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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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번개치는 아침>> 2장 (4)
2014년 12월 30일 09시 08분  조회:2564  추천:0  작성자: 김송죽
 

 

   

  4.

  

   <<보고! 위생병 리춘자가 새 임무 맡으러 왔습니다.>>        

   까풀눈에 깜찍스런 단발머리 처녀애가 군복을 먼저입고는 어린애모양으로 멋을 피우며 좋아했다.

    <<야, 그건 무슨식이라니! 보고할 때 모자도 쓰지 않고 손을 올려붙이면 되니?>>

   체경앞에 마주섰던 머리태 짤막한 옥금이가 놀려주고나서 손벽치며 깔깔 웃었다.

   혜옥이는 춘자의 머리에다 귀덥개를 올린 털모자까지 씌워놓고서 보면서 찬사를 올렸다.

   <<야 멋지구나 호호호!.... 어디서 요렇게 고운 위생병일가!>>

   춘자는 경대앞에 달려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몽땅 변해버린 자기의 모양을 발견하고는 토끼처럼 뛰면서 기뻐했다. 이들 세 처녀는 항승병원에서 일주일간 꾸리는 단기위생훈련반에 참가했다가 지금 이렇게 똑같이 군복을 타입는 판이였다. 혜옥이도 군복을 얼른 갈아입고나서 모자까지 쓰고는 체경앞에 척 나섰다.

   <<야, 언니도 참 멋지네!>>

   <<나보담 더 이쁘구나!... 저걸 봐 호호호!>>

   옥금이와 춘자는 군복을 입으니 맵시 더나는 혜옥이를 보며 시샘하듯 찬탄했다. 혜옥이는 곱게 자란 자기 몸매와 달걀같이 환한 얼굴을 보고 뉘 집딸인데 이렇게 멋스러운 위생병이 되었나 하고 기뻐하면서 스스로 붉어나는 낯을 손으로 가리웠다.

   (그인 나를 인차 알아보지 못할거야.)

   자기처럼 군복을 입고있을 려홍이의 모습을 눈앞에 그려보았다. 의젓한 그를 문득 만난다면 인차 알수 있을가?... 아니, 아니다, 세월이 아무리 험악하다 해도 언제 어디서든 그이만은 꼭 나를 알아보리라!... 얼굴만이 아니라 몸가짐이나  걸음걸이만보더라도... 그러자 꿈자리에서도 만나군 하던 그이의 모습이 생생한 표상으로 떠올랐다. ...

   혜옥이는 도시로 온 후 김려홍을 만나볼 시간적여유도없이 이번 학습반에 참가했던 것이다. 이번 단기훈련이 끝나는 즉시로 80여명의 보건일군들이 부대에 편입될것인데 대부분이 끌끌한 남성들이였다. 혜옥이는 전념병퇴치사업에 동원되였던 친구들을 10여일간 따라다니면서 약이름을 한가지라도 먼저배운데다 나이도 우였으므로 아주 생둥이처녀들에게 존경받는 처지로 되어버렸다.

   <<얘 춘자야, 참 인제 생각나는구나. 난 간밤에 과연 이상한 꿈을 꾸었댔다. 이것 봐 글쎄...>>

   쾌활한 성격이고 늘 웃기를 좋아하는 옥금이가 꿈얘기를 불쑥 꺼내면서 눈을 크게 떠서 여느때는 잘 보이지 않던 오른눈 안쪽 흰자위에 박힌 자그마한 깜장점까지 드러나보였다.

   <<또 무슨 엉뚱한 거짓말을 하자구 이러니?>>

   <<아니, 정말이야.>>

   <<네가 언제는 거짓말이라 하고 말한적있나.>>

   <<이건 정말 거짓말아니야. 이상한 꿈을 꿧단데두... >>

   옥금이는 꿈을 꾸고나면 그걸 잊어버리기가 일쑨데 이번에 꾼 꿈만은 웬 일인지 생생히 되생각히운다는것이였다.

   <<넌 요즘 매일 총각들하고 있더니만 련애하는 굼을 꿨겠구나.>>

   하고 헤옥이가 익살맞게 끼여들었다.

