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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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의 밤>> 제2부(23)
2015년 02월 04일 09시 55분  조회:2357  추천:0  작성자: 김송죽
 

관동의 밤   제2부                             

 

                            23

 

 

    잔뜩흐린 찌뿌둥한 날씨였다. 번개가 번쩍거리면서 우레가 요란 할 뿐, 이 구름장이 밀려가면 저 구름장이 밀려와 하늘을 덮으면서 대지를 그냥 어둠침침란 심연속에 몰아넣고 있었다. 아무때건 내릴 비라면 소나기가 되어 어서 콱 퍼붓기라도했으면 차라리 후련하련만.

    진흙이 범벅이 되어 이겨지고 굳어진 농촌길로 검정소를 메운 수레하나가 덜거덕삐걱거리면서 가고있다. 두사람이 앉아가는데 물푸레회초리를 손에 쥐고 수레를 몰고있는, 턱수염이 히끗히끗 거칠게 난 사람은 환갑이 지난 로인이고 그와 좀 사이뜨게 앉은 다른  한 사람은 30대에 오른 건장한 젊은이였는데 그는 바로 정민호였다. 광음여류(光陰如流)라 과연 빠르기도하다. 어느사이에 세월이 이렇게 갔는가!

    그는 회상했다.

    한해전. 염왕산을 나온 민호는 목단강을 지나고 석두하자를 지나 방향을 계속 남으로 잡았다. 그는 왕청(汪靑) 덕원리에 들리였다. 거기는 3.1운동직후 백포종사 서일이 김좌진과 손잡고 손수창건한 군정부(軍政府ㅡ얼마후에 북로군정서로 고쳐짐)가 자리잡고있었던 곳이고 민호가 그를 찾아가 대종교에 가입하고 그 부대에 입적했던 잊지못할 마음의 고향이기도했다. 한데 그 마음의 고향은 어디로 가버렸는가? 망국의 설음을 가슴에 안고 고향을 떠나온 대종교도들이 하나 둘 모여서 커다란 부락이 된 그때의 덕원리가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쑥덤불속에 불에 타고 허물어진 벽들... 지금은 쓸쓸한 페허만 남아 그리움을 안고 찾아간 용사의 가슴을 아프게 칼질했다. 그사이 청산리싸움에서 대패한 일본군의 야수적인 보복에 들어 마을은 그모양이 되고만것이다. 

    만주에서의 독립혁명이 어떻게 이어져 나갈지 앞날이 그저 암담하게만 느껴지는 순간이였다.

    민호는 거기를 떠나서도 3일만에야 마침내 두만강가에 있는 교포마을인 도문(圖門)에 들어섰다. 그는 거기서 타고 온 말을 떠돌이짐실이꾼한테 팔아버리고 강을 건너 고향으로 돌아왔던것이다.

   《너 이놈, 이건 어디서 난거냐!?》

    돈보따리를 구들바닥에다 던졌더니 아버지가 놀라 굳어지던 모습이야말로 가관이였다.

    너는 만주로 가더니만 그지간 돈벌이를 했구나 하면서 죽지 않고 살아왔겠다 돈까지 많이 벌어왔으니 이제는 부자나답지 않아서 살아볼 멋이 있다면서 헐레벌쭉 춤이라도 막 출 지경 좋아서 어쩔줄모르는 아버지였다. 이 아들의 가슴에다 우국충정(憂國衷情)을 심어주던 의병의 의기는 어디로 가버렸는가?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더니 정말변했다. 고향의 모습도 아버지의 마음마저도.

   민호는 그사이 자기는 목재판과 금전판을 돌아다녔노라했다. 이같이 거짓말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돈을 보니 돈벌이를 하다온줄로만 아는 부모들앞에서 그래 무어라고 하겠는가. 독립군에 들어 싸우다가 토비노릇을 하다왔다고 하겠는가. 그렇게 실말을 토해낼 수는 없었다. 그러니 자연히 거짓말이 나가는것이였다. 그냥 속여가면서 하회를 기다리는 수 밖에!

    조선에서는 토비를 화적이라 부른다. 국토면적을 보면 관동땅에 비교도 안되지만 력사를 뒤져보면 여기도 그것이 득실거린 때가 있었다. 염왕산마적같이 세습적이고 유명한 큰무리는 아니지만 몇 명 혹은 몇십명이 작당하여 로략질해먹는 강도단은 옛날에도 지금에도 있었다. 왜적이 나라를 침략하니 그자들을 몰아내야 산다면서 항쟁에 나섯던 의병들 중 성공못하고 무리가 괴멸되니 어떤 찌꺼기들은 돌아오지 않고 산에 숨어서 료략질이나 해먹으며 살아가니 그역시 화적이나 다를바없었다.

    민호의 아버지는 손에 잡았던 의병의 총을 놓았어도 그런자들은 인간망종이라며 미워하고 증오했다.

