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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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번개치는 아침>> 1장 (9)
2014년 11월 27일 18시 36분  조회:3238  추천:0  작성자: 김송죽
 

  9 

   려홍의 상처는 재빨리 회복되여갔다. 침상에 누워있지 않은지는 벌서 오래고 그자신이 마당을 사이두고 9호 외과병실과 마주하고있는 처치실에 가서 붕대를 풀고 약을 갈아대군했다. 그 일을 어떤 때는 녀간호원이 해주었고 어떤때는 남간호원이 해주었다. 의사들은 모두가 매일 바삐 서둘렀다. 려홍이가 황숙금을 못본지도 며칠된다. 닷새전인가 어쩌다 처치실에서 그를 피뜩 만났었는데 그는 려홍의 상처가 거진 완쾌되는것을 보고

   <<기뻐요. 말성일구지 않았으니 다행이군요.>>

   라고 간단히 말하고는 총망히 나가버렸던 것이다. 려홍이는 좀 섭섭한 감이 나긴 했어도 그건 황주임이 등한해진 탓이 아니고 사업이 몹시 븐망해졌기때문이기에 리해할수 있는 일이였다.

   듣자니 난민들이 시내로 쓸어들고있기에 시정부는 그들을 미처 받아내지 못할 지경이고 황숙금주임은 새로 설치한 <<난민보건소>>의 일까지 겸해서 맡다나니 일신량력으로 동분서주한다는 것이였다.

   병원에 있는 성이 장가라는 중국젊은이가 하는 말이 황숙금은 려홍이를 병원에다 그냥 눌러둘 뜻인것 같다는 것이였다. 감사한 일이긴하지만 려홍이는 병원에 남아 있고푼 마음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여기서 할 일이 무엇인가? 뼈다구에 피가 한동이씩 개핀 녀석이 멀쩡하게 남의 뒤수습이나 하면서 세월을 보낸단말인가? 금록이를 찾아가 이 일을 말하고 그와 함께 시경비대로 가서 그곳에 있는 그 <<지휘원동지>>라던 사람을 만나볼 생각이 간절할 뿐이였다. 그래서 어제 박금록이를 만나러 걸어서 시교에 있는 발전소까지 가보았는데 공교롭게도 그를 만나지 못하고 돌아와버렸다. 악당들이 남으로 나가던 짐차를 정복하여 화물들을 략탈해 간 후 차가 여러날을 통할수 없었기에 발전소로동자들이 동원하여 철길을 수건하러 갓기 때문이였다.

   그곳으로 한번 다녀오는데 다리품을 착실히 팔아야 하였기에 려홍이는 래일 다시 가보기로 하고 오늘은 아무데도 나가지 않았다.

   오전 10시쯤되여 완전무장한 시경비대전사들이 느닷없이 자동차를 타고 달려와서 거의 숨져가는 중상자 둘과 다리부러진 사람 하나를 병원에 얼른 맡겨놓고 돌아갔다. 의사와 간호원들이 응급처치를 하느라고 분주히 돌아쳤다.

   부상자들은 시운수대의 직원과 로동자들이였다. 오늘아침에 도시에서 동남쪽으로 200여리 상거해있는 지점으로 짐실으러 자동차를 몰고 가다가 중도에서 매복했던 악당들을 만났는데 운전수를 비롯한 세사람이 당장에서 죽고 차를 빼앗겼다는 것이였다.

   다리부러진 사람이 9호 외과병실에 입원한 탓으로 려홍이는 그를 면목익히게 되었는데 그는 보매 억센 중국로동자였다. 수술이 끝나 부러진 디리에 판자를 대고 붕대를 팅팅 감은 그는 진통되지 않아 오래도록 신음소리를 내더니 한잠자고나서야 즘즘해졌다.

   <<청년은 언제 입원했소?>>

   그가 자기를 걱정스레 보고있는 려홍에게 말을 건늬기까지 했다.

