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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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번개치는 아침>> 4장 (7)
2015년 01월 30일 02시 44분  조회:2272  추천:0  작성자: 김송죽
 

     사태는 려홍이가 예측한바와 같이 희극적으로 발전해갔다. 근간에 보향단에서 별동대특무계분자들을 마구 잡아가두고 뚜드려패는통에 리경광이 왕복룡을 찾아가 항의를 제기했고 손창유가 사문동을 찾아가 보향단을 징벌해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자 친목을 주장해온 조위전령감이 왕복룡이를 불러다놓고 노발대발하면서 불문곡직하고 별동대에 사죄하라 강요했는데 본시 배짱이 이만저만이 아닌 왕복룡이는 사죄는커녕 별동대를 성밖으로 당장 쫓아내겠다고 윽윽해서 모순이 더 악화되였다는것이였다. 민주련군에서는 이 기회를 타서 왕복룡이더러 기의하라고 권고신을 써서 장대겸에게 주어보냈다. 그런데 사흘이 넘도록 소식이 감감했다. 한데다 보향단과 별동대지간에 다른 충돌도 더는 생기지 않았다. 이렇게 되자 려홍이는 슬그머니 안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바깥형세가 도대체 어떻게 되고있는지를 직접시탐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왕야장과 왕금산은 각각 비수 한자루씩 품고 려홍이를 따라 나섰다.

   려홍은 장탄한 권총을 몸에 지니고 그들 형제와 함께 집을 나섰던 것이다.

   세사람은 될수옥 행인들이 적은 골목으로 해서 걸었다. 보안단퇀부가 보이는 큰길에 사람들이 우글거렸다. 려홍이는 보향단근처에 가서 정황을 살피려고 마음먹고 눈짓을 했다. 세사람은 부지런히 걸어 붐비는 사람들 속에 끼여들었다. 그런데 별동대특무들이 다시는 얼씬하지 않을줄로 알았는데 여기서 일이 과연 공교롭게 되고말았다. 잡화점앞에 서있던 한 녀석이 려홍이를 알아보았던 것이다. 별동대의 게뚜더기였다. 려홍이는 얼핏 피하려고 몸을 돌렸다. 순간 그 어떤 앙칼진 다른손이 불시로 그의 어깨를 탁 잡아 돌리는것이였다. 실로 창졸간에 당하는 일이여서 미처 다른 방법이 없었다. 려홍은 그자의 권총쥔 손을 탁 치면서 골로 상판을 들이박았다. 특무는 외마디비명을 지르면서 방아쇠를 당겨 총소리를 냈다. 이와 거의 동시에 왕야장이 게뚜더기를 막았고 가까이에 있었던 왕금산이 다시 덮치려는 그자의 다리를 걸어 재껴놓았다. 이통에 그만 란장판이 벌어졌다. 놀랜 사람들이 갈팡질팡했고 특무놈들이 공산군밀정을 잡으라고 아우성쳤다. 세사람은 덤벼치는 사람들속에 끼여 동쪽으로 냅다뛰다가 남쪽방향으로 꺾어들었다. 그리고 장림주점에 이르자 그안으로 쑥 들어가 뒤문으로 빠져나가 추격하는 특무들을 떨어버릴수 있었다.

   이틑날아침에 거리에 나갔던 장현덕이 헐헐거리며 돌아오더니 호주머니에서 접은 종이장을 꺼내놓았다.

   <<로진, 이걸 보시오. 로진을 붙잡으라는 포고문입니다.>>

   <<뭐라구?!>>

   더욱 놀란것은 왕야장이였다. 종이장은 이어 려홍의 손에 넘어갔다. 연필로 그의 용모를 비슷하게 그려놓가까지 했는데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포고가 씌여있었다.

 

      포고:

      지금 성내에 공산군밀정이 잠입했으니

      사람마다 정신차리고 붙잡기 바란다.

       성명: 김려홍(조선인)

       년령: 26세

       외형: 중키를 좀 넘으며 얼굴에 살결이 적음.

       눈, 코, 입.... 무기를 휴대했으니 체포시 주의를 요함.

 

                       중앙선견군사령  사문동

                                  1946년 9월 20일


   <<개자식들이 과연 막잎에 올랐다니까 제기!>>

   왕야장이 듣고나서 사문동을 욕하는 소리였다.