    민호가 고향에 돌아와 보니 백형 민수는 집에 없었다. 짐작했던바와 같이 병이 나으니 자기도 동생처럼 독립투쟁에 참가하리라면서 만주로 되건너갔다고한다. 민호는 그를 보고싶었고 곁에 같이있고싶었다. 그래서 자기도 만주로 되돌아가려하니 부모님들이 그리 급히 서둘게 뭐냐 한해만 부모들 곁에 있어보라해서 눌러있는 판이다. 한데 눈치를 보니 부모들은 안속이 따로 있어서 그를 잡아두는것 같기도했다.

    어머니가 너도 이제는 장가가 살림을 해야지 하고 권념하거니와 민호가 나이 설흔이 된데다 집에 있으니 본인의 의향이야 어떻던 자청혼이 련줄들어오기 시작했다. 좋은 색시감이 많았다. 하지만 민호는 마음이 선듯이 동하지를 않았다. 이방의 녀인이건 타락한 녀인이건 어쨌든 츄얼이가 아직 살아있지 않는가. 백년가약을 맺었던 안해였다. 그녀의 운명이 그같이 이제다시는 나오지 못할 수렁에 빠진데는 민호의 책임도 어느정도 있는것이다. 량심있는 인간이라면 사과의 말이라도 한마디해야 옳을것다. 그것도없이 무거운 자책감을 걸머지고 어떻게 다른 여자를 안해로 맞아들인단말인가?

    그래서 들어오는 혼사마다 막는건데 그러니 그를 놓고 온갖풍설이 나돌기 시작했다. 이성에 무감각해진 사람이라느니 사타구니에 있는 그것이 일어서지 않아서 그런다느니 아마 연장이 제구실을 못하니 아예성가를 단념한 모양이라느니...  지어는 그애가 막벌이판에 나딩굴다 매독에 걸려 돌아온거 아니냐고 억측하면서 황당한 험구를 조작해내는 사람까지도 있었다. 다른사람이 아니였다. 늙은 부모님들을 원산근처의 어느 시골에 내처두고 저만 서울에 올라가 딴살림을 하고있는 중학시절의 동창생 김우일이 그랬다.

    민호는 이 일을 알자 너무도 밸나서 펄펄 뛰였다.

   《더러운 자식! 네입에서 아무렴 그따위소리가 나온단말인가.》

    어서빨리 만주로 돌아가야겠는 생각이 굴뚝같이 일어섯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가버릴 수는 없었다. 우선먼저 그를 만나 회계를 까야했다. 그래서 그는 어느날 문득 서울로 향했던것이다. 김우일은 그사이 일본가서 류학하고 돌아와 지금은 서울 종로어디에다 사무소까지 꾸려놓고 변호사노릇을 하고있다고한다.        

    서울은 옛모습이 서서히 달라가고 있었다. 민호가 열일곱살나던해 중학을 다니겠다고 서울에 올라왔을 때 방금생겨났던 한강교를 지금 개축하고 있었고 여의도에 비행장이 들어앉았다. 꼴보기싫은건 왜놈들이 홍례문을 허물고 그 자리에다 옹근 10년간이나 품을 넣어 엄엄하게 일떠세운 총독부였다. 저 침략자들이 우리 나라를 영원히 제것으로 만들고 우리동포들을 노예처럼 부려먹자는구나 하고 생각하니 가슴이 부글거리면서 또다시 분노가 솟구쳤다.

    김우일을 만났다. 민호가 그를 보자마자 네가 어쩜 나를 그렇게 더럽히느냐 했더니 그는 그게 무슨소린가며 뗑했다. 내가 그래 동창생을 감히 헐뜯을 사람같아 보이는가 자기는 그 어떤 험한 소리도 입으로 번진적이 없노라했다. 민호는 더 이상 캐고들지 않았다. 안했다는데야. 정녕 그렇다면 좋다, 아무럼 네가 원쑤진일없이 나를 그렇게까지야 대하랴 하고 이 일은 아퀴짓고말았다.

   《네가 만주가서 돈많이 벌었왔다는데 그게 그래 정말이냐?》

    김우일이 궂이알고싶었던지 자기는 다른동창생들로부터 그런 소문을 들었노라면서 물어보는것이였다.

   《많이야 뭐. 좀 벌어왔지.》

   《네가 애초에 도만(度滿)한건 그 목적이 아니잖았니. 그래 독립혁명은 거둬치웠니?》

   《돈벌이를 했다잖아. 다들 그렇게 알고있더구나.》

   《그래, 그래! 그렇게들 알고있어. 똑똑한 사람이면 제살도리를 하고봐야지, 안그래? 아무튼 돈벌어갖고 잘돌아왔다.》

    민호는 이같이 말하고있는 그를 낯선사람을 대하듯이 다시봤다. 손에 태극기를 들고 함께 독립만세를 웨쳤던 동창생인데 지금은 이모양이였다. 그의 론리대로면 똑똑치 못한 사람들이나 지금도 머리를 깨치지 못해 계속 독립혁명을 한다고 나덤빌것이다. 과연 그렇단말인가? 이 비겁한 변절자야!

