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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세상이 대체 얼마나 너르고 생사변역(生死變易)하는 존재 또한 얼마나될가? 옛기재에는 360항업(恒業)이라했지만 어찌 그것뿐이겠는가. 어느때부턴지는 딱히 알수없지만 지금 인간이 살고있는 이 대천세계(大千世界)에는 비적(匪賊)이라는 하나의 특수한 직업이 나타났다. 이를 어떤데서는 호자(胡子)라 하고 어떤데서는 향마(響馬)라 했으며 어떤데서는 토비(土匪) 혹은 봉자수(捧子手), 마적(馬賊), 강도(强盜)라 불렀다. 해를 거듭하고 대를 내려오면서 그 한무리도 점차 자라나고 성숙해져 자체의 조직기구가 있게 되였고 저들의 두목을 내오는 방법이 있게 되였으며 종교와 신앙이 있어서 토템과 숭배가 있게 되였고 자기들의 언어와 규률과 풍속이 따로있는 하나의 사회적존재로 자리잡게 되였던것이다.
만민이 들어도 이마살을 찌프리게 되는 그것이 사회의 우환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한자가 뒷덜미를 잡아일으키며 겨울날 철판같이 차가운 상판에다 으늑한 웃음을 발랐다. 민호는 설레이는 무서운 기운을 느끼자 등골이 선득해나면서 몸이 오싹했다. 이젠 끝장이구나 하는 생각이 뇌리를 때리면서 가슴이 떨리였다.
한자가 구리로 장식된 구식의 대공계(大公鷄)를 꼬나들면서 두눈을 지릅떴다.
《선마만?》
이건 아마 날보고 뭘하는 사람인가고 묻는것같은데 제꺽 대구해야겠구나. 민호는 대방의 태도에서 말뜻을 짐작하고는 몸을 되도록 바르게 가꾸었다.
《난 당신네 당쟈더를 만나야겠소.》
급히 던진 림기응변이 면바로 은을 냈다. 그자는 들었던 총을 내리더니 검은 수건으로 민호의 눈을 싸맸다. 그런 후 둘은 뒷짐지운 그를 들어서 말잔등에다 실었다.
롱락당할 운명인지 민호는 이렇게 토비손에 떨어지고말았다.
관동의 세력있는 토비들은 다가 장구지계로 자기가 점한 자리에 반거하면서 산채의 안전에 각별한 주의를 돌리고있었는데 류자(綹子)들가운데서 군사(軍師)직을 맡고있는 반더둬의 설계에 따라 팔괘진(八掛陣)을 쳤다. 즉 자기들의 병력을 건(乾), 태(兌), 리(離), 진(震), 손(巽), 감(坎), 간(艮), 곤(坤)에 따라서 여덟곳으로 갈라놓는 것이다. 사령부 즉 두령인 맏형이 중가운데 있고 그 둘레에 팔괘진이 벌려져있는데 팔괘진을 이룬 매 거점에는 또 전후에 보초선이 세 개씩 설치되여 있었다. 그래서 만약 누가 두령을 만나려한다면 보초선에서는 우선 그의 눈을 싸맨다. 그리고는 첫보초선에서 둘째보초선에 넘기고 둘째보초선에서 셋째보초선에 넘기는데 그 세째보초선에서 그 사람을 두령과 대면케 하는것이다.
사람이건 짐승이건 명을 가진 동물은 다 끝장에 이를라치면 제 스스로 절망하고만다. 죽음에로 내달리게 하는 채찍이 바로 절망 그자체였다. 민호는 그러한 무형의 채찍에 얻어맞으면서 눈을 다시떴다. 허나 싸맨 눈이니 앞은 칠흑같은 장막뿐 아무것도 볼수 없었다. 새소리마저 들리지 않는다. 민호는 말잔등에 놓여 흔들리는 자체의 육체만이 감각되고있으니 마치도 밑끝없는 나락속에 빠지는것만같았다. 제길할! 이게 그래 나의 저승길이란말인가? 이젠 구원맏을 길없는 처지를 당해서? 정말? 과연 그런가?…칼도마에 오른 고기도 뛰여보는데…나는 왜 이모양이 되는거냐? 내가 그래 고기만도 못한 존재란말인가?…아니다, 용기를 내자, 용기를! 범한테 물려가더라도 정신만은 차리라했더라! 이제 막 절망하여 맥을 놓으려는 자신을 살려내기 위해서 민호는 속으로 부르짖으며 자기를 향해 호소했다.
그들은 숲우둠지가 하늘을 찌르는 천고의 밀림속을 가고있었다.민호는 오로지 감각으로 그것을 느낄 뿐 가고 또 갔다. 이 손에서 저 손으로 넘겨지면서 근 세시간. 그런후에야 그는 이 토비무리의 두령앞에 나섰다. 여기가 바로 염왕산산채였다!
산채가 어떤모양인지 알수 없었다. 눈을 처맨 수건을 풀자 앞에 나타난 것은 좌우량켠에 등나무줄기를 꼬아만든 듬직한 나무걸상 여덟 개가 (八)자모양으로 벌려져 놓여있는 널다란 방이였다. 방의 정면가운데 단이 있는데 그 우에 듬직이 놓여있는, 호랑이가죽을 깐 높다란 의자에 쉰살넘어보이는 사람이 홀로앉아 있었다. 두령임이 분명한 그는 주황빛나는 다부살을 입고있었는데 살결적은 얼굴은 얼음장같이 차가와보였다.
《선마만?》
그가 물어보는 첫마디가 역시 그것이였다.
《난 두령님을 만나서…》
《넌 대체 누군데? 》
《예? 전, 전…》
하기쉬운 대답이였건만 사유가 갑작스레 문란해져 민호는 떠듬거렸다. 그랬더니 저쪽에서
《몽두춘알어?》
하고 물어왔다.
제길할! 이건 또 무슨 소리냐. 민호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토비들은 술을 몽두춘이라 하는데 몽두춘을 하자면 술을 마시자는 뜻이 되고 몽두춘을 아느냐 하면 그건 네가 류자의 말을 아느냐의 물음으로 되는 것이다. 민호가 토비의 이같은 은어(隱語)를 어찌알랴.
