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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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번개치는 아침>> 1장(5)
2014년 08월 23일 15시 08분  조회:2988  추천:1  작성자: 김송죽
 

 5.

   밤에 남천오가 찾아왔다. 그런데 그는 부엌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두덜거리기부터 했다.

   <<제갈, 늘 다니던 길인데두 요행찾아왔네.>>

   <<바깥이 그렇게두 어두운가?>>

   <<어두워, 눈알빼가도 모르겠어.>>

   마침 이때 하늘 한 귀퉁이가 무너져 내리는 듯 낮고도 무거운 천둥소리가 은은히 들려왔다.

   <<신통찮아, 아마 한바탕 퍼부을것 같애!>>

   남천오는 이렇게 말하며 자리에 누워있는 병자쪽으로 찾을 돌리며 허리를 굽혔다.

   <<아젔, 그새 좀 어떤가요?>>

   <<괜찮네, 좀 괜찮네.>>

   김로인은 자이에서 일어나보려고 몸을 무겁게 추슬렸다. 남천오는 일어나려는 그를 제꺽 제자리에 도로 눕히고나서 미간을 찌푸리며 한숨을 내쉬였다. 아무리봐도 병이 과황에 들어서 다시일어날것 같지않은 불쌍한 령감이였다.

   려홍이는 낮자루를 마저마추고나서 숫돌을 찾아들며 남천오에게 물었다.

   <<낮밥엔 집에서 뭘했나? 그래 무슨 새소식은 못들었는가, 그놈 궁궐안에서 생기는 일말이야.>>

   <<있긴 좀 있어. 그래서 이렇게 온거야.>>

   남천오는 등잔불가로 다가앉으며 자못 흥분된 표정을 지었다.

   <<오늘말이야. 내가 글쎄 손대감님네 청지기를 배알했어.>>

   <<아니, 그 두상짝을 만나선 뭘 해?!>>

   <<그래, 전혀 꿈에도 생각잖던 그 늙은 노마를 만나봤어.>>

   <<천오, 그 두상짝을 노마라말구 능구렁이라 하는게 더 적합할걸. 헌데 대관절 어떻게 되어 그를 만나게 됐건가?>>

   <<호출이 났지. 글쎄 나를 오라해놓구는 이렇게 묻는게 아니겠나. <젊은이도 전번날 운파가 내간 말을 탔더랬는가?> 하고말이다.>>

   <<그래서?>>

   <<그러고는 나더러 네가 얼마나 잘타더냐고 묻더군.>>

   <>

   려홍이는 슬그머니 가슴이 두근거려났다. 그런데 천오는 도리여 태연스레 말을 이어갔다.

   <<나야 본시 직통박이니까 뭐라고 대답할거 있나. <손도령이 제눈으로 직접 보고갔길래 새삼스레 여쭙기는 뭣합니다.>하고 대답했더랬지.>>

   <<거짓말을 했군. 그러니 뭐라던가?>>

   려홍이는 마음이 좀 가벼워지는 감을 느끼며 빙그레 웃음을 띠였다.

   <<그러니 나보구서 네가 정말 그렇게 잘 다루더냐고 재삼묻는게아니겠나. 그래서 나는 여기 손가장에서는 물론이요, 온 북만에서도 그런 사나운 말을 휘여잡을만한 사람이 있을것 같지를 않다고 했더랬지. 그렇게 해놓구선 네가 그놈의 말을 여차여차하게 턱 굴복시켜놓구선 끄떡도 않고 반나절이나 타고다녔노라 슬쩍 보태서 한바탕 자랑을 했더랬네.>>

   여직 잠자코있던 김로인이 말밥에 참견했다.

   <<왜 그런 장난을 했니? 마음이 음험하기로 구렁이같은 그 두상이 아마 저의 나으리에게 좋게 고발할리는 없을거다.>>

   김로인은 손창유와 청지기의 음흉한 심보는 너무나도 잘알고있었다. 어려서부터 손자량이와는 적수가 됐던 아들 려홍이가 오늘 그 용력이 자량이보다 더하다고 알려지는 날이면 꼭 해칠게 뻔하다는 예감이 감돌아쳤다.

   려홍이는 아버지의 수심기어린 얼굴을 이윽히 지켜보다가 남천오에게로 머리를 돌렸다.

