉내내게되는 것이다. 주위사람들한테서 물이 들어 민호도 어느덧 꿈풀이를 즐겨했다. 어느날이다. 그는 난생처음 자기의 온 몸에서 피고름이 흐르는 꿈을 꾸었다. 흘러도 육실하게 많이도 흘렀다. 내가 어쩌자구 이런 꿈은 꾸었을가?…그는 워낙 무신론자에 가까와 그따위 꿈같은건 믿지도않았지만 어쩐지 꾸고나니 께림직한게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여 그것을 가까운 하진국이와 얘기했더니 하진국은 듣고서 손바닥을 찰싹 때리면서 그런 꿈이 자기한테는 왜 생기지 않을가 했다. 대단히 얻기 힘든 길몽이라는거다. 이상했다. 그 해몽을 들으니  민호가 이날은 다른때만 기분이 훨씬좋았다.     인간은 리성적이지만 동물이였다.     민호는 떠들고 복잡한 집안에만 박혀있기싫어 밖으로 나왔다.      그가 들어있는 산채의 왼켠에 얼마가지 않아 저기 동쪽의 고산과 줄기가 이어진 아기모양의 봉긋한 키낮은 산이 있고 그 키낮은 산의 북켠기슭을 따라돌면 그윽한 골이 나진다. 그 골은 좀만 들어가도 나무에 넌출들이 이리저리 휘감겨 있고 넌출과 넌출들이 서로 엇갈리고 엉켜붙어서 발을 더 들이밀기 어려울지경이다. 지금은 가을철이여서 갖가지의 나무들이 한창 단풍들고 있었다. 혹은 붉고 혹은 누르러서 심천이 아롱진 것이 더욱아름답게 보였다. 민호는 이런 자연풍경을 보노라니 알락달락 고운 뱀이 독이 있다는 중국속담이 새삼스레 상기됐다.     서은괴의 돼지대갈사건이 발생한지도 어느덧 열흘이 넘는다. 한데도 산채를 나간 진사해는 돌아오지 않고있었다. 돌아와 갖고 자기도 서은괴도 함께 음모를 획책한적이 없다고 딱 잡아떼고 나눕는다면 그때는 어쩌는가. 그때면 장평이 아마 무함죄를 쓰게될게 될 것이다. 황차 여지껏 다른 조짐은 보이지 않았고 진사해는 그만하면 류자들 속에 위신을 어느정도 세워놓은 셈이니 이제 어떤 역전이 생길런지도 모를 일이기도했다. 위삼포는 자기가 친히 죄증을 손에 쥐기전에는 진사해를 처리하지 않으리라했다.     민호는 눈앞에 진사해의 몰골이 다시밟히자 또 한번 신경을 모았다. 사심불구(蛇心佛口)의 그 인간을 내가 어떻게 대하면 좋을가?…또 다른 하나의 몰골―한쪽귀 반쪽이 달아난 황보재도 떠올랐다. 장정이 센 그 녀석은 또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     산기슭을 돌던 민호는 걸음을 뚝 멈췄다. 골을 파고들어선 뭘하는가. 그는 고개를 번쩍 치키고 산등성이를 쳐다봤다. 그러다 그는 그 낮은 산의 등성이를 향해 오르기시작했다. 좀 올라가니 거기 두아름이나됨직한 높이 자란 느티나무 한그루가 시선을 유별나게 끄당겼다. 그 나무는 한쪽몸체가 벌집같이 되어있었다. 그건 류자들이 총질을 너무해서 만들어진 흉터였던거다.     민호도 탄알 세발을 거기다 박아넣은적이 있다. 바로 위진이가 부질없이 그의 진짜사격술을 떠보느라 내기를 걸어왔을적이였다. 민호가 세발쏴 관혁을 다 맞히면 위반장이 속옷만 입고 자라처럼 기여서 가고 민호가 세발 다 못맞히면 그의 발바닥을 개처럼 핥아주기로 내기를 했던 것이다. 결과 반장이 져서 놀림받았다.     그것이 물론 문명치 못한 놀음이였지만 심심해서 속이 클클했던 류자들을 또 한번 열락의 경지에 잠겨들게했던거다. 그럼으로해서 민호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허물없이 사귈만한 형제로 취급되였거니와 민족이 다르다해서 그들로부터 배척받거나 따돌림을 당하는 따위의 불쾌한 일이 없게되였다. 오리무리에 끼였으면 따라서 오리짓을 해야지 별도리없다는 왕견의 충고는 옳았던거다.     그 느티나무를 지나서 좀 더 가면 산등성이에 오르게 되는데 이 낮은 산 남쪽켠으로 산굽이를 요리조리돌아 산채를 빠져나가는 한갈래의 통로가 코아래 내려다보인다. 여기에 들어와 첨으로 외선경비를 서러 가던 그 길이다. 민호가 산등성이에 방금 오르자 바로 그 길로 백말을 타고 산채로 들어오고있는 사나이 하나가 눈에 안겨들었다. 말의 목덜미에 너풀거리는 것은 검은갈기였다. 황보재의 말이 저런 가리온이다. 그럼 저것이 황보재일가! 과연 황보재가 옳다면 도대체 산채는 왜 나갔다오는걸가고 민호는 생각했다.     민호가 시선을 거기에 밖고 선채 자기 생각에 골똘해있는데 홀연 뒤로부터 뽐창 다섯 개가 쌩… 날아와 가까이에 있는 황철나무에 일직선으로 내리밖혔다.     이건 또 웬 일이냐면서 뒤를 돌아다보니 저쯤에서 향란이가 두 손을 옆구리에 지르고 서서 입에 웃음을 빼물고 있었다.     《젠장!》    《호호호…간떨어졌나요.》    《뭐 간까지 떨어질거 있겠소만 례모가 하도 고약하니 아가씨가 이뻐보이질 않습니다.》     민호는 탈았던 목을 되돌려왔다.     녀인은 입을 감쳐물고 노려보다가 목청을 뽑아세웠다.    《돌아서요!》    《명령인가.》     민호는 몸을 되돌려 뽀로통해진 녀인을 마주보며 웃음을 날렸다. 이젠 어쨌든 외면해버릴 존재가 아니였다.     기분이 되돌아진 향란은 유순한 녀인으로 변해갖고 다가왔다.    《요즘은 왜 만나기 힘드네요.》    《아가씨가 날 찾았습니까?》    《그랬어요. 요긴한 일 있어서요.》    《요긴한 일이라니?…》    《놀아보자구요.》     허 이런! 씹새바람 들었구나. 민호는 욕구불만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녀인의 솔직함에 저으기 놀래면서 부러 딴청을 부렸다.    《아가씨, 우린 이렇게 놀고있잖습니까.》     향란은 낯이 확끈 했다. 자기의 속내를 빤히 알면서도 그러는 사내가 야속했던거다. 그녀는 주먹을 들어 느믈대는 그를 조겨주려다말고 점직해지면서 말머리를 돌렸다.    《한가지 물어보자요. 저번때 그 보물 혼자서 얻은거겠죠. 금팔찌 두개하고 은비녀 하나 그리고…그건 어느 부인해였나요?》    《나두모르겠습니다 그게 뉘핸지. 내가 그걸 아마 어느 경대밑 뻬랍에서 꺼낸거같은데…생급스레 그건 왜 묻습니까?》    《수확이 적잖더군요.》    《수치스러워.》    《아니 왜서요. 지금도 그걸 략탈로 여기나요. 직업인걸요.》    《직업?…하긴그래!》     민호는 웃어넘기면서 녀인의 팔목에 새로 끼고 온 옥팔찌에 눈길이 다았다.    《그 옥팔찌 과연 곱구만. 누가 준 선물입니까?》    《이거말이죠. 어머님이 생전에 준신거얘요.》    《오, 그렇습니까. 그런걸 난 또…보재가 아가씰 그토록 사랑하면서두 그래 금팔지 하나 안얻어줍디까.》    《아니, 뭐라구요? 다시말해봐요. 날 뭐로 보고 그 소린가요.》     향란은 낯색이 당장 흐려지면서 독을 썼다. 고귀한 녀인을 남이 주는 장물로 제 몸단장하는 속물로 보았으니 그럴수 밖에.    《이런 제길할. 내가 이게 무슨눔의 실수람.》     자신이 경망함을 깨달은 민호는 자칫하면 화재를 일으킬 불찌를 꺼버리느라 급히 사과했다.    《이거 생각없이 말이 헤펐구만. 노여워마시오.》    《이제 다시 그따위소리해봐요. 정말 가만두지 않겠어요.》    《주의하지. 헌데 참 방금 저기루 말타고 들어온건 누굽니까?》      향란은 옹쳐지려던 속을 풀면서 대구했다.    《보구두 모르나요. 보재얘요.》    《보재가 어디멜갔다오게?》    《태평진에 갔다올거얘요.》     태평진(太平鎭)은 염왕산의 동남쪽통로로 나가 약담배밭 산채에 이르러 남족으로 방향을 꺾어 곧추 200여리 상거한 지점에 있는데 무려 2000여호에 달했다. 매는 둥우리주변의 것을 먹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듯 염왕산은 생겨난 이래 여지껏 한 번도 거기를 괴롭힌적이라곤 없다. 한 것은 그곳이 염왕산에서 거리가 가까운것도 있거니와 그보다도 류자들이 일상생활에 쓰는 필수품들은 거의 그곳으로부터 공급받고있기 때문이다.     민호는 황보재가 태평진에는 왜 갔댔느냐고 물으려다가 그만뒀다. 그런것까지 캐물른건 싱거운짓같아서였다.     서은괴와 한구들에서 딩굴어 온 황보재였다. 그런 그를 부대화상이 보우했는지 때마침 외출을 해서 그는 그날 당석에 끼이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용케도 련루를 모면하게된것이요 향란이는 그가 자기에게 서은괴의 반역행위를 맨먼저 알려준 일이 아무튼 고마와 요즘은 이전만 좀 살갑게 대해주고 있었다.      한편 남의 추김대로 놀다가 자기수를 먹게된 서은괴는 명이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다. 제때의 한수가 때늦은 백수보다 났다는 걸 왜 그리도 몰랐는지. 그는 모반자에게 떨어지는 형벌이 어떻다는 것을 알면서도 늦게야 탈주를 꾀했다가 그만 암암리에 자기를 감시하고있던 수하새자들의 손에 잡히우고말았다. 그통에 서은괴는 탈주를 성공못한채 잡아먹을 개같이 양즈방에 같히우고말았다. 이제와서 후회한들 무슨소용있는가. 기다리고있는건 오로지 죽음뿐.     산채가 끓어났다.     민호와 향란이는 이 일을 하진국이 달려와 알려서 알게됐다.    《제깟게 어디멜 달아난다구, 흥.》     향란이 내뱉는 말 끝에    《무쇠두멍쓰구 소에 빠졌어. 이게 바루 자작지얼이지 뭐야.》     민호도 따라서 미런스레 논 서은괴를 조소했다…          차챈즈의 명을 받고 여러날전에 쟁반밟으러 산채를 나갔던 위용강이와 진사해가 돌아왔다. 헛걸음을 하지 않았다. 연수(延壽)쪽에 있는 기와가마 하나를 정탐하고왔는데 들이친다면 성공할 가망성이 아주많았다. 지주가 첩년만 편애해서 본댁이 역심이 생기게됐는데 이쪽에서는 그를 꾀어 저선(底線)으로 만들어 때만 되면 내외가 호응키로 약속이 되어진것이다.     그들이 돌아오자 향란이는 그날밤으로 자기 방에다 주안상을 차려놓고 그들을 청했다. 이것은 그녀가 민호와 짜고서 꾸민 연극이였다. 위용강은 그런줄도 모르고 녀동생이 남매지간의 정과 사랑을 돈독히 하느라 그러는가 여기고 고마와했고 진사해는 진사해대로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왔으니 환영하는걸로 생각했다.     민호가 매양 대접받을 때 처럼 접시도 그 은접시 술잔도 그 은술잔 젓가락도 그 은저가락이였는데 주호만은 다른것이였다. 그것은 푸른 룡무늬를 그린 흰 자기병이였다.     향란이는 해낙낙한 얼굴에 례모를 갖춘 우아한 동작으로 주호의 술을 먼저 나이가 웃벌되는 진사해의 잔부터 붇고 그 다음에 오빠의 잔에다 부었다. 그리고나서 마지막에 자기 잔에다도 부었다.    《별다른 의미가 아니얘요. 두분오빠께서 쟁반밟으러 나가 여러날 고생한 일 생각해서 제가 한잔 드리는거얘요.》    《난 위아가씨가 생각이 이렇게 주도한줄은 몰랐지. 감사하오.》      진사해가 먼저 례모를 차리더니 술잔을 코밑에 대고 개처럼 냄새를 맡았다.    《건데 이 반강자는 향기가 다르군. 금분로아닌가!》    《과연 몽두춘 제대로 많이 해 본 분이네요. 어쩜 그리도 신통히 알아맞추나요. 옳아요. 금분로예요. 아마 십년은 묵었을거야.》     녀동생의 말에 위용강의 눈이 둥그래진다.    《아니 이건 어디서 난거냐?!》    《오빠도 몰랐죠. 이건 내가 전날 엄마방에서 찾아낸거얘요. 구석궤안에 고스란히 있더군요. 전에는 왜 발견못했는지…》    《이게 모두냐? 더 없니니?》    《그래요. 모두얘요. 엄마궤짝이 술창고야 아니잖아요. 더 있을리없죠. 절반가량 부친께 딸카드리구는 깔축없이 그대로 남아있어요. 아마 두근은 잘 될거야. 도수를 놓구봐두 늘 마시는 배갈따위야 옆에두 못오지요. 두분께서 오늘밤 그저 이 반강자만 다 축내요. 그런다면 제가 두분께 영예증서를 발급하겠어요. 정말이예요.》     두 사나이는 요까짓게 뭐냐 아무리 독하더라도 마셔내리라 장담하면서 술을 목구멍에 털어넣었다.     진사해는 젓갈을 들어 채를 집으면서도 매양 미식가의 기질을 과시했다.    《아가씨, 이건 멧닭고기아닙니까.》    《옳아요. 어쩜 그리두 검식잘하나요.》     위용강이 멧닭고기볶음채에 절을 대려다말고 녀동생의 얼굴을 말끄미 본다.    《향란아, 멧닭은 어디서 난거니? 네가 잡은건 아니겠지?》    《내가 언제는 멧닭사냥하던가요. 이건 저…맛이 어때요. 대단히 좋을거야. 많이 집어요.》     향란이는 혀끝까지 나온 말을 되삼키고 대답을 뭉때렸다.     위용강은 집히는데가 있는지라 미간을 끌어모았다.    《이건 꼬리방즈가 잡은거 아녀. 듣자니 짐승잡이 잘한다던데.》     《그래요. 그이가 잡은거죠. 건데 뭐가 잘못됐나요?》     다른때는 민호에 대해서 이러니 저러니 말이 없던 오빠였는데 오늘은 혐오를 품으니 이상했다.    《난 네가 그하구 가깝게 지내는게 맘에 안든다.》    《왜서요, 오빠?》    《보재는 그예 떼버렸니. 그가 널 뭘 나쁘게해쥈게.》     진사해가 오빠의 말끝을 물고 의뭉스레 부채질했다.    《보재가 향란아씨한테야 변함없는 충신이지 안그래?》     향란이는 입가에 쓴웃음을 피우면서 그의 말을 반박했다.    《꽃감 보기좋다구 떫어도 먹어라는 법이야 없잖아요.》     진사해는 게뚜더기를 실룩하더니 입을 뻐개며 웃어댔다.    《어, 하하하…그, 그래! 그래!… 감탄고토라 달면 삼키구 쓰면 뱉는거야 당연하지. 맞소 맞아, 아가씨말이 맞다니까. 하하하…》     얼마나 천연덕스러운 놈팽인가. 향란이는 말이 까이고는 무안을 묘하게 넘겨버리는 능구렁이를 다시보면서 속으로 네놈이 과연 여간내기아니구나했다.     둘은 권커니 작커니 술잔을 련커퍼 맞쫏고 기우린다.     그사이 무척 친해진 모양이다.     진사해가 오늘따라 유별나게 술맛이 좋다느니 기분이 좋다느니 떠벌렸다. 연기술이 어쩜 이리도 신통할가! 그러는 모양을 봐서는 전혀 뒤가 켕기는 사람같지 않았다. 마치 자기는 서은괴일과는 아무런 관계없고 그가 갇힌것에 대해서조차 무감각한 사람같았다.     오빠도 웬 일인지 서은괴의 돼지대갈껍지바른 일도 그가 양즈방에 갇힌 일도 까맣게 잊고있는것만같았다. 술상에 마주앉기전에 그저 서은괴를 홀벌로 죽일 놈 아니라고 한마디 던졌을뿐이다. 괘씸했다. 하마터면 큰 변이 일어날번한 요란한 일이건만도 어찌 꿈만해할 수가 있단말인가?     오빠는 입을 열더니 이번에 쟁반밟으러갔던 일을 쏟아냈다.    《우린 이번에 저선을 멋들어지게 면바루잡았지.》    《맞았어! 그렇구말구! 위포토우 두령의 지기와 총명이 없다면야 어디 되기나할가. 이 진사해가 과연 탄복했소. 탄복했다니까.》     쟁반밟으러 나간 사람이 저선을 구해놓는거야 예전부터 써온 술책이 아닌가. 한데도 진사해가 엄지손가락까지 빼들면서 제일이라느니 고명하다느니 하면서 오빠를 개여올린다. 왜서 저러는가? 아첨해도 분수있지. 낯가죽가려운줄은 저리도 모르는가, 뒤에서는 엉꿍한 짓을 하면서. 하여튼 대단한 변신술이였다. 이시각 진사해의 이따위의 과장된 치살림뒤에는 모든 곡절을 겪어낸 간능한 자의 잔인이 꽂너울을 쓰고 숨어있음을 향란이는 보아냈다.     진사해가 취기오른 상판에 웃음을 다시발라붙이고 비나리쳤다.    《아가씨, 국이 밝아지자면야 대들보가 든든해얄게 아닙니까. 장차 맏두령을 승계 할 오빠를 잘 두었습니다. 아버지 영웅이면 아들이 대장이라더니 속담 그른데없지. 그리고 아가씨도 역시 재모가 출중하온즉 목계영하구두 가히 비길만할 녀걸이라 이 염왕산의 전도는 아무쪽으루 봐도 양양하단말이요. 안그러우?》    《아니 어쩜…》     향란이는 말을 하려다 그만두고 두눈을 살풋이 내리깔았다. 여지껏 남의 떠받들림속에 살아온 그녀였거만 진사해의 그런 치살림은 구역질이 나올지경 듣그러웠던거다.     잔을 련거퍼 비우다보니 사나이 둘다 이제는 술에 감취되여 주석이 파해질 림박인데 황보재가 느닷없이 나타났다. 손에는 대오리를 무어서 만든 두루마리 족자가 쥐여 있었다. 황보재는 들어오면서 눈길을 술상에 던졌다가 인츰거두고는 위용강과 진사해에게 부러 크게 국궁재배하면서 혀꼬부랑소리로 노적부렸다.    《두분 각하께서 귀체안녕하셨수.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온데 대해 짝짝귀 보재가 인사드립니다. 그리고 산채를 대표해서 형제들을 대표해서.》    《인사는 좋다만 네가 대표할 자격이나 되냐, 이 자식아! 그런 입치례인사는 상다리부러지게 해대두 반갑잖다. 진솔로 하겠거든 반강자나 한 병 들고오란말이야.》     진사해가 반죽좋게 받아치는 소리였다.    《말인사래두 절반받아주니 기분 좋을걸.》     황보재는 좌석에 끼이면서 떡심좋게 그냥 넌덕부렸다.    《손엣건 뭔가요?》     향란이 묻는 말에    《참 깜빡 잊었네. 향란아씨주려구 멋진 족자 하나 사왔지.》     황보재는 이러면서 갖고 온 족자를 내놓았다.     향란이가 두루마리를 감은 끈을 풀고 펼쳐보니 그 족자에 이런 글 여덟자가 씌여있었다.                     女慕貞烈  男效才良      《위아가씨 그걸 좀 높이 드시오.》      향란이가 시키는대로 하자 진사해는 목청을 돋구어 읽었다.    《이라. 거 천하의 일품이로다! 그렇지, 그래! 천만 지당한 말이야! 녀자는 절개굳은 렬려를 사모하고 남자는 재간있는 어진 사람을 본받아야 함은 지극히 옳은행실아닌가!》     방안은 일시 진사해의 도도한 열변뿐이다.     례물이라고 다 좋을가. 향란이는 족자에 씌여진 글을 재다시 음미해보면서 낯색이 점점 굳어갔다. 저 짝짝귀가 왜서 이따위글은 내한테 사다주는거냐. 저놈이 나를 부정한 녀자로 치부하고 놀리는게 아니냐. 목대꺾어치울 빌어먹을 자식!    《누나 조심해. 보재가 누날 가만두지 않겠다 했어. 빼버릴 재간은 없어두 가슴 딱 결리게라두.》     언젠가 장평이 귀띔해주던 일이 새삼스레 상기됐다.     있기는해도 요긴한데는 쓸 수 없으니 무용지물이나 답잖아 개나 먹게 떼주면 좋을걸 달고있는 황보재, 꼴이 그러하건만도 이성에 대한욕구와 점유욕만은 죽지 않아서 녀인의 버림에 반발하는 황보재였다. 술은 어디서 저렇게 퍼마신걸까. 울기올라 벌개진 얼굴을 들어 넌지시 말을 걸어오는것이였다.    《향란아가씨 이 글이 어떻소? 맘에 드는지?》    《뭐라구 대답할가요…아무튼 감사해요.》     향란이는 곧추일어서려는 눈살을 얼른 사르고는 부어놓은채 마시지 않은 자기 잔을 그한테 넘겨주며 권했다.    《자 받아요. 오늘밤 이 술좌석은 산채를 나갔다 돌아오신 두분 오빠를 위해 제가 특별히 마련한거얘요. 모처럼 찾아왔으니 잘된셈치죠. 어려워말고 들어요.》     황보재는 턱을 치켜들며 웃었다.    《그래볼까. 하하하…》     진사해도 따라웃어댔다.    《하하하…》     내막을 모르는건 오로지 위용강이뿐. 그는 황보재가 지금도 의연히 제 녀동생을 열성지극히 사랑하고있는줄로만 여기면서 나무리는 눈길로제 이켠을 본다.    황보재는 향란이가 준 술잔을 들어 단모금에 비웠다.       진사해가 밸을 돋궈놓을 심산이라 일부러 아픈데를 건드렸다.   《보재 너 백탁은 나았나?》   《아직은…》   《귀잃구 백탁걸리구…네 신세가 왜 그렇게 오그라지는거냐.》    응대가 없으니 한술 더 뜬다.   《여봐 보재, 넌 족자사느라 아마두 거리바닥을 싸댔을텐데.》   《말두 별나게 하네. 거리를 나돌지 않구두 사는 재간있소?》   《네가 아마두 소가죽을 무릅쓴거같애서 그런다. 그모양으루 짝짝귀를 해갖구두 부끄럽지 않더냐?》    붙는 불에 키질이였다. 애들이 길거리에서 짝짝꿍을 치며 놀려주던 일이 상기되는데다 진사해의 심한 야유가 그를 촉노시켰다.   《제길할 심통이 터져서 원!》    향란이는 지짐떡같이 달아나고있는 황보재의 얼굴을 보면서 속으로 짝짝궁을 치고나서 기름을 쳤다.   《호호호…그리두 밸나던가요. 걱정말아요. 곽란에는 생숙탕. 심통에는 울금분이 약이래요.》    녀인의 조롱에 분통이 더 크게 터지는지라 보재는 갑자기 야수같이 사나와지면서 제 본심을 드러내고야말았다.   《내가 그 녀석을 가만둘 바보같은가. 아니야, 아니! 아무 때든 분을 풀고말테야, 분을! …약! 약! 약은 이거야!》    하면서 그는 어느새 뽐창 다섯개를 꺼내 문설주에다 활 뿌렸다.    그것들은 쌩―날아가더니 모두 단단히 밖히였다.   《아니 이 자식이!…그런데 왜 이 야단질이냐. 네가 살수신이나 붙은거아니여?》    진사해가 짐짓 놀랜 것 처럼 제 친구를 꾸짓었다.    향란이는 속으로 쓰거워했다. 병주고 약주는 비루한 놈. 저는 손안대고 남을 추겨대는 야바위같은 네놈의 그 불측한 심보를 내가 그래 모르는줄아느냐.    《아무리 어찌구 어째두 일낼짓은 말라구. 알았는가.》     위용강이 기분이 언잖아 경고한다.    《취했네요… 내가 놀랬어요… 옛어요… 잘 건사해요.》     향란이는 문설주에 밖힌 뽐창들을 뽑아다가 몸을 제대로 가누지못하는 황보재의 손에 쥐여주었다.     사나이는 주는대로 받아서 세여보지도 않고 제 품에다 넣고는 비츨거리면서 일어났다.    향란이는 감쪽같이 채낸 뽐창 하나를 자리밑에 감추고나서 술상을 거두기 시작했다.        그때로부터 사흘이 지나서 위삼포는 오장이 바뀌여 감히 자기 앞에서 돼지대갈을 놓고 깝지발쿠는 놀음을 논 서은괴를 끌어냈다.    무릎꿇고 않아서 고개를 푹 떨군 40대의 상고머리 사나이. 위삼포는 그의 오장륙부를 당장 뽑아낼듯이 쏘아본다.   《은괴 넌 네가 무슨 죄를 졌는지 알겠지?》    서은괴는 뜻밖에 숙였던 머리를 번쩍 치켜드는데 나오는 태도 역시 완강하거니와 당당했다.       《내가 무슨 죄를 졌습니까. 난 죄없습니다. 난 그저 형제들의 의사를 대변했을뿐인데요.》    반둬더가 랭소를 머금은채 어처구니없어 껄걸 웃었다.   《네가 형제들의 의견을 대변했다? 미친녀석! 그래서 그런걸 갖구 작난질쳤다는거냐, 엉?》    사량팔주 모두가 서은괴를 향해 불탄을 던졌다.   《이자식, 무슨 궤변을 그렇게 해. 돼먹지못하게!》   《뻔뻔스런 자식! 반역을 하구두 변명은 웬 변병이이냐?》   《네가 감히 그런짓을 하다니. 아니다 이건 네 혼자의 소행이 아니다. 말해라 어느 도까비한테 홀렸어? 동당을 대란말이다.》    위삼포는 헛짓임을 알면서도 심문을 들이댔다.   《은괴야, 어서 이실직고하거라. 동당이 누구냐?》   《원, 무슨말씀인지…없습니다.》   《없다? 없다구? 그렇다면 너한테 묻겠다. 어미소죽으면 새끼소가 멍에를 질텐데 밭이 묵을가봐 걱정인가구 지벌인건 누구냐?》   《난 모릅니다. 내한테 그런 말 한 사람이 없습니다.》   《없다? 자기는 돼지대갈발쿤적있다구 너께 말한 사람두 없단말이냐 그래?》   《없습니다. 그건 꿈밖의 소립니다.》   《꿈밖의 소리라? 자식이! 허다면 네가 그놈의 재간을 꿈에 귀신한테서 배웠단말이냐 그래?》   《거야 배우지 않아도 될 일이 아닙니까.》   《배우지 않아도 아는 일 너만은 했구나. 그렇지?》   《위두령께서는 공모자를 찾는 것 같은데 그건 아니될 일입니다.솔직히 말씀드려 없으니까요.》   《공모자가 없다? 좋아. 그럼 네 혼자의 짓이라구하자. 넌 그게 무슨짓인지야 알겠지.》   《압니다. 한차례 성공못한 반란이였습니다.》   《그런걸 그래 너 혼자서 꾸밀 수 있다는말이냐, 자식!》   《제 말을 믿지 않아도 좋습니다. 맘대로하시오.》   《그럴테지. 아무렴 네가 제 동아리를 치겠냐.》    위삼포의 얼굴에서 한번다시 얼음장같은 조소가 피여오르면서 경멸의 빛을 띠더니 그대로 굳어져버린다. 내가 저따위것을 사람이라 믿어줬으니 눈이 멀었지 하고 탄식하는 것 같았다.    위삼포는 멀정한 거짓말로 엇서는 서은괴를 아느새 노려보다가 마지막으로 한마디 내던지였다.   《개입에서 상아를 끄집어내려했으니 내가 어리석도다. 공모자가 누군건 나도 대개는 아는바니 아무때건 그도 네 꼴로 될거다.》    위삼포는 진사해의 이름을 찍지 않았다. 한 것은 사량팔주가운데 그의 괘주를 도와준 사람이 있기때문이다. 이 일은 호상간의 불신과 반목을 야기시켜 내부를 혼란에 집어넣을수 있길래 서둘러 끝맺지 말고 각별히 조심해야했던것이다.    대의명분(大義名分)을 지고무상의 신조로 삼고있는 류자들은 제 동아리를 물어먹는 것을 가장 용서못할 죄악으로 치부한다. 하기에 류자내에서 만약 의절하고 배신하는 자가 발생하기만 하면 그들은 짜고서 그런자의 집을 도룩을 내거니와 지어 어떤때는 삼대까지 멸종시켜버리는 것이다.        서은괴는 내란음모죄로 판결이 내렸다. 처형이다.    사형장은 산채서쪽골의 벼랑가. 언제나 사령(死靈)이 술렁대는 곳이였다. 여기가 염왕산으로 이름이 지어진 이래 줄곧 으로 불려지기도했다. 여기의 돌과 모래에는 다른 패거리에서 잡혀온 류자의 피도 숱해 뿌려졌던거다.    벼랑의 한귀퉁이에 돌로 만든 자그마한 신단이 있다.    결박을 지우지 않은 서은괴는 신단에 놓여있는 향로에 향을 세대꽂고 절을 했다. 그런 후 절로 벼랑가에 있는 돌걸상에 가 앉았다. 그에게 차례진 최후의 자유는 그것뿐이였다.    이들은 무릇 사형시면 총을 절대 뒤에서 쏘지 않았다. 한 것은 그따위《검은 총질》을 그들은 광명정대한 행위가 아니라고 여겼기때문이다. 그래서 총살은 언제나 꼭 앞에서 했다. 그러되 머리도 쏘지 않고 단방에 숨통을 구멍내는것으로 사형을 끝내군했다.    위삼포는 자기 대오의 모든 류자가 모인 앞에서 자못 정중하면서도 조금 갈린 음성으로 간단히 말했다.   《각심소위는 분렬을 초래할 뿐이다…서은괴가 비록 공은 있다만 용서치 못할 죄를 지었다. 그 죄가 무엇이겠는가. 곧바로 내란을 음모한 그것인거다…각자는 한번다시 명기해야할지로다. 우리네 염왕산이 국이 밝아지자면 형제 모두가 각립각행을 말고 결심륙력하여 하나의 몸으로 돼야할 것이다.》    사형은 일반적으로 포토우가 집행하기로 돼있다. 한데 서은괴를 괘주하게끔 소개한 사람이 바로 지금의 포토우였다. 하니까 그가 제 손으로 그의 명줄을 끊어놓고싶어할리만무였다. 아무튼 사람지간에 인정이라는건 있기마련이요 또한 숨길수도 없는 일이다. 그리고 서은괴를 놓고 보면 살려두지 못할 대죄를 짓기는했어도 여직 용감한 사나이로 인정받아왔고 패장노릇하면서도 남과 척지은 일이 별로없으니 미움도 별반사지 않았던거다. 그런즉 다른 누구보고 나와 총을 쏘라해도 선듯이 나설자가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이럴때는 억지명령보다 제 손으로 직접 없새치우는게 상책이였다. 그래서 위삼포가 권총을 뽑는데 그의 처지를 벌써 알아채고 선듯이 자진해 나서는 자가 하나 있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진사해였다.   《이일을 맏두령께서 어떻게…》    자기는 사정을 두지 않는 듯 하는 그 거동이 너무나 태연했다.    진사해는 당장 생명을 잃게된 서은괴를 향해 제법 노기서린 목소로 한바탕 그럴 듯한 질타를 퍼부었다.    《나라에 임금이 있고 산채에 두령님이 있다. 가 만백성이 임금을 대함에 례의일진대 그것은 또한 우리들 류자 매인이 제 두령님을 대함에 도의로 비춰지기도 하는거다. 그런데…서은괴야 너는 괘주때의 맹세는 어데다 팽가쳤느냐. 변심하면 엄벌받는줄이야 알았을테지. 그리고도 불궤지심으로 두령님을 노엽히고 모든 형제들을 실망케 했으니 이보다 더 대역부도한 짓이 어데있겠냐… 은혜도 모르는 발칙한 네놈을 오늘 내가 빼버릴테다.》    총소리울림과 함께 서은괴는 꼭끄라졌다.    자기가 가장 믿어온 자의 손에 명줄을 끊기우고말았다.    하지만 그는 죽어도 눈은 감을 수 있게되였다. 그렇게된 것은 최후의 조식때 만투속에 들어있는 《너의 식솔을 책임지고 부양할것이요 원쑤를 갚아줄테니 안식하라》는 쪽지를 그가 받아보았기 때문이다. 그를 죽음에로 몰아넣은 진사해가 량심상 가책을 느낀나머지 제때에 손을 써 자기 주머니를 털어낸 거액으로 그에게 먹을 것을 날라가는 한 새자를 매수하는데 성공했던 것이다.    위삼포는 심복지환으로 변해버린 서은괴를 처단했다. 일벌백계(一罰百戒)로 수하 새자들을 다스리려함이니 적시적인 조취였다.  일호백낙(一呼百諾)이다. 위삼포의 호소를 천명으로 받들어 온 류자들은 다가 그의 처사를 천만지당하게 여기면서 의견도 불만도 없었다. 하지만 진사해의 저돌적인 행위에는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진사해가 저같이 지독할줄은 몰랐다고 하는 사람, 서은괴가 친구를 어떻게 사귀였으면 저모양이 되느냐 하는 사람…하여튼 그의 이번 거동은 생각밖에 너무나 반상적이여서 의분을 백출시키면서 적잖은 류자들을 종잡을수 없게 만들었던 것이다.    위삼포와 사량팔주는 다가 류자들의 반향에 신경을 세웠다.        입이 무거워 쉬히 발설하지 않는 것을 보고 쪽박이 굳다고하는데 이번 일을 치루면서 장평이 바로 그런 새자로 변하고말았다. 처음에는 진사해의 편을 서던 그가 지금은 이쪽에 리용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여전히 이왕과 같이 진사해와 남모르게 각별한 사이인 것 처럼 지내면서 그의 일거일동을 면밀히 감시하고 있었다. 알짜특무였다. 이것은 향란이와 민호가 시켜서 된것이거니와 맏두령이 그한테 비밀리에 임무를 주었기때문이기도 했다. 바로 이 모양으로 발을 량쪽배에 올려놓고 있는 장평이였기에 자칫잘못하면 진사해의 손에 감쪽같이 죽을수도 있고 위삼포의 손에 잘못될수도 있었다. 하니까 정신을 바싹 차리지 않으면않안되였다.       향란이가 민호를 찾아와 알아봤다.     《게뚜더기 노는 양을 잘 보셨겠죠. 거기는 감상어때요?》   《그자가 그토록 미런한줄은 몰랐지. 연기가 너무나졸렬했어.》   《면바로봤네요.》   《제딴엔 이목을 흐리게 한다는게 되려 제 본심만 드러내고말았어. 아가씨보게는요?》   《글쎄요. 내 눈에도 그렇게 밖에 안보이더군요. 우릴 아두로 알았는지… 그자가 글쎄 그따위 어리석은 광대극까지 놀줄이야 뉘알았겠어요. 그야말로 소웃다 구럭터질 일이지.》   《제깟것이 아무리 그래봐야. 송곳을 호주머니에 넣는 격이지. 오래감추진 못할 걸.》    민호는 이러면서 아무때건 흉계의 밑바닥이 드러나게 해서 그자에게 참혹한 죽음을 주리라 별렀다. 얼마나 애를 끓였던가. 원쑤갚을 기회만 호시탐탐 노려온 그였다.    날이 어두워지자 장평이 향란이를 찾아와서 진사해가 사양실의 장령감보고 반강자있느냐고 물어보는 걸 보니 아마도 또 술을 마실모양이라 고해바쳤다.    산채를 나갔던 진사해는 자기가 돌아오면 염왕산에는 큰 변이 나서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지리라 생각했었는데 빌어먹게도 그렇게 돼주질 않았다. 돌아와 보니 반란이 생기기는 커녕 위삼포를 없애치우리라던 서은괴가 되려 잡히우고말았다. 후회막급했다. 내가 이게 뭐냐. 너무나 조급하고 단순했지. 왜서 잘 조직된 다음에 행동하게끔 하지 않았더냐. 자신을 위장하느라했지만 진사해는 식혜훔쳐먹은 도적개가 몽둥이를 본 것 같이 가슴이 떨렸다.     궁여지책《窮餘之策》이랄가, 제 손으로 서은괴를 천당보낸 진사해는 조용한 곳에서 술로써 밀려드는 고통과 번뇌를 달려보려했다. 그는 장령감보고 술을 준비하라해놓고는 날이 어두워지기를 기다려 후근마사로 갔다. 그런데 황보재가 나타났다. 그를 찾아다니다가 드디여 여기로 온 꼴이다. 이런 제길할거 혼자 좀 있자니 원. 진사해는 그가 온 것이 반갑지 않았지만 쫓아버릴재간이 없었다.   《쇠천뒷글자라더니 내사 진형의 속맘 알아보지 못하겠소.》    이러면서 황보재는 진사해를 만나자 두억시니같이 당장 잡아먹을양 두눈을 지릅뜨고 보더니 남이 먹자던 술 한사발을 벌물켜듯이 하고나서 뱃속에서 부글거리는 불만을 내뿜기시작했다.   《진형은 오늘 무슨짓을 했소. 그래 그 짓을 할 사람 여기 염왕산에서 진형밖에 없단말이요? 왜 그렇게 우쭐렁거렸소, 엉?》    진사해는 그한테 제 속을 내비칠수는 없는지라 해석조로 조용히 말했다.   《난 그렇게 해야한다.》   《아니 뭐라우? 사해형은 그렇게 해야한다구?…그건 대체 무슨소리요. 그렇게 해야한다니. 사람이 어쩌믄…량심이 있소 없소?》   《야 이거, 어째서 이렇게 소가지를 내는거냐. 내가 잘못한게 뭐 있다구… 너 좀 잠자쿠있거라, 제발.》   《뭐라우? 날보구 잠자쿠있으라?…건 왜서요?…난 그러지 못하겠소! 그러지 못하겠단말이야! 진짜루 환난지우라면 안그래. 건데두 진형은 어떻게 했는갈 좀 보란말이요. 자기가 무슨꼴로 놀았는갈 좀 생각해보란말이여. 어이구 참. 별꼴 따 본다!》   《이자식이 게사니고기를 먹었나. 소래기는 왜 이렇게 쳐.》    진사해는 머리가 단순한 이런 인간을 내가 왜 친구로 사귀였더냐고 속으로 후회하면서 제발 입다물고 떠들지 말아달라고 했다.    그러나 내막에 깜깜인 황보재는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배속에다 부어넣은 도수높은 배갈이 배짱을 쓰게 했다. 나라님이 내 손자같고 애비도 내아들같아뵈였던지 그는 얌전해지기는 새려 들말같이 점점 더 성깔만 부리기 시작했다.   《쳇. 날보구 입다물라구? 떠들지 말라구?…물어보기오. 은괴가 진형한테 잘못한게 뭐요? 그가 사해형 섧게해준게 뭔가말이요, 엉? 적잖은 형제들이 진형을 제사람으루 여기도록 해줬지…떠받들게 해줬지…그런데두 나 원. 이…이눔의데가 이래. 선인은 하나두없구 악인만 모여 사는 이눔의데가 이래. 큰 뱀이 작은 뱀을 잡아먹구. 개구리가 메뚜기를 잡아먹구…》   《닥쳐! 떠들지 말란데두 무슨놈의 개소리 괴소리냐, 이렇게.》   《큰 놈은 작은 놈을 잡아먹구. 네가 은괴를 잡아먹었어.》   《야 이자식이 인사불성이구나!》    진사해는 벌컥일어나면서 주먹으로 그의 귀통을 한매 되게 우려줬다. 그리고는 그를 잠이나 재우려고 사양실에서 끌고 나왔다.    밖은 코를 떼가도 모를지경 캄캄했다.    어둠속에 무슨 괴사가 없으랴. 그들이 사양실을 방금나서자 황보재가 《억!》하고 앞으로 꼭그라졌다.   《이 자식아, 내먹자던 반강자 네 다 처먹더니 이꼴이구나. 일어서라, 이 자식아!》    진사해는 망돌같이 무거워진 그를 끌고 그의 잠자리가 있는 산채로 들어갔다.   《어딜 가 처먹고 곤죽이 됐어?…아니 그런데?!》    아직 잠들지 않은 류자가 구시렁거리며 일어나 불을 켜고 보더니만 살인이 났다고 벅작고왔다.    황보재의 가슴에 뽐창이 박혀있고 피가 흘러나와 흰적삼을 뻘겋게 물들이고 있었던것이다.      
