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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한 사람은 의담(義膽)에 의하여 구원받지만 사악한 인간은 버력을 입는다더니 과연 그러했다. 민호는 원쑤를 갚고보니 가슴속이 후련해났다. 량손에 수난자의 피가 랑자한 살인악마를 없애버렸으니 원쑤를 갚아준것이였고 만백성을 해치니 우환을 없애버린 통쾌한 일이기도하였다. 민호는 설분(雪憤)의 기쁨을 맞고보니 이제는 인육장사의 손에 의하여 타락해버린 안해를 구원해야겠다는 생각이 다시금 머리를 쳐들었다. 마음좋고 정실한 츄얼이가 어찌하여 곡치환의 손에 걸려들어 인생을 더럽히게 돼였는지 똑똑히 규명해야했다. 그래야만이 무고한 그의 통한을 풀어줄수도 있을것이였다.
이제는 안해를 구원하는 일이 남았다. 민호가 츄얼이를 다시찾아볼 의향을 내놓았더니 향란이는 아직도 그녀를 잊지 않느냐 무슨 미련을 그냥두고있느냐며 그닥 찬성하지 않지만 한편 또 그것은 남편으로서의 도의라면서 막지도 않았다.
민호는 위삼포를 찾아가 사정을 말하여 보름간의 외출허락을 받고 이틑날 곧 할빈으로 갔다. 한증속같이 찌물쿠는 여름날이였다. 인간이 많이 모여 붐비여서인지 도시의 공기는 산속같이 맑지 않았다. 하지만 산채에서는 볼수 없는 특유의 생기가 넘치면서 뜰끓고있었다.
민호는 양차를 잡아타고 곧추 도외로 갔다. 한데 무슨놈의 판국인지 그지간에 전에 와본 유곽은 간판이 없어지고 문도 봉해져 사람조차 볼 수 없었다. 대체 어떻게 된 판국이냐? 근 천리길이 헛걸음되고보니 민호는 졸지에 맥이 탁 풀리기까지 했다. 그는 가로수그늘밑에 가 앉으면서 머리를 푹 숙이였다.
이제는 어떻게 하면 좋을가?
땀을 들이고있는데 머리가 반백이 다 된 한 로파가 제 손자인듯한 어린애의 손목을 잡고 그가 앉아있는 그늘로 다가왔다. 한족(漢族)이였는데 근처 어디에 있는것 같았다.
민호는 그 녀인과 말을 걸어보았다.
《말좀 물읍시다. 저기 저 집이 전에 유곽인것 같던데 왜 간판이 없어졌는가요?》
《젊은이는 외지서 오셨소?》
《예. 방금 차에서 내려 오는길입니다.》
《그러게 깜깜부지지. 저건말이요 여기 어멈이 소송놀음에 망하는통에 간판까지 떼운거라오.》
《언제부턴가요?》
《이제는 아마 반년이 넘지.》
《그렇다면.... 여기에 있던 갈보들은 다 어디로 갔습니까?》
《아따,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소. 제갈데로 갔겠지.》
로파는 이같이 퉁명스레 말해놓고 민호를 다시금 여겨보더니 얼굴에 야릇한 웃음을 피워가며 물어왔다.
《젊은이는 기생을 찾소?》
《예.》
《어느 기생말이요?》
《치즈란이라는 기생입니다.》
《그 다즈년을 찾아왔구만!》
로파는 어감이 달라졌다. 웬일인지 흥미를 가지면서 웨치듯하는지라 민호는 캐물었다.
《보아하니 그 녀잘 잘알고있는것 같은데 대체 어떻게 됐습니까? 저는 그를 만나볼 일이 있어서 백수불구하고 찾아왔는데요.》
《그 다즈년을 만나보려구? 되지도 않을 소리를 하구있네. 그 갈보년은 왜령사관경찰에 잡혀가 판결을 받았어요.》
《아니 뭐랍니까? 왜령사관경찰에 잡혀가다니! 판결받았다구요? 왜서요?... 》
《그 여잘 보러 온 일본령감하나 있었는데 들어붙은채 그만 죽어버렸지. 그런걸 마상풍이라 한다우. 그런데도 그게 말썽거리가 돼서 결국은 갈보년이 바가지를 쓰고말았지 뭐요. 아무튼 그 갈보년의 조작이라구. 한심하기도하지, 무기도형이라니.... 그통에 어멈도 간판떼우고 다른 기생들은 얼싸좋다구 제갈데루 가버렸지유.》
《아, 그런판이였구나! 그런것도 이 멍청이는 여직 모르고있었지!》
그 한족로파는 조선말로 내뱉는 민호의 한탄을 알아들을 수 없는지라 두눈을 꺼무럭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젊은이도 다즈요? 그 여자하구는 어떻게 되길래?》
귀찮은 물음이라 민호는 아무런 웅대도 없이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그리고는 머리를 수굿하고 발이 가는대로 자신을 맏기였다. 어디로 향하고있는지 방향마저도 알수 없었다. 갑자기 쇄도하는 번뇌속에서 방황하고있던 그는 마주오는 인력거꾼과 마주쳐서야 비로서 정신을 차렸다.
철길건너 남강(南崗)에 일본령사관이 있었다. 민호는 발길을 그쪽으로 돌렸다가 그만두었다. 내가 거기를 왜 가느냐, 폭탄이나 한아름 안고가면 몰라도.... 못난짓이다.
제홍교건너 도리구(道里區)에서 헤매이던 민호는 거기 공장가 38번지에 조선사람의 천주교회당이 하나 있는것을 발견했다. 우리 동포 여기에 있구나!... 가슴속에 반가움이 사품쳐 올랐다. 한데 그 교회당이 안으로 문이 잠겨져 들어갈 수 없었다. 해도 그는 제 동포의 낯이라도 한번 보고 가려는 생각에서 섬섬대다가 나오는 사람이 없으니 그만 거기를 떠나고말았다.
민호는 다른거리에서 기독교교회당을 발견했다. 그것역시 동포교회당이였다. 민호는 대종교도였지 기독교인이 아니였다. 하지만 오래간만에 제 동포를 만나볼 수 있게 되였다고 생각하니 내심 반가우면서 감회가 깊어갔다. 몇해더냐, 제 민족어로 말해본지도 까마아득했다. 그는 동포를 만나 담은 몇마디라도 나누고싶었다.
