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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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의 밤>> 제2부(26)
2015년 02월 04일 10시 04분  조회:2326  추천:0  작성자: 김송죽
 

                          26

 

 

 

    향란이와 소춘매는 언젠가 장평을 태평진에 보내여 찾아온, 자기들의 모습이 그대로 박혀진 4촌짜리 사진을 다시꺼내여 그것을 액틀에 넣어 벽에 걸어놓고는 보면서 즐겁게 떠들었다.

   《호호호....내 올케가 이렇게 멋쟁인걸 깜빡 몰랐네. 뭐라구 하면 좋을가. 그렇지, 백련이라구 하면 되겠네.》

   《내가 백련이면 시누인뭐랄가, 붉은장미? 그래 그래야겠어. 내 비유가 틀리지 않을거야. 시누인 장미야. 아름다운 붉은장미!》

    그랬다 사진속의 두 녀인은 다가 꽃같은 미모였다. 하지만 그녀들의 성정만은 물과 기름이 같지 않은 것 처럼 서로같지 않은것도 사진속에서 그대로 나타나고 있었다. 안색이 맑고 깨끗한 소춘매는 아련하고 부드러운데 비해 깔끔한 향란이는 명랑하고 쾌활한편이였다.

    자기의 몰골을 빤히 들여다보고있던 소춘매가 얼굴에 웃음을 다시피여올렸다. 번화한 도시 화려한 화류항을 버리고 여기로 들어온지도 이제는 오래건만 아직 별로 축간데 없이 젊음을 간직하고 있었다. 이전의 아름다움과 매력을 잃지 않은것 같으니 그녀는 기뻤던것이다. 그렇다, 여지껏 근심걱정없이 편안히 지내왔으니 아무튼 행운이라해야 할 것이다. 그 어지러운 풍류장에서 속량하기를 잘했다. 그러지를 않았더라면 지금쯤 어떤 모양이 되었을가. 탕자들의 시달림도 시달림이려니와 복잡한 시국에 운명이 어찌될지도 몰라 초사하는 사이 이마에 주름살 하나라도 더 생겨 깊어졌으리라. 그녀는 말괄량이 기생엄마의 몰골이 새삼스레 떠올랐다. 그년은 과연 인정머리없고 어거지 센 흡혈귀였다.

    그녀가 할빈 연하루에 있을 때는 기생이 모두 스믈둘이였는데 소춘매는 꽃중의 왕이런가 인물이 제일고왔거니와 비파도 제일잘탔다. 그녀의 꾀꼴새같은 노래소리에 반하고 자색에 반하여 풍류객들은 더구나 모여들었으니 연하루가 흥성한건 제대로 말해서 그녀의 덕이라해얄것이다. 하건만도 기생엄마는 만족도 모르고 잔소리를 해댔고 탐욕도 점점 더 커갔다. 무한정으로 지속되는 고달픔속에서 환멸을 느끼기 시작한 소춘매는 그제야 차츰 일신을 금옥같이 아끼면서 허탕한 여자로 그냥살지 않으려고 속량을 꿈꾸기 시작한건데 때마침 이쪽에서 손을 썼던것이다.

    소춘매는 묘계로 자기를 빼내온 오인 정민호의 은공을 죽는날까지 잊을것 같지 않았다. 하여 그녀는 한때 시누이를 민호와 정식부부로 맺어주는것으로 은공에 어느정도 보답하려했다. 한데 그럴필요가 있는것 같지 않아서 그녀는 왼심을 쓰지 않았다. 그네들은 누구의 도움도 간섭도 바라지 않은 성의 동반자였다. 어떤때는 의견이 맞지 않아 옥신각신 하다가도 잠자리만은 너무나 자연스레 어울러지군하는 그들이였였으니까. 어떤때는 소춘매의 눈에 그들의 관계가 미묘하면서 애정색채도 유달리 짙고 달라 자글자글 재미가 있는것 닽이 보이기도했다.

    향란이가 입을 열더니 오래동안 속에 넣고있은 것을 꺼냈다.

   《올케, 올케는 태평진의 그 까치서방님같은 사진사는 언제부터  면목알았던가요?》

    이런 질문은 대방을 나처하고 거북스레 만들리라는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속에다 그냥 넣고 삭일수 없었던것이다.

    소춘매는 귀밑을 붉히였는데 대답이 애매했다.

