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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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관동의 밤>> 제1부(11)
2015년 02월 03일 10시 52분  조회:2670  추천:0  작성자: 김송죽
 

                           11

  

 

 

 

 

    민호는 접침을 만들려고 피나무토막을 얻어다 대패로 밀었다. 왕견이 어디에 나갔다 돌아와갖고 보더니 커다란 눈을 슴벅거리면서 바스음을 뽑았다.

   《어이구! 이 동생은 또 무슨 도깨비깎개질이야.》    

   《도깨비깎개질이라니. 접침만드오.》

   《접침이라. 너도 그런 손재간있었는가?》

   《사람을 알기는…》

   《어 그래. 내 잘못했다. 제꺽 절할가.》

    아닌게아니라 왕견은 제꺽 엎드려 떡판같은 궁둥이를 하늘로 올렸다. 여럿은 그 모양을 보고 우수워죽겠다고 배를 끌어안았다.

    민호는 손에 쥔 대패로 그의 엉덩짝을 짝 때렸다.

   《왜 이 추태요?》

   《이쯤하면 무슨 뜻인지 모르겠냐?》

   《오 하하하!… 알만하오. 내 왕형두 하나 만들어주지.》

    허리펴고 일어난 왕견은 기분이 사뭇좋와갖고 가래짝같은 손으로 민호의 어깨를 다독이였다.

   《그럼 그렇지! 난 동생이 눈치빨라 좋아.》

   《나역시 왕형은 통쾌해서 좋소.》

    민호도 기분좋게 그의 말을 받았다. 그리고는 실답긴하나 때로는 우둔스레 노는 그를 한 번 슬까스르고싶은 기분에 지나간 검불을 들췄다.

   《왕형! 그런데 듣자니까 고약한 짓 잘했더구만. 남의 참외밭에다는 왜 심술을 부렸더랬소?》

   《내가? 하하하…그런일 있지! 있었어! 그래두 난 아주 영 나쁜놈은 아니라니까.》

   《나쁜놈아니라.... 》

   《그래 그렇잖구. 정말이야. 거짓말이면 벼락맞겠어. 언젠가는 내가 쟁반밟으러 나갔다가.... 사흘굶은 호랑이 쥐새끼를 가릴가…큰기와가마아니래두 하날 고르자구했지… 그땐 염왕산도 좀 째째하게 놀았어. 그래서.... 》

   《그랬겠지. 내내 호걸답게만 놀았을가. 그래서?》

   《그런데말이야. 기와가마를 하나 찾아내여 안으루 들어가자구보니까 마당에 관채가 놓여있데. 마침 그 집은 상중이 아니겠나. 상주가 애고대고 어찌두 섧게 우는지 옆에서두 다 눈물이 날지경이더란말이여. 상가에 돌던지는 놈은 망종밖에 없어. 망종이래야 그따위짓을 하지. 그래 내가 어쨌겠나. <적선지가에 필유여경이라>잖아 그래내가 에라 이럴 때나 맘을 후히 써보자 이러구는 아예 내돈 주머닐 다 털어주고 그만 돌아와버렸던거네.》

   《그게 정말입니까. 정녕 그렇게 했으면야 왕형두 목석은 아였던 걸! 속담에 <백정이 칼을 놓으면 성불을 한다>던데 이제보니 왕형은 불상이 될 감이야.》

   《그렇지만 난 지금두 아주 영 불상님으루 되고푼 맘은 없어. 건 왠가구?…생각해 봐. 그럴려면 난 이놈이 노릇은 아예 집어치워야할게 아닌가. 안그래? 사정은 바로 이렇단말이야. 》

    그리고는 하하 웃었다. 솔직한 내심발로였다. 왕견은 잠시 말을 끊고는 대방의 심기를 졈쳐보는 것 같더니 입을 다시열었다.  

   《내 옛말 하나 해줄가.》

   《해보우 어디 들을만한겐지.》

   《들을만해. 정말이야. 진짜루…내한테 친구하나 있었지. 지주집에서 머슴질하는…면양보다 더 어질구 순한 애였어. 거기다가 또 부지런하기란…그런 애가 지독한 겨울철이라 그만 된감기에 걸려 눕게됐지. 일어나지두못할 지경으루. 그런데두나 심보가 악착하기 야차보다 더한 지주녀석은 약써줄 념은 안하구 되려 걔가 꾀병한다구 욕하면서 일어나라구 잡아끌지를 않겠나. 마침 내가 그 애를 찾아갔다가 그러는 꼴을 직접 목격했더랬어. 안봤으면 몰라두 어디 참을재간이 있어야지…그래 난 <야 너도 그래 사람의 새끼냐. 인피를 썻으니 사람이지 인제보니 짐승보다두 못한 놈이구나.> 하구 욕했어. 그러니까 그놈이 글쎄 도끼눈을 해갖구 나를 찍어보잖겠나. 그러더니만 <뭐, 뭐라? 이제 말 다시해봐. 넌 대체 어디서 굴러먹은 거지놈인데 이러냐, 교양도 못받은 놈.>하구는 주먹질하더란말이다. 날 쫓아내느라구. 나도 가만있지를 않았어. 마침 거기 방구석에 울라신방망이 하나 있는게 보이길래 옛다 맞아봐라 하구 난 그걸루서 그 녀석의 머리통을 까서 묵사발이 되게 만들어놓고말았지. 그리구나서…지금은 보다싶히 이 노릇을 하게된거야.》

    모두 사실이라면서 왕견은 그래 별호가 울라신방망이됐다했다. 그러고 보면 왕견이 비록 도툴없고 모지락스레 생기긴했어도 인간성과 의협심은 있는 인간이였다.