   <<아니야 언니, 내 말 들어봐. 글쎄 난 꿈에 별난걸 봤다니까요. 짐승인가 하면 짐승도 아니고 사람인가 하면 사람도 아닌건데 나를 잡아먹자고 살금살금 기여오는게아니겠어. 어찌두 무섭던지... 그래두 난 막 대항했지요 뭐. 마침 내 주위에 주사기가 있었는데 난 그걸로 그놈의 배꼽을 쿡 찔러놨지. 그랬더니 그놈이 갑작스레 함지짝만해진 입을 짝 벌리면서 뒤로 벌렁 나가넘어지더란말이얘요. 모두들 나를 보고 장하다면서 그게 바로 토비라하잖겠어요. 아이참, 진짜토비는 어떻게 생겨먹었을가?>>

   <<애두 참! 토비가 어떻게 생긴것도 모르겠니?>>

   딱친구며 함께 참군한 춘자가 어물쩍하게 거짓말을 했다.

   <<토비란건말이다 바로 그렇게 생긴거야. 네가 꿈에 봤다는것 처럼 입은 함지짝만하고 눈은 퉁사발만하고 귀는 뻘쭉한 당나귀 귀같고. 손은 갈퀴같은데 털이 꺼시시하고 대가리엔 뿔이 났대.>>

   <<어마나!... 그건 도깨비아니냐?>>

   옥금이는 말만들어도 소름이 끼친다면서 몸을 옹송그렸다. 그러고는 자기가 꿈꾼것을 되새기다가 혜옥이보고 물었다.

   <<언니, 참. 언니네 동넨 토비굴이 되었다지? 근데 토비들이란 어떻게 생겨먹었어요?>>

   <<애두 참, 네가 묻는게 더 딱하구나. 어떻게 생겼겠니, 도깨비같이 생겼지. ... 우리 마을 별동대 손창유는 물개수염에 상판이 검퍼래서 음흉한 늙다리마귀같고 아들놈 손자량은 두눈이 치째진데다 이마까지 넓어서 잔악한 물귀신같고 내가 접때 말한 곽털보는 징그러운 악마같지. 빡빡 얽은 곰보딱지, 눈두덕 찍어낸 게뚜더기, 입만 벌리면 악담퍼붓는 외눈통이... 병의별 오사리잡놈이 다 있단다.>>

   <<정말그래?!... >>

   방금 남을 놀라게 만들려던 춘자가 되려 겁먹은 소리를 했다.

   <<우리 마을 사람들은 도적놈 몇이 들어온것도 야단쳤는데 언니네 동네사람들은 지금 어떻게 살아갈가?>>

   하고 옥금이가 진심스레 걱정하면서 요전날 자기도 토비숙청하러 나가자고 오빠를 찾아와서 부대에 넣어달라고 다랑귀를 뛰였던 일을 말했다.

   <<오빠는 내 말을 듣더니만 <뭐라구? 계집애가 집구석에 있을게지 나덤비긴? 넌 토비를 숙청하는게 무슨 애들 놀음인줄 아니? 이건 전쟁이야, 전쟁!>하잖겠어요. 그리군 성을 막 냈죠 뭐. 그래봐야 내가 돌아갈것 같지 않으니 오빠는 <할수없구나, 그럼 어디 고생해봐라, 초년고생은 은을 주고도 못산다했으니까... 그런데 너 옥금아, 이건 혁명이니만큼 간고한건 두말할것 없고 이제 피를 흘려야 할게다. 각오해야 한다.> 하고 말하더구만요. 난 오빠가 쫓아보내지 않고 청을 들어주니 어찌나 기쁘든지 그 자리에서 막 뛰기까지 했지. 그리고는 춘자도 나와 함께 있게 해달라고 청들었지요. 오빠는 아느새 말이 없다가 이제 곧 위생병모집이 있으리라는데 힘써보겠노라 했어. 그래서 우린 이렇게 된거야.>>

   <<잘했다, 때맞추 잘 왔구나. 넌 좋은 오빠가 있어 자랑할만하다.>>

   혜옥이는 진심으로 부러워했다. 그리고는 언니답게 뒤끝을 달았다.