두령은 잡혀온 젊은이가 함구무언이니 미간을 찌프리고 쏘아본다. 예리한 그 눈길은 송곳으로 심장을 찌르듯 매서웠다. 민호는 등골에 찬물이 흘러내리는 것 같이 싸늘해지면서 온 몸이 전률했다. 저런 자의 일빈일소에 사람의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것이다.
아아, 이놈의 기구한 내 신세야!
《저 맏형님…》
민호를 여기까지 끌어온 비도가 입을 열어 무언가를 말하려다가 웬 일인지 입을 되닫아버린다.
두령은 눈을 간잔지런히 쪼프리더니 외면하면서 혼자중얼댔다.
《빈놈이군, 외마야.》
저놈의 악마가 나를 어쩌자는걸가. 그의 입가에 조소가 비꼈음을 보자 민호는 자기를 당장 이 자리로 끌어내다 죽일것만같아서 정신차리면서 불덩이를 토해내듯 황급히 입을 열었다.
《두령님 난 나쁜놈아닙니다. 정말입니다, 나쁜놈아니라니까요. 방정서 경찰이 붙잡자구해서 내내 쫓기우다나니 이렇게 된겝니다. 정말입니다, 나으리님.》
토비두령은 미간을 그러모으면서 귀바퀴를 세웠다.
속여서는 뭘하는가. 속일필요가 뭔가. 성실함이 이럴땐 외려 구명책이 될런지도모른다. 민호는 그의 앞에 자기는 안해를 잃고 찾으러 다니는 사람이라는 것, 그런데 여차여차해서 경찰에 잡히게 되니 남의 말을 빼앗아 타고 여기까지 쫓겨왔다는 것 등등을 사실그대로 말했다.
《문이 흔들리는구나.》
토비두령은 짜증섞인 한마디를 내뱉고나서 턱짓으로 끌어내가라 명령했다.
비도는 민호를 앞세워갖고 그곳을 나왔다. 그자는 그를 어디엔가에 있는 돌을 다듬어 벽체를 만든 그리크지 않은 집으로 데리고 가더니 결박한 포승을 풀어주었다. 그리고는 그 집의 어느 한 자그마한 방에다 가두면서 넌 여게 잠자코있거라 어리석게 달아날 궁리는 거둬장지고 알았어 하며 얼음장을 놓고나서 가버리는것이였다. 출입문을 보니 쇠창살로 만들어졌는데 그 바깥에다 촘촘하게 울짱까지 둘러서 세상구경을 더 할 수 없었다. 흡사 짐승우리와도 같은 여기가 바로 토비들이 인질을 가두는 양즈방이였던것이다.
민호는 중앙산채를 나올 때 주위를 한 번 휙―익 쓸어보고는 그만 방향마저 잃고말았다. 수림이 무성한 산이 병풍처럼 빙 둘러있는 이 함지박같은 분지에는 청기와로 지붕을 하고 별채와 마사(馬舍)가 딸린, 서로 다름을 가려낼 수 없을 지경 모양이 신통이 똑같은 커다란 목조건물 여덟채가 두령이 들어있는 산채를 가운데 놓고 빙 둘러앉아 방원각을 이루었던 것이다. 중앙산채의 주위는 널다란 공지였는데 거기는 전부가 굳어진 모래땅이여서 풀이라곤 한포기도 자라지 않았다. 민호는 이 세기에 관동땅 어디가나 볼 수 있는, 징을 가득밖아서 만든 둔박한 바퀴가 달린 마차들을 여기서도 보았다. 하지만 미궁같은 심산속에 외따로 있는 이런 산채는 난생처음본다. 이건 아마 세상에 둘도 없는 별유의 복마전일것이다.
웬 일인지 산채는 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왜 이럴가, 토비들이 낮잠자는건 아닐텐데?…민호는 야릇한 의문이 호기심을 촉발하자 뒤따라 심한 갈증을 느꼈다. 한낮의 더위속에서 념주뼈이어지듯 련달아붙는 공포와 절망과 고뇌가 그를 녹초로 만들면서 목을 말리워 그것이 이제는 막 타드는것만같았던거다. 이러다간 내가 총알의 세례를 받기전에 버림받은 탈수한 개같이 여기서 말라죽고말거야.
민호는 발작적으로 소래기를 내질렀다.
《물! 물! 물을 달라, 이놈들아!》
바깥어디선가 비도 하나가 골이 나는지 두덜거렸다.
《제길할! 어쨌다구 아부재기는 쳐. 뒤여질라구 환장이냐.》
그자는 지적지적 걸어와 목을 기웃거리며 양즈방안을 들여다보더니 찔끔 놀랜다. 이럴변이라구야!
아니 저건!?…민호도 그처럼 놀랬다. 옷을 바꿔입었을 뿐 그자는 분명 전날 방정에서 만났던 그 허저인이였던거다. 인제보니 넌 워낙 여기의 토비였구나! 민호는 종잡기 어려운 감정에 속까지 울렁거렸다.
둘은 아느새 말없이 대방을 서로 눈박아보기만했다.
《난 누군가했지. 어쩌누라 여겐 들어왔나?》
저켠이 입을 먼저여는데 생각과 다르게 태도가 부드러워진다.
이젠 초면이 아니고 구면인데, 내 사정을 좀 알고있는데, 이 작자가 나를 구해줄수는 없을가. 물에 빠진 놈 짚오리잡듯 민호는 행여나를 바라고 이런 생각에 매달리면서 간밤에 방정서부터 자기가 당한 일을 그한테 죽 말했다.
《거북한 사람아, 신세좋게됐구나.》
대방은 눈을 꺼무럭거리며 듣더니 동정인지 경멸인지 분간키어려운 말을 뱉어놓았다.
민호는 그의 목에 데룽데룽 달려있는 금빛나는 불상을 여겨보면서 속으로 안타깝게 빌기도 하고 웨치기도 했다. 부처님! 부처님! 오, 자비하신 부처님. 너나 좀 자비를 베풀어다오. 네가 왜 이런자의 목에는 와 걸려있는거냐, 얼빠진녀석아!
