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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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관동의 밤>> 제1부(17)
2015년 02월 03일 11시 27분  조회:2294  추천:0  작성자: 김송죽
 

                         17

 

 

 

 

 

    새해의 봄기운이 짙어가고있는 염왕산은 다시금 활기넘치기 시작했다. 그 어떠한 외계의 간섭이나 속박이 없는 여기서는 온갖의 짐승들마저 자유로와서 번식이 왕성한것만같았다.

    이러한 환경속에서 민호는 사냥에 더 취미를 붙이였다. 허저인들과 같이 있을 때 그들한테서 배운 사냥술이 오늘와서 아주요긴하고도 값진 기술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었다. 기뻣다. 그 재간을 마음껏 써먹을 좋은 때인것이다.

    여기는 보통백성이 모여 사는 그런 범세계가 아니요 토비들의 산채였다. 외계사람들은 소름끼쳐 의례 제나름대로 상상하고 부르는 악마의 락원이였다. 말하자면 염왕산이란 이름그대로 인간지옥으로 리해되는 다른 하나의 세계였다. 한즉 지성인이라해도 누구를 막론하고 여기서는 그 어느 누구와도 혁명이니 정치니 사상이니 리상이니 추구니 하는따위를 놓고 운운할 장소가 못되였다. 하지만의기상투(義氣相投)한다면 지기의 벗을 만날 수도 사귈수도 있는 곳이기도했다.

    한데 민호는 여직껏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그는  스스로 자기를 향해 나는 어디까지나 한국독립군인이여야 한다, 나에게는 원대한 직책이 있는거요 그것이 있기에 어디까지나 성결한 사람으로 인간답게 살아야 하는거다, 악행을 하지 말고 선행을 하면서 내가 목적한 바를 끝까지 이루어야 한다고 말했다.

    객관이 보기에는 남과 어우렁더우렁 즐겁게 지내는 것 같았지만 기실은 고독하고 외로워 그것을 달래기 위해 그가 택한 하나의 방법이 바로 잔짐승잡이였던것이다.

    동북쪽골안을 자기의 사냥기지로 정해놓고 잔짐승잡이를 시작한 민호는 거의 매일 다니다싶이하는데 멧닭과 자고새같은것이 잡히면 그는 그것들을 다른 새자를 시켜 향란이한테 갔다주게 했다. 그러면 향란이는 그것을 취사반에 넘겨 채를 만들도록했던것이다.      향란이는 그것을 절대 혼자먹지 않고 맛좋은 산새고기볶음을 아버지를 비롯한 여러 두령들도 맛보게했던 것이다. 하니까 받아먹는 사람은 자연히 그걸 잡은 사람에게 감사를 표하기 마련이였다.

    위삼포도 사량팔주도 다가 민호는 과연 부지런한 사람이라 칭찬했다. 그러면서 한결같이 모아진 의견이 민호는 총명한데다  사람이 성실하고 담대하니 족은 비록 다르지만 능력이 승인될 시면 그를 중용해야한다는것이였다. 하여 한달가량의 <보복>이 끝나자 민호는 위민을 대신하여 그 반의 반장으로 임명되었다. 그것은 그가 장차 중용되자면 반드시 옳라야 하는 첫계단이였던거다.

    왕견은 그보고 가끔 위나리의 딸님을 품에 끼고 자니 인끔이 오르는것이라했고 하진국은 사실은 그래서 그런게 아니라 지나온 표현이 민호에게 벼슬운을 가져다준거라했다.

    속담에 <금을 가까이 하면 금을 담고, 옥을 가까이 하면 옥을 담는다>고 했더라. 한즉 나는 이제 금이 되었을가 옥이 되었을가? 아니다 나는 금도 옥도 아니다. 토비들 속에서 내가 닮으면야 토비를 닮겠지 누구를 닮겠는가. 정인군자야 닮을 수 없지. 토비! 뼈에 사무치도록 증오하고 저주하여 한때는 목숨걸고 숙청하던 내가 토비굴에 떨어져 토비가 되더니 이제는 과연 그 토비의 반장으로까지 승진했다. 아닌게 아니라 생각만해도 끔찍스러운 일이였다.

    이것이 또한 필연이라고 그는 생각하기도했다. 위삼포나 사량팔주가 자기를 신임하고 믿어주는 표징으로 되기에 민호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어느때면 여기를 나가게 될 지 그때까지 그들의 의심도 미움도 사지 말아야했다.

    어느날 밤 향란이가 민호를 만나자마자 충고했다.

   《저의 부친님께 감사드려요.》

   《또 그소리구만.》

   《왜요. 그게 낯깎이는 일인가요?》

   《낯깎일거야 없지만도.》

   《그럼 왜서요?》

   《날 포토우로나 시키면 몰라도 그깟 따라지반장을 시키는데두  그래 감지덕지하란말이요.》

    민호가 자기보다 한 살이 더많은 향란이를 대해서 하는 말씀새가 그사이 어느덧 바뀌우고말았다. 여기 이 염왕산에서는 위나리의 딸님을 어렸을적부터 그의 아버지와 사량팔주를 비롯한 위망높은 년장자들을 내놓고는 모두가 공경하고 받들면서 쓰고있는 존경어를 그만은 걷어치운것이다. 이것은 좀이라도 더 가깝고 무람없이 지내기를 원하고 있는 향란이가 주동적으로 그한테 그렇게 해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향란이는 사내의 생각이 어리석은지라 비난쪼로 뚱겨주었다.  

