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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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관동의 밤>> 제1부(16)
2015년 02월 03일 11시 24분  조회:2494  추천:0  작성자: 김송죽
 

                           16

 

 

 

 

 

    민호가 돌아오니 한반의 류자들은 무척 궁금했던지라 아니 넌  보름씩이나 어데 가 있다가 인제야 돌아왔느냐고 입가진것마다 겨끔내기로 물어댔다. 민호는 공개하기 어려운일이라 자기는 위삼포의 명을 받고 할빈에 갔다왔노라고 대답하여 안해를 찾아다닌 사실을 숨기였다. 그의 일을 알고있는 사람은 오직 하진국이와 왕견뿐이였다. 그 둘은 쪽박이 굳은 사람이다.

    민호는 산채에 돌아오자 분위기가 이전만 좀 다르다는 감을 느꼈다. 다른때같으면 장기를 두거나 주사위를 놀거나 아미면 육담을 늘이면서 벅작고울 사람들이 그저 조용히 마작쪽만 주물렀다. 한풍이 휩쓸고 지나나간 듯 집안에 화기라곤 돌지 않았다. 그리고 까불이 왕은경이가 보이지 않았다.

    민호는 그 애의 사촌형인 왕견이보고 물었다.

   《은경인 왜 안보여. 걘 쟁반밟으러 나갔소?》

   왕견은 고개를 외로 탈아버릴 뿐 대답이 없다.

   아니 이 사람 왜 이래? 그가 난색이니 민호는 괴이쩍어했다.

   하진국이 눈짓으로 민호를 밖에 끌어내다 알려주었다.

   《은경일 빼버렸소.》

   《아니 뭐라?…왜서?…무슨일에?…》

   놀라 어안이 벙벙해지는 모양을 보면서 하진국은 이미 열어놓은 입으로 듣기도 끔찍스런 한심한 사건 하나를 말했다.

   《뒤여질라구 환장했는지 원. 그자식이 글세 개하구 야화요(강간)를 했단말이요.》

   《아니 뭐라!?…개하구 그짓을 했다?… 원 무슨소린지…아무리 쌔번진들 어쩜 그렇게까지야…치사하게.》 

   《글쎄말이요. 그랬다구서 위삼포는 산채를 망신시키는 세차즈라면서 일이 발각이 된 당날루 그앨 빼버린거요. 개까지 함께.》

    그 말을 듣고보니 아닌게아니라 반에서 기르던 개도 보이지 않았다. 누런 암캔데 민호가 오니 그때 벌써 새끼를 두배째 낳았다고한다. 제 장단지를 칼로 찍고 제 귀를 베고 임신부의 배를 갈라 태아를 끄집어내고 짐승을 강간하고… 인간으로서 보통 할 수 없는 희한한 일들이 여기서 만들어지고 있었다.

  《자식이! 추접게 놀더니 끝내 그꼴루되고마는구나.》

   민호는 내놓고 웃지도못할 그런 일이 발생했으니 반장의 처지가 어떻게 됐겠는가고 했다. 그런데 하진국이 하는 얘기를 들어보니 전혀 생각밖이다. 왕은경이 그짓을 하는 것을 밝혀낸것도 반장이고 우에다 고발한것도 반장이거니와 총을 쏴서 그의 숨통을 끊어놓은것도 반장이라한다.

  《아니 고생도 슬픔도 기쁨도 같이해야한다는고 늘 입에 달고있던 녀석이 그렇게까지 한단말인가?…제 반에서 생겨난 패륜아를 감싸줬다가는 아마 추궁이 될까봐 되게 무서웠던모양이지 그꼴로 논걸 보니… 그래두 그렇지 아무렴 어찌…제명대루 못살 놈이야!》

    민호는 위진을 욕했다.

    제반 새자들의 가슴에다 불만의 씨만 심어놓은게 분명했다.

    민호는 우울해진 왕견이 이제 아무때건 감정을 이기지 못해 성질을 부릴 것 같아 어느날 쟁반밟으러 나갈 일이 있게되자 자진해서 차챈더의 허락을 얻어 데리고 함께 산채를 나갔다. 마침 왕견도 가슴답답해 시원히 바람이나 쐬려던참이였다. 

    그들은 언젠가 300여명류자가 동원하여 상탁(주)이 있었던, 위용강과 진사해가 깃대를 꽂고 온(주) 통에 재난을 면치 못한 그 기와가마가 있는 연수일대를 다시돌고나서 귀로에 올랐다가 염왕산북쪽 약 100여리 지점에 있는 진가툰에 들리였다.

    그 마을의 툰장이자 점황지주인 진씨는 1000여헥타르의 땅을 혼자 독점하고있었는데 마을의 농호는 거의가 그의 땅을 소작짓고있었다. 진씨는 차지(借地)로 준 땅을 내놓고도 여러쌍지기의 밭을 자기가 손수다루고있었기에 상기적으로 집에 두고 부리는 농군만도 여나무명되였다. 진씨는 그같이 부유한 사람이지만 여지껏 토비의 시달림은 받지 않고 살아왔다. 한것은 가까이에 있는 위삼포가 그를 보호해줬기 때문이다.

   환갑이 가까우나 그리 늙어보이지 않고 풍수좋은 진씨는 자기집에 나타난 두 류자손님을 각근히 대해주었다. 그는 왕견과 잘아는사이였다.

  《압련자!》(주)

   왕견이 소리치자 진지주집의 하인이 곰상히 말 두필을 끌고 먹이러 갔다.

   진지주가 왕견을 향해 물었다.

  《임잔 이번에 무슨 길이우?》

  《산채루 돌아가는 길에 들렸습네다. 나온지는 여러날되지요.》

  《사흘만 더 일찍왔어두 좋았을걸.》

  《무슨소린가유?》

  《점산두라는 패가 여게 와 재를 치구갔네.》

   점산두(占山頭)라니! 그건 또 어디서 나타난 잡놈들일가?… 민호는 물론 왕견도 처음들어보는 토비무리다. 

  《그자들한테 그래 뿌려줬는가요?》

   왕견이 물어보는 말에 진씨는 웃으면서 머리를 가로저었다.

