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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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관동의 밤>> 제1부(14)
2015년 02월 03일 11시 19분  조회:2838  추천:0  작성자: 김송죽
 

                       14

 

 

 

 

    류자들은 꿈을 대단히 중히 여긴다. 간밤에 꿈을 꾸었다면 그 꿈을 꼭 해몽했고 그런후에야 행동했는데 특히 맏두령이 더 그러했다. 만일 아이들이 나가는 상여를 붙잡고 우는 꿈을 꾸었다면 그것은 대단히 불길한 징조로 여겼고 큰 바람이 부는 꿈을 꾸었다면 그것은 바람이 재산을 날려보낼 징조라면서 산채밖을 나가지 않았다. 꿈에 늙은 범을 보았어도 산채밖을 나가지 않았다. 늙은 범은 산신령나으리였는데 나가기만 하면 강자를 만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더욱히는 개가 사람쫓는 꿈을 꾸었거나 나무에서 사람이 뛰여내리는 꿈을 꾸었다면 절대 가마마스러 나가지 않거니와 새자들이 개별적으로 산채를 나가는것 조차도 허락치 않았다. 그따위 꿈은 경찰이나 군대가 류자를 잡자는 흉몽으로 풀이되기 때문이다. 한즉 두령이 꾸는 꿈은 실제상 산채의 모든 행사를 결정하고 모든 류자의 행동을 통제하는 지휘봉이나답지 않았던것이다.

    맏두령이 이같이 꿈을 중시하니 그본새로 아래 사람들도 그러했다. 꿈을 꾸고는 저마다 오늘은 좋으리라 혹은 나쁘리라 어떻고 어떠하리라했다. 이같은 꿈풀이가 사회와 접촉못하고 산속에 같혀 무료하게 나날을 보내는 그들에게는 하나의 심심풀이기도했다.

    닭도 오리무리에 오래있노라면 오리의 지절대는 소리를 흉내내게되는 것이다. 주위사람들한테서 물이 들어 민호도 어느덧 꿈풀이를 즐겨했다. 어느날이다. 그는 난생처음 자기의 온 몸에서 피고름이 흐르는 꿈을 꾸었다. 흘러도 육실하게 많이도 흘렀다. 내가 어쩌자구 이런 꿈은 꾸었을가?…그는 워낙 무신론자에 가까와 그따위 꿈같은건 믿지도않았지만 어쩐지 꾸고나니 께림직한게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여 그것을 가까운 하진국이와 얘기했더니 하진국은 듣고서 손바닥을 찰싹 때리면서 그런 꿈이 자기한테는 왜 생기지 않을가 했다. 대단히 얻기 힘든 길몽이라는거다. 이상했다. 그 해몽을 들으니  민호가 이날은 다른때만 기분이 훨씬좋았다.

    인간은 리성적이지만 동물이였다.

    민호는 떠들고 복잡한 집안에만 박혀있기싫어 밖으로 나왔다.      그가 들어있는 산채의 왼켠에 얼마가지 않아 저기 동쪽의 고산과 줄기가 이어진 아기모양의 봉긋한 키낮은 산이 있고 그 키낮은 산의 북켠기슭을 따라돌면 그윽한 골이 나진다. 그 골은 좀만 들어가도 나무에 넌출들이 이리저리 휘감겨 있고 넌출과 넌출들이 서로 엇갈리고 엉켜붙어서 발을 더 들이밀기 어려울지경이다. 지금은 가을철이여서 갖가지의 나무들이 한창 단풍들고 있었다. 혹은 붉고 혹은 누르러서 심천이 아롱진 것이 더욱아름답게 보였다. 민호는 이런 자연풍경을 보노라니 알락달락 고운 뱀이 독이 있다는 중국속담이 새삼스레 상기됐다.

    서은괴의 돼지대갈사건이 발생한지도 어느덧 열흘이 넘는다. 한데도 산채를 나간 진사해는 돌아오지 않고있었다. 돌아와 갖고 자기도 서은괴도 함께 음모를 획책한적이 없다고 딱 잡아떼고 나눕는다면 그때는 어쩌는가. 그때면 장평이 아마 무함죄를 쓰게될게 될 것이다. 황차 여지껏 다른 조짐은 보이지 않았고 진사해는 그만하면 류자들 속에 위신을 어느정도 세워놓은 셈이니 이제 어떤 역전이 생길런지도 모를 일이기도했다. 위삼포는 자기가 친히 죄증을 손에 쥐기전에는 진사해를 처리하지 않으리라했다.

    민호는 눈앞에 진사해의 몰골이 다시밟히자 또 한번 신경을 모았다. 사심불구(蛇心佛口)의 그 인간을 내가 어떻게 대하면 좋을가?…또 다른 하나의 몰골―한쪽귀 반쪽이 달아난 황보재도 떠올랐다. 장정이 센 그 녀석은 또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

    산기슭을 돌던 민호는 걸음을 뚝 멈췄다. 골을 파고들어선 뭘하는가. 그는 고개를 번쩍 치키고 산등성이를 쳐다봤다. 그러다 그는 그 낮은 산의 등성이를 향해 오르기시작했다. 좀 올라가니 거기 두아름이나됨직한 높이 자란 느티나무 한그루가 시선을 유별나게 끄당겼다. 그 나무는 한쪽몸체가 벌집같이 되어있었다. 그건 류자들이 총질을 너무해서 만들어진 흉터였던거다.

    민호도 탄알 세발을 거기다 박아넣은적이 있다. 바로 위진이가 부질없이 그의 진짜사격술을 떠보느라 내기를 걸어왔을적이였다. 민호가 세발쏴 관혁을 다 맞히면 위반장이 속옷만 입고 자라처럼 기여서 가고 민호가 세발 다 못맞히면 그의 발바닥을 개처럼 핥아주기로 내기를 했던 것이다. 결과 반장이 져서 놀림받았다.