   《글쎄요. 내가 일면파에서? 아니면 할빈서?.... 아무튼 어느때 본 사람일텐데 전혀 생각안나요.》

    향란이는 고개를 까댁였다.

    소춘매가 눈을 할끗 빨았다. 시누이는 지금 속으로 네년이 앞문으로 받아주고 뒷문으로 내보낸 손님만도 기수부지겠지 하고 자기를 비난하는 것 같아서 야속했던거다.

    향란이는 올케야 어떻게 생각하건 무감각한 듯이 여전한 투로 말했다.

   《올케 기억나요, 그날 사진찍을 때 우리 먼저 멋쟁이 사내하고 팔끼고 사진찍던 여인말이이야?》

   《시누인 해사스레 생긴 녀잘 그러지. 왜 생각안나겠어요.》

   《올케보겐 그 여자 뭐같애요?》

   《뭐라고 말할가.... 난 그런건 생각안했지. 한데 시누인 생급스레 나하고 그건 왜 물어요?》

   《내 눈에는 그년이 구미여우같아 그래. 아무리봐도 그렇더라니까. 그런 녀잔 사내의 간이나 빼먹고 살 계집이야. 나도 여자지만 그렇게 해사떨줄은 몰라.》

   《그 여자 해사떨었던가. 난 그런건 눈팔아보지도 않았지.》

    소춘매는 그쯤한 일에는 흥취없는지 입을 다물었다.

    이틑날. 산채를 나가 집에 갔던 새자 하나가 돌아와 갖고 울면서 자기의 가정이 그지간에 당한 불행을 공소하는 통에 온 산채가 불안해졌다. 사변이 나서 집집이 시달림받는다는 소문을 듣고나서도 그런 화가 간대르야 내 발등에까지 떨어지라며 무관심하면서 여기서 태평스레 보내는 사이 늙은 어머니와 처자가 다 일본군의 손에 살해되였던 것이다.

   《왜놈들은 갑작스레 달려들었다오. 어떻게 했는지 아오. 반일둥지를 없애버린다면서 동네사람을 하나도 달아나지 못하게 했다는구만. 집에다 몰아넣구는.... 어떻게 했겠소.... 불을 질렀다오. 살겠다고 밖으로 나오면 분자(총)루 갈기고 청자(칼)루 찔러서 몰살을 했다오. 그런것도 모르구 이 얼빠진건 여적지 들어앉아 태평스레 보냈지. 내가 이러구 혼자살아서는 뭘해. 아아!....》

    그래도 산사람이야 어쨌든 살고봐야지 따라서 같이 죽겠느냐면서 마음을 너르게 먹어라면서 그를 위안하는 류자들도 있고 우리 집은 어떤지 모르겠구나 근심하는 류자들도  있었다.

    그 새자는 탄식을 뽑으면서 로파모양으로 넋두리까지 했다.

   《식솔이 그토록됐는데두 이 머저리는 태평가만 부르로 있었지. 이놈의데에 들어앉아서..... 꿀단지를 파묻었나. 내가 글쎄 외 이놈의데만 들어앉아있었나말이다. 무정한 인간이야. 불효막심한 인간이야. 지독한 놈이야. 사람새끼 아니야!》

    그가 너무나 시끄럽게 구는통에 중앙산채에서 사량팔주까지 나와보았고 나중에는 위삼포까지 웬일이냐며 나왔다.

   《저 자식이 아마두 인사불성이 된것 같구나.》

    위삼포는 리지를 잃은 새자의 입을 막아놓으라했다.

    그래서 양즈방이 그를 인질을 가두던 방에다 집어넣었다.

    그 새자는 밖으로 나오겠다고 발광하다가 그만 미쳐버렸다.

    위삼포는 령을 내려 류자들을 다시는 산밖을 나가지 못하게 단속했다. 산채를 소란케하는 불리한 인소를 막자는 생각이였다.

    향란이는 올케한테서 비파를 배우다말고 다시금 무예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철채찍다루는 솜씨와 뽐창다루는 솜씨는 귀신도 탐복시킬 지경이니 산채에서는 감히 겨룰자가 없었건만 그에 만족하지 않아했다.

