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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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관동의 밤>> 제1부(10)
2015년 02월 03일 10시 48분  조회:2890  추천:0  작성자: 김송죽
 

                          10

 

 

 

 

 

   이듬해 봄이 둘아왔다. 민호가 소속되여 있는 반의 류자들은 임무가 끝나 본채로 돌아오고 대신 200여명의 류자가 일시에 동원하여 우마와 쟁기들을 가지고 약담배농사지으러 갔다. 조사할수도 없고 조사받지도 않는 땅이였지만 어쨌던 나라의 정부를 속이면서  하는 짓이라 다른 여느 농사일과는 퍽 달랐다. 그들은 밭갈이를 하거나 기음을 매거나 철이 되여 꼬투리에서 아편유액을 받아낼 때면 언제나 이같이 반수이상이 동원되여 불이 번쩍나게 돌격전을 벌리군했었다.

     본채로 돌아온지 닫새되도록 민호는 진사해를 보지 못했고 그를 만나지 못하니 손쓸수도 없었다. 그녀석이 약담배밭에는 안갔는데 대체 어디로 새여버렸을가? 산채에 없는 걸 보면 분명 외출한 사람이였다. 한데 어디로 갔고 언제 돌아오는지 알길없었다. 그걸 내놓고서 아무누구하고나 척 척 물어볼수도 없는거고.

    아무튼 좋은 기회를 놓쳐버리는것만같았다.

    민호가 마음둘곳없어 무료해하는데 마침 할 일이 나졌다. 3패에서 패장노릇을 하다가 련장류자가 차챈즈의 명령을 받고 쟁반밟으러 나갔다가 잘못되여 그 자리에 방금 올라앉은, 언젠가 위진이가 사슴잡아 위삼포에게 진상(進上)하고 위신을 얻었다고 알려주던 그 성명이 리황수란 류자가 나으리의 분부를 받고 찾아온거다.

   《네가 정민호냐.》

   《그렇소. 무슨일이요?》

   《두령한테 가봐, 부르시니까.》

   《그가 왜 나를 부른다는가?》

    리황수는 조선청년의 배때벋은 언동에 언잖고 불쾌해났던지 바라보는 눈길이 그리곱지 않았다.

    민호는 속으로 별 덜러운 자식 다 보겠다 내가 누군데 너한테 다 굽실거려야 하는거냐 하면서 여전한 투로 물어봤다.

   《어느 두령한테 가라는건가?》

    대방은 눈살이 꼿꼿해지더니 뱉듯이 알려줬다. 

   《위두령한테루 가. 널 기다리고계셔.》

    위삼포가 날 왜 부를가? 왜 갑자기 찾을가?…갑을간 가보는 수밖에 없었다.

   《이런일일세. 젊은이가 한 번 맹가강엘 갔다와야겠네. 거기에 사는 맹씨가 나하곤 전부터 교분이 있는 분인데 셋째아들놈이 요새 장가를 간다나. 청첩을 보내온거네. 받구서 모르쇠를 놓을순 없고....준비가 됐을텐데 곧 갔다오게. 》

    민호를 보자 위삼포가 하는 말이였다.

    맹씨란 맹가강의 부호 맹사덕지주를 말하는건데 그네와 위씨일가족은 선대로부터 관계가 좋았다. 토끼가 배를 골아 죽을지언정 제 굴옆에 돋아난 풀은 먹지 않듯이 위씨네 역시 도처를 다니면서 료략질을 하고있지만 가까이에 있는 부호들은 괴롭힌적이 한번도 없었거니와 그들과는 사이를 좋게 하고 지냈다. 그뿐아니였다. 위삼포는 지어 염왕산주위 어느 마을에 상가가 있어서 알리기만 하면 빼놓지 않고 찾아가거나 그렇게 하지 못할시에는 대신 수하의 새자를 보내여 금백(金帛)과 지촉(紙爥)으로 돕기도 했다. 그리고 어려운일을 당해 알리면 도와줄만한 것은 되도록 도와줬다. 그런 일은 극히 드믈었다. 백성들도 자신의 일에 그들을 불구렁에 밀어넣으려고는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무는 클수록 잎이 뿌리에 떨어지는거네. 우리가 이렇게 하는건 다 산채의 안전을 위해서일세. 이렇다는걸 젊은이는 알아야겠네. 그러니까 부도한 일은 없도록허게.》

   《예. 주의하겠습니다.》

   《거기 아마 왕견이가 있겠지. 걔와 함께 떠나도록하세.》

   《예. 분부대로하겠습니다.》

    허리굽혀 수긍을 표시하고나서 민호는 그가 손에 쥐고있는 매끌매끌 윤나는 변간죽을 보면서 속으로 생각을 굴렸다. 이 일은 다른 사람을 시켜도 얼마든될건데 왜 하필 나를 불러다가 이같이 직접맡기는걸가. 이건 위삼포가 나의 담략과 기질을 떠보자는게 아닌지도모르겠구나. 정신차려야한다. 그리고 주의해야한다. 이런때일수록 신임을 잃지 말아야한다, 악으로 굳어진 복수를 성공하자면.

    제 거실로 들어가려던 향란이가 마침 중앙산채를 나서는 민호와 정면으로 맞띠워 웬 일이냐물었다. 민호는 자기가 오게 된 연유를 말했다. 향란이는 듣더니 쌩긋웃었다.

