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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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정신을 분석해본다(2)
2015년 03월 11일 22시 24분  조회:2020  추천:0  작성자: 김송죽
 

일본정신을 분석해본다(2)

 

   사무라이의 무사도(武士道)가 일본민족에게 미친 영향이 대체 어느 정도인가? 기원 4세기말에 이르러 전국이 통일된 일본은 8세기에 사무라이가 생겨나 그것이 줄곧 19세기말까지 지속적으로 이어내려왔던 것이다. 그러니 그 기간은 순 “검객독재”시기였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 기나긴 세월에 일본민족문화가 바로 그 민족의 성격을 길러냈고 따라서 민족의 정신을 길러낸 것이다. 사무라이가 오랜세월 군권과 정권을 틀어쥐고 사회 엘리트(精英)의 위치를 차지했으니 일본사회의 인센티브 메커니즘(评判과 奖惩机制)은 다가 사무라이를 둘러싸고 존재하면서 공식화되였던 것이다.

   일본사람들의 무사도(武士道)에 대한 지어 맹목적인 숭배는 그 민족의 심리에다 사악(邪惡)을 길러주었던 것이다. 미국의 녀인류학가 베네딕토는 사무라이의 윤리와 악의 이중성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의미심중하게 천술했다.

   “덕과 악에 대한 리해를 보면 서양사람과 일본사람은 판판 다르다. 이는 독특한 시스템(体系)이다. 불교도 아니고 유가(儒家)도 아닌 그것이야말로 일본의 시스템인바 그것이 일본의 힘으로 되겠지만 일본의 치명적인 약점으로도 되는 것이다.”   

   무사도(武士道)의 침투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사무라이정신은 곧바로 일본정신의 핵심이였다. 하기에 일본의 국민성 정신문화에는 사무라이의 무사도낙인이 또렸이 찍혀있다는 얘기다.

   일본의 근대 저명한 사상가인 니토베작가는 무사도(武士道)를 일본의 영혼으로 간주하면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던 것이다. 

  “하나님의 모든 멋진 선물은 사무라이를 통해 전승되였다. 그들 사무라이는 일본민족의 뿌리다. 그렇지만 그렇다해서 그들이 나라의 꽃으로 되는것은 아니다.” 하면서 니토베작가는 “일본은 일본국가의 정신으로 이 세상을 촉진하려한다”고 했다.

   미국의 학자 벨라는 사무라이가 일본의 핵심가치를 반영한다고는 하겠지만 실제상 무사도윤리는 도쿠가와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사이에 완료된 것이라면서 하지만 그것이 적어도 국가윤리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리론을 내놓았던 것이다. 중국 학자들의 리론도 역시 가장 지속적인 문화적 가치는 일본 사무라이문화가 일본사람의 문화와 국가정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데 있다고 점을 찍었다.

   사실이 번연한바 일본의 군국주의는 곧바로 무사도의 변형인 것이다.

   개발과 진화의 긴 역사를 거쳐 생겨난 무사도는 이 세상에서 한갈래의  검은선이 되어 인류를 괴롭히고있다. 사무라이의 군사서비스, 특히는 도쿠가와 막부의 붕괴나 군국주의 이데올로기의 지배하에 일으켰던 지난때의 세계 대전에서의 일본군의 패배나 그 끝의 운명은 꼭 같음을 력사가 가르친 것이다. 필연이라해야겠다. 왜냐하면 군국주의와 무사도(武士道)는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일맥상통하는 것은 붉은선도 흰선도 아닌 군국주의의 검은선을 가리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해 일본국민은 거의 다가 한결같이 군국주의 의식형태의 지배에 따라서 움직이고있는 것이다. 특히, 도쿠가와 막부가 붕괴되고 메이지(明治) 이후에 설립 된 현대의 무사도는 새정부와 군사와 더 가까이 더 밀접하게 연결되여있는 것이다. 하기에 bbs에다 글을 낸 자는 아마 “우리는 선진기술, 성숙된 경험, 단결정신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편벽한 비좁은 땅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탄식해야합니다.>> 하면서 <<세상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불공평합니다>>하고 비명을 지르는 모양이다.      

    

   근대의 무사도(武士道)는 고대의 무사도(武士道)를 계승하면서 일련의 변화를 가져왔다. 우선 전에는 사무라이들이 저가끔 저의 마스터(主君)께 충성했다면 지금은 천황(天皇)께 충성을 다하는 것으로 변했다는 그것이다. 그러면서 서양 문명의 영혼을 받아들이여 서양의 자본주의 요소로 경제발전을 꾀하면서 천황은 다시금 무사도 코드로 저의 국민의 정신을 무장시키고있는 것이다. 그 정신이란 다시말해 군사주의에 의한 군사도구, 전쟁기둥으로   국민을 사용하는 것이다. 다시말해 국가의 침략을 선동한다는 것이다.