132    장편소설 <<관동의 밤>> 제1부(13) 댓글:  조회:2112  추천:0  2015-02-03
                      13             침략자의 철학은 강권이 진리라지만 토비의 철학은 폭행이 진리였다. 돈을 벌자, 큰돈을 벌어야한다, 그러기위해서는 깃발을 꽂은 큰기와가마를 마사야한다! 이것이 바로 위삼포가 여지껏 웨쳐온  구호였고 목표였다.    그들이 기와가마라고 부르는 부호를 털때 계획대로 성공하면 그걸《소리났다》하고 실패하면《소리못났다》고 한다. 기와가마에는《무른가마》와《단단한 가마》두가지 류형으로 나뉘는데《무른가마》란 울타리를 나무로 했거나 아니면 널판자로 한 부자집을  가르킨다. 이런 부호들은 거개가 집모퉁이거나 마구간이거나 아니면 사람 다니는 곳에다 은페된 저격시설을 해놓았다. 《단단한 가마》란 집주위에 토성을 했거나 아니면 벽돌이거나 돌로 든든하게 담을 높이쌓고 사는 대부호를 가리키는데 어떤 부호들의 성에는 지어 네귀에 포대가 있고 지키는 사람도 전문 따로 있었다. 그런  대부호들은 돈을 아끼지 않았는바 산에서 퇴역군인이나 불질잘하는 포수를 청해다 고용하기도했다.     한편 어떤 군벌과 대부호들은 토비의 습격과 략탈을 막기위해 자체의 무장대를 따로갖기도했다. 그리고 그럴 형편이 못되는 부호들은 관병을 청하거나 아니면 정규화가 못되는 화방자(花膀子)경찰대같은 지방의 무장대를 돈을 주고 청하거나 아니면 촌단(村團)이거나 련방(聯防)같은 무장대를 조직하여 토비들의 습격에 대처하고있었다.    아무리 그렇게 한들 그들이 생존활기를 위해 광분하는 사나운 토비의 발호(撥扈)를 어떻게 다 당해낸단말인가!    광활한 관동땅 도처에서 거의 매일이다싶이 토비와 부호들지간에 치렬한 공방전이 벌어지고있었으니 그것은 짜장 전쟁다운 기분을 풍기고 있었다.    자체의 무장대를 갖고있는 토호거나 큰 재록신들은 자기 집의 굴뚝에다 붉은기를 높이 꽂아놓음으로써 위풍을 과시했다. 그같이 붉은기를 내꽂은 것은 내가 너깟 토비쯤은 무섭지도 않으니 어디 덤벼들겠거든 덤벼들어봐라는거니 그것이 실질상에는 토비를 향해 선전포고를 하는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웬간한 실력으로야 감히 얼씬거리기나하겠는가. 하길래 작은 무리의 토비들은 그저 깃대를 꽂지 않은 만만한 부호나 돌아가며 못살게 굴었다.     큰나무여야 그림자도 큰것이다. 여기 북만은 물론 온 관동땅에서 굴지인 염왕산은 언제나 담이 크게 놀았다. 이듬해의 가을이 돌아오자 그들은 또 한차례의 기와가마마슬 새 작전이 무르익었다. 방향은 계서(鷄西)일대. 그들이 노린 몇 개의 부호중 첫목표물은 그곳 조씨(曹氏)성을 가진 깃발꽂은 대부호였다. 조씨는 근년에 나타난, 말하자면 이른바 운수가 대통해서 생겨난 폭발호(爆發戶)였다. 그는 관내에서 몰려온 난민들을 싼값으로 모아갖고 채탄업을 벌려 거부로 된건데 처첩을 여럿거느리고 예황제부럽잖게 호강살이한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러니 위삼포의 과녘으로 될 수밖에.    계서는 이때 개발이 한창인 탄광지대였다. 그런데 탄갱이 여기저기 널려있다보니 그에따라 인가도 자연히 널려서 혹은 적게 혹은 많게 제마끔 무덕무덕 군체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아직은 스산한 곳이였다. 그렇다해서 만만히 봐서야 될가? 절대 그럴수 없었다. 한 것은 집이 도회지에 있지 않고 거기다 자리잡고있는 부호마다 자기 무장을 갖추고있었기 때문이다.      꽤 오랜기간의 정찰끝에 준비가 다 되자 염왕산의 군사 반둬더는 황도길일(黃道吉日)을 보았다. 그리고는 그날이 돌아오자 위삼포가 산채에다는 60명만 남아지키게 하고 자기가 친히 300여명의 인마를 거느리고 나섰다.     그들은 목단강을 건너서 동진(東進)했다.      가마마스는 일이 번마다 쉬운건아니였다. 이번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관병이나 련방대에 발각되지 않기 위해서 행군을 거의 밤에 했다. 그렇게 해서 이틑날 먼동이 틀 무렵에 목적지에 당도했다.     건곤일척(乾坤一擲)의 공격전이 벌어졌다.     한데 저항이 어찌나 완강한지 이쪽은 뜻과 같이 공략할 수 없었다. 포대가 이쪽의 밀집사격에 의하여 작용을 잃었지만 대문은 든든해서 열수가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담장의 사격구로 총알이 련발날아와 적잖은 새자가 쓰러졌다.     위삼포는 겁을 집어먹고 물러서는 새자 하나를 쏴눕히고나서 그결에 권총쥔 손을 높이들고 웨쳤다.    《누구든 문만 열라, 그러면 자유를 줄테다!》     그가 선포한 자유가 다른때는 볼 수 없는 특허였다. 제2련에서 서은괴가 거느리는 3패가 맏두령이 던져주는 그 특혜를 쟁취하려고 나섰다.   《자유를 위해 싸워보자!》   《향락을 위해 싸워보자!》    그들은 미친듯이 고함을 내지르면서 달려나갔다.    헛짓이 아니였다. 이쪽에서 대머리 포토우가 새로 밀집사격을 조직해 대방의 화력을 견제한 틈을 타 그들은 결사적으로 담을 넘어들어가 끝끝내 대문을 열어놓았다. 그래서 싸움이 붙은지 근 반시간만에 첫 번째의 《단단한 가마》는 마침내 부셔지고 말았다.    위삼포는 조만해서는 계획한 일을 그만두는 성질이 아니였다.    첫 기와가마가 공점되자 위삼포는 공을 세운 3패만 거기에 남겨놓고 자기는 주력을 끌고 인차 그 다음의 사냥물로 정해진 기와가마를 마스러 떠났다.     이미 허락된 자유가 아닌가. 그것을 누려보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최대의 유감으로 되고말 것이라면서 이곳에 남은 서은괴패의 류자들은 두령이 가버리기바쁘게 제 본성을 유감없이 발휘하기시작했다. 그들은 우선 손에 무장들고 대항했던 자들을 다 끄집어내다가 담장밑에 세워놓고 총을 놓아 죽여버렸다. 그러고나서 그들은 서둘러 그야말로 쥐새끼도 빠져나가기 어려울 수색과 무자비한 략탈을 감행했다. 물론 망탕히 한것이 아니라 서은괴가 끄는대로 깐깐히 해나갔다.     그것이 일단 끝나자 서은괴는 그 집의 종들에게 말을 잘 먹이게 호령하는 한편 죽일가봐 겁나서 벌벌 떨어대는 그 집 사람들을 닭이며 오리를 있는대로 잡게했다. 반강자(기름떡)며 표양자(죠즈)며 진주산(이팝)도 하게했다.     3패의 류자들은 배껏먹고 마시였다.     야수는 배만 부르면 늘어지게 쉬건만 이들은 그러지를 않았다. 서둘러 계집데리고 노는 행사를 벌렸던 것이다. 그런데 새자 여럿이 죽어버려 수자가 줄었건만 그 집의 녀인수가 이쪽과 정비례가 되지 않는게 문제였다.    《제밀할거, 어쩐다?…》     서은괴는 불만에 볼이 부어오른 자기 패의 새자들을 향해 팔을 홰홰 저었다.    《제밀할거, 우리 이러잔말이야. 보다싶이 년놈의 수가 모자라잖은가. 이럴때는 우리두 한 번 공산을 하잔말이다. 그러는게 어때?》     그의 제의는 날이 서지 않았다. 개방구라면서 코방구뀌고 돌아서는 자들이 있었다.     두녀석이 얻어맞아 늘어진채 아직도 정신차리지 못하고 있는 집주인 조씨의 해사하게 생긴 첩년 하나를 놓고 서로 제가 가지고놀아야한다고 우기면서 다툼질을 했다.     《자 자, 그럼 차라리 이렇게 하자. 너들 누가 담이 더큰갈 어디 한 번 멋지게 비겨보란말이다.》     누군가 현명한 해결책을 내놓았다.    《할려면해봐!》     다투던 자 중 하나가 선듯이 먼저나섰다. 그자는 바지가랭이를 걷어올리더니 내놓인 자기 다리의 장단지에다 비수를 쿡 밖았다.     《아!…》     곁에서 모두 탄성을 올렸다.     자상을 한 그 류자는 상대측을 향해 어떠냐 자신있거든 너도 어디 나처럼해봐 하고 눈길을 날렸다.    그러자 저쪽 자가 칼로 제 한쪽다리의 장단지살을 썩 베여 그자의 앞에다 던진다.   《와아!…》    이번에는 더 큰 탄성이 터지면서 갈채까지 곁든다.    칼끝을 장단지에 밖은 자가가 그만 고개를 떨궈버린다. 이제 더 큰 동통을 만들어 낼 용기가 없는모양이다. 결국 제 장단지살을 베낸 자가 승리한것이다.     녀자쟁탈전이 그 한가지 모양만이 아니였다.     저기 다른 한켠에서는 울음을 그쳤지만 내내 놀랜 토끼새끼모양으로 제 가슴을 부등켜안고 오돌오돌 떨고있는 애처로운 계집하인 하나를 놓고도 류자 둘이 서로 제가 먼저맡아놓은거라며 입에 거품을 물고 있었다. 녀인이 목과 젖가슴에는 그리 험하지 않은 칼상처가 가늘게 나있었다. 그것이 그들이 제마끔 제것이라 만들어놓은 표식이였던것이다…          위삼포는 계서일판을 이틀간 불나게 휩쓸고나서 말머리를 급히 돌렸다. 좀만 더 지체했다가는 련방대의 포위에 들 위험성이 있었으니까. 말타고 행패부리는 그들이야말로 과연 신출귀몰하다는 평을 받을만도했다.     전번날 건넜던 강가에 이르고 보니 어느덧 날이 저물었다. 숨을 돌려야했다. 게다가 어둠의 장막속을 그냥갈수도 없는지라 위삼포는 날이 새면 건너기로 하고 강변에다 둔을 쳤다.     류자들은 련며칠간 사정없이 혹사한 말들을 휴식시키면서 단잠에 골아떨어졌다. 하지만 이번에 잡혀온 5명의 운수사나운 인질들은 눈을 전혀 붙일수 없었다. 양즈방이 모닥불을 피워놓고 그 주위에 빙 둘러앉게 한 후 방울을 주어 인질마다 그것을 다섯 번 흔들곤 다음사람한테 넘겨주는 계주를 끊지 않고 계속하게끔했던거다. 그것을 수이꾸이(水櫃)가 지키고 있었다. 그는 방울소리가 좀만 멎어도 채찍을 사정없이 날렸다. 수이꾸이는 전문 인질만 감독하는 류자였다. 양즈방이 왜 이런 방법을 쓰겠는가? 그건 두말할것없이 바로 비호자(飛虎子) (돈많은인질)를 이같이 괴롭힘으로써 굴복시켜 자기의 목적을 어서빨리이뤄보자는 목적에서였다. 토비손에 인질로 잡힌 자 모두 겁을 집어먹고 떨어대는건 아니다. 목숨보다 돈을 더 귀중히 여기는 수전노거나 이쪽에서 요구하는건 돈이지 사람의 목숨이 아니니 간대르야 하고 쓸데없는 배짱을 부려보는 자가 그러했다. 하길래 양즈방은 인질을 잡는 그 시각부터 내가 어떻게 하면 완고한 이 자식을 굴복시킬가고 골머리를 쓴다. 어쨌든 시일을 오래끌지 않고 인질을 돌려보내는게 상수요 재간이였다.    《오래잡아둬선뭘해 밥축만내는걸. 나도 고생이고.》     양즈방이 이런말하는 걸 민호도 들은적이 있다.     염왕산도 인질을 잡아가두고 협박해서 돈을 내게 하기도 하고 금품(金品)을 바치게도 하는데 다른 여느 도당과 색다른것이라면 이들이 잡는건 다가 먹을알이 큰 비호자(飛虎子)라는 것과 조만해서는 잡은 인질의 모숨은 빼앗지를 않는 그것이였다.     양즈방은 마음이 독해야 하지만 우선 수완가여야한다. 이 한 도당의 중점활동의 하나가 인질을 잡아오고 그를 다루는것이였기에 외사량 넷중 양즈방이 첫 자리에 서는 것이다.     염왕산의 양즈방은 환갑이 방금지난, 눈이 치째진 사나이였는데 모색이 어찌나 쌀쌀하고 독살스레 생겼는지 인정미라곤 꼬물만치도 있어보이지를 않거니와 어찌나 엄한 티를 내는지 일반사람은 감히 부접도 못할지경이다.     그런 사람이 잡아온 인질을 제 양아들로 삼았다니 민호는 종시 리해되지 않았는데 마침 그 리유를 알아볼 기회가 왔다. 인질보러 갔던 양즈방이 지나다가 아직 잠자지 않고 우등불가에 홀로앉아있는 그를 발견하고 가까이에 다가왔던거다.    《넌 왜 자잖아?》    《잠안옵니다. 양즈방두령께서두 앉으시여 불이나 쬐시죠.》    《그럴가. 밤기온이 과연 쌀쌀하구나.》     이러면서 그도 우둥불가에 쭈크리고 앉는다.     민호는 인질쪽에 눈길을 던졌다가 거두고 입을 열어 물었다.    《저 표들이 이틀이나 눈을 영 붙혀보지 않아서…》    《방금도 한 녀석이 낯까지 뎃네라.》    《불더미에 꼭그라졌던모양이죠.》    《……》    《그토록하면 너무혹독하잖을까요?》     민호는 물어보지 말아야 할 말을 했다. 류자내에서 일반새자는 웃나으리앞에서 그 어떤 일이든 함부로 간섭하지 않기로 되어있다. 한데도 양즈방은 오늘만은 개의치않고 응대하는것이였다.    《혹독하게 굴잖으면 어떡하겠나, 마음편하면 집에다 사정도 알리지 않는데. 돈많고 구두쇠질하는것도 아마 부자들의 류행병인가보다. 생각해봐라. 그런자한테 자비를 베풀어서야 무슨일이 성사되겠냐. 이 일을 하자면 우선 손이 매워야 하네라.》    《저도 그렇다는건 압니다만…》     민호는 말을 끊고 양즈방의 기색을 살피다가 입을 다시열어 궁금한 것을 꺼냈다.    《저 양즈방두령님, 한가지 물어봐도될까요?》    《뭘말이냐?》    《언젠가 제가 들을라니 두령께선 전에 인질로 잡아온 애를 양자로 받으셨다더군요. 부모가 찾아가려하지 않아서 그리했다는게 사실인가요?》    《그렇게 됐네라. 넌 장평일 놓구 하는 말이겠지.》    《예. 그렇습니다.》    《애가 귀엽게 생겼더구나. 내가 걔의 부모들이 얼마나 상심이 크겠나 생각하고 해엽자를 인츰띄워 데려가라했지. 그런데 응대가 없더구나. 그래 어떻게 했겠냐. 우리쪽에서 요구하는 액수가 너무많아 그런는모양이구나 생각하고 퍽 줄여갖구 화서즈더러 해엽자를 한 장 더 띄우라했지. 그래서 와서즈가 곧 그렇게 한건데 애비란 녀석이 의연히 응대가 없더란말이다. 귀신하품할 일이지. 보아하니 방귀도 제거면 아까와서 악귀한테 물려간대두 안뀔 놈팽이야.》    《아무렴 그렇게까지야 원!》    《한심한 수전노지.》    《그래 어떻게 했습니까? 그저 그렇게 끝나고만건가요?》     양즈방은 힐끗 치떠볼뿐이다. 그는 두 번씩이나 해엽자를 보냈건만 끄떡하지 않으니 화가 동해 훗날 그를 잡아 죽여버린 일은 말하지 않고 입을 다시열어 동강나려던 이야기를 계속이었다.    《너 생각해봐라. 그런 애비의 손에서 자라는 애가 그래 무슨 사람의 값에 가겠냐. 그래 내가 걔보고 얘야 안되겠다. 내가 네 애비루 돼주마. 이젠 집에 갈 념은 말고 여기서 살거라했네라. 걔도 말을 듣더구나. 그래서 그렇게 된거다.》     양즈방은 잠간 쉬였다가 자기 말에 그루밖았다.    《사람살아가는 세상이란 본시 이런거네라.》     여름에 인질을 묶어서 여러날 끌고다니다 보면 묶인 자리가 꺼지면서 거기에 구더기 생길때가 있는데 그때면 양즈방은 수레기름을 태워 발라준다. 인질은 물론 아파죽겠다고 아부재기친다. 그러면  양즈방은 으레 널 잡자구그러는게 아니니 참거라 이게 약이네라 하면서 치료를 늦추지 않는다.     안그러면 어쩌는가. 언젠가 민호는 주하쪽에 있는 가마를 마스고 돌아와 양즈방이 산채에 있는 양즈방에 가둬놓은 인질을 그렇게 치료해주는것을 보고 우둔하고 잔인한 놈이라 했는데 다시생각해보면 그럴법도했다. 특효약이 따로 없는데야 그인들 별수가 있겠는가. 아무튼 고통스레 내쳐두지 않는것만봐도 가슴한구석에는 그래도 한쪼각의 자비가 남아있는 것 같기도해서 속으로 너도 사람이 옳기는 옳은모양이구나했다.     양즈방이 어깨를 추스르더니 입을 열어 물어왔다.    《네가 여기루 온지가 언제더라?》    《지금이 양력으루 구월초니 옹근 두해째지요, 두령님.》    《벌써 그리되던가. 세월이 류수라더니…그래 지내보니 재미는 어떠하냐?》    《재미가요…》    《맘은 안착이 돼느냐?》    《안착이요…》    《차츰지내누라면 살멋이 있을거다.》    《거야 그렇겠지요.》    《건데 언젠가 듣자니 거 한심한 내기들을 했더구나. 그런 짓은 왜 해.》     양즈방이 지난일을 문득 꺼내는것이였다.     무엇이라 말하랴. 민호는 입을 열지 못했다.     이때 마침 화서즈가 양즈방을 찾아왔다. 방금 인질 하나가 배겨내지 못하고 굴복했는데 함께 해엽자띄울 일을 상론해보지 않으려는가 했다. 반둬더는 잠못자며 지킨 보람이 있다면서 기뻐했다.     그들이 가버리자 민호는 졸음이 와서 자기 말곁에 쪼크리고누웠다. 그리곤 인차 쪽잠이 들었다. 꿈에 그는 방금 끓여서 김이 물물나는 라라부다 한그릇을 들고와서 먹으라고 주는 츄얼이를 보았다. 안해는 그보고 그지간 당신은 어데가있었길래 몰골이 그리도 축갔느냐며 상심하는것이였다. 과연 오래간만에 보는 모습이다.     말이 투레질했다. 그바람에 민호는 단잠에서 깨여나고말았다. 대체 어느땐지?… 하늘은 구름이 끼여 별들이 보이지 않고 소슬한 가을바람이 옷섶을 파고들었다.     가까운 어디에선가 반둬더가 주문외우는 소리 들려왔다.           일칠간위에야 모자람이 있으리오        혀는 돌아가지 않아 말하기 어렵도다        열시인지 열두시인지 알려주소서        삼구태위에 횡사가 있으니        상망이 많을가봐 근심이외다        한시인지 두시인지 알려주소서        오십일곤에 꼭 죽게되니        별이 나지면 구성이 되련만        세시인지 네시인지 알려주소서        ……        가마마슬때건 보복할 때건 시퍼런 대낮에는 대로를 맘대로 활개치며 다니지 못하는거다. 그래서 이들의 행동은 거진 어두운 밤에 있게되는건데 그러노라면 어렵고 기분잡치는 일에 자주부닥친치게되는것이다. 그럴때면 거기서 해탈하기위해 군사인 반둬더가 책임지고 온갖의 방법을 다하는 것이다. 례를 들어 행군도중 대오가 길을 잃으면 반둬더는 땅에 꿇어앉아 《팔문지패》를 논다. 반둬더는 건, 태, 이, 진, 손, 감, 간, 곤 팔방문이 열리는 점괘를 보는거다. 그래서 그는 패쪽이 열리는 방향에 따라서 대오를 움직이게 하는것이다.     어떤때는 모자를 벗어 던져 그것이 놓이는 것을 보면서 중얼거리기도한다.                           십팔라한 신선이시여                    우리한테 길을 알려주시오                    대오를 이끌어주신다면                    신선님을 잘 모시리다       어떤때는 네 방위에다 향을 피워놓고 그것이 빨리타는 쪽으로 가거나 아니면 손수건을 꺼내여 네귀를 접은 후 《십팔라한 신선님이시여 우리에게 길을 안내해주십사》하고 뇌이면서 공중에다 올려뿌려 접은 귀가 펴지는 것을 보고 대오의 행진방향을 정하기도한다. 이같이 지패를 놀아 점을 치거나 주문을 외우는건 반둬더가 늘 해야하는일이였다.     동녘이 푸름푸름해지더니 먼동이 트기시작한다.     잠을 깬 인마는 강을 건넜다.     련락원이 선통해서 염왕산은 경사났다. 폭죽소리 요란하고 곡분지에는 파아란 연기가 자오록했다.    붉은 비단치포를 화려하게 떨쳐입은 향란이가 산채에 남아있은 백두옹 량태와 즈좡 그리고 후근의 몇사람과 함께 개선하는 대오를 환영했다.    산채를 나간 류자들이 계획한 일을 성공하고 돌아올때면 언제나 어김없이 벌어지군하는 한나의 경건한 의식이 시작되고 있었다.     중앙산채의 널다란 앞마당 한가운데 놓여있는 단우에다 커다란 붉은 비로도를 펴놓았는데 산채로 돌아온 류자들은 말을 탄채 렬을 지어 지나면서 순서대로 자기가 여직까지 건사해온 장물들을 꺼내여 그 비로도우에다 던진다.    빨간 비로도우에는 보물이 싸인다.    민호역시 말안장에 매여있는 가죽주머니끈을 풀어 거꾸로 털었다. 금팔지 두 개와 은비녀 하나 진주목걸이 하나가 떨어졌다.   《저치가 수확이 괜찮네!》    누군가의 뇌임이 들려왔다.    돈과 보물은 점점 더 쌓이였고 류자들은 기뻐한다. 해빛에 눈이 부시게 령롱한 그것들이 이제 돈으로 바뀔것이며 그런 후에는 그들 저마다에게 다시금 분배될것이다. 바로 그것을 바라고 료략질을 해먹는 이네들이 아닌가.    보통 석달만에 소배일(小配日)이 있게되는데 그때면 류자들은 다시한번 명절기분에 잠기면서 배껏 먹고 마시고 푹 취해서 마음껏 놀아본다. 그러는 재미로 제 목숨을 그 어렵고도 무서운 도박판에다 걸고 한 번 또 한 번 출전하는건데 그들은 그 고비를 무난히 넘긴 안도감과 감출 수 없는 희열을 안고 소배일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게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은 웬 일인지 소배일이 전보다 열흘이나 늦어졌거니와 분배액수도 바라던것보다는 적었다. 그래서 왕견이도 하진국이도 민호앞에 왜 요것만 주나 하고 내심좋잖은 기분을 나타냈다. 한반의 다른 류자들도 왜 이럴가고 했다. 하지만 그 이상 더 떠들지는 않았다. 의견이 있어도 참는데 습관된 그들이요 두령들이 사욕이 있어서 따로 챙기는건 아니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 반이 그런다고 다른반도 그럴가?    소배가 지난지 3일만이다. 위삼포는 북쪽산채에 있는 새자 하나가 와서 맏두령님께서 한 번만 좀 오셨다가십시오.》해서 그리로 갔다.     문을 떼고 들어 가 보니 2련 3패의 새자들이 다 모인것같은데 한자가 바당에 돼지대가리를 놓고 퍼더버리고 앉아 칼로 깝지를 바르고 있는것이였다. 위삼포의 눈길이 주위를 한 번 쭉 훝고나서 그자의 몸에 다시떨어졌다. 지금 돼지대가리깝지를 바르고있는 자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패장인 서은괴였던것이다.     납덩이같이 무겁고 랭랭한 침묵이 꽉 내리누른다.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분위기였다. 류자무리에서 새자가 이같이 모여 돼지대가리를 깝지바르는건 두령 네가 보아라 우린 지금 너한테 불만이 생겼다 그런줄을 알고 정신차리거라 그러지 않으면 처리해버리겠다  하는 암시인 것이다. 수백을 헤아리는 토비떼가 성행하고있는 여기 이 관동땅에서는 이같은 일이 비일비재다. 그래서 어제까지도 맏형님이요 두령님이요 떠받들리던 자가 눈깜짝새에 제 수하의 손에 목숨을 잃고마는것이다.     염왕산이 생겨 여지껏 그따위 불의지변(不意之變)이라곤 한 번도 생기지 않았다. 지어는 꿈조차 꾸지 않았다. 한데 오늘에 이르러 이러한 장면을 당할줄이야 어찌알았으랴!    이들의 반역은 배타를 목적하는 철저한 결연을 의미하거니와 거기에 보복이 가해질 때면 잔인한 참살로 결말을 짖는것이다. 한데 이는 또한 어디까지나 음모적인것이여서 아직 성공하기 전에는 광명정대한 것이라 할 수 없다. 하기에 남의 충둥질에 못이겨 심기일전(心機一轉)하지 않고 동참했거나 주모자의 위력에 눌리고 강압에 못이겨 어쩔 수 없이 휘말려든 자는 자신의 죄책감으로 하여 어쨌는 행동이 떳떳치 못하고 어색한 것이다.    이런 어색함이 반죽된 집안에서 경계와 긴장으로 곧아진 여러쌍의 눈길이 두령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을 지켜보고 있었다. 깝대기를 발라 죽여치울 녀석, 네놈이 언감생심(焉敢生心) 내 앞에서 이런짓을 해?… 위삼포는 눈섶이 푸뜰거리면서 속에서 불똥이 튀였다. 그렇다고 당금 펄펄 뛰겠는가. 이 자리에서 당장 팔열지옥에 떨어진다해도 꿈쩍안할 이 억척보두는 끓어오르는 노기를 지긋이 눌렀다. 그리고는 일순간 돌이 되어 굳어졌던 얼굴의 근육을 느슨히 플면서 되려 여유있게 웃음까지 지어보이면서 부드럽게 물었다.   《동생은 갑자기 무슨일인가. 보아하니 내한테 그 무슨 불만이 생긴거같은데… 정녕 그러하다면야 시원히 말이나할게지.》   《좋습니다. 말하지요. 우리 삼패는 이번 출전에 인명도 잃고 공도 세웠습니다. 이 점은 큰형님께서도 잘 알고계시는게 아닙니까.》   《오 그러니까 배분이 잘못됐다 그건가?》   《그렇지요. 바로 그겝니다. 아무리 소배라두 분금은 되려 이전만못하니 대체 어찌된일입니까. 식소사번은 우리가 원하는 바가 아니올시다.》    《오 그런가! 내 알아들었네.》    서은괴는 돼지대갈을 그냥 바르면서 게정부렸다.   《안다면 왜 그러십니까? 유공자필득이라하구서는.》   《그래 그건 내가 한 소리야. 유공자필득이라구…동생은 그래 상이 없을가봐 그러나. 그리구…자네들이 목숨내걸구 벌어온 금전이야 까마귀가 물어갔을가. 있네, 있어. 깔축없이 그대루있단말일세. 건데 그걸 다 주자구보니 한가지 결리는게 있구만…그게 뭐겠나… 보다싶이 형제들이 여럿 눈감았는데 그분들의 식솔은 누가 봐줘야 하겠나. 그걸 우리가 돌봐야 할게 아니겠는가…내가 생각을 많이해봤지. 그래서…그러누라니 배분이 늦어지구 적게된건데 이제 또 묘동이 있잖은가…그때를 바라구 취한 소밴데 사전에 미처 설명을 못했군…기분잡치게됐어. 어쩌겠나 내 이제야 생각이 도니 알아서 다시보도록허지.》    위삼포는 돌아가자 지체없이 3패에다 이미받은 액수의 근 배되는 돈을 부가해주었다. 이건 물론 그가 마음내켜서 하는 일이 아니라 다른 패 류자들의 내심도 한번 점검해보자는 수단이였다.            시골까마귀우는데 버덕가마귀가 울지 못하랴. 이 일은 자연히 파문을 일으키기마련이였다.     이날 민호가 있는 산채에서는 그런줄도 모르고 서은괴패의 류자들이 계집쟁탈전을 벌린끝에 제 다리장단지에 칼박고 살을 베여 자상한 미런한 짓을 화제에 올려놓고 왈시왈비했다.   《물쥐도 짝있고 딱정벌레도 짝있네라.》   《그렇다구 산채에는 제 다리장단지갖고 노는 짝이 나진거야.》   《건데 왜 외짝귀 보재만은 짝없이 홀로보낼고.》   《말짱 바보병신들이야.》    하진국이 그따위 담량자랑이야말로 알짜바보짓이 아닌가고 하면서 자칫 놀림가마리로 될번했던 민호역시 신수멀끔하게 생긴 사람이 얼이 나갔던지 한심한 짓을 했던게 아니냐면서 혀를 찼다.    지난해의 그번 뽐창뿌리기시합에서 민호는 부개비를 잡히기는커녕 외려 뽐창명수로 불리우게되였다. 그러나 시합에서 패한 황보재는 신세가 마른 무우쪽같이 오그라지고만거다. 민호는 물론 처음 한동안은 속이 후련했던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와서는 그렇지 않았다. 날이 가면서 황보재가 그번에 제 손으로 제 귀를 사정없이 베던 끔찍스런 장면을 눈앞에 떠올릴때마다 오연한 승리감에 젖어들기보다 죄스러운 미안감이 파고들면서 기분이 잡치군했다.     모략이 성공못한 자에게 앙심이 더 생기는거야 당연한 일. 민호는 겉으로는 대수로와하지 않지만 속은 시퍼렇게 살아 두억시니같은 그자가 지금도 여전히 절치부심하고있을것이요 이제 아무때건 기회만생기면 달려들어 보복하리란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누가 귀떨어진 말만 꺼내면 신경이 일어섰다.     밖에 나갔던 왕은경이 젖떨어진 망아지같이 까불대며 달려들어오더니 폭발성적인 새 뉴스 한가지를 던졌다.    《어이, 어이!…희한한 소식이야, 희한한 소식!…서은괴네 패있잖아, 북채 거기말이야…소배를 다시했대. 돼지대갈을 발쿠구서! 》    《와!…》    《뭐라니?》    《다시말해라.》    《무슨 창빠진소릴 저렇게…》     류자들은 모두 천둥에 놀라듯 멍해졌다가 왁짝 떠들었다.      왕견이 눈알을 굴리였다.    《자식! 임다물지 못해. 누가 감히 그따위짓을 한단말이냐?》    《서은괴가 발퀐다오. 장평이가 그러는데…정말이요.》     떠듬이 잠간 멎었다. 너구리가 호랑이를 물어메쳤다면 누가 곧이듣기나하겠는가. 도무지 믿기어려운 일인지라 류자들은 제 귀를 의심하기도 하고 눈을 다시 화등잔같이 뜨기도했다.     누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서은괴가 감히 그런짖을 해?…우둔하지.》     그러자 너 한마디 나 한마디 말문이 터졌다.    《우둔하구 미런하다.》    《맞아. 돌을 들어 제 발 등깨는거야.》    《과연그럴가?》    《글쎄…》    《가만있자, 나눠준게 적으니까 더 달라구 한짓이겠는데 말과 같이 과연 더 받았다면야 그치들이 제 목적은 이룬셈이야.》    《우리도 응당이면…》    《너 무슨소릴 그렇게…》    《목적을 이뤘다해두…》    《문제는 돼지대갈을 껍질바른거야.》    《그렇지! 내 생각두 그렇구나. 그게 어째 신통치 않아. 생각해봐라. 그치들이 이번 출전에 아무리 공을 세웠다해두 어쩜 그렇게까지야…》    《한심하구나. 한심해.》    《공은 공이구 소배가 적다구 그렇게 불만부려서야 어디.》     왕견이 눈을 꺼물거리며 오가는 소리를 여겨듣더니 제 입을 끌어다 민호의 귀가에 댔다.    《그저일같잖다. 서은괴가 꼭 뉘기추김에 들었어.》    《허, 이거. 오늘은 제법 머리도는구만!》     민호는 머리를 끄덕였다. 동감이였다. 서은괴가 담이 아무리큰들 남의 추김에 들지 않구서야 배꼽이 웃을 그런 미런한 짓을 할가. 운수사나운 인간은 운명이 한순간에 역전하고마는건데 서은괴가 지금이 바로 그런꼴이였다. 누군가 우리는 어떻게 하겠는가며 반장을 불렀다. 멍청해 있던 위진은 고개를 드는 것 같더니 제 머리만 썩썩 긁는다. 태도를 어떻게 표시할지 몰라 난감한 상태다.     민호는 들떠나려는 기분을 차분히 가라않히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분별없이 날뛰려는 류자들을 향해 우선 떠들지 말고 조용하라해놓고 목청을 돋우어 말했다.    《개구리뛴다구 강아지도 뛸가. 칼물고 뜀뛰는 자 끝장좋을리 없는거다. 그러한즉 모두들 주의하라. 내 말인즉은 우리는 이럴 때일수록 절대 남의 장단에 맞춰 춤추지 말자는거다. 명철한 두뇌로 제 주견이이 있게 놀자는 그거다.》    모두들 그의 말이 옳다고 머리를 끄덕였다.    서은괴가 사람됨이 팔부는 아닌데 왜 그같이 갑작스레 미런한 짓을 했을가? 이번사건은 민호의 흥미를 부쩍 자아냈다. 보아하니  남의 충둥질에 놀아댄것만은 분명한 것 같은데 그렇다면 뒤에서 든장질하고 부채질한건 누굴가?… 듣자니 서은괴가 진사해와 보통관게가 아니라 한다. 그렇다면 장본인은 진사해가 아닐가? 그럴거야. 민호는 속으로 그를 짚었다. 한데 그렇다면 진사해는 또 어느만큼한 자신이 있길래 뒷심이 돼주는걸가?… 민호나 그나 여기에 들어와 지낸 시간이 거진같은데 어찌보면 진사해가 그사이 물망에 오른 것 같기도했다. 아직 그의 본질을 모르고있는 적잖은 류자들이 그를 호인풍의 남아로 보면서 존경까지하는 것을 보면. 한데 그런 사람이 왜 아직 일자반급도 못하고있는걸가? 분석해 보면 이건 바로 그라는 존재가 아직도 위두령의 안중에는 들지 않고있음을 말하는것이다. 그자는 야심많고 속이 엉큼해서 아무때건 스스로 마각을 드러내고말것이다. 민호는 속으로 이렇게 짚었다. 그렇다고 딱 찍을만한 근거는 대기어렵지만.     민호가 자기를 원쑤로 여기고있음을 알게되였던 진사해는 자기가 직접 독수를 뻗치기 어려우니 황보재의 손을 빌려고했던 것이다. 그의 그런 속수는 장평이 입을 연데서 더 명백하게 밝혀졌다. 뽐창시합직후 향란이는 자기의 은사를 진사해한테 발설한 장평을 불러다놓고 한바탕 되게 족쳤다. 그런결과 장평은 언녕부터 진사해가 자기더러 향란이와 민호지간의 왕래를 감시하라고 시킨일과 정황을 수시로 자기한테 반영하라고 했던일을 실토했다. 그것만이 아니였다. 장평은 또 진사해가 황보재보고《여기서 뜻을 이루려면 우선 그 꼬리방즈놈부터 없애야한다》고 충둥질을 한것까지도 알려주었던것이다.          향란이는 보기와 다르게 인내력이 대단한 녀인이였다. 그녀는 황보재를 그리 각박하게 굴지 않고 제똥에 물러나게 처박아두는 한편 처음부터 그와 배짱이 맞아도는 진사해에 대해서는 곁을 약간씩 주면서 살살 끌었다. 그가 의뭉수를 쓰는 능구렁이라는것을 알면서도 향란이는 전혀 무감각한 것 처럼 행동했다. 그래서 대방은 이 계집이 과연 내 속이 어떤건 모르는모양이구나 했다. 제아무리 총명한 사내라 해도 녀인의 홀림수에 들면 그렇게 어리석어지는 법이다. 그녀의 눈에는 그가 덩치값못하는 너절한 비게덩이로 보일뿐이였다. 그가 비루하게도 남의 정사를 들춰낸 일을 생각할수록 이갈리도록 괘씸했다. 했지만 향란이는 그렇다는 내색은 좀치도 겉에 드러내지 않은채 만날때마다 외려 각별히 친절한양했다. 그래서 사내로하여금 두꺼비가 고니고기먹어보려고 하듯이 엉뚱하고 과분한 궁리까지 하게 만들었다. 향란이는 누가 만약 제 앞에서 그를 호인풍의 남아라 칭찬할라치면 그런가요 내가 보게도 어쩜 그런거같네요 했다. 그렇게 맞장구치면서 속으로는 야 이 얼빠진 놈아, 네가 그 사람을 그렇게 보니 정신이 어지간히두 빨렸구나, 그 녀석은 시궁창에서 바라다니는 부덕쥐만도 못한 더러운 비렁뱅이야, 그런걸 보구 호인풍의 사나이라면 네 눈에 정말 곰팡이꼈다 하고 욕했다.     아무때건 네놈의 깝지를 라쿠고말리라 벼르는 향란이였다.     어느날 민호는 장평을 만났다.    《여봐, 장평동생! 전날있잖아. 우리 계서엘 갔다오다가 강변서 로숙하던날말이야…그날밤 난 양즈방하구 오래얘기했었는데 참 재미있었어. 그분이 어쨌는지 알어. 나한테 너의 얘길 하더란말이다. 난 정말 잘 들었어. 》    《뭐라우, 내 양부가?…》    《그렇잖구. 그인 어떻게 돼서 널 수양하게 됐는갈 내한테 알려주더구나. 그리구…저기 좀 가자.》     민호는 이렇게 말을 걸어 대방을 곁으로 당긴 후 그를 조용한데 끌고가서 하나하나 집요하게 캐물었다.    《네희들 거기서 소배를 더 했다는게 정말이냐?》    《정말이잖구.》    《듣자니 돼지대갈껍지를 발퀏다며?.》    《그랬소.》    《사실이란말이지?》    《사실아니구. 서은괴가 그랬는데 뭐.》    《서은괴가? 아니 그가 어째서 그랬다니?》    《거야 간단하죠. 우리 패는 그번에 공까지 세웠는데두 주는건 외려 다른때만두 형편없더란말이요. 그래서...》    《무슨소린지…》    《위두령 정신 좀 차리라구.》    《그래서 위두령이 과연 정신차렸다 그 말이겠구나…그렇지?…갑을간 너들이 목적은 이룬거같구…그러니까 서은괴가 머리는 돈 것 같기도하구. 담통이 큰데다 총명해서!》    《그가 담크고 총명해서라구? 아니요.》    《아니라니 건 또 무슨소리냐?》    《그게 뭐 서패장이 궁리해낸 술책인줄아오.》    《그렇다면? 그토록 머리돈게 누구였단말이냐?》    《그건 진수이샹이가…》     장평은 낯이 빨개지면서 입밖으로 튀여나온 말을 꺾어버렸다.  갑작실수로 인한 파설(播說)의 후과를 깨닫고 입을 닫아걸려했다. 하지만 이미 엎지른 물이였다.      《왜그래. 꼴보니 넌 거짓말해놓구 그러는거같구나. 말해라.》     민호는 심히 불쾌한양 눈살을 찌프렸다.    《…》    《믿고싶지도않은 소리지. 그가 어디 그럴사람이냐. 제 눈으루 보지두못해갖구 그런 말 하면 못써. 그러면 무함이 되니까.》     류자지간에 무함은 배신이며 용서못할 죄악으로 치부되는거다.      장평은 자기가 죄인취급을 받고싶지는 않아 입을 열었다.    《난 보았소. 보지 않구서 어떻게 맘대루 지껄이겠소. 진사해 그이가…》    《그이가 뭐라더냐?》    《음…저…》    《왜 그러니. 시원히 말을 할게지.》    《말하겠소. 그인 은괴보구서 가만있을 일이 아니다. 우는 애 젓한모금 더 먹이는거야. 떠들구일어나야한다구했소. 그리구는 어미소죽으면 새끼소 멍에지기마련인데 밭이 묵어 자빠질가봐 걱정이냐 했소.》    《그리구는?…그런말만 한건 아니겠지?》    《그리구 자기는 돼지대갈 껍지를 발쿤적있었다구했소.》    《진사해가 그러더란말이지.》    《그랬소, 정말. 거짓말이면 내가 피자새끼지(개).》     장평이 이러면서 말추를 누르는 걸 보면 믿을만한 소리였다.     이젠됐다, 어디보자! 원쑤를 찍어넘길 칼을 자기 손에 쥔 것만같아 민호는 기뻤다. 하지만 지금의 심정을 웃음으로 밖에 뿜어 낼 수는 없었다. 그는 그저 이마살을 찌프리기도 하고 턱을 어루만지기도 하고 머리를 기웃거리기도 했다.    《그렇다면?…네가 다른소리는 더 들은거없냐?》    《없소. 다른소린 못들었소. 그것두 내가 적삼씻자구 양푼에 물담아갖구 나가다가 면바루 잡아들은거요.》    《됐다. 알았다. 넌 이런 말 다른데가서는 번지지말거라. 알아들었냐. 네가 이제 더 발설했다가는 좋은일없을테니까.》     알고푼 것을 다 알아낸 민호는 그한테 그루밖아 주의주었다. 생각과 다르게 경계심풀고 대방을 믿어주면서 사실을 곧이곧대로 알려준 그가 자칫 변을 당할 것 같아서였다.          이쯤하면 진상은 다 밝혀진건데 어떻게 하면 좋을가? 요즘 진사해는 산채에 있지 않았다. 듣자니 위용강이와 같이 어덴가 외출을 했다고 한다. 민호는 생각했다. 그들이 산채를 나간게 소배가 있은 이틑날이라니 진사해가 그때 서은괴를 추긴것이다. 이 추리가 틀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확실히 한차례의 실패한 모반(謀叛)이다.     일은 잘되여간다! 명민한 사람은 자기의 칼을 쓰지 않고서도 얼마든 원쑤의 피를 볼수있는 것이다. 형세는 이러한데 자 이젠 어떻게 할것인가고 생각을 굴린 끝에 민호는 이 일을 우선 위삼포한테 알리기로 맘먹었다. 그러되 그를 따로 조용히 만나서 알려주고싶었다. 조심해야 할 일이니까.     민호는 위삼포를 어떻게 만날가 궁리하다가 향란이를 생각했다. 그한테 이 사실을 먼저알려준다면 그녀가 가만있으려 하지 않을건 물론 그녀와 합심하면 일은 더 잘 되어갈것 같았다. 하여 그는 그렇게 하리라 맘먹었다.     민호는 지체없이 그녀를 찾아갔다. 한데 이럴변이라구야! 그가 가보니 거기에 뜻밖에 황보재가 먼저와있지를 않는가. 되돌아나오려는데 향란이가 발목을 잡는것이였다.     《왜 가요! 가지 말아요!》     그녀의 신경질적인 만류는 거역할 수 없는 명령처럼 들리였다.     황보재가 힐끔 눈치를 보더니 일어나 밖으로 나가버린다.     민호는 향란이를 향해 물었다.    《보재는 왜 왔댔습니까?》    《그가 글쎄…내 그놈을…》     향란이는 당혹감을 금치못하면서 분노하고 있었다. 요즘 밖을 나오지 않고 혼자 방구석에 들어않아 내내 무협소설에만 정신팔려있다보니 산채에서 발생한 일은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보재가 서은괴의 얘길합디까?》    《그래요. 방금알려줬어요. 이가 막 갈려요. 서은괴가 어쩜…》    《그러니 는 속담생긴게지.》    《한심하지. 그자가 글쎄 담통이 어쩜 그렇게두 커졌을가요.》    《생각해보시오. 그자한테 왜 그런 담이 갑자기 생겼겠는가구.》     《글쎄요. 이게 그래 귀신이 들어두 피똥쌀 일이 아닌가요.》    《보재가 그걸 알려주지 않았습디까?》    《뭘 말인가요?》    《뒤에서 그렇게 하라구 추겨댄 사람이 있다는 걸.》    《아니 뭐라구요? 그런가요!》     민호가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니 향란이가 숨가쁘게 졸랐다.    《말해요. 어서알려줘요. 대체 어느 놈이 그랬는가요?》    《진사해!》    《뭐라구요!?》     민호의 말에 향란이는 아연해지면서 진정못한다.     황보재는 서은괴가 돼지대갈껍지바른 일만 알려줬던거다. 그가 이번 사건에 진사해가 어떤 역을 논건 모르는 것 같았다.      민호는 녀인을 이윽히 지켜보다가 입을 다시열었다.    《향란아가씨, 우선 진정하시오! 그래야만 내가 말하겠어.》     향란이는 발끈했다.    《날 놀리는가요. 어떻게 진정할수있나요.》    《천만에. 아무렴 내가 감히 아가씰 놀리자구 찾아왔을까.》     녀인이 태도가 야속해서 민호도 어성을 높혔다.     이럴 때 마침 소풍하러 밖에 나왔던 위삼포가 딸거실의 창가를 지나다가 안에서 나는 소리를 잡아듣고 들어왔다.    《너희들은 대체 무슨일에 그러느냐?》     민호는 숙였던 머리를 다시치키고 배품했다.    《두령님께서 마침 잘 오셨습니다. 그러잖아 제가 지금 막 찾아가 뵙자던참이였습니다. 서은괴가 돼지대갈을 껍지발쿠게 된 내막에 대해서…》    위삼포는 귓뿌리를 세웠다.   《뭐라!?…》    차고 예리한 눈매로 자기 딸과 언쟁하던 조선사나이를 드레질하면서 그는 아래에 이어서 나올 말을 기다렸다.    민호는 이 억척스런 두목이 이제 제 고발을 듣기만 하면 선불맞은 호랑이같이 격노하여 날뛸거라고 생각면서 입을 다시열었다.   《두령님께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이번일이 서은괴혼자서 주도한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절대 그런게 아닙니다. 서은괴혼자서는  그럴 담도 없지요. 그자는 무모한 표연자였을 뿐 막후에 지휘자가 따로 하나 있었던겁니다.》   《뭐라!?…》   《이번사건은 진사해가 조작하고 추긴겁니다.》   《진사해가 조작하고 추겼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아느냐?》   《장평이한테 들어서 압니다. 그 애가 그들이 하는 얘기를 제 귀로 똑똑히 들었노라구 했습니다. 일은 이런겝니다.》    민호는 진사해가 서은괴에게 했다는 말을 들은대로 번지였다.    위삼포는 낯가죽이 몇번 실룩거리더니 돌같이 굳어버렸다. 괴여오르는 노기를 지긋이 누르면서 귀담아 들을 뿐 억척스런 이 사나이는 이쪽의 생각과는 다르게 격분해서 날뛰지는 않았다.    민호는 그의 참을성에 한번다시 감탄했다.    위삼포는 알려줘서 참 고맙다면서 자기가 이 일을 알아서 처리할것이니 다른 누구한테도 더 발설하지 말라고 민호에게 당부했다. 그리고 자기 딸을 보고는 자칫했다가는 일을 그르칠수있으니 절대 감정에 들뜨지 말고 신중이 행동하라 주의주고 돌아갔다.    《호ㅡ어쩜! 저렇게 배은망덕하는 불한당이 세상에 어디 또 있겠나요. 아버지는 큰 실수를 한거얘요. 그따위 거지를 다 불쌍히 여겨주다니 원. 애초에 들여놓지도 말고 쫓아버렸어야 옳은걸 그랬어요. 안그런가요. 양호우환(養虎憂患)이라더니 이런걸 보고 하는 말이 아닌가요. 봐요, 그자를 받아들였기에 하마터면 큰 변을 당할번하잖았나요. 과연 그럴사한 위선자였지. 그러잖아 어쩐지 눈에 거슬리기에.... 과연 교활하기 짝없는 놈이지! 이번까지 지내보니 그놈의 배속에는 전갈모양으로 온통 독밖에 없네요.》     아버지가 가자 딸이 이를 악물면서 진사해를 욕하는것이였다.    《제 아무리 교활해두 오산을 했으니 행동이야 서툰놈이지.》    《나하구 어디 밸 좀 더 써보죠. 거 참 볼만하던데.》     향란이는 게면쩍은지 낯색이 약간 붉어지더니 사과했다.    《미안해요. 난 첨엔 정말 참기어려웠던거얘요.》    《참기어려우면 고래질인가. 제 남편이면 그러지 않을걸.》    《입다물어요. 그따위소린 작작하고.》    《하지말랍니까. 그럼 하지말지.》     본래는 서은괴가 돼지대가리껍지를 발쿠면 위삼포가 보고서 발연대로하여 새자들을 마구욕질할것이고 그러면 격분한 새자들이 들고일어나 합심하여 두령을 그 자리에서 요정낼줄로 알았다. 그런데 위삼포는 발연대로하기는커녕 오히려 온화해지면서 내놓는 요구를 선선히 받아준 것이다. 그가 그러는데야 다른때 악감도 적의도 없었던 새자들이 발검할리있는가.     서은괴는 실패하고말았다. 밀려드는건 내가 왜 위삼포가 들어오면 반의 새자들이 한결같이 들고일어나 다짜고짜 그를 죽여버리게끔 잡도리를 하지 않았던가, 후회막급 할 뿐이였다.       한편 위삼포는 적발이 믿음직하기는하지만 더 확실한 죄증을 쥐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였다. 하지만 급히 서두르지 않았다. 그는 진사해의 일거일동을 주의해 살피다가 때가 되면 수습하기로 맘먹고 먼저 분별없이 납친 서은괴부터 처리해버리리라 작심했다.          