   <<거리엔 이것말고도 하나 더 나붙었는데 어떻게했으면 좋을가. 특무놈들이 몽땅 출동했을건 뻔하고 이젠 유지회가나 보안단에서도 사람을 붙잡겠다고 눈에 쌍불을 켤터이니 행동을 각별히 조심해야겠군요.>>

   장현덕은 려홍의 인신안전을 무등 근심했다.

   포고문에 성명, 년령을 밝히고 용모파기까지 한 것으로 보니 손가네나 리광경이 상세히 고해바친것이 틀림없을것 같았다. 사태의 엄중성을 깨달은 왕야장네 지하적위대원들은 려홍의 바깥출입을 중지하는 한편 몸을 내번지고 적정탐지에 이바지할것을 맹세했다.

   그런데 위험은 더 옥죄여들었다. 저녁을 방금 치르고나서였다. 려홍이가 왕야장네 형제와 함께 래일 왕복룡이를 만날일에 대해서 의논하고있는데 이때 밖에 나가 망을 보던 소균이와 계화가 달려들어와 저기서 총가진 사람들이 오고있다고 알렸다.

   <<<자, 얼른 숨으시우! 빌어먹을것들이 냄새를 어떻게 맡았을가? >>

   왕야장이 두덜대면서 재촉했다. 왕야장형제는 려홍이를 건뜩 들어서 천정에 있는 통풍구에다 밀어넣었는데 사람 하나를 얼마든 숨길수 있었다. 려홍이 숨자 1분도 안되여 밖에 수사대가 나타났다. 왕야장은 밖으로 얼른나갔고 왕금산은 잠시 망설이다가 려홍이 앉았던 자리에 힌들나눕고말았다.

   <<못들어가, 못들어가, 우리 집에 못들어가.>>

   밖에서 제 오래비와 놀던 계화가 행짜를 놓더니 이어서 징징 우는 소리 들려왔다.

   <<왜 철없는 애는 울리는거냐?>>

   이어 왕야장의 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임자네 집을 좀 수색해야겠어!>>

   한녀석이 괴팍한 소리를 내지르자 여럿이 집안으로 우르르 쓸어들었다. 먼저 동쪽방을 수색하더니 다음에는 이쪽 방문을 살그머니 열고 들어섰다. 왕금산이 놀란 모양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앉았다.

   <<그렇지, 여게 한놈 있구나!>>

   그자들은 붙잡았고 좋아 날뛰였다.

   <<넌 누구냐?>>

   키가 장승같이 껑충한 녀석이 눅거리담배에 누렇게 된 이발을 드러내면서 캐물었다. 그자는 워낙 금성태생으로서 위만때 다섯 번도 넘게 경찰서에 붙잡혀가 류치장생활을 하면서도 나중에는제 녀편네까지 팔아 도박을 논 소문이 난 건달이였다. 그런주제에 얼마전에 있은 별동대모집에 들어 운수좋게 수사대 대장까지 된 것이다.

   <<갠 내 동생이요.>>

   급히 따라들어선 왕야장이 앞질러 알려주었다.

   <<당신동생이라구? 흥!... >>

   수사대 대장은 곧이들으려하지 않았다.

   <<임자한테 언제부터 이런 동생이 있었나?  거잣말말아, 틀리없이 성밖에서 들어론 밀정이야!>>

   <<밀정이라는게 뭐요? 난 공산군한테 쫓겨들어온 사람이요.>>

   하면서 왕금산은 쫓겨들어온 시늉을 하였다.