  《내야 당하질 않았지… 감히 덤벼들기나 할 자들인가… 다해봤자 열명도 안되더래.》

   말을 들어보니 역시 좀팽이 류자들이다.

   해도 진씨의 말을 들어보니 여간만 지독하지 않는 강도단이다.

  《글쎄 강령감네가 뭐 있다구. 요몇해간 보따리장사해서 좀 모았다구할수야있지. 그래서 명색이 가게방이랍시구 하나 꾸려놨다우. 그런데두나 그 녀석들이 글세…그 집의 아들을 잡아다가 어떻게 했는지 아오. 고구마를 구웠다우… 돈 천원이 어디우… 그 집에서 그걸 어떻게 낸다구…날 찾아왔더구만. 사람이야 구해놓구봐야잖소. 그래서 내가…》

  《돈을 대줬다는건가요?》

  《그렇네 반은 내가 대줬지.》

  《잘했습니다.》

   민호는 그의 처사를 칭찬했다.

   고구마를 굽는다는건 쇠를 달구어 지지는 것을 말한다. 그렇게 하면 인질은 고통스러워 고함을 지를것이고 집사람들은 그 고함소리에 가슴찢기고 뼈가 갈리여 한시급히 요구에 응하게끔 하자는 잔인한 수단이였다.

    전날 민호와 왕견이 들렸던 연수근처의 한 마을에서 생긴 일이다. 다섯놈이 어느 집의 15살나는 딸을 화방자로(주) 잡아다놓고는 아무날전으로 돈갖고 와서 찾아가라 그러지 않으면 죽여버리라했다. 그 집에서는 하는 수없이 집재산을 다 팔아버렸다. 그리고도 액수가 모자라기에 소녀의 어머니가 제 피를 뽑아 팔아 부족되는 부분을 보태였는데 그 어머니는 딸이 풀려 돌아오기전에 그만 죽고말았다. 딸이 돌아와 보니 어머니가 죽은지라 자기가 살아서는 뭘하느냐며 역시 강에다 몸을 던져버렸다. 아버지는 어떻게 됐는가. 마누라가 죽고 딸까지 죽어버리니 내 혼자 살아서는 뭘하느냐며 나무에다 목을 달아매고말았다. 세 식구가 단란하게 살아오던 그 한 가정은 토비들 손에 이같이 비참하게 훼멸되고말았다.

   《째째한 놈팽이들! 목대를 분질러놔야 할 놈들!》

   왕견마저 악당들을 저주했다. 비록 도척(盜跖)(주7)의 후계로 되어 하늘을 쓰고 도리질하면서 백주창탈을 업으로 이 세상을 제멋대로 살아가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자긴 여직 그렇게 까지는 잔인하게 놀지 않았노라면서.

   허, 이것보지! 리성이 부활해 량심을 호소하는거냐. 고통의 모든 의미를 리해한다면 넌 아마 부처님이 될거야. 민호의 생각이다.

   사람마다 제가 즐겨보는 천국은 따로 있는 모양이다. 진씨가 염왕산 그늘덕을 입고있는지라 왕견은 그의 앞에서 제법 은인행세를 했다. 나는 여러날이나 잘 먹지도 못했다 몽두춘을 해야겠다 주두리 넓은 놈이건 헤버리는 놈이건 아무거나 잡거라 표양자(죠즈)든 진수산(이밥)이든 하거라 요구를 내놨다.

    진씨는 두말없이 그것들을 달갑게 받아주었다. 그는 종들에게 명령해 서둘러 닭을 잡고 죠즈를 싸고 술상을 차려올리게 했다.

    두 사람은 배껏 먹었다.

    두 머슴애가 상을 거두면서 나지막한 소리로 주고받았다.

   《얘야 오늘 온 손님들 무슨 사람이게 우리 주인이 이리두 잘 접대한다니?》

   《애두 참. 네 눈으루 보면서두 모르니. 산에서 온 사람이야.》

   《산에서 온 사람?…》

   《것두 몰라?…토비야.》

   《토비!? 그런데…왜 무섭게는 생기지 않았구나.》

   《무섭긴. 사람인데. 누구보담두 잘 먹구 잘 노는 사람들이야.》

   《그럼 우리두 토비질이나 해볼까.》

    등을 베개로 밭히고 벽에 비스듬이 지개여 두눈을 지긋이 내리감은채 철없는것들의 말수작질에 귀구멍을 열어놓고있던 민호는 불현간 몸을 발칵 일으키면서 호되게 꾸짖었다.

   《이놈들! 무슨 소릴 그렇게 해쌌는거냐? 뭘 해먹을 짓없어 토비노릇하겠다는거냐, 엉? 이제 다시 그따위소리만해봐라. 아가리를 찢어놓고말테다, 이놈들!》

    머슴아이들은 그만 혼겁하여 달아나버렸다.

    둘이 거기를 떠나자니 진씨가 근심스러워 만류했다.

   《두분께서는 이대로 훌쩍 가버리려오. 며칠만 좀 더 눌러있으시지. 아마두 마을이 안녕치를 않을것 같아서 그럽네다. 듣자니 그 녀석들말고도 생전 못들어본 흉한 떼거리가 싸다닌다는데…》

    속셈이 빤했다. 진씨는 염왕산의 위력을 빌어 만일의 경우 광기부리며 달려들 떨거지 토비들의 략탈을 피면해보자는 생각이였다. 어쩌면좋을가?…민호는 단둘이서 그자들의 행패를 막아낼수있겠는지 자신이 서지 않으나 믿고 하는 사정이니 뿌리칠수도 없는지라 그러면 사날만 더 눌러보지요 하고 주인의 청을 들어주었다.

   《맹가강에 갔을적에는 내가 동생의 말 잘안들었소만 이제야… 뭐든 지시만내리라구. 그러면야 내가 어련이 듣지 않으리.》

    왕견이 스스로 다지는 맹세였다.

    민호는 그러는 그가 좋았다.

    산채로 인차돌아가지 않기를 잘했다. 이틑날 민호가 왕견이를 데리고 전날 점산두토비손에 아들을 랍치당한 가게방을 가보자고 나섰다가 공교롭게도 진가툰에 기여든 다른 한 비도무리와 맞띄웠다. 인원이 모두 12명. 역시 좀팽이였다.