131    장편소설 <<관동의 밤>> 제1부(12) 댓글:  조회:2291  추천:0  2015-02-03
                            12                류자들은 맏두령을 비롯한 사량팔주의 명령에 절대복종해야지 좀이라도 거역해서는 안된다. 싸울때는 용감하고 앞에 서야함은 물론이거니와 겁을 집어먹거나 뒷걸음쳐서는 안된다. 대오가 모지에 이르러 주둔할시면 보초를 서는데 그 누구든 자기에게 임무가 떨어지면 사달없이 잘 완수해야지 조금이라도 잡짓이 있어서는 안된다. 년말이거나 묘동때면 누구나 다 자기가 노력을 들인 정도에 따라 그만큼한 응분의 보상을 받게 된다. 평시에 새자들은 그 누구던간에 쪽을 놓음이 없이 다가 만족스레 먹고 마시고 놀 수 있었다. 그렇지만 단 한가지―녀자만은 두령들 처럼 맘대로 데리고 살지 못한다. 어느 큰 토비무리나 거의가 비슷한 상황이였지만 이 방면에 들어가서는 염왕산이 특히 더 엄격했다.     염왕산은 지어 사량팔주들도 취처를 하지 않아 다가 독신들이였다. 그것은 위삼포탓이 아니라 그들자신이 원해서 그렇게 된 것이였다.     예전부터 관동의 적잖은 토비무리들 중에서 새자가 불만이 생겨 두령과 맛서거나 지어 호상간에 참살하는 참극들이 자주발생하군했다. 그렇게 되는건 두말할것없이 두령인 자가 주먹이 드세지 못해 단합이 잘 안되고 내부가 혼란하기 때문이다. 겉이 아무리 보기좋와도 속이 병들면 모든게 잘못되기마련이다.     염왕산은 여지껏 그런일이라곤 한번도 발생한적이 없다. 이는 이 류자집단이 어느만큼 응집력있고 견고한가를 말하고도 남음이있는 것이다. 이 한 집단이 여지껏 이토록 무사했으니 어찌 장하지 않으랴. 위삼포는 그로하여 그 누구보담도 자호를 느끼고 있었다.     염왕산류자들은 한결같이 위삼포의 공덕을 노래했고 파량팔주를 찬양하면서 맏두령을 떠받들 듯이 그들을 떠받들었다. 숭배와 복종은 그같이 두령들께 충성을 다하리라 맹세한 모든 새자들의 미덕으로 취급되였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맏두령과 사량팔주는 태평가를 부르지 않았거니와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경각성을 늦추지 않았다. 그들은 새자들께 인심잃는 일이거나 불만이 생길 수 있는 일은 극력피했다.     360여명의 류자는 잘 단합되여 있었다.     8월의 어느날. 남쪽산채에 있는 류자들이 가마마스러 갔다와서 《자유휴식의 날》을 맞는 덕에 매양 그러하듯 다른 류자들도 거기에 말려들어 온 산채가 또 한 번 명절기분에 잠기게 되였다. 이럴때는 여기저기 끼리끼리 모여서는 주먹치기재간을 비기거나 목마타기를 놀거나 아니면 술을 마시고 질탕놀아대는 것이 습관마냥 굳어진 일과였다.     어떻게 어떤모양으로 놀건 싸움만 하지 않으면되였다. 무릇 싸워서 사달피운 자에 한해서는 가차없이 엄벌이 내렸다.    《홀아비나서면 그림자뿐이네.》    《홀아비병나면 누가 국끓여주나.》    《홀아비몸에 이밖에 없네.》    《홀아비옷 해진건 누가 기워주나.》    《홀아비 홀아비신세 알아준다네.》    《같이 먹고 같이 자고 같이 즐긴다네.》     어떤 류자들은 즉흥에 잠겨 네 한구절 내 한구절 이런 노래를 지어 불렀다.    《수탉은 만나면 원쑤싸움.》    《부부싸움은 닭싸움아닐세.》    《아침에 물치며 싸운 부부》    《밤이 되니 한베개베고 잔다네.》     어떤 새자들은 맛붙어 징그럽게 그러는 동작을 피워대기까지 한다. 그러는 걸 보고 발정한 개모양으로 발동돼서 따라하기도 하고 우수워죽겠다고 미칠지경 박장대소하기도 하는 새자들.    《이거 장난이 너무심하잖아.》    《아니야. 지랄이 모자라는거야.》     이러면서 진부한 허탈을 달랜다.     오간수다리밑이 지저분하다더니 네 녀석들이 그 꼴이구나. 차라리 토비노릇 그만두고 모두들 제가끔 색시얻어 여기다 마을앉히고 살림살이나 하면 여북좋으랴. 벌목을 하던지 산골부대를 일쿠던지. 아니면 다른 무엇을 하던지. 이따위노릇 안해먹고도 살아갈 방도야 쌔쿠버린게 아닌가. 까마귀를 백조되라는 민호의 생각이였다.     어느날 왕견이 민호의 일에 흥미를 가지면서 건드렸다.    《여보게 민호동생. 접때 향란아가씨 초청해 갔더랬지?》    《건데 그건 왜 또…》    《리해안돼서 그러지 뭐. 그렇게 간 사람 아무재미도 못보고왔다는게 그래 말이 되나. 사람이 어쩜 그리두 모자래. 나같으면 가만있지를 않겠어. 입에 들어오는 고기두 안먹다니 원. 아무리봐두 동생은 맹랑한 짓을 한거야.》    《좋은 노래두 장들으면.... 왕형 그 말도 이젠 악비가 나오.》    《듣기싫다는거냐. 너도 보재모양으루 그게 병신된게 아녀? 그러면 큰일인데. 묘동때 기생집은 다 갔지. 정말 쓰지두 못할거면 개나 떼줘. 어느 갈보년이 시들어버닌 가지를 만져나볼가.》    《하하하하…》     가까이에 있던 새자들이 그 말을 듣고 질펀한 웃음을 쏟았다.     민호도 따라웃는 수밖에 없었다.     하진국이 으레 말추렴에 빠지려하지 않았다.    《세상에 제일좋구두 나쁜게 그놈의 구멍이요. 우리 여기서야 계집이 바로 화덩이였지. 왕형 안그렇소?》    《건 무슨소리냐?》     민호가 궁금해 물었다.    《정형이야 아직모를 수 있지.》    《뭔데? 너가 알려주지 않은걸 내가 어떻게 알아.》    《그런가. 그럼 내 알려주지. 이제는 그게 여러해되오.》    《가만. 그러니까 여기서 언제 녀자땜에 사달생긴 일이라도 있었다는 말이냐?》    《돌아가는게 과연 빠르구만. 바로 그 말이지. 본래는 향란아까씨한테 오래전부터 시중들고 말동무질하며 지내던 아춘이란 계집애가 하나 있었더랬소.》    《그런데?》    《고놈의 암캐가 글쎄 때가 되니 발정이 됐던지 꼬리젓는바람에 젠장…》      《여럿이 달려붙었다 그 말이냐?》    《그렇소. 그것도 저그만치 다섯이나됐던거요. 남모르게 했더면 좋았을건데 시간이 가면서 저들간에 그만 쟁탈전이 벌어졌지 뭐요. 물론 가만히 하는거였지만…생각해보우. 그래 어떻게 됐겠소. 나중에는 칼놀음까지나는통에 그만… 다 잡혀나오고말았던거요.》    《그래서?》    《그래서 위두령은 산채를 요란시킨 라면서 다 잠재우고말았던거요.》     세차즈란건 말성일으키는 불민한 자를 가리킨다. 여지껏 법밖에서 인간사회를 외면해 온 외딴 세상, 오로지 자기네의 제도만이 통하면서 활개치는 자유의 령지, 그래서 독립왕국이나답잖은 여기서 무슨일인들 없었으랴. 들을만한 소리였다. 민호는 쟁그러울지경 무척 알고푼 생각에 들떠갖고 재우쳐물었다.    《계집은 어떻게 됐냐?》    《생각해보우 어떻게 됐겠는가구. 그 계집이 그래 액운을 면할 수 있었겠소… 장본인이라구해서 벌이 더 혹독했던거요. 이게 다 네년의 그 불칙한 구멍때문이라면서… 어떻게 했는지 아오. 바지아래도리를 매놓구서는 그 안에다… 고양이를 집어넣었단말이요. 그러구는 회초리로 막 때렸지…고양이가 아파서 발광쳤소…생각해보오. 그러니까 모양이 어땠겠는가말이요. 그놈의 발톱에 아래도리가 싹 긁히고 뜯기워서…》      《아니 위두령이 그리두 잔인했단말이냐?》    《아니요. 그건 위두령이 한짓이 아니였소. 그때 위두령은 출면안하구 어떻게 돼서 서은괴가 손을 썼는데… 그런 형벌은 그가 고안해낸거라는 소문이 돌더구만.》    《서은괴라니 지금 이련 삼패서 패장질하는 그치말이냐?》    《그렇소. 바로 그가말이요.》    《지독한 녀석이로구나!》     민호는 낯색을 흐리웠다.     하진국은 또 전에 향란의 어머니를 시중들던 하녀 하나가 누구에겐가 강간당하고나서 자살해버린 일도 알려주었다. 그러면서 그는 그 일이 있은 후 위삼포는 아마 여생에 다시는 재취하지 않으리라 굳게 마음먹은 것 같다고 했다.    《그가 자식혼인까지도 불허하는건가?》    《아따 어쨌다구 자식까지 시집장갈 못가게 하겠소. 아들이 여직 성가못하구 딸이 출가못한거야 전적으루 그 본인들께 원인이 있는게지 뭐요. 듣자니 위용강은 색시를 일찍얻을것두 산채의 많은 형제들의 비위를 상하게 할까봐 지금도 주저한다나. 그리구 향란이는 시집가자해두 눈에 드는 마땅한 자리없어 늙어간다누만.》    《고아가씨는 하늘도령이 나타나 청혼하길 바라는건가, 젠장! 호박이 늙은건 먹기나좋다구 해. 아까운 꽃 싹 시들어간다.》     왕견이 애석해서 한탄이다.     한편 어찌보면 그건 불만한 자의 넋두리같기도 했다. 침이나 흘려야지 별수있는가. 늙어 다 시들어버려도 자기같은건 손한번 만져보기조차 어려운 아름다운 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과년한 향란이가 그래 과연 하늘도령의 청혼을 기다릴가?     민호는 여럿을 둘러보고나서 입을 열었다.    《내가 볼라니 황보재가 지금도 거기루 다니는거같더라.》     이 소리를 지나가던 팽덕이가 듣고서 낄낄 웃어댔다.    《그자식이야 헛욕심이나 챙기지 뭐요. 고재 처가집댕긴단는 말 못들었소.》       왕은경도 비린내맡은 쉬파리모양으로 어느새 끼여든다.     《그래두 그 녀석은 운이 튼거야. 내같은 놈이야 젠장! 기운이 나두 어디 뱉아놓을데가 있어야지 젠장!…빨리 묘동이나 와야 한배짐 내깔리겠는데. 씹새같이…얘 진국이 너도 보련춘유곽 잘다녀봤지?…거게 있는 땅딸보계집 그맛 한가진 참 좋더라. 안그래?》    팽덕이다 손바닥을 쫙 펴 그의 번들거리는 이마를 찰싹 때렸다.     《야 임마. 말장 맛 맛. 그래 넌 그 맛쟁이루만 빠져난거냐. 그렇게 환장할거면 계집뒷구멍에나 붙어다닐게지 여긴 왜 들어와 꺼들거리는거냐.》   《저 녀석은 그 갈보년한테 영 반했다니까.》   《환장할 자식! 이제가면 아예 영 빠져 나오지두못할거야.》   《우 후후후!…》    또 한바탕 터지는 질펀한 웃음소리.        남을 원망말라, 제 운명은 제가 지고가는것이니.    어느날. 저녁을 방금먹고났는데 서은괴패의 나어린 새자 장평이 민호를 가만히 불러 향란이가 주더라면서 해엽자 한통을 주고갔다.    그 아가씨가? 속지를 뽑아보니 거기에는 아래와같은 녀인의 글이 간단히 적혀있었다.           오늘밤 만나자요. 상론할 일이 있어서. 8시에 꼭.                                                향란   즉일       향란이가 나하고 무슨 요긴하게 상론할 일이 있을가? 하필 밤에?…의문이 갈마들어 진정할 수 없었다. 민호는 자기를 점점  더 가까이하고 사근사근해지면서 각별히 친절스레 구는 녀인의 그 달라가는 태도에 대해서 다른각도에서 분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야하는가 가지 말아야하는가 주저되였다. 그러다가 가봐야 한다. 글까지 보내왔는데 가보지 않으면 그건 무례한 짓이다. 후에 만나서는 무어라 변명하겠는가. 자존심강한 녀인이 가만있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가봐야한다. 못갈 리유가 없다, 청하는건데.    날이 어두워졌다. 시간이 되자 민호는 그녀의 거실이 있는 별채쪽을 향해 걸음을 놓았다.    민호가 노크하고 들어가니 향란이는 캉틀에 걸터앉아 포개놓은 한쪽다리를 흔들거리면서 달걀을 먹고 있었다. 실내에다는 람프를 켜놓았지만 심지를 돋구지 않아 밝지 않았다.    민호는 묵묵히 그녀만 봤다.    향란이는 입을 놀리다말고 어김없이 와주는 사나이를 눈빗질해보면서 일순간 면구스러운 내색을 드러내더니 입을 먼저 열어 응고된 침묵을 깨뜨렸다.    《오시니 고마워요. 곤곤자(달걀) 하나 드릴까요.》     녀인은 일어나 자리를 내며 접시에서 달걀 하나를 집어 깝지발쿠기 시작했다.     이 계집이 달걀먹으라구 날 오라한거냐. 그럴리는 없겠는데…상론하자는게 대체 뭘가?…눈주어 보니 구들에 담요를 깔고 그 우에 덧펴놓은 호랑탄자우에는 그녀가 즐겨 부는 소소(韶簫)가 놓여있었다. 네가 이걸 불면서 날 기다렸던모양이지. 기다렸다는 그 스스로의 판정이 민호를 은근히 즐겁게 했다.     향란이가 다 발쿤 달걀을 민호앞에 내밀었다.    《난 생각없습니다. 오복자(배)부르게 저녁먹었으니까.》     사나이가 받지 않자 향란이는 방그레 웃으면서 권하던 달걀을 접시에 도루놓았다. 그리고는 다가와 간격을 조금두고 캉틀에 걸터앉아 아미를 다소곳이 숙이였다. 따아서 곱게 틀어올린 봉긋한 머리에는 섭옥잠이 꽂혀 있었다. 그녀는 말쑥하고 고운 손으로 제 손가락에 끼인 람보석 금지환을 만지였다. 다리를 포개지 않으니 앉음새가 방금전보다 퍽 단정해보이는데 연분홍의 주란사비단치마자락은 몸에 차근히 붙어 섹시한 그녀 하신의 곡선미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그보다 더한건 물론 볼록한 젓가슴이였다.     향기그윽한 방. 닫겨진 창문에는 연람색의 양단카텐이 드리웠다. 날아 다니는 파리 한 마리 볼 수 없이 조용한 심규(深閨)였다.      이러한 환경은 이상야릇한 기분만 돋우어 주고 있었다.     민호가 갑갑함을 못이기겠다는 듯이 몸을 추스르자 향란이가 숙였던 고개를 번쩍치키였다.    《왜 그래요. 돌아가시자구요?》    《숨가쁘구만. 더운데 창문은 왜 꽁꽁....》    《열지 말아요. 모기성화심해서 그래요.》     향란이는 카텐을 열지 못하게 했다.     거짓말이다. 다른날에는 왜 밤에 카텐만 치고 창문은 열었는가?…중앙산채는 풀 한포기 없는 모래깔린 널다란 공지복판에 자리잡고 앉아 지금도 모기가 그리끓지 않는다. 한데도 이같이 바람한점 들어못오게 단속함은 왜서인가?…남은 감각조차 모르는 뻐꾸기로 보는건가. 언녕 생각이 잡히는데가 있는지라 민호는 한때 온 산채를 소란스레 만든, 그 아춘이란 계집애와 유관되였던 불행스러운 참사가 새삼스레 상기되면서 자기의 사련(邪戀)이 말성을 일으킬것 같아 두려워했다.     《아가씨! 무슨일에 날 오라구했는지…》    《우선 급해말고요.》     향란이는 눈치무딘 사내가 야속한 듯 눈을 살짝 꼬고나서 입을 다시열고 물어왔다.    《접때 내가 말을 너무 넘치게 해서 그러나요?》    《아니요. 난 그 일을 잊은지두 오랩니다.》    《잊었다구요? 거짓말! 그 일을 잊을 리가 있어요. 솔직히 말해서 난…우리 함께 몽두춘할까요.》     이 계집이 대체 무슨일이냐. 날 술마시자고 청한건 아닐텐데. 민호는 대방을 이윽토록 여겨보다가 대꾸했다.    《아니 난 생각없습니다.》    《정녕 그렇다면 관두자요. 난 혼자서 한잔했어요.》     그러고 보니 넌 입에서 나는 술내를 감추느라 달걀을 먹은거로구나. 그런것도 이 뻐구기는 몰랐지. 민호는 웃고말았다. 아닌게아니라 가끔 저돌적인 짓을 잘하군하는 이 왈패스러운 녀인은 약스우면서 사랑스럽기도 하고 재미나기도하는 존재였다. 하여 그는 내가 이런 기회에 이 녀인의 생활구석을 한 번 들춰보는게 어떨가 하는 엉뚱한 궁리가 문득 났다.    《보아하니 향란아가씬 지냄이 퍼그나 재미스러울것같습니다.》      실은 그럴 수 없는 일이였다.     향란이는 자기의 처지를 그같이 경솔히 평하고 있는 사나이가 야속한 듯 말끄러미 쳐다보다가 머리를 가로젓고는 생각밖으로 무람없는 탄식은 가볍게 뽑아냈다.    《재미라는게 다 뭐얘요…생각해봐요…고침단금인데 재미가 있을리있나요. 즐거움이 있을리있나요. 행복이란건 더 운운할조차 없는거구요. 안그래요?》     녀인은 말을 끊고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다시열었다.    《거기서도 들어서 알겠지만…이젠 나이 스믈여섯돼요. 열여섯이면 방년인데 난 거기다가 열살이나 더 넘겼거든요. 아름찬 일이지. 생각해봐요. 계집이 과년토록 시집안가고있으니 뒷공론인들 오죽하겠나요. 이거야 내 귀로 듣지 않아도 산천자연이 다 알게 되는거죠. 안그래요? 왜 웃어요…사실이 그러한들 뭐래요. 떠들겠거든 어디 실컷 떠들어보라죠. 난 이젠 꿈만해요.》    그녀가 하는 얘기를 들어보니 이제는 남의 여론앞에 자신을 완전히 방치한 상태였다.     민호는 입을 열어 궁금하던 일을 물어봤다.   《이거 외람되는지 모르겠습니다만…과연 리해되잖는군요. 그토록 과년하도록 향란아가씨는 왜 엽때 시집안가구있었습니까?》   《그게 그리두 의문스럽던가요. 내 오랍좀봐요. 난 오랍일이 더 걱정돼요. 우리 위씨집안은 삼대를 내려오면서 독자인거얘요. 그런데두나 오랍은…올해 나이 벌써 스믈여덟아닌가요. 그런데두나 서두르는 기색은 안보이구…생각해 봐요. 오빠안가는데 아무렴 내가 먼저나덤비겠나요. 그럴수야없잖아요. 안 그래요?》    완전히 리유서는 말이였다. 민호는 언젠가 후근마사앞에서 그들 오누이가 주고받던 말이 상기됐다.   《위도령이야 일면파에 대상자가 있잖습니까.》   《아니 그걸 어떻게 아나요?》   《언젠가 위도령이 거기루 가는걸 내가 본것같아서…》   《그래요. 일면파에 오랍이 봐둔 녀자 하나 있긴해요. 소춘매라구하는. 그런데 그녀가 지금 거기서…》    향란이는 하려던 말을 중둥무이하면서 삼켜버렸다.    민호는 궁금쯩이 한결 더해지는지라 재우쳐 물었다.   《거기서 뭘합니까? 왜 말을 하려다맙니까?》   《그녀는 거기서 기생질해요.》   《오―그렇구만!》    위용강이가 기생한테 반해있다니! 아이도 배지못할 그따위 돌계집을 안해로 맞아서야 후대를 어떻게 잇는단말인가. 꼴을 보니 위씨네 가문은 정말 대가 끊어지고말가부다. 민호는 의문만 더 짙어갔다.    《위두령께서는 손군을 보자구하실건데 아들이 그런 녀자를 맞아들인다면 어쩔까요?》    《부친께서는 그걸 관계치 않아요.》    《원 무슨소린지?…》     위삼포가 그런 사람이란말인가! 민호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위삼포는 과연 세상에 보기드믄 용한 아버지라해야 할 것이다!     민호는 정말 리해되지 않는다하고나서 넌지시 근중을 떴다.     《허면 위두령이 향란아가씨가 대상얻는것도 상관않겠네요.》    《그래요. 부친께선 제한테도 선택자유를 준거얘요. 네가 누가 맘에 들면 누굴 정해 시집가라구요.》    《오, 그렇군!》     민호는 속으로 한 번다시 탄사를 올리면서 생각했다. 그것이 정말이면 위씨네가 유교사상을 버린것이다. 이들이 후대를 잇구는 혼인대사를 중히 여기지 않고 자재로우니 세속을 벗어난 개화한 자유인이라 해야할 것이다.       향란이가 중단했던 말을 다시이었다.    《툭 털어놓고 말하자요. 황보재가 오래전부터 날 좋와했어요. 그렇다는거야 거기서도 언녕 눈치챘을게 아닌가요. 그런데말이얘요…솔직히 말해 난 지금도 그일 내 남편으로 만들고푼 생각은 꼬물만큼도 없어요. 그건... 》     민호는 량미간을 그러모았다. 이 아가씨가 나를 제 지기로 믿어주는건가 아니면.... 주저하거나 부끄러워 하는 티라곤 조금도 없이 제할 소리를 다 하고있다.     그녀 스스로 화제를 이쪽에서 제일 궁금해 하고 캐고싶어하는 쪽으로 끌어가는지라 민호는 웃음집이 흔들거렸다.    《아니 건 왜섭니까? 용모좋지 구변좋지 건강하고 사나이답지... 듣자니 뽐창에도 능수라더군.》    《사나이가 그거면 단가요 뭐. 난…》     향란이는 혀끝까지 튀여나온 말을 다시 한 번 되삼켜버리면서 일어나더니 밖으로 나갔다. 그러다가 좀지나 되들어왔는데 그녀는 몸을 문설주에 지개면서 이쪽에서 모르게 문을 안으로 살짝 잠가버렸다.     녀인은 집안이 물쿤다면서 웃동을 벗었다. 브래지어로 젓통만 가리운 하얀 상체가 불빛속에 홀랑드러났다.    《아니 이년이!》     은연중 저도모르게 조선말을 이렇게 내쳤는데 상대가 그걸 앓아들은것만같아 민호는 찔끔 놀라면서 어쩔바를 몰라했다.     향란이는 조금도 부끄러워함이 없이 서서히 그리고 대담히 다가들었다. 스스로 주동이 되어 공격을 들이대는 녀인의 얼굴은 흥분으로하여 딸기모양으로 상기되였고 정욕이 끓번지고 있는 두 눈은 황황 불타고 있었다.     민호는 뒤주춤했다. 내가 이거 나무가리우에서 불화로를 안았구나 하는 생각이 뇌리를 때렸기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일순간이였을 뿐 그는 박근하는 상대를 더 피할 념을 하지 않고 그저 난색을 지은채 주저했다.    《이거 이러다 보재가 들어오면…》    《시름놔요. 보재가 없어요.》    《그래두…》    《그인 소용없는 걸레짝인걸요. 뚫어진 구멍에도 밖지 못하는 그까짓 변자(좃)를 뭣에 쓰겠어요… 난 고통스러워요.》     육체상의 욕구와 기대가 접질러 불만이 야기되였던 녀인은 쓴웃음을 짓더니 주저없이 원망을 토해놓는 것이였다.     고통스럽다고 까지 하소하니 속은 다 털어놓은게 아닌가. 그녀의 농도짙은 음성은 절절한 애원에 떨리고 있었다. 다들 뒤에서 쉬쉬대며 웃더니 그럴만도했다. 황보재가 과연 쓰지도 못하는 연장을 달고있는 부실이였음이 분명했다. 빛좋은 개살구였다. 진정한 남자를 알구퍼 하는 녀인이 남자구실도 못하는 그런 사나이를 그냥 나꾸기는 만무한 일. 이러한 사정으로하여 민호는 자기가 어느덧 육정(肉情)의 대상으로 포로되였음을 절실히 감득하게 되였다.     이것은 인간의 육체적본능에 의한 욕구요 불가피한 행위거늘 어찌 비도덕적인 것으로 몰아버릴 수 있는가. 그래서는 아니될 것이였다. 녀인은 기대감을 갖고 대방의 반응을 잡아보려했다. 두눈은 열기로 타오르고 있었다. 녀인의 섹시한 체취가 페부를 찔렀다.     오롯한 침묵속에서 흡인력있는 두 이성간에는 잠재된 감정이 서서히 교류되기시작했다. 자기로는 어쨌으면 좋을지 몰라 당황하던 일순간이 지난 후 민호는 모든 우려들이 가뭇없이 사라지면서 여지껏 억제되였던 욕구가 아래의 거기로부터 줄기차게 뻗어오르기 시작함을 감각했다.     여기까지 이르러 더 참는다는건 어렵고 고통스러운 짓이였다.     민호는 두눈을 슴벅거리다 웃음을 흘리였다.    《그래서 날보구 풀어달라는건가요.》     자기의 생각이 대방에 감통(感通)되였음이 확인되자 녀인은 서슴없이 팔을 벌려 그의 목을 감았다.     광풍이 한바탕 광야를 휩슬어놓는것만같았다.     교교한 여름밤의 대기는 맑았다.     민호는 그 작업을 끝내자 오래누워있지 않고 거기를 나와버렸다. 묵직하던 몸은 거뿐했고 기분은 그지없이 상쾌했다.          이튿날오전이다.    《뒷마당에서 진수이샹이 한 번 만나자해요.》     장평이 찾아와 민호에게 전달하고나서 제꺽 사라져버렸다.    《뭐라, 진사해가 날 만나보잔다구!?》     저으니 놀랜 민호는 가슴이 방망이질했다. 그 원쑤놈이 대체 무슨일에 날 보자는걸가. 내가 제놈의 명줄을 노리고있다는걸 눈치채고 선손을 쓰느라 그러는거나아닌지.     장평이 입밖에 번진 말을 제꺽잡아들은 한반의 류자들은 참을 수 없다면서 떠들었다.    《진사해가 어쩌면 수이샹이냐?》    《누가 그한테 그런 급을 줬게 그러나?》    《그 사람을 수이샹이라 부르면 문제생긴다.》     도리없는 말이 아니였다. 진사해는 자기 패의 류자를 거느리고 염왕산에 의탁하러 온것도 아니요 거지모양으로 알몸갖고 괘주한 사람인데, 제아무리 지위높았던 자라 해도 망해서 괘주했으면 그 한 신세는 언녕 일락천장이 되고만건데, 사실이 그러하거늘 이쪽에서 중용하기전에는 일반새자와 하나도 다름이 없는건데.... 고험을 거쳐 사량팔주에 넣을수는 있지만 그렇게 되는 경우는 극히 드믄 것이다. 황차 진사해를 놓고보면 정말 변심하지 않고 눌러있을 사람인지 아니면 갈데올데 없으니 잠시 몸을 붙이자고 들어 온 사람인지 그 진가를 아직도 딱히 모르는판인데 그를 두령같이 떠받들다니 어디 말이 되기나한가.    그를 두령으로 치는 새자는 주의와 견책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 사람 민호형하구 척지고 그러잖아.》   《너 조심해라.》    하진국이도 왕견이도 그가 만나자는게 이상스러운지 주의줬다.    민호는 어쨌든 가서 만나기로했다. 가지 않으면 겁쟁이로 볼것이다. 진사해가 설사 이쪽이 누구란걸 똑똑히 안다해도 감히 손쓰지는 못할것이다. 그 어떠한 사극(私隙)으로든 그로인해 혈투가 벌어진다면 량자 다가 좋은 결과가 없다는 걸 그도 잘 알고있을테니.    중앙산채의 뒷마당에서 과연 진사해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민호가 나타나자 체구가 크고 강장한 그가 오만한 태도로 이쪽을 마주보는데 입가에서는 음습한 미소가 피여나고 있었다.    민호는 험상한 게뚜더기상면을 대하자 그자를 이 자리에서 당장 작살내고싶은 마음이 불붙듯했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되니는거요 자신은 험한 도전에 직면했음을 직감했다.    민호는 대방의 눈을 쌀쌀히 직시시하고나서 입을 열어 물었다.   《무슨일이요?…날 왜 찾았소?…》   《한가지 알릴일이 있어서.》    진사해는 건 가래를 떼고나서 어성을 한결 돋구었다.   《이 어른은 절대 구석놀음노는 량반아니야.》   《잡담제하구. 대체 무슨일이요?》   《간밤에말이야. 내가 위아가씨의 거실을 지나다가 희한한 일 하날 발견했네.》    개자식이 그건 어떻게 알구서 이러는거냐. 인제보니 네놈이 그일을 꼬리잡고 나를 궁지에 몰아넣자는 수작이구나. 민호는 그를 아느새 쏘아보다가 내뱉었다.   《비렬하게 노는군. 남의 뒷조사나 댕기구있어.》   《흘레를 하더군.》   《아직두 말을 못배웠어. 그건 너같은 짐승이 하는걸 보구 말하는거다.》    진사해는 낯이 붉어지더니 눈알을 곤두세웠다.   《이자식아, 도적짓하구서두 이래?》    민호가 도도히 맛섯다.   《그런일은 그렇게 하는거야. 무슨 짐승이라구 남앞에 내놓구 표연하겠는가.》   《허, 자식이 입이 굳다.》   《키꼴값하겠거든 좀 똑똑히 놀아라.》    민호는 역겹다고 땅에다 침을 탁 뱉어놓고 돌아섰다.    지모가 있다는 진사해가 그만 실패하고말았다. 장평한테서 민호와 향란지간의 은사를 알게 되여 그것을 까밝혀놓으면 민호가 련적으로 되고마는 황보재를 무서워 주눅들줄을 알았는데 적수가 숙어지지 않았다. 결국 대방을 서뿔리 건드리고만것이다.     한편 민호는 도적이 매를 든다고 먼저나서서 자기의 꼬리를 잡는 이 비렬한 인간은 절대 순(順)으로 풀 원쑤가 아님을 더욱 잘 알게 되었다. 원쑤를 눈앞에 놓고도 어쩔수 없으니 결장터질 일이였다. 진사해야, 진사해야, 네놈이 내 안해는 어쨌느냐? 네놈을 없애치우자고, 원쑤를 값자고, 내가 이놈의 데에 남은건데…아아, 언제면 그 일이 성사될가?…     군자는 원쑤를 값는데 10년이 지나도 늦지 않는다고 했더라 때가 오기를 더 기다리는 수밖에.          토비들의 주요한 활동이라는 것이 가마를 마스고 인질을 잡아오고 인질을 바꾸고 같은 류자끼리 의리를 지켜 도와주고 보복을 하며 묘동을 보내고 눈에 드는 작은 무리는 삼켜버리거나 합작을 하는데 그런것들이 다 순리롭게 되어가는건아니였다. 쟁반밟는 일 즉 정찰하는 것이 잘 안되여 작전이 실패하거나 관병들 손에 녹아날수도있으며 다른 패거리와 충돌이 발생해 피를 흘릴 때도 가끔있다. 이럴때면 왕왕 한 류자무리의 운명을 결정짓군하는 것이다.     략탈자의 락이란 곧바로 략탈이였다.     요즘 또 가마마스러 나갔던 한패의 류자들이 돌아왔다. 이번 매매는 순리로왔다니 계획한 일이 성공했다는 소리다.    백두옹 량태의 장악하에 산채의 후근에서는 소 한 마리와 돼지 두 마리를 잡았다. 환락에 잠긴 산채는 또다시 명절기분이 되었다.     류자들의 자작한 노래가 산간에 울리였다.                          류자되면 즐거웁네                             말타고 가마마스면                             술생기고 계집도 생기네                             선인악인 따로있느냐                             희비애환 마찬가질세                             말가는데 소도 가듯이                             인생길은 한가지일세       아침부터 밤까지 이어질 술상이 벌어졌다. 집안에서도 집바깥에서도 군데군데 모여 앉았다. 술이 좀 얼근해지자 벌써부터 여기서도 저기서도 손가락을 굽혔다 폈다 게사니가 제 청을 자랑하고 시위나 하듯이 목주래를 곤두세워가며 권주령(勸酒令)을 불러댔다. 그래서 대방을 곤죽되게 만들면 그것이 승리였고 즐거움이였으며 기쁨이기도했다.     민호가 있는 동남쪽의 산채도 다른 산채들 모양으로 조용하지 않았다. 류자노릇을 제대로 하자면 첫째는 배짱이 있어야 하고 둘째는 형제간에 좀스럽지 말고 너그러워야 하며 셋째는 손이 독해야 하고 넷째는 색에 미치지 말아야 하며 다섯째는 술마실줄을 알아야 한다. 민호는 아직 손이 독하지 못할 뿐 그외의 네가지는 기본상 표준에 도달한 셈이였다.     온 산채가 더운날 비온후 논판에서 악마구리끓듯했다.     민호가 자기는 술먹이기시합에서도 왕이라고 꽝포를 놓고있는 왕견과 마주앉았다. 그가 그와 한창 술먹일 내기를 하고있는데 능구렁이 담장넘어오듯 황보재가 느닷없이 나타났다. 상판이 벌개진걸 보니 술이 웬간히 잘된 꼴이다. 그의 손가락에는 전보다 금가락지 하나 더 끼여져 반짝거렸다. 바다는 메울수 있어도 사람의 욕심은 못메운다더니 속담그른데 없다. 그게 아마도 이같은 작자를 놓고 하는 말인가싶었다. 보재(寶才)라는 이름만봐도 벌써 남과는 달랐다. 절대 적빈여세(赤貧如洗)할 팔자는 아닌가보다. 어려서부터 제 부모한테서 장차 크거들랑 꼭 부자되라는 그 하나의 교육만을 궂이 받아 재보라면 걸신들린 돼지같이 탐욕을 부려왔을거다. 그러한 그가 이번 출전에 공을 세웠다고 한다. 부호를 들이치고 수색했지만 손에 넣을것이 적은 것 같으니 바로 이 황보재가 손을 폈다는거다. 그는 주인의 애첩을 붇잡아 우선 발가벗겨놓았단다. 그래놓고는 칼을 음도에 대고 찌르겠다고 위협해서 끝내는 깊숙히 감쳐둔 보물들을 알려주게 했다는가… 그가 염왕산의 악사(惡事)를 또 하나 만들어낸 것이다.      한데 이 자식은 왜 왔느냐. 민호는 속이 섬찍해남을 어쩌는 수 없었다. 이 자식이 나와 걸고들려구왔구나. 아마 진사해녀석이 추겼을테지…그가 온 리유를 눈치채지 못할 민호가 아니였다. 자칫하면 벌어질 수 있는 혈투를 피면키위해 웬만해서는 먼저 감정을 내지 않으리라고 그는 마음먹었다.    《여보게 고려사람, 나두 한축끼는게 어때.》     황보재는 악의를 내비치지 않았다. 그는 지어 낯에다 웃음까지 바르면서는 제법 소탈한양 말을 걸어왔다.    《난 자넬 꼬리방즈라구 안놀렸어. 그러니까 나까지 밉게 볼거야 없잖아… 그리구 사실은 우린 다가 한형제간인데 의기상투해야지 안그래. 같이놀아보자구. 오늘은 유달리 즐거운날인데…다른 의미는 없어. 나하구 한 번 통쾌하게 몽두춘해보자는 것 뿐이야.》     웃는 낯에 침뱉겠는가. 민호는 그를 쫓아버릴수 없었다.    《여! 민호동생 그만하지. 반강자를 아마 두사발두 더 마신거같은데…그리구 이 사람 보재! 자네두 그만마시는게 좋잖을가. 더 마시겠거든 다른 누구하구 마시든지.》     그의 래의가 심상찮음을 눈치챘는지 왕견이 좋은 말로 물러가게하려했다.     이쪽은 그따위 권고쯤은 개방구로 여겼다. 순순히 돌아갈 보재가 아니였다. 그는 어때 자신없는가 하면서 민호를 깔보았다.    《아산이 깨어지나 평택이 무너지나 백산이 무너지나 동해수 메어지나! 젠장 어디해봐!》     취중무천자(醉中無千子)라 술기운에 담이 커질대러 커진 민호는 대방이 알아듣지 못할 말로 야 이자식아 네놈의 눈엔 내가 그리두 허깨비같아뵈이냐 하고 한마디 더 웨쳐대고나서 손짓으로 왕견을 물러나게 했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다 보재를 앉혔다.     황보재가 앉자마자 둘사이에는 겨룸이 곧 시작됐다.                    《당조일품경(當朝一品卿)》                    《량퇴대화료(兩腿大花蓼)》                    《삼성고조사계도오경(三星高照四季到五更)》                    《륙합륙동춘(六合六同春)》                    《칠교팔마구안도화료(七巧八馬九眼盜花蓼)》                    《십전복록증(十全福綠增)》                    《타개창호선(打開窓戶扇)》                     《명월조당공(明月照當空)》       주령소리 사납게 높아가자 구경꾼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진사해의 추김을 받은 보재였다. 제 각시로 만들려는 아가씨를 감히 홀쳐내다니 하룻강아지 범무서운줄 모르는구나 하고 민호를 욕해온 보재였다. 그는 문득 나타난 련적을 이갈리도록 증오하다가 이 기회에 한 번 단단히 제독을 주자고 거는 판이였다. 워낙 술시합재간있고 벗바리가 좋은지라 신심이 컸던거다.     쌍방은 몸을 솟구쳐 찍어박듯 하면서 게목을 찌르니 짜장 투계장에서 두 수탉이 결사전을 벌려놓고 피투성이로 되어가는 꼴이였다. 겨룸은 그토록 치렬했다. 둘다 비슷한 체대에 만만치 않았다.     한데 시간을 끌수록 생각밖에 민호보다 보재가 점점 지는 차수가 늘어나고 있었다.     장난꾼 몇이 에워싸고 그를 부레끓게 만들었다.     보재는 점점 자제력을 잃기시작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벌주를  더 많이 마신 그가 꼭그라지고 말았다. 워낙 술을 민호보다 적지 않게 마셔서 취기가 있는데다가 넌 조선놈이야 아무렴 네깟녀석이 나를 당할소냐 하면서 얕잡아보고 접어들었다가 끝내는 남들이 벅작고우는 조롱속에서 어디론가 들려갔다.     민호도 꼭그라지고 말았다. 다만 몇초간 더 벗텨냈을 뿐이지.     지고야 분해서 어떻게 참을가. 악의적인 야심은 하늘이 무너져도 변하지 않을것이다. 민호가 이같이 생각했더니 황보재는 이틑날 저녁켠에 술이 깨자 과연 다시찾아왔다.     민호역시 그때까지 술기운이 가셔지지 않아 정신이 채 맑지 못하고 흐릿한 상태였다.     그러한 그의 앞에서 보재는 악의품은 정중한 선언을 했다.    《우리 한번 내기를 더하자!》     민호는 자기앞에 다시나타나 집작거리는 대방을 덩둘하니 쳐다보면서 엉성하게 웃었다.    《시합을 말인가?》    《그래. 시합을 또 하잔말이다. 이번에는 좀 무사답게.》    《어떤 시합을?》    《뽐창던지기를 해보잔말이다.》    《뽐창던지기를?》    《그렇지. 듣자니 거기서두 그건 안다메. 웬간해서야 그런 소릴 안하는게지. 어때? 거리는 십보. 모두 다섯 개를 뿌리되 작대기를 세우듯 한일자로 쭉 내리긋잔말이야. 어때?》    《그렇게 하잔말이지…》    《그렇지. 그래서 누구든 다 그렇게만 하면 피장파장이 되니 평 으루 치구 내기를 그만두자구. 어때?》    《그렇게 하잔말이지…》    《그렇다. 시합해서 내가 지게되면 네가 내 귀를 한짝 베버리라. 그래서 날 병신으루 만들란말이다. 어때?》    《내가 널 병신으루 만들라 그 말이지…》    《그렇지. 병신으루 만들란말이야. 그리구…》    《그리구 내가 지면?》    《간단하지. 내가 너의 자지끝을 베놓겠어. 길게두말구 말랑말랑한 고 끄트머리만 살짝. 그거야 그래두 남눈에 띄이질 않는게 아닌가. 어때? 시합은 다음달 이날에. 그렇게 정하는게 어때?》     이건 장난의 소리아니였다. 악의와 야심이 꽉 찬 그놈의 속창을 누가 모르랴. 랑아야심은 끝내 드러나고야 만 것이다. 자기가 그처럼 부러워하고 시기하고 미워하고 증오해 오던 그것을 폐품으로 만들어버림으로써 울분을 풀어보자는 황보재!     민호는 이가 갈리였다. 뽐창이 생소한건 아니였다. 전에 의렬단에 있을때 테로를 목적해 권총사격과 비수다루기를 련습하고는 뽐창뿌리기도 부지런히 해서 기교를 일정하게 장악한 그였다. 하지만 시합에 나가기는 어려운 정도였다. 제 자신에도 재간이 시원치 못함이 알리는데 오늘 이런 피치못할 경우를 당할줄이야.     제길할거, 뽐창뿌릴줄을 안다고 소문낼건 뭔가. 그런 자랑은 하등의 소용도 없는건데. 그토록 조심하노라했건만 쓸데없이 입을 놀린 자신이 민망했다. 어쩐다, 뽐창재간이 저자만은 못한게 뻔한데?…그렇다고 내 스스로 주눅잡혀 기를 꺾어버릴건가. 도전을 피하면 그때는 투항하고마는 것으로 되잖는가. 겨뤄도못보고 손들다니?…그것은 죽기만 못하게 자존심이 꺾이는 일이였다.     《할려면해봐!》    《좋다!》     황보재는 목적이 당장 이뤄지는것만 같은지 벌씬 웃으면서 대방의 어깨를 툭 쳤다.    《아니 너 미치지 않았니!》    《그치하구 뽐창시합을하다니 원!》     왕견과 하진국은 이 일을 알자 십중팔구는 민호가 지고말것이요 그러면 틀림없이 잘못된다면서 펄쩍 뛰였다.    《어쩌겠나 그럴 수밖에. 보복이 무서워 물러설수야 없잖은가.》     이러면서 민호는 두 친구보고 소문이나 내지 말아달라했다.     한달사이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정신을 발딱차리고 련습해야했다. 반에 뽐창갖고있는 새자가 있어서 민호는 그들로부터 즉시 다섯 개를 빌릴 수 있었다. 그래서는 언젠가 포토우한테 사격검사를 받던 사격장으로 갔다. 거기에 오그라진 양푼을 걸어놨던 나무를 과녁물로 정해놓고 그는 련습에 달라붙는 수 밖에 없었다.     운명을 거는것과 무엇이 다르단말인가.     그야말로 불티나는 고역과도 같은 수련이였다.     민호는 침식마저 잃어가고 있었다. 밤에도 강심먹고 달려들어 희미하게 보이는 나무를 향해 걸쌈스레 뽐창을 뿌렸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쩌는가. 보복의 칼날이 펀펀한 자신을 페인으로 만들어놓게 할수는 없잖은가.     두 친구가 도와나섰다. 그러나 뽐창다루는데 들어가서는 그들의 재간도 그만 별로 나은 것이 못돼서 련습은 지지부진이였다.     긴장은 신경을 오리오리 일으켜 세웠다. 공포가 등골을  싸늘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떨어버릴 수 없는 조급증은 간장이 바질바질 타들게 만들었다.        바로 이런때에 향란이가 나타났다. 그녀는 민호가 여러날 보이지 않아서 찾다나니 여기로 온거다.    《어머! 난 또 왜 안보이나했더니…》     그녀는 여념없이 뽐창뿌리기에만 몰두하고있는 민호를 발견하고 경아했다.     온 정신이 그 하나에만 빨려든 사나이는 녀인이 몸가까이에 이른것도 모르고 있었다. 이에 화딱지난 녀인은 불현간 목청을 세워 야멸스레 투정을 부렸다.    《여봐요, 그놈의 뽐창에 갑작정붙었나요.》    《아가씨구만! 여기룬 언제?…》    《내가 언제온줄도 모르니 정말 인사불성이네요.》    《내가 인사불성이라? 하하하…》    《웃으면 단가요. 날 좀 동무해줘요. 서산골에 가보자요.》    《아가씨 미안합니다. 난 그럴 겨를이 없어서.... 정말입니다.》    《뭐라구요? 벌써 그렇게 됐나요?》     자기를 매몰차게 저버린것같아 향란이는 눈살이 곧아졌다.     마침 이때 진국이와 왕견이 와있었다. 그들은 녀인이 독이 나 풀풀거리는 모양을 보고 하하 웃었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민호가 보재와 뽐창시합을 하게 된 연유를 알려주었다.     향란이는 그 소리를 듣고나서 저으기놀래여 낯색까지 질리더니 보재를 욕했다.    《비렬한  자식!》     그녀가 뽐창뿌리는 것을 도와주겠다며 나섰다.     향란이는 쌍수도(雙手刀)와 쇠채찍(鐵鞭)을 다루는 외에 무림세가(武林世家)의 딸이였던 어머니한테서 전수받은 특기 하나가 더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뽐창(手槍)다루는것이였다. 보재의 뽐창재간은 바로 그녀가 배워준것이다. 그런데 오늘 그 재간을 비렬하게 이따위 앙갚음에 써먹다니 어디 될말인가.     도저히 묵과해버릴 일이 아니였다.            광음여류라 어느덧 두 사람지간의 그 문명스럽지 못하고 악의적인 무서운 겨룸의 날이 돌아왔다. 그런데 조용히 하자던 겨룸이 보재가 들어있는 산채로부터 소문이 새여나온통에 그만 위두령과 사량팔주를 내놓고 염왕산의 류자 거의가 알게 되였다. 이것이 련적지간의 대결이라고 점찍은것도 물론이고.     정해진 장소는 남산기슭이였다.     량쪽 다 감적관이 나왔는데 저쪽은 서은괴고 이쪽은 왕견이였다. 그리고도 수백쌍의 눈이 감적(監的)하는판이다. 그들은 승패를 겨루는 당자들의 감정도착(感情倒錯)을 저마끔 근떠보면서 얼굴에 각양의 표정을 내발랐다. 짝짝궁이가 벌어졌다. 속이 간지러워 죽을지경이 된 어떤 새자들은 귀가 떨어지나 자지떨어지나 잘 보자면서 떠들기까지 했다.     신심이 고무풍선같이 부풀어 오른 보재의 얼굴에서 적수를 얕잡고 멸시하는 거만스러운 빛이 력력히 내비쳤다.     흥분과 소란이 한데엉켜붙고있는 피의 대결장!     누가 먼저뿌리고 누가 후에 뿌려야 하는가?  둘은 선후를 정하는 제비뽑기를 했다. 결과 민호가 먼저나서게되였다. 보재가 먼저뿌려야 좋겠는데, 그래야 그걸 보고 내가 자신의 단점을 다잡을건데 …민호는 긴장감에 가슴떨렸다. 방법없다. 이 역시 운명을 희롱하는 그 무엇의 작간인데야.    《자, 시작해보지!》     적수의 감적관 서은괴의 독촉이 떨어졌다.     벌써 면밀히 짜고 들었는지 숨돌릴 틈도 주지 않았다. 민호는 숨을 크게 들이그어 자신을 진정시킨 후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나갔다. 이 시각 팽팽해지는 긴장속에 수백쌍의 눈이 구령이라도 받은 것 첨럼 일제히 자기 한몸에 짐중되고있음을 전신으로 감각하면서 그는 자기가 서야 할 자리에 가 정립했다. 그리고는 뽐창 다섯 개를 꺼내여 손에 거머쥐였다.     이럴때 향란이가 유유히 나타났다. 그녀는 고개를 조용히 끄덕여 민호가 용기와 신심을 북돋우게 했다.     민호는 목표물을 똑바로 노리면서 정력을 집중했다가 돌발적  인《앗!》소리와 함께 과녁을 향해 힘껏 뿌렸다.     그의 손바닥을 일제히 벗어난 뽐창들은 날파람소리를 쌩ㅡ내면서 날아가더니 일직선으로 나무에 쭉 내리박혔다. 뽐창과 뽐창사이의 간격도 똑 같게.   《야!ㅡ》    류자들은 일제히 탄성을 올렸다.    다음은 보재차례였다. 그역시 민호처럼 뽐창을 뿌렸다. 그런데 그가 뿌린 뽐창 다섯 개중 마지막하나가 주인의 의사를 무시하고 나무에다 자리만 약간 남기고는 그만 아래로 잘랑 떨어지고말았다.   《와!ㅡ》    온 산채가 떠나갈 것 처럼 들썽하게 고함이 터졌고 신심포만헀던 보재의 밝고 거만하던 낯은 단통 흙빛이 되고말았다.      