   <<믿어지지 않거든 신분증을 보오. 내한텐 유지회에서 내준 신분증이 있소.>>

   수사대대장은 신분증이 있건말건 묶으라 지시해놓고는 방안을 두리번두리번 살피디가

   <<왕야장은 류치장맛을 본적이 있지? 그러니 정신을 차리라구. 나를 속였다간 좋은 일이 없어. 지금은 제정때보담 더 엄하단걸 알아야 해.>> 하고 뒤넘스레 한바탕 으름장을 놓고는 왕금산을 잡아끌고갔다. 졸지에 집안은 수라장으로 되어버렸고 아버지를 빼앗긴 계화와 삼촌 잃은 쇼균이는 그냥 울기만했다. 잡혀간 왕금산이는 틀림없이 특무계놈들한테 졸경을 치르게 될것이다. 고통을 선듯이 자기가 받아나선 왕금산의 행동이 파도마냥 흉벽을 쳐서 려홍이는 가슴이 저려났다. 이제부터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려홍이는 왕금산이가 아무리 혹독한 심문을 받는다하더라도 결코 자기들의 지하적위대를 팔아먹지 핞으리라는걸 학고히 믿고있다. 하지만 자기의 경솔하고 모험작인 행동으로 해서 불필요한 재난을 가져왔다고 생각하니 무거운 자책감으로 하여 가슴은 쓰리면서 당금 터질듯이 아파났다. 려홍이는 눈앞에 덮쳐든 난국을 어서빨리 타개하고 임무를 조속히 완수할 방법을 생각하느라 머리가 터질지경이였다...

   별동대특무계수용소는 중앙십자로 서북구역에 있었다. 들리는 소문대로 그곳은 생지옥이나답지 않았다. 거기에는 각가지의 형구들을 갖추어놓은 고문실이 있었을뿐만아니라 사람을 잡아다 몰래 죽여버리는 비밀사형실까지 갖춰져 있었던 것이다. 별동대가 산자파에서 쫓겨들어온 날 승냥이가 양무리에 뛰어들었다고 드러내놓고 불만을 토로한 사람이 있었는데 리경광은 특무계를 조직하자 그부터잡아다가 악독하게 심문하고는 없애치웠던 것이다. 그러니 이 밤 수사대놈들한테 잡혀간 왕금산이 특무계에 넘겨지면 어떤 모양이 될는지 모를일이였다. 하여 토론 끝에 왕야장이 나서서 그밤으로 왕복룡이를 찾아가기로 했다.

   <<야 이 밥통같은 사람아, 임자는 칼차고 꺼들거리기나했지 들어앉아 무슨짓을 하고있나?... 금성백성들이 그래 너 왕퇀장을 받들어온것도 한마디로 태평무사하게, 안전하게 살아보자는 생각에서였는데 임자는 뭘하고 자빠졌는가?  창귀같은 손가네를 끌어들여다가 대관절 무슨짓을 벌리고있는가말이여?>>

   퇀장실을 요행들어갈수 있은 왕야장은 복룡이를 만나자마자 이렇게 욕지걸이부터 했다.

   <<어쨌다구 이렇게 떠드는거요?>> 

    복룡이는 왕야장이 세상뜬 아버지와 전에 자별한 사이였던지라 옛정을 봐서라도 화를 낼수도 없었다. 그래서 무슨일에 찾아왔는지 진정하고 좀 차근히 말하라고 거듭 타이르는것이였다. 그랬어도 왕야장은 끓어오르는 분을 참지 못하겠다는데거 격한 음성으로 자기 동생을 왜 마음대로 잡아왔느냐, 수사대란건 뭐고 특무계란건 대체뭐냐, 전에 없던 그따위건 애 생겨나서 사람을 못살게 구느냐고 한바탕 푸념질을 했다. 그랬더니 왕복룡은 그게 모두 별동대가 하는 짓이지 자기와는 관계없노라고 딴전을 부렸다.

   <<그런데 금산이는 왜 잡혀갔다오?>>

   <<그걸 누가 알겠나말이여. 성밖에서 들어왔다니까 불문곡직하고 잡아갔지. 나 원 쯔쯔쯔, 이눔의데선 손님이 주인행세를 하고있는게 아니고 뭔가? 그래 복룡이는 당당한 퇀장이면서도 그자들이 제멋대루 설치게 그냥내쳐둘셈인가?>>

   <<글쎄, 이건 사사령의 지시가 있어서 하는건데.... >>

   왕복룡은 별동대와 있은 충돌로 하여 사문동에게 불리여가서 되게 질책받은 일을 생각하고는 얼굴을 찡그렸다.

   <<복룡이, 내 자네한테 묻겠네. 그래 이 금성에의 주인은 누군가? 밖에 나가 좀 들어보게나. 보향단은 제구실을 못한다구 욕이야, 욕!>>

   <<뭐라? 그게 정말이요?>>

   왕복룡은 제구실을 못한다는 소리에 신경이 빡 긁히여 정신을 펄쩍 차리고 되물었다.