   《그렇다면 기쁘겠네요.》

   《내가 기쁠게 뭡니까?》

   《잔치집에서 귀빈으로 모실텐데. 안그래요.》

   《맹씨가 그렇게 해줄가?》

   《왜 그렇게 안하겠나요. 꼭 그렇게 할거얘요. 그분은 우리하고 교분이 두터운걸요.》

   《그렇다는건 나도압니다. 위두령께서 말씀하시더군.》

   《아버지가요. 그래 동행자는 누군가요?》

   《왕견이하구 같이가라는구만.》

   《아, 그래요! 그 도툴없는 사람하고 동무하게됐군요.》

   《글쎄말입니다. 위두령은 왜 그하고같이가라는지 모르겠는걸.》     《그걸 달리생각말아요. 저의 아버지도 언젠가 그일 데불구갔다오신적있어요. 그때도 지금처럼 청첩이 왔길래…아마 맹씨네 큰아들잔치때였을거얘요. 허니까 왕견이야 그 집에는 초행이 아니죠. 안그래요. 이런 길에는 아무튼 구면이 썩 낳지요. 그리구 그인 손발을 씀이 굼뜨지 않아 유사시 제 구실은 할거얘요.》

   《왕견을 내 이 정모의 신변보호인으루 딸려보내는건가.》

   《그렇잖구요. 바로 그렇죠.》

   《그자식이!》

    민호는 육기가 좋거니와 목소리마저 바스음이여서 어디가나 로지심이나 리규같이 유표가 나는 왕견이가 자기를 향해 웃음을 던지고있는것만같았다. 왕견은 민호와 한반이여서 매일 코를 맞대고지내는 류자인데 나이가 민호보다 세살더먹고 위진이보다는 세살 적게 먹었다. 결대크고 생김새와 같이 성격이 우락부락하거나와 목자가 사나운사람이다. 함께 지내면서 볼라니 그리 역지 못하고 무지하게 놀때가 많은데 고집이 어찌나 센지 그가 여러 류자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독선을 부릴때면 누구든 감히 반대곡을 부르지 못한다. 그럴때는 제똥에 처박아두는게 제일이였다.

    염왕산 류자들을 보면 그 성분이 친윤기간이거나 친척간으로 돼있는게 적잖았다. 왕견역시 그러했다. 민호가 빨쥐새끼라 놀려준적있는, 경조부박하고 허풍떨기 좋와하고 칙살스레 까불어대고 추접은 쌍땀하질에 입이 걸어진 왕은경이 바로 그의 사촌동생이 되는거다. 같은 수탉이라도 싸움잘하는 웅계가 더 자유롭고 행세도 부리는 법이 아닌가. 왕견이 그러했다. 민호가 속으로 내가 어떻게 하면 어거지 센 그 녀석을 손에 넣을가고 궁리하는판에 향란이가 귀띔하는것이였다.

   《근간에 자질구레한 행세꾼이 적잖게 나돈대요…지방마다 련방대가 조직된 모양인데 좀만 의심돼도 잡아들인대요…조심해요.》

   《일깨워줘 고맙습니다.》

    민호는 이제는 자기앞에서 오만을 부리지 않고 직심스러운 녀인의 권고를 고맙게 여겼다.

    

    말을 줄창달려 맹가강(孟家崗)에 닿고보니 오후세시경이였다. 염왕산 서남밖 비옥한 버덕에 자리잡고있는 맹가강은 호수가 무려 700여호라니 북만치고는 그리 작은 마을이 아니다.

    마을복판 너르게 자리잡고 들어앉은 고래등같은 기와집 몇채가 맹지주의 장원이였다.

   왕견이 거기다 눈길을 던진채 입을 열었다. 

  《맹사덕이 올해 나이 아마 예순둘일거야. 복은 혼자안구 사는 령감태기지, 젊은 첩만두 다섯이나 거느리구있으니까. 본댁을 놔두구서두 그렇게…》

   《본댁이 늙으니까 자연히 꼴보기싫어난모양이지. 호박늙은건 먹기나좋지만 사람이야 어디…》

   《하긴 그래서 그러긴하겠지만두 공을 봐서라두 본댁을 너무 랭대는말아야지 안그래. 그게 부지가 대단해서 새끼를 저그만치 열이나 놔줬으니까. 그놈의 구멍으룬 아닌게아니라 무를 뽑듯이 뽑아냈지. 거기다가 첩년들이 낳은 것 까지 합치면 맹령감은 자식이 스믈일곱이야  스므일곱.》

   《저런! 옹군 두 개반을 만들겠군!》

   《그렇다말다. 본댁은 련거퍼 일곱이나 무던히 줄딸을 놓고서야 미안했던지 얌전하게스리 아들 셋을 나아줬는데 그 망냉이가 바루 래일 장갈간대. 그런데 맹령감이 마지막에 맞아들인 애첩이라는게 이제 나이 설흔둘이라니 시집간 넷째딸하구 동갑이라나. 령감 그놈의 변자는 물개의 건지 원…기운을 써두 이만저만이 아니라니까.》

   《하하하…근력이 대단한데!》

    큰 마을이건만 생각과 다르게 분주하지 않았다.

    그들을 딴눈으로 보는 사람도 없었다. 

    두사람은 마음놓았다.

    맹지주집의 종이 선통해서 주인은 곧 달려나와 산채에서 온 손님들을 공손히 맞아들였다.

   《여러분 미안하게됐습니다. 따로 모실분들이 있어서 자리를 같이못하게 됨을 량해하시우.》

    주인의 말에 이미와있던 좌중은 눈치채고 얼른피했다.    왕견은 잊지 않고 뜨락을 한바퀴돌아봤다.

    민호는 맹지주와 수인사를 하고나서 갖고 온 홍비단과 금괴를 싼 례물꾸레미를 내놓았다.

   《위두령께서 몸소오실 형편이 못돼서 저를 보냈습니다. 약소하나마 허물말고 받아주신다면 고마우리라하십디다.》

   《감사하우다! 감사하우다! 산채에 돌아가거든 이 맹사덕이가 나으리의 높은 덕성에 감사드리더라구 전해주게. 그리구 우리야 지냄이 선대부터 한집안과 같으니 어려움이 있거들랑 서슴치말고 알리라하더라구 전해주게.》

   《예! 그럽지요.》

    민호는 어김없이 전해주리라 대답하고나서 눈길을 돌려 사위를 피끗살폈다.

   《개가 없습니까?》

   《내 집에는 없지. 온것두 다 믿을만한 사람들이네.》

   《짓지 말아얄텐데.》

    주인은 안심하라지만 잔치준비로 드나드는 사람이 있는지라 마음이 놓이지 않아 민호는 인츰돌아서려했다.

    한데 주인이 극구만류하는것이였다.