130    장편소설 <<관동의 밤>> 제1부(11) 댓글:  조회:2668  추천:0  2015-02-03
                             11                민호는 접침을 만들려고 피나무토막을 얻어다 대패로 밀었다. 왕견이 어디에 나갔다 돌아와갖고 보더니 커다란 눈을 슴벅거리면서 바스음을 뽑았다.    《어이구! 이 동생은 또 무슨 도깨비깎개질이야.》        《도깨비깎개질이라니. 접침만드오.》    《접침이라. 너도 그런 손재간있었는가?》    《사람을 알기는…》    《어 그래. 내 잘못했다. 제꺽 절할가.》     아닌게아니라 왕견은 제꺽 엎드려 떡판같은 궁둥이를 하늘로 올렸다. 여럿은 그 모양을 보고 우수워죽겠다고 배를 끌어안았다.     민호는 손에 쥔 대패로 그의 엉덩짝을 짝 때렸다.    《왜 이 추태요?》    《이쯤하면 무슨 뜻인지 모르겠냐?》    《오 하하하!… 알만하오. 내 왕형두 하나 만들어주지.》     허리펴고 일어난 왕견은 기분이 사뭇좋와갖고 가래짝같은 손으로 민호의 어깨를 다독이였다.    《그럼 그렇지! 난 동생이 눈치빨라 좋아.》    《나역시 왕형은 통쾌해서 좋소.》     민호도 기분좋게 그의 말을 받았다. 그리고는 실답긴하나 때로는 우둔스레 노는 그를 한 번 슬까스르고싶은 기분에 지나간 검불을 들췄다.    《왕형! 그런데 듣자니까 고약한 짓 잘했더구만. 남의 참외밭에다는 왜 심술을 부렸더랬소?》    《내가? 하하하…그런일 있지! 있었어! 그래두 난 아주 영 나쁜놈은 아니라니까.》    《나쁜놈아니라.... 》    《그래 그렇잖구. 정말이야. 거짓말이면 벼락맞겠어. 언젠가는 내가 쟁반밟으러 나갔다가.... 사흘굶은 호랑이 쥐새끼를 가릴가…큰기와가마아니래두 하날 고르자구했지… 그땐 염왕산도 좀 째째하게 놀았어. 그래서.... 》    《그랬겠지. 내내 호걸답게만 놀았을가. 그래서?》    《그런데말이야. 기와가마를 하나 찾아내여 안으루 들어가자구보니까 마당에 관채가 놓여있데. 마침 그 집은 상중이 아니겠나. 상주가 애고대고 어찌두 섧게 우는지 옆에서두 다 눈물이 날지경이더란말이여. 상가에 돌던지는 놈은 망종밖에 없어. 망종이래야 그따위짓을 하지. 그래 내가 어쨌겠나. 잖아 그래내가 에라 이럴 때나 맘을 후히 써보자 이러구는 아예 내돈 주머닐 다 털어주고 그만 돌아와버렸던거네.》    《그게 정말입니까. 정녕 그렇게 했으면야 왕형두 목석은 아였던 걸! 속담에 던데 이제보니 왕형은 불상이 될 감이야.》    《그렇지만 난 지금두 아주 영 불상님으루 되고푼 맘은 없어. 건 왠가구?…생각해 봐. 그럴려면 난 이놈이 노릇은 아예 집어치워야할게 아닌가. 안그래? 사정은 바로 이렇단말이야. 》     그리고는 하하 웃었다. 솔직한 내심발로였다. 왕견은 잠시 말을 끊고는 대방의 심기를 졈쳐보는 것 같더니 입을 다시열었다.      《내 옛말 하나 해줄가.》    《해보우 어디 들을만한겐지.》    《들을만해. 정말이야. 진짜루…내한테 친구하나 있었지. 지주집에서 머슴질하는…면양보다 더 어질구 순한 애였어. 거기다가 또 부지런하기란…그런 애가 지독한 겨울철이라 그만 된감기에 걸려 눕게됐지. 일어나지두못할 지경으루. 그런데두나 심보가 악착하기 야차보다 더한 지주녀석은 약써줄 념은 안하구 되려 걔가 꾀병한다구 욕하면서 일어나라구 잡아끌지를 않겠나. 마침 내가 그 애를 찾아갔다가 그러는 꼴을 직접 목격했더랬어. 안봤으면 몰라두 어디 참을재간이 있어야지…그래 난 하구 욕했어. 그러니까 그놈이 글쎄 도끼눈을 해갖구 나를 찍어보잖겠나. 그러더니만 하구는 주먹질하더란말이다. 날 쫓아내느라구. 나도 가만있지를 않았어. 마침 거기 방구석에 울라신방망이 하나 있는게 보이길래 옛다 맞아봐라 하구 난 그걸루서 그 녀석의 머리통을 까서 묵사발이 되게 만들어놓고말았지. 그리구나서…지금은 보다싶히 이 노릇을 하게된거야.》     모두 사실이라면서 왕견은 그래 별호가 울라신방망이됐다했다. 그러고 보면 왕견이 비록 도툴없고 모지락스레 생기긴했어도 인간성과 의협심은 있는 인간이였다.     민호는 머리를 주억거리고나서 입을 열었다.    《왕형은 과연 협객답소!》    《아니야. 왕견이 그러기는 했어두 아직 협객축에는 못들어.》     다른 목소리가 끼여들어 남의 말을 분질러놓았다. 민호가 넌 대체 누군가고 고개돌려보니 다른 사람이 아니라 주먹시합에 패하기만하고도 아직 불복하는 팽덕이였다.    그는 짐짓 정색한 상을 해갖고 민호의 평을 시정했다.   《여기 관동땅에서 진짜 협객을 꼽자면야 그래두 둘밖에 없지. 하나는 장작림이구 하나는 우리네 두령 위삼포야.》    개똥밭에 인물(人物)난다더니 신통한 일도 있었다. 3반의 새자들은 다가 팽덕의 말이 옳다면서 전해에 장작림(張作霖)이 중앙과 도전하여 동북3성의 련성자치(聯省自治)를 완성한 일을 옛날 영정(瀛政)이 6국을 멸하고 진나라를 세운 공덕에 견주면서 영웅같이 떠받들었고 위삼포는 걸출한 협객으로 칭송하면서 자기들의 욕념을 노래로 엮어댔다.    《관동 삼성 패왕은 누구?》    《장작림일세.》    《장잦림이 누구냐?》    《그도 본래는 록림객이라네.》    《산밖에 장작림있고》    《산채에 위삼포있네.》    《농사를 지으려거든 벌방으로 가고》    《벼슬을 하려거든 산으로 와야지.》    《백년을 다 살아봤자 삼만륙천오백일》    《쓰거운 인생 누가 바랄가.》    《달콤한 인생 누가 싫을가.》    《현하주연 접배거상이요.》    《대원성취 시산혈해라네.》     민호는 부전조개 아귀맞듯 이네들이 엮어대는 구술에 탄복하기도 놀래기도했다.     글을 읽었다는 민호도 모르는 현가주연 접배거상(弦歌酒宴 接杯擧觴)이란 대체 무슨뜻일가? 이건《천자문》에 있는 구절인데 뜻인즉 거문고타고 노래하며 주연을 벌리고 잔과 잔이 쉴새없이 오간다는 것이니 인생향락을 말하는것이요 그 아래의 구절은 《천자문》의 것이 아니였다. 뜻인즉 바라는 바를 이루자면 시체가 산이 되게 하고 피가 바다되게 해야한다는것이다. 한즉 이는 살인을 도락으로 여기는 잔인한 토비들의 철학을 적라라하게 들어랜 것으로 된다. 개의 입에서 상아를 꺼낼 수 없고 남색물감통에서 흰천을 꺼낼수는 없듯 이자들의 배속에 인자가 있다면 과연 성불(成佛)할 것이다. 생각하면 비록 류자의 준칙으로 세운 10계률로 인간의 자비를 강조하고 억강부약(抑强扶弱), 살부제빈(殺富濟貧)의 구호와 기발을 내들긴했지만. 어느덧 이러한 무서운 도적들과 휴척을 같이하는 신세로 돼버린 것이 스스로도 과연 끔찍스러운일이기도했다.          어느날 대머리 포토우가 3반산채로 와갖고 찾길래 민호는 잡념을 집어치우고 그의 앞에 나섰다.    《분자를 가져오게.》     민호는 명령대로 바당에 일렬로 세워놓은 여러자루의 총중에서 자기의 것을 가져다 그의 앞에 내놓았다.     포토우는 유저를 재껴보고 총신도 검사하더니 물었다.    《발급한 이백발 퇀한은 다 쏴봤는가?》    《아니요.》    《몇발남았나?》    《두발밖에 안쐇습니다.》    《뭐라구?》    《한발은 총신이 곧은가구 쏴보고 한발은 묘준이 잘되는갈 보느라구 쏴봤습니다.》    《아니 그러니까 여직 실탄련습은 안해봤다는건가?》    《탄알을 아끼느라 그랬습니다, 셋째형님!》    《아낄걸 아껴야지. 날 따라와. 탄알 한배짐 재워갖구.》     포토우는 자기의 명을 함부로 거역하는 이 고집통의 조선젊은이를 한번 단단히 가르칠잡도리였다.     그와 한반의 류자들은 거개가 민호가 실탄련습을 하지 않은일로해서 욕을 볼것같아 근심해서 나섰고 다른반의 류자들은 그러잖아 오락거리없어 무척이나 심심하던차라 볼만한 구경거리가 생겼다며 좋와나섰다.      그들은 산채의 서북켠으로 갔다. 이전에 산채를 지으면서 주추돌과 바닥을 펴느라 돌을 캐내여서 가파른 벼랑이 된 거기는 이네들의 사격장이였다. 류자들은 평시도 심심풀이로 여기에 오군한다. 하여 여기서는 총소리가 자주난다. 그런데 이 젊은 조선류자는 여기와서 하라는 실탄련습도 안했다니 말이 되는가.     남이 망신하는 꼴을 재미로 구경하고펐던 동반의 새자 왕은경이 어느새 오그라진 양푼을 주어갖고와서 까불댔다.    《셋째형님, 헤헤헤…이걸 맞혀보라구하십시오.》     포토우가 시켰다.    《저기 저 가지부러진 나무가 보이지. 게다가 걸어놔라!》    《예, 그럽죠.》     왕은경은 주인손에서 훈련을 잘받은 개같이 쫑그르르 달려가더니 오그라진 양푼을 걸어놓았다. 기껏해야 50여보의 거리였다.     민호는 장탄한 총을 들고 대머리에게 물었다.    《어떻게 쏘랍니까?》    《맘대루해. 앉든 서든.》     민호는 선자세로 총을 갈겼다.     오그라진 양푼이 탄알에 맞아 구멍나면서 날아나버렸다.    《맞혔구나!》     류자들은 탄성을 올리기도 떠들기도했다.    《다시쏴봐.》    《과녁이 너무크다.》    《소경이래두 맞힐 수 있는 거리야.》    《저기 저 거리에다가…》     이번에는 민호가 면목모르는, 다른 반의 새자녀석이 달려나가더니 그 오그라진 양푼을 찾아쥐고서 꼴보기싫게 놀았다. 그 녀석은 포토우가 시키는대로 보(步)를 재면서 근 100여메터를 가더니 손에것을 한 나무가장귀에 끼워놓고는 다 됐다고 손벽쳤다. 사격거리가 곱으로 멀어졌다. 모두의 눈들이 민호를 보고있는데 네가 저걸 맞힐만하냐고 묻고들 있었다.     포토우가 가늠하는 눈매로 민호를 한 번 훝고는 입을 열었다.     《어때 자신이 있는가?》     왕견이 바싹 다가와 민호의 옆꾸리를 쿡 찔러놓곤 귀속말로 충고했다.    《자신없거든 쏘지말어. 괜히 저녁굼을라.》     사격검사때 헛대답을 하면 솔직하지 못한 벌로 한끼 밥을 먹지 못한다. 이건 포토우가 따로 정해놓은 법이였다.     민호는 점심을 배부르게 먹었으니 그깟 저녁 한끼쯤 건너는건 별문제아닌데 총을 쏴보지도 못하고 기권하면 그때는 남의 웃음가마리로 되고마는지라 쏴보지요했다. 류자들은 모두 눈길을 날려 그를 보았다. 더러는 관심하는 마음에 초조한 불안이 담긴 얼굴이였고 더러는 꼴이 어떻게 되는지 하회를 보자는 간지러운 웃음이 그믈그믈 피는 얼굴이였으며 더러는 비웃음이 발린 차가운 얼굴이기도했다. 네가 그걸 맞히겠다구 하면서 콧방구를 힝 뀌는 자도 있었다. 사태가 이러니 명중만 못하면 어쨌든 불명예스러울것이라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긴장한 순간이였다.     포토우는 이번에도 사격자세는 제마음대로 택하라했다.     자신이 있으면 용기는 나는거다. 민호는 오른쪽무릎을 꿇고 왼쪽무릎은 세워 반은 앉은자세를 취한채 두손에 총을 받쳐들었다. 그리고는 안정하면서 혼신의 시력을 다 모아 묘준을 했다가 방아쇠를 당겨 질끈 갈겼다.    《땅! 》     총소리 울림과 함께 이번에도 오그라진 양푼이 날아났다.    《명중이다!》    《엉!?…》    《인제보니 영 생뚜기는 아니였구나!》     류자들은 아까보다 탄성을 더 올리면서 떠들었다.     포토우가 만면에 만족스러운 웃음을 가득담은채 민호의 어깨를 다독이였다.    《됐어! 됐어!… 건데 그런 사격술은 어디서 배운건가?》    《따로 배운적은 없습니다만 총은 더러 쏴봤지요. 전 여기로 오기전에 한동안 사냥을 다녔거든요》    《오, 그래? 그럼 그렇겠지!》     포토우는 머리를 끄덕이였다.          민호는 사격술은 과시했지만 자신의 독립군신분은 감추었다.     한데 이때에 하나의 유감이 후련해야 할 가슴에 맺혀지고 있었다. 포토우의 검렬을 무사히 통과해서 웃름거리는 면했으나 한반에서 형님동생하며 지내던 왕은경이 눈꼴사납게도 놀아댄 그것이였다. 그 자식 안팍이 그렇게 다른놈이였던가. 생각할수록 괘씸했다. 버릇을 떼야지. 당장 한매 쥐여박아주고싶지만 그래놓으면 로골적인 보복으로 되길래 민호는 그러지 않고 생각을 굴린 끝에 우락부락하는 왕견을 든장질했다.    《왕형은 인제보니 거 동생을 잘뒀데.》     비꼬는지라 왕견은 눈살을 찌프리면서 머리를 절레절레 가로저어버렸다.    《은경이말인가. 걘 내 친동생아니구 사촌동생이야.》    《사촌이래두 그렇지. 근본이야 한종자아니요. 그게뭐요. 사람의 새끼같잖게 홀랑거리구…아무리봐두 그놈의 종자는 새씹으루 빠진거같애.》    《너 뭐라니?》     왕견은 단통 도끼눈을 부라렸다.     그러건말건 민호는 쓰게 웃고나서 우엉을 깠다.    《난 은경이를 놓구말했지 왕형을 욕하는건 아니였어.》    《그래두 그렇지. 종자, 종자, 말끝마다 종자니 결국은 그게 나까지 겯들어 욕하는게 아니구 뭐야.》    《참 그렇게 되는가.》    《제길할, 저놈의 새끼같아나 내가.》     사촌동생때문에 자기까지 애매하게 된욕을 얻어먹었다고 여긴 왕견은 골이 대단히 나는지라 선불맞은 멧돼지같이 화닥닥 자리차고일어났다. 그러더니 저쪽으로 씽 가서 한창 주사위놀이에 정신팔고있는 제 사촌동생의 뒷덜미를 잡아일으켜 다짜고짜 뺨때기를 불이 번쩍나게 갈겼다.    《너 이자식, 아까 그게 대체 무슨짓이냐. 너 아니믄 양푼주어갈 놈 없더냐. 왜 그리두 못나게 납닥쳤느냐, 이자식! 너땜에 애매한 나까지 욕먹는다 욕먹어!》     왕은경은 자기가 사격장에서 잘못놀아댄게 빤한지라 매를 맞고도 찍소리못했다.    《이자식, 너 다시 한 번 그렇게 놀아봐라. 아예 부해(물)도 못먹게 검질해치우고말겠다.》     왕견은 이같이 제 사촌동생을 족쳐놓고는 끓어난 열물을 식히느라 밖으로 씽 나가버렸다.     하진국이 처음부터 말없이 보고만있다가 뒤를 따라나갔다.    《쩌, 쩌, 왕형은 그저…성미가 너무불같아 탈이란데두. 말루해두될걸갖구서…하기는 은경이가 매맞아싸지만두. 내 말이 틀리오.》     속으로 쾌재를 불렀지만 그는 왕견을 나무리는척했다.     왕견은 자기와도 사이가 괜찮은 하진국앞에서 그 어떠한 사정에든 앞으로는 민호를 감정상하게 말아야한다, 자기는 그를 의연히 믿고 좋와한다고 말했다. 하진국의 마음과 같았다.          염왕산류자들가운데 민호의 이번 사격표현으로 인하여 특별히 전률을 느낀 사람이 하나 있었으니 그는 다른사람이 아니라 바로 진사해였다.    《그 자식이 포수질까지했다지…틀림없어!》     그는 입에 물었던 담배까지 뱉어버리며 중얼댔다.     가철군은 전부터 민호의 얼굴이 기억난다고했지만 진사해는 웬 영문인지 전혀 기억나주지를 않았다. 민호가 잃어버린 제 허저인안해를 찾아헤매다가 여기로 들어 온 사람이란 것은 그가 여기에 괘주를 하던날 황보재한테들어서 알게된거고 얼굴은 후에야 똑똑히 본 것이다. 사양실앞에서 마찰이 생겨 서로 권총을 빼들었던 그때 진사해는 이 녀석이 혹시 가철군이와 내한테 각시를 랍치당한 그 조선독립군청년이아닐가 하는 생각이 불쑥났었다. 그러니 속이 편안할 리가 있는가. 들어보니 성명은 완전히 다르지만.     진사해는 여러모로 생각을 굴려 본 끝에 끝내 그의 신원을 똑똑히 알아보리라 맘먹고 산채를 나갔다온거다.     진사해는 전부터 체포령이 내린 토비라 지금도 눈에 불을 켜고찾을것만같은 정부군에 붙잡히울가봐 겁나서 동강이나 무원일대에다는 발을 감히 들여놓지도못하고 여기에 오기전에 내내 숨어지냈던 송화강중의 한 섬인 오동하에 가보았다. 그런데 그사이 거기에 있어야 할 가철군이도 츄얼이도 어디로 가버렸는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진사해는 헛걸음만팔고 되돌아온거다.     전에 따지고 물었을 때 츄월이는 제 남편은 성이 김씨고 이름은 해룡이라 알려주었다. 그래서 진사해는 지금까지도 그것이 그녀남편의 진짜이름인줄로만알고 있었다. 깜냥있는 계집인데 그래 제 남편이 잘못될가봐 살짝 거짓말을 할수도있는게 아닌가. 내가 왜서 그쯤한것도 미처생각못하고 있었던가. 진사해는 이제와서야 소견머리짧다못해 어리석을 지경 불민했던 자신의 지난날을 돌이켜보고 자조하면서 가슴답답하게 올리미는 쓰거운 열물을 삼켰다. 김해룡이라건 정민호라건 성명이야 어떻던간에 이제와서는 그것이 한사람인것만은 틀림없다고 그는 단정했다.    《틀림없어. 저녀석이 동강아문의 기병대에 들어 우릴 넋살통먹인거야… 저런놈들 손에 녹아나지만않았어두 내가 이렇게 까지 비루먹은 개모양으루는 되지 않았을건데.》     진사해는 가슴떨리는 울분에 이를 갈았다. 저 조선놈이 내 뒤를 밟아 여기까지 들어온건 아니지만 우연일수있다. 이건 원쑤가 면바로 외나무다리에서 만난격이야. 그리구 이것이 사실이면 저녀석은 언녕 나를 알아보고 속에 칼을 품어왔을것이다. 꼭 그럴거다. 하니까 어쩐다?… 원쑤가 한배에 올랐으니 위험천만한 일. 내가 겨우살려낸 명을 여기서 저놈의 손에 잃지나않겠는지… 액운이란건 때가 없이 떨어지는거니까. 어쩐다?…에잇, 피똥이나 싸다가 늘러질 등신아. 네가 어느때부터 이런 겁쟁이루는된거냐, 창피스레. 진사해는 자신의 불길한 련상을 집어던졌다.     민호의 신원을 내가 똑똑히 알아보고 대처해야겠다. 그런데 그걸 누구하고 알아본다?…그렇지! 마치 질식해 숨넘어간 사람모양으로 어둡게 죽어가던 진사해의 얼굴빛이 확 밝아졌다. 민호와 같이 있는 류자반장인 그 허저인 위진이 떠올랐던거다. 고태자에서 제 혈족 40여명이나 참살당했건만 자기를 따게 보지 않는, 정확히 말해 민족복수도 모르고 무감각해진 그런 인간쯤이야 얼마든 주물러 제켠에다 세울재간이 있었다.     죄를 지은 자 자유롭지 못함은 두려움이 앞서기때문. 저려나는 발은 자기대신 걸어줄만한 노복을 찾는것이다. 진사해는 언녕부터 자기를 따르면서 종처럼 말을 곰상곰상 들어줄만한 새자를 하나 구하려했으나 그일이 아직까지 여의치 않았다. 조심해야했다. 자칫의심스레 보여 위삼포이 눈에 날수있는 것이다. 하여 그는 염왕산에 들어와 괘주한지 거의 한해가 되어오는 오늘까지도 겨우 2련 3패에서 우두머리질하는 서은괴를 조심스레 친해놓았을 뿐 사량팔주는 물론 련장급의 류자와는 사교(死交)를 맺은이라곤없다. 황보재는 총명하거니와 담력이나 무예가 다 간단찮은 발군이건만 웬 영문인지 일자반급도 못하고 있는 신세니 비록 위용강이와 가깝게지내긴해도 보통류자나 다름없고 후근마사의 장령감역시 류세가 많지만 원로급이 아닌 일반류자니 아무때건 죽게되면 향 몇가치만 태워주고 황지 몇장 뿌려주면 고작일 인물이다. 이런자들과 각근히 친해서는 의심도 미움도 사지 않을 것이다. 패장(敗將)이니 과거의 용맹을 어떻게 자랑하랴. 그러기만하면 남의 빈축이나 사기쉽다는것쯤은 알고있는 진사해였다. 하지만 그래도 제 울적한 심정을 하소할데가 있고 그것을 다소나마 귀담아 들어주고 리해하며 동정해줄 사람이 곁에 있어야겠기에 우선 그 몇을 사귀여놓은 것이다.     사격장에서 민호의 사격검사가 있은 이틑날 오후 진사해는 또 전날처럼 후근마사의 사양실을 찾아갔다.     장령감이 예나다름없는 석쉼한 목소리로 그를 반겼다.    《몽두춘(술) 하려우?》    《해얍지요. 몽두춘안하구야 내같은게 무슨멋에 살겠수.》    《이 사람아, 오늘은 상이 왜 그래?》    《령감, 남의 상을 잘보오만 제 신세는 왜 무쪽같이 오그라들었소. 그따위 듣그러운 소리는 말구 안주있거든 얼른 내놓기나하슈. 그러는게 나한테는 더 반가우니까.》    《아따, 이 사람이 고기가 있어야지.》    《없다구요?》    《없네, 없어. 나두 그런건 이틀째나 이새에 끼워두못봤네.》    《아따, 거야 가져오면 얼마든 될걸 갖구서 그러네. 나리들 잡숫던거있겠지요.》    《아니 이 사람, 뭐라? 자네두 이제는 그런걸 찾어?》     장령감은 자못 놀라운 양. 주름많은 얼굴에는 감추지 못하는 조소가 그믈그믈 피여오른다. 량반은 얼어죽어도 겨불은 안쬐고 굶어죽어도 남먹던 턱찌끼는 안찾는다던 진사해가 아닌가.     진사해는 시설떠는 그가 민망해 힐끈 치떠보곤 입을 다물었다.      어서 말이나 곰상히 들어달라는 무언의 독촉이다.     장령감은 밖으로 나갔다가 마침 중앙산채에서 나와갖고 서쪽  의 식당산채로 가고있는 한 새자를 소리쳐불렀다.    《여! 장평이냐? 여기 좀 왔다가거라!》     저쪽은 장령감의 목소리를 잡아듣고 달려왔다. 중키에 탄력있는 단단한 체구, 갸름한 얼굴에 정기도는 부리부리한 눈, 상큼한 코대…짜장 사냥물을 쫓느나 싸대는 표범새끼같이 날렵해보이는 젋은이였다.     장령감은 그한테 당부했다.    《너 식당가지. 고기채있거든 가져와. 나 몽두춘 좀 하련다.》       장평은 알았어요 하고 뛰여갔다. 올해 나이 19살인 그는 14년전, 그러니까 다섯 살 나던 해에 인질로 잡혀온 것이 돌아가지 않고 산채에 남아 오늘까지 고스란히 살아온 것이다. 지금 양부인 늙은 양즈방을 시중들고 있었다. 양부는 요즘 몸이 불편해 제 숙소에서 식사를 하는건데 마침 장평은 식기들을 식당에 날라가고있던참에 장령감의 청을 듣게 된 것이다.        장평은 식당에 가더니만 과연 소고기를 밭미나리에 섞어 볶은 채 한접시를 갖고 사양실로 뛰여왔다.     진사해는 그를 대하는 순간 낚구고싶은 생각이 불쑥나서 만면에 웃음바르며 친절을 부렸다.    《허, 이거 동생! 감사하구만. 여게 좀 앉지.》    《고마와요.》    《로소동락이라잖아. 오늘 나하구 같이 몽두춘해볼가.》    《난 잘 못하는데요.》    《잘 못한다…그럼야 으레 잘하도록 훈련해야지, 안그래. 뭘 바라구 이 세상을 사나. 이제 정인군자루 되겠나 미륵보살루 되겠나. 우리처지에 몽두춘제대루못하면야 사내장부가 아니지. 호한협객으룬 더구나못되구. 말해봐, 안그러냐?》     이렇게 장평을 붇들어 앉혀놓고 구슬러서 함께 술을 마셨다.     진사해는 그보고 모두들 동고동락하면서 생사를 함께 하는 처지라지만 그래도 더 가까운 사람 따로있는게 아닌가 하면서 아무리봐야 넌 그 누구보담 더 귀엽구나, 누구보다 더 사랑스럽구. 그래서 난 널 더 좋와하게되는거야. 이건 내 맘속에서 우러나는 진심의 소리다. 너는 생각이 어떤지 거짓모르는 솔직함과 진실함이 신뢰와 우의를 낳는거다. 우리 지금부터 서로간 마음을 솔직히 나누면서 허물없이 지내는 진짜 지기로 되고 벗으로 되고 형제로 되는게 어떠냐 했다.      이상분이 아낌없이 털어놓는 귀맛좋은 찬사에 장평은 기분이 달뜨면서 흐므러지게 기뻐났다.    《그럽지요. 우리끼리야 그러잖아도 친형제간이나답잖은가요.》     그는 만면에 웃음꽃을 가득피운채 흔연히 동의했다. 진사해가 미더워보이면서 그한테 안겨주는 인상이 너무도 좋았던것이다.     자기를 세상물정에 익달하다고 여겼건만 운명은 파국에 몰려들었던 진사해였다. 남한테 편협하다는 평을 듣기보다는 대범하다는 평을 듣는 편이 역전한 제 운명을 원래대로 돌려세움에는 백배 더 유익함을 알고있었기에 그는 되도록 남한테 걸걸한 호인풍의 사나이로 보이면서 선손을 써 적수를 꼭그러뜨리리라했다.     그 이틑날. 심부름을 받은 장평이가 위진을 불러내와 후근마사의 사양실에 데리고왔다. 거기서는 물론 진사해가 기다리고 있었다.    《진수이샹이 날 오라구했는가요?》    《이거 모두들 날 그냥 수이샹 수이샹 하니…자, 자, 여게앉소, 위반장. 내가 위반장을 불렀지. 목구멍간지러우니 몽두춘이나 같이해보자구.》     진사해는 처음에는 서먹해 하는 양이다가 인차 활기를 펴면서 친절을 다했다.    《이거 내가 수이샹어른하구 같이해서야될가요.》     위진은 년장자였건만 제쪽에서 머리를 긁적이면서 쭈물댔다. 지금 나를 청해 함께 술마시자는 이 사람이 다른 누구와는 달라 그래두 한때 류자무리에서 자리서던 인물이였으니까 하고 그는 속으로 뇌고 있었다. 웃사람앞에서는 굽실거리고 받드는 습관된 공경심이 멀정한 사람을 이같이 병신으로 만들고 있었다.    《어려워할거있소 같은 형제끼린데.》     진사해는 제 스스로 품위를 낮추는 위진을 대뜸 허수하게 보면서 한수잡고들었다.     장령감이 술과 안주를 가져오자 장평이 훈련된 작부마냥 진사해가 보내는 눈길지시대로 그릇 세 개에다 술을 부었다.    《너도 한잔 마시거라.》     진사해는 손수 술단지를 기우렸다.     그러는 모양을 보고 위진이 감격스러움을 나타냈다.    《진수이샹은 과연 소문과 같이 틀거지가 없는 분이구만요. 그러게 다들 좋와하는모양이지. 하긴그렇습니다. 서로간에 형제로 되어 사는바에야 그러는게 랑패없지. 안그런가유 수이샹어른.》    《위반장말이 과연 그른데없지. 라 신분의 귀천에 따라 음악이 다르구 존비에 좇아 례에 구별이 있다함은 천만지당하오만 생각해보면 주의해얄것두있지. 례의구별이 있다해서 자리서는 자 떠받들어줄건만 바라구 오만해지면야 남들은 그를 경원하게되는거니 결국은 곁에 사람이 없게되지. 안그렇소, 위반장.》    《옳수다. 그러게 저 뭐라더라. 건방지게 굴면 손해보구 겸손하게굴면 리득본다는 속담도 나왔을테지.》    《말이 맞아. 그래서 난 우리들사이에는 서로 허물없이 지내주길 희망한다 그 말이지. 어떻소. 내 주장이 틀리지야않겠지.》    《틀릴리있습니까. 바른말씀인데.》     위진은 머리를 주억거리고나서 혼자소리로 보탰다.    《우리지간에야 응당 그래야지.》     기다린거다. 진사해는 대방의 얼굴을 직시하면서 캐듯물었다.      《그러자면 어떻게해야할까요, 위반장?》    《거야 서로믿어줘야지.》    《그러자면?》    《?…》    《서로간 속심부터 줘얄게 아니겠소, 위반장님!》    《그렇지, 하하하…》     위진은 이켠의 뜻을 거분거분 받아주었다.     진사해는 기분좋았다.    《자, 이눔의걸 우리 멋들어지게 다 넘겨치우구볼가. 이눔의 반강자(술)를 지기지우와 같이 마실 때는 백잔도 오히려 적다는 말이 있잖아. 그러니… 자! 자!》     그는 대방이 좋은 기분으로 사발의 술을 굽내게 만들고나서 한술 더 떴다.    《사람이 살아가자면 우정이 제일 귀중한거야. 신임도 신뢰도.》    《그렇지유.》    《그런데 그게 공중에서 그저 뚝 떨어지는거야아니지.》    《그거야 그렇잖구.》    《그러니까 서로 속심안주구야 우정이라는게 생길수있을가.》    《그렇지유. 속심안주구야 안되지유.》    《그래서 이 사해가 오늘 위반장하고…다른게 아니지. 우리지간에 우의와 친절을 도탑게 하기 위해서.》    《거 좋지유. 나역시 동의야.》    《우선 한가지 물어볼가.》    《진수이샹, 뭔데?…》    《그 반에 아마 꼬리방즈하나있지?》    《있지, 있어. 정민호라구하는.》     위진은 언젠가 민호가 《꼬리방즈》라는 말을 대단한 모욕적인 언사로 여기고 대노하던 일이 상기되여 낯빛을 고쳤다.     진사해는 대방의 심기변화를 짚어가면서 말을 계속했다.    《언젠가 한 번은 그하구 내가 마찰이 있은걸 위반장은 아마 알고있을거야. 제 반 새자이자 수하사람 저자른 일이니까. 그런데 사실말이지 그건말이요. 참…재미없어서…내가 그때 그 무슨 악의에서 그 사람을 꼬리방즈라구 욕한거야 아닌데 일이 그렇게 됐다는거요. 무의식간에 장란으루 그럴수도있는게 아닌가. 내가 지금 위반장보구서 하구 부른다면 위반장이 그래 내한테 분자빼들테요?》    《안그러지. 그러면야 못쓰지. 형제끼린데 롱담으루 여기면 될걸가지구… 그래서 나두 그때 그보구 하구 나무렸지. 진수이샹은 대틀이구 좋은분이라구하면서.》    《위반장이 그랬다구!?》     진사해는 일순간 돌발적인 반가움을 얼굴에 피웠다가 감췄다.    《그랬지유. 정말. 난 거짓말하구는 담벽쌓구사는 사람이라니까. 믿지 못하겠거든 이 장령감하구 물어보슈 안그런가구. 장령감!》    《어 그래. 그래.》     여지껏 입을 꾹 다문채 두 사람의 대화를 귀로 들어주기만하던 장령감은 허저인 류자반장이 자기까지 갑작스레 말새에 끼워넣는지라 미처사색할새없이 고개를 끄덕여버렸다.    《고맙구료. 건데 이 사해의 사람됨이 어떤지를 모르구있는 그가 지금은 어떨가? 속에다 뭘 넣구서 앙분풀이하자구나하잖는지.》     《그건 저…》     위진은 혀를 더 놀리지 않고 말끝을 사리였다.     꼴을 보니 너희들이 날 놓구서 꼭 말이 있었구나. 내흉스러운 진사해는 이렇게 속으로 짚으면서 늦줄을 주지 않고 잡아챘다.    《왜 말하다마는거요. 그가 위반장하구 꼭 무슨 말이 있었을텐데. 안그러우 위반장. 속엣말 다 뱉었을텐데.》    《저…저…진수이샹 정말이야. 걔가 분하니까 진수이샹을 개색끼라 욕한건 있어두…》    《그저 그렇게 욕했다?…내가 누구란거야 그도 알겠지?》    《왜 모르겠어. 임자가 청보산패서 자리서던 분이라는거야 온 산채가 아는일인데.》    《그 사람 정말 그것밖에 모를가?》    《그리구 저…》     위진은 나오려던 말꼬리를 다시한번 사리였다.     진사해는 그러는 모양을 넌짓이 보다가 술을 사발에 부어 그한테 권했다.    《목이 마르거든 적셔놓구 말해두되오.》     위진은 어색한 웃음이 발린 낯을 돌려 장령감과 장평을 봤다.     진사해는 입을 다시열어 유감을 표시했다.    《왜 아직두 날 믿지 못하오. 난 위반장을 나만큼이나 믿구서 속심말을 나누자는건데.》     이 소리에 말은 혀끝에서 반마디만 남겨두어라며 조심하던 위진이였건만 속으로 안되겠구나 나는 이 사람을 믿어야겠구나 하면서 끝내 하지 말았어야 할 말을 해버리고말았다. 물론 그건 훗날 그 둘이 다른장소에서 조용히 만나서였다.         염왕산류자들은 큰 기와가마를 부실때만 전부의 무력이 동원되고 일반때는 몇십명씩 나가군했다. 그래서 산채는 비는 날이 없이 늘 흥성했다. 민호가 여기에 들어서던 첫날은 산채의 류자가 거의 동원되여 멀리 장춘쪽으로 큰기와가마를 털려갔던것이다. 그런데 그번은 관방의 경찰대와 합작한 강한 련방대의 저항에 맞다들다보니 계획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오고말았던거다.     요즘 또 한패가 목단강쪽으로 떠나갔다…     향란이가 후근마사에서 부루말을 꺼내왔다. 민호의 해다. 그놈은 여기와서 보양이 잘됐는지 누구나 봐도 탐낼 지경이다.     이때 마침 민호가 자기 말을 보러 나섰다가 향란이를 만났다.    《향란아가씬 그놈하고 아주 영 정든거나 아닙니까.》     녀인은 눈을 꼬면서 입을 열었다.    《집탈은 말고 어서와서 날 거들어주기나해요.》     민호는 저도모르게 비틀린소리를 뱉어냈다.    《내가 자격됩니까, 보재는 어딜가구.》     녀인은 무어라 대꾸하려다말고 마뜩잖게 눈을 흘겼다.    《어째요. 풍자(말)를 바꾸기싫은가요.》    《무슨소리를…》    《내해하구 바꾸기싫은가말이얘요.》    《뭐라?…》    《아직두 달통되잖으면 관둬요.》     《무슨소릴 그렇게?…아가씨가 언제 나하구 그러자했길래?》    《해엽자 못봤나요?》    《해엽자라니! 언제 무슨 해엽자를 나한테 줬단말입니까?》    《내가 겨울돼서 신으라 보낸 동동자(양말)는 받았겠죠?》    《받았지.》    《그러구도 그안의건 못봤다는건가요?》    《아니 그속에다 해엽자를 넣어보냈습니까!》    《별 멀쩡한 량반 다 보겠네요. 동동자 다 판나도록 신었을텐데 내 글은 안읽어본모양이지.》    《가만. 내 이제 읽어보지. 난 그 동동자를 엽때껏 그대루…》    《아니 엽때껏 그걸 신지두않았다는말인가요! 그게 뭐 금보밴줄알았나요. 호호호…》     향란이가 어찌나 자지러지게 웃었는지 장령감이 웬 일인가고 사양실에서 달려와보기까지했다.    《풍자를 바꾸지! 바꾸지!》     민호는 인제야 비로서 전해의 초겨울에 향란이가 외근을 나가있던 자기에게 양말을 보낸 본의를 깨닫고 따라서 웃었다.     향란의 말도 괜찮았는데 그놈의것은 어떻게 되어 까지 않아서 아래로 처진 흰 불알에 검은 점이 하나 박혀 그것이 녀주인의 눈에 점점 상서롭지 않게 보이면서 비위를 그슬렸던 것이다. 그녀의 병태적인 그 심리상태야 물론 그 본인밖에 모르는것이다. 그녀가 말을 꺼내지 않는데야 하느님인들 알랴.     향란이는 민호의 대답을 받고 몹시좋와했다.    《대답이 시원해서 통쾌해요. 이젠 우리 둘지간에 교역은 성사된셈이겠죠.》    《그렇잖구. 남부일언이 중천금인걸 모릅니까.》    《좋아요. 그렇게까지 말씀하니 난 기뻐요. 이러자요. 우리들의 교역을 축하해서 한잔하는게 어때요. 내가 낼테니.》    《정말입니까. 아가씨가 그럴 맘이라면야 난 반대의견없지요. 어쩔가, 우리 반 형제들을 다 데리고 오랍니까?》    《아니! 아니! 그러진 말아요. 난 그렇게는 준비못하겠어요. 그저 혼자 조용히 와요. 음…밤 여덟시. 약속어기지 말고 꼭.》     요즘은 오후는 7시반이면 해가 져 어둡기시작한다. 그러고도 반시간후니 취침시간이 다된다. 그런때에 사내자식이 규수의 방에 뛰여들어 녀인과 술을 같이한단말이지. 그런다면 남들이 어떻게 볼것인가…민호는 선선히 대답해놓고 보니 다시금 고려되는일이기도했다. 그러다가 그는 에라 개코라해라. 뭐가 어떠냐. 이건 녀인이 나를 청하는건데 뭐 서로간에 약속이 되어 행하는 일인데 뭐 했다.          이러구러 약정한 시간이 다 되어오자 민호는 중앙산채쪽으로 발걸음을 놨다.        향란의 거실은 아담졌다. 출생지가 바로 여기인 그녀는 여덟살나던해부터 따로 이 방을 차지하고 자랐다. 중앙산채에 붙은 이 별채는 내실면적이 꼭같은 방 두 개로 꾸며졌는데 벽을 사이한 저쪽방은 그의 어머니가 생전에 들어있었던 침실이다. 거기에는 지금도 그의 어머니가 생전에 쓰던 물건들이 그대로 정연하게 놓여 있었다. 정깊었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이 귀동딸의 식지 않고 이어지는 애틋한 정성의 표시였다.     이쪽에서 손기척을 냈더니 문이 인츰열렸다.    《어서들어오세요!》     녀인은 각근히 인사차림을 하면서 반겨맞았다.     민호는 방안을 휙 쓸어보았다.     회칠을 해서 눈같이 새하얀 벽간에 산수화를 그린 그림 한 장이 붙어있고 구석쪽에 놓여있는 꽃무늬돋힌 커다란 법화(法花)에는 란초꽃이 한창 싱싱 자라고 있었다. 한쪽벽가에 자그마한 구들.     이불장가 구리도안으로 장식이 된 황경나무제의 옷궤우에 놓여있는 시계가 마침 종 여덟 개를 땡 땡 쳤다.     종소리에 향란이는 웃음날렸다. 약속을 지켜 고맙다는 뜻이다.    《위아가씨하고 약속한건데 신용있게 놀아야지.》     이런 반응이 향란이를 사뭇 기분좋게 만들어주었다.     방가운데에 술상이 간단히 차려져 있었다.     녀인은 사나이가 자리에 앉자 모양고운 진사포무늬박이호로술명을 들어 조용히 은잔 두 개에 술을 붓고는 다시한번 살짝웃었다.    《자 들자요.》    《들어야지. 이건 우리 량자간의 교역축배주니까.》     민호는 되도록 대방의 정서를 맞추려했다.     했더니 얌전을 피우던 녀인의 입에서 눈이 까뒤혀질 엉뚱한 말이 튀여나올줄이야.    《아니애요. 이건 오늘밤 우리들의 교배주얘요.》    《아니 뭐라!?…》    《호호호…왜요. 듣기싫은가요. 그렇다면 롱담으로 치자요.》    《롱담도 유만부동이지.》     민호는 녀인이 부어주는 술을 조심스레 마셨다....      
129    장편소설 <<관동의 밤>> 제1부(10) 댓글:  조회:2844  추천:0  2015-02-03
                            10              이듬해 봄이 둘아왔다. 민호가 소속되여 있는 반의 류자들은 임무가 끝나 본채로 돌아오고 대신 200여명의 류자가 일시에 동원하여 우마와 쟁기들을 가지고 약담배농사지으러 갔다. 조사할수도 없고 조사받지도 않는 땅이였지만 어쨌던 나라의 정부를 속이면서  하는 짓이라 다른 여느 농사일과는 퍽 달랐다. 그들은 밭갈이를 하거나 기음을 매거나 철이 되여 꼬투리에서 아편유액을 받아낼 때면 언제나 이같이 반수이상이 동원되여 불이 번쩍나게 돌격전을 벌리군했었다.      본채로 돌아온지 닫새되도록 민호는 진사해를 보지 못했고 그를 만나지 못하니 손쓸수도 없었다. 그녀석이 약담배밭에는 안갔는데 대체 어디로 새여버렸을가? 산채에 없는 걸 보면 분명 외출한 사람이였다. 한데 어디로 갔고 언제 돌아오는지 알길없었다. 그걸 내놓고서 아무누구하고나 척 척 물어볼수도 없는거고.     아무튼 좋은 기회를 놓쳐버리는것만같았다.     민호가 마음둘곳없어 무료해하는데 마침 할 일이 나졌다. 3패에서 패장노릇을 하다가 련장류자가 차챈즈의 명령을 받고 쟁반밟으러 나갔다가 잘못되여 그 자리에 방금 올라앉은, 언젠가 위진이가 사슴잡아 위삼포에게 진상(進上)하고 위신을 얻었다고 알려주던 그 성명이 리황수란 류자가 나으리의 분부를 받고 찾아온거다.    《네가 정민호냐.》    《그렇소. 무슨일이요?》    《두령한테 가봐, 부르시니까.》    《그가 왜 나를 부른다는가?》     리황수는 조선청년의 배때벋은 언동에 언잖고 불쾌해났던지 바라보는 눈길이 그리곱지 않았다.     민호는 속으로 별 덜러운 자식 다 보겠다 내가 누군데 너한테 다 굽실거려야 하는거냐 하면서 여전한 투로 물어봤다.    《어느 두령한테 가라는건가?》     대방은 눈살이 꼿꼿해지더니 뱉듯이 알려줬다.     《위두령한테루 가. 널 기다리고계셔.》     위삼포가 날 왜 부를가? 왜 갑자기 찾을가?…갑을간 가보는 수밖에 없었다.    《이런일일세. 젊은이가 한 번 맹가강엘 갔다와야겠네. 거기에 사는 맹씨가 나하곤 전부터 교분이 있는 분인데 셋째아들놈이 요새 장가를 간다나. 청첩을 보내온거네. 받구서 모르쇠를 놓을순 없고....준비가 됐을텐데 곧 갔다오게. 》     민호를 보자 위삼포가 하는 말이였다.     맹씨란 맹가강의 부호 맹사덕지주를 말하는건데 그네와 위씨일가족은 선대로부터 관계가 좋았다. 토끼가 배를 골아 죽을지언정 제 굴옆에 돋아난 풀은 먹지 않듯이 위씨네 역시 도처를 다니면서 료략질을 하고있지만 가까이에 있는 부호들은 괴롭힌적이 한번도 없었거니와 그들과는 사이를 좋게 하고 지냈다. 그뿐아니였다. 위삼포는 지어 염왕산주위 어느 마을에 상가가 있어서 알리기만 하면 빼놓지 않고 찾아가거나 그렇게 하지 못할시에는 대신 수하의 새자를 보내여 금백(金帛)과 지촉(紙爥)으로 돕기도 했다. 그리고 어려운일을 당해 알리면 도와줄만한 것은 되도록 도와줬다. 그런 일은 극히 드믈었다. 백성들도 자신의 일에 그들을 불구렁에 밀어넣으려고는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무는 클수록 잎이 뿌리에 떨어지는거네. 우리가 이렇게 하는건 다 산채의 안전을 위해서일세. 이렇다는걸 젊은이는 알아야겠네. 그러니까 부도한 일은 없도록허게.》    《예. 주의하겠습니다.》    《거기 아마 왕견이가 있겠지. 걔와 함께 떠나도록하세.》    《예. 분부대로하겠습니다.》     허리굽혀 수긍을 표시하고나서 민호는 그가 손에 쥐고있는 매끌매끌 윤나는 변간죽을 보면서 속으로 생각을 굴렸다. 이 일은 다른 사람을 시켜도 얼마든될건데 왜 하필 나를 불러다가 이같이 직접맡기는걸가. 이건 위삼포가 나의 담략과 기질을 떠보자는게 아닌지도모르겠구나. 정신차려야한다. 그리고 주의해야한다. 이런때일수록 신임을 잃지 말아야한다, 악으로 굳어진 복수를 성공하자면.     제 거실로 들어가려던 향란이가 마침 중앙산채를 나서는 민호와 정면으로 맞띠워 웬 일이냐물었다. 민호는 자기가 오게 된 연유를 말했다. 향란이는 듣더니 쌩긋웃었다.    《그렇다면 기쁘겠네요.》    《내가 기쁠게 뭡니까?》    《잔치집에서 귀빈으로 모실텐데. 안그래요.》    《맹씨가 그렇게 해줄가?》    《왜 그렇게 안하겠나요. 꼭 그렇게 할거얘요. 그분은 우리하고 교분이 두터운걸요.》    《그렇다는건 나도압니다. 위두령께서 말씀하시더군.》    《아버지가요. 그래 동행자는 누군가요?》    《왕견이하구 같이가라는구만.》    《아, 그래요! 그 도툴없는 사람하고 동무하게됐군요.》    《글쎄말입니다. 위두령은 왜 그하고같이가라는지 모르겠는걸.》     《그걸 달리생각말아요. 저의 아버지도 언젠가 그일 데불구갔다오신적있어요. 그때도 지금처럼 청첩이 왔길래…아마 맹씨네 큰아들잔치때였을거얘요. 허니까 왕견이야 그 집에는 초행이 아니죠. 안그래요. 이런 길에는 아무튼 구면이 썩 낳지요. 그리구 그인 손발을 씀이 굼뜨지 않아 유사시 제 구실은 할거얘요.》    《왕견을 내 이 정모의 신변보호인으루 딸려보내는건가.》    《그렇잖구요. 바로 그렇죠.》    《그자식이!》     민호는 육기가 좋거니와 목소리마저 바스음이여서 어디가나 로지심이나 리규같이 유표가 나는 왕견이가 자기를 향해 웃음을 던지고있는것만같았다. 왕견은 민호와 한반이여서 매일 코를 맞대고지내는 류자인데 나이가 민호보다 세살더먹고 위진이보다는 세살 적게 먹었다. 결대크고 생김새와 같이 성격이 우락부락하거나와 목자가 사나운사람이다. 함께 지내면서 볼라니 그리 역지 못하고 무지하게 놀때가 많은데 고집이 어찌나 센지 그가 여러 류자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독선을 부릴때면 누구든 감히 반대곡을 부르지 못한다. 그럴때는 제똥에 처박아두는게 제일이였다.     염왕산 류자들을 보면 그 성분이 친윤기간이거나 친척간으로 돼있는게 적잖았다. 왕견역시 그러했다. 민호가 빨쥐새끼라 놀려준적있는, 경조부박하고 허풍떨기 좋와하고 칙살스레 까불어대고 추접은 쌍땀하질에 입이 걸어진 왕은경이 바로 그의 사촌동생이 되는거다. 같은 수탉이라도 싸움잘하는 웅계가 더 자유롭고 행세도 부리는 법이 아닌가. 왕견이 그러했다. 민호가 속으로 내가 어떻게 하면 어거지 센 그 녀석을 손에 넣을가고 궁리하는판에 향란이가 귀띔하는것이였다.    《근간에 자질구레한 행세꾼이 적잖게 나돈대요…지방마다 련방대가 조직된 모양인데 좀만 의심돼도 잡아들인대요…조심해요.》    《일깨워줘 고맙습니다.》     민호는 이제는 자기앞에서 오만을 부리지 않고 직심스러운 녀인의 권고를 고맙게 여겼다.          말을 줄창달려 맹가강(孟家崗)에 닿고보니 오후세시경이였다. 염왕산 서남밖 비옥한 버덕에 자리잡고있는 맹가강은 호수가 무려 700여호라니 북만치고는 그리 작은 마을이 아니다.     마을복판 너르게 자리잡고 들어앉은 고래등같은 기와집 몇채가 맹지주의 장원이였다.    왕견이 거기다 눈길을 던진채 입을 열었다.    《맹사덕이 올해 나이 아마 예순둘일거야. 복은 혼자안구 사는 령감태기지, 젊은 첩만두 다섯이나 거느리구있으니까. 본댁을 놔두구서두 그렇게…》    《본댁이 늙으니까 자연히 꼴보기싫어난모양이지. 호박늙은건 먹기나좋지만 사람이야 어디…》    《하긴 그래서 그러긴하겠지만두 공을 봐서라두 본댁을 너무 랭대는말아야지 안그래. 그게 부지가 대단해서 새끼를 저그만치 열이나 놔줬으니까. 그놈의 구멍으룬 아닌게아니라 무를 뽑듯이 뽑아냈지. 거기다가 첩년들이 낳은 것 까지 합치면 맹령감은 자식이 스믈일곱이야  스므일곱.》    《저런! 옹군 두 개반을 만들겠군!》    《그렇다말다. 본댁은 련거퍼 일곱이나 무던히 줄딸을 놓고서야 미안했던지 얌전하게스리 아들 셋을 나아줬는데 그 망냉이가 바루 래일 장갈간대. 그런데 맹령감이 마지막에 맞아들인 애첩이라는게 이제 나이 설흔둘이라니 시집간 넷째딸하구 동갑이라나. 령감 그놈의 변자는 물개의 건지 원…기운을 써두 이만저만이 아니라니까.》    《하하하…근력이 대단한데!》     큰 마을이건만 생각과 다르게 분주하지 않았다.     그들을 딴눈으로 보는 사람도 없었다.      두사람은 마음놓았다.     맹지주집의 종이 선통해서 주인은 곧 달려나와 산채에서 온 손님들을 공손히 맞아들였다.    《여러분 미안하게됐습니다. 따로 모실분들이 있어서 자리를 같이못하게 됨을 량해하시우.》     주인의 말에 이미와있던 좌중은 눈치채고 얼른피했다.    왕견은 잊지 않고 뜨락을 한바퀴돌아봤다.     민호는 맹지주와 수인사를 하고나서 갖고 온 홍비단과 금괴를 싼 례물꾸레미를 내놓았다.    《위두령께서 몸소오실 형편이 못돼서 저를 보냈습니다. 약소하나마 허물말고 받아주신다면 고마우리라하십디다.》    《감사하우다! 감사하우다! 산채에 돌아가거든 이 맹사덕이가 나으리의 높은 덕성에 감사드리더라구 전해주게. 그리구 우리야 지냄이 선대부터 한집안과 같으니 어려움이 있거들랑 서슴치말고 알리라하더라구 전해주게.》    《예! 그럽지요.》     민호는 어김없이 전해주리라 대답하고나서 눈길을 돌려 사위를 피끗살폈다.    《개가 없습니까?》    《내 집에는 없지. 온것두 다 믿을만한 사람들이네.》    《짓지 말아얄텐데.》     주인은 안심하라지만 잔치준비로 드나드는 사람이 있는지라 마음이 놓이지 않아 민호는 인츰돌아서려했다.     한데 주인이 극구만류하는것이였다.    《아니 먼길에 모처럼 와갖구서 어떻게 빈입으루야…수절도 들잖구돌아가면 내 속이 편안할가. 크게 차리진 않겠소만 두분은 편히 앉아서 한잔 제꺽하게.》        맹지주는 주안상을 얼른차려오라 지시했다.     죄지은 도적에게 어찌 안심이라는게 있으랴. 둘이 한창 먹고있을 때였다. 파수를 서고있던 맹지주집의 수위가 달려들어오며 구공서(區公所)의 련방대가 온다고 알려줬다.     둘은 얼른 자리차고일어났다. 그리곤 밖으로 달려나가 각기 자기 말을 제꺽풀어타고 북문으로 바람같이 빠져버렸다.     구공서의 련방대는 한발늦게 당도하다보니 그들이 장원을 뛸쳐나가는것도 미처 발견못했다.     들키우지 않았으니 맹지주한테 루도 미치지 않을것이다.          그런데 일은 공교로왔다. 민호와 왕견은 산채로 돌아오다가 어느 한 마을에서 뜻밖의 일을 목격하는통에 귀로를 지체하게됐다. 길옆의 어느 집에선가 구곡간장이 끊어질듯한 울음소리 터져나와 길을 재촉하고있는 그들의 신경을 잡아끌었던거다.     어찌 그냥 지나버리랴.    《가만! 그저일같잖아. 왕형은 여기서 기다리오, 내 얼씨덩 들어가보고 나올테니.》     민호가 말끝을 맺기바삐 말에서 뛰여내렸다.     집안에 들어가 보니 백발이 다 된 늙은 량주뿐이다.    《아니 왜 이럽니까? 댁에 무슨일이 생겼길래?》     령감이 나오는 울음을 삼키고 알려주었다.    《토비녀석들이 내 손자앨 업어갔수다. 백주에 이런 기막힌 일 어디있소, 글쎄.》    《그게 언제즘됩니까?》    《알기는 저녁켠일세. 해넘어갈 때였네. 어두워오두룩 애녀석이 들어오질않길래 찾으러 나갔더니 본 사람이 있어서 알려준거네.》     때는 이미 사위를 분간키 어려울정도로 어둠이 깃든 밤이였다.     《아니 그런데…애를 잡아가는걸 봤다는 사람이 왜 인츰알리지 않았답니까?》    《거야 말하면 죽인다구해서 그랬지.》    《그놈들이 어디루갔답니까?》    《내가 그걸 어떻게 알겠수.》    《아니 그것도 모르다니 원.》    《후―알면야 이러구있겠수. 저 그런데 임자는 대체 누구요?》     로인은 그제야 생면부지의 젊은이를 의아쩍게 여겨봤다.     불상한 로인들이였다. 화서즈가 오지 않은걸 보니 아이를 인질로 잡아간 토비녀석들이 그리 먼데로 간것같지는 않다. 인질로 잡아가면 화서즈는 일반적으로 3일을 넘기지 않고 그의 집에다 돈을 얼마가량 내라 그래야 잡아간 사람을 돌려주리라는 해엽자(海葉子―편지)를 보내는거다. 어디 놈들인지 가난한 백성집에 달려들어 이따위 행패질이니 너절한 떨거지들임이 틀림없다. 그건 그렇고, 갑을간 보고서 가만내쳐둘수는 없는일이였다. 내 그놈들을 찾아낼테다. 민호는 속으로 결심을 내리면서 로인을 향해 말했다.    《로인님, 절 나쁜사람이거니 생각마시오. 난 염왕산에서 왔습니다만 절대루 그런놈은 아닙니다.》    《젊은이가 그래 위삼포의 수하사람이란말인가!》     로인은 염왕산이란 소리에 눈빛이 되려 밝아졌다. 이건 이 지방에서는 위삼포손에 피해를 당하지 않았거니와 외려 보호를 받아왔음을 설명하는것이였다.     민호는 령감더러 너무상심말고 기다려보라해놓고나서 얼른 거기를 나왔다.     밖에서 초조히 기다리고있었던 왕견이 뭘하느라 그리 꾸물거렸느냐며 언잖아했다.     민호는 알려줬다.     《덜돼먹은 녀석들이 령감의 어린 손자애를 표로 잡아갔다우.》     《그런데는?》    《찾아줘야지.》    《뭐라? 가뜩이나 늦었는데 산채룬안가구?…이런다면 우린 규률위반이야.》      《규률은 무슨눔의 떡대갈같은 기률이야. 무고한 백성 화입는걸 빤히 보구서두 왕형은 그래 눈감을참이요?…염왕산의 법규가 뭔데?…살부제빈이라 했지. 구호만 버젓하구 행동은 그렇게 안하면 그게 대체뭐요?》     민호의 입에서 격한 질문이 련발튀여나왔다.     왕견은 그만 말문이 막혀버리고말았다.     그들은 다른사람한테서 여기에 왔던 도적떼가 마을을 떠나갈때 동으로 향하긴했어도 그건 눈속임수일게고 틀림없이 북산골에 갔으리라는 정보를 얻었다. 하여 그들은 곧추 그리로 향했다.          여기서 한 15리가량되는 북산골에 인가가 불과 50여호밖에 안되는 자그마한 마을이 하나있는데 거기에 과연 한떼의 비도들이 들어 있었다.     쪼각달빛에 총신이 번적거리면서 보초의 질분이 날려왔다.    《선마만?》    《염왕산이다! 