   <<그담엔 다른말이 없었나? 수향대인지 하는것에 대해서말이다.>>

   <<말이 있었지. 나더러 글쎄 저들이 총을 내준다면 선뜻이 받아멜 청년이 얼마나 됨직하냐고 묻더구나.>>

   <<흥, 멀쩡한 두상이 거부기잔등에서 털을 긁자는구나.>>

   <<그런데말이여.그놈 손도령인지 하는 후레아들놈이 글쎄, 칼은 어디서 났는지 제법 옆꾸리에 차고 거들먹거리더라.>>

   <<칼을?... >>

   려홍이는 미간을 모으고 이마살을 찌프렸다. 수심에 잠겼던 아버지가 천천히 지나온 과거사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자네들은 아직 잘 모를거네만 나는 열다섯살 때 살길을 찾아 여기루 왔었지. 14년이란 세월이 지나 내 나이가 스믈아홉살때부터 여겐 마적이 괴기 시작했더랬네. 마적의 두령은 애비하고 아들이였는데 그네들의 별호는 본시 <백호>와 <청룡>이였으나 사람들은 그렇게 부르지를 않고 <큰 마귀> <작은마귀>라 불렀지. 어떻게 되어 생겨난 마적패인지는 몰라도 몇해를 굶어지낸 ㅇ리떼모양으루 잘사는 집이건 못사는 집이건 가리지를 않고서 마구달려들어 빼앗고 죽이면서 갖은 행악질을 다했더랬네. 그래서 철모르는 애들마저 마적소리만나오면 무서워 몸을 떨었으니 마적패들가운데서도 제일 흉악한 패였다네. 그때 들으려니 그 마적의 소굴은 아르금산에 있다고들 했었는데 괴상하게도 왜놈들이 들어오자 그렇게 살판치던 마적패가 가뭇없이 사라져버리고 이고장엔 난데없는 손가네가 자리틀고 앉더니만 땅과 세력을 독차지하고 제법 왕노릇을 하기 시작했지. 그다음엔 또 마을이름까지 손가장이라 고치고...에쿠, 에쿠!... >>

   김로인은 터져나오는 기침으로 하여 말을 끊고 돌아쳤다. 려홍이와 천호는 재빨리 김로인의 가슴을 문질러주며 진정시키려 했으나  병자느누 온몸에 식은 땀을 쫙 흘리며 몹시 괴로워하였다. 아버지의 신음소리를 들을때마다 려홍이는 가슴을 칼로 저며내는것 처럼 아파났다. 워낙 병이라고 없었던 아버지가 경찰놈들한테 가슴을 채운데다 10년전에 손지주네 개한테 물린 미열이 도져서 이젠 이처지가 되었으니 원한이 뼈에 사무치도록 솟구쳐올랐다.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굴은 비방울이 후둑후둑 창문을 뚜드려댔다. 번개가 한번 칠 때마다 병자의 얼굴은 더욱 창백해지군했다. 두 젊은이는 어둑어둑한 바람벽을 멀거니 바라보면서 제마끔 방금 들은 그 수수께기같은 마적패거리를 두고 생각에 잠겼다.

   (흑횽이라는 마적은 대체 어떤 놈이며 어디로 갔을가?... 마적이 없어지자 손가네가 이 고장에 와서 둥지를 틀고 앉은건 또 무엇때문인가?... 하다면 그네들이 혹 마적이 아닐가?... )

   려홍이는 생각할수록 의심만 깊어갔다.

   <<천오, 네 생각에는 그놈의 마적이 어디로 달아난것 같니?>>

   <<글쎄... >>

   <<손창유가 대체 무슨짓을 한것 같니?>>

   <<글쎄말이야... >>

   두 젊은이는 또다시 침묵에 잠겼다. 그들은 생각할수록 손창유가 틀림없이 마적이였다는 짐작이 갔다.

   <<틀림없을것 같다! 그 마적괴수가 바로 손창유야!>>

   려홍이는 마침내 이렇게 뚝 찍어 말했다.

   <<헌데 그자가 지금 무엇 때문에 수향댈 조직할가?... >>

   <<거야 빤하지 않니, 이름이 좋게 수향대지 그건 틀림없이 마적무리를 다시조직하는거라니까.>>

   <<음, 그래!>>

   천오는 수긍이 가는지 머리를 끄덕이였다.  근자에 와서 손지주네는 산지사방에서 불량배들을 끌어모으고있다. 그러니 그놈의 발만 들여놓으면 락자없이 토바로 되고 마적으로 굴러떨어지고말것이였다. 어떻게 할것인가? 굴복이냐, 반항이냐?...

   이틑날 정오무렵에 손창유가 보낸 심부름꾸니 대홍전첩(大紅全帖)을 가지고 려홍이를 찾아왔다.

   <<아룁니다. 손대감께서 꼭 모시고 오라 당부합디다.>>

   나이 어리고 역게생긴, 손창유의 수종드는 하인은 아주 습관된 버릇대로 허리를 굽석거리더니 이상스런 눈매로 려홍이를 올려다보면서 낯을 붉혔다.     (그눔의 늙은 마귀가 갑자기 무슨 부처님이 되어 이같이 촉기빠르른 별성마마를 시켜 나를 청하는것일가? 새가 둥지에서 날아나오고 짐승이 굴에서 나오는건 꼭 까닭이 있는것이다.)

   려홍이는 아직 그 내막을 알수 없었으나 아무튼 좋은일일수는 없다고 단정하였다.

   <<아주 긴요한 일이 있다는뎁쇼.>>

   손지주네 하인은 전첩을 보지도 않고 던지는 려홍이에게 매달릴상하면서 다시금 개여올렸다.

   아버지가 눈을 펀득 떴다. 비몽사몽간에 이야기소리를 듣고 깨여난것이다.

   <<아버지! 전, 전 아무래도 가봐야겠습니다. 그깐놈들이 나를 불러간들 어쩌겠어요.>>

   려홍이는 자기의 불안한 감정을 보이지 않으려고 얼굴을 돌려버렸다. 아버지는 자기 신변에서 잃어지는것 같은 아들을 잡아두려고 빼빼마른 팔을 허우적거렸다. 그러면서 쇠잔하게 떠는 목소리로 만류하는 것이였다.

   <<어, 어데로 가,간다구 그러는거냐? 가, 가지를 말거라!>>

   려홍이는 목구멍이 칵 메여왔다. 울음이 막 터져나오려는 것을 삼켜버리느라고 입술을 지긋이 깨물면서 그는 아버지의 머리맡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자기의 그 혈기왕성한 뜨거운 손으로 아버지의 메마른 손을 꼭 잡아주었다.