례배일도 아니겠건만 여기는 문이 열려있었고 사람이 드나들었다. 민호가 대문가로 다가가 서성거리고있는데 마침 어른 한분이 지나가다가 그를 발견하고 누구를 찾느냐묻더니 데리고 들어갔다.
할빈의 조선인기독교회는 1921년에 설립되였는데 초기교도가 무려 280여명되였고 초대주인은 성이 백씨(白氏)인 목사였다. 그후 주인이 여럿바뀌였다. 민호는 자기를 만나주는 그 목사를 고스란히 따라들어갔다. 웬일인지 이시각 참회하듯 자신의 과거지사를 털어놓고 그한테서 따뜻한 위안의 말 한마디라도 듣고싶었다.
거의 밀페되다싶이한 자그마한 방안은 날아다니는 파리한마리 볼 수 없어 조용했다.
《보아하니 젊은이는 외지분같구료. 왜서 나를 찾았소?.... 내가 바로 이 교회의 목사요.》
《아, 그런가요!》
민호는 자못반가와 하면서 오롯이 몸을 가꾼 후 입을 열었다.
《목사님, 이런일입니다. 전도 원래는 독립군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팔자가 참 괴상하게 돌아갔지요.》
목사는 단통 이마살을 찡그렸다.
《젊은사람이 웬 신세타령이요. 그래 팔자가 어떻게 돌아갔다는건가?》
《이제 들어보시면 알게될겁니다. 전....》
민호는 다른일이 바쁜지 재우쳐묻고있는 그의 앞에서 3.1운동직후 자기가 국경을 넘어 만주로 들어오던 일, 만주에 와서는 처음 의렬단에 가입한 일, 그랬다가 대종교인이 건립한 독립군부대인 북로군정서 들어 청산리싸움을 치룬 일, 그것이 끝난 직후 밀산(密山)에 갔다가 이듬해정월에 호두(虎斗)를 거쳐 로씨야로 건너간 일, 로씨야에서 <자유시사변>을 겪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일, 허저인마을에서 살다가 여차여차해서 친구인 니항군청년은 가고 자기만 남았다가 결국 거기서 허저인 가싼다의 딸과 결혼하여 살게 된 일을 말했다.
《가만!》
목사는 채 들을념을 하지 않고 그의 말을 중둥잘랐다.
《네가 그래 이방계집을 안해로 맞았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그녀는 마음곱고 인정있는 여자였습니다.》
《가만! 그래서 제 민족도 아닌 다즈를 얻었다는거냐?》
《그랬는데는 뭐가 잘못됐는가요?.... 우린 서로 끔찍이 사랑했는걸요. 결혼이 참으로 아기자기했습니다. 그러다가 내가 친구찾으러 흑하로 간 사이 그만 망나니녀석들이 랍치해갔던겁니다.》
민호는 그녀의 그후의 비극을 말했다. 즉 오랜 끝에 이곳 할빈에서 찾아냈는데 그녀는 이전의 모양은 없어지고 어느덧 륜락의 구렁텅이에 빠지고말았노라했다.
《네가 그런년을 아직도 찾고있다는말이냐 그래?》
《예, 바로그렇습니다. 이러나저러나 나의 안해가 아닌가요.》
목사는 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대단히 언잖아했다.
《하나님의 훈계를 듣지 않았으니 네절로 네 신세를 망친거로구나.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 이것이 너를 지켜서 악한 계집에게, 이방계집의 혀로 호리는 말에 빠지지 않게 하리라. 네 마음에 그 아름다운 색을 탐하지 말며 그 눈꺼풀에 홀리지 말라. 음녀로 인하여 사람이 한쪽각 떡만 남게 됨이며 음란한 계집은 귀한 생명을 사냥함이니라> 너는 여호와의 이같은 훈계를 받지 않은 탓에 스스로 고통을 걸머진거니 누구를 원망하겠냐.》
《목사님, 저는 누구를 원망하는게 아닙니다. 안해가 불쌍해서 그럽니다. 이방인의 녀인을 안해로 얻었다고 죄될거야 없잖은가요. 내 안해는 본래부터 음녀가 아니고 순결한 여자였습니다.》
《순결했다? 그런 녀인이 왜 지금은 음녀가 된거냐? 되지도 않을 소리. <나를 듣고 내 입의 말에 주의하라. 네 마음이 음녀의 길로 치우치지 말며 그 길에 미혹되지 말지어다. 대저 그가 많은 사람을 상하여 엎드리게 하였나니 그에게 죽은자가 허다하니라. 그 집은 음부의 길이라 사망의 방으로 내려가느니라> 들었느냐?》
《그렇지만 목사님! 저는 안해를 구하지 못해 죄스럽습니다. 그인 왜놈을 죽인 협의로 무기도형에 떨어졌답니다.》
민호는 그를 찾다가 여차여차해서 토비손에 잡혀 오늘까지 토비노릇을 해온 사실을 죽 말했다. 그랬더니 목사는 마치 벌레라도 삼킨것 처럼 역겨워하는것이였다.
《오, 주여! 죄인을 구원해주옵소서. 너는 길을 잘못걸었도다. <사특한 자의 첩경에 들어가지 말며 악인의 길로 다니지 말지어다. 그 길을 피하고 지나가지 말며 돌이켜 떠날지어다. 그들은 악행을 행하지 못하면 자지 못하며 사람을 넘어뜨리지 못하면 잠이오지 아니하며 불의의 떡을 먹으며 강포의 술을 마심이니라> 너는 그래 이런것도 몰랐단말이냐?》
《목사님, 모르는게 아니라 거기서 발을 뺄 수 없는겁니다. 저는 원쑤를 갚았습니다.》
《원쑤는 갚았다만 네가 죄짓는건 왜 생각못했느냐말이다. <의인의 길은 돋는 햇볕같아서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르거니와 악의 길은 어둠같아서 그가 걸쳐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니라>》
《목사님, 깨닫지 못한게 아닙니다. 저는 독립혁명에 다시금 투신코저 거기를 나오려고한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를 죄인이라며 받아주지 않는걸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래서 토비노릇을 그냥하게됐다는거겠지. <악인은 자기의 악에 걸리여 그 죄의 줄에 매이나니 그는 훈계를 받지 아니함을 인하여 죽겠고 미련함이 많음을 인하여 한미하게 되느니라> 알아들었냐.》
《미안합니다만 저를 잘못보셨습니다. 그리구 목사님도 세상물정을 더 알아야겠습니다.》
민호는 이런 말 한마디를 뱉어놓고 그만 나와버렸다. 자기를 악인으로만 보고있는 그의 설교가 전혀 귀에 들어가지 않고 밸만 점점 꼬였던것이다.