   《여봐, 우일이! 듣자니 넌 그지간 일본류학까지 해서 변호사되여 지금 잘 써먹는다는구나. 그래 멋이 좋겠지?》

   《좋고말고. 좋지, 좋아. 너도 가지 말고 공부나 그냥했던면 나처럼 됐을건데..... 되고말고. 넌 내보다 공부더잘하잖았나.》

   《오, 그래? 하니까 너도 이젠 독립투쟁은 잊은것 같구나. 주먹쥐고 만세를 웨치던 그 용기는 어디로 갔느냐?》

    민호가 물었더니 우일은 고개를 꺾었다가 다시들었다.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거냐? 보다싶히 나라는 철저히 망해버리고만게 아니냐. 만세를 그냥불러봤자 그게 그꼴일게고 총쥐고 해볼때도 이젠 지난거야.》

    명철보신이나 하며 살아가자는 변색룡이였다.

    민호는 그의 태도가 메스거웠다. 같이 마주앉아 속심을 나눌 대상이 아닌지라 그만 거기를 나와버리고말았다. 그리고는 원산을 향해 곧추 발걸음을 놓았다. 이번걸음에 아예 거기서 살고있는 큰누나나 만나보고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였다. 하여 가다보니 원산에 거의닿게된건데 공교롭게도 시골에서 사는 우일의 아버지를 만나서 지금 이렇게 그의 소수레에 앉아 함께 원산시내로 들어가고있는중이다. 우일의 아버지는 시내에 있는 종친집으로 간다고 한다.

    동해바람이 습기를 몰아왔다.

   《야 이눔의 소야, 다리가 졸아붙었냐.》

    로인은 회초리로 걸음이 몹시 굼뜬 소의 궁둥이를 때렸다.

    수레채를 목덜미에 올려놓고 굼벵이같이 느렁느렁 걷고있던 검정소는 다리각을 몇 번 빨리놀릴 뿐 걸음새가 매양 그모양이 되고만다. 천성이 그렇게 돼먹은 짐승이였다.

   《만주가 어드래? 거긴 땅이 아주 너르다며?》

    로인이 문득 입을 열어 물어보는 소리였다.

   《너르고말고요. 널러도 대단히 너른데요.》

   《거기 어디에 내 형도 있는데 지금 어떻게 보내는지..... 내형은 로씨야루 가 살다가 거기로 넘어왔네라.》

   《아 그런가요. 그래 지금 소식이 영 불통인가요?》

   《로씨야서 건너와 한번있곤 없지.》

   《그분 만주 어디서 산답디까?》

   《저 뭐라구하더라 동네이름이 가진구라구하는거같애. 마을이 북쪽으루 대단히 큰강을 끼고있다는구나.》

    이럴변이라구야! 그렇다면 그게 민호가 알고있는 가진구의 그 딸부자집이 아닌가!

   《우일의 큰아버진 성함이 뭔데요?》

    민호가 속으로 찔끔놀라면서 물어보니 로인이 알려준다.

   《김국정이라구하네라.》

    옳구나! 민호는 입밖으로 당장 튀여나오려는 웨침을 목구멍으로 꿀꺽 삼켜버리고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이럴줄이야, 이놈의 집안은 늙은놈이나 젊은놈이나 다 그저그렇게 돼먹었구나!

    부두가로부터 웅글진 배고동소리울려와 거리바닥에 갈아앉고있었다. 소수레에서 내린 민호는 태워줘서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를 던지곤 큰누나집을 향해 쥉쥉 걸음을 놓았다.

    

    큰누나는 큰매부와 같이 어물전을 보고 있었다.

    민호를 보자 그들은 그를 반겨맞았다.

    저녁을 먹고나서다. 그들 부부는 오래간만에 찾아온 민호의 청을 거절할 수 없어서 함께 야경을 구경하러 부두가로 나갔다. 원산부두에는 전에 구경못했던 커다란 륜선이 정박하고있었는데 배의 이물에는 흰바탕에 접시모양으로 둥근 붉은 해를 그려놓은 히노마루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원쑤왜구의 국기를 보니 민호의 눈에서는 불꽃이 튀였다.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보기싫은 깃발이였다.

    그 배가 고동을 틀자 민호는 혼자말로 뇌까렸다.

   《꼴보기싫은 놈, 제집에 있을게지 여기까지 바라와 분주떨건 뭐야.》

   《넌 누굴욕하니?》

    큰누나가 물었다.

   《저 왜놈의 배를 욕하오. 저것이 있을데는 있지 않고 여긴 왜 바라들어와 분주떠는가말이요.》

    매부가 잡아듣고 민호의 말에 못을 밖았다.

   《그 배가 왜 나뻐? 신사회 신질서 신문명을 나르는 밴데. 아무리 대한민국이요 뭐요해도 예전 그모양대면야 우리가 언제 저렇게 호화로운 배를 구경이나하고 타보기나하겠냐. 안그렇니. 그멋으로야 천상 개화를 못하지.》

   《아니 매부, 뭐라오?!》

    민호는 발끈했다.

   《그러니까 매부의 주장은 개화를 하기위해서 남의 침략을 달갑게 받아야 한다 그 말인가요? 매부, 매부가 왜 그런소리하오?》

    큰매부는 처남이 자기를 매몰스레 쌔려치니 기분잡치는지 얼굴에 노기를 띠면서 이쪽을 쏘아봤다.