   <<아버지, 누워계십시소. 인차 돌아오겠는데요 뭘.>>

   일어나려는 아버지를 간곡히 눌러눕히고나서 려홍이는 몸을 돌렸다 가지 않고 벗티면 아버지에게까지 루가 미치리라는걸 깨달았기 때문이였다.    

   려홍이는 지주집하인을 앞세우고 집에서 나왔다. 길가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려홍이가 손지주의 초청을 받고 간다니 매우 의아해할뿐만아니라 그 어떤 불길한 예감을 감촉하면서 제 일처럼 걱정했다. 려홍이는 일이 무사해질 방면으로 마음을 굴렸으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 이 경우 생사를 같이하자고 피신도 하지 않고있는 남천호가 이 일을 알아야하겠는데 그를 만날수가 없는것이 안타까왔다. 마침 신병호를 만났다.

   <<아저씨 전가요!>>

   <<여봐 려홍이, 정신차리라구! 범에게 물려가두 정신만은 차리라고 했어.>>

   신병호는 불안으로 하여 터질것만 같은 자기의 가슴을 뜯으면서 몇발짝따라오다가 뚝 멈춰섰다. 저기 앞에 손가네 부랑배 몇녀석이 려홍이를 붙잡으려 나섯던 모양인지 그가 오는것을 보자 되돌아서는 것이였다.

   손가장원의 육중한 철갑대문은 진창으로 짖이겨진 길과 더러운 개울창마저도 삼키려는 모양으로 흉상스레 아가리를 쫙 벌리고잇었다.

   <<이쪽으로 오십쇼.... 예 이 집입니다. 들어가십쇼.>>

   손창유의 하인은 려홍이를 공손히 객실까지 안내해놓고 다른데로 피해버렸다.

   방안은 텅 비여있다. 향긋한 담배냄새 풍기는 널직한 방안에 들어선 려홍이는 첫눈에 금빛도금한 향로를 올려놓은 향탁과 모전을 편 으리으리한 장식으로 보아 이 방이 손창유가 저의 귀객을 접견하기로 꾸민 특등객실이라는 것을 인차알아맞혔다. 고태가 풍기는 이 방안을 장식하고있는 커다란 화붘통, 탁상들과 호피를 깐 의자, 생생한 선도를 정교하게 만들어서 담아놓은 옥반과 은제연구... 어느것들이나 다가 상당히 값진것들이였다. 려홍이는 벽 한켠을 두른 십장생그림의 병풍까지 일일이 눈여겨보고나서 속으로 쓴웃음을 웃엇다.

   (빌어먹을 두상짝이 오래는 살고픈 모양이구나!)

   문이 열리더니 남색비단옷을 가뜬하게 차려입은 나어린 다른 하인이 들어왔다.

   <<아룁니다. 대감께 잠간 기다리시랍니다.>>

   하며 그 하인은 공손히 허리굽혀 인사하고나서 우두커니 서있는 려홍이를 한 자리에다 앉힌후 얼른 차관을 가져다 서둘러 한잔 다라올리는것이였다. 늑대는 늑대끼리요, 노루는 노루끼리라는데 손가네와와는 별종인 자기가 불식간에 이같이 호화로운 객실에서 신분에 전혀 어울리지도 않는 대접을 받고있음에 려홍이는 스스로 놀래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런 허위적인 접대로 사람을 골탕먹이려고 첫암투를 거는 손창유의 검은 심보를 보는것만같아 그는 들엇던 물고뿌를 도루놓으며 픽 웃었다. 어린 하인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보다가 허리를 한번 더 굽석하고는 물러가려했다. 려홍이는 종잡을수 없는 그 어떤 충동에 그를 불러세웠다.

   <<무슨 분부시온데요?>>

   하인은 나가지 못하고 돌아섰다.

   <<손대감은 나를 오라해놓고 뭘하는 거냐?>>

   하고 려홍이는 마뜩잖은 음성으로 물었다.

   <<예, 저... 인차오실겝니다.>>

   하인은 황송스레 대답하고나서 나가려했다.

   이때 거무스름한 긴 치포를 걸친 손창유와 그의 청지기가 방안에 들어왔다. 방금 하인을 상대했던 기분이 채 가려앉지 않은 터여서 려홍이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자 그 자리에 굳어져버렸다. 그는 토호로 이름있는 손창유를 여러해만에 상면해보는 것이다. 늙기는했으나 아직 근력이 남아서 허리가 그리굽지 않은 손창유는 숱이 적은 희슥희슥한 머리를 뒤로 빗어붙였는데 거기에다 이마까지 벗겨져 얼굴이 더 길어보였다. 려홍이는 위엄한 체모를 갖추느라 물개수염을 기른 그의 길죽한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손창유도 멈춰선채 자기가 불러온 젊은이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번 깐깐스레 훑어보더니 눈썹을 가늘게 떨며 본시 찌프러진 험상한 낯에는 도무지 어울리지도 않는 억지스런 웃음을 지었다.

   <<이런 진창길에 자네를 오라구해서 안됐네.>>

   첫말을 이렇게 떼며 그는 느릿한 걸음으로 제자리에 가 앉았다.

   (범에게 잡혀가도 정신만은 차리라했다.)