   《아니 먼길에 모처럼 와갖구서 어떻게 빈입으루야…수절도 들잖구돌아가면 내 속이 편안할가. 크게 차리진 않겠소만 두분은 편히 앉아서 한잔 제꺽하게.》   

    맹지주는 주안상을 얼른차려오라 지시했다.

    죄지은 도적에게 어찌 안심이라는게 있으랴. 둘이 한창 먹고있을 때였다. 파수를 서고있던 맹지주집의 수위가 달려들어오며 구공서(區公所)의 련방대가 온다고 알려줬다.

    둘은 얼른 자리차고일어났다. 그리곤 밖으로 달려나가 각기 자기 말을 제꺽풀어타고 북문으로 바람같이 빠져버렸다.

    구공서의 련방대는 한발늦게 당도하다보니 그들이 장원을 뛸쳐나가는것도 미처 발견못했다.

    들키우지 않았으니 맹지주한테 루도 미치지 않을것이다.

    

    그런데 일은 공교로왔다. 민호와 왕견은 산채로 돌아오다가 어느 한 마을에서 뜻밖의 일을 목격하는통에 귀로를 지체하게됐다. 길옆의 어느 집에선가 구곡간장이 끊어질듯한 울음소리 터져나와 길을 재촉하고있는 그들의 신경을 잡아끌었던거다.

    어찌 그냥 지나버리랴.

   《가만! 그저일같잖아. 왕형은 여기서 기다리오, 내 얼씨덩 들어가보고 나올테니.》

    민호가 말끝을 맺기바삐 말에서 뛰여내렸다.

    집안에 들어가 보니 백발이 다 된 늙은 량주뿐이다.

   《아니 왜 이럽니까? 댁에 무슨일이 생겼길래?》

    령감이 나오는 울음을 삼키고 알려주었다.

   《토비녀석들이 내 손자앨 업어갔수다. 백주에 이런 기막힌 일 어디있소, 글쎄.》

   《그게 언제즘됩니까?》

   《알기는 저녁켠일세. 해넘어갈 때였네. 어두워오두룩 애녀석이 들어오질않길래 찾으러 나갔더니 본 사람이 있어서 알려준거네.》

    때는 이미 사위를 분간키 어려울정도로 어둠이 깃든 밤이였다.     《아니 그런데…애를 잡아가는걸 봤다는 사람이 왜 인츰알리지 않았답니까?》

   《거야 말하면 죽인다구해서 그랬지.》

   《그놈들이 어디루갔답니까?》

   《내가 그걸 어떻게 알겠수.》

   《아니 그것도 모르다니 원.》

   《후―알면야 이러구있겠수. 저 그런데 임자는 대체 누구요?》

    로인은 그제야 생면부지의 젊은이를 의아쩍게 여겨봤다.

    불상한 로인들이였다. 화서즈가 오지 않은걸 보니 아이를 인질로 잡아간 토비녀석들이 그리 먼데로 간것같지는 않다. 인질로 잡아가면 화서즈는 일반적으로 3일을 넘기지 않고 그의 집에다 돈을 얼마가량 내라 그래야 잡아간 사람을 돌려주리라는 해엽자(海葉子―편지)를 보내는거다. 어디 놈들인지 가난한 백성집에 달려들어 이따위 행패질이니 너절한 떨거지들임이 틀림없다. 그건 그렇고, 갑을간 보고서 가만내쳐둘수는 없는일이였다. 내 그놈들을 찾아낼테다. 민호는 속으로 결심을 내리면서 로인을 향해 말했다.

   《로인님, 절 나쁜사람이거니 생각마시오. 난 염왕산에서 왔습니다만 절대루 그런놈은 아닙니다.》

   《젊은이가 그래 위삼포의 수하사람이란말인가!》

    로인은 염왕산이란 소리에 눈빛이 되려 밝아졌다. 이건 이 지방에서는 위삼포손에 피해를 당하지 않았거니와 외려 보호를 받아왔음을 설명하는것이였다.

    민호는 령감더러 너무상심말고 기다려보라해놓고나서 얼른 거기를 나왔다.

    밖에서 초조히 기다리고있었던 왕견이 뭘하느라 그리 꾸물거렸느냐며 언잖아했다.

    민호는 알려줬다. 

   《덜돼먹은 녀석들이 령감의 어린 손자애를 표로 잡아갔다우.》     《그런데는?》

   《찾아줘야지.》

   《뭐라? 가뜩이나 늦었는데 산채룬안가구?…이런다면 우린 규률위반이야.》  

   《규률은 무슨눔의 떡대갈같은 기률이야. 무고한 백성 화입는걸 빤히 보구서두 왕형은 그래 눈감을참이요?…염왕산의 법규가 뭔데?…살부제빈이라 했지. 구호만 버젓하구 행동은 그렇게 안하면 그게 대체뭐요?》

    민호의 입에서 격한 질문이 련발튀여나왔다.

    왕견은 그만 말문이 막혀버리고말았다.

    그들은 다른사람한테서 여기에 왔던 도적떼가 마을을 떠나갈때 동으로 향하긴했어도 그건 눈속임수일게고 틀림없이 북산골에 갔으리라는 정보를 얻었다. 하여 그들은 곧추 그리로 향했다.

    

    여기서 한 15리가량되는 북산골에 인가가 불과 50여호밖에 안되는 자그마한 마을이 하나있는데 거기에 과연 한떼의 비도들이 들어 있었다.

    쪼각달빛에 총신이 번적거리면서 보초의 질분이 날려왔다.

   《선마만?》

   《염왕산이다! 분자를 거둬라, 이자식!》

    대방은 왕견의 욕설에 겁이 질리는지 총을 내렸다. 

    이번에는 민호가 입을 열었다.

   《리마인이야. 너희들은 누구냐?》

   《우린 비룡패다.》

   《뭐라, 비룡패라니? 어디서 날아온 똥개지냐.》

    왕견의 욕지거리가 다시터졌다.

    민호가 집요한 투로 말했다.