   <<너의 오빠말씀이 옳구나. 이제 말할수 없는 고생들이 있게 될거다. 그걸 무서워하면 혁명을 하겠니. 토비를 만나면 네가 꿈에서 했던것 처럼 대담하게 싸워야 한다.>>

   전날 황숙금주임이 위생병의 간거한 임무를 말해주면서 이를 혁명이라는 경의로운 단어와 함께 해석해주던 일이 새삼스레 상기되였다. 혁명이란 무엇이냐? 혜옥이는 혁명이란 평범하게 리해하려여둘 간단한 이름이 아니라 아주 심각하고도 위대한 뜻을 내포하고있으며 따라서 그 무엇으로도 당해낼수 없는 거대한 힘과 무진장한 생명력을 갖고있는 무엇인것 같았다.

   (혁명하는 사람을 혁명자라고 한다면 나는 무엇인가?...)

   헤옥이는 무언간 이름할수 없는 신심이 무럭무럭 솟아오르면서 다시한번 스스로 크낙한 긍지를 가졌다. 청춘은 이같이 약동하는 세찬 물결이였던 것이다.

   <<언니, 그러고보니 언니네 마을엔 혁명자가 둘이 생겼어! 서로 사랑하고 고생하면서 찾아까지 와서... 이제 문득 만나면 얼마나 기뻐할가!>>

   <<더 말할게있니! 이제 동네를 해방하는 날이면 더 기쁘게 될거다. 사람들앞에 척 나서는건 한쌍의 혁명군인이라... 호호호!>>

   춘자와 옥금이는 서로 찧고 까불었다.

   <<부럽나?... 부러우면 너희들도 그렇게 하려무나. 황주임이 그러던데 사랑도 전우의 사랑이 제일 깊다더라.>>

   혜옥이는 꿈많은 그들에게 기분좋게 응수했다. 과연 얼마나 희망찬 삶인가! 집을 떠나올때의 일... 그리고 그 어떠한 고해라도 넘어서 찾아보고야말리라던 정든 사람을 이젠 만날 수 있게되였으니 그저 막 기쁘기만 하였다. 상봉할 때의 그 기쁜 정경이 눈앞에서 어른거리는것만 같았다. 태여난 본성에 어긋남이 없이 순진하게 살아가리라 맘먹었던 혜옥이는 자기가 찾으려던 사랑도 청춘도 희망도 행복도 모두가 지금은 자기가 걸으려는 길우에 있는것 같았다. 그러나 생각하면 지금 만백성은 깊은 도탄속에 빠져 허우적거리고있다. 눈물과 고통과 죽음만을 강요하고있는 그네들에게 해방의 기쁨을 가져다줄 때, 이 해방의 기쁨은 얼마나 크랴! 사랑하는 사람, 친밀한 전우들과 함께 인민의 원쑤들을 족치는 장쾌한 싸움터에서 보내게 될 그 앞날의 생활들은 또 얼마나 의의있고 자랑찬 것인가! 희망은 이같이 아름다운 감빛 속에서 훨훨 나래쳤다.

   이틑날 점심때였다. 혜옥이는 춘자, 옥금이와 함께 식사를 방금 끝내고 강의실로 가는데 웬 사람이 병원에서 나오고있었다. 멀끔하게 생긴 젊은 사나이였는데 총도 아무것도 없는 빈몸이였다. 어디사람일가?...

   <<문을 다 잠갔구만, 병을 안봅니까?>>

   서로의 거리가 썩 가까워졌을 때 그가 머뭇거리다가 묻는 말이였다.

   <<지금 점심시간이애요.>>

   춘자가 알려주었다.

   <<제길헐, 남은 눈코뜰새없이 돌아치는데 편안히들 보내고있어.>>

   그 젊은이는 씩씩 두덜거리며 지나갔다. 참을성이 없는 옥금이 고개를 번쩍 들고 입을 삐죽했다.