   <<그래 금성사람들이 날 보고 뭐라하오?>.

   <<일구난설일세 일구난설. 듣는 말이라해서 어떻게 다 번자겠나. 다른건제쳐놓고라도 만약 오늘저녁에 잡혀간 사람들이 잘못되기나해보지. 흥! 그땐 제고향사람도 구해내지를 못하는 왕퇀장을 밸도없는 추물이라느니 시러베아들놈이라느니 하고 욕할 사람이 수두룩할거야.>>

   왕복룡은 얼굴을 또다시 고통스레 찡그렸다. 그가 한숨쉬면 어깨를 맥없이 떨어뜨리는 품이 자기한테는 어쩔 방법이 없다고 맥을 놓는것 같았다. 그래서 왕야장은 도전적인 투로 한발다가들었다.

   <<복룡이, 자넨 아마 대포맛을 한번 더봐냐야정신차리겠군!>>

   <<아니, 그건 무슨 소리요?!>>

   왕복룡은 꿈틀 놀라더니 왕야장을 의혹에 찬 눈길로 박아보았다.

   그가 그러건말건 왕야장은 여전한 투로 계속말했다.

   <<복룡인 모처럼 찾아온 제 친구를 박대했다가 불벼락을 맞았다는걸 알기아하는가? 지금두 그걸 모른다면 둔한 사람이지, 알았나? 그걸 깨달아야 해. 그리구 이제 두고보게만 특무계에 잡혀간 내동생을 내놓게 하지 않다간 좋은 일이 없을거야.>>

   <<그, 그건 또 무슨소리요?!>>

   돌부처같이 몸이 굳어버린 왕복룡은 화등잔같은 눈으로 왕야장을 이윽토록보았다.

   그가 그러건말건 왕야장은 배포유하게 한마디 더해놓고 거기를 나왔다.

   <<복룡이, 사람이면 타이르는 말을 고맙게 여기고 받아줄줄을 알아야해. 건데 복룡이는 그게 뭔가?... 그냥 옹고집응 부리다가는 결국 제발등을 까고말거야!>>

   왕복룡은 정수리를 한 대 맞은것처럼 정신이 아찔해났다.  그는 걸상에 털썩 주저안으면서 두손으로 머리를 부등켜쥐였다.       

   귀에서 웅ㅡ 소리나면서 머리가 금시 빠개지는것만같았다. 지지리 무서운 침묵이 방안을 내리눌렀다. 내처 한모양으로 앉아있었던 왕복룡은 왕야장이 퇀부에서 나간지 이윽해서야 리지를 회복할수있었다.

   <<아, 내가 또 불벼락을 맞게된단말인가?!>>

   그는 발작하듯 부르짖고나서 경위원들을 불렀다. 그리고는 퇀부를 뛰여나와 곧추 별동대특무계의 수용소를 찾아갔다.

   밤중이라 수용소에 이르니 보초병이 보향단사람은 들어가지 못한다면서 막는것이였다.

   <<뭐라? 야 이자식아, 넌 내가 누군지도몰라?>>

   <<......>>

   밸이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왕복룡은 보초병의 따귀를 보기좋게 갈겨놓고 씽 들어갔다.

   체포된 사람들에 대한 초심을 방금 끝낸 리경광은 느닷없이 뛰여든 왕복룡을 보자 적이 불안해하였다.

   <<아, 아, 아니 이거 왕퇀장께서 졸지에 이렇게.... 무슨 긴요한 용무라도 있습니까?>>

   <<있지, 있구말구. 그래서 내가 이렇게 직접찾아온게지. >>

   왕복룡의 목소리는 차고 거칠었다.