민호는 염왕산으로 인츰돌아오고말았다. 그래놓고 보니 츄얼이가 판결받아 어디로 옥살이를 갔는지 알아보지 않은게 후회되였다. 그는이제 염왕산을 영 나가버리면 그때가서 품놓고 안해의 행방을 알아보리라 맘먹었다. 죄로 이어가는 류자생활에서 발을 씻고 이제부터라도 인생을 참답게 살아보리라는 그였다.
그가 할빈에 갔다온지 며칠이 안되여 위삼포는 차챈더인 민호더러 묘동전에 목단강일대에서 깃대꽂은 기와가마 하나라도 찾아보라했다.
시간은 충족했다. 차라리잘됐구나 이 기회에 내할일이나 해보자. 민호는 그쪽으로 가는 기회에 거기 어디에 있을것만 같은 최기덕이와 백형을 찾아보리라했다. 그네들은 거기서 독립혁명에 몸을 잠그고있을것이다. 이제 그들을 만나 소식이나 알고 조선땅 고향에 돌아가 부모님이자 잘 모시며 살아가리라.
《여봐, 진국이 나좁보자.》
《형님, 무슨일이요?》
《바람 좀 안쐬겠나?》
《나하구 나가보자는거요?》
《위두령께서 명령을 내렸다. 날보고 들어앉아 알만까지 말고 유람좀 하다오라구.》
하진국은 띠우던 패쪽을 집어던지고 얼른일어나면서 벌씬 웃었다. 민호는 쟁반밟으러 갈때마다 그것을 <유람>이라했다. 그는 늘 그와함께 나다니기가 소원이였다. 여기로 들어오자 하진국이 그한테 류자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해준 보상으로 민호도 그한테 자기가 아는것만큼 세상이 돌아가고있는것을 많이 알려주었다. 그러다보니 두사람은 사이가 더 친근하면서 밀접해진것이다. 하진국은 다른새자들보다 박식해서 세상물정을 보고 분석할줄도 알아 언어가 좀 통했다. 하기에 말동무가 되어 같이 바깥구경을 하는것도 하나의 락인것 같았다.
둘은 말을 타고 산채를 나왔다. 한창 가을절기라 아름다운 산천은 그들에게 상쾌한 기분을 안겨주었다. 고마웠다. 자연만은 이같이 그 어떤 리해관계도 편견도 없이 세상사람을 골고루 제품에 안아주고 애무했다. 이것이야말로 그 어떤 하나님도 베풀지 못하는 거룩한 혜택이 아닐가싶었다!
저녁해가 설핏할 무렵에 그들은 목적지에 당도했다. 그들이 레루장을 넘어왔던 정거장쪽으로부터 이따금 되알진 차고동소리가 청청한 공중으로 울려펴지군한다. 아직은 포장이 잘 안되여 골이 패인 큰길에서 마차와 자동차가 한데붐비고 있었다. 이제 큰건물들이 하나 둘 일어서기 시작하는 도시는 깨끗지 않았다.
《형님, 여긴 어느때가야 할빈만큼 커지고 정돈될가?》
하진국이 물어보니 민호는 그저 아리숭한 추측을 했다.
《글쎄말이다. 할빈은 지금 시민이 사십만이 넘는데 여기야 언제. 반세기지나면 그렇게 되겠지. 북만주가 개발지대라서 그만해도 발전은 빠른축이야.》
하진국은 이제 막 도시로 건설이 되어가고있는 목단강이 장차 변하게 될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한가지 물음을 더내놨다.
《반세기라, 그때면 우리 염왕산은 어떻게 될가?》
《네생각에는 어떻게 될것같니?》
《점쳐볼가.》
《점이 아니고 발전할 시대에 따라서 상상해보란말이다.》
《내가 그걸 어떻게....》
마음이 성실하고 올곧아 때로는 롱담마저 진담으로 여기군하는 하진국은 두눈을 꺼무럭거리면서 과연 미래의 염왕산을 머릿속에 그려보는것이였다.
민호는 그 모양을 흥미롭게 보다가 입을 열고 물었다.
《너 진국이는 끄때까지도 염왕산이 그대로 있을것같으냐?》
하진국은 대답하지 않고 두눈이 퉁방울만해지면서 이켠을 보았다. 그의 눈이 아니뭐라구 이제말을 다시해봐라 하고 있었다. 하늘이 무너져 천지개벽을 한다해도 염왕산만은 그대로 남아있을거라고 굳게 믿거니와 그렇게 되기를 갈망하는 염왕산류자에게는 그런 말이 심장을 놀래우는 천둥같이 들리였을것이다.
《날 왜 그렇게 보니?》
《갑작스레 낯설어보여서 그러오.》
《그럴거다. 듣지못할 소리를 들었으니. 하지만 내 말이 공담은 아닐거다. 진국이 너 제 운명을 점칠만하냐. 염왕산도 제 운명을 점치기 어려운거야. 인간세상이 천변만화하는데 그래 그거라고 영구불멸할가. 그럴수야 없지. 안그래?》
하진국은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렇다고 형님말이 맞소 하고 맛장구치며 수긍하고싶지도 않았다. 자기는 인식이 그만했다.
《시내에서 밤을 지낼예산이요?》
《그래야지. 안그럴거면 왜 들어가겠나. 며칠간 묵으면서 예요(극장)도 가보자.》
《거기루말이지, 그럼야 좋지!》
하진국은 이번이야말로 진짜유람하는 멋이라면서 하하웃었다.