    그자들의 눈에도 이켠이 어디든 행색이 달라뵈였던지 마주치자 류자식으로 말을 걸어왔다.

  《보보만!》(주)

  《첨자만(주). 넌 누구냐?》

  《나는 나다.》

  《팔굽을 눌러라.》

  《불을 꺼라.》

  《리마인이야.》

   이번에는 이쪽에서 캐고들었다.

  《보보영두!》(주)

   두눈이 치째지고 바르잖게 생긴 녀석이 이쪽은 다해봤자 둘뿐인지라 허수히 보고 거만을 뺐다.

  《내가 흑패천이다. 모아산 흑패천을 모르냐.》

   이런 경우를 당해 성미가 화약같은 왕견이 참아 견딜리만무였다. 독이 난 그는 낯색이 단통 지지벌개지면서 욕을 퍼질렀다.

  《야 이 랑비(주)같은 녀석아, 네가 똥패천은 아니구 흑패천이냐. 누굴 업시보구 이모양이냐, 엉? 돼먹지 못하게.》

  《아니 저놈이!》

   저켠이 총을 빼들자 왕견도 어느결에 빼든다.

   이런 일촉즉발의 시각에 민호는 용케도 따라움직이지 않고 무겁한 태도로 침착하게 맛서나섰다.

  《너도 염왕산이야 알겠지. 우린 염왕산이다. 대체 어쩔테냐?》

  《아! 그럼 저…》

   흑패천은 독이 났지만 감히 손 쓸 념을 못했다. 전혀 당황해 하는 티라곤 없는 상대측의 배때벋은 패기에 눌렸거니와 염왕산이라는 소리에 기가 질리기도 했던것이다. 

   민호는 기회를 놓지 않고 그루밖아 따지고들었다.

  《너희들은 십팔존계률을 아느냐?》

  《저, 저…》

   두목은 꺽꺽거리더니 낯을 돌려 제 졸도들에게 들었던 총을 내리우라 명령하고는 타협조로 빌붙기시작했다.

  《우린 오복자땜에 예까지 밀려온거요. 어쩌겠소. 형제지간에 사정 좀 봐주구려.》

  《사정이라니. 벼루기가 쫓는가? 개가 쫓는가?》

  《내 말하잖우. 오복자곯았다구서.》

   그 소리에 왕견이 다시금 눈알을 부라렸다.

  《네녀석들은 오복자곯은것만 알구 그래 염왕산 날쏘시개(탄알) 무서운건 모른단말이냐? 미런한 자식들! 썩 물러가라, 당장!》

   흑패천의 두목이란 녀석이 생긴 모양을 봐서는 감때사납고 어거지센 것 같지만 감히 엇서지 못했다.

   꼴을 보니 뒷근심달고있는 놈이구나. 이럴때는 계속 되게 굴어야 하는거야. 민호역시 낯색을 엄하게 굳힌채 말곁을 달았다.

  《너도 위삼포가 어떤사람이란건 알겠지. 여지껏 형제간의 의리를 중히 여겨왔거니와 함부로 범계하는 자, 도에 어긋나는 짓을 하는 자에 대해서는 추호의 양보도 없었단말이다. 사실이 이러니 어쩔텐가? 고집부리고 그냥 놀아볼텐가 아니면 오솝서리 물러갈텐가? 말해봐!》

  《물러가지. 물러가지.》

   흑패천은 꼬리를 빼는 수밖에 없었다.

   이리하여 진가마을 사람들은 한차례 눈섶에 떨어진 화을 모면했다. 안도의 숨이 안나갈 리있는가. 그들은 너무도 감지덕지해서 염왕산의 두 류자를 훌륭한 협객이라느니 호한이라느니 은인이라니 칭찬이 대단했다.

   둘은 이번 행차에 깃대를 꽂지 못했다. 솔직히 말해 민호가 자진해서 쟁반밟으러 나오기는했지만 의식적으로 깃대꽂을 기와가마를 찾지 않았던거다. 이 민호는 천죄만악의 토비떼를 숙청하느라 제 생명을 바치고 싸웠던 사람이야. 그러던 내가 부득한 사정에 이눔의데다 몸을 담근건데 그냥 진짜토비행세를 하면야 어디 사람이 되겠는가. 그렇게만 한다면 나는 당벽진에서 토비들 손에 살해된 내전우들의 원혼앞에, 고태자에서 살해된 허저인들의 원혼앞에, 토비손에 재난당한 이 관동땅의 무고한 백성앞에, 그리고 재난을 앞에 놓고 조이는 가슴을 붙안고 떠는 모든 백성들 앞에 천추에 용납못할 죄인이 뒤여 나중에는 천벌을 받고 말 것이다. 량심 이렇게 호소하면서 가끔 주의를 환기시켰던거다.   

    위삼포가 아무리 형통한들 남의 속맘까지야 어찌알랴. 여러날이나 나가있으면서도 들부실 기와가마 하나 찾지 못하고 돌아왔지만 그를 꾸짖지 않았거니와 민호가 범계한 서패천을 쫓아버렸다니 외려 기뻐하면서 대단히 잘했다고 칭찬했다. 민호는 언젠가 맹가강에 갔다가 인질로 잡혀간 애를 찾아줬을 때 처럼 다시한 번 물망에 오르게 되었다. 물론 이번엔 왕견이도 함께 상까지 받았다.

   《길마를 지워보면 말이 좋고 나쁨을 알수있는거네.》

    위삼포가 팔대금강인 사량팔주가 다 모인데서 민호의 소행을 놓고 이렇게 다시 한번 말 할 때는 그가 언녕 제 안중에 들어 장차 써줄 생각까지 있어서였다.

