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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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택동의 비극(2)
2015년 10월 20일 13시 19분  조회:2905  추천:0  작성자: 김송죽
 

                                           모택동의 비극(2)

 

                                                       김  송  죽

 

   1958년 3월, 모택동은 성도회의 때 개인숭배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개인숭배에는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맑스, 엥겔스, 레닌, 스딸린의 정확한 것이니 우리는 반드시 숭배해야 하거니와 해도 영원히 해야지 그러지 않으면 안된다. 진리가 그들의 손에 쥐여있는데 왜서 숭배하지 않겠는가?.... 다른한가지는 틀리는 숭배다. 분석도 없이, 맹목적으로 복종해서는 안된다.

                                       <<碰撞三十年>> 江西人民出版社             

   재미있는 것은 한때 모택동 본신이 당내에 가능하게 개인숭배가 생기리라는 것을 느끼고는 그것의 위해성을 방지하느라 조치를 댄 그것이다. 연안시기였는데 건국전야에 열린 중공 제7계 2중전회에서 모택동은 중국공산당원은 다가 리자성의 실패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고 경고하면서 한가지 문제를 제의했는데 그것인즉은 어느 지도급 당원이건 보통당원이건간에 무릇 공산당원이면 다가 생일을 번다하게 차리지 말아야 하고 개인의 명의로 지명이거나 거리의 이름을 짖지 말아야 한다고 했던 것이다.

   1956년 중공 8차대회 때 등소평도 당장수개보고를 하면서 엄숙하게 개인숭배문제를 언급했던 것이다. 그 보고에 보면 “개인숭배는 일종의 장원한 역사적인 사회현상으로서 이런 현상이 우리 당내의 생활에서나 사회활동에서 나타나지 않는다고 장담 할 수 있겠는가.”고 하면서 그는 “이따위 개인숭배현상이 우리 당내에서 발생하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은 상식으로 되어있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문혁”기간에 이르러서는 대체 어떻게 됐는가? 1970년에 모택동은 미국기자 에드가 스노우와 담화 할 때 “개인숭배가 좀 있어야 한다.”면서 연안때의 일을 회상했다.

   “그 당시는 내가 개인 숭배는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지난 몇 년 동안을 지내면서 나는 사실 개인 숭배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꼇다.”

   그렇다면 모택동이 개인숭배를 공개적으로 제창하지는 않았겠는가고 의문을 갖겠는데 이 문제에 대해서는 “문혁”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학자들의 믿을만한 집약된 론술이 하나 있으니답변이 될것 같다.

 

   “이 도리는 기실 그렇게 심오한게 아니다. 그 어느 령수건 잘못된 정책을 내놓음으로 하여 그것이 실천을 통해 쓸모없는 재난으로 판명된다면 자기는 필경 다른 지도자들의 저항과 반항에 맏다들게 되여 그 결과는 비참하다는 것을 잘 아는 것이다. 그러므로 리더는 자기의 방향은 옳다고 끝까지 주장하는데 그러자면 오직 권한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길래 개인숭배가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권한은 숭배의 무계와 정비례인 것이다. ”

                                席宣:<<문화대혁명 실패원인>>토론)

 

   모택동사상이란 본래 전당의 지혜를 한데모아 묶어놓은 것이지 그 혼자만의 발명도 창조도 아닌 것이다. 그렇건만 “문화혁명”이 일어나서는 그것이 그이 한몸에 집중되면서 고봉에 올랐으니 그때를 돌이켜보면 그야말로 정신이 혼미해 질 지경 란잡했던 것이다. 우선 개인숭배가 만강의 열의를 갖고 하늘로 하늘로 끝없이 치달아옳랐으니 말이 아니였다. 그 무슨 “만물의 성장은 태양에 의지한다”느니 “그의 말 한마디가 만마디를 당한다”느니 뭐니 하면서 춤을 춰도 “충성무”를 추고 “아침에는 청시, 저녁에는 회보”니 하여 꼭마치도 중국을 침략하여 만주를 점령했던, 내가 어려서 내 눈으로 친히 본, 일본이 망할 직전에 백성들에게 까지 “궁성요배”를 하게끔 강요했던 모양으로 집집마다 때가 되면 상을 차려놓고도 감히 먹지 못하고 먼저 모택동사진이나 화상앞에 마주서서 빨간비닐뚜껑을 씌운 자그마한 “붉은보서”를 쥔 손을 가슴에 짚고는 어록을 뇌이는 따위의 짓거리를 해야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그 누구나 다가 앞가슴에 모택동의 배지(像章)를 달아야했고 노래를 불러도 “따하이 항싱 코퉈숴”니 아니면 “그대의 말 한마디가 만마디를 당한다”느니 어쩐다는지를 불렀러야했던 것이다......

                               

  “문화 대혁명”기간에 가장 돌출하고도 구체적인 표현으로서는 마음맞는 혁명자 반란자들끼리 한동아리가 되어서는 그 므슨 <<동방홍>>이니 <<정강산>>이니 <<결사분투단>>이니 뭐니 하는 가지가지 혁명단체를 만들어서 앞다투어 탈권을 하느라 법석거린 것이였다. 그야말로 무법천지로 놀아댄 흉맹스런 작태였다. 그들은 다가 자신을 “억만인민 맘속의 붉디붉은 태양” 모주석을 생명으로 보호한다고 맹세했다. 그랬으니 원래의 집권자들은 마음속으로 그전같이 의연히 당에 충성하고 수령을 믿으면서 인민대중을 위해, 집체를 위해 열심히 지방건설에 몸을 다 바쳐왓건만도 꿈결에 날벼락맞듯이 눈깝작새에 혁명대상이 되어서 곡경을 치뤄야했다. 그들 전부가 아무런 법적인 보호도 받지 못한채 뚜드려 맞으면서 무단적인 제재를 받아야만 했던 것이다.