   《너희들 당쟈더(주인)가 어데있냐? 거거아!(데려다날라) 내가 당장만나봐야겠다. 얼씨덩!》

     보초는 이쪽이 염왕산패라니 감히 엇서지 못하고 곰상히 말을 들었다. 그자는 말을 타고 나타난 이쪽의 둘을 가까이에 있는 한 가옥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민호는 낮에 료략질하고 곤해서 잠에 골아떨어진 비룡패두목을 깨워서 일으켜놓고는 간단히 인사수작이 있은 후 단도직입적으로 캐물었다.

    《당신이 낮에 앞마을 장령감네 손자를 가져왔소?》

    《그랬소. 그런데는 어쨌단말이요.》

    《어쨌다는게 뭐요. 당장내놓소.》

    《이건…》

    《당장내놓으란말이야.》

    《이건…》

    《당신들은 대체 어디와서 이모양들이요.》

    《하룻강아지 범무서운줄모른다더니 여기가 어딘데 너희들이 감히 날치는거냐?…》

     왕견이도 뒷따라서 눈알을 지릅뜨며 한마디뱉었다.

     비룡패두목은 이켠에서 배때벗게 울러메니 가슴이 얼어드는지 그만 주눅들고말았다.

    《나두 입에 풀칠을 하자니 이 먼데루 온거요.》

    《뭐라? 풀칠하든 똥칠하든 제곳에서나 할거지 여기룬 왜 게바라들어?》

    《왕형은 좀…》

    민호가 왕견의 무작정 터지려는 욕설을 막아놓고는 추호의 양보없이 협박해나섰다.

   《잡담제하구, 어쩔텐가. 표를 내놓을텐가 안내놓을텐가?》

    류자무리들간의 범계는 대방에 대한 멸시고 도전이 아닌가. 염왕산의 점령지역에 몰래기여들었던 비룡패는 방정맞게 염왕산류자를 만나고 보니 감히 맛설수도없는지라 울며 겨자먹듯이 인질을 내놓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나서도 타격과 징벌이 무서워 그밤으로 거기를 떠나버렸다. 큰고기가 작은 고기를 잡아먹고 작은 고기가 새우를 잡아먹는판인데 인원이 겨우 30여명밖에 안되는 무리를 끌고와서 제깟게 어쩐단말인가.

    산채로 돌아온 민호는 늦게돌아왔다해서 말을 듣지 않았거니와 도리여 일이 잘되였다. 인과응보(因果應報)이라 마음좋게 쓴데야 해가될리있으랴. 며칠이 안돼서 항간에서는 염왕산이 또 한차례 남의 화를 건져줬다는 칭송이 나돌았고 이로인하여 위삼포의 인금도 올라가게 되였다.

    마음이 흐믓해난 위삼포는 사량팔주가 다 모인데서 민호를 유공자라면서 내놓고 칭찬했다.

   《내 이 위삼포가 옛날 정훈이 시험관질 할 때 안표를 알아보지 못한 것 처럼 민호를 알아보지 못할번했네. 그가 이번걸음에 산채에 위망을 올려주고 국이 더욱 밝아지게했으니 기쁜일아닌가.》 

    반둬더가 뒷이어 말결을 달았다.

   《소는 길마를 지워보면 알수있고 말은 안장을 지워보면 알수있다잖는가. 사람은 일을 시켜봐야 이렇게 알수있는거네. 민호는 과시 우리 염왕산의 호한답소! 그러니 내 생각에는 상을 크게 내려줌이 마땅할 것 같소.》

    이번에는 혼자서 위태로움을 무릅쓰고 쟁반밟으러(주) 나갔다가 항간에서 떠도는 그런 칭송을 알아온 차챈즈가 한마디 했다.

   《요번걸음이 쟁반밟는것도 아니였건만두 민호동생은 시종 경각성을 늦추지 않아 눈섶에 떨어지는 화를 용케 면한게 아니겠소. 나는 우선 그것이 대단히 잘된 행동이라구 보오. 그리구 표로 잡혀간 장령감네 손자를 찾아준일도 그렇지…응변과 과단성을 사람마다가 다 소지하고있는거야 아니지. 지기와 담략없이는 그렇게 못하는겁니다. 안그런가요? 여러 형님들!》

    모두들 그렇구말구 하면서 염왕산 류자모두에게 용감성과 책임성을 키우기위해서도 민호에게 상을 크게 주고 칭찬해서 본보기로 내세우는게 좋을것이라했다.

이틑날 표창대회가 열렸다. 위삼포는 수하새자는 모두 들으라면서 민호의 공적을 한바탕 라렬하곤 그한테 상금 50원을 주었다. 그리고는 모두들 보았는가 산채의 국이 밝아지게 행동하는 자에 한해서는 장차도 어김없이 후더운 장려가 있을것이라 덧붙였다.  민호는 자기가 받은 장려금에서 절반갈라내여 그것을 왕견에게 주었다. 왕견은 올 때 그릇된 주장을 내놓은것으로해서 아무런 공도 없는 사람이 되고말았다. 그는 산채에 돌아와갖고 위삼포한테 너의 머리는 그렇게 메주덩이냐고 조소어린 힐난을 들었거니와 자칫하면 처벌까지 받을번했다. 원래는 묵과해버렸어야했을건데 민호가 그 일을 곧이곧대로 회보한바람에 위삼포는 물론 다른 두령들까지 이마살을 찌프리게 만들었던거다. 내가 미런한 짓을 했지. 글세 새퉁바라지같이 입정을 놀려 평시에 무난스레 지내온 사람과 나 자신을 스스로 척지게 하고 대립되게 만들어놓을건뭔가. 50원 돈이 어디 적은가. 이 많은 돈을 내 혼자가지면 왕견은 감정이 어떻겠는가. 참새같이 역어빠진 자식 하기는 잘한다고 할 것이다. 만을보같이 심술궂은 그가 그래 아무때건 기회를 보아 앙갚음을 하지 않겠는가…생각할수록 후회되는일인지라 배신감과 죄책감이 심절히 느껴져서 민호는 그한테 꼭 사과하고 자신의 실수를 미봉해야겠다고 맘먹었던것이다. 후환을 없애기 위해서는.