   무의식속에 고개를 쳐든 운이라할가. 여기서 발탁하여 우위를 잡게 될 기회가 서서히 다가오고있었건만 민호는 그런 것 까지는 꿈에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염왕산류자들은 식량만은 략탈하지 않고 여지껏 제 돈을 주고 삿다. 자금은 주로 아편을 팔아 마련되였다. 그러나 식량을 구매하자면 해마다 미리 잘 연통해야했다. 관방에서 토비에게 먹을 것을 대여주면 《통비범(通匪犯)》으로 론죄하여 가차없이 목을 잘랐기 때문이다. 형편이 그러했건만 농사군들은 갖은 방법을 다해 정부를 속여가면서 제가 지은 낟알을 한근이라도 토비에게 팔아먹으려 했다. 그네들이 그같이 위험을 불구하고 량식을 파는 원인이 어디에 있을가? 다른게 아니다. 그것은 바로 염왕산은 언제나 쌀값을 후하게 주었거니와 뒷수습을 잘해주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쌀판 이들이 후환이 없게끔 해주었다는 그거다. 위삼포는 만약 어느 마을에 고발자가 나지기만 하면 에누리 없이 그의 가족을 도룩냈다. 징계가 그러했길래 그들은 서로 감싸면 감쌌지 남을 물어먹는 짓은 절대 하려하지 않았다. 위삼포는 이같이 염왕산 주변에 있는 마을들을 어렵잖게 제 식량공급기지로 만들어놓은 것이다. 그리고 그런 마을들은 실제상 그의 보호권내에 들어 다른 토비들의 위협을 적게 받았으니 편안히 보낸셈이다.

    이해는 쌀농사 작황이 이왕년보다 많이 못했다. 그래도 염왕산류자들이 먹을 량식이야 있겠지만 떨거지패가 나타나 성행하니 어느정도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견됐다. 하여 위삼포는 쌀수매예약을 좀 더 일찌기 하기로했다. 량태는 그렇게 하는것이 옳아 서둘렀다. 그는 우선 이미있던 량공대(糧工隊)부터 다시고쳤다. 원래 5명뿐이던 량공대인원을 배로 늘이였거니와 원래의 성원중 젊은 사람 셋만 남기고 늙다리 둘은 퇴역시켰다. 그리곤 류자들가운데서 사격술이 좋고 날파람있는 자를 선발해 인원을 확충했던 것이다.

    일정한 전투력을 갖춘 이 량공대총책에 바로 민호가 위임됐다. 

    민호는 새로 구성된 량공대를 세 개 소조로 나누어 세 개 마을에 파견하면서 하루밤사이에 예약임무를 끝내고 날새기전에 맹가강남쪽에 모이게끔했다. 꼭마치 커다란 고분과도 같은 그 독산(獨山)의 남쪽 기슭에 토비말로는 계모점(鷄毛店)이라고 하는, 호수가 무려 40여호밖에 안되는 자그마한 농가마을이 하나 있었다.

    제시간에 임무를 다 완성하고 집결한 10명의 류자가 그 마을에서 눈을 붙이고 나서 이틑날 한창 아침밥을 먹고있는데 그 마을 저선(底線―련계인)의 아들이 달려와갖고 무장갖춘 자들 한떼가 지금 막 마을에 달려들고있노라 알려주었다.

    련방대가 온걸가?…민호는 들었던 밥공기를 덜렁놓고 시급히 대처할 준비를 했다.

    30여명이 마을에 달려들었다. 한데 그자들의 모양새를 보니 련방대같지 않았다. 다른패거리의 류자들일가? 민호는 불을 걸지 않고 먼저 통화해보았다.

  《보보영두!》

   저쪽은 대답이 없다.

   자식들이 어쩌자는거냐. 민호는 응대하기는커녕 이쪽에서 내치는 소리를 듣고는 바빠라고 몸을 숨기는 그자들을 향해 다시한번 높이 웨쳤다.

   《래래봉!》(주)

    했더니 저쪽은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거니와 이쪽을 향해 총질을 하는것이였다. 그래서 이쪽에서도 맛불질을 했는데 대여섯이 곤두질하면서 련거퍼 쓰러지자 나머지 녀석들은 그만 에구머니야 줄행랑을 놓고말았다.

    비겁한 놈들!

    량공대의 류자가 그자들 중 궁둥이를 얻어맞아 달아나지 못한 녀석 하나를 찾아내여 끌고왔다. 땅딸보녀석이였는데 이쪽에서 자기를 죽일가봐 와들와들 떨면서 련신 신음소리를 냈다.

   《네놈은 어느패냐?》

   《나…나는, 오…오련 삼패입니다. 자, 장관님!》

   《뭐라, 오련 삼패라!?》

    민호는 량미간을 끌어모았다. 여기 염왕산을 내놓고야 어디에 또 그렇게 군인편제가 되어있는 큰 류자무리가 있단말인가. 모를일이라 생각을 굴리다가 그는 언젠가 송화강북쪽에 있는 소백룡비도가 가목사(佳木斯)를 쳐들어온다니 그 자들의 침입을 막기위해 의란에서 파견되여왔던 관병들이 되려 토비만 못지 않은 짓을 해서 화제가 됐던 일이 떠올라 그자를 다시여겨봤다. 지금 자기 앞에 꿇어앉아 팥죽땀을 흘려가면서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하고있는 이 작자 역시 그따위 군인이 아닌가 싶었다.

   《내가 널 잠재우지 않을테니까 그 대신 묻는 말에 곰상히 대답이나하거라. 그렇게 할수있겠냐?》

    포로는 믿지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민호는 자기가 방금 한 말을 한번다시 번지고나서 캐물었다.

   《너희들은 어디서왔느냐?》

   《연수서왔습니다, 장관.》

   《연수서라…거기서 뭘해먹었냐?》

   《…》

   《네가 방금 오련 삼패라구했지?》

    포로는 대답못하고 엉엉 울었다.

   《이자식이 울긴 젠장! 솔직히 탄백해야 살려주지. 말해봐, 너희들은 거기 관병맞지.》

    포로는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건데 어떻게 된거냐. 여기룬 왜 왔어?》

   《영장이 우릴 시켜서…》

   《영장이 시켰다? 뭘 시켰단말이냐?》

   《훈련두 없이 매일 빈둥거리자니 갑갑해서…그래서 우린 견디지 못하겠다구 의견을 드렸습지요.》

   《그래서?》

   《갑갑하다지. 거야 내가 풀어줄 방법있지 합디다.》

   《그래서?》

   《영장은 우릴 군복벗고 이렇게 옷을 갈아입게 했습니다.》

   《옷은 왜 갈아입혔냐?》

   《우리두 나와서 료략질을 하라구요. 정말입니다. 그래서…그래서 우린 그러다가 상급에서 검사나 오면 어쩌는가구했습지요. 그랬더니 영장이…》

   《뭐라더냐?》

   《우릴 임무를 집행하러 내보냈노라구하겠답디다. 그러면서 우리더러 한달만 나가 토비질하다가 부대로 돌아오라했습니다. 매인당 천원 하나는 바치기로 하구.》

   《빌어먹을 관병략탈!》

    민호는 관병을 저주했다.