   <<참 별난사람 다 보겠네. 병보러오겠으면 좀 일찌감치나 올게지... 그래 의사는 밥도 안먹고 살아야하나 뭐.>>

   혜옥이가 팔을 툭 치고 핀잔했다.

   <<애두 원, 그러다 듣기나하면 어쩔라구 그러니.>>

   세 처녀는 강의실에 들어서자 까르르 웃어대며 방금 본 그 사람이 멋을 부리겠다는 둥, 신경질이 많겠다는 둥 하며 잡담을 늘어놓았다. 그런데 범이 제 소릴 하면 온다더니 그 젊은이가 쑥 들어섰다. 그래서 처녀들은 그만 속이 당황해서 어쩔바를 몰라했다. 한데 그는 분명 자기를 흉보는 소리를 듣지 못했던모양이였다. 하기에 제쪽에서 도리여 쑥스러워하면서 미안해하는 투였다.

   <<여기 누가 의삽니까? 수고스럽지만.... 난 빨리 병보고 돌아가야겠습니다. 감기걸린지 며칠되는데... >>

   <<우린 모두 강습받고있는 사람들입니다. ... 추우시겠는데 불쪼이시죠.>>

   혜옥이가 이렇게 말했더니 그는 레절바르게 공손히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정말 다가왔다. 난로주위에 섰던 처녀들은 자리를 냈다. 젊은이는 처음에 좀 머쓱해하는 빛이더니 인차 기분을 돋구어 입을 열었다. 

   <<강습받는 동무들이면 이제 위생병으로 되어 우리 부대에 들어오게 되겠구만... 참 반갑습니다.>>

   그러니 시경비대가 아니라 인민무장부대에 있는 군인이구나. 그런데 왜서 군복은 입지 않았을가? 혜옥이는 속으로 반가와하는 한편 의문을 품었다.

   (부대에 있다면 전사일가 군관일가?... 아무리봐도 군관같지는 않다. 해말쑥한 얼굴을 보지. 시내에서 공부하고 무슨 직원질이나 하다가 들어온 사람같애. 인민무장부대는 한 개 퇀인데 2천명이나 된다니까 저렇게 의젓하게 점잔을 빼는 팔팔한 청년들이 얼마나 많을가!... 저 청년은 어느 영 몇 련에 있느가고 물어나 볼가. 아니 그만두자, 초면에 여자라는게...)

   젊은이는 활발한 옥금이보고 집은 어디에 있는가, 이름은 무엇인가, 부대에 있다는 오빠는 몇 살인데 이름을 무엇이라 하는가 하고 이것 저것 캐물으면서 탐욕스런 딴눈으로 혜옥이를 은근히 훔쳐보았다.

   (별 멋없는 사람 다 보겠네.)

   혜옥이는 외면해버렸다. 그리고는 자기도 여직 남을 가늠해보고있었던것을 스스로 창피스럽게 여기면서 귀밑을 살짝 붉히였다.

   혜옥이는 그들 셋의 주고받는 말에 끼여들지 않았다. 어느덧 초면인사의 말은 자신의 출신에 대한 소개에까지 이르렀다.

   <<야ㅡ 중학을 다녔으면 공부많이 했네!... 성은 최씨고 이름은 재명이라한다죠? 초면인사에 들은 이름은 잘 잊어먹는 법이라는데 똑똑히 기억해야겠어요!>>

   하고 옥금이가 왈패스레 떠들었다. 그 젊은이는 목을 약간 음츠리며 네가 보통내기 여자는 아니구나 하는 놀란 눈으로 보다가 괜히 놀림당할것 같았던지 웃음지으며 반죽좋게 말했다.

   <<허허, 오늘 유쾌한 녀성동무를 알게되여 내 감기가 뚝 떨어진것 같습니다.>>

   <<아유! 별소릴 다해요. 내가 뭐 아스피린이에 고뿔을 뗐는가요? 호호호...>>

   <<옥금아, 너 좀 작작 떠들어라.... 불이 다 꺼지겠네, 석탄 좀 넣어요.>>

   춘자가 이렇게 말해서 옥금이는 입을 다물었고 최재명은 도람통난로아궁에 석탄을 퍼넣었다.