    그것이 물론 문명치 못한 놀음이였지만 심심해서 속이 클클했던 류자들을 또 한번 열락의 경지에 잠겨들게했던거다. 그럼으로해서 민호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허물없이 사귈만한 형제로 취급되였거니와 민족이 다르다해서 그들로부터 배척받거나 따돌림을 당하는 따위의 불쾌한 일이 없게되였다. 오리무리에 끼였으면 따라서 오리짓을 해야지 별도리없다는 왕견의 충고는 옳았던거다.

    그 느티나무를 지나서 좀 더 가면 산등성이에 오르게 되는데 이 낮은 산 남쪽켠으로 산굽이를 요리조리돌아 산채를 빠져나가는 한갈래의 통로가 코아래 내려다보인다. 여기에 들어와 첨으로 외선경비를 서러 가던 그 길이다. 민호가 산등성이에 방금 오르자 바로 그 길로 백말을 타고 산채로 들어오고있는 사나이 하나가 눈에 안겨들었다. 말의 목덜미에 너풀거리는 것은 검은갈기였다. 황보재의 말이 저런 가리온이다. 그럼 저것이 황보재일가! 과연 황보재가 옳다면 도대체 산채는 왜 나갔다오는걸가고 민호는 생각했다.

    민호가 시선을 거기에 밖고 선채 자기 생각에 골똘해있는데 홀연 뒤로부터 뽐창 다섯 개가 쌩… 날아와 가까이에 있는 황철나무에 일직선으로 내리밖혔다.

    이건 또 웬 일이냐면서 뒤를 돌아다보니 저쯤에서 향란이가 두 손을 옆구리에 지르고 서서 입에 웃음을 빼물고 있었다. 

   《젠장!》

   《호호호…간떨어졌나요.》

   《뭐 간까지 떨어질거 있겠소만 례모가 하도 고약하니 아가씨가 이뻐보이질 않습니다.》

    민호는 탈았던 목을 되돌려왔다.

    녀인은 입을 감쳐물고 노려보다가 목청을 뽑아세웠다.

   《돌아서요!》

   《명령인가.》

    민호는 몸을 되돌려 뽀로통해진 녀인을 마주보며 웃음을 날렸다. 이젠 어쨌든 외면해버릴 존재가 아니였다.

    기분이 되돌아진 향란은 유순한 녀인으로 변해갖고 다가왔다.

   《요즘은 왜 만나기 힘드네요.》

   《아가씨가 날 찾았습니까?》

   《그랬어요. 요긴한 일 있어서요.》

   《요긴한 일이라니?…》

   《놀아보자구요.》

    허 이런! 씹새바람 들었구나. 민호는 욕구불만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녀인의 솔직함에 저으기 놀래면서 부러 딴청을 부렸다.

   《아가씨, 우린 이렇게 놀고있잖습니까.》

    향란은 낯이 확끈 했다. 자기의 속내를 빤히 알면서도 그러는 사내가 야속했던거다. 그녀는 주먹을 들어 느믈대는 그를 조겨주려다말고 점직해지면서 말머리를 돌렸다.

   《한가지 물어보자요. 저번때 그 보물 혼자서 얻은거겠죠. 금팔찌 두개하고 은비녀 하나 그리고…그건 어느 부인해였나요?》

   《나두모르겠습니다 그게 뉘핸지. 내가 그걸 아마 어느 경대밑 뻬랍에서 꺼낸거같은데…생급스레 그건 왜 묻습니까?》

   《수확이 적잖더군요.》

   《수치스러워.》

   《아니 왜서요. 지금도 그걸 략탈로 여기나요. 직업인걸요.》

   《직업?…하긴그래!》

    민호는 웃어넘기면서 녀인의 팔목에 새로 끼고 온 옥팔찌에 눈길이 다았다.

   《그 옥팔찌 과연 곱구만. 누가 준 선물입니까?》

   《이거말이죠. 어머님이 생전에 준신거얘요.》

   《오, 그렇습니까. 그런걸 난 또…보재가 아가씰 그토록 사랑하면서두 그래 금팔지 하나 안얻어줍디까.》

   《아니, 뭐라구요? 다시말해봐요. 날 뭐로 보고 그 소린가요.》

    향란은 낯색이 당장 흐려지면서 독을 썼다. 고귀한 녀인을 남이 주는 장물로 제 몸단장하는 속물로 보았으니 그럴수 밖에.

   《이런 제길할. 내가 이게 무슨눔의 실수람.》

    자신이 경망함을 깨달은 민호는 자칫하면 화재를 일으킬 불찌를 꺼버리느라 급히 사과했다.

   《이거 생각없이 말이 헤펐구만. 노여워마시오.》

   《이제 다시 그따위소리해봐요. 정말 가만두지 않겠어요.》

   《주의하지. 헌데 참 방금 저기루 말타고 들어온건 누굽니까?》      향란은 옹쳐지려던 속을 풀면서 대구했다.

   《보구두 모르나요. 보재얘요.》

   《보재가 어디멜갔다오게?》

   《태평진에 갔다올거얘요.》

    태평진(太平鎭)은 염왕산의 동남쪽통로로 나가 약담배밭 산채에 이르러 남족으로 방향을 꺾어 곧추 200여리 상거한 지점에 있는데 무려 2000여호에 달했다. 매는 둥우리주변의 것을 먹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듯 염왕산은 생겨난 이래 여지껏 한 번도 거기를 괴롭힌적이라곤 없다. 한 것은 그곳이 염왕산에서 거리가 가까운것도 있거니와 그보다도 류자들이 일상생활에 쓰는 필수품들은 거의 그곳으로부터 공급받고있기 때문이다.