그들은 말을 타고 여기까지 왔으니 우선 말을 건사할 수 있는 려관을 잡이야겠기에 곧추 대차점(大車店)을 찾아갔다. 하진국이전에 몇 번 와보았다는 곳이였다. 대차점치고 그리크지 않았는데 촌에서 올라온 짐실이부업군 열대여섯과 수레장사군 몇이 먼저와서 투숙하고있었다.
그런데를 둘이 더 가니 자리가 만원이 되었다.
민호는 짐실이부업군 중 촌티나는 중년사나이 하나가 아무리봐도 동포같아 말을 걸어봤더니 과연 옳았다.
《내 오늘 여기서 제 동포를 만날줄은 정말 생각못했습니다.》
민호는 오래간만이라 무등기뻐했다.
《젊은인 어디서 왔능기요?》
《나말입니까 난 먼데서 왔습니다.》
민호는 자기가 염왕산에서 왔노라 말할 수는 없는지라 그보고 어디서 왔느냐 되물었다. 그랬더니 대방은 자기는 집이 구가(舊街)에 있노라했다. 그가란 민호도 알고있는 녕고탑(寧古塔)인것이다. 녕고탑이란 만족어로 <여섯개>, <여섯점>이란 뜻으로서 본명은 우공탑(牛拱塔)이던것이 녕고탑으로 와전되였다. 지금도 녕고탑, 구가, 고탑, 녕고 등 여러 가지의 이름으로 불리우고있는 거기가 바로 청조(淸朝)의 개국시조(開國始祖) 누르하치가 태여난 곳이다. 누르하치는 그곳에서 태여나 자라면서 무예를 닦고 용맹과 기지를 키워 후세이 불후의 이름을 남긴것이다. 그리고 청조때 파해장군(巴海將軍)은 이곳에다 장군부(將軍府)를 세워 변강을 지키고 나라를 다스림에 탁월한 공을 세웠던것이다.
녕고탑은 이같이 력사유구한 곳이다. 망국의 한을 품은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은 바로 거기를 고향같이 여기면서 모여서는 장래를 담론하기도 하고 권력지배를 놓고 아귀다툼을 하기도했다.
한데 민호는 그곳이 그닥 인상이 좋지 않았다. 어느해인가 안해를 찾느라 돌아다닐 때 동포가 많이 모여사는 거기에 갔다가 밀정으로 오인되여 한바터면 잡힐번했던거다.
《거기 지금도 우리네 동포가 많이 삽니까? 살아가는 형편들이 지금은 어떤지요?》
《젊은인 거겔 갔댔능기여?》
《예, 몇해전에 가봤습니다. 내 일이 있어서.》
둘이 이야기를 하는 사이 조선말을 깜깜 모르는 하진국은 목침을 베고 누워 눈을 지긋이 감은채 제 생각에만 잠겨있있다가 그만 잠이 들어버렸다.
한편 동포사회에 대해서 깜깜했던 민호는 궁금증을 푸느라 그 사람과 이것저것 자꾸캐물었다.
촌티의 동포가 자기는 배가 아파 변을 봐야겠다면서 밖으로 나갔다. 한데 나간지 이윽하도로 돌아오지를 않았다. 민호는 로독이 밀려드는지라 팔베개를 하고 누운채 깜박 잠들고말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누군가 팔을 툭 툭 치길래 눈을 펀들 뜨고 보니 웬 낯모를 청년이 그를 깨우고 있었다. 그말고도 청년 둘이 더 있었다. 변을 보겠다며 나가던 사람이 이네들을 데려온게 분명했다. 저 륙시를 해치울 녀석이 나를 고발한게로구나. 민호는 기분이 탁 상하면서 당장일어나 그자를 한매 우려주고싶었다. 허나 그렇게 하면 일을 크게 만들 수 있는지라 그는 조용했다.
《손님, 손님은 조선사람이요?》
치머리를 곱게 한 30대의 젊은이가 민호를 칼칼히 쏘아보면서 캐물었다.
《그렇소 나도 조선사람이요. 보면 모르겠소.》
《어디서왔소?》
《북쪽에서.》
《남쪽에서 온건 아니여?》
나오는 말투가 살갑지 않았다. 대방을 간세(奸細)로 보는지 왜놈의 첩자로 보는지 눈살을 세워가면서 흘겨보는 꼴이 분을 돋구고있어서 민호는 성을 냈다.
《날 심문하는거냐 어쩌는거냐? 너희들은 대체 뭘해먹는 자들이냐?》
《챠 이거 뭐가 범무서운줄을 모른다더니....》
셋중 책임자인듯한 그 젊은이가 내뱉는 소리였다. 민호는 모욕을 당한것 같아서 발끈했다.
《저리 썩 물러갓! 돼먹지 못하게 누굴막보고하는 수작이냐!》
하진국이 그의 목소리를 듣고 잠을 펄쩍깼다.
저쪽 세 조선젊은이는 이켠의 노기서린 엄엄한 눈길에 부딧치자 그제야 자기들의 실수를 깨달았는지 멋없이 물러갔다. 필시 반간첩대원들 같건만 그 수완이 너무나 졸렬해서 민호는 욕지기가 나왔다.
《얼치기같은 놈들, 누구를 잡자구. 흥!》
액때침을 뱉고나서 그는 구가의 사람을 향해 된욕을 퍼부었다. 《나쌀이나 처먹은게 기껏안다는게 그것뿐이냐. 무슨할짓없어 개질이냐.》
그 사람은 똥망태라도 뒤집어 쓴 모양으로 낯이 벌개질 뿐 감히 대꾸질을 못했다.
하진국이 주먹을 메려는것을 민호가 제지시켰다. 주먹한대면 알아보겠지만 그럴필요까지는 없었다.
좀있으려나 나이지긋한 어른이 아까왔던 청년 셋을 앞세우고 대차점으로 들어왔다. 그는 문을 들어서면서부터 민호를 깐깐히 눈빗질해보더니 곁으로 다가와 마치도 로련한 숫범이 살어름에 발목을 다칠까봐 저겨딛듯이 이름이 뭔가 어서 왔는가 누구를 찾는가고 하나하나 조심스레 캐물었다.