    민호는 머리를 주억거리고나서 입을 열었다.

   《왕형은 과연 협객답소!》

   《아니야. 왕견이 그러기는 했어두 아직 협객축에는 못들어.》

    다른 목소리가 끼여들어 남의 말을 분질러놓았다. 민호가 넌 대체 누군가고 고개돌려보니 다른 사람이 아니라 주먹시합에 패하기만하고도 아직 불복하는 팽덕이였다.

   그는 짐짓 정색한 상을 해갖고 민호의 평을 시정했다.

  《여기 관동땅에서 진짜 협객을 꼽자면야 그래두 둘밖에 없지. 하나는 장작림이구 하나는 우리네 두령 위삼포야.》

   개똥밭에 인물(人物)난다더니 신통한 일도 있었다. 3반의 새자들은 다가 팽덕의 말이 옳다면서 전해에 장작림(張作霖)이 중앙과 도전하여 동북3성의 련성자치(聯省自治)를 완성한 일을 옛날 영정(瀛政)이 6국을 멸하고 진나라를 세운 공덕에 견주면서 영웅같이 떠받들었고 위삼포는 걸출한 협객으로 칭송하면서 자기들의 욕념을 노래로 엮어댔다.

   《관동 삼성 패왕은 누구?》

   《장작림일세.》

   《장잦림이 누구냐?》

   《그도 본래는 록림객이라네.》

   《산밖에 장작림있고》

   《산채에 위삼포있네.》

   《농사를 지으려거든 벌방으로 가고》

   《벼슬을 하려거든 산으로 와야지.》

   《백년을 다 살아봤자 삼만륙천오백일》

   《쓰거운 인생 누가 바랄가.》

   《달콤한 인생 누가 싫을가.》

   《현하주연 접배거상이요.》

   《대원성취 시산혈해라네.》

    민호는 부전조개 아귀맞듯 이네들이 엮어대는 구술에 탄복하기도 놀래기도했다.

    글을 읽었다는 민호도 모르는 현가주연 접배거상(弦歌酒宴 接杯擧觴)이란 대체 무슨뜻일가? 이건《천자문》에 있는 구절인데 뜻인즉 거문고타고 노래하며 주연을 벌리고 잔과 잔이 쉴새없이 오간다는 것이니 인생향락을 말하는것이요 그 아래의 구절은 《천자문》의 것이 아니였다. 뜻인즉 바라는 바를 이루자면 시체가 산이 되게 하고 피가 바다되게 해야한다는것이다. 한즉 이는 살인을 도락으로 여기는 잔인한 토비들의 철학을 적라라하게 들어랜 것으로 된다. 개의 입에서 상아를 꺼낼 수 없고 남색물감통에서 흰천을 꺼낼수는 없듯 이자들의 배속에 인자가 있다면 과연 성불(成佛)할 것이다. 생각하면 비록 류자의 준칙으로 세운 10계률로 인간의 자비를 강조하고 억강부약(抑强扶弱), 살부제빈(殺富濟貧)의 구호와 기발을 내들긴했지만. 어느덧 이러한 무서운 도적들과 휴척을 같이하는 신세로 돼버린 것이 스스로도 과연 끔찍스러운일이기도했다.

    

    어느날 대머리 포토우가 3반산채로 와갖고 찾길래 민호는 잡념을 집어치우고 그의 앞에 나섰다.

   《분자를 가져오게.》

    민호는 명령대로 바당에 일렬로 세워놓은 여러자루의 총중에서 자기의 것을 가져다 그의 앞에 내놓았다.

    포토우는 유저를 재껴보고 총신도 검사하더니 물었다.

   《발급한 이백발 퇀한은 다 쏴봤는가?》

   《아니요.》

   《몇발남았나?》

   《두발밖에 안쐇습니다.》

   《뭐라구?》

   《한발은 총신이 곧은가구 쏴보고 한발은 묘준이 잘되는갈 보느라구 쏴봤습니다.》

   《아니 그러니까 여직 실탄련습은 안해봤다는건가?》

   《탄알을 아끼느라 그랬습니다, 셋째형님!》

   《아낄걸 아껴야지. 날 따라와. 탄알 한배짐 재워갖구.》

    포토우는 자기의 명을 함부로 거역하는 이 고집통의 조선젊은이를 한번 단단히 가르칠잡도리였다.

    그와 한반의 류자들은 거개가 민호가 실탄련습을 하지 않은일로해서 욕을 볼것같아 근심해서 나섰고 다른반의 류자들은 그러잖아 오락거리없어 무척이나 심심하던차라 볼만한 구경거리가 생겼다며 좋와나섰다. 

    그들은 산채의 서북켠으로 갔다. 이전에 산채를 지으면서 주추돌과 바닥을 펴느라 돌을 캐내여서 가파른 벼랑이 된 거기는 이네들의 사격장이였다. 류자들은 평시도 심심풀이로 여기에 오군한다. 하여 여기서는 총소리가 자주난다. 그런데 이 젊은 조선류자는 여기와서 하라는 실탄련습도 안했다니 말이 되는가.

    남이 망신하는 꼴을 재미로 구경하고펐던 동반의 새자 왕은경이 어느새 오그라진 양푼을 주어갖고와서 까불댔다.

   《셋째형님, 헤헤헤…이걸 맞혀보라구하십시오.》

    포토우가 시켰다.

   《저기 저 가지부러진 나무가 보이지. 게다가 걸어놔라!》

   《예, 그럽죠.》

    왕은경은 주인손에서 훈련을 잘받은 개같이 쫑그르르 달려가더니 오그라진 양푼을 걸어놓았다. 기껏해야 50여보의 거리였다.