    

    사람의 감정을 쥐고 몹시 흔들어놓은 사건이였던만 시간이  차츰가고 새사건이 생겨나니 색이 바래졌다. 염왕산을 부산하게 만든 <서은괴사건>을 꼬리물고 생겨났던 <황보재사건>은 한달이 되자 새로 발생한 왕은경의 <야화요사건>에 자리를 냈다. 하여 여지껏 그 장본인으로 주시되여왔던 진사해는 남의 입끝에 올라 더 씹히지 않게 되였다.

    그는 근심이 풀리니 행실이 가벼워가고 있었다. 언젠가 향란이가 위로의 말을 해준다음부터일 것이다. 싸늘하게 얼어든 가슴을 그녀가 온기를 보내여 녹여주자 그는 엉뚱하게도 그것을 이성의 체온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게다가 드믄드믄 맞띄울때마다 보게되는 녀인의 부드러움과 흐트러지지 않는 도고한 자색이 점점 더 그의 눈뿌리를 빼고 있었다. 그럴때마다 희망이 거품같이 부풀어 그녀를 갖고푼 욕망이 불붙듯 하는 진사해였다. 하여 마침내 그는 저팔개모양으로 제 꼴도 보지 않는 속한이 되고말았다. 내가 언제면 저년을 품에 넣고 자볼가 하는 생각에만 달라붙다보니 상대가 때론 자기를 거들떠보지 않는데도 애절한 미련을 그냥 품은채 될수만있으면 가까이 접근하려애썼다. 가련할지경 짖꿎게.

    어리석음을 깨달으면 그때는 미런한 짓을 하지 않으리라.

    향란은 자기를 넘써볼 주제도 못되돼갖고 덤비는 그를 길가의 언 말똥보다도 못여겼다. 그러면서도 그런 내색을 전혀 표면에 나타내지 않았다. 그녀는 속으로만 웃었다. 이 못난 수캐야 너도 암내에는 견디지 못해 발정하겠지. 내가 곁을 좀만 줘도 바지에 오줌쌀 놈이로구나. 난 네놈이 경각심풀고 내흉한 본심을 드러나게 만들자는거다. 그러느라 너를 우선 내 치마자락에서 맴도는 얼치기로 만드는거야.

     이러다보니 어느덧 미묘한 삼각관계가 이루어졌다.

    진사해도 머저리는 아닌지라 민호와 향란의 관계를 조심스레 관찰하면서 자신의 언동을 십분 주의했다. 그는 향란의 앞에서는 민호를 평가하거나 헐뜯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되도록 민호와는 마찰도 피면하려했다.

    하지만 본심이야 어찌 개변하랴. 그러던 그가 어느날 조용한데서 민호를 대하고 보니 감정이 나서 끝내 정적을 깨뜨리면서 제 심태를 드러내고야말았다.

   《여봐 벼슬운이 열린 것 같은데 내가 축할 하지. 어떤가?… 그리구 아마두 만난김에 일깨워주겠어. <십악사구에 량설>이란 말 있잖아. 너무 그러지 말라구.》

  《건 또 무슨소린가?… 쇠통 남알아듣지두 못할 말만 하니 원!》    《그것두 못알아듣겠나. 남 리간질해서 쌈붙이지 말라는거야.》      네 녀석이 갑자기 이건 또 무슨소리냐? 민호는 자기 앞에서 웃음을 느긋이 흘리면서 위협적인 교기까지 부리는 그를 마주쏘아봤다. 인(忍)자의 마음심(心)위에는 칼(刃)이 있다. 민호는 불집이 났지만 참아야했다. 의문이 신경을 오리오리 끄당겼다. 대갈통을 갈라치울  녀석이 어떻게 냄새맡고 이럴가?… 조사하고 밝혀내야했다.

   민호는 저녁켠에 하진국이와 왕견을 불러놓고 이 일을 말했다. 그랬더니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이 일은 틀림없이 반장인 위진의 작간이리라 했다. 진사해가 전에 은괴와 사이가 가까웠던것 처럼 지금은 위진과 점점 더 가까워지고있다는거다.  

   민호는 그런줄을 미처몰랐다. 그래서 요즘도 위진이보고 진사해는 너희들 허저인의 원쑤란걸 잊지 말라, 너도 허저족이 아니냐, 그런자를 그냥 형제로 여겨줌은 제 민족에 대한 배반이라는것을 알라고 일깨워줬던거다. 네 충고가 옳다며 머리를 주억거리던 위진이 아닌가. 그러던 그가 변심했단말인가?

   민호는 사람이 틀려먹었다고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랬더니 이쪽 둘은 그가 저들의 말을 믿지못해 그러는줄로 알고 펄쩍했다.

  《하하 이거! 넌 아마 그 사람이 반장이래서 맹산군 호백구를 믿듯 되게는 믿는모양이구나. 이눔의데서는말이야 오늘 반강자 오늘먹구 오늘취사는 사람은 래일을 생각안하는거야. 누가 잘만 긁어주면 좋아서 따라웃어주지. 위진이가 바로 그런 사람으루 돼버렸어.》     왕견이 제법 식견넓은 사람모양으로 뚱겨주는것이였다. 

   민호는 그런소리를 듣고보니 내가 아닌게아니라 그자를 너무 경솔히 믿었구나 하는 후회가 썰물같이 가슴에 밀려들었다. 그자의 배신은 모멸감을 던져주면서 그를 격분케 만들었다.

   이대로는 참고 묵색일수 없어서 그는 곧 위진을 찾았다.

   위진은 남쪽산채에서 얻어온 강아지에다 딸랑방울을 금방달고나서 손을 씻고 있었다.