    민호는 황보재가 태평진에는 왜 갔댔느냐고 물으려다가 그만뒀다. 그런것까지 캐물른건 싱거운짓같아서였다.

    서은괴와 한구들에서 딩굴어 온 황보재였다. 그런 그를 부대화상이 보우했는지 때마침 외출을 해서 그는 그날 당석에 끼이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용케도 련루를 모면하게된것이요 향란이는 그가 자기에게 서은괴의 반역행위를 맨먼저 알려준 일이 아무튼 고마와 요즘은 이전만 좀 살갑게 대해주고 있었다. 

    한편 남의 추김대로 놀다가 자기수를 먹게된 서은괴는 명이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다. 제때의 한수가 때늦은 백수보다 났다는 걸 왜 그리도 몰랐는지. 그는 모반자에게 떨어지는 형벌이 어떻다는 것을 알면서도 늦게야 탈주를 꾀했다가 그만 암암리에 자기를 감시하고있던 수하새자들의 손에 잡히우고말았다. 그통에 서은괴는 탈주를 성공못한채 잡아먹을 개같이 양즈방에 같히우고말았다. 이제와서 후회한들 무슨소용있는가. 기다리고있는건 오로지 죽음뿐.

    산채가 끓어났다.

    민호와 향란이는 이 일을 하진국이 달려와 알려서 알게됐다.

   《제깟게 어디멜 달아난다구, 흥.》

    향란이 내뱉는 말 끝에

   《무쇠두멍쓰구 소에 빠졌어. 이게 바루 자작지얼이지 뭐야.》

    민호도 따라서 미런스레 논 서은괴를 조소했다…

    

    차챈즈의 명을 받고 여러날전에 쟁반밟으러 산채를 나갔던 위용강이와 진사해가 돌아왔다. 헛걸음을 하지 않았다. 연수(延壽)쪽에 있는 기와가마 하나를 정탐하고왔는데 들이친다면 성공할 가망성이 아주많았다. 지주가 첩년만 편애해서 본댁이 역심이 생기게됐는데 이쪽에서는 그를 꾀어 저선(底線)으로 만들어 때만 되면 내외가 호응키로 약속이 되어진것이다.

    그들이 돌아오자 향란이는 그날밤으로 자기 방에다 주안상을 차려놓고 그들을 청했다. 이것은 그녀가 민호와 짜고서 꾸민 연극이였다. 위용강은 그런줄도 모르고 녀동생이 남매지간의 정과 사랑을 돈독히 하느라 그러는가 여기고 고마와했고 진사해는 진사해대로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왔으니 환영하는걸로 생각했다.

    민호가 매양 대접받을 때 처럼 접시도 그 은접시 술잔도 그 은술잔 젓가락도 그 은저가락이였는데 주호만은 다른것이였다. 그것은 푸른 룡무늬를 그린 흰 자기병이였다.

    향란이는 해낙낙한 얼굴에 례모를 갖춘 우아한 동작으로 주호의 술을 먼저 나이가 웃벌되는 진사해의 잔부터 붇고 그 다음에 오빠의 잔에다 부었다. 그리고나서 마지막에 자기 잔에다도 부었다.

   《별다른 의미가 아니얘요. 두분오빠께서 쟁반밟으러 나가 여러날 고생한 일 생각해서 제가 한잔 드리는거얘요.》

   《난 위아가씨가 생각이 이렇게 주도한줄은 몰랐지. 감사하오.》      진사해가 먼저 례모를 차리더니 술잔을 코밑에 대고 개처럼 냄새를 맡았다.

   《건데 이 반강자는 향기가 다르군. 금분로아닌가!》

   《과연 몽두춘 제대로 많이 해 본 분이네요. 어쩜 그리도 신통히 알아맞추나요. 옳아요. 금분로예요. 아마 십년은 묵었을거야.》

    녀동생의 말에 위용강의 눈이 둥그래진다.

   《아니 이건 어디서 난거냐?!》

   《오빠도 몰랐죠. 이건 내가 전날 엄마방에서 찾아낸거얘요. 구석궤안에 고스란히 있더군요. 전에는 왜 발견못했는지…》

   《이게 모두냐? 더 없니니?》

   《그래요. 모두얘요. 엄마궤짝이 술창고야 아니잖아요. 더 있을리없죠. 절반가량 부친께 딸카드리구는 깔축없이 그대로 남아있어요. 아마 두근은 잘 될거야. 도수를 놓구봐두 늘 마시는 배갈따위야 옆에두 못오지요. 두분께서 오늘밤 그저 이 반강자만 다 축내요. 그런다면 제가 두분께 영예증서를 발급하겠어요. 정말이예요.》

    두 사나이는 요까짓게 뭐냐 아무리 독하더라도 마셔내리라 장담하면서 술을 목구멍에 털어넣었다.

    진사해는 젓갈을 들어 채를 집으면서도 매양 미식가의 기질을 과시했다.

   《아가씨, 이건 멧닭고기아닙니까.》

   《옳아요. 어쩜 그리두 검식잘하나요.》

    위용강이 멧닭고기볶음채에 절을 대려다말고 녀동생의 얼굴을 말끄미 본다.

   《향란아, 멧닭은 어디서 난거니? 네가 잡은건 아니겠지?》

   《내가 언제는 멧닭사냥하던가요. 이건 저…맛이 어때요. 대단히 좋을거야. 많이 집어요.》

    향란이는 혀끝까지 나온 말을 되삼키고 대답을 뭉때렸다.