    소춘매는 그 재간이 부러워 자기도 배우리라 접어들었다가 안되겠던지 그만 기권하고말았다. 그녀는 책을 읽거나 산놀이를 하는 외 의연히 비파타고 노래를 불렀다. 비파소리에 노래가 있어서인지 산채는 생기가 흐르는 것 같았다. 류자들은 아는 노래가 많아 바닥날줄 모르는 그녀를 할빈명기로 여기고  황후같이 받들기도 하고 몸을 갖고싶어 침을 흘리기도했다.

    정신을 홀홀하게 만드는 절묘한 곡이 가끔 류자들의 넋을 빼앗더니 요즘은 식어갔고 그녀의 얼굴에는 그늘이 비끼기 시작했다.

 

                  갈라지던 그날부터

                      애간장타던 이 가슴

                      상사의 정은 언제나 사라지려나

                      란간에 기대여 서니

                      흰 버들꽃만 옷소매를 어루만지네

                      시내물이 굽이돌고 산이 막힌 저쪽으로

                      그대는 떠나갔네.

 

    그녀는 조용한 방에 홀로앉아 비파를 가슴에 안고 노래불렀다. 어쩌면 관한경이 지은 이 산곡(散曲)이 남편을 리별한 그녀의 절절한 상사의 정을 그대로 그려주는것만 같았다.  

   《시누이! 오랍은 산채를 떠난지 꼭 한달이지?》

    향란이를 보자 그녀가 비파를 내려놓으며 하는 말이였다.

   《남자들은 다 그모양인가봐. 집사람 애타게 소식기다리는 줄은 모르고.》

    향란이 역시 오빠가 너무나 무정해지는것 같아 말했다.

   《대체 어떻게 된걸가?...》

    불만을 토해놓고서도 한편으로는 또 어쩐지 불기한 예감이 갈마들어 의문부호를 달았다. 그가 떠날 때 향란이는 어디에서 어떤일이 있더라도 열흘내에 소식을 알리라 당부했던것이다. 그런데도 오빠는 그 약속을 리행하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제 올캐가 속을 태우는것 같아서 자기도 파악이 없는 위로의 말을 했다.

   《올캐 우거지상을 말아요. 이제 소식올거야. 의심이 병이라잖아. 아무렴 그사이 잘못됐을라구. 않그래요? 자, 심심한데 시집올 때 받은 장신구나 내놓아요, 내 좀 다시구경하게.》

    소춘매는 말없이 덕대에서 대추빛나는 반들반들하는 자그마한 나무함을 내리여 시누이앞에 놓는다.

    향란은 받아서 열어보않다. 비취박은 수식들 외에도 금팔찌, 옥비녀, 보석귀걸이, 진주보석, 록주옥, 단백석... 눈이 황홀할 지경이다. 하건만 이러한 금은보화도 간이 마르기 시작하는 녀인들에게는 기쁨을 주지 않았다. 그리 희한한것도 아니니 이 순간만 지나면 또다시 근심이 머리를 채울것이였다.

     초여름치고는 화창한 날씨였다. 밝은 해는 염왕산을 호듯호듯 내리쬐고 있었다. 이날은 인원이 반수이상 줄어든 산채가 흡사 묘동때의 모양으로 조용했다.

     양즈방에 가두었던 새자는 머리를 돌벽에 박아 자살해버렸다. 그가 죽어 소란은 멎으니 산채에는 점점 고적하고도 침울한 기분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왜 이럴가? 아마도 이건 산채에 남아있는 류자들의 생활이 전보다 무미하고 따분하고 따라서 공허해지는 것과 관계될 것이다. 그들은 바깥소식을 무척알고싶었으나 알 방법이 없었다. 산채에는 전문 밖의 형세를 정탐하고 수집하는 류자가 있기는 하지만 요즘은 왜선지 산채를 나가지 않거니와 산채를 나갔다온다해도 그는 일반류자나 새자들 앞에서는 입을 다물고 모든걸 발설하지 않는것이다.

    

    소춘매가 늦잠을 자고 일어나 시누이방으로 건너왔다.

    향란은 세수도 하지 않은 에푸수수한 몰골을 보자 물어봤다.

   《올케는 간밤에 또 꿈이였지? 무슨꿈을 꿨나요?》

   《간밤에는 아마 꿈이 없었은거같아. 몸이 자꾸자꾸 둥 둥 뜨는것 같더니 그만 잠들었어요. 그리고는.... 》

   《올케, 그건 몸이 허약해서 그런건데 어쩌면 좋을가. 보약이라도 써얄텐데.... 식사를 제대로해요.》

   《음식이 입에 댕겨야 먹지.》

   《그럴거야. 그게 다 오빠탓이지. 왜 지금도 소식없는지 원!》

    시누이의 동정깊은 말에 소춘매의 눈에 이슬이 가랑가랑 맺힌다. 소식없는 남편이 야속하기 그지없었던거다. 