    민호는 장탄한 총을 들고 대머리에게 물었다.

   《어떻게 쏘랍니까?》

   《맘대루해. 앉든 서든.》

    민호는 선자세로 총을 갈겼다.

    오그라진 양푼이 탄알에 맞아 구멍나면서 날아나버렸다.

   《맞혔구나!》

    류자들은 탄성을 올리기도 떠들기도했다.

   《다시쏴봐.》

   《과녁이 너무크다.》

   《소경이래두 맞힐 수 있는 거리야.》

   《저기 저 거리에다가…》

    이번에는 민호가 면목모르는, 다른 반의 새자녀석이 달려나가더니 그 오그라진 양푼을 찾아쥐고서 꼴보기싫게 놀았다. 그 녀석은 포토우가 시키는대로 보(步)를 재면서 근 100여메터를 가더니 손에것을 한 나무가장귀에 끼워놓고는 다 됐다고 손벽쳤다. 사격거리가 곱으로 멀어졌다. 모두의 눈들이 민호를 보고있는데 네가 저걸 맞힐만하냐고 묻고들 있었다.

    포토우가 가늠하는 눈매로 민호를 한 번 훝고는 입을 열었다.     《어때 자신이 있는가?》

    왕견이 바싹 다가와 민호의 옆꾸리를 쿡 찔러놓곤 귀속말로 충고했다.

   《자신없거든 쏘지말어. 괜히 저녁굼을라.》

    사격검사때 헛대답을 하면 솔직하지 못한 벌로 한끼 밥을 먹지 못한다. 이건 포토우가 따로 정해놓은 법이였다.

    민호는 점심을 배부르게 먹었으니 그깟 저녁 한끼쯤 건너는건 별문제아닌데 총을 쏴보지도 못하고 기권하면 그때는 남의 웃음가마리로 되고마는지라 쏴보지요했다. 류자들은 모두 눈길을 날려 그를 보았다. 더러는 관심하는 마음에 초조한 불안이 담긴 얼굴이였고 더러는 꼴이 어떻게 되는지 하회를 보자는 간지러운 웃음이 그믈그믈 피는 얼굴이였으며 더러는 비웃음이 발린 차가운 얼굴이기도했다. 네가 그걸 맞히겠다구 하면서 콧방구를 힝 뀌는 자도 있었다. 사태가 이러니 명중만 못하면 어쨌든 불명예스러울것이라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긴장한 순간이였다.

    포토우는 이번에도 사격자세는 제마음대로 택하라했다.

    자신이 있으면 용기는 나는거다. 민호는 오른쪽무릎을 꿇고 왼쪽무릎은 세워 반은 앉은자세를 취한채 두손에 총을 받쳐들었다. 그리고는 안정하면서 혼신의 시력을 다 모아 묘준을 했다가 방아쇠를 당겨 질끈 갈겼다.

   《땅! 》

    총소리 울림과 함께 이번에도 오그라진 양푼이 날아났다.

   《명중이다!》

   《엉!?…》

   《인제보니 영 생뚜기는 아니였구나!》

    류자들은 아까보다 탄성을 더 올리면서 떠들었다.

    포토우가 만면에 만족스러운 웃음을 가득담은채 민호의 어깨를 다독이였다.

   《됐어! 됐어!… 건데 그런 사격술은 어디서 배운건가?》

   《따로 배운적은 없습니다만 총은 더러 쏴봤지요. 전 여기로 오기전에 한동안 사냥을 다녔거든요》

   《오, 그래? 그럼 그렇겠지!》

    포토우는 머리를 끄덕이였다.

    

    민호는 사격술은 과시했지만 자신의 독립군신분은 감추었다.

    한데 이때에 하나의 유감이 후련해야 할 가슴에 맺혀지고 있었다. 포토우의 검렬을 무사히 통과해서 웃름거리는 면했으나 한반에서 형님동생하며 지내던 왕은경이 눈꼴사납게도 놀아댄 그것이였다. 그 자식 안팍이 그렇게 다른놈이였던가. 생각할수록 괘씸했다. 버릇을 떼야지. 당장 한매 쥐여박아주고싶지만 그래놓으면 로골적인 보복으로 되길래 민호는 그러지 않고 생각을 굴린 끝에 우락부락하는 왕견을 든장질했다.

   《왕형은 인제보니 거 동생을 잘뒀데.》

    비꼬는지라 왕견은 눈살을 찌프리면서 머리를 절레절레 가로저어버렸다.

   《은경이말인가. 걘 내 친동생아니구 사촌동생이야.》

   《사촌이래두 그렇지. 근본이야 한종자아니요. 그게뭐요. 사람의 새끼같잖게 홀랑거리구…아무리봐두 그놈의 종자는 새씹으루 빠진거같애.》

   《너 뭐라니?》

    왕견은 단통 도끼눈을 부라렸다.

    그러건말건 민호는 쓰게 웃고나서 우엉을 깠다.

   《난 은경이를 놓구말했지 왕형을 욕하는건 아니였어.》

   《그래두 그렇지. 종자, 종자, 말끝마다 종자니 결국은 그게 나까지 겯들어 욕하는게 아니구 뭐야.》

   《참 그렇게 되는가.》

   《제길할, 저놈의 새끼같아나 내가.》

    사촌동생때문에 자기까지 애매하게 된욕을 얻어먹었다고 여긴 왕견은 골이 대단히 나는지라 선불맞은 멧돼지같이 화닥닥 자리차고일어났다. 그러더니 저쪽으로 씽 가서 한창 주사위놀이에 정신팔고있는 제 사촌동생의 뒷덜미를 잡아일으켜 다짜고짜 뺨때기를 불이 번쩍나게 갈겼다.