    위용강은 집히는데가 있는지라 미간을 끌어모았다.

   《이건 꼬리방즈가 잡은거 아녀. 듣자니 짐승잡이 잘한다던데.》     《그래요. 그이가 잡은거죠. 건데 뭐가 잘못됐나요?》

    다른때는 민호에 대해서 이러니 저러니 말이 없던 오빠였는데 오늘은 혐오를 품으니 이상했다.

   《난 네가 그하구 가깝게 지내는게 맘에 안든다.》

   《왜서요, 오빠?》

   《보재는 그예 떼버렸니. 그가 널 뭘 나쁘게해쥈게.》

    진사해가 오빠의 말끝을 물고 의뭉스레 부채질했다.

   《보재가 향란아씨한테야 변함없는 충신이지 안그래?》

    향란이는 입가에 쓴웃음을 피우면서 그의 말을 반박했다.

   《꽃감 보기좋다구 떫어도 먹어라는 법이야 없잖아요.》

    진사해는 게뚜더기를 실룩하더니 입을 뻐개며 웃어댔다.

   《어, 하하하…그, 그래! 그래!… 감탄고토라 달면 삼키구 쓰면 뱉는거야 당연하지. 맞소 맞아, 아가씨말이 맞다니까. 하하하…》

    얼마나 천연덕스러운 놈팽인가. 향란이는 말이 까이고는 무안을 묘하게 넘겨버리는 능구렁이를 다시보면서 속으로 네놈이 과연 여간내기아니구나했다.

    둘은 권커니 작커니 술잔을 련커퍼 맞쫏고 기우린다.

    그사이 무척 친해진 모양이다.

    진사해가 오늘따라 유별나게 술맛이 좋다느니 기분이 좋다느니 떠벌렸다. 연기술이 어쩜 이리도 신통할가! 그러는 모양을 봐서는 전혀 뒤가 켕기는 사람같지 않았다. 마치 자기는 서은괴일과는 아무런 관계없고 그가 갇힌것에 대해서조차 무감각한 사람같았다.

    오빠도 웬 일인지 서은괴의 돼지대갈껍지바른 일도 그가 양즈방에 갇힌 일도 까맣게 잊고있는것만같았다. 술상에 마주앉기전에 그저 서은괴를 홀벌로 죽일 놈 아니라고 한마디 던졌을뿐이다. 괘씸했다. 하마터면 큰 변이 일어날번한 요란한 일이건만도 어찌 꿈만해할 수가 있단말인가?

    오빠는 입을 열더니 이번에 쟁반밟으러갔던 일을 쏟아냈다.

   《우린 이번에 저선을 멋들어지게 면바루잡았지.》

   《맞았어! 그렇구말구! 위포토우 두령의 지기와 총명이 없다면야 어디 되기나할가. 이 진사해가 과연 탄복했소. 탄복했다니까.》

    쟁반밟으러 나간 사람이 저선을 구해놓는거야 예전부터 써온 술책이 아닌가. 한데도 진사해가 엄지손가락까지 빼들면서 제일이라느니 고명하다느니 하면서 오빠를 개여올린다. 왜서 저러는가? 아첨해도 분수있지. 낯가죽가려운줄은 저리도 모르는가, 뒤에서는 엉꿍한 짓을 하면서. 하여튼 대단한 변신술이였다. 이시각 진사해의 이따위의 과장된 치살림뒤에는 모든 곡절을 겪어낸 간능한 자의 잔인이 꽂너울을 쓰고 숨어있음을 향란이는 보아냈다.

    진사해가 취기오른 상판에 웃음을 다시발라붙이고 비나리쳤다.

   《아가씨, 국이 밝아지자면야 대들보가 든든해얄게 아닙니까. 장차 맏두령을 승계 할 오빠를 잘 두었습니다. 아버지 영웅이면 아들이 대장이라더니 속담 그른데없지. 그리고 아가씨도 역시 재모가 출중하온즉 목계영하구두 가히 비길만할 녀걸이라 이 염왕산의 전도는 아무쪽으루 봐도 양양하단말이요. 안그러우?》

   《아니 어쩜…》

    향란이는 말을 하려다 그만두고 두눈을 살풋이 내리깔았다. 여지껏 남의 떠받들림속에 살아온 그녀였거만 진사해의 그런 치살림은 구역질이 나올지경 듣그러웠던거다.

    잔을 련거퍼 비우다보니 사나이 둘다 이제는 술에 감취되여 주석이 파해질 림박인데 황보재가 느닷없이 나타났다. 손에는 대오리를 무어서 만든 두루마리 족자가 쥐여 있었다. 황보재는 들어오면서 눈길을 술상에 던졌다가 인츰거두고는 위용강과 진사해에게 부러 크게 국궁재배하면서 혀꼬부랑소리로 노적부렸다.

   《두분 각하께서 귀체안녕하셨수.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온데 대해 짝짝귀 보재가 인사드립니다. 그리고 산채를 대표해서 형제들을 대표해서.》

   《인사는 좋다만 네가 대표할 자격이나 되냐, 이 자식아! 그런 입치례인사는 상다리부러지게 해대두 반갑잖다. 진솔로 하겠거든 반강자나 한 병 들고오란말이야.》

    진사해가 반죽좋게 받아치는 소리였다.

   《말인사래두 절반받아주니 기분 좋을걸.》

    황보재는 좌석에 끼이면서 떡심좋게 그냥 넌덕부렸다.

   《손엣건 뭔가요?》

    향란이 묻는 말에

   《참 깜빡 잊었네. 향란아씨주려구 멋진 족자 하나 사왔지.》

    황보재는 이러면서 갖고 온 족자를 내놓았다.