민호는 자기의 성명과 찾고있는 사람의 이름은 제대로 댔지만 어디서 왔는가 하는 물음에는 제대로 대지 않고 저 북쪽 멀고도 먼 흑룡강가 동강근처의 허저인마을에서 왔노라했다. 자기들의 신분은 알려주지 않고 남만 무턱대고 의심하면서 미주알고주알 캐고드는 이런 사람앞에서 제 실정을 말하고싶지 않은 그였다.
저쪽은 민호가 동강근처에서 살다왔다니 아 그렇다면 윤세복(尹世覆)이라는 분을 봤겠구만했다. 윤세복은 1924년에 대종교(大倧敎) 제3교주로 된 사람인데 한때 교세를 확장하기 위해서 동강까지 간적이 있었다. 그런 사람의 이름까지 걸면서 민호의 신원을 조사하고있었다. 민호의 처지를 놓고 보면 원래는 이것이 과거에로 환원할 수도 있을 절호의 기회였다. 하건만 내내산속에 묻혀있었으니 윤세복이 누군지 그가 알 리가 만무였다.
민호는 무밋거리다가 의심만 깊어가고있는 대방의 핏기없는 차가운 얼굴을 보며 씩 웃었다.
《젊은이 왜 웃는가?》
《내가 모르는 생뚱같은 사람을 봤느냐 물으니 그럽니다.》
《아니 거기서 살다왔다면서 그래 윤교주도 모른단말인가?》
《뭐랍니까? 그분 교줍니까? 혹시 우리 대종교 교주아닌지?》
《그렇지 대종교 교주지. 자네도 그래 대종교인니가, 한데두 그걸 여적지 모르다니 맹상한 사람이군!... 열혈이 끓을 땐데 나라광복은 생각안하고 여적지 구석에 처박아있었다니 원. 한심하구나!》
노여움에 비난이 한데섞인 질타였다.
누가 나라광복을 생각하지 않는단말인가, 내가? 민호는 그가 자기를 몰라보면서 너무나 비하하니 분기가 솟구쳐 올랐다. 그는 숨을 거칠게 톱으면서 한마디 맞받아쳤다.
《말 좀 삼가시오. 어쩜 사람도 몰라봐주고 망탕소리합니까.》
《젊은인 그게 무슨소린가?》
《제만제노라 남을 너무 그렇게 갖잖게 보지말라는겁니다. 누군 무골충인줄압니까. 나도 독립의 총을 메고 싸웠던 사람입니다.》 《뭐라, 젊은이도 그래 독립혁명을 안다 그건가?》
《내라고 왜 모르오리까. 난 그렇게 까막바보는 아닙니다.》
하나는 의심하고 하나는 변명하고....본래 얼마든 쉬히 풀릴 수 있는 일을 둘은 점점 꼬아만가면서 무익한 말씨름을 하고 있었다.
민호는 전에 해림에 갔다가 한번 잡혔던 일이 상기되여 정신을 발딱차리였다. 내가 그때 뽐창을 뿌려 사람을 부상시켰더랬지. 이제다시 잡히기만 하면 오 네가 잡혔다가 도망쳤던 그녀석이로구나 하면서 불문곡직하고 총살해버릴것이다. 해석도 변호도 필요없다. 누가 내말을 들어주랴. 이 사람들과 말씨름을 오래해봤자 쓸데없다는것을 깨달은 민호는 돌연 한가지 소원을 내놓았다.
《나를 신민부에 계시는 김장군한테 데려다주시오. 그분은 나를 면목압니다. 난 그하고 할말이 있습니다. 꼭 만나게해주시오.》
《뭐라, 젊은이가 김장군허구 할말이 있다?》
《예. 지금 내가 여기서 아무리 말해봣자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믿어줘야 할 사람을 믿어주지도 않으니. 그래서 나는 꼭 장군을 만나자는겁니다. 그분은 나의 말에 귀를 기우릴것이고 나를 믿어줄겝니다. 내가 사할린 의용대에 들어갔다가 자유시사변때 살아난것부터 얘길해도 증명은 훌륭하게 될겁니다.》
《싸할린의용대라.... 자유시사변이라.... 》
그 사람은 민호를 다시금 여겨보더니 어느정도 믿음이 가서인지 아니면 의심되고 리해하기 어려운 이 청년이 김장군을 만나 꼭 해야 할 말이 있다해서 그러는지 그러면 좋다 내가 너를 데려다주마고했다.
《민호형, 이 사람이 뭐라구 하오?》
하진국이 웬 영문인지를 몰라 불쑥 물었다.
《나를 우리 독립군의 김장군한테루 안내하겠단다.》
《뭐라우? 우리라니? 오인형님, 형님이 그러니까 본래는 독립군이였단말이요?!》
하진국은 이제야 민호가 어떤사람이라는것을 알고 몹시놀랬다.
《되놈이구만! 누구여?》
그 사람은 하진국이 놀라면서 내던지는 말에서 이상스러운 어떤 낌새를 챘던지 상서롭지 않은 불순한 냄새를 맡아내려했다.
《내가 잘아는 중국친굽니다. 함께 석두하자에 가던길에 여기에 들렸지요.》
민호는 되는대로 거짓말을 꾸며갖고 림기응변했다.
《친구라.... 같이 석두하자에 가는 길이라.....》
그 사람은 혼자소리로 뇌이고있는데 보아하니 민호의 신원에대해서 다시금 의혹을 품는것 같았다. 민호는 그래도 이 사람을 통하여 우선 김좌진장군부터 만나보려고 생각하면서 더 캐묻기전에 손을 걸었다.
《저는 석두하자로 가지 않겠습니다. 아무래도 김장군부터 만나봐야겠습니다. 그러니 어른께서 저를 꼭 데려다주시오.》
저쪽은 그러마고 대답했다.