   이때 남성위생병들이 강의실에 들어왔다. 멋쩍어진 최재명은 일후에 다시만나자는 인사말을 남기고 인차 나가버렸다.

   (제 자랑을 꺼내놓다말았는데 어쩐지 정직한 청년같지 않구나.)

   최재명에 대한 혜옥이의 첫인상은 이러했다.

   그가 병원에 왔다간지 3일되는 날 오전에 짧고 긴장했던 단기훈련반학습이 끝났다. 이틑날에는 항승병원에서 부대에 편입될 위생병들을 환송할 겸 총결대회가 있으리라 했다. 그 대회가 끝나는 즉시로 모두들 부대에 가게될 것이고 부대에 가면 그곳의 규률과 제도에 복종해야하는건 물론이며 해야할 일들이 태산같아 마음놓고 휴식할 시간이 있을것 같지 않기에 이번 강습뒤의 반날은 자유휴식으로 선포했던 것이다. 모두가 이 휴식날을 기다렸다. 혜옥이도 더 말할것없이 고대했다.

   <<헤옥언니, 준비 다 되였소? 인젠 가지 않을래?>>

   <<너도 가겠니? 넌 숙사나 지키고있으려무나.>>

   옥금이가 일부러 롱담하니 춘자가 약이 올라 툭 내쏜다.

   <<흥, 네만 만나볼 사람 있고 난 없는줄아니?>>

   <<우리 오빠가 널 보겠다더냐? 그러다 본체만체하면 넌 어쩔테냐?>>

   <<야, 그것 주둥아리 사납구나!>>

   <<호호호... 그래서 네 오빠도 내앞에선 두손 번쩍 들었다고했어.>>

   혜옥이는 춘자의 얄궂은 대구질에 배를 안고 웃었다. 준비할것 없었다. 옷만 단정히 입으면 되었다. 항승병원뜨락을 나선 세 위생병처녀는 시내를 들이쳤다가 실패한 안장코도배에게 무리죽음을 주었던 <<자랑의 꺼리>>를 지나 시내복판으로 들어갔다. 도시의 겨울은 오늘따라 유난히 황홀한 경치를 펼쳐주었다. 밤에 내린 서리에 정원의 뽀뿌라나무며 가로수들이 온통 새하얀것이 그야말로 진짜 은세계와도 같았다. 찬란한 태양이 비치여 눈부신 이 은세계에서 생활이 들끓고있었다.

   <<저기 저건 시계수리부고 저건 양복점, 그 저쪽건 상점이고 그다음건 미장원... >>

   옥금이는 두 동무와 어깨나란히 하고 걸으면서 하나하나 알려주었다.

   시계를 그린 간판이며 양복입은 남자와 파마머리의 멋쟁이녀자를 그린 간판, 희고 푸른 얼룩선을 그린 널문이며 붉은 종이술을 날리는 동그란 채통을 단 관자집들로 거리는 장식되여 있었다. 처음보는 거리의 이같은 풍모는 시골에서 태여나 그곳에서 자라면서 여지껏 단조로운 환경에만 습관되여온 순박한 처녀에게 잡다하다는 인상을 주는 한편 생활이 다양하고 풍만한 다른 한 형태의 인간세계를 보여주기도했다.

   세 처녀는 허술한 단층집들이 줄느런히 잇닿아있는 길좁은 향련가에 이르렀다. 이 거리의 서쪽어구에 2층집이 한 채있는데 그것이 학교였다. 운동장에서 학생들이 부르는 노래소리가 울러퍼졌다.

 

                   자유의 강산에서 우리 자라고

                   평화의 락원에서 꽃피려하는

                   새 나라 어린 동무 노래부르자

                   세상에 부러울것 그 무엇이냐

 

   헤옥이의 가슴속에서 눈물겨운 감격이 사무쳐올랐다.