    향란이가 두루마리를 감은 끈을 풀고 펼쳐보니 그 족자에 이런 글 여덟자가 씌여있었다.

  

                 女慕貞烈  男效才良

 

   《위아가씨 그걸 좀 높이 드시오.

     향란이가 시키는대로 하자 진사해는 목청을 돋구어 읽었다.

   《<녀모정렬 남효재량>이라. 거 천하의 일품이로다! 그렇지, 그래! 천만 지당한 말이야! 녀자는 절개굳은 렬려를 사모하고 남자는 재간있는 어진 사람을 본받아야 함은 지극히 옳은행실아닌가!》

    방안은 일시 진사해의 도도한 열변뿐이다.

    례물이라고 다 좋을가. 향란이는 족자에 씌여진 글을 재다시 음미해보면서 낯색이 점점 굳어갔다. 저 짝짝귀가 왜서 이따위글은 내한테 사다주는거냐. 저놈이 나를 부정한 녀자로 치부하고 놀리는게 아니냐. 목대꺾어치울 빌어먹을 자식!

   《누나 조심해. 보재가 누날 가만두지 않겠다 했어. 빼버릴 재간은 없어두 가슴 딱 결리게라두.》

    언젠가 장평이 귀띔해주던 일이 새삼스레 상기됐다.

    있기는해도 요긴한데는 쓸 수 없으니 무용지물이나 답잖아 개나 먹게 떼주면 좋을걸 달고있는 황보재, 꼴이 그러하건만도 이성에 대한욕구와 점유욕만은 죽지 않아서 녀인의 버림에 반발하는 황보재였다. 술은 어디서 저렇게 퍼마신걸까. 울기올라 벌개진 얼굴을 들어 넌지시 말을 걸어오는것이였다.

   《향란아가씨 이 글이 어떻소? 맘에 드는지?》

   《뭐라구 대답할가요…아무튼 감사해요.》

    향란이는 곧추일어서려는 눈살을 얼른 사르고는 부어놓은채 마시지 않은 자기 잔을 그한테 넘겨주며 권했다.

   《자 받아요. 오늘밤 이 술좌석은 산채를 나갔다 돌아오신 두분 오빠를 위해 제가 특별히 마련한거얘요. 모처럼 찾아왔으니 잘된셈치죠. 어려워말고 들어요.》

    황보재는 턱을 치켜들며 웃었다.

   《그래볼까. 하하하…》

    진사해도 따라웃어댔다.

   《하하하…》

    내막을 모르는건 오로지 위용강이뿐. 그는 황보재가 지금도 의연히 제 녀동생을 열성지극히 사랑하고있는줄로만 여기면서 나무리는 눈길로제 이켠을 본다.

   황보재는 향란이가 준 술잔을 들어 단모금에 비웠다.   

   진사해가 밸을 돋궈놓을 심산이라 일부러 아픈데를 건드렸다.

  《보재 너 백탁은 나았나?》

  《아직은…》

  《귀잃구 백탁걸리구…네 신세가 왜 그렇게 오그라지는거냐.》

   응대가 없으니 한술 더 뜬다.

  《여봐 보재, 넌 족자사느라 아마두 거리바닥을 싸댔을텐데.》

  《말두 별나게 하네. 거리를 나돌지 않구두 사는 재간있소?》

  《네가 아마두 소가죽을 무릅쓴거같애서 그런다. 그모양으루 짝짝귀를 해갖구두 부끄럽지 않더냐?》

   붙는 불에 키질이였다. 애들이 길거리에서 짝짝꿍을 치며 놀려주던 일이 상기되는데다 진사해의 심한 야유가 그를 촉노시켰다.

  《제길할 심통이 터져서 원!》

   향란이는 지짐떡같이 달아나고있는 황보재의 얼굴을 보면서 속으로 짝짝궁을 치고나서 기름을 쳤다.

  《호호호…그리두 밸나던가요. 걱정말아요. 곽란에는 생숙탕. 심통에는 울금분이 약이래요.》

   녀인의 조롱에 분통이 더 크게 터지는지라 보재는 갑자기 야수같이 사나와지면서 제 본심을 드러내고야말았다.

  《내가 그 녀석을 가만둘 바보같은가. 아니야, 아니! 아무 때든 분을 풀고말테야, 분을! …약! 약! 약은 이거야!》

   하면서 그는 어느새 뽐창 다섯개를 꺼내 문설주에다 활 뿌렸다.

   그것들은 쌩―날아가더니 모두 단단히 밖히였다.

  《아니 이 자식이!…그런데 왜 이 야단질이냐. 네가 살수신이나 붙은거아니여?》

   진사해가 짐짓 놀랜 것 처럼 제 친구를 꾸짓었다.

   향란이는 속으로 쓰거워했다. 병주고 약주는 비루한 놈. 저는 손안대고 남을 추겨대는 야바위같은 네놈의 그 불측한 심보를 내가 그래 모르는줄아느냐.

   《아무리 어찌구 어째두 일낼짓은 말라구. 알았는가.》

    위용강이 기분이 언잖아 경고한다.

   《취했네요… 내가 놀랬어요… 옛어요… 잘 건사해요.》

    향란이는 문설주에 밖힌 뽐창들을 뽑아다가 몸을 제대로 가누지못하는 황보재의 손에 쥐여주었다.

    사나이는 주는대로 받아서 세여보지도 않고 제 품에다 넣고는 비츨거리면서 일어났다.

   향란이는 감쪽같이 채낸 뽐창 하나를 자리밑에 감추고나서 술상을 거두기 시작했다.