  《위반장 내 좀 봅시다.》

   대방의 차가운 낯색을 대하자 위진은 얼굴에 금시 피여오르던  웃음기를 거두면서 긴장해하였다.

  《나하구 할 말이 뭐여?》

  《저기 조용한데루 가서…》

   그를 밖으로 불러내다놓고 민호는 직방따지였다.

  《내가 위반장하구 한 말 진사해한테는 왜 번졌습니까?》

  《엉? 저, 저 그걸 나쁘게 생각말구. 저…》

   위진은 말을 꺾어먹었다.

   개같은 자식! 뒤가 켕기니 이 꼴이구나, 때려죽일놈의 새끼. 민호는 속에서 울화가 왈칵 치밀었다. 내가 널 그래도 속대 좀있을 인간이리라 여겼으니 어리석었구나. 자조끝에 그는 이전의 모양으로 또다시 증오가 괴여오르기 시작했다.

   상면에 난감한 빛을 피운 위진은 몸가짐도 떳떳치 못했다. 떳떳이 가꿀 수 없었다. 민호는 주대없이 발거리를 놓아 남을 함정에 밀어넣으려 든 그를 속으로 넌 과연 돼지보다 더 미런한 놈이구나 하고 욕하면서 추호도 양보하지 않으리라 별렀다.

  《나더러 그걸 나쁘게 생각말라구? 그래 내가 위반장이 놀아대는 꼴을 곱게보란말인가?》

   《이봐, 민호! 여기 염왕산에서야 우린 다 형제간이 아닌가. 그러니까…내 아무리 생각해봐두…서로간 등지고 지내는건말이야…그러믄 좋은거같지를 않아서. 그래서 난…정말이네…백장도 칼을 놓으면 그 자리에서 성불을 하는거야. 안그런가. 진사해 그 사람말이야 내보게는 자네말하는거같이 그렇게 나빠보이진 않아. 악한은 절대아니란말일세.》

  《걷어치워! 그런 말 어디서 나오는거요! 악한아니면 그래 그가 부처님이란말인가? 한심하지 그사이 마음이 이렇게 까지 앵돌아지다니 원!》

   민호는 돌연히 괴덕부리는 그가 뺨을 갈겨놓기싶도록 가증스러워 한마디만 내뱉고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더 말해서는 뭘 하랴. 위진은 이미 변심해 다른 하나의 독충으로 돼버린데야. 믿는 남에 곰이 핀다더니 아마 이런걸 두고 하는 말이겠지. 그들은 어느덧 개와 원숭이처럼 사이가 나빠지게 돼버렸다.

   

    그로부터 썩 지나 어느날. 전부터 위진이 놀아먹는 꼴을 밉게 보아온 왕견이 민호를 두둔하면서 곪아온 제 속을 많은 새다들 앞에다 텃쳐놓고야말았다. 

   《여 위진이! 우린 그래두 네가 반장이라구 존경해주는데 그게 뭐야. 자길 믿구 한 소릴 남께 고해바치다니 원. 그게 어디 사람이 새끼가 할 짓인가. 임마, 메뚜기두 낯짝있구 벼루기두 이마빡이 있는거야. 그런데 너는?… 량심은 떼여서 개를 줬느냐, 던져버렸냐?…피자똥에 미끌어 소똥에 코나 박고 뒤여질 놈!》

    이 자식이 왜 이래? 다짜고짜 퍼질러대는 욕설에 위진은 그만 억이 막혀 낯색이 하얗게 질렸다. 해도 그는 감히 맞다들지 못했다. 량쪽다 목숨잃을 위태로운 혈투는 말아야했다. 대방의 성미를 잘 알고있는 그는 자신을 달래며 참는 수밖에 없었다. 

    외손벽이 소리나랴. 한쪽에서 욕을 먹고도 잠잠하니 왕견도 제똥에 물러앉듯이 그저 그쯤하고 만다.

    묘동(猫冬)이 돌아왔다. 이것은 류자들이 산채를 떠나 겨울을 나는 휴가일인데 이때가 염왕산의 한량(閑良)들로 놓고보면 제일 자유를 부리며 놀아보는 즐거운 기회이기도했다. 그래서 그들 모두가 묘동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린거다.

    민호는 이 기간에 진사해를 없애치우고 조선으로 내빼는게 어떨가 궁리하다가 거둬치웠다. 그런다면 그 하나만을 처리 할 뿐 가철군은 살려주게 되며 잃어진 안해는 더 찾기 어려운 것이다. 내가 지금 가버릴수 없다. 네놈하구는 소금이 쉴때까지 해볼테다. 민호는 장구지계를 세우고 계속 지긋이 눌러있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오동하를 훑고나서 변비에 있는 그 궁상스러운 어래무에 갔다 온 일을 다시상기했다. 사위가 홀연히 나타나자 일희일경 어쩔줄을 몰라하던 허저인장모, 여지껏 토비노릇하다가 온다니 놀래여 낯이 대리석같이 새하얘지던 아낙네들, 눈을 흡뜨면서 사냥총을 찾아쥐던 처남 나쟈… 그때 차라리 그네들한테 따귀를 한 대 얻어맞던지 아니면 한바탕 된 욕이라도 먹었더면 좀 후련하련만. 버리지 못하는 죄책감이 늘 그를 시달리고 있었다.

    그는 올 묘동때는 한 번 품놓고 찾아보리라 작심했다.

   《올겨울은 크게 행사없으니 여러 형제들은 많이 산채밖에서 지내도록합세. 집이 있는 이는 제 집으로 가고 제 집이 없는 사람은 친척을 찾아가구 친척도 없는 사람은 기생을 찾아가던지 유곽을 찾아가던지 아니면 벌이를 더 하던지 맘대로들하게. 이왕년과 같이 사월보름이 귀일이니 명심들을 하게.》

    위삼포는 이같이 묘동을 선포하고나서 주의사항 몇가지를 강조한 후 산채를 지킬 류자 60여명만 남기고 그외는 다 내보냈다.