   《체! 높이 앉으면 좋은건 아네요. 포토우가 되는게 뭐 나무에 바라오르듯 쉬운줄로 아는모양이지.》

    번연한 일이지만도 민호는 부러 주장을 뺏다.

   《내가 안될게 뭔가 그래?》

   《흥! 그리도 자신있는가요. 아직은 어림도었어요.》

   《왜 어림없다구.》

    향란이는 그의 말을 정식으로 들었던지 손가락을 굽혀가며 알려주었다.

   《첫째는 담량이 있어야 하고 둘째는 사격술이 뛰여나게 좋아야해요. 그것이 대중의 공인을 받아야하거니와 저의 부친의 눈에 들어야한단말이얘요. 어디 대답해봐요. 그렇게 되기나하는가구.》

    그렇다. 표준이 대단히 높아 일개 보통류자가 포토우로 된다는건 하늘의 별따기였다. 하지만 민호의 가슴속에서는 바로 그 하나의 야심이 뼈같이 굳어지고 있었다. 성인도 시속을 따르는거야. 내가 여기서 부처님으로 되지 못하는 바에는 한번 이네들의 꼭대기를 눌러놓지 못하는가. 여기 염왕산의 류자들은 위씨가문의 가규(家規)를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여기면서 위삼포의 말 한마디를 금언(金言)같이 받드는데 내 말도 그렇게 듣게끔 한번 만들어보고싶은 민호였다. 내가 이 한무리의 악당을 선하게 만들수만 있다면....

    

    그후의 어느날이다. 사냥을 나섰더니 길에서 여우를 만나서인지 자고새 한 마리도 걸려주지를 않았다. 하여서 기분이 잡치는대로 돌아가려는데 저기 얼마멀지 않은데서 새자 하나가 돌 몇 개를 쌓아놓고 제를 지내고있는것이 문득 눈에 띄였다.

    저쪽은 인기척이 나자 와뜰 놀랬다. 여겨보니 그는 묘동때 아무데도 가지 않고 산채에 남아있었던 한반의 새자 팽덕이였다.

    민호는 그쪽을 향해 걸어갔다. 반장이 된 자기를 놓고 뒤에서 군말이 있었던 그를 민호는 딴눈으로 보지 않고 외려 웃는 얼굴로 대해주었다.

   《여기서 제를 지내누만. 누구의 제요?》

   《반장! 나는 어머님의 제를 지내고있었소.》

   《어머님께서 돌아가셨소?》

   《그랬소. 겨울에 돌아가셨다누만. 오늘이 지일이 돼서 내가 이렇게 종이라도 태워드리는거요.》

    팽덕이는 모자도 쓰지 않아 바람에 날리고있는 더벅머리를 푹 숙이고 한웅쿰도 안되는 재를 멀거니 내려다보면서 무슨 생각에 깊이  잠기는것이였다. 묘동때 집으로 갔더면 어머님이 운명하시는 것을 보았을 수도 있었으련만!

    민호는 오늘따라 그가 측은하게 여겨졌다.

    염왕산에는 새자들이 제지내는 묘가 따로 없었다. 위삼포는 군심(群心)을 와해시킬가봐 새자들은 일률로 집사람의 제를 지내지 못한다고 반포한적이 있다. 하지만 그래도 효심이 지극한 새자들은 웃사람의 눈을 기여가면서라도 이같이 가만히 제를 지내고 있었다. 그 누군들 부모없이 세상에 태여났으랴. 이 일만은 알아도 그 누구든 고해바칠각질을 하지 않았다.

    민호는 그보고 마음놓고 제를 지내라했다.

    팽덕이는 그제야 소리내여 울면서 시설질했다.

   《어머님, 나의 어머님! 어머님은 이 아들을 낳아 키우느라 고생인들 적게 하셨습니까. 이런 불효자를 낳고서도 기뻐서 남한테 자랑많이하셨다는 어머님. 고집이 센 이 아들땜에 눈물많으시고 한숨많이 지으시다 돌아가신 어머님. 이 아들은 운명하시는것도 지켜보지 못했으니 불효막심합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후회뿐입니다. 내가 묘동때 왜 가지를 않았던지. 잡힐까 두려워 다섯해나....》      팽덕이는 눈물을 쥐여 짜면서 그냥 시설질이였는데 그것은 자책과 후회에 깊이깊이 젖은것이였다.

    산에 들어와 5년이 되도록 집에 한번 가보지 않은 그의 탈가는 그야말로 한 켤레의 비감한 애정사를 엮고 있었다.