   

   그때로부터 사흘이 지나서 위삼포는 오장이 바뀌여 감히 자기 앞에서 돼지대갈을 놓고 깝지발쿠는 놀음을 논 서은괴를 끌어냈다.

   무릎꿇고 않아서 고개를 푹 떨군 40대의 상고머리 사나이. 위삼포는 그의 오장륙부를 당장 뽑아낼듯이 쏘아본다.

  《은괴 넌 네가 무슨 죄를 졌는지 알겠지?》

   서은괴는 뜻밖에 숙였던 머리를 번쩍 치켜드는데 나오는 태도 역시 완강하거니와 당당했다.    

  《내가 무슨 죄를 졌습니까. 난 죄없습니다. 난 그저 형제들의 의사를 대변했을뿐인데요.》

   반둬더가 랭소를 머금은채 어처구니없어 껄걸 웃었다.

  《네가 형제들의 의견을 대변했다? 미친녀석! 그래서 그런걸 갖구 작난질쳤다는거냐, 엉?》

   사량팔주 모두가 서은괴를 향해 불탄을 던졌다.

  《이자식, 무슨 궤변을 그렇게 해. 돼먹지못하게!》

  《뻔뻔스런 자식! 반역을 하구두 변명은 웬 변병이이냐?》

  《네가 감히 그런짓을 하다니. 아니다 이건 네 혼자의 소행이 아니다. 말해라 어느 도까비한테 홀렸어? 동당을 대란말이다.》

   위삼포는 헛짓임을 알면서도 심문을 들이댔다.

  《은괴야, 어서 이실직고하거라. 동당이 누구냐?》

  《원, 무슨말씀인지…없습니다.》

  《없다? 없다구? 그렇다면 너한테 묻겠다. 어미소죽으면 새끼소가 멍에를 질텐데 밭이 묵을가봐 걱정인가구 지벌인건 누구냐?》

  《난 모릅니다. 내한테 그런 말 한 사람이 없습니다.》

  《없다? 자기는 돼지대갈발쿤적있다구 너께 말한 사람두 없단말이냐 그래?》

  《없습니다. 그건 꿈밖의 소립니다.》

  《꿈밖의 소리라? 자식이! 허다면 네가 그놈의 재간을 꿈에 귀신한테서 배웠단말이냐 그래?》

  《거야 배우지 않아도 될 일이 아닙니까.》

  《배우지 않아도 아는 일 너만은 했구나. 그렇지?》

  《위두령께서는 공모자를 찾는 것 같은데 그건 아니될 일입니다.솔직히 말씀드려 없으니까요.》

  《공모자가 없다? 좋아. 그럼 네 혼자의 짓이라구하자. 넌 그게 무슨짓인지야 알겠지.》

  《압니다. 한차례 성공못한 반란이였습니다.》

  《그런걸 그래 너 혼자서 꾸밀 수 있다는말이냐, 자식!》

  《제 말을 믿지 않아도 좋습니다. 맘대로하시오.》

  《그럴테지. 아무렴 네가 제 동아리를 치겠냐.》

   위삼포의 얼굴에서 한번다시 얼음장같은 조소가 피여오르면서 경멸의 빛을 띠더니 그대로 굳어져버린다. 내가 저따위것을 사람이라 믿어줬으니 눈이 멀었지 하고 탄식하는 것 같았다.

   위삼포는 멀정한 거짓말로 엇서는 서은괴를 아느새 노려보다가 마지막으로 한마디 내던지였다.

  《개입에서 상아를 끄집어내려했으니 내가 어리석도다. 공모자가 누군건 나도 대개는 아는바니 아무때건 그도 네 꼴로 될거다.》

   위삼포는 진사해의 이름을 찍지 않았다. 한 것은 사량팔주가운데 그의 괘주를 도와준 사람이 있기때문이다. 이 일은 호상간의 불신과 반목을 야기시켜 내부를 혼란에 집어넣을수 있길래 서둘러 끝맺지 말고 각별히 조심해야했던것이다.

   대의명분(大義名分)을 지고무상의 신조로 삼고있는 류자들은 제 동아리를 물어먹는 것을 가장 용서못할 죄악으로 치부한다. 하기에 류자내에서 만약 의절하고 배신하는 자가 발생하기만 하면 그들은 짜고서 그런자의 집을 도룩을 내거니와 지어 어떤때는 삼대까지 멸종시켜버리는 것이다.

   

   서은괴는 내란음모죄로 판결이 내렸다. 처형이다.

   사형장은 산채서쪽골의 벼랑가. 언제나 사령(死靈)이 술렁대는 곳이였다. 여기가 염왕산으로 이름이 지어진 이래 줄곧 <천당가는 정거장>으로 불려지기도했다. 여기의 돌과 모래에는 다른 패거리에서 잡혀온 류자의 피도 숱해 뿌려졌던거다.

   벼랑의 한귀퉁이에 돌로 만든 자그마한 신단이 있다.

   결박을 지우지 않은 서은괴는 신단에 놓여있는 향로에 향을 세대꽂고 절을 했다. 그런 후 절로 벼랑가에 있는 돌걸상에 가 앉았다. 그에게 차례진 최후의 자유는 그것뿐이였다.

   이들은 무릇 사형시면 총을 절대 뒤에서 쏘지 않았다. 한 것은 그따위《검은 총질》을 그들은 광명정대한 행위가 아니라고 여겼기때문이다. 그래서 총살은 언제나 꼭 앞에서 했다. 그러되 머리도 쏘지 않고 단방에 숨통을 구멍내는것으로 사형을 끝내군했다.

   위삼포는 자기 대오의 모든 류자가 모인 앞에서 자못 정중하면서도 조금 갈린 음성으로 간단히 말했다.