   려홍이는 신병호가 당부하던 말이 얼핏 떠올랐다. 그래서 떨떠름한 가운데서도 정신을 가다듬고 령활하게 응대했다.

   <<천하의 말씀입니다. 모처럼 부르시게해서 황송하기 그지없습니다.>>

   <<원, 허허! 거, 거게 앉게, 앉으라니까.>>

   <<네!>>     

   려홍이는 누런 호피를 깐 의자에 가 조용히 주저앉았다. 매끄러운 범털이 손에 감촉되자 자기가 앉은것이 의자가 아니라 흡사 독화기 이글거리는 화로같아서 불안한 감이 뭉클 솟아올랐다. 방금전에 부어놓은 찻잔에서 김이 김이 모락모락 피여오르고있었다. 마주앉은 손창유가 그것을 지그시 눈여겨보는것 같으나 기실은 그의 음침한 두눈은 려홍이의 가늘게 떠는 손을 은근히 주시하면서 심리상태를 진맥해보고있는것이 틀림없었다. 이것을 재빨리 눈치챈 려홍이는 그의 눈길을 피하기위해서 묵묵히 탁상모서리를 만졌다.

   저대되는 량자간에는 짧은 한순간이였지만 치렬한 접전이 은페된 침묵이 흘렀다. 저의 상전옆에 거진 붙다싶히 다가앉았던 청지기가 빼빼마른 손으로 싸늘해진 이마빼기를 명번 긁적이고나서 헛기침을 했다. 려홍이는 간흉한 이 오랜 주구가 무슨 수작을 피우려나 한번 슬쩍 거들떠보고나서 눈길을 다른데로 돌려버렸다. 이 작자가 몇해전에 돌아가신 어머님의 병구완을 위해 내다쓴 변돈을 채 물지 못할것 같은 낌새를 알고 사람을 시켜 대를 물려받은 쇠만치와 집게마저 빼앗아다 손지주네 재산에다 등록했던 일과 아버지를 불러다 개한테 물리게했던 일들을 다시금 상기하니 슬그머니 이가 갈리였다. 이럴즈음에 손창유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에헴! 에, 젊은이 내 오늘 요긴한 일이 한가지 있어서 자네를 부른걸세.>>

   하고 그는 느릿한 목소리로 말하면서 넌지시 쳐다보는 것이였다.>>

   << 예?! 저에게 무슨 요긴한 일이 있사오리까?>>

   려홍이는 짐짓 놀랜듯이 탁상모서리를 짚고 일어나려다말고 그의 표정을 주시했다. 보아하니 대방의 외모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단련없고 쑥스러운 태도가 손창유의 비위에 맞는 모양이였다. 그래서 려홍이더러 시름을 놓고 편안히 앉으라고 손짓하고는 우선 자기의 자세부터 바로하는 것이였다.

   <<음, 실은 젊은이와 나만이 할 이야기사 있어서 오라고한건데... >>

   하고나서 그는 내리깔리는 꽛괏한 눈썹을 치켜올려 려홍이를 바라보면서 서둘러 본문제를 꺼냈다.

   <<나는 젊은이와 한가지 요긴한 일을 의논해야겠는데 들어주겠는지?>>

   <<허, 괜한 말씀입니다. 저에게 무슨 그런 청탁이 합당하겠소이까?>>

   려홍이는 머리를 돌려 청지기와 더불어 아직 나가지 않고 서있는 하인을 보며 겸손하게 미소지었다. 손창유는 한쪽눈을 실그러뜨리더니 어린 하인더러 설탕물을 가져오라 분부하고는 괜히 코를 킁킁거였다.

   <<그런데 에... >>

   손창유는 약담배진에 관 누런 이바를 드러내며 청지기가 따라준 찻잔을 받아들었다.

   <<나는 본시 성품이 순정한 사람인데 에. 내가 구습에 젖고 조심성이 너무나 많아서 유예미결하다보니 자네같이 대범한 젊은이를 앓아봄이 늦었네. 에... 음, 오늘은 자네를 특별히 귀객으로 접대하니까... >>

   <<황송한 말씀입니다. 저같은 사람을 어떻게 귀객으로... >>

   손창유는 대방의 표정에서 그 무엇을 찾아보려는 듯 지지리 집요한 눈길로 주시하면서 머리를 끄덕거렸다.

   <,그렇네, 나는 진작 자네를 한번 불러오려 했더랬네. 이건 내 진속의 말이네. 젊은이도 알다싶히 만주국이 망하고보니 치법을 하는 이가 없어서 사회질서라는게 문란해졌네. 그러니 나서서 명분을 바로잡고 치안을 유지해얄게 아닌가. 그래서 나는 우선 수향대를 조직할려구 하는거네.>>

   <<아, 그렇구만요. 그런걸 난 여적지 전혀 모르고있었군요!>> 

   손창유는 려홍의 대구에 눈을 슴벅거렸다.

   <<몰랏다? 음! 그렇다면 내가 알려주지. 한마디루 말해서 이건 이름그대루 향토를 지키는건데 에... 내 소원인즉은 자네가 한번 나를 도와 동네의 조선젊은이들을 여기에 가담하도록 조력해달라는거네. 내남없이 우선 향토를 지켜야 살길이 마련될게 아니계나? 내가 저... 어험! 젊은이가 거절을 안하면 한자리줄테니 일이 제대루 되도록 힘쓰기를 바라는걸세.>>

   려홍이는 손창유가 마침내 자기의 흉계를 드러내놓게 되자 까딱 움직이지 않고 아느새 마주보다가 머리를 절레절레 젓고말앗다.