   <<난 벌서 스무날도 넘었어요. 그저 어깨를 좀 다친걸 갖구서 입원했더랬어요. ... 그래 아까만 좀 덜한가요?>>

   려홍이는 그의 창백해진 얼굴을 보면서 측은히 물었다. 그 중국로동자는 묻는 말에 대답이 없다가 경련이 일어나는 것 같이 부르르 떠는 입술을 고통스레 깨물면서 악당들을 급살이나 맞으라고 저주했다.

   <<나도 악당놈들 손에 상했지요.>>

   려홍이도 자기 감정을 토로했다.

   <<살인백정놈들이 낮에도 살인하고 물건빼앗으니 사람들이 어떻게 맘놓구살겠습니까. 그놈들을 말끔히 잡아 시알머리를 없애버리지 못하는게 원통랍니다.>>

   <<이제 다리만 낫는 날이면 일이고 뭐고 싹 집어치우고 그놈들부터 잡으러 나갈테요!>>

   부상자는 아픔을 참느라고 그러는지 격분해서 그러는지 입술을 다시금 피날지경으로 깨물었다.

   <<그놈들의 꼭대기에 불벼락이 떨어질날이 있겠지요. ... 참으시오. 여기선 치료를 책임지고 잘해줍니다. ... 억지로라도 뭘 좀 자삽시오. 그러면 얼마간이래두 아픔이 잊어지지요.>>

   려홍이는 갖은 방법으로 그를 위로해주고싶었다.

   저녁해가 설핏할 때 금록이가 찾아왔다.

   << 늘입원했다구? 어떻게 된 부상자라오?>>

   이렇게 묻고나서 금록이는 뒤를 덧붙였다.

   <<입원자들이 들이미는데 형님은 침대를 내야겠소. 이젠 상처도 괜찮으니 우리 집에 가 있기요.>>

   사실 려홍이도 그럴 마음이였다. 그래서 그를 따라 정원에 오자 그록이는 악당들이 끊어놓은 철길을 수리하던 이야기를 했다.

   육중한 기관차대가리가 탈선하는바람에 뒤에 딸린 바곤들이 서로 맞쪼으면서 철길아래로 나딩군것이 보기조차 한심하더라는 것이다. 그런것을 수천명이 달려들어 기계로 뜨고 움직여서 겨우 정거장까지 가져왓다고 하며 철길도 원모양대로 수리해놓았다고 했다. 그런데 모두들 철로호위대가 든든치 못하다고 떠들면서 어떤 사람들은 비도들의 만행에 격분해서 그 장소에서 이제 철로경위병을 더 모집하면 자기를 넣어달라고 탄원까지 했다는 것이였다.

   피만민들을 한군데 가두고 물건을 털어낸다, 대낮에 사람죽이고 자동차를 빼앗아간다, 지어는 기차까지 전복하고 략탈한다... 이루 헤아릴수 없는 무시무시한 끔찍스런 일들이 날에 날마다 꼬리물고있으니 악당들이 저지르고있는 그 죄악적행위는 천만백성들의 한결같은 증오와 격분을 자아내고 있었다.

   몇백 몇천의 손창유가 있고 손자량이 있고 장삼이 있고 리경광이 있으며 백납먹은 자에다 털보, 게뚜더기, 곰보가 있다. 그러니 려홍이 혼자서만도 익슥히 알거나 친히 눈으로 보아 알고있는 마적, 한간, 불한당만 해도 이같이 적지 않은데 이 세상에 어두귀면지졸같은 도적놈, 건달, 사기군과 협잡군, 강도와 살인백정들은 또 얼마나 많을것인가? 이런자들이 하나,둘 짝패를 짓고 그 짝패가 합쳐 무리를 짓고 그 무리들이 또 합쳐서 집단이 되고있다. 악당ㅡ 비적들, 이름만들어도 흉악한 이리떼를 련상케 한다....

   <<가만, 저게 무슨 소리요?>>

   금록이가 갑자기 놀란표정을 지으며 눈살을 찌프렸다.