분자를 거둬라, 이자식!》     대방은 왕견의 욕설에 겁이 질리는지 총을 내렸다.      이번에는 민호가 입을 열었다.    《리마인이야. 너희들은 누구냐?》    《우린 비룡패다.》    《뭐라, 비룡패라니? 어디서 날아온 똥개지냐.》     왕견의 욕지거리가 다시터졌다.     민호가 집요한 투로 말했다.    《너희들 당쟈더(주인)가 어데있냐? 거거아!(데려다날라) 내가 당장만나봐야겠다. 얼씨덩!》      보초는 이쪽이 염왕산패라니 감히 엇서지 못하고 곰상히 말을 들었다. 그자는 말을 타고 나타난 이쪽의 둘을 가까이에 있는 한 가옥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민호는 낮에 료략질하고 곤해서 잠에 골아떨어진 비룡패두목을 깨워서 일으켜놓고는 간단히 인사수작이 있은 후 단도직입적으로 캐물었다.     《당신이 낮에 앞마을 장령감네 손자를 가져왔소?》     《그랬소. 그런데는 어쨌단말이요.》     《어쨌다는게 뭐요. 당장내놓소.》     《이건…》     《당장내놓으란말이야.》     《이건…》     《당신들은 대체 어디와서 이모양들이요.》     《하룻강아지 범무서운줄모른다더니 여기가 어딘데 너희들이 감히 날치는거냐?…》      왕견이도 뒷따라서 눈알을 지릅뜨며 한마디뱉었다.      비룡패두목은 이켠에서 배때벗게 울러메니 가슴이 얼어드는지 그만 주눅들고말았다.     《나두 입에 풀칠을 하자니 이 먼데루 온거요.》     《뭐라? 풀칠하든 똥칠하든 제곳에서나 할거지 여기룬 왜 게바라들어?》     《왕형은 좀…》     민호가 왕견의 무작정 터지려는 욕설을 막아놓고는 추호의 양보없이 협박해나섰다.    《잡담제하구, 어쩔텐가. 표를 내놓을텐가 안내놓을텐가?》     류자무리들간의 범계는 대방에 대한 멸시고 도전이 아닌가. 염왕산의 점령지역에 몰래기여들었던 비룡패는 방정맞게 염왕산류자를 만나고 보니 감히 맛설수도없는지라 울며 겨자먹듯이 인질을 내놓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나서도 타격과 징벌이 무서워 그밤으로 거기를 떠나버렸다. 큰고기가 작은 고기를 잡아먹고 작은 고기가 새우를 잡아먹는판인데 인원이 겨우 30여명밖에 안되는 무리를 끌고와서 제깟게 어쩐단말인가.     산채로 돌아온 민호는 늦게돌아왔다해서 말을 듣지 않았거니와 도리여 일이 잘되였다. 인과응보(因果應報)이라 마음좋게 쓴데야 해가될리있으랴. 며칠이 안돼서 항간에서는 염왕산이 또 한차례 남의 화를 건져줬다는 칭송이 나돌았고 이로인하여 위삼포의 인금도 올라가게 되였다.     마음이 흐믓해난 위삼포는 사량팔주가 다 모인데서 민호를 유공자라면서 내놓고 칭찬했다.    《내 이 위삼포가 옛날 정훈이 시험관질 할 때 안표를 알아보지 못한 것 처럼 민호를 알아보지 못할번했네. 그가 이번걸음에 산채에 위망을 올려주고 국이 더욱 밝아지게했으니 기쁜일아닌가.》      반둬더가 뒷이어 말결을 달았다.    《소는 길마를 지워보면 알수있고 말은 안장을 지워보면 알수있다잖는가. 사람은 일을 시켜봐야 이렇게 알수있는거네. 민호는 과시 우리 염왕산의 호한답소! 그러니 내 생각에는 상을 크게 내려줌이 마땅할 것 같소.》     이번에는 혼자서 위태로움을 무릅쓰고 쟁반밟으러(주) 나갔다가 항간에서 떠도는 그런 칭송을 알아온 차챈즈가 한마디 했다.    《요번걸음이 쟁반밟는것도 아니였건만두 민호동생은 시종 경각성을 늦추지 않아 눈섶에 떨어지는 화를 용케 면한게 아니겠소. 나는 우선 그것이 대단히 잘된 행동이라구 보오. 그리구 표로 잡혀간 장령감네 손자를 찾아준일도 그렇지…응변과 과단성을 사람마다가 다 소지하고있는거야 아니지. 지기와 담략없이는 그렇게 못하는겁니다. 안그런가요? 여러 형님들!》     모두들 그렇구말구 하면서 염왕산 류자모두에게 용감성과 책임성을 키우기위해서도 민호에게 상을 크게 주고 칭찬해서 본보기로 내세우는게 좋을것이라했다. 이틑날 표창대회가 열렸다. 위삼포는 수하새자는 모두 들으라면서 민호의 공적을 한바탕 라렬하곤 그한테 상금 50원을 주었다. 그리고는 모두들 보았는가 산채의 국이 밝아지게 행동하는 자에 한해서는 장차도 어김없이 후더운 장려가 있을것이라 덧붙였다.  민호는 자기가 받은 장려금에서 절반갈라내여 그것을 왕견에게 주었다. 왕견은 올 때 그릇된 주장을 내놓은것으로해서 아무런 공도 없는 사람이 되고말았다. 그는 산채에 돌아와갖고 위삼포한테 너의 머리는 그렇게 메주덩이냐고 조소어린 힐난을 들었거니와 자칫하면 처벌까지 받을번했다. 원래는 묵과해버렸어야했을건데 민호가 그 일을 곧이곧대로 회보한바람에 위삼포는 물론 다른 두령들까지 이마살을 찌프리게 만들었던거다. 내가 미런한 짓을 했지. 글세 새퉁바라지같이 입정을 놀려 평시에 무난스레 지내온 사람과 나 자신을 스스로 척지게 하고 대립되게 만들어놓을건뭔가. 50원 돈이 어디 적은가. 이 많은 돈을 내 혼자가지면 왕견은 감정이 어떻겠는가. 참새같이 역어빠진 자식 하기는 잘한다고 할 것이다. 만을보같이 심술궂은 그가 그래 아무때건 기회를 보아 앙갚음을 하지 않겠는가…생각할수록 후회되는일인지라 배신감과 죄책감이 심절히 느껴져서 민호는 그한테 꼭 사과하고 자신의 실수를 미봉해야겠다고 맘먹었던것이다. 후환을 없애기 위해서는.    《아니 이거, 동생이 받은 상금인데 나를 줘. 솔직히 말해 난 욕볼놈이야…부끄러워 못받겠어.》     이러면서 왕견은 제법 체면을 차리려했다.     민호는 그래도 굳이 내밀었다.    《왕형이 반대는했어두 결국은 엇갈리지 않구 나하고 배합이 된게 아니요. 그러니까 두말 말고 받소. 솔직히 말해 왕형이 무술높다니까 나도 속이 든든하구 용기났던거요. 안그러믄야…그러니까 실은 공이야 둘이서 같이세운게지 뭐요. 안그러우?…이제 그런 기회 또 있다면 난 그때두 왕형하고 같이갈테요. 왕형은?…자 그러니 내 맘 알고 이 돈 받소! 받으라니까!》    《허허 이거…》     속에서 한창 주먹같은 불만이 올리밀고있던 왕견은 입이 함박만해갖고 못이기는척했다.     이런때 다른 하나의 탐욕이 끓는 눈이 민호의 거동을 은근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것은 반장 위진의 눈이였다. 자식이 네가 상을 탓어, 어디 두고보자. 역을 들어 널 무난하게 만들구 받아주기까지 한 이 형님한테는 어떻게 하는가구 하고 그의 눈은 벼르고 있었다. 하건만 민호는 그가 넘겨다 볼 주제못되는 남의 상금에 그토록 감질을 내리라고는 미처생각못했다. 그리 광채롭지 못한 눈빛이 번득이는걸 보고 그저 오 너도 부러워 샘이 나겠지 했을뿐이다.          은초사같이 얇은 구름이 비꼈다가 걷히고 동그란 해가 얼굴을 활짝드러내면서 웃어주는 따스한 봄철의 어느날. 류자들은 우리에 내내 같혀있은 닭모양으로 모두 밖에 나와 볕쪼임을 하고 있었다.    《젠장! 다 내놓는다. 누가 나하구 주먹비겨볼테냐. 이기기만 하면 이 돈을 다 주겠다. 그러니까 자, 자, 나오라! 자신있는 놈은 어디 나와 덤벼들란말이다!》    왕견이 어디가서 술을 퍼마셨는지 낯이 익어가는 고추같이 지지벌개갖고 오더니만 기분이 자못 도도해서 민호가 준 돈을 몽땅 땅에다 둘러메치며 탕탕 큰소리쳤다.    모두들 벅작고와댔다.   《그깟재간갖구 너무시뚝해말라.》   《저치가 왜 저래.》   《또 본병도졌나봐.》   《망신톡톡히 줘야 알가부다. 팽덕이 너 나가라.》   《이번엔 지지말구 한 번 본때를 뵈여라.》    아무리 장수라도 힘이 무진장한건 아니니 이쪽은 주먹치기술이 쑬쑬한 장구머리부터 내밀어 안하무인으로 으시대는 그를 우선 땀빼게 만들어놓고 보자는 속셈들이였다. 한데 팽덕이가 자기같은건 덤벼봤자 헛짓임이 빤한지라 도리머리저었다.    《난 간밤에 쏘개만나서…》     그 소리에 왕견은 입을 벌릴대로 다 벌려 웃으면서 놀려줬다.    《으 하하하!…그렇겠지. 너야 워낙 똥물이나 쌀 녀석인데 감히  또 이 어른께 덤벼. 으 하하하!…》     방금 쏘개를 만났노라 핑게대던 팽덕이는 그만 약이 올랐다.    《야 너 정말 그럴내기야.》     그는 왕견이가 독장치면서 오만스레 노는 꼴을 그냥 참고 볼수없어 나서고말았다.    왕견은 방울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야 이 햇병아리같이 철없는 놈아, 네가 그래 그예 덤벼볼참이냐. 한 번 망신했으면 그걸 부끄러워하고 곱다랗게 있을게지.》    《시뚝해말어. 오늘은 너의 목대를 내가 분질러놓고말겠다.》     골이 난 팽덕이는 옆에서 모두 그런 소리듣고 가만있는가 하면서 추기고 부채질하는지라 물러날 념을 하지 않고 씽 달려들었다. 그러나 주먹질 한 번 했을 뿐 우악살스런 왕견의 발길에 채워 저쯤나가 언 말똥같이 동그라졌다. 웃음이 터졌다.     다른자가 나갔건만 역시 그모양이다.     하나, 둘, 셋, 넷…웬 영문인지 나가는치마다 다 그꼴로 지고만다. 그러니 왕견이야 더 시뚝해 할 수밖에. 마당에는 웃동을 벗어재낀 그의 웃음소리뿐이였다. 거의 허벅다리만큼이나 실팍한 량 견대팔에다 매발톱을 커다랗게 먹침한 왕견은 울라초방망이 같은 주먹으로 털이 부시시 난 제 가슴을 탕탕 두들겨대면서 이만하면 그래 어떠냐 소림의 무술은 내가 정통하나답지 않다고 나발불기까지 했다.  온 산채에 아무렴 그래 저치 하나를 당할자가 그리두없단말인가. 기껏해야 패나 아니면 련에서나 외딴을 치겠지. 민호는 맥이 빠지고 숨이 차서 씨근거리면서도 싸움에 이긴 장닭모양으로 머리들고 힘을 다시빼무는 그를 향해 부러 눈을 꼬며 경고했다.    《어이, 왕형! 너무 시뚝해마우. 다른사람은 뭐 허깨비가 돼서 못겨루는줄 아는가. 그런게 아니라니까.》    《챠, 이거! 좋아, 그럼 네가 어디 한 번 나와 덤벼봐. 자, 어서나와보란데.》      《지금은 그러고십잖소. 내가 참아주지.》    《뭐라? 참아준다구? 네가? 하하하…》    《제길할! 웃긴 왜 웃소.》    《네가 그래 자신은 있는데?…그따위소리하는걸 보면 네가 아마 제대로 염근 녹두알쯤은 되겠구나. 하하하…》    《녹두알이라니? 콩알은 아니구 녹두알?》    《어, 어, 그래! 그래! 넌 콩알이야, 콩알. 땅땅 염근 북만주의 노랑콩알이야!》       류자들은 모두 하하 웃었다.     사람이 여믄걸 콩알이라는데 내가 정말루 그럴가?…민호는 여기에 온지 얼마안되여서부터 염왕산은 상무(尙武)의 기풍이 짙음을 보아냈다. 하지만 참대속에 든 뱀의 길이를 알수없듯 민호는 형님이라 불러줘야 하는 류자건 자기를 형님으로 받들어주는 새자건 각자의 무술재간이 어느만큼인건 알지 못하고 있었다. 보아하니 류자 개개가 특기 한두가지씩은 다 갖고있는것만은 사실이였다. 나도 무술을 알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다시금 불붙듯 일었다. 서로간의 믿음과 사랑이 인간의 도의(道義)건만 너무 어리무던하면 약자로 여기고 머저리로 치부하는 세상이였다. 여기서 남한테 멸시받지 않고 지내려면 주먹이 드세야 하는거고 주먹이 드세야 우이를 잡고 사는거야. 내가 어떻게 하면 저자를 내 손아귀에 넣어볼가. 민호는 속으로 이런 생각만 굴리였다.           염왕산에 신록이 점점 짙어가고 있었다. 푸르른 하늘에 목화송이같은 구름이 날려간다. 하건만 산채는 높은 산으로 둘러막혀 바람한점 스며드는 것 같지 않았다. 여기에는 인간사회의 문명역시 바람처럼 들어오지 못하는게 아닐가. 자연으로부터 받게 되는 이러한 심리적인 감응이랄가 생신한 멋이라곤 찾아보기어려운 여기서 더운습기로 암담해진 텁직한 하루하루가 지겹게 반복되여가고있는것만같았다. 아직은 류자생활에 깊이 젖어들지 못해서인지 민호는 떨어버릴 수 없는 죄의식과 더불어 따분하고 무의미한 기분에서 해탈하기 어려웠다. 아아 내가 언제면 원쑤를 갚고 여기를 뛸쳐나갈가. 어떤때는 속에 진 응어리가 풀리지 않은데다 갑갑해서 발버둥이질과 발광이 나갈지경이였다.      하지만 실상은 그의 그러한 감수와는 달리 여기서는 오로지 류자들만이 즐길 수 있는 특유의 자유로운 생활이 활기에 넘쳐서  산채가 들뜷고 있었다.      꼭 봐야 할 진사해가 오래도록 눈에 보이지 않았다. 외출한 것이 아직 돌아오지 않는지 아니면 어느 구석에 들어박혀 나오지를 않는지?…웬 영문인지 산채에는 아편심는 철을 지내고는 그어떤 집단적인 행사가 없었다. 모임이라도 있었으면 혹 볼수있으련만 그것마저없다. 상면을 재촉하는 기다림이 그를 더더욱 갑갑하게 만들었다. 한데 보면 어쩔텐가. 민호는 우선 비여있는 탄창에다 탄알부터 넣고봐야하는게 아닌가. 그러자면.... 유감스럽게도 반의 새자들한테는 한알도 구할 수가 없었다. 골트를 갖고있는 사람은 그 하나뿐이였으니까. 하여 그는 향란이를 다시생각하게 되였다. 언젠가 자기한테 탄알이 얼마든있다하지 않았는가.     향란이 역시 골트가 있었다. 민호는 언젠가 그녀가 자기의 골트를 욕심내는줄로 알고 바꾸어주려고까지 했는데 알고보니 그런게 아니였다. 그녀의건 그저 민호것보다 좀 낡아보일 뿐 다른 흠은 없는것이였다. 향란이는 그것이 선대의 유물이라면서 보배같이 귀히 여기고 있었다.     여기가 자유롭기는해도 제한이 있었다. 심규(深閨)는 사나이가 함부로 출입하기 어려운 곳이 아닌가. 어떻게 하면 위나으리의 딸님을 내가 자유로이 만날수있을가?… 뾰족한 방법이 제꺽나지지 않았다. 그래 머리골을 쓴다는게 혹시 그녀가 밖으로 나올수도 있지않는가 하는 그 생각이였다. 민호는 막연하기도했지만 우연스러운 만남이라도 기대하는 수밖에 없어서 중앙산채를 향해 주적주적 발걸음을 놓았다.     근처에 이르니 악기소리들려왔다. 처음들어보는거다. 저건 대체 무슨 악기일가. 퉁소소리도 피리소리도 아니였다. 분명히 구현금소리같은데 맑고 은은한 그것이 바로 창문이 활짝 열려있는 향란의 거실에서 울려나오고 있었다. 듣자니 저 계집은 말타기와 쌍수도(雙手刀) 다루기와 철채찍재간부리길 좋와한다는데 거기다 음악도 좋와하는모양이다. 민호는 웬 일인지 츄얼이 부는 쿵캉지소리를 처음들었을 때의 기분처럼 가슴이 설레면서 눈앞에 쿵캉지를 불던 잃어진 안해의 사랑스러운 몰골이 다시금 삼삼히 떠올랐다.     아아, 내 츄얼아! 너는 어디로 갔느냐?…    《여봐요! 왜 거게 서있나요?》     멍청한 인간이지. 얼마나 오래서있었으면 이렇게… 녀인의 챙챙한 목소리가 귀전에 날려와 고개를 번쩍들어 보니 향란이가 창문의 커텐을 걷고 이쪽을 내다보고 있었다.     거북했다. 민호는 꼭마치 일을 저질러놓고 들킨 아이모양으로  일시 어리둥절해하다가 서둘러 대구했다.    《저 별일아니요. 내가 아가씰 좀 만날일이 있어서.》    《그래요. 그럼 들어와요.》     향란이는 말했건만 사나이가 못박힌 듯 그 자리에서 그냥 미동이니 들어오란 말을 다시하지 않고 자기가 밖으로 나왔다.    《무슨 일있는가요?》    《다른일아닙니다. 향란아가씨한테서 권총알을 좀…》    《그런가요. 그렇다면야 얼른말할게지. 골트탄알말이죠. 줄수있어요. 내가 언젠가 말하지 않던가요 내한텐 그게 많이있다구요.》     향란이는 그 자리로 돌아들어가더니 얼마안있어 반들거리는 자그마한 나무함을 두손에 받쳐들고나왔다. 묵직해보였다.    《백발이얘요. 이거면 되겠나요?》    《그리많이!》    《다 쏘고 떨어지거들랑 또 알려요. 그거야 공급해드릴수있으니까요.》    《감사합니다, 아가씨!》     민호는 기뻤다. 향란이가 제것을 아까와함이 없이 이렇게 선선히 내놓을줄이야!      한반류자들은 민호가 깜찍한 나무함을 손에 들고 오는것을 발견하자 그건 또 뭐야, 그 속에는 무슨 보배들었느냐며 욱 모여들어 다투어 빼앗다싶히 채다가 열어보았다.    《야! 이건…》     그안에 깜찍스런 권총탄알이 골똑한지라 모두 탄성을 올렸다.    《하여간 귀신같은 운이 붙은 사람이라니까!》     민호를 보고 벙어리권총차개라며 놀려주던 자들까지 혀를 내두르면 무척 부러워했다.          민호는 약담배밭에 있는 산채에도 갔다왔고 맹가강에도 갔다왔지만 여기를 드나드는 길이 대체 어떻던지는 지금도 어리벙벙한게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아직 길도 제대로 모르고있다니?…만약 내가 어느날 원쑤를 잡아치웠던들 이래갖고야 여기를 어떻게 벗어난단말인가. 지금같아서는 백분의 일도 자신없었다. 염왕산의 산길은 듣던바와같이 정말 미로였다!     어느날 민호가 자기와 제일가까운 새자인 하진국이보고 염왕산을 나가는 직통길은 없는가고 물어봤더니 대답이 명창이다. 왜 없겠는가 있지. 그런데 눈익도록 다녀보지 않으면야 있어도 없는것과 마찬가지지 하는 그거였다.    《들어오긴해두 쉬히 나가진 못할걸. 지름길은 나도 인제야 비로서 알게된거야.》     하진국은 이렇게 운을 떼여 다시말해놓고나서 눈을 감더니 소학생이 선생앞에서 숙제를 외듯 염왕산 산길을 형용한 시 한구절을 읊었다.                                       산앞에 산이요                           산옆에 산이라네.                           첩첩심산에 길은 아흔아홉갈래                           가고가서 구백팔십리                           그 산이 그 산일세.                           남산의 숫사슴                           북산의 암사슴부르는데                           암사슴은 찾아못가                           발구르며 울기만한다네.      《쳇, 거짓말! 아무렴 짐승조차 그투록 길을 모를가, 원!》    《내 말을 믿지 못하겠거든 어디 정형이 한 번 실험해보구려. 십리도 못가서 산귀신되고말거야.》     이건 꾸미는 말이 아니였다. 하진국은 자기가 여기에 온지 6년사이만도 괘주를 한지 얼마안되여 일을 치고는 형벌이 무서워 도망친 새자 하나와 인질 둘이 도망은 쳤지만 산을 벗어나지 못하고 다가 굶어죽거나 짐승밥이 되였노라고했다.     듣자니 그 어느 새자든 만약 여기가 싫어 묘동때나 다른 기회에 나갔다가 도망친다면 위삼포는 사람을 풀어 그가 천애지각에 가 있는다해도 색출해서 잡아죽인다고 한다. 정녕 그러하다면 지금 여기서 손을 써도 빠져나간다는건 천부당만부당한 일이였다. 이런 상황에서 민호는 부득불 장구지계를 세우는 수밖에 없었다.     민호의 백말은 내내 후근의 사양실에서 위씨일가족을 비롯한 여러 사량팔주 나으리들의 말속에 끼여 특급대우를 받고 있었다.     일은 관연 묘하게 되어갔다. 7월초의 어느 하루 민호는 자기 말을 보러 그 마사에 갔다가 돌아오면서 여직 한번도 보지 못했던 진사해를 우연히 만나게되였던 것이다.     진사해는 무슨 좋은일이 있는지 황보재와 같이 어깨를 겯고 왁작 떠들면서 중앙산채의 북켠에 있는 제3패의 산채에서 막 나오고있는중이였다. 큰 키에 너부죽한 얼굴, 칼상처로 생겨난 게뚜더기―그것은 꿈에서마저 잊혀지지 았던 몰골이였다.     민호는 제자리에 무루춤 서버렸다. 두 다리가 굳어져버린거다.     저쪽도 이켠을 보더니 무르춤 서버린다. 황보재가 이쪽을 향해 사위스럽게 눈을 씀벅해 알은체를 하고는 그의 귀에 대고 무어라 수근거렸다. 그러자 진사해는 수염이 꺼슬한 턱을 치켜들고 껄껄 웃으면서 씨버려댔다.    《개방구라해라. 제깟 꼬리방즈가 다 뭐길래…》     원쑤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이럴변이라구야! 여지껏 재워둔 복수가 억제활수 없는 분노로 격발하는지라 민호는 대방의 명줄을 당장 끊어버리려고 권총을 뽑았다.     저쪽도 행동이 굼뜨지 않았다.     두 총구는 엄엄히 서로 노리였다.     몹시놀랜건 황보재였다. 갑작스레 번져버린 험한 사태에 그는 어쨌으면좋을지 몰라 쩔쩔맸다. 마침이때였다. 제 병든 말을 보러왔던 위용강이 량태와 함께 사양실에서 나오다가 이 광경을 목격하고는 고함을 내질렀다.    《무슨짓들이야! 분자를 놔라, 당장!》     이쪽의 총구를 위용강이 막고 저쪽의 총구를 황보재가 막았다.      진사해가 먼저 권총을 집어넣으면서 껄걸 웃었다.     량태가 노하여 둘을 꾸짓었다.    《형제끼리 이게 무슨짓들이냐.》    《저게 다 나와 형제되는가, 피자(개)같은 놈!》     민호는 뽑아들었던 권총으로 하늘을 갈겼다.     위용강이도 백두옹 량태도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했다. 민호는 그걸 저 진사해하고 물어보라하고는 몸을 돌려 제 숙소가 있는 동남쪽 산채를 향해 쥉쥉 가버렸다.     왕견이 밖에 나왔다가 총소리난지 몇초안되여 나타난 민호의 상기된 얼굴을 보고 눈이 둥그래지더니 재우쳐 물었다.    《아니 무슨일이냐? 너 무슨일 저질렀니?》    《진사해 그놈이 날 욕했소.》    《뭐라? 그자식 뭐길래 남을 욕한다니.》     왕견은 단통 민호의 역을 들면서 진사해같은 패덕한은 아예 받지를 말았어야할건데 했다.     다른이들도 그러했다. 이 한반의 무리는 돌같이 굳어졌다는 증거였다. 까마귀도 제와 더 가까운 놈을 안다고 하지 않는가. 한집안의 개 역성들 듯 한침실에서 같이 자고 같이 먹으면서 맘을 트고 지내는 사이니 누구라없이 우선 편부터 들어주고보는판이다.     그런데 반장인 위진이만은 반응이 없다. 저치가 왜 저래?…    《위반장! 내 좀…》     민호는 팔을 끄당겨 그를 조용한 곳으로 데리고 갔다.    《오늘보니까 그자는 정말 돼먹지못했습디다. 어쩜 나를 타민족이라구해서 그렇게 욕한단말입니까. 위반장보구서 라구 놀리면 그래 좋겠습니까? 날보구서 라니. 우리가 그래 언제 방치들구 행패질을 했단말입니까. 저런놈 언녕 방치로 대갈통깨놨어야할건데 내가 늦었어.》    《형제끼린데 그래서야 되나.》     자식의 입에서 또 이따위소리가 나오다니. 반장이면서 역성을 들지 않고.... 단통 드는 심한 배신감. 야속하다못해 민호는 격분하면서 증오가 부질부질 괴여오르는지라 참을 수 없어서 대들었다.    《아니 위반장, 뭐랍니까? 내가 접때도 일깨워줬는데 그래 위반장은 지금도 그를 형제랍니까? 내 원 참…인제보니 소귀에 경을 읽었구만.》    《이보게 민호동생! 너무 그렇게 옥은 생각은 말라구. 나도 생각을 많이해봤는데…》    《많이 생각해본게 그래 이 모양입니까?》    《모두들 그일 나쁘겐 평하질않더군. 내가 보게두 그래. 사람이 걸걸하구 호담하구…》    《그래서 이젠 원쑤간이 아니된다 그 말인가?》    《밤잔원쑤 없다잖아. 어쨌든 내하구야 척진일두 없는데.》          위진은 이러면서 전에 가졌던 감정을 변화된 감정에 희석시키면서 대답을 뭉때렸다.     립장이 이렇게 앵돌아지다니 원! 에잇, 썩어버린 똥개야. 네녀석 그사이 벌써 바람들었구나. 민호는 맹충이같은 그를 헛믿어 온 자기가 불민해서 스스로 민망스러웠났다.     열보다 쓰거운 실패였다.     같이 있는 류자들은 누구나 이 조선청년이 생김새와 같이 성미가 씨원씨원하고 너그러운줄로만알지 여지껏 가슴속에 지독한 복수를 품어온건 누구도 모른다. 오로지 위진만이 이 조선놈이 대체 어째서 속이 이럴가 연구하면서 경계하기 시작했다.     한편 진사해는 이 조선청년이 복수를 위해 사갈같이 독한 마음을 품고있는줄을 모르거니와 언녕부터 자기의 명줄을 끊어놓기위해 여기에 눌러앉은건 더구나 모르고 있었다. 그가 어찌알랴 이 민호가 바로 저 먼 북쪽 흑룡강가 어래무 허저마을서 살다가 제 허저인 안해를 잃어버린 그 신세불우한 조선독립군 청년임을.     민호는 위진이를 쟁취하지 못함으로 해서 가슴 어딘가 한구석을 갑작스레 도난당한것 같이 허전해나면서 분했다. 한들 방법있는가. 사람을 잘못보고 믿었던것이다.     내가 저 무럼생선같은 녀석을 어쩌면좋을가 생각하는데 왕견이 앞에 나타났다.    《동생은 무슨일에 그러나? 보아하니 낯색이 좋잖아.》 .............................................................................................................................   * 변자ㅡ좆  *쟁반을 밟다ㅡ기와가마 털기 위해서 정찰을 하다. * 기와가마ㅡ부호.     * 껍질ㅡ끄나블. 밀정. * 해엽자ㅡ인질에 관한 편지.  * 표ㅡ인질. * 홍표ㅡ녀인질.     * 거거아ㅡ나를 데려다달라.  * 동동자ㅡ양말.     장려금을 갈라준 일로 해서 무척 고마워 사이가 어느덧 썩 가까워진 그였다. 민호는 이 시각 그를 투계(鬪鷄)로 써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불쑥났다.    《왕형, 인제보니 저 위반장은 침벼락이나 맞고 뒤여질 허깨비였구만. 난 그런줄도 모르고 믿어줬지. 진사해는 안욕하구 되려 나만 나무린단말이요… 원 더러워서.》    《아니 위진이가 그런단말인가, 반장이라는게 어디서?》    《인제보니 믿을만한건 그래두 왕형밖에 없구만.》    《오, 그래? 네가 날 믿어줘? 하하하!…》     왕견은 민호가 자기와 사교(死交)를 맺자는 것 같은지라 대단히 반가와했다. 서로 형님 동생 하면서 먹어라 써라하지만도 그건 강조된 규률에 매여진 현상유지일 따름 사실말해 우락부락 고집이 세고 도척같은 그와는 여직 진심으로 속심을 터놓고 가까이 지내는 친구는 없었던 것이다.        
128    장편소설 <<관동의 밤>> 제1부(9) 댓글:  조회:2470  추천:0  2015-02-03
                               9                 민호는 포토우한테서 받은 장총을 손에 들고 이리보고 저리보았다. 길이가 베르단보다 짧고 머스킷이나 38식보다도 짧은데 총가목이며 총신은 오히려 크고 굵어 모양다리없었다. 항간에서 퉈퉁이라 부르는 구식총이였다. 그나마 새것이면 모르겠는데 이미 오래써먹어 낡은것이였다. 보아하니 여지껏 주인없어 오래도록 버려둔게 분명했다. 그건 반짝거려야 할 총신에 녹이 낀걸봐서 알 수 있었다. 민호는 격발기를 뽑아보았다. 격발기틀, 격발기머리, 탄피물리개도 그렇거니와 안전부, 안전턱 지어는 격침까지도 윤활하지 못하고 뻣뻣했다.    《젠장, 이놈의 건 기름근이나 먹어야겠구나.》     기분이 자연히 잡친 민호는 혼자소리로 중얼거리면서 창턱에 있는 기름병을 가져다 옆에 놓고 캉틀에 다시걸터앉았다.     할짓없어 심심하니 시시껄렁한 음담패설이나 늘여놓고있던 11명의 한반 새자들이 저 자식이 숙맥이 아니여 언제 총이나 만져봤을가 하는 눈매로 그의 일거일투족을 지켜보고 있었다.     남이야 그러건 말건 민호는 아예 감촉도 못하는 척 총을 이리저리 보고난 끝에 분해하려다말고 어느 한 새자에게서 칼을 빌려 우선 꼴사나운 가죽총띠부터 썩 떼여버렸다.    《에그, 그걸 어째서…그냥 두고 멜게지. 삼동이 귀신 매달라붙을가봐 그러는건가?》     성명이 왕은경이라고 하는 빨쥐같이 생긴 새자녀석이 까불대며 납닥치다가 그만 기름병을 차놓았는데 그것이 바당에 떨어지면서 총기름이 옆사람의 바지에 까지 튀여갔다.    《야, 이놈의 새끼야!》     민호는 벌떡 일어나면서 얼낌에 주먹으로 그자의 등을 한 대 우려주었다.    《하하하하…》     왕은경은 저쯤나가 곤두박질하고 다른 새자들은 온 집안이 들썽하게 일장의 폭소를 텃뜨렸다.     민호는 분해했던 부속품들을 닦고 기름을 쳐 원모양대로 조립해놓았다. 왕견이란 류자가 그러는것을 보고 눈이 둥그래지더니 커다란 입을 벌려가면서 남먼저 탄사를 발했다.    《저것봐, 저치가 외마는 아니구나!》    《아니야! 외마는 아니야! 영락없이 분자를 다루던치야!》     다른 새자들도 알았노라 고와댔다.     민호가 배속된 반은 중앙산채에서 동남방향에 놓여있는 산채에 벽을 사이두고 같은 패의 다른 두반과 함께 들어 있었다.     이틑날 오후다. 저쪽반의 새자 하나가 와서 민호보고 밖에서 위두령의 따님이 찾고있다고 알리였다. 뭐라? 그 계집은 왜 또 온거냐. 민호는 나가보았다.    《아가씨가 날 찾았습니까?》    《그래요. 찾았어요. 이젠 임자께 돌려야 할 물건있어어요.》     민호를 만나자 향란이가 먼저 입을 열면서 갖고 온 골트권총을 내놓았다.    《왜 이럽니까. 소용되면 가지시오. 나께두 총이 있으니까.》    《거기서 받은거야 퉈퉁아닌가요. 그깟 부지깽이같은 걸 하나만갖구야 어떻게 해요. 엣서요. 제걸 가져요. 난 욕심안나요.》     향란이는 권총을 돌려주고나서야 문득생각나는 것 처럼 한마디 사과의 말을 보탰다.    《참 내가 날쏘시개를 세개나 허락없이 날려버려 미안해요.》    《미안할게있습니까. 내가 외려 감사해야할건데. 안그렇습니까. 그게 세알 다 내 몸에 들어갔더면 어쩔번했습니까.》    《그 일 아직두 속에 넣구있나요, 사나이답지 못하게.》    《잊으랍니가. 그럼 잊지요. 잊고맙시다.》     민호는 제손에 되돌아온 골트를 들어 하늘에 대고 남은 탄알 세 발을 마저 다 쏴버렸다.    《자 이젠 싹 쏴버렸군요. 불쾌한 회억역시 날아난 탄알같이 싹 잊고맙시다. 어떻습니까. 그러는게 건강에도 썩 났겠지요, 아가씨!》    《그래야죠. 건데 그런다구 골트까지 던지진말아요. 내한테 탄알은 얼마든 있으니깐요.》     민호는 생각밖에 돈주고 산 제 권총을 되찾았다. 이제 더 찾아가져야 할 것은 말이였다. 물론 그것이 돈주고 산건 아니였지만. 한데 그 말을 돌려주겠는지 아니면 다른 말을 바꿔주겠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괘주를 해서 이젠 그도 류자가 됐으니 탈 말은 있어야할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그것을 돌려주지 않고 있었다. 말을 가질바엔 잘달리는 좋은 말이 차례져야한다. 만일의 경우 여기서 도망치더라도 말이 좋아야 붇잡히지 않을게 아닌가.     위진반장이 하는 얘기를 들으니 말도 이제 원 총임자의 것을 받으리란다. 그 말은 털빛이 얼룩얼룩한 워라말이였다. 게다가 그말의 임자는 지금 이 세상에 살아있지 않는거다. 누군데 어떻게 돼서 없느냐고 물으니 웬 일인지 위진은 알려주기를 싫어했다. 하여 민호는 더욱더 께림직했다. 그렇다해서 분배되는걸 싫다고 거절할 수도 없는거고. 민호는 원임자에게 돌리지 않을바에는 방정에서 타고 온 그 백말을 자기가 되갖고싶었다. 그 백말이 지금 어떻게 지내는지?… 민호는 한 번 보고싶기도 했다. 한데 그 말이 지금 어느 마사에 있는지조차 알수 없었다. 향란이는 알 것이다. 민호가 그녀를 찾아가 물어볼가하다가 생각을 고쳐먹고 반장인 위진이와 물어봤더니 위진이가 하는 말이 그 말은 아마 맏두령과 사량팔주의 말들이 들어있는 마사에 함께있을거라했다.      그들의 마사는 중앙산채의 서북쪽 커다란 귀틀집 별채에 있었다. 보통때는 일반적으로 말을 내다가 방목한다. 그러니까 지금 그 마사에 말이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나마 가보고싶어서 갔더니 마사안이 생각밖에 깨끗한데 말 몇필이 구유에 매여 있었다. 털빛이 검은 가라말이 4필, 절따말이 4필, 입부리가 하얀 거하말 1필, 별박이 1필에 털빛이 흰 부루말이 2필이였다. 민호는 자기를 온순하게 바라보는 그 두필의 부루말께로 다가갔다. 그런데 어느것이 자기가 타고 온 말인지 가려낼 재간이 없었다. 그 둘은 쌍둥이같이 키도 같고 생김새도 비슷했다. 사실 민호는 그때 똥줄빠지게 추격당하는 신세다보니 자기가 타고온 말이 백말이라는것만 기억났지 모양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사실 영 깜깜이였다.      민호는 전날 향란이가 탄 말을 내것이라 여기고 고깝게 보았는데 오늘 다시생각해보니 그것이 실수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낯이 붉어질 일이였다. 민호가 대체 어느것이 자기가 타고 온 말일가고 머리를 이리기웃 저리기웃 하고있는데 마침 늙수그레하게 생긴 류자가 썬 여믈을 삼태기에 담아갖고 들어왔다. 사양원이였다.     저켠에서 민호를 먼저발견하고 석쉼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임잔 제 말을 찾느라구 그러잖어?》    《그렇습니다. 건데 어느겐지....》    《이게아니우. 이거우다.》     그 류자는 부루말 두필중 하나를 가리키고나서 운을 달았다.    《말이 먹새좋구 든든하네. 척 봐두 그렇다는게 알리잖아.》       《그런가요. 건데 내 눈에는 쌍둥같아서…》    《아니 왜 쌍둥이같아. 다시 잘 봐. 임자거야 도총이아닌가.》       다시보니 그 말은 과연 약간 푸른빛갈을 띈 백마였다. 민호는 말의 털빛갈도 제대로 가려못볼지경 무식한 자신이 민망스러웠다.     《저 백마는 누구햅니까?》    《이거말이우. 이건 위아가씨해우다. 잘 보살펴달라구해서 내가 한구유에다 매놓구 먹이지요.》    《아, 그런가요.》     민호가 자기 말을 잘거둬줘서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나가려는데 향란의 오랍되는 위용강이 마사로 들어왔다. 위용강은 민호를 보자 그저 고개를 끄덕이여 알은체를 하고는 네필의 검정말 중 억대스레 생긴 놈 하나를 고삐풀어갖고 밖으로 나갔다.     불알이 흰 은총이였다.     민호는 그의 뒤를 따라 나갔다.     향란이가 어디론가 가다가 오빠를 발견하고 다가오며 물었다.    《오빠, 말은 왜서요?》    《내가 일면파에 갔다올려구그런다.》    《소아가씰 보려구요? 곁에서 그냥 애먹이지 않을까요?》    《그깟거 정 시끄럽게굴면…》    《조심해요. 되도록 완력으론 행세말자요.》    《갑을간…내 인차돌아오마.》    《장평을 데불구가요.》    《개두간다.》     두 오누이간에 주고받는 말에 귀가 자연히 솔깃해지는데 무슨일갖고 그들이 그러는지 알수없었다.    《여게와있는걸 난…》     향란이가 말타고 산채를 표연히 떠나는 제 오랍을 눈바램하고나서 민호를 향해 돌아서며 건늬는 말이였다.    《위도령은 어디로 출장가는모양이지.》    《아마 그러는거같아요.》     향란이는 대답을 회피하면서 화제를 돌렸다.    《말보러왔던모양이죠. 안장은 받았나요.》    《아직 차례진 말도 없는데 안장이 언제…》    《본래걸 그냥타요.》     향란이는 그 마사의 웃쪽에 있는 별고(別庫)에 들어가더니 손수 안장 하나를 골라갔고나와 민호에게 주면서 당부했다.    《잘 건사해요. 이건 삼촌이 남긴거얘요. 여기서는 제 물건 제가 건사해야해요. 망가지면 으레 제 손으로 고쳐야죠. 잃어져도 제가 책임져야하고요. 물론 안되면 새걸 하나 발급받긴해두.》     안장은 훌륭했다.          관동의 토비들은 일반적으로 자기가 웅거하는 소굴이 있음과 동시에 활동범위가 확정돼 있었다. 하길래 만약시 색다른 류자가 발을 들여놓아 를 한다면 그것은 도덕없는 침범행위, 즉 로 치부되고만다. 하길래 그런 범계자에 대해서는 추호의 양보도 없는 것이다.     염왕산중심에서 동남방향으로 약 50여리나가면 그들의 산채가 하나있다. 그것은 겨울이 오면 추위가 유별나게 혹독한 북만에서는 어디가나 흔히 볼 수 있는, 타래로 벽을 두텁게 만든 세칸짜리 커다란 흑집인데 약간 둔덕진데에 자리잡고 앉았다. 주위는 근 100여헥타르나 되는 약담배밭이다. 그 약담배밭은 물론 염왕산의 소유였다. 염왕산에서는 년년이 륜번으로 그것을 다루어왔다. 이 시기 꼭같은 면적에서 나는 소출을 값을 쳐 따져볼 때 약담배가 다른 농작물, 이를테면 강냉이의 6배, 콩의 8배, 벼의 2배였다. 하니까 거기서 나는 수입만도 가관이였다. 염왕산류자들은 략탈을 크게 하고있지만 한편 이같이 자기의 로동으로 얻은 수입을 갖고서도 년간분배와 비용을 적잖게 보충하고 있었다.     이것은 위삼포가 변화되여가는 국세를 감안하여 연구해낸 조치의 하나였다. 한편 또 위삼포는 계절농막과도 같은 이 산채를 평시에는 련락소로 원정때는 문전휴식장으로 리용하고 있었다.     민호는 괘주하여 류자로 된지 한달만에 자기 반을 따라 교대거리로 거기를 지키러 가게되였다. 알고보니 전에 밥을 날라다주고 를 부르던 새자역시 그와 한반이였는데 성명이 하진국(賀振國)이였다. 성품이 사납지 않고 온순한 편인 그는 자못 감상적인 젊은이였다. 하진국은 군대에 뽑혀갖고도 약혼녀와 떨어지기 싫어서 나가지 않았다가 말썽이 생겨 욕볼 것 같으니 도망쳐 류자무리에 가담한거라 한다.     여기서는 중이 법세(法歲)가 있듯이 류자는 류세(綹歲)가 있었다. 민호는 자기와 동갑인 그의 류세가 6살이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니 18살부터 토비노릇을 해온게 아닌가. 핍박에 못이겨 량산에 오른다고 염왕산류자중 적잖은 이가 수호지(水滸誌)의 인물들 처럼 부득이한 경우를 당해 이런짓을 하고들 있었다. 반장인 위진을 놓고봐도 진 빚 때문에 채주와 마찰이 생겼다가 그를 살해하고 도망쳐 여기로 온 것이다. 그런즉 염왕산은 실제상 그러루한 도주자들의 피신처이자 자유를 부리는 극락의 세상이기도했던거다.     3반의 류자들은 마차 두 대에 갈라앉아가고 있었다. 뒷마차의 뒷켠에 앉은 민호는 자기와 나란히 앉아가는 하진국이가 하는 얘기를 잠자코들어주었다.     《산이 깊어야 범이 있구 덤불이 커야 도까비가 난다잖소. 우리네 염왕산은 국이 크니까 든든해서 한생을 류자로 살기는 들고났소. 배는 다리의 통로에 이르면 자연히 똑바로서게되잖소. 궁하면 살길이 나지는 법이요. 민호형도 맘놓고 여게 안신하길바라오.》      하진국은 제가 어미의 배속에서 한달늦게 나왔길래 그만큼 볕을 늦게봤노라고, 그래서 자기를 동생으로 자인하면서 민호와 교제를 트고 지내려했다. 여기는 등급제도가 엄격하면서도 서로지간에 이같이 형님동생으로 부르니까 개개인의 속마음이야 어떻던간에 겉모양을 봐서는 꼭마치 한 조상의 자손으로 단단히 묶어진 하나의 허틀어지기 어려운 화목한 대가정같았다. 두령이 애초부터 그렇게 만드느라 애써왔거니와 그에게 몸을 의탁하면서 지배를 달갑게 받고있는 새자 모두가 실행으로 그의 뜻을 받들어가고 있었다.     《고맙다. 나도 여길 나갈 사람아니야. 너처럼 그냥있으련다.》      미호는 거짓말을 해야했다.      하진국은 귀가 너르게 그의 말을 곧이들으면서 향란이가 하던것 처럼 류자들지간에 쓰는 은어를 배워주었다.     《우린말이요. 동항끼리는 조만해서 서로건드리지 않소. 외지에서 나돌 때 규칙을 장악하고 말할줄을 알면 하고 서로가 대방을 괴롭히지 않소. 이 뭔가말이지. 그건 이 일을 알고있는 유능한 사람이라는거요. 이런 말이 있소. 고 말이요. 그렇지만 왕왕 대방을 잘못본데서 청자를 빼들어 서로 피를 흘리게되는 때가 있는거요. 그러니 남을 서뿔리건드리지 말아야 하오. 밤중에 길가다가 서로 만났다하기오. 그런때에 대방이 물으면 림기응변을 할줄알아야하오. 물으면 하구 대답해야하구 하면 하고 대답해야하는거요. 이렇게 응변이 맞아떨어지면 서로 같은 신세임을 알게되는거요. 그러지 않았다가는 대방이 먼저 손을 쓰게 되는데 좀만 어물거렸다간 끝장나고마는거요. 이 사회에 가끔 살인자가 누군지두 모를 무고한 시해가 나지군하는게 왜겠소. 바로 그래서이지.》     《아무것두 모르는 백성인것두?》     《누가 그걸 생각한답데. 그러게 이놈의 세상을 살아가자면 조심해야하는거요. 상대가 누군지두모르구 우쭐렁거리다가는…산채를 떠나 외지에 나다니노라면 벌목장아니면 삼장이나 양봉장같은 것을 만나 부득불 거기의 신세를 져야 할 때가 종종 있는거요. 상대가 누구란걸 눈치챈 사람이면 거개가 대해줌이 좋소. 잘해먹이구 잘재우구. 어떤데서는 지어 떠나올때면 소금이나 기름아니면 담배같은걸 줘서 보내기도하는거요. 그립겠다면서.》     《거야 뒷일이 무서워 눌러놓는 노릇이겠지. 안그런가?》     《물론그렇지. 까놓고말해 화를 입을가봐그러는게지. 헌데 지내보면 참 미런한 좀팽이들두 더러있소. 재작년여름이였소. 나하구 왕견이가 한 번은 나돌다 약담배밭을 지키는 오두막을 만났더랬소. 해가 다 지지 저녁때라 배도 고프지 그래 들려서 신세 좀 지려니까 령감쟁이가 어쩌는지 아오. 자기도 굶어산다면서 물먹는 것 까지 아까와 보들보들 떨더란말이요. 어찌두 괘씸하던지…돌아오자 우린 반의 형제들을 몽땅 동원시켜 회초리로…참 재미있었지.》     《회초리로 담배꼬투리를 꺾어놨다는말이지.》     《그렇지. 말끔히 소멸해치웠던거요.》     《고약한 짓들을 했구나.》     《쳇, 그 령감 쌍통이지. 우린 참외밭도 그렇게 결단낸적있소…방정에 갔을적이지…거기 채 못가서 참외밭이 하나 있더구만. 그때는 사람이 셋이 됐는데 날이 덥고 컬컬한지라 몇 개 좀 먹게 달라구 개평을 불렀지 뭐요. 건데 참외막지키는 임자녀석이 어찌두 린색하게 노는지…그래 돌아올 때 갈퀴를 세 개 사갖구 그걸루서 써레를 놓고말았소. 염왕산의 본때를 보여주느라고.》     하면서 하진국은 저들이 의례할일을 한양 자랑을 뽑았다.    《심술궂은 만을보라더니 네가?.... 걷보긴 얌전하게 생긴 사람이 그따위 고약한 짓을 하구다니다니 원.》     민호는 한심하다고 웃었다.     하진국이 코를 씨물거렸다.    《왜 난 그만한 짓두 못할사람인가. 도적놈의 배에 올랐거든 너도 도적놈되라했어. 여기가 뭐 량반의 휴양손가.》     민호는 입을 다물고말았다. 그렇다, 주(朱)를 가까이 하면 빨개지고 먹을 가까이 하면 검어진다잖는가. 오가잡놈이 모여든 이 도적굴에 무슨 정인군자가 있으랴.     할 일이 없었다. 약담배거간군이 오면 눈을 싸매여 산채로 들여보내는 일 외에는 다른일이라곤 없었다. 그래서 이곳에 온 류자들은 륜번으로 보초를 서는 외에는 산채에 있을때와 다름없이 매일 주사위를 놀거나 술을 먹지 않으면 시시껄렁한 잡담으로 무료한 나날을 보냈다.    《오목암캐 뽈록수캐 배꼽맞추네.》    《좋다고 들어붙어 요동을 치네.》    《암캐는 배가 나서 물독같은데》    《렴치없는 수캐 지랄이 났네.》    《자갈밭에 요란하게 끌리는 소리》    《빼여든 오리변자 두자두치라네.》     때로는 이따위 자작 파스(笑劇)를 놀아 끓어오르는 음욕을 달래기도했다.     까치가 까마귀무리에 섞여도 까마귀 아니고 까치지만 어찌 까마귀를 영 닮지 않으리라고 장담하랴. 위화감이 사라질 때면 그도 푸른잎이 단풍으로 변하듯 어느덧 동화되고말 것이다. 민호는 새자들이 그같이 저급적이고도 무의미한 생활에 젖어 있는 꼴을 볼때면 여기에 그냥 있다간는 나도 아무때건 저모양이 되고말겠구나 하는 생각이 가슴을 파고들어 괴로웠다. 오리가 똥보고 지절댄다고 수탉이 그모양으로 지절댈까 어우렁더우렁 지낼수는 있어도 저모양으로 섭쓸리진 않을테다 하고 민호는 속다짐했다.     한들 뒷일을 어떻게 장담하랴.     어느날 정오무렵. 민호가 순번이 돌아와 보초를 서고있는데 몇보 안되는 앞길로 마차 세대가 지나게 되였다. 앞마차에 앉은 차몰이군이 차를 세우더니 손을 저어 뒤에 따르는 다른 차들도 자기처럼 서게했다.     민호는 그들이 어쩌는가 보았다.     앞차의 마부나 중간차의 마부나 뒷차의 마부나 다가 앞말의 배띠를 풀어놓고는 두손을 말잔등에 올려나 뵈였다. 그리고는 머리에 쓴 모자를 벗어서 수레채에 걸어놓더니 채찍을 쥐여 왼쪽 수레채에서 들어오른쪽 수레채로 내리치는것이였다. 그런후 셋이 다 두손모아 류자식의 인사를 했다.    《별식을 다 피우지, 저것들은 토비와 접촉이 많았겠구나!》     민호는 중얼거리며 다가가 차우에 무기가 있나없나를 검사하곤 그들을 통과시켰다.     염왕산류자에게는 10계률이 있었으니 그것인즉 일반백성의 우마차는 물론 신랑각시가 타고 가는 꽃마차를 건드리지 않고 상가의 령구를 건드리지 않고 우편차를 건드리지 않으며 나룻배를 건드리지 않고 보짐의사를 건드리지 않고 거지와 도박군의 돈을 빼앗지 않으며 도부장사의 짐을 털지 않고 대차점을 털지 않으며 승려, 도인, 불가의 것을 빼앗지 않고 과부집과 홀몸으로 밤길걷는 사람을 털지 않는 것이다. 강도에게 이런 자비가 있다니 일반사람으로서는 과연 리해안될일이였다.           언젠가 향란이가 민호보고 돌아가는게 빠르다고 하더니 요즘은 하진국이가 그보고 혼이 붙었다고 한다. 다른사람이 무엇을 말하면 빨리알아챈다는 말이였다. 이들 내의 일을 많이알아야했던 민호는 판무식을 면한 그를 한 번 조용히 만나볼 필요성을 느꼈다.     그러던 차 마침 좋은 기회가 생겼다. 어느날 그가 민호보고 족제비잡이를 해봤는가 물으면서 함께 잡으러가자고했던거다.      족제비를 황서랑(黃鼠狼), 황피자(黃皮子), 황신자(黃信自) 혹은 유서(鼬鼠), 황유(黃鼬)라고도 부른다. 이름은 이같이 많건만 제 굴은 만들지 않고 낮에는 쥐구멍이나 다람쥐굴아니면 나무구멍에 들어가 자다가 밤이 되면 나와서 활동하길 좋아하는 고놈의 앙증한 물건은 개가 아니고는 잡기 쉽지 않은 짐승이다. 더구나 아직은 눈도 내리지 않아 발짝도 남기지 않으니 잡기 더 어려웠다. 민호가 족제비잡이를 적게 했던가. 해도 자기는 짐승잡이라곤 평생해보지 못한 사람이라 속이면서 흔연히 따라나섰다.      둘은 받고랑을 하나하나 건너다보니 어느덧 산기슭에 가 다았다. 모체를 떠난 나뭇잎들은 솜이불마냥 대지를 포근히 덮었건만 발가벗은 앙상한 나무들은 바람에 떨면서 가냘픈 울음소리를 내고있었다. 민호는 산기슭에 묘 세 개 있는것을 발견하고 그리로 갔다.      셋중 하나가 생긴지 오래지 않은것이였다.    《이건 웬 무덤이냐?》    《나도 이름은 모르겠소만 거기 잠자는건 방정사람이요.》    《방정사람이 왜 여기와 묻혔냐?》    《산삼캐러 와서 안으로 들어갔다가…》    《아, 그 사람의 무덤이냐!》     민호는 방정려관에서 들은 얘기가 대뜸생각났다. 범계를 해서 목숨잃었다던 운수사나운 심마니가 여기서 잠자고있을줄이야어찌알았으랴. 민호는 가까이에 있는 다른 하나의 묘를 가리켰다.    《이건 누구의 무덤이냐?》    《그거말이요? 우리 형제의 무덤이요. 갠 작년에 잠들었소.》    《왜서? 여기와 앓기라도했던가?》    《아니요. 제 사람의 날쏘시개를 먹구서.》    《뭐라, 총살인가? 어쩌누라 제 형제끼리는?》    《그걸 말하자면 참…》    《참 어떻다는거냐?》    《값없구 망신스러운거요.》     민호가 집요하게 캐묻자 하진국은 한 류자의 죽음에 대해서 상세히 알려주었다.     재작년 이때다. 한패의 류자가 림구(林口)에 갔다오다가 어느 한 자그마한 마을에 들려 하루밤을 지내였는데 이틑날 아침때 로파 하나가 찾아와 간밤에 제 딸이 겁탈을 당했노라 울면서 공소했다. 그때의 인솔자는 위용강이였다.     위용강은 즉각 신호를 올려 흩어진 류자들을 집결시켰다.    《간밤에 부덕의한 짓을 한게 누군가, 냉큼 여기루 나왓!》     나오는 이가 없었다.     위용강은 그럼 좋다하고는 그 로파더러 범행자를 찾아내라했다. 로파는 한 사람 한 사람 얼굴을 훝더니 마침내 수염이 더부룩한  40대의 사나이를 짚었다. 헌데 그 사람은 다른 누구가 아니라 바로 그의 삼촌 위삼동(魏三東)이였다.     염왕산 류자내에서는 기와가마를 점령했을 때를 내놓고는 다른 어떠한 장소에서든 녀자를 희롱하거나 간음하는 것을 엄금했는바 그러는 자는 세차즈(邪叉子), 즉 말성을 일으키는 꼬챙이라면서 가만놔두지 않았다. 헌데 이번의 규률위반자는 다른사람이 아니라 자기의 삼촌이니 위용강은 처리하기 과연 난처하게 되었다. 하여간 남도 아니요 친혈육이 아닌가. 귀찮은 일이 귀찮게 굴기 전에는 그걸 생각지 않으련만 이미 이 정도로까지 이르렀으니 묵과 할 수는 없는 일이였다. 그래서 처음 생각에는 대중앞에 반성시키고 산채에 돌아가 아버지한테 맡겨 처리하려했다. 한편 다른 류자들은 내놓고 말은 안해도 네가 문제를 어느만큼 공정하게 처리하나 두고보자고들했다. 한즉 이 문제의 처리는 금후 대오의 규률을 확보하는가 못하는가 하는 문제와 직접관계되거니와 아무때건 제 아버지를 승계하여 산채의 두령으로 오를 위용강이 수하 새자들을 어느정도 공평정대하게 대해주는가를 검험하는 때이기도했다.     대오가 여기에 도착했을 때였다. 위용강은 삼촌이 좀이라도 관대처분을 받겠거든 휴식을 선포하기 전에 대중앞에 나서서 스스로 자신을 반성하라했다. 그랬더니 위삼동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러자 위용강은 그를 강박적으로 끌어냈다.    《난 네 삼촌이다, 삼촌이야! 이 자식아!》     위삼동은 위용강의 심기를 알아채고 고래고래 소리질렀다.    《삼촌, 별수없소. 