누가 얼빠진 녀석일가. 남의 목에 실없이 걸려있는 장식품이 아니였다. 그것이 왜 그의 목에 걸려있는지 그 리유를 모르니 얼빠진건 되려 민호쪽이였다. .
토비를 통털어 류자(綹子)라고 부르는데 그네들 중 일자반급도 없이 동생벌되는 자를 새자(崽子)라 한다. 전통적인 이런 토비류자면 누구나 다 목에다 불상을 걸어야했다. 지금 이 자의 목에 걸려있는 불상은 포대화상(布袋和尙)이였다. 포대화상은 18라한 중 17번째 라한인데 일명 달마다라(達摩多羅)라고도 한다. 달마는 보디달마의 략칭인데 이역으로는 도법(道法)이다. 기원 527년에 숭산 소림사(小林寺)에 와서 벽을 마주하고 종일 말한마디 없이 앉아있기를 9년이여서 벽관(壁觀)이라했다. 리입(理入)과 행입(行入)의 수행(修行)방법을 내놓았는바 그는 서천(西天) 선종(禪宗) 제 28조와 동토(중국) 선종초조(禪宗初租)였다. 그러한 그가 바로 만주의 토비들이 조상으로 모시고 떠받들면서 숭배하는 신(神)이 된 것이다.
저켠에서 웬 녀인의 챙챙한 목소리 날아왔다.
《위진 게서 뭘해요?》
이쪽은 고개를 얼른 들어 그쪽을 보더니 둘러댔다.
《이 녀석이 부해달라구 아부재기쳐 그럽니다, 아가씨.》
《오늘 잡힌 놈팽인가요. 그런 철모르는 풀메뚜기는 특별대우를 해야겠어요. 이리와요.》
위진이라는 비도는 길들인 개모양으로 말을 곰상히 들었다.
저켠에서 녀인이 그와 무어라 소곤거리는 소리나더니 이어서 캐득거리는 웃음소리 날려왔다.
좀 지나서였다. 어디론가 달려갔던 위진이란 이름을 가진 그 허저인 비도가 민호앞에 다시나타나는데 한손에 호로병을 들고 다른 한손에다는 고기덩이를 들었다.
《여봐, 이걸 먹어. 다 먹어치워야 해. 알았어 다 먹어치우란말이야. 않그러면 위아가씨가 잠을 재워주겠대.》
비도는 갖고온것을 놓고 가버렸다.
호로병에 들어있는 것은 물이 아니라 술이였고 이쪽것은 방금 베여낸 노루고기였다.
《빌어먹을 것들아, 누가 이따위걸 먹겠다니. 물을 달라, 물!》
민호는 격분하여 웨쳐대면서 화닥닥 일어나 호로병을 쥐여 들었다. 했지만 그는 그것을 밖에다 내던지지 못한채 팔맥을 풀고말았다. 위태롭고 결정적인 순간이였다. 성질급한 자기가 이 순간을 어떻게 참고 넘겼는지가 불가사이한 일 같았다. 위아가씨라 했지. 저 계집이 아마두 여기 토비두령의 딸년이겠구나. 그런데 그년이 이걸 먹지 않으면 나를 잠재우리라했다지. 그건 아마 날 죽여버리겠다는 소릴거다. 잡아 없애치울 년! 분노와 저주와 모멸과 우려가 한데 뒤엉켜 불덩이같이 가슴을 아프게 지졌다. 민호는 미칠것만 같아 소리를 내지르려다 주먹으로 제 가슴만 쾅 쾅 때리고말았다. 분별없이 날치는 만용을 용케 눌러버렸다. 여기는 토비굴이다. 소리치고 욕한들 누가 끔쩍하기나하랴. 칼도마에 오른 신세에 그런다면 오로지 죽음만 재촉할 뿐. 구명책을 찾자면 그래도 인내(忍耐)해야 함을 그는 순간적으로 깨달은것이다.
갈한 목은 그냥 타들고 있었다. 한들 무슨 방법있는가. 눈길이 다시금 철창아래의 멍석우에 나동그라진 호로병과 커다란 고기덩에 끌려갔다. 민호는 그것들을 자기 앞에 끌어왔다. 먹자, 먹어! 먹어야한다! 그러면 혹시 위험한 이 고비를 넘길수도 있을게 아니냐. 시시한 명줄을 타고 난 내가 아니거니 이 자리에서 계집년의 희롱에 들어 숨을 끊지는말아야지. 전날 방정에서 들은, 심마니가 산삼캐러 산에 왔다가 발을 잘못들여놓아 목숨잃고말았다던 이야기가 다시금 생각켰다. 범계(犯界)를 한 자는 무조건 죽여버린다잖는가.허니까 이렇게 죽던 저렇게 죽던 죽는건 이미 정해진거요 차례진 운명인것 같았다. 이럴바에야 술이나 먹고 대취한다면 자신을 괴롭히는 지꿎은 공포도 숨이 끊어질 그 순간의 고통도 싹 다 잊을게 아닌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민호는 더 주저하지 않고 호로병마개를 열었다. 그 속에는 거의 한근 술이 들어있었다. 그는 입을 대자 벌물켜듯이 그것을 다 마셔버렸다. 그리고나서 배도 몹시 고프던차라 한근은 착실히 될 고까지 다 먹어버렸다.
어찌 무사하랴. 몇분안돼서 민호는 갑작스레 덮치는 취기와 식곤증을 이기지 못해 그만 그 자리에 쭐 늘어지고말았다.
얼마나 오래잤는지 등과 옆꾸리가 아파 눈을 뜨고 보니 비도 둘이 일어나라고 발로 걷어차는데 밖에서는 왁작지껄 떠들어대는 소리, 말들이 투레질하는 소리가 뒤범벅이 되여 들려왔다.
《하, 이자식봐! 일어나, 일어나! 일어나란데두 이 자식아!》
《가만! 그자식이 몽두춘하잖았어.》
《정말 그렇구나! 하하하…》
《건데 이 자식이 그건 어떻게 처먹고 이 꼴이야, 엉? 하하하…》
두 비도는 벅작 고와대면서 민호를 잡아일으켰다.
바깥은 어느덧 심란한 어둠이 깃들고 있었다.