   <<뭔데?!>>

   려홍이도 굳어진 얼굴로 귀를 강구었다.

   처음엔 정거장에서 나는 기차고동소리였는데 뒤이어 들려온것은 총소리같았다. 웬 일인지 몇초간은 아무 소리도 없더니 어데선가 갑자기 기관총소리가 콩볶듯 나기 시작했다.

   <<달려들었구나!>>

   려홍이는 그 어떤 강한 충격에 갑작스레 올리튀는 용수철마냥 벌떡 일어나면서 웨쳤다.

   이때 벌써 의사와 간호원들은 밖으로 뛰여나오고 있었다. 병자들더러 까딱말고 집안에 있으라는 명령소리, 누군가를 찾고있는 다급한 부름소리, 게다가 수직인원이 개까지 악패듯 짖어서 병원뜨락은 갑자기 소란해졌다.

   <<나도 병잔가 뭐?...>>

   려홍이는 어쩌면 좋을지 몰라 망설였다. 이때 간호원 한명이 달려오더니 려홍이한테 아무런 지시도 없이 병실로 들어갔다가 인차 도로 나와 어디론가 급히 뛰여가버렸다.

   의사와 간호원들이 손에 총을 잡고 한군데 모이더니 대문쪽으로 달려갔다. 외과의사가 모두를 지휘하고있는데 그들의 행동은 놀랄 정도로 민첩했다.

   <<동무, 총쏠줄 아오? 옛소!>>

   면목을 익혀둔 중국간호원 쑈장이 총 한자루를 들고 달려오더니 그것을 려홍에게 주고 금록이보고 따라오라해놓고 어디론가 날파람나게 달려갔다.

   려홍이는 의사와 간호원들이 지키고있는 대문가로 갔다. 이 병원에서 어느새 벌써 반격준비를 다해놓고있음에 실로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총소리가 끊지 않고 그냥났다. 정거장구역너머 거의 시내중심에 이르는 한 거리에서 싸움이 벌어진 모양이였다.

   손에 짧은 기병총을 들고 땀벌창이 되어 달려온 시경비대의 련락병은 여기서 쫓겨갔던 안장코가 마병과 보병합쳐 500여명을 휘동해서 시내를 갑자기 들이치고있다고 알렸다.

   외과의사는 놀라거나 덤비는 기색도 없이 보통때의 음조에다 약간 비웃음을 섞어 말하고는 겁을 집어먹은 행인들이 정신없이 들고뛰고 헤덤비면서 숨어버린 휑뎅그렁해진 거리쪽에 눈총을 쏘았다.

   려홍이가 유저를 절컥거리며 간단히 무기조법을 익히고있을 때 시내로 들어갔던 한무리의 비도들이 밀려나왔다. 구석진 이곳에서 어물거리는 꼴을 보니 흩어진 대오를 수습해가지고 다시들어칠 잡도리임에 틀림없었다.

   그자들이 황황히, 그러면서도 완강하게 맞불질해대면서 어둠이 깃들고있는 병원가까이로 바투 접근해 왔을 때 사격명령이 떨어져 뒤통수를 잔뜩 노리고있던 총들이 일제히 불을 뿜기 시작했고 아주 가까운데서 날아온 수류탄들이 놈들의 무리속에 떨어져 비도들은 더욱 비참한 혼란에 빠져버렸다. 어느 거리에선가 쫓겨온 마병들이 혼란에 빠진 자기 편 무리를 뀌뚫고 달아나버리자 포위에 빠진줄알고 아우성치던 놈들이 필사적으로 사격구를 빠져 달아나기 시작했다. 죽을 놈은 죽고 달아날 놈은 달아나 전투는 째빨리 일단락을 짓고말았다.

   이틑날 려홍이는 난생처음으로 겪어본 전투에 대해서 흥분해서 담론하였다. 려홍은 여럿을 둘러보며

   <<그런데 내가 처음에 던진 수류탄 두 개는 왜서 터지지 않습디다.>>

   하고 말해서 이야기꺼리를 만들었다.