    팽덕의 아버지는 부지런하지만 마음이 올곧지 않은 지주였다. 그는 밭을 50여쌍이나 다루면서 농군 여럿을 두고 부리였다. 서당을 얼마간 다녀서 먹물을 먹은 팽덕이는 의표단정한 젊은이였는데 아버지는 그가 자기를 따라 가계나 이어나가기를 바랄 뿐 아들이 제 욕망대로 출세하는건 바라지 않았다. 팽덕이가 한번은 어머니와 먼 인척관계된다는 이웃마을 하씨댁(河氏宅) 아들잔치를 보러간 일이 있다. 그때 그 하씨댁에는 장가가는 아들을 내놓고도 방년이 다 된 딸 서용이가 있었다. 팽덕이와 서용이는 만나자마자 첫눈에 정이 들었다. 그래서 둘은 어느덧 사랑의 도가니에 빠지고말았던거다. 그때 이미 장가갈 나이되였던 팽덕이는 부모앞에 자기는 이미 하씨댁의 서용이와 언약이 되었다고 고백했다. 그랬더니 아버지는 하씨댁은 째지게 가난하다면서 그 집의 딸은 절대 며느리로 삼지 않겠다고 잘랐다. 이에 팽덕이도 맞받아 자기는 서용이 아니고는 장가를 가지 않으리라 성명을 발표했던것이다.

    그는 이틑날 서용을 찾아가 이런 상황을 알려주면서 자기의 감정은 절대 변하지 않으리라했다. 서용이 역시 죽는 날 까지 그를 사모하는 마음은 변치않으리라했다.

    팽지주는 집을 나간 아들이 여러날되도록 돌아오지 않는지라 사람을 내놓아 찾게 했더니 팽덕이는 서용이를 데리고 제 이모집에 가있는것이였다. 그네들의 그같이 대담한 행위가 봉건적인 유교사상이 머릿속에 꽉 들어찬 부모들에게는 례교를 더럽히고 가문을 망신시키는 대역부도한 행위로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불효막심한 놈! 네녀석이 애비의 낯에 똥칠하고 패가망신을 시키는구나.》

    그의 아버지는 대노하여 펄펄 뛰다가 그 자리로 달려가 아들의 덜미를 잡아왔다. 그러면서 한편 네딸같아나 내아들을 버리게 되니 부정한 그 계집애를 당장 멀리시집보내라했다.

    하씨네는 마음이 옹골치 않은 팽지주의 성화를 받아낼 재간이 없어서 서둘러 딸을 멀리에 시집보내고말았다. 비록 적빈여세(赤貧如洗)한 농가집의 딸이긴 하지만 학덕이 있었던 서용은 강박에 못이겨 사랑하는 이를 떠나 멀리 타향에 시집가면서 애닯은 시 한구절을 지어서 가만히 보냈다.

 

                북두칠성 돌아진다고 서러워 마시라

                  동이 트면 새날은 밝아오거니

                  불속에서 벼려진 쇠 불어진들

                  그대를 따르는 마음이야 꺽어지랴

 

    사랑하는 녀인의 철석같은 마음을 읽어본 팽덕이는 자기도 그를 사랑하는 마음은 영원히 변치않으리라면서 아무 때건 한몸이 되어 살아보리라 결심하고 집을 나와버렸다. 그는 집을 나올 때 화김에 아버지보고 부모가 자식의 혼인자유를 너무도 무리하게 간섭하니 살멋이 없다, 나는 이제부터 차라리 록림객이 되어 제멋대로 살아가리라했다.

    구공서(區公所)와 향공소(鄕公所)마다에 포도영(捕盜營)이 있어서 도적을 잡고있었는데 만약 어느집에서 토비가 나진것을 속히고 보고하지 않았다가 그것이 발각되는 날이면 리유여하를 불문하고 모조리 <통비죄(通匪罪)>로 치고 죽이였다.

    이러한 정황이니 팽지주는 부모를 거역하고 탈가한 아들이 여러날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자 똥집이 달면서 결창이 났다. 그는 제아들이 틀림없이 말한대로 토비질하러 가버린것만 같고 이제 아들이 토비로 된 사실이 드러나는 날이면 온 집안이 몰살을 당할건 명백한지라 그만 향포도영을 찾아가 우리 집의 팽덕이가 여차여차해서 토비로 돼버렸다, 나는 불효막심한 녀석을 미워하거니와 부자관계도 끊으련다고 공포했던것이다.

    한데 누가알았으랴 며칠안되여 팽덕이가 흥얼거리며 마을에 다시나타날줄이야.

    마을사람들은 그를 보자 놀라면서 알려주었다.     

   《이 태평스런 놈아! 여긴 왜 오는거냐. 너의 아버지는 네가 토비질하러 갔다고 보고를 했는데.》

    원래 팽덕이는 아버지를 한번 혼내우느라 그런 소리를 줴치고는 친구집에 가 놀다가 돌아오건데 가짜일이 그만 진짜일로 되고말았다. 붙잡히면 목이 날아나는지라 팽덕이는 그길로 도망쳐 산채에 들어와 토비로 되고만것이다.

    

    민호의 반이 외선물먹는 순번이 돌아왔다. 그는 자기반의 새자들을 데리고 산채에서 퍼그나 떨어진 바깥경비선으로 갔다. 산을 10여메터가량 들이 판 동굴이 하나있는데 그것이 보초보는 류자들의 숙영이였다. 앞은 숲이 무성해서 모르고는 찾기 힘들었다. 거기서 정면으로 거퍼 30보도 되나마나하는 곳에 산채와 외계를 이어주는 한갈래의 길이 있었다.