어디로 가는지 알수 없었다. 알고싶지도 않았다. 민호는 그저 머리가 빠개지것 같이 아파남을 감각하고있을뿐이다. 두 비도는 술을 억병으로 마셔서 정신을 그냥 못추는 민호를 마치 짐승다루듯 몰기도 끌기도 하면서 마당건너켠으로 갔다.
어느 녀석이 귀뺨을 때려 눈을 뜨고 보니 그가 낮에 들어왔던 바로 그 마당같이 널직한 대청인데 환하게 켜놓은 람프등에 비치여 흡사 애기들의 놀음감같기도 하고 절간의 올망졸망한 라한같기도 한 자들이 모여들어 오도방정을 떨면서 거의 인사불성이 되여있는 그를 흥미있게 구경하고 있었다.
《저자식 좀 보라니까, 팔자제법좋은 걸!》
《하하하…》
《건데 반강자는 대체 어디서 났길래?》
《아씨가 줬다누만.》
민호는 여기와서까지도 의연히 취기를 깨지 못했다. 그는 그들이 웃고 떠들며 지껄려대는 소리를 비몽사몽간에서 듣듯이 들으면서 휘청거리다가 속 빈 자루같이 널장판에 쓰러지고말았다.
《저자식보지.》
《하하하!…》
웃음이 다시터졌다.
민호는 얼마있지 않아 거기서 도루끌려나왔다. 원래는 그를 심문해서 신원을 똑똑히 알아보자는것이였는데 뜻밖에 잡힌자가 이꼴이니 잠시 내쳐두는판이였다.
그 다음날이다. 무엇이 코구멍을 자꾸간지렵혀 재채기를 요란스레 해대며 눈을 떠 보니 녀자의 말쑥한 손이 길다란 띠풀을 쥐고 털같은 끄트머리로 작난질을 하고있는게 아닌가. 독이 바짝난 민호는 선불맞은 표범모양으로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당장 그녀의 목을 비틀어 죽여치우려고. 허나 철창이 앞을 막고있니 생각뿐.
더러운 계집년 어디 또 그래봐라고 두덜대며 속으로 벼르고있던 민호는 녀인의 얼굴이 얼핏나타나는 순간 침을 탁 뱉어놓았다.
그것은 날아가 적중한 자리에 자리잡았다.
《어마나!》
졸지에 침벼락맞고 되게 놀랜 녀인은 비명을 지르면서 냉큼 뒤로 물러났다. 전혀 예견못한 일이였다. 산채 나리님의 보배같은 귀동딸이 이꼴이 되다니!
민호는 속이 후련해지면서 금시 웃음까지 텃치려했다.
녀인은 알아듣지 못할 소리로 쭝얼대다 정면에 나타났다. 처음보는 몰골이다. 분명 목소리만 들을 수 있었던 어제의 그 녀인일 것이다. 그녀의 손에는 자그마한 권총이 쥐여 있었다.
민호의 눈길은 지금 자기의 숨통을 노리고있는 그 권총 하나에 멎었다. 아니 저건 내가 전날 돈주고 산 골트가 아닌가. 사서는 한방 쏴보지도못했는데.
녀인은 입을 옥물고 총구를 사내의 이마에 겨누었다. 그러다가 그 총구는 아래로 내려와 가슴을 겨누었는데 녀인은 웬 일인지 겨누던 곳은 쏘지 않고 불시로 돌벽에 대고 련거퍼 세방갈겨놓고 그만 훌 가버렸다.
옆간에서 갑자기 울음이 터졌다. 전날 비도들 손에 인질로 잡혀온 자였다.
《어이구! 어이구! 하나님맙시사! 나도 이젠 죽겠구나, 나도 이젠 죽겠어. 이놈의 토비들이…이놈의 강도들이…이놈의 백정들이…내 집 다 망하게 하고…애고고!》
넋두리같은 시설을 슬프게 해대며 몹시도 울어재꼈다. 보아하니 옆간에 새로같힌 인질이 아마 죽은줄로 아는모양이다.
《자식이, 시끄럽게 노네!》
이쪽은 신경질만 빡 났다.
울음소리는 그만 뚝 끊고말았다. 민호는 침을 탁 뱉었다. 겁쟁이에 대한 경멸이였다. 하지만 그 다음에는 자기가 뱉은 침자국이 피자국으로 변해보이면서 싸늘한 두려움이 혈관에 슴배여들기시작했다. 신이 이 세상을 주사위로 장난치진 않으련만 왜 이럴가. 파리목숨만도 못한 생령! 얼마나 무고한 인질이 아까운 제 생명을 비도손에 놀이개로 빼았겼겠는가. 내 자신이 방금 그런 처지에 들었다가 사경을 겨우 넘겼거니 실은 절망에 떨려 우는 남을 경멸할 신세도 비웃을 신세도 못되였다.
목이 마르다못해 타드는것만같았다. 이제는 정말 죽지 않을가. 민호는 있는 기운을 다 내여 발악적으로 소리를 내질렀다.
《물을 달라, 물! 물! 이놈들아!》
웨침소리를 들었는지 이윽해서 가벼운 발작소리를 끌며 녀인이 다시나타났다. 한데 그녀가 손에 들고 온 것이 또 호로병이여서 민호는 도끼눈이 되었다.
《옛어요, 물.》
녀인은 이쪽에서 받지도 않고 자기를 당장 잡아먹을 상이니 갖고 온 호로병을 철창가에다 슬며시 놓고는 입을 비쭉하며 돌따서 가버렸다.
저계집년 악귀다만 그래두 생김새 하나는 무척곱고 얌전한 티까지 나니까 혹 심청이 바르게 돌아졌는지두몰라. 자기가 또 어제처럼 놀림당한다고만 여겨온 민호는 한편 이런 생각도 나는지라 호로병을 가져다 마개를 빼보았다. 호로병안에 들어있는건 과연 그가 찾고있는 물이였다.
웬 일인지 이틑날도 사흩날도 그를 불러내가지도 건드리지도않았다. 토비들이 그를 잊은걸가 아니면 흉살신이 비칠때라서 잠시 놔두었다가 택길(擇吉)을 해서 처리하려는걸가. 때가 돌아오면 굶기지 않고 먹을 것을 갔다주거니와 지어 밤에 덥고자라면서 덮개까지 갔다주니 모를일이였다. 이자들이 나를 죽여도 더 험악하게는 굴지 않고 죽일모양인가부다.