  《각심소위는 분렬을 초래할 뿐이다…서은괴가 비록 공은 있다만 용서치 못할 죄를 지었다. 그 죄가 무엇이겠는가. 곧바로 내란을 음모한 그것인거다…각자는 한번다시 명기해야할지로다. 우리네 염왕산이 국이 밝아지자면 형제 모두가 각립각행을 말고 결심륙력하여 하나의 몸으로 돼야할 것이다.》

   사형은 일반적으로 포토우가 집행하기로 돼있다. 한데 서은괴를 괘주하게끔 소개한 사람이 바로 지금의 포토우였다. 하니까 그가 제 손으로 그의 명줄을 끊어놓고싶어할리만무였다. 아무튼 사람지간에 인정이라는건 있기마련이요 또한 숨길수도 없는 일이다. 그리고 서은괴를 놓고 보면 살려두지 못할 대죄를 짓기는했어도 여직 용감한 사나이로 인정받아왔고 패장노릇하면서도 남과 척지은 일이 별로없으니 미움도 별반사지 않았던거다. 그런즉 다른 누구보고 나와 총을 쏘라해도 선듯이 나설자가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이럴때는 억지명령보다 제 손으로 직접 없새치우는게 상책이였다. 그래서 위삼포가 권총을 뽑는데 그의 처지를 벌써 알아채고 선듯이 자진해 나서는 자가 하나 있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진사해였다.

  《이일을 맏두령께서 어떻게…》

   자기는 사정을 두지 않는 듯 하는 그 거동이 너무나 태연했다.

   진사해는 당장 생명을 잃게된 서은괴를 향해 제법 노기서린 목소로 한바탕 그럴 듯한 질타를 퍼부었다.

   《나라에 임금이 있고 산채에 두령님이 있다. <군위신강 군신유의>가 만백성이 임금을 대함에 례의일진대 그것은 또한 우리들 류자 매인이 제 두령님을 대함에 도의로 비춰지기도 하는거다. 그런데…서은괴야 너는 괘주때의 맹세는 어데다 팽가쳤느냐. 변심하면 엄벌받는줄이야 알았을테지. 그리고도 불궤지심으로 두령님을 노엽히고 모든 형제들을 실망케 했으니 이보다 더 대역부도한 짓이 어데있겠냐… 은혜도 모르는 발칙한 네놈을 오늘 내가 빼버릴테다.》

   총소리울림과 함께 서은괴는 꼭끄라졌다.

   자기가 가장 믿어온 자의 손에 명줄을 끊기우고말았다.

   하지만 그는 죽어도 눈은 감을 수 있게되였다. 그렇게된 것은 최후의 조식때 만투속에 들어있는 《너의 식솔을 책임지고 부양할것이요 원쑤를 갚아줄테니 안식하라》는 쪽지를 그가 받아보았기 때문이다. 그를 죽음에로 몰아넣은 진사해가 량심상 가책을 느낀나머지 제때에 손을 써 자기 주머니를 털어낸 거액으로 그에게 먹을 것을 날라가는 한 새자를 매수하는데 성공했던 것이다.

   위삼포는 심복지환으로 변해버린 서은괴를 처단했다. 일벌백계(一罰百戒)로 수하 새자들을 다스리려함이니 적시적인 조취였다.  일호백낙(一呼百諾)이다. 위삼포의 호소를 천명으로 받들어 온 류자들은 다가 그의 처사를 천만지당하게 여기면서 의견도 불만도 없었다. 하지만 진사해의 저돌적인 행위에는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진사해가 저같이 지독할줄은 몰랐다고 하는 사람, 서은괴가 친구를 어떻게 사귀였으면 저모양이 되느냐 하는 사람…하여튼 그의 이번 거동은 생각밖에 너무나 반상적이여서 의분을 백출시키면서 적잖은 류자들을 종잡을수 없게 만들었던 것이다.

   위삼포와 사량팔주는 다가 류자들의 반향에 신경을 세웠다.        입이 무거워 쉬히 발설하지 않는 것을 보고 쪽박이 굳다고하는데 이번 일을 치루면서 장평이 바로 그런 새자로 변하고말았다. 처음에는 진사해의 편을 서던 그가 지금은 이쪽에 리용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여전히 이왕과 같이 진사해와 남모르게 각별한 사이인 것 처럼 지내면서 그의 일거일동을 면밀히 감시하고 있었다. 알짜특무였다. 이것은 향란이와 민호가 시켜서 된것이거니와 맏두령이 그한테 비밀리에 임무를 주었기때문이기도 했다. 바로 이 모양으로 발을 량쪽배에 올려놓고 있는 장평이였기에 자칫잘못하면 진사해의 손에 감쪽같이 죽을수도 있고 위삼포의 손에 잘못될수도 있었다. 하니까 정신을 바싹 차리지 않으면않안되였다.

  

   향란이가 민호를 찾아와 알아봤다.  

  《게뚜더기 노는 양을 잘 보셨겠죠. 거기는 감상어때요?》

  《그자가 그토록 미런한줄은 몰랐지. 연기가 너무나졸렬했어.》

  《면바로봤네요.》

  《제딴엔 이목을 흐리게 한다는게 되려 제 본심만 드러내고말았어. 아가씨보게는요?》

  《글쎄요. 내 눈에도 그렇게 밖에 안보이더군요. 우릴 아두로 알았는지… 그자가 글쎄 그따위 어리석은 광대극까지 놀줄이야 뉘알았겠어요. 그야말로 소웃다 구럭터질 일이지.》

  《제깟것이 아무리 그래봐야. 송곳을 호주머니에 넣는 격이지. 오래감추진 못할 걸.》

   민호는 이러면서 아무때건 흉계의 밑바닥이 드러나게 해서 그자에게 참혹한 죽음을 주리라 별렀다. 얼마나 애를 끓였던가. 원쑤갚을 기회만 호시탐탐 노려온 그였다.