    올겨울은 가마를 마스느라 죽음을 무릅쓰고 위태로운 싸움을 하지 않게 된 류자들은 저마다 불룩한 돈주머니를 차고 산채를 나간다. 처자가 있는 사람은 집으로 곧추가지만 집도 처자도 없는 독신들은 거의가 자기가 보아둔 계집을 찾아간다. 독신류자가 좋아하는 그런 녀인들을 접기녀(接技女)라 했다. 뜻인즉 한때를 끼고 살아보는 계집이라는거다. 그런 녀인들 중에는 제 남편이 있는 것이 적잖았는데 그 남편이라는 것도 집을 나가 뜬벌이를 하거나 풍각쟁이노릇을 하거나 아니면 비라리를 하면서 녀편네가 그사이 다른 사내와 붙어지내는것쯤은 대수로와하지 않았다. 지어 묘동기간에  돈벌이가 된다고 여겨 일부러 제 녀편네를 토비와 붙이는 자들도 적잖았다. 맡아놓은 접기녀도 없는 류자들은 우리야 알짜떠돌이가 아니냐. 해태자(주)를 보던지 라방토우(주)를 살던지 해보자며 자유만세를 불렀다. 묘동기간에 야회(주)를 꾸리여 목돈을 쥐거나 번 돈을 가랑잎날리듯 싹 다 날려버리는 자도 있었다. 그런 사람을 방태자라 한다. 

   왕견이 민호에게 물어보는것이였다. 

  《동생은 또 제 각시찾누라 팔방돌이해얄테지?》

  《그래야죠. 건데 원쑤갚으려다 새원쑤 하나 더 생긴건 어쩌오.》    《그게 뭐 대순가. 메뚜기 류월한철뿐인걸 몰라.》

   왕견이 이러면서 눈웃음치는데 그 웃음에는 어느덧 소름끼치게 하는 음험한 살기가 번득이고 있었다.

   이번에는 민호가 그한테 물어봤다.

  《왕형은 올 묘동에 뭘하려우. 또 접기녈차고 놀테요?》

  《나 올 묘동에는 그럴생각이 없어.》

   그의 말끝을 하진국이 이었다.

  《왕형은 나하구 목재판으루나 류송장으루 살아볼 생각이요. 위진이 그 자식 돈 더 벌어보자구 그런데루 찾아간다나.》

   오 그런가, 인제보니 네 녀석들은 속궁리가 달랐구나. 민호는 야수가 사냥물을 뒤쫒고있음을 감촉했다.

   묘동기일이 음력 4월중순까지니 그때면 류송철이기도해서 벌목일이 끝나면 다시 류송장을 찾아가는 류자가 적잖았다.     

   장백산에는 홍송, 백송, 들메 등 여러종의 귀중한 목재들이 많았다. 하기에 그곳은 겨울이 되면 벌목군들이 구름같이 모여들군하는데 염왕산이나 다른 패의 류자들이 겨울 한철을 보내는 좋은 은신처이기도했다. 떼돈을 바라는 류자들은 다가 로동조합에는 들지 않을 것을 조건으로 하는 고용계약을 맺고 산에서 지낸다. 

   운수도구가 그닥잖고 교통이 발달하지 못하다보니 베어낸 목재는 거의가 압록강과 두만강, 혼돈강 등 크고 작은 물길에 의하여 각지로 운송되는데 봄에 뗏목문이 열릴 때면 제일분망했다.

   듣는말에 의하면 림강(臨江)으로부터 안동(安東)에 이르는 구간에 험구가 무려 9881곳이나 되여 뗏목이 그런 험구를 지날 때면 귀신이 늘 사람의 목숨을 빼앗각질한다고 한다. 그런다고 물목을 열어 뗏목을 놓을 때면 본영의 지배인은 뗏목장들에게 돼지를 잡아 제까지 지내면서 한 패 한 패씩 보내는데 그 장면이야말로 짜장 장엄한 생리사별(生離死別)의 시각을 방불케 하는것이다.

    류송군들은 뗏목이 물길을 따라내려가다가 험구인 물목에 이르러 뗏목이 암초에 걸리는 것을 제일무서워한다. 그러기만 하면 물목이 막히는 통에 뒷따르던 떼목이 앞의 뗏목을 올라타고 앉아 그만 산더미처럼 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문 그런 곳만 맡아보는 자가 따로 생겨난건데 그것을 주관하는 자 대부분이 꺾지손이 센 토비출신의 류자였다. 따라서 그런 장애를 전문풀어주는 사람가운데도 또 더 고급적인 기술자가 있기마련인데 그런 사람을 《줄밥먹이》라 불렀다. 한데《줄밥먹이》는 물론 토비출신의 류자가 독점하는 막벌이벼슬자리기도했다.

    물길을 따라서 내려오던 뗏목이 암초에 걸리게 되면 험구를 지키는 주인이 인차 《줄밥먹이》를 부른다. 그래서 량자간에 협약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4백원이다. 누가 해보겠는가?》

  《…》

  《5백원!》

  《…》

  《6백원!》

  《내가 할테요.》

   대개 이런 식으로 나설 사람이 정해지는거다.

   기실 덧쌓인 그 많은 통나무가운데서 걸린 놈은 한두가지다. 하니까 그것만 뚜장질해 벗겨놓으면 문제는 대개 해결이 나는거다. 그런데 작업상황만은 상당히 위험해서 자칫하면 걸린데를 풀어놓았지만 제 몸을 미처 피하지 못해 무너져 내리는 뗏목에 깔리거나 치이거나 찟겨져 눈깜짝새에 분신쇄골이 되고마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하길래 이 일을 혼자서는 절대못하는거다.

   바로 이같이 위험한 작업을 담대한 왕견이 맡아나섰다. 그는 누구보다 경험이 많았던것이다.

   그는 뗏돈을 나누어 갖기로 하고 함께 간 염왕산류자들로 조를 무었다. 그 속에 반장 위진이도 끼이였다.

   류송은 압록강이나 두만강, 혼돈강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였다.

   송화강으로도 하는데 이듬해 봄에 이 강의 상류에 있는 한 물목에 뗏목이 걸려 층집같이 높이 쌓여 그것을 풀어줄 사람을 찾고있다는 소식이 날아왔다. 

   왕견은 그 소식을 접하자마자 곧 선손을 썼다.

   자기 패를 데리고 거기로 간 그는 정황조사가 끝나자 곧 일에 달라붙었다. 왕견은 다른사람들 보고 이제 나무가 무너져내리거든 여차여차하게 행동하라 시키고나서 자기는 따로 하진국이와 위진을 데리고 나섰다.