   《난 어쩐지 그이가....》

   《올캐 그따위 오도방정은 떨지 말아요.》

    이때 위삼포가 왔다.

    향란은 의아쩍어하면서 그를 여겨봤다.

   《아버지, 무슨일인가요?》

   《량태가 그러는게 너희들이 요즘 때를 자주건넨다구하더구나. 어디아프냐? 신외무물이니 다들 제 몸을 제절로 보살피거라.》         위삼포의 검죽죽해진 얼굴에 다심한 심려가 비껐다가 가시여지고 야 이 계집년들아 시계를 좀 봐라 해가 서발이나 올라오도록 자다가 인제냐 일어나다니 원 하면서 게으르고 라태함을 핀잔하고 있었다.

    소춘매가 헝클어진 머리를 얼른 비더듬어 올리고나서 시아버지한테 물어보았다.

   《저 아버님! 산을 나간 분들은 소식있나요?》

   《아직은 없구나, 련락을 짓기루했는데.》

   《아주 먼데로 간 모양이죠?》

   《아무리 멀어도 만주땅을 벗어났겠냐.》

    위삼포는 사실 답답하니 여기로 온것이다. 웬 일인지 요즘은  꿈도 없어서 딸과 며느리의 꿈얘기라도 듣고싶었던것이다. 한데 녀인들도 간밤은 꿈이 없었다니 그는 별말없이 돌아서고말았다.

    위삼포가 비여있는 양즈방을 돌아보니 반둬더가 말했다.

   《양즈방이 너무오래비여서야 될가.》

   《빈들 어쩔텐가, 방표를 하자구?》

   《뭘 좀 마스지 않고 될가.》

   《인마두 적어졌데 어디가서 뭘 어쩐다구.》

   《용강이를 내보내지 말았어야할걸 그러지 않았소.》

   《무슨소리를.... 안내보내구는 어떻게.》

    항일에 참전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위삼포의 태도가 의연했다.

   《도대채 어디루갔는지 원!....》

    그는 정찰을 내놓아 아들의 행방을 알아봐야겠다고 했다.

    이때 뜻밖의 보고가 들어왔다. 외선경비를 서고있던 류자가 달려들어와 오인이 수백명의 기병을 거느리고 산채로 돌아오고있다는것이였다. 수백명이라니, 대오가 그렇게 강성해졌단말인가?!

    여러 두령들은 보고를 받자 급히 영접하러 나갔다.

    말발굽소리 요란한 중에 총소리 다섯방 울리였다. 오군자의 깃발을 날리고있는 대오는 자못 엄엄했다. 그리고 그것은 낯설었다.      《오, 자네들이 왔구려!》

    위삼포는 반가움을 표시하면서도 감히 더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다. 그럴 계제가 못되였다. 민호의 웃음기없는 차고 심각한 얼굴을 보는 순간 불길한 어떤 예감이 전류처럼 그의 머리를 스쳤다.

    중앙산채의 널다란 앞마당에 들어선 300여기의 기마대는 숙련된 잽싼 동작으로 다섯 개의 대형을 지었다.

    분개없는 령감쟁이 이젠 로망이 들어 부엉이 셈을 하는가, 아무렴 량심팔고 이럴수야 있는가. 반일을 하자고 권유했더니 마지못해 응하더니 아들에게 200명이나 주어 데리고 나가 귀순시키다니 어디 말이 되는가! 오인 정민호는 한번 해보자고 이같이 인마를 이끌고 달려온 것이다. 그는 마치도 청동을 부어 만든 사람같이 말잔등에 꿋꿋이 혀리펴고 앉은채 내리지 않았다. 칼날같은 시선으로 자기를 환영하러 나온 두령과 류자들을 칼칼히 쏘아보고나서 머리를 쳐들었다. 이전보다 더 강직하고 결곡해보였다. 그의 그 자못 위엄스럽고 표표한 태도에 누가 감히 범접이나할가.