   《너 이자식, 아까 그게 대체 무슨짓이냐. 너 아니믄 양푼주어갈 놈 없더냐. 왜 그리두 못나게 납닥쳤느냐, 이자식! 너땜에 애매한 나까지 욕먹는다 욕먹어!》

    왕은경은 자기가 사격장에서 잘못놀아댄게 빤한지라 매를 맞고도 찍소리못했다.

   《이자식, 너 다시 한 번 그렇게 놀아봐라. 아예 부해(물)도 못먹게 검질해치우고말겠다.》

    왕견은 이같이 제 사촌동생을 족쳐놓고는 끓어난 열물을 식히느라 밖으로 씽 나가버렸다.

    하진국이 처음부터 말없이 보고만있다가 뒤를 따라나갔다.

   《쩌, 쩌, 왕형은 그저…성미가 너무불같아 탈이란데두. 말루해두될걸갖구서…하기는 은경이가 매맞아싸지만두. 내 말이 틀리오.》

    속으로 쾌재를 불렀지만 그는 왕견을 나무리는척했다.

    왕견은 자기와도 사이가 괜찮은 하진국앞에서 그 어떠한 사정에든 앞으로는 민호를 감정상하게 말아야한다, 자기는 그를 의연히 믿고 좋와한다고 말했다. 하진국의 마음과 같았다.

    

    염왕산류자들가운데 민호의 이번 사격표현으로 인하여 특별히 전률을 느낀 사람이 하나 있었으니 그는 다른사람이 아니라 바로 진사해였다.

   《그 자식이 포수질까지했다지…틀림없어!》

    그는 입에 물었던 담배까지 뱉어버리며 중얼댔다.

    가철군은 전부터 민호의 얼굴이 기억난다고했지만 진사해는 웬 영문인지 전혀 기억나주지를 않았다. 민호가 잃어버린 제 허저인안해를 찾아헤매다가 여기로 들어 온 사람이란 것은 그가 여기에 괘주를 하던날 황보재한테들어서 알게된거고 얼굴은 후에야 똑똑히 본 것이다. 사양실앞에서 마찰이 생겨 서로 권총을 빼들었던 그때 진사해는 이 녀석이 혹시 가철군이와 내한테 각시를 랍치당한 그 조선독립군청년이아닐가 하는 생각이 불쑥났었다. 그러니 속이 편안할 리가 있는가. 들어보니 성명은 완전히 다르지만.

    진사해는 여러모로 생각을 굴려 본 끝에 끝내 그의 신원을 똑똑히 알아보리라 맘먹고 산채를 나갔다온거다.

    진사해는 전부터 체포령이 내린 토비라 지금도 눈에 불을 켜고찾을것만같은 정부군에 붙잡히울가봐 겁나서 동강이나 무원일대에다는 발을 감히 들여놓지도못하고 여기에 오기전에 내내 숨어지냈던 송화강중의 한 섬인 오동하에 가보았다. 그런데 그사이 거기에 있어야 할 가철군이도 츄얼이도 어디로 가버렸는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진사해는 헛걸음만팔고 되돌아온거다.

    전에 따지고 물었을 때 츄월이는 제 남편은 성이 김씨고 이름은 해룡이라 알려주었다. 그래서 진사해는 지금까지도 그것이 그녀남편의 진짜이름인줄로만알고 있었다. 깜냥있는 계집인데 그래 제 남편이 잘못될가봐 살짝 거짓말을 할수도있는게 아닌가. 내가 왜서 그쯤한것도 미처생각못하고 있었던가. 진사해는 이제와서야 소견머리짧다못해 어리석을 지경 불민했던 자신의 지난날을 돌이켜보고 자조하면서 가슴답답하게 올리미는 쓰거운 열물을 삼켰다. 김해룡이라건 정민호라건 성명이야 어떻던간에 이제와서는 그것이 한사람인것만은 틀림없다고 그는 단정했다.

   《틀림없어. 저녀석이 동강아문의 기병대에 들어 우릴 넋살통먹인거야… 저런놈들 손에 녹아나지만않았어두 내가 이렇게 까지 비루먹은 개모양으루는 되지 않았을건데.》

    진사해는 가슴떨리는 울분에 이를 갈았다. 저 조선놈이 내 뒤를 밟아 여기까지 들어온건 아니지만 우연일수있다. 이건 원쑤가 면바로 외나무다리에서 만난격이야. 그리구 이것이 사실이면 저녀석은 언녕 나를 알아보고 속에 칼을 품어왔을것이다. 꼭 그럴거다. 하니까 어쩐다?… 원쑤가 한배에 올랐으니 위험천만한 일. 내가 겨우살려낸 명을 여기서 저놈의 손에 잃지나않겠는지… 액운이란건 때가 없이 떨어지는거니까. 어쩐다?…에잇, 피똥이나 싸다가 늘러질 등신아. 네가 어느때부터 이런 겁쟁이루는된거냐, 창피스레. 진사해는 자신의 불길한 련상을 집어던졌다.

    민호의 신원을 내가 똑똑히 알아보고 대처해야겠다. 그런데 그걸 누구하고 알아본다?…그렇지! 마치 질식해 숨넘어간 사람모양으로 어둡게 죽어가던 진사해의 얼굴빛이 확 밝아졌다. 민호와 같이 있는 류자반장인 그 허저인 위진이 떠올랐던거다. 고태자에서 제 혈족 40여명이나 참살당했건만 자기를 따게 보지 않는, 정확히 말해 민족복수도 모르고 무감각해진 그런 인간쯤이야 얼마든 주물러 제켠에다 세울재간이 있었다.