   <<그러게 수류탄이 두 개나 거리에 나딩굴고있었구만! 그게 그래 동무가 뿌린게였소?>>

   누군가 묻는 말에 제꺽 중간채여

   <<아유! 별일다 보겠네. 심지빼지 않은 수류탄도 던지면 터진대요?>>

   하고 한 처녀간호원이 동을 달아 모두들 폭소를 텃쳤다.

   비도들을 격퇴시킨 환락속에서, 가시덛힌 비웃음도 조롱도 아닌 우스개소리였지만 려홍이는 그만 얼굴에 모닥불을 끼얹는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제길할, 등신같은게 치마입은 여자만도 못했으니 원!)

   급작스레 발생했다가 급작스레 종말지은 접전이여서 그것이 처음에는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가 후에는 흥분과 가지가지 잡다한 의론속에 휘몰아넣었다. 시경비대를 절찬하는 말이 대단했다. 렬세하다고 보아온 시경비대가 악착스런 보복자들의 돌연습격을 분쇄해버린것이 대단한 영웅적행위로 말밥에 올랐다.

   시경비대에서는 이번 반격전의 전과를 조사보도하였다. 빼앗은 말이 30여필이고 살상한 비도가 근 백명에 달한다는 것이였다. 그러니 5분의 1이 섬렬된 셈이였다.

   안장코는 시경비대를 만만히 보고 서뿔리 덤벼들었다가 어쩌지도못하고 붙잡히우고말았다. 만용과 잔인으로써 광포해진 이 마적출신은 병사를 1천명 달라고 사정햇건만 절반밖에 주지 않은 사문동을 죽어라고 욕했다. 예산대러 1천명만 거느리고왔더면 패배당하지는 않았을게고 아직은 방비도 든든치못한 이 도시를 손안에 넣엇을 것이다. 그랬더면 오늘아침쯤은 벌써 아르금시의 새시장은 고 아무개라고 선포하지 않았겠는가. (안장코는 성명이 고현발이였다.) 이제 이 안장코의 신세가 정말 자기 코처럼 납작하게 되었구나 하고 안장코는 분해서 창자마저 끊어질것 같은 비탄에 빠지고말았다.

   사문동은 허풍떠느라고 5천명보안대를 조직했다고 요언을 펼친것이지 기실은 이제 겨우 1천 5백여명밖에 끌어모으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것을 안장코가 1천명이나 요구했으니 들어줄 리가 없었다. 먼저 500명을 주어 집적거려보게 하고 장차 준비되는 것으로 보아 자기가 직접 출마해서 도시를 공점하여 발을 튼튼히 붙일 생각이였던 것이다. 사문동은 자기가 이름지은 <<보안대>>를 5천명이 아니고 5만명도 아니라 50만명으로 되게 만들어 장차 온 북만, 나아가서는 온 동북을 한번 통치해보자는 야심을 품고있었다. 시민들은 사문동의 졸개이며 이번에 공포와 불안을 가져다 준 장본인인 안장코를 붙잡았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기뻐하면서 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인물짝인가 보았으면 하고 갈망했다.    

   황숙금을 만나지 못해 사정도 애기하지 못하고 그저 의사와 간호원들에게만 진심어린 작별인사를 나누고 나온 려홍이는 금록이와 함께 시경비대를 찾아 발걸음을 옮겼다.

   <<받아만주면 난 꼭 가입항테야. 숙금아주머니의 말대로 몇몇이서 복수단을 조직해 가지고 원쑤갚는다는건 정말 어리석은 짓이겠다. 그놈들이 몇백,몇천명씩 무리지어 달려들고잇으니까.>>

   지금와서 생각하니 싸움도 보복도 개인과 개인간에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집단과 저 집단간에 진행되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 몸을 커다란 집단속에 넣어야만 그것을 해낼수 있을것 같게 믿어졌다. 실로 다른 방법은 없어보였다. 그리하여 려홍이는 먼저 경비대에 들어가서 복수할 기회나 방법을 찾자고 마음먹었다.