   《넌 조심하잖구 무슨말을 그렇게 망탕하냐. 이렇게 살면 무탈한거야. 너는 내가 뭐 바본줄아니.》

   《바보아니면 그래 명지한 사람이란말이요? 큰매부도 단군의 후손인데 그래 제 민족의 얼은 어딜갔소? 떼여서 개를 먹였소?》

   《챠, 이거?... 이제말 다시해봐라. 어디거 막굴러먹다와서는....》

   《아니 처남남매간에 이게뭐요. 남들이 뭐라겠소.》

    큰누이는 둘이 목에 핏대까지 세우면서 맞서는지라 서로 손찌검이라도 날가봐 놀래여 비린청을 뗏다.

    민호는 치미는 밸을 못이겨 그날밤을 자지도 않고 집으로 돌아오고말았다. 인연을 끊기라도할듯이.

 

    고향이 그리워 돌아오고보니 생각하던것과는 너무도 달랐다. 마을에는 소시적부터 함께 뛰놀며 자란 죽마구우(竹馬舊友)들이 있었건만 이제는 마음을 터놓고 회포를 나눌 지우로 사귈만한 사람이라곤 없었다. 사람도 그 사람 산천도 그 샅천이련만 이제 더는 그한테 따스함을 주지 않았다. 아기자기했던 그젯날의 인정은 어디로 가버렸는지? 세상이 야박해가고있음을 민호는 느끼였다.

    그러면서 한편 젊은놈이 정당한 직업도 없이 건성으로 살아가자니 멋없기 짝이 없었다. 하여 무슨일이든지 해야겠다고 맘먹기도했는데 정작하자고 보면 손에 잡히는 일이라곤 없었다. 그래서 자연히 생각하게 된는건 만주에서 지내온 나날들인데 그것이 지어 그리워질 때도 있었다. 그닥 협오를 품지 않은데 원인이 있으리라.

    설이나 쇠고서는 만주로 가버리자. 이번에 가면 천방백계를 다해서 김장군을 만나리라. 그분은 연해주에서 첵코병의 총을 사서 등짐으로 지어 날랐던 이 민호를 아직도 기억하고 계실거다. 동무가 갖고온 이 총 동무가 갖고 싸우시오 하면서 손수 어깨에 메워주기까지 했으니까. 자기부대에서 자기를 따라 목숨걸고 왜놈과 싸웠던 나를 몰라봐주지 않을것이다. 사연을 그대로 말하면 랭대하지도 배척하지도 않을것이다.

    이러구러 하루가 삼추같이 느껴지면서 지겹게 지내던차 음력설을 쇠고 며칠안되여서 그는 뜻밖에도 하나의 놀라운 소식에 접하게되였다. 1930년 2월 9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김좌진장군의 사망보도를 본것이다. 

      

                 《新民府首領 金佐鎭被殺設 해림에서

                      청년에게 사격돼 事實眞假는 尙未判

 

    이게 어떻게 된거냐? 민호는 머리가 뗑해났다.

    나흘만에 신문에 또다시 <凶報를 確傳하는 白冶 金佐鎭의 訃音>이 실리였고 그후도 여러날 련속해서 장군의 피살에 관한 보도들이 신문에 실리였다. 이로 인하여 온 조선땅이 술렁거리였다. 청산리싸움을 지휘하여 토벌에 나선 일본군을 대패시킴으로서 독립군의 위력을 크게 과시했던 그의 형상은 망국의 설음을 가슴에 안고 지겹게 살아가고있는 2천만의 머릿속에 영원히 지워버릴 수 없는 민족영웅으로 자리잡고있었기 때문이다.

    민호는 그 보도들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읽어보았다.

   《만주에 있는 우리 독립진영은 대들보가 끊어졌어요!》

   《네 말이 맞다. 그런분이 어쩜 그렇게 쓰러지고마냐 참!》

    아버지의 얼굴역시 침통한 기색뿐이였다.

    민호는 신문에 실린 험악한 소식을 알려주었다.

   《아버지 이것봐요. 박상실이라는 청년이 총을 쐈다누만요.》

   《그자식 뭘해먹는 놈이라냐?》

   《고려공산청년회의 사람이라구했어요. 전에는 김장군의 부하질을했노라 밝히기도했고요.》

   《원, 하긴 잘한다. 그녀석 그러니까 배반을 한거구나. 사람웃긴다. 나라독립을 위해 몸바친 제민족 제동포 제사람을 죽이다니?》      우리는 왜 이꼴이 되는가?.... 김장군의 죽음은 살아있는 많은 사람들의 앞에다 하나의 커다란 의문부호를 던져주고 있었다. 항쟁에 나섰다가 왜병의 토벌에 들어 워낙 보잘것없는 대오가 괴멸되는통에 목숨을 겨우붙혀갖고 집으로 돌아온 이 전날의 의병은 만주땅에서 활발하게 벌어졌던 독립운동이 지금은 파쟁에 휘몰려 스스로 훼멸의 지경에 빠지는것만같아서 한숨을 쉬였다.

    아니그럴 수 있으랴. 그역시 이 시각 아들처럼 나라의 광복은 더욱 묘연하고 막막하게 느껴질 뿐이였다.