저녁켠이 되어왔다. 그들은 저녁을 먹고 출발하기로했다. 몇해전에 북만에 건립된 신민부(新民府)는 위치상 중동철로의 중간이 되고있는 여기 이 목단강시에서 서쪽으로 해림을 지나 산시(山市)라는 자그마한 역전마을에 있어서 거기로 가야 김좌진장군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지금 군사부위원장으로 사업하고있었던것이다.
민호가 관자집에 가면서 하진국이보고 내가 김장군만나러 갔다오겠으니 너는 그지간 시내를 떠나지 말고 예요에 가서 극구경을 하던지 아니면 야회에 가보면서 며칠간 기다리라했다. 그랬더니 하진국은 민호보고 또 잡히면 어쩔라구 그러느냐면서 못가게 극구말리였다.
바로 이때였다.
《바로 저자식이다!》
웨침소리가 나더니 조선청년 여럿이 달려와 민호를 체포하려했다. 공교롭게도 그들중에 전에 해림에서 민호가 뿌린 뽐창을 맞고 팔목이 병신된 청년도 끼여 있었다.
그들이 달려드는것을 민호보다 하진국이 먼저알고 손을 썼다. 자기가 먹던 죠즈접시를 뿌리면서 자리에서 뛸쳐일어난 그는 가까이 다가와 권총을 겨누는 치머리를 주먹으로 때려 단번에 꺾구러뜨리고는 발길 주먹질을 련거퍼해서 나머지 사람들도 모두 그모양으로 만들어놓았다.
바라던 일이 개코같이 틀어지고말았다.
《빨리가자! 풍자(말)있는데로!》
민호는 손을 다시쓰려는 하진국을 향해 소리쳤다.
그들은 재빨이 그 자리를 피해 대차점으로 달려가 말을 풀어 타고 시내를 나와버렸다. 민호는 예상밖의 일을 당하고 보니 기분이 몹시잡쳤다. 저쪽도 본래는 민호를 얼마든지 쉽게 체포할 수 있었다. 장군만나러 가겠다니 데리고 가다가 손을 쓰면야 될게아닌가. 한데도 그들은 의심이 여전한데다 해림의 그 청년이 볼일있어서 이 시내에 왔다가 소식을 듣고 나서는 통에 일이 이같이 번진거다.
민호가 독립군에 얼마간 두고있던 미련마저 이제는 산산히 깨지고말았다. 부서지고 날리는 마음을 그러모으고 안정하기어려웠다.
민호는 이렇게 목단강을 떠나 하진국과 함께 보름가량 아무런 보람없이 헤매다가 산채로 돌아오고 말았다. 뭐라고하겠는가. 민호는 위삼포앞에서 둘이 목단강일판을 돌아봤는데 마슬만한 기와가마가 없더라 굴뚝에다 깃대를 꽂은 기와가마는 더구나 하나도 찾아내지 못했노라 거짓말을 했다.
《소가 몇 마리있긴합디다만 너무여위여 먹을것같지 않습니다. 살이 오른다음에 보는게 좋암즉합니다. 우리안에 있는 놈이니 아무 때나 우리들의 가마에 들어올게 아닌가요.》
충고가 다분한 이런 보고를 듣고 위삼포는 고개를 찌붓거렸다.
《칼을 댈만한게 그리두없더란말이지.》
《그렇습니다. 말짱 풋살도 오르지 않았습니다.》
《정녕 그렇다면야 별수없지. 아무렴 비린내나는 놈이야 어떻게 먹겠나. 거기는 묵밭으루 남겨두었다가... 개황지가 적으면 륜작도 해야하는거네.》
품위가 떨어지는 좀스러운 짓은 하기싫어하는 위삼포였다. 그는 원계획을 포기하도 달리 머리를 쓰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방향을 길림쪽에 돌려보는게 어떨가했다. 그사이 깃대꽂은것이 늘어났을거야. 부자가 많은 그곳으로 전에 두 번 출마해 두 번 다 성공해서 단맛을 봤는데 그런 맛을 한번 더 보기싶었다.
보름후. 민호는 위삼포의 새지시를 받고 제가 이끄는 정찰대를 전신무장시켜 데리고 김림쪽으로 떠났다. 운수좋게 련방대나 경찰의 추격에 들지 않았다.
염왕산의 그들 10명류자는 말을 달려가다가 어느 한 마을에 들려 점심을 먹게되였다. 이렇게 나다니노라면 별일을 다 보게된다. 그들이 점심을 다 먹고 곧 떠나자는데 웬 젊은 놈 다섯이 찾아오더니 눈을 두리번거리다가 민호앞에 와 무릎을 꿇으면서 입을 모아서 간청하는것이였다.
《나으리, 우리를 받아주시오. 우리도 록림객이 되렵니다.》
민호는 괴이쩍어했다.
《너희들은 내가 누군줄알고 이러는거냐?》
《왜모르겠습니까, 염왕산협객아닙니까.》
그들중 한자가 이러면서 민호와 왕견을 번갈아보면서 전해에 그들이 두부방당나귀를 찾아준 일을 끄집어냈다. 다섯녀석이로구나, 여기서 또 만나다니!... 민호는 그때일을 상기하고 물었다.
《그렇지, 너희들은 오인당이지?》
《아닙니다. 우린 오룡회입니다. 그때의 오인당은 흩어져 없어지고 지금의건 내가 다시 국을 세운겁니다.》
국을 세웠다니 자식이 류자를 모집해서 새로 도당을 무은게로구나. 무슨놈의 협객이고 록림객이냐 염왕산이나 량산박이나 그게 그 꼴 토비라는 이름은 벗지 못하는거다. 본분에 맞게 농사나 지으면서 착실하게 살아갈게지 무슨궁리들이냐. 민호는 속으로 욕하면서 그들이 찾아온것을 달가와하지 않았다.
그의 이러한 심기를 눈치챘는지 다섯은 꿇어엎딘채 일어날 념을 하지 않고 이마를 땅에다 조아려가면서까지 기어히 받아달라 애걸했다.