   (저 애들은 얼마나 좋겠나! 뛰놀고 마음껏 배우고... )

   이것이 오빠한테 뜨덤글을 배워 겨우 판무식쟁이를 면할수 있었던 그의 감정이였다.

   <<언니, 언니도 학교다니지 못했겠지?  나도 학교에 다니지 못했어. 집이 너무나 구차해서.   이제 부대에 들어가면 문화학습을 하게 된다니 참 좋아!>>

   옥금이의 말이였다.

   <<잘 배우자, 글모르면 눈뜬 소경이란다.>>

   시내에는 잔골목들이 많았다. 인민무장부대청사는 정거장구역에 있어 곧추갈수도 있으련만 속담에 질러가는 길이 돌아가는 길이라고 익숙하지 못한 도시에서 괜히 길을 잘못들어섰다가는 땀을 더 뺄것 같아서 옥금이는 다리품을 더 팔더라도 자기가 전번에 오빠와 함께 걸어보았던 큰길을 택했다. 하여 그들은 향련가를 벗어나서는 벽돌담을 높직하게 쌓고 들어앉은, 삿갓모양의 둥글고 웃끝이 뾰죽한 푸른지붕이 있는 시정부를 목표로 해서 한참 걸었고 그앞에 이른 후에는 남쪽으로 방향을 꺾었다.   

   <<저기 저 층집은 무슨 집이라니? 정말 멋지게 만들었구나!>>

   <<저게 시경비대래요.>>

   <<언니, 우린 전번날 저기로 막 들어가자 했더랬어. 그랬다가 그만...>>

   춘자가 옥금의 오빠를 만나보러 들어가려다가 보초병한테 제지당했던 일을 말했다. 보초병은 오늘도 여전히 초소를 굳게 지켜섰고 벽돌담장안 한쪽마당에서는 경비대전사들이 지금 한창 롱구뽈을 치느라고 뛰여다녔다.

   <<저사람들은 훈련도 하지 않는 모양이지?>>

   <<휴식시간되여 운동하겠지.>>

   <<중국사람들은 아마 축구보다 저게 더 놀기 좋은 모양이야. 언니, 축구볼만하지? 옥금의 오빤 축구 잘해요. 하두빨라서 우리네 거기선 모두 그를 비행기라 했어.>>

   춘자가 까풀진 눈에 웃흠을 가득 담고 이렇게 자랑하고있을 때, 몇발 앞에서 걷고있던 사람 셋이 뒤를 자주 돌아보았다. 한사람은 남보다 이마가 좀 나온것 같고 한사람은 작은 키에 담차게 생겼으며 한사람은 키는 커도 나이는 퍽 어려보였다. 분명 조선족청년들인데 자기네끼리 뭐라 말하고는 소리까지 내며 웃었다.

   <<춘자야, 네가 방금 한 말을 듣고 저러는 모양이다!... 팔팔한 청년들이 거리를 빈들빈들 쏘다니는걸 보니 할 일도 없는 모양이지?>>

   옥금이는 목소리를 낮추었건만 그 비난의 소리를 잡아들었는지 키작은 청년이 힐끔 돌아다보았다. 그들도 인민무장부대쪽으로 가고있으니 필시 군인인것 같았다. 그래서 옥금이는 당황해났다. 자기가 입조심하지 않아 만신한것을 깨닫고 게면쩍어서 어쩌면 좋을지 몰라했다.

   얼마를 더 가니 넓은 광장이 나타났다. 목적지에 이른것이다. 광장남쪽 커다란 3층집 정문꼭대기에서 붉은기가 바람에 펄펄 나붓겼다. 인민무장부대청사였다.

   광장에서는 지금 한창 행진훈련을 하고있는 중이였다. 4렬종대의 긴긴 대렬이 구령소리에 맞추어 지축을 울리면서 움직이고있는데 그야말로 강철대하의 도도한 흐름같았다.

 

                   우리의 가슴에서 붉은피 끓는다

                   동무들아 나가자, 혈전의 길로!

                   원쑤들을 무찔러 만리재화 꺼버리고

                   이 땅우에 인민의 붉은 정권 세우자!