위진이라는 그 허저인비도는 다시나타나지 않고 대신 민호와 나이비슷한 자가 그를 감시하고 있었다. 여기에 온지 나흘이 되는 날 점심때였다. 감시를 맡은 그 비도가 강태죽을 한사발 갖고와서 주면서 민호더러 먹으라는것이였다.
왜 오늘은 이따위 색다른 음식을 주는걸가, 이게 날 죽이자구 마지막먹이는 사자밥이 아닌지, 그럴수도있으리라 생각하니 민호는 가슴이 어름장같이 싸늘해져 고개를 외로 탈았다.
《허, 이거. 왜 그러우?》
《이따위건 왜 날 먹으라는거냐?》
《왜 나뻐? 이건 갈분넣은건데.》
《그런건 왜 주는가말이다.》
《접때 반강자너무먹구 아직두 보깨는게 아니여. 그런다구 위아가씨가 념려해서 손수 쑨건데. 안먹겠다면 아예 개나주지.》
그 말을 듣고보니 이쪽에서 생각하는것과는 생판으로 다른지라 민호는 저도모르는 사이 손이 불쑥 나가고말았다.
《잠간, 그걸 인줘. 내가, 내가 먹겠어. 먹겠단데두. 인줘.》
그는 죽그릇을 받자마자 게눈감추듯 후룩후룩 먹어버렸다.
이상했다. 먹으면서도 리해키 어려운 의문만 갈마들었다. 토비딸이 그래 제가 죽이자던 포로한테 자비를 베푼단말인가? 그럴 수 있을까. 악의새끼니 그 새끼도 악마일텐데. 그래 그런 녀자도 인성(人性)이 있단말인가? 이건 사람을 얼떨떨하게 만드는 일이였다.
강태죽을 가져왔던 자가 가버리자 위진이란 토비가 왔다. 민호는 이럴때 그가 다시나타난게 반가왔다.
《아, 오셨슈. 왜 까딱 보이질 않았어요?》
《그러니까 날 생각했다는거지?》
《그렇습니다. 우리야 이젠 서로 구면이 된 사이가 아닙니까.》
《어, 어, 그래. 그래. 하하하…》
위진은 포로로 잡힌 이 조선젊은이가 자기를 좋게 보고 친절을 나타내는 것 같으니 입을 뻐개가며 웃었다.
《날 보구팠을수도 있어. 난 임잘 잠재울려구 안하니까.》
민호는 그의 살결좋은 상판을 말끔히 올려다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사람은 달마냥 감추는 어두운 면이 있는거다. 이자는 여기서 무슨 급에 있는 놈일가? 민호는 그가 자기에게 술을 먹이던 일을 다시생각하니 속이 꼬이였다.
《여보시오. 내 한가지 물어볼까요.》
《물어봐, 뭔가구?》
《족제비가 수탉하고 한굴에 있으면서두 그걸 잡아먹지 않는건 왜설까요?》
《아따, 거야 족제비가 인심좋아 그런게지 뭐야.》
《세상에 그래 인심좋은 족제비도 있을가, 먹이를 앞에 놓구서두 안잡아먹는 그런.》
《왜 없겠어, 있지.》
《되지두않을 소리. 배만 고파보지. 뼈도 안남게 먹어치울걸.》
위진은 식자없어도 머리가 아둔한 인간은 아니였다. 그는 눈을 꺼무럭거리며 듣더니 대방이 자기를 비꼬고있음을 알아채고는 낯색이 단통흐려졌다.
《내가 그래 아무때건 자넬 잡아먹으리라 그 말인가.》
《글쎄요. 그걸 어떻게 알겠습니까. 당신은 벌써 한 번 솜씨를 뵌게 아닙니까, 날 죽일려구.》
《임자두 어차피 눈감을바엔 기껏먹자구한게 아니였나. 괜히 남만 나무리면서 트집잡지 말게. 내 이 왕견이까지 지독한 악한으루 보다니 원. 난 그따위 소리 반가와안해.》
《여보시오, 어른. 그러니까 당신네들두 선한 마음있다 그 소린가요?》
《건 왜 지지콜콜 캐는건가. 그래 젊은이 눈에는 우리가 그저 악한으루만돼보이나?》
《살인하고 략탈을 하는 당신들이 악한아니구 그럼 부처님이란말입니까? 하긴 부처님을 목에 걸고다니는 걸 보면야 선함을 동경해서 그런소릴하는 것 같은데…》
《이 사람 인사불성이네. 무슨 망탕소릴 이리두죄치는건가.》
《인사불성인건 내가 아니라 바로 당신들입니다. 왜 생사람잡아다놓구서 이럽니까. 당신도 알다싶이…난 돌아가야겠습니다.》
《사정은 나도 아네만은 이제 누굴 원망하겠는가. 자넨 범계를 한 사람이야, 알았어?》
그렇다, 나는 범계(犯界)를 한 사람이다. 민호는 승인하지 않을래야 승인하지 않을 수 없다. 산삼캐러 들어왔던 그 심마니처럼 끝장을 보고말겠지. 처참한 운명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왔다. 허나 그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살인을 도락으로 삼을 이따위 인간앞에서 눈물을 보이고싶지 않았던거다.
위진은 자기를 무엄스레 대하면서 제 맘속의 말은 다 토해놓는 조선족젊은이를 곱지 않은 눈매로 흘겨보다가 코방귀를 흥 뀌면서 몸을 홱 돌렸다.
민호는 그가 그모양으로 가버리자 후회하기 시작했다. 혹시 나를 동정해 구해줄런지도 모를 사람을 내가 실없이 격노시킨게 아닌가싶었다.
지금은 이 광활한 만주ㅡ관동땅에서 토비들이 한창 욱실거리는 때였다.
군벌혼전에 나라가 치정(治定)이 안되니 꼭마치 장마철 개구리모양으로 좀도적, 불한당, 떨거지깡패…별의별 오도깨비들이 다 뛸쳐나와 제 세상을 만났노라고 들고납닥치는판인데 그런 자들마저 그 무슨 대성(大成)이요 오합군(五合軍)이요 쌍양호(双陽好)요 서패천(西覇天)이요 하는 이름을 버젓이 내걸고 료략질을 해먹으니 그놈의 토비성분이 과연 복잡하기도했다.