   <<손대감님, 사람을 잘못보셨는가보군요! 저에게는 그런 재간도 없거니와 그럴 마음도 없습니다.>>

   <<뭐 없다구?!... 이, 이건 제 향토를 지키는 무장대인데두?...>>

   <<땅을 뚜져먹는 농군이 그런 무장대에 들어서는 뭘하겠소이까. 저는 정말 마음이 없습니다.!>>

   려홍이는 마치 얼토당토않은 청탁이라는 듯이 놀랜 표정을 지었다가 머리를 가로저었다.

   <<저를 아예 믿지두마십시오. 전 정말 그런데는 들고싶지를 않으니까요.>>

   손창유는 쭈빗하고 듣다가 눈시울에 심한 경련을 일으키며 이마살을 찌프렸다. 청지기가 참다못해 려홍이를 책망했다.

   <<젊은이! 무슨 말을 그렇게 함부로 던지나? 롱담도 유만부동이지. 남은 선의러 대하는데 자넨 되려 그게 무슨짓인가, 엉?>>

   <<아니 이거 참, 공연히 노여워하시는구만요.>>

   려홍이는 그들 두사람을 쌀쌀히 건너다보았다.

   <<난 본시 가난한 집 자식이다보니 배운게라군 적어서 말버릇이 없을수도 있지만은 그렇다고 종래로 선의로 대해준 사람에게 무레한짓을 한적은 없었답니다.>>

   청지기는 그만 어안이 막혀 멍하니 보다가 병신같이 팔을 부자연스레 너거고리면서 도로 주저앉고말았다. 이때 시중드는 하인이 설탕물을 들고 들어왔다. 한편 등자에 제 등을 기댄 손창유는 눈치를 살피며 조심하고있는 그 하인이 물러갈때를 기다리지도 않고 다급히 말을 꺼냈다.

   << 보아하니 젊은이는 내 성미를 잘 모르는 모양이네!>>

   려홍이는 그의 말투에 은근한 위협이 내포되여있음을 똑똑히 느꼈다. 그러나 그는 되려 그것을 전혀 감촉하지 못한 듯한 태연한 눈매로 손창유의 언감자같이 굳은 상판을 넌지시 건너다보며 대꾸했다.

   <<원 참, 어떻게 말씀올렸으면 좋을는지요. 내가 하여튼 대감님의 성미를 잘 모를수도 있지요. 한마을서 살고는있지만서두 우린 피차간 신세가 다르니까 실은 면목모르는 사이나답지 않습니까?>>

   <<그렇긴한데... >>

   하고나서 려홍이와 자기 아들이 어릴 때  있었던 일들이 새삼스례 상기된 손창유는 그지없이 불퇘나는 심기를 숨기려 애쓰면서 느릿느릿 말했다.

   <<젊은이는 이 늙은이가 진심으로 일깨워주는 말을 명심하고 들어두는게 좋암즉하네!>>

   <>

   려홍이는 은근한 위협에 미묘한 흥미를 느끼면서 입가에 잔웃음을 지었다. 손창유는 그것을 짐짓 감각하지 못한체 하면서 마치 인자한 늙은 도승으로나 된것처럼 설교하려 들었다.

   <<사람은 가르침을 받지 않으면 본성이 나빠질수 있다네. 그러니 옳은 타이름은 들어야 하는게 마땅한 처사라보네. 사람의 일생이란 본시 살아서 한번뿐인걸세. 헌데 어찌 그렇게 고생만 하다 죽겠나?... 사나이로 태여났으면 한번다시 곰곰이 생각해봄도 랑패없을거네. 길가는 나그네 제아무리 애달파도 지는 해는 말리수 없지. 인생에 청춘이 얼마인가? 지기와 용맹을 뽐내봄도 이한시절뿐인거네. 허니까 분별있는 사람이거든 우선 자기를 위해서도 잘 생각해봐야 하네. 사람이 저로서 제 앞길을 개척해야 하는 법이라네.>>

   <<젊은이!>>

   기회를 노리고있던 청지기가 올리미는 분기를 억제하면서 가면적인 온화한 태도를 취했다.

   <<무슨 벽이라고 사이두겠나. 까놓고말해서 나으리께서 오늘 모처럼 자넬부르신것도 바로 자넬 극진히 사랑해서이네. 그런데두 자네는 처음부터 그렇게?... 좀착실하게 들어두는게 랑패없을거네.>>

   려홍이는 반발심이 들뛰는 흥분을 가까스로 누르면서 광솔처럼 관 청지기의 얼굴을 보다가 그만 웃어버렸다. 자기가 은연중 조소를 당했음을 깨달은 청지기는 손등으로 탁상을 똑똑 두드렸다.

   <<이런 난화지맹이라구야 원! 그래도 충고를 듣지 않으려나? 자넨 그래 제 앞에 떨어진 복도 차버릴작정인가 응? 말만 곰상히 들으면 모든게 잘될판인데.>>

   <<저에겐 그런 복이 없습니다.>>

   려홍이는 이렇게 말하며 입가에 랭소를 띄였다. 그랬더니 청지기는 관자놀이를 푸들거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젊은이는 그래 우릴 따르지 않을텐가? 곰상히 따르면 일확천금을 얻을텐데도!>>

   <<예, 저에겐 그런 분복이 없습니다!>>

   <<돈이 싫어? 급도 싫어?>>

   청지기는 별안간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당금 삼켜버릴듯이 오만상을 찌프렸다. 손창유도 눈살을 곤두세웠다. 그리고야수처럼 본성을 드러냈다.