《좋다, 너희들의 요구가 정 그렇다면 내가 받아주마. 그러되 시험은 쳐야겠다. 그래서 합격되면 데리고갈것이요 불합격이면 할애비가 와 빌어도 쫓을테니 그런줄을 알라.》
민호는 이러면서 수하새자들보고 유리병 다섯 개를 얻어 병마다 물을 골똑넣으라했다. 그리고나서 그것이 준비되자 민호는 재래의 방법대로 시험을 쳤다. 그는 먼저 주동분자인 그 오룡당에 있었던치부터 나오라해서 병사리를 꼭대기에 이게한 후 앞으로 걸으라했다. 그자는 멋모르고 시키는대로했다. 민호는 그자가 50여보갔을 때 권총을 갈겨 꼭대기에 인것을 박살냈다.
《아이구머니!》
그자는 그만 혼비백산하여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말았다. 왕견이 달려가 손을 그자의 사타구니에 넣더니 오줌을 쌌다면서 코를 쥐고 웃다가 발로 궁둥이를 차놓았다.
《에잇 파즈(겁쟁이)야! 이꼴을 갖구두 류자루되려해? 냉큼 썩 물러가!》
모두들 하하웃었다.
나머지 넷은 아예 기권하고말았다.
민호는 이제다시나타나면 아예 바지에 똥물을 싸게 만들어놓을테니 그런줄을 알라면서 그들을 쫓아버렸다.
그들은 이번걸음에 쟁반을 헛밟지 않았다.
염왕산에서는 이해의 초겨울에 계획대로 길림근처 어느 한 마을에 있는 깃대꽂은 기와가마 하나를 성공적으로 마사버렸다.
염왕산의 산채는 예전대로 무사태평했다. 다른류자들이 아무가탈없이 제나름의 생활을 여전히 해나가고 있을 때 민호만은 염왕산을 떠나갈 궁리를 하고있었다.
《요즘 신색이 왜 그래요. 어디가 불편한가요?》
향란이가 다소 눈치를 챘는지 물어보는것이였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이게 몇해요.》
《부모님생각나 그러는가요?》
녀인이 묻는 말에 민호는 그저 한숨만쉬였다.
향란이는 민호가 이제는 안해생각은 영 버리고 부모를 그리는줄로 알면서 아무리 천애지각에 있은들 불효자가 돼서야 되느냐면서 한번 고향가 그들을 보고오라했다. 영가버리라는 소리는 아니였다. 차첸더로까지 된 그를 이젠 영영 제사람으로 여기고있는 향란이였다. 발을 빼고 영가버랴야겠는데 민호한테는 그것이 바로 난제였다. 그깟거 가서 오지 않으면 단데. 그의 이런 속궁리를 위삼포가 눈치채고 놓아주지 않을것 같았다. 실속없는 약속은 죽음을 의미하는것이다.
마침 향란이가 나서서 도와주마고 했다.
《걱정말아요. 집에갔다오게 하라고 제가 부친님께 여쭈겠어요. 어때요. 그만하면 나도 성의는 다하는거로 되잖을가요. 부탁은 하나뿐이얘요. 가보고 다들 무사하면 너무오래 지체말고 돌아와요. 그렇게 할 수 있겠나요?》
민호는 향란이가 하는 말을 들으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이건 네하만이 바라는게 아닐것이다. 위삼포도 용강이도 그럴것이다. 말은 하지 않아도 이 정민호를 제 가족성원으로 여기고있으니까. 아무튼 우선 여기를 나가고봐야한다고 생각하면서 민호는 대방의 감정을 맞춰주었다.
《나도 갔다가 되도록 인차돌아올 생각이요. 염왕산을 어찌잊겠소, 더구나 향란아가씨를 두고서 내가.》
향란이는 민호의 말을 믿어주었다. 허나 위삼포는 믿지 않았다.
《그 사람이 내앞에서까지 여기를 병주고향이라면서 떠나지 않으리라 하지만 그걸 어찌 믿겠냐. 제새끼그립고 아까운건 세상동물이 다갖고있는 마음이네라. 한즉 이제 돌아가면 부모들이 붓잡고 놓지를 않을게다.》
위삼포는 이러면서 그를 집에 보내달라고 간청하러 온 딸보고 미련을 너무갖지 말고 현실을 정시하라했다. 위삼포는 물론 집으로 가겠다는 민호를 막지 않았다. 여기를 나간다해도 민호는 자기한테 해를 줄 사람이 아니라고 믿고있기 때문이다. 청가를 맞고 갔던 사람이 돌아오지 않을 경우면 그가 어떤사람임을 물론하고 염왕산의 법규를 무시하는 행위로 되기에 용서받지 못함은 물론 그를 믿고 허락한 맏두령인 자기는 결국 속히우고 우롱당하는것으로밖에 되지 않길래 분한것이다. 위삼포는 자기가 그런꼴이 되느니보다 민호의 진속말을 들어보고 차라리 그를 내보내기로 맘먹었다.
하여 민호는 희망대로 여러해를 가탈없이 몸을 잠그었던 염왕산을 나갈수있게되였다.
류자가 무리에서 퇴출하자면 향을 뽑아야 한다. 그러는걸 여기의 은어(黑話)로는 <접느다>고 하는데 뜻인즉 손을 씻고 이제부터는 류자생활을 그만둔다는거다. 이것은 무릇 맏두령을 제외한 그 어떤 류자든 퇴출할 시면 꼭 거행하게되는 행사로서 <괘주>가 어렵다하지만 향을 뽑는 일에다는 비하지도 못하는것이다. 발을 들여놓았다가는 빼기가 그렇게 어려움을 말한다.
자칫하면 목숨을 잃고만다. 만약 부모가 사망해 집식솔을 거둘 사람이 없어 부득불 나가야 할 경우면 내보는데 그래도 맏두령은 먼저 사람을 보내여 허실여부를 조사해서 처리하는것이다. 나갈조건이 떳떳치 못한 류자가 향을 뽑겠다해도 그가 향을 뽑는걸 허용은 한다. 그래놓고는 그의 거동을 지켜보는것이다. 거짓말을 하는 자일수록 행동은 더 천연덕스레 꾸미는것이다. 벌써 뒷조사를 다해서 속히고있다는것을 알고있던 맏두령은 그 자가 향을 뽑을 때 상을 탕 치면서 대노한다.