    그들이 여기로 온지 사흘만에 왕견이 보초임무를 수행하게되였다.

    오후. 아직은 저녁을 먹기전인데 동쪽으로부터 네사람이 오고있었다.  

   《보보만!》

    왕견이 총을 꼬나들었다.

    저쪽은 와뜰놀라면서 무르춤섰다.

   《선마만?》

   《우리는 강호사람이요.》

    넷중 하나가 대답했다.

   《강호사람옳은가?》

    왕견은 그들을 치떠보고 내리보고하다가 하나하나 몸수색을 했다. 호금(胡琴) 둘과 옷보따리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은 방랑예인이였다.

    염왕산은 여지껏 이런사람들을 해친적이 없었다. 그들도 오락을 즐기기 때문이였다.

    처음말하던 사나이가 그중 제일 나이많아보였는데 그가 나서서 사정하는것이였다.

   《어른님께서 우릴데리고 산에 들어가 며칠간 노래나 부르게 할 수 없겠습니까?》

   《그렇게 하지! 돼! 돼!》

    왕견은 흔연히 대답하고는 그들을 숙사에 들여보냈다.

    민호는 그들의 우려를 풀어주었다.

   《여기가 처음길인모양이지. 당신들이 강호사람이고 우린 록림객이니 따지고 보면 한집안과 마찬가지지. 안그렇소. 안심들하오.》     《감사하외다. 그럼 굳게 믿겠수다.》

   《자, 대객에 초인사는 흑토자지요. 맛이 괜찮으니 한 대씩 썰어보지.》

    민호는 그들앞에 담배통을 내놓았다. 그리고는 먼저 좀 구경시켜줄 수 없겠는가했다.

    그들은 그리하마고 이쪽의 요구를 쾌히 들어주었다.

    저녁을 먹자마자 두예인이 옷을 갈아입었다. 하나는 남자로 하나는 여자로 분장했다.   

   《형제여러분 수고하십니다. 그럼 지금부터 놀아보겠습니다. 어느것부터 먼저할가요?》

    이런 방랑예인들은 류자들의 심미를 알고있길래 되도록 그들의 비위를 맞춰주려고 애썼다.

    하진국이와 팽덕이가 각각 요구를 제기했다.

   《연청이 실파는 단락을 해보시오.》

   《그리구 량산호한에서 아는것만큼 다해주시오.》

   《그렇게 합지요.》

    둘이 호금을 켜고 둘이 얼런쫜(二人轉)을 했다. 새자들은 들을수록 재미있는지라 따라부르기까지 했다.

    민호는 이틑날 오후에야 예인들을 산채에 들여보냈다.

    

    향란의 말이 맞았다. 류자내에서 급을 추자면 맏두령과 사량팔주의 마음에 들어야했다. 그러자면 오로지 자기의 용맹을 충분히 과시해야했다.

    민호가 그러리라 마음을 먹고있던차 한차례 기회가 생기게 되었다. 그것은 완고한 인질을 고패틀어놓는 일이였다.

    류자들이 일단 인질을 잡아오면 그 다음의 일은 양즈방이 맡는다. 만약 비호(주)를 놓치여 큰벌이를 할것도 못한다면 그것은 실직과 마찬가지여서 양즈방은 오로지 인질을 다루는데만 온 신경을 다 쓰는것이다.

    어느날 한 괘패(주)가 염왕산을 찾아왔다. 그는 전에도 한번 밖에서 인질을 찾아준적이 있었다.

    매사에 조심성이 있는 양즈방은 돈벌이계약을 맺기전에 괘패와 따지였다.

   《당신이 말하는 곡가는 아편장사도 하고 인육장사도 해서 백만장자루 됐다는데 그래 그자를 안지는 얼마나 오래오?》

   《이젠 거의 이십년이 됩니다.》

   《개인원한이나 품고 이러는게 아니요? 남의 칼을 빌어서 복수하자는거나아닌가말이요?》

   《아닙니다. 그런건 절대아닙니다.》

   《절대아니란말이지. 그렇다면 좋네. 그렇지 않구 딴마음일 땐 알겠지. 추호도 양보없다니까. 그래 얼마로... 먼저말해보오.》

   《사륙으로 합시다. 내가 사.》

   《안되오. 그러면 거기서 너무먹어. 일구로 하자구.》

   《그러면 난 너무애한데요.》

   《애하다? 목숨도 안내놓구 혼자 그만큼가지는것두 애하다? 욕심이 과인하구만.》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여. 거둬치워. 그따위 가마쯤은 우리도 얼마든 찾아내니까.》

    이쪽이 고집센지라 괘패는 생각을 다시굴린 끝에 지고만다.

   《그럼 좋두룩합시다.》

    량자간에 마침내 협약이 이뤄졌다.

    하지만 그래도 이쪽에서는 믿을만한 사람을 찾아 비호인질로 잡을 곡씨(曲氏)에 대해 조사를 다시해보기로했다. 협약이 된다해서 절대 괘패를 경솔히 믿을 수 없었다. 한것은 자칫하면 남의 꾀임에 들어 애매한 사람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는건 양즈방이 여태껏 지켜온 작법이였던것이다.