    한편 성정이 엄한 위삼포는 존엄스레 지켜온 상하급간의 규례가 여지없이 무시되고있는지라 밸이 부걱부걱 괴여올랐다. 하지만 그래도 참는 수밖에 없었다.

    민호는 자기를 언잖게 여기는 위삼포를 맞받아 차가운 시선을 던지면서 입을 열었다.

   《맏두령, 이 오인은 오늘 휴식하러 산채로 들어온게 아닙니다. 한가지 일을 똑똑히 캐고 돌아갈테니 묻는 말에 대답해주시오. 왜서 일본군에 귀순했습니까?》

    아닌밤중에 홍두깨모양으로 불시에 들이대는 이런 질문에 위삼포는 어처구니없어서 허허 웃고나서 볼멘 소리를 내뱉었다.

   《누가 귀순했단말이냐?》

   《위용강!》

   《뭐라!?》

    위삼포는 깜짝놀라 무르춤했다. 내내 결패있고 위엄스레 보이던 두눈은 단통 빛을 잃고 낯은 돌같이 굳어졌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량태의 말에 뒷이어서 다른두령과 류자들이 웅성대기시작했다.

    그들은 믿지 않았다.

   《이걸 보시오! 보면 알게될겁니다!》

    민호는 품속에서 접은 종이를 꺼내였다.

    반둬더가 그 종이장을 받아 펼치였다.

    그것은 적들이 만주각지에 있는 토비들에게 귀순을 독촉한 회유문이였는데 내용은 이러했다.

 

              여러 무리들아, 어서 마음고치고 뉘우쳐 발길을

                돌리거라. 빨리깨닫고 빨리뉘우침은 죄를 삭감하는

                유일한 량책이니 너희들은 다가 그것을 잊지 말아

                야 할지어다. 지금이라도 늦이 않으니 초무를 받아

                들이거라. 그런다면 후한 상금이 내려질것이다.

                악명자자했던 염왕산도령 위용강도 수하를 150명이

                나 거느리고 스스로 태평진수비대를 찾아와 투항을

                자원하고 귀순해서 지금은 은덕높은 황군이 하사하

                는 후한 상금타고 부귀와 영화를 누리고 있다. 과거

                를 묻지 않을테니 여러 무리들아, 너희들도 그를 본

                받아 어서빨리 회개하고 발을 돌리거라.오로지 그래

                야만 살길은 나질것이다. 유공자에게 시시로 장려가

                있을것이니 모두알고 후회하는 일이 없게하라.

                              

                                          일본관동군××사령부     

                                                1934년××

            

    반둬더가 다 읽고나서 한숨쉬면서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의 손에서 흘러 떨어진 종이장이 땅에서 날렸다.

    한 류자가 허리굽혀 자기 발끝까지 랄려온것을 주어본다.

    적들의 그 사갈과도 같은 회유문은 이 사람손에서 저 사람손으로 넘어갔다.

   《위용강이 그런짓을 하다니!》

    양즈방이 읽어보더니 이러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믿지 못할 애였군!》

    화서즈역시 불쾌한 낯색을 지으면서 내뱉더니 한마디 더했다.

   《나가서 그런짓하는건 모르고 기별오기만 기다렸지.》

    투항은 바로 굴복이였다. 하기에 염왕산의 두령은 누구나 다  여지껏 그것을 가장 큰 치욕으로 여겨왔다. 한데 오늘 위용강이 염왕산의 명예를 더럽히고 치욕을 불러왔다. 하여 사량팔주다가 관동군에서 낸 그것을 보고는 격분하여 심정을 토로했다.

   《뭐라, 악명자자했다? 위용강이 귀순안하면 그따위소리는 안들었을건데.》

    다른 류자들도 결이나서 오오했다.

   《누가 우릴 그렇게 평가하는가?》

   《거야 왜놈이지.》

   《왜놈탓할것 없다 자길탓해야지.》

   《중팔구 절팔구 자기는 호강하구. 하기는 잘한다.》

   《제길할 이제는 누구를 믿나?》

    이러한 가시돋힌 비난이 애비된 위삼포의 가슴을 란도질했다.      얼굴이 창백해지면서 노기가 가득피여 오르던 그는 마침내 입을 열어 한마디 씹어 뱉었다.

   《그 녀석 뒤여지자구 환장을 했나보지. 각을 찢어치울 놈!》

    그는 지탱못하고 비츨거렸다.