   역시 문화대혁명때 발생한 일인데 례를 하만 들겠다. 내가 반생을 지낸 저 북방ㅡ 송화강건너의 한 조선족공사의 반란파 혁명자들은 당지ㅡ 전 공사내의 간부들을 끌어내다가는 공사위원회 앞마당에 둥그런 원형이 되게 줄을 세워 허리를 90도 되게 굽히게 하고서는 교육을 한다느니 징계한다느니 하면서 젊은놈들이 그우에 올라서 돌아가며 등을 밟아놓는 놀음을 놀앗던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그것을 “무산계급혁명”이라 했다. 손을 대여 육체를 잔페로 만드는 짓을 락으로 삼은 것이다. 그야말로 수양없이 돼먹은 무지막지한 자식들만이 할 수 있는 막짓이였다. 내가 본건데 한사람은 어떻게 얻어맞았는지 한쪽귀가 쭈그러져 병신이 된 것이였다. 1984년도 11월 함강지구조선어문연구회성립회의 일 때문에 거기에 갔더랬는데 그 공사에서 당위서기를 지냈던 안○○로인은 그때의 일을 회상하면서 락루했다.

   돌이켜 보면 “쪼판패”라는 것이 기실은 다가 “무산계급혁명”이라느니 “모택동의 전사”라느니 뭐니 구실을 대고 “반란에 도리가 있다”는 구호를 웨치면서 제멋대로 제배짱대로 놀아댄 불법의 조직이였던바 그 성질은 폭도(暴徒)와 조금도 다름없었다. 철없이 무지했던 그들은 <<모택동선집>>의 것이면 덮놓고 그것은 구절두절 다가 “최고지침”이라느니 “진리”라느니 하면서 대규모적인 “군중반란운동”을 일으켰던 것이다. 그야말로 세상에 류례를 찾아볼 수 없는 모택동식의 혁명이였다.

  

   지금에 와 보면 그때는 폭력적인 “혁명파”에 의해 국민 거의가 인권마저 박탈당함으로 하여 개인의 사유같은건 표달하기조차 어려웠던 것이다. 까딱하면 끄떡하는 판이라 감히..... 어디에선가는 19살나는 중학생이 강청과 림표를 욕했다가 아버지와 함께 목숨을 잃었다.

                               

 “계급투쟁”이라느니 뭐라느니 그같이 자칮하면 걸려들고 생명이 왔다갔다하는 판이라 맹목적인 억지숭배로라도 우선 내 목숨은 내가 살리고 봐야했던 무서운 시절이였다. 거기에다 선줄을 끌고 부채질하면서 우두머리짓을 한 악한들이 있었으니 그것은 다른자들이 아니라 모택동이 숨을 거두고 저세상에 가버리자 인차붙잡혀나와 끝장을 보고야 만 “4인무리”였다. 그자들은 모택동이 길러낸 한무리의 교활하고도 흉악스러운 앞잡이 개들이였던 것이다,

 

   그런 앞잡이 개들이 거의 발광적으로 “개인숭배”열조를 일으켜 모택동을 하늘높이 쳐올려 세상에 더없는 대구성(大救星)으로 떠받들게끔 만든 것이다. 그통에 모택동은 되려 대구성은 커녕 소구성(小救星)도 못되는 멍청스런 바보독재자 폭군으로 변해버리게 만들고 만 것이다.

  수천년의 문명고국이라 자랑해온 중국이 문명시대에 격은 진짜비극이였다!

         

 모택동 그가 발동한 "문화대혁명"이 어떠했는가? 그에 대해서는 세인이 이미 다 알고있는 일이기에 구구히 더 말하지 않고 아래에 엽검영이 1978년 12월 13일 중공중앙사업회의 때 선포한 것을 원문그대로 올리니 보면 좀 더  알게 될 것이다.

 

“중공중앙은 2년 7개월간의 조사를 거쳐 '문혁'에 유관한 수자를 핵실했다.

박해받은 사람 745만명,

갇히여 심사받은 사람 425만명,

자살한 사람 172만 8천명,

고급지식분자가 핍박에 못이겨 층집에서 투신하거나 목을 매거나 강에 몸을 던지거나 음독자살한것만도 20만명,

1970년 "一打三反"운동 때 “엄하고 빠르게” 사형판결을 내려서 죽인 “현행반혁명”만도 13만 5천여명,

무단적투쟁에 죽은것이 23만 7천 여명,

불구로 된자 703만명,

철저히 회멸된 가정이 7만 1천 2백여 호,

비정상적인 사망이 적어도 773만명에 이른다.

 

불완전한 통계에 의하면 잔혹하게 박해받은 사람이 1억이니 전국인구를 9억으로 칠 때 그 비례는 9분의 1이 되는 것이다.

억울하게 죽은자 2천만을 넘고 손실본 국민경제는 인민페로 8천억원에 달한다.

            (엽검영1978년12월13일 중앙공작회의에서 핵실한 수자)

 

                                  관련글: <<음지에 묻힌 비밀>> 

   

   에드가 스노우:(1905년7월19일ㅡ1972년2월15일), 미국기자로서 중국의 혁명하는데 관한 글을 써 유명해진 사람이다. 생전에 공산당이 탄생해서부터 1930년사이의 사건들을 기록한 <<서행만기>>를 남겼다.

                                       

                                              

                                                                                      2012.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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