    어느날 류자몇이 가서 곡가를 붙잡아왔다. 조사해보니 그자는 확실히 아편장사와 인육장사를 했다고 소문이 났거니와 탐욕이 많고 린색하기 그지없어서 <곡뽀드라지>라는 별명까지 갖고 있었다.

    그런 자를 잡아온 첫날부터 양즈방이 취급하기 시작했다. 한데 그자는 죽으면 죽었지 집사람들이 돈을 갖고와서 자기를 데려가게 하려고는 하지 않았다. 그래서 양즈방은 물론 화서즈나 반둬더도 머리를 앓게 되었다.

    염왕산의 화서즈는 구변좋고 일처리를 잽싸게 하는 사람이였고 반둬더 역시 계모가 좋은 늙은이였다. 인질을 잡아오면 양즈방이 책임지고 다루지만 인질한테서 돈을 어느만큼 짜내면 합당하겠는가 하는 문제를 놓고는 세사람이 공동히 연구하는 때가 많았다. 돈액수는 인질의 실정에 근거해야지 맹탕해서는 안되는거다. 내지도 못할 돈을 내라면 인질이나 상하게 할 뿐 결국은 헛짓이 되고마니까.

    이쪽에서 정한 금액은 5천원이였다.

    곡가는 5천원을 가져오라는 말에 눈이 까뒤집혀 질 지경이다.     《어이구 오천원이 뭐유, 단돈 오원도 없는데.》

   《거짓말은 하지 말거라. 넌 화방자도 아니야. 네가 그토록 거지인걸 우리가 잡아왔겠냐.》

    이쪽에서 믿어줄리 없었다.

    그자가 유명한 구두쇠임을 알게 된 화서즈는 그의 집에 찾아가 식솔들 앞에 해엽자를 내놓으면서 설복하려했다.

   《이집에 이런일이 떨어졌으니 불행인것 같지만도 불의지재로  복을 누리니 인과보응이지요. 나도 공무를 집행하는 사람이니 별수가 없고요. 우린 막부득한 사정이 아니구는 막짓을 안합니다. 그러니까 좋게 말할 때 고스란히 들어주는게 좋암즉합니다. 한사람같아나 온 집안이 들볶이우면서 시달림받을거야 없잖습니까. 그러니 집에서 잡혀간 주인처럼 쓸데없는 고집은 부리질랑 말고 되도록 속한 시일내에 우리가 제출한 요구를 들어주기 바랍니다. 그만한 돈이야 내놓고서두 그냥 호강살이할게 아닙니까. 동정해서 하는 충고니 재삼연구하기 바랍니다.》

    이렇게 권고해봤지만 곡가의 식솔들은 돈을 벌었는지 어쨌는지 자기들은 구경도 못했는데 여구한들 무슨 방법있겠느냐했다.

    화서즈의 방문은 헛물켰다.

    곡가의 녀편네와 첩년도 꼭 같은 구두쇠여서 돈을 감춰두고 내놓으려 하지 않나싶어 이쪽에서는 돼지 혀를 베여 헝겊에 싸 그의 집에 보내면서 봐라 곡가의 혀를 잘랐다 이래도 고집부린다면 인질을 아예 없애치우겠노라 위협했다.

    그랬건만도 저쪽은 반응이 없었다. 돈은 확실히 곡가가 혼자서 주물러온것 같기도했다. 그깟인간하나를 없애치워도 무방한데 수고스레 잡아오고도 푼전한입 짜내지 못한다면야 이건 너무나 맹랑한 일이거니와 염왕산의 무능을 의미하는것이기에 사량팔주 모두가 머리를 쓰게 되었다.

    세상에 그같이 완고한 수전노도 있단말인가? 향란이를 통해 이 일을 알게 된 민호는 그자가 대체 어떻게 생겼는가 부러 가보기까지 했다. 쥐눈깔에 조롱박같이 매끄럽게 생긴 녀석이였다. 네놈은 생김새만 봐도 남의 등치고 간빼먹을 놈이로구나. 때려죽일 놈이 아편장사에다 인육장사까지 했다지. 그래 모은 돈 우리가 빼앗지 않고 누가 빼앗을가. 민호는 완고통인 그자를 자기가 한번 다뤄보고싶은 생각이 불쑥났다. 이건 워낙 그같은 류자는 참여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는 한번 격발된 욕망을 눌러 삭히기 어려웠다.

    곡가의 몰골이 눈에 밟혀 잠도 오지 않았다. 아무렴 미움받으랴. 남앞에서 한번도 꽝포를 놓은 적이 없는 민호는 대담히 양즈방을 찾아가 제 속맘을 털어뵈였다.  

   《감청하오니 용서하십시오. 제가 한번 그자를 마나보랍니까?》     《네가?》

    양즈방은 묵묵히 가늠하는 눈매로 그를 아느새 여겨보더니 마침내 거절하지 않고 재간있거든 그래라했다. 아무런 성과없이 패해도 탓하지 않을것이라는 말까지 하면서. 고마웠다. 유사이래 양즈방이 제 직권을 일개 반장급의 류자에게 주어 행사케한적이라곤 없었는데 오늘 양즈방이 그 규례를 타파해버렸다. 이 일은 물론 그 두사람밖에 모른다.  