    딸과 며느리가 그를 부축해서 집안으로 들어가 구들에 눕혔다. 그녀들은 낯이 새파랗게 질려갖고 그가 혹시 운명이나 하지 않을가 겁나했다. 향란이는 울기까지 했다.

    산채는 이 사건으로 인하여 몹시부산했다.

 

    오군자기마대는 산채에서 2일간묵고 염왕산을 나가버렸다.

    류자를 맡겨 반일을 하라고 내보냈더니 반일은 하지 않고 되려 변절한이 되었으니 그보다 더 대역부도한 짓이 세상에 어디있는가. 그지없는 수치를 느낀 향란이는 아버지가 정신을 차리자 그의 앞에다 제 심정을 토해놓고말았다.

   《난 오빠가 정말미워요. 죽이고싶도록 미워요. 오빠가 우리 위씨가문의 위신을 일락천장이 되게 만들었단말이얘요.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아요.》

   《글쎄말이다. 남의 원망을 사게됐구나.》

   《참 귀신이 들어도 곡할일이지. 오랍이 어쩜 맘이 그렇게 앵돌아질가요. 그리고 여기왔던 그 조선사람들은 또 어떻게 되고요?》

   《그걸 누가알겠냐.》

   《그들도 같이 귀순했을가요?》

   《사상이 강철같으면 몰라도.... 네 오랍은 어디 남한테 호락호락 넘어갈 사람같더냐. 무슨놈의 감투끈인지 원!》

    위삼포는 아들이 변심한 원인이 대체 뭘가고 이리저리 궁리하고 머리악을 썼지만 도무지 알 수 없어서 나중에는 여기로 들어왔던 세 조선사람이 실상은 일본특무가 아니였을가 하고 생각했다.

   《이렇든 저렇든 이 일은 똑똑히 알아봐야겠어요.》

   《내 생각에도 그러는게 좋겠다만....》

   《내가 한번 태평진에 갔다오는게 어떨가요, 아버지?》

   《네가! 혼자서 어떻게?....》

   《오랍이 과연 귀순했다면 그놈들이 날 해칠리야 없잖아요.》      《하긴그렇네라.》

    위삼포는 딸의 안전이 걱정되면서도 그나 며느리아니고는 위용강을 만나보고 올 사람이 없는지라 갔다오는것을 허락했다. 어떻든간에 시원히 알아봐야 할 일이였다.

    한편 소춘매는 남편이 귀순해서 상금타고 거기서 부귀영화를 누리고있다니 별의별생각이 다 나면서 마음이 괴로와지기시작했다. 이러던차 시누이가 와서 자기보고 함께 태평진에 갔다오지 않겠느냐 하니 얼싸좋다고 나섰다.

 

    이날도 천기는 좋았다. 말이 잔달음을 놓아 녀인들이 어깨에 걸친 하늘색의 마상유삼은 깃발같이 팔랑팔랑 날리렸다. 조롱에 갇혔던 새가 자유를 찾아 하늘을 나는것 같이 그들은 기분좋았다.

    아침을 먹고 떠난 그들이 태평진까지 닿고보니 오후3시였다.

    전에 왔을 때와 분위기가 달랐다. 토성의 대문을 지키는 자들이 행인을 엄하게 감시하고 있었다. 

   《올케 무서워말아요.》

   《무서워안해. 시누이는 속이 떨려요?》

   《피. 내가 겁쟁인가.》

    대문에다 쌍보초를 세웠는데 보초가 입은 옷을 보니 전만 달랐다. 정안군이 아니였다. 복장색이 회색인걸 보니 본지방의 자위단이였다. 태평진을 수비하고있던 정안군도 아마 반일의용군을 토벌하느라 동원된것 같았다.

    대문을 드나드는 사람이 적지 않건만 말타고 다니는 행인은 그들뿐이였다.

    향란이는 주춤거리는 소춘매를 따라오라 눈짓하고는 앞장서 말을 몰았다. 보초들은 저들의 앞에 표표히 나타난 두 마상객을 보자 경계하는 한편 서라고 손짓했다. 아마 멋스러운 백마와 그것을 타고 온 녀인들의 겉모양마저 너무도 유표해서 눈길을 각별히 끄당기는 모양이다.

    한자가 향란의 앞으로 다가오면서 버드러지게 물었다.