   <<한가지 물어볼게 있소. 낮에 수사대에서 왕아무개란 사람을 붙잡아온일 있소?>>

   <<성이 왕가라는 사람이 다섯이나되는데 누굴그러는지?>>

   <<웬 사람을 그리도많이 잡아들였소? 당신넨 그따위놀음이나 놀자고 여기루 들어왔는가? 왜 우리 몰래 그런짓을 그냥하오?>>

   <<그건 저 의심분자는 잡아가두라는 사령부의 명령이 있어서.... 목전의 형세하에서는 공산군밀정의 잠입을 막아야함은 물론이고 이미 잠입한 밀정은 잡아내야 화근을 없애고 금성의 안전을 담보할수 있다고 봅니다.>>

   하면서 리경광은 사실이 엄연한데도 왜서 왕퇀장은 정신차릴줄을 모르는가 하는 태도였다.

   왕복룡은 이 안경낀 조선사나이의 코등에 난 허물자리를 넌지시 보면서 속으로 네녀석이 호룡산에서 공산군밀정한테 혼났다더니만 그게 기념이겠구나, 코등에 주먹꽃이 또 필가봐 겁나는 모양이지 하고 속으로 잘코사니를 불렀다. 리경광은 이시각 자기가 그한테 은근한 조롱을 받고있음을 직감하고는 얼굴을 붉히였다.

   <<왕퇀장은 사령부의 포고문을 보지 못했습니까?>>

   한편 왕복룡은 그의 이 물음에 되려 언질을 잡고 따지고들었다.

   <<포고문을 봤소. 그런데 리부관은 무슨 근거로 공산군밀정이 잠입했다고 하오? 보다싶히 우리는 쥐새끼 한 마리도 얼씬못하게 성을 지키고있는데?>>

   <<아무리 지킨들 뭘 합니까.>>

   래경광은 로골적으로 비웃는 태도였다.

   <<눈을 떴건만 청맹관이여서 보지 못하고 두손이 있다해도 마비되여 쓰지 못하면야 그게 병신과 다를게 뭡니까? 악착스런 유령이 왕퇀장의 몸에 휘감길가봐 우리는 실로 걱정이 됩니다.>>

   <<뭐라?!>>

   왕복룡은 대로하여 발끈 어성을 높혔다.

   <<리부관이 나를 함부로 놀리려들어?>>

   <<내가 놀린다니? 왕퇀장님 좀 진정하시오!>>

   리경광은 리지를 잃은 사람과는 진담을 나눌수 없다는듯이 머리를 가로저으며 침묵에 잠겼다가 이어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한발 다가섰다.

   <<왕부퇀장은 김려홍이란 조선청년을 알겠지요? 그 사람이 잠복해들어왔는데 절대로 믿지를 마시오. 그를 믿었다간 큰 경을 칩니다.>>

   <<허튼소리말어!>>          

   왕복룡은 잡아닥치듯 을러멨다.

   <<난 그런 사람을 놀라. 또 들어왔다해두 그게 나하구 무슨상관인가, 엉!?>>

   <<왜  상관없겠습니까. 독충이 우리 속을 파고들면 모든게 잘못될판이데두 상관없다 그 말입니까?>>

   왕복룡은 그가 려홍이와 자기가 접촉이 있은일을 눈치챈것 같아서 방어적인 위협훈계를 했다.

   <<입을 주의하오. 당신네는 의심이 너무많은게 탈이야. 이 복룡이를 허술하게 보고 함부로 입정을 놀렸다가는 좋은일이 없을줄을 아오.>>

   리경광은 대방의 태도가 험악해지니 입을 꾹 다물었다. 보향단과 정면충돌을 하지 않고도 그는 제 할 일을 얼마든지 할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어제 수사대에서 잡아온 가운데 왕금산이란 사람이 있는가?>>

   하고 왕복룡이 여전히 비틀린 음조로 물었다.

   <<있습니다.>>

   리경광은 왕복룡의 안색을 살피면서 부언했다.

   <<조사해보니 그는 산자파에서 온 사람입디다. 그래서... >>

   <<아니. 산자파에서 온게 무슨 죄란말인가?>>

   <<내말은 그게 죄란게 아니라..... >>

   <<무슨 잔말이 그리두많소. 그 사람은 내가 잘알고있소. 그가 당신들이 붙잡자는 그 조선사람이야 아니겠지. 그런데도 왜 마구 붙잡아가는가말이요. 그로해서 온 금성백성들이 지금 막 떠들고있는데 그 후과를 당신네가 책임질수 있겠소?>>