《깨끗치못한 녀석! 내오늘 너를 빼버릴테다!》
그러면 류자들은 퇴출자의 본심을 알고 분노하여 왁작떠든다.
《저놈이 버들을 뜯지 못하게하라!》
《저놈이 초롱을 놓지 못하게 하라!》
맏두령이 모자를 벗어 탁상에 동댕이치면 규률을 장악해온 수이샹이 나가서 호통친다.
《내가 교육을 적게했더냐 이 쓸모없는 물건짝아. 형제들을 고생시키지 말고 네절로 가거라!》
네스스로 명을 끊어버리라는거다.
향을 뽑고 나간 자가 관가에 잡혀 제 형제들을 팔아먹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래서 퇴출하려는 자가 향을 뽑을 때면 류자들은 다가 그를 독기서린 눈으로 쏘아보는것이다. 그 서슬에만도 담이 약한 자는 바지에 오줌을 싼다. 담이 큰자라 하더라도 등골이 싸늘해나는것이다. 성정이 흉포한 어떤 류자들은 두령의 령이 떨어지기 바쁘게 칼을 빼여들고 달려나가 그의 귀를 잘라버리거나 아니면 눈알을 뽑아버린다. 어떤때는 지어 그의 생기를 잘라버리면서 <네녀석의 조롱박이 어디 씨종자나 받는가 보자>고 하거나 볼따구지를 베여내여 까마귀가 먹게한다.
류자가 많으니 별인간이 다 있다. 아직 늙지도 않으면서 아주 영 게을러빠져 맥골을 못쓰거나 꾀를 부리고 들어앉아 파먹기만하는 자도 있는것이다. 산채에 부담거리로 되는 그런 류자를 그냥둘수는 없어서 처리해버리는데 그럴때도 두령은 방법을 써 그가 향을 뽑게해서 죽여버림으로써 다른 류자들을 훈계하는것이다.
향뽑는 일이 이같이 힘들고 무섭다해도 리유가 정당하면 퇴출하는데 무릇 퇴출자에 한해서는 보증인이 있어야한다. 향을 뽑는건 절교함을 의미하기 때문에 원칙상 뽑고 간 사람은 다시받아주지 않는다. 좋은 말은 남이 밟아놓은 풀을 먹지 않는다.
달이 둥글어져 유난히 밝은 날 밤 향란이는 먼저 개인적인 정감으로 송별연을 차려 이제 떠나가면 다시올지 어쩔지 모를 민호를 청하여 마지막 밤을 함께 즐기였다.
이틑날 오전. 염왕산류자 전체가 중앙산채의 앞마당에 모이였다. 민호가 산에 들어와 <괘주>를 할 때 처럼 두터운 판자로 든든하게 만든 단우에 돌을 파서 만든 네모난 검은 향로가 놓여있는데 그때와 다른것이라면 지금 거기에는 19가치의 향이 이미 꽂혀서 타고있는 그것이다. 자기가 <괘주>때 불을 달아 꽂아놓은 그 향을 이제는 제 손으로 뽑아야 한다는거다. 향로에서 타고있는 향을 보면 꽂을때와 마찬가지로 앞에 3가치, 뒤에 4가치, 왼쪽에 5가치, 오른쪽에 6가치였고 가운데에 1가치가 꽂혀있는데 파아란 실오리같은 연기가 가믈가믈 피여오르면서 향긋한 향내를 대기속에 풍겼다.
이날의 의식도 역시 반둬더가 집행했다.
민호는 그가 시키는대로 앞으로 나가 먼저 가운데 꽂은 향부터 뽑고 꿇어앉아 입을 열어 높은소리로 말했다.
사방에 십팔라한
중간에는 맏두령이시네
산채에서 흘러보낸 허구한 날
형제들의 보살핌 많이받았네
오늘 이 동생은 떠나갑니다만
어찌 형제들이야 잊으리오
동생은 부모곁에 돌아갑니다만
마음만은 형제들을 떠나지 않으리오
가마를 마슬때나 나가 돌 때나
부디 개와 벼루기를 조심해주시오
발밑에 땅이요 머리우에 하늘
어디간들 목숨을 가르리오
철마는 실없이 웃지 않고
..........................................................................................................................................................................
* 솔소자ㅡ채찍. * 개극ㅡ싸움. * 초롱을 놓다ㅡ비밀을 발설하다.
* 꽃쟁반ㅡ곰보 * 예요ㅡ극자. * 매매가 틀리다ㅡ일이 성사못되다.
* 파즈ㅡ겁쟁이. * 비호자ㅡ돈 * 버들을 뜯다ㅡ도망치다.
* 풍자ㅡ말 * 꽃옷ㅡ모가나 등애에게 피가 빨려 죽게 만드는 형벌.
가슴도려내도 변심은 하지 않으리
동생이어찌 못난짓해서
산채의 안녕을 깨뜨리오
맏두령님의 길성 높이걸려
국은 언제나 붉어질것이니
형제들은 부디 평안무사하시라.
한구절을 끝내고는 향을 한가치씩 뽑아 19구절의 문구를 다 웨치고나니 향이 다 뽑혀졌다.
위삼포는 만면에 웃음을 띠우면서 자리레서 일어났다.
《자네가 이젠 마음놓고 돌아가도 되네. 나갔다가 산채가 그리워지거든 아무 때건 다시와서 형제들과 한가마밥을 먹어도 되네.》
《맏두령님 감사합니다.》
《여봐라!》
《예 두령님!》
새자들은 일제히 응한다.
《떠나는이가 로비로 쓰게 비호자(돈)를 주거라.》
《예, 그렇게 하지요.》
새자들과 사량팔주 모두 제 주머니끈을 풀어 얼간씩 내놓았다. 민호는 여기에 온 이래 죽어버린 황보재나 진사해를 내놓고는 그 누구와 크게 척진 일이 없이 지냈거니와 여러류자들의 안목에 지략과 담량있는 용감한 사람으로 공인되였던터로 다가 갈라지기 아수해하였다. 그는 그만큼 류자들속에 위망을 세웠던것이다.
이날은 유달리 좋은날씨였다. 민호는 자기가 타던 말을 타고 그들의 전송까지 받으면서 기분좋게 염왕산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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