   《이젠 내가 널 취급하기로 했다. 이름이 뭐냐?》

    나이 마흔을 넘긴 그자는 넌 대체 누구냐고 눈알을 팽그르 굴리더니 뜨아하게 입을 열었다.

   《내 이름을 알려구. 난 곡치환이야.》

   《곡치환 듣거라. 제이름을 그같이 헌신짝같이 내던지는 사람이 목숨아까운건 왜 그리도 모르냐. 왕고지을랑 작작부려라.》

   《내가 왕고집부린다? 참 억울해서.》

   《억울하다?》

   《아이구 골통이야!》

   《엄부럭떨지말라, 이자식!》

    민호는 그자가 자기를 얕잡아보고 노는 꼴이 너무도 괘씸해서 얼뺨을 붙이였다. 그리고는 숨겨둔 돈 오솝소리 내놓아라 좋게 말할 때 듣지 않고 계속 고집쓰면 아예 없애치우고말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양즈방이 벌써 그런 말을 몇 번곱씹었는지 모른다. 해도 그는 여직 손은 대지 않았다. 한데 이 젊은이는 대체 누군데 몇마디안짝에 눈에서 불이 번쩍하게 만드니 곡가는 속이 떨려나기 시작했다.

    민호는 그가 한풀꺾이였음을 눈치채자 한가지 수를 썼다. 그는 곡가를 향해 너같이 완고한 백치는 아예 없애벌리기만 못하니 권유가 필요없다. 집사람들께 할말이나 있거든 적으라면서 종이와 연필을 주었다.

    그랬더니 곡치환은 이제는 정말 끝장인줄로 알고 눈물 코물짜가며 울다가 과연 유언이라면서 짤막한 글 하나를 썼다.  

    

                    염왕산에 잡힌 몸 끝장볼제

                      슬픈 끝에 떠오르는 생각 하나

                      상하가 내려가고 올라감은

                      잊지못할 천도인가 하노라.

 

    대체 무슨놈의 유언 이래? 민호는 그가 쓴 글을 다시한번 음미하고는 그자를 향해 조소를 날렸다. 그리고는 곧추 양즈방을 찾아 달려갔다.  

   《이건 그자가 제집사람들게 남기는 유언이랍니다.》

    양즈방도 대체 무슨놈의 유언이 이런가고 하면서 보고 또 보았다. 한데 지식있고 경험있다는 양즈방이건만 아무리 뇌즙을 짜도 모두 네구절로 되어진 유언의 내용을 풀이할 재간이 없었다.

    그가 민호를 향하여 너는 알만하냐고 묻는 눈길을 보냈다.        《여기를 보십시오.》

    민호는 곡치환의 걸작으로 되는 그 유언의 세 번째구절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수수께끼야 바로 이 구절에 있잖은가요.》

   《하긴 그런것 같은데 뭔지 풀이가 안되는구나.》

   《상은 우고 하는 아래가 아닙니까. 윗것이 내려갈 때 아랫것이 올라오는게 뭐겠습니까. 그건 양말을 신거나 신을 신는 형용이 아닌가요.》

    양즈방은 듣더니 얼굴이 금시 확 밝아지면서 무릎을 탁 쳤다.     《그렇지, 옳아! 그녀석이 양말아니면 신속에다 뭘 감춘게다!》

    그날밤으로 당장 한패의 류자가 염왕산을 나가 곡가의 집에 갔다.

    짐작과 맞아떨어졌다. 류자들은 가자마자  곡치환이 신던 양말과 신을 수색했는데 마침내는 그자의 목긴 겨울털구두속에서 묵직한 금주머니는 찾아낸거다.

    곡치환은 장래를 생각해서 자기가 애써 긁어 모은 불의지재(不義之財)를 전부 금으로 바꾸어 그것을 양말속에 넣고 꽁꽁 기웠다. 그래놓고는 집사람몰래 가끔 혼자서 그것을 제 손바닥에 올려놓고 흡족스레 근떠보군했던것이다.

    곡치환은 자기가 유언을 그같이 쓰면 머리가 총명한 첩이 받아보고 알아맞히여 금이 들어있는 털구두를 다른 어디에 깊숙이 숨겨둘줄로 알았다. 한데 자기가 쓴 유언은 집으로 전해지기도 전에 들통날줄이야 어찌 알았으랴. 염왕산 류자들 속에 자기의 그 글귀를 어렵잖게 풀이할 사람이 있는줄은 몰랐던것이다.

   

   《고마와요. 그대가 우리 염왕산을 위해 또 한차례 공세운걸 축하해요.》

    생각이 주도면밀한 향란이는 자기의 방에다 술상을 차려 민호를 대접했다.

   《어찌 내하나의 공이라 할까. 향란이가 알려주지를 않았다면야 난 곡치환을 대면하지도 못했을건데. 안그렇소. 그러니 공이야 먼저 거기로 돌아가야 마땅하지.》

    민호는 반죽좋게 그의 감정을 맞추었다.