   <<후의를 고맙게 여길대신 아직두 그 고집인가? 그래 여태 집에 처박혀있으면서 뭘 했더랬나?>>

   그러나 려홍의 태도는 여전히 태연하였다.

   <<어머님산소도 못가보고 아버지의 병구완을 했지요.>>

   <<그 두상이 아직두 살아서 아들을 충동질해?>>

   <<불쌍한 아버지는 왜 건드려요?>>

   <<잔말말어. 청년들을 도망하게 충동한건 누구냐?>>

   <<난 몰라요.>>

   <<흥, 모른다구? 나한테 벌써 선통한 사람이 있는데도 속히려드느냐?>>

   려홍이는 그를 피끗보더니 낯을 돌렸다. 그러자 청지기는 득이 야양해거 따지고들었다.

   <<어때, 죄를 승인할테냐 안할테냐?>>

   려홍이는 “죄”라는 말에 더는 참을수 없었다. 그래서 자리를 차고 벌떧 일어나면서 그를 쏘아보았다.

   <<누가 죄졌단말이여, 내가?... >>

   <<그렇다, 바로 네놈이란말이다.>>

   <<흠. 나네게는 죄없소!>>

   손팡유가 상판을 푸들거렸다.

   <<조선사람들을 선동해서 뻔뻔스레 소작료를 탕감해달라더니만 이젠 또 내가 수향를 내오려는걸 방해하고있는구나? 나를 반대하는 도장수는 바로 너다!>>

   <<그런데는 어쨌단말입니까? 우린 그래 죽을때까지 종노릇만해야 하는가요?>>

   격분한 려홍이는 맞받아 도전했다.

   <<허, 너자식이 담도 크구나?!...>>

   자신을 더는 억제할수 없게된 손창유는 흉포한 마적의 본성을 드러냈다.

   <<과연 맹랑한 거지자식이로다! 네가 이 늙은이의 일빈일소에 너희들씨족의 화복존망이 달려있다는걸 그래 모르고있단말이냐, 이 뒈질놈아!>>

   격분이 그도에 오르는 두려울게 없었다. 려홍이는 름름한 자세로 의뭉하고 흉악한 그의 상판을 마주쏘아보았다. 아버지가 말씀하던 그 아름산의 마적괴수가 틀림없었다. 저주와 함께 치가 떨렸다.

   <<위협한다구 내가 무서워할줄 알아요. 보살인체하지 말아요!>>

   <<뭐라구?!>>

   흉심이 돌발한 손창유는 탁상을 뒤엎을듯이 뛰쳐일어났다.

   <<개자식! 내, 내가 오늘 네, 네놈의 각을 뜯어버릴테다! 얘들아, 오너라!>>

   손창유의 호령소리와 함께 문밖에 대기했던 몇놈이 선불맞은 승냥이마냥 집안으로 풀쩍 뛰여들들었다.

   려홍이는 분통이 터져 주먹을 부들부들 떨고있는 손창유를 멸시에 찬 눈길로 쏘아보다가 몸을 획 돌렸다. 그러자 손가네 불한당들이 그한테 달려들었다. 려홍이는 선참으로 달려드는 녀석의 면상을 주먹으로 갈기고나서 정면으로 들어오는 다른 한 녀석의 앞배를 힘껏 걷어찾다. 그자는 <<에쿠!>> 외마디소리를 지르면서 나가 너부러졌다. 그러니 다른 한 녀석이 비수를 뽑아들고 옆쪽에서 달려들었다. 려홍이는 몸을 홱 돌리면서 자기를 내리찍는 그자의 손목을 덥석 잡아비틀며 땅바닥에다 태질해놓았다. 허지만 려홍이는 적수공권이고 혼자몸이였다. ... 그리고 그는 몽롱해지는 의식속에서 련속적인 타격을 받으면서 여러개의 억센 마수가 자기를 틀어잡고 지지누르며 끌고 돌아친다는것을 어슴프레 느꼈다.

   <<한통 더 부어라!>>

   하는 자지러진 호통에 뒤이어 전신이 선듯해나면서 넋이 되살아난 려홍이는 굵은 바로 얽동여놓은 자기 몸에다 찬물을 바께쯔드리로 퍼붓고있는 털보와 게뚜더기의 괴죄한 상판을 보자 다시금 눈을 감아버렸다.

   <<려ㅡ홍ㅡ아!ㅡ >>

   하고 부르는 귀에 익은 소리가 어슴프레 들려왔다. 려홍이는 몸을 부르르 떨면서 눈을 뜨고 보았다. 아버지가 찾아온 것이다. 아버지는 태화전대돌에 던져진 아들을 발견하고는앞으로 쓰러질듯 휘청거리며다가왔다.

   해가 진다. 살기로 뒤덮힌 마당에는 어둠이 악마처럼 스며들었다. 아들을 부등켜안은 김로인은 원한에 사무쳐 가슴치며 목놓아 불렀다. 그러다가 그는 의식을 잃은 아들을 내려놓고 간신히 일어나더니 몸을 부르르 떨었다. 두팔을 허우적거리다가 넘어지고 넘어졋다가는 다시금 일어났다. 그는 분노가 사무치는 자기 가슴을 주먹으로 치다가 불이 펄펄 일고있는 눈으로 손창유를 쏘아보면서 그한테로 다가갔다.