누가 규률을 위반하라했소.》     위용강은 이 한마디를 하고 그를 총살해버렸다. 그리고는 귀까지 베여서 겁탈당한 녀인의 집에 보내여 그를 이미 처단하였음을 알리였다. 워낙 총잘쏘는 위용강은 산채에 돌아오자바람으로 부포토우로 승진했고 일을 그같이 공정하게 처리함으로 해서 류자들속에 위망도 있게됐다.     자기가 받은 총의 원임자가 바로 그토록 불명예스러운 자였음을 인제야 똑똑히 알게 된 민호는 나머지 묘 하나를 가리키며 그 속에는 대체 어떤자가 누워 잠자느냐물었다.    《그거말이요. 그 속에는 고건아의 뼉다구가 있지. 걘 정말 불쌍하게 눈감았소.》     하진국은 낯색까지 어두워지면서 아느새 말을 못했다. 사자는 그와 한날 한시에 이 염왕산에 괘주한 젊은이였는데 류자생활을 하기싫어 재작년그러께의 묘동(猫冬)기간에 집에 갔다가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 것을 이듬해 가을에 붙잡아다가 여기서 총살해버린 것이다. 묘동이란 류자들이 산채를 떠나서 겨울을 나는 일을 가리키는건데 특수한 변고도 없어갖고 때가 된데도 돌아오지 않을시에는 변절로 인정하고 잡아다 그같이 처단해버리는거다.     허, 이놈의데가 규률이 과연 무서운걸! 승냥의 무리에 섞여살아봐야 승냥이의 습성을 알게 되듯 민호는 주동적으로 곁을 주면서 사근거리는 류자들과 가까이 지내다보니 신비로운 색채가 다분한 이 마적단의 실태를 점점 더 똑똑히 알게되였다.     주숙지로 돌아오니 패놓은 장작 한아름을 들여다 아궁이에 밀어넣고있던 위진이가 말을 먼저걸어왔다.    《내 뭐라던가, 아직은 이르니까 나가지 말라잖았어. 그래 족제는 비꼬리나 봤는가?》     민호가 보아낸건 그가 매사에 년장자다운 틀거지를 내고있는 그것이였다. 때론 그것이 지나쳐 눈꼴시였건만 노예적근성이 있다보니 자존을 잃고만 새자들은 비굴할 지경 굽실거리면서 그를 어버이같이 받들고 붙쫓았다.    《이제 눈만 내리면야 짐승잡이하기 쉽지. 동생은 사냥을 해본적이 있는가. 여기서 겨울을 보낼바하곤 짐승잡이나 착실히 하라구. 기회가 좋으니까. 그것두 가마를 터는 것 만큼은 거의 재미있는 노름일세. 땡잡으면야 벼락부자루 될 수도 있는거구.》    《정말 그럴가?》    《그렇다말다. 거짓말 아니라니까. 그게 어느해던가…륙월달이였는데 삼패의 리황수녀석이 바로 여기서 사슴 한마리를 잡잖았겠나. 그래 그걸루 맏두령께 치성을 드렸던거네. 생각해봐. 그렇게 했으니 어떻게 됐겠는가. 우선 환심을 대단히 삿을게 아닌가. 그 덕에 급을 잘 췄지. 바로 그렇게 해서 자식이 운이 텄지. 우린 그렇게 여기는거네. 두령한테는 물론 형제들끼리 어우렁더우렁 지내더라두 인심은 잃지 말아야하는거야. 알겠나 위신을 사야한다 그 말일세.》     위진의 일깨움이 어찌나 진지한지 흡사 직심스러움과 성근함이 푹 배인 목사의 설교같았다.      한데 듣자니 위진은 이라 한다. 다른 새자의 물건으로 납픔(納品)하는 인간이라는거다. 하진국은 그가 해마다 제 면목을 내기 위해서 수하새자들의 돈을 묘하게 우려내군하는데 대해 불만을 품고있었다. 는 말이 있는데 그건 두령이 새자들의 공물을 받아들이는 것을 가리킨다. 해마다 두령께 납품하는건 이미 없애치우기 어려운 고약한 습관으로 되여버렸다. 절대적인 권위자인 위삼포를 산채에서는 맏두령, 큰형님, 큰주인 혹은 큰나리라 부르고있는데 일반 새자는 물론 사량팔주도 그를 공경하고 높이 떠받들어야만했다. 한것은 그가 바로 산채의 대들보였기 때문이다. 이같이 류자내에 엄금한다고는 하나 층층이 올리섬기는 버릇이 그냥있었다.     어느날 민호가 하진국이 보고 염왕같이 무서운 위삼포가 위인됨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하진국은 그이야말로 완전무결한 류자두령이라면서 관(管)이 대단히 밝은 사람이라 자랑했다. 관이 밝다는건 사격술이 대단하다는 말이다. 이젠 여러해가 된다. 한 번은 위삼포가 일면파(一面坡)에 갔을 때다. 그곳의 왕지주집에서 저녁을 먹고나서 권총을 소제하느라 말끔히 분해했는데 공교롭게도 쌍성(双城)의 관병들이 어떻게 그가 온 기미를 알고는 붙잡으려했다.     위삼포는 담장밖에서 나는 발작소리를 듣고 분해했던 부속품들을 급급히 외투주머니에 걷어 넣었다. 그리고는 밖으로 나가면서 되맞추었는데 대문을 열자 총소리도 울리였던 것이다. 집에서 담장대문까지의 거리는 거퍼 10여보밖에 않되였다. 이일로 하여 위삼포는 관동강호(關東强豪)의 명사수로 이름을 날렸거니와 10보를 걷는 사이 분해한 총을 제꺽맞추는 이라는 것이 생겨난것이다. 그것이 지금은 관동토비들이 우수자를 선발하는 하나의 표준으로 정해지기까지에 이른 것이다.     위진은 바로 이런 두령을 섬기는 것을 영광으로 삼으면서 자기가 거느리는 11명의 새자들에게 두령으로 떠받들리우고 싶어했다. 민호는 이 껍지를 가로먹는 사람―새자들중의 작은 두목이 씹어대는 말뜻을 알수 있었다. 언중유언이라 돈이 생기면 자기한테 코밑치성이라도 해야 옳은일이라는 암시였다. 민호는 언영부터 자기의 목적을 이루자면 허영심많은 이 허저족류자를 리용해야겠다고 마음먹던참이라 이제 짐승잡아 돈을 벌면야 내가 위반장을 어찌 잊으랴했다.     그리고나서 그는 넌짓이 근중을 떠보았다.    《반장, 위반장은 전해에 고태자서 생긴 일 알고있습니까?》    《그 일을 말인가, 알구있구말구.》    《그 사건에 누가 죽었습니까?》    《거야 우리네 허저인들이였지.》    《어떤 놈이 그런 짓 했는지는 압니까?》    《알구있어. 내가 그걸 왜 모르겠나. 거야 청보산패가 한 노릇이였지.》    《전에 온건 어느 패에 있었던 사람입니까?》    《누구말이여?》    《진사해말입니다. 모두들 그러는게 그가 바로 청보산패서 수이샹노릇을 했다더구만.》    《그건 나도알아.》    《안다구? 위진형은 알면서두 그래 그놈을 가만둡니까?》    《가만두잖구 어쩌겠나 보다싶이 우린 이젠 한형제루됐는데.》    《형제라구? 다시말해봐요, 형제라구? 그 자는 바로 허저인의 철천지원쑨데두 형제라구?…어이구 참!》     민호는 너무도 어처구니없어서 쓰게 웃고말았다.     위진이 변명하려들자 민호는 그가 입을 더 열지 못하게 막고는 량심있거든 좀 곰곰히 생각해봐라 무고한 동포의 피가 량손에 랑자하게 묻은 자가 어쩌면 형제로 될 수 있느냐, 네가 그렇게만 생각하면 그게 바로 제 민족에 대한 배반이 아닌가고 비난했다.     말문이 막혀버린 위진은 그만 고개를 떨구고말았다. 이미 시위를 당긴 활이였다. 과녁을 맞추기위해서는 시력을 집중하듯 민호는 그를 눈자리나게 박아보면서 설득시키려들었다.    《소란 놈을 좀 보시오. 그것들이 다른 소의 피만 봐도 발로 땅을 차고 뿌리로 뚜지면서 고함치고 울어대지 않습디까. 말모르는 미물이 다 그럴라니 하물며 감정가진 사람이 이게 뭡니까. 내 발등에 떨어진 불 아니라고 보고만있단말입니까, 그래? 어쩌면 참....》    《후―》     통박을 오래굴려 볼 일도 아니였다. 위진은 한숨을 길게 뽑았다. 곁사람의 조롱섞인 기탄없는 힐난을 받고 보니 여지껏 마비되였던 감정이 정화되면서 정신차리는 것 같았다.     자식이 머리가 이제 좀 도는거냐. 민호는 자기같으면 절대 가만있지 않으리라면서 늦줄을 놓지 않고 계속 쐐기를 쳤다. 그랬더니 위진은 마침내 얼굴이 지지벌개나면서 이제보니 진사해는 과연 때려잡아치울 개구나 돼지구나 하고 욕했다. 원쑤를 갚음에 타인의 협력이야말로 그 얼마나 필요한것인가. 그의 칼에 피를 묻힌다면야 더없이 좋은거고. 이쯤하면 일은 될것같아 민호는 내심 기뻤다.     류자들은 성질이 달랐건만 네것 내것 따로없이 모두먹기에 인정을 트이고 지냈다. 피끗보면 하루하루 란잡스런 자유로 무미한 생활을 엮어가는것 같고 술과 육담을 내놓고는 삶도 사상도 있는 것 같지 않지만 사실은 그런게 아니였다. 맡겨진 임무는 조금의 허실도 없이 완성하고 돌아가리라는 각오된 자각과 두령께 끝까지 충성하려는 결심이 그들로 하여금 만일의 경우 들이닥칠 수 있는 불의의변고도 과감히 맛서싸울 수 있게끔 준비시키면서 흩어지지 않는 하나의 사납고도 실력있는 집단으로 단단히 묶어놓고있었던 것이다. 마치 사나운 승냥이들이 제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떼를 무은 것 처럼!          날씨가 썩 추워오자 염왕산본부의 후근처에서는 이곳에 나와있는 류자들의 방한을 위해 솜옷이며 모자며 신이며 토시같은것들을 보내왔다. 모두들 올해는 새것을 발급받아 무척 기뻐했다.     류자들의 겨울차림새는 괜찮았다. 해마다 이맘때면 맏두령과 사량팔주는 토이기식의 보드러운 수달피모자를 쓰고 그 아래의 새자들은 일률로 우가 여섯쪼각으로 동그랗게 무어지고 단추모양의 꼭지를 단, 모양이 흡사 절반쪼개놓은 수박같은 털모자를 쓰는데 귀덥개는 길고 컸다. 보통 토끼가죽아니면 개가죽이나 승냥이가죽이나 여우가죽으로 만들었다. 그런 모자들은 목이 충분히 가리워 바람이나 눈이 목안으로 날아들어가지 않아 따스했다.     위진은 민호에게 새 여우털모자를 주면서 알려줬다.    《길을 떠나게 되면 귀덮개를 뒤로 졌혀서 끈을 매게… 왜 그러는가말이지. 총명한 사람이 그것두 모르겠나 그래?》    《어께에 멘 분자(총)가 끝이 보이지 말라구 그러는거요.》     옆에 있던 한 새자가 알려줬다.     민호역시 다른사람들모양으로 검정솜저고리와 검정띠와 토끼털로 안을 댄 조끼를 받았다. 뒤가 엉덩이아래까지 내려오는 털가죽조끼를 줄 때도 있었는데 올겨울에는 기와가마마스러 가지 않고 여기에 와 있길래 그것하고 샅이 붙지 않는 털덧바지는 보내지 않는다고 량태가 책임으로 보낸 류자가 여럿앞에섵 공포다.     모두들 하는 말이 맏두령과 사량팔주는 입는것도 썩 고급적이거니와 모양새도 다르다고 한다. 물론 그럴 수밖에. 그네들이야 전부 나으리가 아닌가.     하진국이 허리띠는 솜저고리를 입고 밖에다 두르는건데 그 용처는 여러 가지라 알려줬다. 길이가 일률로 12자 2치되게 만들어진 그것을 허리에 띠고 거기다 권총이나 분자(칼)같은 것을 꽂을 수 있을뿐만아니라 유사시에는 바줄대신으로 사용하기도한다는거다.     소가죽울라신도 새것을 배급받았다. 민호는 올해까지 4년철을 신어보는 신이였다. 한데도 위진은 이 조선청년이 언제 이런 신은 신어봤겠느냐면서 하진국이더러 그한테 신는 방법을 배워주라했다. 그래서 하진국은 우선 울라초를 보드랍게 해갖고 와서 손수 발에다 감아주면서까지 차견히 알려주는것이였다.     야 이 뻐꾹아. 네 눈에도 내가 그렇게 숙맥으로 돼보이냐. 민호는 자기 발을 내맡긴채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았다.     이틑날 아침. 민호는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 누구보다도 빨리 울라신을 신었다. 그런다고 온 반의 새자들이 눈이 둥그래갖고 어쩜 뭐든 이리두 제꺽제꺽 배워낼가고 혀를 내둘렀다. 이 일로하여 민호는 다시한번 그네들의 눈에 대단히 총명한 젊은이로 돼보인건 더 말할것없다.     모두들 그를 과연 혼이 붙었나봐했다. 한것은 민호가 다른사람은 꿈에도 바랄 수 없는 털양말 한 켤레를 더 받았기 때문이다. 하얀 양털실로 탄탄하게 뜬건데 그건 위삼포의 딸님이 보낸것이였다.    《허참 별일다있다! 향란이가 그한테 양말을 떠 보내다니?》    《관심이 이만저만아닌걸!》    《어느새 벌써 그런 사리룬 됐나?》     입끝마다에서 부러움끝에 놀림절반 담긴 말들이 흘러나왔다.       두령의 딸님이 어떻게 돼서 그한테만 독특한 관심을 보이겠는가, 그건 민호가 이민족의 젊은이기 때문이라느니 사나이가 생김이 름름하니 아가씨가 안중에 든거라느니 하는 따위의 제멋대로의 추측들도 있었다. 민호는 빌어먹을 자식들 어디 실컷 까불고 찧어보라했지만 자신도 향란이가 왜서 자기한테만 그같은 애잡짤한 관심을 보이고있는지 알길없었다. 그는 그 양말을 받긴했어도 신지 않았다. 울라신에 그것이 별로 소용없었기 때문이다. 향란이가 이런줄을 모를가? 그녀가 모를리없다. 한데도 그녀는 이처럼 수고스레 마음을 쓴거다. 과연 왜서일가? 민족우대는 아닐텐데. 그렇다면 이 사나이가 눈에 들어서? 정녕 그러하다면 이 사내의 어떤 장점에?…민호는 종잡기 어려운 아리숭한 기분에 빠지고말았다.     웅성들만 모여있는 염왕산에서 유일하게 피여있는 한떨기의 아름다운 꽃인 향란이가 곧바로 녀인의 화신이요 모든 사내들이 떠받드는 우상이기도했다. 그러한 그녀를 새자들은 입끝에 올렸다.    《향란이가 올해 나이 아마 스믈다섯이지?》    《시집은 왜 안가는지?》    《아직두 알맞는 대상이 없나보지.》    《아따 거 황보재가 있잖은가.》    《좋아지낸진 오래두 신랑감으룬 아마 모자라는모양이야.》      《뭐가 모자라게?》    《아따 그것두 모르겠나. 요긴하게 쓰는게지.》    《보재가 고재란말이냐, 그래?》    《누가 오줌싸는걸 봤는데 고재는 아니더래.》    《아마 물렁좆인모양이야.》    《뭐라? 하하하…》     민호는 위용강과 동갑인 황보재가 염왕산류자치고는 꽤 만만찮은 인물이란 말을 들은적이 있다. 그가 과연 향란이가 고른 신랑감일가? 사실 그렇다면 좋은 멋은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민호는 그가 지금은 같은 배에 앉아가는 처지요 운명을 같이해야 하는 형제간이 돼버린 연유로하여 친절하달정도로 사근사근 대해주고있지만 언젠가 말타는 향란이를 거들어주다가 성급스레 칼부터 빼들면서 자기와 결판내려던 일을 다시생각하고는 내가 향란이와 가까워지면 그건 섶을 지고 불더미에 들어가는게 아닐가했다.            
127    장편소설 <<관동의 밤>> 제1부(8) 댓글:  조회:2323  추천:0  2015-02-03
                            8                 민호는 죽지 않았다. 한바탕 된 곡경을 치르고 보니 그는 웬 일인지 전보다 혈관에서 피가 거세게 흐르느것만 같았다. 온 몸에서 스러져가던 기운도 차츰 되살아나는것만같았다. 그래서 살고푼 생각이 머리를 쳐들었다. 삶을 버리고 이대로 여기서 죽어버린다는건 너무도 애닯은 노릇이것 같았다. 내가 왜서 죽어야하는가? 아까운 청춘도 다 못지내보고 값없이 죽다니 원. 죽지 말아야한다. 민호의 가슴속에서는 살고푼 욕망이 한결 세차게 솟구치기시작했다. 한데 가석하게도 목숨이 내것이긴해도 그것을 살리는가 못살리는가는 내맘대로 아닌 그였다. 잔인한 토비 손에 잡힌 신세요 목숨이 경각에 달린거라 생각 하면 자비가 먹장같이 가슴을 덮고 메워오는 걸 어할 수 없었다. 종잡기어려운 감정의 수렁에 빠져 아느새 모대쳤다. 그리고나서 그는 그것이 좀 진정되자 자기가 나무를 찍어넘기던 일을 상기했다.     그날 그는 단 하나 살아야한다는 강렬한 충동과 욕망에서 그야말로 그 자신도 믿기어려운 초인간적인 마력을 푼것이다.     위삼포가 뭐라했던가.    《됐다, 네녀석은 이젠 무병장수할거다!》     어깨를 탁 치며 이랬지. 분명 그랬어. 귀중한 약재를 감히 흠쳐먹은 이 우둔한 놈을 죽이지 않고 아직 살려주고있는게 과연 기상천외의 별일이였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치 사람속은 모다더니 과연 알수없는것이 위삼포의 속마음인것 같았다. 악마에게도 그래 자비가 있을수있단말인가?     민호가 까딱않고 누워 의문의 소용돌이에 잠겨있을 때 뜻밖에 향란이가 나타났다.     아니 저 고약한 계집은 왜 또 바라오는거냐?… 자기한테 권총을 겨누던 일과 술을 먹이던 일이 다시금 상기되자 민호는 경계하면서 다시는 거들떠보지도않을 양으로 낯을 저쪽으로 돌렸다.     염왕산의 위삼포에게 자식이라고는 오누이뿐인데 아들 용강이는 올해 나이 27살이고 향란이는 25살이였다. 향란이는 총명하고 재질있는 녀자였는데 어려서부터 제멋대로 담을 키우며 자란탓에 자존심이 너무도 강하고 오만한 것이 흠이라면 흠이랄가. 그녀가 마음내켜서 일부러 찾아왔건만 대방은 거들떠보지도않으니 화나고 괘씸했다. 위세가 꺾이고 우롱당하는 것 같아 향란이는 입을 옥물었다. 그러다가 그녀는 그렇다고 밸쓰고 돌아가면 제 칙간도 몰라서 망신하는 것 같이 더 꼴불견이 되고마는지라 난생처음 치미는 분을 꾹 참으면서 입을 열었다.    《날 왜서 이렇게 매정하게 대하나요? 전날 치밀었던 분 아직도  안삭았나보죠.》     자중하면서 온화하게 타협하는 투였다.     민호는 반쯤 뉘였던 몸을 벌컥 일으켜 바로앉으면서 낯을 다시돌리였다. 녀인은 품에 딱 맞는 분홍색나는 가을세타를 입었는데 건방지게 두팔을 유방이 봉긋이 부풀어난 가슴우에 곁고있다가 사나이가 아니꼬와 눈총을 놓자 그만 멋적은지 도루내린다. 그리고는 전날 를 부르던 비도가 앉았던 걸상에 가 앉아 미끈한 두 다리를 가지런히 모으면서 되도록 얌전하게 몸을 가꾸었다.     그래야지 그래야 여자멋이 나는거야. 민호는 이제야 토비두령의 따님을 면전에 놓고 똑똑히 여겨볼 수 있었다. 키는 츄얼이만큼 헌칠하고 몸매도 고운축인데 용모또한 못지않았다. 향란의 혈색좋은 얼굴은 제 아버지를 닮아서인지 달걀형이였다. 자태가 도고한 그녀가 정기도는 쌍가플눈을 찌프리며 가로볼 때면 어딘가 야수같이 사납고 매서운 감이 났다.     녀인을 오만하게 만드는 건 그 자신이 자랑하고있는 미모가 아니면 지나친 자존심일 것이다. 이 계집도 얼굴이 이만하면 미모인데다 두령의 따님이렸다 말잘타는 걸 봐서는 부출이 대단히 센 녀자였다. 보아하니 무예역시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녀인의 래방이 그닥반갑지 않은지라 민호는 입을 열어 뜨아하게 물어봤다.    《아가씨는 왜 왔습니까?》    《오면 안되나요? 호ㅡ 인제보니 우린 인사늦었네요.》    《그게 뭐 필요하다구. 난 잡힌 놈인데.》    《신세땜에 너무속태울건 없어요. 내가 찾아온건 다름아니라 저.... 한마디 충고할일이 있어서요.》    《뭐라? 아가씨가 나한테 충고할일이 있다구?》    《그래요. 저의 부친님께 감사나드려요.》    《뭐라! 내가?》    《그래요. 거기서요.》    《날 죽여주지 않아서 감사하단건가?》    《무슨소릴 그렇게 죄쳐요. 죽여주지 않은게 아니라 자신이 죽자구든건 왜 말안해요.》    《내가 죽자구들었다?》    《그렇잖구. 록욕은 왜 그렇게 먹었나요. 미런스레. 그리구두 사는줄알았던모양이지.》    《…》    《저의 부친께서 그같이 땀빼게 굴지 않았더면 아마 그 자리에서 돼지같이 뻐드러졌을거얘요.》     민호는 눈만 꺼무럭거렸다. 그렇지, 맞았어! 위삼포가 나한테 도끼주어 나무를 찍게한건 내가 땀을 콱 빼라고 그런거로구나. 약독을 빼느라구. 안그랬으면야 내 꼴이 과연 어떻게 됐을가?… 아아, 그래서 나는 산거로구나! 살수 있게 된거로구나!  가만있자, 그러고 보면 위삼포는 영 악마가 아니잖은가.    《어때요. 내 충고가 무례하지야않겠죠.》     향란이는 얼굴에 미묘한 웃음을 담으면서 여지껏 풀지 못한 의문과 갈피잡지 못할 상념 때문에 내내 안정을 찾지 못하고있던 사내의 근중을 뜨고있었다.     다른때와는 달랐다. 성미가 무척 표독스러울 녀인이 이 시각 나긋나긋해지고 있었다. 민호는 권유가 옳은지라 이 시각 그녀가 덜미워보이면서 인정스럽기까지 해서 머리를 주억거렸다.    《인제야 깨닫는군요. 응당 그래야죠. 아버진 아마 특사까지 내리실거야. 이건 정말 하느님도 못하는 일이얘요.》     이 말은 민호는 기쁘게했다.    《아가씨! 그러니까 위두령이 날 여기서 내보내리란말입니까?》    《못난이같네! 말도 그래 씹어줘야 넘길셈인가요.》    《알려줘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아가씨!》     민호는 안도의 숨이 나왔다.     녀인은 사나이가 무등 기뻐하는 모양이 재미있는 양 여겨보다가 정색하고 물어왔다.    《그사이 아마 무척 괴로왔을텐데 이젠 어쩔셈인가요?》     뭘 어쩔셈이란말인가? 알자는게 뭐길래?…대답을 얼른 할 수 없었다. 하여 민호는 눈을 크게 뜨고 그녀를 마주보다가 말했다.    《오 그렇지! 내가 위두령님을 배알해야지.》     녀인은 랭소를 머금으면서 입을 다시열었다.    《한가지 물어보래요?》    《뭔데? 말하시오.》    《잃어진 안해를 찾고있는중이라죠? 그렇지요?》     어쨌다구 남의 일에 흥취는 갖는거냐, 싱겁게. 녀인이 집요하게 캐고드는게 언잖았다. 그렇다고 감출필요는 없는것 같았다.    《그렇습니다. 난 지금 내 처를 찾고있는중입니다.》    《안해가 다즈녀자라죠? 그 옷 지은 솜씨 대단하네요! 결혼복이였던가보죠?》    《…》    《한가지 더 물어볼까요. 그 다즈안해 인물이 어때요? 고운가요 미운가요?》     이건 어딘가 비웃는것 같고 실답지 않은 물음이였다. 더구나 말끝마다《다즈, 다즈》하는게 경멸감을 풍기기도했다. 그래서 민호는 입을 다믈고 열지 않았더니 향란이는 그만 멋적은지 낯색이 붉어지더니 휑하니 나가버렸다.    《쳇 별난계집 다 본다. 남의 안해 곱던 밉던 그게 네한테 무슨상관이냐.》       민호는 녀인의 뒤통수에다 랭소를 던졌다. 그리곤 아무튼 여기를 살아나가게 됐구나 하는 생각에 다시금 기쁨이 끓어올랐다. 이제 여기를 빠져나가서는 잃어진 안해를 어떻게 찾을건가고 생각해봤다. 잊을 수 없는 밀월의 향기는 그로하여금 안해에 대한 그리움을 더 절절하게 하고 있었다. 한편 민호는 또 츄얼이는 나를 만나지 않았어도 불행은 당하지 않았을건데 하고 스스로 자책감에 모대기치기도했다. 죄를 씻기 위해서도 안해를 꼭 찾아봐야한다. 이건 남편된 나의 책임인거야 하고 그는 자신을 향해 말했다.     한데 희롱받을 운명이였던지 일은 과연 묘하게 번져갔다.     산채가 여느날보다 소연해지기시작했다. 팔방 여덟 개 산채에 나뉘여 들어있는 수백명의 류자들이 중앙산채의 뒤켠마당에 집결하는것이였다. 대체 무슨일일가. 안하무인이요 하늘을 쓰고 도리질하는 놈들인데 대체 뭘하느라 모이는걸가? 혹시 나를 처리하자고 그러는거나 아닌지? …민호는 가슴놀이 느닷없이 뛰기시작했다.     다시생각 해 보니 그를 처리하자고 그러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를 감시하는 자가 없어진거다. 문도 잠그어놓지 않았다. 대체 무슨일일가?... 밖에 나가보고싶었다. 하지만 민호는 겨우 문가에 까지 갔을 뿐 문턱밖으로 감히 발을 내놓지 못했다. 그랬다가는 범계를 해서 또 어떤 변이 생길지 모를일이였다.     개구리 모여 울건 떠들건 그걸 수탉이 알아서는 뭘하는가 네놈들이 하는 일 내알배 아니야. 민호는 구들에 흰들 누워버렸다.     구들은 불을 때서 따스했다.     비도들은 오후해가 썩 기울어서야 모임을 파했다. 저녁은 새하얀 밀가루만투 두 개에 돼지고기를 넣고 볶은 녹두채를 주었다. 대체 무슨일일가고 궁금증이 더해져 오늘낮에 무슨일있었느냐고 물어봤더니 저녁을 갖고왔던 자가 눈만 흘길뿐 알려주지를 않았다.     날이 어두워지자 향란이가 다시나타났다. 민호는 왜선지 그녀를 다시대하고보니 가슴속에 야릇한 흥분이 찰랑이였다.     향란이는 석냥을 그어 갖고 온 양초에 불을 달았다.     그녀는 어둠이 잦아들고있는 방안을 밝히면서 입을 먼저 열어 이쪽에 물어왔다.    《이걸 어디다 놓을까요?》    《고맙습니다, 아가씨! 이리주시오.》     민호는 양초를 받아서 밤에 잘 때 발이 가는 뒷창턱에다 세워놓았다.    《그걸 놓을 자린 찾을줄을 아네요.》     향란이는 비양쪼로 한마디 이죽거리고나서 심술궂은 눈으로 대방을 이윽토록 노려보더니 입을 다시열어 오금을 박는것이였다.    《당신네 고려사람 례절은 그런가요?》    《아니 왜 그럽니까?》    《왜 그럽니까가 뭐얘요. 시키는 서방질두못하겠나요 그래? 》    《무슨소린지…》    《왜서 아직도 가보질않아요. 감사하단는 인사말 한마디 번지기 그리두힘든가요. 정말 신사답지못한 사람이네.》    《그건 내가 저…》     민호는 열었던 입을 되닫고말았다. 변명이 무슨필요있는가, 자기가 위삼포를 배알하리라던 것이 이미 헛소리로 돼버린데야. 멋적은 난면을 수습해야겠기에 그는 딴전을 쳤다.    《아가씬 접때 타본 그 백마가 어떻습디까?》    《좋더군요. 건데 나하구 그건 왜 묻는가요?》    《아가씨가 혹 그걸 잡아먹지나않았나해서.》    《참 깜찍스레도 노네요. 그걸 내한테 앗길가봐 근심나던모양이죠. 시름나요, 안가질테니.》    《아, 아니 그래서 그러는게 아닙니다. 아가씨한테 그게 소용된다면야 줄수도있지요, 대신 내가 타고 갈 말을 준다면.》    《인심후한 양 하네요, 남의걸 빼앗은 주제에.》     향란이는 비웃고나서 얼굴에 악의없는 웃음을 지었다.     그녀가 말을 타고 달리던 광경이 눈앞에 다시떠오르자 민호역시 만면에 웃음을 흘리면서 넌짓이 물어봤다.    《건데 전날 아가씰 거들어주던 량반은 누굽니까?》    《어느 사람말인가요?》    《아 그 용감한 검사있잖습니까, 발검했다가 침뱉고 돌아서던이. 그게 아가씨의 오빤가요?》    《아니애요. 내 오빠는 그날 안나왔더랬어요.》    《오, 알만하군. 그럼 그게 아씨의 신랑되는....》    《입다물어요. 결혼도 안한 녀자하구 망탕소릴. 날 아씨라말구 아가씨라불러요.》    《아니, 그럼 아직은 미혼이란말입니가, 그래?》    《그래요.》    《허참. 그런걸 난 또…그렇다면…그 사나인 잘생겼더구만.》    《별소릴 다 하네요. 남성들끼리두 인물평을 하는가보지.》     녀인의 기탄없는 놀림에 민호는 그만 낯이 확 붉어졌다.     그가 말이 없자 녀인이 입을 다시열어 침묵을 깼다.     《저의 부친께서 래일 자유를 줄거얘요. 그런줄이나 알고 속태우질랑말아요. 여기서 목숨붙어 나가는것만도 다행인줄 알아요.》     그렇다, 인질로 잡혀온것도 아니요 범계한 사람이 염왕손에 잡혔다가 무사히 풀려나간다는건 하늘도 놀랄일이다. 민호는 자기는 국적다른 사람이길래 관방과도 어디와도 련계없으리라 여기고 위삼포가 관용을 베푸는거라여겼다. 하여간 목숨살려내니 천만중다행이요 운수대통이라해야 할 것이다.     이젠 과연 안도의 숨이 활 나가는지라 민호는 아까부터 괴여오르던 궁금증이나 마저풀고싶어 입을 열었다.    《아가씨께 한가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뭔데요?》    《오늘 저녁끼가 별루좋습디다. 건 왜선가요?》    《거야 좋은 날이라 생활개선을 하니까 그런거죠 뭐.》    《좋은 날이라니 명절이란말입니까?》    《명절은 아니야요.》    《그러면?…》    《오늘 새자 하나가 더 가입했어요.》    《오, 알만합니다. 워낙은 그런일이였구만!.》     민호는 머리를 주억거렸다. 그러니 이네들 도당에 성원 하나가 더 불어났다는거로구나. 끼니마저 개선하는 걸 보니 아마 수수한 인간은 아닐거다 하면서 민호는 그게 어떤 자일가 생각했다.     이러던차 녀인이 스스로 알려주는것이였다.    《그래요. 괘주를 한 그 분이 오기는 청보산패에서 왔는데…》    《뭐라구!?....》     청보산패라는 말에 민호는 깜짝놀랬다.     녀인은 이 조선족사나이가 낯빛이 갑작스레 돌변하는지라 다시쳐다보면서 자못 의아해하였다.    《왜 그래요. 청보산을 아는가요?》    《아, 아니요. 내 친구 하나가 별명이 청보산인데 언제 록림객으루됐는지 몰라서 그럽니다.》     민호는 제꺽 꾸며댔다.    《그래요. 호호호…알려드릴가요. 청보산은 사람이름따라지은것도 아니고 별명따서 지은것도 아니얘요.》    《그럼?》    《청보산이란 거기 맏두령이 제멋대로 지은거래요. 청보산이 말로는 기국한지 반백년이 된다지만 어찌 우리네 염왕산과 감히 비기겠나요. 워낙 볼모양없던 떨거지패였는걸요.》    《아, 그렇습니까! 건데 어떻게 돼서 그 패에 있던 사람이 이리룬왔답니까?》    《말하자면 길어요. 몇해전에 당벽진서 불의의 행세를 하더니 고태자서 또 그런 짓을 해 청보산은 아문의 숙청에 들어 괴멸되고만거얘요. 천벌이 내린거죠.》     향란이가 (주)과 을 입밖에 끄집어내니 민호는 분노하여 가슴이 뛰기시작했다. 때려죽일놈, 우리가 빼운 원쑤놈이 이리루왔구나. 어떤놈일가? 그게 혹시 내가 찾으려는 놈이 아닌지?… 이 녀인은 방금 온 자에 대해서 잘아는 것 같았다. 민호는 그걸 알고싶어 물어봤다.    《청보산패 사람인게 분명합니까?》    《그렇잖구요. 거기서는 자리에 서던 인물인걸요. 수이샹이였으니까요.》     수이샹(水香)이란 류자조직내의 세 번째가는 급인데 초소와 류자들의 규률을 전문책임지고 관리하는 자로서 민호가 원쑤로 점찍어온 진사해(陳四海)가 바로 그 직에 있었던 놈이다. 참 그자가 여기로 게발아들어온거나 아닌지.     《거기서 자리서던 사람이라면 아마 급이 있어다 그거겠지.》     민호가 혼자소리퍼럼 중얼대면서 머리를 주억거렸더니    《그래요. 돌아가는게 빠르네요!》     향란이는 칭찬하곤 그는 성명이 진사해(陳四海)라 알려줬다.    《아니!?.... 》     추측이 맞아떨어지는지라 민호는 무망간에 다시 한번 찔끔 놀랬다. 어정쩡해 나면서 가슴이 뛰기까지 했다.    《왜 그래요? 그일 아는가요?》    《아, 아니, 아니. 그래서가 아니라....》     향란이가 의문스러워하자 민호는 얼추 이렇게 응변하고나서 속으로 자기를 향해 부르짖었다. 참으라, 감정을 내비치지 말고 주의하라, 순간을 넘기지 못해 운명이 역전하는 경우가 많으니. 그렇다, 영민한 녀인이 이 순간 대방의 속내를 파고들수도있는것이다.       민호는 조심스레 눈치를 살피다사 넌짓이 한마디 던졌다.    《허허, 진사해라! 그 사람 이름대루 생겼으면 맘이 바다같이 너르겠구만. 그렇지요?》    《그럴거얘요. 우리네 화서즈가 소개받은 인물인데 아무렴 속한이겠나요.》     향란이는 이러면서 약 보름전에 사람 둘이 류자에 가입했는데 오늘 또 새로 한사람이 가입했으니 국(局)이 붉어진다고했다. 뜻인즉 여기 이 염왕산의 진영이 흥성해지고있다는거다. 자랑이였다.     원쑤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내가 과연 네놈을 여기서 만나게되는구나! 이젠 내가 어떻게 해야하는가?.... 만나자던 원쑤놈이 여기에 온걸 알구서야 내가 어찌 가만둘소냐. 영민한 고양이 소리없이 먹이를 찾는다잖는가. 내가 고양이 쥐새끼잡듯 네놈의 명줄을 끊어놓아야 한다. 복수의 약으로 내 원쑤갚고 민족의 원쑤갚아 원한을 풀어야 한다. 새옹득실(塞翁得失)이라 세상일이 복이 될 지 화가 될 지 예측키는 어렵지만 민호는 자기가 원쑤를 갚기전에는 여기를 떠나지 않으리라 결심하고 스스로 위삼포만나러갔다.         민호는 별채모퉁이를 돌다가 공교롭게 이 산채에서는 일반인물이 아닌 두사나이와 맞띠였다.    《어이 여봐, 어디루가?》     저켠에서 말을 걸어오길래 여겨보니 전날 칼을 빼들던 자였다.     그는 이름이 보재(寶財)였다. 전번모양으로 태도가 아주 거만스러웠는데 옆꾸리에서는 오늘도 단검이 거들거리고 있었다. 이쪽 다른 한 사나이는 권총탄대를 띠처럼 허리에 둘렀는데 몸체가 건실하고 단단하게 생겼거니와 모색이 위두령을 닮아서 민호는 그가 바로 위삼포의 아들이라는것을 어렵잖게 알아맞혔다. 그의 이름은 용강(勇康)이였다.      《나 위두령만나러 가오. 어느 문으로 들어가야하는가?》     민호는 그들 다가 악의는 없는 표정인지라 대담히 물어봤다.       별채가 여럿붙어있는 산채여서 문을 모르고는 미궁속같은 중앙산채로 들어가기 힘들었다.     묻는 말에 보재가 알려줬다.    《앞쪽으루 더 가라구. 저 별채가 보이잖아. 그걸 건너구 또 하날 돌아서 가면 돼. 본채에 난 문으루 들어가라구. 별채문은 열지 말구. 거긴 위아가씨의 방이니까.》    향란이는 별채 하나를 더 건너 다음의 별채에 있었다. 그 별채는 정남이였다. 민호는 이제야 모양이 똑같은 별채 여덟 개가 붙어서 이 중앙산채는 건축형식이 독특하면서도 치차모양으로 유별나게 건설되였음을 똑똑히 알게되였다. 이 아담진 목제의 별채들이 바로 여기 이 염왕산의 원로이자 이 한 도당의 수괴들인 팔대금강―사량팔주(四梁八柱)가 나뉘여 들어있는 거실이였던거다.    《저자식이 왜 아직두 가지 않고 여기서 꾸물거리고있어?》    《부해 하루 더 먹여주는모양일세.》     보재와 용강이가 주고받는 말이였다.     위삼포의 딸 향란이가 들어있다는 별채에 창문이 열려있었는데 하얀 비단카텐이 드리워있었다. 그 앞을 지나 모퉁이를 돌던 민호가 이번에는 백두옹 량태와 머리반백인 한 늙은이를 만났다. 백두옹은 기실 나이가 쉰살푼했지만 이쪽 반백의 사나이는 나이 일흔이 다 된 늙은이였다. 한때는 풍채좋았을 얼굴에 버섯이 돋고있는 그가 바로 염왕산의 군사(軍師)인 반둬더(翻垜的)였다.     민호는 그들앞에서 정중히 인사차림을 하고나서 물었다.    《전 저 위두령을 만날려구하는데요. 어디루 들어가야합니까?》    《저 문으로 곧바로 들어가게.》     량태가 손을 들어 알려주었다.    《담통크니 부해 한모금 더 먹어보지, 안그래유 형님.》     민호는 바람결에 백두옹이 자기를 놓고 하는 얘기를 잡아들으면서 위두령을 만나러 들어갔다     위삼포가 마침 자기의 거실에서 중앙청으로 나오고 있었다.      민호는 그의 앞에 다가가 허리굽혀 공손히 인사를 차리고나서 입을 열었다.    《소인이 두령님께 올릴말씀있어서 왔습니다.》    《무슨일인가?》    《두령께서 절 내보내시련다니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     민호는 말을 채 하지 않고 사리였다.    《그런데 어쨌다는건가?》     위삼포는 눈쌀을 찌프렸다.     어물거리면 공연히 의심살것같았다. 하여 민호는 소름끼치게 하는 그의 얼음같이 차고 쌀쌀한 낯을 어름어름 피하다가 다시금 여겨보면서 동강났던 말을 이었다.    《전 여기를 떠나고싶지 않아서요.》     이건 예상밖의 일인지라 위삼포는 자기 앞에 나타난 이 조선젊은이를 이윽토록 여겨보는것이였다. 민호는 말해놓고도 속이 은근히 떨려났다. 하지만 이미 내친 걸음이니 그 취지를 분명히 밝혀줘야했다. 민호는 자세를 바로가꾸고나서 입을 다시열었다.     《실은 제가 여기를 나간다해두 이젠 몸둘곳도 없는 신세입니다. 어디로 가랍니까. 그래서 저는 그런바하곤 차라리 위두령께 의탁하고싶은 맘이 생긴겁니다. 그런다면 전 일신의 용기와 정성을 다하렵니다. 위두령께서 어떻게 생각하실런지 저의 생각이 이러하온즉 위두령께서 많이 념려해주십시오. 받아만주신다면 저는 그걸 무한의 기쁨으로 여기겠습니다.》     위삼포는 곰곰이 듣더니 만면에 희색을 띠었다. 개도 사나운 개를 돌아본다잖았는가. 그러잖아 민호가 가지 않겠다면 차라리 받아두려던참이였다. 건강한 체격에 담대한 이 조선젊은이가 안중에 들었던거다. 범속한 인간을 백명 갖고있는것보다 지혜와 담력있는 신하 하나를 데리고있는 편이 훨씬 더 나은거다. 이같이 생각하고  여겨온 위삼포는 민호를 향해 조용히 머리를 끄덕이였다. 수락함을 표시한거다.     부드러움이 위삼포의 성품인건 절대아니였다. 신의 권능(權能)으로도 어쩌지 못한다는 북만토비의 거두 위삼포는 문무겸전(文武兼全)하여 감히 어깨를 겨룰자가 없거니와 용력과 지모가 난당이요 억강부약(抑强扶弱), 살부제빈(殺富濟貧)을 부르짖어 후덕(厚德)을 과시하나 잔인함은 상상키 어려워 동당들의 경탄과 악명을 함께 날리고 있었다.          염왕산토비입적 즉 괘주(挂柱)에 민호역시 진사해와 마찬가지로 시험은 치지 않아도 되였다. 시험은 가입자의 본심이나 담략을 알아내기위한것인데 위삼포는 그것을 이미 알아본거나다름없었다.      (물론 복수의 칼을 속에 품고있는거야 어찌알랴.)     토비들은 동당을 처음뭇는 기국(起局)때를 내놓고 새로 가입하는 길이 있는데 그것을 괘주(掛柱)라 한다. 괘주는 간단치 않은 일로서 담보인을 찾아 가입하는것과 자기절로 찾아와 가입하는 두가지 방식이 있다. 담보인은 일반적으로 류자내에서 사량팔주와 익숙한 사람이여야하는데 그를 통해 이름이 우두머리한테 전해진다. 가입자는 반드시 글을 남겨 그들이 선생으로 모시는 즈좡(字匠)에게 보관케 한다. 자기들이 하고있는 일이 결코 시시한건 아니라고 보는데서 세워오는 하나의 제규(制規)였다. 류자입적 수속으로 되는 거기에다는 자기가 온 래의를 밝히는데 주마비진(走馬飛塵), 불계생사(不計生死) 따위의 글을 써 놓음으로써 서명맹세를 하게 돼있다.     제발로 찾아온자에 대해서는 일률로 아주 엄하게 대한다. 그런 자는 거개가 류자내에 동기간이나 친척, 친구가 없거나 면목아는 이가 없어서 부득불 타인을 통해 다리를 놓아 오는 것이다.     무릇 가입자에 한해서는 먼저 그한테 담량이 있는가 없는가부터 알아보는데 그것을 과당(過堂)이라 한다. 과당은 방법이 두가지였다. 그더러 물담긴 호로병박이나 병사리를 주어 꼭대기에 이게하고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곧추 백보를 가게한다. 그래놓고는 그가 일정한 거리에 이르렀을 때 맏두령이나 포토우(炮頭)가 권총을 갈겨 《땅!》소리와 함께 꼭대기에 인 것을 박살낸다. 그러면 다른 류자가 달려가 그자의 바지를 만져 아래가 젖었는가 젖지 않았는가를 검사한다. 어떤자는 머리에 인 것이 박살나는통에 기겁해 오줌을 싸거나 혼비백산하여 땅에 주저앉고만다. 그런 담약한 자는 궁둥이를 탁 차서 그 자리로 쫓차버린다. 그런자를 띵잉(頂硬)이라하는데 이것이 한가지 방법이요, 다른 하나의 방법은 류자대오가 기와가마(富豪)를 짓부시거나 관병, 경찰대를 만나 싸울 때면 맨 선두에서 돌진하는 명사수 포토우가 그를 데리고 나가 그한테 분자(총)와 청자(칼)는 주지 않고 즉 단신으로 정탐하여 략탈물을 찾게끔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마음에 들면 포토우가 맏두령께 알리여 그로하여금 당자를 불러 너는 단단하니 남기기로 한다는 말을 해서 시험에 통과되였음을 알도록하는 것이다.     그런 후 길일을 택하여 맹세의식을 거행한다.     민호는 그저 입적수속만 밟고나서 가입맹세를 했으니 때는 이해, 즉 1924년도 음력 9월 28일이였다. 이날이 바로 상강이였는데 가을내 곱게 물들었던 단풍들이 한 잎 두 잎 떨어지기시작했다. 청쾌한 날씨였다.     의식장은 전날처럼 중앙산채의 뒷마당이 아니고 앞마당으로 바뀌였다. 이렇게 하는 것은 구입(舊入)과 신입(新入)자는 형편이 다르기 때문이다. 진사해는 워낙 신분이 류자이긴하지만 구입자요 정민호는 이제 처음 류자무리에 발을 들여놓는 신입자이기에 모든 것을 새로배운다는 뜻에서 장소가  밝은 자리인 앞마당으로 정해진 것이다.     중앙산채앞에 판자로 든든하게 만든 단우에 돌을 절구모양으로 파서 만든 네모난 검은 향로가 하나 놓여있고 그 앞 가까이에 사량팔주가 갈라앉았으며 널직한 마당에는 360여명의 류자들이 렬을 지어 앉았다.     가입맹세의식이라서 분위기는 자못 엄숙하고 정중했다.     의식은 류자내의 군사이자 맏두령의 참모이면서 천문지리와 팔괘행문(八卦行文)에 정통하고 생진팔자(生辰八字)를 능히 볼줄아는 반둬더가 집행했다. 민호는 그가 시키는대로 앞에 나가 재향(栽香)했다. 가느다란 향 19가치를 손에 받아쥐였다. 그중 18가치는 18라한을 위해서 태우는것이고 한가치는 두령을 위해 태우는것이였다. 민호는 한가치씩 불을 달아 앞쪽에 3가치 뒤쪽에 4가치 왼쪽에 5가치 오른쪽에 6가치를 꽂은 후 중간에다 나머지 한가치를 꽂아놓았다. 그리고나서 향탁앞에 꿀어앉아 높은 목청으로 사전에 암기해둔 명문화된 구절을 뇌듯 입으로 번지였다.                나는 오늘 가입하여                 형제들과 한마음되였도다.                 내가 만약 마음변하면                 날벼락을 맞으리요                 두령님의 버림을 받으리라.                 나는 오늘 가입하여                 형제들과 한마음 되었도다.                 비밀을 지키고 변절을 안하고                 친구를 팔아먹지 않으리라.                 규률을 지키리라.                 내가 만약 배반한다면                 칼탕을 맞으리오.                 두령님들의 버림을 받으리오.                 형제들의 버림을 받으리라.       민호가 말을 끝내니 위삼포가 먼저 입을 열어 그에게 말했다.    《이젠 너도 우리와 한집안 식구됐다. 자, 일어나거라.》    《고맙습니다, 두령님!》     민호는 그에게 국궁재배하고나서 반둬더가 시키는대로 먼저 포토우앞에 다가갔다. 듣는말에 의하면 나이 50대인 이 대머리사나이는 아직도 날파람있고 총잘쏜다고 한다. 허니까 그의 총알에 날아난 목숨이 얼만지는 그 자신도 딱히 모른다. 민호는 혈색좋은 그의 얼굴을 마주보면서 입을 열었다.    《이 동생은 일후 형님의 말을 잘 들으렵니다.》     포토우는 고개를 끄덕이고나서 년장자다운 틀거지를 차리면서 알려주였다.    《강자는 꾸준한 배움과 훈련속에서 나오는거요. 동생은 사격술을 련마해야하오. 매일아침 일찍일어나고 제 보금자리를 밟아 마스지 말아야겠소. 이젠 젓빨개도 아니니만큼 모든일에 주의해야지. 일이 생기면 제때에 알리도록하구. 알아들었는가? 우리 모두의 목숨이 내 하나에 달려있다 생각하고 그걸 잊어서는 절대안되겠소.》     말을 마치고나서 그는 민호에게 총과 탄알을 주었다.     민호는 그걸 받고나서 이번에는 백두옹 량태앞으로 갔다    《이 동생은 형님의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우리가 산채를 떠나면 풍찬로숙할 때도 어려울 때도 많고많소. 그런 때면 좋고 나쁜 음식을 가릴 처지가 못되지. 모자라면 형제끼리 나눠먹구…공융이 배를 받지 않고 남을 주었다는 옛이야기를 들어봤는가. 좋은 본보기니 그이를 따라배워야하네.》     그리고나서 그한테 옷과 이불과 세면도구를 발급했다.     이번에는 얼굴이 돌같이 차고 굳어보이는 수이샹앞으로 가서 그한테도 사전에 배운대로 두손모아 왼쪽어깨우에 올렸다가 내리우면서 류자식의 경례를 했다.    《이 동생은 수이샹형님의 가르침을 받으렵니다.》    《동생은 자기에게 떨어지는 임무를 제때 착실하게 완수하기바라네. 그리구 모든 규률을 잊지말고 잘 지키게. 일일이 가르쳐야 배우겠나. 자각이 되라는거네. 알아들었나?》    《예, 알아들었습니다.》     반둬더역시 그에게 잘하기를 부탁했다.     이로써 내사량에게 올리는 인사는 끝나고 그 다음부터는 외사량인 양즈방(秧子房), 화서즈(花舌子), 차챈즈(揷千子), 즈좡(字匠)앞에 가서 먼저사람들 앞에서 모양으로 일일이 인사했다.     양즈방은 인질을 잡아가두는 방인데 그일을 전문맡아보는 두령의 직명으로 되어버렸다. 그리고 화서즈는 류자내의 련락관이고 차챈즈는 정탐을 책임진 두목이며 즈좡은 전문 편지를 쓰고 류자내의 문건을 보관하고 관리하는 인물이다.     민호는 그들앞에 가서 인사할때마다 잊지 않고 주의해서 두손모아 왼쪽 어깨우에 올렸다가 내리군했다. 여기 이 염왕산은 물론 관동의 다른 규범화된 토비들은 다가 두손모아 앞가슴에 올리여 인사하는 것을 대단히 꺼리였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모양이 신통히도 수쇄(手鎖)를 찬 동작과 같았기 때문이다.     민호는 시키는대로 맏두령으로부터 팔대금강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인사를 하고나서 몸을 돌려 이제는 형제라고 보아야한다는 다른 모든 류자들을 향해 인사했다.     이로써 그의 류자들앞에서의 가입맹세는 끝난셈이다.     이날 염왕산류자들은 뜻밖에 자기들의 무리에 가담한 조선젊은이 덕분에 또 한끼 생활개선을 한건 물론 말썽부렸던 그에대해서 입가진 자마다 이러니 저러니 평을 달아가면서 의론도 많았다.     민호는 군사체제로 편성되여있는 제1련 1패 3반에 배속되였다. 반장은 방정서부터 언녕 면목을 익혀둔 허저인 류자 위진이였다.    《여보게, 어떤가? 내가 자넬 끌어당겼네.》     위진이 웃으면서 친절을 보이였다.    《위반장, 고맙구만. 그러잖아 나도 같은값이면 위반장하구 같이있기를 원했는데. 아무튼 여기서야 구면으루되는건 위반장밖에 없잖습니까. 안그런가요.》    《그렇지, 그렇구말구. 헌데 여봐, 이제부텀은말이여 날 그저 반장으루만 부르지 말구 형님이라해. 알아들었나.》    《그러는게 좋다면야 그럽지요.》     민호는 대답해놓고 속으로 부르짖었다. 야 이 어리석은 녀석아, 네놈도 그래 내 형으루되는게 그리두 소원이냐, 당분간은 길이 없으니 한길을 걷고 물이 없으니 한물을 먹는다만은.... 까마귀 까치가 모이는 한군데서 먹어도 형제는 아니구 종속이 다른거야. 그만한것도 그래 모르느냐 이 바보같은 자식아. 이 민호는 아무때건 원쑤만갚으면 여기를 뛸쳐나가리라 했다.     저녁술을 방금놓으니 향란이가 찾아왔다.    《이젠 한식구됐네요. 환영해요!》    《날 축하하는건가.》    《그럼요. 아니그러면 뭐겠어요. 이게 다 팔자소관인줄알아요.》    《팔자소관이라! 아마 그런가봐. 난 이렇게 되리라곤…》    《꿈밖이였다 그 말이겠죠. 두고봐요. 우리와 함께 지내서 후회될 일은 아마 없을거얘요.》    《세상이 돌아감이 조석이 다른데…》    《생각해봐요. 량산의 호한들은 왜 그토록 기세좋았겠나요. 우리 여기서도 살아가자면 첫점 신심과 용기가 있어야하는거얘요. 》    《그렇겠지.》    《내 오늘 단단히 일깨워주려구왔어요.》    《아가씨가 나한테? 뭔데?》    《그건말이얘요. 여기서 사달없이 무사히 지내겠거든 뭣보담 우선 우리가 쓰는 은어부터 부지런히 배워두라 그거얘요.》    《오! 그런가.》    《그렇잖구요. 제 말도 번질줄몰라갖구 나다니다간 큰일쳐요.》    《오, 그런가!》    《그렇잖구요. 몇가지 먼저 배워줄테니 명심해 들어요.》     그녀가 자기를 소학생취급하는지라 민호는 씩 웃어버렸다.     향란이는 눈을 할끗 빨고나서 진지하게 가르쳤다.    《이래요. 여기 산채에 들어앉아있지 않고 나다닐 때 만약시 다른 패거리를 만나갖고 첫마디 묻는 말부터 막혀갖고 멍해있다간 그만 날쏘시개를 먹고말아요. 날쏘시개라는게 뭔지 알아요? 탄알맛을 본다 그거얘요. 깔개를 관장자라 하고 신은 탕두, 베개는 침룡이라해요. 모자를 하늘꼭대기라하고요. 량태가 옷을 주면서 뭐라던가요. 잎사귀를 바꾸라잖던가요. 옷을 바로 그렇게 부르는거얘요. 밥먹는 걸 삽부, 물마시는 걸 부해. 사람의 얼굴을 접시라 하구 곰보딱지를 꽃쟁반이라 하며 손은 닭발, 배는 오복자…》     향란이는 이같이 토비들이 사용하는, 우수울지경 괴이하게 꾸며진 은어들을 한바탕 엮어대고나서 숨이 차는지 잠간 끊었다가 계속했다.    《명심해요. 사귀고싶거든 만나고싶다고해요. 우린 순경을 개라 하고 군대는 벼룩이라 불러요. 누구하고 싸우느냐는 누구하구 소리내냐 하고 일이 여의치 않다면 그땐 등이 맞힌다 해요. 털안으로 들어가라면 그건 수림속으로 들어가란줄로 알아야 해요. 넘기라거나 메라고 하면 그건 어서빨리 걸으라는 걸로 들어야하고요…》     향란이가 입심을 넣어 이같이 줄뽑아대는데 들어보니 과연 희한했다. 함께 생활하지 않고서는 그 많은 말을 다 배워낸다는게 꿈에서나 생각할 일이였다.     여기 관동땅의 민간을 돌아다니며 살펴보면 동업자거나 계(契)거나 비밀결사거나 패를 무은거나 업종에는 거개가 신자가 하나님을 떠받들 듯 저들이 신봉하는 것이 따로 정해져 있었다. 이를 라렬하면  목수는 로반(魯班), 야장은 로군(老君), 리발사는 라조(羅祖), 관자집은 뢰조(雷祖), 약방은 손사묘(孫思錨), 신깁쟁이는 손조(孫祖), 염쟁이는 매갈(梅葛), 장사꾼은 재신(財神), 백장은 삼성(三聖), 거렁뱅이는 리조(李祖)였고 토비들은 18존(十八尊) 즉 18라한이였는데 법도(法度)가 있고 금구무결(金甌無缺)하다는 염왕산에는 호(胡), 황(黃), 사(蛇) 등 삼선(三仙)의 위패와 선대의 사량팔주위패가 모셔진 영당(影堂)이 각각 갖추어져 있었다.     민호는 위삼포가 친히 목에다 걸어준 금빛나는 부대화상을 건들거리면서 그것들도 일일이 참배했다. 속심이야 어떻든 향을 피워 꽂고 괘주를 했으니 시키는대로 할 수밖에. 도적의 배에 올랐으면 도적의 짓거리를 배워야지 별수가 없는거다.            