   《아니 이거, 동생이 받은 상금인데 나를 줘. 솔직히 말해 난 욕볼놈이야…부끄러워 못받겠어.》

    이러면서 왕견은 제법 체면을 차리려했다.

    민호는 그래도 굳이 내밀었다.

   《왕형이 반대는했어두 결국은 엇갈리지 않구 나하고 배합이 된게 아니요. 그러니까 두말 말고 받소. 솔직히 말해 왕형이 무술높다니까 나도 속이 든든하구 용기났던거요. 안그러믄야…그러니까 실은 공이야 둘이서 같이세운게지 뭐요. 안그러우?…이제 그런 기회 또 있다면 난 그때두 왕형하고 같이갈테요. 왕형은?…자 그러니 내 맘 알고 이 돈 받소! 받으라니까!》

   《허허 이거…》

    속에서 한창 주먹같은 불만이 올리밀고있던 왕견은 입이 함박만해갖고 못이기는척했다.

    이런때 다른 하나의 탐욕이 끓는 눈이 민호의 거동을 은근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것은 반장 위진의 눈이였다. 자식이 네가 상을 탓어, 어디 두고보자. 역을 들어 널 무난하게 만들구 받아주기까지 한 이 형님한테는 어떻게 하는가구 하고 그의 눈은 벼르고 있었다. 하건만 민호는 그가 넘겨다 볼 주제못되는 남의 상금에 그토록 감질을 내리라고는 미처생각못했다. 그리 광채롭지 못한 눈빛이 번득이는걸 보고 그저 오 너도 부러워 샘이 나겠지 했을뿐이다.

    

    은초사같이 얇은 구름이 비꼈다가 걷히고 동그란 해가 얼굴을 활짝드러내면서 웃어주는 따스한 봄철의 어느날. 류자들은 우리에 내내 같혀있은 닭모양으로 모두 밖에 나와 볕쪼임을 하고 있었다.

   《젠장! 다 내놓는다. 누가 나하구 주먹비겨볼테냐. 이기기만 하면 이 돈을 다 주겠다. 그러니까 자, 자, 나오라! 자신있는 놈은 어디 나와 덤벼들란말이다!》

   왕견이 어디가서 술을 퍼마셨는지 낯이 익어가는 고추같이 지지벌개갖고 오더니만 기분이 자못 도도해서 민호가 준 돈을 몽땅 땅에다 둘러메치며 탕탕 큰소리쳤다.

   모두들 벅작고와댔다.

  《그깟재간갖구 너무시뚝해말라.》

  《저치가 왜 저래.》

  《또 본병도졌나봐.》

  《망신톡톡히 줘야 알가부다. 팽덕이 너 나가라.》

  《이번엔 지지말구 한 번 본때를 뵈여라.》

   아무리 장수라도 힘이 무진장한건 아니니 이쪽은 주먹치기술이 쑬쑬한 장구머리부터 내밀어 안하무인으로 으시대는 그를 우선 땀빼게 만들어놓고 보자는 속셈들이였다. 한데 팽덕이가 자기같은건 덤벼봤자 헛짓임이 빤한지라 도리머리저었다.

   《난 간밤에 쏘개만나서…》

    그 소리에 왕견은 입을 벌릴대로 다 벌려 웃으면서 놀려줬다.

   《으 하하하!…그렇겠지. 너야 워낙 똥물이나 쌀 녀석인데 감히  또 이 어른께 덤벼. 으 하하하!…》

    방금 쏘개를 만났노라 핑게대던 팽덕이는 그만 약이 올랐다.

   《야 너 정말 그럴내기야.》

    그는 왕견이가 독장치면서 오만스레 노는 꼴을 그냥 참고 볼수없어 나서고말았다.

   왕견은 방울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야 이 햇병아리같이 철없는 놈아, 네가 그래 그예 덤벼볼참이냐. 한 번 망신했으면 그걸 부끄러워하고 곱다랗게 있을게지.》

   《시뚝해말어. 오늘은 너의 목대를 내가 분질러놓고말겠다.》

    골이 난 팽덕이는 옆에서 모두 그런 소리듣고 가만있는가 하면서 추기고 부채질하는지라 물러날 념을 하지 않고 씽 달려들었다. 그러나 주먹질 한 번 했을 뿐 우악살스런 왕견의 발길에 채워 저쯤나가 언 말똥같이 동그라졌다. 웃음이 터졌다.

    다른자가 나갔건만 역시 그모양이다.

    하나, 둘, 셋, 넷…웬 영문인지 나가는치마다 다 그꼴로 지고만다. 그러니 왕견이야 더 시뚝해 할 수밖에. 마당에는 웃동을 벗어재낀 그의 웃음소리뿐이였다. 거의 허벅다리만큼이나 실팍한 량 견대팔에다 매발톱을 커다랗게 먹침한 왕견은 울라초방망이 같은 주먹으로 털이 부시시 난 제 가슴을 탕탕 두들겨대면서 이만하면 그래 어떠냐 소림의 무술은 내가 정통하나답지 않다고 나발불기까지 했다.  온 산채에 아무렴 그래 저치 하나를 당할자가 그리두없단말인가. 기껏해야 패나 아니면 련에서나 외딴을 치겠지. 민호는 맥이 빠지고 숨이 차서 씨근거리면서도 싸움에 이긴 장닭모양으로 머리들고 힘을 다시빼무는 그를 향해 부러 눈을 꼬며 경고했다.

   《어이, 왕형! 너무 시뚝해마우. 다른사람은 뭐 허깨비가 돼서 못겨루는줄 아는가. 그런게 아니라니까.》

   《챠, 이거! 좋아, 그럼 네가 어디 한 번 나와 덤벼봐. 자, 어서나와보란데.》  

   《지금은 그러고십잖소. 내가 참아주지.》

   《뭐라? 참아준다구? 네가? 하하하…》

   《제길할! 웃긴 왜 웃소.》

   《네가 그래 자신은 있는데?…그따위소리하는걸 보면 네가 아마 제대로 염근 녹두알쯤은 되겠구나. 하하하…》

   《녹두알이라니? 콩알은 아니구 녹두알?》

   《어, 어, 그래! 그래! 넌 콩알이야, 콩알. 땅땅 염근 북만주의 노랑콩알이야!》  

    류자들은 모두 하하 웃었다.