   《호호호... 너무 겸손하네요. 나더러 그래 공 절반을 받으라는건가요.》

   《그렇지. 우리의 합작이 계속잘되기를 희망해서.》

   《오, 그래요! 그럼 오늘밤은 합작잘되나볼가요. 호호호....》

    향란이는 술잔을 맞쪼으면서 간드러지게 웃었다.

    이날 그들의 밤생활은 과연 유감없이 합작이 잘되였다.

 

    가을이 되자 차챈더가 민호를 불러 자기와 함께 쟁반밟으러 나가자했다. 쟁반밟으러 나가는 류자는 반드시 믿을만한 사람이여야 하거니와 관부와 아무런 인척관계도 없는 사람이여야한다. 그렇지 않다가는 산채의 비밀이 드러나 벼루기(경찰) 한테 일망타진이 될 수 있는것이다.전에도 몇 번 쟁반밟으러 다닌적이 있는 민호는 어느모로 보든지 믿을만해서 차챈더는 마음들어했던것이다.

    염왕산의 차챈더는 날래고 정찰경험이 풍부한 사람이였다. 그는 본래 봉천근처 소가툰(蘇家屯) 주둔군의 정찰반장이였는데 어느 한차례의 훈련때 상관과 감정충돌이 생겨 총을 쏘아 그를 사살하고 도망쳐 토비로 된거다. 용감하거니와 행동이 민첩한 그는 자신이 직접 쟁반밟으러 나가서는 장차 들부시게 될 기와가마의 형편을 구체적으로 장악하군했다. 특히 암창(暗槍)이 설치된데를 귀신같이 알아내여 자기측에 희생과 실패가 없도록하군했다.

    류자들은 야간에 기와가마를 습격하는 경우가 많은데 암창이 설치된 곳을 미리알아두지 않았다가는 담을 넘어 안으로 들어가긴해도 줄을 잘못 건드려 총소리를 내는 통에 그 자신이 죽고마는건 더 말할 것 없거니와 기습작전이 미리탄로나서 강력한 반항에 맞다는 통에 애를 먹는것이다. 하기에 차챈더의 정찰이야말로 매번 승패에 관건적인것이다. 염왕산의 차챈더는 공을 많이 세운 류자다.

    내가 누구를 위해 또다시 희생을 무릅써야하는가? 민호는 가기싫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때가 되자 차첸더는 피혁자사꾼으로, 민호는 천장사꾼으로 가장하고 함께 염왕산을 나와 동북방향으로 수백리빢에 있는 화남(樺 南)쪽으로 갔다. 그곳 어느 계모점에 성이 천씨(千氏)인 지주가 있었는데 그는 토성밖에 널장자를 겹하고 포대까지 있는 붉은 기를 꽂은 대지주였다.

    련방대나 경찰의 수사에 잡히지 말아야했다. 붙잡히면 볼장은 다본다. 그 마을에 들어간 두 사람은 의심을 모으지 않게 하느라 갈라져서 따로따로 싸구려를 불렀다.

    천장사의 싸구려소리를 들은 천지주의 마누라가 딸이 시집갈 때 입을 옷감을 사야겠기에 민호를 자기 집에 불러 들이였다.

    별채만도 대여섯되는 것 같았다. 그가 들어간 본채의 동서 량칸은 모두 널찍하고 밝거니와 가난한 사람은 상상도못할지경 호화로왔다. 민호의 눈에는 이 집이 과연 산호랑이눈섭도 부러울것 없이 사는 부호같아보였다.

    천지주의 딸님은 이름이 옥령(玉玲)이였는데 깔끔하게 생긴 처녀였다. 총명하고 영리한 묘령의 그녀가 어려서부터 무예를 익히여 걷보기와는 다르게 웬간한 사람은 옆에 붙지도 못했다. 옥령은 자기처럼 무예하는 사람을 좋아했다. 천파는 청년의 곁으로 얼른 다가든 그녀는 제맘에 드는 천을 고르다가 무심결에 자기 손이 그의 손과 다이는 순간 속이 꿈틀했다.

    이 사람은 절대 천파는 사람같지 않구나. 손이 거칠고 쇠같이 굳은걸 보니. 틀림없이 총칼을 다루는 사람일것이다. 속으로 이렇게 짚으면서도 그녀는 한편 또 대방의 영준하고 름름함에 저도모르게 마음이 끌리는지라 옷감을 고르는것 처럼 하면서 자주 눈빗질해보았다.

    집안을 다 살펴보고 난 민호는 그녀보고 소변을 보겠는데 칙간이 어디에 있는가고 물어서 밖에 나왔다. 그는 서쪽켠에 있는 남북방향의 별채에 암창이 네곳있고 동남쪽 외양간근처에도 두곳에나 있는것을 발견했다.

    이때 집을 나갔던 천지주가 돌아와서 생면의 청년이 수상하게 돌고있음을 발견했다. 민호도 거의 동시에 자기의 정체가 발각되였음을 깨달았다.      

    민호는 여기를 급히 빠져나갈 속셈으로 집에 들어가 보따리를 거두었다.