126    장편소설 <<관동의 밤>> 제1부(7) 댓글:  조회:2650  추천:0  2015-02-03
                 7          인간세상이 대체 얼마나 너르고 생사변역(生死變易)하는 존재 또한 얼마나될가? 옛기재에는 360항업(恒業)이라했지만 어찌 그것뿐이겠는가. 어느때부턴지는 딱히 알수없지만 지금 인간이 살고있는 이 대천세계(大千世界)에는 비적(匪賊)이라는 하나의 특수한 직업이 나타났다. 이를 어떤데서는 호자(胡子)라 하고 어떤데서는 향마(響馬)라 했으며 어떤데서는 토비(土匪) 혹은 봉자수(捧子手), 마적(馬賊), 강도(强盜)라 불렀다. 해를 거듭하고 대를 내려오면서 그 한무리도 점차 자라나고 성숙해져 자체의 조직기구가 있게 되였고 저들의 두목을 내오는 방법이 있게 되였으며 종교와 신앙이 있어서 토템과 숭배가 있게 되였고 자기들의 언어와 규률과 풍속이 따로있는 하나의 사회적존재로 자리잡게 되였던것이다.     만민이 들어도 이마살을 찌프리게 되는 그것이 사회의 우환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한자가 뒷덜미를 잡아일으키며 겨울날 철판같이 차가운 상판에다 으늑한 웃음을 발랐다. 민호는 설레이는 무서운 기운을 느끼자 등골이 선득해나면서 몸이 오싹했다. 이젠 끝장이구나 하는 생각이 뇌리를 때리면서 가슴이 떨리였다.     한자가 구리로 장식된 구식의 대공계(大公鷄)를 꼬나들면서 두눈을 지릅떴다.    《선마만?》     이건 아마 날보고 뭘하는 사람인가고 묻는것같은데 제꺽 대구해야겠구나. 민호는 대방의 태도에서 말뜻을 짐작하고는 몸을 되도록 바르게 가꾸었다.    《난 당신네 당쟈더를 만나야겠소.》     급히 던진 림기응변이 면바로 은을 냈다. 그자는 들었던 총을 내리더니 검은 수건으로 민호의 눈을 싸맸다. 그런 후 둘은 뒷짐지운 그를 들어서 말잔등에다 실었다.     롱락당할 운명인지 민호는 이렇게 토비손에 떨어지고말았다.     관동의 세력있는 토비들은 다가 장구지계로 자기가 점한 자리에 반거하면서 산채의 안전에 각별한 주의를 돌리고있었는데 류자(綹子)들가운데서 군사(軍師)직을 맡고있는 반더둬의 설계에 따라 팔괘진(八掛陣)을 쳤다. 즉 자기들의 병력을 건(乾), 태(兌), 리(離), 진(震), 손(巽), 감(坎), 간(艮), 곤(坤)에 따라서 여덟곳으로 갈라놓는 것이다. 사령부 즉 두령인 맏형이 중가운데 있고 그 둘레에 팔괘진이 벌려져있는데 팔괘진을 이룬 매 거점에는 또 전후에 보초선이 세 개씩 설치되여 있었다. 그래서 만약 누가 두령을 만나려한다면 보초선에서는 우선 그의 눈을 싸맨다. 그리고는 첫보초선에서 둘째보초선에 넘기고 둘째보초선에서 셋째보초선에 넘기는데 그 세째보초선에서 그 사람을 두령과 대면케 하는것이다.     사람이건 짐승이건 명을 가진 동물은 다 끝장에 이를라치면 제 스스로 절망하고만다. 죽음에로 내달리게 하는 채찍이 바로 절망 그자체였다. 민호는 그러한 무형의 채찍에 얻어맞으면서 눈을 다시떴다. 허나 싸맨 눈이니 앞은 칠흑같은 장막뿐 아무것도 볼수 없었다. 새소리마저 들리지 않는다. 민호는 말잔등에 놓여 흔들리는 자체의 육체만이 감각되고있으니 마치도 밑끝없는 나락속에 빠지는것만같았다. 제길할! 이게 그래 나의 저승길이란말인가? 이젠 구원맏을 길없는 처지를 당해서? 정말? 과연 그런가?…칼도마에 오른 고기도 뛰여보는데…나는 왜 이모양이 되는거냐? 내가 그래 고기만도 못한 존재란말인가?…아니다, 용기를 내자, 용기를! 범한테 물려가더라도 정신만은 차리라했더라! 이제 막 절망하여 맥을 놓으려는 자신을 살려내기 위해서 민호는 속으로 부르짖으며 자기를 향해 호소했다.     그들은 숲우둠지가 하늘을 찌르는 천고의 밀림속을 가고있었다.민호는 오로지 감각으로 그것을 느낄 뿐 가고 또 갔다. 이 손에서 저 손으로 넘겨지면서 근 세시간. 그런후에야 그는 이 토비무리의 두령앞에 나섰다. 여기가 바로 염왕산산채였다!     산채가 어떤모양인지 알수 없었다. 눈을 처맨 수건을 풀자 앞에 나타난 것은 좌우량켠에 등나무줄기를 꼬아만든 듬직한 나무걸상 여덟 개가 (八)자모양으로 벌려져 놓여있는 널다란 방이였다. 방의 정면가운데 단이 있는데 그 우에 듬직이 놓여있는, 호랑이가죽을 깐 높다란 의자에 쉰살넘어보이는 사람이 홀로앉아 있었다. 두령임이 분명한 그는 주황빛나는 다부살을 입고있었는데 살결적은 얼굴은 얼음장같이 차가와보였다.    《선마만?》     그가 물어보는 첫마디가 역시 그것이였다.    《난 두령님을 만나서…》    《넌 대체 누군데? 》    《예? 전, 전…》     하기쉬운 대답이였건만 사유가 갑작스레 문란해져 민호는 떠듬거렸다. 그랬더니 저쪽에서    《몽두춘알어?》     하고 물어왔다.     제길할! 이건 또 무슨 소리냐. 민호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토비들은 술을 몽두춘이라 하는데 몽두춘을 하자면 술을 마시자는 뜻이 되고 몽두춘을 아느냐 하면 그건 네가 류자의 말을 아느냐의 물음으로 되는 것이다. 민호가 토비의 이같은 은어(隱語)를 어찌알랴.     두령은 잡혀온 젊은이가 함구무언이니 미간을 찌프리고 쏘아본다. 예리한 그 눈길은 송곳으로 심장을 찌르듯 매서웠다. 민호는 등골에 찬물이 흘러내리는 것 같이 싸늘해지면서 온 몸이 전률했다. 저런 자의 일빈일소에 사람의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것이다.     아아, 이놈의 기구한 내 신세야!    《저 맏형님…》     민호를 여기까지 끌어온 비도가 입을 열어 무언가를 말하려다가 웬 일인지 입을 되닫아버린다.     두령은 눈을 간잔지런히 쪼프리더니 외면하면서 혼자중얼댔다.    《빈놈이군, 외마야.》     저놈의 악마가 나를 어쩌자는걸가. 그의 입가에 조소가 비꼈음을 보자 민호는 자기를 당장 이 자리로 끌어내다 죽일것만같아서  정신차리면서 불덩이를 토해내듯 황급히 입을 열었다.    《두령님 난 나쁜놈아닙니다. 정말입니다, 나쁜놈아니라니까요.  방정서 경찰이 붙잡자구해서 내내 쫓기우다나니 이렇게 된겝니다. 정말입니다, 나으리님.》     토비두령은 미간을 그러모으면서 귀바퀴를 세웠다.     속여서는 뭘하는가. 속일필요가 뭔가. 성실함이 이럴땐 외려 구명책이 될런지도모른다. 민호는 그의 앞에 자기는 안해를 잃고 찾으러 다니는 사람이라는 것, 그런데 여차여차해서 경찰에 잡히게 되니 남의 말을 빼앗아 타고 여기까지 쫓겨왔다는 것 등등을 사실그대로 말했다.    《문이 흔들리는구나.》     토비두령은 짜증섞인 한마디를 내뱉고나서 턱짓으로 끌어내가라 명령했다.     비도는 민호를 앞세워갖고 그곳을 나왔다. 그자는 그를 어디엔가에 있는 돌을 다듬어 벽체를 만든 그리크지 않은 집으로 데리고 가더니 결박한 포승을 풀어주었다. 그리고는 그 집의 어느 한 자그마한 방에다 가두면서 넌 여게 잠자코있거라 어리석게 달아날 궁리는 거둬장지고 알았어 하며 얼음장을 놓고나서 가버리는것이였다. 출입문을 보니 쇠창살로 만들어졌는데 그 바깥에다 촘촘하게 울짱까지 둘러서 세상구경을 더 할 수 없었다. 흡사 짐승우리와도 같은 여기가 바로 토비들이 인질을 가두는 양즈방이였던것이다.     민호는 중앙산채를 나올 때 주위를 한 번 휙―익 쓸어보고는 그만 방향마저 잃고말았다. 수림이 무성한 산이 병풍처럼 빙 둘러있는 이 함지박같은 분지에는 청기와로 지붕을 하고 별채와 마사(馬舍)가 딸린, 서로 다름을 가려낼 수 없을 지경 모양이 신통이 똑같은 커다란 목조건물 여덟채가 두령이 들어있는 산채를 가운데 놓고 빙 둘러앉아 방원각을 이루었던 것이다. 중앙산채의 주위는 널다란 공지였는데 거기는 전부가 굳어진 모래땅이여서 풀이라곤 한포기도 자라지 않았다. 민호는 이 세기에 관동땅 어디가나 볼 수 있는, 징을 가득밖아서 만든 둔박한 바퀴가 달린 마차들을 여기서도 보았다. 하지만 미궁같은 심산속에 외따로 있는 이런 산채는 난생처음본다. 이건 아마 세상에 둘도 없는 별유의 복마전일것이다.     웬 일인지 산채는 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왜 이럴가, 토비들이 낮잠자는건 아닐텐데?…민호는 야릇한 의문이 호기심을 촉발하자 뒤따라 심한 갈증을 느꼈다. 한낮의 더위속에서 념주뼈이어지듯 련달아붙는 공포와 절망과 고뇌가 그를 녹초로 만들면서 목을 말리워 그것이 이제는 막 타드는것만같았던거다. 이러다간 내가 총알의 세례를 받기전에 버림받은 탈수한 개같이 여기서 말라죽고말거야.     민호는 발작적으로 소래기를 내질렀다.    《물! 물! 물을 달라, 이놈들아!》     바깥어디선가 비도 하나가 골이 나는지 두덜거렸다.    《제길할! 어쨌다구 아부재기는 쳐. 뒤여질라구 환장이냐.》     그자는 지적지적 걸어와 목을 기웃거리며 양즈방안을 들여다보더니 찔끔 놀랜다. 이럴변이라구야!     아니 저건!?…민호도 그처럼 놀랬다. 옷을 바꿔입었을 뿐 그자는 분명 전날 방정에서 만났던 그 허저인이였던거다. 인제보니 넌 워낙 여기의 토비였구나! 민호는 종잡기 어려운 감정에 속까지 울렁거렸다.     둘은 아느새 말없이 대방을 서로 눈박아보기만했다.    《난 누군가했지. 어쩌누라 여겐 들어왔나?》     저켠이 입을 먼저여는데 생각과 다르게 태도가 부드러워진다.     이젠 초면이 아니고 구면인데, 내 사정을 좀 알고있는데, 이 작자가 나를 구해줄수는 없을가. 물에 빠진 놈 짚오리잡듯 민호는 행여나를 바라고 이런 생각에 매달리면서 간밤에 방정서부터 자기가 당한 일을 그한테 죽 말했다.     《거북한 사람아, 신세좋게됐구나.》     대방은 눈을 꺼무럭거리며 듣더니 동정인지 경멸인지 분간키어려운 말을 뱉어놓았다.     민호는 그의 목에 데룽데룽 달려있는 금빛나는 불상을 여겨보면서 속으로 안타깝게 빌기도 하고 웨치기도 했다. 부처님! 부처님! 오, 자비하신 부처님. 너나 좀 자비를 베풀어다오. 네가 왜 이런자의 목에는 와 걸려있는거냐, 얼빠진녀석아!     누가 얼빠진 녀석일가. 남의 목에 실없이 걸려있는 장식품이 아니였다. 그것이 왜 그의 목에 걸려있는지 그  리유를 모르니 얼빠진건 되려 민호쪽이였다.  .     토비를 통털어 류자(綹子)라고 부르는데 그네들 중 일자반급도 없이 동생벌되는 자를 새자(崽子)라 한다. 전통적인 이런 토비류자면 누구나 다 목에다 불상을 걸어야했다. 지금 이 자의 목에 걸려있는 불상은 포대화상(布袋和尙)이였다. 포대화상은 18라한 중 17번째 라한인데 일명 달마다라(達摩多羅)라고도 한다. 달마는 보디달마의 략칭인데 이역으로는 도법(道法)이다. 기원 527년에 숭산 소림사(小林寺)에 와서 벽을 마주하고 종일 말한마디 없이 앉아있기를 9년이여서 벽관(壁觀)이라했다. 리입(理入)과 행입(行入)의 수행(修行)방법을 내놓았는바 그는 서천(西天) 선종(禪宗) 제 28조와 동토(중국) 선종초조(禪宗初租)였다. 그러한 그가 바로 만주의 토비들이 조상으로 모시고 떠받들면서 숭배하는 신(神)이 된 것이다.     저켠에서 웬 녀인의 챙챙한 목소리 날아왔다.    《위진 게서 뭘해요?》     이쪽은 고개를 얼른 들어 그쪽을 보더니 둘러댔다.    《이 녀석이 부해달라구 아부재기쳐 그럽니다, 아가씨.》    《오늘 잡힌 놈팽인가요. 그런 철모르는 풀메뚜기는 특별대우를 해야겠어요. 이리와요.》     위진이라는 비도는 길들인 개모양으로 말을 곰상히 들었다.     저켠에서 녀인이 그와 무어라 소곤거리는 소리나더니 이어서 캐득거리는 웃음소리 날려왔다.     좀 지나서였다. 어디론가 달려갔던 위진이란 이름을 가진 그 허저인 비도가 민호앞에 다시나타나는데 한손에 호로병을 들고 다른 한손에다는 고기덩이를 들었다.    《여봐, 이걸 먹어. 다 먹어치워야 해. 알았어 다 먹어치우란말이야. 않그러면 위아가씨가 잠을 재워주겠대.》     비도는 갖고온것을 놓고 가버렸다.     호로병에 들어있는 것은 물이 아니라 술이였고 이쪽것은 방금 베여낸 노루고기였다.    《빌어먹을 것들아, 누가 이따위걸 먹겠다니. 물을 달라, 물!》     민호는 격분하여 웨쳐대면서 화닥닥 일어나 호로병을 쥐여 들었다. 했지만 그는 그것을 밖에다 내던지지 못한채 팔맥을 풀고말았다. 위태롭고 결정적인 순간이였다. 성질급한 자기가 이 순간을 어떻게 참고 넘겼는지가 불가사이한 일 같았다. 위아가씨라 했지. 저 계집이 아마두 여기 토비두령의 딸년이겠구나. 그런데 그년이 이걸 먹지 않으면 나를 잠재우리라했다지. 그건 아마 날 죽여버리겠다는 소릴거다. 잡아 없애치울 년! 분노와 저주와 모멸과 우려가 한데  뒤엉켜 불덩이같이 가슴을 아프게 지졌다. 민호는 미칠것만 같아 소리를 내지르려다 주먹으로 제 가슴만 쾅 쾅 때리고말았다. 분별없이 날치는 만용을 용케 눌러버렸다. 여기는 토비굴이다. 소리치고 욕한들 누가 끔쩍하기나하랴. 칼도마에 오른 신세에 그런다면 오로지 죽음만 재촉할 뿐. 구명책을 찾자면 그래도 인내(忍耐)해야 함을 그는 순간적으로 깨달은것이다.     갈한 목은 그냥 타들고 있었다. 한들 무슨 방법있는가. 눈길이 다시금 철창아래의 멍석우에 나동그라진 호로병과 커다란 고기덩에 끌려갔다. 민호는 그것들을 자기 앞에 끌어왔다. 먹자, 먹어! 먹어야한다! 그러면 혹시 위험한 이 고비를 넘길수도 있을게 아니냐. 시시한 명줄을 타고 난 내가 아니거니 이 자리에서 계집년의 희롱에 들어 숨을 끊지는말아야지. 전날 방정에서 들은, 심마니가 산삼캐러 산에 왔다가 발을 잘못들여놓아 목숨잃고말았다던 이야기가  다시금 생각켰다. 범계(犯界)를 한 자는 무조건 죽여버린다잖는가.허니까 이렇게 죽던 저렇게 죽던 죽는건 이미 정해진거요 차례진 운명인것 같았다. 이럴바에야 술이나 먹고 대취한다면 자신을 괴롭히는 지꿎은 공포도 숨이 끊어질 그 순간의 고통도 싹 다 잊을게 아닌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민호는 더 주저하지 않고 호로병마개를 열었다. 그 속에는 거의 한근 술이 들어있었다. 그는 입을 대자 벌물켜듯이 그것을 다 마셔버렸다. 그리고나서 배도 몹시 고프던차라 한근은 착실히 될 고까지 다 먹어버렸다.     어찌 무사하랴. 몇분안돼서 민호는 갑작스레 덮치는 취기와 식곤증을 이기지 못해 그만 그 자리에 쭐 늘어지고말았다.          얼마나 오래잤는지 등과 옆꾸리가 아파 눈을 뜨고 보니 비도 둘이 일어나라고 발로 걷어차는데 밖에서는 왁작지껄 떠들어대는 소리, 말들이 투레질하는 소리가 뒤범벅이 되여 들려왔다.    《하, 이자식봐! 일어나, 일어나! 일어나란데두 이 자식아!》    《가만! 그자식이 몽두춘하잖았어.》    《정말 그렇구나! 하하하…》    《건데 이 자식이 그건 어떻게 처먹고 이 꼴이야, 엉? 하하하…》       두 비도는 벅작 고와대면서 민호를 잡아일으켰다.     바깥은 어느덧 심란한 어둠이 깃들고 있었다.     어디로 가는지 알수 없었다. 알고싶지도 않았다. 민호는 그저 머리가 빠개지것 같이 아파남을 감각하고있을뿐이다. 두 비도는 술을 억병으로 마셔서 정신을 그냥 못추는 민호를 마치 짐승다루듯 몰기도 끌기도 하면서 마당건너켠으로 갔다.     어느 녀석이 귀뺨을 때려 눈을 뜨고 보니 그가 낮에 들어왔던 바로 그 마당같이 널직한 대청인데 환하게 켜놓은 람프등에 비치여 흡사 애기들의 놀음감같기도 하고 절간의 올망졸망한 라한같기도 한 자들이 모여들어 오도방정을 떨면서 거의 인사불성이 되여있는 그를 흥미있게 구경하고 있었다.    《저자식 좀 보라니까, 팔자제법좋은 걸!》    《하하하…》    《건데 반강자는 대체 어디서 났길래?》    《아씨가 줬다누만.》     민호는 여기와서까지도 의연히 취기를 깨지 못했다. 그는 그들이 웃고 떠들며 지껄려대는 소리를 비몽사몽간에서 듣듯이 들으면서 휘청거리다가 속 빈 자루같이 널장판에 쓰러지고말았다.    《저자식보지.》    《하하하!…》     웃음이 다시터졌다.     민호는 얼마있지 않아 거기서 도루끌려나왔다. 원래는 그를 심문해서 신원을 똑똑히 알아보자는것이였는데 뜻밖에 잡힌자가 이꼴이니 잠시 내쳐두는판이였다.     그 다음날이다. 무엇이 코구멍을 자꾸간지렵혀 재채기를 요란스레 해대며 눈을 떠 보니 녀자의 말쑥한 손이 길다란 띠풀을 쥐고 털같은 끄트머리로 작난질을 하고있는게 아닌가. 독이 바짝난 민호는 선불맞은 표범모양으로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당장 그녀의 목을 비틀어 죽여치우려고. 허나 철창이 앞을 막고있니 생각뿐.       더러운 계집년 어디 또 그래봐라고 두덜대며 속으로 벼르고있던 민호는 녀인의 얼굴이 얼핏나타나는 순간 침을 탁 뱉어놓았다.     그것은 날아가 적중한 자리에 자리잡았다.    《어마나!》     졸지에 침벼락맞고 되게 놀랜 녀인은 비명을 지르면서 냉큼 뒤로 물러났다. 전혀 예견못한 일이였다. 산채 나리님의 보배같은 귀동딸이 이꼴이 되다니!     민호는 속이 후련해지면서 금시 웃음까지 텃치려했다.     녀인은 알아듣지 못할 소리로 쭝얼대다 정면에 나타났다. 처음보는 몰골이다. 분명 목소리만 들을 수 있었던 어제의 그 녀인일 것이다. 그녀의 손에는 자그마한 권총이 쥐여 있었다.     민호의 눈길은 지금 자기의 숨통을 노리고있는 그 권총 하나에 멎었다. 아니 저건 내가 전날 돈주고 산 골트가 아닌가. 사서는 한방 쏴보지도못했는데.     녀인은 입을 옥물고 총구를 사내의 이마에 겨누었다. 그러다가 그 총구는 아래로 내려와 가슴을 겨누었는데 녀인은 웬 일인지 겨누던 곳은 쏘지 않고 불시로 돌벽에 대고 련거퍼 세방갈겨놓고 그만 훌 가버렸다.     옆간에서 갑자기 울음이 터졌다. 전날 비도들 손에 인질로 잡혀온 자였다.    《어이구! 어이구! 하나님맙시사! 나도 이젠 죽겠구나, 나도 이젠 죽겠어. 이놈의 토비들이…이놈의 강도들이…이놈의 백정들이…내 집 다 망하게 하고…애고고!》     넋두리같은 시설을 슬프게 해대며 몹시도 울어재꼈다. 보아하니 옆간에 새로같힌 인질이 아마 죽은줄로 아는모양이다.    《자식이, 시끄럽게 노네!》     이쪽은 신경질만 빡 났다.     울음소리는 그만 뚝 끊고말았다. 민호는 침을 탁 뱉었다. 겁쟁이에 대한 경멸이였다. 하지만 그 다음에는 자기가 뱉은 침자국이 피자국으로 변해보이면서 싸늘한 두려움이 혈관에 슴배여들기시작했다. 신이 이 세상을 주사위로 장난치진 않으련만 왜 이럴가. 파리목숨만도 못한 생령! 얼마나 무고한 인질이 아까운 제 생명을 비도손에 놀이개로 빼았겼겠는가. 내 자신이 방금 그런 처지에 들었다가 사경을 겨우 넘겼거니 실은 절망에 떨려 우는 남을 경멸할 신세도 비웃을 신세도 못되였다.      목이 마르다못해 타드는것만같았다. 이제는 정말 죽지 않을가. 민호는 있는 기운을 다 내여 발악적으로 소리를 내질렀다.    《물을 달라, 물! 물! 이놈들아!》     웨침소리를 들었는지 이윽해서 가벼운 발작소리를 끌며 녀인이 다시나타났다. 한데 그녀가 손에 들고 온 것이 또 호로병이여서 민호는 도끼눈이 되었다.    《옛어요, 물.》     녀인은 이쪽에서 받지도 않고 자기를 당장 잡아먹을 상이니 갖고 온 호로병을 철창가에다 슬며시 놓고는 입을 비쭉하며 돌따서 가버렸다.     저계집년 악귀다만 그래두 생김새 하나는 무척곱고 얌전한 티까지 나니까 혹 심청이 바르게 돌아졌는지두몰라. 자기가 또 어제처럼 놀림당한다고만 여겨온 민호는 한편 이런 생각도 나는지라  호로병을 가져다 마개를 빼보았다. 호로병안에 들어있는건 과연 그가 찾고있는 물이였다.           웬 일인지 이틑날도 사흩날도 그를 불러내가지도 건드리지도않았다. 토비들이 그를 잊은걸가 아니면 흉살신이 비칠때라서 잠시 놔두었다가 택길(擇吉)을 해서 처리하려는걸가. 때가 돌아오면 굶기지 않고 먹을 것을 갔다주거니와 지어 밤에 덥고자라면서 덮개까지 갔다주니 모를일이였다. 이자들이 나를 죽여도 더 험악하게는 굴지 않고 죽일모양인가부다.     위진이라는 그 허저인비도는 다시나타나지 않고 대신 민호와 나이비슷한 자가 그를 감시하고 있었다. 여기에 온지 나흘이 되는 날 점심때였다. 감시를 맡은 그 비도가 강태죽을 한사발 갖고와서 주면서 민호더러 먹으라는것이였다.     왜 오늘은 이따위 색다른 음식을 주는걸가, 이게 날 죽이자구 마지막먹이는 사자밥이 아닌지, 그럴수도있으리라 생각하니 민호는 가슴이 어름장같이 싸늘해져 고개를 외로 탈았다.    《허, 이거. 왜 그러우?》    《이따위건 왜 날 먹으라는거냐?》    《왜 나뻐? 이건 갈분넣은건데.》    《그런건 왜 주는가말이다.》    《접때 반강자너무먹구 아직두 보깨는게 아니여. 그런다구 위아가씨가 념려해서 손수 쑨건데. 안먹겠다면 아예 개나주지.》     그 말을 듣고보니 이쪽에서 생각하는것과는 생판으로 다른지라 민호는 저도모르는 사이 손이 불쑥 나가고말았다.    《잠간, 그걸 인줘. 내가, 내가  먹겠어. 먹겠단데두. 인줘.》     그는 죽그릇을 받자마자 게눈감추듯 후룩후룩 먹어버렸다.     이상했다. 먹으면서도 리해키 어려운 의문만 갈마들었다. 토비딸이 그래 제가 죽이자던 포로한테 자비를 베푼단말인가? 그럴 수 있을까. 악의새끼니 그 새끼도 악마일텐데. 그래 그런 녀자도 인성(人性)이 있단말인가? 이건 사람을 얼떨떨하게 만드는 일이였다.      강태죽을 가져왔던 자가 가버리자 위진이란 토비가 왔다. 민호는 이럴때 그가 다시나타난게 반가왔다.    《아, 오셨슈. 왜 까딱 보이질 않았어요?》    《그러니까 날 생각했다는거지?》    《그렇습니다. 우리야 이젠 서로 구면이 된 사이가 아닙니까.》    《어, 어, 그래. 그래. 하하하…》     위진은 포로로 잡힌 이 조선젊은이가 자기를 좋게 보고 친절을 나타내는 것 같으니 입을 뻐개가며 웃었다.    《날 보구팠을수도 있어. 난 임잘 잠재울려구 안하니까.》     민호는 그의 살결좋은 상판을 말끔히 올려다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사람은 달마냥 감추는 어두운 면이 있는거다. 이자는 여기서 무슨 급에 있는 놈일가? 민호는 그가 자기에게 술을 먹이던 일을 다시생각하니 속이 꼬이였다.     《여보시오. 내 한가지 물어볼까요.》     《물어봐, 뭔가구?》     《족제비가 수탉하고 한굴에 있으면서두 그걸 잡아먹지 않는건 왜설까요?》     《아따, 거야 족제비가 인심좋아 그런게지 뭐야.》     《세상에 그래 인심좋은 족제비도 있을가, 먹이를 앞에 놓구서두 안잡아먹는 그런.》     《왜 없겠어, 있지.》     《되지두않을 소리. 배만 고파보지. 뼈도 안남게 먹어치울걸.》      위진은 식자없어도 머리가 아둔한 인간은 아니였다. 그는 눈을 꺼무럭거리며 듣더니 대방이 자기를 비꼬고있음을 알아채고는 낯색이 단통흐려졌다.     《내가 그래 아무때건 자넬 잡아먹으리라 그 말인가.》     《글쎄요. 그걸 어떻게 알겠습니까. 당신은 벌써 한 번 솜씨를 뵌게 아닙니까, 날 죽일려구.》     《임자두 어차피 눈감을바엔 기껏먹자구한게 아니였나. 괜히 남만 나무리면서 트집잡지 말게. 내 이 왕견이까지 지독한 악한으루 보다니 원. 난 그따위 소리 반가와안해.》     《여보시오, 어른. 그러니까 당신네들두 선한 마음있다 그 소린가요?》     《건 왜 지지콜콜  캐는건가. 그래 젊은이 눈에는 우리가 그저 악한으루만돼보이나?》     《살인하고 략탈을 하는 당신들이 악한아니구 그럼 부처님이란말입니까? 하긴 부처님을 목에 걸고다니는 걸 보면야 선함을 동경해서 그런소릴하는 것 같은데…》     《이 사람 인사불성이네. 무슨 망탕소릴 이리두죄치는건가.》     《인사불성인건 내가 아니라 바로 당신들입니다. 왜 생사람잡아다놓구서 이럽니까. 당신도 알다싶이…난 돌아가야겠습니다.》     《사정은 나도 아네만은 이제 누굴 원망하겠는가. 자넨 범계를 한 사람이야, 알았어?》      그렇다, 나는 범계(犯界)를 한 사람이다. 민호는 승인하지 않을래야 승인하지 않을 수 없다. 산삼캐러 들어왔던 그 심마니처럼 끝장을 보고말겠지. 처참한 운명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왔다. 허나 그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살인을 도락으로 삼을 이따위 인간앞에서 눈물을 보이고싶지 않았던거다.      위진은 자기를 무엄스레 대하면서 제 맘속의 말은 다 토해놓는 조선족젊은이를 곱지 않은 눈매로 흘겨보다가 코방귀를 흥 뀌면서 몸을 홱 돌렸다.      민호는 그가 그모양으로 가버리자 후회하기 시작했다. 혹시 나를 동정해 구해줄런지도 모를 사람을 내가 실없이 격노시킨게 아닌가싶었다.      지금은 이 광활한 만주ㅡ관동땅에서 토비들이 한창 욱실거리는 때였다.        군벌혼전에 나라가 치정(治定)이 안되니 꼭마치 장마철 개구리모양으로 좀도적, 불한당, 떨거지깡패…별의별 오도깨비들이 다 뛸쳐나와 제 세상을 만났노라고 들고납닥치는판인데 그런 자들마저 그 무슨 대성(大成)이요 오합군(五合軍)이요 쌍양호(双陽好)요 서패천(西覇天)이요 하는 이름을 버젓이 내걸고 료략질을 해먹으니 그놈의 토비성분이 과연 복잡하기도했다.      전문 가난한 백성집을 돌아가며 터는 자들이 있었는데 그것이 알짜강도였다. 그런자들은 거의가 기와가마는 감히 다치지 못하면서 보통백성을 인질로 잡아가거나 생활이 중축이 아니면 그보다 못한 집의 재물만 노리는 것이다. 민간에서 호자(胡子)라 부르는 것이 바로 그런자들이다. 그들은 인원수가 많아야 7~8명, 지어는 혼자서도 이름을 달고 료략질을 해먹었다. 백성들은 이런자들을 제일증오하고 저주했다. 억강부약(抑强趺弱), 살부제빈(殺富濟貧)의 깃발을 들고 전문 기와가마를 털고 때로는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기도 하는 류자가 있는데 이런 토비는 우의것과 성질이 완연히 달랐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인원수가 많고 무장이 갗추어졌으며 우두머리는 담량이 있고 총잘쏘며 리외사량(里外四梁) 팔주(八柱)는 모두 만만치 않았다. 그들은 기와가마를 들부시는 외에 가난한 사람을 도와 자질구레한 비도손에 잡혀간 인질을 되찾아주기도했다. 이런 큰 무리의 토비는 자연히 정부측과 겨루면서 관계를 발생했는바 왕왕 대량의 경찰대거나 군인무장의 습격을 받아 숙청될 위험이 있길래 자체를 보호할 무장력을 장대시킴과동시에 산채의 안전에 대해서 각별한 주의를 돌리였다.     염왕산토비가 바로 이러했다.     이 염왕산의 개척자는 위삼포(魏三浦)의 아버지 위록산(魏錄山)인데 그는 본래 청나라 장교출신이였다. 청나라때 생겨난 흑룡강장군아문(黑龍江將軍衙門)은 완전히 군정통치를 위해 설치된것으로서 그것은 하나의 엄격한 군사조직이였거니와 흑룡강장군휘하의 조직형식이였다.     동치(同治) 2년(1863)이후 흑룡강장군은 팔기병(八旗兵)중에서 꼴꼴한 자들만 선발하여 따로 팔기련병(八旗練兵)을 편성해 자기 관할하에 두면서 광서(光緖) 8년(1882)에는 봉천(심양)에서 교습(敎習)을 청해오고 천진에서 대포를 가져다 7년간 기계화훈련을 했다. 이 기간 흑룡강의 치치할, 후룬벨, 무얼근, 훅호트 등 성(城)의 훈련군은 보병 74개소대, 기병 16개중대, 포병 4개중대였는데 병력은 도합 4,700여명이였다.       그때 기병소대장이였던 위록산은 나이 이미 30세를 넘겼고 처자까지 있는 몸이였지만 대중이 공인하는 출중한 기마술과 용감성으로 하여 퇴대하지 않고 중대장으로 승급하게 되였다. 그런데 그와 암암리에 지위를 다투던자가 그의 증조할아버지가 조정에 있다가 반역죄로 몰려 관동에 추방되여 온 이왕지사를 새삼스레 들춰내여 그것을 상급에다 밀고하는바람에 위록산은 그만 관문에 올랐다가 나떨어지고말았다. 이에 앙심을 먹은 위록산은 기회를 노리던 중 어느날 밀고자를 칼로 찔러 죽여 머리와 밸을 병영의 대문에다 걸어놓고는 그 자리로  부대를 뛸쳐나와 산에 들어가 록림객이 되고말았던것이다.      한 번 들여놓은 길에서 발길을 돌리기는 어려웠다. 그후 그는 이 산을 근거지로 삼고 관동일판을 횡행하기시작했다. 그러다가 1900년 의화단운동이 일어나자 그해의 7월에 그도 자기의 류자들을 거느리고 구국성전에 나섰다. 그는 봉천에서 모집해 온, 축로공과 파산된 농민으로 조직된 의승군(義勝軍)과 함께 흑룡강의 청나라군대인 진변군(鎭邊軍)을 협력하여 싸하로브소장이 지휘하는, 하바롭쓰크로부터 송화강을 거슬러올라오는 로씨야침략군을 항격하여 용감히 싸웠다. 그러다가 이듬해의 봄에 새자를 거느리지 않고 외지로 나갔던 그는 전에 한차례 지반쟁탈로 인하여 마찰이 있었던 밀산일대의 토비습격을 돌연히 받아 목숨을 잃고말았다.      그때 아들 위삼포가 나이 31세였는데 그는 창졸간에 사랑하고 애대하던 아버지를 잃고나니 구곡간장이 끊어질 듯 절통하여 련며칠을 울음속에 파묻혀있다가 분연히 떨쳐나가 싸워 끝내 적패를 섬멸하고 원쑤를 사로잡았다. 위삼포는 산채에 돌아오자바람으로 원쑤에게 을 시켰다. 은 토비들이 쓰고있는 형벌중 가장 잔혹한 형벌이다. 위삼포는 새자(崽子)를 시켜 굵기가 팔뚝만한 백양나무를 한길만큼 남기고 우를 자르게 한 다음 웃끝머리를 뾰족하게 깎게 했다. 그리고는 붇잡아 온 자를 알몸뚱이되게 발가벗겨 들어서 그 우에 올려놓았다. 나무가 믿구멍으로 들어갔다. 자체의 육중한 몸무계에 의하여 굵은 나무가 몸속에 점점 깊이밖혔으니 그 정도가 어떠했겠는가. 위삼포는 그렇게 원쑤를 죽여서는 목을 잘라 아버지의 제단에 올려놓아 제를 지낸것이다.           저녁켠이 되자 다른 한 비도가 와서 문을 열어주면서 민호더러 나오라해서는 데리고 가더니 다른데다 넣었다. 두령이 들어있는 중앙산채에 딸린 별채였다. 해광이 충족하고 아담하게 꾸려진 방이였는데 북켠에 갈까래를 펴놓은 구들이 있고 구들에는 바싹 말리운 고사리묶음이 차곡차곡 쟁겨져 있었다. 창고는 아닐텐데?…      민호가 바로보았다. 그것이 본래는 전에 하녀들이 들어있던 방이였다. 압채부인이 되여 오래동안 산채에서 황후같이 떠받들리며 살아오던 위삼포의 마누라가 5년전에 타계하게 되니 시종이 더는 필요치 않거니와 계집들이 꼬리질하며 피우는 냄세에 새자군심이 소란해진다고 여긴 위삼포가 그네들에게 로비를 주어 전부 산채에서 내보내다보니 이같이 비여있게 된 것이다.      위삼포는 민호가 대취하여 지각마저 잃은 사이 위진이한테 들어 그의 신원을 대충알게 되였다. 하지만 위삼포는 그래도 사람을 방정에 까지 보내여 거기서 아무날 아무시각에 남의 말을 빼앗아 타고 달아난 사람이 있는가 없는가를 조사해오게 했다. 사실이 그러함이 증명되였다. 하여 위삼포는 이 조선젊은이가 경찰의 끄나블이나 관가의 밀정이 아님을 알고 엄계(嚴戒)를 해소한 것이다.      사실 위삼포는 막부득이한 경우를 내놓고는 인명을 함부로 취급하는 사람이 아니였다. 젊은이가 안해를 잃고 헤매는 사실을 명백히 알게된 그는 그가 비록 범계는 했지만 그것으로 인해 죽이지 않고 들어올 때 처럼 눈을 싸매여 돌려보내려했다. 한데 요즘따라 왼일인지 내내 꿈자리가 시원치 않아 길일을 택하다보니 즉각 산채를 내보내지 않고있는거다.      한편 이런줄을 모르는 민호는 의연히 불안한 가슴을 끓어안고있어야했다. 그는 죽더라도 비겁하게 죽지는 않고 독림군인답게 용감히 죽으리라면서 용기를 냈다. 허나 용기가 공포에 대한 저항이며 공포를 극복하는 것이지만 결코 그를 없애는 술법은 아닌거다. 나를 왜 이런데루 자릴 옮겼을가? 이젠 어떻게 할셈인가?…이틑날도 민호는 의연히 불안과 의문과 위구가 엉겨붙는 착찹한 고뇌속에서 괴롭게 방황하고 있었다.      밖이 갑작스레 소연해졌다. 웬일인가고 내다보니 비도 여럿이 안장지운 백말을 마당에 내다놓고 평을 하느라 떠들었다. 한데 다시보니 그건 분명 민호가 방정에서 타고 온 그 백마였다.      위삼포의 보배딸이 나타났다. 이름이 향란(香蘭)이다. 그녀는 몽골녀인들의 명절차림같은, 목깃과 단을 빨간띠로 두른 람색비단옷을 입고 허리에는 넓다란 띠를 띠였으며 발에다는 박차를 댄 목긴 기마용장화를 신었다. 일견하여 말을 타자고 일부러 준비하고 나온 차림새임이 분명하다.     건장해보이는 사나이가 키큰 말에 오르는 그녀를 거들어줬다.    《저 녀석은 마마두 계집의 남편일테지.》     민호는 그들이 남의 말에 감질내는게 아니꼬와 혼자소리로 내뱉곤 이사이로 침가지 찔 깔리였다. 내가 저 자식들 노는 꼴 좀 구경해볼가부다. 마침 문을 잠그지 않은지라 그는 밖으로 나왔다.     향란이가 산채의 널다란 운동장을 달리기시작했다. 한고패 두고패 말은 점점 속력을 냈고 녀인도 박차를 가하면서 말을 점점 세차게 몰았다. 짜장 경마장에나 출전한것같이.    《허, 대단한데!》     민호는 녀성이 말을 이같이 잘타는 걸 처음보는지라 은연중 혀를 내둘렀다. 일개 녀성이 말을 저같이 잘타니 사내놈들이야 더 이를데있으랴싶었다. 그는 중앙산채주위 여러군데 매여있는, 숫자를 헤아릴 수 없는 말들을 일별했다. 그러노라니 을 비져냈다는 밀산의 청보산패토비들이 또 생각났다. 그자들도 마적이였다. 비록 수자는 이네들과 비길바못지만. 이곳 염왕산은 얼핏봐도 비도가 청보산패의 몇배였다. 숫자가 50여명밖에 안되는 청보산을 숙청하는데 그같이 애를 먹었을라니 이것들을 숙청하자면?…빤하다. 웬간한 무력으론 어림도없을 것이다.     향란이가 한바탕 질주를 하고나니 직성이 풀리는지 말잔등에서 내렸다.     말이 짐을 부려 거쁜한지 머리를 내저으면서 투레질다. 이번에는 아까 그녀를 거들어주던 녀석이 말잔 등에 오른다. 녀석이 맥을 뺀 말을 쉬울 념도 안하고.     《저놈의 렴치없는 새끼가!》      민호의 입에서는 부지불식간 이런 질타의 웨침이 튀여나갔다.     《이놈아, 말에서 내려라!》      말탄자는 흠칠했다. 어정쩡해있다가 자기에게 감히 이같이 호령하는 자가 대체 어느 누군가고 찾았다. 모두가 그 모양이다. 방금 귀를 때리는 웨침이 날아온 출처를 찾느라 두리번거렸다. 그러다가 그들은 드디여 그건 다른 누군게 아니라 바로 두팔을 앞가슴에 포개고 서서 자기들 쪽에다 경멸의 눈길을 던지는 이켠의 포로인것을 발견하고는 마치도 어물전을 만난 까마귀모양으로 떠들었다.     《핫, 하하하…》     《저건 또 어디서 난 똥벌레냐, 엉?》      이쪽이 누구란건 향란이가 안다. 그녀가 무어라 몇마디 하자 방금 말잔 등에 올랐던 자가 도루뛰여 내렸다. 그자는 이켠을 향해 성큼성믐 걸어오면서 제 옆꾸리에 찬 칼을 뽑아드는것이였다.      향란이가 그러는 꼴을 보자 소리쳤다.     《아니, 보재! 왜 그래요. 철붙이 하나 없는 사람한테 청자빼들다니 원! 그러면 너무도 체신머리없잖아요.》      사나이는 녀인의 조소담긴 힐난을 받고보니 객기가 빠지는지 침만 요란스레 땅에다 뱉고는 되돌아서며 무어라 두덜댔다. 꼭 마치도 모주먹은 돼지같이. 그냥 서있다가는 좋은 멋이 있을 것 같지 않은지라 민호는 집안으로 되들어오고말았다.      다른 일이 더 발생하지 않았다. 비도들은 그에게 먹을 것을 그냥 날라다주었다. 주식은 수수밥이다. 배가 부를 정도의 량이였고 반찬은 절인 돼지고기아니면 산나물채였다. 잠자리를 바꿨겠다 먹이는걸 봐도 이만하면 험하게 구는건 아닌데 운명을 점치기 어려워 가슴은 그냥 얼어들면서 진정키 어려웠다.      한데 밥을 날라온 자가 돌아가지 않거니와 손에 총까지 휴대해서 민호는 생각이 더 불길한데로 달음질쳤다. 그자는 둔박한 나무걸상을 끌어다 문가에 놓고 궁둥이를 붙이더니 생각밖에 낮은 목청으로 노래를 불렀다.                    서방님 머리돌려요                      류자무리에 들지 말아요                      집에는 처자가 있잖은가요                      나돌아다니지 말아요                      사람죽이면 대죽음하고                      남을 해치면 보복당해요                      어느 집엔들 누나 동생 없겠나요                      어느 집엔들 처자가 없겠나요                      사람마음 어서갖고 자기를 봐요                      곁사람한테 근심걱정 주지 말게요.        민호가 노래를 듣고는 저으기 놀랬다. 아니 토비의 입에저 저런 노래가 나오다니! 이건 아닌게아니라 개가 풍월하고 승냥이가 경을 읽는것만같아서 자기의 귀를 의심할지경이였다. 민호가 이제 들으니 처음이지만 실은 그것이 지금 항간에서 떠도는, 안해가 제 남편더러 토비노릇을 하지 말아달는 였다. 그런것을 젊은 비도는 흥얼거리기를 좋아하다보니 저도모르는 사이 그만 입에서 새여나간 것이다.     《밥은 안먹고 뭘해, 이자식!》      이쪽의 정신이 자기한테 집중되여있는 것을 발견하자 그자는 소리를 꽥 지르면서 눈을 곱잖게 흡떳다.      민호는 힛죽 웃어보이고는 대방이 알아듣지 못하는 조선말로 자식이 우둘렁거리기는 제기! 하고는 밥을 먹기시작했다.      그자는 빈 밥그릇을 갖고가고는 다시나타나지 않았다.      한낮이 되자 산채는 조용해졌다. 해도 민호는 밀물같이 달려드는 자비와 절망에 그냥 시달림을 받아야했다. 저승길과 변소길은 대신못가는거야 하니까 내대신에 죽어줄 놈은 이 세상에 없을거다. 어쩌면 좋을가, 죽을 수가 닥치면 살 수가 생긴다지만 내가 그래 이눔의데서 빠져나갈수 있을가?…그것이 쉬울리는 없는거다. 사처에 감시소가 있을것이요 그러다 다시잡히날이면?…그럼 내가 바보같이 여기에 앉아서 제 죽을 시각만 고스란히 기다려야한단말인가?…감연히 난국에 림하여 구명책을 찾고있던 민호는 저기 구석진 벽에 집승의 뿌리가 하나 걸려있는 것에 눈길이 다시갔다. 노루뿔인가했더니 다시보니 아니였다. 그것은 록용이였다. 피발린 두 개골이 붙어있는 걸 보니 떼여낸지 그리 오래지 않은것이였다. 민호는 알고 있다. 음력 5월말부터 6월말까지 록용이 4평두(四平頭)가 자라는 기간이고 이때가 또 록용이 질이 제일좋은 계절인 것이다. 지금이 양력으로 9월초니 제철을 놓치였다. 그래도 속은 아직 채 마르지 않은 것이였다. 금수어충(禽獸魚蟲)이 다 네놈의 거냐. 내가 죽을 운명이라면 차라리 저놈의거나 먹어보고 죽는편이 썩 났잖을가. 민호는 스스로 기발한 궁리라 여겨져 그것을 벗겨 제 입에 가져갔다. 이 시각의 그는 이미 정신이 문란해져 온 몸은 우둔한 담력뿐이였다…     류자들의 후근을 책임진 백두옹(白頭翁) 량태(糧台)가 들어왔다가 록용을 훔쳐먹고 늘어진 민호를 즉시 발견했다. 하여 조용하던 산채에 일장의 소란이 생겨나게 되였다.    《하, 이 자식이 바르게는 돌아가네!》    《날쏘시개나 먹고 뒤여질 놈!》    《담통이 커두 이만저만아니다!》     민호는 왁짝 떠들대는 비도들에게 떠밀리고 들리여 어디엔가 미츨하게 자라서 하늘을 찌르듯 하는 소나무밑에 가서 섰다.     위삼포가 그한테 큼직한 도끼를 던져주었다. 그리고는 엄엄한 얼굴을 해갖고 총을 꼬나들더니 그를 향해 엄포를 놓았다.    《이놈! 잘 듣거라. 넌 내가 백을 세는 사이에 그걸 찍어넘겨야한다. 알아들었느냐? 그런면 살려줄거요 안그러면 알겠지, 이놈!》     그리고는 과연 하나, 둘 하고 셈을 세기시작했다.     뭐라는가, 날 살려주겠다구? 내가 그래 살아나갈 구멍수가 있단말인가! 민호는 정신을 펄쩍차렸다. 그리고는 도끼자루를 어스러지게 잡고 미친 사람같이 나무를 찍기시작했다.     나무쪼각들이 휙―휙―날렸다.     온 몸이 차츰 물참봉이 되어갔다. 그래도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고 생각하니 죽을 둥 살 둥 정신없이 도끼를 휘둘렀다.      위삼포의 셈이 끝나감과 함께 나무는 도끼날을 맞아 넘어갔고 민호도 그 자리에 쓰러지고말았다.  