    죄를 지은 자 자유롭지 못함은 두려움이 앞서기때문. 저려나는 발은 자기대신 걸어줄만한 노복을 찾는것이다. 진사해는 언녕부터 자기를 따르면서 종처럼 말을 곰상곰상 들어줄만한 새자를 하나 구하려했으나 그일이 아직까지 여의치 않았다. 조심해야했다. 자칫의심스레 보여 위삼포이 눈에 날수있는 것이다. 하여 그는 염왕산에 들어와 괘주한지 거의 한해가 되어오는 오늘까지도 겨우 2련 3패에서 우두머리질하는 서은괴를 조심스레 친해놓았을 뿐 사량팔주는 물론 련장급의 류자와는 사교(死交)를 맺은이라곤없다. 황보재는 총명하거니와 담력이나 무예가 다 간단찮은 발군이건만 웬 영문인지 일자반급도 못하고 있는 신세니 비록 위용강이와 가깝게지내긴해도 보통류자나 다름없고 후근마사의 장령감역시 류세가 많지만 원로급이 아닌 일반류자니 아무때건 죽게되면 향 몇가치만 태워주고 황지 몇장 뿌려주면 고작일 인물이다. 이런자들과 각근히 친해서는 의심도 미움도 사지 않을 것이다. 패장(敗將)이니 과거의 용맹을 어떻게 자랑하랴. 그러기만하면 남의 빈축이나 사기쉽다는것쯤은 알고있는 진사해였다. 하지만 그래도 제 울적한 심정을 하소할데가 있고 그것을 다소나마 귀담아 들어주고 리해하며 동정해줄 사람이 곁에 있어야겠기에 우선 그 몇을 사귀여놓은 것이다.

    사격장에서 민호의 사격검사가 있은 이틑날 오후 진사해는 또 전날처럼 후근마사의 사양실을 찾아갔다.

    장령감이 예나다름없는 석쉼한 목소리로 그를 반겼다.

   《몽두춘(술) 하려우?》

   《해얍지요. 몽두춘안하구야 내같은게 무슨멋에 살겠수.》

   《이 사람아, 오늘은 상이 왜 그래?》

   《령감, 남의 상을 잘보오만 제 신세는 왜 무쪽같이 오그라들었소. 그따위 듣그러운 소리는 말구 안주있거든 얼른 내놓기나하슈. 그러는게 나한테는 더 반가우니까.》

   《아따, 이 사람이 고기가 있어야지.》

   《없다구요?》

   《없네, 없어. 나두 그런건 이틀째나 이새에 끼워두못봤네.》

   《아따, 거야 가져오면 얼마든 될걸 갖구서 그러네. 나리들 잡숫던거있겠지요.》

   《아니 이 사람, 뭐라? 자네두 이제는 그런걸 찾어?》

    장령감은 자못 놀라운 양. 주름많은 얼굴에는 감추지 못하는 조소가 그믈그믈 피여오른다. 량반은 얼어죽어도 겨불은 안쬐고 굶어죽어도 남먹던 턱찌끼는 안찾는다던 진사해가 아닌가.

    진사해는 시설떠는 그가 민망해 힐끈 치떠보곤 입을 다물었다.      어서 말이나 곰상히 들어달라는 무언의 독촉이다.

    장령감은 밖으로 나갔다가 마침 중앙산채에서 나와갖고 서쪽  의 식당산채로 가고있는 한 새자를 소리쳐불렀다.

   《여! 장평이냐? 여기 좀 왔다가거라!》

    저쪽은 장령감의 목소리를 잡아듣고 달려왔다. 중키에 탄력있는 단단한 체구, 갸름한 얼굴에 정기도는 부리부리한 눈, 상큼한 코대…짜장 사냥물을 쫓느나 싸대는 표범새끼같이 날렵해보이는 젋은이였다.

    장령감은 그한테 당부했다.

   《너 식당가지. 고기채있거든 가져와. 나 몽두춘 좀 하련다.》       장평은 알았어요 하고 뛰여갔다. 올해 나이 19살인 그는 14년전, 그러니까 다섯 살 나던 해에 인질로 잡혀온 것이 돌아가지 않고 산채에 남아 오늘까지 고스란히 살아온 것이다. 지금 양부인 늙은 양즈방을 시중들고 있었다. 양부는 요즘 몸이 불편해 제 숙소에서 식사를 하는건데 마침 장평은 식기들을 식당에 날라가고있던참에 장령감의 청을 듣게 된 것이다.   

    장평은 식당에 가더니만 과연 소고기를 밭미나리에 섞어 볶은 채 한접시를 갖고 사양실로 뛰여왔다.

    진사해는 그를 대하는 순간 낚구고싶은 생각이 불쑥나서 만면에 웃음바르며 친절을 부렸다.

   《허, 이거 동생! 감사하구만. 여게 좀 앉지.》

   《고마와요.》

   《로소동락이라잖아. 오늘 나하구 같이 몽두춘해볼가.》

   《난 잘 못하는데요.》

   《잘 못한다…그럼야 으레 잘하도록 훈련해야지, 안그래. 뭘 바라구 이 세상을 사나. 이제 정인군자루 되겠나 미륵보살루 되겠나. 우리처지에 몽두춘제대루못하면야 사내장부가 아니지. 호한협객으룬 더구나못되구. 말해봐, 안그러냐?》

    이렇게 장평을 붇들어 앉혀놓고 구슬러서 함께 술을 마셨다.