   《아가씨, 미안하게 됐습니다. 래일다시고르시오.》

    그를 뒷따라서 들어온 천지주가 랭랭한 조소를 날리며 다가와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

   《젊은이! 뭐가 그리바쁜가. 천을 팔고가야지.》

    민호는 보지기를 싸면서 응대했다.

   《오늘은 안팔겠습니다. 래일다시오지요.》

    이미 엎어지른 물이였다. 그가 허리를 펴기도 전에 어디서 나타났는지 억센 사나이 둘이 불시에 달려들어 팔을 잡았다.

    천지주가 너털웃음을 쳤다.

   《허허허.... 이 천모를 건드리는게 그리 쉽지 않을걸!》

    민호는 항의했다.

   《왜서 사람을 함부로 붙잡습니까?》

   《내 눈을 속이자구, 흥. 넌 토비야. 알려주마 너하고 같이 온 녀석은 언녕잡혔다.》

    차챈더가 잡히다니!.... 민호는 찾물을 맞은것 같이 등골이 싸늘해났다. 하지만 그는 당황해하지 않았다. 그런 빛을 보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던것이다. 그는 지어 태연자약한 태도로 나왔다.

   《무슨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나를 잘못봤구만요.》

   《내가 잘못봣다? 자식이, 어디다대고 하는 소리냐.》

    천지주는 네가 아마 매맛을 봐야 노근노근해질가보다 하면서 끌어내가라했다.

    그들은 민호를 빈창고로 끌고갔다. 그리고는 거기에 있는 기둥에다 매여놓고는 채찍을 안기면서 신분을 제대로 대라했다. 민호는 아무리어째도 자기는 천파는 조선사람이지 다른짓을 하는 사람은 절대아니라고 벗티였다. 천지주는 네가 조선사람이라해도 내 눈에는 토비로만 돼보이니 어디 향포도청에 가서 대꾸질을 하라했다.

    천지주의 딸 옥령이는 아버지가 하는 말을 듣고 와뜰놀랬다. 전번날 련방대에서 토비의 머리를 여러개 잘라 마대에 넣어 향포도영으로 가져가는것을 보았는데 그것은 흡사 호박을 따넣은것 같이 둥글둥글했다. 얼마나 끔찍스런 일인가. 저 젊은이도 가기만 하면 그모양이 되고말것이다. 아까운 사람이 목이 날아나서야어디.....

    옥령이는 밤중에 식칼을 들고 가만히 나가 기둥에 묶어 놓은 바를 끊어버렸다.

   《어서달아나요.》

   《아가씨가 왜 날구해주오?》

   《그 목숨을 잃는게 너무도 아까와서 그래요.》

    세상에 이처럼 고마운 일도 있는가! 민호는 속이 물큰하도록 감격했다.

   《아까씨, 잊지 않고 은혜를 갚을텝니다.》

    거기를 빠져나와 줄행랑을 놓았다.

    

    천지주의 가죽채찍이 민호의 팔과 등과 가슴에다 숱한 상처를 만들어 놓았다. 그것은 마치도 여러마리의 뱀이 감겨 그를 졸려죽여버리자고 꿈틀거리는것만같았다.

    염왕산에는 전문 류자들의 병을 봐주는 의사가 따로 있었다. 하지만 민호는 자기가 당한 일을 소문내는것이 질색이여서 의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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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흑토자ㅡ담배. 초권, 해초, 풀둥구리라 하기도 함.    * 썰다ㅡ담배를 피우다.

        * 외선물먹이는 순번ㅡ산채밖 외선의 경비를 서는 차례.

        * 괘패(掛牌)ㅡ밖에서 인질을 찾아주는 사람.

 

찾아가지 않고 자약으로 상을 치료하려했다. 그는 독립군에 있을 때 배워둔대로 자지색가지를 여러개 구해다가 남비에 두고 오래닦아 밑에 앉은 재를 보드랍게 뽀아서 물에 개여 상처에 발랐다.

    향란이가 상처를 보더니 놀라면서 이렇게 피멍이 시퍼렇게 졌을 때는 누렇게 돼버린 가지를 짓찧어서 두껍게 바르는 편이 더 났다면서 가지를 얻어다 손수 그렇게 해주었다.

    확실히 효험이 더 좋은것 같았다.

    자약을 마지막으로 갈아대던 날 향란이가 씻어서 말린 붕대를 갖고 와 갈아주면서 캐물었다.

   《지금도 천지주의 딸님을 잊지 않고있나요?》

   《그건 왜 물는거요. 내가 그녀를 잊을수야 없지.》

    향란이는 입을 다시열지 않고 꼭 다무는데 방금내던지 그녀의 말에는 빈정대는 뉴앙스가 다분히 묻어 있었다. 힐끗 쳐다보는 올곧지 않은 그녀의 눈은 츄월이와 내가 있는데 이제 옥령이라는 여자하나 더 끼였으니 너는 도대체 어떻게 할참인가고, 누구를 더 마음에 두겠느냐고 캐묻고 있었다.

   민호는 그의 이런 속내를 짚어내고 야 이 암상꾸러기야, 나를 좀 작작 괴롭히거라, 이 사나이 가슴속에는 대업이 있을뿐이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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