   《어디서 오는거냐?》

   《산에서 와요.》

   《산에서 온단말이지....여기루는 왜와?》

   《오빠를 보려구요.》

   《오빠가 누군데?》

   《염왕산의 위포토우.》

    둘은 눈이 둥그래지면서 수근거리더니 하나가 전화를 걸었다.

    이만하면 되련만 말을 걸던 자가 두 녀인과 그냥 집작거렸다.

   《저 녀잔 누구여?》

   《아무녀자면 그거알아 뭘해요. 념소자! 피자!》

    시누이가 가차없이 욕설을 내깔리는 것을 보고 소춘매는 참지 못해 까르르 웃었다.

    보초는 배때벋은 계집들한테 멋없이 놀림당한 것 같아 낯이 수수떡같이 되었다. 그가 밸을 못이겨 씩씩거리면서 앙갚음 할 적중한 말을 찾는 사이에 저쪽보초가 공순히 다가와 깝신거리며 방금 전화가 통했는데 큰길로 곧추 300m가량 들어가면 오른편에 화초담을 두른 청기와벽돌집이 있으니 거기서 위용강을 만나리라 알려주었다.

    여기에 있구나! 두 녀인은 그가 확실히 귀순하였음에 다시한번  놀라면서 한편으로는 또 오늘 만날 수 있게 되었으니 공걸음을 하지 않아 다행인것 같기도해서 안도의 숨이 나갔다.

   《시누이, 저길봐요! 벼루기하고 구자(순경)가 많네.》

    소춘매가 사방을 두리번거리면서 하는 말이였다.

    북문보초선에서 걸어온 전화를 받고 향란이와 안해가 찾아왔음을 알게 된 위용강은 그들을 맞으러 친히 밖으로 나왔다.

    소춘매가 남편을 대하자 여보세요 하고 한번 불렀을 뿐 그들의 상봉은 반가움도 기쁨도 없었다.

    향란이는 말잔등에서 내리지도 않고 오빠를 짓꿎게 쏘아봤다.

   《얘가 왜이래, 엉? 허허허....》

    위용강은 병신스레 허구푼 웃음을 웃었다.

   《내가 왜 이러는가구? 수치스러운줄도 모르구 과연 뻔뻔스럽네요. 오랍은 무슨짓을 했어요?》

    녀동생이 야박스레 내쏘는 암팡진 질문에 게면쩍어진 위용강은 두눈을 슴벅거리더니 보는바와 같이 편안히 잘 보내는데 왜 그러느냐며 자기가 귀순한것은 지극히 당연한것 처럼 변명했다.

   《부친께서는 당신이 대역부도한 짓을 했다며 대노했어요. 졸도까지 하면서. 하마터면 세상뜰번했어요. 당신은 그래 이럴줄을 몰랐던가요? 참 어쩌면.... 어서 돌아가자요., 어서. 네.》

    소춘매가 절절히 애원했다.

   《오랍은 어떻게 할래요, 나하고 올케는 오랍데릴러 왔는데. 이건 부명이얘요. 어떻게 하겠어요, 그래 갈텐가요 안갈켄가요?》

    향란이는 단호한 태도로 대답을 받으려했다.

    바로 이럴때에 거리에 나갔던 주혜란이 돌아왔다. 그녀는 생각밖에 두 녀인을 문득대하자 그 자리에 못박힌 듯 굳어졌다. 온몸에 강직이 온것 처럼 아느새 미동도 없더니 그녀는 이들이 바로 언젠가 사진관에서 본적이 있는, 바로 그 산에서 온 녀인들임을 알아보고는 얼굴에다 웃음을 바리기 시작했다.

   《아니 어쩜....면목 좀 있는 손님들같네요!》

    향란이는 제가 구미여우같다고 했던 그녀를 곱지 않게 보았다.

    주혜란은 누구도 응대없자 소춘매쪽을 향해 다시 야슬야슬 입을 놀렸다.

   《옳아요. 언젠가 사진관에서 본 기억이 나네요. 내말이 맞죠? 듣자니 할빈서 기생방에 있었다면요. 내 말이 맞죠?》

    분위기는 험악해졌다. 기구멍이 막힌 소춘매는 당장 울음이라도 토해낼것 같았다.