 

   우렁찬 노래소리는 천지를 진감하고 어깨우에는 서리찬 총창이 번쩍거렷다.

   세 처녀는 한동안 넋을 잃고 서서 행진대오만 구경하다가 다시 발길을 떼였다. 그들은 북켠에 동서길이로 길게 앉은 2층집앞을 지나 그 집과 본채를 이어줄 듯 딸려있는 나지막한 단층집문앞에서 멈춰섰다. 한켠에 기다란 흑판이 있는데 그 흑판에는 결심서니 창의서니 선전화니 하는것들이 가득 붙어있었다.

   옥금이는 후근처에 있는 자기 오빠가 이 집에서 근무한다면서 들어가보자고 했다. 세 처녀는 노크하는 법도 모르고 문을 뚝 뗐다. 회벽이 연기에 그을른것 같은 자그마한 방안에 사무상 네 개가 벽가에 붙어있었고 방복판에 있는 난로에서는 불이 활활 피고있었다.

   문소리를 듣고 안쪽 사무실에서 한 군인이 나왔는데 늙수그레한 사람이였다. 

   <<안녕하세요?>>세처녀는 똑같이 인사를 하고는 서먹해하였다. 그 사람은 옥금이를 알아보고 반색하며 오빠보러왔는가고 물었다.

   <<네, 그래요. 우리 오빠 있나요?>>

   거리에 볼일있어 나갔는데 퍼그나 오래있어야 돌아오리라는것이였다.

   <<그럼 어떻게 할가?... >>

   그들이 실망한 표정을 띠우며 망설이게 되자 그 군인은 무슨일에 그러는가고 재차 물었다.

   <<군인 한분을 찾자고 그래요. 이 언니와 한동네서 살던 분인데요... 언니 그인 이름이 뭐라지?>>

   <<김려홍이라 해요. 손가장에서 살았어요. 그런 청년을 아시는지?>>

   혜옥이가 무밋거리다말고 이렇게이름을 대며 그 군인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 군인은 이윽히 생각을 굴리더니 도리머리를 저으며 안쪽에 대고 소리쳤다.

   <<이보게 일범이, 자넨 김려홍이란 청년을 아는가? 손가장에서 왔다누만.>>

   <<손가장에서 청년이 하나 도망쳐왔다는 말은 들은적있는데... >>

   말소리와 함께 한손에 철필대를 쥔 젊은 사람이 나타나더니 문설주를 짚고 선채 의아쩍은 눈매로 되물었다.

   <<동무들은 래일 여기로 올 위생병들입니까? ... 그런데 사람찾는 동무는 누군데요?>>

   보아하니 그도 똑똑히는 모르는것 같았다. 그래서 혜옥이는 자기가 찾고있다고 대답하고는 인차 나와버렸다. 마침 이때 휴식을 알리는 나팔소리가 났다.

   세 처녀는 퇀부에 찾아가 물어볼 엄두는 내지 못하고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리라 잡도리했다. 그들이 이렇게 망설이고있는데 마침 저쪽에서 턱수염이 더부룩한 사람이 걸어오고 있었다. 나이있는 어른이니 꼭 병사는 아니고 군관일것 같아서 혜옥이는 다가오기를 기다리고섰다가 다소곳이 인사를 하고나서 말을 건늬였다.

   <<저 미안하지만 한가지 좀 물어봅시다.>>

   <<뭐게?>>

   그 사람은 웅글고 툭한 음성으로 이렇게 되물었다. 혜옥이는 웬 일인지 갑자기 두렵기도 하고 부끄럽기도해서 주저주저했다. 그러나 말은 이미 내친것이고 또 그가 뚝 멎어서서 기다리는판이니 그냥 우물거리고만 있을수는 없었다. 그래서 혜옥이는 다시 용기를 내서 자기가 만나려는 사람의 이름을 대고 그런 사람을 어떻게 하면 찾을수 있겠는가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은 매우 딱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허허, 그런 사람을 난 모르는기요. 이걸 어쩌문 되간나?...>>

   <<아바이, 뭘 그럽니까?>>

   젊은군인 몇이 욱 달려왔다.