   리경광은 잠잠해졌다. 려홍이를 붙잡으라했더니 바보같은 녀석들이 엉뚱한 사람을 붙잡아 온 것이다. 왕금산이는 비록 산자파마을에서 오긴 했으나 민주련군의 밀정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리경광은 우선 내여놓고 보자고 마음먹고 왕퇀장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이렇게 되어 왕금산이는 무사히 놓여나올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일은 또 멋스레 맞물려나갔다. 왕금산을 수용소에서 빼내오고도 뒤가 풀리지를 않아서 왕복룡은 왕야장을 퇀부에 불러들였던 것이다. 이 기회에 왕야장은 왕복룡에게 한번 다시 상면하자고 제기하는 려홍의 기별을 전달할수 있었다.

   이미 지정해놓은 밤 12시경에 려홍이는 보향단퇀부로 갔다. 이번의 그의 행차는 마치도 임금의 거둥처럼 보향단의 보호까지 받았다. 왕복룡이는 려홍이가 자기를 다시만나자는 리유를 명백히 알고있었으므로 대문가에서 기다리고있다가 친히 맞아서 보위가 삼엄한 퇀장실로 안내하였던 것이다.

   <<려홍이, 내가 자네와 이렇게 다시 만날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질을 못했지. 참 깜박 잊었군, 이 사람이 우리 보향단 참모장일세.>>

   왕복룡의 말이 떨어지기바쁘게 퇀장실에 있던 몸매 미끈하고 강경해보이는 담참모장이 합장하면서 허리를 굽혔다. 려홍이 역시 그모양으로 답례하고나서 만면에 환한 웃음을 지었다.

   <<당신이 담호궁이지? 이렇게 만나니 처음이오만 우린 벌써 피차간 알고있는 처지지, 안그런가?하하하!>>

   <<그렇지요! 그렇지요! >>

   담참모장은 방금까지만도 피우던 위엄기를 일소하면서 공손한 태도를 취했다. 그러면서 그는 호기심가득찬 눈매로 자기앞에 나타난 민주련군공작원을 눈박아보았다.

   <<려홍이, 내가 전번때 자네를 너무랭대해서 미안하네. 나중에는 자네를 가라고 내쫓기까지 했으니.... 용서하게.>>

   <<하하하!.... >>

   려홍이는 소탈하게 웃으면서 그의 사과를 흡족히 받아주었다.

   <<미안해할것까지야 없지. 난 자네가 조만간에 이렇게 돌아서리라 믿고있었네. 자넨 그래 내가 성밖으로 나갈줄로 알았던가?>>

   <<그럼 저... 민주련군이 대포를 쏘게 한건 자네가 아니였단말인가?>>

   <<그거말인가? 내가 한 노릇이였지. 하지만 자네는 내가 아니면 성밖에다 기별할 사람없는줄로 알았던모양이지? 아닐세, 이 성안에는 나를 친인같이 대해주는 사람이 수태있어. 말하자면 나를 보호해주는 사람이 얼마든지 있단말일세!>>

   <<그런가! 보호해줄 사람 얼마든지 있다....>>

   왕복룡이가 입속으로 웅얼거리느라 한 말소리가 그만 입밖으로 새여나왔다. 려홍이를 보호해줄 사람이 얼마든지 있다는 말에는 담참모장도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그들은 지금 까딱않고 엄숙히 서있는 장대겸이를 보았다. 그처럼 믿어온 경위원마저도 변심하여 인젠 민주련군지하공작원의 보호인으로 떳떳이 나서고있을줄이야 꿈엔들 생각이나했으랴!. 왕복룡과 담참모장은 자기들이 지금 도저히 이겨낼수 없는 강한 압박감을 느끼끼게 되자 그만 맥이 탁 풀리였다.

   려홍이는 이네들의 감정을 속기빠르게 진맥하고나서 입을 열어 단도직입적으로 들이댔다.

   <<자, 이젠 어떻게 할 셈인가, 그냥 맛서볼텐가 아니면 기의할텐가?>>

   기의라는 말에 긴장해진 황복룡이도 담호궁이도 낯빛만 흐릴뿐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려홍이는 잠간 사이를 두었다가 다시물었다.