    진사해는 그보고 모두들 동고동락하면서 생사를 함께 하는 처지라지만 그래도 더 가까운 사람 따로있는게 아닌가 하면서 아무리봐야 넌 그 누구보담 더 귀엽구나, 누구보다 더 사랑스럽구. 그래서 난 널 더 좋와하게되는거야. 이건 내 맘속에서 우러나는 진심의 소리다. 너는 생각이 어떤지 거짓모르는 솔직함과 진실함이 신뢰와 우의를 낳는거다. 우리 지금부터 서로간 마음을 솔직히 나누면서 허물없이 지내는 진짜 지기로 되고 벗으로 되고 형제로 되는게 어떠냐 했다. 

    이상분이 아낌없이 털어놓는 귀맛좋은 찬사에 장평은 기분이 달뜨면서 흐므러지게 기뻐났다.

   《그럽지요. 우리끼리야 그러잖아도 친형제간이나답잖은가요.》

    그는 만면에 웃음꽃을 가득피운채 흔연히 동의했다. 진사해가 미더워보이면서 그한테 안겨주는 인상이 너무도 좋았던것이다.

    자기를 세상물정에 익달하다고 여겼건만 운명은 파국에 몰려들었던 진사해였다. 남한테 편협하다는 평을 듣기보다는 대범하다는 평을 듣는 편이 역전한 제 운명을 원래대로 돌려세움에는 백배 더 유익함을 알고있었기에 그는 되도록 남한테 걸걸한 호인풍의 사나이로 보이면서 선손을 써 적수를 꼭그러뜨리리라했다.

    그 이틑날. 심부름을 받은 장평이가 위진을 불러내와 후근마사의 사양실에 데리고왔다. 거기서는 물론 진사해가 기다리고 있었다.

   《진수이샹이 날 오라구했는가요?》

   《이거 모두들 날 그냥 수이샹 수이샹 하니…자, 자, 여게앉소, 위반장. 내가 위반장을 불렀지. 목구멍간지러우니 몽두춘이나 같이해보자구.》

    진사해는 처음에는 서먹해 하는 양이다가 인차 활기를 펴면서 친절을 다했다.

   《이거 내가 수이샹어른하구 같이해서야될가요.》

    위진은 년장자였건만 제쪽에서 머리를 긁적이면서 쭈물댔다. 지금 나를 청해 함께 술마시자는 이 사람이 다른 누구와는 달라 그래두 한때 류자무리에서 자리서던 인물이였으니까 하고 그는 속으로 뇌고 있었다. 웃사람앞에서는 굽실거리고 받드는 습관된 공경심이 멀정한 사람을 이같이 병신으로 만들고 있었다.

   《어려워할거있소 같은 형제끼린데.》

    진사해는 제 스스로 품위를 낮추는 위진을 대뜸 허수하게 보면서 한수잡고들었다.

    장령감이 술과 안주를 가져오자 장평이 훈련된 작부마냥 진사해가 보내는 눈길지시대로 그릇 세 개에다 술을 부었다.

   《너도 한잔 마시거라.》

    진사해는 손수 술단지를 기우렸다.

    그러는 모양을 보고 위진이 감격스러움을 나타냈다.

   《진수이샹은 과연 소문과 같이 틀거지가 없는 분이구만요. 그러게 다들 좋와하는모양이지. 하긴그렇습니다. 서로간에 형제로 되어 사는바에야 그러는게 랑패없지. 안그런가유 수이샹어른.》

   《위반장말이 과연 그른데없지. <악수귀천 례별존비>라 신분의 귀천에 따라 음악이 다르구 존비에 좇아 례에 구별이 있다함은 천만지당하오만 생각해보면 주의해얄것두있지. 례의구별이 있다해서 자리서는 자 떠받들어줄건만 바라구 오만해지면야 남들은 그를 경원하게되는거니 결국은 곁에 사람이 없게되지. 안그렇소, 위반장.》

   《옳수다. 그러게 저 뭐라더라. 건방지게 굴면 손해보구 겸손하게굴면 리득본다는 속담도 나왔을테지.》

   《말이 맞아. 그래서 난 우리들사이에는 서로 허물없이 지내주길 희망한다 그 말이지. 어떻소. 내 주장이 틀리지야않겠지.》

   《틀릴리있습니까. 바른말씀인데.》

    위진은 머리를 주억거리고나서 혼자소리로 보탰다.

   《우리지간에야 응당 그래야지.》

    기다린거다. 진사해는 대방의 얼굴을 직시하면서 캐듯물었다.      《그러자면 어떻게해야할까요, 위반장?》

   《거야 서로믿어줘야지.》

   《그러자면?》

   《?…》

   《서로간 속심부터 줘얄게 아니겠소, 위반장님!》

   《그렇지, 하하하…》

    위진은 이켠의 뜻을 거분거분 받아주었다.

    진사해는 기분좋았다.

   《자, 이눔의걸 우리 멋들어지게 다 넘겨치우구볼가. 이눔의 반강자(술)를 지기지우와 같이 마실 때는 백잔도 오히려 적다는 말이 있잖아. 그러니… 자! 자!》

    그는 대방이 좋은 기분으로 사발의 술을 굽내게 만들고나서 한술 더 떴다.