    사람이 여믄걸 콩알이라는데 내가 정말루 그럴가?…민호는 여기에 온지 얼마안되여서부터 염왕산은 상무(尙武)의 기풍이 짙음을 보아냈다. 하지만 참대속에 든 뱀의 길이를 알수없듯 민호는 형님이라 불러줘야 하는 류자건 자기를 형님으로 받들어주는 새자건 각자의 무술재간이 어느만큼인건 알지 못하고 있었다. 보아하니 류자 개개가 특기 한두가지씩은 다 갖고있는것만은 사실이였다. 나도 무술을 알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다시금 불붙듯 일었다. 서로간의 믿음과 사랑이 인간의 도의(道義)건만 너무 어리무던하면 약자로 여기고 머저리로 치부하는 세상이였다. 여기서 남한테 멸시받지 않고 지내려면 주먹이 드세야 하는거고 주먹이 드세야 우이를 잡고 사는거야. 내가 어떻게 하면 저자를 내 손아귀에 넣어볼가. 민호는 속으로 이런 생각만 굴리였다.

     

    염왕산에 신록이 점점 짙어가고 있었다. 푸르른 하늘에 목화송이같은 구름이 날려간다. 하건만 산채는 높은 산으로 둘러막혀 바람한점 스며드는 것 같지 않았다. 여기에는 인간사회의 문명역시 바람처럼 들어오지 못하는게 아닐가. 자연으로부터 받게 되는 이러한 심리적인 감응이랄가 생신한 멋이라곤 찾아보기어려운 여기서 더운습기로 암담해진 텁직한 하루하루가 지겹게 반복되여가고있는것만같았다. 아직은 류자생활에 깊이 젖어들지 못해서인지 민호는 떨어버릴 수 없는 죄의식과 더불어 따분하고 무의미한 기분에서 해탈하기 어려웠다. 아아 내가 언제면 원쑤를 갚고 여기를 뛸쳐나갈가. 어떤때는 속에 진 응어리가 풀리지 않은데다 갑갑해서 발버둥이질과 발광이 나갈지경이였다.

     하지만 실상은 그의 그러한 감수와는 달리 여기서는 오로지 류자들만이 즐길 수 있는 특유의 자유로운 생활이 활기에 넘쳐서  산채가 들뜷고 있었다.

     꼭 봐야 할 진사해가 오래도록 눈에 보이지 않았다. 외출한 것이 아직 돌아오지 않는지 아니면 어느 구석에 들어박혀 나오지를 않는지?…웬 영문인지 산채에는 아편심는 철을 지내고는 그어떤 집단적인 행사가 없었다. 모임이라도 있었으면 혹 볼수있으련만 그것마저없다. 상면을 재촉하는 기다림이 그를 더더욱 갑갑하게 만들었다. 한데 보면 어쩔텐가. 민호는 우선 비여있는 탄창에다 탄알부터 넣고봐야하는게 아닌가. 그러자면.... 유감스럽게도 반의 새자들한테는 한알도 구할 수가 없었다. 골트를 갖고있는 사람은 그 하나뿐이였으니까. 하여 그는 향란이를 다시생각하게 되였다. 언젠가 자기한테 탄알이 얼마든있다하지 않았는가.

    향란이 역시 골트가 있었다. 민호는 언젠가 그녀가 자기의 골트를 욕심내는줄로 알고 바꾸어주려고까지 했는데 알고보니 그런게 아니였다. 그녀의건 그저 민호것보다 좀 낡아보일 뿐 다른 흠은 없는것이였다. 향란이는 그것이 선대의 유물이라면서 보배같이 귀히 여기고 있었다.

    여기가 자유롭기는해도 제한이 있었다. 심규(深閨)는 사나이가 함부로 출입하기 어려운 곳이 아닌가. 어떻게 하면 위나으리의 딸님을 내가 자유로이 만날수있을가?… 뾰족한 방법이 제꺽나지지 않았다. 그래 머리골을 쓴다는게 혹시 그녀가 밖으로 나올수도 있지않는가 하는 그 생각이였다. 민호는 막연하기도했지만 우연스러운 만남이라도 기대하는 수밖에 없어서 중앙산채를 향해 주적주적 발걸음을 놓았다.

    근처에 이르니 악기소리들려왔다. 처음들어보는거다. 저건 대체 무슨 악기일가. 퉁소소리도 피리소리도 아니였다. 분명히 구현금소리같은데 맑고 은은한 그것이 바로 창문이 활짝 열려있는 향란의 거실에서 울려나오고 있었다. 듣자니 저 계집은 말타기와 쌍수도(雙手刀) 다루기와 철채찍재간부리길 좋와한다는데 거기다 음악도 좋와하는모양이다. 민호는 웬 일인지 츄얼이 부는 쿵캉지소리를 처음들었을 때의 기분처럼 가슴이 설레면서 눈앞에 쿵캉지를 불던 잃어진 안해의 사랑스러운 몰골이 다시금 삼삼히 떠올랐다.

    아아, 내 츄얼아! 너는 어디로 갔느냐?…

   《여봐요! 왜 거게 서있나요?》

    멍청한 인간이지. 얼마나 오래서있었으면 이렇게… 녀인의 챙챙한 목소리가 귀전에 날려와 고개를 번쩍들어 보니 향란이가 창문의 커텐을 걷고 이쪽을 내다보고 있었다.

    거북했다. 민호는 꼭마치 일을 저질러놓고 들킨 아이모양으로  일시 어리둥절해하다가 서둘러 대구했다.

   《저 별일아니요. 내가 아가씰 좀 만날일이 있어서.》

   《그래요. 그럼 들어와요.》

    향란이는 말했건만 사나이가 못박힌 듯 그 자리에서 그냥 미동이니 들어오란 말을 다시하지 않고 자기가 밖으로 나왔다.