   그들 셋은 다가 손에다 길이가 3메터가량되는, 끝이 창과 갈고리로 만들어진 장대를 들었다.

   자뜩 불어오른 물이 뗏목사이로 폭포같이 쏟아져내리고 있었다.

   뗏목밑에 바투다가간 왕견은 밑부분에 깔려있는 통나무들을 하나하나 자세히 검사했다. 그러다 그는 마침내 물밑에 삐죽히 올리민 암초에 걸려있는 놈을 찾아내고야말았다.

  《어이 위반장, 여기루 오라구. 이거 나혼자는 될거같잖아.》

   저쪽에서 걸린 놈을 찾느라 여념이 없던 위진은 자기를 부르는지라 그리로 갔다.

   왕견은 그와 함께 쇠장대로 든장질해 마침내 걸린 놈을 풀었다.

   물목이 갑작스레 터져 폭포마냔 쏟아지기 시작했다.

   왕견은 거기를 뛸쳐나오느라 장대기를 돌리는 순간 위진이 딛고 선 통나무를 살짝 건드려놓았다.

   위진은 통나무에서 미끌어 떨어져 물에 빠지고말았다. 그는 나오려고 허우적거리다가 통나무를 끌어안았다. 하지만 이때는 와르르 무너져내리는 무수한 통나무들이 그를 깔아놓아 그만 형체도 없게 만들어놓고말았다.

   누가알랴, 그것은 정상적인 사고로밖에 보이지 않은데야.

   위진은 이렇게 눈깜짝새에 아까운 목숨을 잃고말았다.

   

   묘동이 끝나서 나갔던 류자들이 산채에 다시모였다.

   민호도 돌아왔다. 한데 그는 이번에도 헛수고만했다. 넓디넓은 이 관동땅에서 잃어진 안해를 찾는다는건 그야말로 북데기에다 떨군 바늘을 찾는 격이였다.

   그와 왕견 그리고 하진국 셋은 한자리에서 조용히 다시만났다.

  《그 녀석을 빼버렸다니 속시원하구만!》

   민호가 하는 말에

  《앓던 이 빼버린것만큼이나 시원할거야. 그렇지.》

   하진국이 동을 달았다.

  《한녀석 더 있잖아. 그녀석마저 빼버려야 시원할건데…》

  《진사해말이지. 그녀석두 빼버릴 날이 있을거다.》

   왕견은 이러면서 속담에도 구두쟁이 셋이 모이면 제갈량을 당한다고했잖안냐했다.

   셋은 웃었다. 그리고는 음험하고 유쾌한 살인을 상상해보았다.  

  《보복》이 곧 시작되였다. 이것은 매번 묘동이 끝나면 련이어서 뒤따르는, 산채에서는 아예 명문화되다싶히 빼놓지 않는 중요한 행사이기도했다. 어떤 류자들은 묘동기간에 경찰에 잡히우고마는데 은어로는 그것을 《발이 떨어졌다》고 한다. 그렇게 된 자를 보면 거개가 취중실언을 한 탓이였다.

   관방에서 토비를 대처하는 수단역시 간단치 않았다. 어떤 류자들은 경찰에 잡히워갖고는 그들의 호된 고문을 당해내지 못해 끝내 내부의 비밀을 루설하거나 제 동료를 팔아먹고만다. 그래서 목이 날아나는 자가 한둘이 아니였다.

그런자들을 상대로 해서 벌리는 류자들의《보복》은 보통 한달내

............................................................................................................................... 

  * 야화요ㅡ강간.     * 상탁ㅡ행동에 배합함.  * 깃대를 꽂다ㅡ마사버릴 기와가마를 정탐하여 결정하다.

   * 압련자ㅡ말을 놓아 먹이다.  * 뿌려주다ㅡ털리우다.  * 보보만ㅡ너의 성을 대라.  * 랑비ㅡ떨돌이 류자.

   * 화방자ㅡ홍표, 꽃인질, 무른 인질이라고도 하는데 녀성인질을 가리킨다.  * 첨자만ㅡ정씨(丁氏) 

   * 보보영두ㅡ두령이 누군지 대라.  * 날쏘시개ㅡ탄알.  * 오복자ㅡ똥집.  * 범계ㅡ토비들의 관할범위.

   * 래래봉ㅡ어디서 왔느냐.    * 묘동ㅡ류자가 산채밖을 나가서 겨울을 지내는 일.  * 해태자ㅡ기생. 갈보.

   * 라방토우ㅡ남편있는 녀인과 한집에서 사는 노릇.  * 접기녀ㅡ한시기 얼마간 끼고 살아보는 계집.

   * 야회ㅡ본래는 밤에 하는 모임. 특히는 서양풍의 사교모임인데 여기서는 도박판으로 쓰였음. 

에 끝내는데 방법은 여러 가지다. 두령은 우선 수하의 새자들을 점명하여 오지 않은 자가 누군가를 알아보고 그가 오지 않은 리유를 조사한다. 그래서 묘동기간에 그가 경찰에 붙잡혔다면 어떻게 되어 붙잡혔는가? 붙잡히운게 제 잘못인가 아니면 다른 누구가 물어먹어서인가? 네가 잡혀서는 누구를 물어먹었는가?…그래서 제 형제를 해친자가 나지면 그 어떠한 방법을 써서든 붙잡아 목을 잘라 원쑤를 갚아주었고 내부의 비밀을 조금이라도 루설했거나 변절한 자가 있어도 역시 추호도 양보없었다.

   산채로 돌아왔으면 만사필인것이 아니였다. 묘동기간에 산밖을 나가서 의리를 버리고 배신하고서도 자기의 행실을 감추자고드는 자가 있는 것이다. 하길래 두령들은 묘동후 《보복》이 끝났다하더라도 갖은 수단과 방법으로 계속해서 개개인의 뒷조사를 하고 마무리짓는 것이다. 대오를 정리하는 이 일은 이같이 신비하면서 무시무시한 음영을 던져주면서 산채의 명줄을 지켜나갔다.

    왕견이나 하진국이나 민호나 다 이러한 환경속에서 무사히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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