전문 가난한 백성집을 돌아가며 터는 자들이 있었는데 그것이 알짜강도였다. 그런자들은 거의가 기와가마는 감히 다치지 못하면서 보통백성을 인질로 잡아가거나 생활이 중축이 아니면 그보다 못한 집의 재물만 노리는 것이다. 민간에서 호자(胡子)라 부르는 것이 바로 그런자들이다. 그들은 인원수가 많아야 7~8명, 지어는 혼자서도 이름을 달고 료략질을 해먹었다. 백성들은 이런자들을 제일증오하고 저주했다. 억강부약(抑强趺弱), 살부제빈(殺富濟貧)의 깃발을 들고 전문 기와가마를 털고 때로는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기도 하는 류자가 있는데 이런 토비는 우의것과 성질이 완연히 달랐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인원수가 많고 무장이 갗추어졌으며 우두머리는 담량이 있고 총잘쏘며 리외사량(里外四梁) 팔주(八柱)는 모두 만만치 않았다. 그들은 기와가마를 들부시는 외에 가난한 사람을 도와 자질구레한 비도손에 잡혀간 인질을 되찾아주기도했다. 이런 큰 무리의 토비는 자연히 정부측과 겨루면서 관계를 발생했는바 왕왕 대량의 경찰대거나 군인무장의 습격을 받아 숙청될 위험이 있길래 자체를 보호할 무장력을 장대시킴과동시에 산채의 안전에 대해서 각별한 주의를 돌리였다.
염왕산토비가 바로 이러했다.
이 염왕산의 개척자는 위삼포(魏三浦)의 아버지 위록산(魏錄山)인데 그는 본래 청나라 장교출신이였다. 청나라때 생겨난 흑룡강장군아문(黑龍江將軍衙門)은 완전히 군정통치를 위해 설치된것으로서 그것은 하나의 엄격한 군사조직이였거니와 흑룡강장군휘하의 조직형식이였다.
동치(同治) 2년(1863)이후 흑룡강장군은 팔기병(八旗兵)중에서 꼴꼴한 자들만 선발하여 따로 팔기련병(八旗練兵)을 편성해 자기 관할하에 두면서 광서(光緖) 8년(1882)에는 봉천(심양)에서 교습(敎習)을 청해오고 천진에서 대포를 가져다 7년간 기계화훈련을 했다. 이 기간 흑룡강의 치치할, 후룬벨, 무얼근, 훅호트 등 성(城)의 훈련군은 보병 74개소대, 기병 16개중대, 포병 4개중대였는데 병력은 도합 4,700여명이였다.
그때 기병소대장이였던 위록산은 나이 이미 30세를 넘겼고 처자까지 있는 몸이였지만 대중이 공인하는 출중한 기마술과 용감성으로 하여 퇴대하지 않고 중대장으로 승급하게 되였다. 그런데 그와 암암리에 지위를 다투던자가 그의 증조할아버지가 조정에 있다가 반역죄로 몰려 관동에 추방되여 온 이왕지사를 새삼스레 들춰내여 그것을 상급에다 밀고하는바람에 위록산은 그만 관문에 올랐다가 나떨어지고말았다. 이에 앙심을 먹은 위록산은 기회를 노리던 중 어느날 밀고자를 칼로 찔러 죽여 머리와 밸을 병영의 대문에다 걸어놓고는 그 자리로 부대를 뛸쳐나와 산에 들어가 록림객이 되고말았던것이다.
한 번 들여놓은 길에서 발길을 돌리기는 어려웠다. 그후 그는 이 산을 근거지로 삼고 관동일판을 횡행하기시작했다. 그러다가 1900년 의화단운동이 일어나자 그해의 7월에 그도 자기의 류자들을 거느리고 구국성전에 나섰다. 그는 봉천에서 모집해 온, 축로공과 파산된 농민으로 조직된 의승군(義勝軍)과 함께 흑룡강의 청나라군대인 진변군(鎭邊軍)을 협력하여 싸하로브소장이 지휘하는, 하바롭쓰크로부터 송화강을 거슬러올라오는 로씨야침략군을 항격하여 용감히 싸웠다. 그러다가 이듬해의 봄에 새자를 거느리지 않고 외지로 나갔던 그는 전에 한차례 지반쟁탈로 인하여 마찰이 있었던 밀산일대의 토비습격을 돌연히 받아 목숨을 잃고말았다.
그때 아들 위삼포가 나이 31세였는데 그는 창졸간에 사랑하고 애대하던 아버지를 잃고나니 구곡간장이 끊어질 듯 절통하여 련며칠을 울음속에 파묻혀있다가 분연히 떨쳐나가 싸워 끝내 적패를 섬멸하고 원쑤를 사로잡았다. 위삼포는 산채에 돌아오자바람으로 원쑤에게 <하늘구경>을 시켰다. <하늘구경>은 토비들이 쓰고있는 형벌중 가장 잔혹한 형벌이다. 위삼포는 새자(崽子)를 시켜 굵기가 팔뚝만한 백양나무를 한길만큼 남기고 우를 자르게 한 다음 웃끝머리를 뾰족하게 깎게 했다. 그리고는 붇잡아 온 자를 알몸뚱이되게 발가벗겨 들어서 그 우에 올려놓았다. 나무가 믿구멍으로 들어갔다. 자체의 육중한 몸무계에 의하여 굵은 나무가 몸속에 점점 깊이밖혔으니 그 정도가 어떠했겠는가. 위삼포는 그렇게 원쑤를 죽여서는 목을 잘라 아버지의 제단에 올려놓아 제를 지낸것이다.