   <<만나자는 기별을 받고 생각들이 많았을줄로 믿네. 한사코 사문동을 섬기면서 그냥 국민당을 따라갈터인지, 아니면 죄를 씻고 공산당측으로 넘어올터인지, 길은 두갈래뿐. 말하자면 하나는 암흑한 죽음의 길 멸망의 길이고 하나는 광명의 길 살길이란말이네. 자기가 갈 길은 스스로 선택할 권리가 있지만 시간은 오래 끌것을 허용하지 않네. 그러니까  어느길을 걸을지 어서 용단을 내리게.>>

   <<려홍이! 자넨 나를... >>

   왕복룡은 원망하는 눈으로 려홍이를 넘겨다보았다.

   <<내가 자네를 난처하게 만들었단말이지? 그따위 옥생각은 싹 버리라구! 자넨 자기가 우상으로 모시던 사문동이나 조위전지주가 자네를 딴눈으로 보고있다는 걸 알고나있는가?. ...사악한 넋이 머리에 슬며들지 않았거든, 만백성의 원쑤로가 되지 않으려거든.... 앞을 내다봐얄게 아닌가!>>

   일본이 패망한 후 사문동이 나서서 조직한 중앙선견군은 그사이 여기 이 북만땅의 처처에서 살인하고 략탈을 일삼아서 토비로 몰리우고있는데,  3천만 인민들의 불구내천의 원쑤로 되고있는데 당신들은 도대체 왜서 아직까지도 각성못하고 그자를 추종하려는가고 하면서. 려홍이는 안타까운 친절성으로써 너들은 단순하고 우매한 정신의 포로가 되어 혼매한 자기를 아직도 똑똑히 보지못하고있다고 깨우쳐주었다.... 한편 공산군은 보향단이 기의할것을 집요하게 바라고있다. 기의를 거절하면 어떻게 될것인가했다. 이에 왕복룡은 제 고집으로 하여 빗어질 후과를 눈앞에 그려보지 않을수 없었다. 처참한 싸움이 벌어져 무고한 백성들이 죽고 금성은 피바다에 잠기고말 것이다. 그것은 실로 생각만해도 몸서리칠 일이였다. 보향단이 만약 기의를 접수한다면 금성백성들이 죽음과 재난을 면하게 될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니 어떻게 할 것인가. 백성을 위해 립공속죄할것인가, 아니면 개인의 출세와 영달만을 위해서 완강하게 반항할것인가?... 왕복룡은 생각을 거듭했다. 무엇이 출세고 무엇이 향락인가? 국민당장교로 살면 그것이 출세인가? 능라금수에 몸을 감고 이같이 화려한 집에서 살면 그것이 향락인가? 산해진미를 먹으면서 매일 보명주로 반주하면 그것이 향락인가? 창기, 창녀, 기생과 술집계집차고 배반이 랑자하게 먹고 놀아치면 그것이 향락인가?... 백성들의 죽음과 재난우에 향락을 쌓는것이 그래 정직과 선량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량심적인 소행이라 할수 있을가?... 왕복룡은 정세의 위험을 똑똑히 깨달으면서 인망높고 세도컸던 자기에게 점점 들씌워지기 시작하는 언망과 비난의 목소리를 돌이켜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다. 여직껏 허탄한 꿈속에서 죄만 쌓는 길을 걷고있었 자신이였다. 이젠 더는 죄를 짓지 말고 살아야 했다. 인간다운 량심을 갖고 살자... 왕복룡은 드디여 기의를 하기로 결심을 내렸다.

   <<반갑네! 이제야 진짜 내 친구로 되었네. 시원스레 대답했으니 이제 마음이 퍽 가벼워질거야. 어제 박퇀장께서 자네를 만나면 배은망덕하지 않은 호한이라고 칭찬할거야, 칭찬하구말구, 대공 특공을 세우는건데!... 우리 박퇀장이 자넬 기억하고있지.  어떻게 아는가구? 저  복용이, 해방이 되던날... 자넨 우리의 발목에 채웠던 족쇄를 끊어주던 사람이 기억되나? 그렇지, 바로 그이가 우리 민주련군 독립퇀의 퇀장인거야.>>

   려홍이는 하염없는 정념에 가슴들먹이고있는 왕복룡의 손과 담호궁의 손을 굳게 잡고 맹세대로 행동해줄것을 굳게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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