   <<연변지방은 이곳처럼 소란하지 않다는데... >>

   금록이가 하는 말이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머니를 그곳으로 보내야겠소.>>

   그는 연길에 외삼촌이 있다고했다. 몇해전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한분만을 모시고 살아온 금록이는 일찌감치 어머니를 그곳에 피난시켜놓고 려홍이와 함께 지내자고 벌서 세 번이나 곱씹고있는 판이였다. 유별나게 소란스러운 이곳 북만의 형세를 고려해서는 그렇게 하는것도 랑패없을것 같았다.

   <<어머니를 보내놓고 나도 경비대에 들테요.>>

   <<금록이. 그럴필요없을것 같애. 집을 영영 패가칠수도없는 일이고. 그리고 그록에겐 어머니가 살아계시구 집이 잇고 직장도 있지만 난 보다싶히 어무거도 없거던. 갖고있는건 오로지 복수하자는 마음뿐이야. 그래서 난 총을 쥐자는 거지 뭐.>>  

   어느새 시경비대가 자리밥고있는 거리에 이르렀다.

어제 여기서는 안장코도배와 일장격전이 붙었으므로 싸운흔적이 뚜렷하게 눈에 띄였다. 길량켠 층집의 유리창들이 깨졋고 어떤 지붕은 기와장들이 반남아 없어져버렸다. 지붕꼭대기에서 기와장까지 내려뿌리며 싸웠던 모양이다. 거리에 지저분히 널렸던 비도들의 시체는 벌써 다 치워버렸고 지금은 가두주민들이 거리바닥에 널린 깨진 기와장이며 벽돌장이며를 수습하며 청소를 하고있었는데 장난꾸러기아이들은 탄알깍지를 줏느라고 뛰여다니며 떠들어댔다.

   중국아낙네들이 어제저녘때 싸움이 붙는통에 혼빵나던 일을 이제와서는 즐거운 회상거리로 삼고 얘기를 하고있었다.

   <<우리 집 애아버지도 집에 들어온 놈과 싸우지를 않았겠소. 급한개9 담장뛰여넘는다구 아유 원! 그놈이 그렇게 미친개모양으루 넋없이 뛰여들줄을 누가 알았겠수. 난 그만 혼겁했더랬지. 그런데 애아버지는 무서워하기는커녕 어느새 목침을 쥐더니 그놈의 대갈통을 까서 묵사발되게 만들어놓고는 문을 걸었다우. ...그러구는 어떻게 했겠소. 헛간으루 해서 지붕에 올라가 그놈들을 답새겼지.>>

   <<남의 집 기와장까지 버렸으니 우린 어떡허라우?...>>

   깨진 기와장가운데서도 쓸게있는가고 큰것을 고르고있던 아낙네가 남의 말끝을 잡고 원망섞인 소리를 했다. 그저자 앞이빠진 늙수그레한 아낙네가 그의 말을 분질러버렸다.

   <<그런걸 원망할때가 아니오. 쓸만한건 주어 다시올리구레. 그렇게 악쓰고 싸웠길래 그놈들을 인차 쫓아냈지, 안그러구 그놈들이 이기구 들어앉는날이면 어쩔번했겠수 원!>>

   이때 저쪽 모퉁이에서 사람들이 몰켜다니며 버쩍 떠드는 소리가 났다. 려홍이와 금록이도 걸음을 멈추고 그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저기 시경비대쪽으로부터 뒤짐을 단단히 묶은 사람 하나를 어디론가 압송하고있었다.