   <<손창유, 이 피에 굶주리는 악마놈아!... 네, 네놈이 어쨌다구 죄없는 내 아들을 저 모양으로 만들어놓았느냐?... 치, 치를 먹겠느냐?... 고, 고기를 먹겠느냐?... 먹겠거든 먹어라! 자, 내것도 실컷 먹어라!... 이 가슴에 원한이 끓는다!... 네놈가문의 그 태산같은 죄악은 천추에 씻지 못할거다!... >>

   어디서 솟은 기운인지, 김로인이 웨치는 강개한 부르짖음은 손창유와 그의 아들, 그리고 그자들의 충복들을 모조리 씹어버릴듯 높고 악에 치받쳐 떨었다.

   김덕구로인이 퍼붓는 저주에 손창유는 눈알을 곤두세우며 이를 뿌드득 갈았다. 손자량은 아버지가 여직 이같이 미치광이모양으로 광포해진것을 처음본다.

   <<저, 저놈을 죽여버려라! 우리 가문을 모독한 저 거지를 당장 없애치우거라!>>

   앞으로 폭 꼬꾸라졌던 김로인은 갈퀴같은 손으로 땅바닥에서 진흙을 움켜쥐고 일어나 몇발자국 더 가면서 웨쳤다.

   <<이 악마같은 손가놈아! 아아, 통분타. 네놈도 끝장이 있으련만!... >>

   웨치고는 손에 쥐였던 진흙을 손창유의 상판에 뿌리고 허공을 잡아 뜯으면서 덮쳐들었다.

   <<에쿠!>>

   손창유는 황겁히 뒤로 물러섰다. 이때 손자량이 마치 피에 굶주린 승냥이같이 칼을 뽑아들고 날뛰다가 김로인의 옆꾸리를 들이찔렀다.

   일이 벌어진걸 알고 장원안으로 쓸어들었던 마을사람들이 이 처참한 정경을 목격하고 비분에 떨었다...

   려홍이가 개복했을 때는 마당에 누워있지를 않았다. 말이 울부짖는 소리에 정신이 든 그는 온몸이 후줄근히 젖고 반죽음이 된 자기가 조짚우에 던져져있음을 깨달았다. 우를 올려다보니 하늘이 보이지 않고 사방도 벽으로 둘러막혔다.

   (여기가 어디냐?... 손가네 마구간이로구나... >>

   일어나려고했더니 저주로운 바줄이 여전히 몸을 칭칭 동여매놓아서 똠짝할 수가 없고 뼈를 쑤셔대는 동통이 정신을 아찔하게했다. 몽롱해지려던 의식은 여물을 빼앗아먹느라고 발판을 굴러대며 아귀다툼하는 극성스러운 말울음소리에 다시금 맑아졌다.

   (그렇지!... 나는 죽지 않고 살아있구나!... 그런데 아버지는? 불쌍한 나의 아버지는? 아!... )

   번개불이 번쩍번쩍하면서 하늘을 무너내릴듯이 우레소리 요란하더니 쏴! 하고 비가 억수로 퍼부었다.

   마구간과 통하는 널문이 덜커덕하고 열리더니 사나이 둘이 좌우량켠의 구유사이로해서 이쪽으로 걸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 사나이는 줄곧 욕지걸이를 해대면서 무고 뜯으며 싸우는 말들을 잡아뗐고 다른 한 사나이는 이쪽으로 그냥오더니 사이문을 삑 하고 열었다. 그는 들어오더니 등을 돌리고 누운 려홍이를 석유람프로 비춰보고나서 급히 도로 나가버렸다. 그러자 양마종인듯한 저쪽이 그한테 물어보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어때, 죽지는 않았던가?>>

   이쪽에서 석쉼한 소리로 두덜거렸다.

   <<모르겠어, 아직두 제대루 살아난것 같지 않아. 제길할것, 제놈들은 밤중까지 술쳐먹고 놀다가 뻐드러지고 나더러 저따위 송장을 지키라한단말이여.>>

   <<아직 개복하질 않았단말이지? 어떡허나 죽지는 말고 살아야 할탄데.>>

   하고 저쪽이 동정심에 젖어 말하는데 이쪽은

   <<체, 그러고 살아선 물 해? 살아나긴 열 번도 들렀어.>>

   하고 신풍스런 소리와 함께 석쉼한 소리가 말을 계속했다.