   《무슨 일있는가요?》

   《다른일아닙니다. 향란아가씨한테서 권총알을 좀…》

   《그런가요. 그렇다면야 얼른말할게지. 골트탄알말이죠. 줄수있어요. 내가 언젠가 말하지 않던가요 내한텐 그게 많이있다구요.》

    향란이는 그 자리로 돌아들어가더니 얼마안있어 반들거리는 자그마한 나무함을 두손에 받쳐들고나왔다. 묵직해보였다.

   《백발이얘요. 이거면 되겠나요?》

   《그리많이!》

   《다 쏘고 떨어지거들랑 또 알려요. 그거야 공급해드릴수있으니까요.》

   《감사합니다, 아가씨!》

    민호는 기뻤다. 향란이가 제것을 아까와함이 없이 이렇게 선선히 내놓을줄이야! 

    한반류자들은 민호가 깜찍한 나무함을 손에 들고 오는것을 발견하자 그건 또 뭐야, 그 속에는 무슨 보배들었느냐며 욱 모여들어 다투어 빼앗다싶히 채다가 열어보았다.

   《야! 이건…》

    그안에 깜찍스런 권총탄알이 골똑한지라 모두 탄성을 올렸다.

   《하여간 귀신같은 운이 붙은 사람이라니까!》

    민호를 보고 벙어리권총차개라며 놀려주던 자들까지 혀를 내두르면 무척 부러워했다.

    

    민호는 약담배밭에 있는 산채에도 갔다왔고 맹가강에도 갔다왔지만 여기를 드나드는 길이 대체 어떻던지는 지금도 어리벙벙한게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아직 길도 제대로 모르고있다니?…만약 내가 어느날 원쑤를 잡아치웠던들 이래갖고야 여기를 어떻게 벗어난단말인가. 지금같아서는 백분의 일도 자신없었다. 염왕산의 산길은 듣던바와같이 정말 미로였다!

    어느날 민호가 자기와 제일가까운 새자인 하진국이보고 염왕산을 나가는 직통길은 없는가고 물어봤더니 대답이 명창이다. 왜 없겠는가 있지. 그런데 눈익도록 다녀보지 않으면야 있어도 없는것과 마찬가지지 하는 그거였다.

   《들어오긴해두 쉬히 나가진 못할걸. 지름길은 나도 인제야 비로서 알게된거야.》

    하진국은 이렇게 운을 떼여 다시말해놓고나서 눈을 감더니 소학생이 선생앞에서 숙제를 외듯 염왕산 산길을 형용한 시 한구절을 읊었다.

               

                      산앞에 산이요

                          산옆에 산이라네.

                          첩첩심산에 길은 아흔아홉갈래

                          가고가서 구백팔십리

                          그 산이 그 산일세.

                          남산의 숫사슴

                          북산의 암사슴부르는데

                          암사슴은 찾아못가

                          발구르며 울기만한다네.

 

   《쳇, 거짓말! 아무렴 짐승조차 그투록 길을 모를가, 원!》

   《내 말을 믿지 못하겠거든 어디 정형이 한 번 실험해보구려. 십리도 못가서 산귀신되고말거야.》

    이건 꾸미는 말이 아니였다. 하진국은 자기가 여기에 온지 6년사이만도 괘주를 한지 얼마안되여 일을 치고는 형벌이 무서워 도망친 새자 하나와 인질 둘이 도망은 쳤지만 산을 벗어나지 못하고 다가 굶어죽거나 짐승밥이 되였노라고했다.

    듣자니 그 어느 새자든 만약 여기가 싫어 묘동때나 다른 기회에 나갔다가 도망친다면 위삼포는 사람을 풀어 그가 천애지각에 가 있는다해도 색출해서 잡아죽인다고 한다. 정녕 그러하다면 지금 여기서 손을 써도 빠져나간다는건 천부당만부당한 일이였다. 이런 상황에서 민호는 부득불 장구지계를 세우는 수밖에 없었다.

    민호의 백말은 내내 후근의 사양실에서 위씨일가족을 비롯한 여러 사량팔주 나으리들의 말속에 끼여 특급대우를 받고 있었다.

    일은 관연 묘하게 되어갔다. 7월초의 어느 하루 민호는 자기 말을 보러 그 마사에 갔다가 돌아오면서 여직 한번도 보지 못했던 진사해를 우연히 만나게되였던 것이다.

    진사해는 무슨 좋은일이 있는지 황보재와 같이 어깨를 겯고 왁작 떠들면서 중앙산채의 북켠에 있는 제3패의 산채에서 막 나오고있는중이였다. 큰 키에 너부죽한 얼굴, 칼상처로 생겨난 게뚜더기―그것은 꿈에서마저 잊혀지지 았던 몰골이였다.

    민호는 제자리에 무루춤 서버렸다. 두 다리가 굳어져버린거다.

    저쪽도 이켠을 보더니 무르춤 서버린다. 황보재가 이쪽을 향해 사위스럽게 눈을 씀벅해 알은체를 하고는 그의 귀에 대고 무어라 수근거렸다. 그러자 진사해는 수염이 꺼슬한 턱을 치켜들고 껄껄 웃으면서 씨버려댔다.

   《개방구라해라. 제깟 꼬리방즈가 다 뭐길래…》

    원쑤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이럴변이라구야! 여지껏 재워둔 복수가 억제활수 없는 분노로 격발하는지라 민호는 대방의 명줄을 당장 끊어버리려고 권총을 뽑았다.

    저쪽도 행동이 굼뜨지 않았다.

    두 총구는 엄엄히 서로 노리였다.

    몹시놀랜건 황보재였다. 갑작스레 번져버린 험한 사태에 그는 어쨌으면좋을지 몰라 쩔쩔맸다. 마침이때였다. 제 병든 말을 보러왔던 위용강이 량태와 함께 사양실에서 나오다가 이 광경을 목격하고는 고함을 내질렀다.

   《무슨짓들이야! 분자를 놔라, 당장!》

    이쪽의 총구를 위용강이 막고 저쪽의 총구를 황보재가 막았다.      진사해가 먼저 권총을 집어넣으면서 껄걸 웃었다.

    량태가 노하여 둘을 꾸짓었다.