   묶이운자는 초리 짧은 흰머리가 마치 고슴도치바늘모양으로 빳빳이 일어서고 상판이 네모지게 생긴 나먹은 두상이였는데 사람들은

   <<안장코다! 저놈이 안장코다!>>

   <<저놈을 죽여버리지 않고 왜 아직두 살려두고있는가?>>

   <<이놈아 고개들라, 낯판대기나 보자!>>

   하고 소리치고 욕질하면서 저주를 퍼부었다.

   시경비대사령부는 벽에 누른색나는 장방형의 사기를 박은 2층집이였다.

   <<안장코가 방금 이 안에서 나왔지?>>

   <<바로 저 문으로... 심문받고 가는 꼴인가봐?>>

   한길되는 벽돌담밑을 걸으면서 두 청년은 기분좋게 주고받았다. 어느덧 대문가에 이르렀다.

   <<어디루 들어가자는거야, 물러섯!>>

   팔에 붉은완장을 낀 보초병이 버럭 소리를 쳤다. 그의 찌르는듯한 시선이 몸을 재빨리 훑었고 억센 손에 틀어쥔 무시무시한 총끝은 두 젊은이쪽으로 향했다.

   <<우, 우린 사람찾으러 왔습니다.>>

   금록이가 자주 깜박거리는 눈으로 총끝을 보면서 급하게 떠듬거렸다.

   <<넌 누구냐?>>

   <<저 병원에 입원했던 사람인데... >>

   금록이가 우물거리며 미처 대답못하기에 려홍이가 한발 나서며 말햇더니 보초병은 미간을 찌프렸다가 도로 펴며 어처구니없는지 피식 웃고말았다.

   <<병원에 입원햇던 사람인데 어쨌단말이요? 의사를 찾자구 그러우? 여긴 병원이 아니니 돌아가!>>

   <<아 아니, 그런게 아닙니다. 우린 의사찾으러 온게 아니라 여기에 계시는 분을 만나려구 왔습니다.>>

   려홍이가 약이 올랐을 때 처럼 얼굴을 붉히며 변명도 하고 해석도 했다. 그랬더니 보초병은 총끝을 숙이고 한걸음 다가서면서, 그러나 몹시 경계하는 예리한 눈길로

   <<누구를 만나러 왔단말이요?>>

   하고 물었다가 인차 양보없는 쌀쌀한 어투로 명령했다.

   <<요즘 외계인은 통행금지요. 돌아가시오!>>

   <<흥, 되겐 까다롭게 구네. 우리가 나쁜사람인가, 뭐.>>

   려홍이는 밸이 꼬여나서 이사이러 침을 찍 갈기며 두덜거렸다. 그랬더니 조선말을 알아듣지 못한 보초병은 험상한 표정으로 당장 무슨 요정을 낼듯이 쏘아보는것이였다.

   <<돌아갔다가 후일 다시보세. 자, 어서 가자구!>>

   금록이가 제꺽 나서서 푸푸거리는 려홍이의 잔등을 밀었다.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지 못한 려홍이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실로 보초병이 그렇게까지 엄하게 단속하고 들여놓지 않을줄은 몰랐다. 물론 금방싸우고난 뒤끝이여서 형세가 복잡하니 경계가 심한것도 있겠지만 그러나 보초병이 지내 사람도 가려봄이 없이 의심하고 믿어주지 않는게 일면 서운하였다.

   (내같은 인간은 만나볼수도 없는 높은인물이란말인가?)

   눈물겨운 고난사로 가득찬 이 청년에게 숭엄한 감정의 불씨를 숨어주고 걸어나갈 훤한 앞길을 가리켜줄 그 어였한 영상이 눈앞에 우렷이 떠오르지만 어쩐지 그와 자기와의 사이에는 무너뜨릴수 없는 장벽이 가로막혀서 쉬이 만나긴 힘들것 같은 생각이 무럭무럭 솟아올랐다.

   이틑날도 가보았더니 다른 보토병도 역시 들여놓지 않았다. 그리하여 지치고 락심해서 다시 돌아오는수밖에 없었다.

   (이려홍이가 그래 정말 그분을 만나보지 못하고만단말인가?)