   <<자넨 제 눈으루보지 않았어. 어제오늘은 손대감이 수향댈 조직하다가 랑패보니 분이 상투까지 올라 풀출거리고있단말이여!>>

   <<그렇다구 해서 아무렴 제 아들손에 죽은 령감을 파내다가 효수까지 하겠나?>>

   <<거야 모르지. 손대감은 성미가 본시 류다르니까. 이전에 마적질해먹었다는 소문이 돌고있으니 그게 사실인지는 몰라도 왜 분통이 안터지겠나.>>

   <<형, 사람을 죽이구두 꿈쩍않는것만 보지!... 그런데 이보, 무슨 다른 징조는 안뵈나? 자넬 여기다 보초세운건누군가?>>

   <<그건 곽털보야.>>

   <<그자식이 돼지같은게 오자마자 급은 제꺽 췄네.>>

   <<털보가 그래뵈두 글깨나 아는 모양이지. 저 어디라더라, 탄광에서 십장노릇까지 했다나?>>

   <<헌데 여기론 어떻게 돼서 왔다는가?>>

   <<듣자니 손대감이 데려왔다구 해. 뭐 그의 애비를 손대감이 잘 안다는가?... >>

   <<체!>>

   털보라는게 누굴가? 그게 바로 자기가 알고있는 그 털보가 아닐가?... 눈이 차츰 올롱해진 려홍이는 정신을 가다듬고 그네들의 말소리를 들으면서 전에 다리목에서 털보를 요정냈 일이며 아까 그가 자기에게 란매질하던 일들을 하나하나 상기했다. 손창유는 바로 저따위 인간들을 끌어모으면서 나까지 한무리에 넣으려고 했단말인가?...

   저쪽칸에서 두사람의 음성이 갑자기 낮아지더니 양마종인듯한 사나이가 무거운 한숨 끝에 걱정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과연 끔찍두하지... 저런 사람을 어떻게?... >>

   <<아깝나뭐. 고집쓰지 말고 저희들 조선사람을 네리고 수향대로 곰상히 들면 문제없었지!>>

   <<체, 수향대엘 들지 않은게 그래 죽을 줸가 뭐?... 한심한 일두있지, 임잔그래 백정노릇시키면 할텐가?>>

   <<시키면 해야지 별수있나.>>

   <<원 사람이, 인제보니 속통은 짐승같이 돼먹었구나.>>

   양마종인듯한 사나이가 이쪽을 되게 책망하고나서 혼자 무어라 한탄하더니 다시금 시끄럽게 울부짖으며 싸우기 시작하는 말의 코등을 박아놓으면서 갈린 목소리로 지청구했다.

   <<이눔의 말 사납기는 제기! 너같은 미물마저 어쩌면 이렇게두 제 주인을 신통히 닮아먹었느냐?>>

   한참 억수로 퍼붓던 비가 멎었다. 사양실에서 말을 서로 주고받은지도 둬시간 착실히 지났다. 여물을 산더미같이 썰어서 무진 여물칸은 캄캄하고 우중충했다. 보초서던 사나이는 곤해서 어디엔가 곤드러진 모양이였다.

   (아ㅡ 저놈들이 나를 이제 끌어내다가... )

   려홍이는 칼도마에 오른 고기와도 같은 자기 신세를 생각하고 형용할 수 없는 비감과 통분에 몸을 떨었다.

   정신을 잃었다가 다시금 깼다. 사나운 말울음소리가 또 한바탕나더니 말발굽소리같은게 나다가 끊어졌다. 갱신하여 신경이 고도로 예민해진 려홍이는 이윽고 바깥과 통하는 앞문이 살며시 열리는것을 보았다. 어둠속에서 시꺼먼 무넛이 살그머니 들어오더니 처음에는 저쪽을 손으로 더듬다가 이쪽으로 더듬어왔다. 사람의 머리가 만져지자 꽉 붙잡는것이였다. 려홍이는 어망결에 머리를 흔들며 몸부림쳤다.

   <<살았구나! 가만있어, 나야, 천오야!>>

   황급한 가운데서도 간곡한 속삼임이였다.

   <<빨리 여기서 나가자! 날이 밝으면 손자량녀석이 너를... 제길할, 저 보초병놈이 깨낫구나!>>

   선득선득한 낫날이 결박해놓은 바를 재빨리 끊기 시작했다. 려헝이는 몸에 감긴 바가 풀어지자 귀운이 부쩍 되살아나는것을 느꼈다. 그는 어둠속에서 자기 몸을 추슬렸다. 그런데 이때 석쉼한 목소리임자이던 그자의 기침소리가 났다. 람프등이 비치더니 그 보초병녀석이 남천오가 방금 들어왔던 널문을 삑 열었다. 이런 박부득이한 경우에 맞다들자 경급한 남천오는 과단성있게 손에 쥔낫으로 그자의 목을 팍 찍어 넘어뜨렸다. 땅바닥에서 피를 토하는 툴툴소리가 났다.

   려홍이는 천오의 부축임을 받으며 북문밖까지 나왔다. 그런데 아! 저건 누군가? 여기서 한 사람이 또 말을 갖고 기다리고있지를 않는가! 그는 손지주네 일등마부 양운파였다. 두사람은 간단히 급촉한 말을 주고받더니 려홍이를 허궁들어 말잔등에다 올려앉혔다. 려홍이는 말잔등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무엇이나 단단히 잡자고 악을 썼다.

   <<자, 이걸 잡아라, 고삐다!>>

   남천오가 려홍이의 손에 고삐를 쥐여주면서 부탁했다.

   <<빨리 달아나라! 부디 조심해서... 자 얼시덩!>>

   려홍이가 고삐를 낚아채자 말은 달리기 시작했다.

   뒤늦게야 깨난 늙은 개가 냄새를 맡아냈는지 <<컹, 컹!>> 자지러지게 짖어대기 시작했다.

   졸지에 긴장이 풀렸던 려홍이는 정신을 다시 바싹 도사리고 말을 계속 힘껏 뛰웠다. 뒤에서 눈먼총소리가 지겹게 들려왔다. 이젠 온 손가장이 발칵 뒤번지는 모양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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