   19세기후반에 이르러 메이지 정부가 서양 문화를 소화함에 변화를 일으켰는바 민족 메이크업 중심의 서비스(本民族服务)를 강조했던 것이다. 부국강병(富国强兵)을 제창하면서 아시아 사람의 때를 벗어버리고 유럽인처럼 되자는 것이였다. 그러면서 구호를 내놓았으니 그것인즉은 바로 유럽은 건드리지 말고 아시아부터 쟁취하자는 것이였다. 우선 이웃 국가들에 최후 통첩내리고 그 다음에 가서는 세계를 병합한다는 것이다. 외교 정책을 고려하고 황제에 대한 충성을 봐가면서 다른 나라들을 하나하나 정복해 나간다는 것이다.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사도의 군사 정신을 부활시켜야 했던 것이다.
 

   여기서 이야기를 잠간 되돌려 회억해보면, 당시의 실정은 심지어 메이지 정부와 중국정부는 하위(中下级)관계로 되다싶히했던 것이다. 중국은 그같이 무기력한 꼴이였다는 얘기다.

   일본은 각 팬중 사무라이가 모든 요직을 담당하고 있었다. 보면 메이지때의 바루스(翻的) 오쿠보 도시미치, 이토 히로부미같은 인물들인데 그들은 다가 옛군인의 출신이였던 것이다. 다이쇼(大正)시대 국무총리 원다이킨, 쇼화(昭和)시대의 군부 파시스두목 도죠히데끼, 이타가키기호네 등은 다가 사무라이계층과 관계가 밀접해 마치 실뭉치같이 얽혀있은 것이다. 하기에 무사도의 조화와 군사주의는 상호 작용하면서 분리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무사도(武士道)가 군사주의를 수요하고 군사주의는 무사도(武士道)를 떠날 수 없었던 것이다.

         

   기원 527년에 일본왕이 원정부대를 보내여 신라에 침범했고 기원663년에는  일본이 26만에 달하는 군대를 보내여 한반도에 잠식해서 백제와 함께 신라를 치게했던 것이다. 히데요시는 1591년에 일본을 통일하고나서 얼마안되여 조선과 명나라를 침략하는 전쟁을 발동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강한 군대로 약소한 봉건 국가를 삼키려는 야심은 좀치도 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아시아 대륙을 대하는 사고 방식이 일본의 침략야심과 확장야심을 낳은 것이다

   노부히로 사토의 "건물 또는 비밀정책을 혼동" 으로부터 유명한 "다나카기념“이나 "여덟매크로 단어" 같은것은 일본민족의 최고의 리상으로 되었다. 

신사 메이지시대는 정치적 기능이 부여 된 미카도와 결합(天皇制相结合)된 국가 신도로 개발되였던 것이다.

   1882년, 메이지 정부는 "군사 법령을."공포했는데 거기에 이르기를 <<군대는 천황이 통솔하며 천황제국군인의 칙령은 “군인은 천황을 우러러 모신다”는 것이다>>라고 했다.

   1890년에 반포한  "교육 법령"에 규정 된 것을 보면 교육의 근본목적은 전체국민으로하여금 “황제에 대해 충성해야한다”면서 전투 침략의 정치적 요구를 충족하기 위하여 국가신도는 "거룩한 전쟁"을 웨쳐야한다고 했다. 일본은 여지껏 세계 정복과 지배를 꿈꾸어왔다는것를  말한다.

   <<제국역사>>에는 일본의 군국주의사상이 깊이 배어있다. 지금까지도  잘못을 승인하지 않고 거부는 리유가 여기에 있다. 그네들은 전 사무라이 무사도의 정신을 "일본인의 영혼."으로 믿고있기때문이다.

 

   일본파시스군대는 지금 투기장을 찾고있다. 1890년에 반포된 "교육법령"의 메이지천황 교육법령(教育敕谕)에는 사무라이와 같은 "애국충성"이 요구된다고 하면서 “만리파도헤쳐 나라위엄 사방에 떨치라“했다. 

   1912년, 육군 장군 노기키텐은 일본의 메이지 천황을 매장하는 날 자기가 황제에 "충성“을 다함을 보이느라 배를 가르는 할복순교의 죽음까지 한 것이다. 사람들은 그런 사무라식의 자살을 대단히 칭찬했다. 일본에서는 그를 메이지 하나님의 육군으로 ”봉”한 것이다. 

 

   "군사 법령"에 이르기를  다케오(武勇)는 고대로부터 일본의 가장 뛰어난 특징으로서 “일본사람으로 태여나 무용(武勇 )이 없으면 자신을 일본사람이 아님을 알고 부끄러워 하라.”고까지 했다. 무사도(武士道)는 천황과 일본의 국가이익을 위해서 전념하게끔 하는데,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천황과 일본의 이익을 위해 전념하면서 헌신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전쟁과 학살의 길로 용감히 매진하는 것이다.

   어리석은 위태로운 작란이 아니겠는가!

   다시한번 반복한다.

   나는 지금의 일본천황은 아키히토로 들었다. 지금도 건재한지? 건재하다면 자국이 전쟁을 일으켜 스스로 망하기를 기다리지 말고 정신차려 선대를 본받아 이럴때 구세주로 용감히 나서줄것을 다시한번 진심으로 권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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