   《사람이 살아가자면 우정이 제일 귀중한거야. 신임도 신뢰도.》

   《그렇지유.》

   《그런데 그게 공중에서 그저 뚝 떨어지는거야아니지.》

   《그거야 그렇잖구.》

   《그러니까 서로 속심안주구야 우정이라는게 생길수있을가.》

   《그렇지유. 속심안주구야 안되지유.》

   《그래서 이 사해가 오늘 위반장하고…다른게 아니지. 우리지간에 우의와 친절을 도탑게 하기 위해서.》

   《거 좋지유. 나역시 동의야.》

   《우선 한가지 물어볼가.》

   《진수이샹, 뭔데?…》

   《그 반에 아마 꼬리방즈하나있지?》

   《있지, 있어. 정민호라구하는.》

    위진은 언젠가 민호가 《꼬리방즈》라는 말을 대단한 모욕적인 언사로 여기고 대노하던 일이 상기되여 낯빛을 고쳤다.

    진사해는 대방의 심기변화를 짚어가면서 말을 계속했다.

   《언젠가 한 번은 그하구 내가 마찰이 있은걸 위반장은 아마 알고있을거야. 제 반 새자이자 수하사람 저자른 일이니까. 그런데 사실말이지 그건말이요. 참…재미없어서…내가 그때 그 무슨 악의에서 그 사람을 꼬리방즈라구 욕한거야 아닌데 일이 그렇게 됐다는거요. 무의식간에 장란으루 그럴수도있는게 아닌가. 내가 지금 위반장보구서 <어이 다즈반장> 하구 부른다면 위반장이 그래 내한테 분자빼들테요?》

   《안그러지. 그러면야 못쓰지. 형제끼린데 롱담으루 여기면 될걸가지구… 그래서 나두 그때 그보구 <야 동생, 너 너무 그렇게 옥생각은 말어. 이제는 한집안 한형제됐는데 뭘 그래.>하구 나무렸지. 진수이샹은 대틀이구 좋은분이라구하면서.》

   《위반장이 그랬다구!?》

    진사해는 일순간 돌발적인 반가움을 얼굴에 피웠다가 감췄다.

   《그랬지유. 정말. 난 거짓말하구는 담벽쌓구사는 사람이라니까. 믿지 못하겠거든 이 장령감하구 물어보슈 안그런가구. 장령감!》

   《어 그래. 그래.》

    여지껏 입을 꾹 다문채 두 사람의 대화를 귀로 들어주기만하던 장령감은 허저인 류자반장이 자기까지 갑작스레 말새에 끼워넣는지라 미처사색할새없이 고개를 끄덕여버렸다.

   《고맙구료. 건데 이 사해의 사람됨이 어떤지를 모르구있는 그가 지금은 어떨가? 속에다 뭘 넣구서 앙분풀이하자구나하잖는지.》     《그건 저…》

    위진은 혀를 더 놀리지 않고 말끝을 사리였다.

    꼴을 보니 너희들이 날 놓구서 꼭 말이 있었구나. 내흉스러운 진사해는 이렇게 속으로 짚으면서 늦줄을 주지 않고 잡아챘다.

   《왜 말하다마는거요. 그가 위반장하구 꼭 무슨 말이 있었을텐데. 안그러우 위반장. 속엣말 다 뱉었을텐데.》

   《저…저…진수이샹 정말이야. 걔가 분하니까 진수이샹을 개색끼라 욕한건 있어두…》

   《그저 그렇게 욕했다?…내가 누구란거야 그도 알겠지?》

   《왜 모르겠어. 임자가 청보산패서 자리서던 분이라는거야 온 산채가 아는일인데.》

   《그 사람 정말 그것밖에 모를가?》

   《그리구 저…》

    위진은 나오려던 말꼬리를 다시한번 사리였다.

    진사해는 그러는 모양을 넌짓이 보다가 술을 사발에 부어 그한테 권했다.

   《목이 마르거든 적셔놓구 말해두되오.》

    위진은 어색한 웃음이 발린 낯을 돌려 장령감과 장평을 봤다.

    진사해는 입을 다시열어 유감을 표시했다.

   《왜 아직두 날 믿지 못하오. 난 위반장을 나만큼이나 믿구서 속심말을 나누자는건데.》

    이 소리에 말은 혀끝에서 반마디만 남겨두어라며 조심하던 위진이였건만 속으로 안되겠구나 나는 이 사람을 믿어야겠구나 하면서 끝내 하지 말았어야 할 말을 해버리고말았다. 물론 그건 훗날 그 둘이 다른장소에서 조용히 만나서였다.

   

    염왕산류자들은 큰 기와가마를 부실때만 전부의 무력이 동원되고 일반때는 몇십명씩 나가군했다. 그래서 산채는 비는 날이 없이 늘 흥성했다. 민호가 여기에 들어서던 첫날은 산채의 류자가 거의 동원되여 멀리 장춘쪽으로 큰기와가마를 털려갔던것이다. 그런데 그번은 관방의 경찰대와 합작한 강한 련방대의 저항에 맞다들다보니 계획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오고말았던거다.

    요즘 또 한패가 목단강쪽으로 떠나갔다…

    향란이가 후근마사에서 부루말을 꺼내왔다. 민호의 해다. 그놈은 여기와서 보양이 잘됐는지 누구나 봐도 탐낼 지경이다.

    이때 마침 민호가 자기 말을 보러 나섰다가 향란이를 만났다.

   《향란아가씬 그놈하고 아주 영 정든거나 아닙니까.》

    녀인은 눈을 꼬면서 입을 열었다.

   《집탈은 말고 어서와서 날 거들어주기나해요.》

    민호는 저도모르게 비틀린소리를 뱉어냈다.

   《내가 자격됩니까, 보재는 어딜가구.》

    녀인은 무어라 대꾸하려다말고 마뜩잖게 눈을 흘겼다.