저녁켠이 되자 다른 한 비도가 와서 문을 열어주면서 민호더러 나오라해서는 데리고 가더니 다른데다 넣었다. 두령이 들어있는 중앙산채에 딸린 별채였다. 해광이 충족하고 아담하게 꾸려진 방이였는데 북켠에 갈까래를 펴놓은 구들이 있고 구들에는 바싹 말리운 고사리묶음이 차곡차곡 쟁겨져 있었다. 창고는 아닐텐데?…
민호가 바로보았다. 그것이 본래는 전에 하녀들이 들어있던 방이였다. 압채부인이 되여 오래동안 산채에서 황후같이 떠받들리며 살아오던 위삼포의 마누라가 5년전에 타계하게 되니 시종이 더는 필요치 않거니와 계집들이 꼬리질하며 피우는 냄세에 새자군심이 소란해진다고 여긴 위삼포가 그네들에게 로비를 주어 전부 산채에서 내보내다보니 이같이 비여있게 된 것이다.
위삼포는 민호가 대취하여 지각마저 잃은 사이 위진이한테 들어 그의 신원을 대충알게 되였다. 하지만 위삼포는 그래도 사람을 방정에 까지 보내여 거기서 아무날 아무시각에 남의 말을 빼앗아 타고 달아난 사람이 있는가 없는가를 조사해오게 했다. 사실이 그러함이 증명되였다. 하여 위삼포는 이 조선젊은이가 경찰의 끄나블이나 관가의 밀정이 아님을 알고 엄계(嚴戒)를 해소한 것이다.
사실 위삼포는 막부득이한 경우를 내놓고는 인명을 함부로 취급하는 사람이 아니였다. 젊은이가 안해를 잃고 헤매는 사실을 명백히 알게된 그는 그가 비록 범계는 했지만 그것으로 인해 죽이지 않고 들어올 때 처럼 눈을 싸매여 돌려보내려했다. 한데 요즘따라 왼일인지 내내 꿈자리가 시원치 않아 길일을 택하다보니 즉각 산채를 내보내지 않고있는거다.
한편 이런줄을 모르는 민호는 의연히 불안한 가슴을 끓어안고있어야했다. 그는 죽더라도 비겁하게 죽지는 않고 독림군인답게 용감히 죽으리라면서 용기를 냈다. 허나 용기가 공포에 대한 저항이며 공포를 극복하는 것이지만 결코 그를 없애는 술법은 아닌거다. 나를 왜 이런데루 자릴 옮겼을가? 이젠 어떻게 할셈인가?…이틑날도 민호는 의연히 불안과 의문과 위구가 엉겨붙는 착찹한 고뇌속에서 괴롭게 방황하고 있었다.
밖이 갑작스레 소연해졌다. 웬일인가고 내다보니 비도 여럿이 안장지운 백말을 마당에 내다놓고 평을 하느라 떠들었다. 한데 다시보니 그건 분명 민호가 방정에서 타고 온 그 백마였다.
위삼포의 보배딸이 나타났다. 이름이 향란(香蘭)이다. 그녀는 몽골녀인들의 명절차림같은, 목깃과 단을 빨간띠로 두른 람색비단옷을 입고 허리에는 넓다란 띠를 띠였으며 발에다는 박차를 댄 목긴 기마용장화를 신었다. 일견하여 말을 타자고 일부러 준비하고 나온 차림새임이 분명하다.
건장해보이는 사나이가 키큰 말에 오르는 그녀를 거들어줬다.
《저 녀석은 마마두 계집의 남편일테지.》
민호는 그들이 남의 말에 감질내는게 아니꼬와 혼자소리로 내뱉곤 이사이로 침가지 찔 깔리였다. 내가 저 자식들 노는 꼴 좀 구경해볼가부다. 마침 문을 잠그지 않은지라 그는 밖으로 나왔다.
향란이가 산채의 널다란 운동장을 달리기시작했다. 한고패 두고패 말은 점점 속력을 냈고 녀인도 박차를 가하면서 말을 점점 세차게 몰았다. 짜장 경마장에나 출전한것같이.
《허, 대단한데!》
민호는 녀성이 말을 이같이 잘타는 걸 처음보는지라 은연중 혀를 내둘렀다. 일개 녀성이 말을 저같이 잘타니 사내놈들이야 더 이를데있으랴싶었다. 그는 중앙산채주위 여러군데 매여있는, 숫자를 헤아릴 수 없는 말들을 일별했다. 그러노라니 <고태자참안>을 비져냈다는 밀산의 청보산패토비들이 또 생각났다. 그자들도 마적이였다. 비록 수자는 이네들과 비길바못지만. 이곳 염왕산은 얼핏봐도 비도가 청보산패의 몇배였다. 숫자가 50여명밖에 안되는 청보산을 숙청하는데 그같이 애를 먹었을라니 이것들을 숙청하자면?…빤하다. 웬간한 무력으론 어림도없을 것이다.
향란이가 한바탕 질주를 하고나니 직성이 풀리는지 말잔등에서 내렸다.
말이 짐을 부려 거쁜한지 머리를 내저으면서 투레질다. 이번에는 아까 그녀를 거들어주던 녀석이 말잔 등에 오른다. 녀석이 맥을 뺀 말을 쉬울 념도 안하고.
《저놈의 렴치없는 새끼가!》
민호의 입에서는 부지불식간 이런 질타의 웨침이 튀여나갔다.
《이놈아, 말에서 내려라!》
말탄자는 흠칠했다. 어정쩡해있다가 자기에게 감히 이같이 호령하는 자가 대체 어느 누군가고 찾았다. 모두가 그 모양이다. 방금 귀를 때리는 웨침이 날아온 출처를 찾느라 두리번거렸다. 그러다가 그들은 드디여 그건 다른 누군게 아니라 바로 두팔을 앞가슴에 포개고 서서 자기들 쪽에다 경멸의 눈길을 던지는 이켠의 포로인것을 발견하고는 마치도 어물전을 만난 까마귀모양으로 떠들었다.
《핫, 하하하…》
《저건 또 어디서 난 똥벌레냐, 엉?》
이쪽이 누구란건 향란이가 안다. 그녀가 무어라 몇마디 하자 방금 말잔 등에 올랐던 자가 도루뛰여 내렸다. 그자는 이켠을 향해 성큼성믐 걸어오면서 제 옆꾸리에 찬 칼을 뽑아드는것이였다.
향란이가 그러는 꼴을 보자 소리쳤다.