   <<저...  >>

   혜옥이는 어리둥절해져서 혀끝까지 나왔던 말을 되삼켜버리고말았다. 이제 보니 투박한 사투리를 쓰고있는 이 사람도 무식한 병사였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때 집안에 있던 한 사람이 무슨 일이 발생한줄로 알고 달려나왔다가 곤경에 빠진 혜옥이와 그의 두 친구를 구해냈다. 그는 전번날 병보러 항승병원에 왔던 최재명이였다.

   <<벌써 학습을 끝마쳤습니까?.... 어서 불을 쬐이시오.>>

   세처녀를 훈훈한 방안에 들여놓고 그는 벌써 구면의 사이라고 친절을 다했다.

   <<갑자기 웅성거리는 소리가 나길래 바깥을 내다봤더니... 무슨일에 왔습니까, 아직 배치받은건 아니겠지요?>>

   <<네, 우린 래일 정식으로 오게됩니다.>>

   <<오늘은 먼저 사람만나러 왔어요.>>

   춘자의 대답을 이어서 옥금이가 말끝을 달며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난 갑자기 모여드는통에 호호호... 글쎄, 2천명이 다 모여들면 어쩔번했을가?!>>

   최재명은 이마살을 찌푸리더니 군인들이 규률준수가 도무지 말이 아니라면서 머리를 저었다. 얼마전까지만해도 어떤 군인은 청시도 없이 몰래 색시보러 집에 갔다왔고 어떤 군인은 남의 탄알을 훔쳐내서 비판을 받았다고 하면서 이러한 불량한 일들이 생기는 원인은 학교물을 먹은 사람이 적고 말짱 촌에서 온 난민들이 아니면 막벌이나 해먹으며 돌아다니던축들과 공장의 로동자들과 같은 무식한 사람들이 많기때문이라고 했다.

   혜옥이는 자기 때문에 최재명 한사람을 제외한 전체 사람들이 공연히 값낮은 평가를 받는것 같아 분하고 미안한 감까지 들었다.

   <<내가 너무조급했어요. 천천히 찾아도 되었을건데...>>

   <<아, 누구를 만나러 왔다지? 그래 만나지 못했습니까?... >>

   하고 최재명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만나지 못했어요. >>

   옥금이가 얼른 대신 대답하고나서 한결 쾌활해진 기분으로 말했다.

   <<최동무는 알겠는지... 저 혜옥언니는 친척되는 분을 찾고있대요.>>

   <<아니예요, 친척이 아니얘요. 아무런 관계도 아니얘요. 그저... >>

   혜옥이는 황급히 말을 채며 민망스러운 눈총을 쏘았다.

   <<그럼 혜옥동무가 찾고있는 사람은 누굽니까?>>

   최재명은 어색하게 물으며 빙그레웃었다. 혜옥이는 어쩐지 그한테는 말하고싶지 않아서 주저하다가 무례한짓을 하는것 같아서 간단히 응대했다.

   <<김려홍이란 사람이예요.>.

   <<뭐, 김려홍이를?!>>

   최재명의 안색은 이외로 돌변했다.

   <<아, 혜옥동무가 찾으려는 사람이 김려홍입니까? 손가장에서 온 사람말이지? 그인 우리 반 반장입니다!>>

   (아, 끝내 찾았구나!)

   혜옥이는 눈뿌리가 화끈해나도록 압축되였던 기쁨이 가슴속에서 솟구쳐올랐다. 판자를 붙여서 구들같이 만든 기다란 침상을 보면서 어느쯤에 려홍이의 자리겠는가고 재빨리, 그러나 헛되이 찾아보았다...

   혜옥인는 려홍이가 경비대에서 넘어오자 인차 정찰련 1패 2반에 편입되여 반장으로 되었으며 정찰을 나간지 며칠된다는것을 알게 되었다.

   <<언니, 참 애간장터질 일이야!>>

   항승병원으로 돌아오면서 춘자와 옥금이는 오래도록 익살을 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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