    주혜란의 얄팍한 얼굴에 간교한 웃음이 피여올랐다. 남을 일부러 궁지에 몰아넣자고 드니 괘씸하기 그지없었다. 그녀의 그 음험하고도 지독한 속심을 알아본 향란이는 매서운 눈길로 다시쏘아보고나서 소춘매를 끌었다.

   《올케 가자요! 여긴 우리있을데가 아니야!》

    그들은 지체없이 말머리를 돌렸다.

 

    두 녀인이 가버리자 주혜란은 멍하니 선채 눈을 내리깔고있는 위용강을 향해 무슨생각을 그렇게 하느냐면서 팔을 끼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녀인의 기막힌 아양에 넋을 빼앗겨 언녕 오줌을 쌋거니와 철석간장이 봄눈녹듯이 녹아버린 위용강이라 이때는 짜장 그녀의 손에 꼭 쥐여 놀고있는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그녀가 일본관동군사령부에서 사냥개를 훈련시키듯 잘 배양하여 내놓은 특무라는걸 위용강이 어찌알았으랴!   

    주혜란은 시샘꾸러기 녀편네모양으로 그앞에서 투정부렸다.

   《왜요, 내가 벌써부터 미워나는가요? 내 모르게 그 기생년은 왜서 불러왔나요?》

   《내가 불러온게 아니야.》

   《그럼요?》

    위용강은 꿀먹은 벙어리모양으로 말이 없다.

    주혜란은 사나이를 아느새 눈박아보고나서 입을 다시열어 공격적인 질문을 들이댔다.

   《내가 못들었는 줄 알아요. 제 오빠보고 가겠는가 안가겠는가 따지데요. 대체 어쩌자는건가요?》

   《부친께서 몹시 노여워하신다오.》

   《왜요? 늙은것이 아들이 귀순했다고 그러는가요?》

    주해란의 이런 매정스러운 질문에 위용강은 정신을 펄쩍차렸다. 아니 이년이 대체 뭔데 내 부친을 맘대로 헐뜯으면서 이 야단인가. 대체 뭔데 어쨌다구?.... 이제야 비로소 사실을 음페해야 함을 깨닫고 그는 둘러댔다.

   《아니요, 아니야. 그래서 그러는게 아니야. 산채를 나와갖구는 여지껏 기별하나 없어서 그런다오. 참 내가 언녕 알렸어야하는건데 그만....》

   《그게 뉘탓인가요. 내탓이야 아니겠죠. 뭐랬어요. 산채에 알리자니 그런다면 너무갑작스럽다느니 어떻다느니 하면서 두고보자고했죠?.... 아무튼 세상이 다 알고 황군위해서 바친 몸인데 왜 그랬나요? 이제 뭘 두고볼게 있다구 그러는가말이애요?》

    녀인은 야멸차게 슬까스르면서 깐작이였다.

    위용강은 대답이 궁해졌다. 사실 자기의 귀순이 어떤 반응을 일으킬지 몰라 유예미결하다보니 여지껏 산채에다 알리는것을 미루어왔던것이다.

    주혜란은 즉각 일본수비대에다 산에서 위용강의 녀동생과 안해가 왔다간 사실을 보고했다.

    지난해 6월에 관동군사령부에서 내린 치안유지에 따르는 일반지도방침에 보면 그네들이 비적이라 칭하는 반일무장을 섬멸함에는 토벌이 위주였다. 때문에 그 요령의 첫 번째가 바로 각 촌마다 자위단으로 자위력을 키워 자그마한 반일무장은 발을 붙일자리가 없게함으로써 스스로 자멸하게 만들고 토비무력은 끌어 당기고 투항시켜 그들이 다시는 반일을 못하게 하는것이였다. 그러면서 그 토비무장을 만주국의 군대나 경찰이나 혹은 자위단으로 개편하지 않는것이다. 한즉 태평진의 일본주둔군사령 오도야마가 위용강을 보고 나는 장차 너를 중용하리라한것은 새빨간 거짓말이였다.

    하지만 오도야마는 자기손에 들어온 이 토비무장을 절대 놓치려고는 하지 않았다. 왜서인가?  산길에 눈이 익은 그들을 자기가 반일의용군토벌을 나설때 끌고 다니며 부려먹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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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한경(1210ㅡ1280): 원조때의 위대한 희곡작가. 이도(지금의 북경)사람이다. 가무에

    능했고 음률에 정통했으며 대량의 잡극대본을 썼을뿐만아니라 몸소 무대에 나서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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