   화가 뒤번지는 려홍의 가슴속에서는 그 어떤 엄혹한 시련도 이겨내면서 무자비한 복수를 하고야말리라는 맹세만이 굳어져갔다.

   드팀없는 계절은 도시에서도 자기의 빛이 짙어가게했다. 잎이 노랗게 단풍들고있는 가로수들을 보면서 려홍이는 혼자말처럼 중얼거렸다.

   <<촌에선 언녕 가을을 시작했겠구나. 모두들 어떻게 지내고인는지?...>>

   그러고는 가슴아픈 추억을 다시하지 않으려고 머리를 저으며 애를 썼다.

   금록이가 다니는 화력발전소는 유유히 흐르는 송화강남안에 자리잡고 있었다. 시가남쪽에 있는 정거장으로부터 도시주위를 활등모양으로 반원을 그리면서 뻗어들어온 철도가 그 발전소의 허여스름한 벽밑까지 닿았는데 레루장을 울리면서 가끔 검은 기관차대가리가 무개차바곤을 끌고 미끌듯 달려와서는 석탄을 부리워놓고 돌아가군 했다.

   철길너머에는 아직 한번도 손길이 닿지 않은 일망무제한 초원이 펼쳐져있었다. 금록이가 출근할 때면 려홍이는 말을 끌고 이 초원에 와서 풀을 뜯기군했다. 말은 려홍이가 입원한 새에 내내 금록이가 거두어왔다. 그런데 근래에 와서 려홍이는 말을 처리해버리기로 마음먹었다. 그것은 내내 이렇게 한가로이 풀을 뜯기며 세월을 보낼수도 없는 일이고 더욱이 하루속히 어깨에 총을 메고 복수전에 나서려는 이즈막에 와서는 몹시 거치장스럽게 여겨졌기때문이였다. 그래서 금록이와 상의했더니 금록이도 말을 항승병원에 넘겨주는데 찬성해나섰다.

   이틑날은 일요일이였는데 날씨도 좋았다. 금록이도 마침 이날은 쉬게 되었다. 둘은 일찍이떠나 말을 항승병원에 가져다 넘겨주었다. 그결에 오래간만에 황숙금주임을 만나보았는데 그는 여간만반가와하지 않았다. 병원에서는 물론 말을 감사히 받아주었고 사례의 말로 려홍이가 퇴원할 때 한 인사말보다 곱절이나 했다. 그래서 려홍이는 금록이와 함께 한결 거뜬하고 기쁜 심정으로 돌아오게되였다.

   그들은 한참을 걸어오다가 북쪽골목에서 나오는 한 교예단 행렬과 맞다들게 되었다. 알록달록 괴상한 옷을 주어입은 어리광대가 앞장을 섯는데 길가던 행인들과 람루한 옷을 걸친 애들이 이 굼뜬 행렬을 동반했다. 려홍이는 여직 이 시내에 이러한 교예단이 있는줄을 몰랐다. 아마 다른 도시에서 돈벌이하러 온것이라고 추측했다.

   교에단은 려홍이가 2년간 갇혀있었던 헌병대감옥앞을 지났다. 나팔수는 운두높은 와룡관을 헝겊으로 만들어 쓴 키크고 낯가죽이 주글주글한 사나이였는데 숨지는듯한 느린곡을 불어대다가 헌병대감옥구역을 채 벗어나지 않은 한 자그마한 골목어구에 이르러 갑자기 높고 챙챙한 곡을 바꾸어 불어대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여기에다 자리잡고 한판을 벌리자는것 같았다. 북소리, 쟁쟁이소리까지 합쳐서 더욱 귀청을 쨀듯이 요란스러웠다.

   금록이가 먼저 구경하고 가자고 하니 려홍이도 선듯이 응했다. 려홍이는 짐작에 교예배우들이 장소표식물로 삼을듯한 굵다란 가로수곁에 가서 기대여 섰다.