125    장편소설 <<관동의 밤>> 제1부(6) 댓글:  조회:2135  추천:0  2015-02-03
                 6            민호는 흑룡강북안 로씨야의 불라고베쒠스크와 마주하고있는 흑하(黑河)에 와서야 적잖은 새소식을 듣게 되였다. 옹근 3년철을 어래무에 들어밖혀있다보니 귀머거리장님이나 답지 않았다.    독립운동자들이 동산재기를 꿈꾸고 만주에다 참의부(參義府), 정의부(正義府), 신민부(新民府)라 하는 준국가식의 자기 민족의 정부를 건립해 갖고는 그 두리에다 동포들을 묶어세우고 계몽을 하면서 반일활동과 투쟁을 계속 활발히 전개해나가고 있었다. 흑하에 와서야 들은 소식이였다. 이러한 소식은 지어 너무나 돌연적인 감까지 주면서 그를 걷잡기어려운 희열에 잠기게 만들었다.    오, 나를 받아다오! 어서 받아다오! 적막과 고독에 묻혀 갈팡질팡 하는 나를 안아다오! 따뜻한 동포애로 포근히 안아다오!… 민호는 절절히 웨치면서 로씨야로 건너간 친구를 안타깝게 불렀다. 친구야, 내 친구야, 너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차라리 가지나말았을 것을… 한시급히 어래무로 돌아가고 싶었다. 서둘러 준비하여 안해를 데리고 동포가 많이 모여사는 녕안(寧安)이나 해림(海林)쪽으로 가고싶었다. 이 북만에서는 거기에 신민부가 있다잖는가. 다른 누구면 몰라도 한때 자기가 있었던 북로군정서의 김좌진장군(金佐鎭將軍)이 주장이 되여 세운 정부라니 민호는 애틋한 감회속에 굳건한 믿음이 갔다.    마침 동강진까지 가는 배가 있어서 민호는 제꺽 올랐다. 돛이 순풍을 안을시 옹근 세주야면 집에 당도할것이다. 나와있은 시간이 모두해야 8일. 하건만 그것이 마치도 여덟달이 된것만같았다.    민호는 집을 나올때의 일의 되새겨졌다. 친구찾으러 정작 떠나자니 츄얼의 맑던 얼굴이 단통 흐려났다.   《왜 이러오. 아까도 날보고 친구를 찾아봐야한다해놓구선?》   《찾지 말란는게 아니얘요.》   《그럼 왜 그러오?》   《나가면 며칠 걸려요?》   《열흘쯤 걸릴것 같소..》   《열흘이나? 어디멜 가시겠어요?》   《흑하에.》   《그렇게 먼데루요?》    츄얼이는 아래로 떨구었던 고개를 다시들어 남편을 마주보는데 크고 동그란 눈에는 어느덧 맑은 이슬이 가랑가랑 맺혀있다.   《가지말라오?》   《…》   《내 갔다가 인차오지. 안올가봐 그러우. 어린애기같이 울긴...》    입을 감쳐물고있던 츄얼이는 그제야 얼굴에 웃음을 짓는다. 민호는 사랑스러운 안해를 자기 품에 꼬ㅡ옥 안아주었다…    츄얼이는 엄마집에 가지 않고 남편올때까지 기다리겠노라했다. 오늘도 츄얼이는 시내가에 앉아 쿵캉치를 불고있을 것이다.  남편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릴 것이다. 민호는 흐름이 줄기찬 흑룡강의 물결을 탄 배가 겨울에 얼음강판을 미끄는 퉈르치만 못지 않게 빨리달리건만 그것이 굼벵이같이 굼뜬 것 같았다.     돛배가 어래무에 이르니 이틑날 오후 5시경이였다. 민호는 사공더러 배를 치더룽이네 시르맨커에 대여달라해서 거기서 내렸다.     치더룽네 시르맨커는 비여있었다. 사람만 없는게 아니라 고기잡이 도구며 간이살림도구도 없었다. 그사이 자리를 옮긴건가? 그럴리는 없겠는데… 민호는 시르맨커 동남쪽으로 나있는 오솔길로 해서 얼마가량 가다가 남에서 곧추흘러내리고있는 어래무시내를 따라서 올라가기시작했다. 그는 자기가 기덕이와 같이 치더룽의 손에 구원되던 날 유만진이네 그 낡은 배에 앉아 마을로 가던 때의 일을 다시금 회상했다. 그때 그가 탄 배의 노를 저은 사람이 지금의 처남 나쟈였다. 츄얼이는 배의 앞코숭이에 앉아있었는데 뜨물독에 빠져 퍼덕이다가 거의 죽게된 장닭같이 꼴불견이 되여갖고 백꼴못쓰는 이 민호를 자주눈빗질했던것이다. 소녀의 고운 눈이 흐려져있다가 때로는 웃음을 담기도했다. 그래서 민호는 저 계집애의 속맘은 어떠할가 나를 불쌍히 여기는걸가 아니면 놀려주는걸가 하고 진가를 가늠하느라 공연히 속을 태웠던거다…    저기 짝을 맞춰 새 쌍이 된 비둘기의 보금자리마냥 안해와 함께 여직살아온 시르맨커가 보인다. 민호는 기쁨에 마음이 달뜨기시작했다. 혹시 안해가 부는 쿵캉치소리가 들리지나 않나해서 귀를 강구면서 걸음을 재촉하기도 했다. 한데 시르맨커에 이르러 보니 냇가 말뚝에 매여 있어야 할 우머르천이 보이지 않고 개도 짖지 않았다. 어디로 갔을가? 개를 두 마리씩이나 데리고 마실을 갈수는 없겠는데… 불러봤자 헛짓이였다. 간밤에 내린 소낙비에 산물이 내렸는지 내물이 불었다. 민호는 옷을 훌 훌 벗어 감아 머리우로 치켜들고 겨드랑을 치는 시내를 건넜다.    웬 일이냐?… 내를 건는 민호는 차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문은 쇠를 놓지 않았거니와 제대로 닫겨있지도 않았다. 그래 들어가보니 첫눈에 안겨오는 것이 수라장이 돼버린 장면. 안켠 구석에 세워놓고 간 총이 보이지 않았고 벽에 걸렸던 안해의 화상도 벗겨져 바닥에 뒹굴었다. 거기에는 어지러운 발자국이 큼직하게 찍혀있었다. 일났구나! 민호의 가슴속에 널장같은것이 뚝 떨어졌다.   《츄얼이!》    그는 밖으로 달려나오면서 목놓아 안해를 불렀다.    새들만 놀래여 달아날 뿐 사방은 괴괴하다.    늪으로 달려가보았다. 버려둔 통발만 있을 뿐 거기에도 사람은 없었다.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민호는 그길로 곧추 마을을 향해 반달음을 놓았다.    츄얼이는 친정집에도 보이지 않았다.   《이 사람아, 왜 인제야 오나?》    허저인장모가 사위를 보더니만 붙잡고 락루했다.    며느리 둘도 울음을 터치였다. 오열에 떨었다. 처가는 급기야 초상난 집같이 되고말았다.    민호가 발작적으로 목소리를 뽑아세웠다.    -《츄얼이 어딜갔어요?!》    나쟈의 처가 울음을 그치고 알려주었다.   《시누이가 잃어졌어요!》    츄얼이가 잃어지다니?....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였다. 민호는 이런 뜻밖의 변고에 그만 명문이 꺽 막혀 말도 울음도 나오지를 않았다. 녀인들이 밖으로 달려나가려는 그를 꼭 붇드는것이었다.   《어디로가나 이 사람아.》   《내가 찾아볼텝니다!》   《이 사람아 이젠 귀신이 다 됐을 사람을 어떻게 찾는다구 그러나. 어ㅡ엉…》    절망한 장모는 맥진하여 울음소리마저 겨우뺐다.    나쟈의 처가 재다시 터지는 울음을 간신히 삼키고나서 입을 다시열더니 좀 더 소상히 알려주었다.   《츄얼이는 그저께 잃어졌어요. 그전날 여기와서 숙아하고 같이 버섯따러갔어요. 절이를 하겠다면서…이틑날두 가자구 약속해놓고서는 점심때가 지나도록 오질않지요. 그래 대체 어찌된 일인가구 숙아가 그리로 가보니 있어야 할 사람이 보이지 않고 개마저도 죽어있더래요. 그래서…》    나쟈도 린화도 집에 없었다. 치더룽도 없었다. 그들은 당날로 츄얼이를 찾아 떠났다고한다. 츄얼이는 살해되여 강에 던져졌거나 아니면 랍치되였음이 분명했다. 이같은 변출불의(變出不義)에 놀라지 않을 사람이 어디있으랴. 그지간 온 마을이 동원되여 그를 찾느라 분주탕을 놓았다고 한다.    어느 악한이 그따위짖을 했을가? 무슨 목적에 남의 유부녀는 해치는 걸가?…민호는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지는것만 같았다. 아아, 내 츄얼아 너는 어디에 있느냐, 내가 조금만 더 일찍왔어도 이런 변고는 생기지 않았을것을.    마침 츄얼의 딱친구 우야즈가 찾아왔다. 얼굴이 해쓱하다. 그녀도 친구를 잃어 몹시 상심한 모양이다. 그런데 우야즈는 눈길이 민호에게 미치는 순간 놀래면서 제자리에 돌같이 굳어져버리는것이였다. 왜 이럴가? 그녀는 속에 넣어두자니 가책이 심해 발거리를 놓아 대책을 세우자고 찾아온건데 은연중 잃어진 제 친구의 남편을 대하고 보니 웬 일인지 가슴이 몹시 떨리면서 입이 열려지지를  않았던거다. 모두의 시선이 그녀 하나의 몸에 박히였다. 우야즈는 고개를 꺾고 아느새 잠잠하다가 머리를 다시금 치켜들었다. 코날이 상큼하게 일어선 그녀는 맥이 풀린 갸날픈 손으로 마치 죄지은 사람같이 떨리는 제 가슴을 짚었다가 도루내리면서 숨을 크게 몰아쉬고는 용기내여 입을 여는것이였다.   《내 좀 할말이 있어서 왔어요.》    민호는 행실이 착하고 얌전한 이 처녀가 필시 제 친구의 실종과 유관되는 그 어떤 일을 말하자고 이런다는것을 제꺽 알아채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야즈, 뭘 알고있소. 어서말해보오.》   《이상한 일 한가지 봤어요. 그그저께 전날 루싼이가…》    처녀는 말꼭지를 떼고는 더 뱉아내지 못했다.   《얘야 너 뭐라니?…루싼이까 어쨌단말이냐?》    나쟈의 처가 다구쳐물었다.   《루싼이가?》    장모도 눈이 둥그래졌다.    우야즈는 목구멍에 뼈라도 걸린 것 처럼 고통스러운 낯색을 지었다. 왜 저럴가? 츄월이를 제 각시로 삼지 못한 루싼이가 지금은 우야즈와 좋와지내는 처지였다.    민호는 흥분과 조급증을 가까스로 누르면서 입을 열었다.   《야즈! 야즈는 아마두 뭘 좀 아는것같은데 시원히 말해주오. 그래야 야즈도 속이 개운해질게 아니요. 딱친구가 잃어졌는데.》   《말하지요. 그그저께전날 난 루싼이가 웬 낯모를 사람 둘을 데리고 산에 들어가는걸 봤어요.》   《그그저께전날이라지?…그그저께전날에는 우리 걔가 제 둘째형님하고 같이 버서따러갔는데.》   《어머니, 가만. 들어보자요. 그래서?…》    둘째며느리의 말이다.   《그저그래요. 난 그것밖에 몰라요. 하도이상해서…》    나쟈의 처가 물었다.    《야즈는 루싼아한테 물어보지 않았나요?》   《물어봤어요. 그날 어디에 갔더랬는가구. 건데 루싼이가 지금두 제대로 알려안줘요. 그러니 난 더 이상해서…》   《음!…》    민호는 생각에 깊이잠기면서 머리를 끄덕이였다. 우야즈가 제 련인의 의심스러움을 찾아와서까지 고발할 때는 알쪼가 있는것이다. 낯모를 사람 둘이란말이지. 그게 어떤자들이며 무엇때문에 산으로 들어갔을가?…루싼이는 왜 진상을 말하지 않을가?…의문이 꼬리물었다. 우야즈의 적발이 터무니없는건 아니였다. 아리아드나의 실오리같은 이 단서를 놓칠수 없었다. 그이상 무엇을 더 바란단말인가. 멍청해서 쭈물거릴 때가 아니였다. 민호는 우야즈보고 알려줘서 고맙다 그 누구와도 네가 고발하더라는 말은 안할테니 안심하라 하고나서 그 자리로 곧바로 루싼이를 찾아갔다.     루싼이가 집에 없었다. 고기잡이 나간 것이 아직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기다리는 수밖에.     날이 저물어가고있었다. 파아란 물새가 울며 제 굴을 찾고있을 때 노의 삐걱거리는 소리들려왔다. 마을동쪽 내가의 버들숲을 가르고 있는 실오리같은 오솔길을 혼자서 오래동안 초조히 바장이던 민호는 마침내 돌아오고있는 루싼이를 발견하고 불렀다.    《루싼이 내 좀 보자구!》     루싼이는 와뜰 놀라면서 머리를 이쪽으로 돌렸다.    《나야. 귀신도 아닌데 놀라기는. 한가지 알아볼일이 있어서…》     이쪽은 벙긋 웃어주곤 배를 가까이에 대이라고 손짓했다.     《무, 무슨일을 나하구…》     루싼이는 배를 기슭에 갔다대이면서 떠듬거렸다.    《다른일아니야. 요전날 루싼이가 사람 둘을 데불구 산에 들거간적있나? 이 마을의 사람아닌.》     도적이 발 저리다고 캐물었더니 루싼이는 대번에 얼굴에 황기가 끼면서 안절부절못했다.    《왜 대답이 없나? 난 루싼이를 죽일놈으로 보고 이러는게 아니야. 그저 루싼이가 누굴 데불구 뭣하러 산에는 들어갓댔는갈 똑똑히 알자구할뿐이야. 숨기려말구 솔직히 바른대로 알려줘.》        《나도 면목은 모르는 사람들이요. 정말이요.》     루싼이는 입을 닫아걸려다 될것같지 않으니 실토하고말았다.     그날 한낮때였다. 루싼이는 큰강에 놓은 주낚들을 거둬서 배에 싣고 지금모양으로 이 내를 올라왔다. 아침에나 아니면 저녁켠에 갔어도 그는 그런 불쾌한 일을 당하지 않고 모면했을것이다. 그가 민호네 시르맨커를 지나고있을 때 공교롭게도 웬 낯모를 외지사람 둘을 만나게 되였던거다. 그자들은 그를 보고 배를 좀 가까이에 세우라해놓고는 여기 이 집의 사람들은 다 어디로갔느냐고 캐물었다. 루싼이는 처음에는 수상쩍어 그건 왜 묻는가고했다. 그랬더니 저쪽에서는 자기들은 여기서 사는 두 조선젊은이와 잘아는 사이인데 오래간만에 와보니까 집이 비여있어서 묻는거라했다. 루싼이는 의심을 거두고 아 그런가 청년 하나는 약 둬달전에 어디론가 가버리고 하나만 남아 지금 색시얻어 살고있는 중이라고 그들에게 알려주었다. 둘은 아 그런가 우린 여직 그런줄도 모르고있었지 하고는 친구지간에 아무렴 대사를 알리지도않다니 원 하면서 몹시 서운해하기까지 하는것이였다. 그러다가 한자가 루싼이보고 남아서 장가간건 어느사람인가고 물었다. 루싼이는 그게 정민호라고 곧이곧대로 알려주었다. 그랬더니 저쪽은 그렇다면 더욱만나고싶다면서 그가 그래 어디로갔는지 모르는가고 물었다. 루싼이는 민호가 외출해서 없고 집에는 지금 각시혼자있는데 그도 오전에 버섯따러 산에 들어가는 것 같더라했다. 그랬더니 저쪽 둘은 무어라 귓속말로 소곤대다가 그더러 녀인이 버섯따러 어느 산으로 가더냐 꼭 만나볼일이 있으니 데려다달라했다. 루싼이는 그러고싶지 않았다. 그러자 내색을 알아차렸는지 한 녀석이 호주머니에서 돈 5원을 꺼내놓으면서 이래도 네가 사정을 안봐줄테냐했다. 간청속에 은근한 위협이 있는지라 대가 약한 루싼이는 겁을 더럭 집어먹었다.  그 돈을 받고 길을 서주자니 자기가 죄를 짓는 것 같고 안그러자니 변을 당할것만같았다. 어떻게 할것인가? 루싼이는 궁리하다가 에라 주는 돈이나 받고보자했다. 그래서 둘을 자기 배에 태우고 마을까지 왔고 와서는 데리고 서산에 들어간건데 그날 그들은 츄얼이를 찾지 못했다. 이 일이 있어서 며칠안되여 어래무마을에서 츄얼이가 실종된 변이 나진거다.     사건조작자는 뛸데없이 그자들이였다. 민호가 얼굴이 어떻게 생겼더냐고 물었더니 루싼이가 둘중 하나는 키가 민호만큼 크고 하나는 좀 작은편인데 작은자가 상판이 희멀끔하고 이쪽의 다른 한 자는 이마에 험상한 흉터가 나있는데 자기가 보기에는 그것이  칼상처같더라고 했다. 이마에 흉터있더라?…칼자리갔더라?…그럼 그게 진사해겠구나! 그리고 낯이 희멀끔하다는 자는 가철군이겠구나! 민호는 이같이 속으로 짚었다. 기병대를 나와버린 처남 나쟈가 언젠가 볼일있어 동강진에 갔다오더니 대중검거때에 붇잡아서 류치장에 가두었던 가철군이가 언녕 탈출해버린 일과 그를 다시체포하지 않고있는것으로 해서 사람들이 아문을 허깨비라 되게 비난하더라고 말한적이 있다. 그래서 민호는 한때 그 자식이 앙갚음을 하자고 또 달려들지나 않을가고 근심했고 그러다가 죄짓고 숨어사는 놈인데 아무렴 이제 또 감히 나서랴고 경각심을 풀었는데 오늘 끝내 이런 변을 당할줄이야. 이제는 원쑤가 누구라는게 똑똑해졌다.       이 결원(結怨)은 피를 보아야 풀릴것이였다.           민호는 이틑날 어래무를 훌쩍 떠났다. 그날 상판이 희멀끔하게 생긴자가 말말간에 제 동료보고 방정(方正)에 사는 사촌형네 집에 가는 수밖에 없다더라고 하더라니 거기에 가 그자들을 찾아보기로 작심했다. 방정은 의란서쪽에 접해있는 현의 소재지다. 송화강을 그냥 거슬러올라가노라면 이르게 된다. 민호는 흑룡강과 송화강의 합수목이 되는 동강진에서 요행 열래진(悅來鎭)까지 가는 배를 잡아탔다. 열래진은 동강현과 접한 화천현의 소재지인데 거기까지만 가도 길을 퍽 줄이는 셈이다.     하나의 집념이 요긴한 것을 잊고있었다. 민호는 열래진까지 와서야 자기가 휴대한 비수 한자루만 갖고서는 원쑤 둘을 대적키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 담량만 믿고 과대하면 승산이 없는 모험이 되고마는거다. 그는 어떻게 하나 권총 한자루를 꼭 구해야겠다고 맘먹었다.     그 생각은 뜻대로 되였다. 배사공과 말했더니 연줄이 생겨 그는 돈 15원을 주고 깜찍하고 멋들어진 골트권총 한자루를 손에 쥘수 있었던것이다.     권총을 사갔고 인차 열래진을 떠난 민호는 날저믈기전에 80여리 웃쪽에 있는 가목사(佳木斯)에 당도했다. 도보로 그곳까지 오고보니 날이 저물었고 온 몸은 녹초로 되고말았다. 그는 거기 부두가에 있는 한 자그마한 싸구려려관에 들었다. 남은 려비가 얼마안되니 아껴써야했다.     려관에서는 손님의 때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민호가 거리에 나가 전병 몇잎을 사먹고 돌아오니 그 려관에 함께 든 손님들이 지난 때 여기서 발생했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민국 6년(1917년). 그러니까 6년전이다. 그해의 겨울에 강북에 있는 소백룡(小白龍)토비가 이 가목사를 털려해서 한바탕 소란이 생겼을 때의 일이다. 토비가 쳐들어온다니 가목사에서는 그자들의 략탈을 막고 상민(商民)들의 공황을 피면하기 위해 의란부(依蘭府)에다 전보를 쳐 지원해줄것을 바랐다. 하여 의란부에서는 그곳에 주둔하고있던 관영장(關營長)더러 병사를 150명 거느리고 가 시내를 지키게끔했다. 12월 14일에 과연 소백룡토비가 송화강북쪽으로부터 박근했다. 그러자 가목사에서는 경비대, 경찰대와 상퇀(商團)을 동원하여 각기 구역을 맡아서 보위케 하는 한편 성내의 한산한 사람들은 한곳에다 집결시켜놓고 지켰다. 이틑날 밤 3시쯤해서 경비총부에서는 의란에서 온 패를 서문밖에 보내여 거기에 있는 소학교를 수위케함과 동시에 사생들은 모두 성내로 피신케 했다. 이것은 본래 임무를 리행하는 좋은일이였다. 그런데 생각지도 바라지도 않은 일이 발생할줄이야 어찌알았으랴. 그 다음날 날씨가 급변해 추워 견딜수 없게되자 관병장은 자기의 그 병사들을 데리고 성안에 들어와 몸을 녹이게 했다. 헌데 이 기회에 병사들은 학교의 돈푼가는 물건은 말끔히 훔쳐냈다. 그래서 학교는 토비가 들어오지 않았어도 심한 재난을 당하고말았던것이다.    누가 지은건지 항간에는 지금도 하는 민요가 생겨 이 입 저 입 불려지고 있다…    가목사에서 배로 의란까지 갔다. 공부를 마친 청량이가 거기 관부 어디에 배치되여 직원노릇을 하고있는데 츄얼이가 실종된 일을 알기나하는지 모르면 같이 제 녀동생을 찾도록하자는 생각에서였다. 그래 들려보니 청량이는 린화가 진작와거 알려 함께 츄월이찾으러 가고 없었다. 눈먼송아지 방향도 모르고 덤비듯 대체 어디로들 갔을가?…          민호는 거기서 더 지체하지 않고 방정으로 갔다. 풍진 세월이다. 낯선 고장이 그를 알아주랴. 민호는 워낙 계획부터가 막연했다. 사촌형이면 의례 성이 가씨일테지 하고 가씨성가진 집을 찾자니 그것조차 찾기어려웠다. 무엇에 비틀렸는지 사람들은 빤히 아는일도 자기와는 상관없으면 모른다면서 말하기를 싫어했다. 민호는 이런줄도 모르고 사흘간이나 헤매쳤다.     츄얼이는 어디에 있는지 마름쇠도 삼킬놈들이 안해를 삼켜버린게 아니냐. 민호는 악당녀석들이 지금 안해를 강포점유하고 제멋대로 유린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분통이 터지면서 구곡간장이 토막나는것만것만 같았다.     해가 넘어갔다. 려관에 돌아오니 몸이 해나른하면서 다리각이 싹 물러나는것만 같았다. 가철군을 보기는커녕 그림자도 찾지 못했으니 헛고생아닌가. 밤을 자고보자해도 막연해서 그저 한숨만 새여나왔다. 누구와 이런 사정을 말이라도 해봤으면 좋으련만 련민과 동정과 한숨도 함께 지어줄 사람이 없는 이 세상이 그저 야속하고 삭막하게만 느껴질뿐이다. 세상에서 소외된 감, 개처럼 버림받고있는것만 같은 느낌, 이러한것들이 그를 비감에 잠겨들게 만들고있었다. 하지만 내 안해를 내가 찾고 악당을 잡아 꼭 복수를 하고말리라는 그 결심 하나만은 땅속에 깊이 박아놓은 바우와도 같이 흔들림이 없었다.     민호는 흉한들의 손에 죽은 개 두 마리를 생각했다. 그자들은 개에게 독약을 먹였는지 두 마리 다 상한데없이 숨을 거두었다. 그런것을 야수들이 건드리지 않게 하느라 두 처남댁이 시르맨커앞의 황철나무가에다 묻어버렸다. 개는 죽어 무덤이라도 있건만 츄얼이는 악한의 손에 무덤하나 만들어 줄 수 없게 죽은게 아닐가 하는 생각이 골백번도 더 들었다. 민호는 잠을 자려고 자리에 누우면서 어느땐가 츄얼이가 자기보고 조선사람들의 풍속을 배워달라해서 알려주던 일을 회상했다.     신혼의 포근한 기분속에서 이야기가 점점 가경으로 들어갔다. 츄얼이는 정신이 빨려들어 귀를 강구었다. 눈에 보이는 듯 손에 만지는 듯 형용까지 해가면서 엮어댄 이야기가 그토록 감칠맛이 났던지 총명하나 세상구경을 널리못하다보니 시야가 좁은 녀인을 황홀케 하면서 일종의 걷잡기 어려운 흥분과 함께 자신의 직접적인 체험을 갈구하께끔 든장질했다. 내가 무지개같이 아름다울 한복을 차려입고…풍속을 배워내고…현숙한 안해로 된다면 조선에 계시는 시부모님들은 맘들어하겠지. 귀여운 자식을 낳고 남편과 시부모님들을 잘 모시고…이러면서 꿈많던 허저인안해였다.   《이것봐요, 웃지 말아요. 난 벌써 있어요.》    민호는 집을 떠나기 전날밤에 츄얼이가 하던 말이 새삼스레 상기되면서 수줍음을 머금던 그녀의 고운 얼굴이 눈에 삼삼히 떠올랐다.   《뭐가있단말이요?》    남편이 어정쩡해하니   《아이참, 깜깜부지네. 그것두모르겠나요. 여기있어요.》    츄얼이는 남편의 손을 끌어다 자기의 배를 만져보게 했다.   《뭐있다구. 난 모르겠는데.》    능청을 떠니 얼굴이 빨갛게 물든 안해는 손가락으로 남편의 이마빼기를 살짝 뚱겨놓았다.   《달거리가 없은지 두달이 돼요. 열달만 차면 낳는대요.》    안해의 배속에다 심어놓은 것이 아들이건 딸이건 성별을 가릴 것 없이 다 좋았다. 그저 낳으면 잘 길러야지 중하를 느끼면서도 나에게도 이젠 일점혈육이 생기는구나 하는 새로운 감수와 희열에  가슴벅차올랐던 민호였다.        그는 방정에 온 이틑날에도 헛수고만했다.    려관에 돌아오니 여기서도 가목사에서 처럼 손님들이 토비를 화제에 올려놓고 운운하고 있었다.   《잡혀 죽은 사람 집이 여기 방정에 있다우. 산삼캐러갔다가 그만 잘못됐다누만, 심마니가.》    《혼자갔다오?》    《아마 그런모양입데.》    《그 사람 정신나갔어. 혼자 산에 들어갈건 뭐야.》    《산에 혼자간다구 다 일이 생기나 뭐. 지역땅만 밟지 않으면 별문제지. 액운은 바로 그네들의 변계를 넘어들어간데서 떨어진게야. 그런 토비들은 금을 그어놓구서는 여기까지 내것이다 하지. 그런데루는 나라님이 들어간대두 경을 치게된다나.》    《그래서 죽여치워버렸다는건가?》    《그렇지. 그래놓구는 본인의 가정에다 그런줄은 알라는 부고를 보낸거야.》    《그러면서 장비까지 택택히 지불했다오.》    《모를소리구만. 토비가 그렇게 마음후하단말이요, 그래?》    《모르겠다, 정말인지.》    《거기 비적두목은 그래 누구라오?》    《위삼포요.》    《위삼포라?  거 어디서 딱 듣던 이름같은데…》    《얼빤한 사람. 아직 염왕산의 두령 위삼포도 모르다니 원. 자넨 아마 북만사람아닌모양이지.》     염왕산! 듣기만해도 소름끼치는 이름이였다. 흉악한 악마인데 그래 그런 토비한데도 량심이란게 있단말인가? 불가사이한 일이라 민호는 전혀 믿고십지 않아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방정에 온지 5일째되는 날 민호는 이상한 사람 하나를 만났다. 점심을 먹자고 어느 구석진곳에 있는 관자집에 들어갔을 때다. 술 반근을 받아놓고 채가 오기를 기다리는판인데 한 사나이가 나타나 홀로 앉아있는 그의 몸에 눈을 밖기시작했다. 민호는 제 생각에만 골똘해있다보니 뒤늦게야 대방을 발견했다. 보통의 한인모양으로 개씹단추 여러개를 단 회색옷입고 머리에는 채양졻은 밀집모자를 올려놓은 그는 손에다 파초잎부채를 쥐고있었다. 나이는 마흔살가량. 실팍한 체구에 얼굴빛은 검실검실 했다. 그래서 의표는 단정해도 상인인지 직원인지 그 신분을 대중하기 어려웠다. 하여간 농민이나 어부같지는 않았다.     청한 채 한접시 들어와 술을 마시려는데 그 사나이가 다가들며 먼저 말을 걸어왔다.    《임자는 무슨 족이요?》    《어디맟혀보시죠. 내가 무슨 민족인것같습니까?》    《음…》     민호의 대꾸에 대방은 보살웃음을 지어가며 눈을 껌적거린다.    《옷입은걸 보면 허저사람같은데 아니야.》    《그럼 내가 어느 민족이겠습니까?》    《글세… 그래서 내가 점쳐모는게 아닌가. 잘 모르겠어.》    《난 조선사람입니다.》    《오, 그래! 꼬리방즈.》    《말 좀 삼가시오. 꼬리방즈라니요. 고려인이라구 해야지.》    《오! 하하하… 내 말이 그만 욕으루 됐구만. 하하하....》     그 사나이는 사람좋게 웃으면서 관자집주인더러 청한 술과 안주를 달라해서는 민호와 겸상했다.     첫 인상이 괜찮았다.    《그 옷 지은걸 보니까 알뜰한 녀인의 솜씨로구만. 여봐, 젊은인 허저녀잘 각시루 삼지나 않았소?》    《아니, 그걸 어떻게 압니까!?》      그의 물음이 의표를 찔렀다.     대방의 깐깐한 관찰에 민호는 가슴이 뭉클해났다. 그가 지금 입고있는, 옷갓을 누른빛나는 보드라운 가죽으로 하고 동글고 기름한 고기뼈단추 일곱개를 내리 단 이 하늘색의 비단옷은 알뜰한 츄얼이가 솜씨를 다 피워서 결혼례복으로 지어준 것이다. 자기가 연람(延攬)하고 있는 이 사나이는 심성이 고약한 것 같잖아서 민호는 그렇다, 옷은 각시가 해준것이다고 이실직고했다.     대방은 얼굴에 환한 웃음을 바르면서 머리를 주억거렸다.   《허허, 고려사람이 다즈녀잘 얻어사는구만. 글쎄 그러게…이러구보니 내 눈이 보배야. 젊은인 그래 집이 어딘가?…보아하니 객지에 나도는 사람같은데.》    《내 말이지요. 난 집이 어래무에 있습니다.…가보았다구요?…그렇습니다. 난 기막히는 일 있어서 여기루 온겁니다. 무슨일인가구요?…안해를 잃었습니다…수일전에요.》     대방은 어쩜 그런 불상사도 다 있느냐면서 끔쩍 놀랬다.     민호는 여기서 자기의 처지를 물어주고 가엽시 여기면서 동정까지 보내는 사람을 이제 처음본다. 한데 술을 제꺽 들이키고는 간다는 인사도 없이 훌쩍 사라져버리는 그 생면부지의 사나이는 허저인이였다.     려관에 와 누우니 또 안해생각뿐이다. 이 밤은 어느놈한테 시달림 받는지…머리를 어지럽게 하는 온갖의 착잡한 생각만 갈마들어 모대기치는데 누군가 문에다 《똑! 똑!》손기척을 낸다.    《누굽니까?》    《저얘요. 문 좀 열어줘요.》     녀인의 목소리였다.     민호는 려관에서 일보는 하인으로 알고 일어나 잠근 문을 열어주었다. 그랬더니 나이 퍼그나 되는 뚱보녀인이 짙은 향기와 크림냄새를 피우며 들어왔다.     민호는 미처 생각이 돌지 못해 어정쩡해 있다가 딴 감촉이 느껴지는지라 정색해서 물어보았다.    《무슨일있습니까?》     그 뚱보녀인은 머밋거리다가 엉덩이를 꼬며 수작을 피웠다.    《객지에 나다닐라니 적적하잖아요. 내가 오늘밤 동무해주죠.》    《저, 그건?》    《많이 받잖겠어. 오원만내요.》     그렇구나, 너도 갈보년이로구나, 어제 밤에는 구미여우같은 젊은 계집이 달려들더니 오늘밤은 이따위 똥되놈추물이 감겨드는구나, 제길할! 민호는 보기만해도 역겨워나는지라 정신을 펄쩍차리면서 황황히 거절했다.    《시, 싫어! 나, 난 싫어!》    《에그, 옹졸한 손님이네요! 왜 그래요? 고깟 돈 몇푼 아까와 보고싶은 재미도 안보고 잘래요?》     상판이 유들유들한 뚱보년은 치포를 걷어올려 흰 허벅지를 드러내보이면서 아양떨어댔다.     민호는 이마살을 찡그리며 눈길을 제꺽 거둬버렸다.    《어때요. 자볼가요.》     징글스레 놀면서 찰거마리같이 감겨드는 꼴이 사내들을 숱해 홀려먹은 계집이였다.     민호가 외면하는 사이 어느결에 년놈의 해면같이 부드러운 손이 몸을 주물렀다.    《이년이!》     민호는 활 밀어놓았다.     갈보는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물러갔다.    《빌어먹을 화냥년!…그깟 더러운  밑구멍 어디다내놓자구. 저따위년들을 잡아가두는데는 없나, 젠장!…》     령험(靈驗)없는 구멍이였다. 그년이 발가벗고 감긴다해도 민호는 사타구의 그것이 일어설것 같지 않았다. 한심하게 더러워졌을 그놈의 공공변소를 갖고 돈빨아내자니 괘씸하고 구역질나서 욕했다. 그러다가 민호는 불현듯 정신이 들어 몸을 발딱일으켰다. 내가 무슨 궁리를 하고있느냐. 그년이 내 몸을 만졌어. 내가 권총지닌걸 알았을건데 가서 경찰에 고발하면... 그런데두 멍청히 앉아있다니!     전해에 성립된 전성유격대영무처(全省游擊隊營務處)가 이해의 5월 10일부터는 흑룡강독군(黑龍江督軍)겸 성장(省長)인 오준승(吳俊升)이 발포한 《성방군대강(省防軍大綱)》에 의해 성방군영무처(省防軍營務處)로 규정되였고 성장공서(省長公署)는 명령을 내려 그것이 자체의 무장실력을 키움과 동시에 성내의 치안을 유지하게하였다. 하여 토비들의 활동을 견제하는 한편 사창(私槍)을 지닌 자에 대한 감독과 징벌을 엄하게 하고있는 판이다. 그러니까 이제 붙잡혀 사출이 나는 날이면 볼장은 다 본다.     들키지 말고 도주해야했다. 민호는 주인과 간다는 말도 없이 며칠간 묵고있던 려관방을 슬며시나섰다.     그런데 일은 참 공교롭게 되였다. 그가 방금 문을 열고 나서자 경찰 셋이 려관에 막 들이닥치는 판이였다. 어느새 갈보년의 밀고를 받은것이다. 이런 위기일발의 시각에 민호는 그자들이 대방이 누군가를 미처 알아보기전에 주먹을 날렸다. 그는 자기와 마주친 자의 턱주가리에 강타를 먹여 꼭그라뜨린 후 다른 한자를 다리걸어 재껴놓고는 내꼴봐라 줄행랑을 놓았다.     창졸간에 벌어진 일이였다. 경찰들은 넋살먹고 어리둥절했다가 뒤늦게야 정신차리고는 호각을 불었다.     민호는 어서빨리 이 현성을 뛸쳐나가자고 마음먹고 강가로 달려나갔다. 거기에 배가 여러척있었던거다. 하지만 이 밤에 그를 실어다 줄 배사공이 어디있으랴. 그는 아무배든 훔쳐타고 어래무로 돌아가려 했다. 그런데 강기슭에 매여져 있는 쪽배 몇척을 다 살펴봐야 노가 있는 쪽배는 하나도 없었다. 어느 병신이 그래 배를 훔쳐가라고 노대를 거두지 않고 배에 그냥 내쳐두랴..     현성의 밤거리는 소란해지고 있었다. 경찰이 총출동하는모양이다. 운수가 꺼벅거릴때다.     도망은 커녕 자칫잘못했다가는 붓잡히우고만다.      민호는 자기가 이런데서 빠져나간다는 것이 용이치 않음을 깨닫고 어느 한 쪽배에 제꺽기여들어가 거기에 숨어버렸다.     여름밤은 점점 깊어갔다.     웬 일인지 소란은 인차멎어버린다.     쪽배는 애기를 담은 요람같이 흔들렸다.     민호는 눈에다 저울추를 달아맨것만같아 깜빡 잠들고 말았다.          너무 곤해서 꿈도 없는가. 그는 배가 무엇에 부딧쳐 몹시 흔들리는통에 잠을 깨고 눈을 펀들떴다. 어느새 날이 휘영청 밝아오고 있었다. 다른 배의 임자가 아침일찌기 어디로 갈 일이 있어서 배를 돌리다가 남의 배를 건드려놓았던 것이다. 그 사람은 이쪽의 배에서 웬 사람이 벌컥 일이나니 저으기 놀란다.      당황해 하지 말아야했다. 민호는 어깨를 으쓱하고 나서 태연스레 배에서 내린후 강물에 세수하고는 거리를 향해 어슬렁어슬렁 걸음을 놓았다. 자기로도 어디로 무엇때문에 가는지 모르면서.     그가 얼마가지 않아서였다. 호각소리 갑작스레 나기에 머리들어 보니 저기 앞에서 순경 하나가 그를 발견하고는 다른 순경들에게 련락을 보내고 있는참이였다.     제길할! 사태는 위급하게 되였다. 몸을 제꺽 돌려 옆골목으로 달려들어간 민호는 저기 우물가에서 한 더벅머리 아이가 방금 말에게 물을 먹이고 돌아서는 것을 발견하고 그리로 달려갔다.     순경몇이 뒤쫓아왔다.     민호는 뛰여가자바람으로 더벅머리아이를 밀쳐 넘어뜨리고는 고삐를 채여 말잔등에 제꺽 올랐다.     뒤에서 총성이 울렸다. 탄알이 귀뿌리를 앵-앵-스쳤다.     말은 총소리에 놀랬는지 아니면 분노해서인지 죽어라고 네굽을 놓아 눈깝짝사이에 현성을 나와버렸다. 불의(不義)의 략탈자를 등에 태우고 줄달음을 놓고있는 이 체대크고 털빛이 윤기나는 백마는 관동(關東)의 호마(胡馬)였다.         동녘에 둥실 떠오른 해를 보니 현성을 뛸쳐나온 그가 지금 남쪽방향으로 곧추가고 있었다.     마을 몇 개를 지났다.     길은 점점 좁아지면서 못해갔다. 이대로 그냥가면 어디에 닿을지 모른다. 내가 도망 쳐도 목적지는 있어야할게 아닌가. 민호는 말이 숨을 좀 돌리게 하느라 천천히 몰다가 어느 한 곳에 이르러 밭으로 나가고 있는 농군을 만나 여기가 대체 어디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그 농군은 마을이름을 알려주면서 남쪽으로 더 가면 큰마을은 없고 작은 마을 몇개 더 있을 뿐 거기만 벗어나면 무인지경의 산간지대라고 알려주는 것이였다.     어디로 가면 좋을가?…민호가 여긴가저긴가 방향잡기 어려워 초조불안한판인데 북쪽으로부터 한무리의 마병이 나타나 추격했다. 저 자식들이 그냥쫓는구나!…민호는 다시금 말을 내몰기시작했다.     말은 다시 질풍같이 달렸다.     그래도 계속 추격해왔다. 내가 이러다가 잡히겠구나, 그렇게 되면 끝장인걸…민호는 필사적으로 말을 내몰았다.     아마 백여리는 더 달려왔을것이다. 그제야 추격자들은 점점 맥을 놓으면서 총만 갈기다가말았다. 내가 네놈들을 끝내 뿌리쳤구나. 이젠됐다. 만세!     길은 그냥나 있었다. 그런데 어디로 가는 산중길인지 알수없거니와 여러갈래로 갈라졌다. 민호는 그만 어리벙벙해지면서 오리무중에 빠지고말았다. 서남방향으로 길을 바꾼것 같기도 하고 남쪽으로 그냥가는것 같기도 하고…길은 분명하건만 사람을 미혹시키니 민호는 졸지에 이게 토비들이 다니는 길이 아니야 하는 불길한 생각이 불쑥나면서 머리카락이 쭈빗이 일어섰다. 젠장! 나도 산삼캐러 들어왔던 사람꼴이 되지나 않을가…몸이 오싹해났다. 민호는 어서 여기를 돌아나가려했다. 한데 가면갈수록 수미산이였다.    《씨팔! 내가 이거 미궁속으로 게발아들어온게 아니냐.》     민호는 침을 뱉아가며 혼자서 두덜댔다.     이때였다. 네 말이 맞다 이놈아 하듯이 갑작스레 난데없는 오라가 휘-익 날아오더니 그의 목을 걸어챘다. 민호는 말잔등에서 허망나가 딩굴었다. 어데 숨었댔는지 억센 괴한 둘이 달려들어 눈깝짝새에 그를 묶어버렸다. 미처반항할 새도 없이 잽싸게 그리고 사정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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