    며칠지나 민호는 아버지앞에서 정색하면서 말을 꺼냈다.

   《아버지!》

   《왜 그러니?》

   《제가 아마도 한번갔다와야겠습니다. 백형이 살아있는지. 살아있다면 지금 어디서 뭘하고있는지 그거라도 시원히 알아봐야겟습니다. 그래야 아버지도 어머니도 시름놓으실게 아닙니까.》

   《글쎄말이다. 소식이 전혀 깜깜하니 답답하구나. 그래 네가 네 형을 찾는다면 데리고올만하겠냐?》

   《그렇게는 못할거얘요. 올사람이면 거기로 다시갔을가요.》

   《하기는.... 개가 죽잖않고 살아만있다면... 하늘에 빈다.》

    아버지는 이러면서 민호가 만주로 가는것을 더 막지 않았다.

    

    얼음이 풀리기전에 국경을 넘어야했다. 민호는 부모님들이 제곁을 떠나가는것을 허락하자 곧 만주로 다시돌아왔다.

    민호는 매일 신문을 보았다. 그는 김장군이 피살된 북만주의 해림근처 산시마을에서 조선사람의 유지 95명이 모여 장비주비회를 열고 후사처리를 토의했다는 소식보도를 봤다. 하다면 장의를 어느때 하는지? 그때가 되면 백형도 친구도 혹시 참가하게될게 아니냐 하는 생각이 들어 민호는 어떻게 하나 그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겠다고 맘먹었다. 허나 그것은 생각일 뿐 경비가 자못 심할테니 그쪽으로는 감히 접근하기는 어려운 처지였다. 그래서 그러면 어떻게 할것인가 머리를 쓰고있는데 마침 땅이 땅땅 언때라서 광중을 파기 어려움으로 초장을 지냈을 뿐 장례를 크게하지 않았음을 알게되였다. 이제 아무 때건 장례를 크게 하겠지.

    민호는 해림에서 그리멀지 않은 한 편벽한 한족(漢族)마을에 끼여 사는 성이 남씨(南氏)인 동포집에 자리잡고 묵으면서 그를 내놓아 바깥소식을 듣고 있었다. 그 남씨는 언젠가 목단강 대차점에서 보았던 구가의 조선사람처럼 비루하게 고발할것 같지는 않았다.

    남씨가 어느날 나갔다가 들어오더니 자기가 들은거라면서 민호에게 알려주었다.

   《김장군헌테 총을 놓고 달아난 흉수를 아직두 봍잡지 못했답네다. 대신 그리하라구 시킨자는 언녕 잡아서 총살해버렸답네다.》

   《아, 그랬답니까! 그자 이름이 뭐랍니까?》

   《김뭐라더라?....이 정신봐라, 내가 듣구는 그만 깜빡잊었네.》

    남씨는 꺼풀진 눈을 꺼무럭거리다가 갈퀴같은 손을 올려 더수기를 극쩍거렸다.

   《생각정안나면 관두시오.》

    민호는 자기보다 기껏해야 세 살을 더먹었건만 걷늙어서 중년이 다되여보이는 농민동포에게 말했다.

   《저 한가지 심부름을 해줄수 없겠습니까. 이건 아주 요긴한겁니다. 수고를 해주면야 내가 그만큼한 보수를 주지요.》

    민호는 빈털터리가 아니였다. 나다니면 쓸일이 많길래 그는 집을 나오면서 돈을 얼마가량 갖고왔던것이다.

    남씨는 제집에 든 손님이 밥값 주숙비라면서 돈을 이미냈거니와 일을 해주면 또 얼마간 대가를 주리라는 말에 흔연히 동의했다.

   《어디말해보우 내가 할만한 일이면사 어련히 해주지 않으리.》

   《내 말하잖습디까, 잃어진 형님을 만나보자고 불원천리 찾아다닌다구. 내 형을 좀 찾아주시오.》

    민호는 이러면서 낯이 생소한 자기가 나돌면 왜놈의 첩자가 아닌가 의심받아 공연히 졸경만 치를것 같아서 그런다고했다. 그랬더니 남씨는 그럴 수 있다면서 자기가 찾아주리라했다.

   《그리고 한사람 더 찾아주시오. 중키에 반양머리인데다 미남입니다. 나이는 올해에 스믈여덟. 성명을 최기덕이라 하는데 나와는 절친한 사입니다. 그치는 로씨야서 건너와갖고는 다시건너간것같지 않은데 일명 최뾰돌이라도 부릅니다.》

    민호는 두사람을 꼭 찾아보라면서 돈을 20원내놓았다. 남씨는 이것이 처음으로 많이 쥐여보는 돈인지라 은근히 기뻐하면서 찾아달라는 사람의 이름을 되뇌이였다.

   《정민수라.....최기덕이 최뾰똘이라....》

    대가를 내면서 사람을 찾아서인지 헛수고를 하지 않았다. 남씨는 3일간 밖으로 나다니더니 과연 한사람을 찾아서 데리고 돌아왔다. 최기덕이였다. 이렇게 만날줄이야!