   《형제끼리 이게 무슨짓들이냐.》

   《저게 다 나와 형제되는가, 피자(개)같은 놈!》

    민호는 뽑아들었던 권총으로 하늘을 갈겼다.

    위용강이도 백두옹 량태도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했다. 민호는 그걸 저 진사해하고 물어보라하고는 몸을 돌려 제 숙소가 있는 동남쪽 산채를 향해 쥉쥉 가버렸다.

    왕견이 밖에 나왔다가 총소리난지 몇초안되여 나타난 민호의 상기된 얼굴을 보고 눈이 둥그래지더니 재우쳐 물었다.

   《아니 무슨일이냐? 너 무슨일 저질렀니?》

   《진사해 그놈이 날 욕했소.》

   《뭐라? 그자식 뭐길래 남을 욕한다니.》

    왕견은 단통 민호의 역을 들면서 진사해같은 패덕한은 아예 받지를 말았어야할건데 했다.

    다른이들도 그러했다. 이 한반의 무리는 돌같이 굳어졌다는 증거였다. 까마귀도 제와 더 가까운 놈을 안다고 하지 않는가. 한집안의 개 역성들 듯 한침실에서 같이 자고 같이 먹으면서 맘을 트고 지내는 사이니 누구라없이 우선 편부터 들어주고보는판이다.

    그런데 반장인 위진이만은 반응이 없다. 저치가 왜 저래?…

   《위반장! 내 좀…》

    민호는 팔을 끄당겨 그를 조용한 곳으로 데리고 갔다.

   《오늘보니까 그자는 정말 돼먹지못했습디다. 어쩜 나를 타민족이라구해서 그렇게 욕한단말입니까. 위반장보구서 <다즈>라구 놀리면 그래 좋겠습니까? 날보구서 <꼬리방즈>라니. 우리가 그래 언제 방치들구 행패질을 했단말입니까. 저런놈 언녕 방치로 대갈통깨놨어야할건데 내가 늦었어.》

   《형제끼린데 그래서야 되나.》

    자식의 입에서 또 이따위소리가 나오다니. 반장이면서 역성을 들지 않고.... 단통 드는 심한 배신감. 야속하다못해 민호는 격분하면서 증오가 부질부질 괴여오르는지라 참을 수 없어서 대들었다.

   《아니 위반장, 뭐랍니까? 내가 접때도 일깨워줬는데 그래 위반장은 지금도 그를 형제랍니까? 내 원 참…인제보니 소귀에 경을 읽었구만.》

   《이보게 민호동생! 너무 그렇게 옥은 생각은 말라구. 나도 생각을 많이해봤는데…》

   《많이 생각해본게 그래 이 모양입니까?》

   《모두들 그일 나쁘겐 평하질않더군. 내가 보게두 그래. 사람이 걸걸하구 호담하구…》

   《그래서 이젠 원쑤간이 아니된다 그 말인가?》

   《밤잔원쑤 없다잖아. 어쨌든 내하구야 척진일두 없는데.》          위진은 이러면서 전에 가졌던 감정을 변화된 감정에 희석시키면서 대답을 뭉때렸다.

    립장이 이렇게 앵돌아지다니 원! 에잇, 썩어버린 똥개야. 네녀석 그사이 벌써 바람들었구나. 민호는 맹충이같은 그를 헛믿어 온 자기가 불민해서 스스로 민망스러웠났다.

    열보다 쓰거운 실패였다.

    같이 있는 류자들은 누구나 이 조선청년이 생김새와 같이 성미가 씨원씨원하고 너그러운줄로만알지 여지껏 가슴속에 지독한 복수를 품어온건 누구도 모른다. 오로지 위진만이 이 조선놈이 대체 어째서 속이 이럴가 연구하면서 경계하기 시작했다.

    한편 진사해는 이 조선청년이 복수를 위해 사갈같이 독한 마음을 품고있는줄을 모르거니와 언녕부터 자기의 명줄을 끊어놓기위해 여기에 눌러앉은건 더구나 모르고 있었다. 그가 어찌알랴 이 민호가 바로 저 먼 북쪽 흑룡강가 어래무 허저마을서 살다가 제 허저인 안해를 잃어버린 그 신세불우한 조선독립군 청년임을.

    민호는 위진이를 쟁취하지 못함으로 해서 가슴 어딘가 한구석을 갑작스레 도난당한것 같이 허전해나면서 분했다. 한들 방법있는가. 사람을 잘못보고 믿었던것이다.

    내가 저 무럼생선같은 녀석을 어쩌면좋을가 생각하는데 왕견이 앞에 나타났다.

   《동생은 무슨일에 그러나? 보아하니 낯색이 좋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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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변자ㅡ좆  *쟁반을 밟다ㅡ기와가마 털기 위해서 정찰을 하다. * 기와가마ㅡ부호.

    * 껍질ㅡ끄나블. 밀정. * 해엽자ㅡ인질에 관한 편지.  * 표ㅡ인질. * 홍표ㅡ녀인질.

    * 거거아ㅡ나를 데려다달라.  * 동동자ㅡ양말.

    장려금을 갈라준 일로 해서 무척 고마워 사이가 어느덧 썩 가까워진 그였다. 민호는 이 시각 그를 투계(鬪鷄)로 써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불쑥났다.

   《왕형, 인제보니 저 위반장은 침벼락이나 맞고 뒤여질 허깨비였구만. 난 그런줄도 모르고 믿어줬지. 진사해는 안욕하구 되려 나만 나무린단말이요… 원 더러워서.》

   《아니 위진이가 그런단말인가, 반장이라는게 어디서?》

   《인제보니 믿을만한건 그래두 왕형밖에 없구만.》

   《오, 그래? 네가 날 믿어줘? 하하하!…》

    왕견은 민호가 자기와 사교(死交)를 맺자는 것 같은지라 대단히 반가와했다. 서로 형님 동생 하면서 먹어라 써라하지만도 그건 강조된 규률에 매여진 현상유지일 따름 사실말해 우락부락 고집이 세고 도척같은 그와는 여직 진심으로 속심을 터놓고 가까이 지내는 친구는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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