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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문록: 선조들의 발자국찍힌 곳에서
<<도라지>>필회가 있어서 길림에 갓던 나는 마침 기회좋아 력사유구한 룡담산성을 가보았다. 룡담산성은 길림동쪽 송화강건너에 있는데 이 산성은 단산자산성, 구창남산성과 함께 길림에 있는 고구려옛성터로서 지금은 중국의 중점유적보호구로 되어있다.
지금으로부터 1천5백여년전에는 여기가 고구려땅이였다. 4세기중엽으로부터 5세기초까지 걸치는 기간에 북중국일대에서는 전연, 후연, 북연, 북위 등 북방종족들이 세운 국가들이 련이어 교체되였는데 그중 특히 전연과 후연은 저들이 패권을 잡음에 있어서 위험한 존재로 느껴진 고구려에 대하여 침략전쟁을 끊지않고 발동했던 것이다. 하여 고구려는 료하이동을 장악하자 온나라에다 튼튼한 방어체계를 세울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료동반도끝으로부터 시작하여 그 서쪽해안과 료하의 동쪽연안을 거쳐 멀리 길림지방에 이르기까지의 수천리구간에다 성들을 수축했던 것이다.
<<삼국사기>>의 기재에 보면 고구려말기에 이르러서는 성이 모두 176개나 되었는데 그것들은 전연방어성과 종심방어성 및 수도방어성 세부류로 나뉘였다고 한다.
길림에 있는 성들은 그때의 전연방어성으로서 주요하게 부여, 말갈, 읍루 등 종족들의 침입을 막기위해 쌓은것이였다.
내가 본 길림의 룡담산성은 높은산인데 서쪽켠이 자못 가파르고도 험했다. 이같은 산세를 리용하여 성을 수축했다는 사실로부터 우리는 반침략투쟁을 강화했던 고구려가 강력한 국방체계를 세우기 위해 얼마나 힘썻는가하는것을 가히 보아낼 수 있고 따라서 고구려인민들의 불요불굴의 투쟁정신과 그들의 창조적지헤 및 그네들의 군사예술의 한 측면을 어렵잖게 보아낼 수 있었다.
흘러간 허구한 세월에 옛성터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어도 룡담지(龍潭池)와 한뢰(旱牢)만은 아직도 거의 원모양대로 남아있어서 유람객의 발길을 끌고 있었다.
산속에서도 아래쪽 그윽한 곳에 있는 룡담지는 변두리를 돌로 쌓아서 만든 장방형의 커다란 웅덩이였는데 지금도 물이 그득고여있었다. 왜서 이름을 그렇게 지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기재에 보면 그것은 산성을 지키던 고구려병사들이 먹을물을 저장해두었던 곳이라 한다. 사실그래선지 주위의 밀림에 바람한점새여들지 않아 적막하도록 고요한 수면과 깊이를 대중할 수 없는 푸른물이 면면한 회포를 자아내면서 가슴을 애절히 훑었다.
그옛날 고구려병사들이 련병장으로 썻을 평평한 공지를 지나 남쪽산으로 오르는 중턱에 청석을 촘촘히 쌓아서 만든, 직경이 10여메터푼한 둥그런 웅덩이 하나있는데 그것이 한뢰(旱牢)였다. 그곳은 고구려병사들이 옷과 병기를 넣어두던 창고라 한다. 지금은 나무가 무성해 음달지지만 위치로 보나 그 이름으로 보나 과시 그럼직했다.
나는 거기서 한달음에 산꼭대기에 달아올랐다. 자연이 만들어준 봉우리인가, 아니면 인공으로 만들어진 료망대일가! 거기에 오르니 꼭마치도 넓은 벌에 바둑판을 놓은것만같은 길림시내가 한눈에 확 안겨들었다. 부는 바람에 옷자락날리고 가슴은 확 트이는것만같았다. 나는 여기서 새삼스례도 먼옛날 을지문덕장군이 수나라침략자들에 대한 총공격을 앞두고 적장 우중문에게 지어보냈던 시 한수가 떠올랐다.
신통한 전략은 천문을 꿰뚫었고
기묘한 전술은 지리를 통달하였네
싸움에서 이겨 공로가 이미 높거니
만족함을 알고 돌아감이 어떠하리
이 얼마나 만만한 도전이였던가!
적장을 제마음대로 조롱하고 야유한 이 시구만봐도 우리는 을지문덕장군의 슬기와 용감성을 넉넉히 보아내고도 남음이있는 것이다. 하다면 왜 그같이 방대한 국토를 갖고 강성했던 고구려가 망하게되였던가?
력사는 우리에게 민족이 단합하지 못하고 분렬된다면, 통치자가 외세에 아부하고 굴종한다면 나라는 쇠락해지고 남의 침략을 당하기 마련이며 나라백성은 망국노의 운명을 면치못한다는것을 너무나도 명백하게 가르쳐주고있다.
외세에 의뢰한 신라의 배족적인 침략, 명장이였던 연개소문이 죽자 한몸의 부귀영화를 위해서라면 나라와 민족의 리익도 서슴없이 저버리는 통치배들의 비렬한 정권다툼이 결국은 강성했던 고구려를 망하게 만들고말지 않았던가! 슬픈일이였다!
그 어느나라나 다 마찬가지다. 그 나라가 강성하려면 국민이 한맘으로 단합되여야 하고 집권자집단이 굳게 뭉쳐야함은 너무나도 자명한 일이다. 그런고로 국민은 항시 애국의 맘을 지니고있어야 하고 그 어느때든 매국배족적인 분렬주의자가 나타나면 다같이 일떠나 단합해 잡아내여 없애야 한다. 국가와 민족이 살아나는 길은 오직 그것뿐이다.
198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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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절 고구려봉건국가의 종말. 당나라강점자들을 몰아내기 위한 투쟁
고구려봉건국가의 종말
"7세기중엽에 이르러 고구려봉건국가앞에는 안팍으로 위급한 정세가 닥쳐왔다. 즉 봉건통치배들속에서 벌어진 더러운 정권쟁탈전으로 중앙집권적통치체제가 극도로 문란해지고 약화되였으며 외래침략자들을 끌어들이여 고구려를 강점하려는 신라통치배들의 배신행위로말미암아 당나라통치배들의 모험적인 침략책동이 그 어느때보다 강화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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