   《어째요. 풍자(말)를 바꾸기싫은가요.》

   《무슨소리를…》

   《내해하구 바꾸기싫은가말이얘요.》

   《뭐라?…》

   《아직두 달통되잖으면 관둬요.》 

   《무슨소릴 그렇게?…아가씨가 언제 나하구 그러자했길래?》

   《해엽자 못봤나요?》

   《해엽자라니! 언제 무슨 해엽자를 나한테 줬단말입니까?》

   《내가 겨울돼서 신으라 보낸 동동자(양말)는 받았겠죠?》

   《받았지.》

   《그러구도 그안의건 못봤다는건가요?》

   《아니 그속에다 해엽자를 넣어보냈습니까!》

   《별 멀쩡한 량반 다 보겠네요. 동동자 다 판나도록 신었을텐데 내 글은 안읽어본모양이지.》

   《가만. 내 이제 읽어보지. 난 그 동동자를 엽때껏 그대루…》

   《아니 엽때껏 그걸 신지두않았다는말인가요! 그게 뭐 금보밴줄알았나요. 호호호…》

    향란이가 어찌나 자지러지게 웃었는지 장령감이 웬 일인가고 사양실에서 달려와보기까지했다.

   《풍자를 바꾸지! 바꾸지!》

    민호는 인제야 비로서 전해의 초겨울에 향란이가 외근을 나가있던 자기에게 양말을 보낸 본의를 깨닫고 따라서 웃었다.

    향란의 말도 괜찮았는데 그놈의것은 어떻게 되어 까지 않아서 아래로 처진 흰 불알에 검은 점이 하나 박혀 그것이 녀주인의 눈에 점점 상서롭지 않게 보이면서 비위를 그슬렸던 것이다. 그녀의 병태적인 그 심리상태야 물론 그 본인밖에 모르는것이다. 그녀가 말을 꺼내지 않는데야 하느님인들 알랴.

    향란이는 민호의 대답을 받고 몹시좋와했다.

   《대답이 시원해서 통쾌해요. 이젠 우리 둘지간에 교역은 성사된셈이겠죠.》

   《그렇잖구. 남부일언이 중천금인걸 모릅니까.》

   《좋아요. 그렇게까지 말씀하니 난 기뻐요. 이러자요. 우리들의 교역을 축하해서 한잔하는게 어때요. 내가 낼테니.》

   《정말입니까. 아가씨가 그럴 맘이라면야 난 반대의견없지요. 어쩔가, 우리 반 형제들을 다 데리고 오랍니까?》

   《아니! 아니! 그러진 말아요. 난 그렇게는 준비못하겠어요. 그저 혼자 조용히 와요. 음…밤 여덟시. 약속어기지 말고 꼭.》

    요즘은 오후는 7시반이면 해가 져 어둡기시작한다. 그러고도 반시간후니 취침시간이 다된다. 그런때에 사내자식이 규수의 방에 뛰여들어 녀인과 술을 같이한단말이지. 그런다면 남들이 어떻게 볼것인가…민호는 선선히 대답해놓고 보니 다시금 고려되는일이기도했다. 그러다가 그는 에라 개코라해라. 뭐가 어떠냐. 이건 녀인이 나를 청하는건데 뭐 서로간에 약속이 되어 행하는 일인데 뭐 했다.

    

    이러구러 약정한 시간이 다 되어오자 민호는 중앙산채쪽으로 발걸음을 놨다.   

    향란의 거실은 아담졌다. 출생지가 바로 여기인 그녀는 여덟살나던해부터 따로 이 방을 차지하고 자랐다. 중앙산채에 붙은 이 별채는 내실면적이 꼭같은 방 두 개로 꾸며졌는데 벽을 사이한 저쪽방은 그의 어머니가 생전에 들어있었던 침실이다. 거기에는 지금도 그의 어머니가 생전에 쓰던 물건들이 그대로 정연하게 놓여 있었다. 정깊었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이 귀동딸의 식지 않고 이어지는 애틋한 정성의 표시였다.

    이쪽에서 손기척을 냈더니 문이 인츰열렸다.

   《어서들어오세요!》

    녀인은 각근히 인사차림을 하면서 반겨맞았다.

    민호는 방안을 휙 쓸어보았다.

    회칠을 해서 눈같이 새하얀 벽간에 산수화를 그린 그림 한 장이 붙어있고 구석쪽에 놓여있는 꽃무늬돋힌 커다란 법화(法花)에는 란초꽃이 한창 싱싱 자라고 있었다. 한쪽벽가에 자그마한 구들.

    이불장가 구리도안으로 장식이 된 황경나무제의 옷궤우에 놓여있는 시계가 마침 종 여덟 개를 땡 땡 쳤다.

    종소리에 향란이는 웃음날렸다. 약속을 지켜 고맙다는 뜻이다.

   《위아가씨하고 약속한건데 신용있게 놀아야지.》

    이런 반응이 향란이를 사뭇 기분좋게 만들어주었다.

    방가운데에 술상이 간단히 차려져 있었다.

    녀인은 사나이가 자리에 앉자 모양고운 진사포무늬박이호로술명을 들어 조용히 은잔 두 개에 술을 붓고는 다시한번 살짝웃었다.

   《자 들자요.》

   《들어야지. 이건 우리 량자간의 교역축배주니까.》

    민호는 되도록 대방의 정서를 맞추려했다.

    했더니 얌전을 피우던 녀인의 입에서 눈이 까뒤혀질 엉뚱한 말이 튀여나올줄이야.

   《아니애요. 이건 오늘밤 우리들의 교배주얘요.》

   《아니 뭐라!?…》

   《호호호…왜요. 듣기싫은가요. 그렇다면 롱담으로 치자요.》

   《롱담도 유만부동이지.》

    민호는 녀인이 부어주는 술을 조심스레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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