   날이 어두워지자 장평이 향란이를 찾아와서 진사해가 사양실의 장령감보고 반강자있느냐고 물어보는 걸 보니 아마도 또 술을 마실모양이라 고해바쳤다.

   산채를 나갔던 진사해는 자기가 돌아오면 염왕산에는 큰 변이 나서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지리라 생각했었는데 빌어먹게도 그렇게 돼주질 않았다. 돌아와 보니 반란이 생기기는 커녕 위삼포를 없애치우리라던 서은괴가 되려 잡히우고말았다. 후회막급했다. 내가 이게 뭐냐. 너무나 조급하고 단순했지. 왜서 잘 조직된 다음에 행동하게끔 하지 않았더냐. 자신을 위장하느라했지만 진사해는 식혜훔쳐먹은 도적개가 몽둥이를 본 것 같이 가슴이 떨렸다. 

   궁여지책《窮餘之策》이랄가, 제 손으로 서은괴를 천당보낸 진사해는 조용한 곳에서 술로써 밀려드는 고통과 번뇌를 달려보려했다. 그는 장령감보고 술을 준비하라해놓고는 날이 어두워지기를 기다려 후근마사로 갔다. 그런데 황보재가 나타났다. 그를 찾아다니다가 드디여 여기로 온 꼴이다. 이런 제길할거 혼자 좀 있자니 원. 진사해는 그가 온 것이 반갑지 않았지만 쫓아버릴재간이 없었다.

  《쇠천뒷글자라더니 내사 진형의 속맘 알아보지 못하겠소.》

   이러면서 황보재는 진사해를 만나자 두억시니같이 당장 잡아먹을양 두눈을 지릅뜨고 보더니 남이 먹자던 술 한사발을 벌물켜듯이 하고나서 뱃속에서 부글거리는 불만을 내뿜기시작했다.

  《진형은 오늘 무슨짓을 했소. 그래 그 짓을 할 사람 여기 염왕산에서 진형밖에 없단말이요? 왜 그렇게 우쭐렁거렸소, 엉?》

   진사해는 그한테 제 속을 내비칠수는 없는지라 해석조로 조용히 말했다.

  《난 그렇게 해야한다.》

  《아니 뭐라우? 사해형은 그렇게 해야한다구?…그건 대체 무슨소리요. 그렇게 해야한다니. 사람이 어쩌믄…량심이 있소 없소?》

  《야 이거, 어째서 이렇게 소가지를 내는거냐. 내가 잘못한게 뭐 있다구… 너 좀 잠자쿠있거라, 제발.》

  《뭐라우? 날보구 잠자쿠있으라?…건 왜서요?…난 그러지 못하겠소! 그러지 못하겠단말이야! 진짜루 환난지우라면 안그래. 건데두 진형은 어떻게 했는갈 좀 보란말이요. 자기가 무슨꼴로 놀았는갈 좀 생각해보란말이여. 어이구 참. 별꼴 따 본다!》

  《이자식이 게사니고기를 먹었나. 소래기는 왜 이렇게 쳐.》

   진사해는 머리가 단순한 이런 인간을 내가 왜 친구로 사귀였더냐고 속으로 후회하면서 제발 입다물고 떠들지 말아달라고 했다.

   그러나 내막에 깜깜인 황보재는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배속에다 부어넣은 도수높은 배갈이 배짱을 쓰게 했다. 나라님이 내 손자같고 애비도 내아들같아뵈였던지 그는 얌전해지기는 새려 들말같이 점점 더 성깔만 부리기 시작했다.

  《쳇. 날보구 입다물라구? 떠들지 말라구?…물어보기오. 은괴가 진형한테 잘못한게 뭐요? 그가 사해형 섧게해준게 뭔가말이요, 엉? 적잖은 형제들이 진형을 제사람으루 여기도록 해줬지…떠받들게 해줬지…그런데두 나 원. 이…이눔의데가 이래. 선인은 하나두없구 악인만 모여 사는 이눔의데가 이래. 큰 뱀이 작은 뱀을 잡아먹구. 개구리가 메뚜기를 잡아먹구…》

  《닥쳐! 떠들지 말란데두 무슨놈의 개소리 괴소리냐, 이렇게.》

  《큰 놈은 작은 놈을 잡아먹구. 네가 은괴를 잡아먹었어.》

  《야 이자식이 인사불성이구나!》

   진사해는 벌컥일어나면서 주먹으로 그의 귀통을 한매 되게 우려줬다. 그리고는 그를 잠이나 재우려고 사양실에서 끌고 나왔다.

   밖은 코를 떼가도 모를지경 캄캄했다.

   어둠속에 무슨 괴사가 없으랴. 그들이 사양실을 방금나서자 황보재가 《억!》하고 앞으로 꼭그라졌다.

  《이 자식아, 내먹자던 반강자 네 다 처먹더니 이꼴이구나. 일어서라, 이 자식아!》

   진사해는 망돌같이 무거워진 그를 끌고 그의 잠자리가 있는 산채로 들어갔다.

  《어딜 가 처먹고 곤죽이 됐어?…아니 그런데?!》

   아직 잠들지 않은 류자가 구시렁거리며 일어나 불을 켜고 보더니만 살인이 났다고 벅작고왔다.

   황보재의 가슴에 뽐창이 박혀있고 피가 흘러나와 흰적삼을 뻘겋게 물들이고 있었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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