   《아유 이거 정형아니요! 죽잖구 살아있구만, 우라!》

    그는 너무도 뜻밖인지라 문턱을 넘어 들어오면서 환성을 올리기까지 했다.

    두친구는 얼싸 부등켜 안았다. 두손을 맞잡고 오래오래 마주보기도했다. 해후의 상봉이였으니 그 기쁨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저분께서 듣자니 정형은 고향서 가즈돌아왔다면요. 그래 고향계시는 부모님들은 다 무사하시오?》

   《무사하다. 그러니까 내가 맘놓고 다시왔지. 참 세월이 빠르기도하구나. 우리 서로갈라진지가 몇해되냐. 아마 팔년이지?》

   《그럴거요, 서로 못본지가. 내 정형의 소식을 다소간 았았더랬소. 그건 어래무에 다시가니까 나쟈형 알려주더구만. 그래 잃어진 아주머닌 찾아냈소?》

   《찾긴했다만 만나보지는 못했다. 츄얼이는 할빈서....이젠 다 버린사람이네라.》

    민호는 자기가 여차여차해 토비손에 떨어지게 된거라면서 여러해간 산채에 눌러있으면서 세월을 보내게 된 전과정을 그한테 쭉 얘기했다.

   《연극이요! 정말희한한 인생연극이라니까!》

    기덕이 귀담아 들으면서 가끔 부르짖군했다. 민호가 토비굴에 들어간 일을 모르는건 아니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그의 경력이 그를 다른세계로 몰아가면서 내심 감동시키고있었던것이다.

    민호는 그가 맘속에 친구를 그냥 잊지 않으면서 몹시그리고있었음에 사의를 표하고나서 물었다.

   《너는 그래 지금 어디에 있느냐?》

   《목단강에 있소.》

   《목단강에 있단말이지. 허니까 넌 이젠 도시사람됐구나.》

    기름을 발랏는지 기덕의 멋스런 반양머리가 반들거렸다. 거기다 옷까지 정갈하게 입어서 멋스러워보이기까지 했다. 민호는 도시사람답게 때벗이를 한 그를 보고 또 보면서 입을 다시열었다.

   《너 목단강서 뭘하니?》

   《교편을 잡았소. 대중계몽을 하느라구. 이역시 생명같이 여기는 독립혁명의 줄기인거요.》

   《잘한다. 그렇게 해야지. 나도 네가 그렇게 하리라고 믿는다. 그래 네가 지금 손잡고있는 사람들이 어떠냐. 신문을 보니 아주 큰 불행이 떨어졌더구나.》

    민호는 친구가 지금 신민부에 들어 거기의 임무를 맡고 계몽에 나선줄로 알고 이렇게 말했다.

    한데 대방의 반영은 판달랐다. 친구는 눈이 둥그래졌다.

   《건 무슨소리요, 큰 불행이라는게?》

   《김장군이 피살되잖았냐.》

   《정형은 날 누구로 보오. 내가 그편사람인줄아오.》

   《아니뭐라? 그편사람아니라니, 건 무슨소리냐?》

   《난 적기단사람이요.》

   《적기단사람이라니! 건 대체 뭔데?》

    이름만 척 들어도 알만한것이였다. 독립운동전선에 민족주의니 공산주의니 하여 대립이 형성되여 서로 등을 돌리고 반목한것이 어제오늘이 아니였던것이다. 민호는 로씨야에 건너가서 그것을 심심히 느끼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모르는양했다. 기덕이는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고 대방을 응시했다. 적기단(赤旗團)은 공산주의계렬에 선 하나의 조직이였다. 로씨야에 있을적부터 이미 공산주의선전에 물이 든 기덕이였으니 그 조직에 가담하지 않을 리가없다. 찍어놓고 말해 그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했다. 그런데 그 공산주의계렬이라는것을 놓고 보면 전부터 이 파니 저 파니 파쟁이 심하여 내분이 생긴것이 아직도 단합되지 않고 있었다.

    민호가 다시말을 꺼냈다.

   《네 몰골이 예전만 별로달라진게 없다만 네 마음은 어쩌면 변해진것 같구나. 물어보자. 너희들의 그 적기단이란건 뭘하니?》

   《공산주의혁명을 하고있지.》

   《독립혁명은 집어치웠냐?》

   《왜 집어치웠겠소. 공산주의혁명을 하면 그게 독립혁명을 하는것으로도 되는거요.》

   《그럼야 저쪽이나 이쪽이나 적대될것까지야 없잖겠니. 건데도  왜서 김장군을 살해했니?》

   《민호형님 그건 저.....》

    최기덕은 자기가 가입한 적기단이 김좌진을 살해한것이 아니라 조공만주총국의 사람이 살해했다면서 그네들이 내세운 리유를 아래와 같이 구술했다.

   《김장군은 할빈주재 일본총령사관의 경찰부장 마쯔모도와 밀담이 있었는데 마쯔모도가 그보고 돈은 근심말라. 독립군에 관한 정보와 공산당에 관한 정보가 수요된다. 조직의 명칭과 부서조직들간의 합작관계 등을 제공해달라하니 김장군은 그렇게 해주마 대답하여 활동경비를 타갖고와서 그것으로 산시마을에다 정미소를 세우고 제 향락을 누렸기 때문에 변절자로 락인하고....》

   《뭐라, 변절자라구?》

    민호는 격분이 치솟아 소리를 내쳤다.