   드디여 공연이 시작되였다. 눈두덩이 불룩하고 눈섶이 흰 암팡스레 생긴 령감이 나와 처음에는 그닥지 않은 요술 한가지를 피웠다. 두 번째하는건 그래도 볼만하였다. 요술쟁이는 어리광대가 주는 바늘 한줌을 받더니 그것을 입안에 넣고 꿀꺽 삼켜버렸다. 그러고나서 이번에는 빨간 색실을 얻어서 그것을 코구멍에 쑤셔넣었다. 그런 다음 손바닥으로 자기배를 대고 무지르다가 재채기를 했는데 그다음엔 손가락으로 코구멍을 뚜져 실끄트머리를  찾아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색실은 코물에 젖어 나오는데 입에 넣고 삼켜버렸던 바늘이 죄다 그 색실에 꿰여져나왔다. 사람들은 <<와!ㅡ>>경탄을 금치못하고 박수를 쳤다. 북소리, 쟁쟁이소리가 한바탕 울린다음 다른 종목이 시작되였다. 이번에는 말쑥한 젊은이가 나와서 해볓에 번쩍거리는 비수 세자루를 가지고 재주를 부렸다. 표연이 여러 가지였다. 비수 세자루를 엇바꿔가며 공중에 뿌리고 받고 하는데 그 동작이 빠르고 민첩하기 비할데 없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공중에서 떨어지는 비수를 받아서 련거퍼뿌리는데 세자루가 모두 날아와 바로 려홍이가 기대고 서있는 나무에 한일자로 쭉 내리꽂혔다. 려홍이는 어망결에 나무에서 얼른 몸을 뗏다.

   바로 이때였다. 마른 하늘에 생벼락치듯 총소리가 <<땅!땅!>>하고 울렸다. 그러자 나팔불던 자가 앞으로 쿡 꼬구라졌고 뒤이어 난데없는 사람들이 욱 뛰여들어 일장의 란투를 벌리면서 교예배우들을 붙잡기 시작했다.

   방금 재롱부리던 자가 자기를 붙잡으려는 사람과 부둥켜안고 필사적으로 대항했다. 처음에는 깔리웠댔으나 이번에는 대방을 올라타고 앉아 악을 써가며 목을 죄이는데 순간 려홍이는 깔리운 젊은이를 알아보고 초풍할만큼 놀랬다.

   전날 경비대사령부문을 지키던 그 보초병이였던 것이다. 교예배우는 뛰쳐일어나더니 손을 뻗쳐 비수자루를 쥐려했다. 이 찰나에 려홍이는 몸을 날래게 솟구치면서 발로 그자의 턱주가리를 힘껏 올리차서 꺼꾸러뜨렸다. 그자가 얼음판에 넘어진 소처럼 눈을 까뒤집고 버둥거리는것을 누군가 재빨리 달려와 수갑을 채웠다.

   교예배우들은 하나도 도망치지 못하고 죽거나 체포되였다. 도대체 웬놈들인가?... 그자들은 시내에 잠복해있은 안장코도배의 암해결사단폭도들이였는데 한바탕 크게 소동을 벌려 갇혀있는 저들의 상전을 빼내여 도망칠 잡도리였던 것이다.

이 암해결사단의 두목은 나팔수였다. 그자는 명색이 교예단인 저의 폭도무리를 거느리고 다니면서 나팔을 불어 널려있는 폭도들을 한군데 모이게하는 한편 안장코가 전에 지어 부르던 비명곡(非命曲)곡을 부름으로써 감옥에 갇힌 안장코가 자기들의 행동계획을 알려놓고 감옥을 돌습할 타산이였던 것이다.

   그러나 결국 암해결사단은 복멸되였고 안장코는 총살당하고말았다.

   려홍이는 공세운 사람으로 인정되여 시경비대사령부로 가게되였는데 거기서 바로 만나보려던 그 지휘원ㅡ 박호철을 만나 회포를 풀고 경비대에 가입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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