《아니, 보재! 왜 그래요. 철붙이 하나 없는 사람한테 청자빼들다니 원! 그러면 너무도 체신머리없잖아요.》
사나이는 녀인의 조소담긴 힐난을 받고보니 객기가 빠지는지 침만 요란스레 땅에다 뱉고는 되돌아서며 무어라 두덜댔다.
꼭 마치도 모주먹은 돼지같이. 그냥 서있다가는 좋은 멋이 있을 것 같지 않은지라 민호는 집안으로 되들어오고말았다.
다른 일이 더 발생하지 않았다. 비도들은 그에게 먹을 것을 그냥 날라다주었다. 주식은 수수밥이다. 배가 부를 정도의 량이였고 반찬은 절인 돼지고기아니면 산나물채였다. 잠자리를 바꿨겠다 먹이는걸 봐도 이만하면 험하게 구는건 아닌데 운명을 점치기 어려워 가슴은 그냥 얼어들면서 진정키 어려웠다.
한데 밥을 날라온 자가 돌아가지 않거니와 손에 총까지 휴대해서 민호는 생각이 더 불길한데로 달음질쳤다. 그자는 둔박한 나무걸상을 끌어다 문가에 놓고 궁둥이를 붙이더니 생각밖에 낮은 목청으로 노래를 불렀다.
서방님 머리돌려요
류자무리에 들지 말아요
집에는 처자가 있잖은가요
나돌아다니지 말아요
사람죽이면 대죽음하고
남을 해치면 보복당해요
어느 집엔들 누나 동생 없겠나요
어느 집엔들 처자가 없겠나요
사람마음 어서갖고 자기를 봐요
곁사람한테 근심걱정 주지 말게요.
민호가 노래를 듣고는 저으기 놀랬다. 아니 토비의 입에저 저런 노래가 나오다니! 이건 아닌게아니라 개가 풍월하고 승냥이가 경을 읽는것만같아서 자기의 귀를 의심할지경이였다. 민호가 이제 들으니 처음이지만 실은 그것이 지금 항간에서 떠도는, 안해가 제 남편더러 토비노릇을 하지 말아달는 <권부가(勸夫歌)>였다. 그런것을 젊은 비도는 흥얼거리기를 좋아하다보니 저도모르는 사이 그만 입에서 새여나간 것이다.
《밥은 안먹고 뭘해, 이자식!》
이쪽의 정신이 자기한테 집중되여있는 것을 발견하자 그자는 소리를 꽥 지르면서 눈을 곱잖게 흡떳다.
민호는 힛죽 웃어보이고는 대방이 알아듣지 못하는 조선말로 자식이 우둘렁거리기는 제기! 하고는 밥을 먹기시작했다.
그자는 빈 밥그릇을 갖고가고는 다시나타나지 않았다.
한낮이 되자 산채는 조용해졌다. 해도 민호는 밀물같이 달려드는 자비와 절망에 그냥 시달림을 받아야했다. 저승길과 변소길은 대신못가는거야 하니까 내대신에 죽어줄 놈은 이 세상에 없을거다. 어쩌면 좋을가, 죽을 수가 닥치면 살 수가 생긴다지만 내가 그래 이눔의데서 빠져나갈수 있을가?…그것이 쉬울리는 없는거다. 사처에 감시소가 있을것이요 그러다 다시잡히날이면?…그럼 내가 바보같이 여기에 앉아서 제 죽을 시각만 고스란히 기다려야한단말인가?…감연히 난국에 림하여 구명책을 찾고있던 민호는 저기 구석진 벽에 집승의 뿌리가 하나 걸려있는 것에 눈길이 다시갔다. 노루뿔인가했더니 다시보니 아니였다. 그것은 록용이였다. 피발린 두 개골이 붙어있는 걸 보니 떼여낸지 그리 오래지 않은것이였다. 민호는 알고 있다. 음력 5월말부터 6월말까지 록용이 4평두(四平頭)가 자라는 기간이고 이때가 또 록용이 질이 제일좋은 계절인 것이다. 지금이 양력으로 9월초니 제철을 놓치였다. 그래도 속은 아직 채 마르지 않은 것이였다. 금수어충(禽獸魚蟲)이 다 네놈의 거냐. 내가 죽을 운명이라면 차라리 저놈의거나 먹어보고 죽는편이 썩 났잖을가. 민호는 스스로 기발한 궁리라 여겨져 그것을 벗겨 제 입에 가져갔다. 이 시각의 그는 이미 정신이 문란해져 온 몸은 우둔한 담력뿐이였다…
류자들의 후근을 책임진 백두옹(白頭翁) 량태(糧台)가 들어왔다가 록용을 훔쳐먹고 늘어진 민호를 즉시 발견했다. 하여 조용하던 산채에 일장의 소란이 생겨나게 되였다.
《하, 이 자식이 바르게는 돌아가네!》
《날쏘시개나 먹고 뒤여질 놈!》
《담통이 커두 이만저만아니다!》
민호는 왁짝 떠들대는 비도들에게 떠밀리고 들리여 어디엔가 미츨하게 자라서 하늘을 찌르듯 하는 소나무밑에 가서 섰다.
위삼포가 그한테 큼직한 도끼를 던져주었다. 그리고는 엄엄한 얼굴을 해갖고 총을 꼬나들더니 그를 향해 엄포를 놓았다.
《이놈! 잘 듣거라. 넌 내가 백을 세는 사이에 그걸 찍어넘겨야한다. 알아들었느냐? 그런면 살려줄거요 안그러면 알겠지, 이놈!》
그리고는 과연 하나, 둘 하고 셈을 세기시작했다.
뭐라는가, 날 살려주겠다구? 내가 그래 살아나갈 구멍수가 있단말인가! 민호는 정신을 펄쩍차렸다. 그리고는 도끼자루를 어스러지게 잡고 미친 사람같이 나무를 찍기시작했다.
나무쪼각들이 휙―휙―날렸다.
온 몸이 차츰 물참봉이 되어갔다. 그래도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고 생각하니 죽을 둥 살 둥 정신없이 도끼를 휘둘렀다.
위삼포의 셈이 끝나감과 함께 나무는 도끼날을 맞아 넘어갔고 민호도 그 자리에 쓰러지고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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