   《개같은 자식들! 그가 누군데 함부로 무함이야. 소금이 쉰들 그가 마음이 변할가! 그 부실한 자들이 분명 왜놈의 간계에 넘어가 엄청난 바보짓을 한거야 바보짓을! 이건 어느때건 민족앞에 사죄를 해야 할 일이야, 사죄를 해야 할 일! 천추에 용납못할 대죄를 범했으니까! 같잖은 놈들이 저들이나 잘할게지 누구를 보고 변절자라구. 원, 한심해서!....하늘이 내려다보고있다, 하늘이!》

   《민호형님!....》

    욕은 듣는사람이 먹는다고 최기덕은 머리를 푹 숙이면서 어쩔바를 몰라했다.

    백씨네 식솔까지도 날벼락에 몹시놀랜 것 같았다.

    민호는 끓어오르는 격분을 참느라고 오래도록 뜸을 드리였다. 그러고는 기덕이보고 그거야 네일이 아니잖니 부끄러워말거라 하고는 너도 이넨 장가가서 집간을 일궈야할텐데 보태쓰라면서 돈을 얼마가량 내놓았다. 기덕이는 로비가 모자랄텐데 왜 그러느냐며 받지 않으려했다. 민호가 얼굴에 노여움을 띠우면서 말했다.

   《수달피는 발바닥만 핥는다냐. 공산주의자라고 바람마시고 사는건 아닐테니 잔소리말고 받아넣거라.》

   《그럼....》

    기덕이는 주는 돈을 마지못해 받아넣으면서 민호의 백형 민수가 이 근처에는 있는것 같지 않으니 자기가 책임지고 정의부(正義府)의 관할에 들어있는 할빈이남의 흥경, 통화와 저 압록강대안 참의부(參議府)의 관할에 들어있는 집안, 관전일대를 돌면서 한번 잘 찾아보겠노라했다.

    그가 이같이 자진해 나서니 참으로 고마운일이였다.

    츄얼이를 만나볼 일이 남았다. 판결을 했다니 그의 집에다 통지를 했을것이다. 모두들 어떻게 살고있는지 정황도 알아볼겸 민호는 친구와는 훗날 다시만나기로 약속하고 이틑날 곧 어래무를 향해 먼길을 떠났다.

 

    조선은 3월이 되면 날씨가 따스하면서 벌써 봄빛이 완연하건만 여기 북만은 의연히 겨울추위가 가시지 않았다. 민호는 양피털가옷을 한 벌 사입는 수박에 없었다. 얼마남지 않은 돈과 비수를 품속에 건사했다. 손에다는 조선서부터 갖고 떠난, 얇고 가느다란 대오리깝지를 촘촘히 결어 만든 자그마한 려행용트렁크를 들었다. 그속에는 옷견지와 위생도구밖에 없었다. 일견하여 려행을 나섯거나 아니면 장사를 나다니는 사람같아보였다.

    여기서 저 북쪽 변비의 동강까지 가려면 시일이 꽤걸릴것이다. 게다가 길도 잘 모른다. 하여 민호는 기차편으로 먼저 할빈까지 간다음 거기서 송화강을 따라 아래로 내려갈 생각을 했다. 송화강은 아직도 얼어붙은대로여서 썰매가 다닐테니까.

    그의 타산은 옳았다. 송화강에 과연 썰매가 다니여 기차편으로 할빈에 도착한 민호는 말썰매 개썰매 바꿔타면서 백씨댁을 떠난지 5일만에 최후종착점인 동강근처 흑룡강가의 어래무에 이르었다.

    어래무는 예전그모양대로였다. 짐승잡이가 그닥잖아서 산에서 일찍돌아오다보니 나쟈형제도 치더룽도 다 집에 있었다. 그사이 허저인장모는 폴싹 늙어버린데다 병까지 걸려 들어누워있었다. 생각던것과는 다르게 그들은 아직도 츄얼의 소식을 깜깜 모르고 있었다. 도리여 이쪽에서 츄얼이가 할빈의 한 유곽에서 몸을 팔다 일본사람이 죽어버린 일로해서 일본령사관의 경찰에 잡혀간일과 판결받아 무기형에 떨어진것을 아려줘야했다.

   《이 사람아, 또 가버릴텐가?》

   《지금은 안갈겁니다. 장모님 병치료를 해야지요.》

    민호는 거기를 인차돌아설 수는 없는지라 몸에 소지하고있던 몇푼안남은 돈을 다 털어 내놓았다. 저승길에 호적을 올린거나답잖은 사람인데 이제 약이 무슨 소용이 있겠나만 그렇게라도 하면 다소의 위안이 될가해서였다. 

    츄얼의 향방을 알려면 이제는 할빈의 일본령사관을 찾아가는 길밖에 없었다. 천리길을 걸어서 갈 수는 없었다. 민호는 로비를 장만하느라 강이 풀리기전부터 빙창(氷槍)으로 얼음구멍을 내고 후리그믈을 넣어 고기잡이를 시작했다.

    그 일을 하도 짓궂게 하니 한푼두푼 모아졌다.

    강이 다 풀려 배가 다니기 시작하자 민호는 할빈으로 갔다. 츄얼이는 멀리가지 않았다. 바로 할빈에 있었다. 남강구와 이어붙은 향방(香坊)구에 있는 수인옷공장(囚人被服工場)에서 고역하고있었다. 한데 츄얼이는 판결받을 때 치즈란이란 이름으로 되었거니와 남편이 없는 매춘부로 기록되었기에 민호는 대면이 허락되지 않았다. 혹시 허락되였다하더라도 그녀가 대면을 받아주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여 민호는 어래무로 돌아가고말았다. 먼저 그의 친정집식구들을 동원시키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부모형제들은 있는것으로 기록이 되었기에 나쟈의 처와 린화의 처가 함께가서 그녀를 만나보고왔는데 츄얼이는 그들에게 자기가 남편을 찾느라 헤매다가 로비가 떨어져 굶으며 고생하던 일, 그러다가 목단강역에서 대머리 한족사내 곡치환이 녀공모집을 한다길래 그 말을 딱 곧이듣고 다른 녀인 둘과 함께 할빈까지 따라왔다가 속히워 유곽에 팔려가고 만 일을 울음과 함께 토했다.

   《곡치환! 곡치환! 내 꼭 네놈의 명줄을 끊어놓고야말테다!》        민호는 주먹을 어스러지게 쥐였다.

 

    이해의 여름과 가을에 두 번이나 해림근처의 한족마을에 사는  백씨댁을 찾아갔건만 모두 허탕치고말았다. 기덕이는 아직도 민호의 백형을 찾아내지 못했던것이다. 찾기만 하면 곧 백씨한테 알리기로했다. 기덕이가 이 집에 와서 남기고 간 말이인즉은 자기는 줄을 놓아 계속찾을테니 그런줄을 알고 민호는 위험하니 제발 나다니지 말라고 일러주라하더라는것이다.

    하여 민호는 어래무에서 해를 넘기게 되었는데 그사이에 장모의 장례도 치르었다.

    내가 이젠 나이를 31살먹었구나. 아까운 청춘을 그저 이렇게 흘러보내다니! 최기덕은 의연히 백형을 찾지 못했다. 그가 찾아주기를 앉아서 기다리자니 속에서 털이 날 지경이였다. 그래서 갑갑함을 못이긴 민호는 9월이 되자 아무렴 이제 또 다시잡히랴싶어 대담히 나섰는데 길림에 이르러서 그는 돌연한 사태에 그만 백형을 찾으려던 생각을 멈추고말았다. 만주에 주둔하고있던 일본관동군이 갑작스레  사변을 일으킨것이다. 9월 18일이였다.

   《왜군이 봉청성 북대영을 포격했단다!》

   《사람죽이고 방화를 한단다!》

   《아수라같은 놈들이 란을 일으켰구나!》

   《당장 여기까지 쳐들어올거란다!》

   《저놈들의 나라에나 벼락이 떨어질거지!》

    사람들은 불안과 한숨, 저주와 공포속에 떨면서 갑자기 어떻게했으면좋을지 몰라했다. 그야말로 날벼락이요 눈섶에서 떨어진 재난이였다. 이로하여 온 만주땅이 부글부글 들끓기시작했다.

    민호는 발길을 돌려 어래무로 돌아오고말았다.

   《어떻게 된 판이요?》

    치더룽이 묻는말이였다.

   《뭘말입니까?》

   《시국말이요. 왜놈이 왜 갑자기 그 지랄피운다오?》

   《거야빤하지요. 제놈들이 우리 조선을 빼앗아 가지듯이 만주도 빼앗아 제 땅으로 만들자구 그러는거지요.》

   《그런놈을 가만둬?》

   《가만둬서야 됩니까. 이 땅에서 몰아내야지요.》

    력사이래 종래로 남의 침략을 달갑게 받는 민족은 없었다. 침략을 당하면 처지가 어떻게 된다는것을 너무나도 잘알기 때문이다. 하여 반항이 생기고 항쟁이 일어나는것이다.

    11월중순에 이르러 만주각지에서는 침략자에 항거하여 각가지 형태의 무장대가 조직되였는데 그의 중축을 이룬 의용군으로는 주요하게 왕덕림(王德林)의 구국군(救國軍), 리두(李杜)의 자위군(自衛軍), 정초(丁超)의 호로군(護路軍)이였다. 이런 때에 북만에서 건립된 한국독립당은 자기의 관할내에 있는 36개 군구(軍區)에 총동원령을 내려 재만동포들이 군사행동을 하도록 하는 한편 의용군모집을 하고있었다. 민호는 소식을 듣고 기뻐하면서 빈현(濱縣)에 달려갔다. 한데 염왕산에서 보낸 력사를 말했더니 받아주긴새려 도리여 추궁하려드는통에 그는 목숨이야 잃지 말아야지 하고 내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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